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이외의 사람을 품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가족과도 거의 아무런 유대없이 혼자 살며, 친구, 직장동료라거나 애인도 만들지 않고 '사람은 혼자 죽는다'는

신조를 갖고 다만 자신이 세운 목표만을 위해 하루하루 조용히 살고 있다. 이따금 강연을 하러 가면, 가방을 

앞에 꺼내두곤 그 가방에 불필요한 책상 위 소품들, 챙기고 책임질 자신이 없는 친구/가족/배우자, 그 

하나하나를 모두 담아서는 자크를 닫고 내다버리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사람이어서 더욱 어울리는 일인지도 모른다. 생면부지의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 해고통지를 하는 역할.

그 일은 상대에 대한 집중과 배려, 세심한 말솜씨와 '밀/당'의 스킬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다시

상대를 볼 필요가 없는 일회적인 일이기도 하다. 해고 통지를 받은 사람이 자살하던 말던, 그는 단지 소심한

그 회사 사장 대신 통지를 전하는 역할이었을 뿐이니 알아야 할 일도 아니고 관심도 없다는 투다.


그는 미국 전지역을 비행기로 커버하며 온갖 마일리지와 특급회원권을 향유한다. 비즈니스석과 특급호텔의

안락하고 편안한 서비스. 그 공간에서 역시, 그는 신경써야 할 소소한 장식품이니 청소니 빨래니, 책임져야

할 강아지나 가족 따위 없는 거다. 요컨대 그의 생활은 철저하게 본인 자신에 맞춰져 있고, 책임질 수 없는 본인

능력 이외의 부분, 감당할 자신이 없는 부분은 그의 생활 '밖'에 있다. 


굉장히 솔직하기도, 또 굉장히 어린애스럽기도 한 태도다. 어린애같은 태도가 아니라면 좋은 건 좋다, 싫은 건

싫다, 라고 이토록 명쾌하고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을까. 그런 태도는 또 굉장히 매력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감당할 자신도 없고 벅찰 거라는 걸 알면서 꾸역꾸역 사람들은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고 기대를 하지만, 애초

그런 거짓말은 하지도 듣지도 않겠다는 거니까. 자신은 아직 '지상에 내려와' '청소하고 빨래하고 기념일을

챙기며' 사람들과 우격다짐하면서도 행복한 척 연기나 하는 삶은 싫다는 거니까. "쿨하다"는 표현이 딱 맞다.


영화의 최대 장점은, 그렇게 뻗대는 그를 '교화'시켜 지상으로 내려보내려 안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물론 (어쩔 수 없는 인간이니만치) 동생의 결혼 앞에 가족애를 실감키도 하고, 24시간 늘 청결하게 유지되는

화려한 특급호텔과는 판이하게 남루한 전셋집에 익숙해보려는 노력도 하지만, 끝까지 품위를 잃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거다. 아직은 up in the air, 조금은 더 자신의 방식으로 '책임지는 관계'를 최소화한 채

살겠다는 거다.


자신 이외의 사람을 품을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지상'으로 내려가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는 라이언

(그리고 조지 클루니)의 순수하고 도덕주의적인 태도엔 사실 반대다. 덕분에 그 연세에도 소년같은 순수함과

섹시함을 과시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긴 하지만. 그가 해고를 통보했던 사람들이 한바탕 울분을 토하고 격한

언사를 내뱉은 후에는 꼭 가족들과 함께임을 생각했듯, 어쨌든 그건 자신이 준비가 되고 안되고를 떠난 문제다.

자신 이외의 다른 사람들을 책임질 준비가 된 사람을 '어른'이라 한다면,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서 어른이 된

사람이 어딨나. 그냥 피할 도리가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거지, 라이언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비행기 안, 천만 마일리지를 달성한 그 자리에서조차 기장은 물었다. Where are you from? 우린 돌아갈 곳이

필요하고 그 곳엔 어쩔 수 없이 책임져야 할 거미줄같은 관계망이 버티고 있는 거다. I'm from here. 라는 그의

있어보이는 듯, 그렇지만 엉성한 대답이 살짝 망연하게 들렸다. 아마 그도 알고 있었을 거다. 가방에 넣고 자크를

잠가버릴 필요도, 잠가버릴 수도 없는 게 다른 사람들 속에 어느샌가 품어진, 내 속에 어느샌가 품어진 서로의

조각들이란 것. 언제까지 호텔 직원과 비행기 승무원들이 일방적으로 챙겨주는 세상에 머물 수만은 없다는 것도.


그는 조금씩 지상으로 착륙하는 중이다.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을 만나기도,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도

모두 쉽지 않단 건 이미 경험했으니 조금은 더 연착륙의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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