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by I was fading,
Baby I was waiting.
For someone out there to save my soul
To love me in the good times,
To hold me in the bad times
Someone to make me smile a new.
Who really paints those grey skies blue

I was looking for a good life,
Just looking for a good life.
Oh a good life

Baby I was crying.
Cos all around was dying.
Until the day that you came along.
You opened up those blue skies
And now we only get highs.
I never found a love so strong
And it just keeps on rollng,
Keeps me going on.

Oh baby it`s a good life.
I got you by my side tonight
Baby it`s a good life.
And everything is right tonight.

I thought I was strong.
A fool playing the wise man
But that is easy now for me to say.
Cos I`m smiling away

Oh baby, baby it`s a good life, good life
Baby it`s a good, good life alright.

I found someone to make my whole life new.
That somebody i found is you

It`s a good life.
New life. Baby it`s a good life
Oh. baby it`s a good life.
I got you by my side tonight

Baby it`s a good life.
And everything`s alright, Tonight
Well, I love you. baby, I really love you. baby
That`s why everything is right.
life is good, life is fine.
Oh, baby it`s a good life


*                                                         *                                                         *

I'm still looking for a good life.


@ Jeju Island.

이번주 월요일 오후, 코엑스 3층을 향해 수많은 사람들이 진격하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진격, 조그마한 초대장

하나를 들고 차려입은 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 전우회 따위 마크가 새겨진 모자를 눌러쓴 할아버지들까지

숨넘어갈 만큼 잰 걸음으로 3층 행사장을 찾았다.

얼마나 바글댔냐 하면, 코엑스 1층부터 3층까지 전관에 그들의 숨가쁜 뜀박질 소리가 메아리쳤고, 그뒤를 따라

질서유지를 위해, 그리고 연사로 초청된 황장엽 전 노동당비서의 안전을 위해 의경들이 떼를 지어 몰려갔었다.

정신사나운 호루라기 소리와 구둣발 소리, 그리고 쉼없이 3층 행사장이 어디냐고, 어디에 가면 라면냄비를

받을 수 있냐고.


심지어 그들은 일층 행사장에서 커피브레이크를 가지며 마주보고 담소를 나누던 외빈들 가운데를 뚫고

지나가며 "이건 뭐야~"할 정도로 용감무쌍했다. 이럴 수가. 이토록 비문명적인 인간들이라니.

그나저나, 엥? 라면냄비?? 오후3시인가 시작된다던 행사에 수천명의 사람이 몰렸다더니. 무슨 행사인가 싶어서

시간날 때 올라가 봤댔다. 민주평화통일? 진보쪽 단체인 거 같으면서도 묘하게 보수색채가 진한 듯 보이는

이름이 슬쩍 호기심을 간질였다. 근데 평화통일 어쩌구 행사에 왠 라면냄비 Seeker들인가 말이다.

안내데스크 뒤쪽 가득히 쌓인 라면냄비를 둘러싸고 옥신각신 실랑이가 벌어지는 가운데, 전쟁터 한가운데서

부상병이 물한모금을 청하는 심정으로 주위 '어르신'들께 물었다. 이건 대체 뭡니까. 라면냄비는 어떻게 하면

받는 겁니까. 사정인즉슨 이랬다. '북괴를 몰아내는 통일꾼'이 되겠다는 다짐을 하는 '통일무지개회원카드'를

작성해서 회원신청을 하고 나면 입장이 가능하고, 입장이 가능한 사람에게만 무려, '라면냄비'씩이나 제공이

된다는 거다. 다소 소략하게 말하자면, 회원가입신청과 라면냄비의 물물교환이다.

그래서 신청서를 내고 라면냄비를 받는 창구는 이토록 혼잡스러운 거다. 초대권을 흔들며 왜 더 안 주냐고

항의하는 어르신, 양손에 라면냄비가 담긴 종이백을 네다섯개씩 주렁주렁 꿰고 가는 어르신.

한쪽에는 알맹이가 쏙 빠진 채 껍데기만 남은 종이백이 수북하다. 파란색이다.

"핵무기 개발로 세계와 대결하면서 고립을 자초하고 있을 뿐 아니라 2,400만 북한 주민들은 굶주림에 신음하는

참담한 현실", "초당적이고 범국민적인 국민통합을 이루어 정부의 대북정책에 호응하는 지지층을 넓히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관계 고위인사들 인사말을 보아도 알 수 있듯, 파란색이다.

이런 어이없는 대북관, 게다가 황장엽의 어이없는 통일관. 몇년전 황장엽이 주최하는 소규모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때 주체철학의 창시자였던 그는, 그의 '인간중심철학'이 김일성에 의해 일인독재를 정당화하는

'주체사상'으로 변질되었다고 주장함으로써 남한땅에서의 지분을 받았지만 남겨둔 사람들에 대한 죄책감을

견딜 수 없는 모양이다. 인간적으로 동정을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감정에 치우쳐 북한에 대한 매파적이고

극렬한-결과적으로 한국 보수반동과 통하는-목소리를 더하는 것은 할 짓이 아니다. 그러면서 북한에 머리위에

있는 한국은 한국만의 '한국식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느니 어떻다느니, 정부의 동원능력을 확대하고 시민적

공간과 가치를 훼손하는, 그런 어이없는 민주주의론까지 운위하고 있는 건 정말이지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게다가 이런 자리를 위해 화환을 보내고, 사람들을 동원하고, '라면냄비' 몇천개를 사라고 돈을 내어주는

사람들은 더더욱 어이가 없다. 회원이 되면 낭독하게 될 '선서문'에 보면 적나라한 그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정부의 대북정책 공감대 확산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

솔직히 이런 양반도 마찬가지다. 나름 인지도가 있는 김병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고 있다. 뭐, "대통령과의

대화"에 나가서 대통령 팬이니 어쩌니, 내복이 어쩌구 저쩌구 박자맞춰주는 탤런트니 아나운서들도 있으니

이런 조그마한 데서 마이크 잡는게 뭐가 어떠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사실 나는 애 많이 낳자거나 다시 한번

같이 뛰자거나 허리띠 졸라매자는 공익광고에 목소리 빌려주는 사람들도 일말의 가책은 있지않을까 생각하지만.


사실은 이런 관제 행사가 먹히는 상황이 많은 걸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관에서 얼굴마담 내세워 사람들

동원하고 여론몰이하려 들고, 그래도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그게 별 거 아닌 쭉정이 단체에의

가입신청서를 써주는 조그마한 수고가 되었건, 별 거 아닌 '라면냄비' 따위 일용품이 되었건, 한 사람의 그런

호응은 결코 작지 않다. 그런 조그마한 호응이 모여 지금같이 괴물같은 시대를 만들어낸 거 아닌가. 그래놓고

뒤로 돌아 정부 욕하고, (돈/지식) 가진자 욕하고 그래봐야 자기 얼굴에 침뱉기다.


하나더, 굳이 말하자면 '어르신' 문제다. 우리 사회에 대체 존경, 최소한 존중받을 만큼의 어르신이란 얼마나

될까. 그들은 식민시대라는 시대적 굴레에 대한 일정한 책임, 한국전쟁이라는 내전에 대한 일정한 책임, 이후

미쳐돌아가던 반공이데올로기와 발전이데올로기의 총화라고 해도 심한 건 아니지 싶은데, 그런 부분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스스로 겸손한 '어르신'은 찾기가 힘들다. 생물학적으로 나이만 먹었을 뿐.

얼마전 '친일인명사전'에 맞서 '친북인명사전'을 발간했다는 어떤 뉴라이트계열 단체의 기자회견장에서

"왜 김대중, 노무현이 포함되지 않냐"라면서 니놈들도 빨갱이다, 라고 하며 급기야 서로 빨갱이 삿대질을 하던

사람들, 오바마 방한때 성조기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사람들, 어르신들이다. 이미 사고방식이 굳을대로

굳어버려 더이상 개전의 여지조차 없는, 그래서 약간 관조적이랄까, 역사적이랄까 그런 먼 시각에서 보자면

사라지는 것 밖에 답이 없는 존재들 아닐까 싶다. 반면교사로서 훌륭한 귀감이기도 하지만.




사무실에 카메라를 들고 가면 꼭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있다. 어느새부턴가 '오프라인으로 표시'로

쭉 가고 있는 이모티콘달력-사진찍고 나선 '졸려요'로 바꿨다-과 일렬로 쭉 늘어선 각종 커피전문점의 컵을

재활용한 수경화분. 벌써 열개 가까이 덩굴식물을 꺾어서는 화분을 만들어 사방에 분배해주었다.

책상에 앉아 모가지를 빼고 왼쪽을 보면 보이는 초록빛 덩굴식물, 완전 잘 자라서 자리 하나를 온통 초록색

잎들로 덮어버리고 있다. 그 앞에는 잡다한 서류들, 그리고 캄보디아 가서 찍었던 석양 사진을 출력한 액자.

파티션 위의 삼각뿔에는 내 이름과 담당업무가 적혀있다. 가까이 땡겨서 찍으니 그 굉장한 생명력이 더욱 잘

느껴지는 것 같다. 가뜩이나 건조하고 공기도 좋지 않으며 환기도 되지 않고 햇볕조차 들어오지 않고 백날

파리한 형광등 불빛만 먹고 살 텐데 어찌 이리도 선명한 초록색의 위용을 과시하는 것인지.


마디마디 뻗쳐있는 눈이 있는 줄기를 적당히 끊어서 물 속에 담가놓기만 하면 알아서 무성하게 뿌리를 뻗으며

자라나는 생명력. 장양강장의 상징이다.

사무실 자리 오른쪽, 얼마전 선물받은 벤자민 고무나무 화분과, 작년부터 잘 쓰고 있는 소형 가습기. 가습기

위에 꽂힌 물병은 10월 출장 때 들고 왔던 두바이의 생수병이다. 내 손목을 보호해주는 오리너구리하며,

왠지 올해 다이어리를 부실하게 써버린 이유라고 생각하고 있는 스타벅스 다이어리. 이쁘고 맘에 쏙 드는

다이어리를 사야 일년이 충실한 거 같다.

그리고 마법의 램프. 미친듯이 빌어봐야 때만 나온다.

전자파로부터 날 지켜주는 제주도 화산석으로 만들었다는 돼지 두 마리. 그리고 언젠가 인사동에서 백년천년

오래 살라고 선물받았던 조그마한 거북이. 난 소중하니까요.




문득 울린 전화기, 시간은 새벽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토요일에 이어 일요일도 사무실과 행사장에 출근해야

하는 상황에 버럭버럭할 기운 따위는 이미 엥꼬난지 오래. 행사장 세팅이 완료되려면 세네시까지 되어야 할 것

같아 이미 호텔에 방까지 잡아두고 다음날 입을 정장까지 챙겨온 채 행사장서 일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기 너머 친구는 술이 잔뜩 올라있었다.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어메리칸 드림 따위가 아니라, 그냥 여기는

아닌 것 같아 사람답게 인정받으며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 탈출한다고 했다.

늘 그시간쯤 술기운이나 하다못해 밤기운이라도 조금 빌어 느슨하게 전화를 주고 받는 녀석과 나인지라 다른

때와 달리 바짝 곤두선 내 목소리가 영 거슬렸나보다. 넌 뭐하고 있냐고, 일욜밤에 여태 일하고 있었냐고

묻는다. 오랜만에 오랜 친구와의 통화인지라 불끈 솟은 기운을 빌어 씨댕씨댕, 투덜거렸더니 이 녀석, 그게

너의 현실이다. 이런다.

밤 늦게까지 일하는 넌 현실을 살고 있구나, 난 내가 사는 시공간이 어딘지도 모르겠다, 운운. 혀꼬부라지고

억지섞인 그건 분명 '꼬장'이었지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황량함과 각박함, 그리고

그가 살고 있다는 현실의 비현실성 혹은 다른 의미의 우중충함 때문에 뭔가 날카롭게 다가왔다.

12월 2일에는 상담회와 컨퍼런스, 6일/7일에는 또다시 국제컨퍼런스. 파스칼 라미다 웬디 커틀러다 나름

굉장하다는 사람들이 온 자리여서 영 정신사나웠던 거다. 게다가 여전히 자유무역만이 살길이라는 식의

교조적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였어서 더더욱 맘에 들지 않았었다. G-20정상회의로 이어지는 기간 내내, 아니

그 이후로도 계속 한국정부는 70년대 박정희식의 '수출입국', '자유무역만세' 따위 입장을 고수할 게 뻔하다.

외화내빈. 내수시장은 말라붙어가는데 대체 누굴 위한 무역인지. 언제까지 무역규모 몇 위네 얼마네 따위

숫자놀음으로 후발국 열패감을 위무할 건지. 어쨌거나 이게 (그의 말에 따르자면) 나의 현실. 머릿속의 생각과

관계치않고 밥벌이를 위해 조직 내 부품으로 일하고 있는.

파직파직 조각나 버린 퍼즐들이 사실 딱 아귀가 맞아 떨어질 거라 믿는 건 딱 하나의 이유에 근거한다. 내가

얼마만큼 돈을 주고 산 거니까. 답이 나오는 퍼즐을 위한 대가로, 일정액을 지불했으니까. 그렇지만 실은 그

걍퍅한 자본주의적 마인드, 등가교환의 마인드는 대개의 현실에서 작용하지 않는 게 아닐까.


그 친구가 맞추고 있는, 혹은 맞추다가 말고 에이썅 안해, 이러면서 다시 흐트려버린 퍼즐이나, 내가 궁시렁

궁시렁대가면서도 어찌어찌 맞춰나가는 듯 보이는 퍼즐이나, 별로 답이 있어 보이진 않는다.

그는 그에게 비친 내 '취직에 성공한' 모습, 혹은 기타 이러저러한 것들에 비추어 자신을 보겠지만, 나 역시

그의 호방함, 여전히 꺽이지 않는 자신만만함, 그리고 지를 수 있는 용기, 그러저러한 것들에 비추어 나를 보고

있다. 그는 나를 통해 그에게 아직 안 갖춰진 것을 보고, 나는 그를 통해 나에게서 휘발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본다. 현실과 비현실이 아니라, 하나의 현실, 그리고 또하나의 현실이다. 각자도생중인 각자의 현실.

종종 세상이 장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뭐하나에도 진지한 열의가 생겨나지 않고, 그냥 엔간한 것 웃어넘기고

재미있는 경험했네, 이렇게 관찰하듯 딴 사람 이야기하듯 넘어갈 수 있는 때가 그런 때다. '재미있게'라는 말이

담는 경박함이 그런 장난스러움에서 나왔을 수 있지만 외부에 너무 휘둘리지 않고 바보같이 흥분하지 않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 싶다.


반면 가끔 세상에 너무 몰입해서 산다 싶어 경계하게 될 때도 있다. 세상이란 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일들,

사람들, 그런 외부의 것들을 말함이다. 바보같다 생각하는 일이지만 어느 순간 문득 너무 깊이 발을 들였다

후회할 만큼 들어와버리는 경우도 있고 한발만 떨어져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데 지나치게 바싹 붙어 생각한

나머지 쓸데없이 흥분하거나 맘상하게 되는 경우다.


회사 이야기, 일 이야기를 길게 쓰는 건 그 징조다. 바보같은 일에 너무 많이 에너지를 소모한 두세 주였다.

어쨌거나 그 친구에게 담날 전화해서 확인해 보니 미국은 안 간댄다. 그런 거다. 심각해지지 말고, 너무

진지하지 않게, 장난치며 놀듯이.




얼마전 이야기한 것처럼 교통사고를 내고, 그 탓인지 이전부터 살짝 뻐근하던 허리가 무지근하게 아파왔다.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지난 게 좀체 나아질 기미는 커녕 점점 묵직한 통증이 밀려드는 듯 하여

저번주에 병원에 갔다. 허리가 아프니 정형외과가 있거나, 척추전문 병원 쪽을 찾아야겠지 싶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전화 예약을 하고 진단을 받으러 갔다.


그전부터 좋지는 않던 허리가 충격이 있은 후 조금씩 더 아파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픈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아픈지 적절한 단어를 찾아 묘사하고 미리 찍은 엑스레이를 멍하니 쳐다 보며 의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의사는 별 이야기가 없다. 그냥 내가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한 통증과 아픈 부위에 대해 '있어 보이는' 의학적인

단어를 알려주었다. 그건 '디스크' 같군요, 라고.


이제 병명은 알았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하다. 아, 디스크구나. 근데 다시 답답해지는 건 의사선생님이 내려주는

처방이나 치료책이란 게 참 단순하달까, 무신경하달까. 일단 조금 지켜보고 정밀진단을 받던가 하자고 했다.

우선은 물리치료부터 일주일정도 받아보자고. 물리치료란 게 별거 아니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가 묻는다, 어디

아프세요. '등'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그냥 등에 물리치료기 쑤셔넣어주고 한시간, 끝이다. 전기치료, 초음파

치료, 그리고 핫팩치료로 구분되긴 하지만...사실은 일상어로 보통 '찜질'이나 '안마' 정도로 번역될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 참 쉽다. 어차피 아픈 사람이 알아서 자신이 아픈 게 어디쯤일 거야, 생각하고 종목을 정해

의사를 찾는다. 그러면 의사는 환자가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에 대해서 학술용어나 전문어로 통용되는 '병명'을

가르쳐준다. 예컨대,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있어서 왔어요, 이러면 '족저근막염(足底筋膜厭)'입니다.

풀자면 '발바닥아래근육에염증이있는병'입니다. 허리가 아파요, 이러면 '디스크'입니다. 요게 다다. 그렇지만

그 병명이란 것들이 굉장히 있어보이는 데다가, 실은 병명을 아는 것만으로 환자는 뭔가 커다란 진척이 있다고

느끼는 게 당연한 거기도 하다. 나만 이렇게 아픈 거 아닌가, 이건 치료법도 없고 병명도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모종의 불안감을 모든 환자들이란 가질 수 밖에 없을 테니. 그렇지만 사실 치료도 뭐, 적당한 처방과

필요하다면 일상의 '찜질'이나 '운동'이니를 좀더 전문화한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을 동원하면 참 쉽다.


좀 시니컬한 건가.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나름 경험칙에 근거한 점쟁이들의 '연기'와 비슷하다고까지 말하는

건 조금이 아니라 너무 시니컬하게 나가는 거 같지만,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 의사들이

동원한다는 첨단 과학과 장비들, 그건 대부분의 소소한 환자들과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냥 말을 듣고 조금

진찰해보고, 엑스레이 정도 보편화된 장비를 동원하려나. 그 정도의 소스를 가지고 진단하고 처방하고, 그건

점쟁이들이 점보러 온 사람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거다.


굳이 점집을 찾은 사람들이 고민이 있으니까 가겠지. 수많은 병원 중 굳이 이 종목의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그

관련된 질병이 있으니까 가겠지. 점집을 찾은 사람이 보여주는 외적 행색이나 외모, 분위기가 그 사람의 직장,

고민, 생활환경, 배경 등을 추리케하는 단서가 되겠지. 병원을 찾은 사람이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가 그냥

그 사람의 병명을 확정케 하는 단서가 되겠지. 처방은, 경험칙에 근거한 몇가지 일반론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의사들 역시 경험칙에 주로 근거한 몇가지 진단과 처방전.


뭐, 의사도 환자가 아픈 데가 어딘지 알아야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단한 질병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환자의 말에만 의존하는 건 아닌지, 장님 코끼리 더듬듯 그저 몇몇

간단한 것들로만 처방해버리는 건 아닌지 싶어서다. 좀더 적극적으로 아픈 부위를 탐색하고 증상을 발견해내는

자세가 필요한 건 아닐까. 넘 방만해 보여서다.



덧댐. 그래서, 그나저나, 내일 당장 큰 행사가 또(!) 있음에도 요새 날마다 한시간씩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그녀를 보는 순간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따위 묘사를 보면 생생히 그 감각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전기치료도 받고 있고, 초음파며 핫팩치료도 받고 있는데 왜 오히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건지 원. 행사 마치고 나면 정밀진단을 받아볼 생각이다. 요새 바쁜 이유, 그 와중에 지난 10월에

다녀온 두바이 사진들만 올리는 이유. 아프지 맙시다.




어제 배철수가 그랬던가, 비오면 비온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떤 핑계든 대고 찾는 게 술이라고.

그렇게 비온다고, 눈온다고, 밤이라고, 춥다고 찾는 게 또 하나 있으니 음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음악과 술은 언제 어느때고 내키면 꺼내들 수 있는 창과 방패인 듯 하다.


부드러운 음악으로 실드치고 톡 쏘는 술로 찌르기 들어가고.


그렇게 싸우다 보니 저녁밥으로 술을 마셔버렸다. 아 무슨 술꾼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은 공부가주 마시고 야근중..)







@ 서울.
에스프레소를 좋아하지만 가끔은 마끼아또같은 달콤한 게 땡길 때가 있다.


독한 술을 좋아하지만 또 가끔은, 술 같지도 않은 달콤한 리큐어가 땡길 때도 있다. 


한잔 한잔 홀짝대다 보면 뭔가 그럴듯한 아이스 피커와 커다란 아이스덩어리가 갖고 싶어지고,

달콤하고 고소한 맛에서 얼추 느끼함이 분별될 즈음 병이 비워지곤 한다.


집에서 마실 때의 원칙은 주종을 하나로만. 병이 비면 술도 그만인 거다.






@ 제주도.




@ 제주도.




@ 제주도.



@ 제주도.




@ 제주도, 서귀포.





@ 강원도 어딘가.





@ 캄보디아, 프놈펜.



@ 캄보디아, 씨엠립.




@ 제주도.
초대장을 드리면서 늘 고민하게 됩니다. 이번에 드리는 분들은 간판만 만드시고 사라지시는 거 아닐까,

게다가 공짜영화니 뭐니 선전에 열을 올리시는 스패머는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일곱장입니다.

그냥,
가장 길게 댓글을 다시는 분들 일곱 분을 선정해 드리도록 할께요. 제 나름대로 스패머들에 대해

진입장벽을 높이고자 취해보는 고육지책-글자수 세는 것도 꽤나 곤욕이거든요-이기도 하고, 저번에 한번

해보았더니 나름 괜찮다싶어 이런 식으로 다시 나눠봅니다.


어떤 내용이던 상관없지만, 막막하게 아무말이나 쓰려면 좀 힘드실 거 같아서 몇가지 예시를 들어봅니다.

예컨대 어제 하루동안 자신의 일상을 시간순으로 쭉 적는다거나, 블로그를 하면 올리고 싶은 주제나 이야기에

대해서, 혹은 무엇이든 그냥 머릿속을 스치는 대로 자동기술하듯 쓰셔도 됩니다.

"안녕하세요?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tistory 초대장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제가 초대장이 필요한 이유를 말씀드릴게요..첫째..둘째..셋째..넷째..혹시 제 댓글이 다른 분들보다 조금 짧다 하더라도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요.." 운운 1,000여자를 쓰신 분이 계셨습니다.

기회는 한 번, 댓글 하나로 한정합니다. +초대장 발송할 이멜주소 알려주시는 것 잊지 마시구요~!

 
● 일시 : 2009년 11월 19일(목) 12:00부터 11월 21일(토) 24:00까지.

장소 : 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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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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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이 이렇게 수고로이 '가장 길게 적으시는 분'이 가장 블로그 개설에 사심없는 열의가 있다고 추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대권 가지고 너무 치사하게 군다거나 귀찮게 군다고 생각지는 말아주셔요~^^;
◈ 신규회원 초대시 유의 사항 ( 관련공지 : http://notice.tistory.com/802 )
좋은 분들에게 기회를 드리기 위해 초대제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스팸블로거들이 티스토리에 유입을 하고 있습니다. 모니터링을 통해서 스팸블로그 차단에 노력을 하고 있으나, 초기에 스팸블로거들을 발견하고, 규제할 수 있다면 깨끗한 티스토리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초대장을 받으신 회원님께 안내드립니다.
 
 ① 초대 신청 E-mail 주소를 확인해 주세요!
     보통 스팸 유저들을 살펴보변, E-mail 주소가 무의미한 알파벳의 반복이나 숫자 주소인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유저의 요청은 초대를 하실때에 한번쯤 생각해 보세요!
 ② 비슷한 이메일 주소로 연달아 초대를 원할때!
     스팸 유저들은 비슷한 이메일 주소를 만듭니다. 그래서 비슷한 이메일 주소로 연달아 초대
     신청을 한다면 스팸 유저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③ 댓글 작성된 IP 확인
     스팸 유저들이 간혹 동일한 컴퓨터에서 여러개의 이메일 주소로 신청하는 경우가 종종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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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



@ 캄보디아, 씨엠립.



@ 캄보디아, 씨엠립.



@ 제주도.




@ 남이섬.


@ 캄보디아, 씨엠립.



@ 기억이 나지 않는 어디선가.




@ 알제리, 알제.

@ 제주도, 서귀포 인근.







모처럼 집까지 걸어서 퇴근했다.

찬 바람이 떠밀어 더욱 재게 놀리던 발걸음이었지만 좀 지나니 몸이 훈훈해져 똑딱똑딱 걸었다. 똑,딱,똑,딱.

문득 내 안의 '불안과 불만'이 되살아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술에 잔뜩 쩔었던 내장이 다시 작동할 때처럼

기이하지만 왠지 안심이 되는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철이 들면 그런 건 모르는 듯 마냥 든든하고 안정적이며 긍정적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미 그것도 옛날 얘기. 사실은 알면서도 모르는 척, 있지만 없는 척, 그렇게 애써 눈돌리는데

능숙해지는 것 뿐이었다. 지금의 나, 내 주위의 것들, 나로부터 뻗어나가거나 나를 얽어두고 있는 관계들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문득문득 잊어가곤 하지만, '잊은 것'과 '없는 것'은 다르다.


차라리 눈 앞에 딱, 불만의 대상, 불안의 대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이것 때문에. 라고 말할 수

있는 타겟이 있다면 좋겠다고. 이미 지난 것들은 간편하게 추려져서 명료한 이유를 붙일 수 있지만, 지금

지나는 것들, 앞으로 지날 것들에 대해서는 마냥 막막하고 혼란스러운 이미지 뿐, 뭔가 딱 떨어지는 '답'이

없어 보인다.


몇 개의 통발을 지났다. 한번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불가역적인 순간들, 취직, 진학, 입학, 그리고

탄생까지 거스를 수 있을 그것들. 어쩌면 그것들은 간편한 핑계가 되어 주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 핑계거리,

혹은 시험관문이 사라지고 나면, 뭔가 그 과정을 거쳐 성숙하기는 커녕 마냥 나태하고 진부해져버려 '불안과

불만' 자체를 그냥 없는 문제인 양 하면서 외면하고, 그렇게 지친 어른이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수학을 왜 공부하냐고. 수학에서 배운 것들을 바로 써먹을 리야 없겠지만, 그걸 통해 사고의 논리력과 응용력을

배울 수 있으리라 믿는 거라고, 와타나베보다 먼저 생각했었다. 어쩌면 '불안과 불만'은 항상 그 시점까지

살아오며 배운 것들을 총동원해 해결하고 해소해야 하는 커다란 문제인지도 모르겠다. 응용력을 키우기 위한

연습문제들이 동나버린지도 오래, 응용력 따위 키우기도 전인데 하루하루 문제의 압박은 커져간다.


그냥, 그렇게 생각한다. 불만과 불안의 골이 깊으면 만족과 안온함의 산도 깊을 거라고. 정면으로 이 녀석들과

마주하지 않으면 하루하루 마비된 채 살아가는 것과 같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좀처럼 

듬직하고 안정감 있는 어른 따위 못해먹겠다. 혹여 그런 모습이 보일 때라 해도 그것은 연기, 내면에선 여전히

질풍노도가 치고 있는 데다가 나 역시 집중해서 그걸 바라보는 중인 거다.



1월, 내 생일날. 옛 서울역사에서 했던 서울국제사진페스티벌을 보러 갔었다. 휑하니 낡은 역사에 수도조차

얼어붙은 그곳의 화장실은, 뿌옇게 먼지낀 창밖 풍경처럼 남루하고 싸늘했다.

3월 어느날, 홍대 근처의 어느 와플집. 적나라하지만 이쁘다고 생각했다.

HOMME과 FEMME가 적힌 알제리의 쉐라톤 호텔 화장실. 5월이었다.

7월, 휴가를 내고 고양이까페에 가서 고양이들이랑 네시간도 넘게 놀았던 날. 폭발적인 고양이들의 환대와

더불어 폭발하고 만 알러지 증세. 다음날까지 눈이 시뻘갰었지만, 여전히 고양이를 좋아한다.

고양이 까페에서 놀다가 찾았던 용산 남일당건물, 그 뒤의 공중화장실. 견(경)찰사용금지.

8월 여름휴가로 떠났던 캄보디아, 씨엠립 국제공항의 화장실에서부터 영역표시에 들어가다.


앙코르왓 어디메쯤에서의 화장실 표시. 생각보다 많지 않게 띄엄거리던 화장실이었던지라 표시가 무척이나

반가웠더랬다.

앙코르왓이 있던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달리던 버스 안에 있던 화장실. 한번 써보려다 말았다.

프놈펜의 왕궁. 왕궁 안에 있던 화장실, 맨다리와 맨팔을 드러냈다고 입장을 제지당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옷을

갈아입고 나오던 탈의실로서의 소임도 다하고 있었다.

앙코르왓 어딘가의 화장실에 붙어있던 표지판. 변기 위에서 똥싸지 마시오, 가 좀 충격적이었던.

9월, 예상치 않게 가게 되었던 제주도에서 들른 아프리카박물관의 화장실. 유쾌하고 귀여운 그림이다.

11월, 또다시 예기치 못한 제주도. 모 박물관에서 숱하게 마주친 화장실 그림.

예컨대 이런 식, '팬티 내리는 곳'이랜다.

공원식으로 꾸며진 뮤지엄 내부, 관람객들의 편의를 위해 도처에 설치된 화장실 표시등.

입구 옆에 떡하니 화룡점정을 찍어주시는. 이제부터 나오는 두 장의 사진은 '19금'이다.

엄훠.

항가항가.

역시 11월의 제주도, 산굼부리. 레고블럭의 인형들처럼 생긴 남자와 여자가 몹시 마려운 듯한 표정과 포즈를.

화장실로 본 2009년. 끗.


@ 제주도, 비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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