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식한 대학생들은 지금의 ‘반값 등록금’이 미래 자신들의 연금인 줄 모르고
트윗질이나 하면서 청춘을 낭비하고 있다.”



● 일시 : 2011년 10월 24일(월) PM 17:00부터

●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1) 무식하고,

2) 트윗질이나 하며,

3) 청춘낭비중인 대학생 only.




동아일보 논설위원 김순덕의
[김순덕 칼럼]무너지는 그리스에 펄럭이는 赤旗

를 읽고 간단한 감상을 '공개댓글'로 남겨 모두와 공유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장 맘에 드는 촌철살인의 감상을 남긴 6분에게 초대장을 드립니다.

더불어 가능한 김순덕에게 전달할 방법을 찾아 전달하고 인증하도록 하겠습니다.ㅋ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6장




* 미디어오늘의 “무식한 대학생들, 트윗질하며 청춘 낭비” 라는 비평문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듯.

누군가의 트윗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오랜동안 눈으로만 좇던 그녀, 김진숙의 트윗을 퍼나르고 여기도 당신이 옳다고 믿는

사람이 있으니 울지 말라며, 죽지 말라며 하루종일 몸만 회사에 두고 있던 어제였다.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고공농성중인 김진숙과 한진중 노동자들에 대한

경찰과 용역깡패들의 침탈이 시작되던 순간, 이 사람은 '그런' 강의를 듣고 있어 마음 둘 곳을

모르겠다지만, 난 '그런' 이데올로기를 만들고 지원하는데 일조하는 곳에 몸담고 있다니.


그녀가 내 타임라인에서 언제부터 날짜를 하루하루 세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한진중공업, 유성기업 같은 파업현장이나 명동성당 앞, 포이동 판자촌같은 재개발(예정)

지역들의 이야기들로 온통 무거워지기만 하던 공간, 그녀에게 조금더 일찍 내 목소리를

전하지 못한 게 안타깝다.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고 있던 나의 침묵이 행여나

부정적이거나 힘빠지는, 그렇게 전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불어 '노조'의 이름으로 평노조원들의 인생과 신조를 둘둘 말아서 투항해버린 노조

집행부..비겁하단 말로 부족하다. 비열한 배신행위, 그야말로 등에 칼 꼽는 이적행위를

한 거나 다름없다. 그렇지만 그렇게 핏대세워 분노하기엔 스스로 떳떳치 못하단 생각이

들어서..지금이라도 한진중공업 파업사태의 배경을 알만한 글 하나 펌..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진숙 그녀는 살아 내려와야 한다.


*                                                              *                                                     *

"작가가 울고 카메라도 울고 나도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정희준의 '어퍼컷'] 조남호 회장님, 이건 살인입니다!


지난 1월부터 한국방송(KBS) 부산방송총국의 탐사 보도 프로그램 '시사인 부산'의 진행을 하고 있다.

지난 수요일도 여느 때처럼 '시사인 부산' 진행을 위해 남천동 KBS로 갔다. 그날 방송의 주제가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의 농성장과 이곳을 방문한 희망 버스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탐사 보도 프로그램의 특성상 열 받는 이야기, 억울한 이야기, 기가 찬 이야기, 귀신 곡할 이야기를 많이 다뤄봤기에 솔직히 그날도 분장실에 들른 후 무덤덤하게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이 프로그램은 피디와 작가들이 사전에 7~12분짜리 비디오 세 개를 준비하면 내가 그 사이사이를 연결하며 진행하는 30분짜리 프로그램이다. 최근엔 진행이 꽤 익숙해졌다. 미리 집에서 대본을 보고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판단하고 오기 때문에 내가 맡은 부분이 끝나면 스튜디오 안의 모니터를 통해 이어지는 비디오를 보곤 했다. 그런데 이날은 조금 달랐다.

내리는 비 때문인지, 피디와 카메라맨이 오늘은 더 잘하려 해서인지 어딘가 어수선했다. 나도 몇 번을 버벅거렸다. 왠지 집중이 잘되지 않았다. 그날 유난히 실수를 많이 했다. 끝나고 나서 담당 피디가 "교수님이 자꾸 틀리니까 나도 틀리잖아요!" 하며 투정이다. 왜 그랬을까.

자꾸 눈물이 나올라 그러잖아 XX…

첫 비디오는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들은 농성을 시작한 2010년 12월부터 집에 들어가지 못한 관계로 식구들과의 유일한 통로는 휴대 전화다. 가족에 대한 간절함 때문에 이곳 농성자들은 영상 통화를 많이 한다. 한 농성 노동자가 아내와 통화를 하다가 아들을 바꿔보라 한다. 큰아들이다.

"오늘따라 니 와이리 잘 생겼노."

참으로 싱겁고도 썰렁한 그 말에 작은 화면 속 아들은 덤덤해 보인다. 이어 아버지는 동생 잘 챙겨주라는 말도 한다. 그런데 아들은 대답이 없다. 나 혼자 속으로 '요즘 애들 참 버릇없어, 대답을 안 해' 하며 내 아들을 떠올리는 순간 내 귓전을 때리는 아버지의 한 마디.

"또 운다 이놈 자슥."

이어서 집에 있는 둘째 아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아버지의 분신과도 같다는 둘째는 최근 가족의 그림을 그리는데 아버지를 그리지 않았단다. 아이 엄마는 둘째가 요즘 아버지를 그리워하면서도 울까봐 아버지의 전화를 안 받는다고 자기도 울먹이며 말한다. 엄마가 인터뷰를 하는 사이 결국 둘째는 머리를 양 무릎에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양팔로 마구 눈물을 훔치면서.

또 다른 농성자는 딸 이야기를 한다. 배가 아픈데도 말을 않고 있다가 결국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큰 병원 응급실로 실려가면서도 아빠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프면 아프다고 하면 될 것이지, 이 곰 같은 노무 새끼가 계속 참았던 모양이에요. 병원 가면서도 하는 말이…. 지가 뭐할라꼬 병원비 걱정을 하냔 말이야."

비디오를 보고 있는데 문제를 직감했다. 내 마음 속에 이미 눈물이 한바가지 고여 버린 것이다. 눈 크게 뜨고 껌벅이며 참는데, 이걸 계속 보다간 다음 순서 진행을 못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안 보기로 했다. 그래서 대본을 보려는데 소리는 계속 들리는 게다. 눈이 다시 모니터로 간다. 결국 스튜디오 구석으로 가서 대본을 들고 소리 내서 읽기 시작했다.

어수선하게 두 번째 진행을 마치고 다음 비디오가 나올 때 나는 마침 작가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는 이 비디오를 만드느라 아마도 수십 번은 봤을 것이다. 그런 그가 모니터를 보며 한 마디 한다.

"아~ 눈물 난다."

"한 사람이 울기 시작하면 다 울어요!"

그가 방송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를 해준다.

해고된 남편들이 해고와 함께 농성에 들어가면서 월급이 끊기자 아내들은 모든 것을 책임져야 했다. 우선 애들 학원을 그만 두게 해야 했다. (그래서 그 아이들은 사원 임대 아파트 단지에서 자기들끼리 모여 논다.) 그리고 뭐라도 해야 할 처지가 됐다. 그런데 문제는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있는 여성들이라 흔한 식당일도 할 수 없는 처지라는 점이다. 그래도 아이들 먹여 살리려면 뭐라도 해야 했다.

처음엔 스티로폼 만드는 새벽 공장에 나갔단다. 아이들을 재우고 한밤중 11시에 나가서 새벽까지 일하는 일당 5만 원짜리였단다. 그래서 손에 쥐는 게 한 달 70여만 원. 그런데 이게 곧 일이 끊겨 다른 일을 알아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집에서 냉장고 냉각기 부품 조립하는 것. 이건 얼마? 개당 15원. 새벽까지 하루 1000개 정도 만들어봐야 일당 1만5000원이다. 한 달이면 30~40만 원.

그렇게 버티고 있는 이들에게 회사는 사원 아파트에서 나가라고 통보했단다. 그래서 34가구가 쫓겨날 판이다. 이들은 냉장고 부품 조립을 모여서 한다. 그러나 사실은 무서워서 모이는 것이다. 퇴거나 가압류 통보하러 사람들이 들이닥치는 게 무서워 이들은 모여서 작업을 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쫓겨나면 이들에겐 다른 방법이 없다. 갑자기 부모에게 쫓아가 손을 벌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최근 부산의 전셋값이 오르는 바람에 내쫓기면 길거리에 나앉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이들과의 인터뷰가 이제까지의 어떤 인터뷰보다 힘들었다고 한다. 한 사람이 울기 시작하면 다 운다는 것이다. 사실 이번 방송은 눈물 없이 보기 힘들다. 아버지를 보고 아들이 울고, 전화 끊고 아버지가 울고, 아들 이야기 하며 엄마가 울고, 그 엄마를 보며 아들이 또 울고, 엄마들이 부품 조립하다 인터뷰 하며 울고, 한 엄마가 우니까 옆의 엄마들이 다 울고, 그들과 인터뷰한 작가는 집에 가서 울고, 진행자는 다음날 다시보기 보며 울고.

사실 그날 스튜디오 풍경도 평소와는 달랐다. 비디오가 나가는 동안 카메라맨들을 포함한 7~8명의 스태프가 모두 모니터 앞에 모였다. 이제까지 이들 스태프는 비디오가 나가는 10여 분 동안 이를 보는 이도 있었지만 전화나 잡담을 하며 각자 시간을 보내기 일쑤였다. 그런데 지난 수요일은 모두들 골똘히 모니터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 한진중공업의 정리 해고에 맞서 6개월 넘게 총파업을 벌이던 노동조합은 6월 27일 결국 파업을 철회하고 업무에 복귀했다. 업무 복귀를 거부한 약 30여 명의 조합원은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있는 타워 크레인 중간에서 장기 농성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이 퇴거 명령 강제 집행을 실시하면서 약 300여 명의 용역 직원이 업무 복귀를 거부하는 노동자를 강제 퇴거했다. ⓒ노동과세계

한마디로 '악덕 기업주'

한진중공업 해고 노동자들의 가정은 붕괴하고 있다. 이게 바로 가족의 생이별이고 가족의 해체다. 다른 말로는 날벼락이다.

정리 해고된 170명 노동자들의 가족은 남편 없는 생활, 아버지 없는 생활을 반년 가까이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울증에 걸린 아내들이 늘기 시작했고 이미 이혼을 한 부부들이 있는데 점점 늘어갈 조짐이란다. 지금 이들은 벼랑 끝에 내몰린 정도가 아니다. 추락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이들은 졸지에 이런 막다른 처지에 내몰리게 됐는가.

요즘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진중공업이 자리한 영도구를 지역구로 가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국회의장을 지낸 그 지역 정치인인 내가 면담이나 통화 요청을 해도 거부하기를 벌써 십수 번인데 노동자들에게는 오죽 했겠는가"라며 그의 국회 청문회 출석 거부는 "국회를 무시하고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라며 조 회장을 비판했다.

주변의 말을 종합해 보면 조남호 회장이라는 사람은 아주 독한 기업인인 듯하다. "사람 몇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 않을 사람이에요"라는 말도 들었다. 지난 몇 년간 회사가 보인 회사의 행적도 양식을 가진 회사라 보기 힘들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의도적으로 '영도 조선소 죽이기'에 나선 것이 아닌가 싶다. 이쯤 되면 '악덕 기업주' 아닐까.

회사는 정리 해고의 이유로 '긴박한 경영난'을 핑계 대지만 한진중공업은 지난 10년간 4277억 원의 흑자를 본 회사다. 2006년부터 2010년까지 수익성도 좋았다. 2010년 조선 부문 영업 이익률은 13.7%였다. 이번 정리 해고 직후 한진중공업은 174억 원의 주식 배당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긴박한 경영난이라니. 노동자들 정리 해고 시키면서 돈 잔치 하는 걸 보면 이들은 참으로 앞뒤도 없고 낯짝도 없는 인간들이다.

한진중공업은 수주 물량이 없어서 노동자들을 해고했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4월 한 해운 조선 전문 기관의 발표에 따르면 한국의 조선 산업은 조선 수주량에서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고 한다. 특히 한진중공업 연결재무제표를 보면, 2010년 말 기준으로 수주 잔액이 5조500억 원. 2010년 중에도 1조7000억 원 수주 계약을 달성했다. 그런데 수주 물량이 없다니.

문제는 이 물량이 모두 한진중공업의 자회사인 필리핀 수빅 조선소에 배치됐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 수빅 조선소는 67척을 수주했는데 영도 조선소엔 2008년 이후 한 척의 수주도 없는 것이다. 회사 측이 한마디로 필리핀의 조선소로 '몰빵'한 거다. 회사가 영도 조선소를 죽이기 위해, 결국 노동자들 해고의 근거를 마련키 위해 영도에 수주 물량을 배치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도 조선소의 문제는 수주 물량이 없는 것 아니라 수주 물량 배분의 문제이다.

노동자 해고는 '가족 살인'

사실 이 수빅 조선소 때문에 2007년 노사는 '해외 공장 관련 특별 단체 교섭'에 합의했다. 당시 사측은 해외 공장을 운영해도 노동자들의 정년을 보장하고 "특히 해외 공장 운영으로 인해 국내 공장 조합원의 고용 불안이 발생치 않도록 한다"는 조항까지 넣어 노조와 합의했다.

그럼에도 한진중공업은 2009년 12월 조선업 불황을 이유로 400여 명(희망 퇴직 349명 포함)을 감원했다. 2010년 2월 정리 해고 중단을 노동조합과 합의했지만 그해 연말 이를 또 깨고 노동자들을 내쫓은 것이다.

1931년 설립된 한진중공업은 74년 역사의 향토기업이다. 그 재벌은 영도 조선소에서 돈을 벌어 부자가 됐고 그 재벌 일가를 부자로 만들어 준 것은 바로 영도 조선소의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그 재벌은 자신을 부자로 만들어준 수많은 노동자를 무더기로 해고해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또 그 가정을 파괴하는 만행을 부끄러움도 없이 저지르고 있다. 그 뻔뻔스러움과 파렴치함 때문에 나는 그런 이들을 재벌이라기보다는 악덕 기업주라 부른다.

노동자들은 재벌만큼 부자가 될 생각도 없고 재벌의 재산을 뺏을 생각도 없다. 그냥 열심히 일하고 퇴근 후 가족과 함께 지내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꿈이고 행복이다. 자신의 직업을 자랑스러워했고, 방송에 나왔듯 아이들도 아빠의 회사 한진중공업을 (지금도) 자랑스러워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돈독 오른 악덕 기업인들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이들 노동자와 그 가족의 행복을, 아이들의 미래를 빼앗아 무참히 짓밟는 짓을 거리낌 없이 저지른다.

해고 노동자 가족을 취재한 작가는 노동자를 해고하는 것은 그 가족에겐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렇다. 채 2년도 되지 않아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의 가족 15명이 생을 달리했다. 한진중공업은 이미 6개월이 지났다.

증오하라!

요즘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지음, 임희근 옮김, 돌베개 펴냄)는 책이 유행이라는 이야길 들었다. 백번 동감하면서도 지금 우리 한국사회의 현실에는 뭔가 2퍼센트 부족하다. '분노하라'에는 그 방향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 대상이 누락된 듯하다. 정확히, 다시 조준하자.

"증오하라!"

우리 사회는 그들을 증오할 권리가 있다. 상생과 공존을 거부하고 수많은 노동자의 고통을 딛고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그들을 증오할 권리가 있단 말이다. 그리고 이는 일방적 권리가 아니다. 그들에겐 자격이 있다. 그들이 우리의 증오를 받을 자격은 차고도 넘친다.

/정희준 동아대학교 교수


<경향신문>에 기명 칼럼을 연재 중인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가 <프레시안>에 기고를 보냈다. 김 교수는 17일 <경향신문>에 실릴 예정이던 자신의 칼럼이 게재를 거부당한 일을 소개하면서, 이 일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의 글을 전문 게재한다. <편집자>


안녕하세요? 저는 전남대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김상봉입니다. 저는 지난해 말부터 <경향신문>에 3주에 한 번씩 수요일마다 기명 칼럼을 써왔습니다. 오늘 제 글이 실릴 차례인데 불행하게도 글이 실리지 않았습니다.

<경향신문>에서는 제가 김용철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사회평론 펴냄)를 소개하면서 삼성 및 이건희 전 회장을 강하게 비판한 것이 신문사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면서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물론 거절했으나, 신문사는 끝내 저의 칼럼 지면을 다른 분의 글로 채웠습니다.

저는 이 일에 대해 <경향신문>을 비난할 생각은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문을 닫을 때 닫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언론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마땅한 도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한편으로 현재 이 땅의 진보 언론들이 처해 있는 어려움의 원인이 신문사 내부의 잘못이 아니라 언론 소비자들의 무지와 무관심에 기인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번 일을 두고 <경향신문>을 비난하기보다는 도리어 진정한 독립 언론의 길을 걷도록 더 열심히 돕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 <경향신문>이 삼성 관련 기고를 게재 거부한 것은 지금 한국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프레시안
하지만 그와 별개로 이번 사건은 지금 우리 사회의 모순의 뿌리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로서 결코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수립 이후 우리는 독재 정부에 맞서 지속적으로 투쟁해왔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시민을 폭력적으로 억압한 주체는 국가 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민주화를 위한 투쟁의 결실로 국가 권력에 대한 시민적 권리는 큰 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그러나 독재 권력이 물러간 자리를 지금은 자본 권력이 대신하여 또 다른 방식으로 시민적 자유와 주체성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최근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일간지에 광고할 수 있는 지면을 얻지 못하고, 외부 칼럼으로 기고한 저의 원고가 신문사 자체 검열에서 끝내 게재를 거부당한 것은 지금 우리 사회에서 삼성이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권력이 되었다는 것을 웅변해줍니다.

1970년대 유신헌법에 대해 비판하는 것도, 개정이나 폐지를 청원하는 것도, 더 나아가 그런 움직임을 보도하는 것조차 금지했던 긴급조치 9호 시절처럼, 이제 우리 사회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은 이른바 진보 언론이라 불리는 신문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자본이라는 새로운 독재자가 보이지 않는 손으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사회의 정의로운 기초를 뒤흔드는 시대에 누구든 어떤 식으로든 애써 역사의 종을 울려야 할 것입니다. 종이 신문에서 실리지 못한 저의 글을 혹시 실어주실 수 있는지 정중히 여쭈면서 이번 일이 이 땅에서 삼성의 독재를 끝내는 대장정의 첫걸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경향신문> 2월 17일 '김상봉 칼럼'에 실리지 못한 원고

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새 책 <삼성을 생각한다>를 읽고 나면 우리는 삼성이란 재벌이 어느덧 한국 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사회 암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는 삼성에 대한 심각한 이야기들뿐만 아니라 코미디의 소재가 될 만한 이야기들도 꽤 많다. 삼성의 이건희 전 회장은 일단 회의가 시작되면 아무리 길어져도 화장실을 가는 법이 없다 한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끔찍한 일은 따로 있다. 주인이 화장실을 가지 않으니 회의에 참석한 머슴들도 화장실을 못 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저녁에 회의가 있는 날이면 아침부터 물 비슷하게 생긴 것은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 한다.

이 책에 엽기적인 내용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감동을 주는 에피소드도 있다. 이건희는 유명 예술인들을 집에 불러 연주를 청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그가 부르면 대중가수든 고전음악을 하는 사람이든 달려오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한다. 그런데 유독 나훈아 씨만은 그렇게 온 적이 없다는 것이다. 자기는 대중가수이니 오직 대중들 앞에서만 노래한다는 것이 이 존경스런 가수의 신념이라 한다.

이 재미있는 책이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독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비하면 대다수 언론의 침묵은 기이하다 못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출판사에서는 몇몇 신문에 광고를 내려 했으나, 어찌된 일인지 돈 주고 광고 내겠다는데도 선뜻 받아주는 신문사가 없어 지금까지 이 책은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이 책은 일종의 금지도서 아닌 금지도서가 된 셈이다.

7~80년대에는 금지도서가 많았다. 체제에 비판적인 책들은 어지간하면 금서로 분류되어 책방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그렇게 밟고 눌러도 땅거죽을 뚫고 솟아오르는 겨울 보리싹처럼 많은 금서들이 수십만 권씩 팔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와 지금의 차이 또한 분명하다. 그 시절에는 국가가 비판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금서 같은 것을 지정하는 억압의 주체였다면, 지금은 삼성이 우리의 입과 귀를 막는 그런 권력이 된 것이다.

그렇게 말과 생각을 억압하는 것이야말로 권력의 말기적 징후이다. 삼성이 한국 최고의 경제 권력으로 군림하면서 뇌물로 국가기구를 매수하고 거기서 더 나아가 광고로 언론을 길들이고 나면, 이제 그 절대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필요한 일은 내부로는 노동조합이 생기는 것을 막고 외부로는 삼성을 비판하는 개인의 입과 귀를 틀어막는 일만 남는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증언하듯이 삼성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국가 기구와 주요 언론을 장악하는 과제를 완료했다. 삼성의 남은 과제는 김용철 씨처럼 어디서 출현할지 알 수 없는 비판자들이 나타나지 않게 막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누구도 삼성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유신 독재 시절처럼 모든 개개인의 말과 생각을 전면적으로 검열하고 통제해야 한다.

마치 미국에서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공공연히 비판하는 것이 금기시되듯, 한국에서 삼성과 이건희를 비판하는 것이 대중들 사이에서 금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삼성이 이건희의 왕국에서 그 아들 이재용의 왕국으로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포석인 것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이 금서 아닌 금서가 된 것은 바로 그런 까닭이다.

알고 보면 삼성그룹 전체에서 이건희가 소유한 지분은 0.57퍼센트에 불과하다는데, 그는 자기 머슴들의 배설을 억압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입과 귀를 가리려 한다. 그러면서 이 짝퉁 루이16세 폐하께서는 황송하옵게도 '모든 국민이 정직했으면 한다'는 교시까지 내리셨다 한다.

선거날이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은 이명박 심판에 열을 올리겠지만, 그 일은 박근혜 전 대표가 누구보다 차분히 잘 해줄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눈앞의 허상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본에 매수되지 않는 진보정당을 키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삼성을 해체하고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한국식 자본주의를 타파할 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다. 이를 위해 삼성제품 불매는 당연한 일이지만,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을 생각한다>를 더 많은 사람들이 읽고 생각하기를 권한다.
 

/김상봉 전남대학교 교수



*                                       *                                       *

'삼성을 생각하다'를 읽고 있다. 광고도 안 되고, 대형서점에서 구석진 자리로 쫓겨나고 있단 얘기에 회사

근처 대형서점에서도 과연 그런가 싶어 점심시간을 쪼개 가본 참에, 생각보다 전면에 노출되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두툼하지만 술술 넘어가는 페이지를 몇장 읽다가 바로 사서 나와버렸다. 조만간 리뷰~*




무엇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가? - 2004.10.27(수) 한겨레.

외국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 청년을 만났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배낭여행을 하고 있다고 했다. 내 세계 여행기를 읽었다는 그 친구가 내게 물었다.
“재미있는 세계 여행이나 계속하지 왜 힘든 긴급구호를 하세요?”

“그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고 피를 끓게 만들기 때문이죠.”

이렇게 대답하고 나서 속으로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케냐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동아프리카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 근처에 우리 단체의 구호캠프가 있었다. 대규모 가뭄 긴급구호로서 식량 및 물 배분과 동시에 이동 안과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곳은 한센병(나병) 비슷한 풍토병과 함께 악성 안질이 창궐하여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곳이었다.

그 이동 병원에 40대 중반의 케냐인 안과의사가 있었다. 알고 보니 대통령도 만나려면 며칠 기다려야 할 정도로 유명한 의사인데 이런 깡촌에 와서 전염성 풍토병 환자들을 아무렇지 않게 만지며 치료하고 있는 거였다. 궁금한 내가 물었다.

“당신은 아주 유명한 의사면서 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이런 험한 곳에서 일하고 있나요?”

이 친구, 어금니가 모두 보일 정도로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기술과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는 건 너무 아깝잖아요? 무엇보다도 이 일이 내 가슴을 몹시 뛰게 하기 때문이죠.”

순간 벼락을 맞은 것처럼 온몸에 전율이 일고 머릿속이 짜릿했다. 서슴없이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는 그 의사가 몹시 부러웠고, 나도 언젠가 저렇게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었다. 그 제대병도 잠시 생각하더니 약간 흥분된 목소리로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하는 것 아닌가?

“나도 언젠가 그렇게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는 내 가슴을 뛰게 하는 긴급구호를 하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지 물었다. 나는 이 일을 하는 데는 어떤 교육을 받고 어떤 기술을 습득하느냐보다 어떤 삶을 살기로 결정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고 믿는다.

예컨대, 자기가 가진 능력과 가능성을 힘있는 자에 보태며 달콤하게 살다가 자연사할 것인지, 그것을 힘없는 자와 나누며 세상의 불공평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할 것인지를 말이다. 나는 두 번째 삶에 온통 마음이 끌리는 사람만이 긴급구호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은 좀처럼 지치지 않는다. ‘누가 시켰어?’ 이 한마디면 일하면서 겪는 괴로움이 곧바로 사그라들곤 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겉멋에 겨워 흉내만 내고, 남 탓을 하거나 작은 어려움에도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다.

“나 역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은 다르잖아요?” 제대병이 더욱 진지하게 물었다. 물론 다르다. 그러니 선택이랄 수밖에. 평생 새장 속의 새로 살면서 안전과 먹이를 담보로 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새장 밖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며 창공으로 날아오를 것인가.

새장 속의 삶을 택한 사람들의 선택도 존중한다. 나름대로 충분한 장점과 이점이 있으니까. 그러나 세상 많은 사람들이 새장 밖은 불확실하여 위험하고 비현실적이며 백전백패의 무모함뿐이라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새장 밖의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새장 밖의 충만한 행복에 대해 말해주고 싶다. 새장 안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이 견딜 수 없는 뜨거움도 고스란히 전해주고 싶다. 그러니 제발 단 한 번만이라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며칠 전 비행기 안에서 한 청년에게 던졌던 질문, 내가 나에게도 수없이 하는 질문을 여러분께 드리며 ‘한비야 칼럼’을 마친다.

“무엇이 나를 움직이는가? 가벼운 바람에도 성난 불꽃처럼 타오르는 내 열정의 정체는 무엇인가? 쓰고 또 쓰고 마지막 남은 에너지를 기꺼이 쏟고 싶은 그 일은 무엇인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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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이야기를 끌어나가려면, 적당하고 보기 좋게 재단된 멘트들로 상대가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거겠지만,

내 생각엔 저건 별로 와닿지 않는다. 일단...저 말투...군바리틱한 저딴 딱딱한 말투를 내가 썼을 거 같냐..ㅡㅡ;;

또...저리 어눌하거나 쉽게 감동을 먹으며..내가 저자세로 나갔을 거 같냐..--; 마지막으로..내가 청년이냐..ㅡㅡ;;;

사실...'제대병'이라거나 '청년', '친구'란 말보다 걍 모군..정도 불러줬음 좀 좋아..하는 아쉬움으로.ㅋㅋ

머..XXX(23, 서울, 01x-xxx-xxxx) 이런 식으론 아니더라도 말이지. 누군가에게 해석되고, 또 그것이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이 된단 건...상당량의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을 유발하는군. 어긋나게 맞춰진 500개짜리 조각

퍼즐같이 왠지 찜찜한 느낌이다. 딱히 두드러진 차이가 있는 건 아닌데, 우리가 서로 생각했던 이야기의 초점과,

이 글에서 드러내려 했던 초점과, 그런 것들이 살짝살짝 어긋나면서 무언가 그녀가 아는 내게서 휘발되어 버렸단

느낌. 언로를 누가 확보했느냐, 누가 마이크를 쥐었느냐의 문제일까.

내 목소리가 변조됐다. 내목에 변조장치-.ㅡ^ 비야누님, 누나라고 불러달라면서요..ㅜ


조심하라구~ 조만간 마이크쥘 여러 사람들.ㅋㅋ 아니, 어쩜 우리가 가진 이 답답하고 무기력한 언어와 조악한

감정이입의 상상력이란 원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참, 한비야 그녀의 이 칼럼은 2005년 12월 발간된 "머뭇거리지 말고 시작해"(공선옥, 샘터사)라는 책에 실렸다.
왜 주경복을 지지하는가
[진중권 칼럼] '미친 교육'에 대한 '촛불'의 심판 보여주자
등록일자 : 2008년 07 월 26 일 (토) 15 : 28  
 

  한여름이라 그런가? 납량특집이 유행이다. YTN 낙하산 인사, KBS 사장 퇴진 압력, MBC에 대한 공격. 촛불민심을 만들어낸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대한 온갖 규제들. 노골적으로 정권의 충견으로 나선 경찰과 검찰은 촛불을 물어뜯는 데에 여념이 없다. 임기 초에 지지율 20% 초반이면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정권. 무덤에 누워 반성해야 할 이 좀비가 다수의석이라는 형식적 권력에 기대어 도처에서 산 사람들을 공격하며 괴기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좀비의 이 주제넘음은 물론 다음 총선과 대선까지는 앞으로 4~5년이나 남았다는 여유에서 나온다. 한 마디로 '너희들이 아무리 끓어봤자 4~5년 동안은 합법적으로 우리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는 자신감이다. 그래선지 최근 촛불에 대한 정권의 전방위적 압력은 실로 극한을 향해 치닫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강압적 통치가 그들을 구원해줄 것 같지는 않다. 시대착오적 억압은 시민들 마음속에 고스란히 스트레스로 쌓여, 또 다른 분출의 순간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듣자 하니 싱가포르에서 또 다시 외교적 해프닝을 연출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뺨 맞고, 중국에게 침 맞고, 일본에게 뒤통수 맞다가 이제는 북한에게마저 절절매는 신세가 된 무능한 정권. 이 '글로벌 호구'가 제 국민을 향해서만은 왜 이리 기세등등하게 서슬이 퍼런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황당한 상황에 긍정적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 반 년 간 이명박 정권은 '선거 잘못 하면 나라가 어떤 꼴이 되고, 시민이 어떤 신세가 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계몽적 역할을 충실히 해오지 않았던가.
  

▲ ⓒ프레시안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선거 다시 하려면 4~5년을 기다려야 하는 촛불시민들에게,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로 여겨지는 모양이다. 돌이켜보건대 촛불과 교육의 문제는 사실 애초부터 서로 맞붙어 있었다. 처음 거리로 나온 촛불소녀들의 피켓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밥 좀 먹자. 잠 좀 자자." 여기서 '밥 좀 먹자'는 구호는 미국산 쇠고기 급식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잠 좀 자자'는 구호는 이명박 정권의 교육정책 앞에서 중고생들의 신체가 느낀 위협을 표현한 것일 게다.
 
  "학생들이 공부하다 과로해서 죽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한나라당 소속으로 서울시의회에서 교육문화위원장을 하는 분은 얼마 전 이 가공할 망언으로 MB식 교육철학의 정수를 보여준 바 있다. "저소득층이 늘어나면 교육의 질이 떨어진다." 강남에 임대아파트 짓지 말라고 서울시에 공문을 보낸 서울시교육청의 행각은 MB식 교육철학의 또 다른 기둥이다. 이게 과연 제 정신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얘기인가? 이러니 '미친 교육'이란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촛불은 처음부터 이 병든 교육에 대한 거부이기도 했다.
 
  투표권도 없는 내가 주경복 후보 지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주 후보야말로 이 촛불의 정신을 대변하는 후보라고 믿기 때문이다. 투표율이 낮은 선거에서는 늘 조직력과 동원력을 갖춘 보수층이 쉽게 승리해 왔고, 이번 선거 역시 유감스럽게도 투표율이 그리 높을 것 같지는 않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촛불후보가 기어이 승리를 한다면, 그것은 '촛불 민심이 이명박 정권의 미친 교육을 심판했다'는 확실한 사인이 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정권으로부터 공격당하고 모욕당하는 촛불을 지키는 길이라 믿는다.
 
  과거의 경쟁력
 
  하지만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데에는 그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한국 교육의 경쟁력을 위해서다. MB의 교육철학을 공유하는 이들은 저마다 입으로 교육의 '경쟁력'을 외친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경쟁력은 미래형이 아니라 과거형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그들의 게을러서 굳어버린 돌머리는 경쟁력마저도 70년대식으로 이해를 한다. 분명히 말하지만, 우리는 70년대가 아니라 21세기에 살고 있다. 필요한 것은 미련하게 애들 잠 안 재우는 경쟁, 부모들이 벌이는 소모적인 소득수준의 경쟁이 아니다. 미래형 경쟁은 창의성과 상상력의 경쟁이다.
 
  경쟁력을 떠든다고 경쟁력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기억하는가? 대통령 이명박씨는 "국내에 나의 경쟁자는 없다"며, 자기 상대는 미국의 부시, 러시아의 푸틴이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말하던 그의 국제경쟁력은 어느 수준이던가. 한 마디로 글로벌 호구가 아니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잔다고 자랑하는 게 MB 정권에서 생각하는 경쟁력이다. 생산력의 발전이 노동력의 단순투입만으로 이루어지던 70년대 초의 마인드. 그런 구식 경쟁력으로 세계로 나갔다가는 외교에 이어 경제에서도 글로벌 호구가 될 뿐이다.
 
  미래의 경쟁력
 
  후진국의 산업화는 대개 선진국에서 기계를 들여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러다가 조금 발전하면 기계를 스스로 만들기 시작한다. 그때 쯤 선진국은 기계를 디자인만 하고 있을 게다. 개도국이 기계의 설계에 뛰어들 때쯤이면, 선진국은 원천기술의 개발을 인도나 중국과 같은 개도국에 떠넘긴 채 기술 경영만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창의성 없는 기술은 급속하게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진정한 의미의 교육 경쟁력이란 바로 이런 시대 흐름에 부합하는 창의적 인력을 양성하는 데에서 나오는 것이다.
 
  MB노믹스의 한계는 곧 MB식 교육의 한계다. MB와 철학을 공유하는 후보들은 저마다 '경쟁력'을 떠든다. 하지만 그 '경쟁력'의 실체가 무엇인지 뜯어보면, 산업화 초기 단계의 마인드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 푸는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은 다르다. 문제 푸는 능력은 결국 알고리즘에 익숙해지는 문제다. (사교육의 본질은 바로 그 알고리즘을 상품으로 제공해주는 데에 있다.) 반면, 문제 해결 능력은 그것과는 차원이 달라, 무엇보다 학생 스스로 자료를 검색하여 솔루션을 모색하는 주체성을 요구한다.
 
  나아가 문제 해결 능력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제기 능력이다. 이미 던져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다.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아직 제기 된 적이 없는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것. 이는 최고의 창의성을 요구한다. 이미 세계 경제는 이런 종류의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MB주의자들이 떠드는 경쟁력이 어디 이런 것을 말하던가?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대통령. 이게 저들이 생각하는 교육의 모범이자 이상이다. 하루에 네 시간 밖에 안 자는 것은 부지런한 게 아니라, 그냥 미련한 것이다.
 
  경쟁과 협력
 
  주경복 후보는 공약으로 핀란드식 교육을 얘기한다. 세계 최고의 교육경쟁력을 자랑한다는 핀란드. 이 나라의 운영원리는 거의 모든 면에서 MB이념과는 대극을 이룬다. 노무현 정권마저 '좌파'라 부르는 가재미들의 눈에 핀란드와 같은 북구 사회는 아마 극좌 공산주의 사회처럼 보일 것이다. 핀란드의 고교내신은 달랑 '잘 함', '중간', '못함'의 세 등급으로 이루어졌다고 들었다. 소수점 아랫자리까지 따져가며 학생들 줄 세우는 것으로도 모자라 아예 중고등학교까지 성적 별로 서열화하는 게 교육경쟁력의 요체라 믿는 이들은 아마 이게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가 동시에 가장 높은 자본주의적 경쟁력을 갖추었다. 이 사실이 미래를 헤칠 머리가 없어 과거에 집착하는 굳은 머리로는 도저히 납득이 안 될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상상력의 한계다. 자본주의적 생산도 어차피 사회적 생산, 그것도 거대한 사회적 협업의 체계로 이루어져 있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바로 이 협업이 얼마나 효율적이며 창의적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도 바로 이 명백한 사실의 인정에서 출발해야 한다. 친구를 밟아야 내가 생존하는 소모적 경쟁은 반(反)사회적인 것이다.
 
  '한 사람의 천재가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 미학에서도 이미 100년 전에 포기한 낭만주의적 천재론이 한국에서는 경제학의 행세를 한다. 대통령이 CEO를 하고, 전 국민이 그의 수족이 되어 움직이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전근대적 미신이 한국에서는 버젓이 경영학의 행세를 한다. 한 사회의 경쟁력은 자신을 천재 혹은 엘리트라 믿는 과대망상증 환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게 아니라, 경제 주체 하나 하나의 능력, 그것들의 효율적 결합, 그 결합이 만들어내는 전체적 창발 효과에 달려 있다. 교육의 이념은 이 상식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내 안의 MB
 
  마지막으로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가 반성해야 할 게 있다. MB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은 사실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는 점이다. '경제만 성장시켜 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게 지난 대선의 표심이 아니었던가. 교육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MB식 교육정책을 낳은 것 역시 우리들 내면의 명박스러움이었다. 요란하게 사교육을 탓하는 학부모들에게 솔직하게 물어 보자. '다른 아이들은 어떻게 되든 내 아이만 잘 가르치면 된다.' 아니, '다른 아이들이 못할수록 내 아이에게는 유리하다.' 솔직히 당신들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다른 아이야 어떻게 되든 내 아이의 점수만 높이면 된다.' 이것이 사교육을 성행하게 만드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이다. 그런데 과연 이것이 얼마나 효율적일까? 애들은 애들대로 고생하고, 부모는 부모대로 허리가 휘고, 교육은 교육대로 망가질 뿐. 진정으로 공교육을 살리고 싶다면,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부터 척결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 우리가 함께 잘 가르쳐서, 나중에 그 결실을 함께 나누자.' 이것이 바로 우리가 되찾아야 할 공교육의 이념이다. 정의로운 것이야말로 효율적인 것이다.
 
  내가 주경복 후보를 지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와 관련이 있다. 나는 그의 당선이 한국의 교육현실을 일거에 바꾸어 놓을 거라 믿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당선이 이런 사회적 인식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믿을 뿐이다. 진정한 승리는 그저 특정 후보를 교육감으로 당선시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 괴물 정권과 괴물 정책을 출산한 우리 내면의 괴물을 반성하고 척결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는 우리 내면의 명박스러움을 태워 없애는 또 하나의 촛불집회, 즉 정신적 성숙과 정화의 의식이 되어야 한다.

진중권/중앙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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