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Galaxy7, during the biztrip to Newdelhi, India

이렇게 분명하고도 직관적인 화장실 표시라니. 게다가 인도의 최전선인 공항에서 꼭 어필해야 할 인도 전통의 아름다움도 놓치지 않았다.


인도 뭄바이공항의 화장실, 표지판은 굉장히 심플하지만 짙은 대리석 벽면에 그려진 무굴제국 병사같은 모습의

 

이미지가 그나마 밋밋한 남자 화장실의 외벽을 장식중이다.

 

그리고 바로 옆에 붙어있는 여자 화장실 역시, 표지판 자체는 별 특색이 없지만 벽면에 제법 포인트가 있다.

 

오히려 남자 화장실쪽보다도 더 신경써서 도안된 듯한 여성, 눈이 이쁜 인도여성의 특징이 그대로 살아있는.

 

 

 

 

 아랍 스트리트가 위치한 부기스 지역에서 리틀 인디아역까지는 걸어서 대략 10분, 곳곳의 공사판 사이로 이런 원색의 아파트도 지나고.

 

 이렇게 깊숙히 허리를 굽혀 인사하는 사람들이 삥 둘러선 공사판 가림막을 지나서 도착한 곳. 그야말로 진짜배기 인도의 축소판.

 

 북적거리는 거리와 시끄러운 인도 음악의 무규칙한 조합. 심지어 무질서하게 지나며 클랙션을 울려대는 차들까지 판박이다.

 

  

 싱가포르의 세련되고 고급진 이미지는 간데없고 끽끽 소리내는 양은냄비를 늘어놓고 온갖 꽃장식을 팔고 있는 가게들.

 

하다못해 건물들 뒷켠의 골목까지 인도스럽도록 신산하다. 이걸 집이라 부를 수 있을지 고심케 만드는 허술한 방벽들.

 

 그리고 조각보만한 공간에서 삐져나와 골목 귀퉁이를 차지한 채 야채를 다듬고 카레냄새를 풍기는 인도 출신의 사람들.

 

 더러는 삐쭉하니 늘어뜨린 나무막대를 따라 온통 뒤엉킨 빨래들을 그나마 단정하게 늘어뜨리느라 여념이 없기도 하고.

 

 

골목마다 숨어있는 힌두교 사원, 모스크, 그리고 불교 사원까지 잡신들이 총망라된 거리에 소만 풀어놓으면 딱 인도겠다.

 

 그리고 값싸보이는 배낭여행객 전용 숙소들과 이메일 체크를 위한 인터넷 까페들이 넘실넘실.

 

이제 싱가포르 시내 남쪽에 위치한 차이나 타운을 들러보러 택시를 잡아탄 찰나,

 

유리창에 붙은 one singapore이란 표어가 눈길을 끈다. 무슬림이건, 힌디건, 혹은 불교도거나 심지어 파룬궁신도건 간에.

 

 

 

 

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8일간의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잠시 포카라를 둘러보곤 카투만두로 날아왔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은

 

대충 대여섯시간 남은 상황, 카투만두 트리부번 국제공항에서 걸어서 십오분 거리쯤에 있는 파슈파티나스 사원을 돌아보기로 했다.

 

무려 1,000NPR(한국돈으로 약 10,000원)에 달하는 예기치 않은 고액 입장료에 놀랐으나 사원 입구에서부터 현란한 색깔로 압도당하다.

 

나무나 석물을 파서 만든 저 도장들을 위한 염료인 것 같은데, 색깔이 어쩌면 이렇게도 곱고 화려하게 발하는지.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이 나타나기도 전 이런 류의 기념품샵들에서부터 삼매경에 빠져 한참을 지체하고 있었다.

 

네팔의 상징과도 같은 'Buddha's eye'. 그 문양을 박아넣은 주발. 막대기를 사용해 주발의 바깥을 따라 부비면 거대한 공명이 생긴다.

 

이윽고 나타난 사원 비스무레한 건물들의 실루엣. 켜켜이 중첩된 낡은 건물들, 그리고 그 앞에서 혼자서도 잘 노는 꼬맹이 하나.

 

 

 

그리고 예기치않은 연기와 매캐한 냄새의 기습. 대체 이게 뭐야, 할 틈도 없이 시각과 후각을 빼앗겼다.

 

뭔가 굉장히 불편하고 메스껍기까지 한 냄새, 뭐랄까 고기를 굽는 게 아니라 작정하고 태우는 듯한 그런 냄새와 연기였다.

 

강 건너편에서 불구덩이를 만들고는 뭔가 열심히 태우는 사람들, 거의 다 불길이 사그라들어 연기를 뿜어내는 것도 있었고

 

혹은 이제 막 살라붙은 불이 맹렬하게 장작들을 공략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불쾌하고 역한 속을 애써 다독이며 걷다 보니 커다란 중심 탑 앞까지. 온통 구름 속인 듯 연기가 자욱하다.

 

 

그리고 붉은 축복의 징표가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온몸을 시뻘겋게 피칠갑하듯 염색해버린 조각상들.

 

그리고 다리를 건너 좀더 가까이 다가간, 그 장작더미들과 불구덩이들의 정체는.

 

마치..나무로 짜인 침대와도 같은 장작 위에 놓인 그것, 한때 웃고 말하고 움직였을 그 몸뚱아리.

 

이곳 '성스러운 바그머띠 강'을 끼고 위치한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네팔 최대의 힌두사원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보다도 더 유명한 건, 힌두교도들의 마지막을 위한 강변의 노천 화장터가 상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

 

방금까지 누군가의 마지막을 위한 제의의 공간이었던 곳, 타고 남은 잿가루들이 강으로 쓸려내보내지고 나니

 

어디선가 비틀거리며 조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털썩, 소리가 들릴만큼 주저앉았다. 혹시, 주인이었던 건 아니겠지.

 

화장터 앞에서 망자의 마지막을 지키는 가족들, 그리고 관련된 종사자들. 마치 들것과도 같은 저 철판 위에다가

 

모셔와서는 정성껏 쌓아올린 나무 장작 위에 안치한다. 그리고 구석구석 고체 기름을 꼽고는 불을 댕긴다.

 

 

그게 끝. 아니, 사실 끝은 그보다 훨씬 이전일 거다. 눈을 감는 순간, 심장이 멈추고 뇌가 작동을 멈추는 순간.

 

그러고 나면 남는 쭉정이, 땅에 묻던 불로 사르던 수많은 원소로 돌아가는 건 같다. 다만 속도의 차이일 뿐.

 

 

그렇다고는 해도, 그 정제되지 않은 냄새와 연기.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니 더욱 숨이 답답해지는 것 같아

 

잠시 옆의 지붕이 그럴 듯한 사원으로 피신하여 숨을 돌렸다.

 

 

사실 이곳 파슈파티나스 사원은 힌두교 최고의 신인 시바를 모신 사원 중에서도 손꼽히는, 심지어 인도까지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사원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아마도 그렇기에 교인들이 이곳에서 최후를 맞고 싶은지도 모른다.

 

아까 열심히 연기와 냄새와 싸우며 걸어왔던 강변, 문득 다시 보니 지금은 원숭이떼가 온통 길을 점령해 버렸다.

 

이 곳에 사는 원숭이떼들은 더러 먹거리를 들고 있는 사람을 습격하기도 할 만큼 악명이 높다고 한다.

 

맑은 공기를 마시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사원의 깊숙한 곳으로 향하는 참, 장작을 쌓는 모습을

 

처음부터 볼 수 있었다. 그야말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자세랄까, 편안하게 누울 수 있도록 짝을 맞추고 높이를 조정하고.

 

그렇게 전문가의 손길을 거쳐 쉽게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어디 하나 부족함이 없는 불길이 일 수 있도록 쌓은 장작더미.

 

위에 고인을 모시고 짚으로 몸과 얼굴을 잘 가리고 나면, 삐쭉 나온 두 발이 남긴 하지만 차라리 그건 덜 안타까운 장면.

 

옆엣 공간에서는 굉장히 작고 조그마한 짚덤불이 놓인 채 불이 올랐더랬다.

 

그리고 이리저리 불을 뒤채며 잔해가 남지 않도록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는 일꾼. 결국 재만 남고 나면

 

삽같은 것으로 긁어 강으로 남은 것들을 뿌려버린다. 아이들이 수영하고 뛰어노는 바로 그 강변으로.

 

 

그렇게 강변을 따라 늘어선 대여섯 개의 화장터. 마침표 이후의 잔해가 또 하나, 안식을 찾아들었다.

 

그리고, 이런 장면들을 하루에 수십번씩 벌써 수백수천날을 보았을 어미 원숭이와 그녀의 조그마한 새끼 원숭이.

 

 

 

 

 

허름해보이지만 휠까지 말끔하게 페인트를 칠한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무겁게 몸을 실어넣으려는 네팔 아주머니의 몸짓.

 

대체 버스 바닥높이가 왜 이렇게도 높은 거니.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있던 '소판'. 드넓은 차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주변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즐기는 중이시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 열대 기후대에 걸맞는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주스 한잔 주문하니 삼십분이 걸렸다.

 

 

포카라 메인로드의 온갖 기념품점의 형형색색 기념품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도 더 구미에 당기던 어느 차안 황금색 가네쉬.

 

길쭉하게 아래위로 잡아뽑힌 얼굴상들.

 

론리플래넷이었던가 어느 유수의 여행매거진에 소개되었다고 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새끼고양이.

 

제대로 서빙이 되어 나오는 네팔의 '달밧'이란 어떤 건지가 궁금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른지.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히말라야에서 매번 먹었던 달밧들은 제각기 전부 맛있었으니-양이 좀더 많았다 정도?

 

역시나 이런 나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달밧에 한해서는 밥과 반찬이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도 소소한 깨달음.

 

일주일이 넘는 트레킹으로 잔뜩 지친 다리에 풋 마사지 한시간을 선사하고 났더니 이제 카투만두로 떠나야 할 시간.

 

그런데 마사지샵으로 들어갈 때부터 눈에 거슬렸던 저 건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절반만 색칠하고, 아니 절반만 지어놓은 걸까.

 

그렇지만 또 돌아보면 은근히 그런 건물이 많다. 저기 저 건물도, 건물 형태 자체도 한쪽이 확 끊겨버린 듯한데다가 페인트칠 역시.

 

그리고, 그야말로 공항으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포카라 공항. 워낙 작고 활주로도 짧아서 종종 결항이나 딜레이가 발생한다고.

 

그래도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카투만두로 출발.

 

 

# Tip.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앉아야

 

히말라야의 새하얀 봉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맑고 구름이 걷혀 있어야 조우할 수 있지만.

 

 

 

 

 

인도, 델리와 뭄바이 출장 중에 들렀던 아그라. 오전에는 온통 우윳빛깔 대리석이 반짝거리던 타지마할을

 

둘러보고 점심을 먹고 막 아그라에 도착한 참이었다.

 

 

타지마할이 온통 희뽀얀 백색의 광선으로 가득했다면 이곳은 온통 붉은 벽돌이다. 과거 16세기 이곳이 무굴제국의

수도였을 때 악바르 대제가 착공해서 샤자한 황제가 완공했다는 아그라포트. 타지마할과는 고작 2.5킬로 떨어진 곳.

 

 

 

성채의 입구에서 빈 페트병을 두드리며 여행자들을 반겨주는 원숭이들. 성 여기저기를 뛰어다니며 놀던.

 

 

 

이곳 아그라포트는 왕비를 위해 타지마할을 지으면서 재정이 사실상 파탄 상태까지 이르게 한 샤자한 황제가

 

말년에 유폐되어 있던 곳이라고도 한다. 붉은 사암의 독특한 느낌에 비애가 덧씌워지는 이야기가 서려있는 셈.

 

 

 

 

 

샤자한이 갇혀있으면서 창너머로 내다보는 풍경은 저런 게 아니었을까. 눈앞에서 창살이 어른거리는.

 

 

파란 하늘에 하얀 달이 떴다. 붉은 사암 벽돌로 지어진 건물, 파란 하늘, 그리고 하얀 달.

 

 

 

 

 

붉은 건물이라지만 속살은 또 하얗다. 타지마할에 쓰였던 하얀 대리석과 같은 것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이건, 왠지 스파르타의 근육맨들이 나왔던 영화 '300'의 그 세트장 같은 느낌의 구덩이.

 

여차하면 괘씸한 신하나 다른 나라 왕의 사신을 발로 차서 저 구덩이 아래로 밀어뜨려버리는 건가 했는데,

 

건물 안으로부터 수로가 저렇게 파여져 있는 데다가 그렇게 깊지 않은 구조를 보면...목욕탕 같은 건가 싶다.

 

 

성탑의 창 너머로 보이는 타지마할의 하얀 실루엣.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고작 2.5킬로미터 떨어져있단 게 실감난다.

 

샤자한은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곳, 무삼만 버즈(Muasamman Burj)에 갇혀 있다가 죽었다는데 아마 이 근방일 듯.

 

 

아마도 여기 어디쯤. 타지마할에 잠들어있는 그의 아내를 그리며 보냈을 샤자한의 한숨과 불면의 밤이 새겨진 곳.

 

 

 

 

 

 

성을 떠나 돌아나오는 길, 여전히 밀려들어오는 여행자들과 나가는 사람들이 오가기에는 다소 벅차보이는 성문.

 

성곽 높은 곳에서 어미 원숭이를 졸졸 쫓아다니는 살짝 여윈 새끼 원숭이, 그리고 그 위에서 내려보는 앵무새 한쌍.

 

 

 

여행을 다녀오면 남는 것, 기억, 사진 그리고 티켓.

 

16세기에 만들어진 아그라포트만큼 오래되어 보이는 포스를 풀풀 풍기는 쓰레기통.

 

아그라포트 옆에 버스들이 열맞춰 세워져있는 대형차 주차장..이랄까. 버스가 들고 나는 문이 참.

 

그 옆에 섰던 자전거도 인상적이다. 일일이 고철을 하나씩 붙여 만든 것 같은 빈티지스러움이 가득.

 

아이들은 아그라포트의 붉은 성벽 따위는 배경처럼 밀어둔 채 뛰어노느라 여념이 없다.

 

택시가 주차되어 있는 한쪽 구석에선 달구지에 매인 말이 물을 벌컥거리며 마시고 있고.

 

어른들이 장기 비슷한 걸 두고 있는 평상 앞엔 염소들을 돌보는 까무잡잡한 아이가 그림자에 숨었다.

아그라포트를 감싸고 도는 해자는 과거엔 분명 좀더 깊고 넓었을 텐데, 이젠 염소가 풀을 뜯는 곳이 되고 말았다.

 

 

 

버스를 타고 아그라를 떠나는 길, 엉망진창인 교통질서는 카이로에 못지 않구나.

 

 

 

 

경포호 근처 '바우길'을 걷다가 발견한 보도블록 위의 잔혹한 그림, 무려 몸통이 잘려나갔다. 싹둑.


아마 어른 한사람과 뒤를 따르는 아이 한사람이 열심히 걷고 있는 그림이었던 거 같은데, 애초

인도의 보도블록 위에 저런 그림을 굳이 왜 그려놓았어야 했는지가 한가지 의문.


그리고 대체 우리나라는 보도블록을 왜 그리도 시도때도 없이 바꿔대는지가 두번째 의문, 멀쩡한

블록을 세금 소진하려고 바꾼다는 비난이 이어지니깐 요샌 아예 블록 자체를 불량으로 사는 거 같달까.


그리고 여하간 블록을 일부만 교체해서 저렇게 험한 결과물이 남았다면 왜 마저 그려넣지

않은 걸까, 세번째 질문. 담당자가 달랐으려나, 나머지도 마저 철거하려나, 뭘까.








B.C와 A.D., 그리고 9.11.

9.11이 터지기 며칠 전, 뉴욕에서의 3개월 체류를 접으며 마지막 여행지로 쌍둥이 빌딩을 올랐었다.

아직 한국에서의 일상이 익숙해지기도 전에 어느 가전제품 대리점의 티비들로 접했던 그 충격적인

모습이란, 뭉클 솟아난 두려움과 함께 상당한 비현실감을 안겼었다. 이후 수많은 이미지와

스토리들로 계속해서 재연되고 재구성되었지만 그 충격이란 여전해서, 이후 국제정치의 룰도

바뀌고 세계사의 흐름도 꺽인 듯하다. 영화 속 대사가 딱 맞는 거 같다. 서양인들은 역사를 B.C와

A.D를 기점으로 나누었지만 그에 더해 제3의 기점, 9.11이 생겨났다고.


미국 내 무슬림들의 Ground Zero.

그렇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미국이 아니라 인도에서 시작한다. 인도에서 건너간

이민자들의 이야기, 더구나 이슬람을 종교로 가졌거나 가졌다고 오인받는 이민자들의 이야기.

그렇기에 그들에게 9.11의 타격은 쌍둥이 빌딩의 충격적인 붕괴가 아니라 이후의 '여진'에서

더욱 강렬하다. 히잡을 두르지 못하게 되고, 이슬람의 분위기가 풍기는 가게는 문을 닫게 되고,

급기야 무슬림에 대한 혐오와 적대감은 그들의 아이마저 앗아가고 말았다. '미국인'들이 말하는

그라운드 제로가 쌍둥이 빌딩이 위치했던 곳이라면, 그들의 그라운드 제로는 아이의 타살장소.


'충격과 공포'에 대응하는 한가지 방법.

인도인이지만 힌두교인 여자는 소리친다. 무슬림인 당신과 결혼해서 내 아이를 잃었다고.

당신 때문에 아이가 죽었다고. 가버리라고. 온 미국인에게, 미국의 대통령에게 "내 이름은

칸이고, 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말한다면 모를까, 돌아오지 말라고. 그렇게 분노에 휩싸인

그녀는 아이의 살해범을 찾아내 응징하기에 발벗고 나선다. 그녀의 분노는 자연스럽다. 실제로

9.11이 터진 후 미국과 세계가 움직였던 방식이기도 하다. 분노, 응징, 그리고 공포에 질린 '고백'의

형태로 나타나는 그것은, 스스로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한 '충성서약'과 유사해진다.


'충격과 공포'에 대응하는 또다른 방법.

자폐와 유사한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는다는 남자는 농담을 모른다. 늘 진심을 말하고, 순진함이

극에 달해 마치 이전의 '포레스트 검프'나 '레인맨'이 돌아온 느낌이다. 그는 여자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대통령을 찾아 나섰다. "My name is Khan. I'm not a terrorist."의 멘트를 주문처럼 외우며.

몇개월에 걸쳐 대통령을 만나려다가 오히려 테러리스트로 오인받아 수모를 받기도 하고, 전투적

무슬림들의 테러 대상이 되기도 한 그에게 결국 그녀가 다시 돌아오고 난 후에도, 그는 그 말을

대통령에게 전한다는 '약속'은 꼭 지키겠다며 다시 나선다.


겁먹은 '충성서약'을 넘어 당당한 '선언'으로.

그렇지만 그의 멘트는 다르다. 난 당신과 같은 편이에요, 라는 겁먹은 고백이 아니다. 내가 가진

종교를 타협하지도, 내가 사는 방식을 타협하지도, 편가르기식 프레임에 포섭되지도 않는다.

처음엔 그저 그녀에게 돌아갈 생각뿐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슬림으로 겪게 된 미국사회의

편견과 격한 공포심에 맞닥뜨리면서 바뀐 건지 모르겠다. 아니면 애초부터 현명한 어머니에게

받은 교육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이슬람식 이름을 대며 자신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밝히는

그의 말은, 차라리 이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편견과 무지를 깨뜨리자는 선언처럼 들린다.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있는 세상에 좋은 사람을 늘리자는 그런.


인도의 카메라가 미국을 훑다.

이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를 두시간여 흠뻑 몰입하며 내달릴 수 있게 하는 게 진짜 능력이다.

인도에서의 성장기를 경쾌하게 내달렸던 카메라가, 본격적으로 미국의 곳곳을 핥아내면서

전혀 새로운 시각을 보여준다. 인도인 이민자에게 미국이란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식으로.

게다가 자폐증을 연기한 '샤룩칸'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라거나, 이국적이면서도 마력적인

인도의 음악, 미국 곳곳의 풍광이 담긴 영상까지 잘 만들어져, 몇몇 센스넘치고 사랑스러운

장면들이 가슴에 남고 말았다.


"My name is Khan. I'm not a terrorist."






임수정은 뭘해도 이쁘다.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무대뒤를 감독하느라 정신없을 때도, 감독에게

쿡쿡 가슴께를 내질리며 구박받느라 허리가 접히도록 죄송합니다를 연발할 때도, 샐쭉하니 입술을

내밀며 맘에 들지 않는 남자 흉을 보거나 멍하니 넋놓고 잠들어 있을 때조차, 뭘해도 이쁘다. 특히

고양이 기지개켜듯 허리를 활처럼 젖히고 남자에게 다가가 키스하는 장면은. 아아.


또다시, 임수정은 이쁘다. 첫사랑이었던 남자를 못 잊는다며 십년전의 사진들을 망연히 바라볼 때도,

자신의 예상과 다른 결말을 보게 될까봐 소설의 마지막을 못 보겠다고 이야기할 때도, 남김없이

먹고 나면 허해질까봐 하나는 꼭 남기고 먹는다고 호두과자를 오물거릴 때도, 그리고 첫사랑 앞에서

끝내 돌아서 새로운 시작을 해보겠다며 슬쩍 팔짱을 껴올 때도 이쁘다.


사실 임수정의 첫사랑은 내가 아니고(당연히 그럴 리도 없지만), 그녀가 그 귀여운 입술로 말을

나누고 시선을 마주하는 상대 역시 단한번도 나였던 적이 없으니 팔짱 따위 더더욱 내게 끼어왔을리

없는 거지만, 영화를 보고 나면 그렇다. 내게도 임수정이 다가올지 모른다고, 어디선가 막막한

첫사랑을 끝내고 조금은 성숙해져서 내게 기회를 줄지 모른다고. 그런 희망을 갖게 되는 거다.


'첫사랑(김종욱)찾기'가 영화의 제목이라지만 정작 영화는 첫사랑 이후의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 하다. 첫사랑을 가슴시린 무엇으로, 유리알같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씁쓸할지 모르지만, 첫사랑 이후 수많은 사랑을 거치게 되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사실 나처럼 작은

위로가 되는 영화 아닐까. 첫사랑을 통해 '시작하고 끝내는 법'을 대략이나마 배워서 새로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많다는 걸 새삼 일깨워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 역시, 지난

첫사랑(들)이 헛되고 헛되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 셈이다.



p.s. 여성팬들의 관심사일 공유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 역시 굉장히 귀여웠다. 살짝 융통성없고

뻔한 멍청이같아 보이지만 세심하고 착한 모습, 영화랑 비슷하다. 이미 가뜩이나 뻔한 레파토리

연극으로 수백번 우려먹었지만, 영화는 세심하고 착하게 임수정과 공유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아그라포트에 오르던 길, 꼬맹이 하나가 근엄하게 포즈를 잡았더니 뒤에서 뭥미,하고 꼬나보는 원숭이 하나.

끼약끼약 소리를 지르며 어디선가 줏어온 빈 페트병을 콩콩 바닥에 치고 있던 녀석.

왠지 부시맨이 콜라병을 처음 집어들었을 때를 떠올리게 만들었던 녀석의 페트병 탐구생활.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와글와글 지나가고 지나오고 있었음에도 별 관심도 없고, 경계심도 없다. 소니 개니

말이니 낙타니 원숭이니 새니 다람쥐니, 어떤 동물이건 좀체 사람을 경계하질 않는 동네였다.

그러고 보니 붉은 빛을 띈 성채 아그라포트에는 원숭이가 많았다. 자기들끼리 뛰놀기도 하고, 높은 곳에서

저 아래를 굽어보며 상념에 젖어있기도 하고.

쫄래쫄래 쫓아다니는 새끼 원숭이 덕분에 시선을 왕창 끌던 (아마도) 어미 원숭이. 새끼일 때는 대개

어떤 동물이건 귀엽다던데, 원숭이는 예외인 거 같다. 차라리 큰 놈이 좀더 귀엽다 싶을 만큼 뭔가

얍실하고 음흉한 표정의 꼬맹이.



너무 하얘서 어리벙벙하던 타지마할을 등지니, 들어설 때 심상하게 보였던 녹색 잔디밭이나 적갈색 벽돌건물이
새삼스럽다. 잔디밭 위에서 노니는 하얗고 우아한 새들이 눈에 딱 띈다.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은 정면의 분수대에 물에 반사된 아름다운 모습을 최고로 친다는데, 그런 호젓한 광경을

맛볼 수 있는 행운은 여전히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저 하염없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여행자들.

사람이 워낙 많아 전경을 방해받지 않고 찍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게다가 가뜩이나 희끄무레한 녀석이라

시간대도 중요하지 싶은데, 고즈넉한 새벽이나 저녁무렵, 아무에게도 개방되지 않은 타지마할을 독점할 수

있다면 굉장히 다른 분위기, 그리고 굉장히 다른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아쉬웠다.

갑남을녀의 여행객 중 하나인지라, 찍히는 건 사람이 반 풍경이 반.

타지마할의 현관문에 멈춰서 감상중인 사람들.
이곳부터 조금씩 복원/보수 공사가 진행중이었다. 그러고 보면 엔간한 문화 유산들은 대개 돌려가며 보수

중인 타이밍이다. 앙코르왓도 그렇고, 타지마할도 그렇고, 파리의 그것들도 그렇고. 인류 문화유산은 보수중.

입구부터 죽은 척 널부러져있던 강아지들 중의 한 마리였을까. 유연한 포즈로 늘어진 채 타지마할을 바라보던

녀석이 한순간 카메라를 의식한 듯 벌떡 일어나 도망쳐 버렸다.

'현관'을 지나면서, 갈색과 적색이 섞인 듯한, 뭔가 노릇노릇하게 잘 익어 맛있어 보이는 색깔을 띄고 있던

현관의 천장은 생생한 입체감까지 완비하고 있었다. 사물을 조각하고 모사할 수 없는 이슬람의 문화적 특성상

기하학적 문양과 형상들이 발전했다는 말이 역시 허명이 아니었다.

뒤늦게 돌아나오는 길에서야 발견한 표지판. 타지마할엔 남문, 동문, 서문이 있는 거다.

참...여기 개들은 전부 기력이 쇠했나보다. 나무가 드리워준 그늘 안에 포옥 안겨 있었다.

타지마할을 끝내 벗어나기 전 돌아본 길, 좀더 자유로웠다면 하루종일이라도 돌며 햇살도 기다리고, 조금이나마

사람이 적은 타이밍을 노린답시고 어슬렁거렸을 텐데. 아쉬움이 가득.





타지마할의 안, 정교하게 육각 벌집문양을 새겨넣은 대리석 너머로부터 넘어들어오는 벌집문양 햇살.

타지마할의 매끈한 대리석 바닥에 부딪혀 튕겨나오는 햇살도.

안에는 타지 왕녀의 석관이 있었고, 그 옆에는 유일하게 타지마할의 좌우대칭을 깨는 왕의 무덤이 놓여있었다.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던 그곳, 어차피 나무 창살이 촘촘히 둘러쳐져 눈으로 감상할 생각이었다. 컴컴하던

묘실에서 나와 올려다본 타지마할의 입구 천장.

옆에 그려진 캘리그래피. 아랍어인 듯 한데, 이슬람의 영향을 받은지라 코란의 구절이 아닐까.

벽면에 새겨진 준보석 조각들. 저렇게 자그마한 조각들을 거대하고 도톰한 흰색 건물 전체에 선물포장 띠처럼

둘러놨다. 그 정도 해놓으니 멀리 떨어져 보아도 뭔가 공이 많이 들어갔구나, 정교하구나, 란 느낌이 드는 걸까.

선물포장 띠 아래에는 아예 대리석에 꽃들을 조각해 넣은 판들이 주욱 늘어섰다. 사후에나마 왕녀를 꽃밭에

뉘이고 싶었던 마음이 느껴진다. 더구나 단단한 대리석으로 피워낸 꽃이니 사시사철, 몇백년이 지나도록

하얗게 피어있는 셈.

문득 내려다본 타지마할 옆의 강둑, 원숭이 몇 마리가 짙은 그림자를 넘나들며 뛰놀고 있었다.

강 너머 보이는 길다란 장벽과 오똑하니 솟은 탑. 저기도 뭔가 유적인 거 같은데.

강둑 위에 올라있는 셈이다, 그러고 보니 타지마할과 그 부속 건물들은.

타지마할의 옆구리와 허리춤쯤, 빈틈없는 꽃밭. 하얀 대리석에 음영을 남기는 건 수백만번의 조각질.

자칫 온통 하얗게만 나오기 쉬운 사진, 해가 조금씩 중천으로 오를수록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 타지마할.

신발을 벗고 타지마할을 둘러보았던 왕비 타지의 후손 1人이 되돌아나오는 길. 쉼없이 사람이 내려오는

통에  텅 빈 출구를 포착할 수 없었다는.

가까이서 유심히 바라볼수록 무슨 꽃받침같이 세심하고 정교한 느낌이다.

타지마할의 오른편, 아직 그림자가 저렇게 길게 늘어지는 시간임에도 꽤나 후끈했던 공기와 바람.

그러고 보면 참 새가 많았다. 이름모를 까막새들이 휘휘 선회하던 타지마할의 실루엣이 조금씩 강렬하게 빛나기

시작하는 시간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타지마할 바로 앞, 폐가처럼 방치된 건물 안에는 녹슨 용수철이 드러난 매트리스가 하나, 그리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한 분 쪼그리고 계셨다.

그 옆에 '코카콜라'를 파는 음료수 상점은 나무 가지에 묶어둔 천을 지붕삼고 있었고.

중앙선을 유유자적 활보하는 위풍당당한 소들은 세상부러울 것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았다.

옆에선 길가에 의자 하나, 거울 하나, 그리고 보자기 하나와 가위 하나로 머리도 깍고 면도도 하고 맛사지도

해주는 만능 이발사가 판을 벌였다.

삼륜차를 끌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저 햇볕을 쬐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극성스럽지 않고 허허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몸짓들.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보는 게 여행일 텐데.

저런 길거리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웃음도 나누고, 눈짓도 나누는 거 말이다.

타지마할 매표소까지 나가려면 또다시 저런 바리케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야 한다. 나름 삼엄하다면 삼엄한

경계, 총을 든 정복 경찰들도 적잖이 보이지만, 사람들에서 풍겨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른함이랄까 유유자적함.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입을 벌리고 대기중. 얼른 삼켜지려다가 옆에 비친 이상한 생명체에 깜짝.

쓰레기통에 얼굴째 들이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후비고 있는 숫소.

관광지 주변의 북적북적한 공기는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거 같다. 뭐지...?

또다른 전기 자동차가 앞서 출발. 저 차랑 내가 탄 차랑 요금이 달랐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자전거 위로 나무를 한 짐 해가는 아저씨와 장애물 경기를 하듯 심술궂게 길을 툭툭 끊어놓은 바리케이드.

짧막한 거리를 운전한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서자마자 휙 내려버렸다. 클랙션이 도드라진 운전석의 모양새.

이 차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 문득 궁금해진 건 엑셀러레이터도 왼쪽으로 옮겨간 걸까? 왼쪽 운전석에선

엑셀레이터가 오른쪽, 브레이크가 왼쪽인데.

화장실 풍경은 습관처럼. 트럼프 카드의 킹과 퀸이 버티고 선 분홍색 화장실 건물.

자전거 삼륜차를 릭샤라고 한다던가, 저런 것도 한번 타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배낭 꾸려서 한번 떠야겠다.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양동이 몇개 매달아 놓은 게 전부다. 영어와 힌디어로 모두 적힌 채

사이좋게 매달린 양동이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두었다. 환경 미화의 측면에서 가로수들에

저렇게 색칠을 한다던데,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엔 있는 거다.

쓰레기통, 흙으로 빚어낸 듯한 갈색 쓰레기통엔 힌디어가 가득이다.

타지마할을 가리키는 파란색 입간판. 닳고 헤진 벽돌 두개로 받쳐놓은 모습이 허술하지만 정겹다.

나무 그늘을 제대로 활용해 주시는 이발사 아저씨. 뭔가 장비도 잔뜩 갖춰놓은 게 그대로 여느 이발소 내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는 길, 문득문득 창밖을 휙휙 스쳐지나던 남루한 천막들 중 하나를 가까스로

잡아챘다. 저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빈곤의 악함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아님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그들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타지마할, 해가 아직은 주섬주섬 자리를 챙겨 일어나는 시간임에도 이미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미 잔뜩 입장한 채 타지마할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입은 형형색색의 옷가지들이 하얀색

사원의 투명하고 말간 느낌을 더욱 부각시켰다.

원래 타지마할 궁전을 유명하게 만든 건 건물 이외에도 이 분수. 물에 반사된 궁전의 실루엣까지 안배된 분수와

주변 정원이 포인트라고 한다. 아쉽게도 물이 말라있던 이쪽의 분수. 그러고 보니 형태가 얼핏 워싱턴의

워싱턴 모뉴먼트와 그 앞 분수대에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문득 뒤로 돌아서 방금 통로처럼 지나쳐버린 건물을 올려 보았다. 허술하지 않게 촘촘히 장식과 문양들을

새겨 두었다. 이 정도면 굉장히 그럴 듯한 '현관'이랄까, 우윳빛깔 궁전에 들어서기 위한.

타지마할로 다가서는 길, 별 모양으로 다듬어진 정원의 포석들이 특이하다.

뽀얀 우윳빛깔 궁전과 마주한 붉은 빛 머금은 거대한 현관,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분수라. 중간쯤 놓인 무대는

아마 궁전 내 연회나 의식을 위한 장소로 쓰이지 않았을까. 지금이야 여행자들의 사진찍는 포인트로 잘 쓰이고

있다지만.(전날의 숙취를 이기지 못하고 엉망으로 찍혀나온 사진들..;; )

꽤나 길었다. 붉은 현관문을 지나 길게 뻗은 분수를 끼고 하얀 궁전으로 다가가는 길은.

타지마할 오른켠에 지어진 이 건물은 뭔가 궁전의 부속건물인 듯.

정말 뽀얗다. 우/윳/빛/깔/타/지/마/할/~! 정도로 주먹쥐고 흔들며 외쳐줘야 할까, 싶도록 뽀얗고 아름답다.

그리고 풍만한 꼭대기의 돔은 논외로 치더라도, 가까이 다가설수록 입체적으로 도톰하고 육감적으로 느껴지는

저 궁전의 볼륨감.

양끝의 첨탑. 벽돌로 차곡차곡 쌓았을 텐데 저렇게 아귀도 딱 맞고 매끈하게 떨어지는 건 흡사 여인의 각선미.

신발을 앞에서 벗고 저곳에 보관해두거나, 아니면 신발 위에 발싸개를 하거나, 어쨌든 '부정한 신발'신은 발로

올라설 수 없는 곳.

입구와 출구. 또다시 알 수 없는 힌디어. 알고 보니 지역마다 쓰이는 알파벳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아놔.

타지마할 오른켠의 그 건물. 대체 뭐하는 델까 앞께까지 얼쩡거려보았지만 문도 닫혀 있고, 모르겠다.

다시 관심은 온통 요 희여멀건하고 도톰한, 여성스러움이 듬뿍 묻어나는 궁전으로.

분수와 나란히 걸으며 전체적인 실루엣만 바라보다가, 이제야 조금씩 디테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자체 발광이랄까, 준보석 돌들을 다듬어 박아둔 테두리도 정성스럽지만 그 안 대리석판에 새겨진 꽃나무들의

문양 역시 범상치 않은 느낌이다.





델리에서 약 200킬로 떨어진 아그라에 도착, 티켓 오피스 앞에 섰다. 약 200킬로면 사실 한국에서야 두시간임

주파할 수 있는 거리지만 여기 기준으로는 네시간 반 정도. 안 그래도 전날의 숙취가 고스란히 누적된 상황에서

멀미 기운마저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도 티켓을 받아드니 없던 힘도 불끈 생겨나서, 정신차리고 돌아보기 시작. 티켓 뒷면의 도장은 타지마할

티켓을 사고 아그라의 다른 네 개 유적을 돌아보면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표시라는데, 살짝 빵꾸가 뚫려있는

AGF, 아그라 포트만 돌아볼 수 있었다.

매표소 옆에 붙어있는 노천 까페/레스토랑으로 들어서는 길, 기둥마다 그려진 소박하고 단순한 그림들이 눈을

끌었다.

그러고 보니 매표소 건물 입구 위에서 지그시 내려다보고 있던 코끼리, 비슈누상. 굳럭을 상징하는 시바신의

화신 중 하나라는 비슈누다.

매표소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방법은 두 가지, 약 1킬로 정도 걸리는 그 길을 걸어서 가는 방법이 하나, 다른

하나는 전기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는 거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타지마할의 보존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

실은 몇년정도 비공개로 쉬게 하라는 권고를 받을 정도였던지라 도입된 전기 자동차라고.

인도의 정정은 사실 그리 확립된 편은 아니다. 작년에도 테러가 있었고, 카슈미르 지방을 둘러싼 파키스탄과의

알력이라거나 분리주의자들의 격한 움직임도 유의할 대목.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계속 이런 체크포인트와

장벽들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여유있게, 쓰레기통 깊숙이 얼굴을 처박고 먹을 거리를 찾는 소 한마리.

길 끝에서 타지마할의 입구를 만났다. 적색 벽돌로 매끈하게 가다듬어진 저 성벽 너머엔 타지마할이 있다.

인도 날씨는 꽤나 후텁지근할 거라 생각했지만 델리나 아그라 지역은 사실 1월엔 그다지 기온이 높진

않은 편이다. 다소 쌀쌀한 봄의 아침날씨정도랄까. 그럼에도 저렇게 댓바람부터 길거리에 사지를 뻗고

누운, 그야말로 개팔자 상팔자의 강아지들. 

역시나 입구 옆에는 소총을 둘러멘 경비원들, 경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아예 벽돌로 저렇게 진지까지 구축해

놓았을 정도로, 테러의 위협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현실로 체감하고 있나보다.

마법의 숲을 지나 늪을 건너, 금속탐지기와 거친 손놀림의 스캐너를 거치면 타지마할 입성.

난 타지마할에 들어가면 바로 새하얀 그 궁전이 나타날 줄 알았다. 그렇지만 현실은 기대를 배신하고,

쭉 이어지는 테라스와 붉은빛 벽돌담. 이것도 이쁘지만 난 얼른 타지마할이 보고 싶을 뿐이라구~ 생각하다가

사실 타지마할이 뭔지도 제대로 안 알아보고 덥썩 여기까지 왔음을 깨달았다.

저기가 타지마할로 들어서는 입구. 타지마할은 힌두교와 이슬람의 영향이 혼합된 방식으로 지어진 사원으로,

익히 알려졌든 '타지Taj'라는 왕비를 위해 바쳐진 사후궁전인 셈이다. 현지어로는 '따즈마할'이랄까, 좀 다르게

발음하는 것 같던데.

외국인 여행자들이 쉼없이 들고 나고, 그 와중에 두껍게 무장한 병사들은 살벌한 쇠막대기들을 들고 발소리

척척 맞추어 사방을 순시하고 있었다.
 
정확한 좌우대칭이 되도록 힘썼다는 이야기, 힌두교 사원들이 엄격하다 싶을 정도로 좌우대칭 형태에 집착한

것처럼 타지마할 경내의 건물들 역시 마찬가지 맥락인 거다.

건물 안을 지나던 길, 어둑어둑한 실내에서 문득 발견한 창문 하나, 쏟아지던 햇살.



ㅇ 입국 신고서 양식

ㅇ 출국 신고서 양식

ㅇ 입/출국 신고서 작성 방법(샘플)


인도에서, 특히나 뉴델리에서 마주쳤던 트럭들의 뒷켠에는 신기한 사인들이 붙어있었다.

"BLOW HORN", "HORN PLEASE", 클랙션을 눌러달라는 거다. 시끄럽고 짜증스럽기만한 클랙션을 눌러달라고?

처음엔 한두대가 그냥 장난으로 적어둔 줄 알았는데 줄줄이 나오는 통에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이곳의 트럭은 40킬로미터 이내로 달리도록 속도제한이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서 트럭을 추월해

앞서 나가려거나 차선을 바꾸려는 차들은 클랙션을 울려 사인을 달라는 얘기.

대체 저게 무슨 글씨인지, 복잡하고 얼룩덜룩한 글씨 덕에 한참을 쳐다 봐야 겨우 무슨 글씨인지 식별할 수

있는 차들도 있었다. 뭔가 눈을 사팔로 모으고 매직아이 쏘아보는 기분으로.


그리고 인도의 요금정산소. 참 허술하달까 간소하달까.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보이는 느낌이다.




1월말의 뉴델리는 생각보다 많이 쌀쌀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을 씻어내지 못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댔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는 왠지 덩어리덩어리, 외로움이 감돈다.

문득 들어선 정체구간, 올해 있을 Commonwealth worldcup이라던가, 영연방 국가간의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도시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많이 확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뉴델리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에 불과한데다가 우회로도 없는 거다. 그나마 왕복 2차선이던 것이 한 차선씩 늘은 것도 삼사년 전이라고.

우회로 없는 왕복 4차선에서 정체가 필연이라면, 그 정체구간에서 저렇게 코브라가 혀를 날름대며 춤을 추는

건 그보다 더한 필연. in INDIA.

앞에 선 트럭 위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검은 물소들의 빈약한 방댕이들. 캄보디아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동남아

소들은 은근 날씬해주신다.

중간에 잠시 쉬었던 휴게소-랄까, 그냥 간이음식점 겸 기념품판매소랄까-에서 만난 화장실 사인.

조금 안개가 걷힌 차창 밖의 불빛에 기대어 활짝 피어난 운전석 머리 위의 꽃다발. 안전운행을 축원하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차 한가운데 티비도 떡하니 세팅되어 있고 제법 괜찮았던 버스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던 건 운전대

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 경쾌하고 시끄럽고 방정맞은 벨소리가 저로부터 나왔었다. 인도의 클랙션은

거의 깜박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추월할 테니 주의해라"라거나, "내가 지금 앞으로 혹은

뒤로 따라붙고 추월할 거다"라는 사인을 모두 미친듯이 울려대는 클랙션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길가 왼쪽에는 이렇게 차들이 주차해있었다. 글쎄 무려, 커다란 대형 트럭이 서로 바싹 마주본채 주차하고

있는 모습. 쟤들은 나중에 도로에 진입할 때 얼마나 왕복 차선을 혼란시키며 진입할까. 좀체 규율이 서있지

않은 인도의 교통체계를 반영하는 주차 모습이었다.

트랜스포머처럼 뭔가 잔뜩 장식이 달리고 보호대가 장착된 트럭들이 시속 40킬로미터 이내라는 규정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뉴델리에서 아그리포트로 가는 길가로 쭉 보이는 풍광들은 참, 누추하고 허름하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에 헝겊을 대고 바람을 막고 있는 집들도

부지기수,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도 해머 한 방이면 줄줄이 넘어갈 듯한 파삭하고 앙상한 벽들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차도 곧잘 눈에 띄고, 앞바퀴를 빼고 있는 자동차는 왠지 신뢰가 전혀 가지 않는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툭탁툭탁 고쳐대고 있었지만 그 차가 다시 달릴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인 거다.

뭔가 다채로운 색감을 과시하는 인도의 트럭들. 이 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트럭들이 형형색색의 원색감을

뽐내며 글자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삼륜차들, 오토 릭샤가 딱정벌레처럼 바닥에 스물거리며 붙어 달리고 있었다. 저런 차를 타고 달려줘야 정말

여행일 텐데 그저 창밖으로 구경만 한다는 게 넘 아쉬웠을 뿐.

창밖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 그리고 그 위의 인도 전통 의상을 덮어쓴 여성.

그러다 문득 들어선 어느 마을 어귀에선 소가 휘적대며 걷기도 했고, 담벼락엔 저렴한 인도의 노동력 비용을

반영하는 페인트 광고가 퇴락해 있었다. 여긴 왠만한 종이나 현수막 따위의 프린트물 광고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리게 하는 게 싸게 먹힌다고.

또다시 어느 골목을 지나며. 저 골목으로 들어서면 뭐가 있을지, 누굴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지나칠 뿐.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따위 없이 그냥 휭, 하니 지나쳐버렸다.

한참 달리다가 또 마주친 풍경 중 하나. 뉴델리에서 아고리까지는 약 200킬로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교통이

워낙 열악해서 한 다섯 시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문득 마주친 새떼, 그리고 소떼.

그에 바로 이어지는 남루한 천막들. 그야말로 거적떼기 하나 씌워놓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틀림없는

사람들.

바로 도로 옆에 연한 채 저렇게 허름하고 갖춘 것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웠다.

델리는 그래도 온도가 꽤나 내려간다고 하던데, 1월말만 해도 한국의 꽤나 쌀쌀한 봄날씨를 연상케 하던 그런

곳이었는데 자칫 얼어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길가에 삼층짜리, 사층짜리 아파트처럼 세워진 닭장들. 닭은 잘 안 보이지만 어쨌든. 소고기를 안 먹는 대신

닭고기의 소비가 많은 나라인 거 같다.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저것들은..

하얀 새들이었다. 사람들이 밑에서 저렇게 집-이랄까 천막이랄까 움막이랄까-을 짓고 얼쩡얼쩡대고 있는데

열매인 양 위장한 채 가만히 매달려 있었던 거였다. 대롱대롱, 이란 단어는 뭔가 밑으로 내려뜨려진 것에

어울릴 표현이긴 하겠지만 저 새들이 날씬하고 앙상한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꽉 쥐고 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맞춤해보이기도 한다.

이게 철거촌인지 아님 그냥 인도의 근교 풍경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물들은 오래고 낡았다.

이국적인 문양과 장식들을 매달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 문화의 차이던 뭐던 간에

각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쓰는 색감은 생각보다 참 다르다.



#1. 

출장을 다녀오니 조직개편과 인사이동이 있었다. 미리 짐을 바리바리 박스에 싸두며 '심적 대비'를 하긴 했지만

막상 낯선 사무실과 낯선 책상에 자리를 잡자니 영 낯설다. 새로 생긴 부서인지라 모두들 약간씩 붕 떠있기는

매한가지, 그 와중에 올해 신입직원까지 배치되었으니 분위기는 더욱 어벙벙하달까. 그렇게 전부다 살짝

신입직원스런 마음으로, 또다시 눈앞에 닥친 몇몇 행사들을 준비하는데 매달리고 있다.


#2.

어느덧 3년차, 여태 부서 막내로 지내다가 갑자기 신입도 들어오고 2년차 후배도 들어오고 부자가 되어버렸다.

젊지 않다, 란 느낌이 퍼뜩 들었던 건 아마도 그때쯤. 연극으로 치면 '막내'의 역할이야 빠릿빠릿하고 눈치껏

일의 부분을 메꾸면 되는 거였지만 이제 새로운 역할을 맡아버린 거다. 중간에서 일을 나눠주고 조율하고

큰 그림을 그려주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일은 많이 하고. 음..돈 벌기가 갈수록 쉽지 않아진다더니.


#3.

젊지 않다, '젊잖다' 라는 말에서 '점잖다'라는 단어가 겹쳤다. 어쩌면 점잖다는 표현은 더이상 젊지 않다,

더이상 좌충우돌하거나 격동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비롯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두 단어는 모양새도

닮았고 의미도 닮아보인다. 젊잖다. 점잖다. 물론 당연히도 젊잖다고 절로 점잖아지는 건 아니다. 고무적인

사실이라면, 이제 조금은 '점잖아'져도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예전이라면 점잔 따위

개나 줘버려 이랬을 텐데.


#4.

출장 다녀오고 사진이 나름 많이 남았고, 창백한 속살을 하얗게 뿜어내던 타지마할의 인상도 생생히 갖고

돌아왔지만, 어쨌거나저쨌거나 출장이었다. 가보지 못한 골목들에 대한 강렬하지만 금기된 유혹이라거나

먹거나 마시면 배탈나기 쉽다는 길거리 음식에 대한 '마조히즘적' 욕망이라거나, 그런 것들을 끙끙 품고만

있다가 돌아와버린 거다. 여행에 대한 욕구만 움씬움씬 자라버린 출장이었다. 하아...


#5.

티스토리 우수블로거에 선정되고 나서 가장 기뻤던 건 블로거 명함이 생겼다는 것. 까맣게 잊고 있다가

엊그제에야 배달을 받고 나서 새삼 해피해피해졌댔다. 1월 동시나눔에 참여해서 좀 여기저기 뿌려보고

싶었는데 여의치 않았고, 독자적으로라도 함 해야겠다. 나눔이벤트(라고 쓰고 명함배포라 읽는다) 커밍순.






공항에 내려 마주한 표지판. 이제 좀 아랍어에 익숙해진 눈에도 완전 생경한 인도의 힌디어. 인도라고 하면

그다지 한국과도 멀지 않고-비행시간 9시간여-이름부터 꽤나 익숙한 나라 중의 하나여서 왠지 뭔가 친숙할 줄
 
알았는데 글자부터 영 낯설기만 하다. 저것도 설마 아랍어처럼 오른쪽에서부터 거꾸로 쓰는 건 아닌가 싶기도.

차를 타고 우선은 숙소로 가는 길, 창밖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뭔가가 이상하다. 버스 우측 창가에 앉아

있는데 반대쪽에서 차가 오는 게 보인다니. 중앙선의 엘지 광고깃발이 펄럭거렸다.

차들이 좌측통행을 하고 있었다. 갑작스레 보행자의 우측통행을 시행하는 바람에 사람들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중앙통행을 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여긴 영국 식민지 시절의 영향을 그대로 온존시킨 채 영국과 같은

좌측통행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마치 조선총독부 건물을 폭파하는 것과 같은 거 아닐까 싶다. 역사적

연원이야 구질구질하고 다소 수치스러울지라도 그걸 무조건 지워버리고 사라지게 만드는 건 답이 아닐 텐데,

뭐 편하고 익숙하고 그럼 된 거 아닐까. 나름의 맥락과 여타 시스템과의 유기적 연계가 생겨난 거를 억지로

끊어내는 거니까, 꽤나 오래 고심고심해서 정해야 할 문제임엔 틀림없는데.

그러고 보니 운전수도 오른쪽에 앉았다. 운전석이 오른쪽인 곳은 일본이랑 영국 뿐인줄 알았는데, 인도도 그랬다.

인도의 맥주, 킹피셔~ 주류광고가 금지되어 있는 인도인지라, 이들은 아예 항공사를 사서 자신들의

인지도를 높이고 간접광고하고 있는 중이란다. 킹피셔 항공사가 있다는데, 로컬 항공사인지 직접 본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맥주는 꽤나 맛있었다.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이랄까.

인도까지 가서 한식당을 가다니 많이 안타까운 현실이었지만, 나름 한국 분위기를 연출하려 애쓴 기색이

역력했다. 전통 한지문창살을 흉내낸 룸 문짝들과 천장의 한지 조명등까지. 그렇지만 역시 인도 나름의

변용이 가미된 터라, 단적으로 한지 조명 아래 늘어뜨려진 서양인 모양 인형.




재래시장에서 들리는 상인들의 호객소리, 영 낯선데다가 터무니없이 크고 억센 이방의 말소리가 길거리

양쪽에서 얽히지만 묘하게 즐거워지는 구석이 있다.



인도 상인들은 이재에 밝고 매우 상술에 능하다는 평인데, 가격을 두고 흥정하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 그

이유 중 하나라 한다. '화끈하고' '주저치않는' 협상 타결은 외려 가격흥정을 빙자한 담소, 혹은 담소를 빙자한

가격흥정의 묘미를 망쳐버린다고 생각한다나. 오이와, 당근과, 파파야와, 볶은 땅콩이 수북이 쌓인 야시장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지 싶다.




내일 아침에 뱅기 타고 인도로 가면, 뉴델리와 뭄바이를 거쳐 월말에나 돌아오게 된다. 출장이란 건, 남이

떠나는 걸 보면 부러운 거고, 자신이 떠나는 때엔 힘들고 더러 지치는 거고. 특히나 이런 대규모 인원이 함께

하는 출장을 준비하는 건, VIP가 낀 출장을 준비하는 건.


인도는 처음이다. 첫경험이란 거, 굉장히 중요한 건데 '출장' 따위 무디고 둔탁한 도구로 '인도'라는 통조림을

까려다가 자칫 이미지를 통째 날려먹는 건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뭐, 대형 버스에 아저씨들과 꽉꽉 채워

앉아 타지마할 코앞을 찍고는 돌아오는 그런 날림 일정이 예정되어 있기도 하니까, 딱히 그런 걱정을 기우라고

치부하기도 그렇다.


사실 출장은 일이다. 여행의 느낌은 '주'가 아니라 '부'가 되어야 하는 거고, 어쩌면 '여행'이란 호사스럽고 가슴

떨리는 단어보다는 '관광'이라는 왠지 피상적이고 거저 먹는 듯한 단어에 어울리는 거다. 근데 내가 그렇다.

그냥 여행처럼 생각하고 떠나게 된다. 카메라부터 챙기고, 여행정보로 뭐가 있는지 쑤시고 다니고. 뭐, 해야 할
 
일 다하고 남는 짬에 혼자 기분 내며 비행기 타고 걷고 구경하면 되는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출장인지 여행인지 관광인지 모르겠는 그거, 덕분에 생일도 인도 뭄바이 쯤에서 맞게 되겠지만 일단은

'쵸큼' 설레고 있다.





여행 정보

주요 관광지

인도는 5,000년의 역사와 더불어 풍부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세계 굴지의 관광 자원국임.

○ 바라나시와 카쥬라호의 힌두 유적지, 보드가야와 아잔타의 불교 유적지, 델리와 아그라의 이슬람 유적지 등이 유명함.

- 최근에는 히말라야의 설경과 트레킹, 라자스탄의 사막 사파리 등 대자연의 풍경을 즐기려는 관광객도 크게 늘어나고 있음.

○ 관광개발공사(ITDC)는 열악한 숙박 및 교통시설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는 한편, 관광객 유치를 위한 홍보를 전개 중임.

○ 뉴델리 및 인근 주요 관광지

- Red Fort : 무갈왕조 제5대 황제 샤자한이 건설(1639~1748 년)한 성으로 올드델리의 대표적 관광명소로 붉은 빛의 사암으로 지어져 '붉은 성'이라는 이름을 얻었음.

- India Gate :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9 만 명의 인도 병사를 위한 높이 42m의 위령비

인근 지역

- Taj Mahal : 아그라(델리에서 남동쪽으로 약 220Km)에 있는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꼽히는 건축물로, 무갈 제국의 제5대 황제 샤 자한이 죽은 왕비를 위해 지은 무덤 (1631 건축시작, 1653 완성)

- 암베르 포트: 자이푸르 외곽 언덕에 위치한 가장 볼 만한 장소 중 하나, 1600년 만싱경에 의해 시작되어 현재 모습으로 완성된 것은 18세기 스와이 싱에 의해서임. 붉은 사암과 흰색 대리석으로 구성된 힌두와 무슬림 건축 혼합의 대표적인 예임.

비자

○ 인도에 입국하는 모든 외국인은 비자가 필요함. 우리나라와는 2005. 10월부터 외교관 여권 및 관용 여권에 대해서는 90일 이내에서 비자가 면제됨.

비자 종류

기간

발급 주체

단기비자(복수)

15일 ~ 6개월

해외 주재 인도 공관(대사관) 재량으로 발급

장기 비자

1년 이상

해외 주재 인도 대사관이 본국(인도) 해당 부처 (Ministry of Home Affairs)에 조회하여 발급

- 1년 이상의 비자 소지자(외교관 제외)는 인도 도착 후 1주일 이내에 외국인 등록소(FRRO)에 등록해야 함.

- 인도에서 체류 중 체류 기간을 연장하고자 할 경우에는 외국인 등록소(FRRO)에 신청하면 됨.

- 비자 신청 시 특정 지역에 대해서는 특별 허가가 필요함.

○ 발급처 : 주한인도대사관(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37-3)

- 전화번호 : (02) 798-4257/4268/0962

- 근무시간 : 09:30~13:30, 14:00~16:00(공휴일 및 토요일 휴무)

- 소요시간 : 신청 후 3박 4일

- 소요비용: 6개월 65달러, 1년 이상 115달러, 2년 이상 210달러

○ 구비 서류

- 단기비자 : 신청서(APPLICATION FORM), 사진, 여권

- 장기비자 : 신청서, 인도 측의 초청장 또는 계약서 등의 근거 서류, 여권

입출국 정보 및 세관 정보

○ 입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인도 루피화(Rupee)의 반입 불가

- 5,000달러 이상 반입시 세관에 신고

- 950ml 이하의 위스키 1병, 담배 2박스(20갑) 면세 통관

- 기타 향수, 화장품 등 2,400루피(85달러)까지 면세 통관

- 비디오카메라 등 대형 아이템은 여행장 물품(TOURIST BAGGAGE RE-EXPORT FORM)양식으로 신고 후 반입하고 출국 시 신고함.

- 상업적 가치가 있는 샘플의 경우 인보이스를 반드시 지참하여 필요시 관세를 내고 통관해야 하며, 인보이스가 없을 경우 세관원 임의로 관세를 산정하거나 압류하는 경우가 있음.

- 출국 및 입국 공항에 모두 환전소가 있으며, 환전에는 반드시 환전 증명서를 받아 보관 하여야 나중에 외화로 재환전할 수 있다는 점에 유의

○ 출국 정보 및 세관 신고

- 출국 시 원칙적으로 공항세를 지불함. 파키스탄, 네팔, 방글라데시, 부탄, 스리랑카 등 인접국인 경우 150루피, 기타 국가로 출국할 경우 300루피이나 항공권 구매 시 이 비용이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임.

- 인도에서 120일 이상 체재 후 출국할 경우에는 "소득세 납입증명서(INCOME TAX CLEARANCE)"를 제출해야 함.

○ 주의할 사항

- 출장차 입국하는 업체의 경우 대부분 제품의 샘플 등을 지참하고 입국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 경우에는 관세 부과를 고려하여 미리 인보이스를 소지하는 것이 바람직함. 인도는 아직 어느 정도의 언더 밸류는 인정되고 있으며 제품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 40%까지도 언더 밸류를 하는 것으로 알려짐.

- 전시물품의 경우 반송이 확실할 경우 까르네(Carnet)를 받아 오는 것이 최선이지만, 경우에 따라 현지에서 처분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일단 인보이스를 지참하는 것이 좋음.

- 또한 아무 준비 없이 입국하는 경우 화물을 찾아서 세관을 통과하기 전에 트렁크나 가방이 분필로 X 마크를 그어둔 것은 반드시 지우고 나오는 것이 요령. 이는 X-레이 체크에서 세관 검색대에서 검사하라는 표식이기 때문임.

환전

○ 통화 단위/종류

통화 단위

RS(RUPEE, 루피), PAISA(파이사, 1/100RS)

동전

지폐

25, 50 PAISA, 1, 2, 5RS

2, 5, 10, 50, 100, 500, 1,000RS

고액 계산 단위

(인도에서만 통용)

LAKH(랙: 10만 루피),

CRORE(크로르: 1,000만 루피)

○ 환전은 공항 환전소나 시내 은행 및 호텔에서도 가능하지만, 호텔의 경우 은행이나 공항 환전소에 비해 다소 불리한 환율을 적용함.

○ 또한 일정 수준 이상의 레스토랑이나 쇼핑센터의 경우 달러로 지급이 가능하지만 달러가 통용되지 않는 곳도 많아 일정 금액 이상의 경우 환율 면에서 가능한 환전하여 지급하는 것이 유리함.

- 국제적인 카드는 일정 규모의 상점이나 호텔, 레스토랑에서 사용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음.

우편

○ 인도의 우편 서비스는 정부가 운영하는 우체국과 민간 기업이 운영하는 우편 서비스로 구분됨. 그러나 정부 우체국은 시간이 많이 걸릴 뿐만 아니라 서비스의 질에서 민간 업체에 비해 크게 뒤지기 때문에 대부분 민간 업체의 우편 서비스를 이용함.

○ 꾸리에(Courier) 서비스라 불리는 인도의 민간 우편 서비스 업체는 수십 개가 존재하며 대부분 특정 민간 우편 업체를 지정해서 우편물이 있으면 해당 업체의 직원이 우편물을 수령하여 배달함.

- 비용은 델리,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시내 배달 비용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으며 비용은 10-20루피(250원), 인도 최남부의 경우 약 40루피(1,000원) 정도임.

국제 전화

○ 국제전화 (인도에서 한국으로 전화를 걸 때)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지역 코드(단 앞자리‘ 0’ 은 제외) + 전화번호

- 서울 전화인 02-123-4567번으로 전화한다면 00-82-2-123-4567 로 함. 한국과의 국제 전화 비용은 지난 수년간 많이 인하되어 공중전화 기준으로 1분당 약 400원 정도

○ 인도시내에서 국제전화를 할 때는 거리에서 STD/ISD라고 적힌 노란 간판이 달린 공중전화 박스에서 할 수 있지만, 우리와 같이 동전이나 카드를 투입하는 것이 아니라 미터기로 사용 내역이 자동 기록되고, 공중전화를 관리하는 사람이 청구서에 따라 금액을 청구함. 호텔 등에서도 당연히 국제전화, 인도 시외 전화를 이용할 수 있지만 일반 공중전화보다 몇 배 이상 비싸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음.

국내 전화

○ 인도 국내 전화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첫 자리가 0번으로 시작되는 지역(도시) 번호를 누르고 전화번호를 누르면 됨. 예를 들어 뭄바이에 있는 123-4567번으로 전화할 때는 022-123-4567로 누르면 됨.

○ 또한 최근에는 인도에서도 핸드폰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어 출장 시 전화를 사용하고자 할 경우는 핸드폰을 임차하여 사용하는 것이 가장 편리하고, 비용도 싸게 이용할 수 있음.

전압

○ 인도는 전력 공급이 수요를 쫓아가지 못해 약 10%정도의 수급 격차가 상존하여 단전이 일상화되고 있음. 일반 가정이나 호텔 등에서 자체 발전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으며, 불안전한 전기 사정으로 일반 생산 공장에서도 외부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자체 발전기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음.

○ 전기 규격은 50HZ, 220V가 표준임.

- 한국(60HZ)과 헤르츠가 달라 한국에서 반입한 국산 전자 제품(특히 모터 부착)의 경우 가동되기는 하지만 100% 효율을 발휘하지 못하고 일정 기간(1~2년) 사용 후 문제가 있는 경우도 있음.

○ 전압의 등락폭이 커 180~280V 까지 움직이므로 민감 제품은 안정기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임. 이외에도 컴퓨터 등에는 UPS를 부착하여 전기가 나갈 경우 자동으로 UPS 전원이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임.

교통

○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이용할 수 있는 시내 교통수단은 택시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음. 택시에는 우리 식의 미터기를 장착한 택시가 있으며 일반 거리에서는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서 이용할 수 없으며, 호텔이나 특정 지역에서 택시를 불러서 타고 가는 형태임.

○ 택시 요금은 대표적으로 델리의 국제선 공항(인디라간디 공항)에서 약 25~30분이 소요되는 시내 호텔까지의 요금이 200루피(약 5 불) 전후이며, 뭄바이, 첸나이의 경우 공항에서 시내 호텔까지 요금은 300~400루피 수준임.

-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기 때문에 반드시 타고나서 미터기로 하라고 운전사에게 확인하는 것이 요금에 대해 분쟁을 없애는 방법임.

○ 일반 시내버스의 경우 요금이 저렴하지만 연결 노선이 불편하고 언어 소통, 추행 등의 문제가 있어 힌디어 구사가 어느 정도 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며, 특히 여성의 경우 버스 내 추행 가능성이 많은 점도 유의해야 함.

도량형

○ 표준 단위

단위

도량형

거리

Meter

중량

Gram

○ 실제 생활에서는 feet가 주요 도량형으로 사용되고 있어 투자 업체의 공장 구매 및 주택 임차의 경우 한국에서 사용하는 평당으로 환산하기 어려워 도량형 환산표를 사전에 준비하는 것이 거리 및 면적을 측정하는 데 도움이 됨.

○ 인도에서도 호텔이나 고급 식당 등에서 일정한 금액의 팁은 상당히 보편화되어 있으나 미국과 같이 팁 관행이 엄격하지는 않으며, 다만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가능한 상황에서는 주는 것이 좋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됨.

호텔에서 숙박을 할 경우 1박당 40~50루피, 호텔에서 벨보이나 짐 운반 등의 서비스를 받을 경우 1인당 10루피 정도를 주면 적당함.

비즈니스 참고사항

비즈니스 에티켓

○ 약속 잡기

- 인도인들은 시간 엄수를 높이 평가하지만 스스로가 실천하지는 않으므로, 언제든지 약속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스케줄을 유동성 있게 잡을 필요가 있음.

- 계약 체결과 관련된 의사 결정은 오직 최고위층에 의해 이루어짐.

- 인도 경영층은 오전 11시에서 오후 4시 사이에 약속을 잡는 것을 선호함.

- 수많은 종교적 공휴일에는 비즈니스가 이루어지지 않음. 지역별로 서로 다른 공휴일들이 있으며, 해마다 날짜가 바뀌므로 사전에 미리 확인하여야 함.

드레스 코드

- 남성은 정장을 갖추어야 하나 더운 날씨로 인해 양복 상의와 넥타이는 생략하는 경우가 많음.

- 가죽으로 된 의상은 피하는 것이 좋음.

- 여성은 전통 의상이나 바지 정장(pantsuit)을 선호함.

대화

- 대부분의 인도인들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하는 것을 즐기며 비즈니스 미팅에 있어서도 가벼운 잡담으로 회의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임.

- 일반적으로 인도인들은 개방적이고 우호적이며 서구 국가에 비해 사생활에 대한 관념이 낮은 편임.

- 인도인들은 직접적으로 반대 표시를 하지 않는 편임.

화제

- 인도인들에게 있어 매우 인기 있는 세 가지 화제는 정치, 크리켓, 영화이며, 최근에는 경제 개발이 추가됨.

- 인도인은 자신들의 풍부하고 오랜 문화적 유산에 자긍심을 갖고 있으며, 특히 외국인들에게 그들의 역사와 전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함.

피해야 할 주제들

- 종교에 관해서 논하는 것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지만 한편으로 종교는 그들의 일상에 매우 깊게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특정 종교 의식에 대한 순수한 질문은 매우 환영받을 수 있음.

- 대부분의 국민이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매우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으므로 이와 관련된 주제는 피하는 것이 좋음.

- 자신들의 경제 발전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기 때문에 빈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꺼리며, 만약 외국인이 먼저 그런 주제를 꺼낸다면 아주 무례한 비판으로 받아들일 것임.

호칭

- 상대방을 부를 때 “Professor”, “Doctor”로 부르는 것이 좋음.

- 한 사람의 지위는 나이, 학력, 직업, 카스트에 따라 정해지는 경향이 있으며 특히 정부 기관에 근무하는 것은 민간 부문에 종사하는 것보다 훨씬 고상한 것으로 인식됨.

○ 이름

- 인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성(surname)을 사용하며 특히 북인도에서 그러함. 여성은 남편의 성을 따름.

○ 협상

- 지방어로 번역까지 할 필요는 없지만 언제나 명함을 주도록 함.

- 어떠한 경우에도 육체적 다툼을 벌이는 것-옷깃을 잡는 것을 포함해서-은 용납되지 않으며, 아무리 불쾌한 경우에도 미소로 응대하는 것이 가장 득이 됨.

- 경직된 계급 사회적 특성을 감안할 때 직원은 오직 직원만 대면하게 되므로 보스가 직접 미팅에 참석하여 상위 레벨의 상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함.

- 접대는 비즈니스에 있어 핵심 요소로서, 대부분의 상담은 차가 나올 때까지 시작조차 하지 않으며 가벼운 잡담으로 시작함.

○ 기타

- 대부분의 인도인은 힌두교도이고, 힌두교는 남녀의 공공연한 접촉을 금지하고 있음.

-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힌두교도들의 전통적인 인사말은 “namaste(나마스떼)”로서, 인사법은 턱 아래에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이는 것임.

- 누군가를 부를 때는 손바닥을 아래로 해서 손가락을 움직임. 손바닥을 위로 할 경우 모욕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

- 손을 엉덩이 근처에 올린 채 서 있는 것은(‘arms akimbo’) 화가 났다는 의사 표시이므로 유의해야 함.

-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은 결례이며, 인도 사람들은 보통 턱으로 가리킴.

- 발은 청결하지 못한 것으로 인식되므로 절대 자신의 발이 다른 사람에게 닿지 않도록 주의하고 만약 닿았다면 사과해야 함.

선물

○ 선물을 받자마자 열어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님.

○ 초대를 받았을 경우에는 초콜릿, 꽃 등의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고, 선물 포장은 흰색, 검정색은 피하고 녹색, 빨간색, 노란색을 쓰는 것이 좋음.

○ 술을 마시는 사람에게 수입 위스키는 아주 좋은 선물이 되며, 만약 현금을 선사하는 경우가 있다면 금액을 홀수로 맞추어야 함.

상관습

○ 인도 비즈니스맨이 가지고 있는 사업 관행과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일반적 사업 관행의 괴리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특히 유의해야 함. 인도 바이어들을 직접 상담한 후 바로 거래에 연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실제 오더 및 대금 결제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므로 느긋한 마음으로 임해야 함. 특히 인도 정부 기관은 느린 업무 처리로 악명이 높음.

○ 인도는 대표적인 가격 시장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능하다면 제품의 기능을 옵션으로 두어 기능을 줄이는 한이 있더라도 가격에 융통성을 줄 수 있는 것이 좋음. 가격 협상은 최소한 몇 차례를 각오해야 하므로 마지막까지 가격의 마지노선을 제시하지 않는 것이 좋음.

○ 대금 결제는 처음부터 L/C 나 T/T 로 해야 함. 인도인들은 인도인들 사이의 거래에서도 대금을 지불하지 않으면 물건을 주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며, 대금 결제에서 신용을 제공하는 것은 문제의 불씨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야 함.

○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는 선적 시 바이어로 하여금 선적 전에 제품을 검사하거나 그에 준하는 동의를 얻어 내는 것이 좋음. 단순히 샘플로만 합의하고 선적한 경우 나중에 제품의 불량이나 하자를 이유로 제품 도착 후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함.

○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는 것은 기본이며, 제품 검사에 대해서도 검사 기관을 특정한 경우 검사에 소요되는 기간이나 비용을 미리 확인하여 비용에 반영하여야 함.

○ 제품의 성능 등에 대해서는 그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함. 애매한 표현은 화를 자초하거나 제품 수령을 거절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됨.

○ 계약에 관한 모든 사항은 반드시 문서로 남겨야 함. 인도에서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인도와의 거래에서 신사도(gentlemanship)는 없다고 말할 정도로, 단순히 선언적인 내용을 말로 약속한 것은 인도와의 거래에서 아무런 의미가 없음.

근무시간

○ 공무원들의 근무 시간은 09:00~17:30이며, 토/일요일은 휴무임. 그러나 대부분의 정부 부처는 10:00 시 이후에야 정상적인 업무가 시작되는 편임.

- 또한 부서별로 근무 시간이 다소 차이가 있으며, 뭄바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 또는 10:30~17:30 으로 이원화되어 있음.

- 첸나이 공무원 근무 시간은 10:00~17:00임.

○ 민간 기업은 업체의 사정에 따라 상이함.

- 은행의 근무 시간은 평일 10:00~16:00, 토요일은 10:00~12:00 에 정상 영업. 다만 현금 인출기는 24 시간 동안 사용 가능함.

현지 주요 연락처

주요 연락처

○ KOTRA 뉴델리 무역관

- 주소: Korea Trade Center, New Delhi B A-602 Signature Tower, South City, NH-8, Gurgaon, 122001, Haryana, India

- 전화: (91-124) 4628-500

- 팩스: (91-124) 4628-501

○ 주 인도 한국 지상사 협의회(코트라 첸나이 무역관 사무국 담당)

- 전화: (91-44) 2433-7280 /핸드폰(91-98400 25933)

○ 뉴델리 한인회

- 전화: (91-11) 5165-5061/2

- 한인회장: 이중훈

○ 임마누엘 교회(뉴델리)

- 주소: 24, Lodi Road, New Delhi

- 전화: (91-11) 2612-2409

- 담임: 김광선 목사

○ 베델교회(뉴델리)

- 주소: British School 강당

- 전화: (91-11) 2651-9986(천성조 목사), 2686-5260(황선옥)

대사관 정보

○ 주 인도 한국대사관

- 주소: 9, Chandragupta Marg, Chanakyapuri Ext. New Delhi- 110021 (뉴델리 국제공항에서 차로 15분, KOTRA 뉴델리 KBC에서 차로 10분 소요 거리)

- 전화: (91-11) 2688-5374/6, 5412, 5419

- 팩스: (91-11) 2688-4840

○ 뭄바이(구 봄베이) 총영사관

- 주소: Kanchanjunga Bldg., 9th FL., 72, Peddar Road, Mumbai 400026, India

- 전화: (91-22) 2388-6743~5

- 팩스: (91-22) 2388-6765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1. 인도 경제의 강점

광활한 국토

- 인도의 국토는 한반도의 15배, 남한의 33배 국토

- 러시아, 캐나다, 미국, 중국, 브라질, 호주에 이어 세계 7위의 면 적을 보유, 특히 대부분이 평야로 이루어져 국토의 활용도가 뛰어남

○ 11억의 인구 : 무한한 내수시장 잠재력, 풍부한 저임 노동력

- 11.3억명의 인구로 세계 총 인구의 17%를 차지, 중국(13억명)에 이어 세계 2위의 인구대국(중국은 세계 총 인구의 20.5%)

- 인구 증가율 1.01%로 중국의 0.57%를 훨씬 능가, 2030년 인도 인구가 중국을 추월할 전망

- 경제성장과 함께 구매력을 갖춘 소비계층의 급증

○ 탄탄한 기초과학 기술 기반

- IT, 제약 등 BT, 우주항공, 수리/물리 등 기초과학 기반 구비

○ 중장기적 본격 경제성장의 초기 단계 진입

- 2005년 회계 년부터 3년간 9% 대 성장을 달성하는 등 견실한 경제 성장 추세가 계속되고 있음. 최근 세계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경기 하락세를 보이고 있으나 인도의 성장 잠재력은 여전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음.

- 외부에 크게 의존할 필요 없는 풍부한 자원, 광범위한 산업기반, 증가일로에 있는 양질의 기술 인력, 경제 개방과 자유화 정책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성장을 추구함.

○ 서비스/지식기반 산업의 중심국으로 부상 가능성

- 중국이 세계제조업의 중심이라면 인도는 세계 지식기반 산업의 중심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음.

○ 안정적인 경제 체제

- 개도국임에도 불구 3-4%대의 안정적인 물가를 보였으나 2006년부터 물가 상승률이 5-6%를 상회하며 인플레이션의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임.

- 2008년에는 도매물가가 10%가량 올라서 서민 생활에 악영향을 끼쳤으나 최근 들어 물가가 안정세를 보이고 있음.

- 2007-08 회계연도 기준 2,991억 불의 외환보유고, 안정된 은행 시스템 보유함.

-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서 각종 국가정책의 수립, 시행이 ‘느리지만 부작용이 없다’는 강점이 있음.

2.인도 경제의 약점

○ 열악한 사회간접자본(인프라 시설)

- 전력, 용수, 도로, 공항, 항만 등 인프라 전반이 아직 취약

○ 관료주의 및 공무원의 부패가 심각

- 행정 절차의 번잡성

- 2007년 국가 청렴도 지수에서 인도는 세계 72위로 아직 부패가 심각, 브라질(72위), 중국(72위)과 비슷한 수준임. 이러한 부패지수는 2008년과 2009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음.

*러시아 143위, 한국 43위

○ 과다한 재정적자 및 대외부채

- GDP의 16.6%에 육박하는 재정적자(중앙정부 및 지방정부 부채합산) 1,566억 불에 달하는 대외부채

○ 절대빈곤/극빈 계층 다수 존재

- 전체 인구의 19%가 기아선(poverty line) 이하의 극빈층에 속하고, 연 2%가 넘는 증가율로 경제성장 및 재정에 부담

○ 신분(카스트 제도) 및 종교적 갈등 상존

- 헌법에서는 폐지된 신분제도가 실생활에 여전히 상존, 힌두‧무슬림 간에 내재된 종교적 갈등도 성장 저해 요인임.

○ 테러, 파키스탄과의 분쟁 및 조류 독감 등 우발적 사태 상존

- 2008년 발생한 델리 시내 폭탄 테러 등 각종 테러사건 발생

- 파키스탄과의 정치적 불안, 조류독감 등 각종 질병의 창궐 등으로 인한 불안성과 환경적 위험이 상존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약사

인도 역사의 특징

인도는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생활풍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대륙과지리적으로 차단된 특수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이루어 왔음.

○ 5,000년 이상의 긴 역사 중 정치적 통일을 이룬 시기는 마우리아왕조(B.C.321-185), 굽타왕조(A.D.380-606) 및 무갈왕조(A.D.1526-1858) 등 3개 왕조에 불과하며, 북서부지역은 외부세력 침입의 출입구가 되어 그리스, 훈, 터키족 같은 외부 세력과의 항쟁 속에서 성쇠를 거듭하였으나, 데칸고원 등 남부지역은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외부세력의 침입을 비교적 적게 받아 왔음.

고대

○ 인더스 문명(기원전 3000-2000)

-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기원전 3,000~2,500년경부터 약 500년간 번성한 고대 문명으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유적이 있음.

- 고도로 발달된 후기 청동기 문명의 단계로서, 종교는 다신교, 정치 체제는 제사장 중심의 공화제를 형성함.

○ 아리안 문명(기원전 2000-1000)

-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리안족이 인도 대륙 침입 후 정착하면서 이루어졌음.

- 사제 계급인 브라만 중심의 제사 의식과 신에 대한 찬양 등이 집대성된 리그베다 등 베다문화가 이 시기에 형성됨.

○ 도시국가의 형성

-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지닌 도시국가들을 건설

- 정복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마가다 왕국은 알렉산더왕의 침입 때까지 난다 왕조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였으며, 기원전 500년경 불교 및 자이나교가 발생함.

중/근세

○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1-185)

- 3대왕인 아쇼카왕(BC 272~232)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남서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하고, 포교에 힘써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함.

○ 쿠샨왕조(78-226)

- 쿠샨족 카니슈카왕이 서쪽으로 이란, 동쪽으로 중국의 한나라, 남쪽으로는 인도대륙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함.

○ 굽타왕조(380-606)

- 찬드라 굽타 2세(380-413) 시대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힌두교 및 자이나교 등이 융성, 부흥했음.

○ 무굴제국(1526-1858)

- 데칸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고 악바르 이후 150년 간 전성시대가 지속됨.

- 이슬람교가 번성하여 타지마할 등 이슬람 관련 유적을 남김.

- 1707년 이후 지방토후의 발호,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약화됨.

- 1757년 영국이 프랑스와의 플랏시 전투에서 승리함.

- 1857년 영국이 세포이 반란을 진압한 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됨.

근대

○ 반영 독립투쟁

- 18세기 후반에 생겨난 많은 정치단체 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함.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이 전인도로 파급되게 됨.

- 이에 대해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간 대립을 조장하였으며, 1906년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영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회교도 연맹을 결성함.

- 1차 대전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하에 영국이 제시한 자치령 지위를 거부하는 등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많은 인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반해 회교도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함.

○ 독립

-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방안을 제시한 바, 동 제안을 국민회의가 수락함으로써 인도는 1947.8.15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됨.

현대

○ 인도 헌법 채택

- 1947년 8월 15일 독립과 함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초대 인총리에 취임한 후, 1949년 제헌의회에서 연방제와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헌법이 채택되고, 1950. 1월 발효됨으로써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에서 탈피함.

○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

- 한편, 독립 당시부터 파키스탄과는 종교적, 영토적 분쟁으로 1947. 10월, 1965. 6월, 1971. 12월 등 3차례 전쟁을 치뤘으며, 중국과는 국경문제인해 1962년 전쟁을 겪는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겪기도 했으나 비동주의와 균형 및 실용주의를 적절히 추진함으로써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시켜 옴.

○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 시현

-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회의당(Congress Party)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추진해 오다가 1990년초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1991년 신경제정책을 채택하여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실시함. 1990년대 이후 국내 정치권력은 국민회의당․BJP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으며, 경제개방 및 개혁의 성과로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음.

정치 개황

국내 정치의 특수한 여건

인도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는 일반국민의 민주의식, 언론자유의 보장, 관료제도, 군부의 중립성, 사법부의 독립 등 긍정적인 요인들과 카스트 제도, 종교간 대립, 빈부격차, 지방주의, 취약한 정당기반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음.

○ 인도의 고질적 사회풍습인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 특히 전체국민의 22.5%에 해당하는 최하층민(Scheduled Caste와 Scheduled Tribe)과 52%에 해당하는 하층민(Other Backward Castes)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 문제는 인도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 중의 하나임.

- 오랜 인습은 타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무력충돌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음. 2006년에는 정부의 OBC에 대한 국립대학 입학할당제도 도입 방안추진계획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가열되기도 함.

헌법과 정부형태

○ 1950년 1월 26일 공포된 헌법은 22장 395조 및 부칙 9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음.

-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 공화국 표방

- 종교 무차별주의로 신앙의 자유 허용

- 주정책에 대한 지시지침(Directive Principle of State Policy)을 통해, 부의 공정하고 적절한 분배 및 생산수단의 집중방지 규정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음.

- 연방은 28개 주(state, 2000년도에 3개 주 신설)와 7개 연방 직할지(Union Territory)로 구성

○ 각 주에는 주 정부와 주 의회가 있음. 주를 대표하는 주지사(Governor)는 5년의 임기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주행정의 실권은 주지사가 주 의회 다수당 지도자 중에서 지명하는 주 총리(Chief Minister)가 장악함.

입법/행정/사법부

○ 상원(Rajya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의회에서 간접 선출되는 238명 및 대통령이 임명하는 12명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으로 매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함.

○ 하원(Lok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대표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Anglo-Indian community 대표 2명 등 총 545명으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임.

행정부는 대통령, 부통령, 총리 및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로 구성됨.

-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상‧하 양원 및 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하여 간접 선출되며,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역할 수행함.(군 최고통수권 보유)

○ 사법부는 연방 대법원(Supreme Court of India), 주 최고법원(High Court), 지방법원(Lower Court)으로 구성되는 3심제임. 대법원은 인도 헌법과 법률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권을 가지며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법원에 대해 구속력을 가짐.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1947년 독립이후 인도의 외교정책을 지배해 온 기본적 원칙은 “네루외교노선”에서 비롯된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 원칙이며, 이와 같은 외교기조는 인도가 처한 특수한 외교 및 안보환경 즉, 광대한 국토와 복잡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국가적 단결이 독립초기의 최대의 관심사였고 대외정책 선택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국내적 제약조건에 기인한 것이었음.

-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패권주의 반대, 군사동맹 가입 반대, 국제분쟁평화적 해결 및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 수립 등 비동맹회의와 유사기본이념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비동맹운동의 창설을 주도하였고 비동맹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음.

최근 외교정책 노선

점차 과거 비동맹 외교노선에서 탈피하여 고도 경제성장의 지속적 달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친서방적 외교정책 노선을 강화하는 추세이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아시아의 세력 균형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 1990년대 후반 이후 현저하게 대미국관계 강화를 시도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2004년 재집권한 Congress당 중심의 UPA 연합 정권 하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부상하는 global power로서의 국제영향력 확대 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G-4와의 협력 유지를 통한 외교노력을 경주하고 있음.

서남아 지역의 중심국가로서 지역분쟁 예방, 정세 안정화 및 역내 영향력 유지․확대를 위한 외교적 지도력를 추구하며, 특히 주변국가들에게 군림하던 과거의 형태를 벗어나 서남아지역연합(SAARC)의 활성화 등을 통한 전향적이고 유연한 지역 외교 노선으로 전환중임.

고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특히 원자력 에너지협력을 위해 미국, EU, 러시아, 중국 등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지원 확보를 위한 다방면의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출범을 통한 장기적 East Asia Community 구상 추진, ASEAN과의 FTA 협상 마무리, 한국과의 FTA(CEPA) 협상 개시, 중국 및 일본과의 FTA 타당성 검토 등 동아시아권과의 지역 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음.

인도-파키스탄 관계

○ 카슈미르 문제는 대 파키스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부문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이며 회교와 힌두간의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임.

○ 인도·파키스탄 전쟁

-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가 신생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 동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회교도측이 파키스탄에 귀속코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하에 반란을 일으킴. 이에 대해 동지역의 힌두교 영주(Maharaja)가 인도정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여 1947. 10월 제1차 인도·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UN의 거중조정에 따라 휴전선이 설정됨.

- 1965. 7월 양국간 다시 전쟁(제2차 인·파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UN 안보리의 노력으로 휴전됨.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파 전쟁이 발발

○ 2003년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과 동시에 그동안 끊겼던 항공 운항을 2004. 1월부터 재개하고 2005. 10월 발생한 대 지진과 관련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국 공동 구조 활동을 펼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음.

○ 그러나 2006. 7월 뭄바이열차 연쇄폭탄테러로 인해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 측은 동 테러를 일으킨 단체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을 이유로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외교차관 회담을 무기한 연기함.

2006.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된 SAARC 상임위원회(Standing Council) 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국은 평화구축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였으나, 구체적인 다방면 대화의 추후 일정은 정하지 못함.

○ 2006. 8월 파키스탄이 자국내 인도 외교관을 외교관 신분에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혐의로 추방하자, 인도도 맞바로 자국내 파키스탄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함.

뭄바이 테러 사건 발생(2008.11.26-29)

- 10명의 테러리스트가 중무장한 채 해상을 통해 뭄바이에 침투, 11월 26일 밤 10시경부터 동시다발적 무차별 테러 공격 감행함.

-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범 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하여 테러를 진압함.

-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와 파키스탄 당국과의 관련성을 계속 부인해 왔으나,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

- 이 사건을 통해서 군병력의 국경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고 양국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됨.

남아시아 지역협력 연합(SAARC)

○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을 도모하고 역외개도국 및 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시아국가간 지역협력 기구로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이어 두 번째로 창설됨.

-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모색(정치, 군사문제 제외)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 8개국이 회원국이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 EU가 옵서버로 가입함.

역내국가간 국력의 불균형과 회원국간 다양한 갈등 및 대립 등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회원국 상호간의 공동체 인식과 함께 협력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바도 있음.

사회

카스트(Caste) 제도

○ 수천 년 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음.

○ 카스트제도는 아리안 족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수집단인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짐.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군인‧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및 천민계급인 수드라(Sudra)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 안에는 다시 수많subcaste가 있음.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음.

○ 최초에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가진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인도인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행위범을 준수해야 했었음. 이러한 계급제도는 인도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고 하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를 정체시켜 활력을 잃게 하는 부정적 영향이 큼.

마하트마 간디를 포함한 많은 사회개혁운동가들은 불가촉 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불가촉 천민들을 ‘신의 자식’이라는 뜻에서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고, 이들이 힌두 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보호에 앞장섰음.

- 오늘날 인도에는 1억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 바,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하리잔에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이 장관까지 된 경우도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임.

언어

○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80여종이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헌법으로 인정한 지역별 공용어는 18개임.

- 힌디어, 텔루구어, 벵갈어, 마라티어, 구자라트어 등

이중 인구의 38.7%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전국적 공용어이며, 영어는 18개 공용어에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이자, 학력이 높은 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함.

복장

○ 남자 : 고유의상으로는 도티(Dhoti), 룽기(Lungi), 아즈칸(Achkan), 파자마 등을 들 수 있음. 그러나 도시에는 하절기에 사파리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

- 도티 : 동부‧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긴 천을 밑으로 늘어뜨린 후 다시 허리춤으로 올려 동여 입는데 흰색의 얇은 천을 사용함.

- 룽기 : Kerala 등 해안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좁은 폭의 천을 늘어뜨린 후 허리를 동여 입음.

- 아즈칸 : 네루 전 총리가 즐겨 입었던 목이 올라온 제복 스타일의 옷

- 파자마 :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는 무릎 아랫부분이 꼭 끼는 추리다(Churidar) 파자마를 입으며 Punjab에서는 헐거운 쿠르타(Kurta)를 입음. 흰색 천을 주로 사용함.

- 사파리 : 하절기(4월-11월)에 많은 도시인들이 즐겨 입는데 공식적모임에서는 점차 양복, 넥타이 차림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임.

여자 : 사리(Saree)라는 고유의상을 주로 입는데 지역에 따라 매는 방법, 천의 길이, 천의 개수가 다름.

- 입는 방법은 천을 허리에 감아 맨 다음 어깨에 걸쳐 밑으로 내려 입음. Punjab 지방에서는 사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라는 상의가 길고 바지가 넉넉한 옷을 입으며 우타프라데쉬, 라자스탄, 구자라트에서는 가그라(Ghaghra)라는 긴 스커트를 입음.

문화

○ 베다문화(B.C.2000-500)

- 아리안 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문화는 인도의 종교‧사회‧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Veda와 같은 대서사시적인 경전을 발전시켰음. A.D.6세기-10세기를 통해 힌두문화는 건축․조각․회화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힌두사원 등 많은 기념비적인 힌두문화 유물을 남겼음.

○ 불교문화(B.C.500-A.D.1100)

- 불교문화 전성기는 B.C. 3세기 야쇼카대왕 시대로 산치대탑, 보드가야의 대탑,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엘로라 동굴 조각 및 건축 예술에서 절정을 이룸. 아울러 불교는 중국, 한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됨.

○ 이슬람문화(A.D.1100-1600)

- 이슬람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조화를 이룬 대표적 양식으로, 초기의 상호배척을 점차 극복하고 상호간의 종교적 관용이 정착하면서 우루두어의 탄생 등 언어, 문화,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공헌을 함.

○ 서구문화의 영향(A.D.1700-1947)

- 250년에 걸친 영국 지배하에 인도예술, 특히 전통회화분야에서 서구 예술의 영향을 받음.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문학의 발전을 가져옴. 그러나 힌두문화는 상당부분 그대로 전승됨.

○ 독립이후(A.D.1947-현재)

- 독립 이후, 전통문화 창달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문화재 발굴, 보존, 전시 등을 위한 박물관, 문화재 관리국 등 국가행정기관을 통하여 현재 문화와 함께 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음.

교육

○ 교육의 기본정책은 지역 간의 교육격차해소, 전 계층 간의 균등한 교육기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자원개발 등에 목표를 두고 14세까지의 무상의무교육, 영어, 힌디어 및 주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 GNP의 6% 교육투자 등을 통해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노력하고 있음.

학교교육은 10+2+3의 15년 과정의 교육제도로써 1968년도 채택 후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이를 실시하고 있음.

종교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발생지이며 이슬람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등 다양한 외래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임.

종교는 인도 국민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종교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

○ 헌법은 모든 종교에 대한 무차별, 신앙의 절대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

○ 인도의 종교인구 분포는 힌두교 81.5%, 이슬람교 11.2%, 기독교 2.7%, 시크교 2.4%, 불교 0.7%, 자이나교 0.4%, 기타 1.1%임.

힌두교

○ 힌두교는 B.C 2000년경 아리안족 침입 후 최고경전 Veda가 집대성되면서 정치, 사회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이슬람교 등 이교도의 수세기 동안에 걸친 침략 속에서도 이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오늘에 이름.

- 드라비다족의 토속신앙, 아리안족의 자연신 숭배 등에 바탕을 둔 다신교인 힌두교는 외래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특징으로 하며 생활경험, 도덕, 사회관습, 규범의 총체로서 Dharma(정의 또는 의무)에 따른 수도생활과 최고 정신을 탐구하는 고도의 생활 철학적 종교임.

- 소를 신성시하고 카스트제도를 정착시킨 힌두교는 해외 전파보다는 인도인의 종교로 존속하길 바라는 성향을 띠고 있음.

- 현재 약 8억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힌두교는 인도사회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종교임.

보건

○ 약 26%의 빈곤층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모든 국민의 건강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농촌, 빈민층에 대한 위생, 의료혜택을 확대 실시하고 있음. 특히 UPA 정부는 집권기간 중 GDP의 2-3%를 보건 분야에 투입하되 기초보건에 우선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의 조기 도입과 필수 의약품의 저렴한 판매 방안 마련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음.

○ 지난 30년 간 평균 수명은 31세에서 52세로 사망률은 천 명당 27.4%에서 14.2%로, 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146명에서 125명으로 개선됨. 또한 전염병퇴치를 위한 특별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바, 1977년도를 기해 천연두는 퇴치되었으며 학질, 사상충, 나병, 콜레라, 결핵 등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

○ 1952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출발로 시작한 가족계획은 많은 성과를 가져출생률은 60년대 4.12%에서 1978년도 3.33%로 감소되었으며, 2002년에는 2.38%로 정부는 2001-11년의 10년 간 인구증가율을 16.2% 이내에서 억제한다는 계획임.

관습

인도인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사원이나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음. 힌두교는 다신교로서 교리나 성찰보다는 수많은 제신들의 형상화를 통한 의식이 주요 신앙생활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률이나 내세구원보다는 개인의 현세구복에 치중하고 있음.

오랜 카스트제도 하에서 묵묵히 순종해온 생활태도, 불교의 자비와 관용적 사상, 장기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 등의 영향에 기인하는 관용적 태도, 생명존중 사상, 무저항주의 같은 평화주의 사상이 인도인들의 생활 저변있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주의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의 계승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이슬람-힌두 등 종교, 종파간 갈등 분규가 발생시 폭력사태로 변질되기 쉬우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여 외국인의 주의를 요함.

인도인들은 전통과 관습을 존중,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보수적 풍속을 벗어나는 외국인은 풍속사범으로 체포, 처벌하기도 함.

인도에서는 금주제도를 실시하는 주가 있으며 일반 식당에서도 금주일이 있고, 판매시간이 제한되어 있음. 주류 판매는 호텔이나 규모가 큰 대중식당에만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임.

○ 매춘은 불법이며, 지역마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대체로 자국인들 간에 이루어지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음.

○ 여성들은 복장법령에 따라 공적 활동시 반드시 전통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하며, 일반대학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전통의상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음.

언론

인도의 언론은 스스로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년)을 쟁취하는데 공헌바 크고, 독립이후에는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음.

- 개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이 여론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신문 등 정기간행물(약 8,000종)은 대부분이 개인소유로 운영되고 있음. 특히 TV 및 라디오는 방대한 지역과 인구의 1/3 이상이 문맹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보도‧교육‧오락 등 일반적인 방송기능은 물론 정부의 대국민 홍보기능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유일의 공중파 방송인 국영 TV Doordarshan(DD-TV)은 DD National, DD News, DD India(해외방송) 등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영TV 채널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케이블 TV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한-인도 관계 일반

외교관계

○ 종래 인도는 표면적으로 비동맹 중립정책을 표방하면서 남북한 등거리 정책을 표방해 왔으나, 갈수록 우리나라의 신장된 경제력과 국제지위 향상을 높이 평가, 우리와의 실질 협력관계를 크게 중시하고 있음.

유엔 총회에서 남북한 문제에 대한 종래의 불언급 또는 중도입장을 탈피, 제46차 총회(1991년)에서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을 지지

○ 각종 비동맹회의에서도 북한의 강경, 비합리적 입장 채택에 반대, 우리나라의 입장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태도 유지

○ 특히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한 우방으로서 우리의 대북포용 정책, 남‧북 정상회담 및 후속조치 추진 등을 적극 지지하고 있으며, 남‧북한간 대화와 협력을 통한 평화통일 추진을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

주요협정 체결 현황

○ 1976. 3 과학기술협정 (76. 8 발효)

○ 1985. 7 이중과세방지협정 (86. 8 발효)

○ 1992. 3 항공협정 (92. 3 발효)

○ 1993. 9 관광협력협정 (93. 10 발효)

○ 1996. 2 투자보장협정 (96. 5 발효)

○ 2004.10 형사사법공조조약/범죄인인도조약 (05. 6 발효)

○ 2005. 9 한-인도 방산군수협력 양해각서 (05. 9 발효)

○ 2005. 8 외교관 및 관용여권 사증면제 협정 (05. 10 발효)

○ 2006. 2 세관협력협정 (06. 4 발효)

○ 2006. 2 과학기술협정(개정) (06. 8 발효)

○ 2009. 2 한-인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가서명

○ 2009. 2 한-인도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정식서명

한-인도 교역 및 투자 동향

교역 현황

○ 한-인도 교역 현황

- 한국의 대인도 교역은 2008년에도 수출이 전년 대비 36%, 수입이 전년 대비 42.3%나 증가하였으나, 세계적 경기 침체로 인하여 2009년 들어 수출과 수입이 각각 18.1%, 56.3% 감소함.

- 양국의 교역량 역시 2004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연평균 32.1% 증가하였으며 2009년 11월 기준 인도는 세계 9위의 수출 대상국이자 17위의 수입 대상국임.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5

4,598

26.6

2,112

14.2

2,485

2006

5,532

20.3

3,641

72.4

1,892

2007

6,600

19.3

4,624

27.0

1,975

2008

8,977

36.0

6,581

42.3

2,395

2009.1-11월

7,153

-15.3

3,605

-43.1

4,747

자료원: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주요 수출입품목

○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 휴대폰을 비롯한 무선통신기기는 지난 몇 년간 인도 수출을 리드해 왔으나 최근에는 현지 생산의 여파로 수출이 급감하고 있음.

- 자동차 부품 수출은 현대자동차의 현지 영업이 활발하고 현지의 자동차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최근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음.

순위

품목명

2008

2009.1-11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부품

1,312

49.2

938

-24.8

2

철강판

1,037

36.0

902

-6.5

3

무선통신기기

887

82.8

741

-11.9

4

합성수지

360

59.2

484

46.8

5

석유제품

777

46.0

378

-49.8

6

선박해양구조물및부품

580

76.7

300

47.7

7

공기조절기및냉난방기

196

19.2

236

89.9

8

레일및철구조물

72

72.6

178

152.6

9

기타석유화학제품

168

10.4

157

-1.8

10

원동기및펌프

152

36.2

143

-1.5

○ 한국의 주요 수입 품목

- 특히 석유 제품 및 기타 금속 광물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음.

- 기타 금속 광물 및 철광의 경우는 수입이 지속적으로 급증하고 있으며 합금철선철 및 고철 또한 60%가 넘는 수입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 이는 자원 및 원재료 확보 차원에서 인도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음을 의미함.

순위

품목명

2008

209.1-11월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석유제품

3,895

55.7

1,9333

-48.8

2

기타금속광물

55

-76.3

197

294.5

3

식물성물질

447

100.2

191

-55.8

4

천연섬유사

214

4.1

182

-8.0

5

정밀화학원료

120

45.7

93

-17.2

6

합금철선철및고철

390

153.2

83

-78.4

7

농약및의약품

85

12.4

75

-4.3

8

철광

92

-28.5

65

-29.4

9

염료및안료

49

27.4

42

9.6

10

곡실류

64

103.4

39

-33.8

자료원 : kita.net (단위: 백만 달러, %)

우리 기업의 투자 현황

○ 연도별 한국의 인도 투자 현황

- 우리 기업의 대인도 직접 투자는 총 1,534건, 15억 4,503만 달러로 우리나라 전체 해외 투자 건수(14만 8,657건)의 1.03%, 총 투자 금액(1,186억 3,577만 달러)의 1.3%에 불과한 수준

연도

신고건수

신규법인수

신고금액

투자건수

투자금액

2004

56

28

48,947

82

40,773

2005

75

33

112,700

116

91,132

2006

151

68

150,291

224

98,490

2007

204

86

330,057

346

290,149

2008

228

67

282,746

336

189.623

전체

1080

448

2,247,213

1,534

1,545,033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단위 : 건, 천 달러, %)

○ 우리기업의 대인도 업종별 투자 현황(2008. 12월 현재)

- 우리의 대인도 투자는 제조업 투자가 대부분(총투자의 약 71.5%)이며, 소매업이 8.3%, 나머지 건설업이 4.2%를 구성

업종대분류

신고

건수

신규

법인수

신고

금액

투자

건수

투자

금액

제조업

730

284

1,848,275

1,097

1,266,089

도매 및 소매업

68

31

154,634

128

123,103

건설업

57

31

33,938

65

26,207

부동산 및 임대업

27

12

34,882

27

17,199

사업서비스업

29

15

14,279

41

10,639

운수업

30

13

11,685

29

4,495

숙박 및 음식점업

16

10

1,024

21

546

기타 공공,수리 및 개인서비스업

14

6

6,279

13

839

교육 서비스업

14

6

1,959

28

1,420

통신업

22

8

8,431

29

4,495

오락문화 및 운동관련 서비스업

3

1

1,032

3

832

금융 및 보험업

11

4

125,775

7

82,981

어업

2

2

1,044

5

1,043

농업

1

1

300

3

106

광업

1

0

667

0

0

전체

1,080

448

2,247,213

1,534

1,545,033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단위 : 건, 천 달러)

○ 인도 진출 10대 한국기업 리스트

회사명

투자 연도

투자 내역

투자 금액

현대 자동차

1997

자동차 제조

172,297

삼성전자

1997

디지털 가전 및 반도체 등

56,379

포스코

2005

철강제품 제조

51,253

대우 건설

2001

건설

42,010

LG 화학

1996

화학제품

35,400

패리스 제과(롯데)

2004

식품류 제조

19,041

LG전자

1998

디지털 가전 등

11,400

모비스 인디아

2005

자동차부품

18,000

KCC 페인트

2006

KCC 페인트

18,000

화신

2002

자동차부품 제조

12,187

자료 : 한국수출입은행 및 KOTRA (단위 : 천 달러)

우리 기업의 대인도 투자 특성

제조업의 집중적 투자 추세

- 현대자동차, LG 전자, 삼성전자 등 이미 진출했으며, 현대중공업, 한라산업개발 등도 현지 진출을 추진 중임.

- 특히 포스코가 오리사주에 추진 중인 제철소는 총 투자액이 120억 달러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로 우리나라 인도 투자 확대의 전기가 될 전망임. 2009년 초 최근 지방 정부의 중앙정부를 대상으로 한 포스코 광권 추천이 진행됨에 따라 프로젝트의 진행이 가시화됨.

- 제조업 투자 전체 투자액 중 자동차 제조 투자액은 7.5억 달러로 제조업 전체의 64.6%를 차지하고 있음.

진출 분야 다양화 전망

- 현재 인도 내 한국 투자 중 도소매업은 제조업 다음으로 약 1억 1,000만 달러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 뒤를 서비스업이 2,900만 달러로 3위를 기록하고 있음.

- 기존의 제조업 위주의 투자와 더불어 최근 대기업들의 진출 업종은 상사, 화학, 전자, 철강, 해운, 항공, 금융, 의류, IT, 제약 등 다양해지고 있음. 건설업 또한 최근 인도 정부가 상업용 및 주거용 부동산 건축을 장려하고 있어 향후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임.

○ 대기업의 집중 투자

- 대기업이 투자액 대비 91%로 절대 다수를 점하고 있어 인도는 아직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이 집중 투자하고 있음.

- 인도에는 인프라 개발을 위한 플랜트, 프로젝트에 대한 입찰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 우리의 주요 건설업체들이 모두 진출해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임. 중소 협력업체들은 우리 대기업의 매출이 매년 급성장하는데 편승하여 안정적인 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음.

한-인도 인적교류 현황

한국인사 인도 방문

2004.10 노무현 대통령 국빈방문

2004.10 국회 국정감사단(단장 : 유선호 의원)

2005. 1 박희태 국회 부의장

2005. 7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제4차 한․인도 공동위 개최)

2005. 9 국회 국정감사단(단장 : 김덕룡 의원)

2005.11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

2006. 5 한덕수 경제부총리

2006.11 정세균 산업자원부장관

2007. 4 송민순 외교통상부장관

2007. 5 김장수 국방장관

2008. 7 최경림 외교통상부 FTA 정책국장

2009. 2 이혜민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

인도인사 한국 방문

2004.12 Natwar Singh 외교장관(제3차 한․인도 공동위 개최)

2005. 1 Baloo 해운교통장관

2005.10 Sayeed 전력장관

2005.10 Aiyar 석유장관

2006. 2 A.P.J Abdul Kalam 대통령 국빈방문

2006. 5 Raju 국방부 국무장관

2006. 6 Maran 정보통신장관

2006. 9 Chidambaram 재무장관

2007. 6 Ahamed 외교부 국무장관

2007. 9 Mukherjee 외교장관

2007.11 Reddy 도시개발부장관

2008. 6 Soni 관광문화장관

2008.11 V.Gokhale 외교부 동아시아국장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주요산업 현황 및 전망

자동차 산업

○ 인도 자동차 산업 규모는 2016년까지 약 1,400억 달러로 추정되며, 특히 상용차량 분야의 성장이 예상

- 경제 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와 할부 금융 기법의 도입 및 정부의 소형차에 대한 소비세 인하 등의 요인으로 두자리수 성장 지속

○ 인도 정부도 내수뿐 아니라 수출 상품으로 자동차 산업을 적극 육성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민영화 등 경쟁을 도입하여 발전을 도모하는 한편 면세 혜택과 같은 다양한 외국인 투자 유인책을 도입

- 구매가능 계층의 확대, 도로망 개선, 대중교통수단 미비, 다양한 지불방식의 도입 등으로 승용차, 상용차, 이륜차에 대한 수요증가 추세는 지속될 전망

○ 현재 인도 자동차 부품업계는 세계적인 글로벌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인도에서의 부품 아웃소싱에 참여 덕분으로 호황을 맞고 있음.

철강 산업

○ 철강 산업은 풍부한 철광석과 석탄 부존, 저임 노동력을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하여 왔으며, 인도는 5,071만 톤의 粗鋼(crude steel)과 5,190만톤의 탄소강을 생산하는 세계 제5위의 철강 생산국임.(2008. 3월 현재)

- 국내 외에서의 인프라, 부동산, 자동차 산업과 같은 분야의 수요 증대로 현재 5개년 계획 기간 동안 평균 16% 증가하여, 2016년까지 세계 2위의 철강 생산국이 될 것으로 전망됨.

○ 인도 철강산업은 풍부한 철광석 및 저렴한 임금에도 불구하고 비과학적 채굴과 낮은 생산성, coking coal의 해외 의존, 높은 금융 비용, 인프라 부족 등 많은 취약점을 가지고 있어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되어 있음.

○ 인도에는 확인된 철광석 매장량이 86억 톤, 추정 매장량이 91억 톤으로 약 170억 톤의 철광석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상당량이 철 함유량 63% 이상의 적철광(Hematite)이나 품질은 열악한 편.

석유화학 산업

○ 인도의 석유화학 산업은 인도 정부의 규제 완화와 무역 정책의 변화로 석유화학 제품의 수요 확대와 투자 증가가 가속화되는 한편 외자 합작 사업과 기술 이전도 촉진되고 있음.

- 원자재 획득 및 규모의 경제 상 석유화학산업은 구자라트, 마하라수트라, 웨스트 벵갈주 등이 3개 주 지역에 87.64%가 집중

○ 인도는 기초 원료의 생산을 시작으로 수요가 직접 발생하는 최종 단계(컴파운드, 성형가공)와 하류 제품(합성수지 등의 polymer 제품)으로 확대하는 선진국형 성장모델을 따르고 있음.

- 인도의 석유화학 산업은 풍부한 설비와 노동력, 일부 분야에서 고급의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어 향후 성장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

○ 석유화학 제품은 현재 인도의 5대 수출 품목이며 1위를 차지한 섬유 제품 중 합섬 섬유의 원료로써 주력 수출 분야임.

- 국내외 수요 증가에 맞춰 생산 설비의 확장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 인도의 석유화학 시장은 고성장이 계속될 전망

섬유 산업

섬유 산업은 전체 산업 생산 중 14%(약 470억 달러), 인도의 전체 수출의 20%(약 170억 달러), 전체 GDP의 4%를 담당하며 고용 측면에서는 농업 다음으로 가장 많은 고용효과를 가진 중요 산업

- 인도는 저임의 숙련 노동력이 풍부하고 국내에서 생산되는 섬유량이 많으며 다양한 품목의 생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음.

- 단순한 주문 생산에 따른 공급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기능 면에서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음.

○ 인도 정부의 섬유 산업과 관련한 ‘Vision 2010’을 통해 2010년까지 전세계 섬유 산업에서 인도의 점유율을 현재의 4%(370억 달러)에서 8%(850억 달러)로 증가시킬 계획

- 향후 세계 섬유 교역이 완전 자유화되면 인도 시장에 대한 선진국의 섬유 주문 및 생산 기지 이전이 더욱 크게 확대될 전망

서비스 산업

○ 인도의 서비스업 부문 중 IT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 생명공학 등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이며, 무선통신 산업과 케이블 TV, 건설․인프라, 광물 자원 개발 등은 발전 가능성이 높은 유망 성장 산업으로 평가

정보기술(IT: Information Technology)

- 인도의 IT 산업은 지난 5년 동안 연 평균 28%의 놀라운 성장 속도를 보여왔으며, 전 세계 글로벌 IT 기업들의 연구와 개발 허브로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음.

- 저가의 고품질 소프트웨어 공급처를 확보하고 비즈니스 효율성 강화를 위한 다양한 소프트웨어 구입 및 업무 제휴의 목적으로 인도를 찾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으며, 컴퓨터 및 주변기기를 포함한 하드웨어에 대한 수요도 동반 상승할 전망.

○ 생명공학(BT: Biotechnology)

- 인도 BT 시장은 2000년에 18억 달러였으나 2005년에 22억 달러, 2010년에 50억 달러로 확대될 전망이며, 내수보다는 해외 진출을 겨냥한 전략 산업으로 성장하고 있음.

농수산업

○ 농업 부문은 산업 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비중과 경제적 중요성이 하락하여 인도 GDP의 18%를 담당하는데 불과하나, 전체 인구의 60% 이상이 농업부문에 종사하면서 극빈층을 형성

○ 산업 구조의 고도화와 농업 부문의 축소

- 인도의 농업 부문은 곡물 생산과 축산업으로 크게 구분되며 곡물이 70%, 축산업이 30%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정부는 농업 부문 발전을 위해 1966년부터 1999년간 두 차례의 녹색 혁명(Green Revolution)을 실시하여, 농업 부문 성장률을 1999년 3.35%까지 증가시킴.

○ 인도의 14개 주는 농업 및 관련 분야의 서비스와 원예 농업과 화훼원예, 종자의 개발, 동물 농장, 수산 양식, 양식, 야채 경작, 버섯 재배 등에서의 자동 승인을 통한 100% 외국인 투자를 허용함.

유망 제품

○ 한국 제품에 대한 인지도

- LG 전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여러 대기업들이 인도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둔바 있기 때문에 한국 제품에 대한 평가는 나쁘지 않은 편임.

- 보편적인 인도 바이어들에게 한국 제품은 좋은 품질을 보유하고 있으나 가격이 비싼 제품으로 인식되고 있음.

○ 자동차 부품

- 현대 자동차의 대규모 증설과 현지 자동차 설비 증설 붐 그리고 자동차가 급증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자동차 부품의 수출은 계속해서 큰 폭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임.

전자 및 IT

- 각종 전자 제품, 보안 장비, MP3 플레이어, 디지털 카메라, LCD 등 현지에서 수요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는 전자 제품 및 IT 제품이 유망함.

기계류

- 인도의 산업화가 본격 추진됨에 따라 산업 기계류, 건설 기계류, 일반 기계류, 섬유 기계류 및 관련 부품, 건설 기계 등 기계류 수출이 유망함.

○ 정보통신 장비 및 기자재

○ 금형제품

○ 의료용 기자재 및 일회용 의료용품

투자환경 및 동향

시장 특징

○ 시장 규모가 광활한 시장

- 세계 2위의 인구 대국인 인도(11억 4,800만 명, 2008. 3월)는 중국보다는 저연령층이 두터운 편이기 때문에 2025년경을 기점으로 경제 활동인구수를 추월할 것으로 예상됨. 이는 인도가 노동 집약적 제조업을 육성하는 데 장기적으로 중국보다 더 큰 잠재력이 있음을 의미함.

- 인도는 세계에서 7번째로 넓은 면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남한의 약 33배에 해당하는 서남 아시아의 대표 시장임.

○ 내수 소비의 폭발적 성장이 기대되는 시장

- 인도의 구매력 평가 기준 GDP(PPP)는 미국,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하며, 최근 국제 금융 자산의 유입과 부동산 및 증시 상승으로 상당한 부를 축적

- 최근 중산층 및 신흥 부유층의 증가가 두드러졌으며, 매킨지사는 2025년까지 중류층 이상의 비율이 현재의 5%에서 43%까지 증가하여 중산층 위주의 사회로 변모할 것으로 예상

- 이동통신 가입자 수는 최근 4년간 약 10배 가량 증가하여 중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점하며, 자동차에 대한 수요 역시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임.

○ 다양한 특성을 가진 시장

- 인도인은 수많은 외래민족의 유입으로 다양한 인종적 특성을 보이며, 힌디어를 포함한 16개 언어가 공용어로 인정되고 있음.

- 소득 양극화도 심각하고 카스트 제도 역시 엄연히 실재하고 있으며, 인도의 상권 역시 권역별 특징이 달라 해당 지역의 역사적, 정치적, 종교적 특성에 따라 진출 전략을 달리하는 것이 도움이 됨.

대규모 투자 자본이 유입되고 있는 시장

- 90년말 이후 인도는 IT 소프트웨어 및 관련 서비스의 아웃소싱 기지로 각광받았으며, 인도 진출시 내수 및 수출을 동시에 지향할 수 있다는 점 등 인도의 잠재력을 투자자들이 높이 평가함.

- 2007-08 회계 연도 기준 FDI 유치 규모는 246억 달러이며 전년 대비 56% 증가한 수치로서, 인도 정부 당국은 2008-09년도 6월 기준 100억 달러 이상의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였으며 투자가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고 발표함.

○ 정치, 경제, 사회적 안정성을 갖춘 시장

- 정치면에서 보면, 인도는 문자 그대로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이며, 높은 문맹률과 극심한 빈부격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일반화되어 있음.

- 이러한 정치적 안정과 함께 풍부한 자원, 광범위한 산업기반, 증가일로에 있는 양질의 기술 인력, 경제개방과 자유화 정책 등에 힘입어 최근 경제적인 안정성이 강화되고 있다고 평가됨.

○ 원부자재, 자원 확보가 용이한 시장

- 인도는 광활한 국토면적으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부존자원이 풍부한 국가 중 하나로서, 생산 규모 면에서 볼 때 운모류 1위, 크롬 3위, 석탄 및 갈탄 3위, 철광석 4위, 보크사이트 및 망간광 각 6위, 알루미늄 10위의 위치를 차지

- 이에 따라 인도의 풍부한 천연자원을 활용키 위한 자원 확보형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도의 대리석 또는 화강암을 겨냥한 우리나라의 동인석재, 풍부한 철광석을 고려한 포스코의 오리사주 투자사례가 이의 한 전형임.

투자 애로사항

인프라의 부재

- 인도의 경제발전과 투자유치를 지체시키는 최대 문제점이자 애로사항은 전력, 용수, 도로, 항만, 공항 등 거의 모든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임.

- 예컨대 전력의 경우 평시 전력부족률이 7~8%, 피크타임 전력부족률이 11~12%에 달하며 공급되는 전력의 품질도 매우 불량하여 일상적으로 정전이 발생함.

○ 노무 관리 및 인력 관리

- 현지 노동자들은 수동적 성향이 강하고 조직에 충성하기 보다는 책임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인센티브 등을 통해 동기부여를 해 주어야 함. 최근에는 인건비 폭등과 이직률의 급상승이 주요 애로사항으로 부상하고 있고, 숙련 노동자의 구인란도 심한 편임.

부동산 임대료의 급증

- 최근 델리, 뭄바이, 뱅갈로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지역과 주거지역에 대한 부동산 임대료가 급상승하고 있으며, 공급측면에서 여러 신규 주택 공급 프로젝트들은 지연되고 있는 실정이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음.

인건비의 상승

- 인도는 최근 9%대의 고도성장을 거듭하면서 지난 몇 년간 두 자리수의 인건비 상승률이 이어지고 있으며, 2008년 인도 근로자 인건비 상승률(15.2%)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임.

- 인도 인력은 이직을 보편적인 몸값 상승의 기회로 여겨 쉽게 이직하는 추세이며, 고용 에이전트의 부추김도 상황을 악화시킴.

규제 및 불투명한 행정

- 인도에서 카스트제도는 현실에서는 엄연히 존재하고 있으며 개인과 사회현상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어, 실제로 카스트와 얽힌 사회문제나 갈등은 어려움으로 작용

- 또한 여러 종교, 인종, 언어가 상존하다보니 일상적인 행정처리에 있어 비효율성이 큰 편이고, 사회주의경제시스템을 운영한 전통으로 노동자권익을 과다하게 보호한 노동법 체계 등이 실제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

한국 투자기업들의 애로사항

- 법인 및 공장 설립 단계에서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투자허가기관 및 파트너의 잦은 태도변화와 인도 특유의 복잡한 행정체계가 가장 큰 것으로 조사되었음.

- 경영관리 전반으로 겪는 애로사항으로는 인프라 부족과 원자재 및 부품의 조달과 관련된 애로사항으로 나타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인도 (Republic of India) 개황

개관

○ 국 명 : 인도(Republic of India)

○ 수 도 : 뉴델리(New Delhi, 12.8백만 명)

○ 면 적 : 3,287,590㎢(한반도의 15배, 남한 면적의 33배)

○ 위 치 : 서남아시아(동경 68.7-97.25 도, 북위 8.4-37.6 도)

○ 인 구 : 1,148백만 명(2008)

○ 주요도시 : New Delhi(1280만), Mumbai(1640만), Kolkata(1320만) 등

○ 민 족 : 인도 아리안족(72%), 드라비다족(25%), 기타(3%)

○ 종 교 : 힌두교(82.4%), 회교(11.7%), 기독교(2.3%), 시크교(2.0%), 불교(0.8%)

○ 언 어 : 힌두어 외 18개 공용어, 영어(상용어)

○ 정부형태 : 연방공화제

○ 국가원수 : 프라티바 파틸(Shrimati Pratibha Devisingh Patil) 대통령

- 취임일 : 2007.7.25(5년 임기)

○ 의 회 : 양원제(상원 245석, 하원 545석)

주요정당 : 국민회의당(INC), 인도인민당(BJP), 인도공산당(CPI)

○ 독립기념일 : 1947. 8. 15(영국으로부터 독립)

○ 화폐단위 : Rupee(2010. 1월 현재 US$ 1 = 46.1659 Rs)

○ 산업구조 : 서비스업 52.8%, 제조업 29.4%, 농업 17.8%(2007)

○ 주요수출품 : 기계류, 석유제품, 섬유류, 보석제품

○ 주요수입품 : 석유제품, 전자제품, 금․은, 기계류

○ 주요부존자원 : 철광석, 석탄, 석유

○ 경제적 강점 : 천연자원 및 저임노동력 풍부, 거대한 내수시장

○ 경제적 약점 : 사회간접자본 미비, 관료주의 만연

○ 1인당 국민소득 : $ 1,033 (2009)

○ 국민총생산 : $ 12,426억 (2009)

○ 표 준 시 : GMT(우리나라와 9시간 차, 서머타임 미실시)

○ 기 후 : 한대성 기후(히말라야 고산지대), 건조기후(서북부 지대), 열대성 기후(북부 평야 지대의 도시들을 포함한 국토의 대부분) 등 지역별 편차가 극심 (연평균 기온 27-34도)

- 1월이 가장 낮고 4-5월이 가장 높으며, 6월 말부터 몬순이 시작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경제 구조 및 특징

○ 인도 경제의 구조는 농림수산업, 광업 등 1차 산업이 18.9%, 제조업과 건설업 등을 포함한 2차 산업이 23.9%, 3차 산업이 57.3%를 차지하는 3차 산업 중심의 구조임.

○ 최근 3년간 연평균 9% 이상의 고성장을 유지하다가 2008-09 회계연도에는 6.7%로 마무리 된 것은 전세계적인 경기침체의 원인도 있으나, 몬순 시기 중 과다한 강우량으로 농업에 부정적인 영향이 있었던 것도 중요한 이유이며, 2009년 2분기 중 극심한 가뭄으로 인한 농업 성장이 지연되면서 전반적인 소비 위축으로 연결된 것이 주요 원인임.

○ 2009년 1분기는 다른 부문의 플러스 성장에도 불구하고 농림수산업 부문이 큰 마이너스 성장(-18.4%)를 기록함에 따라 2.6%의 성장에 그쳤고, 2009년 2분기는 전기, 가스, 상수도 공급 부문을 제외한 나머지 분야의 마이너스 성장세로 인해 큰 폭으로 성장이 위축됨.

주요지표 및 통계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5

2006

2007

2008

2009*

GDP(억 달러)

8,085

9,272

11,436

13,055

12,426

1인당 GDP(달러)

750

850

1,030

1,180

1,033

경제성장률(%)

9.2

9.7

9.0

7.7

5.4

재정수지/GDP(%)

-4.1

-3.4

-2.8

-3.4

-2.2

소비자물가상승률(%)

4.2

6.2

6.4

7.1

8.7

경상수지(백만 달러)

-10,285

-9,529

-11,794

-39,579

-27,491

수출(백만 달러)

102,175

122,963

150,784

178,925

158,540

수입(백만 달러)

149,430

122,963

230,202

283,033

261,345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최근 경제 동향

○ 2008~2009년 인도 산업 생산은 평균적으로 다소 위축되어 있는 상태로, 이는 전반적인 수요 감소에 따른 결과임. 산업생산 관련 비즈니스 신뢰지수는 2009년 6월 전년 동기 대비 39% 감소한 수치임.

○ (소비지출) 인도 경제가 세계 경기침체에 영향을 주로 받은 시기는 2009년 1분기부터임. 이 때 가장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경험하면서 소비지출이 -7%에 달하였고, 2분기에도 침체세는 유지되고 있음.

(정부정책) 금융위기로 인한 자본정체(moribund capital inflows)를 해소하기 위해 외국-인도 합작기업에 대한 FDI 규제를 완화시킴.

- 국내산업 보호 및 공공보건을 위해 중국산 완구류 수입 금지조치를 내려 중국과의 무역 분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

○ (대외무역) 인도의 대외 수출 감소는 농산물 작황 실패에 따른 해외 수출감소와 해외 경기위축으로 인한 공산품 수요 감소가 주요 원인임.

- 대외 수출 주요품목인 농산물이 2008년도 폭우, 2009년도 가뭄으로 인해 작황이 대단히 열악하였음. 국내 수요량 충족을 위해 수출 물량이 줄어들고, 가격인상으로 해외 수출 가격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물량이 줄어듬.

○ (대외무역) 인도의 대외 수입 감소는 원유가 및 원자재가 하락에 의한 수입액 감소 및 국내 소비 위축에 따른 산업 생산 위축에 따라 자본재 및 원자재 수입이 감소한 것임.

- 발전 및 연료 사용 목적을 위한 원유 및 석유 제품은 인도 최대 수입품목으로서, 세계 경기위축으로 원유가가 인하되면서 수입액이 빠르게 감소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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