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w. 아마도 싱가포르의 정류장, 공공시설물, 까페 등등에서 제일 자주 접했던 문구인 듯 하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처음 왔던 싱가포르, 어렸을 적 어마어마한 벌금과 엄격한 법집행에 기반한 공중도덕과 청결한 도시의 화신처럼 배웠고 대학 때도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이야기에 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내가 사는 한국과 멀지 않다. 츄잉껌을 수입하거나 만들지 않고, 온갖 것에 벌금을 매겨놓고 있는 싱가포르라지만..., 이미 우리는 큰사거리 건널목마다 주춤주춤 문워크중인 차들과 골목마다 눈에 불을 켠 씨씨티비의 천국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또 갑갑하기만 하다. 이번에 들고 온 책이 김세균 서울대 정치과교수의 고별강연집, '사상이 필요하다'였는데 발간된 시점은 박근혜 당선직후쯤. 공저자인 홍세화 전 진보신당대표나 손호철 교수, 계간 문화과학 발행인이었던 강내희 교수 등등 필진은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었고 책도 사둔지 오래건만 여태 펼쳤다 덮길 수차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기본기'란 부제가 무색하도록 세상은 역진중이다.

진보 대 보수, 란 페이크 프레임이 끝내 다른 가능성들을 전부 막아버린 꼴이다. 안철수에 기대한 건 단지 제3의 공간을 열어주길, 양당제로 고착화되는 추세를 조금은 지연시켜주길 바랬던 것 뿐이나 역시. 싱가포르와 한국.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린 천민자본주의사회란 건, 어쩌면 압축성장을 경험한 풍요로운 경제와 천박하고 미발전한 시민사회 및 지평을 가진 나라의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점점 거대해지는 자본권력과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은 누구의 입으로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제3당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가능성과 사상이 들어설 자리는 봉쇄되고, 삿된 영웅-안철수-는 그나마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공간을 벌려 스펙트럼을 결과적으로 넓히나 했더니 투항해버리고, 민주당도 안철수도 결국 파이를 키우기보다 있는 파이를 지키는 현실적 선택을 해버린 것 같다.

그저 노무현이 읊조렸듯 말한마디로 치우고 넘기면 편하려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이미 모든 것이 소비일진대 정치 역시 일인일표의 소비행위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뭐가 이상하냐고. 싱가포르, 한국의 근미래에서 한국의 현재로 워프하기 직전, 한발 재겨 딛을 수 밖에.

 

(2014. 3. 2. from FB note.)

 

 

세상이 백팔번뇌를 안겨주는 2013년입니다.

 

그래도 모두 새해 복 듬뿍담뿍 받으세요~*

 

 

 

일시 : 2013년 1월 4일(금) PM 06: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1) 이 사진에 나온 문구를 한글로 해석해 주시고(& 조건),

 

           2) 본인이 느끼는 적절한 사례를 하나 제시해 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108장


 

 

 

 

 

 

 

냉철히 따지면 놀랍지는 않은 상황.

 

그저,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바심냈을 뿐이다. 박근혜 대통령 치세 시작.



패인은 크게 두 가지 아닐까. 근본적으로 보수로 경도된 한국사회의 지형도는 차치하고,

 

인구비례로도 보수화된 투표자층도 차치하고, 선거 국면에서만의 패인을 따져보면

 

1. 민주당의 비전없음과 무사안일함. 2. 취향화된 'personalized network'밖에 되지 않는 SNS에 대한 과잉기대와 의존.

 


1. 민주당의 무능함과 무책임함.

 

그것이 안철수 현상을 부르고, 멘토 열풍에 힘입은 안철수의 아마추어식 진단에 힘을 실었으며, 결국 그의 한마디한마디에

 

선거판이 흔들리게 허용하고 말았다. 붉은 색을 선점하고 나선 영악한 새눌당의 선거전략과 아젠다세팅에 제대로 한번 반격조차

 

못한 채 '안철수 현상'만 바라보고 치고 나가지 못했다. 안철수 현상 뒤에는 민생과 유리된 정치, 국민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치,

 

당면한 삶의 조건을 개선하지 못하는 정치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었음에도, 안철수만 보았다.

 

 

그 결과는 모두가 알듯, 사실상 안철수와의 단일화 실패. 안이 다시 움직이긴 했다지만 이미 극적이고 감동을 주는 단일화 따위,

 

국민의 염원을 받아안을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이는 안철수가 나눠져야 할 비판.

 

 

그렇지만 역시 포인트는, '안철수 현상'을 봐야 할 순간에 '안철수'만 보았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민주통합당 나부랭.

 

 



2. SNS라는 안경의 편향과 키보드워리어식 역량소진.

 

범 진보..민주당과 그 왼쪽, 그리고 '상식'을 표방한 시민들과 연예인급 셀렙들의 SNS에 대한 환상이 여전했다.

 

이미 트위터는 각자의 취향에 따른 개인화된 언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이전의 선거들에서 경고되었었지만 별무소용.

 

인증샷을 나누고 이벤트를 하고 RT를 하고. 그래봐야 이미 취향과 정견에 따라 분류된 사람들끼리만 돌고 도는 정보들이다.

 

물론 SNS는 보조적인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SNS에서의 소통이 진짜 소통인 양, 그게 전부인 양 거드름피웠던

 

모습들 아닐까. SNS를 믿고, SNS의 인기도를 업은 안철수를 믿고, 막판까지 민주당이 안일했던 거 같아 하는 말이다.



소통은 기본이었다. 소통보다 중요한 건 컨텐츠. 민주당(과 왼편)은 컨텐츠도 부실한데 소통조차 '전근대적 감수성'을 건드리는

 

새눌당에 뒤지고 말았다. SNS안에서 의제가 돌고도는 것에만 만족할 게 아니라, 뭐가 되었건 공세적인 이슈를 만들었어야 했다.

 

그냥 SNS의 젊은이들은 우리편이야, 이런 자위에 기대었던 거 아닐까.

 



* 대통령 한 명이 해먹어봐야 얼마나 해 먹을까. 그냥 전임 대통령이 해먹은 거 지켜주고, 지가 또 해먹겠지. 역설적으로 그 끝에는,

 

제3세계중 예외적인 경제적 정치적 성장을 이루었다던 한국이 애초 가야 할 곳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남미형, 주변부 자본주의국가의 정글.

 

 



이명박근혜의 십년. '잃어버린 십년'의 하프타임이 지나간다.

 

 

 

 

ⓒ 프레시안, 손문상 화백

 

 

1) 한국정치가 양당제로 고착화될까.


유럽과 같은 다당제가 이념정치, 계급정치가 가능할 거란 점에서 우리나라 의회정치도 그렇게 가는 게 이상적이라 생각했는데 갈수록 회의적이 되어간다. 특히 지리멸렬해진 진보블록을 대신해 치고 나온 안철수의 역할과 성과가 문제가 될 텐데...만약 그가 자체의 정치세력을 만들어내고 일정한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면, 이제 한국사회는 양당제가 고착화되지 않을까.

안철수가 뭔가를 제대로 해내기는커녕 이쁘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은 가능성이 농후해지면서 제3세력에 대한 대중의 냉소와 불신은 팽배할 테고. 이미 안철수는 안철수 현상을 불러낸 대중들의 피로감과 분노를 가중시키는 존재가 되어가는 듯 하다. 그렇다면 역시, 한국도 미국처럼 양당제로 고착하게 되는 걸까. 심지어 미국보다 못한 식의 중도우익과 극우세력의 양강구도가 되리라 예상되지만.

 


2) 진보정치세력의 구심은?


이른바 재야나 운동권의 정치세력화를 통해 건설된 진보정당에서 지켜온 의회 내 진보정치의 기치는, 어느덧 아웃오브안중이 되어가는 거 같다. '진보', '개혁', '복지', '경제민주화' 따위 단어에 대한 소유권도 모두 넘어가버렸고 좀처럼 회복될 거 같지도 않다. 이는 진보정당의 한계기도 하고, 이나라 민주주의와 '계몽'의 한계기도 하다. (안철수 현상의 안쓰러운 미망을 보라) 의회정치 내에서 진보적 가치를 표방할 수 있으려면 진보정당이 아니라 차라리 민주당 내 진보블록을 미는 게 낫지 않을까. (물론 의회 밖의 정치적 필드는 별도로 치고)

 


3) 비판적 지지의 문제


이념적 비전이 어디까지 뻗어나가든 현실은 찔끔찔끔 변한다 했을 때, 보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 뭘지에 대한 고민이다. 페이퍼당원이나마 진보신당 당적을 갖고 있지만 당에서 미는 후보가 아닌 타당의 후보를 이렇게 거리낌없이, 혹은 절박하게 미는 경우는 또 처음이니까. 진보신당의 공식지지 후보 김소연 후보, 그녀의 자격과 문제의식을 공감하고 지지하지만 현재로선 문재인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문>박,안)

 


4) 선택지에 대한 고민...박과 안의 비교.


다만, 단일화된 결과 안철수가 야권 후보가 된다면 다시 난 고민하게 될 거 같다. 그에게 기본적인 국정운영의 능력과 자원이 있을까. 정치라는 것에 대한 그의 얕은 인식과 부정적인 시각에 더해서, 도대체 그가 가진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능력은 무엇인지 문제해결능력-정치력-은 있는지 뭐하나 알 수 없단 점에서 그렇다.
수첩공주라지만 박양은 할튼 조조처럼 재사들을 주위에 많이 모으고 있고, 독재자의 딸이라지만 그건 이제 까봐야 먹히지도 않으며, 민주주의적 감수성이나 가치관이 부족하다지만 기성 정치인들 대개 오십보백보인 거 같기도 하고. 최소한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되지 않을까. 박양이 된다고 애비처럼 독재를 하거나 총칼로 짓밟진 않을 테고 뭐, 엠비만큼 하겠지...니미.


굉장히 우울한 그림이지만, 안철수가 하면 뭐가 나아질까, 그리고 뭐가 불안해질까를 계량했을 때. 난 안과 박양 둘다 지랄같은 결과일 거 같아서. 그땐 차라리 진보정당의 후보를 찍을 생각이다. 현재로선.

 

 

4-1) 안철수에 대한 단상

 

정치개혁'이라는 말을 협소한 지평에 지 나름의 상식에 가둬놓고는,
피와 살이 느껴지지 않는 '국민'이라는 단어 뒤에 숨어서
모처럼 사람들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단어, '개혁'과 '변화'의 이미지를
냉소의 도가니에 빨아제낀 걸레짝으로 만들어놓고 있다.

...

대체 안철수가 바라는 '정치개혁'이라는 건 뭘까.
감성적으론 알 듯 말 듯 하다가도, 정작 디테일은 없다.
니들이 알아서 국민의 소리를 들으면 정답이 나올 거다, 라는 식인데
이건 어쩌면 자기도 뭘 어째야 할 지 몰라서일지도.

* 이번에 다시 국회의 구조조정/정리해고를 말하는 꼬라질 보고 확 열받아서.

 


5) 요약.


박양이 대통령이 될 거 같고, 안철수는 엑스맨인 거 같고, 문재인과 민주당은 확연한 진보성은 고사하고 리더십도 전략도 없는 거 같고. 그런데 진보정당은 다 말아먹었고. 당비가 아까울 지경이고. 뭐 이딴 지랄같은 상황이 도래하고 말았는지 니미.

 

게다가 더욱 좌절스러운 건, 엠비5년의 시점, 나라의 가치관과 비전과 성장/분배전략이 송두리째 뒤흔들리는, 굉장히 큰 공간이 열렸음에도 이지경이라는 점. 분명 큰걸음 한발자국 왼쪽으로 뗄 수 있는 객관적인 호조건이 도래했음에도.

 

 

 

 

 

 

 


촛불이 지나가고, 남은 건 좌절과 냉소뿐이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으로 출발하여 정치에 대한 냉소로 끝난 싸움.

 

그건, 이른바 '시대정신'이라 거창하게 호명되는 일반대중의 정서가 어느결엔가 돌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같은 것이기도 하다.

 

 

불신과 냉소의 악순환.



촛불의 실패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고, 우선 촛불이 실패했는지에 대한 평가부터 다르겠지만 내겐 그렇다.

 

촛불은 아무 것도 얻지 못했고, 아무 것도 저지시키지 못했으며, 촛불을 든 스스로조차 거의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안으로 더욱 옹송그린 채 냉소만 머금게 만들었으니 철저하게 패배한 싸움.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정치에 대한 거부, 부정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질서유지선 안에서 '상식' 수준에 머문 채 점점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였다..고 말하지만 그 누구도, 어떤 의제도, 그들을 대변하거나 응집시키지 못했다.

 

광우병 걸리기 싫다는 정서만 공유했을 뿐, 그래서 어쩌겠다는 건지, 뭐가 문제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진전되지 못한 건 그래서다.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 심화시키는 과정, 그 소란스러움과 긴장감이 바로 정치의 본령일진대 그걸 거부했다.

 

(논쟁이라 부르기도 어설픈 '비폭력 논쟁' 나부랭이가 고작이었고, 유모차 부대는 '해맑은 아이들의 눈에 맨날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은 부끄럽지 않나요' 따위의 신화적 정치에의 감성에 감응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리고 안철수.

 

 

변화를 원하지만 정확히 뭘 원하는지 모르는, 게다가 정치를 혐오하도록 교육받은 사람들이 켜든 또다른 촛불이나 다름없지 싶다.

 

현상타파의 눈먼 의지(혹자는 그 눈멀었음을 상식이라 포장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정치(과정)에 대한 불신과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부정이 아마도 2012년 대선후보 안철수라는 아바타에 투영된 '시대정신' 아닐까.

 

 

대선에 뛰어든 이후 현재까지 그가 보여준 짧막한 말들과 모호한 입장에서 볼 수 있는 건,

 

대개 그런 식의 '정치에 대한 부정/거부', 정치에 대한 혐오에 그 뿌리를 기대고 있는 '앙상한 상식' 뿐이었다고 생각된다.

 

 

이런 식으로라면, 그가 만의 하나 대선에 승리한다고 치더라도 별반 기대할 것은 없어 보인다.

 

가치판단과 입장이 없는 '상식'에 기대어 공공의 장에서 발언하고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건 거의 없는 데다가,

 

어떤 정책을 어떠한 철학으로 펼쳐낼지에 대한 공백상태에선 또다시 대중의 열광은 냉소와 불신만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촛불을 거치며 크게 소진해 버린 변화와 혁신의 욕망, 그 에너지가 다시 방향을 잘못 찾고 소진되어 버리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암울하게도, 지난 촛불의 낯부끄러운 패배와 뒤따른 냉소의 시기..수년간의 절망은 곧 재연될 거 같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여소야대의 상황에서 야당 누군가가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준비 안된 안철수가 되는 경우에도)

 

 

안철수를 보면 촛불이 떠오르는 이유다.

 

 

 

 

 

* 참고삼아 읽어둘 만한 글 하나.(글 내용과 크게 관련은 없지만)

 

 

촛불시위 2년, 내가 쓰는 ‘촛불 반성문’ (시사평론가 유창선, 2010. 5월)

 

 

 

광주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신묘역) 앞에 선 안내판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곳에 모셔와 안장했다"는 문구다.

 

(광주 망월동 신묘역, 이 곳에 선 문재인과 안철수는 무엇을 보았을까.)

 

 

1980년 5월이 무려 17년이나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그리고 나서 구묘역은 잊혀지고 버려지다시피 했다.

 

정치인들도 찾지 않고, 아마 2004년이던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찾았던 게 거의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전례다.

 

 

그렇지만 구묘역은 여전히 5.18의 기억들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으며,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학살자 전두환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2년 9월말의 다음 기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 후보는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등 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문 후보는 또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옛 묘역을 찾아 87민주항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묘역도 참배했다.

문 후보는 "이분들 덕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는데 자꾸 후퇴하니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박기념비'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얘기를 듣고 되돌아와 이 비를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민박기념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뒤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이 비를 부순 뒤 구묘역 입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2012. 9. 28. 기사 발췌.

 

 

 

문재인이 이 곳을 굳이 찾았다는 것, 그리고 굳이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나왔다는 건 어쨌든 유의미한 퍼포먼스다.

 

게다가 망월동 신묘역 안의 민주 열사들 영정 앞에서 저리도 해맑게 웃고 치우는 누군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신묘역의 후문,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열사들의 영정 앞에서 파안대소를 했던 곳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후문을 나와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묘역이다. 전두환 정권의 회유책과 묘지 이장 책동에도 불구, 여전히 5.18 희생자가

 

119분이나 안장되어 있으며 이후의 민주화 투쟁 중 살해된 열사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곳이다. 제대로 다져지지도 않은 땅, 틀도 잘 갖추지 못한 채 제각기 색다르고 형이 다른 비석을 명패삼아 모셔진 분들.

 

그리고, 올라서는 곳 들머리에는 아스팔트가 커다랗게 구멍이 난 채 뭔가를 물고 있었다.

 

대충 식별되는 글자는, 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옆에 선 안내판의 내용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놓기로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에 복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1989년 1월 13일

 

 

광주, 전남 민주동지회"

 

저런 허름하고 낡은 '흔적'들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그저 여느 동네 야산의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뻔 했다.

 

그만큼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무언가 이 나라의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강렬히 보내는, 그야말로 세계의 끝이다.

 

인혁당과 민혁당을 헷갈렸던, 프롬프터에 오타가 났던 박근혜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그들에게 상처만 더한 건 아닐까.

 

인혁당 유가족분들이 최근에 다녀가신 듯 싱싱하고 새하얀 화환 하나가 제대 위에 놓였다.

 

(그 옆에는 최근에 다녀간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화환도 있었지만, 바람이 불었는지(?) 엎어진 채 꽃이 모두 시들어있었다.)

 

'진보적 정권교체'의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열사들, 이름이 있고 없고간에, 이 땅의 정신적 영토와 면면한 흐름을

 

지켜내온 그들은 총칼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만큼은 최소한 존중받고 기억되고 기려져야 하는 거 아닐지.

 

그렇기는커녕 거꾸로 흐르는 세월 탓에 저들은 무덤에 누워서까지 붉은 머리띠를 동여맸다.

 

구묘역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꽃집. 색색깔의 꽃다발과 여러겹 펼쳐진 파라솔의 색감이 꽤나 화려하고 이뻤지만

 

왼쪽으로 시야에 걸린 '광주'라는 두 글자가, 그리고 묘역의 스산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모두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떠나기 전. 여전히 떵떵거리며 호의호식중인 문어 대가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꺼이 즈려밟고 침을 뱉어주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정치인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머지로부터는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뉘우침이 없이 29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불법 축재물에 대한 추징조차 피하고 있는 그런 괴물은 사람도 아니다.

 

 

 

 

 

 

정태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도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근 10년만이었다. 구묘역과 신묘역으로 기억하고 있던 광주 5.18묘역은 그사이 많이 깔끔해져 있었다. 그때에도 이미

 

신묘역의 말끔함은 억지스런 분칠로만 느껴져서 왠지 모를 거부감과 암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평일 오전시간. 신묘역, 그러니까 무려 '국립 5.18민주묘지'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관리하시는 분들이나 몇몇 보이지 않는

 

참배객들의 몸가짐에서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조심스러움과 함께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는 이들의 비극성이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 역사를 이렇듯 '성지'화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일렀거나 부주의했다. 여전히 전두환이 건재하고, 5.18을 딛고 선 신군부와의

 

딜을 통해 은밀한 권세를 유지한 유신 잔당들은 다시금 명실상부한 권좌에 앉겠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새 빛이 바랜 (아마도) 2002년의 안내판. 이미 5.18은 오래되다 못해 이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과거가 되어 버린 걸까.

 

묘역 안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구슬프지만 우아하고 절제된 선율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 뿐, 분노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이전에 찾았던 정태춘의 노래들이라거나 5.18관련 영상들을 다시 찾는데, 이상하게도 많이들 짤렸다.

 

뭔가 오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괜찮은 자료들을 다시금 퍼올려두기로 한다.

 

 

 

 

'민주의 문'을 지나 묘역 안으로 들어서는 길.

 

 

 

 

문재인이, 안철수가, 그 이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과 김대중이 섰던 그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내게 광주, 그리고 5.18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동영상의 첫머리, 5.18의 '모란꽃'이라 불렸다는

 

전옥주의 가두방송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계엄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그렇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세상임에도, 5.18민주항쟁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거대한 그림자와 의미를 던지는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그 주역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의

 

결과와 후폭풍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적 변곡선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신 잔당의 청산 문제, 지역 감정 문제,

 

한국 사회 민주화의 지체 문제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쩌면 당시 광주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시민'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며 일어선 사람들.

 

아마 전옥주는 이런 식으로 언론이 봉쇄되고 언로가 막힌 광주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했을 거다.

 

"당신들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돌아가신 날짜대로 열을 지어 누워 계신 분들. 1980년 5월 18일부터 드문드문 나타난 비석에는 어느 순간

 

1980년 5월 20일자의 죽음들이 셀 수 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어미의 마음으로 새겼을, '싸우리라." 비석의 뒤에는 남겨진 이들의, 혹은 떠난 이들의 독백이 단단히 새겨졌다.

 

열다섯의 누군가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헌혈하고 나오는 길에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지고, 서른여덟의 누군가는

 

진압하려드는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트럭을 몰고 항거하다 숨졌다. 누군가의 아비는, 어미는, 먼저 간 자녀들의 넋과

 

뜻을 기리며 피눈물을 새겼고, 누군가의 형수는 그저 평안하길 바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 그나마 '상식'이 있고 그나마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해지는 자들,

 

그들에게 광주는 어떤 의미일까. 광주 민주항쟁은 어떤 빛깔로, 어떤 목소리로 기억될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올바르고 균형감이 잡혀 있는지를 고백하는 바로미터와 같을지 모른다.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이 여전히 제작조차 쉽지 않은 나라, 학살자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광주 5.18의 흔적을 보며 그저 슬픔을 느낄 뿐인지 분노를 느끼는지의 차이 말이다.

 

 

 

 

 

한미FTA의 날치기 통과 후 수천의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왔고, 트윗 역시 부글부글 끓고 있다. 열기를 식히려는 듯

물대포가 난사했고, 영하의 날씨에 고압의 물대포를 직접 사람에 겨냥하여 쏘는 건 지독하고 지랄같은 만행이지만 어느덧

저런 사진에도 많이 무감각해져버린 MB 치하의 4년차 한국이다.


그런데 트윗을 따라가고 아프리카 방송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이렇게 한미FTA를 반대한다며 거리로 나선

'촛불시민'들은, '조까 씨바'와 '쫄지마 씨바'를 외치는 그들은 이번에도 착한 척하며 공중도덕을 지키고

전경에게 도시락을 나눠주며 국가가 정해준 코스와 공간 내에서만 들썩거릴 텐가.


한미FTA를 반대한다며 분신하신 택시기사 아저씨가 계셨고, 서울 도심도 아니고 언론조차 주목하지 않는 곳에서

전경들과 치열하게 싸워왔던 노동자와 농민들이 있었다. 그들의 싸움은 그야말로 날것의 국가폭력과 반폭력의 대치,

농민분들은 똥물을 뿌리고 준비했던 죽창을 휘두르며 격렬하게 맞섰던 거다. 그런 가장 직접적으로 피햬를 입는

분들의 싸움이 벌어지거나 벌어지려한다면, '촛불시민'들은 어떻게 반응할까.


'폭력은 싫어요'라느니, '비폭력 평화'라느니 간디놀이를 재연하려나.


왜 유럽과 아프리카와 같은, 심지어 미국과 같은 분노의 움직임이 터지지 않을까. 반세계화, 반FTA의 그런 정당한

대중의 분노를 '역사의 분노', 역사의 국면을 전환시켜온 99%의 분노라고 말할 수 있다면, 왜 한국의 '촛불'들은

정색하고 화낼 줄도 모르고 그리도 온순하고 물러터졌을까 하는 게 내 궁금증인 거다.


그에 대해서는, 스스로 '멘토'입네 하는 사람들의 탓도 크다. 조국, 안철수, 박원순에 더해 김제동, 김어준 따위까지

아우르는 각양각색의, 그렇지만 결국 자기 수준에서 그런 '역사의 분노'를 달래주고 공감해주려하며 결과적으로

화낼 때 화를 못내게 김만 빼놓는 '착한 멘토'들
말이다. 심지어 한미FTA와 지금의 날치기 사태에 대해서 말한마디

없는 안철수 같은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리의 싸움에서 필요한 건, RATM이다. 분노가 폭발하고 바리케이트를 넘어서는, 같잖은 도덕주의 따위를 벗어던지고

사람들의 분노 그 자체에 집중하게 만드는 목소리다. 자신의 목소리로 대중을 어루만지고 치유하겠답시고 나서는

스티비 원더의 목소리가 아니다. (스티비 원더를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그리고, 그런 '착한 멘토'들과 함께 촛불이 지난 번 멈췄던 곳에서 다시 멈춘다면. 아래와 같은 전망이 유력해지고 만다.

부디. 촛불이 임하는 곳에 농민들의 똥물도 함께 임할 수 있는 싸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미FTA 날치기가 사회연대를 부를까?  (프레시안, 11.23)

[김종배의 it] 96년 노동법 날치기 후 15년, 이번엔…


어차피 다 알고 있었다. 한나라당이 적당한 때를 골라 한미FTA 비준안을 날치기할 것이란 점은 공지의 사실이었다. 새로울 것이 전혀 없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한미FTA 비준안이 날치기 처리 된 이후의 민심 향배가 초미의 관심사다.

민심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단지 한미FTA 때문만이 아니다. 더 근원적인 문제가 있다.

쌍용자동차 파업농성이 경찰의 강경진압으로 끝을 볼 때 다수의 국민은 나서지 않았다. 용산 참사가 벌어졌을 때도 그러했다.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했다.

아픈 마음으로 확인했다. 계층 문제에 대해 국민이 냉담하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했고, 사회 연대가 붕괴돼 있음을 또 한 번 확인했다.

그러던 차에 희망버스가 나타났다. 1만 명 가까운 국민이 먼 길 마다않고 한진중공업으로 달려가는 걸 보면서 일각에서는 사회연대의 복원이라고 감격했지만 꼭 그렇게 볼 수만도 없었다. 희망버스가 출발하기 한 달여 전 발생한 유성기업 파업농성에 보인 국민 반응은 쌍용차와 용산에 보였던 것처럼 냉담했다. 불과 한 달여 만에 국민이 냉탕에서 온탕으로 급회전을 했다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했다. 그래서 연대의 복원이라기보다는 '소금꽃' 김진숙 씨의 상징성과 김여진 씨와 같은 소셜테이너의 호소에 따른 일시적이고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 FTA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는 농민들 ⓒ프레시안(최형락)


시야를 넓히면 15년간 지속돼 온 현상이다. IMF환란이 발발하기 1년 전인 1996년 노동법 날치기에 항의하는 전 국민적인 시위가 벌어진 것을 끝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사회연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 직원과 중소기업 직원, 직장인과 자영업자, 도시민과 농민 간에 벌어진 사회경제적 지위의 격차만큼이나 분열의 골은 넓어져갔다. 2008년에 있었던 촛불시위가 특수한 경우로 기록되지만 그건 '일상적 경제활동'과는 결이 다른 문제였다. 업종의 이익, 직종의 이익, 계층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문제였다.
IMF 15년의 역사가 분열과 분화의 역사로 기록된 것은 자연스런 귀결인지도 모른다. IMF가 몰고 온 신자유주의 질서가 자기의 삶을 옥죄는 것보다 국가가 받쳐주지 않고 사회가 보듬어주지 않는 현실이 더 아팠기에 자기 자신을 우선시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그렇다. 제 한 몸, 제 식구 건사하기에 바빠 이웃을 돌아볼 여지도, 의지도 갖지 못한 것으로 해석한다면 그렇다.
한미FTA에 대한 민심은 어떻게 움직일까? 15년 동안 그랬던 것처럼 제 자리에서 주판일 튕기는 양상으로 나타날까? 아니면 사회연대를 복원하는 양상으로 나타날까?
어떤 이들은 낙관한다. 한미FTA가 몰고 올 파장은 사업장, 직종, 계층을 넘어서는 것이기에 연대의 매개가 될 것이라고. 한미FTA가 최근 들어 점증하는 시장개혁 목소리에 확성기를 대줄지 모른다고. 하지만 이런 예측과는 다른 현실도 있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 한미FTA에 대한 찬성 여론이 반대 여론보다 높게 나오는 현실이다.
국민 손에 리트머스 시험지가 쥐어졌다. 민심의 향배에 따라 그 시험지에 붉은색이 감돌 수도 있고 푸른색이 감돌 수도 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한미FTA 비준안 날치기 직후 민주노총은 '이명박 정권 퇴진투쟁'을 선언했고, 전국농민회총연맹 경북지부는 규탄집회를 갖는다고 발표했으며, 야5당은 촛불집회를 열기로 했다. 이들의 이런 움직임에 국민이 얼마나 호응하느냐를 보면 민심이 산성인지 알카리성인지 1차 판별이 가능해질 것이다.

/김종배 시사평론가

애초 박원순과 나경원의 경합은 네거티브 대 네거티브의 구도가 절대 아니었다.

양쪽을 모두 비난하고 틀린 점을 지적하는 양시양비론, 구름 위에 올라 촌평하는 식의 태도는

결국 우위를 점한 자, 기득권층에 슬그머니 기대겠다는 심보일 뿐.


'정치인 아저씨들 싸우지 좀 마세요'라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말앞에 모두 부끄러워 하란 말은

그래서 대개 사실 판단의 의지가 없는 게으르고 비겁한 핑계에 불과하다.


달리는 열차 위에 중립은 없다.

선거도 그렇고, 사실 세상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다.



+ 사실 개인적으로 박원순이나 그 뒤에 버틴 안철수가 진보일지, 진보적 정책(이라 쓰고 사회주의적 정책이라

읽는다)를 펼지는 모르겠다. 정권과 제대로 각 세운 적도 없는 유복한 시민운동가와 고작해야 기업CEO출신인

그들보다 비전이나 구체적 정책 면에서 신뢰할 만했던 사람들도 이미 기성정치판에 적지 않았었다.


그냥 내게 이번 투표는 사람들의 상식과 눈높이가 어느 수준인지, 부글거리는 불만이 제대로 타겟을 찾았는지

확인하는 의미 정도로 남았다. 그렇지만 서울에서도 나경원은 온갖 악재와 최악의 스타트에도 불구하고 여하간

45%대의 적잖은 투표율을 이뤄냈고,  나머지 보궐선거 지역은 한나라당이 압승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렇게도 어렵다니. 그나마 '선거의 여왕'이라는 누군가의 아성에 균열이 생긴 걸 확인하는 게 위안이다.





스티브 잡스에 대한 추모 열풍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의 철학이나 인생을 기리는 게 아니라, 그가 만든 애플 제품들을 기념한다는 느낌이랄까.

그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전혀 새로운 아이템을 끄집어 냈다지만, 그게 이런 애도물결의

근거로 충분할지 모르겠다. 그가 남긴 레토릭들과 아포리즘을 되씹으며 경탄하고 있는 사람들은

뭔가 그의 실체가 아닌 그의 이미지나 그림자에 열광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다.


이번 추모이벤트의 셀링포인트는, 내가 보기엔, 유저들에 대해선 (매니아틱하고 일종의 상징으로

소비되기에 이른) 애플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과시할 기회란 것, 그리고 언론들에 대해선 그의

드라마틱한 성공담을 현대사회 샐러리맨들의 신화로 승격시키는 기회란 것 정도 아닐까.


한국의 찌라시들이 질리도록 미국발 보도를 받아쓰는 이유도, 그런 신화를 다시 한국에 불러내려는

거 아닐지. 그렇지만 이미 메이드인코리아 버전의 샐러리맨들 신화 혹은 환타지는 차고 넘치는 게 사실.

MB, 정주영, 이건희, 이병철, 안철수에 이르기까지. MB가 언론사 대담중에 안철수를 두고 '학계인사'라

지칭했던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어쨌거나 애플로서는 대목을 맞은 셈인 거 같다. 원했던 원치 않았던 스티브 잡스의 '시체장사'를 통해

애플의 브랜드 이미지와 스타일이 격하게 강화되고 말았으니, 그의 죽음 앞에 주판을 튕기며 쾌재를 부르던

한국의 덜떨어진 매체들과 기업들은 역풍 앞에 당황하고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잡스의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면 되려나, 애플 주주들에 대한.



안철수와 박원순. 최근 갑작스런 등장과 폭발적인 지지도로 한국의 정당정치제도를 일거에 희화화하고 있는

그 두 명의 이름이 어느 까페, 어느 책에서 문득 눈에 띄어 집어들었다.


2008년 6월에 '안철수 연구소 사람들'이 써낸 책이라 되어 있는 이 책 앞머리에는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재직중이던 그의 추천사가 적혀있는 거다. "안철수연구소는 대한민국에서 기업과

기업인이 존경받을 수 있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사건이다."


시민운동 영역과 재계(중소기업)의 영역, 서로 다르다면 꽤나 다른 영역이지만 두 사람 정도의 네임밸류라면

이미 2008년 이전부터 서로를 알고 있었을 테지만, 막상 요새 둘의 드라마틱한 등장과 이후 숨가쁜 전개를

보고 있노라면 그들이 언제부터 서로를 의식하고 있었을까 궁금해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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