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숟가락 정치'가 또다시 한나라당뿐 아니라 보수 세력을 술렁이게 하고 있다. 이번엔 친박세력 내부에서도

미디어법안 처리를 두고 입장이 갈리는 만큼 "현 시점에서의 직권상정 반대"라는 그녀의 말 한마디는 추종세력에조차

적잖은 혼란을 일으켰다고 보인다. 중요한 타이밍마다 예기치 못한 말한마디로 판을 흔들고, 그녀의 무게감을

시위하는 그녀 나름의 '정치' 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큰 폭발력을 갖고 정국을 주도하는 모양새다. 반작용도 만만치

않아서 보수의 대표주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한지 오래인 그녀를 이제는 우파 내부에서 내치자고 한다.


그래서다. 대체 박근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박근혜는 어떤 사람인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그녀가

바로 박정희의 딸이라는 점이다. 육영수 여사 사후 청와대 안주인 노릇을 하며 정치감각을 익혔다거나, 박정희의

지도력을 이어받았다는 식의 높은 평가가 따라붙는다.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의 이미지를 덧씌우는가 하면 여성 특유의

정치적 리더십도 겸비했다고 '알려진다.' 그리고 북한의 정권 세습을 비난해 마지 않는 일부 보수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박정희의 재림을 갈망하며 박근혜를 무조건 지지하는 친위대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좌파를 포함한 그녀의 반대세력이 그녀를 보는 시각도 마찬가지다. 입장은 다르지만, 그건 '박정희의 딸'로서의

박근혜를 물고 늘어진다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독재자의 딸이라거나, 박정희의 정치적 과오에 대한 사과가 없다거나,

순전히 박정희를 등에 업고 분에 넘치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식의 평가가 그것이다. 그녀의 정견이나 정치적

색깔에 대해서도 별로 깊은 분석은 안 보인다. 다만 박정희를 지지하고 심지어 찬미하는 일부 보수세력과 그녀를

동류로 배치하고, 신자유주의라느니 국가주의라느니 헐겁고 피상적인 분석만 이어질 뿐이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박근혜의 캐릭터 자체가 불분명한 탓이다. 박근혜가 스스로의 정치적 이상이나 지향을 적극적으로
 
개진한 적은 과문한 탓인지 듣도보도 못했다. 그녀의 정치 스타일 역시 이번과 같은 이슈에 대해 '숟가락만 걸치는'

대중추수적인, 인기에 영합하거나 정치적 지분과 명분을 쌓기위한 정략적 행보가 두드러질 뿐, '큰 그림'은 안보인다. 

게다가 그녀의 정치적 행보나 입장을 보아도, 선정적인 몇마디를 제외하면 이른바 '보수꼴통'세력과 별반 차별성이

드러나지 않으며 다만 그녀의 친위세력이랄 친박연대에 대한 밥그릇 챙겨주기에만 골몰한 듯 보인다.


그렇지만 박근혜는 엄연히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몇년째 선두를 지켜오고 있다. 뭔가 있다는

얘기다. 단순히 박정희를 그리워하는 '무지한 대중'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사람들의 지적능력에 대한 건방진 폄하이며,

특히 차기 집권을 노리는 세력이라면 그렇게 둔탁한 분석으로는 절대 그녀를 이기고 민심을 잡을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그녀가 조금씩 MB와 각을 세우는 모양새를 취하고, '친서민행보'를 취한다는 MB보다 더욱 친서민적인 발언을 토하며

소위 '여성적인 리더십'을 내세워 현명하게 어필한다면 승산이 있는지 묻고 싶다.


정치인 박근혜의 정체를 명료히 분석해야 한다. 그녀의 말 하나하나, 행보 하나하나에 녹아있는 그녀의 정치적 본색을

드러내고 그에 대한 정책적 선명성 대결과 합리적 판단을 요청해야지, '박정희의 딸'이니 안된다는 식이어서는 더이상

곤란하다. 그건 국민들이 왜 박근혜를 선호하는지, 왜 박근혜가 설문조사에서 매번 1위를 차지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지 않겠다는 얘기와도 같다. 박근혜가 누구인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어떤 정치색을 갖고 있는지 근본부터

다시 검토하고 진지하게 맞대응해야 할 때다.


덧댐. 그녀의 '숟가락 정치'가 가능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의 이미지와 정견은 숨겨진 채

그녀가 필요할 때마다 애매모호한 한마디가 툭툭 던져진다. 그녀의 가면을 벗기고 구체적인 논리를 가진 이야기를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녀가 과연 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은 있는지, 이상은 있는지, 그리고 로드맵은 있는지 말이다.

* 관련기사들. 

돌풍주역 박근혜… 사생결단 정세균(서울신문)

조갑제, 박근혜 탈당하라(오마이뉴스)

‘여론’에 몸 실은 박근혜… MB정책과 ‘선긋기’(중앙일보)

‘박근혜 정치’… 실체는?(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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