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레브의 구시가를 형성하는 두개의 언덕 중 하나, 그라데츠 언덕의 동문에 있는 스톤 게이트는 오히려 '기적의 성모'가

 

현현했다는 이야기로 더욱 유명하다. 1700년대에 일어났던 화재로 동문이 전부 타버렸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 한점 손상도 입지 않은

 

성모 마리아의 성화가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다. 이후 이곳은 성지순례의 장소가 되었고 이른바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더욱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한다.

 

 

 스톤 게이트는 그런 이야기가 서린 동문 자체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짧은 터널 같기도 한 그 곳의 위로 향하는 조그마한 문에

 

빗겨 내려쬐는 햇살이 더욱 운치를 더한다. 아마도 스톤 게이트 위의 성당으로 이어지는 문일까, 평소엔 닫혀있는 듯 하다.

 

 

사람들이 모두 자석을 만난 철가루처럼 정렬하고 선 저 너머, 꽃으로 장식된 저 창살 너머에 언뜻 보이는 그림이

 

바로 그 '기적의 성모' 성화라고 한다. 신의 뜻이라는 게 고작 잿더미 속에서 그림 한장 구해낸 걸로 드러나는진 모르겠지만,

 

많은 이들이 이 곳에 소원을 빌고 실제로 이루어졌다고 하니 딱히 딴지를 걸고 싶진 않고.

 

그보다 스톤 게이트 입구에 세워진 여인상이 더 재미있는 스토리를 감추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도 단단해보이는 나무상자와

 

하트가 그려진 열쇠를 들고 있는 여인은 아름답지만 단호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사랑을 거부했다며

 

분노하고 질투에 눈먼 남자에게 독살당하는 어처구니없도록 단순하지만 강력한 비극의 주인공이라는데,

 

그럼에도 자신의 의지와 마음을 몇번이고 지켜내겠다는 결의인 걸까. 몸매 전체에서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스톤 게이트에서 동서로 이어지는 자그레브 구시가의 풍경. 따로 전봇대가 없이 길 위에 떠있는 가로등들이 특이하다.

 

 

이렇게 스톤게이트의 동쪽 문과 서쪽 문을 찍고 나서 보니 왠지 터널같이 생겼다는 느낌이 더 짙어진다.

 

문 위로 약간 시커먼 흔적은 터널에서 빠져나온 매연이나 연기가 그려낸 자국 같기도 하고.

 

스톤 게이트로 향하는 언덕길 위에서 커다란 뱀 혹은 용을 무찌른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성 조지의 기마상.

 

 

 스톤 게이트를 지나 자그레브의 구시가, 그라데츠 마을의 골목들을 하나씩 탐방하다가 만난 갤러리에서 발견한 크로아티아 고대문자.

 

영어 알파벳과도 같지 않고 마치 중국 고대 갑골문자 같이 생긴 이 도형들은 꽤나 자유분방해보이고 매력적이다.

 

 크로아티아의 중세 시대를 달궜을 온갖 무기들과 갑주, 방패들이 전시된 또다른 갤러리.

 

 

그러고 보면 길의 오르내리막이 뚜렷이 실감나는 게 자그레브 구시가의 특징인 거 같기도 하다.

 

두 개의 봉긋한 언덕을 오르내리다 보면 올망졸망 모여있는 크로아티아의 역사적인 장소와 건물들을 섭렵하게 되는 거다.

 

 

 

 

부산에 갈 때마다 들르고 싶다가도, 시내에서 조금 떨어져 있기도 하고 번번이 서면이니 부경대 주변에서 술만 빨다

오기 일쑤여서 매번 마음만 움키고 말았던 곳, 해동 용궁사. 인터넷 공간에서 스쳤던 이미지들은 전부 이런 식,

파도가 철썩이는 바위들 위에 버티고 서서 해안가에 넓게 자리한 그럴듯한 사찰이 해동 용궁사다.


입구부터 범상치 않던, '한가지 소원을 꼭 이루는 해동 용궁사'. 글씨가 빨강색으로 적혀 있는 거라거나 중국

느낌이 나는 불상들이 으레 봐왔던 한국의 절들과는 느낌이 다른 거 같다. 그런 느낌은 갈수록 더욱 짙어졌다.

올해 삼재라는, 원숭이띠의 지신상. 열두 지신상이 쭉 늘어서 있었고 올해 삼재에 해당한다는 띠 앞에는 저렇게

삼재, 라고 표찰이 붙어있었다. 내년이 나가는 해라나, 삼재란 게 뭔지 아직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거 피함 좋겠다.

귀여워서 눈길을 붙잡던 벤치들. 손오공이 날뛰어봐야 부처님 손바닥이었다던 고사를 떠올리게 만들던 손바닥 모양의

의자하며, 고양이인지 쥐인지 호돌이인지 알 수는 없지만 뭔가 털 복슬한 동물이 대리석 의자를 받치고 있는 벤치.


꼭대기에선 까치가 꼬리를 쫑긋거리며 균형을 잡고 있는 탑의 앞에는 자동차 타이어 모양을 본딴 이름표가 붙었다.

'교통안전 기원탑'. 잘됐다 싶어, 오토바이 타고 다닐 때 사고나거나 다치지 않도록 해달라고 얼른 향에 불을 쟁이고

꼽고는 몇번 절을 했다. 딱히 불교 신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경계하는 효과는 있지 않을까.


해동 제일의 관음성지, 라는 간판이 걸린 화려한 정문을 지나야 비로소 해동 용궁사에 한발 들어선 셈이다. 아직까지는

절 경내로 들어가기 전까지의 맛보기쯤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황금빛 몸뚱이로 또아리를 틀고 있는 용의 얼굴이 조금

못생겼다 싶기도 하고, 역시 많이 보던 형태는 아닌지라 시선이 갔다.

무려 득남불. 이 부처님의 배를 어루만지면 남자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건지, 다른 부분은 거칠한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불룩 튀어나온 배만 유독 저렇게 반들반들 닳고 닳아버렸다. 효험은 있는 거려나. 조금 의심스럽지만.


바닷가로 나아가는 길, 석등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딱히 계단 난간이 없어도 빼곡하게 세워진 석등이 충분히 난간

역할을 해주고 있을 정도였달까. 어느 석등 위엔가 동그마니 솔방울이 놓여 있었다.

본전이 나타나기 전, 또 하나의 불상이 눈에 띄었다. 가슴팍에 백원짜리 오백원짜리를 붙여놓고 있는 이 부처의

이름은 '학업성취불', 이름처럼 책을 조신하게 펴들고 가늘게 뜬 눈으로 내려보고 있는 거다.

드디어 해안가로 나오니 석교가 하나, 그리고 그 석교 너머로 바다와 맞붙은 본전과 부처상들이 보였다.


돌계단을 지나면서도, 행운의 동전인지 뭔지 저 동자승이 들고 있는 바구니나 그 밑의 바구니에 동전을 던져넣으면

행운이 있을 거라는. 본전에 아직 도착하기도 전인데 조금 지쳐버렸다. 뭐 이리 빌고 돈넣고 하는데가 많은가 싶어서.

그치만 절의 위치는 참 상서롭달까, 이렇게 검푸른 바다가 코앞에서 하얗게 부서져내리는 곳, 짭조름한 바다 냄새가

가득한 해안가에 자리잡은 절이란 건 본 적이 없다.

본전 옆에 안치되어 있던 황금색의 토실토실한 미륵불상. 아무래도 여기는 중국의 영향을 좀 직접적으로

받았거나 그런 곳 아닐까 싶다. 부처상들도 약간씩 중국 냄새가 나는 거 같고, 뭔가 한국에서 흔히 봤던

얼굴이나 풍채, 분위기가 아닌 거 같다는 생각이 짙어졌다.

본존불이 모셔진 본전, 바닷바람에 해어지고 아이들 손장난에 빵꾸난 문창호가 불규칙하게 또다른 문양을 만든다.


커다란 청동 조각의 용이 앞발을 허공에 움킨채 굳어있는 곳 아래에는 빼곡하게 동자승이니 부처상 같은

인형들이 놓여 있었다. 하나씩 사람들이 돌멩이 얹는 마음으로 올려둔 걸까.

그리고 해수관음상. 한손에 정병을 들고 다른 손으로 수인을 맺고 있는 모습이 엄숙한 기운을 자아낸다.

바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정면에서 맞고 있는 해수관음 발치에서 촛물을 질질 흘리며 잘도 타들어가는 촛불들.

관음상 옆에 서서 내려다본 해동 용궁사의 전경, 기와지붕이 사방에서 모아쥔 듯한 분위기 속에 바다쪽으로 불쑥

튀어나온 탑이 하나 보였다.

그리고 지하로 좀 들어가서 볼 수 있는 '신비한 약수터' 위에 버티고 선, '천상천하 유아독존' 자세의 아기부처.

사람들은 그 위에 머리부터 물을 부어 씻기기도 하고 발치에 있는 다른 동자승 인형들도 같이 씻기기도 하고.

천수관음 대불상에서 내려오는 길, 어짊을 닦는 문이라는 뜻의 수인문 앞으로 출입금지 글자가 요란하다.

아까 기와지붕들로 둘러쌓였던, 가운데 있던 탑 주변에 있었는데 가까이 가고서야 눈에 띄인 건 황금돼지 두마리.

얼마나 큰지 어른이 양팔 가득 안아도 반정도밖에 안 잡힐 듯한 돼지 콧구멍에 동전이 수북하다.

등용문이라는 이름이 붙어있는 야트막한 아치문. 사람들이 고개를 조심하지 않으면 천장에 머리를 부딪힐만큼 낮다.

본전 아래에 있던 기념품점이랄까, 염주나 기와시주 같은 걸 담당하는 곳인데 재미있는 걸 두개 발견했다.

바람방지, 여자떼는부. 이런 게 과연 효과가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 얼마나 절실하고도 보편적인 문제면 저런

부적이 레디메이드로 만들어져 팔리나 싶기도 하고.

부처님 오신 날이라거나 특별한 때 동물을 사서 풀어주는, 방생하는 곳. 쑤욱 들어온 바닷가 너머로 용궁사가 보인다.

방생하는 곳 옆에 있던 또다른 부처님. 이곳저곳에 모셔진 부처님들은 저마다 능력이 하나씩 출중하시어, 어느분은

병을 낫게 하고 어느 분은 재산운을 틔워주고 어느분은 공부를 잘하게 해주고 어느분은 만능이시고..좀 심하지 싶다.

물론 한국의 절들이 대개 삼신각이니 산신각이니 무속신앙의 신들이나 토속 종교의 신들까지 함께 모셔지는 그런

공간이었던 건 맞지만, 이곳처럼 이렇게 분업체계가 잘 갖춰져 복전을 요구하는 부처님들이 곳곳에 모셔진 절은

정말 처음 본 거 같다. 용궁사의 위치라거나 풍경 등은 정말 다시 오고 싶을 만큼 이쁘고 인상적이었는데, 다른 의미로

이곳저곳에 모셔진 부처님들 역시 기억에 오래 남을 거 같다. 남자아이를 원해? 교통안전? 학업성취? 무병장수?

뭐든 돈넣고 빌기만 하면 이뤄진다는 '매매'가 이뤄지는 건 아니었음 좋겠다.

집착하지 말라는 법구경의 이런 구절을 바위에 파놓은 게, 당신이 지갑에 담아온 모든 지폐들을 이런저런 보시함에 전부

털어넣고 가라는 종용의 의미를 담은 건 아니길 바라며.





보문사에서 굳이 마애관음좌상 이야기를 따로 빼서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보문사라는 절 하나를 돌아보는 것만큼

마애관음좌상을 보러가는 길과 마애관음좌상 자체의 무게가 묵직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래서

이렇게 보문사 극락보전을 돌아 마애관음좌상으로 오르는 계단을 채 밟기도 전부터 부처님을 향해 머리를 조아린다.

(이전 포스팅 :  석실 안에 모셔진 천오백년 전 부처님의 모습, 석모도 보문사에서.)

아직 해가 지려면 시간이 꽤 많이 남았다 싶은데 벌써부터 계단 양쪽에 버티고 선 석등에는 불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쌍쌍이 손을 잡고, 혹은 아이의 손까지 잡고 사이좋게 계단을 오르고 있었지만 글쎄, 내가 본 바로는

계단 중간쯤부터는 가쁜 숨을 헉헉 내쉬며 대개 손을 놓고 제한몸 건사하기에도 힘겨워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약 10분 소요'된다는 이 계단은 경사가 꽤나 가파르기도 하고, 애초 절에서부터 마애관음좌상까지의 거리도

10분이 걸린다기에는 조금 무리다 싶은 1킬로미터 가량이라고 하니.

계단을 오르는데 눈에 띈 현수막 하나. 소원을 담는 곳이라나. 소원을 적어서는 유리병 속에 담아 100일을 채우고 나면

스님께서 축원을 올려주시고 태워서 날려보낸다는 건데, 딱히 불자는 아니지만 이런 걸 보면 왠지 한번 해보고 싶다.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소원이라고 하면, 음..아무래도 로또나 연금복권 당첨 같은 것 밖에 떠오르질 않는 걸 보면 딱히

부처님에게까지 들고 가서 부탁할 일은 아직 없는 거 같다.

계단을 오르면서 계속 보문사 쪽을 돌아보았다. 아직 기운이 팔팔하던 계단 초입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풍진 숲속에

포옥 감싸여 있는 절의 전체적인 모습이 계단을 좀 오르면서 점점 각도를 달리해서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던 거다.

이런 식으로 보는 각도와 방향을 달리 해서 보문사를 굽어 볼 수 있다는 건 마애관음좌상을 친견하러 가는 계단 위에서

얻는 예기치 않은 또다른 즐거움.


오르는 길이 어찌나 가파른지, 계단을 지그재그 모양으로 만들어 두었어도 어느 순간 아래를 내려보면 살짝 아찔하다

싶을 정도의 각도로 꺽어지고 있었다. 지그재그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길이 저 아래 어디쯤에선가 앙상한 나무사이로

삼켜져 버려서 이젠 더이상 보문사의 기와지붕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노랗고 따뜻해 뵈는 등불을 품고 있던 석등이 중간중간 있어서, 저기까지만 가서 쉬면 되겠다, 라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석등에서 석등을 마음으로 짚고 넘어가는데 점점 하늘이 어두워진다. 해가 워낙 짧고

금방 사그라져버리는 계절, 겨울이 오고 있는 거다. 마음이 급해지는데 앞에 왠 반짝거리는 유리병들이 보였다.


아까 계단 입구에서 봤던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유리병들이 여기다 모여있었다. 색색의 종이에 꾹꾹 눌러 씌인 사람들의

소원이 반짝거리는 말간 유리병 안에 담겨있었다.

그리고 용 대여섯마리가 서로의 몸을 비비 꼬며 또아리를 틀고 있는 그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사이에도, 용의 사슴뿔 위에도

사람들은 겁도 없이 유리병을 걸어두었다. 저렇게 하면 용을 타고서 조금이라도 빨리 부처님께 가닿을지도 모르겠다.

드디어 마애관음좌상 도착. 툭 튀어나온 눈썹바위 아래로 돌을 돋을새김한 부처님이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겠다. 여기 예전에 왔을 때는 문득 비가 나려서, 저 눈썹바위 아래에 바싹 붙어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다가 내려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그때 고마웠어요 부처님, 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보문사는 600년경에 창건된 천년사찰이라 하지만 이 마애석불좌상은 아직 백년도 채 되지 않은 비교적 최근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높이가 9미터가 넘고 너비가 3미터가 넘는 이 커다란 부처상도 그러고 보면 내가 그날 그랬듯

이 눈썹바위 덕분에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거다.

툭 튀어나온 바위가 지붕처럼 부처님을 가호해주고 있는 셈, 그리고 그 부처님은 이곳에서 저 아래 보문사, 그 아래 석모도,

그리고 강화도 너머 멀리까지 굽어살피며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가호해 주고 있는 거랄까. 여기서

다시 내려다본 지그재그 계단은 생각보다 별로 안 길어 보이는 게 아쉽다. 실제로는 숨이 턱까지 차서야 올라왔는데.

신 앞에 선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참 연약해 보인다지만, 특히나 저렇게 단단한 바위에 모셔진 부처님 앞에 선

사람들의 모습은 더욱 조그마해 보인다. 그저 눈에 보이는 부분만이 아니라 마치 빙하처럼 저아래로 보이지 않는

커다란 낙가산 전체의 기운과 무게감이 부처님 조각에 실려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그새 점점 날이 어두워지고

부처님 앞에 모셔진 촛불들이 더욱 밝게 타오르고 있었다.

* 보문사 마애석불좌상(안내판 참조) :

1928년에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낙가산 중턱의 일명 눈썹바위에 조각한 것이다. 불상 뒤의 둥근

빛을 배경으로 네모진 얼굴에 보석으로 장식된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세속의 모든 번뇌와 마귀를 씻어주는 깨끗한 물을

담은 정병을 든 관음보살이 연꽃받침 위에 앉아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 진 양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커다란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보문사는 관음보살의 성지로서 중요시하던 곳이었다.


 


날씨가 꾸물꾸물하더니 딱히 기별도 없이 해가 넘어가버릴 생각인가 보았다. 해질 무렵 이곳에서 바라보면 서해바다로

곤두박질치는 붉은 해의 모습과 노을로 타오르는 하늘과 바다의 모습이 정말 장관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나는 올 때마다

날씨가 이렇게 흐린지 모르겠다. 이런 것도 불가에서 말하는 인연이라면 인연이려나, 시시각각 어둠이 내려앉고 계단을

지키던 석등의 노랑 불빛이 둥실둥실 떠오르더니 보문사를 넘어 석모도의 사방으로 퍼져나가고 있었다.


향불이 쉼없이 살라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제각기의 소원을 빌고 부처에 의탁하며, 빨강노랑초록색 향에 불을 쟁여

부처님께 바치고 있었다. 거칠 것없이 바람이 휘몰아치는 곳이라, 바람이 한번 불어닥칠 때마다 바싹 빨아당기는

담배 끝처럼 향 끝에서 붉은 불꽃이 일렁이며 거침없이 타들어갔다. 향로에 무질서하게 꽂혀있는 색색의 향들이

만들어낸 모양이 삐죽삐죽 제멋대로의 고슴도치 같기도 하고.

이곳 보문사 마애관음좌상은 현재 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세속의 차원에서 보자면

보문사와 더불어 인천이 품고 있는 관광 명소 중의 하나일 것이고, 부처님을 모시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렇게 석등의

갓 위에까지 도톨도톨하게 돌멩이를 올려둘 만큼 절절하고 영험한 관음보살의 도량인 게다. 그리고 내게는, 아직

연이 닿지 않아 보지 못한 낙조 풍경이 숙제처럼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숙제긴 숙제지만 유쾌하게 받아들고

기꺼이 하고 싶은 그런 류의 숙제 말이다.




* 인천관광공사에서 컨텐츠 제작에 필요한 지원을 받습니다.

추석날 밤 광화문 광장에서 청계천 쪽을 바라보며, 너풀너풀 자욱한 구름들이 쌩쌩 휘감기는 달덩이가

그래도 제법 선명하게 보이던 찰나였다. 내 소원은..

그래도 약빨이 부족하다 싶다면, 추석+1일차의 달님 힘이라도 좀더 보태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추석+1일차, 연휴 마지막날의 달님은 마치 전류가 파직거리듯 갈기갈기 찢긴 구름으로 슬쩍 몸을

가리고 있었다.




겸겸, 추석은 지났지만 추석 기념 초대장 방출. 선착순 세분께 드립니다~* (完)







● 일시 : 2011년 1월 6일(목) 00:3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http://ytzsche.tistory.com)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 목적 : 작심삼일 시즌2가 지나가고 있는 2011년 1월 6일,
            새해 다짐을 되새기고 작심삼일 시즌212(=365/3)까지
            쉼없이 무한 돌림노래하는 열의를 되새기기 위함.



● 방법 : 올해의 새해 다짐, 세가지 소원을 댓글로 달아주세요.
           혹시 아나요, 댓글을 달아주시면 정말 이뤄질지도..?!


제공 : 초대장 69장 (왜 하필...!!)


In Honor o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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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tzsc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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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 Thursday January 6, 2011



R.S.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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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시내의 남서쪽, 화시제야시장이 바로 인접해 있는 시끄럽고 번잡한 거리에 범상찮은 누각을 과시하는

절이 하나 있다. 서울로 비기자면, 삼성동 봉은사..라기보다는 도심의 조계종이나 실상사쯤으로 비기는 게

맞을래나. 좀더 번잡하고 오래된 건물들 사이에 콕 박혀 있는 그런 느낌.

타이페이 시내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절, 룽산쓰(龍山寺), 용산사다. 근 삼백년 가까이 된 절인데 벌써 몇차례

천재지변이니 전란에 시달려 온 지라 지금의 건물은 2차 세계대전 후에 재건된 거라고 한다. 근데 이 때깔이나

분위기는 거의 이 도시가 생겨나기 이전부터 버티고 있었던 듯한 터줏대감의 포스.

밖에서는 좀 한적하고 외따로 툭 동떨어진 느낌의 사찰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니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이

바글바글, 단위면적당 인구밀도는 룽산쓰 주변에 비해 꽤나 높겠다.

밑에도 온통 공양물들로 가득하다. 큰 불이라도 난 양 사방에서 태우는 향에서 퍼진 연기는 가실 줄을 모르고,

사방에서 무규칙하게 내부를 돌아다니는 사람 사이에서 순간 길을 잃은 느낌마저 들었다.

사람들은 공양물을 바치고 향을 흔들며 손을 모았다. 조그마한 꼬맹이든, 머리하얀 할머니든, 자력으로 안 되는

일이 세상에는 많은 거다. 어떨 때는 신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있긴 하지만, 아직은.

펄펄 피어오르는 향로 속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푹푹 찌는 지옥에 와 있는 느낌도 살풋.

본당에 안치된 영험하다는 관음보살 외에도 모시고 있는 신들이 많다. 가이드북에 따르자면, 보현보살, 마조,

관제, 삼신할머니 같은 신불들. 제각기의 목적에 맞는 신을 찾아 '성적 올려달라고', '사랑을 이뤄달라고', '돈벌게

해달라고', 그런 것 쯤일까. 문득 든 생각인데, 요새는 '오래 살게 해주세요'는 별로 신에게 빌 꺼리가 못 되는 거

같다. 보통 드라마보면 의사 소매춤 잡고 비는 거 같던데.

한 바퀴 사원을 돌아보니 온몸이 온통 땀투성이, 게다가 살짝 훈제된 햄처럼 향내랄까 탄내가 시즈닝되어버렸다.

아쉬웠던 점은, 뭐 워낙 도심 복판에 있는 절이라 그렇겠지만 그렇다 해도 너무 쉴 만한 공간이 없다는 점. 사실

절이 쉬는 데야 아니라지만, 그래도 한국의 절들처럼 여유로운 부지를 가지고 숨통이 트이는 여지가 없어서.

절 자체의 생김도 그렇다. 단정한 빛깔의 기둥이 열짓고 있는 한국의 담백한 절들과는 영 딴판으로 기둥 하나씩

붙잡고 봉춤 중인 우리의 용님. 화려하고 이뿌지만 폭염 속에서 잠시 앉아 땀 식힐 곳이 넘 아쉬웠다는.

돌아나오는 길, 계속 뒤를 돌아보며 사진을 찍게 되는 건 뭔가 계속 아쉬움이 남고 좀더 돌아보고 싶은

마음때문인 거다. 좀만 더 햇살이 직사하지 않는 시간대에만 왔어도 좀더 멋지게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좀만 더 기다려 해가 기울면 조금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어쩌면 정말 어딘가의 모습을

온전히 발견하고 캐내려면, 매 계절, 그리고 하루의 아침점심저녁쯤 변화하는 모습을 지켜봐줄 여유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게 아마 확실할 거다.

뭔가 복잡하고 정교해 보이는 저 처마의 생김생김은, 손을 뻗어 한번 살살 쓸어보고 싶게 만든다. 나무를 깍아

만들 걸까 아니면 뭔가 틀에 찍어낸 걸까.

룽산쓰에서 벗어나 조금 걷다가 길 건너편에서 마주친 스쿠터 한 대, 갈빛 옷을 저며입고 계신 스님 한분이

운전 중이셨다. 저 분은 룽산쓰의 봄여름가을겨울, 아침점심저녁으로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다 알고 있겠지.

살짝 부러워졌다. 사람들이 이토록 꽉꽉 미어지는 곳이 정작 숨기고 있는 표정을 알고 있을 스쿠터 스님.




집에 있는 조그마한 술병 중에 180ml 짜리 사케가 있다. 월계관, 게케이칸의 달콤하면서 담백한 청주.

맛이야 뭐, 가볍고 달달한 맛에 한잔한잔 하다 보면 한 병이 금세 비워진다는 점 정도 이야기함직하다.

이미 사케가 대중화된지는 오래지만 이런 병은 여전히 신기하다. 볼록하게 배가 튀어나온 병에,

하얀색 뚜껑이 얹혀있는게 뭐가 신기하냐면.

뚜껑이 바로 술잔으로 쓰일 수 있다는 점. 신기하게도 이 잔 역시 대략 7잔 분량이 나온다. 마치 어릴 적

소주 한병이 왜 7잔정도의 분량으로 맞춰졌는지를 들으며 신기해 했던 것처럼 다시금 신기했었다.

부모님이 산행가실 때 한번 가져가셨던 적이 있는데, 아주 '대박'이었다고.



보름달을 보며 술 한잔. 소원을 뭘 빌지 생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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