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노래는 '진정성'이 담뿍 담겨있었다.

'나는 가수다'에 대한, 김건모의 재승부에 대한, 심지어는 '아이유와 나가수가 싸우는 만화'에

대한 이야기가 인터넷 공간의 천지사방으로 마른 불 번지듯 퍼져나갔지만 여태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노래만 어찌저찌 듣게 되거나, 대충 그래서 김건모는 어찌되었고, 어느 가수는 '나가수'를

반대했다는 따위의 이야기들로 접하던 이 프로그램을 직접 보겠다는 맘을 먹게 된 건 순전히

노래 두 곡 때문이었다. 김범수의 '제발'이 불을 댕기고, 이소라의 '넘버원'이 결정타를 먹였달까.


그래서 첫회부터 졸졸 따라가서 이제 다 따라잡았다. 워낙 전회 복습의 분량도 많고 중간평가니

뭐니 곁다리 내용도 많아서 중간중간 빨리감기를 하며 노래 위주로 보긴 했지만, 주위에서 임재범

노래를 들으며 울었다느니, 이건 꼭 챙겨보라느니 따위 유난스럽다 싶은 반응들이 이젠 그럴 만도

하네, 정도의 평가를 얻게 되었다.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소라, 박정현에서 김건모, 임재범에

이르는 출연 가수 하나하나 노래를 할 때마다 소름이 번쩍번쩍 돋고 눈물이 치솟으려 하더라는.


그들의 노래는 '진정성'이 담뿍 담겨있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진심을 다해 부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눈물을 훔치며 생각한다. 꼭 이런 방법으로 가수들의 진정성을 짜내야 하는 걸까.

이 질문은 두가지를 의미한다. 경쟁 이외의 다른 방식은 없었을지, 그리고 가수들이 진정성을

담아 혼신의 힘으로 노래하도록 우리들이 채근하고 강제할 수 있는지.


1_ 경쟁 이외의 다른 방식으로 '진정성' 짜내기.

경쟁이 있었기에 이렇게 멋진 가수들이 더 멋진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이미 가수로서 어느정도 입지를 다지고 있는 그들은 자신의 스타일, 평판에 안주하며

설렁설렁 매너리즘에 빠진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매너리즘을 깨는 게

꼭 이렇게 살벌한 경쟁, 꼴찌는 떨어져나가는 콜로세움의 살육전을 빌어야 하는 걸까. 누군가

이미 말했듯 1등이 명예롭게 빠지는 방식이라거나, 두번 이상의 기회를 주어 평가한다거나,

팀전을 벌인다거나 하여 원샷원킬의 경쟁구도와 긴장을 완화할 수는 없었을까.


그리고 경쟁 이외에 다른 방식은 정녕 없었을까. 가수들이 '진정성'을 담뿍 담아 노래를 부르게

하려는 건,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나 타인을 앞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

혹은 함께 만들기 위해서 같은 동기로는 안 되었을까. '나가수' 식의 감동있는 무대를 만드는 게

흔치 않은 것 만큼이나 그런 '씨스터액트'류의 감동있는 무대 역시 흔치는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은 거다. 정말 궁금한 건, 나가수의 경쟁이 계속해서 '진정성'과 감동을 이끌어내는 동력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하는 거다, 가수들에게서나 관중들에게서나. (경쟁은 이미 진정성 이외의 부분,

감동적인 스토리빨, 빛나는 편곡, 여러 스페셜한 요소들에서 이뤄지지 않는가.)


2_ 근본적으로, 노래에 진심을 담는 건 가수의 의지.

콘서트 내내 쏟아부을 열정과 에너지를 노래 하나에 쏟아부었다고 한다. 거꾸로 말하면 평소엔

노래부를 때는 체력안배를 하거나 컨디션을 고려한다는 이야기다. 당연하다. 노래 한곡으로

뭔가 결정되는 경연대회를 늘 여는 게 아니니까, 늘 일백 퍼센트의 진심이 가득 담긴 그런 노래가

나올 수는 없는 거다. 그런데 이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은 그런 걸 요구한다. 노래 한 곡을 위해

이주동안 그야말로 피말리는 연습을 반복하게 하고, 이십년차의 국민가수도 손을 덜덜 떨며

노래를 부르도록 한다. 프로그램에 들어온 이상 규칙이 그렇다. 가수는 쥐어짜내진다.


뭐, 원치 않았음 출연하지 않았으면 된다고, 알아서 몸관리는 하는 게 프로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가수는 매번 노래할 때마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거라고 교과서적으로 이야기할지도.

나도 처음엔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로 노래하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과의 싸움,

화려한 컴백의 야심, 부와 명예, 호승심 등등 여러 이유가 있었을 거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계상황으로 내모는 건, 그리고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좀 잔인하지 않나. 임재범이 건강상의 문제를 무릅쓰고 녹화를 강행한 게 미담이

되고, 평생 노래해야 할 가수들이 강행군으로 목을 상하거나 건강을 상하는 게 무용담은 아니다.


약간 확대하자면, 검투사들의 멋진 육체, 약동하는 근육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보기 위해

로마인들은 그들을 죽음과 대면시켜 죽을 때까지 싸우도록 하며 환호했었다. 검투사들 역시

자발적으로 그 콜로세움에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원래 세상이 그런 거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거고, 혹은 돈과 명예를 위한 사다리를 잡기 위해 선 사람도 있을 거다. 어느

경우이던 간에, 그들의 진정성, 진심은 이미 프로그램화된 외부로부터 쥐어짜내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불러올려져야 하는 것 아닐까. '나가수'에 나가지 않고도 진정성 가득한 노래를 부를 수

있고, 실제로 부르고 있는 가수들을 귀찮음과 무지를 무릅쓰고 찾아나서는 건 어떨까.



나가수, 결국 가수들의 진정성을 값싸게 만드는 건 아닐까.

나는 가수다, 그 프로그램에 출연한 가수들도 모두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다. 그들의 노래는

아름답다. 그들이 자처한(혹은 자처했다고 생각하는) 콜로세움, 무대 위에서 그들이 노래를 할 때

그들은 그대로 혀가 되고 목청이 된다. 그래서 더 걱정스럽다. 언제까지 그들의 '진정성'을

쥐어짜내어 대중에게 값싸게 단타로 팔아치울건가. 대체 이 프로그램이 가수들의 진정성을

어필하고 극대화하는 방식이란 건, 지속가능하기나 한 걸까. 단지 체력적이고 육체적인 부분의

문제만이 아니라, 경쟁으로 누군가는 계속 밀려나고 누군가가 계속 수혈되는 구조란 게.


어린애가 새장 속의 새들을 끄집어서는 꾹꾹 누르며 노래를 뱉으라 하는 거, 그런 그림 같다.

지금과 같은 식으로라면 그들의 진정성이, 그들의 노래가 값싸져버리는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럽다. 이미 나온다. 가창력이 전부가 아니다, 라는 이야기. 이미 변덕스런 대중은

아무 노력없이 잘 포장된 채 손에 쥐어진 그들의 진정성에, 그들의 음악에 둔감해지고 따분해

하는 건 아닐까. 좀더 강렬하고 '감동'있는, 그리고 피비린내나는 이야기를 원한다며 소란을

떨지는 않을까. 생사여탈권을 쥔 다수의 무리가 덜덜 떨고 있는 한줌을 향해 이런저런 변덕을

부리고, 힘을 전횡하는 그림, 딱 떨어지는 근거는 없다지만 괜히 두려워진다. 


+ 사족.

사실, 근거가 없진 않다. 김건모가 재도전에 나섰을 때 온통 공정성, 공정성을 외쳐댔던

것으로 기억한다. 공정성? 말이야 좋은 말이고, 그가 재도전을 요청한 것도 딱히 좋은 그림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건 예능이다. 수능시험도, 입사시험도 아니고 대선이나 총선도 아닌

일개 예능 프로그램. 그 소란은 정말 '공정성'에 대한 목마름이었을까. 아니면 하나 거창한

꼬투리 잡아챈 아이가 새장 속 새를 온통 들쑤시며 광기 어린 욕망을 채우려는 거였을까.


이 프로그램에서 '공정성'을 논하기엔 룰도 엉성하지만 룰이 놓인 시스템 자체가 엉성하다.

1등과 꼴찌를 뽑는 기준이란 게 사람들의 평가만으로 되려면, 나머지 변수들이 통제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편곡의 아웃소싱 여부, 동원자원(브라스, 댄서, 스페셜 게스트, 밴드 등)의

한계설정, 거칠게 운빨이라고만 정리하자면 컨디션, 공연 순서, 곡 선정 따위의 것들까지.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노래 잘하는 가수를 뽑는 게 아니라 그냥 좋은 가수들의 공연을 즐기는

셈치고, 핏대세우지 말고 봅시다~' 하고 쿨하게 말하기엔, 프로그램부터 살기를 띄고 가수들을

바라보고 있으니. 결국 '나는가수다' 이 프로그램이 지탱하고 있는 '경쟁으로 가수들로부터

더 좋은 음악, 진정성 담긴 음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안이하고 근시안적인 마인드 그 자체부터

문제삼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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