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는 처음이었다. 뚝뚝 끊기는 화면, 그 이상으로 뚝뚝 끊기는 등장인물들의 대사와 상황.

The New World에서 Paradise로 어느샌가 스토리는 전개되지만 사실 그 '어느샌가'란, 꽤나 낯설고 어색한

진행에 일분일초의 흐름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끝인지라 다소간 '빠른 진행에 대한 놀라움' 따위는 날아가

버린 '어느샌가'인 것이다.


중간중간 귀신이 지나가는 듯한 느낌의 어색함이 고스란히 담긴 영화지만, 그러한 효과는 러닝 타임 내내

그리고 마지막 황량함과 씨니컬함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의 폭발력을 극대화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한

운명의 귀추를 차갑고 건조한 시선으로 따라가면서, 산다는게 생각만큼 그렇게 드라마틱하거나 극적이지

않음을 잘 보여줬던 거 같다. 우리가 흔히들 지나치는-알던 모르던-온갖 순간들이 갖는 사소한 가능성,

그렇지만 그 가능성이란 것도 그다지 볼품있지만은 않음을 이야기하는 영화. 허하다.


마지막, 세 사람이 제각기 흩어져버리는 장면, 그건 천국보다 낯선-낯설단 것을 방금 막 깨달아버린-세상의
 
무미함과 광막함을 보여줬다. 그들은 꼭 사막 속으로 녹아들어가 사라지고 마는 환영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에

늘 존재하는 천국, Paradise의 그것이 엄연히 딱 버티고 선 실재 세계보다 낯익다니. 우린 살고 있는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살고 싶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걸까.


"정말 웃긴다. 새로운 곳에 왔는데 아무것도 달라진게 없어."

아니, 어쩌면 세상에는 새로운 곳도 새로울 것도 새로운 사람이나 새로운 생각조차 없을지 몰라. 뭔가 바랬다는

게 잘못된 건 아니지만, 그리고 또 소리내어 비웃을 일도 아니지만, 어딜 가나 '내 머리'를 몸뚱이에 박아넣고

다니는 한 어쩔 수 없는 거 아닐까 괜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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