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리수리 마하수리, 지난 여름 광주 쿤스트할레에서 처음 만나고 곧바로 반해버린 이후에 처음이다.

여기저기 공연 정보를 찾아보다가 날짜가 여의치 않거나 장소가 여의치 않아 아쉽게 포기하길 수차례,

그렇지만 불과 삼개월도 지나지 않아 이렇게 두번째 공연에서의 만남이라니. 나쁘지 않다.


그런데 장소가 무려 국립극장, 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이라는데 초청을 받아서 공연을 하다니 벌써

이들의 진가를 알아보는 안목 높은(!?) 이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싶다. '월드뮤직' 장르로 초청을 받았다니,

자칭 '지구음악'을 한다는 이들의 거대한 포부와 스케일에 맞는 장르지 싶어 웃음이 났다. 국립극장에서

한다니 왠지 좀 딱딱하진 않을까, 분위기가 엄하진 않을까 싶긴 했지만 그래도 한 50석정도 되는 조그마한

소극장 규모의 '별오름극장'에서 열린다기도 하고, 어쨌거나 '수리수리 마하수리'니까 냉큼 티켓을 질러버렸다.

공연이 어땠냐면. 이미 (어둠의 경로로 얻은..미안해요 수리수리..) 엠피쓰리 파일이 아이폰과 삼실 컴퓨터와

집 컴퓨터에 모두 저장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백분에 걸친 공연이 끝나고 나서 씨디를 덥썩 집고는

그들에게 사인을 모두 다시 받아버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들의 노래와 연주는 공연장에서 들어야 제맛인 거 같다. 섬세하고 풍부한 뉘앙스를 가진 온갖 종류의

타악기가 크고 작은 소리로 폭발하는 그 울림이라거나, 얇고 여린 듯 하면서도 어느 순간 공연장 안의 공기와 맹렬히

공진하듯 온통 뒤흔드는 오마르와 정현의 노랫소리, 게다가 정말이지 다양한 악기를 섭렵하며 미묘하게 만들어내는

그 다채롭게 중첩되는 소리들과 함께 마치 이소라처럼(!) 온몸이 입술과 성대가 되어 소리를 만드는 그들의 표정같은,

그런 것들은 절대 CD나 컴퓨터 파일이나 동영상으로 담길 수 없는 거다.


그래도, 이 순간을 지나보내기엔 아쉬워서 살짝 찍었던 몇 장의 공연장 사진들. 이들을 진정으로 느끼려면

공연장을 직접 찾아야 한다지만, 일단은 이렇게나마 대리만족이라도 필요한 때가 있을 테니까.

소극장의 무대 위에선 보름달이 둥싯 떠오르듯 큰 북이 솟아올라 가슴 깊은 곳을 두드렸고, 호흡을 따라 여미고

펼쳐지던 아코디언은 어느결엔가 호흡의 끄트머리를 잡아채선 길게 마지막 숨을 내뱉었다. 수피댄스처럼 맴맴

돌며 변주되는 리듬과, 차라리 의미 이전의 소리에 가깝던 노랫소리는 오감을 차츰 마비시키는 듯 하더니,

어느 순간 우주에 서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켰다.

'이슬람 수피음악에 영향을 받은 중동타악기 연주자'로 소개된 미나롬. 그녀 앞에 벼룩시장 물건들처럼 난삽하게

깔린 악기들, 그리고 발에 묶인 방울까지 전부 그녀의 의지를 담은 채 때론 속삭이듯 때론 울부짖듯 그렇게

진동하고 공명했다. 언젠가는 그녀의 왼손에 그려진 타투를 제대로 사진에 담고 싶은데.

'중동과 아프리카 음악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해석하여 연주'한다고 소개된 오마르. 모로코에서 떠나 자신이

집이라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돌다가 현재 한국에 머물고 있는 그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이집트나 사우디

뭐 그런 아랍 나라들을 돌아다니며 들었던 아잔 소리가 떠오른다. 휘몰아치고 더러 꺽이고 구슬프면서도 묘하게

위로가 되는 그런 소리.

이런. 맨 앞줄에 앉았지만 그래도 몰래 사진을 찍어본다고 살짝 들었다 놨다 하다보니 정현의 독사진이 없다.

'아코디온 연주와 정제되지 않은 창법을 지닌'이라 소개된 정현. 노래 부를 때,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음색을 가누는

그녀의 표정이나 몸짓은 굉장히 몽환적이다. 격하게 아코디언을 비틀기도 하고 잡아늘이기도 하지만, 그런 격한

동작조차 그들의 노래와 음색이 담은 몽환적이고 나른한 풍경을 방해하지는 않는 거다.




오마르나 미나롬도 그렇고, 그들 셋이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연주할 때의 표정은 굉장히 행복해 보인다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건 눈이 반짝반짝하며 열기가 가득한 그런 살짝 불안하고 풋내나보이는 행복한 표정이라기보다는,

왠지 한풀 숨죽이고 잔잔히 너울지는 그런 느낌의 표정. 이들의 공연을 보고 있으면 함께 한없이 나른해지는 건

아마 그런 표정과 분위기에 힘입은 거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들의 사진을 제대로 담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사진 따위 신경쓰지 않고

이들의 연주와 노래에 마냥 몰입하고 싶단 마음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그들과 나 사이에 카메라가 개재되는 순간

그때까지 쌓였던 공감대라거나 분위기에서 한발 발을 빼고 물러나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거 같아서. 그래도

아코디언 건반 위를 노니는 정현의 손이라거나, 그녀의 의지를 싣고 딸랑이는 미나롬의 방울발찌라거나,

그런 것들은 제대로 포착하면 멋질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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