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유학가 있는 친구녀석(http://yakisobapang.tistory.com/)이 비싸기만한 외지생활과

예기치 못한 후쿠시마 사태로 멀어져버린 현지 취업의 꿈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뚝딱뚝딱

만들어낸 가죽지갑. 불우이웃돕는 셈 치고 주문하고 봤더니 색깔이 너무 이쁜 거다. 말하자면,


"홍대출신 디자이너가 일본 가서 직접 색깔을 믹싱했다는 바로 그 청순네이비블루 가죽지갑".

파란색감도 굉장히 맘에 들고, 굵고 촘촘한 스티치도 분위기 있고, 두껍고 탄탄한 가죽도

앞으로 어떻게 길이 들고 때가 껴서 말랑해질지 기대가 커지는 거다. 가뜩이나 날도 하루가

다르게 더워지는데, 두꺼운 반지갑 대신 얄포름한 요고 하나 들고 가면 괜찮겠다. 뭐 땀도

흡수하고 물도 먹고 해서 더욱 빨리 빈티지스러워지겠지만.ㅎ

배송되고 포장을 뜯기가 넘 아까웠던 것도 빼먹을 수 없는 포인트였다. 두꺼운 갈색종이가

굵은 스티치의 하얀 실로 박혀서는 가죽지갑을 감싸고 있던 거다. 그리고 뒷면에는 제품명과

색깔, 제품번호가 진한 갈색으로 박혀있었고.

눈에 잘 안 띄게 둘러져 있던 띠를 벗기고 나니 숨겨져 있던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Constant Leather Goods, 그리고 뒷면에는 무려 QR코드가 숨어있어서 스마트폰으로

긁어보면 바로 홈페이지로 연동이 되는 거다. 전체적으로 갈색 종이에 검정 글씨가

깔끔하면서도 단정하다 했더니 QR코드의 불규칙한 문양이 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

안에는 제법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저 지갑 하나 들어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뭔가 워런티

비슷한 분위기의 일련번호가 새겨진 카드 하나. 그리고 제품에 대한 컨셉이나 디자인을

설명한 카드가 몇장. 다른 것보다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언제 제작되었는지 그 날짜가 적혀

있더란 점이었다. 내 지갑은 2011년 5월 5일, 어린이날 빨간날이라고 전부 나가 놀고 있을 때

누군가는 열심히 수작업으로 이렇게 두꺼운 가죽을 바느질하고 있었겠구나.


조명에 따라 색깔이 휙휙 바뀌며 검정색처럼 보이기도 하고, 살짝 남색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소 경쾌한 느낌의 청색이랄까. 엷은 베이지색의 실이랑 가죽 안쪽의 살색이

대충 깔맞춤은 되고 있지만 앞으로 손때도 묻을 테고,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먼지도 낄 테고

그렇게 더욱 빈티지스러운 느낌으로 운치가 살지 않으려나 싶다. 두꺼운 반지갑을 들고 다니기

부담스럽거나 귀찮다 싶을 때, 슬쩍 카드 두어장이랑 현금 조금 넣어서 갖고 다니기 좋을 듯.

* 지갑이나 다른 가죽제품에 관심있는 사람은 QR코드로 이 그림을 찍어보거나, 아니면

그냥 귀찮더라도 www.constant.co.kr을 찍어보거나.





신님,

그간 신님께서 제게 얼마나 냉정하셨는지는 신도 알고 나도 아는 일입니다.

흔한 레퍼토리로 조상님이 꿈에 나타나서 번호 여섯 개를 불러주는 일도 없으셨고,

드라마에서 보듯 대기업 총수가 불쑥 나타나 '내가 니 애비다'하는 일도 없었으며,

자동차를 걸고 노트북을 걸고 널리고 널린 경품행사에서는 늘 개인정보를 베풀기만 했으며,

주위의 자랑질처럼 택시를 타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도 두툼한 지갑 하나 줍는 일도 없었고,

하다못해 어렸을 적부터 커피 자판기며 음료수 자판기의 잔돈 구멍을 후벼도 백원짜리 두개를 못 봤습니다.


남들보다 착하게 살았느니, 누구 해꼬지 한 적 없다느니 구구하게 이야기 안 하렵니다.

이제 제게도 천원에 로또를 사서는 십원에 폐지로 팔아야 하는 슬픔 대신

준 돈보다 받은 돈이 열배는 뻥튀기로 돌아오는 환희를 맛보게 하소서.

그저 천원짜리 마권을 사서는 오만원짜리 현찰과 바꿀 수 있는, 조그마한 축복을 내리소서.


아멘할렐루야나무아미타불알라.


*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쥐고 있던 돈다발들. 내 돈도 아니고 쥐었다가 금세 사라질 돈들, 아쉬워서 사진이나.

* 알제리에서 쥐고 있던 돈들, 저 돈들로 부채를 만들어 바람을 부쳤더니 똥냄새가 풀풀 났었지만 그래도 좋더라는.

그게 바로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속담의 숨겨진 의미.

* 현실은, 지갑속엔 이천원이 딸랑딸랑. 카드를 쓸수록 지갑이 두꺼워지는 마술이 일어나고 있다는.

쌓여가는 명세서를 세절기로 찢듯 가늘게 짝짝 찢으며 느끼는 쾌감 대신 두툼한 지갑에서 돈냄새를 맡고 싶어요.

집사야 되는데.;;;;



요즘 은행 현금인출기에 사기를 칠 목적으로 지갑을 두고 가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인출기 앞에 덩그러니 지갑이 놓여 있으니, 솔직히 살짝 유혹에 흔들릴 수도 있고 혹은 정말 굳건한 마음으로

주인을 찾아 주겠다고 들고 나와 경찰서에 맡기거나 우체통에 넣거나 하기 쉽겠지만!!!


이 지갑을 그냥 가지고 나오면 절도죄가 성립된다고 한다.

성능 좋은 CCTV에 촬영된 사진으로 추적이 가능해서 일주일 안으로 경찰이 자택에 내방하는 결과를 빚는다는 것.


구분동작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1) 사기꾼이 현금인출기 앞에 지갑을 두고 나간다.

2) 피해자가 좋은 일 하겠다고 지갑을 들고 나온다.

3) 사기꾼이 신고를 하되, 지갑에 돈이 무지 많이 들었다고 주장한다.

4) 경찰이 CCTV를 이용해서 집까지 추적에 성공한다.

5) 사기꾼은 돈 내놓으라며 큰소리치고, 합의금으로 거액을 요구한다.



좋은 일 하려다가 실제로 어이없이 합의금 몇 백을 쥐어주고야 풀려날 수 있던 사례도 있었다고 하니...

실제 지갑에는 달랑 만원 한 장 들어있었다고 해도 이거 뭐, 증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경찰과 CCTV를 활용한 사기 범죄라니, 현금인출기던 길가던 떨어진 지갑을 보면 경계부터 해야 하는 현실이

씁쓸할 따름이다. 슬프지만, 좋은 일을 하려도 스마트하게 법적 대비를 철저히 한 후에야 가능하려나 싶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