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식 기본식순.hwp

 

 

예식 기본식순

 

주례 : OOO

신랑 : OOO OOO 의 장남 OOO

신부 : OOO OOO 의 장녀 OOO

 

 

o 사회자 입장 (시작 5~10분전)

 

* 잠시 후 OOO OOO 님의 장남 OOO 군과 OOO OOO 님의 장녀 OOO 양의 결혼식이 진행될 예정이오니 내빈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에 마련된 좌석에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 아울러 정숙한 진행을 위해 소지하고 계신 핸드폰을 모두 진동으로 바꿔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로연시간안내

피로연 시간은 한시 삼십분부터 네시까지이며,(13:30 ~ 16:00) 예식장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o 개식선언

 

* 바쁘신 중에도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하여 참석해 주신 내빈 여러분께 양가를 대신하여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 그럼 지금부터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o 양가 모친 입장 및 화촉 점화

 

* 먼저 신랑과 신부를 낳아 주시고 길러주신 양가 어머님께서 단상 위에 마련된 촛불을 점화하여 주시겠습니다.

 

양가 어머니 입장해 주십시오.

 

* (점화시) 신랑 신부가 앞으로 만들 새로운 가정의 앞길을 열고, 어둠을 밝혀 주시는 의미에서 양가 어머님께서 화촉 점화를 하고 계십니다.

 

오늘이 있기까지 정성으로 길러주신 부모님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o 주례 등단 및 소개

 

* 다음은 오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두 사람을 위해 결혼식을 집전해 주실 주례선생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주례를 맡아주신 OOO님께서는 OOO로 재직중이시며, OOO을 맡고 계십니다.

 

주례선생님을 큰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o 신랑 입장

 

* 다음은 오늘의 주인공 중 한사람인 신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힘찬 박수로 신랑을 맞이하여 주십시오.

신랑 입장!!! (목소리 힘차게)"

 

 

o 신부 입장

 

* 이어서 오늘 또 한사람의 주인공으로 결혼식의 꽃인 아름다운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힘찬 박수로 신부를 맞이하여 주십시오. 신부 입장!!! (목소리 힘차게)

 

 

o 맞절

 

* 다음은 두 사람이 양가 일가친척과 하객 여러분들 앞에서 성인의 예를 드리는 맞절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례 주도 : 신랑, 신부는 서로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인사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랑, 신부 맞절!)

 

 

o 혼인 서약

 

* 계속해서 신랑,신부 두 사람으로부터 귀중한 혼인 서약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주례 주도)

 

 

o 성혼 선언문 낭독

 

* 혼인 서약에 이어 이제는 두 사람이 완전한 부부임을 선언하는 성혼 선언이 있겠습니다. (주례 주도)

 

 

o 주례말씀

 

* 이제 주례 선생님으로부터 결혼 생활과 사회 생활을 함에 있어서 항상 간직해야할 소중한 말씀의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o 주례말씀종료후

 

* 주례선생님께서 두 사람의 앞날에 귀감이 될 소중한 말씀 해주셨습니다. 다시한번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o 축가 또는 축주

 

* 다음은 신랑, 신부의 새출발을 축하하는 축가(축주)가 있겠습니다.

(축가 소개후 입장시)

 

박수로 맞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o 내빈께 인사

 

* 이어 신랑 신부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양가부모님과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 위해 참석하여 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인사를 드릴때 힘찬 박수로 두 사람을 축복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주례주도)

 

 

o 행진

 

* 이제 가족과 내빈 여러분의 축복 속에서 신랑, 신부가 힘찬 첫 발을 내딛는 행진이 있겠습니다. 두 사람이 첫 발걸음을 잘 내디딜 수 있도록 축하의 큰 박수와 격려로 축복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랑, 신부 확인후)

 

신랑 신부 행진!! (목소리 힘차게)

 

 

 

o 폐회식

 

* 이상으로 신랑 OOO 군과 신부 OOO 양의 결혼식을 마치겠습니다. 예식이 아름답고 성스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하객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오늘의 결혼식을 집전해 주신 OOO님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사진 촬영이 있사오니 양가 가족, 친지, 직장 동료, 친구 여러분께서는 끝까지 함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피로연시간안내

 

피로연 시간은 한시 삼십분부터 네시까지이며,(13:30 ~ 16:00) 예식장 맞은편에 준비되어 있사오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아직 신부도, 어느 누구도 밟지 않은 Virgin Road. 몇걸음 내딛지 않아 끝에서 끝까지 걸어가는 짧은 길이라지만

 

그 길 끝에 섰을 때와 돌아나올 때의 마음가짐이나 무게감이란 건 달리 비할 만한 데가 없을 거다.

 

신부를 맞을 준비, 어깨를 한껏 부풀려 애써 용기를 내고 길 끝에서 나설 채비를 하는 그.

 

 

신부와 아버님이 그 길 끝에 나란히 서고, 어깨 사이로 보이는 그는 조그맣게 얼어붙었다.

  

 

 

 

 주례가 없는 대신 양가 아버님의 축사로 갈음하는 (갠적으론) 바람직한 결혼식순에 따라, 둘은 무대 가운데에 자리잡았다.

 

덕분에 잔뜩 늘어난 사회의 역할, 종이 몇장에 빼곡하게 적힌 멘트를 주섬주섬 읽는 안경알이 뱅글뱅글.

 

 

 신랑의, 신부의 아버님은 살짝 아마추어같으면서도 진심어린 축사를 전해주시고, 신랑신부는 이를 경청하고.

 

직접 제작한 손팻말까지 흔들며 '축하합니다~ 축복합니다' 노래해주던 사람들.

 

결혼식장을 담느라 부산하게 움직이던 카메라 둘, 캠코더 하나. 스냅을 맘대로 찍어달랬으니 맘대로 찍는 중.

 

식이 마칠 즈음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잠시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두 사람, 하객들에게 다소곳이 인사.

 

 순식간에 파아~ 하고 터져버린 팡파레. 이렇게 눈깜짝할 사이에 빤짝이가 뿜어나갈 줄이야.

 

마음이 바빴는지 성큼성큼 순식간에 버진로드 끝까지 도달한 두사람. 사방으론 온통 팡파레의 내용물이 튀었다.

 

어쩐지, 뭔가 밋밋하더라니. 키스는 버진로드를 내려오는 순간. 언젠가 문화평론가 문강형준이 쓴 본인 결혼에 대한

 

글을 읽고 나서부터 이 순간에 꼭 떠오르는 구절이 있다. 이제 새로운 걸음을 떼는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구절.

 

ⓒ 문강형준의 읽기. (http://blog.naver.com/caujun?Redirect=Log&logNo=60121067014&from=postView)

 

 

이제 인증샷의 시간. 글쎄, 신랑신부가 찍힌 사진은 많이들 갖고 있겠지만 신랑신부의 시각에서 찍힌 사진은 어떨까.

 

 

그 와중에 식장을 화사하게 꾸미던 화병들이 치워지고, 한쪽의 케잌 역시 계약조건에 없던지라 무사히 원대복귀.

 

 

4월의 신부를 탄생시킨 대기실, 그리고 축하하러 온 사람들의 배를 불려준 피로연장. 

 

서울여성플라자 웨딩홀, 언젠가 여기서 연극을 본 적도 있었던 거 같은데.

 

 피로연장에 소주병과 맥주병이 세팅된 테이블 위 노랑 조화조차 이뻐보이는 날은, 친구의 결혼식이다.

 

 벚꽃이 만발하고 연둣빛 잎새가 우쭐우쭐 몸을 뒤채는 4월의 봄날.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구럼비를 돌침대삼아 신혼여행 잘 다녀오시길. (얼굴 및 신분노출 안 시키는 사진만 골라골랐음)

 

지금 맞잡은 두손 놓지 않고 이대로 평생 행복하게 알아서 잘 살겠지 뭐.

 

 

 

 

"미워할 수 없는 악인 캐릭터, 아니 차라리 그는 현대 도시에 뜬금없이 내던져진 정글소년 아니었을까." ytzsche.


이런 생각은 누구나 한번쯤 해보는 거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그렇지만 그렇게 앞뒤 동강난 짧은 망상에 이야기가 붙어선 매력적인 캐릭터가 탄생했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고,

세상과 유리된 채 필요에 따라 조금 한숟가락 얹을 뿐인 초능력자. 일신에 품고 있는 어마어마한 능력에 비해 참 단촐하고

소박하다 싶을 정도로 존재감없이 살고 있단 게 말이 되나 싶기도 하지만,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그의

비극적 운명을 헤아려보면 등장부터 연민이 울컥 치미는 캐릭터인 거다.


초능력. 일반인에 비해 월등한 능력을 지니고 있을 때 우린 초능력을 지닌 자, 초능력자라고 말한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서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그의 능력은 분명 일반의 수준에선 불가능하고 불가해한 초능력임에

분명하지만,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까. 본인은 그로 인해 부모의 보살핌을 잃었고, 학교도 다니지 못했으며, 변변한

친구 하나 없이 홀로 막막한 도시의 그림자로 숨어들었던 거다. 배트맨에 나오는 악역 펭귄맨 같기도 하고, 혹은

어쩌면 현대 도시에 나타난 '정글소년 모글리'같은 캐릭터인지 모른다.


분명 '정글소년 모글리'를 연상시킨 이유의 팔할은 강동원의 덕이다. 작고 갸냘픈 체구에, 상처받은 눈빛을 불안하게

흔드는 그의 표정이나 움직임은 다른 사람들과 섞이지 못한채 줄곧 바깥에서 빙빙 돌기만 하는 이방인의 그것 같다.

사실 그는 자신의 특수한 능력 때문에 사회화될 기회를 박탈당하고 사회 내에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한 채, 근근이

전당포나 털어가며 살았던 거다. 그에 비하면 무작정 그를 뒤쫓는 고수의 캐릭터는 그래도 준수한 삶을 살고 있달까.

그에겐 피부색이 다른-그렇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친구도 여럿 있고, 허름하나마 직장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고 보면 강동원이 연기한 이 매력적인 캐릭터에도 불구하고 뒤로 갈수록 영화가 후줄근해진다고 느끼는 건,

전적으로 그의 탓이다. 그가 왜 그토록 강동원을 잡는데 집착하는지, 그가 다른 이들에게 보였던 연민과 따뜻함이

강동원에 이입될 수는 없었던 건지, 그리고 심지어 강동원을 잡아서 뭘 어쩔 건지에 대해서도 아무런 단서도,

설득력도 없어 보인다. 둘의 조우가 반복될수록 고수가 왜 강동원을 쫓는지, 왜 그의 분노게이지는 떨어질 줄

모르고 무작정 상승하기만 하는지 납득이 안 가는 거다.


차라리 강동원이 조우를 반복하면서도 끝내 그의 능력으로 확실히 고수를 종결짓지 않고 불씨를 남겨두는 건

이해가 간다. 여태 누구에게도 관심받지 않고 제대로 관계를 맺어본 적이 없을 그에게, 비록 맹렬한 분노일지언정

본인의 존재를 그토록 크게 인식하고 반응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건 그에게는 전혀 새로운 쾌감이자 행복, 혹은

그에 가까운 감정 아니었을까. 그렇기에 그는 자신이 둘만의 생존 게임에서 이기든 지든, 승패 여부에 관계없이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능력을 한껏 뿜어내며 고수와 대적해 나가는 거다.


가끔 그런 해외토픽 기사가 뜨곤 한다. 무성한 밀림에서 홀로 자라난 어린 아이가 문득 발견되어 도시로

이송되어서는 병원 치료도 받고 교육도 받는다는 기사 말이다. 강동원이 그렇듯 문득 도시로 떠밀려온

정글소년과 같다면, 그는 초능력자라기보다는 차라리 '장애자', '사회적 약자'라고 불리는 게 맞지 않을까.

그리고 해외토픽의 짧막한 후속보도가 그렇듯, 그렇게 사회로부터 떨어져 살며 사회화의 기회를 놓치고 만

사람들은 대개 죽어버리고 만다. 강동원이 그랬듯.









많은 사람이 자살을 한다. 최진실, 노무현, 정몽헌, 최진영..활자화된 이름들의 죽음 이외에도 도처에서 학생이,

회사원이, 주부가, 아이가 죽음을 선택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사람들은 대개 그들의 선택에 대해

원망하고 훈계한다. 더러는 비웃음이 섞인 훈계일지도 모른다. 니가 힘들다는 그 삶, 난 잘 살고 있는데..하며.


자살을 결심하고 실행한 사람에 한번쯤 생각해본 사람까지 합한다 해도, 어쨌던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그들은

소수자일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은 '살아있는 자'의 이름으로 자살의 경박함과 무책임함을 비난하고, 사회는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이름으로 자살을 단죄하는 판이라 그렇다. 이미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안전하게 살려두기 위한 '반면교사'나 '예외'가 된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homo sacer'와 같다.)

(참고 : [리뷰] 호모 사케르(조르조 아감벤, 새물결))


"자살이라는 문제는 심리학적 접근으로 풀 수 없다. 생명 법칙이 깨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명에 대해
 내리는 판단은 늘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원칙 하에서 이루어진다."



자살을 적대시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또 일견 그럴 듯 하다. 기본적으로 생명은 소중하고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린 채 사회적으로 얼마나 많은 역할과 기대가 그(녀)에게 감겨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주변인과 공동체에

커다란 아픔/손실을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란다. 잠시의 우울함과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어른스럽지 못한'

나약함의 소산이라고도 하고, 몸이 건강하지 못한 것과 같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증좌라며 심리적/생리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곁들여진다. 게다가 여전히 신의 뜻에 어긋난다는 등의 종교적인 믿음이 단단한

실체로 작동하고 있기도 하다.



"자살학의 진단이 틀리지 않다고 해도, 자살을 이미 감행했거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은 공허할
뿐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 '인생상황'이라는 것은 아무리 해도 절대 완벽하게 전달할
 수 없고 공감할 수 없다. 외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한마디로 아무것도 없다. 당사자만이 안다."



뒤집어 생각하면 그렇다. 죽음을 결심할 정도로 힘들다는 사람들을 끌어와 앉혀서는, 니가 죽으면 남은 사람들이

뭐가 되겠니, 하며 니가 맡아야 할 역할을 끝까지 수행하라는 압박이다. 단적으로 최진영의 죽음이 그랬다.

그의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조카는 어떡할 거냐, 엄마는 어떡할 거냐, 누나 볼 낯이 있겠냐, 따위 오지랖 넓은

한가한 이야기만 잔뜩 해댔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에는, 본인이 어떤 고민에 빠져 있었는지, 어떤 과정 끝에

죽음을 선택한 건지 등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의 노력은 없었다. '우울증'이란 단어 하나로 끝이었다.


"그(자살을 거부하는 자)는 자신의 고독조차 온전히 체험하지 못한다...그저 주어진 삶을 긍정했으며, 터져
 나오는 구토를 애써 부정했다. '긍정과 부정의 균형'은 사실 평형을 이룬 게 아니다. 생물로서의 본능과 사회의
 요구에 따르며 자신에게 지워진 무게를 별거 아니라고 한사코 우기는 셈이다."



자살은 말처럼 쉽지 않다.  아메리가 굳이 '자유죽음'이란 단어를 쓸 만큼, 자살은 '자유를 집중적으로 체험하는

순간', 그래서 죽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상황으로 스러지고 만다는 깨달음을 거쳐야 가능한 거다.

자살하고 나면 모든 게 무의미해질 거고, 더이상 아무런 희망도 미래도 없게 될 거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사회성/기능성'에 기반한 사회의 협박 이외에도 스스로 죽기를 거부하는 강렬한 생물학적 본능이란 것도

넘어야 할 거대한 벽이다. "태어난 이상 살아야만 한다"는 생명의 논리를 온몸으로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인생은 최고로 가치있는 자산이 아니다."


그럼에도 죽고자 한다면 그런 상황은, 어쨌든 살아야 한다는 자연본능과 사회의 명령을 거부하는 행위다.

나는 자연적인 죽음을 거부한다, 사회적인 동물로서 사회가 요청하는 온갖 생산활동-애낳고 밥벌이하는-을

계속 수행할 것을 거부한다. 일체의 구속을 벗어던지고, 생명체로서 가장 근본이 되는 생명보전의 대원칙까지

벗어던지겠다는 선언이다. 그것은 자신이 판단하건대 더이상의 삶은 부질없는 생명의 연장일 뿐 죽음보다

못하다는 결론이 지어진 후에야 가능하다. 그것은, 아메리가 말하듯, 삶을 던져 '자유'와 '삶'의 의미를

지키겠다는 모순적인 선언이기도 하다.


대체 무엇이 그(녀)를 그런 극단적인 판단에까지 이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개개인마다 다를 거다. 다르지만

또 같을지도 모른다. 아메리는 하나의 단어를 제시한다. 에셰크(Lechec), 치욕적인 꼴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것. 죽음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몰아내기 전에 이미 세상이 그를 버렸다. 더이상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느끼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미래가 더이상 없는 중증 환자, 삶의 전부라

여겼던 사랑의 실패자, 심지어는 대입시험에 실패한 사람, 남들 눈에 어이없고 하찮아 보일 문제라 해도 판단은

본인이 하는 거다. 삶의 결정적 순간은 본인만이 안다.


"자유죽음은 순전하고 지극한 부정이다. 여기에 어떤 긍정적인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자유죽음은 실제로
 '무의미'하다...(그러나) 지성의 논리로 볼 때 자유죽음이 무의미하다고 할지라도, 자유죽음을 택한 결단마저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자살은 오히려 '인간성'과 '존엄성'에 기댄 최후의 선택일 수 있다. 각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살 것인지

죽을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거다. 죽음을 향해 마지못해 꾸역꾸역 나아가는 인생과 '에셰크'에 맞서 스스로의

자유죽음으로 직접 끝낸 인생 중 어떤 것이 정답이라 할 수도 없는 것이겠지만 최소한, '자살할 권리'는

복권되어야 한다. 인간이기에 스스로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하나로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수행하기까지, 그 어느때보다도 강력하게 스스로의 자유를 체감하고 밀도높은

삶을 살았다고 본인이 느낀다면 본인 이외 다른 누가 그 삶에 대해 주제넘은 훈계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았음에도 찾아온 죽음, 이는 겁쟁이의 죽음이다.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택한 죽음은
 다르다. 깨어있는 명료한 의식을 가지고 택한 죽음, 이것은 자유죽음이다."



아메리는 자살을 찬양하지 않는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삶의 욕구'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주목하려고 한다. 꾸역꾸역 생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살아내겠다는 다짐에 충실하고자,

삶의 가치와 인간적 존엄을 지켜낼 자유를 극한으로 수행하고자, 맹목적으로 살아남는 대신 차라리 인간으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단이다.


"삶의 이야기는, 그 삶이 어떤 것이든 간에 실패의 이야기이다." 사르트르.
"잠이 좋다. 더 나은 것은 죽음이다. 절대 태어나지 말았더라면 가장 좋았으리라." 하이네.
"I sometimes wish I'd never been born at all". 퀸, 보헤미안 랩소디.



그렇게 자살을 택한 사람들은 융통성없고 고집스러운, 순진하다 못해 꽉 막힌 쑥맥들인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들에 대한 존중과 포용이 필요하다. 그들이 가진 '에셰크'에 공감하고 포용하려는 자세가 없는

사회야말로 자살의 온상이다. 실패와 좌절의 두려움을 참을 수가 없어 고민에 빠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훈계와

비웃음, 그리고 권해지는 자연적인 죽음은 최악의 '에셰크'인 거다. 우리 사회의 드높은 자살율엔 이유가 있다.







# 마지막으로.

죽음에 대한 이야기나 생각이 삐져나오면 '요새 삶이 힘드냐', '우울하냐'고 물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죽음은

그럴 때만 입에 올려야 하는 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죽을지 살지의 문제가 김밥을 먹을지 햄버거를

먹을지의 문제만큼 유쾌하거나 사소한 문제는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꼭 우울하거나 피폐해졌을 때만 떠올려야

하는 건 아닌 거다. (그렇다고 요새 내가 삶이 힘들지 않다거나 우울하지 않다는 건 아니..ㄹ 거다.)


진지한 것과 우울한 건 다르다. 그건 어쩌면 우리 사회가 '자살'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식이다. 죽음과 관련된 것들에 병들고 패배한 듯한 이미지를 부여한다. 봄이라고, 볕이 따시다고, 만물이

생동한다는 따위, 죽음을 터부시할 이유가 하필이면 손꼽을 수 없을만큼 쌓여있는 이 때라도, 살아갈 자유가

있다면 동시에 죽을 자유도 있는 거다. 동전의 양면이다.



자유죽음 - 10점
장 아메리 지음. 김희상 옮김. 김남시 해제/산책자


* 알라딘 4월 마지막주 이주의 TTB에 선정되었습니다.



불안증폭사회 - 8점
김태형 지음/위즈덤하우스
IMF 이후 전면화된 경쟁 속에서 기존의 공동체나 조직이 약화되거나 심지어 붕괴되었다,

그 결과 생존에 대한 공포는 불안으로 만성화된 채 사회 구성원 모두를 미치거나 죽도록

몰아가고 있다는 게 요지다. 출산율은 꼴찌, 자살율과 자살을 유발하는 우울증 유발율은

1위라는 적나라한 지표 앞에서, '지금 한국인들은 멸종하고 있다'는 저자의 단호한 주장을

뿌리치기란 사실상 어렵다. 구성원들이 새로이 충원되기는 커녕 있던 사람들도 그저

이민이든 자살이든 탈출하려 애쓰는 공동체가 바로 한국이란 거다.


이 책의 덕목은, 여태 개인의 문제나 '마음수양'의 문제로 미뤄두었던 인간 심리와 병리적

상태가 상당부분 사회의 책임
이라는 부분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여기서

함께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이 일정한 공약수를 가진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면, 사회구조로

인한 스트레스와 발병요인을 한번 의심해보고 분석해보는 게 맞지 않을까. 연예인들의

자살이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그 뒤에 숨은 직업적 스트레스나 불규칙한 생활 때문은 아닌지,

또 우리의 '마시고 죽자'는 음주 문화가 감춘 건 몸을 함부로 하며 죽어도 좋다는 자살충동은

아닌지 하고 말이다.


공정을 기하자면 두어가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이 책에서 그저 '경쟁심화'

정도의 대중적 의미로만 새겨지는) '신자유주의'의 전세계적 영향 하에서 한국이 유독

적나라하고 심대하게 피해를 입었다고 보는 이유가 설명되어야 하고, 이전부터 경쟁을

기반으로 유지발전되던 사회와 '신자유주의' 하의 한국사회가 근본적으로 달라진 점은

무엇인지 명확히 해야 하며, 무엇보다 개인의 불안과 공포, 심리적인 병리상태가 대개

사회적 차원에서 비롯한다는 그 통찰이 가진 무기력함을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왜 하필 한국만 이렇게 심각하게 피해를 입었을까.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물결은 이미

구미 제국들을 집어삼키고 도도하게 세계화된 흐름 아닌가. 저자는 경쟁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내쳐졌을 때 당면하게 되는 생존 위협의 정도가 다르다 말한다.

잘 알려졌다시피 한국의 복지수준, 사회적 안전망의 정비 수준은 비교하기가 민망한

수준인 거다. 그러니 회사에서 짤리면 '내새끼들 어쩌나'하다가 온가족 목숨을 쥐고

사라지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밖에 저자는 한국의 유난한 공동체주의를 지적하며 '중산층'이란 가상공동체에서

튕겨나오는 것, '사회적 생명'을 박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강력하다고 분석한다.

인간은 단지 배만 부르면 되는 돼지가 아니니까, 사회적으로 인정도 받고 존중받는

일원이려는 욕구가 더 크니까. 특히나 개인주의의 뿌리가 얕고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

수천년 지탱해온 문화가 있으니까 한국은 더 심하지 않을까. 말이 된다. 그 '중산층'의

허울, 중산층만큼은 인정받겠단 욕구가 극성스런 명품열풍을 만들었다는 것 역시.


그러면 왜 하필 지금인가. 사실 '경쟁' 그자체는 신자유주의만의 문제도 아니고

자본주의 자체, 혹은 인류 문화 전체에 투영되어 있는 거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물론 IMF 이후로 한국인들 삶의 기반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위태하게 되었고, 이후

시스템의 변화와 함께 삶의 목적, 가치관 등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데 동의하지만

그것은 '경쟁'의 문제라기보다는 차라리 IMF로 인한 패러다임의 변화 문제에 가깝다.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해 경쟁이 심화된 거고, 그로 인해 사회병리가 심해진 거니깐.


저자에 대해 약간 아쉬운 부분이 이 곳인데, 무엇을 지칭하는지 그 내용도 명확히

알 수 없는 '신자유주의'라는 모호한 단어 대신 차라리 'IMF 이후'라는 구체적인 시기를

적시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하고 그 정체를 밝히려는

글이 아니니까, 그런 식의 뭉뚱그린 단어는 피하는 게 나았지 싶다. 사실상 저자가 말하는

'신자유주의'를 'IMF 이후'라는 말로 바꿔도 전혀 문제가 없는 거다. 그래서 IMF 전후의

사회적 차원의 심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를 보강했다면 훨씬 정밀하지 않았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남은 문제가 제일 중요하다. 저자도 책의 대부분에 걸쳐서 강조하고 있지만,

만성화된 불안과 그로 인한 정신적 병리현상들이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차원의 문제란 사실은 굉장히 커다란 실천적 압박을 수반한다. 혹은, 에라 모르겠다, 는

식의 무기력함을 초래한다. 너무 막막한 거다. 내가 지금 우울한 게 내 마음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내 성격에 뭔가 문제가 있다기보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잘못 굴러가고 있고

나를 이상하게 만들어서라 믿기도 힘들고, 그러고 나서 어쩔지도 모르겠다는 거다.


저자는 앞으로 가는 것도 한걸음부터, 뒤로 가는 것도 한걸음부터라며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여러 제안들을 제시한다. 결국 사회가 건전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바뀌어야 사람들의

마음병도 근본적으로 치유될 수 있다는 거니까, 사회를 바꾸는 여러 제안들이다. 사실은

난 잘 모르겠다. 저자가 문장 곳곳에 느낌표를 한두개씩 박아두는 것도 좀 눈에 거슬리고,

그가 내놓은 제안들이 딱히 참신하다거나 와닿지도 않는다. 다만 내가 믿음직한 문장은

하나 건졌으니 다행이랄까.


"우울증은 세상에 대한 저항이다." 우울해지는 것이 되려 정상성의 표징인 셈이다.

우울함을 자각하는 건 아직 세상에 맞춰지지 않았다는 깨어있음인 셈이니, 일단은 그걸로

스스로를 경계하는 지표로 삼기로 한다.






 

 

 

Ⅰ. 개 관

 

ㅇ 국명 : 타지키스탄(Republic of Tajikistan)

‘타지키스탄(Tajik)’이라는 이름은 이슬람 전파 이전(AD 7세기 이전의) 아랍종족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

◦ 수도 : 두샨베(Dushanbe, 약 56만명)

◦ 면적 : 14만 3,100㎢(한반도의 2/3 크기)

◦ 인구 : 750만명(2010.8월 기준)

※ 인구성비: 여성 50.3%, 남성 49.7%

- 연령구성비: 14세 이하 34.6%, 15~64세 61.7%, 65세 이상 3.7%

- 평균 수명: 65세

◦ 인종 : 타직人(79.9%), 우즈벡人(15.3%), 러시아人(1.1%), 키르기스人(1.1%), 기타(2.6%)

◦ 종교 : 이슬람교 90%(수니파 85%, 시아파 5%), 기타 10% 등

◦ 언어 : 타직語(공용어), 러시아語(통용)

- 인구의 약 25% 정도 우즈벡語 사용

◦ 국내총생산(2010년 기준)

- GDP : 총규모 55억불 / 1인당 : 841불

- 경제성장률 : 4.0% / 물가상승율 : 8.0%

◦ 화폐 단위 : Somoni(TJS) 2009.11.25 現 $1 = TJS4.34

◦ 주요산업 : 농업 18.9%, 제조업 21.9%, 서비스업 59.2%

◦ 주요자원 : 수력, 우라늄, 수은, 갈탄, 납

◦ 행정구역 : 12개 주‧1개 자치공화국‧1개 특별시

 

    

 

Ⅱ. 경제정세

 

1. 최근 경제 동향 및 전망

 

■ 최근 경제 동향

 

◦ 타지키스탄 경제는 1997년 내전 종식 이후 해외로부터의 원조와 주로 러시아에 거주하는 타직 교민들이 송금하는 연 6억불(은행을 통한 송금은 1억불) 정도의 송금 및 경제 규제완화와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최근 3년간 연평균 7.5%의 경제성장을 시현

 

※ 스위스, 미국 등 개별국가, 국제기구, NGO 등이 약 300개 원조사업을 시행중이며, 2004.9 기준 국제사회가 타직의 재건을 위해 서약한 금액은 총 9.1억불에 달함

 

◦ 산업비중은 농업(18.9%), 산업 및 건축업(21.9%), 서비스업(59.2%)이며 주요 수출품목은 알미늄(75%), 면화(9.2%), 전기(3.5%), 주요 수입품목은 알미늄원료(22.4%), 원유제품(11.1%), 전기(3.9%)임.

 

- 주요 수출국은 노르웨이, 러시아, 터어키, 우즈벡, 미국 등이며 주요수입국은 러시아, 중국, 카자흐, 우즈벡, 아제르바이잔

 

◦ 타직은 면화(연 20만톤)와 알루미늄(연 30-40만톤) 외에는 별다른 외화가득원이 없으며, 인접국 우즈벡이 육상 교통로는 물론, 항공 교통까지 제한하고 있어, 무역 증진에 애로를 겪고 있는 상황

 

※ 타직의 또 다른 문제점은 석탄 14억톤, 금 500톤, 은 10 만톤, 아연 4-5백만톤과 일정량의 석유 및 천연가스 등 비교적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송에 불리한 내륙에 위치하여 금과 은 등 귀금속을 제외하고는 거의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

 

◦ 2005년 기준 700만 타직 국민들의 50-60%는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실업률은 35%를 상회하여 총 120만 명에 달하고 있음. 북부 후잔드 지역과 수도 두샨베 지역의 경제상황은 비교적 양호하나 중국과의 국경에 위치한 바다흐샨 고원이나 라쉬트 계곡의 경제상황은 열악

 

◦ 타지크 중앙은행은 2007년 하반기 급격한 물가상승에 대한 억제와 금년 겨울혹한이후 경제활성화라는 목표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정책을 시행하여야 하나 이를 수행할 능력이 제한되어 있으며 당분간 정부 보조와 국제적지원에 주로 의존해야할 상황

 

■ 향후 전망

 

◦ 타직은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개발할 산업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고 산악지대라는 불리한 지형으로 인해 해외로부터의 투자도 적어 경제 성장의 가능성이 제한

 

◦ 수력발전소 건설을 통해 부족한 전력을 보충하고 도로 건설이 예정대로 진행되며, 정치적 안정이 유지되며, 러시아 등 해외거주 국민들로부터의 송금과 해외원조가 계획대로 유입될 경우, 향후 5-6년간 타직은 연 7-8%의 경제성장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

 

◦ 경제성장률은 전반적 물가상승에 따른 가계소비 위축으로 2008년 7.9%, 2009년 3.4%로 하락

 

◦ 세계적인 식량가격 상승과 우즈벡 가스가격 인상 등은 식량 및 가스 수입국인 타지크에게는 물가상승의 주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며 2008년 13.5%, 2009년 11.5%선을 유지

≪타지키스탄의 주요 교역국≫

 

순위

수출국

비중(%)

수입국

비중(%)

1

노르웨이

8.7

러 시 아

24.1

2

러시아

8.2

중 국

19.5

3

터키

7.7

카자흐스탄

12.1

4

우즈베키스탄

5.9

우즈베키스탄

11.0

5

미국

4.0

아제르바이잔

8.2

(출처: 2008.6월 IMF, EIU 통계자료)

 

 

 

2. 경제 정책

 

◦ 타지키스탄은 중앙아 국가중 체제전환 및 경제발전 과정에서 IMF, WTO 등 국제금융기구의 지원정책을 가장 충실히 수행

- 2003~04년에 걸쳐 IMF가 제안한 「빈곤감소 및 성장촉진 프로그램」(PRGF)을 충실히 수행하여 재정/세제 개혁을 단행

- 세제의 경우 2005.1월 WTO 기준에 부합하는 새로운 관세법을 입법화

- WTO 가입신청서를 제출(2001.5월), 현재 가입 협상 진행중

- 사회 전체에 만연한 부패를 퇴치하고 정부의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해 PRGF 프로그램을 통해 공공부문 개혁을 추진

- 2003년에 시작된 공공부문 개혁으로 전체 공무원수의 3~5%를 줄이는 한편, 주요 정부조직을 개편하여 효율성 제고

※아시아개발은행(ADB)은 교외인프라, 지역협력/농업, 에너지, 운송의 개혁정책을 지지하기 위한 원조계획을 발표

- 2007년 7천4백만불, 2008년 6천3백만불, 2009년 5천5백만불 지원 계획

세계은행은 2006~09년 지속적인 파트너쉽을 맺고 1천만불을 개혁보조금으로 지원

 

급격한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을 줄이기 위해 IMF의 PRGF에 입각하여 통화정책 추진

- 환율 안정을 바탕으로 유동성 자금 관리의 효율성을 강화하는 것이 정부의 통화정책 기조임

- 중앙은행(National Bank of Tajikistan : NBT)은 IMF 권고에 따라 민간은행에 대한 신용제공을 중지하는 대신, 민간은행자립성 강화를 위해 은행간 대부를 활성화하는 메커니즘 구축중

 

◦ 주요 수출품목인 알루미늄과 면화의 해외시장 접근성 강화를 위해 러시아를 비롯한 주변국과 경제협력

- 러시아, 이란 등과 알루미늄 생산시설 및 전력시설에 대한 투자협상을 진행 중에 있으며, 아프가니스탄과는 전력, 운송, 무역 등 다양한 부문에서 경제협력을 추진 중

 

◦ 민영화 계획

- 2007.6 정부는 중앙아 최대 규모의 타지키스탄 화학기업 ‘타직힘프롬(Tajikkhimprom)’을 290만불에 영국계 기업에 매각

- 정부는 추가로 2010년까지 항공, 통신, 시멘트 기업을 민영화할 계획

 

3. 산업부문별 경제 상황

 

■ 에너지‧자원 분야

 

가. 시장 특징

 

타지키스탄은 금 500톤, 은 약 6만톤, 석탄 14억톤이 부존되어 있는 등 400여개의 광산에 풍부한 지하자원 보유

- 광산까지의 접근 도로와 같은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는 등 사업타당성이 작아 일부 금광 및 은광을 제외하고는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음

 

◦ 가스나 원유도 지하 4,000m~8,000m상에 부존되어 있어 사업 타당성이 낮은 관계로 외자유치실적이 거의 전무했으나, 최근 러시아의 가즈프롬과 캐나다 석유가스개발 회사들이 타지키스탄의 남부 가스유전 개발사업 추진중

 

나. 시장 동향

 

【금‧은광 개발】

 

타직 과학아카데미의 조사자료에 의하면 타지키스탄에는 총 28개의 금광이 존재하며 매장량이 약 500톤인 것으로 추정

- 2007.7월 중국 ZiJin Mining Group은 타지키스탄 연간 금채굴량의 2/3를 차지하는 ‘자라프샨(Zeravshan)’ 금광의 75% 지분을 5천5백만불에 인수

타지키스탄 북부의 코니만수르에는 세계 두 번째 규모(38,000톤)의 은광이 있어 향후 150년간 매년 50톤의 은 채굴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

- 2007.7월 에너지산업부가 연말까지 동 은광 채굴권을 국제경매에 부칠 것이라고 발표함에 따라, 러시아 Norilsk Nickel사와 카자흐스탄 광업회사가 참여의사를 표명하였으며, 인도회사도 관심표명

 

◦ 타지키스탄 북부에는 대리석, 화강암 등 건설/내장재료와 함께 약 200년간 채굴이 가능한 석탄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추정

- 남부지역에는 안티몬, 수은, 납, 아연, 석탄, 석유 및 가스 등 지하자원이 부존

- 중부 지역인 마이큐라 지역에는 매년 15만톤의 채굴이 가능한 텅스텐이 부존하며 카트론에서는 희귀자원인 스트론튬(연간 18만톤 채굴 가능)과 은/아연 광산 발견

 

【원유‧가스】

 

구 소련시절인 1985년 당시에는 매년 약 3억 큐빅미터의 가스 및 약 40만톤의 원유가 생산되었으나 소련이 붕괴되면서 1996년경에는 생산량이 1/10로 감소

 

전문가들은 타지키스탄 전체에 원유 113백만톤, 가스 863억 큐빅미터, 가스 콘덴세이트 36백만톤이 부존되어 있으며 그중 80.8%가 남서쪽에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

 

매장지 개발을 위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지 않고, 개발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수송에 불리한 내륙에 위치한 관계로 사업 타당성이 떨어져 개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

- 석유 및 가스의 자급률은 50%에 못미치며 인근국인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멘으로부터 수입

 

2008.6월 러시아의 국영가스업체인 가즈프롬은 타지키스탄 에너지산업부와 타지키스탄의 가스 및 원유전 개발을 위한 협력협정을 체결

- 타지키스탄 남서부의 4개 가스유전(레간, 사르가존, 사리카미쉬, 올림토이) 개발 계획

 

◦ 캐나다 석유업체인 테투스 페트롤리엄도 타지키스탄 남부 56개 가스전 개발 탐사중

 

【알루미늄】

 

◦ 구소련 시절 타지키스탄은 알루미늄 공급 기지로 특화되었으며 현재 타지키스탄에서 가장 큰 기업인 TALCO의 알루미늄 공장이 타지키스탄 남서쪽에서 운영 중

※ 동 공장은 우즈벡 전력생산량의 40% 소비, 총수출의 30%를 차지하며 공장 고용원만 13,000명에 이르는 대형공장으로서 내전 당시 동 공장 확보를 위해 격렬한 전투가 발생

 

◦ 타지키스탄 정부는 동 공장의 경쟁력 강화 및 장비 현대화를 위해 민영화를 추진중이나 부채 상환 부담 등으로 해외투자자들이 투자를 꺼리고 있는 상황

 

※ 타지키스탄 알루미늄공장(TALCO) 개관

- 수도에서 서쪽으로 60km 떨어진 Tursunzade에 위치

- 국영기업으로서 제1의 외화소득원이며 연간 최대생산가능량은 517만톤이며 연간 약 45만톤(12억불 상당) 생산

- 한편 알루미늄의 주원료인 cryolite와 알루미늄 fluoride를 현재 발틱국가, 러시아, 중국등에서 수입중에 있으며 동 원료의 수송비로 매년 약 1억불을 지출

- 최근 중국중공업(CNHMC)이 2개의 알루미늄원료 생산공장을 건설키로 합의

 

◦ 타지키스탄 정부는 알루미늄 가공산업 육성을 위해 TALCO사의 알루미늄 가공라인 4개를 별도로 분리운영한다는 계획발표

- 대통령령에 따라 알루미늄 총생산량의 15%까지 재가공처리를 목표로 현재 외국 투자기업과의 합작을 적극 모색중

 

【면화】

 

◦ 면화는 농업 생산의 60%를 차지하고, 농업인구의 75%가 면화재배에 종사하며, 농토의 45% 차지

- 수출(15%)과 조세수익의 주소득원이며 제4위 면화 수출국

- 정부는 면화산업에 경쟁을 도입하기 위해 별도위원회 설립

◦ 타지키스탄 면화등급제도 개혁(ADB 지원)

- 기존의 소련식 등급제도는 많은 결함 보유

◦ WB 프로젝트(2007.2월 정부 승인)

- 15백만불 프로젝트로서 부채 해결, 토지개량 사업, 정부정책 개혁, 경쟁 도입, 민간투자 독려, 생산농가 수입 증진 등

 

다. 우리 기업 진출 동향 및 진출시 유의사항

 

◦ 우리나라와 먼 거리에 위치한 지리적 요건과 유통망의 부재, 광물자원 및 에너지자원 개발을 위한 인프라 미비 및 사업타당성이 낮아 우리 기업의 對타지키스탄 진출은 극히 미미

 

◦ 일부 귀금속 및 광물 분야에 진출을 추진할 경우 ‘외국인 투자보호법’(www.business-club.tj) 등을 참고하고 정부측과 사전 협조 하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

 

외국인 투자와 관련되는 회사법, 민영화법, 파산법, 외국인 투자법, 은행법 등 시장경제 이행을 위한 법적기반을 구축해 나가는 과정에 있으나 경제활동 부진, 정부 경제정책의 일관성 결여 등으로 실질적인 법적용은 미흡

 

◦ 낮은 급료와 정치적 불안정 등으로 관료부패문제가 상존하며, 정부로서도 대책 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

 

■ 전력 분야

 

가. 시장 특징

 

타지키스탄은 세계 8위의 수력자원을 보유하고 있어 연간 3천억KWh의 전력 생산이 가능하나, 현재 이중 170억KWh 생산(전체 수력자원의 5%)에 그치고 있음. 현대화된 수력발전소가 없어 전력이 부족한 상황

- 외국 투자를 통해 수력댐과 발전소 건설사업을 추진 중

- 러시아(상투다-1, 로군 발전소)와 이란(상투다-2), 중국(누라바드) 등 국가들이 건설사업에 참여 중

 

전력 대부분을 수력에 의존하고 있으며 현재 7개 수력발전소에서 연간 4.4GW 전력을 생산

- ‘누렉(Nurek)’ 발전소(3000MWe급)가 전력공급의 70% 차지

- 타지키스탄내 주요 강으로는 아무다리야강 및 판지(남부), Gunt 및 Bartango강(동쪽), Vakhsh강(중서부), 수르다리야(북서부)이며 이중 Vakhsh강이 수력 발전에 주로 활용

- Vakhsh강에는 3800MWe용량의 발전소에서 140억KWh의 전력을 생산 중

- 현재 로군 발전소(3600MWe급, 335m 높이로 세계 최고) 건설을 최우선 사업으로 추진 중

 

◦ 전력망은 남부지역과 북부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수르다리야강 수원을 이용한 ‘콰이로쿰’ 수력발전소가 북부지역의 주요 전력공급소임. 동 발전소 발전량이 수요량의 30%에 불과하여 북부지역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전력을 수입

 

나. 전력시장 동향

 

주요 전력생산 설비의 노후 및 관리부실로 전력손실이 15%에 달하고 감가상각률도 75%에 달하는 상황

 

◦ 타지키스탄 정부는 전력 생산, 송전, 배분을 전담하고 있는 국영 ‘바르키토직(Barqi- Tojik)’사를 중심으로 송전망을 개보수하면서 외자도입을 통해 내전으로 중단된 중‧대형 수력발전소 건설사업을 재개하고 새로운 발전소 건설을 추진

- 타지키스탄 정부는 재개된 수력발전소에서 생산될 전력을 국내 보급 및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전략 추진

 

 

 

다. 전력산업 관련 주요 프로젝트

 

1) 송전망 개보수

 

◦ 장갈(Jangal)‧노바야(Novaya) 변전소 개보수 및 누렉(Nurek) 수력발전소 개보수

- 타지키스탄 남부지역에 대한 전력 공급을 위한 사업(약 62백만불 규모)

 

2) 발전소 건설 및 개보수

 

◦ 타지키스탄의 수력발전소 건설은 1936년 Varzob 발전소 건설이 최초이며 1960년 Nurek 발전소를 시작으로 본격 개발되기 시작하여 1980년대말에 전성기를 이루었으나 90년대초 내전 등으로 대부분 중단

 

현재 외국 자본의 지원으로 로군 발전소(3,600MW, 연 131억kW/h), 상투다-1 발전소(670MW, 연 27억kW/h), 상투다-2(220MW), 슈롭 발전소(850MW), 누라바드-2(160-200MWe) 건설 및 개보수 사업중

- 로군 발전소는 최대 발전소로서 1976년 착공되었으며 4계절 전력공급을 목표로 인근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멘, 아프간의 농경지에 수자원 공급 예정, 러시아 RAO사가 참여중

- 상투다 발전소(900MWe급)는 러시아와 이란의 재정지원으로 남부 카틀론 지역에 건설 중

- 상투다-1 발전소는 러시아 Rao사에 의해 건설중(5억불 투자, 주식의 75% 차지)이며 2009년 4월중 완공 계획

- 판지강의 Dashtijum발전소(4000MWe) 건설도 계획 중

- 최근 타지키스탄은 발전소 건설에 10억불 투자 계획을 발표하였으며 흐몬 대통령은 향후 80개 발전소 건설을 위해 3년간 외국투자유치 희

 

■ 건설 분야

 

가. 건설시장 특징

 

◦ 내전의 여파로 도로 및 철도가 심각하게 훼손됨에 따라 정부는 관련 부처를 재조직하는 등 운송인프라 재건에 주력하고 있으며, ADB 등 국제금융기구 및 민간단체들도 지원을 계획

 

◦ 중앙아 각국간 수송망 정비는 여타 지역과의 연결을 위해 긴요하며, 특히 타지키스탄은 경제재건을 위해서는 대외무역 확대가 필수적임을 감안하여 주변국과의 운송망 연결 적극추진

 

◦ 이에 따라, 2000.9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중국 등 접경국과 최우선 운송프로젝트 추진에 합의

- 중국과는 “파미르 하이웨이” 건설 사업을 추진 중

 

나. 건설 동향

 

◦ 두샨베-후잔드-차르낙(우즈베키스탄) 도로건설 사업

- 중국회사 China Road에 의해 2006.7월부터 시작되었으며 중국 인부 및 장비 동원

- 총길이 354km, 80개 교량 및 1개 터널 건설

- 총공사비 2.96억불 중 중국이 2.81억불의 장기차관을 연2%, 20년 상환 조건으로 제공하고, 타지키스탄은 14백만불 부담

- 2008.8월까지 기존 고속도로 개보수 완료 및 2009.8월까지 Anzob터널 완공 목표

 

◦ 두샨베-후잔드간 Chormagzakon 터널 건설

- 이란 참여로 시작

- 중국측의 Anzob 터널 건설과 병행

 

◦ Dusty-Nizhniy Pyandzh간 도로

- 일본의 금융지원으로 진행

- 총 길이 27.4km로 공사 비용은 11백만불 소요

 

◦ Nizhniy Pyandzh 교량 건설

- 미국측 재정 지원으로 최근 완공

- 길이 672m로 3천만불이 소요됨

- 향후 이란 항구 등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다리

 

◦ 타지키스탄-아프간 연결 5개 교량

- 타지키스탄의 Khorog, Darvoz, Ishkashim에서 아프간으로 연결

- Agha Khan Foundation의 재정 지원으로 건설중

 

 

◦ 두샨베-당가라 터널

- 중국측 재정 및 인력 지원

- 길이 2.3km 터널 공사

 

◦ 두샨베-Jirgatal 연결 고속도로

- ADB 재정 지원

- 총 57km의 Dushanbe-Tursunzoda간 도로 보수작업도 병행

 

◦ 두샨베-쿨간 도로

- ADB의 지원으로 최근 완공되었으며 총길이 191km

 

◦ 기타 건설 예정도로

- 두샨베-쿠르간투베-두스티 연결도로, 무르갑-쿨마 고속도로(33km) 및 쿨럅-칼라이간 도로(7km)

 

◦ 아파트, 호텔 건설

- 터키 회사가 여러 5성급 호텔 및 아파트 건설에 참여

- 인도 회사도 5성급 호텔 건설에 참여

- 이란은 아파트 건설 및 Anzob 터널 공사, 상투다-2 발전소 건설중

 

다. 건설기기 및 장비시장 진출 전망

 

타지키스탄은 최근 추진중인 인프라, 산업/건설 프로젝트의 영향으로 건설기기/장비에 수요가 높음. 타직 정부는 인프라 프로젝트(2006~08년간)에 총5억달러 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

 

상당수의 가용 기기 및 장비가 평균 수명 연한을 넘어섰고 타지키스탄 정부의 최근 경제개혁으로 소비에트 스타일의 건설업체들이 와해. 중소 민간업체가 늘어남에 따라 관련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

 

◦ 지속적인 경제 성장으로 농업기기, 장비를 생산하는 해외 제조업체들에게 많은 기회가 창출될 것으로 기대

 

라. 시멘트 산업동향

 

◦ 수도에 유일하게 시멘트 공장 운영중

- 1942년 처음 가동되었으며 내전중 가동 중단 및 장비분실이 있었으나 내전후 공장 일부 재건

- 현재 매년 약 50~70만톤의 시멘트 생산중이나 연간 국내 시멘트 수요량이 150만톤이므로 부족분은 외국에서 수입

- 장비 노후 및 가스 부족으로 현재 20~25%의 시설만 가동

- 생산 원료로 가스를 사용하나 우즈베키스탄 가스에 의존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현재 가스에서 석탄으로 연료대체를 추진중

- 중국의 투자로 공장내 소규모 석탄 재처리시설을 건설중

 

◦ 외국의 투자를 희망

- 현재 시설 보수를 위한 외국 기업 투자 환영

- 2008.9월 중국과 연 1백만톤 생산 가능한 시멘트 공장 건설 추진 의향서 체결(향후 30개월내 완공)

 

■ 농업 분야

 

가. 농업 시장 특징

 

◦ 타지키스탄 고용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농업분야가 GDP생산의 17%를 점유하고 있고, 면화가 농업생산의 2/3를 차지함. 이외에 다양한 과일 및 야채를 생산하며 아몬드, 건포도 등은 소량을 수출

 

◦ 목화는 카트론 및 북부 수그드주, 곡물은 관개시설이 구비된 서남부 지역에서 주로 생산

 

나. 농업 시장 동향

 

◦ 과일, 야채 생산의 40~50%가 저장 및 포장기술 부족으로 폐기되고 있는 상황이므로 동 분야는 소규모 업체들의 투자 유망분야

 

농업부분 개발 관련, 정부는 토지법 개정(1998년)을 통해 토지사용권의 이전을 허용하고 집단농장 및 농지에 대한 사유화를 추진, 2000년 기준 전 농토의 55%가 사유화

 

◦ 또한 국제사회 지원도 지속되어 세계은행과 ADB는 기술‧농산물 교역기법 지원 및 전문가 교육 등을 실시

 

다. 타지키스탄의 ‘2006~2010 과일 및 야채 가공분야에 대한 수출 발전’

 

◦ 1단계로 2006~07년 2년간 현 시장에서 매출 증대를 목표로 품질 향상에 주력

2단계로 2008~10년 3년간 수출제품의 부가가치 배가를 목표로 농산물 가공 및 포장 관련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계획

 

Ⅲ. 한국과의 관계

 

1. 한-타지키스탄 관계 개관

 

◦ 수교 : 1992. 4. 27

◦ 대타지키스탄 교역액(’07) : 58백만불

◦ 수출 : 22백만불(자동차, 기계류, 섬유, 전자, 화학제품 등)

◦ 수입 : 36백만불(면화, 알루미늄 등)

◦ 대타지키스탄 투자(’06.12월 기준) : 5,800만불

◦ 타지키스탄 주요 자원 : 알루미늄, 면화, 금, 은 등

◦ 2008.2월 주타지키스탄 한국대사관(1인 공관) 개설

◦ 양국 고위급 인사교류 현황

- 1995. 10월 UN 총회 계기 김영삼-라흐몬 대통령 면담(뉴욕)

- 2005.5.24-27간 제6차 정부혁신세계포럼 참가차 라흐몬 대통령 방한

- 2007.6월 제6차 ACD 회의 계기 자리피 외교장관 방한

- 2008.9월 제63차 UN총회 계기 한승수총리-라흐몬 대통령 면담(뉴욕)

- 2008.10월 제7차 ACD 외교장관회의 참석계기 양국 외교장관 회담 개최(아스타나)

◦ 주요 협정 체결 현황

- 현재 한-타지키스탄간 협정은 ‘투자보호협정’(95.7월 서명, 95.8월 발효)이 유일

- 경제과학기술협력협정 및 이중과세방지협정 체결을 위한 문안 협의중

◦ 문화교류

- 2008.8.23~29 해외청년문화봉사단 ‘소리울’ 국악공연팀의 타지키스탄 방문, 국악 공연

- 2008.9.26~10.2 제4회 부산세계사회체육대회에 타지키스탄 대표단 참석

◦ 고려인 동포 및 교민 현황

- 타지키스탄 거주 고려인은 약 1,700여명(1992.5월 타지키스탄 내전 발발 및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인해 13,000여명의 고려인 중 상당수가 인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로 이주)

- 타지키스탄 체류 우리 국민은 약 150여명으로 대다수가 선교사 및 기업인 가족이며 유학생은 소수

․자원봉사단, 보육원, 고아원 운영 등 NGO 활동중

 

2. 한-타지키스탄 경제관계

 

◦ 타지키스탄 진출 주요 우리 기업

- “갑을-타직”(면사, 면직물; 2,900만불; 95년 설립; 16,000명 고용창출)이 대표적 합작투자기업이었으나 2008.4부터 합작 중단

- JEI-H 건설 : 타지키스탄 정부의 ADB 차관(600만불 규모)으로 추진 중인 후잔드 관개수로 공사 참여

- 최근 두샨베 시내 아파트 건설 사업, 니켈 등 광물자원 개발 사업 등에 우리 중소기업들이 진출 모색 중

◦ 교역액(’09): 6,217만불(우리 기준)

- 수출 : 2,661만불(승용차, 기계류, 섬유, 전자, 화학제품 등)

- 수입 : 3,556만불(면화, 알루미늄 등)

 

【한-타지키스탄 교역액 추이】

(단위 : 만불)

연 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수출(승용차, 기계류, 섬유 등)

490

1,280

1,450

2,257

3,893

2,661

수입(면화, 알루미늄)

470

220

790

3,624

305

3,556

960

1,500

2,240

5,881

4,197

6,217

※ 자료 : 수출입은행

 

향후 양국간 획기적인 협력확대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최근 우리 중소기업들이 아파트 건설과 광물자원 개발사업 진출을 모색중

- 타지키스탄은 중앙아시아의 내륙국으로 국토의 80%가 산악지대이므로 운송 및 물류인프라 구축이 시급(수출시 우즈베키스탄 또는 카자흐스탄 경유 필요)

 

 

 

 

 

 

 

 

 

3. 무상원조 지원

 

■ 1993~2006년 지원 실적

 

가. 연도별

구 분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지원규모

(천불)

27.75

-

52.69

61.95

94.23

11.59

15.63

9.25

구 분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지원규모

(천불)

557.82

87.69

147.73

135.44

228.11

-

114.1

1,543.98

 

나. 사업별

구 분

물자지원

국내연수 초청

긴급지원

NGO지원

개발조사

지원규모

(천불)

653.07

364.37

507.40

19.13

10.36

1,554.33

 

 

다. 지원 내용

 

◦ 물자지원 : 소나타 등 차량, 컴퓨터 등 사무기기 (1993~2005)

◦ 국내연수 초청 : 73명 (1996~2005)

◦ 긴급지원 : 앰뷸런스 등 차량 (2001)

◦ NGO 지원 : 국제기아대책기구 교육기자재 지원사업 (2002)

◦ 개발조사 : 타지키스탄 통신망 현대화 사업 사전조사 (1999)

 

 

 

 

Ⅳ. 타지키스탄에서의 비즈니스

 

1. 무역규제

 

외환관리 및 수입허가

 

▪ 외환관리

타지키스탄 중앙은행 당국은 외환 규제, 금융 기관 관리 및 조율과 기본 외화 정책 형성을 담당함. 이 은행은 은행 및 외화관련 거래를 실행할 수 있는 허가를 상업은행에 발급.

 

수입품의 가치는 그에 대해 지불한 금액과 같아야 함.

 

타지키스탄은 IMF 협약의 8조 2,3,4절의 의무사항을 받아들였음. 이러한 의무사항을 받아들이는 IMF 회원국은 최근 국제 거래를 위한 대금 지불이나 이체에 제한을 두지 않고, IMF의 승인 없이 차별적 통화거래나 복수 통화를 사용하는 것을 제한하기로 합의

 

▪ 수입 허가

담배 및 담배제품은 수입허가 발급 대상. 에틸알코올 및 알코올 제품 수입에 대해 허가 쿼터 필요. 일정 제품은 경제무역부가 계약서를 검토한 이후에 수입 가능. 이 리스트에 포함되는 상품은 트럭,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 비료, 밀, 밀가루, 쌀, 차, 설탕 및 식물성 기름.

 

 

소수의 수입은 건강 및 안전 이유로 금지되어있음. 무기, 화학 무기, 핵 물질, 마취제 및 독극물질은 수입 금지되어 있지만 이 제품 중 일부를 수입하려면 정부 발행 특별 허가가 필요.

 

신용한도 및 대금지급조건

 

일반 조건

미리 현금을 확보해두는 것을 권장. 보통의 신용조건은 분야 및 거래의 규모에 따라 다르나 60일에서 90일이 적용됨.

 

이체상황

현지 통화는 4~5개월 연체되는 것으로 보고됨. 외환은행은 평균적으로 4~5월 연체. 수입커버(Import Cover:외환보유고액을 월 평균 수입액으로 나눈 수치로 외환보유액으로 수입액을 커버할 수 있는 기간)는 1.2개월임.

 

관세

 

타지키스탄의 공식 무역 체제는 비교적으로 자유로움. 평균 세율은 약 7%. 세율은 0에서 15% 사이. 45개의 후전발전도상국은 수입 관세 면제. 2006년 1월 1일부터 새로운 관세법이 발효.

 

▪ 무역 협정

미국과 타지키스탄은 1993년 상호 최혜국 관세를 적용하는 무역 협정을 체결.

 

1995년 타지키스탄은 우즈베키스탄과 상호 바터 무역 및 교통 연결 재건에 대한 공동 노력을 내용으로 하는 무역 협정을 체결.

 

1992년에 창설된 경제협력기구(The Economic Cooperation Organization)의 자유 무역 지대는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아프가니스탄 및 이란으로 이루어져 있음. 이 기구의 회원들은 세율 경감을 포함한 경제 협력에 대해 협의.

 

1999년 타지키스탄은 CIS의 5번째 회원이 되어 이 지역의 자유 무역을 가속화하기 위해 창설된 세관 조합에 합류.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및 벨로루시, 즉 기존 세관 조합은 1996년 창설. 회원 간 운영이 자유로운 무역 조합 창설에 대한 협의 계속 진행 중.

 

▪ 세관 당국

타지키스탄 관세청. Customs Service of Tajikistan, 50 Buhoro Street, Dushanbe, Tajikistan 734025 전화 992 (37) 221-1872; 팩스 992 (37) 223-2723, 221-4630.

 

▪ 과세가격(Value for Duty) 결정

알코올 및 담배를 포함한 특정 제품에 대해 특별 세금 부과.

 

▪ 세제

20%의 부가가치세가 적용. 다른 CIS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이 타지키스탄보다 높을 경우, 타지키스탄은 같은 부가가치세를 적용. 수입 장비도 부가가치세적용 대상; 장비 설치 이후 부가가치세는 상환 됨.

 

알코올음료, 담배 제품, 카펫 등 일정한 품목에 대해서는 소비세 20 %가 적용.

 

2004년부터 외화 수입에 대한 0.075% 수속비용 부가.

 

 

2. 서류

 

이하는 타지키스탄에 선적할 때 필요한 서류. 우편으로 운송하는 경우 선하증권 대신 우편 서류를 구비해야 함.

 

모든 운송 서류는 관련 거래 및 수입허가 번호를 포함해야 하며, 불분명한 경우 세관통과가 불가능함.

 

항공화물은 선하증권 지역에서 air waybill이 필요한데 사용 항공사 및 수입업체가 요구하는 것을 기반해 사본을 준비해야 함.

 

이하 세관 통과를 위해 필요한 서류: 세관통관신청서, 화물 신고서, 거래 계약서, 원산지 증명서, 품질 보증서, 일치 증명서, 선하 증권, 인보이스, 개인이 세관 통과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변호사 및 관세 및 비용 지불 계산서, 또한 (필요할 시에) 검역 증명서, 동물 검역 증명서 또는 식물 검역 증명서 등 준비.

 

화물 세관 신고서는 수출ㆍ입에 있어서 제일 중요한 서류. 기업과 검열 기관 간 어떤 분쟁이 있을 경우 - 세관의 관세청은 화물 세관 신고서의 유무 및 그 안에 있는 데이터의 정확성에 기반해 분쟁을 해결. 화물 세관 신고서는 세관 경계를 통해 화물을 옮기는 측이 작성하거나 화물 신고자 역할을 하는 세관 브로커가 작성. 화물 세관 신고서는 러시아어로 유라시아경제연합 국가는 또는 세관 통과 이전에 컴퓨터로 혹은 타자기로 타이핑한 타지크어로 작성.

 

선하증권

 

특정 요구 사항 없음. 계약서에 따를 것.

 

원산지 증명서

 

필요. 계약 체결 시 타지키스탄 수입업체가 특정 양식을 보내지 않는 한 일반적인 양식이 사용되며, 수입업체의 요청에 따라 사본을 준비함. 대개는 사본 두 장을 요청함. 생산 회사의 스탬프 및 사인이 필요.

 

증명서에 있는 데이터는 기타 서류상의 데이터와 일치해야 하며 수출업체 내 책임자의 사인이 있어야 함. 상공회의소증명서가 요구되는 경우 공인 사본을 상공회의소에 제출해야 함.

 

 

 

상업송장

 

사본 2부 필요. 원산지 규정, 포장상품 세부사항, 상표 및 수량, 순 질량과 총질량, 제품 수량과 설명, 단위 가격 및 총 운송 가격, 판매 가격 및 수출국에서 최종 발송지에 대한 정보 필요. 상업송장의 모든 데이터는 계약조건과 일치해야 함.

 

영사/관세송장 : 불필요

 

수입허가

 

수입허가를 필요로 하는 제품이 많지 않음. 수입업체와 특별 요구 사항을 체크해 볼 것.

 

보험증서

 

판매자나 구매자 중 누가 상품 보험에 가입할지 계약 조건에 따라 결정함. 판매자가 보험에 가입할 경우 수입업체 및 보험사의 규정을 준수하여 문제의 발생을 방지해야 함.

 

포장명세서 : 필요. 완전하고 명시적인 선적내용요약을 포함해야 함.

 

선적 전 검사 : 국가요구사항 없음. 수입업체가 요구할 수 있음.

 

 

 

견적 송장

 

계약협상 단계 중 수입업체가 견적송장을 요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수입업자의 지시사항에 따름.

 

선사 증명서 : 불필요.

 

기타 서류

 

▪ 검역 요구사항

타지키스탄은 엄격한 검역, 보건, 식품 및 약품 컨트롤을 실행. 동물이나 식물로 만든 모든 상품은 위생에 하자가 없음을 증명하는 위생 보고서가 필요함. 타지키스탄 관세법에 따라 동식물, 또는 기타 필요한 검사가 끝난 후 세관 통과 가능. 국가 세관 위원회 및 다른 기관이 적합한 조치를 취할 권한이 있음. 대부분의 식물, 종자, 동물, 가금 등은 타지키스탄 입국 전에 검역을 받아야 하는 대상.

 

영사사증비

 

서류 공증에 대한 별도 요구 사항 없음. 선적 서류 혹은 법적 서류 공증이 요구될 시, 타지키스탄 공공기관은 이를 무료로, 혹은 매우 명목적인 가격에 제공해줌. 이 문제와 관련 정책을 확인해볼 것.

 

 

3. 마케팅 자료

 

대행 계약

 

타지키스탄 내 에이전시 및 유통업체 관련법에 대한 특별 정보 없음. 모든 경우에 이런 계약을 체결하기 이전에 법적 자문을 받아야 함.

 

정부 조달

 

타지키스탄 정부는 국제 금융 기관이 자금을 조달하는 일련의 인프라 프로젝트를 실행 중. 컨설팅 서비스 분야에서 정부 조달 가능성 존재; 도로 재건 및 장비와 서비스 유지; 인프라 분야 등.

 

외국인 투자

 

타지키스탄 정부는 외국인 투자를 환영. 무역과 투자에 있어서 일반적으로 많은 리스크요소를 내포하고 있는 혁신적인 유형의 자금 투자를 하려고 하는 이들에게 기회를 제공. 외국인투자는 인수, 합병 및 경영권 취득을 통해 할 수 있음. 외국인 투자법 역시 합병 방법에 대해서 제한이 없다는 내용을 담고 있음. 기업의 외국인 소유에 대한 제한은 몇몇 큰 국가 소유 기업 및 은행 분야(이 분야에는 외국기업의 참여지분이 35% 이하 유지)를 제외하고 폐지. 낙후된 인프라는 투자자에게 있어 큰 장애요소로 작용.

 

2004년 세금법은 중소기업에 12% 소득세 측정을 하고 외국인 지분 참여가 있는 기업은 투자 규모에 따라 2년에서 5년까지 소득세를 면제. 또한 이 법은 국내 및 외국인 투자자를 생산 향상을 위해 수입한 장비 및 부품에 대한 부가가치세 및 수입 세금에서 면제.

 

경제통상부 연락, 37 Bokhar Street, 734002 Dushanbe, 전화 (992) (372) 27-34-34; 팩스 (992) (372) 21-51-32.

 

타지키스탄은 상호 투자 보호 협약을 중국, 한국, 파키스탄, 체코 공화국, 슬로바키아, 터키, 인도, 이란, 아랍에미리트 및 쿠웨이트와 체결. 1993년 타지키스탄과 미국은 협력 및 무역 관계에 대한 양자 협력을 체결.

 

타지키스탄은 세계은행의 국제투자보증기구(MIGA, Multilateral Investment Guarantee Agency)의 회원. MIGA는 정치적 리스크와 같은 일정한 비영리적인 요소에 대해 외국인투자에 대한 보증을 제공.

 

상품 표준, 규제 및 의무사항

 

국가표준화기구는 경제통상부 표준화, 도량, 증명 및 무역 검열청인 타지크 스탠다드 (Tajik Standard).

 

타지크 스탠다드는 제품서비스인증법 NO.314에 따라 인증에 대한 의무를 지게 함. 해당 국가 인증기관, 연구소/센터, 생산자 (판매자 및 계약자) 및 일부 케이스에 명시된 바와 같이 유사한 제품의 활동을 조정하기 위해 인증 시스템의 중앙 기관 등이 의무 인증과 관련된 단체. 법 또는 표준으로 안전, 소비자 건강 및 환경보호 또는 자산 피해 예방을 위해 의무 인증 규정되어 있는 상품(노동 및 서비스)은 반드시 인증을 받아야 함.

 

의무 인증을 받아야 하는 상품은 농업 기계, 주방기기, 어린아이용 제품, 통신 상품, 건축 자재, 소비 화학, 소비자 제품(식품, 식수 및 피부와 접촉하는 제품), 전자 기계, 전자 및 폭발 재질 테스트 기계 장치 및 폭발 작업 용 장치, 압력이 하에 보관되는 물질, 가공 농산물, 먹이, 연료, 개인용 보호 제품, 석유, 석유화학제품, 가스, 향수, 화장품, 의약품, 약초, 독성 화학물질, 미네랄 비료, 발열성ㆍ폭발 제품, 자기 호환 및 안전 장비, 거중기 등.

 

표준, 테스트 및 인증은 일반적으로 러시아연방 표준에 맞춰서 진행. 수입 제품에 대한 품질 인증은 3 국가 기관이 담당: 무역산업청(the Trade Industrial Agency), 국가표준위원회(the State Committee on Standards), 국가동물검역청(the State Veterinary Control).

 

타지키스탄 표준청은 표준화 계량 무역 검열청. Agency for Standardization, Metrology, Certification and Trade Inspection, 42/2 Negmat Karabaeva Street, Dushanbe, Tajikistan 734018 전화 (992) (37) 233-6869; 팩스 (992) (37) 233-1933.

 

국립 보건 검증 센터, 보건부, 5/5 Alisher Navoi Street, Dushanbe, Tajikistan 734025 전화 (992) (372) 211-945; 팩스 (992) (372) 210-895.

 

▪ 전기 전압

A.C., 220/380볼트

 

마케팅, 라벨링 및 포장

 

대부분의 라벨링 요구사항은 러시아연방의 기준에 일치. 제품에 대한 특별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수입업체와 상의할 것.

 

제품에 대한 라벨링 및 마케팅 요구사항은 제품의 종류 및 사용 용도에 따라 상이. 일반적으로 상표는 러시아어로 되어있어야 하고 제품 자체 또는 제품에 부착되어있는 종이에 부착 가능함. 정보는 제품명, 생산자명, 원산지, 그리고 일부 경우에는 사용법을 포함하고 있어야 함. 음식, 음료, 음식 첨가물 및 직물과 같은 제품을 위한 라벨은 내용물과 구성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야 함.

 

지적 재산권

 

타지키스탄은 WIPO, Paris Convention, Berne Convention, Patent Cooperation Treaty, Madrid Agreement, Nice Agreement, Locarno Agreement, Strasbourg Agreement, Budapest Treaty 및 Universal Copyright Convention 회원.

 

타지키스탄의 지적재산권 법은 특허 및 산업 디자인에 있어서는 1994년 2월 발행 발명, 실용 모델 및 산업 디자인에 대한 추가 규정 포함; 트레이드마크에 있어서는 1992년 1월부터 발효된 1991년 12월 재정 상표법 No.4456이 적용. 저작권 및 관련 권한에 대한 법은 1998년 11월 9일 (발효일) 저작권 및 인접권 법 No. 726을 포함. 생산지 명칭, 지리적 표기, 원산지 표기는 1995년 2월 제품 원산지에 대한 임시 규정 No.160으로 조정.

 

산업 재산과 관련해서는 특허정보센터에 연락을 취할 것, 14a, Ainy Street, 734042 Dushanbe 전화 (992) (372) 27-59-77; 팩스 (992) (372) 21-71-54. 저작권과 관련해서는 문화부 저작권 인접권청 연락, 34 Rudaki Street 734025 Dushanbe, 전화 (992) (372) 21-64-89; 팩스 (992) (372) 21-64-89.

 

타지키스탄의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한을 실행하는 다른 기관은 산업 재산 법원, 법원 및 고등 경제 법원.

 

제품 마케팅 및 광고

 

TV, 라디오, 외부광고, 및 주간지가 제일 우선적인 광고 채널. 비즈니스 서비스, 전반적 이미지 PR 및 브랜드 인식을 위한 캠페인을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외부 광고 사용. 몇 미디어 채널이 존재; 전국을 커버하는 개인 방송국이 없지만, 작은 도시에 몇몇 작은 규모의 방송국이 존재. 두샨베에는 3개의 선두 FM라디오 방송과 하나의 케이블 TV 네트워크가 있음.

 

직접 광고는 효과적이고 특히 두샨베에서 효과적. 주요 문화 및 스포츠 행사와 직송 마케팅 등이 유행하는 직접 광고 유형. 우편을 통한 마케팅은 널리 타지키스탄의 신뢰받지 못하는 우편 시스템으로 인해 사용되지 않음. 몇 개의 광고회사가 존재하는데, 모두 두샨베에 있음.

 

신문 및 잡지는 음란물, 폭력 등을 금지하는 법의 대상. 문화정보부가 준비한 담배 및 알콜 제품의 TV 및 라디오 광고를 금지하고 보건부 승인 없이 의약품의 광고를 제한하는 령 발표. TV 및 라디오 광고 관련 법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면 문화정보부 TV라디오국에 연락할 것, 734025 두샨베, Prospect Rudaki 31, 전화 (7-3772) 21-03-00, 27-55-87.

 

4. 비즈니스 여행

 

타지키스탄의 가난한 경제 및 아프가니스탄과의 국경을 접하는 위치는 일련의 심각한 안보 문제를 초래(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의 마약, 사람, 무기 유입 및 조직범죄집단의 활동). 추가로 우즈베키스탄이슬람운동(IMU), 이슬람 지하드 연맹 및 알카에다와 같은 극우주의 지지자는 중앙아시아에서 여전히 활동적임.

 

이 그룹은 반미 감정을 나타내고 미 정부 또는 지역의 사익을 겨냥하려고 시도할 수 있음. 중앙아시아에서 지난해동안 외국인투자에 대한 공격 발생. 테러범들은 정부기관과 민간 목표를 구분하지 않기 때문에 여행객들은 외국인들이 모이는 지역에서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아야 함. 공식 미국 시설, 지역 등에서의 향상된 안보 수준 때문에 테러리스트들은 외국인이 위치할 수 있는 거주 지역, 클럽, 레스토랑, 호텔 및 덜 보호된 장소 등을 타깃으로 정할 수 있음.

 

입국 요구사항

 

여권 및 비자 필요. 호텔에 등록하려면 비자가 있어야 함. 유효한 비자가 없는 여행객들은 나라를 즉시 출국해달라는 요청을 받을 수 있음. 러시아 대사관 및 영사관이 발급한 비자는 더 이상 타지키스탄 입국에 유효하지 않음. 타지키스탄 비자는 타지키스탄 대사관 및 영사관에서 발급 받을 수 있음. 타지키스탄 비자는 미리 외무부와의 조율을 통해서만 도착 시 두샨베 공항에서 발급받을 수 있음.

 

타지키스탄을 방문하는 이는 초청 단체 혹은 개인으로부터 받은 공식 초장을 보유해야함. 나고르노-카라바흐 국경을 통한 타지키스탄 입국은 유효 타지키스탄 비자 이전에 추가로 특별 허가를 필요. 비자 요청은 초청단체 혹 개인이 외무부 또는 비자ㆍ등록 국가(OVIR)에 적어도 예정된 입국 3주 전에 송부해야 함.

 

비자를 연장하기 위해서는 공식 방문자는 외무부를 통해서, 여행객 및 사적 방문자들은 OVIR를 통해 사전 신청. 타지키스탄의 3일 이상 체류하는 이는 외무부 또는 OVIR에서 등록 도장을 받아야 함. 등록 기관은 타지키스탄 방문 목적이 공적인지 개인적인지에 따라서 상이.

 

상관습 및 에티켓

 

많은 타지크인들이 무슬림 종교를 믿기 때문에 타지키스탄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를 인식하고 무슬림 관습과 전통을 존중해야 함. 타지키스탄에서는 집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어야함. 일반적으로 여성이 타지키스탄을 방문할 때에는 얌전한 복장을 해야 함.

 

▪ 보안

타지키스탄은 어려운 경제와 심각한 실업률로 인해 조직범죄 및 기승하는 거리 범죄를 보유. 돈이 있다고 인식된 사람을 상대로 소매치기, 강도 및 무장 강도 사례가 있었음. 여행자들은 어두울 때 혼자서 또는 걸어서 여행하면 안 됨.

 

타지키스탄은 독립 이후 심각한 안보 문제를 겪고 있음.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은 이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앙아시아 국가(타지키스탄도 이에 포함)들의 안보 상황에 심각한 영향을 미침.

 

보안 당국은 외국인을 감시 대상으로 지목하는 경우가 있음. 호텔방, 전화 및 팩스기가 도청되거나 호텔방에 있는 개인 물품이 수색당할 수도 있음. 군사 혹은 안보와 관련된 것을 사진 찍는 것은 권력기관과의 문제를 초래할 수 있음.

 

▪ 통화 규정

타지키스탄은 현금만 취급하는 경제 구조. 국제 뱅킹 서비스가 불가능. 주요 신용카드 및 여행자 수표 사용 불가능. 타지키스탄에 큰 액수의 현금을 가지고 여행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음. 타지키스탄의 통화는 소모니.

 

▪ 교통

타지키스탄으로 입국, 타지키스탄에서 출국, 타지키스탄 내에서의 여행 모두 어렵고 신뢰할 수 없음. 항공편은 자주 취소되거나 또는 심각하게 지연됨. 돌아오는 상업 항공편은 자주 짐으로 가득 차있음. 국제 기차 편은 기차에서 자주 출몰하는 범죄 때문에 위험할 수 있음.

 

타지키스탄 내 자동차로 여행하는 것은 검문소 때문에 위험. 경찰 및 구인은 무장하고 있고 차량이 멈추지 않으면 발포함. 두샨베에서 동쪽 지역에는 독립 무장 그룹이 운영하던 몇몇 검문소가 있는데, 이들은 과거에 외국인을 겨냥한 바 있음. 따라서 동부로 차량으로 여행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음. 타지키스탄 번호판 보유 차량은 우즈베키스탄 입국을 거부당할 수 있음. 일반적으로 자동차 여행은 낮 시간에만 해야 하고 여행자가 잘 알고 있는 루트 또는 믿을만한 동행자와 함께 해야 함.

 

타지키스탄 비즈니스 정보원

기관

주소

E-mai/Homepage

비즈니스창설 센터

Suite 300, 40 Rudaki, Dushanbe, 743000,

전화 (992) (372) 21-05-28

팩스 (992) (372) 21-05-28

-

산업상공회의소

21 Valamatzade St., Dushanbe 734012,

전화 (992) (372) 21-52-84;

팩스 (992) (372) 21-14-80

chamber@tjinter.com

www.tpp.tj

 

중소기업협회

전화 (992) (372) 21-86-21

-

 

 

 

 

Ⅰ. 개 관

 

◦ 국명 : 우즈베키스탄 공화국(Republic of Uzbekistan)

◦ 면적 : 447,400㎢(한반도의 약2배)

◦ 기후 : 대륙성 사막

◦ 인구 : 2.79백만 명(‘10)

◦ 인종 : 우즈벡人(80.0%), 러시아人(5.5%), 타직人(5%)

◦ 수도 : 타쉬켄트(인구 약 240만명)

◦ 국어 : 우즈벡語(공용어), 러시아語(통용)

◦ 종교 : 이슬람교 88%(수니파 70%), 러시아 정교 9% 등

※ 헌법상 정치와 종교 분리

◦ 독립일 : 1991. 9. 1.(구소연방)

◦ 정부형태 : 대통령 중심제

◦ 국가원수 : Islam Karimov 대통령(Shavakat Mirzjyoyev 총리)

◦ 행정구역 : 12개 주‧1개 자치공화국‧1개 특별시

◦ 의회 : 상‧하 양원제(상원 100석, 하원 150석)

◦ 주요정당: 사회민주당, 자유민주당(LDP), 인민민주당(PDP)

◦ 경제지표(2010년 기준)

- GDP : 총규모 377억불 / 1인당 : 1,319불

- 경제성장률 : 8.3% / 물가상승율 : 15.0% / 실업율 : 1.0%

 

ㅇ행정구역

1개 특별시

수도 타쉬켄트

12개 주

(Viloyat)

일반 광역 자치단체

타쉬켄트, 사마르칸드, 페르가나, 나망간, 부하라, 안디잔, 쥐작, 시르다랴, 카쉬카다랴, 수르한다랴, 나보이, 호레즘

1개 자치공화국

(Republic)

카라칼팍 자치공화국(카라칼팍人 32.1%)

대규모 소수민족 집단에게 부여한 자치단체로 독자적인 헌법과 법률을 보유

 

 

Ⅱ. 경제정세

 

1. 경제 동향

 

가. 경제환경 : 천연자원 풍부 / 경제적 잠재력 다대

 

우즈베키스탄은 인구 2.79백만名인 중앙아의 최대 시장이자 교통 요충지로서 천연가스.원유.금 등이 풍부

 

- 가스/원유 매장량 및 생산량(2007년 기준)

구 분

매 장 량

생 산 량

가 스

1.74 tcm

58.5 bcm/y

원 유

6억 배럴

11.4만 b/d

※ 자료 :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June 2008

 

- 우즈벡에는 총 212개의 유.가스전이 발견되었으며, 이중 109개는 가스/ 가스 condensate이고, 109개는 유전 또는 유/가스 또는 유/가스 condensate임 (약 절반 이상이 개발중이며, 70개는 개발준비중, 9개는 폐쇄, 나머지는 탐사 중임)

- 金은 추정 매장량이 5,300톤(세계 5위)으로 연간 50톤을 생산(세계 9위)

 

※ 광물자원 보유현황

광 종

단위

우즈벡(A)

세계(B)

A/B(%)

세계순위

석탄

백만톤

4,000

984,211

0.4

19

5,300

49,800

10.6

5

몰리브덴

천톤

60

8,600

0.7

11

텅스텐*

천톤

20

3,200

0.6

12

우라늄

천톤

65.62

2,619.31

2.5

10

면화(세계 5위 생산국, 세계 2위 수출국)가 풍부하고 섬유산업이 발달, 통신. 관광 분야가 유망 산업분야로 부상

중앙아시아 교통의 요충지에 위치한 우즈베키스탄은 천연자원이 풍부하고, 우수한 노동인력을 보유하여 성장잠재력이 큼

 

나. 중.장기 경제발전 계획

 

【 I-WISP(Interim Welfare Improvement Strategy Paper 】

별도의 국가개발종합계획은 없으며, 국제기구 등은 세계은행의 지원을 받아 IMF에 제출한 I-WISP을 국가계획으로 보고 있음

WISP는 빈곤률을 26.2%(2003년)에서 20%(2010년)로 감소시키기 위한 4개의중요 정책방향을 제시함.

 

거시경제 안정 유지와 구조개혁 촉진에 의한 고도성장 달성

- 급속한 산업화를 통해 2007-2010년간 연 8% 수준의 GDP성장을 달성하고, 동기간 중 거시경제 안정을 위해 인플레이션율은 연4~5% 수준을, 정부 예산은 GDP대비 26~27%를 유지함.

- 민간투자 활성화 및 외국자본 유치를 위해 조세개혁, 자본시장 활성화 및 금융자유화 확대, 수출입 자유화 등 개혁개방 정책을 단계적으로 심화

 

② 인적자원개발과 사회보호 강화

- 교육, 보건 및 사회보호 등에 대한 공공지출을 현저하게 증대함으로서 국가의 사회보장 서비스의 질을 개선

- 특히 기초교육부터 고등교육까지 모든 교육과정의 질적 수준을 제고 하고,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해 물적 및 인적기반을 확충

 

③ 생활수준의 지역간 격차 완화

- 낙후 지역의 물적 및 사회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고, 수입대체산업의 지방 유치 등 지방 발전 계획을 강력히 추진

 

④ 환경보호의 개선

- 환경보호, 자연 및 생물 다양성 유지, 자원의 지속적 사용에 중점을 두고, 토지와 수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각종 유인책을 개선

 

다. 최근 경제 동향

 

① 국내경제

- 우즈베키스탄 경제는 폐쇄졍제로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아 2009년에도 8.1%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함.

- 우즈베키스탄의 재정수지는 높은 경제성장률과 원자재 가격 등으로 2008년 GDP 대비 1.5%의 흑자를 기록하였으나 사회보장, 국방 및 치안 관련비용 부담 증가로 2009년 GDP의 0.2% 로 감소한 후 2010년 적자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됨.

 

② 대외거래

- 경상수지는 1998년 이후 흑자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데 2009년에도 36달러 GDP 대비 흑자를 기록하였음.

- 주요 수출품이 면화, 금에 국한되었으나, 2007년 이후 가스, 기계 등으로 품목이 다양화 되고 있으면 금 등 국제 우너자재 가격 상승에 힘입어 삼품수지 흑자가 지속되고있음.

 

 

 

2. 글로벌 금융위기 대응 등을 위한 주요 정책방향

 

※ 카리모프대통령이 2009.3 책자 저술 형식으로 발표

 

1) 위기 대응프램 및 중장기 투자프로그램 시행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위기대응프로그램(실물경기 진작방안, 08.11.28 대통령령으로 제정)을 마련하여 시행중

- 수출기업경쟁력 제고 : 생산원가 20% 절감, 수출 기업에 대한 우대 대출 (preferential loan), 조세감면 등

- 내수진작 : 고속도로 등 교통인프라 건설, 건축허가 간소화 등 주택 건설 활성화, 식품 생산 증대 등

- 투자활성화 : 대형은행의 자본금 증대, 기간산업 주요 프로젝트 추진, 각종 산업의 현대화 등

- 소기업 활성화 : 소기업에 대한 자금대출 기간 연장(12개월→18개월), 통합세 세율인하(8%→7%) 등

이러한 위기대응프로그램의 시행과 함께 중장기적 현대화와 기간산업발전을 위해 각종 투자프로그램의 시행

 

2) 산업 다변화 및 구조개혁

산업다변화 및 구조개혁도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지속 추진

 

3) 농촌지역 발전 및 생활수준 향상

2009년이 ‘농촌지역개발의 해’로서 학교시설, 식수시설, 전기 공급 등 사회 인프라 정비와 관개시설 확충 등을 추진

 

4) 서비스부문 활성화와 소기업 육성

소기업에 대한 통합세율 8%→7%로 인하 등 소기업 활성화 조치를 시행 하고 농촌지역의 서비스산업 발전 유도

 

5) 생산적인 사회 인프라 건설

고속도로, 철도 등 사회 인프라 개발을 통해 경제발전 지원 및 기업의 생산 원가 절감 추진

6) 은행부문 발전 및 은행으로의 자금 유치

은행의 자본금 확충, 여유재원의 은행으로의 유치 추진

 

3. 경제정책 평가 : 시장경제 개혁 추진 성과와 부진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완전한 경제적 주권확보’을 위해 수입물자의 자체 생산 기반확충(수입대체 산업 육성)에 전력

- 제조업 육성을 위해 생선설비 현대화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특히 석유화학, 자동차, 건자재, IT 및 전자, 섬유, 농산물 가공 분야 산업발전을 통한 수출 드라이브 정책 추진

- 2008.12 대통령령을 제정하여 ‘나보이 경제산업특구(FIEZ)’ 조성을 추진, 첨단산업 육성 및 수출기지화 도모

- 위치/면적 : 나보이공항 인근 500ha(약 150만평)

- 운영기간/추진현황 : 30년, 2010.1.1까지 마스터플랜 수립

- 인센티브 : 3백만유로이상~3천만유로 이상에 대해 7년~25년간 조세감면혜택 등 부여)

- 천연가스 등 원자재에 있어서도 직접적인 수출에서 벗어나 이를 이용 한 고부가가치 상품 생산을 통한 수출지향정책을 추구

우즈베키스탄은 독립이후 多민족.多종교 국가라는 특성을 고려, 정부 통제하 점진적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

- 급진적인 경제자유화.정치 개혁에 따른 정치.사회불안 유발 우려, 이를 요구하는 IMF.IBRD 지원에 소극적이며,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가공산업 수출을 통한 경제난 극복 전략 추구

그러나 민영화 및 농업개혁 부진, 외환규제, 금융.은행 시스템 낙후로 경제 발전 속도는 주변경쟁국에 비해 더딘 편임

- 2003.10 숨화의 완전태환을 보장하는 IMF 8조를 수락하여 부분적인 ‘환전자유화’ 제도를 도입(03.10)했으나, 아직 미흡한 수준

- 우즈베키스탄 금융산업은 사회주의 금융관행과 정부의 통제 등으로 효율적인 금융자원 조달 및 배분역할이 미흡한 실정

수출경쟁력 확보를 위한 숨(Sum)貨 高평가 및 수입 억제조치 등으로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는 등 부작용 야기

 

3. 향후 전망

우즈벡 정부 최근 세계적인 금융위기 속에서 우즈벡의 2008년 고성장은 ‘관리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점진적 개혁’ 등 기존의 정책이 효율적이었음을 입증하였다고 강조

- 단기간내에 금융과 기업부문 등에 대한 통제경제정책을 변경할 가능성은 적으며, 제한적인 시장경제체제 유지 전망

개방적인 시장경제체제로 변경할 경우, 중앙아의 관문으로 기능하면서 해외로부터의 본격적인 투자 유입으로 빠른 경제성장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

【 주요 경제지표 】

구 분

2006

2007

2008

2009

2010

GDP(억불)

170

223

286

328

377

GDP성장률

7.2

9.5

9.0

8.1

8.3

소비자물가상승률

(%)

11.4

11.9

12.7

14.1

15.0

경상수지(백만불)

2,933

4,267

3,087

3,596

4,094

수출(백만불)

5,615

8,026

10,370

10,298

10,735

수입(백만불)

3,841

5,730

7,080

9,277

9,023

외환보유액(백만불)

4,459

7,413

10,150

9,000

10,500

환율(달러당,연중)

1,238

1,288

1,383

1,475

1,589

출처 : 한국수출입은행

 

4. 대외 교역 현황(2008년 기준)

무역규모는 190.7억불로, 07년 대비 21.4% 증가한 것임

- 수출은 115.7억불로 28.7% 증가하였으며, 수입은 75억불에 달해 수출에 비해 적은 11.5% 증가하여, 무역수지 흑자규모는 40.7억불

- 국가별 교역비중을 보면 러시아가 20.2%, 우크라이나 8.4%, 중국 6.8%, 스위스 5.7%, 한국 5.5%, 카자흐스탄 4.8% 순임

 

【 우즈벡 주요 수입 대상국 현황 】

순위

국 가

수입액(불)

1

러 시 아

18억 6,310만

2

중 국

10억 3,930만

3

한 국

9억 6,510만

4

우크라이나

6억 2,430만

5

카자흐스탄

4억 5,260만

6

독 일

3억 9,980만

7

터 키

2억 5,590만

8

미 국

1억 7,670만

9

일 본

1억 4,650만

10

타 지 크

9,200만

 

 

【 우즈벡의 주요 수출 대상국 현황 】

순위

국 가

수입액(불)

1

러 시 아

19억 8,650만

2

스 위 스

10억 3,290만

3

우크라이나

9억 7,870만

4

이 란

5억 3,660만

5

터 키

5억 3,440만

6

아프가니스탄

5억 3,040만

7

카자흐스탄

4억 6,000만

8

중 국

2억 5,740만

9

미 국

2억 1,100만

10

타 지 크

1억 9,000만

※ 자료원 : 우즈벡 통계위원회

※ 주요 수출입 품목

 

주요 수출 품목 : 원면, 식품류, 에너지, 金, 화학공업 제품, 기계류 등

주요 수입 품목 : 기계/설비류, 화학/고무제품, 철/비철금속 등

 

Ⅲ. 사회, 문화

 

■ 국민성

시와 노래를 즐기는 민족으로서 “시와 노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격언도 전래

이웃이 어려울때 서로 도우며(.하샤르. : ‘서로 협동한다’는 의미), 손님에 대한 접대가 극진하고, 노인과 부모공경의 동양예절 유지

※ 가족중심의 생활, 부모에 대한 공경, 가부장적 사회, 男兒 선호사상 등

천성이 온화하고 낙천적인 측면이 있으며 자원이 풍부한 반면에 노동생산성은 낮은 편

 

교 육

1991년 독립이후, 교육제도 개혁 단행

- 우즈벡 역사.문화, 라틴문자 차용, 의무교육 단축(11년 → 9년)

은 교육수준

- 학생수가 전체인구의 50% 차지(’01년 기준), 평균 취학기간 11.4년, 문자해독률 99.1%, 교육비용은 국내총생산의 7.9%

 

■ 종 교

고대에 조로아스터敎와 불교의 영향을 받았고, 8-9C 아랍의 침략 이후 이슬람化

※ 카리모프 대통령은 철저한 政.敎

분리로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정치

불안요소를 원칙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대다수 국민들이 종교정책을 지지

 

현재 우즈벡人 88%가 무슬림(수니파 70%, 시아파 20%)이나 정부는 인접 타지키스탄.아프간으로부터 과격 시아파 원리주의 확산을 경계

 

■ 문 화

【 전통 문화 】

우즈벡 민요(3/4박자)와 전통춤(페르가나 춤과 호레즘 춤)이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주요 가무

 

봄축제, 튤립축제, 면화 추수감사 축제, 종교적 명절 등을 기념하며, 명절에는 “차반”이라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고 노래와 춤을 향유

손님의 술잔에 첨잔을 하는 것이 예의이며, “원샷”을 하는 것은 상대방과 술을 안 마신다는 의미로 결례

인사법은 악수를 하거나 가까운 남자끼리는 뺨을 우-좌-우 순서로 3번 살짝 대고, 악수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오른손을 왼쪽 가슴에 대는 자세를 취해 인사

※ 단, 문지방 등 경계선 위에서 악수하는 것은 결례

남녀 내외풍습의 잔재로, 여성과의 인사는 가볍게 하고, 베일을 쓴 여성과의 신체접촉은 삼가(악수는 무방)

회교도는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양고기 요리가 많으며, 대표적 음식인 플롭(볶음밥의 일종)은 주인이 직접 손님에게 만들어 접대

※ 이슬람의 보편적 요리인‘샤쉴릭’, ‘카봅(케밥)’, ‘라그만(고기국수)’도 즐겨 먹는 음식

결혼식은 더위를 피해 주로 밤에 성대한 음식과 음악을 겸한 피로연을 개최하며, 장례식은 소련시절 서구식으로 많이 변하였으나, 최근 회교전통에 따른 장례로 복원 추세

 

 

< 주요 언론사 >

T V

.국영TV : 4개의 채널이 있고 모든 방송은 우즈벡語로 방송되고 각각의 채널은 다른 영역을 담당

※ 채널 1은 정치.경제 영역의 관영 언론, 채널 2는 어린이 프로그램, 채널 3은 드라마.

영화 등 오락 프로그램, 채널 4는 스포츠.뉴스

.독립 TV : 지역별로 케이블 TV회사 35개가 있으며프로그램의 직접 제작은 사마르칸드와 안디잔 방송국 정도가 가능

라디오

.국영 라디오 : FM, 중파, 단파 방송이 있으며 단파의 경우 12개 언어로 주변 10여개 국가에 방송

.독립 라디오 : 타쉬켄트에 5개 FM 방송 및 페르가나에 1개 FM 방송

※ 그란데(독일 콘라드 아데나워재단 지원), 세줌(美합작사인 루비콘 텔레콤 운영), 오리

야트 도노, 함로, 우즈베김 타로나시 등이 대표적

신문사

.400여개의 신문사가 있으나 대부분의 신문 발행자는 정부.국영기업.정당 등

※ 나로드노이 슬로보(1991년, 국회.내각 발간), 우즈베키스탄 오보지(1998년, 인민민주당 발간), 피도코르(1999년, 애국당 발간)

.극소수 사기업.단체 발행 신문은 경제.사업 기사 보도

※ 후리야트(1996년) ; 우즈벡語, 언론민주기금 발간

※ 비즈니스 베스트니크 보스토카(1991년) ; 우즈베크 / 러시아어, .프라우다 보스토카 솔라. 社 발간

통신사

.3개의 통신사 : 국영 “UzA”, 외무부 산하 “Jahon”, 최근 설립된 민영 “투르키스탄- 프레스”

※ “Jahon”이 외국으로 우즈베크 뉴스를 송신하고 “UzA‘는 외국 정보를 수신해 국내언론에 배포하며, “투르키스탄-프레스”는 “UzA”와 경쟁중

 

 

Ⅳ. 한.우즈베키스탄 경제 관계

 

1. 교역동향

 

1992년 수교 이후 꾸준히 증가하여 왔으며 세계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2010년 10월 현재 12억 12백만불에 달함

- (수출) 2010년 1-10월 수출은 전년대비 약 23.5% 증가하여 11억 93백만달러를 기록

- (수입) 2010년 1-10월 수입은 19백만달러임

 

【 우리의 對우즈베키스탄 교역액 】

(단위 : 백만불)

연 도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10월

2008

수 출

493

649

748

1,123

1,150

1,193

1,123

수 입

29

40

104

263

47

19

263

522

689

852

1,386

1,197

1,212

1,386

 

교역량은 증가추세이기는 하나 해마다 그 변동폭이 크고 교역량의 대부분은 수출이 차지하고 있음

(단위 : 백만불, %)

구 분

’04년

’05년

’06년

’07년

‘08년

‘09년

‘10년 10월

수 출

금액

359

493

649

748

1,123

1,150

1,193

증가율

45.3

37.3

31.7

15.3

50.0

2.4

23.5

수 입

금액

77

29

40

104

263

47

19

증가율

2.5

62.5

39.1

159.2

153.1

-82.0

-45.8

교역량

금액

436

522

689

852

1,386

1,197

1,212

증가율

33.7

19.7

31.9

23.7

62.7

-13.6

0.1

무역수지

282

464

609

644

860

1,103

1,174

※ 자료 : 무역협회 KOTIS

 

주요 품목별 교역 동향

주요 수출품은 자동차부품, 원동기및펌프, 자동차 등이고 주요수입품은 천연섬유사, 면직물, 기타농산물, 기호식품 등으로 산업간 교역이 주를 이룸

 

(단위 : 백만불, %)

순위

’10. 1-10월 對우즈벡 수출

’10. 1-10월 對우즈벡 수입

품목명

금액

증가율

품목명

금액

증가율

 

합계

1,196

23.5

합계

19

-45.8

1

자동차부품

613

28.2

천연섬유사

9

13.1

2

원동기및펌프

135

35.4

면직물

4

6.3

3

자동차

89

25.1

기타농산물

3

118.1

4

합성수지

77

88.6

기호식품

1

21.4

5

편직물

42

0.9

가죽

1

1,415.6

※ 자료 : 무역협회 KOTIS(MTI 3단위)

 

2. 한국기업의 우즈베키스탄 진출 현황

 

■ 연도별 투자 추이

. 2008년 누계 기준 한국의 對우즈벡 투자는 126건에 1,109백만 달러(신고기준), 우즈벡의 對한국 투자는 146건, 7.89백만 달러(신고기준)임

 

(단위 : 건, 백만불)

연도

93-99

00년

01년

02년

03년

04년

05년

06년

07년

08년

누 계

한국→

우즈벡

24

3

2

4

5

3

10

15

32

28

126

486.7

29.6

72.0

0.8

5.8

0.9

14.6

41.3

338.8

118.8

1,109.0

우즈벡→

한국

-

-

2

2

7

22

39

39

34

-

146

-

-

0.08

0.08

0.3

1.2

2.1

2.2

1.88

-

7.89

※ 자료 : 수출입은행, 지식경제부

 

■ 업종별 투자 현황

【 업종별 투자 현황 】

 

(2008 기준, 단위 : 건, 천불)

업종

투자

신규법인수

신고금액

투자금액

농림,어업

1

1,355

350

광업

5

49,370

6,749

제조업

58

599,493

318,576

폐기물, 환경업

-

52

-

건설업

7

2,778

1,988

도소매업

12

7,012

3,209

운수업

3

19,510

17,612

방송통신,정보서비스업

4

38,100

36,862

금융 및 보험업

4

25,202

7,502

숙박 및 음식점업

7

43,669

14,864

사업서비스업

10

4,979

4,258

부동산 및 임대업

15

317,659

52,520

합계

126

1,109,178

464,491

 

주요 진출기업명

업 종

현지법인/지사/사무소 명

자동차 부품제조

(7개 기업)

UZ거제, 우즈 동홍, 우즈 동양, 우즈 동주, 우즈 세명,

우즈 코람, 우즈 동원

방적/봉제

대우텍스타일페르가나, 대우텍스타일, 대우텍스타일부하라, 대신메가

텍스, 하인텍스, 신동에너콤, 금성 인터내셔날 등

에너지

한국석유공사, 한국가스공사, 광업진흥공사 등

전자/통신

East Telecom.EVO(KT 현지법인), 삼성전자/LG전자

금 융

UzKDB, 신한은행(현지 대표사무소 개설 준비중)

운수/건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범한판토스, 롯데건설, 동호 E&C 등

 

3. EDCF 지원 및 무상협력 현황

■ EDCF :

. 우즈벡에 대한 EDCF 지원실적

사업명

백만불

승인

통신망 현대화 사업

15

’96.10

1차 직업교육시설 개선사업

35

’99.12

2차 직업교육시설 개선사업

27

’03.12

교육정보화 사업

30

’06.03

심장수술센터 의료기기 공급사업

10

‘09.03

합 계

117

 

■ 무상협력 지원

. 對우즈벡 KOICA 지원 실적: 총 21,838천불 지원, 연평균 1,367천불 지원

(단위 : 천불)

합계

’92

’93

’94

’95

’96

’97

’98

’99

’00

’01

’02

’03

’04

‘05

’06

’07

21,838

104

190

488

470

1,032

1,062

690

590

662

2,325

1,122

1,365

1,997

2,814

3,709

3,220

. ’92-’08년 사업별 지원내역

(단위 : 천불)

 

사업구분

명(건수)

지원금액

1

연수생초청

792명

4,274

2

프로젝트지원

6건

3,213

3

전문가파견

태권도

1명

354

4

기타일반

20명

891

5

의료단

4명

1,216

6

봉사단파견

188명

8,863

7

물자지원

23건

1,218

8

긴급원조

3건

1,572

9

NGO지원

8건

237

 

 

21,838

 

. 프로젝트 지원내역

(단위 : 천불)

사업명

기간

총사업비

개요

1

보건소 건립지원

’95-’96

300

앰뷸런스 등 의료기 지원

2

IT훈련원 건립지원

’03-’04

700

IT분야 기자재공여 및 연수생초청

3

국가정보지리시스템

구축지원

’05-’06

1,250

지리정보시스템 구축 및 전문가파견 등

4

세계경제외교대

도서관정보화 지원

’06-’07

850

우즈벡 세계경제외교대학교 도서관 업무 현대화를 위한 건물 개보수, 기자재 지원(전자 도서관 시스템 포함) 및 관련 기술전수

5

응급후송시스템

구축사업

’07-’08

2,500

구급차 및 응급후송관련 의료장비를 공급하여 우즈벡 국민들의 사망률과 장애율 감소시키고, 응급후송시스템 관리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우즈벡 국립병원의 의료서비스 질향상

6

타쉬켄트시

직업훈련원 건립사업

’07-‘10

4,000

직업훈련원을 신축하고 직훈체제 수립, 교과과정 및 교재개발, 직훈운영 및 관리 노하우 전수 등을 통해 우즈벡의 산업발전에 필요한 우수한 기능인력을 양성

7

국가사료보관소

국립문서/영상/

과학의료 기술 보관소

전자기록 시스템 구축

’08-‘09

3,940

기록물을 체계적이고 안전하게 관리할 수있도록 타쉬켄트시 3개 지역 국가사료보관소 건물의 개보수 및 기록물 전자관리시스템 구축

8

과학기술문헌

전자도서관 시스템 및

도서네트워크 구축

’08-‘09

2,200

우즈벡 타쉬켄트 중앙정보도서관의 e-Library 시스템 개발을 통해 전자도서관 인프라를 구축하여, 우즈벡 과학기술문헌에의 접근성 및 활용도 제고

(8건)

15,740

 

 

4. 한국에 대한 인지도

자동차.가전제품 등 우리 상품에 대한 인지도 급상승

- 한국제품의 우즈벡 가전 시장 점유율이 80%를 상회하고 대우차는 국민 차로 인식되고 있으며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대우차를 타고 삼성.LG의 가전제품을 사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평가

우리 드라마.음악 등이 인기를 끌면서 .韓流.열풍 확산

- 드라마 .겨울연가.가 시청률 60%를 기록하면서 최고 기록을 경신한 바 있고 .별은 내가슴에...이브의 모든 것.도 상당한 인기를 얻으며 비디오로도 출시

- 삼성.LG 등이 홍보전략의 하나로 방송국 광고비 대신에 드라마 방영권을 우즈베키스탄에 제공, 韓流 열풍 확산에 일조

- 우즈베크 국영 TV는 한국의 발전상 및 문화관광지 등에 대해 수차례 방영, 높은 시청률을 기록

청소년층의 ‘코리언 드림’ 열기 지속

- 많은 우즈벡 청년들이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가는 것을 크게 기대, 2004년도 경쟁률이 100대 1을 상회

- 우즈베키스탄내 타쉬켄트 대학 등 주요 대학들이 한국어 학과를 개설, 높은 경쟁률을 유지

 

5. 교민 현황

■ 교민 실태

. 우즈벡에는 首都인 타쉬켄트市를 중심으로 약 1,650여명의 교민이 거주 하고 있으며, 자영업자.선교사.상사원.유학생.NGO 등이 주류

※ 자영업자 700여명, 회사원 200여명, 전문직 500여명, 유학생 250여명 등

※ 국내체류 우즈벡人 : 21,555명(불법체류자 8,326명 포함, 2009.2.28 기준)

. 2000.5 타쉬켄트에 한국교민회(회장 박양균) 구성

- 소식지인 .교민일보.를 발간, 한국 국내소식.교민행사 홍보.각종 공지 사항 전달 등의 역할을 하고 있고

- 산하에 유학생회.청년회.여성회.한국유치원 등이 조직

- 임원구성 : 회장(박양균), 부회장(김홍덕, 허선행, 황근수), 사무국장(김성배)

. 또한 우즈베키스탄에는 200여개의 우리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진출하여 활동 중

 

■ 한국 NGO 단체

. .아시아문화개발기구.(IACD), .기아대책기구., .하베스트., .한민족 복지재단.이 활동중

- IACD와 ‘기아대책기구’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

- IACD는 주로 의료, 교육봉사(단독 병원개원), ‘기아대책기구’는 인도적 원조 분야를 중심으로 활동

※ 우즈벡은 종교의 자유는 보장하나, 선교를 금지하고 있어 2006.2 IACD가

우즈벡 법원으로부터 3개월 활동정지 처분을 받는 등 현지 NGO 활동에 어려움 노정

 

6.고려인 현황

■ 고려인 동포사회 형성과정

1) 스탈린에 의한 강제 이주

.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 분산정책에 따라 극동지역 거주 고려인(17만 여명)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됨

. 1937년 9-12월 화물열차로 연해주 등 극동에서 시베리아를 거쳐 중앙 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었으며, 이주과정에서 노약자 다수 사망

. 중앙아 이주 후 카자흐.우즈벡 공화국 주민들의 도움으로 월동하고, 강제 이주시 가져온 볍씨 등 농작물 씨앗으로 수자원을 이용한 벼농사 등에 성공 하여 중앙아시아에 쌀 등 식용작물 보급

. 2차대전시에는 거주.병역 제한, 敵性민족 누명하에 탄광.군수공장 등에서 혹독한 노동을 했고, 점차 한국어와 한국문화 상실

- 1956년 흐루시쵸프, 韓人 포함 11개 민족에 공민권 회복

. ‘콜호즈’(집단농장)를 성공적으로 운영하여 ‘폴리타젤’ 콜호즈, ‘김병화’ 콜호즈 등을 건설, 노동영웅들을 배출

 

2)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고려인 위상 제고

. 1989.9.20 소연방 공산당 중앙위 총회 .고르바쵸프 보고서.에서 중앙아에 강제 이주당한 고려인을 비롯하여 독일인.유대인 등 피압박 민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 언급

- 1991.4.26 러시아, “억압받은 민족들의 복권에 관한 법” 채택

※ 1993.4.1 최고소비에트 ‘한인복권령’ 채택

. 1988년 서울올림픽 계기, 소련내 고려인들이 한국에 대한 인식제고.고려인 지위 향상.한국어와 한국문화에 대한 복원 움직임 태동

. 현재 우즈베키스탄내 고려인은 주재국 전체 인구의 1%에 조금 못미치는 약 17만 5천명으로 CIS(총 50만명) 국가 중에서는 최다

. 舊소련 시절에는 집단농장에서 주로 생활하였으나, 우즈베키스탄 독립이후 다수 청년들이 상업 또는 러시아, 카자흐스탄 등 주변국에서 노동에 종사

. 고려인 동포들은 주로 타쉬켄트州(7만4,000명), 타쉬켄트市(7만 5,000명), 안디잔州(1,320명) 등에 밀집 거주

. 고려인 동포 주요 인사로 박 베라(상원의원), 신 블라디미르(고려문화협회 회장)등이 있음

 

 

Ⅴ. 우즈베키스탄에서의 비즈니스

 

1. 무역규제

 

□ 환규제 및 수입허가

 

․ 환규제

우즈베키스탄 중앙은행이 환거래 규제, 환율 결정을 담당하며 은행에 일부 제한된 권한을 위임함.

 

2003년 10월 1일자로 선불금에 대한 제약이 철폐됨. 종전에는 수입에 대한 선불금이 거래은행의 보증에 대해 계약 금액의 15%까지 허용되었으나, 장관각료의 승인 없이는 US$100,000이하로 제한되었었음.

 

우즈베키스탄 전역의 경제 무역 관계에 대한 책임은 외교통상부(Ministry of Foreign Economic Relations, Investment and Trade)에 있음. 외교통상부는 또한 국고지원, 정부 대출 지원을 받는 수입계약, 또는 국가가 50%이상의 주식을 보유하면서 자체적으로 경화를 가지고 있지 않은 회사가 체결한 수입 계약에 대한 평가를 내림. 계약은 은행에 접수한 이후 7일 이내에 관세청의 해당 지역 지사 외환규제부에 등록해야 함.

 

우즈베키스탄은 현행 국제 거래의 지불, 송금에 대한 규제부과나 차별적인 통화 정책, 또는 IMF의 동의가 없는 복수통화제도를 금하는 IMF 협정 제 8조 2~4항의 의무를 수락함.

 

․ 수입 허가

2003년 10월 15일에 IMF 8조를 수락한 이후, 이에 따라 수입 신고 시스템 및 전반적인 수입체제에 대한 입법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음. 우즈베키스탄 정부는 수입 가격과 외환 할당 비율을 입증하는 수입 신고 시스템을 철폐함.

 

그러나 정부는 경화의 유출과 평가절하 방지를 위해서 소비재 수입에 대한 엄격한 제한을 유지하고 있음. 수입업체가 외환을 구입하기 위해 거쳐야하는 절차가 일원화되었으며, 여기에는 세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각 단계마다 근무일 기준 2-3일이 소요됨. 첫 번째 단계는 수입업체의 은행에 수입계약을 등록하는 것이고, 두 번째 단계로서 수입업체는 반드시 관세 위원회에 계약을 등록해야 함. 문서에는 원산지 뿐 아니라 상품의 세액도 명시되어야 함. 마지막으로 상업 은행이 수입업체를 대신하여 경화 환전 신청서를 중앙은행에 제출하며, 중앙은행은 국가 외환거래 회기 동안 신청서를 승인하고 요청 금액의 외환을 은행에 배당해줌. 전체 프로세스는 5~7일 소요됨.

 

일부 수입은 특수 허가가 요구됨. 의약품의 수입은 보건위생부의 허가가 필요하고, 무기나 귀금속, 우라늄, 그 외 다른 방사성 물질은 외교통상부의 허가가, 영화나 비디오의 수입은 문화관광부의 허가가 필요함.

 

합작회사 우즈베크사브도(Uzbeksavdo)가 국가와 국민 생존에 필요한 식료품 수입에 영향을 미침. 설탕, 밀과 같은 주요 식량의 수입에 대한 입찰이 이루어지기도 하며, 보건위생부가 국가의 필요를 위한 의약품 수입에 대한 공개 입찰을 함. 비공개 입찰은 백신, 마취제, 마취약 수입에 이루어짐.

 

2. 마케팅 자료

 

□ 라벨링 및 포장

 

각 상품의 특정 의무 사항에 대해서 수입업자와 상담해야 함.

 

식료품의 소매 포장, 약물, 의약품, 무기물 및 화학 비료의 표장, 염색, 페인트, 헤어스프레이, 향수와 화장품, 가정용 화학 용품, 불꽃제품(pyrotechnic product), 영화, 살충제, 소독제, 브레이크액, 부동액, 가전제품, 텔레비전, 비디오 장치, 휴대폰과 인형 등의 수입에 있어서는 국가 공식 언어로 라벨을 부착하는 것이 의무화 되어있음.

 

3. 비즈니스 에티켓

 

□ 비즈니스 관습과 에티켓

 

우즈베키스탄은 무슬림 국가로서 무슬림 관습과 전통을 존중해야 함. 예를 들어,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항상 오른 손을 사용해야 하며 발로 무엇을 가리키거나 발뒤꿈치를 보여서는 안 됨. 우즈베키스탄의 수도인 타슈켄트에서는 여자들도 단정한 서양 의복을 입을 수 있으나, 그 외 지역에서는 보수적으로 옷을 입어야 함. 교외 지역에서 여성들이 바지나 반바지, 민소매 블라우스나 짧은 스커트를 입는 경우 위험을 감수해야 함. 남성 역시 공공장소에서 짧거나 소매 없는 티셔츠를 입지 않는 것이 좋음.

 

□ 여행정보

 

․ 안보

우즈베키스탄은 범죄 발생률이 낮으나, 특히 밤 시간에 길거리 범죄가 증가하고 있으므로 여행자들의 주의를 요망. 안보 상황에 따라서 도로 교통제한이나 운전면허증 확인이 잦을 수 있음.

 

 



알고 당하나 모르고 당하나, 결과가 같다면 굳이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건지도 모른다.


어줍잖지만 사회과학도입네, 지식인입네, 하며 읽어내린 글들과 귀담았던 풍월들은 조금이나마

세상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고 온갖 것으로부터 씌워진 색안경들을 인식할 수 있게 하는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요새는 사실 차라리 몰랐었으면 어땠을까 싶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전쟁을 외치는 보통 사람들의 광기나, 멀쩡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미혹케 만드는 정치인들이나 똑같다. 사람을 구타하고 돈을 던져주는 재벌2세의 행동이나,

힘없고 놀림받는 딴따라 몇 명을 물고 뜯어 '정의'를 구현한다는 사람들의 행동이나 이토록

야만적이던 시절이 또 있었을까 싶다.


차라리 흑백이 뚜렷하던 시기가 조금은 더 인간성과 지성이 한켠에나마 온존했을지 모른다.

민주주의가 하향 평준화인 양 받아들여진 시대, 자신보다 나은 인간과 지성을 존중하지 않는

시대, 경쟁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채 모든 걸 빈정거리지만 실상 모든 것에 배신당하는 시대.


그냥 문득, 내가 애초 사회대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사회과학서적들을 읽어대지 않았다면,

조금이나마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면, 조금은 덜 피곤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더 해서 학자나 이론가가 될 것도 아니고 그저 나와 내 주위 사람들 챙기고

보듬기도 바쁜데 왠 정치인, 경제인 나부랭이들에 거대 담론들을.


인간들은 습관처럼 미래를 말하지만 마냥 쳇바퀴만 돌고 있거나 혹은 퇴보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지금은 수백년 전처럼 세상으로부터 숨어들어갈 한뼘의 땅조차 남지 않은 거다.

무지무지하게 시니컬해져서, 어차피 세상은 그들의 것이니 조때로 하세요, 이렇게 치우고

난 전부 몰라라 하고 싶어졌다.




투르크메니스탄 약사


민족 형성 및 각국의 지배


구석기시대 투르크멘바쉬 인근에서 인류 거주

○ 8,000년 전 코페트다그 산맥 지역에서 신석기 농경 시작

○ 청동기-Anau(아나우)문화 코페트다그 북부와 테젠강 하류에서 발흥

○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에 의해 피지배

○ 9세기말 이후 투르크계 오그즈족 이슬람교 수용→투르크멘 명칭 처음으로 등장

○ 12세기말 ∼ 13세기초 호레즘왕의 지배

○ 1219 ∼ 1221 징기스칸의 지배

15세기 ∼ 17세기 남부부족-페르시아, 북부부족-히바와 부하라왕의 지배

○ 18세기초 페르시아, 18세기말 부하라왕의 지배


帝政러시아와 舊소련 시대


1860년 제정 러시아군에 의해 크라스노봇스(現 투르크멘바쉬)시 건설

1869 ∼ 1880년 대러 항쟁

1884년 항복

1917년 자카스피 반볼세비키 지역 정부 형성, 투르크멘 의회 수립

1918년 4월 투르크멘 자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선포, 7월 영국 지지하 민족주의자들 볼세비키 정부 전복, 독립 정부 수립

1920년 붉은 군대에 의해 독립정부 전복

1924년 10월 투르크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수립

1930년초 정치적 자치 운동 시작했으나 많은 지식인이 투옥 또는 처형됨


영세중립국 투르크메니스탄


○ 1990년 8월 주권 선언

○ 1991년 10월 독립 선언(10.27 독립기념일)

○ 1995년 UN 총회에서 영세중립국 결의안 채택

○ 2006년 12월 니야조프 초대 대통령 사망

○ 2007년 2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 취임

○ 2008년 9월 헌법개정안 채택



정치 · 사회 동향


정치 및 국제관계


야당 및 반대세력이 없어 정치 안정 가능

2007년 2월 1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전임 부총리이자 보건부 장관이었던 베르디무하메도프가 의회(Khalk Maslakhaty) 및 엘리트 집단의 절대적인 지지와 높은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되었음.

ㆍ 철권통치를 자행해온 니야조프 전임 대통령의 2006년 말 사망으로 신임대통령 선거 실시

ㆍ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여당인 투르크메니스탄 민주당(구공산당)을주축으로 하는 단일정당체제 유지 및 실질적인 반대세력과 언론에 대한통제를 지속할 것으로 보여 당분간 정치적 불안은 없을 것으로 보임.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 권한 강화

ㆍ 2008년 9월 헌법이 개정되어 인민평의회(Khalk Maslakhaty)가 폐지되었으며, 의회(Mejlis)의 의원수가 65명에서 125명으로 증가됨으로써 명목상 국민의 대표자 수는 증가되었음.

ㆍ 동년 12월 민주적 총선이 실시되었으나, 유일합법정당인 민주당과 정부가 승인한 비정부기구만이 후보를 낼 수 있어 일당체제는 여전히 유지

ㆍ 그러나, 동 헌법 개정으로 대통령이 주지사 임명권을 보유하고 국가안보회의(State Security Council)의 의장이 됨으로써, 대통령의 권한은 더욱 강화되었음.

러시아와 갈등 발발에도 불구 여전히 중요한 협력 상대

ㆍ 투르크메니스탄은 연간 700억㎥의 가스를 생산하며, 니야조프 정권이 2003년 체결한 25년 장기 가스 공급계약에 따라 이중 약 500억㎥를 러시아 국영석유기업 Gazprom의 송유관을 통해 러시아로 수출하고 있음.

ㆍ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으로부터 저가 구입 후 우크라이나에는 고가판매를 함으로써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한편, 중앙아시아에서의 에너지 패권을 강화하고 있음.

ㆍ 2009년 4월 가스관 사고로 인해 분쟁이 발생하여 대 러시아 가스공급이 중단되었으나, 동년 9월 13일 가스공급 재개에 합의함.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은 러시아의 자국 가스 재수출을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투르크메니스탄의 고정가격 기반 가스공급에 불만을 가지고 있어 향후 분쟁 재발 가능성이 남아있음.

ㆍ 그러나 투르크메니스탄 입장에서 러시아는 여전히 최대 가스수출 대상국이며, 러시아 입장에서도 자국 가스전개발에는 고비용이 소요되어 투르크메니스탄의 가스공급이 에너지 정책에 있어 중요하므로 현재 갈등에도 불구 양국의 경제협력관계는 유지 될 것으로 전망됨.

○ 중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증진

ㆍ 2006. 4월 중국과 가스 파이프라인 건설 협정을 체결한데 이어 2007. 8월 중국 CNPC 주도의 총 7,000km의 가스 파이프라인(Central Asia Gas Pipeline) 건설에 착수하였고, 2009년 12월 가동될 것으로 전망됨.

중국에 대한 가스 공급 물량을 연간 300억㎥에서 400억㎥로 확대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동 파이프라인이 완공되면 중국은 러시아에 이은 두 번째 가스 수입국이 될 것임(러시아에는 약 500억㎥ 수출).

ㆍ 2007년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의 중국 방문과 2008년 후진타오주석의답방을 통해 양국은 에너지 부문 이외에 섬유, 은행업, 통신 등 다방면에 걸친 협력을 약속하는 등 최근 양국간 경제협력관계가 증진되고 있음.

○ 가스 수출 다변화 움직임의 일환으로 서방과의 협력 확대

ㆍ 최근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이란에 국한된 가스 수출선 다변화하기 위해 서방과의 협력의사를 표방함.


사회 및 소요사태


○ 장기 독재정권 지속에도 불구, 저항세력이 많지 않아 소요사태 발생가능성은 낮음

ㆍ 전임 니야조프 대통령의 독재정권이 15년 동안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저항세력이 많지 않고 국민만족도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대통령이 급격한 정치적 변혁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사회불안사태가 야기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임.



국제 신인도 및 대외지급능력


주요평가기관 신용등급


○ 주요기관별 신용도 평가순위

ㆍ 2008. 1월 OECD는 투르크메니스탄의 높은 자원개발 가능성 및 신정부의 대외관계 개선 노력 등을 바탕으로 국가 신용등급을 7등급에서 6등급으로 한 단계 상향 조정한 바 있음.


평가기관

최근 평가 등급

종전 평가 등급

수출입은행

D2(2009.12)

D2(2008.11)

OECD

6등급(2008.1)

7등급(2007.1)

S&P

B2(2006.5)


*
Euromoney: 155/186('09. 3) → 155/186('09. 9)

* I.I: 129/177('09. 3) → 120/178('09. 9)


외채상환실적


○ 가스 수출에 따른 외환보유액 증가

ㆍ 에너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외환보유액은 2005년 45억 달러에서 2008년 167억 달러로 크게 증가하였음. 2009년 러시아에 대한 가스공급 중단으로 수출이 감소하여 꾸준히 증가하던 외환보유액이 94억 달러 수준으로 감것으로 예상되나, 2010년부터는 중국으로의 수출이 개시될 것으로예상되어 외환보유액 증가세는 회복될 것으로 전망됨.

○ 총 외채잔액은 낮은 수준

ㆍ 투르크메니스탄의 투기 등급(B2, Moody's)로 분류되고, S&P 및 Fitch사에서는 등급평가 대상국에서도 제외되어 있는 등 국제자본시장에서 소외되어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았고, 폐쇄적인 경제구조로 외채가 소규모인데 반해 동국의 외환보유액 및 가스 수출 전망이 긍정적임을 감안할 때, 외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임.

2009년 말 총 외채잔액은 6억 6천만 달러(GDP 대비 3.4%)로 예상



사회


언어


○ 투르크멘어는 투르크-오구즈어 계통으로써 우즈벡어와 카작어보다 터어키어와 아제리어에 가까움. 투르크멘의 부족들은 각기 다른 방언을 말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차이가 나지는 않음. 투르크멘의 표기문자는 18세기 들어 도입되어 주로 소수의 존경받는 시인들에 의해 사용되어옴. 투르크멘의 국립대학과 아쉬가바드의 주요 도로중 하나의 이름도 바로 이러한 유명한 시인중의 하나인 Magtumguly(막둠굴리)의 이름을 따서 지어짐. 시인들은 페르시아의 아랍 문자를 사용해 왔으나 1917년 혁명이후에는 라틴문자의 표기법이 개발됨. 이것이 1939년 소비에트 문화를 러시아화하기 위한 스탈린의 노력의 일환으로 시릴릭 표기법으로 바뀜. 1994년에 다시 라틴표기법이 재기되어 초등교육에서부터 시작하여 실시하다가, 2001년부터 공식적인 모든 정부문서 및 신문 등 공적게제에는 라틴표기법을 사용하도록 제정하여 실시되고 있음.

○ 구소련의 다른 민족과는 달리 투르크멘 종족들은 러시아화 운동에 저항을 해왔고 그러한 이유로 대부분의 투르크멘인들은 투르크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며 러시아어를 말하지 않음. 그러나 지역 상권과 대부분의 공식 사업관계에 있어서는 여전히 투르크멘어보다 러시아어가 좀더 공식적인 언어로 받아들여지는 편임. 특히 아쉬가바드와 같은 도시에서는 대화 중에 투르크멘어에서 러시아어로 자유롭게 전환하는 사람이 많음.


복장


○ 서구사람들에 비해 투르크멘인은 항상 깔끔하게 복장을 갖추려고 노력하는 편. 남자들은 보통 넥타이와 깨끗한 구두에 정장을 입고 여자들은 아주 화려한 색상의 긴 드레스를 입음. 이것은 부를 과시하는 의미에서라기보다 예의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하는것임.

○ 공공장소에서 단정치 못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김. 하지만 집안에서는 손님이 있건 없건 자유로운 복장을 선호. 이에 반해 이 지역에 같이 사는 러시아인들, 특히 여성들은 전혀 다른 의복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긴치마와 긴소매, 머리에는 스카프를 둘러쓴 투르크멘여인과 짧은 미니스커트에 티셔츠를 입은 젊은 러시아 여성들의 대조되는 의복형태를 볼 수 있음.


교육


○ 투르크메니스탄의 초중등 교육체제는 구 러시아 때의 11년, 또는 12년의 의무교육제도를 폐지, 9년으로 축소 확정.

‘멕뎁’이라고 부르는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4년제 종합대학(우니버시테트) 이나 단과대학(인스티투트)을 진학할 수 있는데, 2년 동안의 정부관계의 인턴쉽 취업, 군대복무, 또는 정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활동(예를 들면, 예술, 체육 등)들을 하여 직장의 추천을 취득한 후에야 대학교육을 받을 수 있음. 대학교육도 정부가 학비를 전담하는 무료교육으로 되어 있으나, 입학을 하려면 엄청난 수준의 입학뇌물 또는 출신배경에 따른 입학청탁이 없으면 거의 입학이 불가능할 정도. 동시에 대학교육의 정원을 제한하고 교육계에 일하는 교수 및 교직원들의 일자리를 축소시킴으로써 고등교육을 제한하고 있음. 또한 투르크멘 내에서는 외국에서 취득한 학위를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외국에서 공부한 유학파들의 국내활동을 저지하려 함. 이러한 교육체제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민교육’ 정책이라고 볼 수 있음. 가능한 국민들의 고등교육의 기회를 제한하고, 외부와의 정보, 지식을 교환하고 지식을 확장시키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국민들을 무식하게 만들고 바보가 되게 함으로써, 비판의식을 통제하여 철저하게 자신독재체제의 위치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보임. 동시에 투르크멘 내의 국립대학의 종교학과를 제외한 어떠한 학교체제 내에서도 쿠란(이슬람의 성전)교육을 금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이것은 원리주의 이슬람들이 쿠란교육을 통해서 들어오는 것도 금지하고 있음. 4년제인 종합대학과 단과대학 외에도 2년제의 직업훈련 중심적 콜리지(College)제도가 있음. 따라서 부실한 교육내용과 짧은 교육과정에 만족치 않는 고소득권력층의 자제들은 많은 사교육에 의지함.


종교


○ 투르크메니스탄의 종교인구 분포는 이슬람교(수니파) 89%, 동방정교 9%, 기타 2%임.

○ 이슬람 정교 : 순니 이슬람의 ‘하나피’ 파에 속한 투르크멘 종족은 과거 70년간의 소련 공산 치하에서 이슬람 성전을 비롯한 다른 예배장소들은 폐쇄를 당했고 유물론적 세계관이 모든 교육과 사상을 지배. 그러나 1991년 독립이후 투르크메니스탄의 이슬람은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이슬람교는 번성하기 시작함. 이슬람 성전인 메짓(모스크)이 다시 개방되고 하루 다섯 번 기도를 알리는 애잔(이슬람 물라가 마이크를 대고 크게 코란을 읊으므로 기도시간을 알리는 방법)이 재개되는 한편, 대학에서는 이슬람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종교학과가 신설. 여러 개의 이슬람 성전이 새롭게 건축됨. 하지만 소련 문화의 영향으로 이슬람은 투르크멘 사람들에게 신앙이라기보다는 그로 인해 민족적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노력으로 보여짐.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이슬람에 대해서도 거의 알지 못함. 최근 터키의 문화와 이슬람교육에 초점을 둔 터키 학교들이 생겨났고 이란정부도 아쉬하바드에 대규모 이란 문화관을 설립. 이렇듯 증가하는 투르크메니스탄 내에서의 터키와 이란의 종교적 영향력에 대해 보통 시민들도 그들의 동기를 의심스럽게 바라보고 있음.

○ 민속 이슬람 : 소련 치하의 종교성 억제 정책에도 불구하고 나이 많은 투르크멘인들 가운데는 개인적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지키고자하여 민속 이슬람을 통한 종교활동을 이어옴. 이 민속이슬람은 원래 투르크멘이 갖고 있었던 샤마니즘적인 요소와 이슬람이 결합하여 이루어진 종교적 형태이며 독립이후 이러한 활동은 상당히 널리 퍼지게 됨.

○ 악한 눈 : ‘악한 눈(괴즈데그메)’을 믿는 것은 도시나 지방을 막론하고 투르크멘인들에게는 매우 흔한일임. 예를 들어 신생아를 보고 귀엽고 예쁘다고 칭찬하는 것조차 아기에게 ‘악한 눈’을 심어놓는다고 생각하여 용납되지 않음. 왜냐하면 아기를 칭찬할 때 말하는 사람이 질투심을 가지고 간접적으로 아기를 저주한다고 받아들이기 때문임. 이러한 저주를 끊기 위해 투르크멘 사람들은 공식처럼 정해진 말을 세 번 반복하기도하고 처음부터 ‘악한 눈’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코란에서 인용한 구절들을 종이에 써서 삼각주머니에 꿰메어 휴대하는 등 여러 가지 처방이 있음. “악한 눈이 당신을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라는 의미의 “퉤이레미”라는 말이 ’잘했어‘라는 표현으로 흔히 쓰임.

○ 낙타 털 : ‘악한 눈’을 비롯하여 다른 않좋은 일을 예방하는 대책으로 흔히 낙타털을 많이 사용함. 대부분의 차에는 운전대나 거울에 낙타털이 매어져 있는데 이것이 위헙으로부터 차를 보호한다고 믿고 있음. 또한 여자들은 낙타털로 만든 팔찌를 만들어 끼고 다니기도 함. 또한 낙타털은 병을 고치는 힘이 있다고 믿어 만약 임신한 부인이 예정일을 넘기면 아이를 낳기 위해 낙타 밑으로 지나가야 한다고 믿음.

○ 후다이 욜리(신의길): 투르크멘 사람들은 좋은 일이 생기면 하나님께 감사하는 표현으로 ‘후다이 욜리’ 즉 ‘신의 길’ 이라고도 말함. 예를 들어 가족 중에 돌아가신 분의 기일이나, 아들이 군대에서 무사히 돌아오거나 기타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볶음밥(파로브)을 만들어 이웃의 모든 사람들을 초대하고, 종종 이슬람 선생인 뮐라를 초청하여 코란을 읽히고 기도함. 사소한 경사가 났을 때는 빵이나 후식을 넉넉히 준비하여 이웃에게 나누어주기도 함. 이렇게 함으로써 알라가 그 가정에 앞으로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보호할 것이라고 믿음.

○ 길일 : 투르크멘 사람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을 길일로 여김. 긴 여행을 떠나거나 새로운 일, 혹은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이러한 길일에 택함. 수요일은 투르크멘 고어로 ‘챠샨베’ 즉 ‘4’라고 하는데 그 날에는 사방이 모두 열려서 성공할 가능성이 많다고 믿음. 금요일은 무슬림의 성스러운 날이므로 길일로 여김.






약사

인도 역사의 특징

인도는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생활풍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대륙과지리적으로 차단된 특수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이루어 왔음.

○ 5,000년 이상의 긴 역사 중 정치적 통일을 이룬 시기는 마우리아왕조(B.C.321-185), 굽타왕조(A.D.380-606) 및 무갈왕조(A.D.1526-1858) 등 3개 왕조에 불과하며, 북서부지역은 외부세력 침입의 출입구가 되어 그리스, 훈, 터키족 같은 외부 세력과의 항쟁 속에서 성쇠를 거듭하였으나, 데칸고원 등 남부지역은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외부세력의 침입을 비교적 적게 받아 왔음.

고대

○ 인더스 문명(기원전 3000-2000)

-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기원전 3,000~2,500년경부터 약 500년간 번성한 고대 문명으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유적이 있음.

- 고도로 발달된 후기 청동기 문명의 단계로서, 종교는 다신교, 정치 체제는 제사장 중심의 공화제를 형성함.

○ 아리안 문명(기원전 2000-1000)

-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리안족이 인도 대륙 침입 후 정착하면서 이루어졌음.

- 사제 계급인 브라만 중심의 제사 의식과 신에 대한 찬양 등이 집대성된 리그베다 등 베다문화가 이 시기에 형성됨.

○ 도시국가의 형성

-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지닌 도시국가들을 건설

- 정복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마가다 왕국은 알렉산더왕의 침입 때까지 난다 왕조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였으며, 기원전 500년경 불교 및 자이나교가 발생함.

중/근세

○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1-185)

- 3대왕인 아쇼카왕(BC 272~232)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남서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하고, 포교에 힘써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함.

○ 쿠샨왕조(78-226)

- 쿠샨족 카니슈카왕이 서쪽으로 이란, 동쪽으로 중국의 한나라, 남쪽으로는 인도대륙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함.

○ 굽타왕조(380-606)

- 찬드라 굽타 2세(380-413) 시대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힌두교 및 자이나교 등이 융성, 부흥했음.

○ 무굴제국(1526-1858)

- 데칸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고 악바르 이후 150년 간 전성시대가 지속됨.

- 이슬람교가 번성하여 타지마할 등 이슬람 관련 유적을 남김.

- 1707년 이후 지방토후의 발호,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약화됨.

- 1757년 영국이 프랑스와의 플랏시 전투에서 승리함.

- 1857년 영국이 세포이 반란을 진압한 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됨.

근대

○ 반영 독립투쟁

- 18세기 후반에 생겨난 많은 정치단체 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함.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이 전인도로 파급되게 됨.

- 이에 대해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간 대립을 조장하였으며, 1906년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영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회교도 연맹을 결성함.

- 1차 대전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하에 영국이 제시한 자치령 지위를 거부하는 등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많은 인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반해 회교도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함.

○ 독립

-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방안을 제시한 바, 동 제안을 국민회의가 수락함으로써 인도는 1947.8.15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됨.

현대

○ 인도 헌법 채택

- 1947년 8월 15일 독립과 함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초대 인총리에 취임한 후, 1949년 제헌의회에서 연방제와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헌법이 채택되고, 1950. 1월 발효됨으로써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에서 탈피함.

○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

- 한편, 독립 당시부터 파키스탄과는 종교적, 영토적 분쟁으로 1947. 10월, 1965. 6월, 1971. 12월 등 3차례 전쟁을 치뤘으며, 중국과는 국경문제인해 1962년 전쟁을 겪는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겪기도 했으나 비동주의와 균형 및 실용주의를 적절히 추진함으로써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시켜 옴.

○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 시현

-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회의당(Congress Party)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추진해 오다가 1990년초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1991년 신경제정책을 채택하여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실시함. 1990년대 이후 국내 정치권력은 국민회의당․BJP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으며, 경제개방 및 개혁의 성과로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음.

정치 개황

국내 정치의 특수한 여건

인도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는 일반국민의 민주의식, 언론자유의 보장, 관료제도, 군부의 중립성, 사법부의 독립 등 긍정적인 요인들과 카스트 제도, 종교간 대립, 빈부격차, 지방주의, 취약한 정당기반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음.

○ 인도의 고질적 사회풍습인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 특히 전체국민의 22.5%에 해당하는 최하층민(Scheduled Caste와 Scheduled Tribe)과 52%에 해당하는 하층민(Other Backward Castes)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 문제는 인도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 중의 하나임.

- 오랜 인습은 타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무력충돌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음. 2006년에는 정부의 OBC에 대한 국립대학 입학할당제도 도입 방안추진계획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가열되기도 함.

헌법과 정부형태

○ 1950년 1월 26일 공포된 헌법은 22장 395조 및 부칙 9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음.

-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 공화국 표방

- 종교 무차별주의로 신앙의 자유 허용

- 주정책에 대한 지시지침(Directive Principle of State Policy)을 통해, 부의 공정하고 적절한 분배 및 생산수단의 집중방지 규정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음.

- 연방은 28개 주(state, 2000년도에 3개 주 신설)와 7개 연방 직할지(Union Territory)로 구성

○ 각 주에는 주 정부와 주 의회가 있음. 주를 대표하는 주지사(Governor)는 5년의 임기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주행정의 실권은 주지사가 주 의회 다수당 지도자 중에서 지명하는 주 총리(Chief Minister)가 장악함.

입법/행정/사법부

○ 상원(Rajya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의회에서 간접 선출되는 238명 및 대통령이 임명하는 12명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으로 매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함.

○ 하원(Lok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대표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Anglo-Indian community 대표 2명 등 총 545명으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임.

행정부는 대통령, 부통령, 총리 및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로 구성됨.

-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상‧하 양원 및 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하여 간접 선출되며,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역할 수행함.(군 최고통수권 보유)

○ 사법부는 연방 대법원(Supreme Court of India), 주 최고법원(High Court), 지방법원(Lower Court)으로 구성되는 3심제임. 대법원은 인도 헌법과 법률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권을 가지며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법원에 대해 구속력을 가짐.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1947년 독립이후 인도의 외교정책을 지배해 온 기본적 원칙은 “네루외교노선”에서 비롯된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 원칙이며, 이와 같은 외교기조는 인도가 처한 특수한 외교 및 안보환경 즉, 광대한 국토와 복잡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국가적 단결이 독립초기의 최대의 관심사였고 대외정책 선택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국내적 제약조건에 기인한 것이었음.

-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패권주의 반대, 군사동맹 가입 반대, 국제분쟁평화적 해결 및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 수립 등 비동맹회의와 유사기본이념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비동맹운동의 창설을 주도하였고 비동맹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음.

최근 외교정책 노선

점차 과거 비동맹 외교노선에서 탈피하여 고도 경제성장의 지속적 달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친서방적 외교정책 노선을 강화하는 추세이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아시아의 세력 균형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 1990년대 후반 이후 현저하게 대미국관계 강화를 시도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2004년 재집권한 Congress당 중심의 UPA 연합 정권 하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부상하는 global power로서의 국제영향력 확대 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G-4와의 협력 유지를 통한 외교노력을 경주하고 있음.

서남아 지역의 중심국가로서 지역분쟁 예방, 정세 안정화 및 역내 영향력 유지․확대를 위한 외교적 지도력를 추구하며, 특히 주변국가들에게 군림하던 과거의 형태를 벗어나 서남아지역연합(SAARC)의 활성화 등을 통한 전향적이고 유연한 지역 외교 노선으로 전환중임.

고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특히 원자력 에너지협력을 위해 미국, EU, 러시아, 중국 등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지원 확보를 위한 다방면의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출범을 통한 장기적 East Asia Community 구상 추진, ASEAN과의 FTA 협상 마무리, 한국과의 FTA(CEPA) 협상 개시, 중국 및 일본과의 FTA 타당성 검토 등 동아시아권과의 지역 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음.

인도-파키스탄 관계

○ 카슈미르 문제는 대 파키스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부문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이며 회교와 힌두간의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임.

○ 인도·파키스탄 전쟁

-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가 신생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 동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회교도측이 파키스탄에 귀속코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하에 반란을 일으킴. 이에 대해 동지역의 힌두교 영주(Maharaja)가 인도정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여 1947. 10월 제1차 인도·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UN의 거중조정에 따라 휴전선이 설정됨.

- 1965. 7월 양국간 다시 전쟁(제2차 인·파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UN 안보리의 노력으로 휴전됨.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파 전쟁이 발발

○ 2003년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과 동시에 그동안 끊겼던 항공 운항을 2004. 1월부터 재개하고 2005. 10월 발생한 대 지진과 관련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국 공동 구조 활동을 펼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음.

○ 그러나 2006. 7월 뭄바이열차 연쇄폭탄테러로 인해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 측은 동 테러를 일으킨 단체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을 이유로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외교차관 회담을 무기한 연기함.

2006.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된 SAARC 상임위원회(Standing Council) 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국은 평화구축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였으나, 구체적인 다방면 대화의 추후 일정은 정하지 못함.

○ 2006. 8월 파키스탄이 자국내 인도 외교관을 외교관 신분에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혐의로 추방하자, 인도도 맞바로 자국내 파키스탄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함.

뭄바이 테러 사건 발생(2008.11.26-29)

- 10명의 테러리스트가 중무장한 채 해상을 통해 뭄바이에 침투, 11월 26일 밤 10시경부터 동시다발적 무차별 테러 공격 감행함.

-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범 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하여 테러를 진압함.

-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와 파키스탄 당국과의 관련성을 계속 부인해 왔으나,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

- 이 사건을 통해서 군병력의 국경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고 양국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됨.

남아시아 지역협력 연합(SAARC)

○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을 도모하고 역외개도국 및 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시아국가간 지역협력 기구로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이어 두 번째로 창설됨.

-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모색(정치, 군사문제 제외)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 8개국이 회원국이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 EU가 옵서버로 가입함.

역내국가간 국력의 불균형과 회원국간 다양한 갈등 및 대립 등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회원국 상호간의 공동체 인식과 함께 협력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바도 있음.

사회

카스트(Caste) 제도

○ 수천 년 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음.

○ 카스트제도는 아리안 족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수집단인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짐.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군인‧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및 천민계급인 수드라(Sudra)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 안에는 다시 수많subcaste가 있음.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음.

○ 최초에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가진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인도인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행위범을 준수해야 했었음. 이러한 계급제도는 인도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고 하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를 정체시켜 활력을 잃게 하는 부정적 영향이 큼.

마하트마 간디를 포함한 많은 사회개혁운동가들은 불가촉 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불가촉 천민들을 ‘신의 자식’이라는 뜻에서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고, 이들이 힌두 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보호에 앞장섰음.

- 오늘날 인도에는 1억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 바,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하리잔에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이 장관까지 된 경우도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임.

언어

○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80여종이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헌법으로 인정한 지역별 공용어는 18개임.

- 힌디어, 텔루구어, 벵갈어, 마라티어, 구자라트어 등

이중 인구의 38.7%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전국적 공용어이며, 영어는 18개 공용어에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이자, 학력이 높은 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함.

복장

○ 남자 : 고유의상으로는 도티(Dhoti), 룽기(Lungi), 아즈칸(Achkan), 파자마 등을 들 수 있음. 그러나 도시에는 하절기에 사파리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

- 도티 : 동부‧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긴 천을 밑으로 늘어뜨린 후 다시 허리춤으로 올려 동여 입는데 흰색의 얇은 천을 사용함.

- 룽기 : Kerala 등 해안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좁은 폭의 천을 늘어뜨린 후 허리를 동여 입음.

- 아즈칸 : 네루 전 총리가 즐겨 입었던 목이 올라온 제복 스타일의 옷

- 파자마 :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는 무릎 아랫부분이 꼭 끼는 추리다(Churidar) 파자마를 입으며 Punjab에서는 헐거운 쿠르타(Kurta)를 입음. 흰색 천을 주로 사용함.

- 사파리 : 하절기(4월-11월)에 많은 도시인들이 즐겨 입는데 공식적모임에서는 점차 양복, 넥타이 차림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임.

여자 : 사리(Saree)라는 고유의상을 주로 입는데 지역에 따라 매는 방법, 천의 길이, 천의 개수가 다름.

- 입는 방법은 천을 허리에 감아 맨 다음 어깨에 걸쳐 밑으로 내려 입음. Punjab 지방에서는 사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라는 상의가 길고 바지가 넉넉한 옷을 입으며 우타프라데쉬, 라자스탄, 구자라트에서는 가그라(Ghaghra)라는 긴 스커트를 입음.

문화

○ 베다문화(B.C.2000-500)

- 아리안 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문화는 인도의 종교‧사회‧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Veda와 같은 대서사시적인 경전을 발전시켰음. A.D.6세기-10세기를 통해 힌두문화는 건축․조각․회화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힌두사원 등 많은 기념비적인 힌두문화 유물을 남겼음.

○ 불교문화(B.C.500-A.D.1100)

- 불교문화 전성기는 B.C. 3세기 야쇼카대왕 시대로 산치대탑, 보드가야의 대탑,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엘로라 동굴 조각 및 건축 예술에서 절정을 이룸. 아울러 불교는 중국, 한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됨.

○ 이슬람문화(A.D.1100-1600)

- 이슬람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조화를 이룬 대표적 양식으로, 초기의 상호배척을 점차 극복하고 상호간의 종교적 관용이 정착하면서 우루두어의 탄생 등 언어, 문화,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공헌을 함.

○ 서구문화의 영향(A.D.1700-1947)

- 250년에 걸친 영국 지배하에 인도예술, 특히 전통회화분야에서 서구 예술의 영향을 받음.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문학의 발전을 가져옴. 그러나 힌두문화는 상당부분 그대로 전승됨.

○ 독립이후(A.D.1947-현재)

- 독립 이후, 전통문화 창달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문화재 발굴, 보존, 전시 등을 위한 박물관, 문화재 관리국 등 국가행정기관을 통하여 현재 문화와 함께 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음.

교육

○ 교육의 기본정책은 지역 간의 교육격차해소, 전 계층 간의 균등한 교육기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자원개발 등에 목표를 두고 14세까지의 무상의무교육, 영어, 힌디어 및 주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 GNP의 6% 교육투자 등을 통해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노력하고 있음.

학교교육은 10+2+3의 15년 과정의 교육제도로써 1968년도 채택 후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이를 실시하고 있음.

종교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발생지이며 이슬람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등 다양한 외래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임.

종교는 인도 국민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종교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

○ 헌법은 모든 종교에 대한 무차별, 신앙의 절대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

○ 인도의 종교인구 분포는 힌두교 81.5%, 이슬람교 11.2%, 기독교 2.7%, 시크교 2.4%, 불교 0.7%, 자이나교 0.4%, 기타 1.1%임.

힌두교

○ 힌두교는 B.C 2000년경 아리안족 침입 후 최고경전 Veda가 집대성되면서 정치, 사회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이슬람교 등 이교도의 수세기 동안에 걸친 침략 속에서도 이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오늘에 이름.

- 드라비다족의 토속신앙, 아리안족의 자연신 숭배 등에 바탕을 둔 다신교인 힌두교는 외래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특징으로 하며 생활경험, 도덕, 사회관습, 규범의 총체로서 Dharma(정의 또는 의무)에 따른 수도생활과 최고 정신을 탐구하는 고도의 생활 철학적 종교임.

- 소를 신성시하고 카스트제도를 정착시킨 힌두교는 해외 전파보다는 인도인의 종교로 존속하길 바라는 성향을 띠고 있음.

- 현재 약 8억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힌두교는 인도사회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종교임.

보건

○ 약 26%의 빈곤층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모든 국민의 건강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농촌, 빈민층에 대한 위생, 의료혜택을 확대 실시하고 있음. 특히 UPA 정부는 집권기간 중 GDP의 2-3%를 보건 분야에 투입하되 기초보건에 우선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의 조기 도입과 필수 의약품의 저렴한 판매 방안 마련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음.

○ 지난 30년 간 평균 수명은 31세에서 52세로 사망률은 천 명당 27.4%에서 14.2%로, 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146명에서 125명으로 개선됨. 또한 전염병퇴치를 위한 특별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바, 1977년도를 기해 천연두는 퇴치되었으며 학질, 사상충, 나병, 콜레라, 결핵 등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

○ 1952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출발로 시작한 가족계획은 많은 성과를 가져출생률은 60년대 4.12%에서 1978년도 3.33%로 감소되었으며, 2002년에는 2.38%로 정부는 2001-11년의 10년 간 인구증가율을 16.2% 이내에서 억제한다는 계획임.

관습

인도인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사원이나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음. 힌두교는 다신교로서 교리나 성찰보다는 수많은 제신들의 형상화를 통한 의식이 주요 신앙생활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률이나 내세구원보다는 개인의 현세구복에 치중하고 있음.

오랜 카스트제도 하에서 묵묵히 순종해온 생활태도, 불교의 자비와 관용적 사상, 장기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 등의 영향에 기인하는 관용적 태도, 생명존중 사상, 무저항주의 같은 평화주의 사상이 인도인들의 생활 저변있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주의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의 계승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이슬람-힌두 등 종교, 종파간 갈등 분규가 발생시 폭력사태로 변질되기 쉬우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여 외국인의 주의를 요함.

인도인들은 전통과 관습을 존중,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보수적 풍속을 벗어나는 외국인은 풍속사범으로 체포, 처벌하기도 함.

인도에서는 금주제도를 실시하는 주가 있으며 일반 식당에서도 금주일이 있고, 판매시간이 제한되어 있음. 주류 판매는 호텔이나 규모가 큰 대중식당에만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임.

○ 매춘은 불법이며, 지역마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대체로 자국인들 간에 이루어지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음.

○ 여성들은 복장법령에 따라 공적 활동시 반드시 전통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하며, 일반대학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전통의상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음.

언론

인도의 언론은 스스로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년)을 쟁취하는데 공헌바 크고, 독립이후에는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음.

- 개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이 여론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신문 등 정기간행물(약 8,000종)은 대부분이 개인소유로 운영되고 있음. 특히 TV 및 라디오는 방대한 지역과 인구의 1/3 이상이 문맹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보도‧교육‧오락 등 일반적인 방송기능은 물론 정부의 대국민 홍보기능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유일의 공중파 방송인 국영 TV Doordarshan(DD-TV)은 DD National, DD News, DD India(해외방송) 등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영TV 채널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케이블 TV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약사

근대 약사

○ 1517년 오스만 터키 지배

○ 1869년 수에즈 운하 개통

○ 1922년 영국의 보호 통치기 종료, 이집트 왕국으로 독립

○ 1948년 이스라엘과의 제 1차 중동전쟁에서 중동 아랍국가 패배

○ 1952년 자유장교단 혁명을 통한 네기브(Neguib) 정권 수립

○ 1953년 군사 쿠테타 이후 공화정 수립

○ 1954년 나세르(Nasser) 쿠테타를 통해 집권

○ 1956년 제2차 중동전쟁 발발

○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발발

○ 1970년 나세르 대통령 사망 후 부통령 사다트(Sadat) 대통령직 승계

○ 1973년 제4차 중동전쟁 발발

○ 1981년 사다트 대통령 암살 후 부통령 무바라크(Mubarak) 대통령직 승계

○ 1982년 이스라엘의 시나이 반도 반환

○ 1987년 무바라크 대통령 재임

○ 1989년 이집트 아랍연맹 복귀

○ 1993년 무바라크 대통령 3선 당선

정치 개황

이집트의 정치 동향

○ 정치적 안정성

- 1981년 집권에 성공한 호스니 무바라크(Hosni Mubarak) 대통령 은 2005년 9월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직선제에서도 승리함으로 써 2010년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고 군부의 지지도 받고 있으며, 의회에서는 집권 국민민주당(NDP)이 2005년 11월 총선에서 원내의석 70%(311석)을 확보하면서 여당에 권력이 집중된 상태임.

- 여당은 2007년 3월 헌법 211개 조항 중 34개 조항에 대한 개헌 안을 통과시키면서 야당인 무슬림형제단의 정치진출을 억제하고, 무바라크 대통령의 차남 가말 무바라크(Gamal Mubarak)에게 정권을 이양하는 노력을 강화하고 있음.

○ 무바라크 대통령이 장기집권하고 있고, 헌법개정을 통해 선거감독에 대한 서법권 소멸, 정당소속의 의무화, 종교 세력 지지기반 정당의 불법화 등을 선언하는 등 반민주적 조치가 취해지자 민주화 및 정치 개혁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져가고 있는 상황임.

○ 2008년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18.3%에 달했고 2009년에도 물가상 승률이 10%대를 유지하고 있어 서민층의 정부에 대한 불만이 팽 배해 있고 관련 시위도 간헐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나 정권을 위협 하는 수준으로는 발전하고 있지 않음.

- 사법부 및 반대 세력에 대한 이집트 정부의 통제가 효율적으로 작 용하고 있고, 무슬림 형제단을 비롯한 반대세력의 경우 계파 별로 분열되어 있어 당분간 현 정권의 실질적인 대항세력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낮은 상황임

- 차기 대통령 선거(2011년 9월)까지 큰 정치적 혼란은 없을 것으 로 전망되며, 현 정부도 차기 대선을 위한 권력 이양 작업에 치중 할 것으로 보임.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 대외적으로는 온건 친 서방 비동맹 외교노선을 지속적으로 견지하 며 중동지역 민주주의 실현에는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라도 자생적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고 이란의 역내 세력 확대 가능성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갖고 있음.

- 이집트는 지정학적으로 중동 이슬람 문화권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 이고 석유의 보고 페르시아만과 인접해 있으며, 아랍-이스라엘간 의 평화 회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

- 또한 아랍과 무슬림 세계의 지도적 국가로서 국경을 넘어 중동 여 러 인접국가에 정치와 종교적으로 상당한 영향을 끼쳐 왔음.

이집트-미국 관계

○ 미국과는 전통적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미국으로 부터 매년 대규모 경제, 군사 원조를 받고 있음.

- 미국은 이집트를 미국의 아랍지역 정책 수행의 보완 및 동반자로 활용하는 대신 이집트는 미국으로부터 매년 20억 달러 가량의 재정 지원을 받고 있어 양국 간 관계는 당분간 큰 변동이 없을 전망임.

- 무바라크 대통령 후계자 역시 미국과의 관계를 크게 흔들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차남 가말이 집권하면 이집트에 정치적 자유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되면서 미국과의 관계의 변수로 작용 할 전망임.

이집트와 그 외 국가들의 관계

○ EU와는 지리적으로 근접하여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조관계를 유 지하고 있으며, 이집트의 탈 서방 정책의 일환으로 러시아와 중국 과의 관계가 진전되고 있는 상황임.

○ 2008년 3월25일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은 러시아를 방문하고 러 시아 푸틴 대통령과 푸틴의 후임자로 러시아 대통령에 당선된 드 미트리 메드베데프와 중동 평화 문제를 포함한 각 종 국제 사회 문제를 논의하며 양국의 동맹을 더욱 강화하기로 합의하였고, 이 집트와 러시아 간 핵에너지 협력 협정을 도출하였음.

○ 중국의 경우 2006년 6월 원자바오 총리가 이집트를 방문하여 상 호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하였고, 외국인 투자 유치 확대, 탈 유럽 을 통한 아시아 국가와의 관계 증진을 위한 이집트의 노력과 에너 지 자원 확보에 총력을 다하고 있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상호 일치하고 있음.


이집트 체류 정보

치안 및 유의사항

이집트는 비교적 치안이 안정적인 편이며 외국인에 대해서도 호의적임. 다만 외국인을 상대로 한 바가지 씌우기, 소매치기 등에 주의 요망.

- 일단 분실된 소지품은 찾기가 어려우니 사전에 분실되지 않도록 대비하는 것이 최선임.

○ 최근 이라크 등 중동정세 관련, 한국, 미국 등 이라크 파병국 국민에 대한 반감이 있는 바, 이집트 국민을 자극할 수 있는 발언 (특히 정치, 종교)은 삼가야 함.

○ 이집트는 별도의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없으며 현지인들의 운전습관이 난폭하여 길거리 무단횡단시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 각별한 주의가 필요함.

- 일단 사고가 발생하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으므로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

○ 거리나 대중음식점에서 판매하는 음식이나 음료수를 함부로 섭취해서는 안 됨. 특히 음료수는 탄산음료나 정화된 물 이외에는 가능한 마시지 않는 것이 좋고 식당에서도 국물이 포함된 식사메뉴는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음.

기후

봄철은 3~4월 중 짧게 나타나고 거의 겨울에서 여름으로 바로 바뀌는 기후변화를 보이며 4월말경이면 우리나라의 6월 상순에 해당하는 더위가 시작됨.

5~9월말이 여름철로 한낮의 기온이 30도를 넘으며 6~9월의 혹서기에는 38-45도 사이를 오르내리는 무더운 날씨가 지속됨.

1년중 국지적인 특성으로는 매년 3~5월 사이에 ‘까마신’이라는 사막의 열풍 및 모래바람이 부는데 엄청난 먼지를 수반함.

환전

사용화폐

- 통화단위 : 1 파운드(Pound) = 100 피아스타(Piasta)

- 지폐 : 200, 100, 50, 20, 10, 5, 1파운드, 50, 25 피아스타

- 동전 : 25, 20, 10, 5 피아스타

○ 환전 : 시중은행 및 환전소, 호텔에서 환전가능

- 환율 : 1.00 USD = 5.51800 EGP (2009년 9월 현재)

- 사설환전소의 경우도 은행 환율과 거의 비슷함

- 역환전 : 출국시 이집트화를 달러로 재환전할 경우, 처음 환전시 증빙서 필요(이 경우 하루 30불 이상 지출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함)

국제 전화

일반전화 이용시

- 00(국제전화) + 82(한국 국가코드) + 2(서울 지역코드) + 번호

- 호텔에서 이용시에는 외부전화 9번을 누른 후 전화번호 입력

수신자 부담 데이콤 전화 이용시

- 365-5641를 누르면 안내방송이 나옴.

- 안내방송에 따라 교환원과 연결 후 원하는 전화 번호 통보

국내 또는 국제통화는 룸이나 호텔 1층 로비에 문의, 사용 가능하나, 비용이 매우 비쌈.

공중전화 사용이 가능하나 설치 지역이 드물어 이용이 매우 불편함.

시차 및 서머타임

이집트의 시차는 GMT+2

리나라와 시차는 KST-7시간으로 한국이 24:00시일 때 이집트는 같은 날 17:00시임.

현재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한국과의 시차는 7시간임.(서머타임 중에는 한국이 24:00시일 때 이집트는 같은 날 18:00시가 됨)

전력 및 인터넷 환경

○ 인터넷 환경 : 일부 ADSL이 사용되나 주로 모뎀을 사용함.

○ 전력사용 현황 : 220V/50Hz 사용

- 콘센트 타입은 한국과 같으나, 모터를 사용하거나 강한 열을 내는 전자제품의 사용은 멀티플러스 사용 요망

주요언론

○ T V : 이집트국영방송(채널 1,2,3)

- 유료위성방송을 통해 여러 나라 방송(BBC, CNN 등)을 시청할 수 있으며 한국의 KBS월드, 아리랑 TV 시청 가능함.

○ 신문과 잡지

- 신문과 잡지는 이집트 공용어인 아랍어 외에도 영어, 불어로도 발간되기도 하며 외국의 유명 신문 및 잡지(New York Times, Herald Tribune, Newsweek 등)도 시내 곳곳에서 쉽게 구입 가능

- 주요일간지 : Al Ahram, Al Akhbar, Al Gomhuriaw, Al Wafd 등

팁 문화 및 교통편

팁 (박시시)

- 팁이 생활화 되어있으며 대체적으로 5파운드 정도가 적절함

- 호텔과 레스토랑 등에서는 이미 계산서에 서비스 요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팁을 지불할 필요는 없으나 포터나 웨이터들에게는 1파운드 정도를 주는 것이 좋음.

교통편 안내

- 시내 교통편으로는 일반적으로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 사전에 요금 협상하여 승차하는 것이 좋음.

- 요금은 근거리 5파운드, 15~20분 거리는 10~15파운드 정도임.

교통수단

○ 항공

- 국제선․국내선 모두가 연발착이 잦은 편이므로 72시간 이상 이집트에 체류할 시 반드시 예약 확인이 필요하며, 출발 시에는 최소한 2시간 전에 공항에 도착하여 출국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

철도

- 철도는 이집트 철도청에서 관장하며 총 연장 약 5천 Km로 주요 도시와 연결되어 있으나 카이로-알렉산드리아 구간 등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권장할 만한 교통수단이 되지 못하며, 특히 남부 지역은 치안이 안정되어 있지 않으므로 철도 및 자동차를 이용한 여행은 삼갈 것.

○ 버스

- 버스는 미니버스, 시내버스, 장거리 버스 등으로 구분. 시내버스는 요금(0.5 이집트 파운드(약 0.2불))은 싸지만 매우 혼잡함.

- 미니버스는 일정 지역 구간을 운행하나 정해진 목적지가 없으며 구간에 따라 요금이 차등 적용됨. 장거리 운행 버스는 카이로 시내 TAHRIR 광장 및 람세스역에서 출발, 알렉산드리아, 포트사이드 등 주요도시와 시나이 반도, 후르가다 등 주요 도시 연결함.

○ 지하철(Metro)

- 1-3호선이 있으며, 역명이 영문 알파벳으로 표기 되어있어 초행자의 경우에도 이용이 비교적 편리함. 열차의 첫 번째 및 두 번째 칸은 여성 전용임.

○ 택시

- 택시는 호텔 앞에서 관광객 상대로 운행하는 리무진과 '우그라' 라는 일반 택시가 있으며 미터기가 부착되어 있으나 거의 사용되지 않 고 있음(이집트인의 경우에도 동일). 특히 외국인의 경우에는 별도 요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탑승 전 미리 흥정이 필요함.

종교활동

○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이나 외국인들의 종교 활동에 특별한 제한 을 두고 있지 않음.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자말렉, 헬리오 폴리스, 마아디 등)에는 성당, 개신교회 등이 있어 종교 활동(예 배)에 큰 불편이 없음.

- 카이로에는 2개의 한국인 교회와 성당이 있어 비교적 자유롭게 종 교 생활을 영위하고 있음.

○ 그러나 선교사활동은 일체 인정하지 않으며, 엄격히 제한함. 특히 무슬림의 샤리아에 의해 무슬림에 대한 선교활동은 역시 엄격히 제한되고 있음.

대인관계 문화

○ 이집트인들은 인사할 때 주로 악수나 양 볼에 입 맞추는 정도이나 아주 친밀한 사이일 경우에는 껴안기도 함.

○ 대부분의 이집트 국민들은 이슬람 율법에 따른 종교생활(1일 5회 예배 등)을 하므로 이들의 종교생활을 해치는 행위는 삼가 해야 하며, 너무 짧고 노출이 심한 옷은 피하는 것이 바람직함.

○ 종교에 따른 금식기간인 라마단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에 시행되며 태음력에 기초하므로 해마다 시기가 약 11일씩 앞당겨지 는데, 2009년의 경우 라마단은 8월 21일~9월 19일이었음.

- 라마단 기간에는 일출에서 일몰시까지 금식하는데, 이곳 사람들이 철저히 지키는 종교행사이므로 현지인 앞에서 음식을 먹거나 음주, 흡연 등은 삼갈 것.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Ⅶ. 알제리 국가정보


1. 기본개황

  ○ 국명 : 알제리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Algeria)

  ○ 수도 : 알제 (Algiers, 인구 : 3백만 명)

  ○ 면    적 : 2,382,000㎢ (한반도의 11배, 대부분이 사막지역)

  ○ 위    치 : 북부 아프리카, 지중해 연안

    - 주요도시 : 알제, 오란, 콩스탄틴, 아나바

  ○ 인    구 : 34백만 명 (2008)

  ○ 민    족 : 아랍인 (99%)

  ○ 종    교 : 수니파 이슬람교 (99%), 가톨릭

  ○ 언    어 : 아랍어(공용어), 프랑스어, 베르베르어

  ○ 정부형태 : 인민공화제 (대통령중심제)

  ○ 국가원수 : 부테플리카 (Abdelaziz Bouteflika) 대통령

  ○ 의    회 : 양원제 (하원 389석, 상원 144석), 복수정당제

  ○ 주요정당 : 국민민주당(RND), 국민해방전선(FLN), 이슬람사회평화운동(MSP)

  ○ 국제기구가입 : UN, IMF, ILO, OPEC, WHO 등

  ○ 독립기념일   : 7월 5일 (1962. 7. 5. 프랑스)

  ○ 화폐단위 : Algerian Dinar (AD), US$1 = AD72.3289 (2009. 5)

  ○ 산업구조 : 석유화학 45.1%, 서비스업 19.3%, 농업 7.7%

  ○ 주요수출품 : 원유․가스, 정유제품

  ○ 주요수입품 : 자본재, 식량, 석유개발관련설비, 반제품

  ○ 주요부존자원 : 석유, 천연가스

  ○ 경제적강점 : 석유․가스 자원 풍부

  ○ 경제적약점 : 낮은 식량자급도, 대외채무 과다, 정정 불안

  ○ 1인당 국민소득 :   $ 4,779 (2008)

  ○ 국민총생산 : $ 1,644억 (2008)

  ○ 표 준 시 : GM + 1 (우리나라와 8시간 차), 서머타임 제도는 미시행

  ○ 기    후 : 지중해성 기후(북부), 대륙성 및 사막성 기후(남부)

    - 내륙 및 남부 사막지역은 일간/연간 온도 변화가 극심





2. 경제개황 및 주요지표


1) 경제현황 및 전망

○ 최근 5년간 GDP는 연평균 4.9%의 성장세를 시현하였으며, 이에 따라 일인당 GDP도 '02년 1,815$로부터 '07년 3,867$로 증가

    - 오일머니 유입에 힘입어 외채 조기상환외환보유액 확충을 통해 경제발전을 위한 탄탄한 재정적 기반 마련

  ○ 외채는 6.2억불(08.6월말 기준)로 대폭 축소

    - 97년말 330억불까지 치솟았던 외채는 알제리 정부의 대외채무상환정책 추진으로 07년말 39억불 수준으로 감소

  ○ 세계 주요 경제연구기관들은 알제리 경제가 2008년에도 건실한 성장세를 시현할 것으로 전망

    - 고유가 구조에 따른 수출확대에 힘입어 2008년도 경상수지도 GDP 대비 25.5% 수준의 흑자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 (EIU 전망)


2) 주요경제지표 및 통계

  ○ 주요경제지표

구분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GDP(십억 달러)

85.0

102.3

115.5

131.1

170.1

184.5

1인당 GDP(달러)

2,624

3,119

3,458

3,867

4,945

5,287

경제성장률(%)

5.2

5.3

2.0

4.5

3.4

5.8

실업율(평균, %)

17.7

15.4

12.3

11.8

12.9

11.3

외환보유고(백만$)

43,550

56,582

78,208

110,627

155,202

183,677

대외채무(백만$)

22,158

16,839

5,583

3,927

2,904

2,486

이자율(여신, %)

8.0

8.0

8.0

8.0

8.1

8.2

소비자물가상승률(%)

3.6

1.6

2.6

3.5

5.5

4.2

경상수지(백만 달러)

11,120

21,180

28,950

32,046

43,327

41,654

수출(백만 달러)

32,220

46,330

54,740

60,512

81,555

86,331

수입(백만 달러)

17,950

19,860

20,680

26,251

36,460

42,575

(자료원 : 한국수출입은행, EIU Country Report)



3. 경제구조 및 정책


  ○ 알제리는 국제유가의 지속적인 강세로 외적으로는 견실한 경제 성장을 보여왔으나, 석유가스(원유, 천연가스 및 부산물) 산업에 대한 수출의존도(98%)가 매우 높아 석유 생산이 일시 감소한 2006년에는 경제성장률이 2.9%에 그치는 등 유가 변동이 경제 성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취약성을 가지고 있음.

  ○ 2008년 현재 알제리는 나이지리아, 리비아 및 앙골라에 이어 아프리카 제4위의 원유 생산국이며, 나이지리아 및 리비아에 이어 아프리카 제3위의 원유 매장량 보유국(122억배럴)임. 알제리 정부는 원유 생산정책을 단기간 내 집중생산보다는 일정기간에 걸친 안정적 생산정책을 추진 중

    - 석유 산업의 판매수입으로 생긴 여유재정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인프라 확충 및 공공 주택건설과 같은 공공부문 사업에 투자하는 등의 방식으로 사회 인프라 구축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석유가격 변동의 효과는 물량변동 효과보다 먼저 나타나는 경향을 보임. 지난 2년간 원유 및 석유제품 수출 물량이 정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가상승에 힘입어 석유류 수출 금액은 2006년 540억불 및 2007년 690억불을 기록함.(2005년은 460억불)

  ○ Fatiha Mentouri 주재국 재무부 금융개혁담당부장관은 2007.11.26, 지난 2005년부터 추진되어온 CPA(Credit Populaire d'Algerie, 알제리 국민은행)의 민영화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

    - Mentouri 부장관은 CPA의 민영화에 참여한 6개의 외국은행 중 3개의 프랑스 은행(BNP Parisbas, Societe General, Natexis)만이 입찰에 참여하게 됨에 따라, 가격협상이 불리해졌다는 점을 민영화절차 중단의 이유로 제시

    - Mentouri 부장관은 현재의 금융위기가 진정되면 CPA 민영화절차를 다시 시작할 것이며, 알제리 정부의 금융분야 개혁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

     * CPA: 알제리 금융시장의 12% 점유(자본규모: 약61억불)



4. 주요 산업


1) 석유·가스 산업

  ○ 최근 수년간 발견된 유전·가스전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인 바, 이러한 추세는 세계적인 현상임. 2007년말 현시점에서의 유전 탐사·개발 동향을 고려할 때 Sonatrach(국영석유공사)과 Anadarko Petroleum(미국)이 합작개발을 추진중인 El-Merk 유전이 미래의 유망 대형광구(원유 108천B/일, 콘덴세이트 55천B/일 및 LPG75천B/일)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됨. 양 사는 현재 Ourhou 유전(230천B/일, 제2위 규모) 및 HBNS 유전(240천B/일)을 개발 중임.

  ○ 석유, 가스의 확인매장량(콘덴세이트 포함)은 약 110억TOE 수준으로, 2000-06년간 개발 부문에 Sonatrach, BP, Statoil, Repsol 등을 중심으로 약 250억$(외국기업 140억$) 투자

  ○ 2006년 수출액의 98%가 석유, 가스로 에너지부문 의존도 심화

    - 유전개발사업, 정유시설, 석유화학공업 등 플랜트 사업의 수요 증가


2) 광물 산업

  ○ 석유·가스의 경우처럼 금, 은, 철, 텅스텐, 우라늄, 다이아몬드 등 알제리에서 생산하는 대부분의 광물이 사하라 지역에 분포

    - 대리석, 철광석, 오닉스 등 극히 일부 광종만이 북부지역에서도 함께 채굴 가능

  ○ 최근 수년간 중국, 호주, 인도 등 외국기업의 알제리 광물자원 개발을 위한 투자가 크게 확대되고 있음.

  ○ 광물 생산은 2000-06 년간 연평균 10% 수준 증가하였으며, 금, 철, 인광석 및 골재가 생산 증가세를 주도

    - 동 기간 중 1,000 여개 중소기업이 광산개발 사업에 신규참여하여, 2006년말 기준 460억 DA(657백만$)의 매출총액(Chiffre d'Affaires) 기록


3) 정보통신 산업

  ○ 최근 들어 정보통신(IT) 산업이 알제리의 새로운 성장 섹터로 등장. 물론 알제리는 IT산업 부문에서 낙후성을 면치 못하고 있으나, 통신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고 있음.

  ○ 최근에는 국제유가 상승기조에 따른 오일머니를 바탕으로 정보통신 현대화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음. 행정․금융 등의 공공부문과 기업 등 민간부문의 전산화 추진으로 정보시스템 및 네트워크 구축사업이 활기를 띄고 있음. 통신망 확충 및 현대화를 위해 선진국 사업자들의 투자유치에도 주력하고 있음.

  ○ 2006년말 기준 ADSL 가입자 34천명, 인터넷 사용자 3백만 명, 이동통신 가입자 21백만 명, 유선전화가입자 3천만 명

  ○ 2006년 한국산(삼성, LG) 시장점유율 3위(19.5백만 달러) 차지

    - 시장점유율 선두인 Nokia 등 다국적기업 생산기지 이전으로 원산지 중국, 헝가리산 제품 50% 이상으로 시장주도


4) 자동차 산업

  ○ 만성적인 적자를 보이는 국영 트럭 및 버스제조사인 Sociéénationale des véicules industrielles(SNVI)사는 생산 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구조 조정 중. 동사는 가동률이 40%에 불과한데 동사를 현대화시키는데 필요한 비용은 US$250 백만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되고 있음.

  ○ 2005년 9월 중고차 전면 수입금지로 신차 수입시장 규모는 교체 및 신규수요로 지속 성장 전망

    - 2006년 14만대(2005년 약 20만대)의 차량 수입

  ○ 프랑스(르노 알제리)가 2006년 약 27천대, 시장점유율 18.6%로 알제리 자동차 시장 1위

    - 2005년 실적 : 한국 (33%), 프랑스 (32%), 일본 (26%)


5. 수출 유망 분야


  ○ 건설장비

    - 경제개발 5개년(2005-2009) 계획의 일환으로 인프라분야의 프로젝트 발주 활발로 건설장비 및 기자재분야의 신규 수요 증가. 연간 15억불에 달하는 건설장비 시장은 최근 발주되는 댐, 고속도로, 발전소, 정유화학시설 등 프로젝트로 지속 증가 예상

  ○ 의료기기

    - 경제개발계획 중 총 15억불의 의료기기 교체 및 설비 도입에 배정, 수입의존율이 90%, 정부의 국민의료수준 향상을 목표로 대대적 의료시설 현대화로 진단용 의료장비의 수요 지속증가 예상, 유럽국이나 가격경쟁력 대비 품질이 인정되는 X-Ray, CT촬영기, 심전도계 등 일부 품목의 경우 진출가능성

  ○ 보안제품

    - 보안의 생활화로 CC-TV등 보안기기의 수요는 지속되고 건설경기 호황으로 신규 건축 빌딩에 대한 보안기기 설치가 증가 예상

  ○ 포장기계 및 기자재

    - 식음료 및 소비재의 자체생산 및 수요 증가, 석유화학 산업 투자 확대로 각종 플라스틱 및 화학제품 생산증가로 관련 기자재 수요 확대

○ 금형

    - 경쟁국 대비 한국제품의 품질대비 가격경쟁력이 높은 품목이며 알제리 기초산업육성 정책으로 금형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

  ○ 자동차부품

    - 연간 5억불의 단일품목으로는 최대시장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차량보유 대수로 소모품 등 자동차부품 시장규모 날로 확대 중, 한국산 자동차의 시장점유율이 20%선을 유지하고 있어 부품관련 수요는 지속 유지될 전망



6. 한-알제리 교역동향


1) 교역현황

  ○ 고유가 등에 따른 구매력 확대로 교역시장으로서의 중요성 증대

    - 남아공․나이지리아․라이베리아․이집트와 함께 우리나라의 아프리카 지역 5대 교역상대국으로 부상

     * 대 알제리 교역추이(백만불) : ('06) 969 → ('07) 1,415 → ('08) 1,708

년도

수출

수입

수지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금액

2004

355

57.9

240

25.5

115

2005

340

-4.0

166

-30.9

174

2006

391

14.8

578

247.4

-187

2007

768

96.6

647

11.9

121

2008

863

12.4

845

30.7

18

2009. 1-4월

304

8.9

96

-85.1

208

  자료원:kita.net                                               (단위 : 백만불, %)


2) 주요 수출입품목

<對알제리 주요 수출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자동차

466

105.0

552

18.4

2

합성수지

78

107.8

84

7.6

3

건설광산기계

34

44.2

54

59.8

4

철강판

13

-42.5

26

93.3

5

무선통신기기

20

6.5

24

16.5

6

자동차부품

13

7.0

18

40.8

7

고무제품

8

-14.8

9

15.9

8

주단조품

2

228.0

9

326.8

9

레일및철구조물

2

4,543.0

8

79.3


<對알제리 주요 수입품목>

순위

품목명

2007

2008

금액

증가율

금액

증가율

1

원유

490

17.9

536

9.5

2

천연가스

106

-33.2

277

161.0

3

LPG

25

-

21

-14.6

4

정밀화학원료

1

-

6

377.9

5

알루미늄

1

58.1

3

335.5

6

무선통신기기

0

-

0

-

7

동제품

1

37.3

0

-56.2

8

합금철선및고철

0

-

0

-

9

반도체

0

-

0

526.4

  자료원 : kita.net, MTI 3단위                                            (단위:백만불, %)



7. 사회․문화


1) 인 종

  ○ 역사 및 지리적으로 유럽, 중동, 아프리카와 관련되어 아랍인(82%), 베르베르(15%)외 카르타고, 그리스, 터키, 카탈란 후손들이 혼재


2) 언 어

  ○ 헌법상 국어는 아랍어이며, 프랑스 식민통치 결과 다수 국민이 불어를 사용


3) 종 교

  ○ 알제리는 이슬람국가로서 헌법에 규정

  ○ 이슬람 국가로서 여타 종교를 배척하며, 자국민이 이슬람이외의 종교를 믿을 경우 문제가 되나, 외국인이 타종교를 믿는 것은 용인

    * 1988년 복수정당 허용에 따라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주축으로 하는 "구국이슬람전선"이라는 원리주의 정당이 창당, 현재 테러 등으로 국민들로부터 더 이상 지지를 얻지 못함


4) 문화적 특성

  ○ 알제리인의 경우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는 알제리계 80여만명이 집단거주하고 있음. 알제리는 프랑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인접국으로 유럽문화 및 브랜드에 친숙하다고 평가됨.

  ○ 전 가정에 보급된 위성방송수신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럽 주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음.

    - 알제리인들은 정서적으로는 이슬람권에 속하지만, 소비자 취향은 유럽문화권에 속하고 있는 영향으로 유럽문화와 브랜드에 우호적임.

  ○ 이슬람 국가 중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편이며, 라마단 기간 등을 제외하고는 호텔 및 레스토랑에서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비교적 개방화된 문화를 갖고 있음.

  ○ 이슬람 기본예절에 따라 인사할 때와 식사할 때에는 왼손을 사용하지 않고,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하는 특성이 있음.


5) 예 술

  ○ 1962년 독립이후 영화, 문학, 음악 등 알제리 예술분야는 급격한 발전을 거둠.

  ○ "Chronique des annees de braise(격동시대 일대기)"는 칸트 황금종려상 수상


6) 기 후

  ○ 알제리는 지중해성 기후로서 3월 낮 평균기온이 19도이며, 야간은 6~8도로 조석으로 다소 기온차

  ○ 수도 알제의 3월 평균 강수량은 0.7mm 기록

  ○ 강우량 : 연평균 800mm이하 (매년 현격한 차이를 보임)

    - 사하라 사막의 남부지역은 연간 100mm이하의 강우량을 보여 연중 가뭄이 지속됨.

  ○ 온도차 : 해안지역에서 약 20도의 온도차를 나타냄.

    - 알지에는 밤중에 평균 21도까지 떨어지는 7월 오후 평균 온도가 28도 정도이며, 1월중 온도는 매일 15-9도를 유지함.

    - 일일 및 연간 온도 변화는 내륙 쪽에서는 심하게 나타나며, 사막지역에서 현격함.


7) 공휴일

  ○ 관공서, 공공기업과 은행의 경우 8:30-15:00 또는 16:00까지 근무하며 일반기업 및 상점의 경우 17:00까지 근무함.

  ○ 목요일과 금요일은 공휴일임. 개인기업의 경우 목요일에도 근무하는 경우가 있으며, 은행의 경우는 금, 토요일이 정기휴일임. (단 외국계 기업의 경우 본사와의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해 금, 토요일을 휴무하는 경우도 있음)

  ○ 라마단 기간 중에는 대부분의 업체들이 단축 근무(8:00-14:00)하므로 오후에는 상담이나 전화통화가 불가함.



8. 기타 여행정보


1) 출입국 심사 및 통관

  ○ 입국심사

    - 기내에서 출입국 신고서 작성

    - 입국심사대에서 여권 제출

    - 여권 심사 후 출구 밖에서 수하물 확인

    - 흰색 분필이 칠해진 것 : 세관검사대상 제외

  ○ 세관신고

    - 현금 2,000달러 이상 : 외환신고 관련증빙서 수령 후 출국심사시 휴대

  ○ 출국심사

    - 보안체크 및 수속 창구의 불충분성 : 미리 수속준비 필요

    - 출발시간 90분 전에 체크인 수속 창구 마감하는 시스템

  ○ 출입국 절차 및 유의사항

    - 휴대품 검색 : 비교적 수월한 편 (단, 과도한 샘플은 과세대상)

    - 예방접종 : 일부 예방접종을 권고하는 기관도 있으나, 근래에는 특별한 예방접종 및 방역은 필요하지 않음.


2) 전기

  ○ 전압 : 220V

     - 소형 주택에는 220V 공급

     - 대형 주택 및 건물, 공장 등에서는 380V/50Hz 주파수가 공급

     - 각종 플러그나 콘센트 규격도 유럽식 표준을 따르고 있어 휴대용 어댑터를 준비해야 함.


3) 전화

  ○ 전화선 보급률이 인구 1,000명당 66회선 (2003년 기준)

    - 전화선 보급이 열악한 상황

    - 이동통신 보급률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음.

  ○ 국제전화 이용시

    - 국제전화코드 (00)+국가코드+지역번호+전화번호

    - 서울의 경우 : 00+82+2+전화번호


4) 환율 및 환전

  ○ 화폐단위와 종류

    - Algerian Dinar (AD), US$1 = AD72.3289 (2009. 5)

    - 미국 달러나 유로화는 환전을 통해 유통

    - 지폐는 1,000/500/200/100 AD

    - 동전은 100/50/20/10/5 AD

  ○ 유일한 공식 환전소 : 환전은 알제 국제공항 내

    - 기타 특급호텔 출납창구에서 환전 가능

  ○ 팁

    - 팁 지급이 의무사항이 아니므로 주지 않아도 무방하며, 사회주의 경험으로 형성된 알제리인들의 강한 자존심을 손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유의

    - 최근 공항, 호텔, 식당가 등 서비스업계에서 팁 관행이 확산됨.


5) 교통 정보

  ○ 버스가 운행되고 있으나, 정거장과 노선표시 안내가 체계화되지 않은 탓에 외국인의 활용도는 매우 낮음. 지하철은 현재 건설 중이며 2010년 이후 완공예정이므로 현재 외국인이 활용할 수 있는 대중교통수단은 택시가 유일함.

  ○ 한국에 비해 택시 운행률이 높지 않아, 호텔에서 미리 사용호출 예약을 할 것이 요구됨. 요금계산은 단순 거리에 따라 요금을 지불하는 방식 (한국은 시간거리 병산제)

    - 대부분의 택시 기사들은 영어구사능력을 갖추지 못했음에 유의


6) 주요 관광 명소

  ○ 카스바(Casbah)는 전통적 도시 구조 유적과 고대 모스크, 성채 및 오토만 저택 궁전 등 유적 보유

  바스티용 뱅 트르와(Palais des rais)는 15세기 오토만시대의 건축물

  Cherchell 유적은 로마시대 유적지로 고대 로마군의 병창기지로 활용되어 원형경기장, 공동목욕탕 등이 존재

  ○ Tipaza 유적은 고대 카르타고 무역의 중심지였으며, 로마시대에는 전략기지로 활용되었으며, 박물관 왕족묘 및 기독교인 묘 등이 존재


7) 기타

  ○ ‘06. 9월부터 외교관 및 관용여권 소지자 비자 면제

  ○ 아랍국에서 금기시하는 돼지고기 등은 반입 금지이며, 말라리아 등 예방접종 및 방역 등은 필요 없음

  ○ 알제리의 공휴일은 여타 이슬람국가와 마찬가지로 목․금요일이 주말이며 휴일

  ○ 관공서, 공공기업 및 은행은 오전 8시 30분부터 오후 15시까지 근무하며 일반기업 및 상점은 17:00까지 근무

  ○ 알제리의 대표적인 음식으로는 꾸스꾸스(Couscous), 양갈비(꼬트다뇨), 포도주, 박하차 등이 있음

    * 꾸스꾸스는 2단 양은솥중 아래 솥에는 호박, 당근, 양배추 등 각종 야채와 양고기, 닭고기나 소고기를 넣고, 위 솥에는 미세한 밀가루를 넣은 다음 화덕에 불을 피워 아래 솥의 수증기로 위 솥의 밀가루를 찐 음식




* 위 자료는 제6차 한-알제리 경협 T/F 민관합동 경제사절단용 자료집의 일부를 재구성한 것임.



약사



고대/중세


○ 1947년 8월 독립 이전까지의 파키스탄 역사는 바로 인도의 역사로 볼 수 있음.

○ 파키스탄 서남부에 위치한 모헨조다로(MOHENJODARO)에는 고대문명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이는 BC 3000년경의 금석병용기 시대의 도시국가 유적으로서 하랍파(HARAPPA) 유적과 함께 고대 인더스 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이며 두 지역을 인더스 문명의 기원으로 보고 있음.

○ 인더스문명은 고도의 청동기문명으로서 정연한 가도, 완비된 위생시설 등의 탁월한 도시건설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약 1천년 동안 지속되다가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침입해 온 아리안족에 의해 멸망되었음.

석가모니 이후 한때 불교가 전성기를 이루기도 했으며 이로 인하여 파키스탄 전역에 걸쳐 곳곳에 간다라문명이 꽃을 피우기도 하였음.

○ 중세사회가 시작되는 8세기부터 12세기까지는 무슬림세력이 서북방 지역으로 침입하여 델리를 중심으로 약 300년간 무슬림왕조가 성쇠를 되풀이하였음.

○ 1500년경 서부인도에 중앙아시아의 티무르가 멸망한 후 그의 후예인 바바르가 수립한 무굴제국은 전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여 150년 간 전성기를 이루다가 힌두ㆍ회교간 대립, 농민반란 등으로 1857년 세포이 반란사건을 계기로 영국에 합병되어 멸망하였음.


근대


○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인도의 독립운동은 마하트마 간디 등 힌두교들의 지도하에 1885년 소집된 인도국민회의를 중심으로 전개됨에 따라 회교도들은 독립 후 힌두문화의 지배를 두려워하여 1930년 초를 기점으로 회교시인 IQBAL 등을 중심으로 회교국가의 분리 독립운동을 점진적으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하였음.

○ 2차 대전 후 파키스탄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MOHAMMAD ALI JINNAH (QUAID-E-AZAM)의 파키스탄 분리주장 요구와 영국의 인도ㆍ파키스탄 분리 독립 정책에 따라 1947년 8월에 오늘날의 파키스탄으로 독립하여 영연방의 자치국이 되었으며 초대 총독에는 모하메드 알리 지나, 총리에는 아라드 알리 칸이 취임하였음.


독립이후


○ 신생 파키스탄은 법률 및 제도를 정비하고 1947년에는 UN에 가입하는 등 독립국가로서의 기틀을 다져 나갔음. 1948. 5월부터 인도와의 분쟁지역인 카슈미르에서 상권과 권력을 쥔 힌두계인들로부터 종교적 제한을 받아온 데에 불만을 품은 회교주민들의 무장 봉기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하여 인도, 파키스탄 양국이 군대를 파견하여 충돌함으로서 제1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 1949. 1월 UN의 중재로 휴전이 성립되었으나 파키스탄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음.

○ 1970. 12월 총선 결과 서파키스탄에는 A. BHUTTO가 이끄는 인민당이 의회의 절대 의석을 차지한 반면, 동파키스탄(현재의 방글라데시)는 MUJIBUR RAHMAN이 영도하는 AWAMI LEAGUE당이 대승하였음. 총선 후 동, 서파키스탄은 정치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연합정부 구성을 위한 협상을 추진하였으나 동파키스탄의 RAHMAN 당수가 거부함으로써 협상이 결렬되었음.

○ 이에 따라 서파키스탄군이 동파키스탄에 진주하는 한편 인도가 동파키스탄에 군사개입을 함으로서 1971. 12월 제3차 인도·파키스탄 전쟁이 발발하고 동 전쟁에서 파키스탄이 패함에 따라 동파키스탄은 파키스탄으로부터 분리되어 방글라데시로 독립하게 되었음.


정치 개황



정치제도


○ 정부형태 : 내각책임제(2002. 8월 헌법개정)

○ 행정부 의회간의 견제·균형장치

- 대통령의 국회해산권

- 내각은 하원에 대해 책임을 짐(91조 4항)

- 하원은 수상 불신임권을 가짐

○ 지방행정기구는 4개주(Baluchistan, Punjab, Sindh, North-West Frontier Province)와 소수종족연방보호지역(FATA : Federally Administered Tribal Area) 및 연방수도권지역(FCA : Federal Capital Area)으로 구성됨.


의회


○ 상 원

- 구 성 : 100명(4개 주의회별 각각 22명 선출, 하원 12명 선출)

- 임 기 : 6년(매 3년마다 1/2 개편)

- 의장단 : 의장 및 부의장 각 1명(임기 3년)

- 상원의장은 대통령의 해외 방문으로 인한 부재나 사임, 사망 등 대통령 공석시, 대통령의 직무권한을 대행

하 원

- 구 성 : 342명

- 임 기 : 5년

- 의장단 : 의장 및 부의장 각 1명

- 회 기 : 1년에 적어도 3번의 회기, 최소한 130일이 개원되어야 함.


국방


○ 병역제도 : 지원제

○ 국방예산 : 2235억루피(약 37.3억불)(GNP 대비 3.3%, 총예산의 20.0%)

○ 병력 : 64만 명(예비군 54만)


외교



기본 외교 노선


○ 파키스탄 대외 정책은 카슈미르 분쟁 해결 등 인도와 대립 관계 개선, 인근 국가인 아프가니스탄과의 선린 관계 유지, 대미, 대중 관계의 강화가 근간을 이루고 있음.

○ 기본 외교 노선으로는 비동맹 중립 외교 노선, 이슬람 제국과의 결속 강화, 대 중국 관계 공고화, 대 아프가니스탄 전후 복구 경제 지원 등을 들 수 있음.


파키스탄-인도 관계


○ 카슈미르 문제는 대 인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부문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이며 회교와 힌두간의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임.

○ 인도·파키스탄 전쟁

-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가 신생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 동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회교도측이 파키스탄에 귀속코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하에 반란을 일으킴. 이에 대해 동지역의 힌두교 영주(Maharaja)가 인도정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여 1947. 10월 제 2차 인도·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UN의 거중조정에 따라 휴전선이 설정됨.

- 1965. 7월 양국간 다시 전쟁(제2차 인·파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UN 안보리의 노력으로 휴전됨.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파 전쟁이 발발

○ 2003년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과 동시에 그동안 끊겼던 항공 운항을 2004. 1월부터 재개하고 2005. 10월 발생한 대 지진과 관련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국 공동 구조 활동을 펼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음.

○ 그러나 2006. 7월 뭄바이열차 연쇄폭탄테러로 인해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 측은 동 테러를 일으킨 단체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을 이유로 파키스탄 측에서 자국내 테러기지 및 테러척결에 대한 성의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평화구축 과정에 진전이 있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면서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외교차관 회담을 무기한 연기함.

이에 파키스탄 Musharraf 대통령은 7월 20일 대국민 TV 연설을 통해 인도측에 뭄바이 열차 테러 관련 비난전을 하지 말 것을 촉구하면서, 인도측이 테러에 개입한 테러리스트에 관한 정보를 파키스탄측에 제공한다면 가능한 모든 협력을 다할 것이라고 약속함.

2006.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된 SAARC 상임위원회(Standing Council) 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국은 평화구축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였으나, 구체적인 다방면 대화의 추후 일정은 정하지 못함.

○ 2006. 8월 파키스탄이 자국내 인도 외교관을 외교관 신분에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혐의로 추방하자, 인도도 맞바로 자국내 파키스탄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함.

뭄바이 테러 사건 발생(2008.11.26-29)

- 10명의 테러리스트가 중무장한 채 해상을 통해 뭄바이에 침투, 11월 26일 밤 10시경부터 동시다발적 무차별 테러 공격 감행

-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범 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하여 테러를 진압함.

-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와 파키스탄 당국과의 관련성을 계속 부인해 왔으나,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

- 이 사건을 통해서 군병력의 국경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고 양국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됨.


대 아프가니스탄 관계


○ 파키스탄은 중앙아시아 국가들과의 자원 교류 및 교역을 원활히 하고, 이들 국가들로의 해상 운송 루트로서 가치를 발휘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의 안정 및 아프가니스탄의 친파키스탄 정책 유도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현재까지 아프가니스탄과의 유대 관계는 형제국과 같은 관계로 매우 긴밀한 편임.


대 중국 관계


○ 파키스탄과 중국은 전통적으로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 1996년 12월 1일 장쩌민 국가 주석이 파키스탄을 방문해 양국 경제 협력 협정을 체결하고 특히 핵개발 기술 협력 강화에 합의(평화적 목적)하였음.

○ 중국은 인도 견제를 위해 전략적으로 친 파키스탄 외교를 펴고 있으며 파키스탄에 대한 다양한 경제 지원을 계속하고 있음.

○ 한편 무샤라프 대통령은 지난 2006년 2월 중국을 공식 방문, 후진타오 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간 교역 및 협력 확대에 합의하였으며 2006년 11월 이루어진 후진타오의 답방을 통해 FTA 협정을 체결하는 등 정치, 경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대 미국 관계


○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문제 해결, 인도에 대한 견제, 경제지원 등의 측면에서 대미 관계를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미국의 대 테러 활동, 마약류 단속 노력에도 적극 협조하기로 함.

○ 무샤라프 대통령은 쿠데타 집권 후 9.11사태 발생 시 미국에 적극적인 협조를 함에 따라 미국을 포함한 서방국의 경제 원조를 받아낼 수 있었고 파키스탄의 주력 수출품인 섬유 제품의 쿼터 추가 확보로 미국 수출 증가에도 크게 기여함.

○ 2001년부터 미국과의 협력 강화를 모색해왔고 부시 정권과의 관계도 양호함에 따라 대미 관계의 지속적인 유대 강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됨.


사회




교육


○ 파키스탄은 국가이념과 회교교육을 바탕으로 하여 과학기술교육에 중점을 두는 신교육정책을 채택하고 있음.

○ 파키스탄의 학제는 다음과 같이 이루어져 있음.

- 초등교육 5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2년, 대학교육 2~4년


언론


○ 정부에 의한 직접 사전검열이 82년 초 완화되어 현재는 정부 지침에 따른 자체 검열제를 시행함. 중소언론기관이 난립하고 재정상태가 어려우며 언론인의 자질문제 등으로 객관성 유지가 어려운 점 등의 문제가 있음.

○ 국영 PTV(3개 채널), AJK TV, 기타 Geo-TV, ARYONE, Indus TV 등 다수 채널이 두바이 또는 인도에 본사를 두고 방송하고 있음.


사회적 갈등 요인


○ 파키스탄은 마약상습자의 증대로 심각한 사회문제에 직면해 있음.

- 마약상습자의 숫자는 100만명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 지형이 험난한 북서변방지역의 계곡은 양귀비 재배지와 헤로인 제조지역으로 알려져 있으며, 미국에서 소비되는 헤로인의 1/5이 이곳에서 공급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음.

- 이 지역은 영국의 식민통치 당시부터 국내법이 적용되지 않았고, 그 지방의 부족지배자가 통치한 것도 마약증대의 원인으로 들 수 있음.


문화


○ 회교화 운동 : 회교화 운동이 강조되고 있으며, 일반생활의 회교 전통유지에 부심함.

○ 복장 : 전통 복장이 일반적임.

○ 기타 : 술, 돼지고기, 도박 등이 금지되고 있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약사



인도 역사의 특징


인도는 다양한 인종, 종교, 언어, 생활풍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대륙과지리적으로 차단된 특수성으로 인하여 일찍부터 독특하고 개성적인 문화를 이루어 왔음.

○ 5,000년 이상의 긴 역사 중 정치적 통일을 이룬 시기는 마우리아왕조(B.C.321-185), 굽타왕조(A.D.380-606) 및 무갈왕조(A.D.1526-1858) 등 3개 왕조에 불과하며, 북서부지역은 외부세력 침입의 출입구가 되어 그리스, 훈, 터키족 같은 외부 세력과의 항쟁 속에서 성쇠를 거듭하였으나, 데칸고원 등 남부지역은 지형적 요인으로 인해 외부세력의 침입을 비교적 적게 받아 왔음.


고대


○ 인더스 문명(기원전 3000-2000)

- 세계 4대문명 발상지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은 인더스강 유역에서 기원전 3,000~2,500년경부터 약 500년간 번성한 고대 문명으로 모헨조다로와 하라파 등의 유적이 있음.

- 고도로 발달된 후기 청동기 문명의 단계로서, 종교는 다신교, 정치 체제는 제사장 중심의 공화제를 형성

○ 아리안 문명(기원전 2000-1000)

- 인도 문화의 원형은 상당 부분 아리안족이 인도 대륙 침입 후 정착하면서 이루어졌음.

- 사제 계급인 브라만 중심의 제사 의식과 신에 대한 찬양 등이 집대성된 리그베다 등 베다문화가 이 시기에 형성됨.

○ 도시국가의 형성

- 기원전 7세기경에 이미 상당한 세력을 지닌 도시국가들을 건설

- 정복전쟁에서 가장 두각을 보인 마가다 왕국은 알렉산더왕의 침입 때까지 난다 왕조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을 유지하였으며, 기원전 500년경 불교 및 자이나교가 발생함.


중/근세


○ 마우리아 제국(기원전 321-185)

- 3대왕인 아쇼카왕(BC 272~232)은 지배영역을 확대하여 남서부의 타밀지역을 제외한 전 인도를 통일하고, 포교에 힘써 불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하는 기반을 조성하는 데 크게 기여함.

○ 쿠샨왕조(78-226)

- 쿠샨족 카니슈카왕이 서쪽으로 이란, 동쪽으로 중국의 한나라, 남쪽으로는 인도대륙의 중심부까지 이르는 대제국을 형성

○ 굽타왕조(380-606)

- 찬드라 굽타 2세(380-413) 시대에 문화적 르네상스를 구가하였으며, 불교, 힌두교 및 자이나교 등이 융성, 부흥했음.

○ 무굴제국(1526-1858)

- 데칸을 제외한 인도의 대부분과 아프가니스탄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건설되었고 악바르 이후 150년 간 전성시대가 지속됨.

- 이슬람교가 번성하여 타지마할 등 이슬람 관련 유적을 남김.

- 1707년 이후 지방토후의 발호, 서구열강의 침입으로 약화

- 1757년 영국이 프랑스와의 플랏시 전투에서 승리

- 1857년 영국이 세포이 반란을 진압한 후 영국의 직할지로 편입.


근대


○ 반영 독립투쟁

- 18세기 후반에 생겨난 많은 정치단체 중, 1885년 결성된 "인도 국민회의"가 독립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함. 특히, 독립운동에 대한 영국의 냉담한 반응에 대응하여 보이콧 및 스와데시 운동이 전인도로 파급되게 됨.

- 이에 대해 영국은 분할통치 정책을 취하여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간 대립을 조장하였으며, 1906년에는 국민회의에 대한 견제세력으로 영국의 배후 지원을 받은 회교도 연맹을 결성함.

- 1차 대전 이후 인도 국민회의는 마하트마 간디의 지도하에 영국이 제시한 자치령 지위를 거부하는 등 완전한 독립을 목표로 많은 인도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고, 이에 반해 회교도 연맹은 파키스탄의 분리를 요구함.

○ 독립

- 2차 대전 후 영국은 인도에 독립을 부여하기로 결정하고, 인도-파키스탄 분리 독립 방안을 제시한 바, 동 제안을 국민회의가 수락함으로써 인도는 1947.8.15 영연방의 자치령으로 독립하게 됨.


현대


○ 인도 헌법 채택

- 1947년 8월 15일 독립과 함께 자와할랄 네루(Jawaharlal Nehru)가 초대 인총리에 취임한 후, 1949년 제헌의회에서 연방제와 민주주의를 골자로 한 헌법이 채택되고, 1950. 1월 발효됨으로써 영연방 자치령의 지위에서 탈피함.

○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

- 한편, 독립 당시부터 파키스탄과는 종교적, 영토적 분쟁으로 1947. 10월, 1965. 6월, 1971. 12월 등 3차례 전쟁을 치뤘으며, 중국과는 국경문제인해 1962년 전쟁을 겪는 등 주변국들과 마찰을 겪기도 했으나 비동주의와 균형 및 실용주의를 적절히 추진함으로써 꾸준히 국제사회에서 위상을 강화시켜 옴.

○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 시현

- 국내 정치적으로 국민회의당(Congress Party)이 정권을 독점하면서 정치적으로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 경제적으로 사회주의적 경제정책추진해 오다가 1990년초 경제상황 악화에 따라 1991년 신경제정책을 채택하여 경제개혁 및 개방정책을 실시함. 1990년대 이후 국내 정치권력은 국민회의당․BJP 양대 정당과 군소 정당들이 합종연횡하면서 연립정부를 구성해 오고 있으며, 경제개방 및 개혁의 성과로 꾸준히 높은 수준의 경제성장을 시현하고 있음.


정치 개황



국내 정치의 특수한 여건


인도의 국내정치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으로는 일반국민의 민주의식, 언론자유의 보장, 관료제도, 군부의 중립성, 사법부의 독립 등 긍정적인 요인들과 카스트 제도, 종교간 대립, 빈부격차, 지방주의, 취약한 정당기반 등 부정적인 요인들이 있음.

○ 인도의 고질적 사회풍습인 카스트제도를 타파하고 특히 전체국민의 22.5%에 해당하는 최하층민(Scheduled Caste와 Scheduled Tribe)과 52%에 해당하는 하층민(Other Backward Castes)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향상 문제는 인도정치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 중의 하나임.

- 오랜 인습은 타파되지 못하고 있으며, 일부 지방에서는 무력충돌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음. 2006년에는 정부의 OBC에 대한 국립대학 입학할당제도 도입 방안추진계획을 둘러싸고 찬반논쟁이 가열되기도 함.


헌법과 정부형태


○ 1950년 1월 26일 공포된 헌법은 22장 395조 및 부칙 9조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요 특징은 아래와 같음.

- 정부형태는 내각책임제 공화국 표방

- 종교 무차별주의로 신앙의 자유 허용

- 주정책에 대한 지시지침(Directive Principle of State Policy)을 통해, 부의 공정하고 적절한 분배 및 생산수단의 집중방지 규정

의회 민주주의 체제를 근간으로 하는 연방국가로서 의원내각제의 정부형태를 취하고 있음.

- 연방은 28개 주(state, 2000년도에 3개 주 신설)와 7개 연방 직할지(Union Territory)로 구성

○ 각 주에는 주 정부와 주 의회가 있음. 주를 대표하는 주지사(Governor)는 5년의 임기로 대통령이 임명하며 주행정의 실권은 주지사가 주 의회 다수당 지도자 중에서 지명하는 주 총리(Chief Minister)가 장악함.


입법/행정/사법부


○ 상원(Rajya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의회에서 간접 선출되는 238명 및 대통령이 임명하는 12명 등 총 250명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6년으로 매 2년마다 1/3씩 새로 선출함.

○ 하원(Lok Sabha)은 각주 및 연방 직할지 대표 543명과 대통령이 임명하는 Anglo-Indian community 대표 2명 등 총 545명으로 구성하며, 임기는 5년임.

행정부는 대통령, 부통령, 총리 및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s)로 구성

- 대통령은 5년 임기로 상‧하 양원 및 주 의회 의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하여 간접 선출되며, 국가원수로서의 상징적 역할 수행(군 최고통수권 보유)

○ 사법부는 연방 대법원(Supreme Court of India), 주 최고법원(High Court), 지방법원(Lower Court)으로 구성되는 3심제임. 대법원은 인도 헌법과 법률에 대한 궁극적인 해석권을 가지며 대법원의 판결은 모든 법원에 대해 구속력을 가짐.


외교



대외정책의 기조


1947년 독립이후 인도의 외교정책을 지배해 온 기본적 원칙은 “네루외교노선”에서 비롯된 비동맹주의와 균형주의 원칙이며, 이와 같은 외교기조는 인도가 처한 특수한 외교 및 안보환경 즉, 광대한 국토와 복잡한 사회적 구조로 인해 국가적 단결이 독립초기의 최대의 관심사였고 대외정책 선택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친 정책결정을 내리기 곤란한 국내적 제약조건에 기인한 것이었음.

- 인도는 독립 당시부터 패권주의 반대, 군사동맹 가입 반대, 국제분쟁평화적 해결 및 모든 국가와의 우호관계 수립 등 비동맹회의와 유사기본이념을 대외정책의 기본노선으로 표방하면서 비동맹운동의 창설을 주도하였고 비동맹주의를 대외정책의 기조로 삼아 왔음.


최근 외교정책 노선


점차 과거 비동맹 외교노선에서 탈피하여 고도 경제성장의 지속적 달성을 위한 실용주의적, 친서방적 외교정책 노선을 강화하는 추세이며, 특히 미국과의 관계 강화가 아시아의 세력 균형에 기여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음.

- 1990년대 후반 이후 현저하게 대미국관계 강화를 시도하는 실용주의 노선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2004년 재집권한 Congress당 중심의 UPA 연합 정권 하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지속되고 있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 등 부상하는 global power로서의 국제영향력 확대 노력을 가속화 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G-4와의 협력 유지를 통한 외교노력을 경주하고 있음.

서남아 지역의 중심국가로서 지역분쟁 예방, 정세 안정화 및 역내 영향력 유지․확대를 위한 외교적 지도력를 추구하며, 특히 주변국가들에게 군림하던 과거의 형태를 벗어나 서남아지역연합(SAARC)의 활성화 등을 통한 전향적이고 유연한 지역 외교 노선으로 전환중임.

고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에너지 확보를 외교정책의 최우선 과제의 하나로 추진하고, 특히 원자력 에너지협력을 위해 미국, EU, 러시아, 중국 등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지원 확보를 위한 다방면의 외교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 동아시아 정상회의(EAS) 출범을 통한 장기적 East Asia Community 구상 추진, ASEAN과의 FTA 협상 마무리, 한국과의 FTA(CEPA) 협상 개시, 중국 및 일본과의 FTA 타당성 검토 등 동아시아권과의 지역 협력 강화를 통한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고 있음.


인도-파키스탄 관계


○ 카슈미르 문제는 대 파키스탄 외교정책의 가장 큰 부문으로서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리 독립 이후 카슈미르(Kashmir) 지역에서 계속 일어나는 영유권 싸움이며 회교와 힌두간의 대표적인 종교적 갈등임.

○ 인도·파키스탄 전쟁

- 카슈미르 지역 영유권 분쟁은 1947년 영국 식민지하의 인도가 신생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 독립될 당시, 동 지역 인구의 절대다수(77%)를 차지하는 회교도측이 파키스탄에 귀속코자 파키스탄 정부군의 지원하에 반란을 일으킴. 이에 대해 동지역의 힌두교 영주(Maharaja)가 인도정부에 군사지원을 요청하여 1947. 10월 제1차 인도·파키스탄 간에 전쟁이 발생하였고, UN의 거중조정에 따라 휴전선이 설정됨.

- 1965. 7월 양국간 다시 전쟁(제2차 인·파 전쟁)이 발발하였으나, UN 안보리의 노력으로 휴전됨.

- 1971년 방글라데시 독립을 둘러싸고 제3차 인·파 전쟁이 발발

○ 2003년 양국 간의 휴전 협정을 체결하여 분쟁을 종식시키는 노력과 동시에 그동안 끊겼던 항공 운항을 2004. 1월부터 재개하고 2005. 10월 발생한 대 지진과 관련 카슈미르 지역에서 양국 공동 구조 활동을 펼치는 등 화해 무드가 조성되고 있음.

○ 그러나 2006. 7월 뭄바이열차 연쇄폭탄테러로 인해 약 20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자 인도 측은 동 테러를 일으킨 단체가 파키스탄에 근거지를 두고 있음을 이유로 7월에 예정되어 있는 외교차관 회담을 무기한 연기함.

2006. 7월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개최된 SAARC 상임위원회(Standing Council) 회의를 계기로 양국 외교차관 회담에서 양국은 평화구축 과정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일단 공감하였으나, 구체적인 다방면 대화의 추후 일정은 정하지 못함.

○ 2006. 8월 파키스탄이 자국내 인도 외교관을 외교관 신분에 적절치 않은 행동을 한 혐의로 추방하자, 인도도 맞바로 자국내 파키스탄 외교관을 추방하는 사건이 발생함.

뭄바이 테러 사건 발생(2008.11.26-29)

- 10명의 테러리스트가 중무장한 채 해상을 통해 뭄바이에 침투, 11월 26일 밤 10시경부터 동시다발적 무차별 테러 공격 감행

- 약 170명이 사망하고 300여명이 부상당했으며, 테러범 9명을 사살하고 1명 생포하여 테러를 진압함.

- 파키스탄 정부는 이번 테러와 파키스탄 당국과의 관련성을 계속 부인해 왔으나, 파키스탄 무장단체 ‘라슈카르에타이바’(LeT)와 관련되어 있음이 밝혀짐.

- 이 사건을 통해서 군병력의 국경 재배치 움직임이 일어나고 양국간의 갈등이 다시 고조됨.


남아시아 지역협력 연합(SAARC)


○ 국제무대에서의 상호협력을 도모하고 역외개도국 및 타 국제기구와의 협력을 증진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아시아국가간 지역협력 기구로서는 동남아국가연합(ASEAN)에 이어 두 번째로 창설됨,

- 경제, 사회, 문화,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 모색(정치, 군사문제 제외)

-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네팔, 몰디브, 부탄, 아프가니스탄 등 서남아 8개국이 회원국이며, 한국, 중국, 일본, 미국, EU 옵서버 가입

역내국가간 국력의 불균형과 회원국간 다양한 갈등 및 대립 등 어려운 문제가 있으나 회원국 상호간의 공동체 인식과 함께 협력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바도 있음.


사회



카스트(Caste) 제도


○ 수천 년 간 인도인의 생활을 규율해 온 카스트 제도는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
고, 근대화 및 교육의 영향으로 점차 약화되고 있으나 아직도 많은 인도인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회관습으로 존재하고 있음.

○ 카스트제도는 아리안 족이 인도를 정복한 후 소수집단인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에 동화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 것으로 알려짐. 피부색 또는 직업에 따라 승려계급인 브라만(Brahman), 군인‧ 통치계급인 크샤트리아(Kshatriya), 상인계급인 바이샤(Vaisya) 및 천민계급인 수드라(Sudra)로 크게 나누어지며, 이 안에는 다시 수많subcaste가 있음. 최하층 계급으로는 불가촉천민(untouchable)이 있음.

○ 최초에는 그다지 엄격하지 않았으나 오랜 역사적 흐름과 더불어 다른 카스트와의 결혼 불허 등 많은 금기를 가진 사회규범으로 굳어져 인도인들은 자기가 속한 카스트의 행위범을 준수해야 했었음. 이러한 계급제도는 인도사회를 안정시키고 결속시키는데 도움이 된 면도 있다고 하나, 인권을 침해하고 사회를 정체시켜 활력을 잃게 하는 부정적 영향이 큼.

마하트마 간디를 포함한 많은 사회개혁운동가들은 불가촉 천민에 대한 사회적 차별 철폐를 위해 노력하면서 불가촉 천민들을 ‘신의 자식’이라는 뜻에서 하리잔(Harijan)으로 부르고, 이들이 힌두 사원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천민보호에 앞장섰음.

- 오늘날 인도에는 1억이 넘는 하리잔이 있는 바, 정부에서는 입학, 취업시 일정비율을 하리잔에 배정해 주는 등 혜택을 주고 있어 하리잔 출신이 장관까지 된 경우도 있으나, 농촌에서는 아직도 카스트제도가 많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는 실정임.
 

언어


○ 다양한 인종과 더불어 180여종이 넘는 언어가 사용되고 있으며, 헌법
으로 인정한 지역별 공용어는 18개임.

- 힌디어, 텔루구어, 벵갈어, 마라티어, 구자라트어 등

이중 인구의 38.7%가 사용하고 있는 힌디어는 전국적 공용어이며, 영어는 18개 공용어에 해당하지 않으나 의회, 행정부, 사법부 및 사각 분야에서 널리 사용하는 공용어이자, 학력이 높은 층에서 일상적으로 사용함.


복장


○ 남자 : 고유의상으로는 도티(Dhoti), 룽기(Lungi), 아즈칸(Achkan),
파자마 등을 들 수 있음. 그러나 도시에는 하절기에 사파리가 널리 사용되고 있음.

- 도티 : 동부‧남부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긴 천을 밑으로 늘어뜨린 후 다시 허리춤으로 올려 동여 입는데 흰색의 얇은 천을 사용함.

- 룽기 : Kerala 등 해안지방에서 많이 입는데 좁은 폭의 천을 늘어뜨린 후 허리를 동여 입음.

- 아즈칸 : 네루 전 총리가 즐겨 입었던 목이 올라온 제복 스타일의 옷

- 파자마 : 우타르 프라데쉬 주에서는 무릎 아랫부분이 꼭 끼는 추리다(Churidar) 파자마를 입으며 Punjab에서는 헐거운 쿠르타(Kurta)를 입음. 흰색 천을 주로 사용함.

- 사파리 : 하절기(4월-11월)에 많은 도시인들이 즐겨 입는데 공식적모임에서는 점차 양복, 넥타이 차림이 조금씩 늘어가는 추세임.

여자 : 사리(Saree)라는 고유의상을 주로 입는데 지역에 따라 매는 방법, 천의 길이, 천의 개수가 다름.

- 입는 방법은 천을 허리에 감아 맨 다음 어깨에 걸쳐 밑으로 내려 입음. Punjab 지방에서는 사르와르 카미즈(Salwar Kameez)라는 상의가 길고 바지가 넉넉한 옷을 입으며 우타프라데쉬, 라자스탄, 구자라트에서는 가그라(Ghaghra)라는 긴 스커트를 입음.


문화


○ 베다문화(B.C.2000-500)

- 아리안 족의 침입 후 형성된 베다문화는 인도의 종교‧사회‧관습 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힌두교를 탄생시켰으며, Veda와 같은 대서사시적인 경전을 발전시켰음. A.D.6세기-10세기를 통해 힌두문화는 건축․조각․회화 등 각종 예술 분야에서 번창했으며 힌두사원 등 많은 기념비적인 힌두문화 유물을 남겼음.

○ 불교문화(B.C.500-A.D.1100)

- 불교문화 전성기는 B.C. 3세기 야쇼카대왕 시대로 산치대탑, 보드가야의 대탑, 녹야원의 석탑, 아잔타․엘로라 동굴 조각 및 건축 예술에서 절정을 이룸. 아울러 불교는 중국, 한국 및 동남아 등 여러 나라로 전파됨.

○ 이슬람문화(A.D.1100-1600)

- 이슬람문화는 특히 건축에서 페르시아 및 힌두의 전통적인 건축양식조화를 이룬 대표적 양식으로, 초기의 상호배척을 점차 극복하고 상호간의 종교적 관용이 정착하면서 우루두어의 탄생 등 언어, 문화, 음악, 미술 분야에서도 많은 공헌을 함.

○ 서구문화의 영향(A.D.1700-1947)

- 250년에 걸친 영국 지배하에 인도예술, 특히 전통회화분야에서 서구 예술의 영향을 받음. 또한 영어의 도입과 함께 생활양식의 변화와 문학의 발전을 가져옴. 그러나 힌두문화는 상당부분 그대로 전승됨.

○ 독립이후(A.D.1947-현재)

- 독립 이후, 전통문화 창달과 문화유산을 보호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으며, 문학, 음악, 무용, 연극, 미술 등의 진흥을 위한 국가적 지원문화재 발굴, 보존, 전시 등을 위한 박물관, 문화재 관리국 등 국가행정기관을 통하여 현재 문화와 함께 전통문화를 조화시켜 나가고 있음.


교육


○ 교육의 기본정책은 지역 간의 교육격차해소, 전 계층 간의 균등한 교육기회, 국가사회 요구에 부응하는 인력자원개발 등에 목표를 두고 14세까지의 무상의무교육, 영어, 힌디어 및 주 공용어 등 3개 언어교육,
GNP의 6% 교육투자 등을 통해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공동 노력하고 있음.

학교교육은 10+2+3의 15년 과정의 교육제도로써 1968년도 채택 후 현재 거의 모든 주가 이를 실시하고 있음.


종교


인도는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Jainism), 시크교(Sikhism) 등 4개 종교발생지이며 이슬람교, 기독교, 조로아스터교, 유태교 등 다양한 외래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임.

종교는 인도 국민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종교 없는 생활은 생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종교는 인도인의 생활과 밀착되어 있다고 할 수 있고 종교는 인도인의 일상생활에 지배적인 영향을 끼치는 요소임.

○ 헌법은 모든 종교에 대한 무차별, 신앙의 절대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며, 모든 종교는 국가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음.

○ 인도의 종교인구 분포는 힌두교 81.5%, 이슬람교 11.2%, 기독교 2.7%, 시크교 2.4%, 불교 0.7%, 자이나교 0.4%, 기타 1.1%임.


힌두교


○ 힌두교는 B.C 2000년경 아리안족 침입 후 최고경전 Veda가 집대성
되면서 정치, 사회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이슬람교 등 이교도의 수세기 동안에 걸친 침략 속에서도 이에 동화되지 않고 오히려 포용하면서 오늘에 이름.

- 드라비다족의 토속신앙, 아리안족의 자연신 숭배 등에 바탕을 둔 다신교인 힌두교는 외래사상과 종교 등에 대한 인내와 관용을 특징으로 하며 생활경험, 도덕, 사회관습, 규범의 총체로서 Dharma(정의 또는 의무)에 따른 수도생활과 최고 정신을 탐구하는 고도의 생활 철학적 종교임.

- 소를 신성시하고 카스트제도를 정착시킨 힌두교는 해외 전파보다는 인도인의 종교로 존속하길 바라는 성향을 띠고 있음.

- 현재 약 8억에 이르는 신도를 가진 힌두교는 인도사회에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 종교임.


보건


○ 약 26%의 빈곤층을 가지고 있는 인도는 모든 국민의 건강향상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농촌, 빈민층에 대한 위생, 의료혜택을 확대 실시하고 있음. 특히 UPA 정부는 집권기간 중 GDP의 2-3%를 보건 분야에 투입하되 기초보건에 우선적으로 투자한다는 계획이며, 저소득층을 위한 의료보험의 조기 도입과 필수 의약품의 저렴한 판매 방안 마련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하고 있음.

○ 지난 30년 간 평균 수명은 31세에서 52세로 사망률은 천 명당 27.4%에서 14.2%로, 유아 사망률은 천 명당 146명에서 125명으로 개선됨. 또한 전염병퇴치를 위한 특별대책을 실시하고 있는 바, 1977년도를 기해 천연두는 퇴치되었으며 학질, 사상충, 나병, 콜레라, 결핵 등의 퇴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

○ 1952년 제1차 5개년 계획을 출발로 시작한 가족계획은 많은 성과를 가져출생률은 60년대 4.12%에서 1978년도 3.33%로 감소되었으며, 2002년에는 2.38%로 정부는 2001-11년의 10년 간 인구증가율을 16.2% 이내에서 억제한다는 계획임.


관습


인도인들 중에는 무신론자가 거의 없으며 대부분이 절이나 집안에서 정기적으로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음. 힌두교는 다신교로서 교리나 성찰보다는 수많은 제신들의 형상화를 통한 의식이 주요 신앙생활을 이루고 있으며, 도덕률이나 내세구원보다는 개인의 현세구복에 치중하고 있음.

오랜 카스트제도 하에서 묵묵히 순종해온 생활태도, 불교의 자비와 관용적 사상, 장기에 걸친 이민족의 지배 등의 영향에 기인하는 관용적 태도, 생명존중 사상, 무저항주의 같은 평화주의 사상이 인도인들의 생활 저변있으며, 마하트마 간디가 제창한 비폭력주의도 이러한 전통적 사상의 계승 내지 발전으로 볼 수 있음.

- 그러나 이슬람-힌두 등 종교, 종파간 갈등 분규가 발생시 폭력사태로 변질되기 쉬우며,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기도 하여 외국인의 주의를 요함.

인도인들은 전통과 관습을 존중, 일반적으로 매우 보수적이며, 보수적 풍속을 벗어나는 외국인은 풍속사범으로 체포, 처벌하기도 함.

인도에서는 금주제도를 실시하는 주가 있으며 일반 식당에서도 금주일이 있고, 판매시간이 제한되어 있음. 주류 판매는 호텔이나 규모가 큰 대중식당에만 국한되는 것이 일반적

○ 매춘은 불법이며, 지역마다 정도의 차는 있으나 대체로 자국인들 간에 이루어지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는 흔하지 않음.

○ 여성들은 복장법령에 따라 공적 활동시 반드시 전통의상인 사리 또는 사르와르 카미즈를 입어야 하며, 일반대학에서도 여학생들에게 전통의상을 강요하는 사례가 있음.


언론


인도의 언론은 스스로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년)을 쟁취하는데 공헌바 크고, 독립이후에는 국가 건설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는 높은 긍지를 갖고 있음.

- 개도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언론자유가 보장되고 있으며 언론이 여론정치 구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음.

신문 등 정기간행물(약 8,000종)은 대부분이 개인소유로 운영되고 있음. 특히 TV 및 라디오는 방대한 지역과 인구의 1/3 이상이 문맹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보도‧교육‧오락 등 일반적인 방송기능은 물론 정부의 대국민 홍보기능 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

○ 인도 유일의 공중파 방송인 국영 TV Doordarshan(DD-TV)은 DD National, DD News, DD India(해외방송) 등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 최근 대도시를 중심으로 민영TV 채널이 급속하게 늘어나고 있으며, 케이블 TV 시장이 활성화되고 있음.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모로코 (KINGDOM OF MOROCCO) 알기

지정학적 위치

○ 아프리카 북서단, 지중해 남서단(북위 23-36 도, 서경 13-17 도)

- 북쪽 : 지브랄탈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의 14Km 남쪽에 위치

- 남쪽 : 모리타니아와 접경

- 서쪽 : 대서양과 접경(해안선 3,500km)

- 동쪽 : 알제리와 접경

지형 특색

○ 북동쪽에서 서남쪽으로 해발 4,000m의 아틀라스 산맥이 길게 뻗쳐 있고 남쪽으로는 사하라 사막이 알제리 국경에서부터 모리타니아 국경과 접한 대서양까지 연결

- 아틀라스 산맥 서쪽과 모로코 북부 및 중서부 대서양 연안지역에 전체국민의 70 % 이상이 거주

민족구성

○ 아랍인 60 %, 베르베르인 36 %, 유럽인, 유태인, 흑인등 4 %

- 베르베르족은 모로코지역에 기원전부터 정착해온 유목민족이며, 8세기 아랍족의 진출 이후 종교와 문화가 아랍화 됨.

- 아랍족은 주로 도시지역, 베르베르족은 주로 농촌 지방이나 아틀라스 산맥 인근 유목지대에 주로 거주

종교

○ 종교 : 이슬람교(수니파) 99.99 %, 기독교 및 유대교 0.01%

- 이슬람교가 국교이며, 국왕이 종교수반을 겸하고 있음

-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모로코인에 대한 타 종교 포교 행위는 금지되어 있음

언어

○ 공용어 : 아랍어, 베르베르어(Amazigh어)

- 표준 아랍어는 문어체(신문, 방송, 출판문)에서만 사용하며, 구어로는 모로코 방언을 주로 사용(표준 아랍어 문맹률은 약 50-60%임)

○ 상용어 : 불란서어(제 1 외국어)

- 국민학교 과정 이수자는 웬만한 불어 회화는 구사가능

약사

고대

○ 페니키아 및 카르타고 시대

- BC 1100년경부터 페니키아인들이 해안지대에 이주 시작, 내륙지방의 거주민인 베르베르족과 접촉 시작

- 한편, 튀니지 일대를 지배하던 카르타고인들이 아프리카 북부 해안선을 따라 탕제, 라바트 등지의 식민 항구도시 건설

- BC 196년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 멸망이후 카르타고 난민들이 동 식민 항구도시로 유입

중세

○ 이슬람교 도래

- 680년 세우타 점령을 시작으로 이슬람교도들의 모로코 침입 시작

- 711년 경에 무어족에 의한 모로코 지배 확립

- 732년까지 베르베르족을 중심으로 모로코의 이슬람화

근대

○ 열강의 모로코 침공

- 유럽의 나폴레옹 전쟁 후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열강의 아프리카 진출 교두보로서 모로코 침공개시

- 국내 정정의 불안 및 열강의 침공에 대응한 고립 정책(대 유럽 통상금지 및 유럽영사관을 탕제로 추방)이 왕국의 쇠락 촉진

○ 프랑스는 훼즈협정을 통해 모로코의 국방, 외교, 국내 치안권을 장악하였고, 스페인은 유사한 협정을 통해 북부 해안지방과 남부지역 일부를 보호령화

○ 프랑스 및 스페인 보호령(1912-1956)

- 프랑스의 식민지 경영 정책에 따라 아틀라스 산악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확고한 통치권 확보

- 프랑스인들의 대규모 이민 및 불란서 식민 정부의 유화정책에 따라 프랑스 문화 보급 확대

- 한편, 스페인의 경우 북부 리프지역에서의 광물 탐사에 관심을 기울였으나, 남부지역에서는 단순한 지배자로서만 주둔하였을 뿐 식민지 개발에 무관심

현대

○ 대 프랑스 항쟁

- 1930년 라바트와 훼즈에 거주하는 프랑스 교육을 받은 모로코 엘리트가 중심이 되어 이슬람 민족주의 운동이 태동

- 프랑스는 분할 식민통치 방식으로 산악지대의 베르베르족에 대한 기독교 포교를 통해 도시지역의 이슬람교 아랍인들과 반목을 조장

○ 1927년 즉위한 Mohammed V 국왕은 제2차 세계 대전 후 민족주의자들과 함께 모로코의 독립 추구, 1953년 프랑스 식민 당국에 의해 강제 망명

○ 독립 모로코(1956- )

- 1955.11.18 Mohammed V 국왕은 해외 망명지에서 모로코의 일방적인 독립을 선언하였고, 1956년 프랑스와 스페인은 모로코의 독립인정

- 1956. 4. 22. 유엔 가입

○ 1961. 3. 3. Hassan II세 즉위

- 즉위 당시 모로코는 행정 수도인 라바트와 상업중심지인 카사블랑카를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의 도로, 보건위생, 교육시설들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는 바, Hassan II세 국왕은 국가 근대화를 추진하면서 전통적인 통치자로서의 국왕의 절대 권력은 계속 유지

- 1975.11.16 : 녹색대행진

(35만명이 서부사하라 사막 행진, 병합 촉진)

- 1979년 : 서부사하라 전역 장악(79.8.5. 모리타니는 폴리사리오, 알제리와 협정체결, 서부사하라 포기)

- 1992.9.14 : 새 헌법 채택

- 1996.9.13 : 제 4 차 헌법 개정(상. 하 양원 구성)

- 1999.7.23 : Hassan 2세 국왕 서거

○ 1999.7.30 현 Mohamed 6세 국왕 즉위

정치제도

국왕

○ 모로코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왕국(Kingdom) 중의 하나로 서기 788년에 최초의 통일 왕조 수립 후 수차 왕조가 바뀌면서 왕국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1660년부터 Alaouite 왕조가 현 모하메드 6 세 국왕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

○ 국왕은 종교 최고 지도자(Amir Al-Muminin), 국가 원수, 국가 통일의 상징 및 국가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이슬람과 국헌의 수호자(헌법 제19조)로 명시되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함.

○ 왕권은 국왕이 다른 왕자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는 한 장자 상속(헌법 제20조)

행정부

○ 행정부는 의회 다수파 중 국왕에 의해 지명되는 수상(Prime Minister)과 수상에 의해 제청되어 국왕이 임명하는 각료(Ministers)로 구성되어 있음.

○ 수상은 국왕과 의회에 책임을 지며 법률을 집행하고 각 부처의 정책을 조율하는 역할을 수행함.

사법부

○ 사법부는 독립을 유지하며, 법관은 국왕이 주재하는 최고 사법평의회의 추천에 의해 임명되고 있음.

- Communal and District Courts(지방법원) : 관할 구역 내 거주하는 개인의 재산권(금액 1,000 디람 이하)에 관한 심의를 담당

- Administrative Tribunals (행정법원)

- Tribunals of Original Jurisdiction(민사 1 심 법원) : 가족법, 상속, 계약, 노동분쟁, 민사 소송 등을 심의

- Courts of Appeal(상고법원)

- Supreme Court(대법원)

- Special Court of Justice(특별법원) : 지방 관리나 중앙 정부 공무원의 횡령 및 배임에 관한 재판을 전담

- High Court(고등법원) : 정부 공무원이 업무 수행 중 발생한 범죄나 위법행위에 심의

- The Standing Tribunal of the Royal Armed Forces(군사법원)

의회

○ 과거 단원제이던 의회는 제 4 차 헌법 개정(96.9.13)에 따라 상원(Chambre des Conseillers) 및 하원(Chambre des Representants)으로 구성된 양원제로 변경되었음.

하원은 임기 6년으로 직선에 의해 선출되며 정원 325석임. 하원 의장은 임기 3년이며, 각 위원회 의장단의 임기는 1년으로 정당 그룹별 의원 수에 비례하여 구성

○ 상원은 임기 9년으로 지역 선거인단 대표에 의해 총 의석(270석)의 3/5를 지역별로 선출하고, 나머지 2/5의석은 직능별 대표와 전국의 임금노동자 대표로 구성된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함.

선거제도

○ 피선거권과 선거권은 공히 만 18세 이상의 모로코 국적자에게 주어짐

-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로부터 독립 이후 국민투표, 의원 및 지방 선거 등 각종 선거를 치렀으며, 최초의 국민투표는 1962 년 12 월 7 일의 헌법제정을 위한 국민투표였음.

- 지난 1996년 9월 13일 국민투표를 통한 헌법개정을 통해 상/하 양원제를 채택하였음.

○ 최초의 지방선거는 1960년 5월에 있었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은 1963년 5월 최초로 치러졌고 매 5년마다 선거가 있음.

국가원수 겸 최고 통수권자 인적사항

○ 직 위 : 국왕 (Roi du Maroc)/ 입헌군주제

○ 성 명 : 모하메드 6세 (Mohamed VI)

○ 생년월일 : 1963.8.21

○ 약 력

- 1967-1981: 왕실교육을 통해 초, 중, 고등학교 과정 수료

- 1985: 라바트 소재 모하메드5세 대학교 졸업

- 1987: 모하메드 5세 대학교 정치학 석사

- 1993: 프랑스 니스-소피아 인터폴리스 대학교 법학박사

외교

외교정책기조

○ 모로코 대외정책의 기조는 비동맹 중립, 대 마그레브권 건설, 아랍권 단결 및 아프리카의 단결과 서부사하라(Western Sahara)의 영토 보전 및 통합임.

- 그간 이스라엘과의 특수 관계를 바탕으로 아랍권-이스라엘 간의 관계 개선의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왔음.

- 서구 유럽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 및 스페인이 중요한 동맹국인 한편 주요 교역 상대국의 위치를 차지

- 국제 관계 다변화 차원에서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중국 및 인도와 기존 비동맹 외교에 바탕을 둔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과의 경제적 협력관계도 증진

- 대 한반도 정책에 있어서 우리나라와는 기존 우호관계를 기반으로 한 전통적 친선관계를 유지하고 있음.

프랑스 및 미국 등 서구제국과의 전통적 유대관계 유지

○ 모로코는 지리적으로 지브랄타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불과 14km 떨어져 있는 관계로 전통적, 역사적으로 유럽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가져왔고, 정치, 경제, 외교적으로 유럽이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프랑스로부터 44년간 식민통치를 받았으나, 독립 후 알제리가 사회주의 노선을 채택한 것과는 달리, 서유럽 및 미국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우호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음.

- EU는 2001년도 모로코 수출의 72.5%, 수입의 54%를 차지하고 있으며, 2000.3. EU와의 제휴협정 발효로 경제관계 집중화 현상 심화 예상

- 모로코는 EU 회원국 가입을 위해 1987년 가입신청을 한 바 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단, 1996년 EU와의 협력협정(Association Agreement)을 체결(2000.3월 발효)하여 단계적으로 EU에 접근하고 있음.

- 또한 군사, 외교, 특히 중동평화협상 및 지역안보(서부사하라 문제 등) 측면에서 미국과 제 분야에서 긴밀한 우호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며, 자유무역지대 설립을 협상 중

대아랍, 이슬람국가 관계 강화

○ 모로코는 아랍권 내 대표적인 온건 이슬람 국가로서, '관용'을 국가정책의 근간으로 삼고 있으며, 기존 이스라엘과의 특수관계를 바탕으로 아랍권-이스라엘간의 관계 중재자 역할을 수행해 옴.

- 선왕 Hassan 2세는 93.9.13 워싱턴 중동평화협정 성사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바 있으며, 현재 모로코 국왕은 아랍연맹기구(OIC)의 예루살렘위원회(Al-Quds Committee) 위원장으로, 아랍국가들간 협의 및 관련 정책 추진에 주도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음.

○ 마그레브 아랍연합(UMA) 및 아랍연맹(Arab League)을 통한 역내 국가, 아랍권 및 회교권 전체 단결 공고화를 도모하고 있으며, 89. 2월 UMA의 형성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

- UMA는 모로코-알제리간 서부사하라 문제를 둘러싼 갈등, 서방의 대리비아 제재 등으로 그간 별다른 활동을 전개하지 못하였으나, 99.4월 알제리 신임 대통령 및 99.7월 Mohamed 6세 국왕 취임, 리비아 제재의 부분적 해제와 더불어 관계 실무회의 개최 등을 통해 새로운 전기 마련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 모로코는 2001. 5월 소위 Agadir 선언을 통해 모로코, 튀니지, 이집트, 요르단 등 4국간 자유무역지대(Arab-Mediterranean FTA) 설립 추진을 주도하고 있으며, 향후 이를 여타 아랍국가 들에게 개방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음.

대아프리카 관계

○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로서의 일체성을 부각, 아프리카 제국들에 대한 지원 및 우호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2001년 모로코 국영통신(Maroc Telecom)의 모리타니아 국영통신 51% 지분 인수, 세네갈 국영항공 운영 참여 등 경제진출에도 역점을 두고 있음.

- 모로코는 폴리사리오의 OAU 가입에 항의, 1984년 OAU를 탈퇴하였으며, 현재 전통적인 우호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서부사하라 이남 국가들과 협조하여 폴리사리오의 OAU 축출을 도모하고 있음.

Mohamed 6세 국왕은 2002.2 모로코에서 시에라레온, 라이베리아, 기네 등 Manon강 유역 3국간 정상회담을 주선, 이들 국가들간의 국경선 분쟁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는 등 역내 평화유지에 적극 기여

대아시아 관계

○ 모로코는 외교관계 다변화 차원에서 최근 들어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 강화를 적극 도모하고 있으며, 기존 제3세계 비동맹외교에 바탕을 둔 중국, 인도 등과의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하면서, 일본, 한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음.

- Mohamed 6세 국왕 아시아 방문 : 2001.2. 인도, 2002.2. 중국, 태국, 2003.3. 말레이시아

- 모로코 총리 아시아 방문 : 1998.12 중국, 2000.2. 태국, 인도, 2001.4 파키스탄, 2001.11 말레이시아

- 모로코 방문 아시아 주요인사 : 1999.10 중국 강택민주석, 2002.4 말레이시아 Mahathir 총리, 2002.3 한국 이만섭 국회의장, 2003.7 Musharraf 파키스탄 대통령

서부사하라 문제

○ 서부사하문제는 모로코 최대의 외교, 국방 과제로서, 모로코는 1975년 스페인이 서부사하라에 대한 식민지 점유권 포기 이후 Hassan 2세의 녹색대행진(green march)을 통해 동 지역을 자국 영토의 일부로 편입, 이를 기정사실화 하는 대외정책을 추진

- 이에 대해 당초 서부사하라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운동을 추진하던 폴리사리오전선(Polisario Front)은 76.2월 알제리 Tindouf에 거점을 정하고, 망명 정부인 "사하라 아랍 민주공화국"(RASD 또는 Polisario Front)의 수립을 선포, 알제리의 지원하에 서부사하라 독립을 위한 대모로코 게릴라 무력항쟁을 개시

- 동.서 냉전체제하에서 RASD는 세계 60여개 국으로부터 승인을 획득하였으나, 모로코는 지속적인 외교 노력을 전개,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동 승인을 철회토록 유도하고 RASD를 아프리카 단결기구(OAU)로부터 축출을 기도하였음.

○ 모로코가 실질적인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가운데 현 평화유지 상황이 지속되는 한, 서부사하라의 모로코 편입 및 동화과정은 더욱 진행될 것으로 보이며, 상당기간 유엔의 평화유지 기능이 계속되는 가운데, 모로코가 서부사하라를 어느 정도 효과적으로 동화시켜 나가느냐에 따라 서부사하라 장래가 정해질 전망임.

사회

인구

○ 인구(2004. 9월 모로코 정부 인구센서스 결과)

- 총 인구 : 2,989만명

- 인구증가율 : 1.4%(80년대 2.5%에서 2001년 이후 크게 감소)

- 평균수명 : 69세(남 : 67, 여 : 72)

- 인구분포 : 도시 55.1%, 농촌 44.9% (도시 인구증가율 변화 추이 : 1971년 35%, 1982년 42%, 1994년 51.4%)

- 연령별 인구 분포 : (0-14세) 34.39%, (15-64세) 60.93%, (65세 이상) 4.68%

- 평균자녀 : 3.05명/성인여자(2001년 추정)

교육

○ 주요 교육 시책 : 일반화, 지역간 격차 축소, 모로코화 및 아랍화

○ 정부 교육 정책

- 정부 총예산의 26.3%를 교육에 투입

- 지역간 격차 축소 및 교육 기회 확대 정책 추진

- 1963년부터 7-13세 남녀 아동에 대한 기초 의무교육 실시

○ 취학률 : 도시지역 81%, 농촌지역 67%, 여학생 취학률 : 71%

○ 교육제도는 우리 나라 제도와 비슷함.

- 초등학교(Ecole Primaire) 6년, 중학교(College) 3년, 고등학교(Lycee) 3년, 대학교(Universite, Ecole Special 혹은 Ecole Superieur) 4년, 대학원 및 박사과정(Doctorat)

- 각 교육과정별로 국가에서 운영하는 공립학교와 민간이 운영하는 사립학교가 있음(유아원은 거의 전부 사립임). 공립학교는 초등부터 대학원 및 박사과정까지 무료이나, 사립은 주재국 생활수준에 비하여 학비가 높은 편임.

- 각 과정별 졸업은 비교적 엄격한 심사에 의해 결정되며 명문학교일수록 졸업심사가 까다로운 편임.

- 모로코 정부는 대학 졸업자수의 점진적인 증가에 비해 일자리가 정체되어 있는 고학력 실업문제를 정책적인 측면에서 해결코자 노력하고 있음.

기후

○ 기후 : 크게 우기와 건기로 구분되며, 지역별로 특성이 있음.

- 우기는 11월-4월로 온난 다습(평균 15도), 건기는 5월-10월로 고온 건조(평균 28도)

- 가장 더운달은 8월(평균 최저, 최고기온 18-28도), 가장 추운달은 1월(평균 최저, 최고기온 8-17도)

- 가장 건조한 달은 7월(평균 강우량 1mm), 습한 달은 12월(평균 강우량 86mm)

- 북부지역 : 지중해성 기후(겨울-온난다습, 여름-고온건조)

- 중부지역 : 대륙성 기후(겨울-한랭, 여름-서부사하라 사막의 열풍으로 고온건조)

- 남부지역 : 사막성 기후로 고온건조, 주야간 기온차 극심

비즈니스 에티켓

○ 문화 상대주의적인 입장에서 모로코의 문화, 풍속, 관습을 수용하고 이해하는 자세에서 대화를 전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모로코역사를 어느 정도 알고 특히 모로코 역사 속의 세계적 인물, 예컨대 대여행가로서 이태리의 마르코 폴로, 중국의 정화 등과 비견되는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를 화제로 삼는 것도 바람직함.

○ 식사 전에 ‘비쓰밀라(신의 이름으로)’를 중얼거리거나 동서양의 음식이나 모로코인이 즐겨 먹는 양고기와 꾸스꾸스(COUSCOUS)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한 방법이고, 이슬람에서 금하는 음식물인 돼지고기 등을 식사 화제로 삼지 않아야 함.

○ 극히 한정된 몇 마디의 아랍어라도 분위기를 부드럽게 할 수 있으며, '쌀람 알라이쿰'(안녕하세요)에 대한 답변은 '알라이쿰 앗쌀람' (당신께서도 안녕하신지요?)임. 그외 함두릴라(모든 것이 신의 뜻대로 잘 되고 있다), 슈크란(감사합니다) 등이 있음.

○ 친한 사이인 경우 남녀구별 없이 양 볼을 번갈아 가며 살짝 비비고, 그렇지 않으면 악수를 나누거나 말을 하면서 오른손이나 왼손을 가슴에 가볍게 얹어 상대에 대한 경의를 표시함. 모로코인들은 서로 안부 및 가족 안부 등도 잊지 않고 물어보며, 한편 모로코 전통옷을 입은 여성과는 신체접촉을 피해야 함.

문화적 특성

○ 모로코 시장은 대다수 품목이 전적으로 가격에 의해 구매가 좌우되는 철저한 가격시장으로 국내 업체의 오퍼 가격에 네고의 여지가 없다고 바이어가 판단하면 설사 한국산 수입에 관심이 많더라도 회신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결정권한이 사장에 집중되어 있어 사장이 부재 중이면 "예스"나 "노"라는 확답을 얻지 못함. 현지 중소 바이어들은 영어에 약하거나 아예 불어밖에 몰라 주로 불어를 사용

○ "인샬라"(신이 원한다면)라는 말은 본래 전지전능하신 신 앞에서의 겸허함에서 연유된 것인데, 종종 책임회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경우가 있는 만큼 상담 시에 잘 새겨들어야 함. 모로코인들은 스트레스 받기를 싫어하여 예스나 노에 대한 결정을 빨리 내리지 않는다고 다그쳐 봐야 일만 그르치며, 우리가 "빨리 빨리"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듯이 모로코인들은 "슈이아 슈이아"(천천히 천천히)라는 말을 즐겨 씀.

○ 모로코는 이슬람국가이지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정통 이슬람권과는 달리 상당히 개방적인 분위기를 보여 금요일을 공휴일로 하는 대부분의 이슬람권과는 달리 유럽의 영향으로 일요일이 공휴일이며, 라마단 등 종교 축제 기간을 제외하고는 음주가 가능하고, 여성의 경우 차도르를 착용하는 모습을 좀처럼 보기가 어려운 실정임. 단, 이슬람력에 따른 종교행사인 금요일 오후 예배, 라마단(금식기간)등은 비교적 잘 지켜지고 있음.

라마단 기간은 이슬람 최대 종교행사의 하나로 이슬람력에 따라 매년 10 일 정도 앞당겨지며, 약 1개월 동안 계속되는 라마단 금식 기간 중에는 비즈니스 활동이 거의 중단상태이기 때문에 동 기간 중에는 가능한 한 이슬람권 비지니스 출장을 삼가하는 것이 바람직함. 라마단 기간 중 해가 떠있는 동안은 음식물 및 담배도 일체 금하며 해가 지고 나서야 예배를 보고 음식을 섭취함. 이 기간 중 근무시간은 대개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점심시간 없이 연속근무를 하여 음식점은 모두 문을 닫아 점심식사를 하기가 곤란하나, 외국인을 위해 일부 호텔 레스토랑은 영업함. 흔히 3 금이라고 말하는 국왕, 체제 및 종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며 현지 관습을 존중해야 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알제리 (People's Democratic Republic of Algeria) 알기

국가 상징

○ 초록색과 하얀색 바탕에 있는 빨간색의 초승달과 5각 별은 이 나라의 국교(國敎)인 이슬람교의 상징이며, 초록색은 번영을, 하얀색은 평화를 나타냄.

지정학적 위치

위치 : 북아프리카, 지중해연안, 모로코와 튀니지 사이 (28.00N, 3.00E)

○ 면적 : 238만1741㎢, 국토면적 세계 10위, 아프리카 2위 (Sudan 다음)

○ 국경 :

- 총 6343km, 튀니지 (965km 동), 리비아 (982km 동), 니제르 (956km 남동), 말리 (1376km 남서), 모리타니 (463km 남서), 모로코 (1559km 북서), 서부사하라 (42km 서)

- 해안선 : 998km (지중해)

민족구성

○ 민족 : 아랍인 (81%), Berber인 (19%)

- 현재 양자간 구별은 어려우나, 베르베르인들은 주로 KABYLE지역 출신으로, 자신이 베르베르 후예임을 내세우며 아랍문화보다는 베르베르문화, 아랍어보다는 토착어인 AMAZIGH어에 강하게 집착

지형 특색

○ 동쪽에서 서쪽으로 4개 지역으로 구분

- 텔 지역 : 알제리 인구 다수가 거주, 언덕과 비옥한 계곡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경작가능 지역을 포함

- 고원지대 : 우기동안 물을 저장하고 건기에 마른 호수나 “쇼트 (chott, shott)”라고 부르는 염천이 됨.

- 사하라 아틀라스 지역 : 목초지의 영향으로 고원 지대보다 비가 많이 옴.

- 사하라 지역 : 아랍어로 ‘사막’이란 뜻으로 국토의 99%를 차지하며 오아시스 정착지가 흩어져 있어 대추야자 농업과 소규모 농업이 이루어짐.

종교

○ 현지 카톨릭 성당 및 개신교 교회가 있으나, 현 치안상태 하에서 잘 이용하지 못하고, 신자들의 집을 활용,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는 실정 (국교 : 이슬람(순니))

약사

고대

○ 페니키아인 도래 (BC 1250경)

○ 로마인 도래 (BC 510경)

○ 베르베르 토착왕국 (BC 3-2세기)

- Numidie왕조, Massinissa 왕조, Jugurtha왕조

○ Numidie왕국 로마 지방조직으로 편입 (BC 46)

- 북아프리카에 대한 로마화 진행 (1~429)

중/근세

○ 이슬람 도래 (647-1556)

- 사라센 문명

○ 오스만 터키 지배 (1518-1830)

근대

○ 프랑스 식민시대 (1830-1962 : 132년간)

- 1920년대 Messali Hadi를 중심으로 근대적 민족주의운동 시작

- 1954년 민족해방전선, FLN 결성 후 알제리에서 대 프랑스 무장투쟁

- 1962년 프랑스대통령 샤를 드골은 정전과 독립을 선언

○ 독립 알제리

- 1962년 9월 알제리 민주인민공화국 수립 (Ahmed Ben Bella 초대수상)

- 1965년 군사 쿠데타, 군장교로 이루어진 혁명 의회 구성

현대

○ 대규모 반정부 시위 및 총선

- 1988년 악화된 경제상황에 대한 항의와 폭동으로 수백명이 사망

- 1989년 국민투표로 새 민주헌법 채택

- 1990년 최초로 복수정당제하의 지방선거 및 총선 실시 결과, 이슬람구국전선(FIS)의 정권장악

○ 군부의 정치개입

- 1992년 군부개입으로 총선취소 및 FIS 해체

- 회교세력이 제도권외부 정치세력화 되면서 현재까지 테러 정국 계속

○ 2004년 임기5년의 8대 대통령으로 Abedlaziz Bouteflika 재선

알제리 정세

정세 개관

○ 2004년까지 매년 테러로 약 100-200여명이 사망하였으나, Bouteflika 대통령은 2005.1.3 테러 종식을 공식 선언하고, 동년 9.29(목) "평화와 민족대화합“을 위한 헌장을 97%의 높은 지지율로 채택하여 테러문제 해소에 관한 자신의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함.

○ 5개년 경제개발계획(2005-2009)을 수립, 공적자금 600억불 투입하여 국내수요 창출, 농업 및 중소기업지원을 통한 노동집약 산업 육성, 사회간접자본 확충 및 인력개발 사업에 역점을 두고 있음. 특히 알제리는 경제도약 3대 역점 분야를 설정, 정보통신, 농업 개발(식량안보 확보 및 고용창출), 주택 건설(매년 20만호 주택 건설) 개발을 적극 추진 중에 있음.

- 최근, 국제유가 상승에 따라 알제리정부는 대규모 공공 및 기간사업 조기발주를 추진하면서, 실업자 문제 및 주택부족 문제(가구당 평균 7명), 기본적인 공공 서비스 부족 등 사회문제 해소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

대통령 인적사항

○ 성 명 :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Abdelaziz Bouteflika)

○ 생년월일 : 1937년 3월 2일

○ 경 력

- 1957 서부지역 참모본부 및 조국해방군 총통합참모 사령관 임명

- 1961 Aulnoy에 억류된 혁명지도자와의 접촉을 위해 프랑스 밀입국

- 1962 제헌국회의원 당선, 알제리 초대독립정부 관광/체육 및 청년부장관으로 임명

- 1963 외무부장관으로 임명

- 1974 제29차 국제 연합총회에서 의장 선출

- 1979 스위스에서 망명생활하며 외교고문 역할 수행

- 1995 대통령 당선

- 2004 대통령직 5년 연임 재선 승리

○ 기 타 : 최근 개헌을 통한 3선 집권 준비 중으로 알려짐.

○ 참고사항 : 2003. 12월 방한

외교

제3세계 비동맹외교

○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노선을 지향하고 제3세계 국가의 대변인 역할

- Bouteflika대통령은 74년 제29차 UN총회의장을 역임하던 당시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부수반의 UN연설을 성사시켰고 인종차별을 이유로 남아공을 UN에서 축출한 바 있음.

○ 중동의 리더국으로 자임하면서, 아랍연맹의 이집트 독주에 반기를 제기하면서, 주도권 획득에 노력

- 2005.3.22 아랍연맹 정상회의 개최 (알제)

대프랑스 관계

○ 알제리의 주요 무역 파트너이자 실질적인 최대 수입국인 프랑스와는 경제적으로 긴밀한 협력관계 유지하고 있으나, 국민들의 반불정서는 상당히 높음.

- 이와 관련, 지난 2003년 Chirac 프랑스대통령의 알제리 방문시 합의된 우호협약(Traité d'Amité)은 2005년말 체결될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2005.2월 프랑스 식민지배의 긍정적인 면을 언급한 법안이 프랑스 의회를 통과함에 따라 무산됨.

- 이어 Douste-Blazy 프랑스 외무장관이 최근(2006.4.9-10) 알제리를 방문 우호조약 체결을 재추진 하였으나, 알제리측이 프랑스의 과거사 인식을 이유로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입장을 보임.

알제리의 전체 수출 중 27%가 대 프랑스 수출로서 제1의 수출대상국임.

대미국 관계

1974년 외교관계를 재개하고 긴밀한 경제적인 협력관계를 유지(2004년 미국은 알제리 최대의 원유수입국임)

2001년 9.11테러 발생 이후, 알제리내 테러리스트 척결 및 미국의 대테러 전쟁 명분과 부합하면서, 2005.7월 양국은 사하라사막 지역에서 군사 합동훈련을 실시함.

- 알제리 남부지역에 미군도청기지 설립을 위한 협의

- 미국의 지원하에 알제리-NATO간 군사협력 강화는 물론 미군사고문단 약 100여명이 주재국 파견됨.

- 최근 Rumsfeld 국방장관의 방문 (2006.3), Bedjaoui 외교장관의 방미 (2006.4) 등 양국간 고위인사 교류도 지속

대EU 문제

○ EU는 알제리 무역의 60% 내외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상대임.

- EU는 2010년까지 알제리 등 12개 지중해연안국과 유럽-지중해 자유무역지대(EMFTA)를 창설키로 합의

○ 2002년 4월 알제리는 EU와 준회원협정(Association Accord)을 체결하였으나, 알제리 측 국내 비준문제로 2005년 9월 발효

- 양자는 발효시점으로부터 12년 후 완전한 관세철폐를 목표로 점진적인 관세 인하를 추진 중임.

대마그레브 문제

○ 인근국인 모로코와는 서부사하라 분쟁으로 소원한 관계 (서부사하라 망명정부가 알제리에서 활동)

○ “모리타니아”와는 1969년 친선협정 체결 (대이스라엘 수교로 다소 서운한 관계 유지)

○ 튀니지와 리비아와도 우호관계 유지

중동평화 문제

○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을 적극 지지 입장

- 요르단 및 이집트가 이스라엘과 화해하자 동 국가들과 외교관계 단절한 바 있음.

대중국 관계

알제리 독립 전쟁시 알제리 임시정부 승인해 준 중국에 대해서는 특별한 관계 유지, 특히 과거 중국원조를 각종 SOC사업권으로 전환해줌.

국민들의 정서는 중국을 기대하지 않으나, 알제리 정부는 각종 대형 프로젝트(건설, 통신 등)에 중국의 참여를 적극 지지

사회

종교

○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99%)이며, 각종 생활을 이슬람계율에 근거하여 행하고 있음.

- 기타 소수 가톨릭 신자

○ 주요 종교의식d d

- 하지 : 매년 히즈라력 12월 8일-13일까지 5일간의 메카 이슬람 성지순례가 있는데, 이를 위해 실시하는 이슬람국가의 전반적인 휴가

- 라마단 : 매년 히즈라력 9월은 사도 무함마드가 9월 29일 밤 하늘로부터 지브릴(가브리엘) 천사를 통하여 코란을 최초로 계시받은 달로서, 이달 한 달은 고행과 수도의 달로 일출후부터 일몰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음료, 담배 등을 일체 금식하는 대신 밤에 식사를 하고 특별 예배를 봄. 라마단 행사가 끝나고 3일간은 ‘이둘휘뜨르’라는 제2대 명절로서 전 이슬람권이 친지, 이웃을 방문하는 공휴일

언어

○ 알제리 공용어 : 아랍어

- 상업 활동에는 불어가 광범위하게 통용되므로 주의를 요함.

문화적 특성

○ 알제리인의 경우 프랑스 남부 마르세이유에는 알제리계 80여만명이 집단거주하고 있음. 알제리는 프랑스,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인접국으로 유럽문화 및 브랜드에 친숙하다고 평가됨.

○ 전 가정에 보급된 위성방송수신기를 통해 실시간으로 유럽 주요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할 수 있음.

- 알제리인들은 정서적으로는 이슬람권에 속하지만, 소비자 취향은 유럽문화권에 속하고 있는 영향으로 유럽문화와 브랜드에 우호적임.

○ 이슬람 국가 중에서 여성의 사회참여도가 높은 편이며, 라마단 기간 등을 제외하고는 호텔 및 레스토랑에서 주류 판매가 허용되는 비교적 개방화된 문화를 갖고 있음.

○ 이슬람 기본예절에 따라 인사할 때와 식사할 때에는 왼손을 사용하지 않고, 돼지고기 섭취를 금기시하는 특성이 있음.

교육

○ 수도 알제에는 영미계 학교가 없어 초등학교 저학년은 현지학교나 프랑스계 사립학교에 보낼 수 있으나, 중고교 취학자녀가 있는 겨우 인근 제3국에 유학을 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

○ 지난 2002. 9월 프랑스학교가 개교하여 운영되고 있음. 현지인 학교는 모두 국립이며 정부의 아랍화 정책에 따라 아랍어로 교육하고 있음. 최근 아랍어와 불어를 병행하는 현지 사립초등학교가 많이 세워졌으나 교육시설 및 수준은 미흡한 실정임.

치안

○ 1990년대 초 알제리 테러문제는 국내적 사회불안요소이자 대외적으로 알제리 이미지 손상의 주요 요인이면서, 알제리 경제 발전의 장애요인으로 작용하여 왔음.

○ 최근 알제리가 정세가 안정된 이후, 외국기업들의 알제리 진출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으며, 2005.1월 Bouteflika 대통령의 테러 종식 선언과 함께 동년 9.28 실시된 “평화 및 민족대화합” 헌장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것도 긍정적인 요인

○ 여전히 산악 지대를 중심으로 일부 테러집단이 잔재하고 있어 해당지역 여행시 주의를 요함.

사회보장제도

○ 알제리에 진출한 기업 및 기관은 알제리 사회보장제도에 따라 모든 고용주는 영어개시 10일 이내에 영업장 소재지 관할 사회보장 기관에 신고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CNSS : Caisse National de Securite Sociale)에 가입할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에 급여자와 견습자를 등록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

○ 사회보장금고에 급여자의 월급 중 고용주 26%, 피고용자 6% 납부

- 피고용인 10인 이하 : 각 분기 이후 30일 이내

- 피고용인 10인 이상 : 매월 말 30일 이내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쿠웨이트 (Kuwait) 알기

지정학적 위치

○ 북위 28-30도(한국과 대만 중간), 동경 46-48도

(우랄산맥과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 중간)

○ 쿠웨이트의 총면적은 17,818㎢로 한국의 경상북도 크기와 비슷 하며, 동서의 폭은 150km, 남북의 길이는 195km임. 총면적중 2,590㎢는 1966년 사우디와 쿠웨이트간에 분할된 '중립지대'(Neutral Zone)이며, '부비얀'(Bubiyan), '와르바'(Warba), '훼일라카'(Failaka)로 구성되는 10개의 근해 섬(offshore island)과 쿠웨이트만(灣)에 형성돼 있는 199km의 해안선을 가지고 있음.

지형적 특징

○ 쿠웨이트는 아라비아 반도의 동북부, 즉 걸프만의 머리 부분에 위치한 산유 부국(富國)으로 북으로는 이라크, 남으로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동으로는 걸프만에 인접. 쿠웨이트의 정식 국명인 State of Kuwait는 '작은 요새'(little fortress)라는 의미를 갖고 있음.

○ 쿠웨이트는 걸프만 내륙으로부터 이락에 이르는 진입로를 제공하는 약 간 경사진 단단한 땅을 가지고 있고, 가까운 모래 언덕과 산호초로 둘러싸인 양호한 항구를 가지고 있기에 성장에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음.

○ 동부의 해안지대를 제외하고는 국토의 대부분이 해발 10-80m의 평탄한 사막으로 이루어져 있음.

기후

○ 열대성 사막기후

- 연간 평균기온 : 25도 연중 6개월이 30-53도 사이(연중 최고기온 53도)

- 연중 6개월이 30-35도 사이(연중 최고기온 53도)

-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6-8월의 경우, 세계에서 가장 고온)이고, 겨울에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기온상 가장 추운 지역

약사

국가 형성 과정

○ 16세기 이전부터 터키(Ottoman 제국)의 영향에 있었으며, 18세기초부터 오늘날의 사우디, 이라크, 이란 등지로부터 Amaiza족 등이 이주하여 현 쿠웨이트 민족의 주류 형성

- 756년 초대 Sabah 왕이 황무지를 개척, Koutu라는 지역에 정착

○ 1897년 Mubarak왕은 터키의 쿠웨이트 합병을 피하기 위해 보호를 요청했고, 영국은 지중해와 인도간의 무역이권을 확보하기 위해 1899년  쿠웨이트와 보호조약 체결, 이후 영국이 외교와 국방 담당 

근대 및 현대

○ 1961년 쿠웨이트는 영국과의 보호조약을 우호협력조약으로 대체, 독립국 지위 획득

- 화폐는 루피(Ruffy)에서 디나(Dinars)로 변경

○ 1990.8.2. 이라크가 침공, 쿠웨이트 합병 선언

- 유엔 결의에 따라 미국을 주축으로 구성된 27개국 다국적군의 공격으로 이라크군을 축출하고 1991.2.26. 쿠웨이트 해방

왕위 계승

○ 13대 ‘자베르(Jaber)’ 국왕(77.12 즉위)은 걸프전후 왕정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고조되자 언론검열 폐지(92.2), 여성 참정권 허용(05.5) 등 점진적으로 민주화 추진

○ 2006.1 ‘자베르’ 국왕의 사망으로 ‘사드(Saad)’ 왕세제가 즉위했으나 건강문제로 직무수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10일만에 의회의 결정으로 퇴위

- 왕위계승 관련 법률 4조에는 의회가 재적의원 2/3 이상의 동의로 국왕 퇴위를 결정할 수 있다고 규정

○ 총리였던 ‘사바’가 국왕으로 즉위(06.1), 외교장관․총리로서 40년 이상 풍부한 국정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정국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

- 사바 국왕은 여성참정권 허용, 신언론법 제정, 선거구수 축소 등 선거제도 개선, 각종 규제완화 등 개혁정책 추진

- 쿠웨이트는 GCC 국가중 유일하게 의회 제도를 가지고 있으며, 06.6월 국회의원 선거에 여성이 최초로 입후보하고 투표에 참가

정치 개황

정부형태

○ 국가 형태 : 입헌 군주국

○ 국왕(AMIR)의 권한

- 국왕은 국가수반으로 각료 임면권, 의회 해산권 및 군 통수권을 갖고 있음. 국왕부재 시는 왕세자(CROWN PRINCE)가 업무를 대행하며, 왕세자의 업무대행이 불가할 경우 국왕은 칙령에 의한 대행자를 임명함.

- 종전에는 왕세자가 수상을 겸임했으나 2003.7월 정치 개편 이후 수상직이 별도 분리되었고, 각료수상의 추천에 따라 국왕이 임면함.

- 각료는 국가의 정책에 대한 집단 책임과 함께 개별 부서의 업무에 대한 개별 책임을 짐.

- 단일 도시국가 형태로 지방자치 제도는 전혀 확립되어 있지 않으며, 전국은 행정부 산하로 6개의 GOVERNORATE로 나뉘어 있음.

내각

보통, 비밀, 직접 선거에 의해 선출된 50명의 의원과 당연직 의원인 15명의 각료로 구성되며, 구성각료는 의원겸직 가능

의원의 임기는 4년으로 연임 제한은 없으며 법률안 의결권 및 왕세자 임명 동의권을 가짐.

의원 선거권자는 문자 해독이 가능한 21세 이상의 쿠웨이트 시민이며 왕족, 군인, 경찰및 보안관계 종사자는 투표권이 없음.

사법제도

3심제이며 모든 법원은 형사, 민사, 가정사건 등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건을 다루고, 계엄 시 군사법정이 설치되며 재판관은 국왕이 임명함.

○ 대법원 - 대법원장과 부원장이 있으며 판결은 5인 1팀의 법관에 의해 내려짐.

○ 고등법원 - 법원장과 부장이 있으며 1심 또는 즉결심판에서 불복한사건에 대해 판결함. 판결은 3인 1팀의 법관에 의해 내려짐.

○ 1심 법원 - 형사 사건이나 단독심의에 의해 내려진 판결을 재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단독심으로 진행됨.

○ 헌법 재판소 - 헌법에 위배되는 사항을 다루기 위한 법원으로 5명의 상시 재판관과 2명의 임시 재판관으로 구성되어 있음. 헌법소원은 의회나 정부 또는 하급법원에서 제기되고 있음.

각료명단 및 주요인사 인적사항

국왕

○ 이름 : His Highness The Amir, Sheikh Sabah Al-Ahmed Al-JaberAl-Sabah 아미르,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자베르 알-사바

○ 생년 : 1929년

○ 출신 : 3대 국왕인 Amir Shaikh Jaber Al-Ahmed Al-Sabah(아미르 셰이크 자베르 알-아흐마드 앗-사바)의 동생

○ 경력

- 1962년 공보부 장관 역임

- 1965~1967년 재경부장관과 석유부장관대리 역임

- 1963~1991년 외무부장관 역임

- 1998~2003년 외무부장관과 제1부총리 겸임

- 2003~2006년 총리 역임

왕세자

○ 이름 : His Highness Sheikh Nawaf Al-Ahmed Al-Sabah(Amir’sbrother) 셰이크 나와프알-아흐마드 앗-사바(현 국왕의 동생)

○ 생년: 1937년

○ 경력

- 1962년 하왈리 주지사 역임

- 1978~1988년 내무부 장관 역임

- 1988~1991년 국방부 장관 역임

- 1991~2003년 국가방위군 부의장 역임

- 2003~2006년 내무부 장관과 부총리 겸임

총리

○ 이름 : Sheikh Nasser Al-Mohammad Al-Ahmad Al-Sabah

○ 생년 : 1940년

○ 경력

- 1965년 왕실 의전장관역임

- 1968년 이란대사 역임

- 1985~1988년 정보부장관 역임

- 1988~1990년 노동사회부장관 역임

- 1990~1991년 국무부장관 역임

- 1991~2006년 왕실 의전장관 역임

외교

외교정책기조

○ 독립 이후 비동맹 중립외교를 표방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친서방 정책을 견지해 왔으나, 81년 5월 사우디, 바레인, UAE, 오만, 카타르 등과 GCC(페르시아 만안(灣岸) 협력 회의)를 창설, 강대국의 개입을 배제한 자주적 역내집단 안보체제 구축을 모색하면서부터 미∙소 양 진영에 대한 등거리 외교정책과 엄정 비동맹 정책을 추구

○ 이러한 외교적 노력의 실례로 81년도 SABAH 외상의 방소, JABER 국왕의 발칸 및 동구제국 순방, 82.6월 SABAH 외상의 동구 및 소련 방문, 미∙소 양측으로부터의 무기구입 등을 들 수 있는 바, 이는 친서방적인 종래의 이미지에서 탈피하기 위한 외교적 전략으로 해석됨.

○ 걸프전 이후 외교정책은 안보체제 구축을 최우선으로 하여 미국, 영 국, 프랑스, 러시아와 방위 조약을 체결하는 등 초강대국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음.

대미국 관계

○ 쿠웨이트의 동∙서 등거리 외교원칙에 입각, 중립적인 태도를 취해 왔 으나 쿠웨이트항공기 납치 및 국왕 피격 사건 시 미국의 신속한 태도 표명으로 85년부터 관계가 호전됨.

○ 미국의 대 이란 무기 판매 사건으로 쿠웨이트에 있어서 미국의 신뢰성이 크게 실추되었으나 2차에 걸친 미해군의 이란 쾌속정 및 석유시설 공격과 대 이란 무기 금수조치에 대한 명확한 태도 표명으로 신뢰성도 크게 회복됨.

○ 미국을 위시한 연합군에 의해 이라크로부터 해방된 91년 2월 이후 방위조약을 체결한 이후 경제적인 모든 면에서 미국 기업에 우선권을 부여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있으며, 2003년 이라크전을 통해 더욱 공고히 되고 있음.

아랍-이스라엘 분쟁

○ GCC 회원국들과 공동보조 아래 미국․EU의 중재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의 조속한 해결을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

○ 이스라엘에 대해서는아랍권의 정서를 고려, 관계개선에 미온적이며 통상 관계도 중동평화협상 진전 상황을 보아가며 결정한다는 입장

유럽 및 러시아와의 관계

○ 93.11월 상호방위 조약 체결 이후 합동 군사 훈련을 계획하는 등 군사외교적 관계를 긴밀히 유지하고 있음.

○ 이라크로부터의 해방 후에도 이라크의 위협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으며 자국의 방위를 위한 UN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협력

○ GCC국가와 가장 밀접한 교역 파트너인 EU의 시장통합에 대응하기 위하여 GCC국가가 추진하고 있는 역내 자유교역 및 대EU 수입품의 수입 관세율 동일 적용 등의 추진에 회원국으로서 적극적으로 대응

대아시아 관계

○ 자국산 원유의 최대 도입국인 한․일과의 관계를 중시하고 있으며, 한․일의 쿠웨이트 진출기업 및 근로자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 견지

○ 걸프전 시 다국적군에 참여한 한국의 역할에 사의

○ 2004.7 '사바‘ 총리(현 국왕)는 한국․일본․중국을 함께 방문한 바 있으며, 최근 들어 중국, 베트남과의 관계 강화에 적극적 자세를 보이면서 에너지 협력 및 금융투자 확대 추진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 이라크와는 1990년 걸프전이라는 악몽이 남아 있으나, 최근 들어 이라크와의 과거 청산 및 미래지향적 협력관계 수립에 적극적 자세

-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말리키’ 총리의 2차례 쿠웨이트 방문(06.7)및 ‘국경선 설치에 관한 양해각서’ 체결(06.11) 등을 계기로 적대관계청산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라크와의 국경분쟁, 이라크 내부 혼란으로 인한 난민 유입 가능성 등에 대해 우려하여 친미 성향의 이라크 신정부정책을 지지하고, 이라크의 조속한 안정화를 지원

- 최근 대이라크 부채탕감 문제에 다소 신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이라크 재건사업에 5억 6,000만불 지원

○ 이란과의 관계는 기본적으로 이란의 핵개발은 IAEA 체제하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특히 이란의 핵개발로 인한 걸프지역의 해수오염 가능성에 우려

○ 2006.10 미국 주도의 PSI 해상 기동 훈련시 이란은 쿠웨이트가 참여하지 않도록 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하였으며, 이에 따라 쿠웨이트는 옵저버 자격으로만 참가

사회

교육

○ 공립학교 및 사립학교는 초, 중, 고 각 4년

○ 국제학교(사립학교)중 American School은 미국학제, British School은 영국학제를 따름

○ 학교현황

- 국.공립학교 : 현지인만 입학

- 사립 아랍어학교 : 현지인 및 외국인 입학가능

- Int‘l School : American School 및 British School 등 다수

- 학비는 US$5,000 - US$13,000 범위

○ 쿠웨이트대학 (www.kuniv.edu.kw)

- 현지인 및 외국인 입학가능 단, 외국인은 교육부장관 승인사항

- Tel : 4988-888

○ 사립대학

- American University of Kuwait, Gulf University, Australia University

언론

○ 채널 4개가 있으며 아랍어방송 1개, 영어방송 1개, 스포츠․오락방송 1개 등 아랍어 방송 2개가 있음. (모두 국영방송)

영어방송의 경우 대부분이 미국방송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영하고 있음.

○ 위성수신 TV Channel이 다양하며 CNN, BBC, STAR TV 시청 가능

Arirang TV, Sun Channel, YTN TV등 한국 TV방송도 가입시 시청가능

○ 일간지 - 아랍어 현지 신문 5개, 영자신문 3개

사회적 갈등 요인

○ 국민을 1등국민(참정권 향유)과 2등국민(귀화후 20년 미경과자로서 참정권 없음)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약 12만명의 아랍계 무국적자(Bedouns) 및 외국인 근로자 등이 공존하면서 사회의 이질감 형성

서구식 자유를 향유코자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보수 이슬람주의 자들이 사회를 이슬람화 하려는 동향이 있어 종종 갈등 노정

○ 외국인은 쿠웨이트인 Sponsor가 있어야 사업과 체류를 할 수 있는 바, 외국인 근로자의 체류비자를 둘러싸고 쿠웨이트인의 비자 알선 폭리와 인권유린이 사회문제화

○ 남.녀간의 성비 불균형(많은 외국인 독신 근로자들의 존재로 남성이 압도적인 다수 차지), 본인 의사에 반하는 결혼으로 이혼율 증대, 공공부문의 흡수능력 한계로 인한 쿠웨이트인들의 실업율 증대도 점차 사회문제로 대두

비즈니스 에티켓

○ 복장

- 반바지 착용 금지

- 여성의 경우 전통의상인 ‘아바야’ 반드시 착용 요망

- 여성이 남성 앞에서 손목과 발목 및 얼굴을 노출시킬 경우 외국인일지라도 종교경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 유의

○ 식사문화

- 세 번 이상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남.

- 전통식당에서 오른손으로만 식사해야 할 것에 유의

- 개, 돼지, 맹수류, 맹금류, 파충류와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 죽은 짐승의 고기와 피, 내장 등을 먹지 않는 것이 관례

- 술을 권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남.

- 쿠웨이트는 주류, 마약 반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입국 시 일체의 주류를 소지해서는 안됨. (마약 반입은 최고 사형)

○ 인사

- 남성 간에는 악수교환이 일반적인 인사법

○ 선물

- 이슬람 문화는 뇌물수수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선물전달에 유의

- 특별한 기회에 소박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함.

○ 약속

- 현지인은 시간관념 부족

- 비즈니스 미팅의 경우 잦은 연락을 통해 약속을 지키도록 유도

사회문화

○ 가부장적인 가정생활

- 남편의 권위주의, 남아선호사상

- 사회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여성인권 및 사회진출 요구 중

○ 결혼문화

- 부족주의 시대관습 계승하여 근친간의 결혼형태가 만연

- 혼인을 위한 신랑의 막대한 지참금 부담이 사회문제화

관습및 체류시 주의사항

○ 관습

- 전통적 회교국으로서 사회생활의 근간을 이슬람 교리에 두고 있음.

- 대가족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사회발전에 따라 점차 핵가족화 경향

- 이슬람 교리에 따라 4번까지 중혼이 가능하나 중혼은 점차 줄어들고 있음.

- 매춘, 음주, 돼지고기, 이자놀이, 도박 등은 금기사항

○ 체류 시 주의해야 할 사항

- 이슬람교도가 아닌 경우 이슬람 사원에 들어가지 말 것.

- 기도하고 있는 사람의 앞을 지나가거나 말을 걸지 말고, 기도할 때 까는 담요를 밟지 말 것.

- 친한 경우가 아니면 종교나 상대방 부인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말 것.

- 여주인이나 여자식구를 위해 선물을 사오거나, 여주인의 안부를 물어서는 안되며 거리에서 여인의 사진을 찍어서는 안됨.

- 여성의 경우 옷차림은 정숙하여야 하며 어깨를 드러내는 옷은 피해야함.

- 라마단 단식 기간 중에는 아랍인 앞에서 먹거나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지 말 것. (위반 시 구금)

- 특별히 의심되지 않는 쿠웨이트인이 제공하는 아랍커피와 홍차는 받아 마시는 것이 예의임.

- 물건을 주고받을 때는 바른손을 사용

- 쿠웨이트인과 면담 시, 신발바닥이 보이도록 앉는 것은 실례

- 길거리나 주요건물 앞에서 사진촬영 금지

(적발 시 벌금 부과 및 차후입국 시 입국금지 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지정학적 위치

아라비아 반도의 서해안 중간지대에 위치, 걸프만쪽으로 약 160㎞ 북쪽으로 뻗어 있는 반도 (남-북 160㎞ / 동-서 80㎞)

Halul 섬 등 다수의 섬을 포함하고 있으며, 사우디와는 육지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

지형 특색

○ 대부분의 지형이 사막평지로 되어 있으나, 60m 높이의 모래 둔덕이 있음. 해발 최고지점은 120m 높이임.

약 6천만년전 해수아래 침잠 되어 있은 영향으로 다수지역에 소금지대가 산재함.

민족구성

○ 카타르인은 17C-18C에서 19C 초엽까지 인근지역에서 이주해 온 아랍계 인종임.

○ 카타르인 외에 인도․파키스탄․이란 등 100여개국의 외국인이 거주함.

주요 도시

○ Doha : 동해안의 항구도시로 수도임. 정치‧경제‧사회생활의 중심지역으로 카타르 전체 인구의 절반이상이 거주함.

○ 기타 석유화학 산업도시인 Messaieed, 유전지역인 Dukhan, 가스생산 지역인 Ras Laffan, Doha 인근 해변도시인 Al-Wakrah와 Al-Khor가 있음.

종교

공식종교는 이슬람이며, 주요 입법원은 회교 샤리아법임.

○ 절대 다수 카타르인은 순니파 이슬람교도이며, 이슬람교 일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간주되고 있음.

이슬람교 이외의 외국인의 종교에 대해서는 비공식 묵인 등 관용적 태도를 취함.

약사

고대

고고학적 조사에 따르면 BC 4C 남부 이라크와 북부 걸프 아라비아 지대에 번성한 Ubaid 문명이 카타르에까지 미쳤으며, 인간 정주의 흔적을 남김.

BC 5C에 원주민이 정주하기 시작했으며, AD 2C에 아랍세계 지도에 Qatra로 지명이 표기

중세

이슬람 여명기에 Mandher 왕조의 지배하에 있다가 그후 Khawarej와 Qarameta의 지배를 받음.

○ 6C에 인도행 무역전략 거점으로 포루투갈의 통제하에 있었으나, 곧 오토만 터키의 영향권으로 들어감.

근대

○ 1860년대 Bani Utab족 카타르에 정착

○ 1868 : Sheikh Mohamed bin Al-Thani족 영국과 선린 외교관계 수립, 협정 체결 (이후 현재까지 Al-Thani 왕가가 지배)

○ 1872 : Ottoman Turkey 지배

○ 1876 : Ottoman Turkey의 정부 수립

○ 1880 : Bahrain과 영토보호 협정 체결

○ 1899 : Kuwait와 영토보호 협정 체결

○ 1913 : 영국과 Ottoman Turkey 제국간 협정체결로

카타르 독립인정

○ 1914 : 영국과 Ottoman Turkey 제국간 정식 협정 체결로 영국은 카타르 국내 문제 불간섭 언약

(동시에 카타르 반도내의 터어키 세력권 규정)

○ 1916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터어키 세력 물러가고 영국세력 신장

현대

○ 1961 : OPEC 정회원으로 가입

○ 1970 : 영국 보호령으로부터 아랍 연맹 가입을 허락하는 신헌법 제정 독립 선포

○ 1971. 9. 3 : 영국과의 보호협정 폐지, 완전독립을 선언

○ 1971. 9. 4 : Sheikh Ahmed bin Ali Al-Thani 국왕(Emir) 즉위

○ 1971 : 아랍연맹 및 유엔에 각각 가입 (9.11 및 9.21)

○ 1972. 2.22 : 궁정 쿠데타로 국왕 (Sheikh Khalifa bin Hamad Al-Thani) 즉위

○ 1977. 5.31 :Hamad 왕세자 국왕 후계자로 지명

○ 1995. 6.27 :궁정 쿠데타로 현 국왕 (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 즉위

○ 1996.10.22 :현 국왕의 3남인 Sheikh Jassim bin Hamad Al-Thani를 왕세자로 책봉

○ 1999. 3. 8 : 중앙자치의회 의원 선거 실시 (29명)

○ 2002. 7. 2 : 영구헌법안 발표 (5장 150조)

○ 2003. 4. 7 : 중앙자치의회 의원 선거 실시 (여성의원 1명 최초 당선)

○ 2003. 4.29 : 영구헌법안 국민투표실시 (96.6% 찬성, 통과)

○ 2003. 8. 5 : 현 국왕의 4남인 Sheikh Tamim bin Hamad Al-Thani로 왕세자 교체

○ 2003. 9.16 : 제1부총리 (외교장관 겸직) 및 제2부총리 (에너지․산업장관 겸직) 신규 임명

○ 2005. 6. 1 : 영구헌법안 발효

○ 2007. 4. 1 : 지방선거

○ 2007. 4. 3 : 정부조직개편 (복수부총리제를 단수부총리제로 개편)

정치개황

국왕 (Emir)

2003. 4월 통과된 영구헌법에 의하면 국왕(Emir)은 행정부를 관장하며, 자문위원회(Advisory Council, 우리의 국회에 해당)에서 제정한 법률안 거부권과 자문위원회의 해산권을 가짐.

- 헌법이 완전하지는 않으나 민주 헌법의 요체인 3권 분립 도입하여 자문위원회의 법제정권을 인정함으로써 영구헌법 이전에 국왕이 독점적으로 보유하였던 입법권이 대폭 약화됨.

○ 국왕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모든 법령을 비준, 공포하고, 각의를 주재하며, 군 통수권자가 되는 외에 법률에 따라 정부각료와 군인을 임명하고, 자문위원을 임명

내각

내각은 국왕의 위임을 받아 각종 법령을 집행하는 최고 행정 기관임.

○ 각료는 각종정책을 집행하는 책임을 지며, 법령안 제안 및 집행, 재정감시, 예산준비, 국가 이익의 대외적 수호 등 임무를 수행

총리, 부총리(2명, 장관 겸직), 9개 부처 장관, 국무장관 4명, 무임소 국무장관 8명으로 각료회의(Council of Minister)가 구성됨.

자문위원회

○ 영구헌법에 의한 자문위원회는 4년 임기로 총 45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이중 30명은 직접․보통선거에 의해 선출되고 나머지 15명은 국왕이 임명하는 위원으로 구성됨.

- 과거 자문위원회는 72년 발효된 헌법에 따라 전원 국왕이 임명한 20명(75년 30명, 96년 35명으로 증원)으로 발족되었고, 그후 국왕 칙령으로 임기가 1년에서 6년 연장되었으며, 이후 4년씩 중임되었음.

법률 제정, 각의에서 부의되는 예산, 법령안, 기타 주요안건을 심의하고, 제반 제안을 발의할 수 있는 등 의회 기능을 담

○ 신 영구 헌법에도 서구 개념의 의회제도는 규정되어 있지 않으며, 정당 활동이 금지되어 있음.

사법제도

법무부 내에 5종으로 구별되는 법원이 있음.

-하급민사법원 (Lower Civil Court) : 1심

-상급민사법원 (Upper Civil Court) : 2심

-하급형사법원 (Lower Criminal Court) : 경범 취급

-고등형사법원 (Higher Criminal Court) : 중요 사건 취급

-항소심 법원 (Court of Appeal) : 민사, 형사 최고 법원

○ 특수법원으로 전통적인 이슬람법원(Sharia)이 있으며, 이는 이슬람교도의 개인문제에 관련한 판결과 코란의 율법에 대한 유권적 해석을 내리는 종교재판소이며, 그외 종교행정에 있어 광범위한 감독권을 갖고 있음. 동 이슬람법원은 04. 10월 사법 개혁법 공포를 통해 05.1월부터 법무부 내로 편입됨.

○ 지난해 카타르 여성의 권익보호를 위해 국왕비의 주도로 가정법원을 설치하여, 이혼시 여성의 위자료 지급, 양육권 문제, 아동보호 문제 등을 전담함.

국왕 인적사항

○ 성 명 : Hamad bin Khalifa Al-Thani

○ 생년월일 : 1952년 (칼리파 전 국왕의 장남)

○ 출 신 지 : Doha (수도)

○ 학 력

- 카타르에서 초․중등 교육 이수

- 영국 Sandhurst 육군사관학교 졸업 (1971)

○ 경 력

- 1972 카타르군 총사령관

- 1977 왕세자 책봉, 국방장관 취임

- 1979-91 청소년 복지 최고위원회위원장

- 1992 국왕으로부터 내각임명권 수임으로 사실상 국정운영

- 1995 전국왕(아버지) 외유 중 정권장악, 국왕즉위

○ 가족관계 : 부인 및 아들 5명

○ 참고사항 : 99. 4월 방한

외교

외교정책기조

GCC 역내 각국(쿠웨이트, UAE, 오만, 바레인)과 보편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주변 이슬람․아랍국가와의 연대감하에 우호관계를 갖고 있지만 친서방 온건 노선을 견지, 실리적 균형 외교를 취하고 있음.

<GCC 및 아랍권 협력>

아랍권 및 GCC 국가와의 전통적인 유대협력 관계를 바탕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중동평화 문제 등 주요 국제문제에 있어 GCC 국가와 원칙적으로 공동보조를 취하고 있음.

<친서방․친미 외교정책>

실용주의 노선 추구로 2003년 사우디에서 주둔중인 미군기지를 전격적으로 유치하는 등 미국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시하면서 경제적으로는 서방국가와의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함.

<아시아국가와의 관계 확대 추진>

최근 카타르는 아시아국가의 일원이라는 기치하에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 유치 등 아시아국가와의 관계 강화에 적극 나서고 있음. 특히 서구와 견줄만한 기술과 산업생산력을 가진 한국, 일본, 싱가폴 등과의 협력 확대에 적극적임.

대이스라엘 관계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의 전면 철수 및 팔레스타인의 독립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이스라엘 무역대표부의 설치를 허용하는 다소 현실적 노선을 추구함.

○ 2000. 11월 카타르에서 개최된 이슬람 국가 정상회의(OIC) 직전에 이란, 사우디 등의 압력에 굴복, 공식적으로는 자국의 이스라엘 무역 대표부를 폐쇄하였으나, 이스라엘측에서는 무역대표부를 유지하고 있고 2002. 7월, 2003. 5월 각 파리에서 이스라엘과 외무장관급 회합을 갖는 등 일정 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음.

○ 2006. 7월 Hamad 제1부총리겸 외교부장관의 이스라엘 방문, 2007. 1월 Peres 이스라엘 부총리의 카타르 방문 등 이스라엘과의 관계 개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보임.

팔레스타인 문제

아랍 최우선 현안인 중동평화 협상에 있어 여타 아랍국가들처럼 이스라엘의 점령지로부터의 전면철수 및 팔레스타인의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독립국가 수립과 국권보호를 전폭 지지하는 원칙적 입장하에 Quartet에 의한 중동 평화정착 로드맵 적극 지지하고 있음.

○ 팔레스타인내 Hamas-Fata간 통합 정부 구성 협상에 적극 개입, 중재에 나서고 있으면서 팔레스타인에 대한 지원을 강화

미국과의 관계

대미 관계를 주재국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주변 아랍 국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미국과의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적극적인 대미 협조 자세를 보이고 있음.

서방국가중 미국에 대해 카타르 내 주요 병참기지 건설을 허용하여, 약 10,000명의 여단병력을 빠른 시간내 무장시킬 수 있는 Pre-Positioning Base로서의 병참기지가 설치

-동 병참기지는 최신정찰기, 전투폭격기, 탱크 등 주요 군사장비를 보유함으로써 유사시 동 군사기지를 통해 중동에서 지역 분쟁에 대해 빠른 군사개입을 할 수 있게 됨.

○ 한편, 대 이라크 전쟁시 도하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아스 사일리야 기지(Camp As Sayliyah)에 미군 중부사령부의 전진 기지를 제공하였으며, 전쟁 종료후 2003년 8월 사우디 주둔 미 공군기지를 카타르내 알 우데이드(Al Udeid) 공군기지로 이전하는 등 최근 양국간 군사협력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고 있음.

사회

인구

전체인구는 외국인을 포함 약 90만명(카타르인은 약 20만명)으로 추정되며, 아랍계 40%, 인도 18%, 파키스탄 18%, 이란 10%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출생률은 1천명당 15.6명, 사망률은 4.8명 선이고, 연령별 인구 분포는 0-14세 (23.1%), 15-59세 (72.9%), 60세 이상 (4%)으로 나타남.

교육

카타르 국민은 대학교까지 무료로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으며, 외국인에 대해서도 무슬림인 경우에 한하여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음.

카타르는 국력을 기울여 과학기술의 발전과 인재 양성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학업 성적(고등학교 40% 이상 수준)만 좋으면 전액 국비 해외유학 보장

카타르 대학은 현재 6개 단과대학에 학생 수 8,400여명, 교수진 600여명으로 년 1,380여명 내외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으며, 교수진중 70%가 영국, 이집트, 이란 등지에서 초빙, 충원되고 있어 외국 교수의 비중이 높은 편임.

동 대학의 특이한 점은 전체학생수의 약 70%가 여학생으로 성비가 불균형한 바, 동 불균형의 이유는 남학생들은 주로 해외로 유학을 가는 반면 여학생들은 이슬람 관습상 해외유학이 어려워서 국내 교육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임.

- 단 여성인력의 고학력 추세에 따른 여성의 사회진출로 여성인권이 대폭 신장 중

○ 카타르 정부는 중동지역의 교육의 중심지로 부상하겠다는 전략하에 교육부문에 국가적인 투자를 거행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적극적인 교육 정책이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교육도시를 설립하게 됨.

언론

○ 1996년 Hamad 현국왕의 즉위 이후 즉각적인 언론검열의 폐지로 언론보도의 자유는 진전됨. 단, 일정 사항은 아직 금기로 남아있고, 거의 모든 언론들이 카타르 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어 언론인의 자율적인 보도 제한이 실시됨.

라디오 및 TV 방송은 각기 아랍어, 영어방송을 별도 방영하며, 영어뉴스 방송은 다음과 같음.

- 라디오 (QBS) : 06:00, 07:30, 08:30, 13:00, 18:00, 20:00

- QTV (CH.69) : 20:00 (30분)

- Al-Jazeera TV (CH.76) : 전세계 전역 아랍어 시사 TV

○ 신문

-영 자 지 : Gulf Times, The Peninsula

-아랍어지 : Arrayah, Al-Sharq, Al-Watan

종교

국민 거의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와하비파에 속하는 순니파로서 사우디와 비슷한 엄격한 이슬람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음.

이슬람교의 교리, 문화, 관습의 전파를 위하여 종교부를 두고 있으며, 종교부는 이슬람 사원의 건립 및 관리, 회사금의 관리, 이슬람문화 보급, 서적발간 등을 맡고 있음.

○ 카타르에서 지켜지는 중요한 종교행사는 아래와 같음.

- Ramadan : 이슬람력 라마단 (이슬람력 9월) 1개월간의 고행과 금식의 기간으로 양력으로는 매년 변동되나, 2006년도에는 9.24 - 10.23 이었음.

- Eid Al-Adha : 이슬람력 둘히자 (이슬람력 12월)

제10-13일까지로 공식 공휴일임.

○ 카타르 정부는 구미 선진국 인의 진출과 기타 외국 인력의 증가와 이들의 압력에 따라 99. 4월부터 기독교 등 타종교에 대해서도 제한된 범위내에서의 종교활동을 허용하기 시작하여 일정지역에 외국인 전용의 성당 등 종교시설 건립을 허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

생활양식

국민의 모든 일상생활은 이슬람 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음. 그러나, 미국 등 선진국과의 잦은 접촉과 구미 문물의 도입으로 생활면에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음.

남녀간의 내외가 엄격하며 사우디만큼 보수적은 아니나, 여성의 직장, 대외활동 등 사회참여가 거의 없음. 그러나, 최근 중앙자치의회 후보로 여성이 입후보하여 여성의원이 1명 탄생하고 국왕비가 적극적으로 공무원 및 국영기업체에 카타르인들을 고용하는 카타르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여성 인력 사회 활동이 점차 증가하고 있으며, 또 여성의 운전이 가능함.

- 서구문물의 도입과 해외여행, 백화점, 슈퍼마켓등의 발달로 병원, 교육 기관 일부 등 출입처가 따로 되어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녀간의 구분이 완화되어 가고 있음.

식생활에 있어서 이슬람교 관습에 따라 주류, 돼지고기, 맹수, 파충류는 금기사항임. 이중 주류는 고급 호텔을 제외한 요식업소에서 판매 또는 접대치 않고, 이를 소지하거나 판매하는 것은 처벌되나, 외국인의 경우 자택에서 마시는 것은 묵인되고 있음.

카타르는 남녀 모두 전래의 아랍 복장을 상용하고 있어 외국인 또는 여타 아랍권 국민과 구별 가능함. 아랍복장을 상용하는 걸프 국가(바레인 등은 서구복장 착용 경향)의 경우도 모양이 다소 상이함. 아랍 복장은 공식복장이며, 남자의 경우 두건 Qutra와 긴 흰옷 Dishta(겨울철에는 유색도 착용)를 입으며, 왕족과 정부 고위층은 각기 다른 소매 없는 두루마기 Al-Abaah를 걸쳐 입음.

여성의 경우 연령에 따라 상이하나, 성년 여자는 마스크 Al-Battoulah와 검은천 Bousheih로 얼굴을 가리고 몸 전체를 감싸는 Al-Daraa를 착용함.

관습 및 국민성

○ 여타 아랍국가들과 같이 이슬람을 국교로 하고 있어 이슬람 종교와 문화가 개인과 사회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

-따라서 공식석상에서의 금주, 돼지고기 섭취 금지, 일부다처제, 가부장제, 전통복장 착용 등의 이슬람 풍습과 관습이 그대로 남아 있음.

○ 다양한 서구식 문화의 유입과 외국인 노동력 유입에 따라 이슬람문화의 영향력이 점차적으로 약화되는 추세로서 외국인의 생활 (복장 및 음주 등) 및 종교에 대해 묵인하는 등 관용적 태도를 취하고 있는 등 개방적인 모습도 목격됨.

○ 가부장제 사회로서 가문 또는 가족을 향한 의리가 무엇보다 우선하며 동일 가문내에서도 친형제와의 우애가 친척간 유대감보다 중요함.

-가족 중시 성향으로 인해 사회적 책임과 공중도덕 관념이 상대적으로 미약

○ 카타르인들은 혈연 가족관계 및 체면․명예를 매우 중시하며 이에 따라 자신의 재산 및 부계혈통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음.

-혼인시 개인의 외모․능력․성격 보다는 가계․혈통이 중요한 고려 요소로 작용함.

○ 카타르인들은 순박하며 인정이 많고 친화력이 있으나, 자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며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음.

○ 특히 “조급하게 굴지말라”라는 코란의 계율에 따라 느긋하여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것을 믿음이 없는 사람의 경박한 행위로 간주함.

○ 라마단 단식기간중에는 먹거나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고 껌을 씹는 것을 삼가하여 함. (해가 뜨기 시작해서 질 때까지)

○ 특별히 의심되지 않는 카타르인이 제공하는 아랍커피와 홍차는 받아 마시는 것이 예의이며, 더이상 마시지 않을 경우는 잔을 들고 세번 흔들어 줌.

비즈니스 참고사항

○ 에이전트 제도

- 카타르는 여타 중동국가와 마찬가지로 Agent 제도가 매우 보편화되어 있음. 현지대리인 또는 대표를 통해서만 판매행위가 가능하고, 외국인이나 외국기업은 직접판매 행위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국업체가 카타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Agent 선정이 필수적이며, 좋은 대리인 선정이 사업성공의 중요한 요소임.

- 현지에이전트의 변경은 대단히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대리인 선정을 아주 신중히 해야함. 선정시에는 현지시장을 직접방문, 지명대리인의 잠재력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유능한 대리인은 현지 정부 및 기업조직에 광범위한 접촉망을 형성, 주요 정부발주 입찰에 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어야 함.

○ 스폰서 제도

- 스폰서는 카타르 장기체류비자 등을 발급받기 위한 일종의 보증인으로 카타르에 지사를 설치하는 경우 반드시 카타르 국적인의 스폰서를 구하여야 하며, 매년 쌍방간의 합의에 의해 일정액의 스폰서료를 지급해야 함.

- 스폰서의 동의가 있어야 장기체류가 가능하며, 주의할 점은 카타르로부터 출국시에도 스폰서의 동의가 있어야 출국이 허용됨.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사우디 아라비아 (KINGDOM OF SAUDI ARABIA) 알기



지정학적 위치


○ 아라비아 반도 (북위 16-32도, 동경 36-56도에 위치)

- 인접국가 : 요르단/이라크(북), 페르시아만 연안의 쿠웨이트/바레인/카타르/UAE 등(동), 오만/예멘(남), 홍해를 사이에 두고 이집트/수단/에리트레아(서)와 마주함. (국경선 길이 : 4,431km)


지형 특색


면적이 약 57,000㎢인 북부의 나푸드 사막(Nafud)과 약 65만㎢ 면적의 남부 룹알할리(Rub' al-Khali) 대사막은 세계 최대의 연속 사막지대

- 전 국토의 95%가 사막, 경지의 0.5%가 관개에 의존


기후


○ 사우디 아라비아는 뚜렷한 3개의 기후지대로 나뉨.

- 아시르 지방(예멘국경지역) : 연평균 강우량 480mm 정도, 습윤온화

- 서부 산악지대 및 초원지대

- 사막지대(전 국토의 95%) : 겨울철 14-23도, 여름철 38-54도

○ 동부와 내륙지방을 중심으로 Shammals라 불리는 모랫바람이 늦은 봄부터 초여름에 걸쳐 불어 3-4월에는 약 2주간, 6월에 절정에 달하며, 통상 한달 평균 20일 이상 모랫바람 지속


종교


○ 엄격한 종교생활 강조

- 사우디 아라비아는 헌법을 제정하는 대신 이슬람경전에 기반한 이슬람법을 국법으로 삼음.

○ 종파에 따른 차별

- 자국민 이슬람 종파 현황 : 수니파 90%, 시아파 10%

- 수니파 : 엄격한 종교생활을 중시

- 시아파 : 상대적으로 개방적, 자유로운 분위기

- 시아파에 대한 사우디 정부의 차별 : 병역의무 면제, 정치외교적 참여 제한, 출판 및 언론진출 제한

○ 라마단 : 이슬람 네 번째 규율에 의해 한달간 일출부터 일몰까지 금식, 공공장소에서의 술, 담배, 식사 등도 금지. 여행객에도 준수 요구


약사



국가 형성 과정


○ 아랍족의 발상지는 중앙아라비아와 북부아프리카로 추정

- 사우디 동부는 BC 4000-5000년 전에 이라크 남부로부터 이주시작

○ BC 500년 경 나바트인(Nabateans)들이 사우디 북서부 지방을 거점으로 아라비아 반도 북부 통치

○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는 유목민(베드윈)과 오아시스 정착민이 거주하였으며, 오아시스 도시 중 메카와 메디나 번창

○ 612년 경 마호메트가 이슬람을 포교한 이후 마호메트 사후 10년인 640년 경까지 페르시아에서 이집트에 이르는 이슬람 제국 건설

○ 이후 이슬람 제국의 중심지가 시리아의 다마스커스, 이라크의 바그다드로 이전하면서, 이슬람 성지순례의 목적지인 메카와 메디나를 제외한 사우디아라비아 지역의 중요성 감퇴


근대 및 현대


○ 18세기 중반, 압둘 와합과 무함마드 빈 사우드가 제휴, 정통 이슬람 원리에 입각한 사회개혁운동인 와하비 운동 시작

○ 19세기 말, 사우드家의 라이벌인 라쉬드家는 오스만 터키의 지원 하에 사우드가의 거점인 리야드를 점령

○ 1927년 압둘 아지즈왕(이븐 사우드)가 리야드를 탈환, 영국군의 지원 하에 오스만 터키군을 격퇴하여 통일

○ 1932년 9월 23일 사우디 아라비아 왕국 선포

○ 1938년 미국회사에 의해 동부지역 석유생산 성공

○ 1944년 ARAMCO 석유회사 설립

○ 2005년 제8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실시


왕위 계승


○ 1953년 사우드 제2대 국왕 즉위

○ 1964년 파이잘 제3대 국왕 즉위

○ 1975년 칼리드 제4대 국왕 즉위

○ 1982년 파드 제5대 국왕 즉위

○ 2005년 8월 압둘라 제6대 국왕 즉위 (제6대까지 국왕은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의 아들들이 계승)


정치 개황



정부형태


○ 정교일치의 국왕중심제 (이슬람 절대군주국)

- 국왕이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을 행사하며 종교의 수장을 겸임

- 2005년 8월 1일 사우디 제5대 파드(Fahd) 국왕이 사망하면서 이복형제인 82세의 압둘라 황태자가 왕위 계승

○ 왕실후계 문제

- 국왕 체제 유지와 관련하여 국왕지위 승계자 후계구도가 문제시됨.

- 국가 서열 2위의 제2부총리 겸 국방장관 임명건은 중요한 화두


내각


○ 국왕이 왕실위원회와 국무회의를 주재, 국정을 대행

- 현재 압둘라 국왕이 수상 겸임, 술탄 왕세자가 제1부총리 및 방위군 사령관, 국방항공부 장관 겸임

- 국왕이 임명하는 120명의 국정자문위원회가 의회와 유사한 역할

- 국무회의 구성 : 제1부총리, 21개 부처장관, 7명의 무임소 장관

- 지방행정조직의 13개 주지사는 왕실에서 임명한 왕자들이 담당

○ 왕정일치 국가형태로 선거제도 부재

- 2005. 2월 역사상 최초의 리야드 주 38개 지방의원 104명 직선

(단 여성의 투표권 인정 안함)


사법제도


○ 샤리아법과 규율로 구분

- 이슬람법인 샤리아법과 규율이 상치될 때에는 샤리아법이 우선

- 규율 : 국무회의를 거쳐 제정되고 왕령으로 승인

○ 사법기관 : 3심 법원과 법원감독기관인 사법감독위원회로 구성


국방


○ 군대는 지원제이며 국방비의 많은 부분을 미국의 군사원조에 의존하고 있음.

- 국방예산 : 181억 달러(GDP의 12%)

- 병력 : 정규군 117,500명 (육군 3만5천명, 공군 1만5천명, 해군 4천5백명, 비정규군 6천3백명, 경찰 1만6천명, 국경해안 경비대 1만5천명)


각료명단 및 주요인사 인적사항



국왕


○ 성 명 : 압둘라 (Abdullah bin Abd al-Aziz Al Saud) 국왕

○ 생년월일 : 1924년

○ 출 신 지 : 리야드 (Riyadh)

○ 직 위 : 국왕 겸 총리

○ 경 력

- 압둘 아지즈 초대 국왕과 여덟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출생

- 1962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사령관으로 임명

- 1975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부총리 취임

- 1982년 사우디 아라비아왕국의 총리 취임

- 2005년 8월 1일 국왕 취임

○ 성 향 : 보수적, 아랍민족주의 지향


왕세자


○ 성 명 : 술탄 (Crown Prince Sultan bin Abdul Aziz) 왕세자

○ 생년월일 : 1924년

○ 경 력

- 농업부장관 및 교통부장관 역임

- 행정개혁위원회 의장 역임

- 최고교육위원회 부의장 역임


외교



외교정책기조


○ Abdullah 국왕의 신정부하에서의 대외정책은 Fahd 전 국왕의 외교정책기조인 주권존중, 독립, 내정 불간섭 원칙에 입각하여 ①모든 국가들과 선린 우호관계 유지 ②양자, 지역간 상호협력 증진 ③적대행위 금지 및 ④지역 및 국제분쟁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계승 추구

○ Abdullah 국왕의 방미 (2005. 4월, 왕세제 당시) 등을 통해 다져진 미국과의 견고한 대테러 공조 하에 Al-Qaeda 세력 소탕 및 주변 아랍제국과의 안보협력, 유가 안정화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


대미국 관계


○ 9.11테러 이후 외국 언론 중심으로 양국 관계 악화가 우려 되었으나, 미국이 요구하는 대테러 협력에 사우디가 비교적 잘 응해왔으며, 특히 이라크 전쟁 관련, 사우디가 전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양국 지도부간 원만한 관계를 유지 (다만, 국민들의 반미 감정이 문제)

- 2003. 5월 리야드 테러 사건으로 Al-Qaeda등 테러 단체들의 표적 이 사우디 정부로 전환됨으로써 사우디 정부는 대테러 관련 미국 과의 협력에 매우 적극적인 자세로 변했음.

○ 2005. 4월 Abdullah 국왕이 왕세제 당시 방미, 부시대통령과 양국간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기위한 회의체로 “사우디-미국 전략대화”를 창설 합의한 바, 제1차 회의가 2005. 11월 젯다, 2차 회의가 2006. 5월 워싱턴에서 각각 개최됨.

○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 및 이라크사태와 관련하여 미국과의 이견 노정

- 압둘라 국왕은 아랍정상회의에서 미군의 이라크 주둔을 불법으로 규정


아랍-이스라엘 분쟁 (일관된 팔레스타인 지지)


○ 유엔 안보리 결의 242 및 338에 근거한 아랍-이스라엘 분쟁 해결을 지지하며, "land for peace" 원칙에 입각 모든 아랍점령지에서 이스라엘이 철수할 것을 주장함.

- 2001년 이스라엘의 대"팔"군사행동에 대하여 아랍보수국가들의 리더국가로서 대이스라엘 비난 자세 견지

- 1967년 이후 점령한 모든 아랍영토로부터 철수 및 궁극적으로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 지지

- 2002년 Abdullah 왕세제는 아랍평화안(Arab Peace Initiative) 제안


중동국가들과의 관계


이슬람, 아랍 국가들과 전통적인 우호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음.

- 57개 이슬람국가들의 회의공동체인 이슬람 회의기구 (OIC) 본부 주재국 젯다에 소재

- 특히 팔레스타인 등 중동 이슈에 있어 국제사회에서의 이익 대변을 통해 이슬람의 종주국으로서의 비중과 위상을 견지함.

이라크

- 이라크의 불안정한 사태로 인해 중동지역에서 이란, 시리아, 헤즈볼라, 하마스 등 강경 세력의 영향력 확대에 우려하고 있으며, 특히 이라크내 대미항전세력에 사우디인들 이 참여하고 있는데 대해 이들이 향후 주재국 안정에 위협요소가 될 것임을 경계함.

- 사우디는 이라크내 시아파 회교도의 영향력 증대가 자국 및 GCC 역내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음.



사회



교육


○ 종교 의무의 일환으로 이슬람교육 의무화

- 종교교육에 편중된 학제로 명분없는 학교교육 만연

1960년대 제3대 파이잘(Faisal) 국왕의 여성교육정책

- 여성교육의 중요성 강조

- 여성교육청 신실 및 여성의 대학교육 확대

학제 및 교육 특징

- 전 교육과정은 무상이나 의무는 아님.

- 전 교육과정에 이슬람 교리에 관한 종교교육의 의무화

- 여학생과 남학생의 철저한 분리


치안



○ 시내 치안상황은 비교적 좋은 편이나 한적한 곳이나 밤늦은 시간에는 외출 자제 권유

○ 이동시 도보보다는 차량을 이용하고, 과속차량이 많은 것을 고려 오너 드라이빙은 회피하는 것이 바람직함.

○ 자동차 창문을 깨고 물품을 훔쳐가는 절도사건이 간혹 일어나므로 차량 내 컴퓨터, 지갑 등을 놓고 들어가는 것은 피해야 함.


언론


○ 텔레비전 방송

- 아랍어 방송 : Channel 1

- 영어 및 불어 방송 : Channel 2

- 위성 수신기를 통한 채널 다양화 확산 추세

○ 신문 및 일간지

- 아랍어 : Al-Riyadh, Al-Sharq, Al-Awsat, Al-Jazeerah, Oka

- 영어 일간지 : Arab News, Saudi Gazette 등


통신



○ 공중전화가 있으나 한국에 비해 많지 않음.

○ 우편제도 : 우편배달 제도 없이 P.O.Box 사용


비즈니스 에티켓


○ 복장

- 반바지 착용 금지

- 여성의 경우 전통의상인 ‘아바야’ 반드시 착용 요망

- 여성이 남성 앞에서 손목과 발목 및 얼굴을 노출시킬 경우 외국인일지라도 종교경찰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음에 유의

○ 식사문화

- 세 번 이상 초대를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남.

- 전통식당에서 오른손으로만 식사해야 할 것에 유의

- 개, 돼지, 맹수류, 맹금류, 파충류와 이슬람식으로 도살되지 않은 고기, 죽은 짐승의 고기와 피, 내장 등을 먹지 않는 것이 관례

- 술을 권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남.

- 사우디는 주류, 마약 반입을 철저히 금하고 있어 입국 시 일체의 주류를 소지해서는 안 됨.(마약 반입은 최고 사형)

○ 인사

- 남성 간에는 악수교환이 일반적인 인사법

○ 선물

- 이슬람 문화는 뇌물수수를 금기시하기 때문에 선물전달에 유의

- 특별한 기회에 소박한 선물을 준비할 것

○ 약속

- 현지인은 시간관념 부족

- 비즈니스 미팅의 경우 잦은 연락을 통해 약속을 지키도록 유도


사회문화



○ 가부장적인 가정생활

- 남편의 권위주의, 남아선호사상

- 사회발전과 세계화의 영향으로 여성인권 및 사회진출 요구 중

○ 결혼문화

- 부족주의 시대관습 계승

- 근친간의 결혼형태가 만연

- 혼인을 위한 신랑의 막대한 지참금 부담이 사회문제화



* 위의 자료는 외교통상부, KOTRA, 수출입은행, 한국무역협회, CIA 등의 자료를 기초로 작성되었습니다.




'건국'이란 단어를 들이대는 정부. 위대한 국민이라는 말도, 기적의 역사라는 말도, 너무 쭈뼛스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엑스 그랜드볼룸의 한식 세트 메뉴.
사용자 삽입 이미지
5종류의 기본 찬은 미리 깔려 있었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겨자채에 들어있는 팬지꽃은 먹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잠시 고민케 만들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건배주는 복분자주.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전, 유, 어..무슨 뜻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메로 구이는 언제 먹어도 참 맛깔스럽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갈비찜(호주산)이 사실상 마지막 메뉴였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진지와 국'이 함께 나왔지만, 왠지 한식은 그렇다. 한상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어야 맛이지, 이렇게 쬐끔씩

맛만 보이며 코스로 띄엄띄엄 나오는 건 좀 별루다. 외국 정찬처럼 나이프와 포크가 필요에 맞게 십여개씩

나와서 그때그때 먹는 메뉴를 준비하고, 얼마나 식사가 진행되었는지 가늠케 하는 것도 불가능한 수저 한벌.

한식이 가야 할 고급화의 길은...아직 찾아내지 못한 듯 싶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식후에 이어지는 쇼쑈쑛. 비보이와 현대화된 템포의 전통악기연주자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가운데분의 파격적인 한복, 그리고 명치아래께 케잌묶듯 묶인 리본.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비록 YTN이나 몇몇 신문방송 기자들이 오긴 했지만, 제대로 기사거리가 될만한 건 없었을 듯 하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분들이 뿜어내는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마무리 동작.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주현미. 보톡스의 힘일까, 마치 다림질된 듯한 얼굴을 보곤 생경함만 가득했다.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구성지고 목소리는 깔끔했지만, 나이를 알 수 없이 요새애들처럼 비슷하게 이뻐진 얼굴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재외동포! 에서 왜 느낌표가 들어갔을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송해. 겨우 '전국노래자랑'의 사회자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왠걸, 사회란 이런 거다~라고 제대로 보여주었다.

좌중의 분위기를 조율하며 끌어올리고 내리고를 자유자재로 하는, 게다가 출연자, 스탭과의 호흡이라거나

여유넘치는 애드립이란. 사회자로서 유재석의 겸손함과 출연자에 대한 치켜세움이 미덕으로 발견되고 있지만,

이미 송해는 출연자에게, 관객에게, 충분히 받아들여질 만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를 풍요롭게 활용하고

있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대미는 설운도. 잘생겼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만찬과 공연이 끝나고 난 후. 일상의 조명이 되돌아오고, 호텔리어들이 부산해졌다.

항상 뭔가 가슴이 휑해지는 순간이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직 몇 번 안되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기자에 대한 동경은 없었다. 단지, 짜장면 받침이 되더라도 일정하게 확보된 지면을 장악한 채 자신의

이름을 걸고 무언가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마이크'를 쥔 그들이 부러웠을 뿐.


국제부를 2주간, 사회부를 2주간 하게 됐다. 원래는 국제부 대신 정치부를 가고 싶었는데, 글쎄..암만해도 전공을

감안한 듯하다. 한국에서 '국제면'은 무슨 이야길 해야할까. FTA, 개성공단,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우익화, 유엔,

북한문제..아니다. 국제면만이 실을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얼음축구공을 핥고 있는 북극곰 사진과 어딘가

먼 나라의 축제 사진. 아니면 미인대회 사진?


FTA를 둘러싼 찬반논의가 간과한 건, 이미 한국은 벨트까지 끌러져내린 상태란 거다. 더이상 한나라의

정권이나 시민사회가 독존할 수 없는 세상, 미국조차도. 국제면 폐쇄를 건의해야겠다. 사회, 경제, 정치..살점은
 
모두 뺏긴 채 앙상하게 레바논 넝마 한벌 걸치고 있는 꼴이다. 그것도 경쟁지'조선'이 치는 만큼 따라간 기사.


아니면, 깊이다. 가십거리야 이미 사이버공간에 넘쳐난다. 최근 미국 외교정책의 전환이나, 중동과 유대인의 문제

그리고 약간의 국제정치학적 씨즈닝을 곁들이면 어떨까 싶은데. 글쎄...기사가 한국과 가까워지는 순간 다른

지면에서 요리된다. 조선처럼 적극적으로 국제기사를 '활용'해서 국내 정치를 까는 것도 아니고. 멕시코 대선을

보며 '일자리도 못만드는 정부는 필요없다'는 식.ㅋ


국제부 선배 하나가 그런다. 기사문에 익숙해지면 글을 못 쓰게 된다고. 이건, 어디에서도 잘려나갈 수 있어야

하는 인스턴트 글. 우람하지만 정형화된 역삼각형의 근육미는 그다지 매력적이진 않다. 도마뱀 꼬리처럼 언제고

잘려나간 준비가 된 나머지 글들이 허하다. 속보성이 떨어진다면, 훨씬 호흡을 잘 갖춘 글이 먹힐 수도 있을 거

같은데. 하긴, 알고 있었다. 하루치 상식(내지 상식인 양 포장된 교묘한 프로파간다)을 파는 지식 노동자, 먹고

살아야 하는 밥벌이로서의 기자질. 술자리서 부딪혔던 부국장단 아저씨들은 그들이 이미 태반의 삶을 실어버린

동아일보의 이미지와 정견에 대한 신념이 있었지만, 젊은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거 같다. 뭐..좀더 깊이 이야기를

해봐야겠지만. 어디까지가 그들의 의지였고, 어디까지가 그들의 타협선일까. 땅따먹기 놀이같단 생각이 든다.

선을 그어 자유로이 밟을 수 있는 땅따먹기.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