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문화가 만개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 건 '무령왕릉'의 발굴 이후였다고 한다. 우리가 갖고

있던 백제에 대한 이미지는 굉장히 막연하고 불분명해서, 예컨대 금동용봉대향로같은 굉장히

화려하고 세련된 유물을 발굴하고 나서도 이것이 백제의 것일지 아니면 중국의 것을 수입한

것일지 논란이 있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儉而不褸, 華而不侈(검이불루, 화이불치 :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음)"라는 백제의 미감을 한껏 표현한 무령왕릉유적의 화장실엔 그래도 조금은 신경쓴, 백제의

미감엔 한참 못 미치고 복식 역시 조선의 그것을 연상시키지만, 아무튼 조금은 신경쓴 듯한

화장실표시가 있었다.

이왕 화장실 표시를 범용의 파란색 남자, 빨간색 여자 표시에서 벗어난 개성있고 문화가 담긴

뭔가로 바꾸고 싶었다면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약간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지만

그래도 이 곳까지 생각이 미쳤다는 것 자체로도 분명 진일보한 건 사실일 터다.



2010 상해엑스포의 꽃은 역시 붉은 왕관 모양의 '중국관', 중국관의 번지르르한 외양은 멀리서부터

사람들의 시선을 붙박아놓고 화려한 내부로까지 자연스레 이끄는 힘이 있지만 그 세심한 내공이

느껴지는 건 그 건물 한구석에 붙어있는 화장실. 화장실마저도 중국의 문화를 세련되게 표현하는

공간을 활용하며 세심하게 꾸며놓은 걸 보면 얼마나 공들였는지 대략 가늠할 만하다.

중국 고대의 갑골문자에서 현대적인 번체자로 변천해 왔던 한자가 상형문자처럼 많이

형이상학적이고 기하학적이지만, 나름 현대의 글자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는 수준으로까지

변화해 온 즈음의 글자들이 담백한 조명과 벽면 위에서 검고 단단하게 자리잡았다.

여자 화장실도 마찬가지, 좀더 안쪽에도 뭔가 글자가 그려넣어져 있었을 것 같은데 차마 더이상은

못 들어가고 살짝 입구에서 맛만 보는 정도. 그나저나 이런 한자는 그렸다고 표현해야 할지 아님

썼다고 표현해야 할지, 그림과 글자의 어중간한 경계에 서 있는 그 모양새가 새삼 신기하다.

한자문화권에 속해있다는 한국인의 눈에도 신기한데 이 곳을 찾은 다른 문화권의 외국인들에게야

더 말할 것도 없이 굉장히 신기할 거다.




@ 상해엑스포, 중국관.
남양주에 있는 '봉쥬르', 왔다갔다 하면서 늘 눈여겨 보게 되던 화장실의 간판이다.

파이프를 물고 살풋 구겨진 모자를 눌러쓴 텁수룩한 남자의 이미지는 꽤나 간지나는데

그걸로는 "자연의 부름에 응하는" 사람들의 다급한 눈에 쉽사리 띄기가 어렵다 생각했나보다.

밑에 굳이 '남자'라고 삐뚤하게 적힌 글씨가 재미있었다.

여자 화장실은 일종의 시각적 터부의 공간. 카메라를 들이대는 건 고사하고 눈길이 조금만 오래

그 안쪽으로 고정되어 있다 싶기만 해도 왠지 주변의 시선이 따가워지고 심장도 쪼글쪼글해진다.

그래도, 저 의지력 드높은 사각턱의 여인이 입술을 앙다문 표정은 아무래도 카메라를 부르더라는.

'남자'라는 글씨를 썼던 사람이 여기도 똑같이 쓴 게 틀림없다. 참 알기 쉬운 필체.



@ 남양주, 봉쥬르.
구 소련이 멸망할 때까지 공산정권의 치하에 있었던 이 공간은, 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이란 이름으로 독립하게

되고 스위스와 같은 영세중립국임을 선포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후 두명의 대통령을 맞으면서 사실상의

일인 독재정권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 공산주의 정권이나 일인독재 정권이나 어슷비슷하게 통하는 것도 있을 테고,

사람들의 일상이야 딱히 혁명이 일어나 뒤집히지 않은 바에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듯.

어쩌면 북한의 평양 시내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정 구획 안에만 잘 관리되어 있고

그 너머를 향하는 순간 마치 '매트릭스'의 세계의 끝에 도달한 느낌을 던지는.

시내 중심의 커다랗고 새하얀 건물들이 아쉬하바드의 집결된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면, 그걸 좀더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건 곳곳에 서있는 초대대통령의 금빛 동상과 현직대통령의 대형 초상화, 그리고 탑이나 조형물들인 듯.

실제로 저런 커다란 건물들은 관공서, 정부 청사, 역사 혹은 국립 대학이라고 했다. 건물 외벽에 커다란 초상화를

걸어두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은 건물들인 거다.

그에 비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들은 많이 허름했다. 옛 소련식으로 지어졌다는 아파트 건물들하며, 살짝

이지러져가는 슬레이트 지붕의 가정집들. 모래폭풍이 심심찮게 불어오는 뿌연 공기 속에 내놓은 채 말리는

빨래들처럼 이들의 삶은 적당히 까끌까끌하고 건조하진 않을까 싶었다. 이 땅에서 많이 난다는 석유와 가스

팔아서 번 돈으로 저런 관청이나 대리석으로 지을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여야 하는 건 아닌가.

그치만 또 그렇게만 볼 일도 아닌 거 같다. 외부인의 시각으로야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 여겨질 만한 일이라도

이들의 시각으로는, 그리고 이들의 기준으로는 나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국가로부터 대우받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다. 그러니까 초대대통령에 대한 애정이 하늘을 찌르고 현직 대통령 역시 못지 않는 지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걸 거다. 분수대 앞에 아이를 데리고 나와 사진을 찍는 어머니도 그랬지만, 길거리를 걷는

많은 투르크인들의 표정은 분명히 밝았었다.

그녀들의 화사한 전통의상이나 원피스도 이쁘고, 나름 생기발랄한 표정도 그렇고, 찌푸리거나 쩔어있는 표정은

아니다. 그리고 흔히 '공산주의국가'나 '독재국가'를 상상할 때 그려지는 회색빛의 음침한 분위기도 아닌 거

같아서 다행이었다. 이들은 이전에도 이런 표정을 짓고, 이런 옷을 입고 다녔을까.

어쩌면 그런 변화는 구소련의 공산정권 치하를 벗어나고부터, 혹은 최소한 가스와 기름 덕에 조금씩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면서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허름하고 흐릿하던 신호등이 이렇게 반짝거리며 녹슬지 않는 스테인레스

재질의 선명한 LED조명 신호등으로 바뀌었듯이.

그리고 여전히 이 나라는 러시아식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시내 곳곳에서 눈에 띄는, 그런 나라인 거다.

거리에 서 있다가 누군가를 향해 경례를 올려붙이는 딱딱하고 건조한 군인들, 이들은 샤방한 원피스를 입은

아가씨들과 함께 변화중인 투르크메니스탄을 상징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쉬하바드 거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던 커다란 깃발들, 깃발들을 꽂아 놓은 깃발꽂이들. 저건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지만 왠지 평양 시내를 스케치한 사진들에서도 비슷한 걸 봤던 거 같다. 집체 공연을 하거나 군중무를

할 때도 깃발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흔히 활용되는 도구기도 하다. 여기선 대체 뭐에 쓰이는 걸까. 궁금증을

끝내 풀지 못한 채 돌아오고 말았다.

아파트 벽면에 걸려있는 커다란 그림, 성모 마리아 같은 인물을 그린 종교화 같기도 하고, 인민의 표상 같기도

하고, 혹은 공산주의식의 계급의식을 드러낸 벽화같기도 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로만 따지면 소련의 느낌.

구소련 시절에 세웠던 제2차 세계대전 '기념탑'(이라고 해야 하나 위령탑이라고 해야 하나..)이 여전히 남아

있기도 했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을 끝내고 연합국 측의 승리를 가져온 건 팔할이 소련의 힘이었던 거니까

그들은 이곳저곳 치열한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에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곳에서 굴러다니는 차들도, 오래 된 것들이다 싶으면 대개 소련에서 양산되어 공급되었던 '국민차'에 속하던

것들이라 보면 딱히 무리가 없다고 했다. 물론 새 차들이야 벤츠에 BMW에 폭스바겐에 전부 외국 브랜드.

저 버스는 뭔가 깡총하게 생긴 게 뒷바퀴가 조금 앞쪽으로 땡겨져 있다 싶기도 하고, 어쨌든 꽤나 귀엽다.

그리고 아쉬하바드 시내 중심가를 벗어나는 순간 황량해지는 풍경. 뜨문뜨문 떨어져 있는 건물들조차 저만치

멀어지고, 그 사이로 바싹 마른 채 헐벗은 땅거죽이 붉게 드러났다. 우리나라도 서울에서 조금만 교외로

빠져도 금세 스카이라인이 땅바닥에 달라붙고 도시적인 느낌이 사라지긴 하지만, 여긴 도시의 외관이 벗겨지면

바로 사막의 거칠고 헐벗은 식생이 드러나니까 더욱 극적인 거 같다.

와중에 화려한 색감의 옷을 입은 투르크 여성분이 한 분 지나가셔서 급 화색이 돌던 풍경.

그나마 몇 그루씩 듬성듬성 있는 나무들도 비리비리하긴 마찬가지, 튼실하다거나 싱싱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나무 밑둥에는 병충해를 방지하기 위해 하얗게 무언가를 칠해놓았다고 하던데, 알제리에 갔을 때도 이렇게

나무 밑둥을 전부 하얗게 칠해놨던 걸 봤었다. 물론 이유는 달랐지만. 거기선 '이뻐 보일라고' 칠했다던데,

어쩌면 알제리 역시 병충해 방지를 위한 목적일지도.

투르크메니스탄에도 소수의 쿠르드 족이 산다. 쿠르드족은 터키에서 분리독립을 주장하며 종종 무력 충돌도

일으키고 소요를 발생시키곤 하는 소수민족인데, 이 곳의 쿠르드족은 그런 분리독립 주장을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아쉬하바드를 벗어나 조금 산 쪽으로 가다보면 보이는 저쪽 동네가 바로 쿠르드 족의 거주지역이라고.

정말, 아쉬하바드 시내 역시 참 작아서 이십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차로 달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금방

주위 풍경이 바뀌어버리라곤 생각지 못했었다. 건물다운 건물은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건조한 땅을 조금이라도

녹화시켜 보겠다는 의지로 심었을 조그마한 나무들은 사막의 거센 삭풍에 희롱당하며 비척비척.

그래서, 여기가 바로 아쉬하바드의 끝. 공산독재의 지난 세월이, 일인독재의 현재가 어떤 식으로 이 경계지역을

변화시키고 발전시켜 나갈지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여기가 아쉬하바드의 끝.





융캉제 가는 길, 햇살이 박살난 채 사방으로 흩뿌려진 도로 위를 스쿠터로 달리기엔 너무 엄혹하다. 여자들은

긴 옷을 따로 걸치거나 팔토시를 하거나, 잠바를 거꾸로 걸쳐 입거나 해서 노출을 최대한 피하려고 애쓰는 게

뻔히 보인다. 게다가 얼굴까지 꽁꽁 싸매고 달리곤 있지만, 아무래도 태양을 피하기는 힘든 듯.

융캉제라는 곳은, 가이드북을 아무리 보아도 대체 뭐하는 동네인지 딱히 감은 오지 않던 그런 곳이었다.

융캉제라는 묘하게 거칠고 리드미컬한 이름 역시 상상력을 자극할 뿐 그 공간에 대한 아무 힌트도 주지 않았고,

사실 가이드북엔 여기의 '빙관', 망고빙수만을 소개하고 있을 뿐이었고.
이렇게 허름하고 푸근한 건물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온갖 음식점과 샵들이 거리를 채우고 있어서, 뭐랄까

대낮 버전의 야시장이랄까, 한국으로 치면 인사동쯤 되겠지 싶은 느낌.

골목을 거닐다 발견한 오편함, 아마도 빨간 게 급행, 파란 게 보통 우편을 위한 함인 건가. 그렇게 보기에는

양쪽 모두 구멍이 두 개씩 있어서,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색깔 빼고는 대체로 쌍둥이스러운 두 개의 우편함.

융캉제의 어느 골목에서 마주친 체게바라와 마오쩌둥의 초상, 이런 식의 제3세계 혁명지도자들을 기리는 샵은

동남아에서 많이 볼 수 있었는데 타이완 타이페이에서도 만날 줄이야. 근데 사실 이 샵에서 파는 물건들이 이

두 분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는.

그리고 또다른 혁명가, 오사마 빈 라덴의 초상도 다른쪽 귀퉁이에 붙어있었다. 미국의 골칫덩이, 세계의 불안정성과

폭력성을 자신의 폭력으로 폭로하는 그는, 테러리스트이자 혁명가라 불릴 만 하다.

그렇게 걷다보니 저 앞에 사람들이 바글바글, 굳이 가이드북을 꺼내들 필요도 없겠다. 노란 색깔로 칠해진 벽면,

우글거리는 사람, 여기가 그 유명하다는 '빙관(아이스 몬스터)'. 융캉제의 보석.ㅋㅋ

의자가 몇개 있긴 하지만, 편안히 앉아서 먹을 공간조차 없어서 대부분 입석이다. 높다란 테이블 위에 망고빙수를

올리고 허겁지겁 먹는 걸 보고, 대체 뭐길래 이렇게들 줄 서서 먹는 걸까 했는데 먹어보니 알겠다. 망고도 잔뜩

들어있고 얼음도 곱게 갈려있고, 놓칠 수 없는 맛이다.

이렇게 메뉴판에는 꽤나 여러가지가 나와있기는 한데, 대부분 같은 걸 시켜 먹는 거 같다. 130NTS짜리

망고밀키프리즈, 밑엣줄 가운데 망고 듬뿍 얹혀있는 그림. 타이밍이 되면 두 번쯤 먹고 싶었던.

빙관 앞에서 정신없이 먹어치우고 조금 걸으려다 보니 바로 옆에 이런 조그마한 놀이터 같은 공원이 있었다.

테이크아웃으로 시켜서 여기 앉아 먹을 걸 그랬단 생각이 살짝. 그치만 테이크 아웃으로 가져나오면 커다란

투명 플라스틱 컵안에 꾹꾹 담아주어서, 거기서 바로 먹을 때처럼 용기에 이쁘게 담겨나오진 않는단 단점이 있다.

딱 봐도 남국의 식생이다.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흐느적대며 바람에 너풀거리는 생기잃은 잎사귀들도 그렇고,

열기를 감당치 못했는지 으깨진 생두부처럼 찌글거리는 건물도 그렇고. 그 와중에 싱싱한 건 어린 아이의 웃음.

택시 타고 융캉제를 빠져나오는 길, 융캉제는 정말 뭐가 딱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동네. 내가 짧게 돌아다닌

탓이 크겠지만, 그냥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동네에 음식점이나 옷가게 따위가 좀 쏠려있더라 하는 정도. 아,

딘타이펑 본점도 여기에 있다고 들었는데 굳이 찾아가 볼 생각은 안 들었다.


택시 기사 아저씨의 증명서라고나 할까, 택시 뒷좌석에 앉으면 바로 보이도록 조수석 뒤쪽으로 걸려있었다.

타이완의 택시기사 자격증은 요렇게 생겼구나, 해서 한방.

야자수가 미끈하게 자라난 바깥 풍경. 여전히 뱃속에선 망고가 얼음물에 담겨 출렁이고 있어서 마냥 좋던 오후.

그리고 슬쩍 가이드북에서 봤던 듯한, 으리으리해 보이는 처마와 붉은 기둥이 인상적이었던 호텔이 스쳐갔다.

그리고 어딘가쯤에서 발견한 사당. 은근 이런 사당이 도처에서 눈에 띄는 게, 부와 행복을 위해 유연하게 어디라도

기대고 빌 수 있는 중국인, 대만인의 실용성이랄까 유연성을 보여주는 거 같았다.




@ 중국의 한 짝퉁 시장.

이쁜 치마를 강조하고 싶었던 걸까. 다른 군더더기는 제하고 치마만 입혀 놓고 나니깐 그치만 되려 부작용이다.

다른 살색 부위에 대한 쾌속한 스캐닝과 동시에 치마에 대한 원망이 스물스물 일어나서, 누가 저 치마를 산다고

나서면 왠지 말리고 싶어질 듯.

벗으니까 홀가분해 보이긴 하는데, 솔직히 썩 이쁜 몸은 아닌 거 같다. 기계로 찍어내는 건데 좀더 이쁘게

만들어낼 수도 있었잖아. 쳇.



뒷이야기. 카메라를 들이대는 나를 발견하고는, 가게에선 사람이 부랴부랴 나와서 옷을 주섬주섬 입혔다.

상술로 벗겨놓았다기보다는-마네킹의 인권, 아니 마네킹권을 유린하는 처사로 지탄받아야 할-그냥 잠시

옷을 갈아입는 시간을 가졌던 듯 하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피카소전시회에 다녀왔다. 미술을 모르지만 그래도 가끔은, 작품을 보며 그의 위트와 의도를 느끼고 웃어줄 수 있었다. 회뜨듯이 얼굴을 조각내어 평면에 늘어놓은 그림들은 그의 한 시기..그리고 그의 계속되는 실험의 한 연속선에 불과했다. 그가 곁을 허용했던 7명의 여자들..피카소는 그녀들을 모델로 세워두고는, 그 어슴프레한 윤곽을 몇개의 선으로 버혀내며 마치 선율처럼, 강하고 때로는 약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정말 와닿았던 작품이 하나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 그림 앞에서 족히 십분은 서있었던 것 같다. 그가 큐비즘에 빠져있던 시기, 칼날처럼 솟은 어깨'뽕'을 대담하게 그려내고는, 그위에 어두운 색채로 생략된 목에 이어붙은 직육면체의 턱쪼가리..혹은 얼굴의 아랫도리. 그리고 그 첨단쯔음에 위태하게 균형잡고 선 초승달같은 얼굴. 정면을 향한 외눈과 긴장되고 신경질적인 얼굴면 옆에는 또다른 얼굴이 그림자를 먹고 숨어있었다. 칼날같은 초승달이 품고 있던 측면부의 완만함. 피카소라면 분명히 '둔덕'이라고 표현했을 것같은 아름답고도 풍요로운 굴곡을 그리며,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와 보이는 그 초승달의 얼굴정면은 가득찬 FULL MOON과 같은 이면을 갖는다. 정면의 외눈이 날카롭고 섬세하다못해 찌를듯한 예기가 서려있다면, 그림자를 머금은 측면의 눈은..놀란 듯이 커진 눈. 예기치못하게 허를 찔린 듯한, 원치않던 사랑에 빠진 듯한..표정. 그렇게..그 정면을 향해 무표정한 '여자'는, 측면에서는 가늘고도 긴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측면을 파고 들수록 깊어지는 어둠..불빛조차 가닿기 힘든 내면으로 다가설수록 그녀의 미소는 깊어지고 황홀해진다.

피카소의 인물들이 으레 그렇듯, 그 '여자'가 가진 최외곽의 가면..하늘을 향해 예각을 세운 날카로운 코잔등에서 급격하고 단호한 감정선을 느껴보고, 찔리면 당장 죽을것 같은 코끝에서 사정없이 놀아나는 남정네의 가슴서늘함을 되새겨보기도 하고, 그럼에도 약간만 고개를 틀어도 나타나는 방심한 듯한 눈매의 매력과 깊이를 품은 미소에 반하기도 하고. 피카소는, 잘라낸 손톱같이 신경질적이고 속알머리없어 보이는 초승달의 이면에 그렇게 둥실하고 아늑한 둔덕이 있다는 사실을 표현하고 싶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여 본다. 그는, 7명의 여자를 사랑했던 그는, 한사람한사람, 처음이자 마지막인듯이 사랑했을 거라고, 질리지도 않고 그녀들의 얼굴을 탐닉하고, 표정과 뉘앙스를 짜내었을 거 같다. 그는, 그녀의 미소가 시작되는 입술의 한쪽 언저리에서 다른쪽 언저리까지 가닿고 탐험하고 싶어서..불빛도 닿기 힘든 그 구석 한켠의 미소를 완전하게 찾아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으리라.

이미 한차례, 쪽당할 각오하고 '노란벨트'라는 작품을 폰카로 기어이 찍어버린 터였다. 피카소의 에로틱함..혹은 그가 추구하던 관능미가 유쾌하게 변주된 작품인거 같아서. 마치 프로이트의 심리병리학적 해석들처럼. 그런데 도무지 '여자의 얼굴'이란 작품은 인터넷에서 구할 수가 없다. 온갖 매체들이 써놓고 긁어놓은 작품사진이나 설명을 보아도..무엇이 원전인지 모르겠지만 거개가 다 똑같은 작품에 대한 똑같은 이야기뿐이다. 내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 작품은..아마도 대중이나 전문가의 '인증'이란 걸 받지 못한 모양이다. 아쉽기 짝이 없어서..내가 한번 기억을 떠올려 그려볼까 생각중이다. '여자의 얼굴'이란 거.

덕수궁 돌담길의 그늘에 숨어 걸으며, 피카소는 붓으로 독심술의 결과물들을 그려내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그는 여자의, 사람의 얼굴이나 마음이 책처럼 편평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을 거다. '독심술'이란 말의 어폐..를 그는 이해하고 있지 않았을까.


(2006. 6. 24)
난 김혜자가 싫었다. 그녀의 가늘고 여리여리한 목소리, 때로는 신경질적일 만큼 하이톤의 그 목소리도 싫었고,

그 목소리가 이와 혀를 걸러 발출될 때의 발음과 말투도, 그녀의 얇은 입술도 싫었다. 쉽게 근심그늘이 고이는

웅덩이같은 그녀의 양미간, 짙은 주름도 보기 싫었고 무언가 늘 고민과 걱정을 안고 있는 듯한 눈매와 그

축축한 눈동자도 모두, 맘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연기는 언제나 '엄마'였다. '국민 엄마'라는 칭호로 소개되곤 하던 그녀에게선, 정말이지

여자가 아닌 엄마의 표시만이 가득했다. 잔소리와 더러는 짜증을 예비하기 위한 목소리, 그러면서도 숨길

수 없는 자식 걱정에 굵게 패인 주름, 자식놈이 커나갈수록 쉬이 축축해지는 눈동자까지. 그런 '엄마'만

있는 게 아니라지만, 그녀는 그런 특징들을 꽉 쥐고 '엄마' 역할의 전형을 보여줬다.


그런 엄마, 전원일기 속 엄마, 드라마 속 엄마에 더해 봉준호의 '마더'는 그녀에게서 살짝 불온하고 불안한

엄마 모습을 캐내고자 한다. 섹스가 없는 상태에서의 엄마, 섹스를 원하지만 충족할 수 없는 엄마의 모습들.

간이 옷장 안에 숨어 젊은 남녀의 육덕진 섹스를 훔쳐보는 엄마, 고등학생의 부탁으로 생리대를 고르고

계산하며 눈치보는 엄마, 휴대폰 속 벌거벗은 남자-섹스 구매자로서-들 사진을 한장씩 넘겨보는 엄마,

심지어 자신을 막 대하는 아들 친구에 묘한 긴장감을 느끼는 엄마. (어쩌면 이미 그녀와 아들 친구놈은

한번쯤 잤던 사이라고 힌트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더구나 그녀, 엄마는 조금은 지쳐 있을지도 모른다. 남자라곤 아들 밖에 없는 집에서 둘이 산 지 오래다.

다 큰 아들은 정신이 온전치 못해 팬티만 입은 채 한 이불을 덮고 엄마 가슴을 조물딱대며 잠들곤 하니,

'엄마와 잔다'는 표현이 계속해서 중의적으로 등장하는 건 우연이 아닌 거다. 아직은, 아마 앞으로도,

상상할 법한 '패륜'의 힌트가 예기되지는 않았으니 엄마는 만족되지 못한 채 지치거나 욕구불만이거나.

그렇지 않을까. 아마도 그래서 노상에 방뇨하는 아들의 그곳에 유심스레 눈길이 간 거다.


남자의 욕구야 말할 것도 없지만, 특히 그녀의 다 큰 아들도 마찬가지다. 정신은 빠졌어도 육체는 건전하니,
 
쌓이기만 하는 욕구는 그를 '발정난 개'로 만들어 버린다. 굳이 '오이디푸스 신드롬'이니 따위 엄마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운운할 생각은 없지만, 그를 사랑해주고 보듬어주는 여자는 그녀 뿐이다. 비록

그녀가 다섯살즈음 농약을 먹였을지언정, 그녀는 마르지 않고 넘칠듯한 사랑으로 그를 무조건 믿고

보호하며 지지한다는 걸 안다. 그에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대안은, 엄마다.


아들에게 '바보'라는 표현이 그 누적된 욕구불만을 파열시키는 방아쇠 역할을 한다면, 엄마에겐 그

아들의 존재-하나뿐인 피붙이이자 '남자'로서-가 위기에 처할 때 방아쇠가 작동한다. 천지사방을

뛰어다니며 아들의 구명을 위해 애쓴다. 그치만 누구를 위한 구명일까. 바보천치 아들은, 콩밥도

맛있다며 교도소 안이 편하다는 아들은 사실 창살 안과 밖의 구분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다.

혹, 엄마 자신을 위한 구명 활동 아닐까. 그녀가 살기 위한, 그녀의 욕구불만을 해소키 위한. 
 
그러고 보면 엄마에게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유일한 남자는, 아들이었다.


그렇게 엄마와 아들은 더욱 서로에 의지하고, 지쳐가며, 또 헌신한다. 다른 방법이나 대안이 없기도 하다.

특히 엄마의 입장에서 보면, 아들에 대한 보호 본능이라 이름붙이던 모성애라 이름붙이던, 그녀는 아들로

인해 욕구불만이 강화되고 아들로 인해 욕구불만을 해소한다. 달리 기댈 곳이 없었던 그들의 애정이 쏟아져

나갈 유일한 통로, 서로를 향한 무조건적 애정이 콸콸 쏟아지는 순간, 그녀는 말랐던 댐이 터지듯 온통

뿜어나오는 피분수 속에 두 손을 담궜다. 어느 순간 구르기 시작한 파국적인 결말을 향해 치달으면서도

그 둘의 징글징글하고도 섬뜩하기까지 한 애정, 특히 엄마 혜자의 아들 도준에 대한 사랑은 더욱 뚜렷이

선연해지기만 한다.


"엄마는 원래 그런 존재야, 모성애란 그런 거지" 등등의 따뜻하지만 통속적인 이야기로 끝낼 영화는 아닌 거

같다. 그녀의 사랑은 알게모르게 현실적인 이해타산이 맞물려 있고, 다른 통로의 유무에 따라 그 강렬함이

결정되며, 그 기저엔 엄마이기 이전 사그라드는 여성으로서의 욕구불만이 마그마처럼 꿈틀대고 있다는. 

무조건 신성하고 순결한, 지고한 데다가 여성이 가진 본성과도 같은 덕목으로 찬양받는 '모성애'가 실은

그런 육체적인 욕망과 얼기설기 엮여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싶던 건 아닐까. 천상의 모성을 지상으로

끌어내리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Smart와 Nice와 Handsome, 세 개의 그룹이 중첩되면서 나타나는 영역들,

난 어디에 속하는 걸까, 잠시 고민하다가 속편한 답을 찾았다.





난 여집합.


그렇다면 여자의 경우는 어떨까. boy에 대응하는 Girl의 패러독스.

공감이 간다기보다는 재미있어서.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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