영금정 옆의 등대 전망대, 제법 가팔라보이는 길이 200여미터 수직으로 상승한다는 표지에 번번이 지나치기만 했던 곳.

 

이번에는 한번 올라가보겠다며 마음을 먹고 올라가는 길에 이렇게 갈매기 모양의 가로등을 만났다.

 

속초의 청초호, 그리고 여객터미널이 내려다보이고. 은근한 빛무리가 구름 사이에서 내리쬐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금방 도달했던 등대전망대의 꼭대기. 속초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가장 높은 지점이다 보니 풍경이 시원하다.

 

북쪽으로 계속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함께 흘러가는 설악산줄기.

 

전망대에 있는 갈매기 모양의 조형물.

 

방금 한바퀴 둘러보았던 영금정 정자와 전망대.

 

전망대에서 하릴없이 바닷바람 맞다가 멀찌감치 내달리는 배 한척을 발견했다. 오선지같은 울타리에 걸린 음표 하나.

 

영금정. 파도가 탄주하는 가야금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정자라 해서 영금정이라 했던가. 그때의 소리는 항구 개발이다 뭐다로

 

사라져버린지 오래라고 하지만 이름만 남아서, 이렇게 그 연원을 밝히는 조형물이 동그마니.

 

 

 

금문교의 붉은 실루엣을 옆에 치워둔 채, 세찬 바닷바람에 긴치마를 펄럭거리며 갈매기를 불러들이던 그녀.

 

하늘로 쭉 뻗어올린 그녀의 손에 화답하듯 주위에 내려앉은 갈매기들은 과자 부스러기보다 그녀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남양리에서 맞는 울릉도 세번째 날, 그대로 섬의 아랫도리를 따라 걸을까 하다가, 아무래도 동선이 애매하여

 

울릉도 입항한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중교통을 한번 타기로 했다.

 

 

3일차, 오후 5시반 배를 타고 나가기로 했으니 저동에까지 일단 버스를 타고 가서, 내수전을 거쳐 저동항,

 

촛대암, 행남등대를 지나는 해안산책로를 따라 도동으로 들어가 사동항으로 가는 코스를 잡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삼사십분 간격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리다가, 안되겠다 싶어 정류장 앞의 따개비칼국수집에서

 

한그릇 말아먹고, 해군사령부에서 붙여준 간첩선 식별 스티커도 숙지하고.

 

 

저 멀리 보이는 옆구리 구멍 빵빵 나있는 터널도 구경하고, 남양리 앞바다도 굽어보고.

 

WARP~! 한 이십분 타고 나서 촛대암이 우뚝한 저동항에서 내렸다. 내수전은 이번에 못 가본 울릉도 동북쪽과 더불어

 

다음 기회를 기약하기로 하고, 저동항부터 한바퀴 둘러보고 해안산책로 따라 도동쪽으로 넘어가는 걸로.

 

저동항 앞에 길게 방파제를 박정희 대통령때 만드는 바람에 촛대암이 그 이전과 같은 위엄은 상실했다지만.

 

저동항에 죽 늘어선 해산물시장, 이층짜리 회집타운에 올라가는 계단에서 아래를 향해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리며 마치 천하대장군처럼 당당히 서 있는 오징어 한마리.

 

울릉도스럽다, 라고 해야 하려나. 오징어잡이 집어등을 따로 모으는 수거함이 항구 한쪽에 있고.

 

저동항 한 쪽에 있는 이 커다란 갈매기같은 기묘한 건물은..아마 배에 뭔가를 싣거나 부릴 때 쓰는 구조물이려나.

 

 

 

 

 

저동항을 거의 감싸다시피한 방파제 안의 차분한 바다에서 다닥다닥 주차된 배들이 곰실곰실 움직이고 있었다.

 

 

 

 

방파제를 따라 걸어서 촛대암 근접 촬영. 제법 크고 굵직한 게 위에 갈매기 둥지 여남은개는 품고도 남겠다.

 

 

울릉도 동쪽의 커다란 북저바위, 그너머로 보이는 한 가구가 살고 있다는 죽도. 이게 일본어로는 제대로 '다께시마'가

 

되겠다. 생긴 건 살짝 종합운동장처럼 생겼고, 왠지 위로 솟을수록 풍성해지는 모양새가 사람 살기 좋을 듯한.

 

 

보통 울릉도에서 배를 타고 나가서 돌아보는 코스로는 크게 독도 왕복, 아니면 죽도 왕복, 이렇게 두개 코스가 있다고

 

하니 다음에 또 울릉도를 오게 되면 나머지 울릉도를 돌아보고, 죽도랑 독도를 가봐야겠다.

 

 

 

방파제 안전난간에 자리를 잡고 저동항을 바라보는 갈매기 녀석의 매서운 눈빛.

 

 

그리고 저동에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도동쪽, 해안도로가 저 바윗덩이 중간중간에 숨어있다.

 

그리고 저동에서 도동으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 입구. 뭔가 두터운 콘크리트 벽을 넘어서면

 

새로운 풍경이 확 덤벼들 거 같은 느낌의 출입문이다.

 

 

 

 

'맛있는 인생', 현실까지 넘쳐들어온 강릉의 로맨스.

 

영화 '맛있는 인생'에선 차를 타고 슬쩍, 그야말로 옆동네 가는 기분으로 강릉에서 주문진으로 옮겼다는 느낌이었는데,

 

실제로도 강릉에서 주문진 건너가는 건 그런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던 거다. 경포 앞바다를 떠나 길을 잠시 달리다간

 

어느새 다시 나타난 바다는 좀더 본격적으로 항구도 두어개 끼고, 아저씨들은 그물을 정리하고.

 

 

 

방파제의 두 팔 안에 조심스레 안겨있는 주문진항에서 둥실둥실 여유로운 배들, 그리고 그물을 정리하는 분들.

 

그리고 항구 코앞에 바다를 바라보며 주차된 자전거와 자동차, 수면에 기댄 채 출렁이는 배까지. 탈거리 셋이 모였다.

 

주문진에서 출발하는 크루즈호의 선착장. 크루즈라곤 하지만 글쎄, 그다지 호화스러워 보이진 않던데.

 

 

주문진항 근처의 수산시장을 돌다가 만난, 금방이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가오리 떼들.

 

골목골목 누비다가 만난 '성인나이트'의 숨겨진 간판, 그렇지만 입구도 숨겨진 거 같구 지금도 하는지는 미지수.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라는 단단한 선언조의 문구가 눈을 확 잡았던, 마치 무슨 공산당 테제같은 느낌의 광고.

 

 

골목을 한꺼풀만 열고 들어가도 재미난 풍경들이 숨어있었다. 슬레이트 지붕을 얼기설기 얹은 허름한 집 앞 자전거.

 

 

수산시장 골목마다 김을 펄펄 피워올리며 새빨갛게 익어가던 가뜩이나 빨간 대게들, 저 녀석들은 물구나무를 서있는 건가.

 

 

주문진항의 상징물 오징어는 왠지 울트라맨에서 자주 나오던 크라켄이던가, 거대괴물이랑 비슷하게 생긴 듯.

 

수산시장 입구에서 사방으로 돌아다니다가 아무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그들처럼 회는 먹고 가야겠다는 다짐만

 

갈수록 단단해지던 차에, 생선을 따로 사고 회를 따로 떠서 어디던 바다가 보이는 곳에 앉아 먹기로 결심.

 

광어랑, 청어였던가 제 이름으로 못 불리고 '잡어'로 통칭되는 생선들 몇 마리, 그리고 개불이랑 멍게까지.

 

그리고 주문진 앞바다. 드문드문 바닷가 깊숙하게 쳐들어간 바위 덩어리들은 이렇게 자그마한 금강산 코스프레중.

 

일만이천봉우리가 하나하나 살아나선 뾰족뾰족 하늘을 이었다.

 

 

바위들 위로 기어올라가 제법 뜨끈하게 달아오른 햇살 바라기 좀 해주고, 덥다 싶으면 아이스크림 하나 베어물고.

 

 

멀찍이 보이는 등대 아래춤에선 사람들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정지화면처럼 멈춰 있고. 움직이는 건 바람결에

 

살랑살랑 잔물결을 이어나가는 주문진 앞 바다뿐.

 

조금은 흐린 날씨탓에 하늘과 바다가 분간하지 어려워서 문득 망연해지는 시선을 붙잡아 주는 건, 문득문득

 

생각났다는 듯 날개를 펼치고 하늘과 바다를 가르며 날아가는 갈매기 한마리.

 

 

 

 

 

속초의 갯배. 온전히 사람의 팔힘으로, 아니 온몸의 힘을 실어 잡아당기는 쇠줄을 따라 꾸역꾸역 움직이는 사각형 배.

속초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청초호를 끼고 갯배선착장까지 걷는 길. 호수라고는 하지만 속초항 앞을 지나 바다로

나갈 수 있어서인지 가장자리를 따라 고깃배들이 일렬주차중.

서울역 광장에서 종종걸음치며 날개를 퇴화시키는데 힘쓰는 비둘기떼들마냥, 속초에선 갈매기들이 그런다.

청호대교 위를 따라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는 길. 빗발이 듬성듬성 내리는, 그렇다고 우산쓰기는 애매한 날씨.

대교의 고갯마루쯤에 오르면 바깥으로 툭툭 튀어나온 전망대 비스무레한 곳이 있다. 고개를 슬쩍 빼면 저만치 갯배가 떠다닌다.


다리 아래 아스팔트 바닥에서 생선 대가리를 토막치는 분도 보이고, 바싹 뭍에 붙여놓은 조각배도 보이고.

가까이 다가갈수록 점점 크게 보이는 갯배. 배라기엔 참 투박하고 모양새가 없어서, 그냥 커다란 네모 부표라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산책하는 속도랄까, 그래도 한걸음씩 단단히 힘주어 밟아가듯 확실히 전방진행중인 갯배들.


다리 아래, 생각지도 못한 곳에 이런 화사한 그림이 숨어있었다. 하트가 샤방샤방하게 날리는 복어커플.

이런 플래카드는 좀 없어도 좋을 거 같은데. 하긴 이런 방송의 힘이 없었다면 찾아오기도 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이용요금은 성인 200원, 아이 200원, 자전거 200원, 손수레 200원. 갈 때 200원, 올 때 200원.


자전거 두 대가 왜 저렇게 묶여있나 했더니, 가을동화에서 그들이 탔던 자전거라고 한다. 그보다 더 흥미롭고 시선을

잡아당겼던 건 저 오징어 모양의 장승. 속초 시내 곳곳에 세워두면 나름 명물이 될 거 같은데.

갯배로 건너가는 구간은 굉장히 짧아서, 설설 걸어가는 속도의 갯배라곤 하지만 채 2-3분도 안 걸리는 거 같다.

그래도 이렇게 갈매기가 마구 날아다니는 엄연한 바다 위를 저렇게 간단한 뱃조각에 기대어, 아저씨가 끌어주는

쇠줄에만 의지해서 건넌다는 건 꽤나 독특한 체험이다. 속초의 이곳, 갯배선착장을 지나면서야 경험해볼 수 있는.

뱃손님이 다 내릴 때까지 저렇게 쇠줄을 바투 땡겨잡고는 배가 흔들리거나 풀려나지 않도록 고정하고 계신 아저씨.

 

속초시내에서 걸어다님직한 거리 내에 있는 볼거리들. 야트막한 스카이라인, 허름하고 한산한 거리는 걷기 좋은 듯.






강화도 외포리 외포여객터미널, 이곳에서 30분마다 출발하는 카페리호를 타고 석모도를 들어가려는 차와 사람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강화도 외포리에서 석모도 석포리로 불과 십분 남짓 배를 타고 이동하는데 드는 비용은

승선비용 대인 2,000원, 소인 1,000원, 승용차 14,000원. 편도비용이 아니라 오가는 왕복비용을 미리 지불하는 식이다.

선착장 끝이 바다에 슬몃 잠겨있고, 그 앞에서부터 일렬로 늘어서서는 배가 오기를 기다리는 차들. 저만치 앞에서

갈매기떼를 무슨 날파리들처럼 몰고서 오는 유람선이 보인다. 

이제 배 앞의 입을 활짝 벌리고는 항구와 단단히 연결짓도록 인도하는 아저씨, 배 한대에 승용차로 한 삼십여대이상

들어가는 거 같았는데 이날따라 관광버스로 석모도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아무래도 수능시험을 치고나서

보문사의 부처님께 부탁할 일이 많아서라거나, 석모도에 있는 조그마한 산들을 오르내리려는 거 아닐까 싶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어 버린, 석모도 가는 길 배 위에서 갈매기에 새우깡 던져주기 놀이. 이제 갈매기

녀석들도 어찌나 닳고 닳았는지 엔간한 새우깡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게으르게 배를 따를 뿐이다. 던져졌던 새우깡이

바다에 힘없이 떨어지고 나면 그제야 바다에 살짝 내려앉아 먹기도 하고, 요행히 자기 비행 경로에 맞춤하게 던져진

새우깡만 잡아챌 뿐, 던져진 새우깡을 먹겠다고 서로 다툼하거나 사람 손가락까지 잘라먹을 듯 덤벼드는 '기백'은

보이지 않았다. 이럴 줄 알고 새우깡 안 사고 남들이 던져주는 것만 구경하길 잘했다 싶을 정도로 배부른 갈매기들.

▲ 네이버에서 찾아본 석모도 지도. 왼쪽 아래 '장곶선박출입항대행신고소'와 '민머루해수욕장'이 보인다.

가장 먼저 간 곳은 장구너머포구. 네이버 지도상에는 '장곶선박출입항대행신고소'라는 긴 명칭으로 나와있지만

장곶포구 혹은 장구너머포구라고 흔히들 부른다고 한다. 포구로 향하는 길은 그다지 정비되어 있진 않아서

차 두대가 아슬아슬하게 지날만큼의 아스팔트포장이 되어 있고, 따로 간판이나 표지판이 서 있는 게 아니라

길 바닥에 저렇게 노랑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정도. 포구에 도착하니 낙조를 보며 식사를 할 수 있다는 횟집들이

각자의 배 이름을 걸고서 성업중이었다.

그리고 흐릿한 날씨에 벌써부터 시뻘겋게 변해버린 해가 걸쳐 있는 하늘 아래로, 마치 태양으로부터 뻗어나와

바닷물에 일렁이는 햇살인 것처럼 출렁이는 배들이 저 멀리부터 점점 커지며 눈앞으로 육박하고 있었다.

포구에 배들이 전부 들어와있나 싶을 정도로, 조그마한 포구가 꽉 차 있었다. 그리고 한 켠엔 잔뜩 녹이 슬어 있는 채

시멘트 바닥 위로 끌어올려져 있던 커다란 닻이 하나.

바닷바람이 꽤나 쌀쌀했지만 바다에 낚시줄을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이 꽤나 많이 보였다. 그네들도 추운지 제각기

방해받지 않고 띄엄띄엄 자리를 잡은 게 아니라 다닥다닥 붙어선 낚시대를 올렸다 내렸다 하고 있었는데, 그와중에

혼자 살짝 떨어져 있는 저 분이 눈에 띄었다. 어쩌다 보니 저 분이 낚시대를 드리워서는 저 어선을 끌어당기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이 재미있어서 사진으로 담아봤다.

포구나 그런 곳은 보통 갈매기떼들이 하릴없이 노니며 주인없는 생선이 있지는 않나 호시탐탐 노리는 게 상례인데,

아무래도 석모도의 갈매기들은 전부 외포리와 석포리를 잇는 카페리호를 따라다니는 거 같다. 그러거나 말거나

장구너머포구로 들어오는 배, 포구에서 나가는 배들이 그 사이에도 쉼없이 뱃고동을 울리고 있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 곳에서 아예 바다로 삼켜지는 태양을 구경하는 것도 꽤나 괜찮겠다 싶어서 기억해두었다.

강화도에서 먹었던 것 중 맘에 들던 조합 하나는 강화도인삼막걸리랑 순무김치, 석모도에서도 순무가 나는지

장구너머포구를 뜨기 전 한 옆에 소담하게 무더기짓고 있던 자줏빛 순무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민머루해수욕장'.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민머루, 미음발음이 연이어 나는 이름이

기억하기도 쉽고 이쁜 거 같다. 석모도에 있는 유일무이한 해수욕장이라는데 이미 바지런한 이들은 텐트를 펼치고

바다를 바라보며 캔맥주를 기울이고 있었다. 요새 날씨에 바다에 들어가긴 좀 무리겠고, 바다를 바라보며 캠핑을

하기엔 맞춤한 장소일 거 같다.

바다만 바라봐도 추워 보이는 11월인데다가 바닷바람도 제법 세차다. 아무래도 여름철 바다와는 달리 다른

봄가을겨울의 바다란 건 다분히 관상용이라는 혐의가 짙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를 듣고 바다 냄새를 맡으며,

지치지도 않고 쉼없이 달려들다간 허물어지는 파도에 질릴 줄도 모르고 시선을 빼앗기는 것.


아니면 이렇게 바닷가 모래사장에 주차되어 있는 자전거를 타고 바퀴가 푹푹 빠지는 모래사장 위를 잠시 주행해

본다거나, 낚시대를 바닷가에 드리워보는 것도 괜찮겠다.


모터보트는 뭍에 잔뜩 끌어올려진 채 엔진이 차갑게 식어있었다. 내년 여름까지 움직이지 않으려나. 여름이면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줄서서 샤워장을 이용하고, 모터보트의 엔진도 쉴 줄 모르고 뜨겁게 달아오를

텐데, 민머루해수욕장의 여름철 풍경이 문득 환상처럼 스쳐갔다.

그리고 계절에 딱히 구애받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산악오토바이, 네 바퀴의 ATV를 타고 해수욕장 근처를 돌아보거나

가볍게 드라이브를 즐기는 건 비만 오지 않으면 언제든 환영이다. 사진에 찍힌 건 그렇게 당장 드라이브를 나갈

상태는 아니고, 다만 카울 옆에 붙은 '페라리' 마크가 너무 선명해서.

천막이 걷힌 채 뼈대만 차갑게 남아있는 가을 혹은 겨울바다 위로 조금씩 해가 기울고 있었다. 가뜩이나 춥고 센치한

풍경에 저런 앙상하고 차가운 알루미늄 뼈대가 시꺼멓게 타버린 듯한 모습을 보니 이정도면 이맘때 바다를 찾아

즐길 수 있는 센치함은 만땅 충전되었지 싶어, 이제 슬슬 떠나도 되겠다 싶었다.

민머루해수욕장을 떠나려는데, 아까 장구너머포구에서부터 잘 보이지 않던 새떼가 보였다. 갈매기는 아니고,

쐐기 모양의 대형을 이루어 어딘가로 떠나는 철새들인 거 같았는데, 덕분에 이맘때 바다를 찾아 느끼고 싶은

스산함이라거나 센치함이라거나 그런 감정이 충만해진 채로 떠날 수 있엇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2월말, 조금 흐려진 하늘이 걱정스러웠지만 소매물도를 위시한 남해바다의 숱한 섬들 사이를

요리조리 헤치고 나가는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바다는 기세등등하게 검푸른 빛깔이었다.

갈매기가 몇 마리 따르고, 어느 지점에서 배가 달리던 간에 가깝고 먼 섬들이 사방을 온통

둘러쳐주는 모습이란. 게다가 그 섬들의 기기묘묘한 풍경까지.



소매물도 십자동굴을 보러가던 차였다. 온몸에서 통통거리는 유람선을 타고서 제법 높은 파도를

뚫으며 달리던 길에 빼어든 새우깡에 갈매기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입이 찢어져라 벌리며 공중에서 과자를 낚아채는 녀석, 그리고 애절하게 손을 내뻗으며

나도 한입..이라고 외치는 듯한 다른 녀석들의 눈짓과 날갯짓이란.

굉장히 시크하게 생긴 녀석들이 새우깡 한두조각에 미친듯이 갸르릉거리며 덤벼드는 걸 보자니

왠지 배신감도 느껴지고 그랬다. 그나마 석모도 가는 길의 그 탐욕스럽고 무시무시한 괭이갈매기

녀석들보다는 훨씬 낫긴 하다만.

슬쩍 보이는 배의 꼭대기 위에서부터 퍼져나가듯 날아가는 갈매기들.

니놈들 중에 조나단은 없는 거냐.




강화도 대명항, 수많은 갈매기들이 무어에라도 쫓기는 듯 온통 날아올랐다. 여기저기 물찌똥을 찍찍 갈기는

건방진 녀석들이지만, 닭둘기와는 다르게 날아다니는 폼이 여유가 있다.

그렇지만 여기 역시, 마치 석모도 들어가는 페리에 파리떼처럼 달라붙는 그 손탄 갈매기의 기풍이 없을 수는

없는 거다. 사람들은 풍족하게 먹고 소비하고 남기고 버리고, 약간의 휴머니즘이나 센티멘탈리즘을 더해

동물들에 먹을 걸 던져준다. 시혜 욕구와 식욕 모두를 충족시키는 윈-윈이랄 수도 있겠지만, 저들이 부디

나는 법을 잃어버린 채 사람들의 손끝만 바라보는 닭둘기로 전락하지 않기를 바랄 뿐.

먹이를 두고 첨예한 날개죽지 싸움이 벌어지는 뻘밭. 그들의 매끈하고 반들거리는 몸통과 날개는 웬만한

더러움쯤은 쉽게 튕겨낼 듯 한 포스가 배어있다.

과자를 던지는 아이의 손에 꽂힌 녀석의 눈빛. 인형에 붙어있는 유리눈깔같이 조금은 괴기스럽기도 하고,

생기를 잃은 듯 하면서도 묘하게 살아있음이 느껴지는 눈빛이다.

과자 먹느라 신나셨다. 홰를 친다고 표현하던가, 날개를 푸드덕대며 태양을 피하고, 한 입에 과자를 꿀꺽.

이 녀석은 왠지 털도 부시시해 보이고, 뻘밭 웅덩이를 물끄러미 응시하며 자학에 빠진 것만 같다. 이리 살아

뭐할끼고. 과자 한 입 못 얻어 먹는 시러배새새끼.

시간만 있으면 갈매기들의 비상을 제대로 한 컷 잡아 보고 싶었는데 어느순간부터 이녀석들 전부 저공비행이다.

어렸을 때던가,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는 식의 속담에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했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면서, 지금은 공기도 무거워지고 벌레들도 지표면 가까이로 내려와 있어 새들이 낮게 저공비행하는 걸 테고

내일쯤 비가 오려나 생각했는데, 비는 결국 안 왔던 듯 하다.

대명항에서 기우뚱거리는 어선들. 잘 손질된 어구들이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항구 바로 앞에 세워진 어물전에서는 시뻘건 소고기같이 생긴 고래고기도 팔고, 지느러미가 리얼한 상어고기도
팔고, 저마다 아주머니들의 남편이, 아들이 잡아왔다는 국내산 생선들을 파느라 분주했다. 그 와중에 빛나는

아이디어, '껍질홀라당벗겨진, 금방 돌아가신 간제미'.


수백마리의 생선이, 수만마리의 새우 사체가 산처럼 쌓인 채 소금에 절여진 냄새를 뿜어내는, 조금은 잔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의 어시장이었지만 저런 덕분에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바다를 제대로 보려면 서해보단 동해다. 뭔가 바다를 바라보아도 질척하고 끈적한 뻘밭이 시야의

한웅큼을 뺏어가는데다가, 거의 틀림없이 바다 너머엔 또다른 육지가 보인다. 이래서야 원, 강인지 바다인지

알 방법이라곤 짠내밖에 없는데 그조차도 왠지 서해 쪽은 많이 희석되는 느낌이다.

어느 횟집의 빈티지스러운 테이블 세팅. 색이 바랠대로 바랜 의자 여섯개가 노골적으로 부조화스런 색감을

뽐내며 척하니 자리를 잡았고, 고등학교 때까지 익숙했던 파랑색 쓰레기통이 상석을 차지했다. 한눈에 보아도

잔뜩 녹슬어 보이는 테이블 위 석쇠를 넘보는 건 보랏빛 바디가 딱정벌레처럼 반들거리는 오토바이.




@ 강화도 대명항.


새하얗고 커다란 구름 갈매기가 어느결엔가 내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구름 갈매기의 위용에 조무래기 갈매기들이 모두 날아올랐다.


카메라 초점이 애초 맞을 수가 없는 저 너머의 갈매기였지만, 덕분에

물기를 머금은 듯 번져보이는 대명항이 조금은 순진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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