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적 지지'가 이렇게 다급하던 적은 없었다.

 

최소한 이전의 2002년과 2007년, 이렇진 않았다. 당선이 목표가 아니라 영향력 확대를 목표로 내가 원하는 후보를 찍었었으니깐.

 

 

대체 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선거 국면에서) 내세운 정책이 다른 게 뭔지, 그 이전의 노무현 5년의 경제정책과 이명박 5년의 그것은

 

또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해 많은 부분 의구심을 갖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에 대해 민주당 세력이 얼마나 반성하고 있는지

 

의심스러웠지만 일단은 문재인을 찍기로 했었다. 어쨌든 자격없고 부끄러운 대통령의 등장은 피해야 했으므로.

 

 

결과적으로 안철수를 '범진보'세력으로 억지로 낑겨넣으며 판의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키를 놓쳐버린 민주당은,

 

아무 선거전략도 없이 SNS와 세대론에 기대어 낙관론에 빠져있었던 걸로 판명되었다. 뭐 하나 치고나온 의제도 없었고.

 

그저 '정권교체'만을 앞세운채 '닥치고 민주진보 대통합'을 외치며 군소후보나 정당을 고사시켜버렸다.

 

 

선거 후의 모습은 더욱 절망적이다. 왜 졌는지, 보다 선명하지 못해서였는지, 소구층이 분명치 않아서였는지,

 

정권교체의 부글거리는 민심을 받아안을 의지도, 정책도, 전략도 없이 그저 '세대론'과 '지역론' 따위에 머무른 채

 

정신승리 중이다. 48%의 가능성을 봤다거나, 여기가 바닥이라거나,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뻔한 이야기들. 지친다.

 

 

이런저런 정치 평론과 논설들도 마찬가지. 우르르 몰려다니며 인구구성이 어떻고 광주부산이 어떻고.

 

그래놓고 마지막에는 민주당의 쇄신과 지지층의 멘탈 회복을 요청한다. 그만큼이라도 잘했다 우쭈쭈.

 

 

지금 필요한 건 위로나 응원이 아니라, 가루가 되도록 박살내고 좌절시키는, 현상황에 대한 냉정한 평가다.

 

의지적이고 주관적인 전망이나 희망섞인 기대는 한참 나중의 일.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꼴로는 참.

 

 

프레시안에서 퍼온 아랫글은, 그래도 대선 후 나온 글 중에 가장 내 생각과 유사한 판단과 비판을 담고 있어서.

 

 

 

 

노인과 싸우는 진보, 5년 후도 글렀다

[기고] 박근혜가 당선되어 가슴 아픈 이들에게

 

안성용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

기사입력 2012-12-24 오전 9:58:29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박근혜가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문재인에게 표를 주고 가슴이 아팠는데, 박근혜가 당선되어 더 가슴이 아픈 이들이 많다. 박근혜 대통령 아래서 살아가야 할 향후 5년을 생각하면 눈앞이 노래진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상심과 우울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는 법. 이번 선거에서 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승리했을까, 그 이유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보았다.

새누리당의 변신과 의제 희석화

박근혜는 한나라당을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변화를' 주장하면서 4·11 총선에서 승리했다. 더구나 그 총선에서 박근혜 본인이 공천한 인물들이 대거 당선되었고 그 결과 박근혜 캠프의 두뇌와 수족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박근혜는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 성공했다. 이미 총선 결과를 통해, 야권이 주장해온 '이명박근혜'라는 비난은 흘러간 과거지사가 되었다.

총선 승리 이후 박근혜는 준비된 후보로서의 힘 있는 행보를 진행했고, 보수 진영의 어느 누구도 박근혜에 대적할 수 없는 힘을 만들어갔다. 결국 각종 이해관계를 가진 보수 정치권 전체를 아우르는데 성공했다. 또 박근혜 캠프는 지역 구도, 세대 구도, 계급 구도, 이념 구도로 이루어진 대통령 선거 국면을 잘 이해했고, 그 수족들이 지역성을 기본으로 열심히 뛰게 만들었다(그에 반해 민주통합당의 지역구 의원들은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열심히 뛰지도 않았다).

또 박근혜 캠프는 세대 구도에서 유리한 선거 의제들을 생산하였다. 그리고 야당이 제시한 경제 민주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반값 등록금, 복지 관련 공약 같은 '계급 성격'의 의제들마저 선점하고 단계적으로 희석시켜 감으로써, 성공적으로 야권의 공세에 대응하였다.

구진보의 몰락

지난 10년간을 돌이켜 보면, 2004년의 민주노동당 약진 이후부터 한국 사회의 진보 정당은 대략 13~20퍼센트의 득표율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정치적 민주주의의 발전의 덕택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시행한 각종 신자유주의 경제 사회 정책들로 인해 노동자와 농민, 중소 상공인, 영세 자영업자, 도시 빈민층의 삶이 오히려 질적으로 악화된 것도 이 시기 진보 정당의 득표율 확대에 크게 기여했다.

정치적으로 각성되고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 정당을 지지했던 이들 서민들의 경험과 인식은 열린우리당에서 민주통합당으로 이어지는 민주통합당의 지평을 넘어섰다. 이들 진보적 서민들은 올해 4·11 총선에서도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 연대를 적극 지지했다. 물론 전통적인 진보 정당 지지자 중 일부는 진보신당과 녹색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은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고통 받는 서민들을 감동시키는 정책과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게을리 한 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권력 나눠 먹기 식의 야권 연대에만 매달렸다. 그 결과 서민들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을 외면했다.

더구나 소위 친노 패권주의와 통합진보당 내 패권주의의 문제가 4·11 총선 이전부터 터져 나왔다. 4·11 총선 직후 터진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로 인해 그간 '진보 정당'으로 표현되어온 세력들 즉 통합진보당(그리고 분당 이후 진보정의당까지 포함)과 진보신당 등은 일반 국민들의 여론 속에서 '한통속으로' 평가되며 관심 밖으로 사라졌다.

녹색당은 대선 시기에 제 목소리를 내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길게 보면 1987년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진행되어 온 '구진보'의 분열과 지리멸렬은 이번 대통령 선거가 본격화하면서도 더 심해졌다. 그 결과 '구진보'는 대중의 눈높이에서 볼 때 거의 무의미한 세력이 되었다.

 

▲ 문재인-안철수의 '새로운 진보'는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뉴시스

새로운(?) 진보의 실패

친노 패권주의에 환멸을 느낀 이들과 진보 정당에 실망한 이들을 위한 빈자리를 안철수는 '새로운 진보'를 주장하며 자리 잡으려 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진보'는 국민들의 '삶'을 바꿀 만한 '미래 비전'을 전혀 제시하지 못한 진보였다. 즉 실제로는 '민주 진보 개혁'이라는 좋은 단어들의 조합에 불과했다.

안철수의 대통령 출마 선언과 그 이후 행보가 앞에서 언급한 과거 민주노동당 지지 13~20퍼센트의 국민에게 무슨 감동을 주었겠는가? 정치적으로 가장 열렬한 진보 지지자인 13~20퍼센트의 국민들에게는 설자리가 없었다.

진보 정당들이 지리멸렬하자, 중도주의를 내세우며 결집한 안철수 지지자들은 애매모호한 '정치 혁신'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민주통합당 지지자들은 '닥치고 반이명박, 반박근혜'만 이야기했다. 과연 그런 중도주의, 그런 '닥치고 반이명박근혜'가 얼마나 보통 시민들의 열정에 불을 붙일 수 있었을까?

한술 더 떠, 분열된 구진보는 심상정, 이정희, 김소연, 김순자라는 무려 네 명을 대통령 후보로 내보냈다. 그러자, 과거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온 13~20퍼센트의 유권자들은 그야말로 "이젠 망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자 박근혜의 당선이 눈앞에 아른거렸고 그 13~20퍼센트의 진보 유권자들은 눈물을 머금고 문재인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문재인과 민주통합당을 비판하면서도, '박근혜가 되면 안 되는 이유'를 이런저런 이야기로 말하며 또 좌충우돌 변명하며 문재인을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선 여론 조사에서 '정권교체'를 원하는 여론이 60~70퍼센트로 높았는데도 불구하고 당선 가능성에 대한 여론 조사는 항상 박근혜가 60~70퍼센트로 높았다. 그런 조사 결과가 나온 데는, '찍으려 해도 찍고 싶은 놈이 없다'고 고민하던 이런 사람들의 솔직한 심정이 반영되어 있다.

선거 전략의 실패

본격 대선전에 돌입하자마자 안철수, 심상정, 이정희는 단계적으로 사퇴하였다. 그러자 지난 여러 번의 대통령 선거와는 달리, 여와 야 그리고 진보 후보의 3자 구도가 아닌, '보수 대 진보의 양자 구도 대결'이 되었다. 그러자 새누리당은 보수의 위기의식을 최대한 자극하는 선거 전략에 주력하였다.

'보수의 총결집과 인물 경쟁력'이 핵심 선거 전략이 되었고, 보수의 위기의식이 보수층의 광범한 결집을 가져왔다. 이것이 결정적 승인 중 하나이다. 또 박근혜라는 인물에 맞설 후보로서 문재인은 선거 기간 내내 존재감이 미약했다. 문재인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후보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였다.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로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 치하의 경험상 도저히 문재인을 선택하기 싫어하는 유권자들을 담아내기 힘들었다. 더구나 애매모호한 중도주의를 표방한 안철수 후보로는 비정규직 노동자과 자영업자, 농민 등 하층민들의 실제적인 삶의 요구와 열정을 담아내기 힘들었다.

문재인과 안철수 모두 저소득층과 서민의 대변자이기에는 그 인물됨과 가치관, 세계관이 협소했다.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 모두 저소득층과 서민을 위한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에 열심이지 않았다. 결국 도시 저소득층이 가장 많은 수도권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는 대중의 선거 열기를 일으키는데 실패했다.

전국의 유권자 분포에서 차지하는 수도권의 비중이 서울 20.7퍼센트, 경기 23.1퍼센트, 인천 5.3퍼센트로 합계 49.1퍼센트인 점을 고려할 때, 수도권의 정치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게다가 수도권은 '지역성'보다는 '계급성'에 가까운 투표 성향을 늘 보여 왔다. 따라서 '무상 급식'과 같은 폭발력 있는 사회 복지 의제의 개발과 전략적 집중이 매우 중요했다. 그렇지만 문재인과 안철수 캠프 모두 그것을 위한 관심도 능력도 약했다.

역대 선거에서 야권이 이긴 것은 항상 수도권에서의 정치적 열기가 초래한 '준 혁명적인 상황'이 연출될 때뿐이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문재인과 안철수 (그리고 심상정과 이정희마저도)는 모두 '단일화'만 되면 이길 수 있다는 안이한 생각에 머물렀다. 문재인 캠프나 안철수, 심상정, 이정희 캠프 모두 과거 민주노동당 등 '진보 정당'을 지지했던 13~20퍼센트의 유권자들이 문재인으로 통일된 '야권 단일 후보'로 결집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들 중 다수는 문재인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아예 투표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중 아무도 '열정적으로' 선거 운동에 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야권을 지지하는 선거 열풍이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당연히 언감생심이었다.

세대 간 대결 구도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번 대선의 30대 이하 유권자는 1547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8.2퍼센트인데 반하여 50대 이상 중장년층은 1618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39.9퍼센트이다. 반면 10년 전 노무현이 당선될 때인 16대 대선에서는 30대 이하가 1690만 명으로 48.3퍼센트, 50대 이상 유권자가 1024만 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9.3퍼센트였다. 10년 동안 2030 세대의 인구 비중이 10퍼센트 포인트 줄고 5060 세대는 10퍼센트 포인트 늘어난 것이다. 따라서 투표율이 높아지면서 투표장을 많이 찾은 것은 젊은 층만이 아니라 오히려 위기 의식을 느낀 5060 세대다.

주류 보수 언론은 '세대 간 대결 구도'를 시종일관 중계 방송하듯이 강조하였다. 즉 새누리당과 보수 세력은 인구 구성비상 비중이 높은 장년층과 노년층의 불안 심리를 교묘하게 조직했고, 이를 정확하고 적절하게 이용하여 각종 네거티브 캠페인을 활용하여 묶어냈다. 예컨대 <나는 꼼수다>와 김용민, 진중권, 이정희 등으로 대표되는 '예의 없는' 2030 세대에 대한 5060 세대의 불만과 불안을 보수 언론은 잘 조직해 냈다.

선거 직후 출구 조사 발표를 보면 50대의 89.9퍼센트가 투표를 했고, 이들이 박근혜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그 지지 이유에 대해 신문마다 분석이 떠들썩하다. 투표율이 높으면 야권이 유리하다는 얘기는 2030 세대의 인구 구성비가 많았던 10년 전에나 통하던 얘기이다. 이 점을 사전에 인식하고 있지 못했던 야권은 2030 세대에 비해서도 가난하고 빈곤한 5060 세대를 탈박근혜 지지자로 전환시켜 정치적으로 중립화 시켜낼 의지도 전략도 없었다.

또 2030 세대와 40대의 열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의제의 개발과 제시에도 게을렀다. 그저 박근혜의 아버지인 박정희의 30년 전 행적을 비난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와는 동떨어진 순환 출자 금지 같은 재벌 개혁, 재벌 해체의 어젠다를 집중적으로 제시하였을 뿐이다. 따라서 야권은 시종 일관 여당에 끌려 다니는 '색깔 없는 선거'를 치르면서 패배했다.
한편, 2030 세대의 '보수화 경향'도 깊이 있게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애국주의'의 토대가 되고 있는 것이 60대 이후 노년층만이 아니라 신세대에게도 일부 나타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방송 3사 출구 조사를 보면, 문재인 후보가 2030 세대에서 65퍼센트의 지지를 받았지만 박근혜 후보 또한 33퍼센트의 지지를 받았다.

이번 대선만이 그런 것이 아니고 최근 10년간의 선거 때마다 전체 2030 세대의 3분의 1이 보수주의를 지지한다. 젊은이들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 사회 개혁과 같은 공동체적 가치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당장의 개인의 삶이 엄청나게 피폐한 층이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 주요한 한 원인이다.

세대 간 대결 구도를 용인하고 더구나 노인 세대에 맞서야 한다며 2030 세대의 투표율을 높이려 독려하며 그것을 사실상 더 부추긴 것은 민주통합당과 진보 정치권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식의 세대 간 대결 구도로는 앞으로 백전백패일 뿐이다. 왜냐하면 출산율 저하의 영향으로 앞으로는 2030 세대의 비중이 더욱 줄어들고, 그에 반해 50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더욱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진보 정치권과 야권이 무상 급식과 같은 계급적, 탈지역적, 탈세대적 선거 어젠다를 전략적으로 부각시키는데 소홀히 했던 이번 선거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역주의 구도가 다시금 강하게 나타났다. 그리고 그 구도는 당연히 여권에 유리했다. 지역의 인구 구성비로 볼 때 지역주의가 강할수록 영남 기반 보수 세력이 이긴다는 자명한 현실을 야권 역시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은 거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지역주의가 강할수록 보수는 결집한다. 진보 정치는 지역주의를 벗어나야 하며, 이번 선거처럼 전라도 같은 특정 지역의 몰표에 여전히 의존하는 정치적 의존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향후 진보 정치권은 세대 간 대결 구도가 아닌 세대 간 연대의 구도를 만들어내야 한다. 2030 세대가 되었건, 5060 세대가 되었건, 가난한 청년 및 노인들 대 부유한 청년 및 노인들 간의 대립 구도, 계급적 대결 구도를 만들어내야 앞으로의 선거에서 이길 수 있다. 예컨대 젊은 세대와 노인 세대 간의 세대 간 연대 의식이 강하게 작동해야만 존재 가능한 것이 국민 연금과 기초 노령 연금의 획기적인 확대이다.

스웨덴 등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 국가는 세계 최고 수준의 보편주의 노인 복지 체제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을 지탱하는 정치적, 제도적 축 역시 세대 간 연대이다. 이렇게 세대 간 연대 의식이 필수적인 어젠다를 놓고 계급 투표가 가능해지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진보의 미래가 있다.

박근혜 캠프는 '준비된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를 제시하였는데, 여기서 '준비된'이라는 구호가 주로 급작스럽게 후보로 나선 안철수, 문재인과 비교하여 준비된 인물이라는 것을 홍보하는데 이용되었다면, '여성 대통령'이라는 구호는 실제로 여성층 특히 주부층에서 압도적으로 인정받았다.

즉 보육과 교육, 의료, 노인 복지처럼 가정주부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정책 어젠다에서 문재인 캠프가 박근혜 캠프와 뚜렷하게 차별화되는 공약을 제시하는 일에 게을리 하는 사이에, 박근혜 후보가 제시한 '여성'이라는 슬로건이 여성계와 주부들 사이에서 실제 큰 힘을 받았다. 이 점에 대해서도 야권은 사실상 대응을 못하거나 안했다.

 

/안성용 사회민주주의센터 준비위원

 

ⓒ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

 

 

1) 한국정치가 양당제로 고착화될까.


유럽과 같은 다당제가 이념정치, 계급정치가 가능할 거란 점에서 우리나라 의회정치도 그렇게 가는 게 이상적이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회의적이 되어간다. 특히 지리멸렬해진 진보블록을 대신해 치고 나온 안철수의 역할과 성과가 문제가 될 텐데...만약 그가 자체의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고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이제 한국사회는 양당제가 고착화되지 않을까.

안철수가 뭔가를 제대로 해내기는커녕 이쁘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가능성이 농후해지면서 제3세력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불신은 팽배할 테고. 이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불러낸 대중들의 피로감과 분노를 가중시키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 하다. 그렇다면 역시, 한국도 미국처럼 양당제로 고착하게 되는 걸까. 심지어 미국보다 못한 식의 중도우익과 극우세력의 양강구도가 되리라 예상되지만.

 


2) 진보정치세력의 구심은?


이른바 재야나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건설된 진보정당에서 지켜온 의회 내 진보정치의 기치는, 어느덧 아웃오브안중이 되어가는 거 같다. '진보', '개혁', '복지', '경제민주화' 따위 단어에 대한 소유권도 모두 넘어가버렸고 좀처럼 회복될 거 같지도 않다. 이는 진보정당의 한계기도 하고, 이나라 민주주의와 '계몽'의 한계기도 하다. (안철수 현상의 안쓰러운 미망을 보라) 의회정치 내에서 진보적 가치를 표방할 수 있으려면 진보정당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당 내 진보블록을 미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의회 밖의 정치적 필드는 별도로 치고)

 


3) 비판적 지지의 문제


이념적 비전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든 현실은 찔끔찔끔 변한다 했을 때,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 뭘지에 대한 고민이다. 페이퍼당원이나마 진보신당 당적을 갖고 있지만 당에서 미는 후보가 아닌 타당의 후보를 이렇게 거리낌없이, 혹은 절박하게 미는 경우는 또 처음이니까. 진보신당의 공식지지 후보 김소연 후보, 그녀의 자격과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지지하지만 현재로선 문재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문>박,안)

 


4) 선택지에 대한 고민...박과 안의 비교.


다만, 단일화된 결과 안철수가 야권 후보가 된다면 다시 난 고민하게 될 거 같다. 그에게 기본적인 국정운영의 능력과 자원이 있을까. 정치라는 것에 대한 그의 얕은 인식과 부정적인 시각에 더해서, 도대체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능력은 무엇인지 문제해결능력-정치력-은 있는지 뭐하나 알 수 없단 점에서 그렇다.
수첩공주라지만 박양은 할튼 조조처럼 재사들을 주위에 많이 모으고 있고, 독재자의 딸이라지만 그건 이제 까봐야 먹히지도 않으며, 민주주의적 감수성이나 가치관이 부족하다지만 기성 정치인들 대개 오십보백보인 거 같기도 하고. 최소한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되지 않을까. 박양이 된다고 애비처럼 독재를 하거나 총칼로 짓밟진 않을 테고 뭐, 엠비만큼 하겠지...니미.


굉장히 우울한 그림이지만, 안철수가 하면 뭐가 나아질까, 그리고 뭐가 불안해질까를 계량했을 때. 난 안과 박양 둘다 지랄같은 결과일 거 같아서. 그땐 차라리 진보정당의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현재로선.

 

 

4-1) 안철수에 대한 단상

 

정치개혁'이라는 말을 협소한 지평에 지 나름의 상식에 가둬놓고는,
피와 살이 느껴지지 않는 '국민'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모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단어, '개혁'과 '변화'의 이미지를
냉소의 도가니에 빨아제낀 걸레짝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

대체 안철수가 바라는 '정치개혁'이라는 건 뭘까.
감성적으론 알 듯 말 듯 하다가도, 정작 디테일은 없다.
니들이 알아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면 정답이 나올 거다, 라는 식인데
이건 어쩌면 자기도 뭘 어째야 할 지 몰라서일지도.

* 이번에 다시 국회의 구조조정/정리해고를 말하는 꼬라질 보고 확 열받아서.

 


5) 요약.


박양이 대통령이 될 거 같고, 안철수는 엑스맨인 거 같고, 문재인과 민주당은 확연한 진보성은 고사하고 리더십도 전략도 없는 거 같고. 그런데 진보정당은 다 말아먹었고. 당비가 아까울 지경이고. 뭐 이딴 지랄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는지 니미.

 

게다가 더욱 좌절스러운 건, 엠비5년의 시점, 나라의 가치관과 비전과 성장/분배전략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굉장히 큰 공간이 열렸음에도 이지경이라는 점. 분명 큰걸음 한발자국 왼쪽으로 뗄 수 있는 객관적인 호조건이 도래했음에도.

 

 

 

 

민주통합당은 위기감 없이,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가겠다며 김칫국부터 마시며 자리 나눠먹기 중이고,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구호를 내버린 채 대중정당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자멸 중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와 이명박은 꽃놀이패를 쥐고 즐기는 참이고.

 

 

그 와중에 홍세화 당대표가 '전태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태일의 집'을 전국에 짓자는 제안을 해왔다.

 

문득, 총선에서의 패배를 예감했던 4월의 어느날 이래 멎어있던 심장이 뛰었다. 두근. 전태일당이라니.

 

5월 총선 이후 그가 침통하고 분루를 삼키던 사진이 숙제처럼 컴퓨터에 저장만 되어있다가, 이제야 올린다.

 

 

 

 

우리는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왜 다시 전태일을 호명해야 하는가-

 

 

 

 

나는 왜 쓰는가? ― 4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일주일 전쯤, 20대의 한 청년 당원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이 글을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내 마음을 짓누른다. 동네 가게 주인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선거 때 표 찍어달라고 열심히 다니던데, 그런 정당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앞날이나 잘 챙기라”고. 짐짓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뻘의 가게 주인에게 “그 당은 제가 속한 당이 아니”라며 설명하려는데 억울하고 목이 메여 눈물이 핑 돌더라는 얘기였다. 선거에 패배하여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당을 변명해야 했던 그 청년 당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년 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그것은 2008년 2월 13일 민주노동당을 떠나며 남겼던 글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번호 ‘25994’는 이제 주인이 없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에 민중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오직 요란한 구호의 장식품이었을 뿐, 오로지 배제 행위에 의한 권력 싸움만 남은 자아팽창자들의 권력의지의 전시장이라고 썼다. 나는 그 글의 말미에 이렇게도 썼다. 기어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그래서 진보신당 평당원으로 3년 반을 채울 즈음, 당 대표를 지낸 이른바 명망가들이 당 대회의 결정에 아랑곳없이 떠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그리하여 한낱 서생에 자족해온 내가 그 빈자리에 올라 어울리지 않은 직책의 무게에 허덕이며 오늘에 이른 셈이다.

나는 이제 다시 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의 존립을 지키지 못한 패장으로서, 그러나 분노보다는 슬픔으로, 슬픔보다는 쓸쓸함으로 이 글을 쓴다. 그것은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대리투표와 비례대표 독식 등 4년 전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몰염치와 오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몰염치가 한 치의 오치도 없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온 것이 아니다. 내가 4년 전 그 글을 썼을 때, 그리고 그 글이 이른바 당을 장악한 종북 편향의 패권주의자들에게 알량한 쁘띠의 ‘유럽사대주의’의 발현으로 읽혀졌을 때, 이미 나는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접었다.

 

나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어떤 통합이냐고 묻는 동지들을 ‘고립주의 독자파’로 몰아붙이고 주저 없이 떠난 이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3당 통합이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라고 정의될 때 노무현 시대가 노동하는 인간에게 어떤 시대였는지 기억하는 노동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타적 지지’를 강행했던 조직노동의 대표자들에게 묻기 위해, 그리고 진보정치가 통합진보당의 독점물이 되도록 여론 몰이에 앞장선 한겨레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이제서 이 당의 비례대표경선 부정에 새삼스레 경악하며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정말 이제 비로소 알았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가 실현되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 되고 ‘개혁적’이 되는 국민참여당 출신들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노총은 무엇을 용인할 수 없고 또 어디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분당은 절대 없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전의 진보신당 대표이자 오늘의 통합진보당 대표인 여성 정치인은 왜 4년 전엔 분당을 결단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분단의 질곡이 보수를 왜곡시켜 극우의 품에서 사익을 추구하게 했듯이, 본디 보수인 민족자주세력이 패권주의를 통해 주류 종파가 되었고 이들의 뭉뚱그려진 헤게모니 아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과 노동조직까지 실리를 챙기려 했던 공모의 결과물이 통합진보당의 실체 아니었던가. 막무가내로 패권을 휘두른 이른바 당권파들이 차라리 단순한 편이라면, 그들이 그토록 막무가내가 될 때까지 침묵하고 방관하고 용인하다가 마침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서는 사람들은 복잡한 편이다. 이제서 당권파들을 제물 삼아 몰아세우며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있음을 입증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왜 그 예민한 지성의 분개는 사태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늘 퇴각하는 권력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작동할까? 차라리 몰랐다면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할 뿐, 대중의 분노 뒤에 숨어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자제했을 터이다.

 

아마도 4년 전과 오늘이 다른 게 있다면 한 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명분을 필요로 했던 자유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키우고자 했던 파이(권력)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13개의 숫자로 불어난 권력이 지나치게 한편에 치우쳐 작금의 갈등이 촉발되었다면, 그 권력을 다시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대한 합의에 따라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겠다.

 

롤랑 바르트가 그랬던가? ‘좌파(여기서는 문맥상 ’진보‘라 하는 게 맞겠다)의 신화’는 그것이 실제의 혁명과는 무관해지는 순간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권력정치로 변질된 진보가 여전히 혁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그 속에 감추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진리’라 ‘법칙’이라 ‘섭리’라 ‘운명’이라 왜곡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이 신화의 수명이 파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역사마저 비틀어버린 불행한 동거의 파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왔어도, 권력정치의 레일에서 열차가 이탈해 완전히 전복되기 전까지 그들의 현란한 정치공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부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갈 진보신당을 옹호하기 위해 목 메이던 청년 당원의 눈동자 속에 어른거리던 열정 때문에 차마 못했던 말을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한국에서 진보는 죽었다. 진보라는 말에 담겨 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들은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권력에만 관심을 갖는 자들에 의해, 진보정치를 현실적 실리와 명분이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자 했던 자들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보신당 또한 죽었다. 권력정치와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우리의 안간힘 역시 참담히 패배했다. 진보정치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던 성장주의와 결별하고자 했으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일구어내지 못한 우리들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

 

젊은 벗이여, 이제는 서둘러 낡고 병든 진보(정치)의 신화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땅속에 묻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 자신에게도 권력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이 진보의 장례식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땅 속에 내려간 진보의 죽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의 씨앗으로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참담과 추악과 왜곡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이 쓸쓸한 봄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는다. 오웰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이라 했던 이 빼어난 르포르타주는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의 정치드라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증언한 고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페인 인민의 열망 편에 서려고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소련-스페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당하고 끝내는 죽음을 당했는지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 책보다 먼저 발표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에세이에서 소비에트를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합의 정치적 논리는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너무 따질 것이 아니라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 아래 인민 민주주의 지향은 부르주와 민주주의에 의해 차단되었다. 스페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식견이 너무 ‘오른쪽’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왼쪽’이어서” 처형당했다.

 

너무 먼 역사이야기인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 오웰의 책은 소비에트와 연결된 자신의 이해를 실리적으로 계산하는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과 언론들, 심지어 출판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한 세기 전의 상황이 2012년 한국과 너무 닮아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이렇게 ‘배신당한 혁명’으로 프랑코 독재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파시스트들에게 쫓겨 스페인의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나는 1980년대 파리에서의 망명시절 국제엠네스티 프랑스 지부에서 일하던 스페인 출신 2세 한 여성을 알고 지냈다. 스페인에서 쫓겨 온 그녀의 부모세대들은 그 무렵 이미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고 하나 둘씩 남의 땅에서 눈을 감았다. 동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백발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래, 우리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들은 끝까지 권력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고발서라기보다 제목 그대로 ‘찬가’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여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인간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웰은 그것을 망각 속으로 밀어낸 권력정치의 드라마를 고발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턱없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이같이 불편한 글을. “대여섯 살부터 작가가 되리란 걸 알았다”는 탁월한 작가 오웰과 달리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고된 짐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쓰는가? 우리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되찾고 싶어서다. 그 노래를 한 번 함께 불러보고 싶어서다.

 

오늘의 절망스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정당운동의 첫걸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희망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길을 잃게 되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언제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욕망으로 뒤바뀌고 진보정치가 권력정치의 주술에 갇히게 되었을까?

 

올해로 귀국한 지 꼭 10년이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과도 고스란히 겹쳐지는 이 10년 동안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왔다. 그리고 진보정치와 조직노동이 스스로를 ‘민중권력’이라 강변하던 그 시간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그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나는 왜 쓰는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인간의 고통과 시간을 건너뛰어 자유주의-진보주의 연합을 이룩한 저들의 허위와 몰락을 증언하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머물러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는 아직 이 노래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알지 못한다. 이 구절을 외는 것만으로 인간의 숭고함 속으로 성큼 다가가는 것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중졸도 안 되는, 기껏해야 지상에서 누린 지위가 봉제공장 재단사 보조밖에 안 되는 스물셋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겨준 노래...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쓴 「베를린에서 전태일을 보았다」는 제목의 시에는 제목 외에 전태일은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연이 바뀔 때마다 80페니히의 가격이 매겨진 건포도빵, 1마르크 20페니히의 출근길 맥주,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광장 앞에서 파는 5마르크의 기념품, 4마르크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눈동자 없는 눈’을 지닌 신들의 전시실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건 다름 아닌 노동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까지 완벽히 삼켜버린 물신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사물을 넘어 살아있는 인간 모두에게 가격을 매겨놓은 물신의 세계가 펼쳐놓는 매끄러운 스크린 위에 모든 것들은 풍경으로 존재할 뿐. 전태일이 그림자로서나 어른거릴 뿐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장막을 찢지 않고선 그도, 그가 사랑으로 껴안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아픔도 볼 수 없다. 이 물신의 세계에 파열을 내지 못하는, 그저 권력정치에 포섭된 노동조직이 전태일을 실체 없는 유령으로 만드는 까닭이다. 유령이 된 전태일이 노무현을, 나아가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놓은 자본과 권력, 이들과 만나지 못할 까닭도 없다.

 

지난 반 년 동안 기꺼이 나의 글의 첫 독자가 되어준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 그리고 젊은 벗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간곡한 제안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리가 재창당할 당의 이름을 <전태일당>으로 하자고. 그리고 <전태일의 집> 운동으로 오늘 권력정치에 질식당한 진보좌파운동의 새로운 길 찾기를 하자고.

 

좌파정당의 이름으론 낯선가? 전태일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사유화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전태일당>과 <전태일의 집>은 ‘망자亡者와의 연대’이며 배제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다가가 부둥켜안기 위해 물신의 세계에 저항하며 싸우는 정당의 정신을 당당히 선언하는 이름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으로 우리를 침탈한 데 머물지 않고 등록취소가 되자마자 곧 진보당으로 바꾸겠다는 저들에게 응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약속하기 위함이다. 전태일 자신이 그랬듯이.

 

절망할 일로 가득 찼을 스물셋 봉제노동자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고 탄식했을 때 그 희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돌아가기 위해’ 죽음도 무릅써야 했던, 그리하여 기어이 그가 만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태일은 버림받고 감추어진 자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랑이고 만남의 정신이었다. 연대는 내게 넘치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부족한 걸 떼어주는 것이다. 늘 배고픈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주기 위해 버스비를 아껴 수유리에서 청계천 평화시장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던 전태일의 발걸음을 정의하는 말이다.

 

진보신당 대표가 되어, 지금도 어색하기만한 옷을 입고 주로 했던 일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이런 구호들 속에서 나는 ‘연대’라는 말만 들으면 늘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력감과 미안함,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말일까? 단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걸 의미하는가?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두 번 버림받은. 한 번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그리고 다음에는 정규직 노동조직에 의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 대해, 그들의 노조가입조차 배제된 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정규직 노동조직 자신이 배제한 비정규직의 존재를 자본과 권력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은 염치없는 정치적 알리바이 아닌가.

 

우리가 오늘 전태일을 다시 호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대의 노동현실에 가로놓인 이 이중의 배제구조를 외면하고 외치는 노동정치에 대해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허위의 현실에 안주해온 죽은 진보를 이제 땅 속에 묻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어이 전태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남도의 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 매달린 절망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간 버스에 ‘희망’이란 말이 붙은 것을 나는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는 전태일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고, 그리하여 죽은 전태일이 죽음을 무릅쓰려는 김진숙을 살려낸 기적이다. 김진숙의 기록 『소금꽃나무』는 내가 읽기에 ‘망자와의 연대’이다. 크레인 위에서 떨어져 죽어간 동료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기어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던 그녀가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부활은 기적을 통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 진보의 죽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기적 아닌가? 이제 우리가 만들 당의 이름이 전태일, 그의 이름이면 안 되는가? 우리의 당의 정신이 온통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신인 그의 정신이면 안 되는가? 평생 집이 없었던 그의 이름으로 집을 짓고 배제되고 쫓겨나고 상처받은 노동자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게 하는 일에 전력하는 일, 그게 새로운 정당운동이면 안 되는가?

 

오늘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그것이 우리가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존재이유라고 자위해선 안 된다. 우리 자신은 검게 드리운 권력 정치의 그림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일까? 진보정당이란 몸통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우리들은 과연 민중의 고통을 따라 움직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설움 받는 평화시장 어린 동심을 지켜보던 그의 눈을 닮은.

 

진보신당을 변명하며 목 메이던 젊은 벗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 한편 발췌해 남긴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망자와의 연대’의 의미이다.

 

 

“경기대에서 「조국은 하나다」/ 육성시낭송 듣고도 울지 않고/ (……)/ 불 꺼진 취조실마냥 어둡던 망월동/ 그의 하관을 보면서도 이 악물었는데// 그를 묻고 돌아온 서울/ 심야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다/ 다리 난간에 덜덜거리는 허리 받치고/ 헤머드릴로 아스팔트 까며 야간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을 본 순간/ 이 악물며 울고 말았다/ 그가 간 것보다 그가 사랑했던 한 사내가/ 저물어가는 것이 서러웠다”

―송경동의 시, 「김남주를 묻던 날」

 

 

 

 

 

*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생각난 예전 홍세화 대표님의 글


 

 

 

 

 

#1. 은근과 끈기가 미덕인 나라라서 그런가. 새누리당의 선전과 낮은 투표율은, 민통당의 삽질과 기타등등에도 비롯하고

 

결국 이 나라의 수준을 보여준다. 그래도 진보신당은 살아남길 바랬는데.

 

 

#2. 가장 큰 승리자는 MB, 그리고 박근혜. '이명박근혜'란 단어가 승인받은 셈이니까. 박근혜 대통령여왕폐하가 강림하시겠구나.

 

 

#3. MB 4년차에 이런 결과라는 건, 지금이야말로 절망할 때라는 거다. 애써 괜찮은 척 '새누리당의 승리가 아니라 민주당의 패배'

 

라느니 따위 말장난하지 말고. 승리한 새누리당과 죄씻김받은 MB의 강고한 지지층에 절망하고, 또 반대편의 오합지졸 세력들과

 

여러모로 제한적인 그 지지층에 절망하고.

 

 

#4. 패배에 대한 귀책사유를 여기저기서 찾나본데, 아직 그 '패배'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의 공약수조차 찾지 못하겠다.

 

선거가 끝나도록 '반MB' 이외의 공약수를 키워내는데 실패한 야권의 무능은, 사실 그 역사가 길고 오래다.

 

 

#5. 말뿐인 '반MB' 구호의 거품이 걷혔다. 누구나 씹고 다니는 게 유행이던 껌조각이 공급과잉에 이르자 일부는 그에

 

음모론과 집단주의를 짬뽕시켜 더욱 자극적인 껌이나 팔고 다니다가 금배지 줏어먹을 뻔하고.

 

 

#6. 분명한 사실 하나, 연초만 해도 새누리당은 굉장한 위기감에 휩싸였었다는 거. 뭐 하나 제대로 해명하고 책임진 것도 없이

 

4/11이 왔는데, 심지어 계속 악재가 있었음에도, 그들이 과반수를 넘보는 제1당으로 건재하다는 건..지금은 절망할 때란 거다

 

 

#7. 김용민 패배와 기타 이슈에 대해 언론의 노골적 편향을 문제삼기도 하지만, 애초 그가 세습받은 공천이 원죄.

 

거리의 재담꾼이 얻은 인기를 선거에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겠다 여겼던 얄팍한 계산 혹은 무개념 역시.

 

 

#8. 나꼼수가 스마트폰처럼 사람들을 감각적이고 '스마트'하게 만들어 성찰하고 숙고하는 힘들고 난망한 정공법을 기피하게

 

만들었다면, 민통당과 통진당은 스마트하지도 못한데 각자의 정공법을 대중에게 한목소리로 전달하는데 철저히 실패했다.

 

각자의 정공법이 애초 있는지도 의문.

 

 

#9. 이토록 대안없는 민통-통진당 연대에나마 표를 준 사람들의 갑갑함과 열망을 봐서는 그들 지도층에 분노가 치밀고,

 

이토록 대안없는 정당만 짝사랑하며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이 표를 주지않은 그들 '보수적인' '진보'지지층에 분노가 치미는 거다.

 

 

#10. 박근혜 대통령여왕폐하가 납실 거 같다. 빨간당과 '이명박근혜'의 견고한 지지층에,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배부른

 

민통당-통진당 지도층에, 대안도 못내놓는 그들만을 짝사랑하는 민통당 지지층에, 그리고 투표조차 나서지 않게 되어버린

 

뿌리깊은 무기력과 냉소에 절망해버렸다.

 

 

#11. 더 짜증나는 건, 박그네가 우야튼 현 정치인들 중 대중에 소구하는 정치적 감각이 돋보이고 있다는 점. 단순히 애비의

 

후광만은 아니란 거다. 그 와중에 투표율도, 투표결과도 모든 게 이지랄인데다가, 대안이 될 진보신당이나 녹색당은 해체..

 

 

#12. 투표결과가 51:49던 99:1이던 이긴 자가 국회에 입성한다. 이제 4년간은 이 결과로 만들어진 국회가 굴러갈 텐데, 이런

 

상황에서 야권이 대통령을 만들어낸들 얼마나 뭘 할 수 있을까. 만들어내봐야 노무현의 내외적 한계가 그대로, 혹은 그이상일 텐데.

 

 

#13. 4년간 누적된 MB에 대한 피로감과 반발심을 날려버릴 정도로 무능력하고 무기력했던 야권. 역사에 죄를 짓는다는 건

 

아마도 이런 걸 말하는 거다. 청와대는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을 환영하고 나섰다.

 

 

 

 

 

 ⓒ 공주님의 소꿉놀이 [손문상의 그림세상] 정수장학회 이야기 /손문상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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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2012년 3월 16일(금) AM 10:00시부터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유신공주' 박근혜에게 
독재자 박정희 시대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주장에 대해
논리적인 근거를 들어 반박해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 주최 : ytzsche(이채, 異彩)

● 제공 : 초대장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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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진보신당 대표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13000개의 바위를 밀어 올리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에게 띄우는 편지

“시지프스가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이 돌아오는 동안이고 멈춰 있는 동안이다. 바로 바위 곁에 있는 기진맥진한 얼굴은 이미 바위 그 자체인 것이다! 나는 이 사람이 무거운, 그러나 한결같은 걸음걸이로 끝도 알지 못하는 고뇌를 향하여 다시 내려가는 것을 본다. 그의 고통처럼 어김없이 되돌아오는 휴식 시간, 이 시간은 의식意識의 시간이다. 그가 산꼭대기를 떠나 신들의 소굴로 차츰차츰 빠져 들어가는 순간마다, 그는 자기의 운명보다 우위에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의 바위보다 더 강하다.”

―알베르 까뮈, 《시지프스의 신화》 중에서


뒤늦은 새해편지

당원 동지 여러분.


설 연휴가 지난 지도 오래고, 2월도 중순을 넘어가고 있으니 새해인사를 전하기엔 새삼스런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본디는 ‘신년사’라는 걸 통해 동지 여러분께도 말씀을 건넬 계획이었습니다. 오래된 관행도 그렇고, 새해의 첫걸음을 응원하고 희망어린 비전을 제시하는 게 마땅한 도리라는 사람들의 권고도 있었지요. 어느 해인들 그렇지 않은 때가 있었겠습니까만, 너나할 것 없이 강조하는 2012년의 중요성 때문에 더욱 그것을 피할 수 없는 숙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저는 신년사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순간 과장되고 거짓된 말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무렵, 이른 아침 집을 나와 경의선 기차역까지 걷는 동안 문득 신년사를 편지글로 고쳐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밤에 쓴 편지를 아침에 다시 읽지 말라”고 어느 시인이 말한 적이 있지요. 결국은 못 부치게 될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 경구를 이번에는 잊기로 했습니다. 그것이 절망이든 희망이든, 저는 제 속에 깃든 진심을 차라리 드러내는 쪽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늦은 밤에 쓴 이 편지를 아침에 읽지 않은 채 여러분께 곧장 띄웁니다.



시지프스를 떠올리다



모든 사람이 행복하거나 그 반대인 시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최근 20년 동안 너도나도 ‘위기의 시대’를 입에 올리지만, 하나의 위기가 지나고 나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람들의 범주는 급속히 좁아지고 불행을 감내해야할 사람들의 그것은 같은 속도로 확대되어왔습니다. 23년 만에 영구 귀국한 2002년 1월로부터 지난 10년 동안 그 격차라는 것이 이 정도까지였나 하는 점을, 고백컨대 저는 최근에서야 비로소 깊이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지난해 11월 당대표가 되고 나서 3개월 동안 저의 일상을 중요하게 차지한 것은 불안정 노동이라 부르는 비정규 노동자들, 정리해고된 노동자들의 투쟁 집회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이 3개월 동안 다닌 곳이 지난 10년 동안 갔던 곳보다 많지 않을까 싶네요. 그냥 다닌 게 아니었습니다. 발언 순서를 기다리면서는 왜 그리 긴장되는지, 또 마이크 앞에서는 다른 분들처럼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외치지 못하고 자꾸만 허둥대는 자신이 또 얼마나 어색하게 느껴지는지...


세상에 이리 많은 싸움이 있는데, 세상은 왜 이리 조용한가를 생각하면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이 길고 지루한 싸움의 끝을 대체 누가 가늠이나 할 수 있을까요? 네 번의 겨울을 맞으며 1500일 가까이 싸우고 있는 재능교육 선생님들의 거리농성장을 찾던 날이었습니다. 이 막막하고 외로운 싸움을 목도하고 나오면서 저는 문득 그리스 신화의 시지프스를 떠올렸습니다. 산꼭대기까지 무거운 바위를 끝도 없이 되풀이해서 밀어 올려야 하는 형벌을 받은 시지프스. ‘그래서 어쩔 건대?’라는 자본의 비정한 얼굴에 맞서 부르튼 두 손으로 기약 없이 바위를 굴려야 하는 부조리한 운명을 감내해야 하는 이들이 어찌 이분들뿐이겠습니까 마는.


그러다 또 문득 저는 진보신당 당원 동지 여러분을 생각했습니다. 다른 이들이 하루아침에 뒤로 하고 떠난 당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는 여러분이 바로 이 시대의 시지프스가 아닌가요? 냉소와 무관심과 외면에도 불구하고 두 팔을 뻗어 당을 지탱하고 다시 산 아래로부터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오르고 있는 우리의 운명이 시지프스의 그것 아닌가요?


1% 대의 지지율, ‘통합’이란 이름표를 단 야당들의 틈바구니에서 소외된 원외정당의 설움, 언론의 외면, 고집불통이란 딱지, 명망 정치가들이 남기고 간 부정적 유산과 상처, 무정한 옛 동지들에게 ‘진보(신)당’이란 이름마저 도용당하는 비애, 이당 저당 가릴 것 없이 ‘좌클릭’이요 진보를 자처하는 현실, 조합원들의 민주적 선택권을 몰수하여 3자통합당에 대한 변형된 배타적 지지방침을 관철시키려는 민노총에 대한 울분……. 기나긴 지난 1년여의 통합논쟁으로 지치고 힘겨워 주저앉은 당원들과 지역당협이 적지 않다는 소식을 듣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왜 여기에 남아있는 것일까요?



자존감自尊感에 대하여


당원 동지 여러분.


13000개의, 저마다의 바위를 밀어 올리고 있는 바로 여러분이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입니다. 알베르 까뮈처럼, “산꼭대기를 향한 투쟁 그 자체가 인간의 마음을 만족시키기에 충분하다”고도, 그러므로 “우리는 행복한 시지프스를 상상해야만 한다”고도 차마 지금은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제가 여러 글에서 했던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어려운 게 아니라, 어려운 길이기에 우리가 가야 한다.” 이 말도 지금은 잠시 유보해 두겠습니다.


그러나 이 말 한마디는 반드시 해두고 싶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제 <진보신당>입니다. 우리에겐 13000 개의 진보신당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선 ‘정치적 자존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는 자본주의문명 자체의 위기가 눈앞에 전개되는 상황에서 정작 자본주의 이후를 대비해야할 진보정당은 소멸의 위기에 처한 슬픈 역설을 목격하고 있습니다. 여도 야도 ‘좌클릭’이 유행인데 우습게도 왼쪽에 있던 사람들마저 몸은 ‘우클릭’하는 이 역설의 시대를 우리는 어떻게 넘어설 수 있을까요? 몸과 머리가 따로 노는 이 어처구니없는 자기분열의 시대에 그저 목이나 어루만지며 안심하자는 이야기는 물론 아닙니다.


정치 혹은 정당은 자신의 정치적 자존감에 존립합니다. 자존감은 우선 시간과 상황의 변화에 따라 요동치지 않고 자기정체성의 현재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끊임없는 확인하려는 노력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누구인지,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물음을 어떤 경우에도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이 질문이 누락된 정당은 누군가의 말장난처럼 ‘가설정당’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당일 수 없습니다.


정치가 자존감이 아니라 수數나 세勢에 존립한다고 믿는 사람들의 눈에는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진보신당 13000 당원들은 불가사의한 존재들로 보일지 모릅니다. ‘끝없는 패배’가 두려운 이들에게 정치적 자존감이란 것은 그저 던져버리고 달아나고픈 거추장스런 시지프스의 바위로 비쳐졌을지 모릅니다. 두 가지의 아주 다른 길이 있는 것입니다. 산꼭대기만을 쳐다보다 바위를 버리고 달려가는 ‘상층연합’의 길이 있는가하면, 바위를 밀어 올릴 때나 바위를 찾기 위해 산 아래를 향해 걸을 때나 묵묵히 자신의 발끝이 향하는 길을 보고 걷는 ‘하층연합’의 길이 있습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가운데는 제가 당대표가 된 직후 어느 인터뷰 자리에서 했던 말을 기억하는 분이 계실 겁니다. 진보신당 당원들과 저의 힘겨운 노력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방下放’을 선택하여 새로운 진보정당의 밀알이 되겠다는. 처음부터 패배주의로 시작하느냐는 지적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사실은 이것은 안토니오 그람시의 1926년 <리용 테제>를 떠올리며 했던 말이었습니다.


한때 사회당(PSI) 좌파의 지도자였던 무솔리니의 파시즘의 광풍 앞에서 반半합법적 존재로 탄압받으면서 궤멸의 위기에 처한 이태리 공산당(PCI)은 자국 내에서 당대회를 열지 못하고 프랑스 리용으로 당원들을 소집하지요. 그람시는 이 당대회의 테제에서 5만 당원에게 ‘하방’을 명령합니다. “북부의 노동자와 남부의 농민을 조직하고 그들의 혁명적 동맹을 공고화하라”는 이 테제에 따라 당원들은 민들레 씨앗처럼 공장으로 농촌으로 학교로 퍼져나가 삶의 근거지마다에서 진지를 구축하지요. 그리고 파시즘의 몰락 이후 당은 50만 당원을 가진 서유럽 최대의 대중적 좌파정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동지 여러분.


벌써부터 머지않아 다가올 4월 총선에서 진보신당이 살아남을 것인가 해산될 것인가를 놓고 말들이 분분합니다. 진보신당의 존재가 자신들의 뒷덜미를 잡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간절히 희구할지도 모르지요. 여기에 판돈을 걸어야 한다면 아마도 후자 쪽에 수북이 쌓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패배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어렵게 존속시키려던 당은 해산되고 우리는 다시 시지프스처럼 산 아래로 무거운 발걸음을 다시 옮겨야 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민들레가 뿌리째 뽑혀도 갓 털을 단 씨앗들이 흩어져 큰 숲을 이루듯, 당이 해체되고 진보신당이란 이름이 사라져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13000개의 진보신당으로 남아있다면 머지않은 시간에 13만의, 130만의 진보정당이 출현할 것입니다. 그람시는 감옥에서 병사했지만, 그의 두뇌를 20년 간 작동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호언하던 파시즘 권력은 사라졌어도 그의 《옥중수고》를 우리가 지금 읽고 있습니다.


어떻게 져야 할까요? 아니면 어떻게 이겨야 할까요? “싸움은 승리를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시라노>의 유명한 마지막 대사입니다. 저는 두렵지 않습니다. ‘13000개의 진보신당’이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가 확신할 수 있다면, 총선이라는 한 번의 전투에서의 승리와 패배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갖지 않습니다.


하나의 씨앗과 한 알의 밀알에 우주가 있듯이, 여러분이 각각의 존재가 진보신당일 수 있다면 말입니다. 이것이 자존감의 두 번째 비밀입니다. 씨앗과 밀알이 썩어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에서 보듯이, 자존감은 ‘자기다움’에 대한 치열한 물음이자 ‘자기해체’를 무릅쓰는 용기입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다움에 대한 확신이 있는 사람만이 자기해체의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진보정당을 위한 지난한 진보좌파연석회의의 과정은 바로 이 ‘찾기’와 ‘만들기’의 동시적 진행과정입니다. 우리가 우주를 품고 있는 밀알의 자존감이 있다면 무엇을 주저하고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이번 임시당대의원대회의 주요 안건 가운데 하나인 사회당과의 통합문제도 그렇습니다. 긴 시간을 자본주의 극복을 위해 분투해온 사회당과의 통합은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사고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사안입니다. 그것은 정체성이 유사한 이웃 당은 소외시키면서 어제까지 한 지붕 아래 있을 수 없다던 정당과는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손을 잡는 정치공학을 끝내고 이제 자존감의 정치를 시작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보여주는 실천이며, 보다 넓은 진보좌파정당 건설로 나아가는 정치조직의 자기정비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창당을 모색하는 녹색당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유와 성장과 소비가 미덕인 시대에 이 지배적이고 주류적인 가치와 씨름해온 생태주의자들은 또 다른 시지프스들입니다. 오늘의 신자유주의 교리와 자본의 독재가 강요하는 삶이 결코 ‘올바르지도’ 않고, 앞으로 온전히 ‘가능하지도’ 않은 것이라면 자본주의 극복에 있어 좌파와 녹색은 전략적 동맹관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수는 물론이고 진보까지도 사로잡아온 ‘성장의 신화’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우리에게는 과감한 자기해체의 모험과 결단과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녹색과 좌파가 서로의 보완재로 보지 않고 내적 일치를 향해 나아가는 ‘가치의 연대’가 이 시대 한국의 진보좌파 앞에 놓인 가장 중차대한 숙제라고 인식된다면, 우리는 좀 더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겸허하고 섬세한 선거연대를 시도하되, 일시적인 비대칭성이 주는 난관 때문에 비관하지 맙시다. 시간문제일 뿐 ‘녹색좌파’의 새로운 전망은 기어이 우리를 하나 되게 할 것입니다.


배제된 자들의 서사전략


불과 얼마 전까지 평당원이었던 사람이 당대표의 역할과 업무를 파악하기에도 석 달이라는 시간은 넉넉지 못합니다. 그런 제게 총선과 대선이 있는 이 2012년의 초입은 일찍이 통과해 본 적이 없는, 캄캄한 입을 벌리고 있는 긴 터널의 입구에 서있는 것 같아 현기증이 느껴질 지경입니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에다 이명박 정권의 실정까지 겹쳐 어수선한 정국에서 집권 보수세력의 재집권이 어려워지고 자유주의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야당의 총선 승리와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면 2013년 이후의 미래가 밝을 것으로 이야기하는 지식인들도 있지만, 그러나 그이들의 말처럼 그런 상황이 노동자들의 처지에, 진보정당의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다줄 수 있을까요?


예컨대 세계적 차원의 경제위기가 거대한 파고로 밀려올 때 수구적 보수세력인 새누리당만이 야당인 상황이 우리 사회에 유리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람시는 파시즘을 가리켜 “사라져가는 옛것을 대체할 새로운 것의 출현이 지체되는 위기 국면에 등장하는, 다양한 병적 징후들” 가운데 하나로 규정한 바 있지요. 과거 어설픈 당근과 가혹한 채찍 사이에서 사회적 격차가 오히려 고착되었던 이른바 ‘민주정부 10년’ 동안처럼 자유주의 정권 주도의 위기관리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파쇼적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지요.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정당은 그러한 상황에 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고 말한 이도 그람시였지요. “선장은 배가 난파되었을 때 자신의 배를 떠난 최후의 사람이 되어야 하며 다른 모든 사람들이 무사하게 된 후에만 배를 떠날 수가 있다”고 말한 이도. 기억들 하시는지요? 여러분께 드리는 첫 인사글 말미에 “두려운 것은 고통 자체가 아니라 의미 없는 고통”이라고 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말을 제가 인용했던 것을. 부조리한 운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이 시대의 시지프스들을 떠올리며 그때의 그 말을 다시 반추해 봅니다. 고통과 번민에서 곧바로 어떤 의미든 찾고자 하는 것, 이것은 아마도 의미 없는 고통을 하루하루 끝도 없이 이어가야 하는 이들의 삶에 오래 가까이 다가가지 못했던 지식인적 사고가 지닌 허영 아니었나는 생각에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러면 어디에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요?


“눈물은 아래로 흐르고 숟가락은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천하를 논하는 ‘큰 정치’가 따로 있고, 삶의 고통을 다루는 ‘작은 정치’(혹은 민생 정치라 부르는 것)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큰 정치’에서 말해지는 희망을 위해 목전의 삶의 불행과 고통을 감수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인다면 그것은 다만 거짓일 뿐입니다. 삶을 이어갈 수 있는 숟가락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래로 흐르는 눈물을 감추어야 하는 사람들의 생존의 최전선에서, 아래로 전가되는 불행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로부터 정치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것, 바로 이것이 진보정치여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위기의 시대에 대응하는 ‘아래로부터의 연대전략’입니다.


당원 동지 여러분.


여러 경로로 이야기한 바 있지만, 저는 우리 당의 비례대표전략을 <배제된 자들의 서사 전략>이라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억압당하고 묵살되는 것은 물론이고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조직으로부터도 소외되거나 외면당해온 ‘배제된 노동’을 비례후보의 전면에 내세우고 이들이 만들어온 삶과 사랑과 투쟁의 서사를 무기로 이 시대의 자본권력과 지배이데올로기와 싸우는 것을 이번 총선의 중심전략으로 삼으려 합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진보신당이 맞이했던 다른 어느 때보다 가혹한 조건에서 치르는 선거가 될 것입니다. 명망정치인들이 다 빠져나간 자리에 이제 무명의 척탄병들이 서 있습니다. 초라한가요? 패배가 너무 불 보듯 빤한가요? 이렇게 생각하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당의 지역후보가 13000명이라면? 무명의 척탄병들 옆에 13000명이 나누어 선다면? 그렇다면 이번 선거가 이 시대의 난장이들과 시지프스들이 오만한 권력과 물신을 향해 돌멩이들을 쏘아 올리는 싸움의 장, 축제의 장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으시는지요?


여러분이 <진보신당>입니다. 우리 자신이 지닌 가능성을 미리부터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축소시키지 말아주십시오. 그저 부조리한 운명에 순응하는 존재로 여겨지던 시지프스는 까뮈를 통해 끝없이 패배하면서도 운명에 저항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위대한 존재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가 주목했던 것은 시지프스가 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려는 순간이고, 고뇌에 찬 얼굴로 잠시 정지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운명을 응시하는 시간이고 운명을 밀어 올림으로써 운명보다 한 뼘씩 우위에 서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알베르 까뮈로 편지를 시작했으니 그가 《시지프스의 신화》의 첫머리에 쓴 구절로 끝을 맺겠습니다.


오! 나의 영혼아,

불멸의 삶을 애써 바라지 말고
가능의 영역을 남김없이 다 살려고 노력하라!


진보신당 대표


공지영이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김진표 원내대표가 사전에 '날치기'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트윗을
리트윗한 이후, 민주당 대변인이 사실과 다르다며 해명하고 공지영의 사과를 요구해 문제가 되었다.
'사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날치기 통과 이후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사전에 알았건 몰랐건 결과적으로
별반 다를 게 없는 추이를 보인다.

단순히 당리당략 차원의 반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국민을 움직이고 감동시킬 수 있으려면, 나아가
진정 나라를 위해 한미FTA 통과를 저지하려면,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국회의원들이 뭘 해야 할 때인지는 명확하다.
그들이 여태 이야기한 대로 한미FTA가 그토록 중대하고 치명적이며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스스로 믿는다면.


물론, 그 이전에 노무현 재임 시절 추진한 한미FTA정책에 대한 반성이 앞섰어야 했지만. 지금 급한 것은
날치기 통과를 막고 한미FTA시대가 기정사실화되는 것을 막는 것. 입발린 수사처럼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국민들을 위해 금배지를 던져버릴 각오가 있다면,
지금 그걸 던져버릴 때 아닐까.

그리고 사실, 개인의 이해를 따져보더라도 이렇게 비상한 시국에 금배지에 연연않는 모습을 보인 국회의원이라면,
금방 다시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더욱 큰 지지율을 업고.



* 진보신당 논평.



김혜경 진보신당 비대위원장, “한미FTA날치기, 야당의원 총사퇴로 맞서 싸우자”

오늘 오후 3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린 ‘한미FTA날치기 무효 야5당 및 한미FTA범국본 연설회’에서 우리 당 김혜경 비대위원장은 야당 국회의원 총사퇴로 한나라당과 MB정부에 맞서 싸우자고 제안했다. 다음은 발언전문.


“지난 21일, 역사에도 없었고 있어서도 안되는 날치기 한미FTA통과가 있었다. 이 땅에 민주주의가 어디에 있나. 국민의 손으로 뽑아준 국회의원들이 국민의 생존을 나 몰라라 하고, 노동자, 농민, 서민이 죽을 수밖에 없는 한미FTA를 통과시킨 것이다.”


“우리 국민은 날치기 당했다.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우리 야당의원들이 모든 의사일정을 취소하고, 등원을 거부했다. 잘 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생각한다. 민주주의가 죽어 없어진 마당에, 민의의 전당이 아니라 독재권력인 한나라당이 득실대는 국회에 왜 우리 야당의원들이 있어야 하나. 내년 총선 몇 개월 남지 않았다. 저는 이렇게 주장한다. 야당의원들이 모두 국회의원 뱃지를 국민에게 반납해 달라. 그것만이 살 길이다. 이제 국회의원 총사퇴 결의를 통해 국민과 함께, 국민을 지키겠다는 결의를 보여달라. 부탁이다.”


“이 자리에 한미FTA저지를 위해 노력한 민주당 정동영 의원,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 그리고 국회에서 결의를 보여준 김선동 의원 모두 계신다. 정말 애쓰셨고 사랑한다. 그러나, 이제 우리 국민을 위해 아낌없이 의원직 사퇴를 부탁드린다. 의원총사퇴를 통해 한나라당이 더 이상 역할을 못하도록 국회를 해체시켜야 한다.”


“이번 사태를 몰고 온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우리 국민들이 이런 대통령을 뽑아서 모두 고통을 받고 있다. 2007년 허세욱 열사가 분신하였다. 한미FTA 시작이 돼지 말았어야 한다. 이제 원천무효와 이명박 대통령이 물러날 때까지 총사퇴한 의원들과 함께 이 나라와 민족을 구해내자.”


2011년 11월 24일

진보신당 대변인실

한미FTA가 날치기처리되고 나서, 트위터에 오른 사진 한 장이 이슈가 되었다. (@ 경향 인용)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및 대한민국과 미합중국 합의'라는 제목 아래로 재적 295인, 재석 170인, 찬성 151인,

반대 7인, 기권 12인이라는 표시가 보인다. 그리고 초록색은 찬성한 의원들의 이름들.

화질이 흐리긴 하지만 선진당은 기권을 했다고 하였으니 그냥 한나라당 의원 전원인 거다. 그 중에 눈에 띄는 이름들을 몇 개만

열거해 보자면, 강명순, 남경필, 박근혜, 송영선, 유정현, 홍준표, 황우여, 전여옥, 신지호, 고승덕..사실 따질 것도 없다.

한나라당은 농촌 출신의 한명 빼고는 전부 찬성을 했다고만 기억하자.

 

11·22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의 국회 날치기는 한나라당 홍준표 대표(57)의 감독하에 일사불란하게 이뤄졌다. 황우여 원내대표(64)는 야당이 눈치챌까 연막작전을 이어갔고, 정의화 국회부의장(63)은 본회의에서 총대를 멨다. 박근혜 전 대표(59)는 표결에 참여해 날치기를 측면 지원했다. (날치기 주역 4인방… 감독 홍준표, 연막 황우여, 총대 정의화, 지원 박근혜, 2011. 11. 22, 경향)
 
* 프레시안 한미FTA '날치기 의원' 151명 명단

1. 찬성 의원 (151명)

한나라당


강길부(울산 울주군) 강명순(비례대표) 강석호(경북 영양군·영덕군·봉화군·울진군) 강성천(비례대표) 강승규(서울 마포구 갑) 고승덕(서울 서초구 을) 고흥길(경기 성남시 분당구 갑) 구상찬(서울 강서구 갑) 권경석(경남 창원시 갑) 권영세(서울 영등포구 을) 권성동 (강원도 강릉시) 권택기(서울 광진구 갑) 김기현(울산 남구 을) 김동성(서울 성동구 을) 김무성(부산 남구 을) 김선동(서울 도봉구 을) 김성동 (비례대표) 김성수(경기 양주시·동두천시) 김성조(경북 구미시 갑) 김성회(경기 화성시 갑) 김세연 (부산광역시 금정구) 김소남(비례대표) 김영선(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김영우(경기 포천시·연천군) 김옥이(비례대표) 김장수(비례대표) 김정권 (경상남도 김해시갑) 김정훈(부산 남구 갑) 김태원(경기 고양시 덕양구 을) 김태호(경남 김해시 을) 김태환(경북 구미시 을) 김학송(경남 진해시) 김학용(경기 안성시) 김형오(부산 영도구) 김호연(충남 천안시 을) 나성린(비례대표) 남경필(경기 수원시 팔달구) 박근혜(대구 달성군) 박대해(부산 연제구) 박민식(부산 북구·강서구 갑) 박보환(경기 화성시 을) 박상은(인천 중구·동구·옹진군) 박순자(경기 안산시 단원구 을) 박준선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박영아(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박종근(대구광역시 달서구 갑) 박진(서울 종로구) 백성운(경기 고양시 일산동구) 배영식(대구 중구·남구) 배은희(비례대표) 서병수(부산 해운대구·기장군 갑) 서상기(대구 북구 을) 손범규(경기 고양시 덕양구 갑) 손숙미(비례대표) 송광호(충북 제천시·단양군) 신영수(경기 성남시 수정구) 신상진(경기 성남시 중원구) 신지호(서울 도봉구 갑) 심재철(경기 안양시 동안구 을) 안경률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기장군 을) 안상수(경기 의왕시·과천시) 안홍준(경남 마산시 을) 안효대(울산 동구) 원유철(경기 평택시 갑) 원희목(비례대표) 유기준(부산 서구) 유승민(대구 동구 을) 유일호(서울특별시 송파구 을) 유재중 (부산광역시 수영구)유정복(경기 김포시) 유정현(서울 중랑구 갑) 윤상현(인천 남구 을) 윤석용(서울 강동구 을) 윤영(경남 거제시) 윤진식(충북 충주시) 이두아(비례대표) 이명규(대구 북구 갑) 이범관(경기 이천시·여주군) 이범래(서울 구로구 갑) 이병석(경북 포항시 북구) 이사철(경기 부천시 원미구 을) 이상권(인천 계양구 을) 이상득(경북 포항시 남구·울릉군) 이성헌(서울 서대문구 갑) 이윤성(인천 남동구 갑) 이애주(비례대표) 이영애(비례대표) 이은재(비례대표) 이인기(경북 고령군·성주군·칠곡군) 이정선(비례대표) 이정현(비례대표) 이종구(서울 강남구 갑) 이종혁(부산 부산진구 을) 이주영(경남 마산시 갑)이진복(부산 동래구) 이철우(경북 김천시)이춘식(비례대표) 이학재(인천 서구·강화군 갑) 이한구(대구 수성구 갑) 이한성(경북 문경시·예천군) 이해봉(대구 달서구 을) 이혜훈(서울 서초구 갑) 이화수(경기 안산시 상록구 갑) 임동규(비례대표) 장윤석(경북 영주시) 장제원(부산 사상구) 전여옥(서울 영등포구 갑) 전재희(경기 광명시 을) 정갑윤(울산 중구) 정두언(서울 서대문구 을) 정몽준(서울 동작구 을) 정미경(경기 수원시 권선구) 정수성 (경상북도 경주시) 정양석(서울 강북구 갑) 정옥임(비례대표) 정진섭(경기 광주시) 조문환(비례대표) 조원진(대구 달서구 병) 조윤선(비례대표) 조전혁(인천 남동구 을) 조진래(경남 의령군·함안군·합천군) 조해진(경남 밀양시·창녕군) 주광덕(경기 구리시) 주성영(대구 동구 갑) 주호영(대구 수성구 을) 진성호(서울 중랑구 을) 진수희(서울 성동구 갑) 차명진(경기 부천시 소사구) 최경환(경북 경산시·청도군) 최경희(비례대표) 최구식(경남 진주 갑) 최병국(울산 남구 갑) 한기호(강원 철원군·화천군·양구군·인제군) 한선교(경기 용인시 수지구) 허원제(부산 부산진구 갑) 허천(강원 춘천시) 홍일표(인천 남구 갑) 홍준표(서울 동대문구 을) 황우여(인천 연수구) 황진하(경기 파주시)

자유선진당(5명)

김용구(비례대표) 이영애(비례대표) 이회창(충청남도 홍성군 예산군) 이인제(충청남도 논산시 계룡시 금산군) 조순형(비례대표)

미래희망연대(5명)

송영선(비례대표) 김정(비례대표) 김혜성(비례대표) 노철래(비례대표) 윤상일(비례대표)

2. 반대 의원(7명)

한나라당(1명)

황영철(강원도 홍천군 횡성군)

자유선진당(6명)

권선택(대전광역시 중구) 김낙성(충청남도 당진군) 심대평(충청남도 공주시 연기군) 류근찬(충청남도 보령시 서천군) 이진삼(충청남도 부여군 청양군) 임영호(대전광역시 동구)

3. 기권 의원(12명)

한나라당(11명)

김광림(경북 안동시) 김성식(서울 관악구 갑) 김성태(서울 강서구 을) 김재경(경상남도 진주시 을) 성윤환(경북 상주시) 신성범(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 여상규(경상남도 남해군 하동군) 임해규(경기 부천시 원미구 갑) 정태근(서울 성북구 갑) 정해걸(경상북도 군위군 의성군 청송군) 현기환(부산광역시 사하구 갑)

창조한국당(1명)

이용경(비례대표)



그런가 하면, 2010년 10월 '한미FTA 전면재협상을 촉구하는 한미의원공동성명'에 참여했던 서른다섯명의 의원들도 있었다.

[전문 및 참여서명부] 한미FTA전면재협상을 촉구하는 한미의원공동성명

조승수, 이정희, 강기갑, 정동영, 천정배, 김진애..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의원들이 참여하여 서명하고 성명을 작성했는데,

국회의원들을 싸잡아 비난할 게 아니라 이들의 이름은 한번 기억해두고 다음 선거때 투표소에서 되살려내야하지 않을까.



< '한미FTA 전면재협상을 촉구하는 한미의원공동성명' 참여 의원명단(무순) >

이낙연, 이정희, 김성순, 신건, 유성엽, 홍희덕, 최규성, 김춘진, 김영진, 박주선,

강창일, 문학진, 조승수, 주승영, 최철국, 강기갑, 곽정숙, 김재균, 김진애, 박은수,

안민석, 조배숙, 김영진, 이윤석, 유선호, 이종걸, 장세환, 권영실, 최문순, 유원일,

정동영, 이미경, 천정배, 김효석, 김재윤.

 


진보집권플랜 - 6점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가 말했다. "1948년 이래 가장 나은 정부가 1987년 이래 가장

나쁜 정부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이 역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노무현 정권이 어쩌다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일 거다.


왜일까. 왜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무현의 사후 1년이 지나고 어느 잡지에서

'우리시대 노무현의 정의'를 모으는 기사에 내가 썼던 한 줄이 여전히 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재임 시절에도 늘 생각하던 것.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ytzsche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다."

그를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진보적인 정책을 강제할만큼 그도 우리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덜컥 그가 대통령이 되고, 돌아갔죠.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실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 “노무현은 마라톤 42.195Km이다.”(2010.5.23, 시사IN)



이 책의 내용보다 더 궁금했던 것


사실 이 책을 읽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나름 2000년을 전후해 대학에서 '돌과 빠이'를

쥐었던 데다가 '진보신당의 (페이퍼)당원'이 내 정체성 중의 큰 부분이라 생각하는 '좌파'로서,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경제민주화, 교육과 남북 문제, 권력 등의 내용은 내게는 너무

'상식'적인 내용이었던 거다. 진부하고 심심했다.


꾸역꾸역 읽어나가며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렸다. 왜 이 책일까. 왜 갑자기 이 책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일까. 대담이란 형식의 특성상 정식화하고 나면 몇 페이지에 불과한

팜플렛 밖에 안 될 내용인데, 딱히 새로운 발상이나 아이디어도 없는데, 이런 정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란 쉽지 않은데, 대체 왜 사람들은 갑자기 '진보집권플랜'을 집어들었을까.


몇가지 음흉한 음모론이 있을 수 있다. 노회찬의 사상이 섹시하다며 그를 문화적으로

소비하던 이들에게 잘 생기고 젠틀하며 사상도 섹시한 조국 교수는 가히 팬덤을 몰고 올만한

인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서도 그랬으니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때론 경악스러운

트렌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와아~ 하며 우르르 달려가는,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

책들에 달려간 새삼스럽고 집단주의적인 구매 성향의 일환일지도. 너무 시니컬한가.



'진보'정권의 집권을 위한 공부 열풍

조금은 희망적이고 싶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거치면서, 준비되지 않은 집권이 결국

그를 죽이고 우리 모두를 질곡에 몰았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기적이나 요행처럼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저 구습에 대한

부정이나 분노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우리 모두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새로운 비전과 플랜이 필요한 거다. 뽀록구도 실력이라지만 그런 거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마는 거니까, 다행히도 이제는 '진보'라 자처한다 하여 '빨갱이'로 등식화되는 지경은

벗어난 거 같으니까 좀더 본격적이고 시끄럽게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거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국과 오연호가 말을 주고 받은 이 기록은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선,

최소한의 공유 가치를 품고 있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짜 리뷰는 여기부터.


그렇다. 이 책은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과서같은 이야기만 있는 듯

보이면서도 현실정치에 적용이 가능해보이는 수준의 정책적 구상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제언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조국 버전의 '진보'와 조국

버전의 '집권플랜'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건 또다시 민주당 위주의 일치단결,

한나라당 말고 될놈 찍자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불러내기 십상이란 점이다.


조국의 통큰 '진보'는 누구인가

그는 계속해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칭해 민주정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리고

현재의 야권을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런 전제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두 정권을 두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급격히 이루어진 시기라 평하기도 하고, 현재의 야권 중 민주당의

적잖은 의원은 수구/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DNA를 갖고 있다 평해지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의 입장 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적잖이 보인다. 한미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 일반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입장이나, '친미'와 '반미'를 넘어선 '용미'를

하자는 그의 그럴듯하지만 모호한 입장-이미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가 익히 말해온

개념이지만 역시 알맹이를 알 수 없는- 따위가 그렇다. 그리고 북한의 3대세습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진보'와는 균열을 그을 거 같다.


'진보'의 가치를 어떤 정치세력에게 의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집권,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 자체가 정당을 기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했기에

수구/보수의 집권기라고 말하듯 특정 정당이 집권해야 '진보'가 집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조국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그거다. 현재의 민주당이 집권하면 진보가

집권한 건가. 민주당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 김대중과 대통령 노무현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조국 버전 '진보집권플랜'의 한계

물론 조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여러 이슈에 대한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도록 대중이 강제할 수 있다고 말할 거다. 현재의 민주당은 부족함이

많지만 나름 '복지'니 '무상급식'이니 좌향좌하는 기색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말할지도

모르고 연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이 책에서 제기된 진보적인 의제들을 받아서

어쨌든 다음 정권에선 '진보'가 집권하자는 게 그의 취지이고 충정이라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돌아가는 판세는 이미 (당연하게도) 이 책에서 언급된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을 뛰어넘은 것 같다. 그는 고작 두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일반론 차원에서

언급하고 만 '복지를 위한 증세' 부분에 대해 지금 얼마나 많은 논란이 일고 지향이 갈라지고

있는지만 봐도 그렇다. 그밖에 해외파병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도 막상 현실에

닥쳐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책의 말미에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노선, 행태, 리더십을 진보 쪽에 가깝게 끌어갈 수 있을까. 그의 표현을 빌어 개혁

담당 민주당과 진보 담당 소수 정당들이 서로 이해를 조율하여 하나의 진영으로 단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가 밥먹여준다'는 걸 보여주고 '밥의 품격'을 논하는 게

사람들의 표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도 하다. 그나마 노무현의 정책 이상으로

진보적 가치에 접근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이 책의 진보정책 구상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반MB' 명분 하의 진보개혁 진영의 소통합 결과는.

결국 우려스러운 지점은 그거다. 이 책의 온갖 장점과 '진보'정책 일반의 지향을 세워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전파하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보집권플랜이 결국

지극히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 '반MB'로 뭉치게 되는, 혹은 뭉쳐야 한다는 절박하고

긴급한 요청으로 수렴되는 건 아닐까. 그의 '통큰' 진보는 MB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보수'를 뺀 여집합과 같기에, 쉽게 말해 한나라당 말고 될 놈, 민주당 찍으란

이야기로 돌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조국도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2012년이던, 2017년이던, 언제가 되었건

진보진영이 집권했을 때 제대로 해서 더이상 후퇴하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만들자는

게 그의 반복된 주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잉대표되고 승자독식하는 한국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통찰과 제안이 있어야 했지 싶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를 그렇게 느슨하고 통크게 써서 '진보/보수'의 구도로 한국 정치를 보는 것보다

'(진보)/중도/보수'의 구도로 읽는 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진보집권플랜'은, 그래서 시작점이다. 여기로부터 논의가 만발해서 다양한 집권플랜이

짜이고 더욱 가다듬어지도록 맨처음 부어진 마중물의 역할이라면 부족함은 없어보인다.







선거 후 말이 많았다. 오세훈이 강남통합구청장이라느니, MB의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느니, 다음 검색어 1위가

'레임덕'이라느니. 그리고 선거 전 '백욕이 불여일표'라느니 등으로 투표를 독려했던 MB에 대한 불만집단들은

나름의 성과로 조금은 안심하고 조금은 만족한 듯 보인다.


그 와중, 한명숙이 당선되지 못한 걸 두고 진보신당 노회찬이 왜 단일화(라고 쓰고 '투항'이라 읽는다)하지

않았는지 욕설과 불만이 들끓는다. 말인즉슨 노회찬이 완주한 때문에 한명숙이 석패하고 말았다는 거다.

솔직히 난 민주당이 MB의 대안이라 생각지 않는다. 민주당은 2인자 놀이 중이다. 민주당의 프레임, 정책,

마인드나 한나라당의 프레임, 정책, 마인드는 사실 오십보 백보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놓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2인자 놀이중이지만 (엄연히)

거대 기득권집단인 그들이 '진보'라는 탈을 쓰고 세력을 회복했다 치자. MB에 질려버린 사람들의 열망이

모아지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모아져서, 그들이 막말로 차기 대선에서 수권했다 치자.


그러면, 뭔가 바뀔까. 김대중, 노무현. 분명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적잖은 발전이 있었지만, 또한 그게

그네들의 한계였다. 절차가 완비되고 나면, 혹은 절차를 완비하기 위한 마인드가 무엇인지의 문제. 내용상의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지향이 없이는 방황하거나, 회귀한다.


한명숙,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의 시위를 경찰력도 아닌 군인들이 투입되어 진압했을 때 아무런

유감 표명도 없이 적법했다 강변했던 사람이다. 그게 민주당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적대적 공범자'들이다.

그들은 같은 기득권을 공유하는 풀 내에서,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말싸움으로 서로를 차별화하며-대개 그건

불분명하기 짝이 없어 언제든 당을 옮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만-국민을 기만한다.


그리고 남는 건 사람들의 회의. 정치는 나와 관계없어. 누가 되나 똑같애. 바꿔봐야 똑같더라. 정치하는 놈들은.

욕심으로야 '진보X당'은 그렇지 않아, 아직 우린 제대로 된 대안 정당을 만나지 못해 그래,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무리일 듯 하고, 최소한 그렇다. 민주당을 뽑아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 얼마나 바뀔까.


좀더 까놓고 말해서, 김대중과 노무현 치하에서는 행복했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 물론 정치적인 면에서

좀더 성숙된 민주주의로 진전했다. 그건 맞지만, 거기서 실제 생활에까지 파급되지 못하는 민주주의였다. 그건

그들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한계이자,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그려내는 '민주주의'의 한계.


그 와중, 이명박은 변하지 않는다. 벌써 프레임이 조작되고 있다. 강남통합구청장 오세훈은 (조선일보에 따르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차차기 대선후보이자 유례없는 재선 시장이 되었다. 기실 조중동 언론에서 이토록 엄살을

피우며 여권을 압박하는 건, 차기 정권을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들이기 위한 엄포용.

그리고 이명박은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며 경제에만 몰두하겠다' 한다. 소나기만 살짝 피하고 다시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다. 자, 선거끝났으니 이제 셧업유어마우스.

귀에 삽박았다.


깝깝한 이야기다. 깝깝하고 민감하고 편향된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궁금하다.

민주당이 내세운 '노무현 정신'이란 게 포인트가 뭔지, 예컨대 한명숙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뭐가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민주당 아니면 한나라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현재의 정치지형이 언제쯤이나

좀더 열린 지형으로 바뀔지.





사회악들을 위한 도구가 비단 '채찍'만은 아니다. 보수라는 껍데기를 쓰고 결국 제밥그릇 챙기기,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없는 넘들도 그렇고, 마치 한 사람의 망자가 진보의 표상이자 모든 가치인 양 2인자 놀이중인 넘들도 그렇고,

그 와중에 비정치적인 양 X-Man 놀이중인 관리위원회니 시니컬하고 시크한 척 하는 사람들도 그렇다.


그들을 위한 도구가 꼭 '채찍'일 필요는 없다. (사진은 2010 아랍문화축전 리비아 공연 중 팜플렛 촬영)

그래서는 아니다. 이건 선거운동은 아니고, 그냥 오늘 문득 떠오르는 숫자, 아마도 내일까지 맘에 맺혀 있을 것

같은 숫자 하나를 포스팅하고 싶어서일 뿐이다.

은근히 많다. 계산기 위에, 키보드 위에.

전화기 위에.

그리고 달력 위에.

심지어는 골치 아픈 오후에 '일트윗시간'동안 해치워버린 건망고 포장지에도 그 숫자가 떠올랐다.

'Knowing'이란 영화가 오버랩되는 순간. 아...그렇구나. 그렇게 되야 하는 건 맞지만, 정말 그렇게 되겠구나.

(투표만 한다면.)

사무실 계단에 숨어있던 숫자가 화살표를 타고 올랐고,

맘먹고 찾아본 일력의 7월 7일까지.

투표로 심판 제대로 못하면 이 술 일곱 병, 마침 또 7병이다, 이 술 다 먹고 나면 생길 숙취보다 더 지독한

놈들과 지독한 세월을 보내야 할 거다. 작정하고 나쁜 새끼들, 그리고 2인자 놀이에 빠진 놈들, 비정치적인 듯

치사하게 정치적인 사람들과 함께, 시멘트 천국 토건왕국에서.



사실 별로 내키지는 않는다. 사방에서 (남들보다) 좀더 빨리, 좀더 높이 뛰라고 재우치는 상황에서 굳이 새해

다짐까지 좀더 앞당겨서 해보자니, 왠지 뒤숭숭하고 어영부영 지나야 제맛인 연말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다.

그냥 이건 전적으로 최근 무지하게 뒤엉킨 스텝을 밟으며 온통 헝클어져버린 일상을 살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반성, 그리고 미처 스텝을 추스를 짬도 없이 다가와버린 연말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균형을 잡아보려

쥐어짜보는 안간힘같은 거다.


..뭐, 약간은 그런 효과도 노린다는 걸 부정하진 않겠다. 어차피 새해 소망따위 작심삼일, 새해들어서 삼일만에

쓰디쓴 자기모멸과 시니컬한 배째라 멘트 수렁에 빠지기 보다, 새해 들어서기 전에 조금은 워밍업도 해보고,

과연 이게 될만한 다짐인지 아닌지, 간도 볼 수 있는 훌륭한 유예기간인 거다. 게다가 굳이 새해소망으로

다짐씩이나 할 만한 것들이라면 굳이 새해되면서부터 시작할 이유도 없는 거고.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1. 걷거나, 자전거타고 출퇴근하기.

가을에 산 삼각형 자전거, 출장 한번 다녀오니 쎄~하니 추워진 날씨 덕에 얼마 타지도 못하고 겨울이 됐다.

이년차에서 삼년차로 변신하는 시기, 그간 억눌러온 허릿살이 조금씩 반역의 붉은 깃발을 드높이는 바 운동이

절실해지고 있는 시점인 거다. 날씨가 춥거나 비오거나 눈오거나 하면 걷기로, 기타의 경우에는 자전거로.

애초 자전거 살 때 버스값 들어갈 거 모아서 자전거를 사겠노라고 큰소리쳤던 터에. 비록 빡세게 걸어서 30분이

꽉 차고, 사무실에 오르는 엘레베이터 안에선 몸에서 김이 펄펄 날 지경이긴 하지만 우선은 걷고 자전거타보기.


2. 영어 & 제2외국어 말하기 공부하기.

어설피 '영어공부', '중국어공부', 요래봐야 아무것도 공부 못하는 거다. 그냥 실용적인 차원에서, '영어 말하기

& 제2외국어 말하기'에 집중하는 게 필요하다. 워낙 영어 잘하는 사람이야 깔렸으니 치이지 않을 정도로는

해야 할 텐데...제길. 게다가 제2외국어로 대체 뭘 배울지는 아직 맘이 세워지지 않아서 문제다. 조금이나마

하던 걸 계속 하자면 중국어 정도일 텐데, 사실은 일본어나 스페인어를 새로 배우고 싶은 맘도 동하고 있고.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우선 영어부터 어떻게 좀. 2001년 맨하탄에서 알바할 때 '나쁜 영어'를 배우지 못해

한마디 대거리도 못했던 수모는 아직도 생생하단 말이다. 사진은 쌍둥이빌딩 무너지기 며칠전.


3. 색소폰 레퍼토리 12곡 만들기, 여차하면 색소폰 사기.

작년 10월께부터 배우던 알토색소폰. 따지자면 배운지 일 년이 넘었다지만 일주일에 고작 한번 점심시간때

45분 수업, 거기다 역시 일주일에 한번 될까말까한 개인연습시간인지라 우스운 실력이다. 색소폰을 빌려주며

연습시켜주는 곳이라 아직 색소폰도 안 샀으니 말 다한 거다 실은. 그래도 선생님 왈 다른 아저씨들은 색소폰

기본 조금 배우고 바로 '성인가요'로 넘어가지만 형님은 마침 '초견(악보를 보고 바로 읽어내리며 연주할 수

있는 능력)'도 좋고 재지한 감도 있고 하니 제대로 재즈를 해보자고, 나름 탄탄하게 기본기를 닦고 있는 중.

이제 대략 연말께부터 레퍼토리 만들기에 집중하려 했으나 워낙 이런저런 점심약속이 많아 한달 쉬기로 하고

내년 1월부터 다시. 한달에 한곡, 그렇게 연습하다가 집 가까운 곳의 색소폰 동호회 같은데 찾아봐서 색소폰

사서 독립할 예정이다.


4. 수영 배우기(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운동신경 부족증에 시달리는지라, 수영은 늘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하고 있었다. 그나마도 파란 페인트칠

깔끔히 칠해진 실내 수영장에서나 하지, 시퍼런 바닷물이나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이끼 짙푸른 오아시스같은

곳에선 목숨을 내걸고 한두번 뛰어들었다간 지쳐 널부러지는 거다. 다이빙 하는 포즈만 잡고 사진찍고 돌아설

때의 그 씁쓸함이라니. 마침 지구 온난화의 기세가 날로 흉흉해지는 이때, 수영은 생존기술이다. 바다 수영이

가능할 정도, 최소한 배영이 가능할 정도로는 수영을 배워야겠다. 겸사겸사 유선형 몸매도 만들어보고.


5. 네팔/쿠바/페루 중 하나 여행가기.

네팔의 주요 수출자원 하나가 '자아'라던가, 네팔을 혼자 배낭여행 다녀온 남자와는 연애도 하지 말란 이야기가

있다지만 몇년전부터 네팔은 로망이 되어버렸다. 카스트로가 죽기 전에는 꼭 가봐야 한다는 쿠바 역시, 생각만

하면 조바심이 나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나라가 된지 오래고. 쿠바. 큐바. 쿠우바. 그러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잉카보물전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에 잊고 있던 나라 이름이 하나 떠올랐다. 페루. 이름만 들어도 정말 뭔가

클래식하면서도 신비한 느낌이 그득한 나라다.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중의 하나에선, 마방진을 풀어서 마법을

부리던 팬더에게 맛난 마멀레이드 잼을 원없이 먹여줬던 할머니가 페루에 살았댔다.

문제는 어느 나라를 가건 짧은 일정으론 녹록치 않다는. 대체 내년엔 휴가를 얼마나 쓸 수 있을지가 관건인 셈.


6. 휴대폰에 저장된 사람들 얼굴 사진 모으기.

새로 바꾼 휴대폰에 오늘에야 전화번호부를 옮겼다. 필요한 번호부터 조금씩 옮기자는 생각이었지만, 그러다간

평생 전화번호부를 못 옮기겠다 싶어서 그냥, 대리점에 가서 삼천원 주고 오분만에 옮겨버렸다. 연락을 자주

하거나 얼굴을 자주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냥 내게 전화번호가 쥐어져 있다는 것 자체로, 언제든 전화할 수 있단

가능성으로 남아있는 사람들이 고맙단 생각이 들었다. 한번쯤은 다 만나서 얼굴맞대고 이야기를 섞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때마다 꼭 상대의 얼굴을 담지는 못하더라도, 2010년엔 주위를 좀더 챙겨야겠단 다짐.


7. 시민단체/정당 활동 좀더 열심히 하기.

대학 때의 고담준론은 차치하고라도, 당장 최소한 내가 먹고 살겠다고 버둥대는 과정에서 사회적으로 내지르고

있는 '해악'들에 상응하는 만큼의 뭔가는 해야겠다. 그저 단순히 당비 내고 후원금 내던 차원에서 벗어나,

조금은 더 책임있는 역할, 조금은 더 부담되는 역할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오마이뉴스에 드문드문 

싣던 기사들도 좀더 정기적으로 가다듬어진 글을 올리는 게 필요할 거 같기도 하고, 여러모로 여태까지보다는

무게중심을 좀더 공적인 활동 쪽으로 옮겨보고 싶긴 한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겠다.


8. 대학원 준비..? 기타 자격증..?

대학원을 가던 해외연수를 가던, 사실 지금은 전혀 준비가 안 된 상황. 변수가 많긴 하지만 어쨌든 당장 할 수

있는 걸 하자면 조금씩 대학원을 염두에 둔 그림을 그려야 될 때가 된 거 같다. 이년정도 다녔으니 회사는 이미

적응할 대로 해버렸고, 자칫 이대로 무겁게 가라앉아 버리진 않을까 걱정인 거다. 혹은, 가방끈 늘여봐야 사실

별 도움이 안 된다면 차라리 다른 자격증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음......일단 2010년은 뭔가 다른

가능성을 구체화한다는 정도에서 만족해야 하려나.


9. 하루하루 기억에 남을 만큼 재미있게 살기.

회사-집-회사-집을 쳇바퀴도는 아저씨가 되기는 싫은 거다. 틈틈이, 없는 짬을 내어서라도 미술관도 가고

여행도 가고, 그렇게 즐길 수 있는 감각을 계속 유지하는 것도 중요한 거 같다. 그냥 하루하루 지나는 게 기억에

남지 않을 만큼 밋밋하고 진부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 밥에 그 나물처럼 뻔한 궤적을 되밟아 나가는 건

편하기는 하지만 가끔은 살짝 벗어나 주는 것도, 혹은 확 예정없이 질러버리는 것도 매력적이니깐.


물론 연말의 어수선한 분위기, 쉼없는 송년회 러시들 때문에라도 얼마나 갈지 회의적이긴 하다. 그치만 뭐,

언제는 삶이 평온평탄했던가. 그런 핑계로 고작 며칠도 안 되어 때려친다거나, 아예 시작조차 못해서는 곤란한

것들이다. 사실 이런 아홉 가지 다짐들은 단지 새해를 맞아 새삼 챙겨먹은 맘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

위한 필요조건들인 게다. 그저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을 반복하며 살지는 않겠다는.



지난 2005년 '안기부 X파일'을 인용해 '삼성 떡값 검사'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 위반 등)로 기소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부(재판장 이민영)는 4일 오전 열린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1심을 깨고 이같이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가 인터넷을 통해 떡값 검사 명단을 공개한 것은 국회의원의 면책특권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정당성이 인정된다"며 통신비밀보호법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또한 노 대표가 국회에서 기자들에게 떡값검사 명단을 공개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서도 "국회 안에서 행한 정당한 국회의원의 활동으로 면책특권이 인정된다"며 공소 기각했다.

노 대표는 지난 2005년 8월 국회 법사위원회 회의에 앞서 '안기부 X파일' 보도자료를 통해 옛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에서 삼성그룹의 떡값을 받은 것으로 언급된 전현직 검사 7명의 실명을 공개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 자격정지 1년을 선고 받았다.

이날 선고에 대해 노 대표는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난 느낌이다.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한다"며 "재판부가 제 주장을 완벽하게 받아들인 데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삼성 X파일은 국회에서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인데 법원에서 해결해 준 역사적 판결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는 "오늘 판결은 제 문제를 넘어 삼성 X파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라며 "이 문제와 관련이 있는 삼성 관계자, 중앙일보 관계자, 전현직 검찰 등 모든 주체들이 삼성 X파일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것은 명명백백하다"고 했다.

노 대표는 이어 "나머지 300여개 녹취 테입이 아직 서울중앙지검에 남아있다"며 "이 문제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을 경우 유사한 사건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18대 국회가 새로 밝혀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내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선언한 그에게 법적 걸림돌이 제거됨에 따라 향후 정치행보에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노 대표는 "내년 1월 중 후보 선출이 있을 예정"이라며 "아직 대법원의 판결이 남아있지만 거대권력과 불의에 맞서 싸운 제 진심에 대해 국민적 평가를 받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임경구 기자 (www.pressian.com)

오늘자 프레시안의 손문상 화백 만평. 제목이 무려...."천한 것들"이다. 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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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가락을 세워 가리켰던 달은 아직까지 아무도 거들떠보거나 주의를 기울이지도 못했지만,

어쨌던 그가 세운 손가락에 시비를 걸던 이들이 조금은 잠잠해질 것 같다. 이제 다시 손가락을 따라

삼성과 국정원(구 안기부), 일부 검찰의 비리를 파고들 수 있을까.


이제 걸리적대던 족쇄가 사라졌으니 노회찬 대표, 내년 지방선거를 맞아 서울에서 부활해야 할 텐데.

힘내시길 바랍니다~*





<브리핑>

노회찬 “오늘 날치기된 언론악법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위험하다”

언론악법 날치기 규탄 및 MB정권 반대 진보신당 시국대회 발언   


- 7.22(수)19:30 명동 우리은행 앞


요즘 내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대통령 잘못 만나 길거리 연설을 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내일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두 달인데 아직도 대통령은 사과 한 마디 없다. 이런 대통령을 보고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의 통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여론이 80%나 됐다.  


그러자 이명박 대통령은 통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이문동 시장에 방문해 떡볶이와 오뎅을 먹었다. 누가 먹는 것을 바꾸라고 했나. 통치를 바꾸라고 한 것이다. 그러다보니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낮은 30% 지지율에서 헤매고 있다.


경제위기가 닥쳐 모든 나라들이 가난한 사람들 복지 늘리고 부자증세를 했는데, 오직 우리나라만 서민감세는커녕 부자들 세금 깎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종부세만 13조, 올해는 25조, 2012년까지 무려 90조의 부자감세를 해준다. 그러면서 담배, 소주세는 인상한다고 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빼앗아 부자들에게 나눠준다. 대운하 안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4대강 사업이라고 해서 30조씩이나 쓴다고 한다. 사교육비 반값은커녕 학원비 등록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른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이명박 대통령을 못 믿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국정기조를 바꾸기는커녕 오늘에는 언론악법을 날치기 직권상정으로 통과시켰다. 오늘 텔레비전을 보면 국회 육박전을 볼 수 있다. 여러분은 그 속에서 본질을 봐야 한다. 이 언론악법은 국민 모두의 생활과 연결돼 있는 문제다. 이명박 대통령이 이토록 이 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 이유는 지지율은 계속 떨어지는데 정권재창출을 해야 하니 여론장악, 언론장악을 하겠다고 나선 것 아니겠는가.

  

저 노회찬이 국회의원 한 석밖에 없는 당의 대표인데, 100분토론과 심야토론에 가장 많이 출연했던 사람이다. 왜 그랬겠는가. KBS도 MBC도 공영방송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소수의 목소리도 방송해줬기 때문이다.


만약 조중동방송이고, 삼성방송이었다면 이것이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내 신발도 안나왔을 것이다. 재벌과 족벌신문이 자기 자신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여론을 장악하는 법이 바로 오늘 통과된 언론악법이다. 이명박 대통령보다 더 위험한 법이 이 법이다. 이제 대통령과 국회를 바꾸는 일만 남았다. 썩어빠지고 무능한 대통령과 국회를 바꾸는 데 여러분이 함께 해주신다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7월 22일

진보신당 대변인실

 

시국연설회 일정
* 23일(목) 오전12시 여의도역 사거리
* 23일(목) 오후6시  종로 젊음의 거리
* 24일(금)  오전12시 구로디지털단지(구로 이마트)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는 국회법을 위반한 원천무효입니다

언론악법 날치기 통과에 대한 진보신당 입장... 국민과 함께 싸워나갈 것


- 2009년 7월 22일(수) 국회 정론관 브리핑

- 진보신당 원내대표 조 승 수


오늘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언론악법과 금융지주회사법 등 네 개 악법이 모두 날치기 통과됐습니다. 정권재창출을 위해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을 밀어붙여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희대의 날치기 작태에 온 국민과 함께 참담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 언론악법 날치기는 국회법을 위반한 원천무효입니다. 신문법 투표과정도 대리투표 의혹이 제기됐고, 방송법 투표과정에서는 의결정족수가 안 된 상태에서 부의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했음에도 이후 재투표를 지시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이런 천인공노할 말도 안 되는 절차를 통해 진행된 미디어법은 원천무효입니다. 우리 진보신당은 오늘 언론악법 날치기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재벌과 조중동의 방송진출 허용법안인 방송법은 국민과 함께 원천무효투쟁을 벌여나가겠습니다.


이제 국회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 저녁 6시 명동에서 국민과 함께 언론악법 날치기 규탄 시국대회를 열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민의가 존재하는 국민 곁으로 다가가서 국민과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2009년 7월 22일

진보신당


<브리핑>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관련 진보신당의 법적 대응

23일 즉각 헌법재판소에 방송법 날치기 통과 관련 권한쟁의심판청구와 효력정치가처분 신청 제출할 것


진보신당은 오늘 있었던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날치기 통과와 관련하여 국회 원내외에서의 강력한 투쟁과 더불어, 법적으로 무효인 이 법안의 무효화를 위해 다음과 같이 법적 대응을 하기로 하였다.


첫째, 오늘 처리된 모든 법안에서 대리투표가 발견될 경우에는 오늘 투표는 원천무효이므로 왈가왈부할 것이 없다. 국회는 오늘 표결을 원천무효화해야 하며, 진보신당은 이 경우 법적 대응은 물론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이다.


둘째, 국회 부의장이 투표종료를 선언한 후 재투표를 지시한 방송법의 경우, 투표종료 당시 국회법 109조 의결정족수 조항에 따라 재적 과반수에 미달한 것이므로 이 안건은 부결된 것이다. 이 경우, 국회법 92조에 따라 일사부재의가 불가능함에도 불구하고 국회 부의장이 그 자리에서 재투표를 지시한 것은 국회법에서 정한 자신의 권한을 초과하여 위반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 진보신당은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할 것이다.


셋째, 더불어 이 권한쟁의심판청구 소송이 종결될 때까지 방송법의 효력은 사라지는 것이므로, 헌재에 방송법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같이 청구할 것이다.


오늘 국회에서의 날치기 통과는 위와 같은 이유로 원천무효이다. 진보신당은 바로 내일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할 것이며, 더불어 원내외의 모든 투쟁을 병행할 것이다.


2009년 7월 22일

진보신당 대변인 김 종 철

신문법, 방송법, IPTV법 등 미디어법 3개법안, 게다가 금융지주회사법까지 4개법안이 날치기 통과되었다.

이건 아니다. 진보신당의 조승수 원내대표와 노회찬 당대표의 입장이다.




대한민국은 독재국가로 가고 있습니다

김형오의장은 히틀러의 괴링을 자임하는가?


- 2009년 7월 22일 (수) 13:10 국회정론관

- 진보신당 원내대표 조 승 수


오늘은 대한민국의 의회 민주주의와 언론 민주주의가 사망한 날입니다. 언론관계법을 놓고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끝내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 의사를 밝혔습니다. 국민여론을 부정하고 국회를 청와대의 거수기로 만드는 폭거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의 방송법은 민주주의 국가의 핵심가치인 여론다양성을 부정하는 MB언론장악법이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도 언론관계법은 민생법안이 아니라 조중동에 방송진출을 허용하느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렇듯 정부여당은 재벌과 특정 언론에 방송을 내주기 위해 통계수치까지 왜곡 조작한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연구결과를 이용하고 일자리창출 효과가 있다며 대국민사기극까지 펼치고 있습니다.


모든 국민이 합의처리를 원하고 있는 언론법을 일방처리 하는 것은 한국 언론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심각한 행위이자 한나라당이 재벌과 조중동의 시녀임을 자처하는 꼴입니다. 자본독재국가의 마지막을 완성하려는 정부의 음모에 국회가 놀아나는 꼴입니다.


지금 많은 국민들은 언론법이 민주주의 기반을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우리피와 눈물로 이룬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독재국가로 나아가려는 것이라 우려하고 있습니다.


김형오 국회의장께 요청합니다. 의장은 오늘 미디어법을 처리하겠다고 했습니다. 직권상정 뜻을 분명히 한 말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론악법 직권상정은 더 큰 파국을 초래할 뿐입니다. 지금 당장 직권상정을 철회하십시오. 정권이 저지른 참혹한 살인인 용산참사와 쌍용자동차 문제도 내팽개친 채 여론수렴 절차도 없이 대다수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부 지시대로만 언론악법을 밀어붙이려는 한나라당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국회의장의 태도는 돌이킬 수 없는 국민적 저항을 부를 것입니다.


역사적 비극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 오늘 미디어법이 직권상정 된다면 김형오의장은 히틀러와 나찌에게 일당 독재의 길을 열어 주었던 1933년 당시의 독일국회의장이었던 괴링의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진보신당은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이 법을 막아내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투쟁할 것입니다.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찍어누르려는 대통령과 여당의 권위는 그 순간부터 부정됐습니다.


용산 참사를 외면하고 살인과 다름없는 정리해고를 단행하면서 급기야 언론과 방송마저 자본과 정권의 시녀로 만들려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 맞서 모든 것을 걸고 국민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2009년 7월 22일

진보신당 원내대표 조 승 수


<브리핑>

노회찬 대표 “정권재창출 위한 언론악법 강행처리 국민과 함께 막겠다”


- 2009년 7월 22일 (수) 13:05 국회 정론관

- 진보신당 대표 노 회 찬


바로 엊그제 김형오 의장 더 이상 협상에 관여치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몇시간 후 의장은 한나라당 수정안 검토에 참여했습니다. 지금 의장은김형오 국회의장으로서의 권위와 위신과 체면을 스스로 내팽개치고 한나라당 구직대열에 들어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대단히 유감스럽습니다.


한나라당 언론악법 강행처리는 무엇보다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정권 재창출이 힘들다는 결론 때문입니다. 더 이상 민심을 얻을 방법이 없는 상태에서 조중동 방송진출에 따른 여론장악을 통해 정권재창출 길밖에 없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강부자 정권에 이어 강부자 방송이 출연하는 암울한 상황입니다.


오늘 우리나라에 개기일식이 진행됐습니다.. 달이 해를 가리기 시작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를 기습점거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지역에 달이 해를 78.5% 가렸지만 국회를 가리지는 못합니다. 하늘에 떠있는 태양처럼 민심은 정부여당의 직권상정을 용납치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진보신당은 언론악법이 직권상정되면 국회는 더 이상 민의의 전당이 아님을 선언할 것이며, 민의가 존재하는 국민들 곁으로 다가가서 국민과 함께 싸워나가겠습니다.


2009년 7월 22일

진보신당 대표 노 회 찬

"제가 아는 '황석영'이라는 분은, 지난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의 집권을 막기 위해 시민단체들 그러 모아 비장하게 비상시국선언까지 했던 분입니다. 그때는 이명박씨를 '부패연대세력'이라 부르며, 이명박의 집권을 막기 위해 반MB 전선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었지요. 제 기억에 그 움직임은 결국 문국현 후보에게 가하는 사퇴의 압박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자 뉴스를 보니, 자신을 황석영이라 부르는 또 한 분이 나서서 이명박 정권이 실용적인 중도정권이라며, 그 정권을 적극 돕겠다고 하는군요. 부패한 세력이 집권 1년 만에 자연치유되어 싱싱해졌다는 얘긴가요? 아니면 이명박이 '부패'한 세력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치즈나 요구르트처럼 '발효'한 세력이었다는 얘긴가요?

더 황당한 것은 아직도 진보세력이 '독재 타도'나 외치고 있다는 그의 비판입니다. 2007년 대선 때 철지난 독재타도 외치던 사람은 바로 황석영씨였습니다. 그때 '비상시국회의'라는 단체의 결성식에서 황석영씨는 "척박한 독재의 동토에서 민주화를 위해 분투한 초심의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겠노라고 했었지요. 그런데 이제 와서 사돈 남 말 하고 계시니.... 

사진에 나타난 생물학적 특성은  이 개체가 영장류에 속한다고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기억력이 2초라는 금붕어도 아니고, 세상에 명색이 호모 사피엔스가 어떻게 바로 얼마 전에  자신이 했던 언행을 까맣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요? 욕도 웬만해야 하는 거지, 이 정도의 극적인 변신이라면 욕할 가치도 없습니다. 그러니 그냥 웃고 넘어가지요. 

정작 코미디는 따로 있습니다. 황석영의 문학적 영감이란 게 '몽골 + 2 korea'라는 발상이라네요. 이 대목에서 완전히 뿜어버렸습니다. 요즘 그러잖아도 크로스 오버가 유행하던데, 아예 개그계로 진출하시려나 봅니다. 민족문학 한다고 북조선 넘나들더니, 이젠 민족의 단결을 넘어 몽골 인종주의, 알타이 종족주의 문학 하시려나 봅니다. 이 분, 생기신 것보다 많이 웃기세요. 풋~ ^^ "

@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당선소감] MB정권 심판을 위한 진보양당, 북구주민, 국민 공동의 승리입니다
 

<조승수 후보 당선 소감문>

MB정권 심판을 위한 진보양당, 북구주민, 국민공동의 승리입니다
대안야당으로 우뚝 서는 진보신당 만들겠습니다

존경하는 북구주민 여러분.

너무나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지지로 저 조승수가 오늘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습니다. 저의 당선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려는 북구 노동자와 서민의 요구가 분출된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제대로 된 진보정치로, 노동자, 서민, 북구주민 여러분의 권리를 지키라는 준엄한 명령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명령하신대로 성실한 의정활동을 하겠습니다.

또한, 오늘 저의 승리는 진보진영 단일화를 함께 이뤘던 민주노동당과 김창현 후보 공동의 승리, 더 나아가 노동자, 서민의 진보정치를 바라는 북구 주민 여러분 모두의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민주노동당과 김창현 후보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북구주민 여러분. 전국의 노동자, 서민 여러분.

오늘은 저 조승수가 승리한 날이기도 하지만, 진보신당이 승리한 날이기도 합니다. 저의 당선으로 진보신당은, 창당한지 1년 만에 국회에 진출하였습니다. 비록 울산 북구가 노동자 기반 도시이기는 하지만, 영남지역에서 진보신당이 거대 집권여당을 누르고 승리했다는 것은, 앞으로 이 나라에서 진보정치가 활짝 꽃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더욱 적극적이고, 진보적인 의정활동, 노동자 서민을 대변하는 의정활동을 통해서 진보신당이 대안야당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존경하는 북구주민 여러분.

저는 국회에 들어가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부자감세, 재벌 감싸기, 특권층 편들기를 바로 잡겠습니다. 현 정부와 한나라당의 부자감세, 재벌 감싸기는 결국 서민들의 복지를 후퇴시키고, 지방재정을 파탄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경제가 살아날 수 있는 기반을 허물어뜨리고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대신해 국회에 가서, 경제무능 정권 이명박 정권을 호되게 꾸짖겠습니다. 그리고, 고용안정, 비정규 권리보장, 서민경제 활성화, 복지정책 실현, 지방경제 회생을 적극 추진하겠습니다.

북구주민 여러분,

여러분께서 오늘 저에게 승리를 안겨주셨지만, 그 승리는 회초리를 들고 안겨주신 승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진보신당이 잘못된 길을 가면 언제든지 여러분께서 회초리를 드실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겸허하게 오직 북구주민 여러분과 전국의 노동자, 농민, 영세상인, 서민들을 대변하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여 의정활동에 임하겠습니다.

거듭 여러분의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4월 29일
울산북구 국회의원 재선거 당선자 진보신당 조 승 수 드림




*                                                                    *                                                                    *


2004년,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에 성공했을 때에는 물색 모르고 좋아했었다. 말년 병장의 기운을 빌어 친하게 지내던

부사관들에게 민주노동당을 찍도록 종용하기도 했고, 부모님과 주위 친구들에게까지 나름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민노당을

알렸었다. 대학에 있을 때 선배 하나는 자신이 죽기 전에 우리나라에 진보정당이 자리잡을 수 있을지, 심지어 원내진출이

가능할지에 대해 회의적이었기에, 그 날 민노당이 무려 10석..이던가, 지역구 2석에 비례대표 8석. 그렇게 원내에 진출한

밤, 나는 내가 관리하던 B.X 로 몰래 진출해 친구들과 복분자주과 양주를 맘껏 마셨더랬다. 뭐랄까 우리도 드디어 좌파

정당이 주류 정치 스펙트럼 내에 포함되기 시작했다는 감흥과 함께, 많은 것들이 바로잡히리라 기대했었다.


그리고 이제 온갖 우여곡절 끝에 진보신당이 원외정당으로 떠돈지 일년만에 다시 원내 진출. 마땅히 기뻐하고 설레어야

할 일이겠지만, 예전만큼 그렇게 기쁘지가 않다. 한 석. 물론 진보신당과 진보진영에 그 한 석은 매우 중요하고 결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는 건 안다. 그렇지만 어차피 여의도를 버린 MB에게 0:5의 한나라당 완패가 큰 의미가 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오는 판이다. 조승수 후보의 당선 소감 중에, '이명박 정권을 호되게 꾸짖겠다'는 표현이 나오지만...

그들은 꾸짖는다고 말을 듣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있다. 국회의원 한 명의 힘으로 될 문제가 아니다.

'노동자 민중, 혹은 보통사람들의 정치세력화'라는 명제가 원내 진출만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란 건 이미 2004년 이래로

충분히 공감대가 형성된 터. 조승수 후보의 당선이 당연히 축하해야 하고 기뻐해야 할 일임에도 더 가슴이 시리고 기분이

더러운 건, 정작 더 중요한 건 아직 다가오지도 않고 있다는 예감 때문이다.

각하께서 드디어 현실감각을 완전히 상실하신 듯합니다. 그럼 국민들은 어이를 상실하게 되지요. 외국 다녀오더니 위대한 성과(?)를 거두었다며 자화자찬 하시는군요. 이제까지  외교는 말만 하고 돌아왔는데, 자기는 실질적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고 말만 하고 있네요. 평가는 언론에 맡겨둘 일. 피겨 선수들이 언제 자기 연기에 자기가 점수 먹이던가요? 우리 각하, 자기가 자기를 알아주기로 했나 봅니다. 그 동안 남들이 자기를 안 알아줘서 스트레스를 받으셨나 보죠? 

첫 증상은 기자들을 향해 "잘 한다, 잘 한다 해야, 잘 한다."라고 말할 때 이미 나타났지요. 일반적으로 언론의 사명은 권력에 대한 감시에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각하의 생각은 다릅니다. 각하께서 생각하시는 이상적 언론은 권력의 옆에서 '잘 한다, 잘 한다' 추임새 넣는 언론이지요. 그래서 각 방송사에 낙하산 부대 내려보내, 공중파로 '각하, 잘한다, 잘 한다' 명비어천가 방송을 내보내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권력자가 뭘 하든 옆에서 '잘 한다, 잘 한다' 추임새 넣는 것은 북조선 같은 전체주의 국가의 언론이지요. 전체주의적 마인드를 가진 사람은 언론을 정권 프로파갠더의 수단으로 간주하지요. 지금 그 선봉에 선 사람이 문화부의 신재민 차관이지요. 제가 보기에 그가 이 정권에서 맡은 임무는  나치 정권에서 괴벨스가 맡았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편으로는 정권 홍보, 다른 한편으로는 비판언론 공격. 지금 문화부의 기능은 3공때 문화공보부와 똑같습니다.

민주국가에서는 언론이 권력을 감시하는 반면, 독재국가에서는 권력이 언론을 감시합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애먼 기자들이 해직 당하고, 앵커가 중징계를 당하고, 방송 프로그램이 검찰 수사의 대상이 됩니다. 정권이 뿌리는 떡고물을 받아먹으며 해괴한 우익 관변단체들이 극성스럽게 설치고, 이들이 MB 완장 차고 비판언론에 생트집을 잡으며 극성스럽게 앞잡이질을 하면, 방통심의위라는 검열기관에서 그걸 냉큼 받아 마구 징계를 때려대는 식이지요. 

각하께서 국민의 "극히 일부분"이 정부에서 하는 일에 반대한다고 하셨는데, 지금 국민의 3분의 2가 이 정권의 주요한 정책에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의 3분의 2가 이 정권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대통령 잘 하고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 거의 못 봅니다. 그런 얘기 했다가는 돌 맞는 분위기입니다. 각하 주위에 몰려 있는 "극히 일부분"의 사업형 아부꾼들만이 위대하시며 영명하신 그 분의 탁월한 영도력을 찬양하고 계실 뿐이지요. 

이 정권이 완전히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래놓고서 하는 얘기가 외국 야당이 부럽다고 하네요. 언젠가 TV에 나와서, 위기의 시대니 미국과 같은 나라의  통합적 지도력을 본받으라는 취지의 얘기를 하니까, 거기에 각하께서는 대뜸 이렇게 대답하셨지요. "우리가 미국 같은 선진국입니까?" 대통령이 갖추어야 할 통합적 지도력, 민주적 리더쉽은 아직 한국이 후진국이라 본받을 때가 못 되고, 다만 야당질만큼은 선진국스럽게 해라, 뭐 이런 얘기죠. 

각하는 외국 야당이 부러우시답니다. 그런데 국민은 외국 여당이 부럽답니다. 도대체 우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선거 때 손가락 하나 잘못 눌린 죄가 이다지도 크단 말입니까? 지금 국민이 당하는 고난은 지난 대선 때 저지른 실수에 비해 너무나도 가혹한 형벌입니다. 우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747 공약, 믿어서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믿고 싶어서 찍은 것 뿐인데, 그게 그렇게도 큰 죄라서 그 죄값을 이런 가공할 규모로 받아야 합니까? 이제 겨우 1년 지났는데, 한 10년 산 것 같습니다. 

반대만 해야 하는 국민도 정말 괴롭습니다. 도대체 국민이 찬성할 만한  정책들을 내면 어디가 덧납니까? 어떻게 내놓는 정책마다 모두 국민이 나서서 뜯어말려야 합니까. 공약 지킬까봐 겁나는 대통령은 그가 아마 처음일 겁니다. 내놓는 정책들이 양계장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니, 영장류의 본능상 국민들이 생물학적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거죠. 국민들이 정권에 반대하는 이유는 철저히 진화론적인 것입니다. 과거로 퇴행하는 사회분위기 속에서 진화하고픈 본능이라고 할까요?

- 09.03.09. 진보신당 당원게시판.

* 가장 멋졌던 댓글은, "어머, 제목만 봐선 여태까진 현실감각 있었는 줄 알겠어요."ㅋ
"한미FTA, 그 '역사적 오류'를 선언해야"
盧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촉구합니다
등록일자 : 2008년 11 월 12 일 (수) 10 : 25   
 

  진보신당 공동대표 심상정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통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직접 추수한 햅쌀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처음 짓는 농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가을걷이를 했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축하드리고만 있기에는 나라의 사정이 너무도 어렵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경제의 위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거꾸로 가는 정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 마음은 벌써 한겨울입니다.
  
  종부세와 수도권 규제완화, 그리고 참여정부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간신히 잡아놓은 부동산정책마저도 마치 전봇대 뽑듯 뽑아버리고 있으니 노 전 대통령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미 FTA에 대해 세가지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한미FTA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형편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직하고 통 큰 고백만이 나라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저의 화두입니다.
  

▲ ⓒ프레시안

  우선 어제, 그제 '민주주의 2.0'을 통해 한미FTA협정에 대해 쓰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비준을 서두르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조기비준 대신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미FTA 협정 비준문제를 맹목적으로 밀어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민주당은 앞선 책임에 갇혀 옹색한 처신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이 긴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한미FTA에 관한 견해는 참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비준과 재협상에 대한 논란이라면 현정치권의 갑론을박에 맡겨둬도 될 일이겠지요. 무분별한 개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경제위기로 공포에 떨고 있는 민초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 기대했던 것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재협상 '훈수'가 아니라 한미FTA 협정 체결에 대한 '고해성사'였을 것입니다.
  
  '내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은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 국민여러분들께 사죄드린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모든 것이 분명해진 지금, 대통령시절 '구국의 결단'으로 밀어붙였던 한미FTA 협정이 나라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고백하는 용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왕에 노 전 대통령께서 나서시기를 작정하셨다면 한미FTA 협정이 지난 정권의 오류였음을 인정함으로써 한미FTA 협정 폐기전략으로 국론을 모아가는 물꼬를 터주기를 갈구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묻겠습니다. 참여정부가 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밀어붙였던 한미FTA협상의 명분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질적 도약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제조업 가지고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선진국처럼 금융, 서비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하고 그를 위해 미국의 선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동북아 금융허브론' 그것은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미국금융자본의 탐욕에 편승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또 미국과의 FTA라는 '외부충격'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제도의 선진화는 결국 '투기와 거품'의 온상을 만들었던 위기의 주범이었음이 확인된 거 아닙니까? 또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외의존도가 70%가 넘는 나라에서 개방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사냐고 반문하셨지요? 이명박 정부가 외환보유고 많이 갖고 있어 IMF 구제금융 시기와는 다르다며 위기는 없을 거라고 강변했지만 그럼에도 외환보유고 세계6위인 나라가 왜 사색이 되어 난리인지 그 까닭을 국민들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분별한 개방 때문 아닌가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걸 이미 시장 참여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한미FTA만이 살길입니까?
  
  이명박 정권에게는 '한미FTA는 당장의 경기와는 관계없고 5년 10년 15년 기간이 지나야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라는 충고를 하면서도, 한미FTA 협정 이후에 금융위기가 왔다는 점을 강조하신 대목은 굳이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위험을 느꼈다면,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했던 무모함을, 금융자유화를 제도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체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방과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의 오류를 반성하고 이제 내수기반의 강화를 통해 세계경제에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뚜렷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권의 폭주가 머지않아 역사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결자해지를 촉구합니다. 구국의 심정으로 한미FTA는 역사적 오류였다고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십시오.
  
  둘째, 기왕에 한미FTA협정 폐기전략을 주장을 하는 김에 노 전 대통령이 주장하신 '재협상'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조기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전대통령의 말씀처럼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제적인 금융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오바마 정권이 금융, 의약품, 지적재산권, 자동차배기규제 등 많은 분야에서 정책의 변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한미FTA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정부제소권을 비롯한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포함해서 한미FTA 협정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FTA의 재협상'이 아니라 '한미FTA 폐기'를 위한 준비이어야 합니다.
  
  실제 오바마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한미FTA 재협상이 아니라 자동차부문의 협상입니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식 FTA의 모체인 나프타의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그것은 1-2년 이내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오바마에게 한미FTA는 상당기간 관심밖에 일이 될 것입니다. 오바마에게 급한 것은 자동차협상입니다. 따라서 한미FTA 재협상의 요구가 아니라 '한미자동차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정부의 한미FTA 대한 맹목적 집착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협상해본 학습효과가 그 방향의 선택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쇠고기 수입개방 들어주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 해주지 않는다' 하니 이명박 정권이 통째로 내주었지 않습니까? 또 자동차 안 들어주면 한미FTA 비준 없다하면 또 기꺼이 구국의 결단을 하리라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조기비준시도를 통해 한미FTA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질 않습니까?
  
  핵심은 오바마 시대에 한미FTA는 자동차협상의 종속변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와 정치권이 한미FTA 가지고 비준이니 재협상이니 엄한 데를 긁는 소모적 논란을 하지 말고 머지않아 요구될 자동차협상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유색인종차별을 해소할 계기를 만들고, 재정확장정책을 통한 내수경제육성에 힘을 쏟고, 국제 깡패로 이름을 날린 일방주의 외교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자유무역주의자니 보호무역주의자니 논란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제조업 중심의 공격적 자유주의정책을 펼 가능성이 많습니다. 보호무역의 측면만이 아니라 자국의 자동차산업과 노동자를 위해 우리나라에 자동차시장 개방을 공격적으로 강요할 것입니다.
  
  만약에 미국의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그 요구를 수용한다면 그것은 곧 가장 넓은 고용기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그리고 내수기반의 궤멸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를 안내주면 한미FTA 협정은 물 건너 갈 수 있습니다. 자 어느 편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자동차 다 내주고 미국 대기업 이익을 위한 한미FTA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동차 보호하고 미래의 재앙인 한미FTA를 폐기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결자해지를 하셔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셋째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한미FTA 한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자유주의 강력한 추진자'라고 비판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댄' 것은 아닙니다. 나프타식, 미국식 FTA가 신자유주의 전형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턱없이 미숙하고 힘없는 정치인입니다만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에 맞서 '젖먹던 힘'까지 보태 맞섰던 한사람으로서 근거와 내용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란 소리가 '빨갱이지?'란 소리로까지 들리셨다니 오늘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미FTA를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제겐 감당하기 한참 벅찬 일'이라며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전임 정권의 책임자가 가진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은 기회에 꼭 토론의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심상정/진보신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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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당선을 두고 기대가 만발했지만, 그리고 한미FTA재협상과 조기비준 등의 문제를 두고 말이

많지만, 상정누님의 시각만큼 성숙하면서도 대중적인 글은 아직 못 본 거 같다.

오바마는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누님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멋진 글, 그리고

합리적이고 세련되게 한미FTA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차분히 납득하기 쉬운 글인거 같다.

진보신당 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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