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올해 말에나 완공될 예정이었다. G-20 개최일자에 맞춘다며 9월까지 완공된다는 이야기가 얼핏 들리더니

어느 순간 8월 15일 광복절(그들은 '건국절'이라 하는)에 맞추어 완공될 거라 했다. 뭐, 그렇게 바싹 일정을

땡겨도 되는 것인지, 부실복원될 가능성은 없지 않은지 우려하는 목소리들이 있었지만 기어코 8월 15일에 맞춰
'완공'된 광화문이 열렸다.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한겨레)

광화문에 개판깔다 (시사IN)

"광화문 복원 ‘속도전’ 강압…" 에 대한 촌평 (개인블로그 ; 진성당거사)

광화문 복원‘속도전’강압, 현장 작업자들 “부실 우려”, 편법복원 등 보도기사(2010.7.1 한겨레신문)와 관련한 문화재청의 입장 (문화재청 보도해명자료)

뭐 요지는 무리한 공기 단축을 위해 오히려 원형을 훼손하고 있거나 혹은 제대로 복원하지 않고 있다는 것,

결국 부실 복원이라는 이야기인데, 두고 보면 알 일이지만 그때쯤이면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역시나 사람들은 뭔가 '배출구'를 찾아 헤맨다는 느낌이다. 광화문이 열리던 날, 그토록 뜨겁던 날씨였음에도

광화문 근처는 사람이 그득그득했다. 뭔가 거리로 나오고, 모여서 함께 즐길 기회만 있으면 그악스럽게 모이는

거다.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또 어떻게 보면 참 안타깝기도 하고. 월드컵 때 거리에 나가지 않음 바보 취급당하는

거나, 광화문 완공식 날 역대 최고라는 십여만의 인파가 몰린 거나 뭔가 병들었다는 징후가 읽히는 거 같아서.

사실 숭례문이나 광화문을 복원한다고 할 때 개인적으로는 아예 공사 과정을 관광 아이템화하는 건 어떨까,

그런 아이디어가 있었다. 전통적인 도구를 갖고 전통적인 방식으로 느리지만 확실하게 복원하고, 복원과정에

참여한 노동자들이며 장인들도 전부 전통 복식을 차려입고 일을 하는 거다. 공사 현장 자체를 활짝 공개한 채

복원이 완료된 결과물 뿐 아니라 복원 과정 자체에도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동물원 창살 속 환상의 동물 해태. 2010/05/10 )

그게 이렇게 해태를 쇠창살 속에 가둬두지 않고, 광화문과 숭례문을 네모난 박스 안에 가둬두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더욱 키우며 '함께' 복원해 나가는 방법이 아닐까. 도난 위험 따위 보안에 문제가 있다

싶으면 아예 포졸이 복장에 삼지창 꼬나쥐게 만든 경비 인력을 동원할 수도 있었을 텐데.

여하간, 그렇게 개방된 광화문. 사람들이 성난 파도처럼 서로 어깨 부딪기며 광화문을 지나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사진을 찍겠다고 문득 멈춰선 사람들 덕에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걷던 사람들은 서로 발도 밟고 부딪히고

카메라에 머리도 부딪히고. 그렇지만 두 마리 봉황이 펄쩍 날아오른 단청 그림이 그려진 천장은 아무래도

눈길을 빼앗고 마는 거다.

광화문을 들어서니 넓은 공간이 있고, 바로 일직선상에 흥례문과 근정전이 보인다. 이전에 조선총독부 건물이

놓였었고, 덕분에 각도가 빗겨나 이전되었던 광화문, 한국전쟁때 소실되고 박정희 때 콘크리트로 무지하게

발라졌던 광화문, 사실, 내부가 어떻게 제대로 복원이 되었는지, 저 기왓장 밑에 대나무발이 깔려 있어야할지

'개판'이라는 나무판이 깔려 있는지는 겉으로 보이지 않으니 모르겠다. 그냥, 일직선상으로 복원했다는 점,

조금은 더 조선의 정궁스러워진 위엄과 분위기를 되찾았다는 점이 당장 보이니까 일단은 좋아 보인다.

흥례문을 오르는 길, 자금성에서도 그렇듯 동아시아의 왕궁은 왕과 왕족의 영혼이 다니기 위한 가운데 통로를

제한해 두었다. 그리고 어라, 이런 게 예전에도 있었던가. 흥례문에서 근정전으로 넘어가는 길, 네모지고 길다란
 
연못이 있고 가운데엔 짧막한 돌다리가 있다. 이 돌다리 위에서 수호하느라 여념이 없는 네 마리 신물 중의

하나가 '흑록'이라던가 그 비슷한 이름을 갖고 있다던데, 성군이 잘 다스려 태평성대가 도래할 때 나타나는

영물이라고 했다.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으로. 햇살이 워낙 뜨끈뜨끈하게 내리쬐는 서슬에 사람들은 우산을 양산삼아 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도 연신 부채질을 하며 땀을 식혔다. 근정전 위에 바글바글 올라가 있는 사람들.

근정전은 복원 이전에도 똑같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어디서부터 어디가 복원된 건지 알아보기가 쉽지

않았던 데다가 딱히 어디를 복원했다는 안내도 없어서 좀체 헷갈리더라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근정전에

들어설 때 경복궁의 정문이 아니라 인사동에서 이어지는 옆구리에 해당하는 문으로 들어섰다는 정도?

근데 굉장히 느낌이 다른 건, 역시 정문에 해당하는 광화문에서부터 직선으로 쭉 이어지는 그 길을 따라

내부로 들어섰기 때문인 듯. 궁궐에 덥썩 옆문으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정문에서부터 하나씩 문을 지나며

들어서게 되니까 안으로 들어설수록 마음가짐이 뭔가 달라진다. 이전에 있던 것들도 새삼스런 눈으로 보게 되고.

근정전 위에 오르니 기와지붕들이 층층이 보인다. 그 너머로 살풋 고개를 내민 인왕산까지. 구중궁궐의 심처에서

바라보던 세상의 스카이라인은 이런 것이었을까.

일월성신도를 뒷배경으로 하고 자리잡은 채 국사를 보았을 근정전 내부. 왼쪽 오른쪽 측면의 문이 좁게 열린 곳으로

사람들이 우글우글, 이런 날은 자세히 들여다 보는 거 아니다, 하면서 카메라만 고개디밀고 대충 내부를 찍었다.

천장에 그려진 두 마리 황금용이 꿈틀대는 조각은 사치스럽다는 느낌은 피하면서도 꽤나 화려하다.

왕좌 앞에 차려진 신하들이 부복할 공간, 방석 하나씩은 챙겨두었더라.

사람이 넘 많았다. 이런 날은 그저 살짝 분위기만 즐기고 얼른 빠지는 게 상책이지 싶었다. 그늘만 찾아 살포시

즈려 밟으며 다시 돌아나오는 길.

대만에서도 돌아다니다가 사람들이 지하철 역에서 지상으로 올라나오자마자 우산인지 양산인지를 펼치는 통에

비오나 하고 맨날 깜짝깜짝 놀랬었는데, 이제 한국도 그렇게 되려나 보다. 우산이 양산도 되고 양산이 우산도

되는, 열대성 기습폭우 '스콜'이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동남아 기후.

광화문의 뒷통수 사진. 여전히 사람들은 순례하듯 열지어 광화문을 지나 흥례문으로, 근정문을 지나 근정전까지

앞으로 앞으로 걷고 있었다. 이 또한 광화문의 뒤틀어진 각도가 원상복귀되어 일직선상에 궁궐이 놓인 덕분이다.




#0. 태국에서 언젠가 먹었던 맥주. 싱하. 태국 도처에 널린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수호상-아마도

해태?-의 심볼이 새겨진 담담한 색감의 맥주캔이 책상 위에 놓였다.


#1. 파나마에 간 G는 운하 앞에 서서 "한국에 돌아오면 열심히 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고 한다.

자칫하면 내가 따라갈 뻔했던 출장. 아무리 파나마의 수도 파나마의 가로수가 온통 망고나무인데다가

잘 익은 망고가 뚝뚝 떨어져 아찔하고 강렬한 향을 피워올린다고 해도, 그 꼴 안 봐서 다행. (이랬다가

또 사찰당해서 회사 쫓겨나고 법정투쟁 옥중투쟁해야 하는 건 아닌지. 어제 피디수첩에서 다룬 '민간인

사찰'이야기를 보신 분으로부터 진보신당 당비 이제 그만 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들었던 거다.)


#2. 세르비아 총리, 방글라데시 총리 등이 많이 왔다갔다 하면서, 나름의 '경제외교'를 펼친다. 외교의

많은 부분이 국가의 경제발전을 위해 온통 기울여지고 있는 추세상 새삼스레 '경제외교'랄 것도 없겠지만.

문제는 그런 제3세계랄까, 개도국의 경제성장을 위해 유입되어야 할 외국의 자본과 상품들은 선택적으로

'시장'을 택한다는 것. 그들은 국가가 아니라 (국가가 조성해놓은) 시장을 본다. 시장 규모, 더한다면 구매력.


정치인들의 연설과 판촉의 꼬드김을 들으며 경제인들은 속삭인다. 저긴 시장이 넘 작아서 먹을 게 없어.

이래서야 개도국이 발전하고 절대빈곤의 수준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일국 차원에서의 인민 대 인민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민주주의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많은 부분 상식이 되었고

그 상식에 기대어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외치며 진보를 지향한다면, 지구적 차원에서는 영 아니다. 국가 대

국가간의 관계, 혹은 시장 대 시장간의 관계에서는 민주주의 따위 통하지 않는다. 적자 생존, 규모의 경제,

형식적이나마 국가 내를 규율하는 1인1표 따위의 평등한 원리 대신 1원1표의 원리로 선택되고 결정되는

국가, 그 안의 국민들의 미래. 그나마 국제연맹이니 국제연합이니 칸트의 이상이 살아있던 때가 있었지만,

더이상 국제 관계는 정치가 아닌 경제가 규율하고 있는 거다. 외교와 민주주의는 더욱 멀어졌고.


#3. 그 와중에 누구는 전시작전권을 소고기와 팔아먹는다. 이 기묘한 셈법은, 상품을 내어주며 돈을 주는 것과

같다. 그리고 전작권 환수연기에 동의해주어서 감사하다니. 소고기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갈지, 실제 계산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모르겠지만, 뻔하다는 생각이 진하게 든다.


#4. 뭐랄까, 물리적 거세를 해봐야 그런 놈은 넘쳐나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 허벅지라도 대고 부비댈 놈이다.

이상, 술꼬장.



@ 광화문 공사현장.


철창살 속에 해태가 갇혔다.




중요한 장소임을 드러내는 표식들 중에는, 하늘 높이 솟은 지붕이나 끝없이 늘어선 두툼한 기둥들 이외에도

어디에서든 문간을 지키고 섰는 온갖 수호상들이 있다. 청동, 대리석, 현무암질, 검은 오석, 철..다양한 종류의

재질에 다양한 표정, 다양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대개 상상 속의 동물이란 점에선 유사한 것 같다. 꼬맹이들이

좋아라 하며 수호상의 발치를 차지하곤 방긋 웃는 모습이 어찌나 귀엽던지.

한쪽 벽면의 그림을 복원하고 있는 걸까, 어떤 아주머니가 정성스럽게 두무릎을 모으고 앉아 벽화에 붓을 대고

계셨다. 옆에 놓인 여러 도구들이나 단단히 짜여진 아시바를 보면 훼손된 벽화를 덧칠하거나 다시 복구하는 전문가

틱한 작업이긴 한 거 같은데...붓끝이 너무 뭉툭하고 두툼해서 염려스럽다. 저렇게 세밀한 필치로 묘사된 화려한

마차와 건물들, 자연 풍광들을 묘사하려다가 되려 모두 뭉개버릴 것 같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저 못생긴 동물은 해태인 걸까..개구리랑 사자를 합쳐놓은 거 같기도 하고, 꼬리는 볏이 듬성듬성 서있는게..닭?

그러고 보니 해태는 어느새 서울의 상징동물이 되었다고 들었었다. 대체 해태가 뭔지 문득 궁금해져서.

해태獬豸 ≒해타(). :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에 뿔이 있다고 한다. 중국 문헌인 《이물지()》에는 "동북 변방에 있는 짐승이며 성품이 충직하여 사람이 싸우는 것을 보면 바르지 못한 사람을 뿔로 받는다"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대사헌의 흉배에 가식()되기도 하였고,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신수()로 여겨 궁궐 등에 장식되기도 하였다.  (네이버 사전 참조)

왕궁을 걷다 보면 순간 길을 잃고 헤맨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비슷한 건물들이 온통 시야를 가리고 겹쳐섰어서,

내가 지금 어디 있는 걸까, 무슨 건물과 무슨 건물 사이에 끼어 있는 걸까 지도를 찾아 확인하게 된다. 비가 살짝

나리고 바람이 쌀쌀한 날씨에도 여행객들은 개의치 않고 걷고 있다.

태국 왕실을 지키는 근위병의 근엄한 자태..라지만, 영국의 근위병이나 다른 서구 제국의 그것과는 느낌이 사실

많이 다르다. 일단 짧고, 왜소한 체구, 게다가 왠지 빈티가 살짝 나보이는 외모까지. 온갖 '양이(洋夷)'의 문물에

왜곡되어 버린 나의 시신경, 감각기관의 탓인 걸까 아님 정말 누가 봐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쨌든 이 분도 꼼짝않고

빳빳이 서선 왕실에 근엄함과 권위를 보탰다. 옆에서 왠지 뿌듯한 표정을 짓고 계신 부모님.

빗방울을 툭, 툭 흘리는 칠칠맞은 하늘 탓에 시야가 다소 뿌옇고 시크무레죽죽한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하게

꾸며진 궁궐 건물들의 지붕은 되려 적당한 광채를 머금고 안온하게 느껴졌다. 사실 햇볕이 살짝 강하게 내려쬐었을

땐 눈이 아플 지경이었단 말이다. 태국 왕실이 국민들로부터 받고 있는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궁궐 지붕에

비기자면, 이런 식으로 적당히 구름낀 하늘 아래 담백한 광택만을 부드럽게 흩뿌리는 순금색의 느낌? 햇살마저

반사시켜 지가 반짝이는 양 보는 사람의 시야를 온통 얼룩지게 만들었다면, 그런 신뢰와 존경은 불가했을 거다.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한 울상인 표정도.

왠지 색목인 삘이다. 다른 수호상에 비해 월등한 사이즈도 사이즈려니와, 움푹 패인 커다란 눈에 높고 큰 코,

게다가 이국적인 콧수염까지. 한 때 태국 왕실에서 서양인이 근무했던 적이 있는 걸까. 괜히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게 만드는 수호상.

왕궁은 야트막한 담을 경계로 외부 세계와 갈라져 있다. 파란색빨간색 촌스러운 색깔의 택시가 유유히 굴러다니는

2차선 도로. 이 곳을 구경하고 나니까 우리나라의 궁궐들도 한번 작정하고 제대로 구경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대조군이 있어야 그에 비교해서 뭐는 어떻고 뭐는 어떻고, 이렇게 나불나불 이야기할 거리들이 생길

텐데 말이다.

뜬금없는 랍스터 사진. 저녁을 먹으러 근처 씨푸드 레스토랑에 갔는데, 들은 것과 달리 랍스터 가격이 한국에 비해

그닥 싸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배터지게 함 먹어보려던 애초의 계획을 철회하고 맛만 보는 걸로 급선회.

내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도 더 큰 듯한 이 통통하다 못해 퉁퉁하고 거대한 랍스터를 먹은 건 아니고. 



 

중요한 사원, 신전들을 보호하는 수호상들. 비슷한 모티프로 제작된 상상속의 동물들이나 인물들이지만, 곳곳에서

색다른 표정과 뉘앙스를 만나게 된다. 약간은 찡그린, 멍청해보이기도 하고, 뭔가 불만에 가득하거나 화장실이

급해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표정들. 

이거 왠지, 서울시청 으슥한 곳으로부터 아무런 조율도 의견수렴도 없이 서울의 상징으로 불도적식 밀어붙여지고

있다는 '해태'와 느낌이 닮았다. 사실 내가 알기로는 해태란 상상속의 동물은, 불교적인 색채를 많이 띄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불교의 나라 태국에 비스꾸레한 형상들이 넘쳐나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겠다.


찍다 보니까, 얼레, 의식하기 시작하니까 사원 내 온갖 곳에 그런 수호상이 세워져있다. 문 양쪽으로 당당히 시립해

있는 건 물론이고, 이 아이들은 왠지 저 쓰레기통을 지키고 있다. 주위에 흘리거나 제대로 버리지 않음 우씨,

제스처를 취한 저 아저씨의 돌주먹에 호되게 맞는다는 뜻이렸다.

계단 모서리에도 생명체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스물스물 계단턱을 타고 내려와 쫑긋, 대가리를 세웠다. 머리

다섯개 달린 용가리라고 해야 하나, 발가락 하나하나 날카롭고 까칠할 듯한 이빨을 품고 있는 발바닥이라 해야하나.

난 왠지 황금발바닥에 한 표. 발바닥이라기에는 넘 심한 평발이긴 하다는 반론은 기꺼이 인정.

뭔가 불꽃같은 이미지의...개? 늑대? 여우? 어찌 보면 또 닭같기도 하다.

이 녀석은 왠지...뭔가 닮았다 닮았다 싶더니, 퍼뜩 떠올랐다. 요놈.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왠지 살짝 슬퍼보이면서 순종적인 눈매와 처연한 입꼬리, 그리고 몽땅한 두 앞다리를

치켜든 제스처와 분위기가 딱인 거 같은데.

이런 서양적인 마스크를 가진 녀석은 언제부터 이 태국 땅에 서있었을까. 어쩌면 이미 '색목인'이라는

이름으로, 혹은 다른 이러저러한 경로로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고대, 중세에는 훨씬 활발한 교류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근데 이녀석, 얼굴을 조금만 추상화시켜서 볼라치면 딱 시골동네 어귀에 섰는 장승닮았다.

입꼬리를 자세히 보면, 이녀석 비웃고 있는 거다. 푸훗..이런 식으로.


그리고 현대적 의미의 수호상들은, 영국의 왕궁 앞이라거나, 미국 워싱턴 국립묘지의 교대식장이라거나, 아직

잔존하는 몇몇 왕궁과 같은 시설을 경호하고 있는 살아있는 경비병들일 게다. 꼼짝도 하지 않고 그 자체, 공간의

일부가 되어 관광객들의 배경이 되어 주기도 하고 여전히 날선 권위의 생생한 증인이 되어 주기도 한다.

태국 왕궁의 경비병들은, 하얀 제복이 새하얗다 못해 형광등처럼 푸르스름한 기운마저 머금었다.

종종 수호상들은 문짝을 고정시켜놓기 위한 유용한 받침돌로도 사용되고, 만들어진지 얼마 안된 수호상들은

차가운 금속성의 철파이프를 잡고 있기도 했다. 예전같으면 생각도 못했을 용도를 발굴해낸 근대의 도구적 인간들.


이를 드러내고 제법 용맹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녀석의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돌을 간지럽히며 표정 흉내내보기.

저 달그락거리는 자그마한 돌맹이를 만지작대다 보니 왠지 유쾌해졌다. 그나저나, 어떻게 집어넣었을까?

저 녀석이 찌익~ 입을 벌리고 돌을 앙 물고선 다시 빳빳하게 돌로 돌아갔을 리도 없는 거고, 돌을 덧붙여서 구멍을

막는다거나 할 리도 없는 거고, 신기한 일이다.

태국적인 느낌의 수호상..이라고 하면, 이제 이미지가 좀 머릿속에 구체화되면서 그게 무얼 말하는지 알 거 같다.

마치 A형의 혈액형을 가진 여자라거나 O형의 남자..라는 묘사가 대화하는 사람 간의 머릿속에 무언가 상당한

공감대를 형성해서 나름의 유용성을 확보하듯이 말이다. 태국적 느낌의 수호상이라는 걸 머릿속에 그려보자면

아마도 뭔가 도톨도톨한 느낌의 혹이 잔뜩 붙어있고, 입꼬리를 쫘악 올려붙이고 있으며, 굵은 주름이 사정없이

흘러내리는 얼굴에 표정이 생생하게 묘사된 다소 위압적이면서도 살짝 우스꽝스러운..동물상이랄까. 그것도 닭의
 
벼슬, 사자의 갈기, 개의 꼬리 등속을 마구 짬뽕시켜 놓은..상상력에 적지 않은 재량권을 허용하는 윤곽.

나중에, 여행을 많이 다녀서 이런 수호상들 사진을 잔뜩 모으게 되면, 나름의 컬렉션으로도 괜찮겠다 싶다. 종교를

막론하고 지키고 싶은 권위와 힘이 있던 곳에는 모종의 경비병, 신적인 권능을 상징하는 수호자를 세워놓기 마련.


일종의 power-base가 소재하는, 소재했던, 혹은 새롭게 부각되는 곳의 상징, 슈렉 고양이를 닮은 수호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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