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한남동에 뭔가 새롭게 미술관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찾아가본 디뮤지엄. 알고 보니 대림미술관의 분관이랄까.


대림미술관과 함께 디멤버십 카드로 전시나 강연을 찾아볼 수 있다. 개관 특별전은 9개의 개별 방을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채운


9개의 빛에 대한 내용, 공간을 채우는 빛의 질감이나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중인지라 흥미가 확 돋는 전시였다.


1번방부터 9번방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단순히 빛의 궤적만이 존재하던 방에 소리가, 색감이, 그리고


움직임 더해졌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은 여기. 하얀 조명이 살짝 굽어있을 뿐인데, 바람에 사정없이 휘날리는 하얀


A4용지 보고서더미 같은 후련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원색 조명을 쏘아서 형상을 강렬하게 일그러뜨렸던 이 방도 재미있었고.


단순한 조형물에서 뻗어나간 세가지 빛깔의 그림자가 마구 뒤섞이면서 저렇게 비현실적인 실루엣과 색감을 만들어낸다.


한켠에는 이렇게 삼색으로 뒤섞이는 그림자도. 


빛과 조형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텅빈 공간이 이렇게 깊숙한 숲길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반사에 반사를 거듭해서


켜켜이 쌓인 그림자가 그대로 나뭇잎이 되고 덤불이 되어버렸다.


혹은 이런 류의 비현실적인 색감도 맛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온통 새하얀 방, 신발조차 커버를 씌우고 들어가야 하는 그 방에는 


세개의 칸막이로 적당히 가려진 불빛이 천장에 매달린 정사각면체들의 면면과 벽면을 몽환적인 색감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이 커다란 조형물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을 받아 변화무쌍한 근육을 뽐내는 모습까지. 사실 이 방이 두번째였던가 했지만.



아무런 필터나 효과를 더하지 않고도, 오로지 조명 만으로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아홉 개의 방을 하나씩 


방문하며 실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하늘에서 본 지구,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간단한 컨셉일 수도 있겠다. 헬기나 기구를 활용해서 남들이 확보하기 어려운

거리를 두고 지구상의 풍경과 사람, 사물들을 사진에 담아낸다는 건. 가까이서 보았을 때 미처 한눈에 잡아내지 못했던

전체적인 이미지라거나, 흉물스럽고 무질서해보이기만 하던 덩어리에 특정한 패턴이나 리듬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까.

게다가 멀리 떨어져서 보면 웬만하면 다 이뻐 보인다는, 그런 식의 말도 있으니 '하늘에서 본 지구', 항공사진이란

장르는 어느정도 먹고 들어간다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얀 아르튀스-베르트랑의 전시는 역시 기대했던 것만큼, 아름다웠다. 그의 사진들은 기껏해야 지면으로부터 1-2미터

떨어진 곳으로부터 바라볼 뿐인 인간의 시선으론 좀체 가닿지 못할 그런 풍경들을 담고 있었다. 그야말로 '신의 눈'.

고도 30-3,000미터 사이에서 촬영되었다더니 그 높이란 건 정말 사람이나 자동차, 섬이 콩알 만하게 보일 만큼의

높이여서 꽤나 신선하고 새로운 각이 잡혔던 거 같다. 게다가 1990년 이래 110개국이 넘는 나라를 돌아다니며 삼천시간

이상을 비행했다고 하니 뭔가 담을 거리를 찾는 작가의 발놀림은 굉장히 부지런했던 셈이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들을 더욱 빛나게 했던 건 단순히 아름다움을 좇거나 풍경을 기록하는 데 그치지 않으려는 의지랄까

그의 마음이 사진들에 담겨 있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인 거 같다. "하늘에서 본 지구", "하늘에서 본 한국", "인간의 친구-동물"

그에 더해 영화감독 뤽 베송과 함께 촬영한 "HOME"이란 동영상까지 총 네개의 주제로 이루어진 전시를 보고 있으면,

지구의 생태가 어떻게 일상적으로 인류로 인해 더럽혀지고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가 얼마나 아름다운 공간인지,

지구가 품고 있는 생명들이 얼마나 다종다기하고 서로 다른지에 대한 애정이 물씬한 시선을 따르게 되는 거다.


각종 광물과 대리석을 캐는 채석장에서 흘러나오는 화학물질로 범벅된 기이한 색상의 물줄기들이 거친 선의 추상화처럼

황토빛 대지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거침없이 선을 그어놓는가 하면, 말려놓으려 걸어둔 바닷가 청록색 그물들은

중첩된 채 캔버스에 거칠하게 붙여둔 텍스쳐같은 설치미술품 같기도 하고, '꽃보다 남자'에서 나왔다는 그 누벨칼레도니의

하트 모양 표식은 도무지 자연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섬세하게 장식적이고. 그런가 하면 직접

키우고 있는 말이니 돼지니 양 같은 동물들을 가슴에 품고, 사랑스럽게 껴안고 사진을 찍은 농부들의 그 표정이라니.


흔히 "지구는 인류가 후대로부터 빌려 쓰는 곳"이란 표어를 생각없이 말하지만, 얀 아르튀스는 그 이상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지구는 인류의 '가정(HOME)'이다, 인류와 온갖 동식물과 생명들이 함께 모여사는.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 전시의 수익금은 전부 환경기금 및 국제 어린이 기아기금 등에 전달된다고 하니

꼭 한번 가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이런 높이를 확보한 채 세계를 찍은 사진을 본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좋을 듯.



*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 본관(2,3층), 2011.12.15~2012. 3. 15일까지.

www.하늘에서본지구.net







아...이런 게 아니다.

이런 싸구려 색감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그림의 그 크기 자체에서 풍겨나오는 느낌도 전혀 다르다.

아무리 인터넷을 디비고 구글신님께 빌어보아도..애초 내가 보았던 그 '무지개'가 안 떠오른다.


Larc'n CIel. 라크엔시엘이 불어로 무지개란 뜻이었구나..

샤갈이 죽을 때까지 지니고 있었다는 작품. 시립미술관의 퐁피두 전에서 보았던 작품 중 가장 눈에 들어왔던

작품이었다. 에펠탑과 노틀담사원, 달빛 아래 거리, (아마도 그녀의) 여인...그가 평생 품고 있었던 기억의

편린들을 펼쳐놓은 것만 같다. 그리고 특별히 하얗고 빨갛게 만곡한 곡선들은 모자 쓴 한 남성으로부터 그

모든 것들로 너울너울 펼쳐지고 있다. 그 남성은 왠지 마그리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그' 같기도 하고.


한마리 거대한 새가 몸을 유연히 비트는 그 각도 그대로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굴절되는 기억들,

그 풍요로운 기억들 자체가 바로 샤갈의 무지개였나보다.


근데 아무리 찾아도 애초 원화가 가졌던 그 마력적인 다홍빛 배경과 주제의 색감을 그나마 전해주는 파일이 없다. 

아......복제화라도 사야겠다.





#1.

얼마전 생일선물로 커피빈 무료쿠폰을 몇장 받아서 언제 쓸까 고민고민하다가, 마침 활력도 떨어지고 몸도

찌뿌드드한 오늘 아침 사무실 올라가기 전 덜컥 써버렸다. 블랙 포레스트 아이스 블렌디드 레귤러 사이즈.

무려 6,300원짜리. 평소엔 보통 에스프레소나 아메리카노를 좋아라 마시고 있지만, 왠지 그런 걸로 사이즈 제한도

없는 무료쿠폰을 쓰긴 아쉬워서.


휘핑크림이 잔뜩 얹힌 그 큰 컵을 들고 내가 택한 건 화물용 엘레베이터. 벽면이 온통 카페트 재질의 천으로 덮여

있는 커다란 궤짝같은 느낌의 화물용 엘레베이터는, 대리석 무늬가 조금씩 들어있는 일반 엘리베이터보다 외려

인간적인 상태로 나를 들어올린다. 47층까지 올라오는데 사람이 꽉꽉 들이차서 버글버글대는 데다가, 멀뚱하니

서로 눈길을 안 마주치려 애쓰며 괴괴한 침묵 속에 올라오는 '인간용' 엘레베이터보다 고즈넉한 속도로, 아무

다른 타인들의 느낌없이 편안히 올라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왠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인 거 같다. 요새같은 불황에도 오히려 가격을 인상하는 커피빈 커피와

짐짝을 운송하는 화물용 엘레베이터.




#2.

엊그제부터 네이트온 대화명을 "왜 사냐고 묻지요"로 바꿨더니 다들 무슨 일 있냐고 걱정해준다. 걱정해 주는

거야 감사할 일이지만, 사실 그 대화명은 "왜 사냐건 웃지요"의 나름 패러디랄까. 그다지 우울하거나 염세적인

내용을 담고 싶던 건 아니었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왜 사는지' 따위 질문들에 맞닥뜨리는 걸 으레 두려워

하는 거 같기도 하고. 나 역시 어느 순간 그 질문의 무게 때문인지 살풋 우울해졌다.



#3.

어제 올렸던 퐁피두센터 특별전 "화가들의 천국" 할인권 배포 이벤트(랄까)에 별로 호응이 없길래 덜컥 글을

삭제해놓고 후회 중이다. 그냥 냅둘 걸 그랬다고, 누군가 필요할지 어찌 알고..그래서 간단히 다시 공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퐁피두센터 특별전(~2009. 3. 22) 특별할인권 3장,
 
꼭 가고 싶었던 분들은 이왕이면 이천원 싸게 가면 좋을 듯. (12,000원 -> 10,000원)

발송은 무료로 해드릴 터이니 필요하신 분은 주소만 적어서 댓글로 남겨주시기 바랍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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