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리트비체 국립공원, 크로아티아 최초의 국립공원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된 굉장히 이름높은 곳이다.

 

게다가, 하루 전날 내내 폭설이 쏟아지고 난 다음날 쨍한 아침이 시작되는 댓바람, 그야말로 공원을 방문하기 최상의 타이밍!

 

 

민박집 주인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1번 입구에서 티켓을 사고 공원 안으로 입성! 2번 입구는 폭설로 임시 폐쇄중이라고 하니 잘됐다.

 

 

플리트비체에 있다는 92여개의 폭포 중에서 가장 큰 폭포이자 백미라는 벨리키 폭포. 높이 78미터 위에서 쏟아지는 물줄기가 시원하다.

 

 

게다가..물이 흘러내리는 곳따라 함께 흘러내리는 눈길에 밟히는 건..온통 눈꽃. 이런 눈꽃은 여태 듣도 보도 못했단 말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턴 딱히 할 말도 없고 그냥 사진 감상 위주로다가. 정리를 아무리 하고 지워보려 해도 아까운 사진들이 잔뜩이다.

 

 

 

 

 

 

1번 입구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하류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애초 석회암 지대인 이곳의 지반을 오랜 시간 강물이 깍아내리며

 

점점 계단식으로 층층이 호수를 넓혀온 거라고 한다. 그 외곽을 돌며 자잘한 호수가 이어지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묘미라는데.

 

 

이렇게 푸지게 눈이 온 다음날이라 가능한 풍경들, 눈꽃이 풍성하게 피어난 나뭇가지 위로 미끄러져내리는 무지개라거나.

 

투명하게 파란 하늘 아래 눈이 시릴 정도로 새하얀 순백의 풍경, 그리고도 디테일한 원경과 근경, 그에 더한 보슬보슬 질감까지.

 

이런 식의 미묘한 푸른 빛의 호수가 조금씩 하류로 밀려들고 있는 풍경, 가히 절경이다.

 

 

국립공원이 개장하자마자-오전 10시 개장-제일 먼저 들어섰는데, 어느 순간 뒤에서 아저씨 둘이 추월해 나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프로 사진사 아저씨랑 공원 관리인 아저씨. 플리트비체의 공식 사진을 찍기 위해서라던가, 묵직한 장비를 이고지고 걷고 있었다.

 

 

 

아..넘넘 이쁘다 진짜. 정말이지 정신도 못 차리고 계속해서 셔터를 눌러대고 있을 뿐.

 

 

 

 

그리고 이 미묘하고도 몽환적인 물의 색깔. 물속에 포함된 석회질과 각종 미네랄 때문이라나, 빛의 각도나 햇살의 세기에 따라서

 

그 색깔이 환상적으로 번져나가는 게 워낙 유명하다고 한다.

 

 

호수를 가로질러 반대편 기슭으로 가는 참, 다리에 기대어 잠시 쉬어가던 나뭇가지나 부유물 위로 두텁게 쌓인 하얀 눈이불.

 

 

 

플리트비체의 호수들이 얼마나 큰 낙차를 갖고 있는지, 상류지역과 하류지역의 호수가 얼마나 낙폭이 있는지를 보여주는 안내판.

 

 

하류의 호숫가를 구경하고 벨리키 폭포를 코앞에서 구경할 수 있는 코스는 이쪽인데, 눈이 많이 내린 탓인지 나무계단 위로까지

 

호숫물이 범람해 버렸다. 눈이 두텁게 쌓인 산책로가 위태롭게 끊겨버린 지점, 이쪽으로는 포기해야 하나 잠시 갈등하던 참.

 

이 길을 따라가야 벨리키 폭포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위치일 텐데,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무지개 하나가 둥실 환상처럼 떠올랐다.

 

 

뒤로 돌아보아도 아까 그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 상황. 전날 내린 눈 때문인지 공원 내엔

 

사람 하나 보이지도 않는 시간이다. 음..어디로 가야 하나 갈등이 조금 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결에 다시 나타난 프로 사진사 아저씨 일행이 여기저기 휘적대며 사진을 찍더니 문득, 물이 잔뜩 차오른

 

나무다리를 걸어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그들을 따라 물살이 세찬 나무다리 위로 발을 내딛고 말았다.

 

크로아티아 플리트비체, 무키네 마을의 유일한 레스토랑에서 피자 한판과 맥주 두병으로 맛난 점심을 해치운 후에 슬슬 숙소를

 

찾으러 눈보라 속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꽃이 만발한 작고 이쁜 민박집들이 열지어 서있어야 할 마을에는 온통 눈밭.

 

 그래도 용케 문 하나 열린 집을 발견하고, 사람이 지나지 않은지 엄청 오래 되었는지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지나 드디어 체크인.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입구는 두 개, 1번입구와 가까운 라스토바차 마을과 2번입구와 가까운 무키네 마을인 셈인데,

 

아마 공원이 폐쇄되었을 거라는 주인아저씨의 만류를 무릅쓰고 산책 겸 카메라를 들고 나섰다.

 

 

 사람 하나 없는 길. 그래도 드문드문 제설차가 지났는지 큰 길에는 제법 눈이 치워진 흔적이 남았지만, 그 너머는 온통 눈이다.

 

 

 본격적으로 산길. 마을에서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가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카르스트 호수들이 이어지는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이다.

 

 

 그렇지만 온통 눈. 어쩌다 만난 관광객 커플에게 앞의 상황을 물었더니 공원은 폐쇄되었고 사람 하나 없는데다가 길도 끊겼댄다.

 

그래도 일단, 풍경이 넘넘 이뻐서 무작정 앞으로 홀린 듯이 나가게 된다. 인적은 끊기고, 소복소복 쌓이는 눈에 소리는 모두 지워지고.

 

 

부지런히 길을 틔워놓는 제설차량의 바퀴자국. 그 위에 다시 소리없이 나려들며 흔적을 지우는 백배 더 부지런한 눈.

 

 

 

이윽고 도착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의 2번 입구. 폭설이 아니었어도 이미 입장시간은 아니었구나.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오픈.

 

내친 김에 다른 정보들도. 성인용 1일 티켓은 80쿠나, 아이는 40쿠나로 반값, 그리고 이틀짜리 티켓은 성인 130쿠나, 아이 60쿠나.

 

 

 

모른 척 하고 아무도 지키지 않는 입구를 넘어서 국립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온통 하얀 세상, 나만 혼자 남겨진 듯한 착각.

 

누군가의 발걸음을 희미하게 지워둔 채 허벅지까지 들어가는 눈폭탄이 그곳에 있었다.

 

 

찔끔 겁이 나 버려서, 어디선가 들리는 졸졸졸 물소리를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다 말고 포기하기로 했다.

 

여기선 발을 헛딛고 추락하거나 눈밭에서 뒹굴다가 죽어버려도 한동안은 아무도 찾지 못할 거 같단 생각이 들길래.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전경이 담긴 안내판 위로 수북하게 눈을 이고 지고 있는 나뭇가지들이 축축 늘어져버렸다.

 

 

 

 

 

그리고 이젠 더이상 뭐라 할 말도 없는 하얀 세상.

 

 

 

 

 

저 아랫쪽으로 보이는 데가 아마도 초록빛 신비로운 색감의 플리트비체 호수들이 웅크리고 있는 국립공원 내부.

 

 

 

 

 안내판도 온통 눈으로 하얗게 지워져 버려서, 대체 어디가 어딘지, 아까 밟아 내려왔던 길을 다시 그대로 찾아 올라가기도 힘든.

 

 

 그래도 불쑥 튀어나온 표지판에 의지해서 다시 찾아온 무키네 마을, 사실 2번 입구와 무키네 마을은 고작 2킬로 남짓

 

떨어져있을 뿐인데 이렇게 눈이 푸지게 내리고 길을 지워버려서야 도무지 거리감각이고 뭐고 없다.

 

 

아까 눈여겨보았던 그 슈퍼마켓. 와인을 한 병 사고, 700ml짜리 라키야를 한 병 사고,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추천을 받아

 

안주로 제격이라는 치즈랑 오렌지, 올리브 좀 사들고 숙소로 돌아가 성찬을 벌이기로 했다.

 

이런 곳에 세워둔 차는 길고 지루한 겨울이 지나고 나서야 제대로 움직일 수 있으려나, 상태는 괜찮으려나 괜한 걱정.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다시 떠나려는 참이다. 자그레브로 옮기고 나서는 1박하고 나서 바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으로 떠나기로 일정을 잡았다. 제법 새퍼래진 하늘 아래 검붉은 기차, 샛노랑 문짝이 두드러진다.

 

검정색 기차 시간표, 그 아래 새파랗게 번져가는 검은 밤의 잉크, 붉은 기차칸과 샛노랑색으로 활짝 열린 문짝.

 

 

류블랴나의 중앙역 플랫폼도 생각보다 복잡한 구도여서, 제대로 자그레브를 향한 기차를 타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잠시 고심.

 

 

여기도 열차들은 유럽의 어디선가 얻어온 훈장과도 같은 그래피티들을 옆구리에 하나씩 새겨넣고 있었다.

 

자그레브 행 기차는 플랫폼 6번. 지하 연결도로를 따라 플랫폼을 찾아가는 길에 발견한 거리의 아티스트 한 분. 지하보도의

 

서늘하고 꿉꿉한 공기를 파르르 울리는 그이의 연주가 슬로베니아의 마지막 추억이 될 거 같다.

 

 

 

 

* 2013. 3월 기준 자그레브-류블랴나 기차표

 

 - Zagreb to Ljubljana (1일 3회) : 12:30(14:53), 18:25(20:45), 21:20(23:36)

 

 - Ljubljana to Zagreb (1일 5회) : 06:35(08:53), 08:15(10:35), 10:47(13:03), 14:45(17:13), 18:35(20:55)

 

 

* 괄호 안은 도착시간

 

 

 

대략 두시간반의 기차 여행,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을 간단히 통과하고 여권과 티켓 검사를 한차례 하고 나서,

 

자그레브에 거의 도착할 무렵, 짐을 챙기고 미리 나와있으려 분주한 몇몇의 사람들이 담긴 열차 안 풍경.

 

그리고 다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글라브니 콜로드보르. Glavni Kolodvor.

 

중앙 기차역에 내려서 바로 앞 트램역에 서서는 구시가로 들어갈 트램을 기다리다가 한 장.

 

 

 

저녁마다 동네 주민들이 모이고 호스텔에 체류 중인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던 연주회들, 혹은 심지어 패션쇼까지 벌어지던 숙소.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셀리카. 이날은 하루종일 걷고 숙소로 돌아왔더니, 손풍금..아코디언 연주회가 막 시작한 참이었다.

 

바에서 파는 생맥주를 한 잔 들고서, 낯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건배도 하고 노래에 대해 속삭이기도 하며 노래를 즐기던 그 시간들.

 

연주는 한두 곡으로 끝나지 않고 거의 한시간 반 가까이 계속되었던 거 같다. 덕분에 맥주는 한잔 두잔 늘어만 가고. 옆에 유쾌한

 

아저씨와의 시덥잖은 농담도 점점 더 웃음이 빵빵 터지는 농담으로 바뀌어버리고.

 

원래 감옥이었던 공간, 잠시 갤러리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배낭여행객들을 위한 호스텔로 바뀌었다는 곳, 그래서인지 벽면 가득

 

그래피티가 아낌없이 채우고 있었다. 숙소 내부도 제법 독특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잘 꾸며져 있었고.

 

이런 발랄한 그래피티라니. 오천년 묵은 스핑크스는 아마 이런 모습일 게다.

 

호스텔과는 상관없지만 바로 옆에 붙어있던 건물의 지하 주차장 입구.

 

그리고 둘째날 밤이던가, 이 지역 의상학과 대학생들이 준비한 패션쇼가 한참 준비중이던 호스텔 로비에서, 매서운 눈으로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던 아마도 교수..지 않으려나 싶던 아주머니. 머리 모양이 굉장히 모델스러워서 슬쩍 도촬 한장.

 

그리고 이 아가씨. 호스텔의 바에서 서빙도 하고, 데스크에서 체크인-아웃도 챙겨주시던 분인데, 류블랴나에서 블레드 호수까지

 

타고 가겠다며 스쿠터를 빌리려 했더니 날씨가 궂어서 위험할 거라며 말려주었던 마음 착한 아가씨였다. (정말이지 스쿠터 빌려서

 

타고 갔다가는 영영 못 돌아올 수도 있었겠다능..)

 

꽤나 매력적으로 생겨서 마치 영화 '제5원소'에 나왔던 그..매혹적인 여배우의 분위기를 풍겨내느라 주위에 남자들이 계속 집적거렸지만

 

정작 내 눈을 끌었던 건 몸 곳곳에 숨어있던 타투들. 그 중에서도 뒷목에 슬쩍 그려져있던 이 것. 호루스의 눈. 이집트 왕들의 무덤을

 

지키는 수호 부적의 문양이랄까, 내가 벌써 10년째 끼고 있는 반지 (메이드 인 이집트 룩소르)의 문양과 같아서 굉장히 반가웠다.

 

그리고 숙소 주변을 슬쩍 산책하던 참에 발견한, 대우의 '레이서'라는 차. 이런 차가 있었나? 기억조차 없는데 한국에는 다른 이름으로

 

팔렸었거나, 혹은 내 기억에도 없을 만큼 옛날옛날 한옛날에 팔렸던 모델이라 그럴지도. 여하간에, 슬로베니아에서 대우 이름을

 

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의 버스정류장, 시계탑이 고고한 건물 앞에는 비바람에 낡고 닳은 번호표가 하나씩 내걸려 있다.

 

'양지바른 알프스'라는 슬로베니아, 그중에서도 '알프스의 눈동자'라 불리는 블레드로 가는 버스를 타러 온 참이다.

 

 

블레드 호수로 가는 버스는 7번 플랫폼에서 출발, 나보다 앞서 머리하얀 할머니 한분이 그야말로 버스에 올라타는 모습.

 

슬로베니아의 다른 도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렇게 네 조각으로 기울어있는 신호등은 가시성을 높여주지 않을까. 더 안전할 듯.

 

오토부스나 포스타야, Autobusna Postaja. 슬로베니아어로 버스 정류장..이란 뜻이려니. 크로아티아에서는 '오토부스니 블라블라',

 

Autobusni~~ 가 버스 정류장이었더랬는데, 비스무레하다.

 

 

정류장 주변 풍경. 아무래도 이렇게 반듯반듯 특징없이 서 있는 슬로베니아 신시가의 모습은 과거 공산주의 블록에

 

속했을 때의 정형화되고 실용적이기만 한, 그리고 집체적이랄까, 그런 표현이 떠오르게 만든다.

 

 

그리고 블레드 호수로 달려가는 버스. 슬로베니아의 교외 풍경은 신시가의 반듯하고 인공적인 미감과는 전혀 다른 감각을 선사한다.

 

 

그렇지만 블레드 호수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안개가 짙어지고 꾸물꾸물해지는 게 날이 안 좋다. 그리고 나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 교통

 

버스로 왕복 3시간(편도 1시간반), 버스는 정류장에서 30분 간격으로 있음.

 

버스는 고속 직행버스가 아니어서, 중간중간 정류장마다 사람들을 태우고 내리고 한다. 그 정류장 중 하나에서 발견한 아저씨.

 

아직 이른 오전시간인데 벌써 벌겋게 취하셨다. 와인병을 옆에 두고, 한 손에는 담배를 끼우고 옆엣 아저씨들과 열띤 이야기중인

 

그를 빨간 쓰레기통에 그려진 아저씨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한시간 반을 여유롭게 달린 완행 버스는 드디어 블레드 호수, '알프스의 눈동자'에 도착!

 

 

 

 

용이 지키고 있는 류블랴나 성의 입구. 밑에서 위로 치고 올라오는 조명을 맞은 용이 위로 솟구치는 것만 같다.

 

프레셰렌 광장에서 신나게 거리 연주중인 트리오.

 

광장 한 가운데에는 이런저런 조형물이랄까, 예술품들이 내걸려 있다고 한다. 내가 찾았을 때는 조그마한 집의 모형.

  

구시가에서 광장으로 향하는 가운데길, 다리가 세 개나 만들어져 있다. 원래 있던 다리 양 옆에 두 개의 보행자용 다리를 더했다나.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류블랴니차 강의 양쪽 둔치를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산책로를 따라 걷는 참이다.

 

해골이 숨어 있는 사진.

 

강을 따라 이어지는 노천 까페들.

 

 

류블랴나 성으로 이어지는 큰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금세 도착한다. 특히나 구시가 쪽은 꽤나 작은 편이다.

 

류블랴나의 맨홀 뚜껑은 용이 지키는 류블랴나성의 모습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성으로 올라가는 입구는 온통 초록빛 이끼로 그득한 벽면을 따라걷게 된다.

 

 

류블랴나 성 입구에 있는 성 조감도.

 

 

금발 미녀들을 따라 들어선 류블랴나 성의 안쪽 풍경.

 

 

그리 높지는 않다 싶었는데 성에서 내려다본 풍경이 과히 뚝 떨어지는 느낌은 아닌게 야트막하다.

 

니콜라스 대성당 뒤로는 노천 시장이 열리곤 하는 공터가 내려보인다.

 

그리고 류블랴나 성에서 발견한 무려 1.5유로를 넣으면 0.5유로를 기념품 메달로 바꿔주는 기계.

 

류블랴나 성의 곳곳을 연결하는 문에도 용의 형상은 잊지 않고 튀어나온다. 마치 매직아이같이 숨어있는 녀석들.

 

 

3월 중순임에도 아직 드문드문 잊지 않고 눈이 내려주시는 동유럽의 날씨.

 

류블랴나 성의 감옥, 어디나 감옥에는 왠지 모를 냉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다.

 

성 안에 있는 조그마한 예배 공간. 그러고 보면 성은 그 자체로 굉장히 자족적인 하나의 마을 같기도 하다.

 

 

기념품점에선 온통 용이다. 용, 용. 근데 참 이뻐서 몇 번을 살까말까 망설이게 됐던 저 장식품.

 

 

 

류블랴나 성으로 올라가는 길은 언덕으로 올라가는 몇 갈래의 길로 나뉘는데, 그 코스는 흡사 남한산성에 오르는

 

숱한 등산로의 갈래갈래 갈린 길을 연상케 하는 거다. 그 길 중의 하나를 따라 걷다가 발견한 조각상.

 

그리고. 용으로 시작해서 드문드문 용이 나오다간 용으로 끝내는 류블랴나 성의 풍경.

 

 

 

 

 

 

용이 지키는 도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 Ljubljana라는 이름에서 보이듯 기묘하게 얽힌 채 이어지는 발음은 정말 쉽지 않다.

 

류블랴나. 오타가 아니다. 류블랴나. 그런 도시의 밤풍경은 도시의 이름과 닮아서 기묘하게 얽힌 골목들이 두 개의 혀처럼 얽힌다.

 

 

 류블랴나를 관통한 채 숱한 아름다운 다리를 남긴 강의 이름은 류블랴니차 강. 멀찍이 언덕 위의 류블랴나 성이 보인다.

 

 

류블랴나 구도심의 중심인 프레셰렌 광장으로 이어지는 다리. 대체 왜 이리도 발음들이 어려운지, 혀의 낯선 움직임만큼의 거리감이

 

아마 한국과 슬로베니아의 거리감일지도 모르겠다.

 

 물이 맑아서 저런 빛깔이 도는 건지, 아니면 특정한 광물이 녹아들은 물이라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유속이 되는 강이 시퍼렇다.

 

 

 그리고 밤이 되니 한층 더 흉악해진 눈빛과 포악스런 근육들을 꿈틀거리는

 

 

손님이 들어설 때마다 입구의 주인 아저씨가 피아노로 한곡조 멋지게 연주를 해주는, 따라라라딴딴딴. 그런 서점을 가진 거리.

 

류블랴나 성으로 향하는 길 어귀, 그래서 그런가 가게 앞 셔터를 내리는 대신 삐죽삐죽 못이 튀어나온 방어진을 설치해놨다.

 

 

오벨리스크가 서있는 조그마한 광장을 지나고.

 

류블랴나 시내의 미니어쳐-라고 해봐야 꽤나 커서 왠만한 중간방 사이즈만한-지도가 있는 프레셰렌 광장을 지나면 신시가가 나온다.

 

 

슬로베니아 스타일의 맥도날드 메뉴를 선전하는 광고판에 불이 들어와 있기도 하고,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힌 슈퍼와 온갖 샵들에 기대어 풍금을 연주하는 거리의 악사가 보이기도 하고.

 

그 뒤로는 쇼핑하러 들어간 주인을 기다리며 문 앞에서 충직하게 경계중인 견공이 한 마리.

 

 

그리고 류블랴나의 음악홀..이었던가, 덩그마니 자리잡은 건물을 은은하게 감싸고 있는 조명이 참 이쁘더라는.

 

아무래도 이 용의 위풍당당하다 못해 무시무시한 모습은 서양과 동양의 '용'에 대한 이미지가 갈라지는 지점에 서 있지 싶다.

 

동양의 용에서는 위엄있고 우아하고 현명하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면, 이 용님께옵서는 그저 무섭다. 가차없는 야수나 짐승의 느낌.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슬로베니아의 류블랴나, 용이 지키는 도시답게 건물들은 나즈막하면서도 나름의 운치와 위엄을 간직하고 있었다.

 

 

 

류블랴나 성을 향한 오르막길, 사람이 채 오르기도 전에 양옆으로 어깨 부딪기며 열지어선 집들이 먼저 지쳤다.

 

 

 

류블랴나 구시가에 있는 성당, 그 벽면에 기대어선 (아마도) 대주교님과 성모상, 그리고 가운데의 성화.

 

벽공에 마련된 피에타상, 밤에도 사람들이 바라볼 수 있도록 조명을 내걸었다.

 

심지어 성당의 정문은 이렇게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그대로 돋을새김해둔 청동문이다.

 

 

 

류블랴나 구시가의 중심, 그리 크진 않지만 꼿꼿한 오벨리스크가 광장의 중심에서 하늘을 향해 뻗었다.

 

 

 

어느 갤러리였던가 박물관이었던가, 유서 깊어보이는 건물의 안마당으로 들어가서 발견한 류블랴나의 시내 지도.

 

그리고 다른 갤러리에서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전이 한창이었다. 사진보다 전시공간이 더욱 눈에 들어오기는 또 처음이다.

 

 

광장의 바닥도 나름의 문양을 촘촘히 그려내고 있는 곳, 뭔가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은 느낌의 도시다.

 

 

 

좁은 골목길에 무심코 세워 놓았을 자전거조차도 왠지 그림이 되어 버리는 곳.

 

특별할 것 없는 허름한 건물 입구의 다닥다닥한 우편함에도 각기 개성이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고,

 

 

주렁주렁 매달린 신발들로 이곳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적인 곳임을 곳곳에서 과시하는 도시기도 하다.

 

 

 

아이고, 여긴 참..많은 사람들이 와서는 눌러앉고 말았나 보다.

 

류블랴나의 자그마한 구시가를 이리저리 가로지르며 골목도 구경하고, 이쪽에서 본 저쪽 모습, 저쪽에서 본 이쪽 모습을

 

요모조모 뜯어보던 사이에 안 그래도 흐렸던 하늘은 천천히, 그렇지만 확실하게 꺼뭇꺼뭇해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구시가에 인접한 숙소, 우선 조금씩 에둘러 걸으며 이 곳의 분위기를 느껴보기로 했다. 바로 구시가라거나

 

유명하다는 명소로 진격하는 건 서툰 짓이라고 생각해서, 급할 거 없이 골목들 사이에서 이리저리 휘적대며 걷는 중.

 

 

그 와중에 특별할 것도 없는 동네 성당이 저렇게도 이쁘구나, 지긋이 눈에 담기도 하고 벤치 아래 촘촘히 박힌 포석들의 가지런함을

 

눈여겨 보기도 하고.

 

 

어느 건물의 옆면과 앞면으로 이어지는 커다랗고 산뜻한 그래피티를 보기도 하고, 파스텔톤의 나즈막한 건물을 힘줄 툭툭 튀어나온

 

뼈마디 굵은 손으로 딛고 서려는 듯한 커다랗고 신경질적인 나무도 한 그루.

 

휘적휘적 걷는 사이에도 조금씩 류블랴나의 구시가, 그리고 중심에 위치한 류블랴나 성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씨트로앵)

 

 

날씨가 조금만 더 맑았어도 좋았을 텐데, 아쉽게도 류블랴나에선 비도 맞고 눈도 맞고 살짝 우박도 맞았지만 햇빛만 못 맞았다.

 

 

그리고 동네 곳곳에서 목격되던 저 끈을 서로 묶은 채 대롱대롱 매달린 운동화들. 왜 그 영화 '빅피쉬'에 나오듯이

 

이 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전부 신발을 벗어던지고 평생 행복하게 머물고 있다, 머물겠다는 의미는 아닐까.

 

그리고 느닷없는 용의 등장. 청동색 피부를 가진 사나워보이는 용의 뒤로 류블랴나 성이 훨씬 가깝게 보인다. 이 녀석은 아무래도

 

성을 지키는 일종의 수호신이나 최종병기일지도 모르겠다.

 

 

용이 지키는 다리는 사실 다리의 끄트머리, 그리고 그 끝의 양쪽 어귀에 모두 용을 한마리씩 앉혀놨으니 총 4마리의 용을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셈이다.

 

라고 계산했다면 그건 오산. 다리 중간중간에 용의 새끼인 '해츨링'이랄까, 작지만 엄연히 용의 피가 흐르는 듯한 녀석들이

 

이렇게 매서운 눈초리로 오가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중이다. 류블랴나성을 해치려는 나쁜 사람은 아닌지 살피려는 듯.

 

 

다리 중간에 설치된 표지판. 이 용다리가 1900년에 준공되었다는 듯 한데, 워낙 청동의 부식이 심해 글자를 잘 못 알아보겠더라는.

 

앞모습에서 풍기는 위압감과 사나움도 충분히 실감나지만, 다리에 꼬리를 말고서 기어이 지키겠다는 의지가 묻어나는 강건하고

 

단단한, 금방이라도 비상할 듯한 뒷모습도 못지 않다. 이 곳 류블랴나의 마스코트가 용이라더니, 용이 지키는 도시다운 모습이다.

 

 

 

 

자그레브의 중앙역, 기차 대합실 안에 갖고 들어갈 수 없는 물건들. 휴대폰과 포크 앤 나이프까지는 그렇다 쳐도 나머지 두개는

 

영 쌩뚱맞다. 총은 총대로 생뚱맞고, 아이스크림도 아이스크림대로 생뚱맞은 아이템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 인접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로 가는 건 기차가 가장 빠른 이동수단이다.

 

 

* 2013. 3월 기준 자그레브-류블랴나 기차표

 

 - Zagreb to Ljubljana (1일 3회) : 12:30(14:53), 18:25(20:45), 21:20(23:36)

 

 - Ljubljana to Zagreb (1일 5회) : 06:35(08:53), 08:15(10:35), 10:47(13:03), 14:45(17:13), 18:35(20:55)

 

 

* 괄호 안은 도착시간

 

 

그리 길지 않은 플랫폼 한 켠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작은 성상도 모셔져 있어서 (아마도) 여행 안전을 빌거나 다른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을 위한 성당으로 부족함이 없다.

 

 

마침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오전, 온통 희뿌연 하늘 위로 붉은 자그레브의 지붕들과 성모승천 대성당의 모습이 떠올랐다.

 

 

 

여기저기, 잔뜩 낡고 녹슬어 빗물이 새다 못해 아예 줄줄 흘러내리는 천장 아래에는 여지없이 물구덩이가 잔뜩 생겼다.

 

이 기차는 이런 이쁜 그래피티를 유럽 어디에서 얻은 걸까. 아마도 이 기차는 서유럽 프랑스에서부터 동유럽 끄트머리의 이곳

 

크로아티아니 몬테네그로까지 달릴 텐데, 온 유럽의 합작품일지도 모르겠다.

 

 

중앙역 주변 풍경이 살짝 을씨년스럽기도 하고 낙후해보이기도 하는 건 왠지 우리나라랑 비슷해 보인다.

 

그리고 함께 열차를 타고 슬로베니아 류블랴나까지 함께 한 우아한 할머니. 영어가 전혀 통하지 않아 대화는 안 되었지만 그래도

 

들고 타신 간식도 조금 나눠주시고, 류블랴나가 본인 집이라며 같은 방향임에 굉장히 해맑게 즐거워해주시던.

 

그러고 보면 기차를 타고 나라 국경을 넘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어느 순간 할머니가 여권을 주섬주섬 꺼내시길래 봤더니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의 국경이란다. 검표원은 티켓과 여권을 검사하고, 바깥에서는 저 아저씨가 망치로 기차 바퀴를 두드렸다.

 

 

 

그러고 보면 국경이란 게 얼마나 인공적이고 뜬금없는 결과물인지. 국경을 기준으로 양쪽의 자연 풍광이나 분위기는 별로 다를 것도

 

없는데, 이쪽은 크로아티아 저쪽은 슬로베니아란다. 각기 다른 나라에 충성을 바치고 세금을 내고 엇비슷하게 떨어진 수도 중에서

 

자국에 속하는 수도에 소속감을 느끼는 것, 일종의 거대한 놀이판 같단 생각.

 

 

그렇게 도착한 곳은,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의 어느 유스호스텔.

 

이전에는 감옥이었던 곳을 갤러리로 개조했다가 지금은 여행객들을 위한 호스텔로 꾸며놓은 곳이라더니, 나중에 다시 찾고 싶은 곳.

 

 

 

 

 

 

 

일시 : 2013년 5월 1일(수) AM 10: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12


 

 

광장에서부터 온갖 자그레브의 명소로 향하는 방향을 가리키려면 손가락이 열개여도 부족하겠다. 사방팔방을 가리키는 화살표.


 옐라치치 광장으로부터 두 개의 언덕, 카프톨과 그라데츠로 뻗어나가는 오밀조밀한 골목 틈새를 비집고 늘어지는 햇살.


 

 성모승천 대성당이 삐죽 고개를 디밀고 있는 골목도 있고.


옐라치차 광장의 중심, 광장보다 움푹 들어가서 조성된 이 분수대 주변은 사람들이 층층이 앉기 참 좋게도 생겼다.


 짙은 구름이 잠시 지나고 햇볕이 내리는 그 곳은 역시나, 햇살을 즐기며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을 위한 명당자리.


  

 

옐라치차 광장 중앙에 선 기마상이 조그맣게 보이는 각도, 나도 질세라 분수 옆 돌계단에 앉아 잠시 쉬어가는 참이다.


옐라치차 왕을 기리는 기마상 앞에는 크로아티아의 국기와 꽃들, 그리고 촛불이 잔뜩 봉헌되었다. 신생국의 포스란 이런 건가.

  

 

광장 옆의 기념품 가게. 자그레브의 고유한 빨간 하트 모양의 장식품이 화려하다.

 

 이곳의 축구 사랑이 유별나다더니 아예 기념품 샵들이 곳곳에 늘어섰다. 



기마상 앞을 지나는 사람들, 어떻게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일 수도 있겠지만 자그레브의 규모에 비기면 작진 않은 듯.

 

 

그리고 광장의 한켠에서 묵주니 성모상이니 등등을 팔고 계시던 분 뒤로 보이는-어디에서나 크게 눈에 띄는-저 광고는 참.




 

잠실5단지의 벚꽃들, 복숭아빛으로 물든 그 복숭아빛 꽃망울들이 너무 흐벅지게 탐스러워서.

 

바람이 잠시 불어 꽃비라도 내릴라 치면 마음이 아득해지는 게 순식간에 2002년, 1993년의 어딘가를 더듬곤 하는 거다.

 

 

 

 

 

* 자그레브 구시가 지도

 

 

* 자그레브 트램교통지도

 

 

* 저렴하고 훌륭한 호스텔. (searched by AGODA) 

 

 

*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

 

 

 

* 현지 사람들의 추천을 받아 찾아간 구시가/신시가 경계쯤의 레스토랑, 만족도 별 다섯개!

 

 

 

 

 

 

 

 

덕수궁 미술관,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참 잘 생긴 벚꽃나무.

 

고층빌딩들로 포위된 형국임에도 여전한 당당함을 간직한 덕수궁의 모습과도 같이, 우아한 가지를 늘어뜨린 채

 

자그마한 등불같은 벚꽃송이들을 밝히고선 드문드문, 깜빡 잊었다는 듯이 팔랑팔랑 흰나비들을 날려보내는.

 

 

 

 

자그레브의 구시가, 그 시발점이 되는 옐라치치 광장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광장들을 따라 걷다보면, 우연찮게도-아마도

 

도시 계획의 산물이겠지만-커다란 U자 모양의 산책로가 만들어진다. 옐라치치 광장에서 슈비차 광장을 지나 모던 갤러리,

 

토미슬라브 광장을 지나 자그레브의 중앙역까지. 그리고 오른쪽으로 꺾어서 보타니칼 가든을 끼고 걷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턴.

 

그렇게 미마라 박물관과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을 만나는 코스가 바로 자그레브의 말굽 편자모양 산책로의 대략적인 동선.

 

(사실 그냥 걷고 싶은 대로 걷기만 해도 자연스레 걷게 되는 코스, 계속 초록빛 풀밭과 나무들을 옆에 끼고 걷고 싶은 게 인지상정)

 

그러다 보면 광장 어디메쯤에서 뜬금없는 슈퍼주니어 한국팬들의 테러도 볼 수가 있고,(여기서 콘서트라도 있었던 건가;;)

 

 

한국과는 달리 시원한 하늘색으로 칠해진 소화전도 볼 수가 있고,(이건 사실 빨간색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자연스럽다)

 

 

송화가루인지 열매인지를 탐스럽게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나무도 지나는가 하면,

 

슬몃 비껴나기 시작하는 햇살을 담뿍 빨아들이며 반짝반짝 빛나는 자그마한 분수대를 보기도 하고.

 

이만큼이나 길어진 나무 그림자들을 헤치며 공원 산책로를 빠른 걸음으로 내딛는 중인 아저씨들도 만나는 거다.

 

 

자그레브 중앙역 앞의 '토미슬라브 광장', 그 가운데에서 마치 광화문 광장 중앙의 이순신 장군처럼 위풍당당한 말탄 장군상.

 

그렇지만 저렇게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앉아서 맥주도 마시고 따끈하게 덥혀진 대리석에 앉아 광합성 중인 모습은 한국과 다르다.

 

어디나 그렇듯, 먼 길을 떠날 사람들에게 강렬한 유혹으로 다가오는 건 온갖 도색잡지들. 유리벽을 온통 도배해버린 타블로이드지들.

 

가게 너머 살짝 보이는 게 자그레브의 중앙역, 가까운 슬로베니아로부터 먼 유럽으로 이어지는 기차가 지나는 곳이다.

 

 

모던 갤러리. 안타깝게도 이곳 자그레브의 대부분 박물관이나 미술관들 역시 월요일은 휴관. 여긴 가보고 싶었는데 아쉽다.

 

사람과 자전거가 모두 멈추라며 시뻘겋게 핏대를 세운 자그레브의 신호등. 신호가 바뀌면 초록빛 사람과 자전거가 뿅.

 

 

4월부터 11월까지만 개방하는 보타니칼가든은 담장 너머로만 슬쩍 구경하고 지나고 나서 마주친 (아마도) 대학 건물.

 

건물 꼭대기에 무슨 장식물인가 했더니 눈을 부릅뜨고 사주를 경계중인 부엉이들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를 염두에 둔 거겠지만

 

왠지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나 안하나 감시하는 엄한 선생의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그리고 어느 조그만 놀이터가 보이길래 그냥, 조금 말굽형 산책로에서 벗어나 갓길로 샌 참에 발견한 귀여운 꼬맹이들.

 

내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고는 여봐란 듯이 더 용감한 포즈들을 지어보이느라 경쟁이 붙었다.

 

 

그리고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던지는 샛노랑 외관이 파란 하늘 아래서 더욱 두드러지던,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맞은편의 미술공예 박물관도 노랑빛이긴 했지만 국립극장만큼 강렬하지는 못했다. 그늘진 모습이어서 그랬던 걸까, 모르겠다.

 

공원 옆에 그어진 주차구역 중에서 눈에 확 띄던 오토바이 주차구역의 표시. 되게 디테일하고 이쁜 표지다.

 

 

크로아티아 국립극장이 유명한 건 그 개나리색 외관뿐만이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손꼽히는 예술가이자 조각가인 메슈트로비치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하다는 '생명의 원천'이라는 작품이 정면에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작품, 남자와 여자의 강렬한 눈빛이

 

부딪히는 사이에 뒷켠에 있는 다소 늙고 지쳐보이는 남자의 시무룩한 포즈가 대비된다.

 

그런 군상들이 크로아티아 국립극장 앞의 광장 한가운데에서 사방을 향한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녹색 편자가 끊기고 다시 구시가에 가까이 도달한 즈음, 아무 노천 까페에 앉아 잠시 다리를 쉬는 참에 시선에 잡힌 할아버지.

 

후드티와 청바지 차림의 할아버지가 멋지게 선글래스를 끼고는 자전거 페달을 힘주어 밟는 모습이 그럴 듯 했다.

 

테이블에 앉아 쉬는 김에 주머니를 털어 가진 돈 액수도 확인하고, 이 나라 돈에는 어떤 그림이나 장식들이 있나

 

꼼꼼히 살펴보는 참에 신기한 걸 발견했다. 크로아티아의 돈 단위인 쿠나(KUNA)는 동전의 숫자 뒤에 새겨진 그 짐승, 족제비나

 

담비처럼 생긴 동물의 이름에서 딴 거라길래 그것부터 신기하다 했는데, 모든 동전의 도안이 물고기, 새, 곰같은 동물이랑

 

식물들이다. 뭐랄까, 굉장히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인 것 같은 느낌이 팍팍.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그 시내의 전경을 한눈에 내려다보고 싶다면 꼭 가야 할 곳. 그라데츠 성벽 남문의 로트르슈차크 탑 전망대.

 

그 위에 올라서면 그래도 제법 발딛고 돌아볼 수 있는 360도 전망의 뷰가 가능하다.

 

멀찍이 보이는 건 그라데츠 언덕의 상징인 성 마르크 성당. 타일로 장식된 그 지붕이 마치 자수로 한땀한땀 뜬 거 같이 보이기도 하고

 

레고 블럭을 하나씩 쌓아서 만들어진 장난감 같기도 해서 유명한 성당인데, 그 지붕을 살짝 굽어보는 게 가능하다.

 

 

이렇게 로트르슈차크 탑의 아랫층에서는 다른 붉은 지붕을 가진 집들에 가려서 감질나게만 보이던 성당이, 저렇게 확 트이는 셈이다.

 

 

그리고 카프톨 언덕의 꼭대기에 건축되어 천년을 버틴 성모승천 대성당의 모습이 당당하게 드러나기도 한다.

 

한쪽 첨탑이 아직 보수가 끝나지 않았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남은 한쪽을 보고 보수중인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리고 자그레브의 구시가 전경, 저 너머로 보이는 드문드문 높은 스카이라인은 신시가가 시작된다는 표지기도 하다.

 

 

아무래도 시선은 자그레브의 상징이자 심장이었다고 할 수 있는 이 두 역사적인 건축물에 쏠릴 수 밖에 없는 거다.

 

 

 

그리고 붉은 지붕, 파란 하늘, 그 사이에서 반짝이는 하얀 건물들의 멋진 앙상블 그 자체도 매혹적이다.

 

탑의 맨 꼭대기에 숨어있는 오랜 종, 종을 지탱하는 나무 문설주나 기둥들에 빼곡히 채워진 낙서들을 보면

 

저런 데에다가 저렇게 낙서하는 게 비단 한국사람들의 문제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지기도 하고.

 

 

남은 사진들. 전망대의 시원한 바람과, 탑의 아랫도리에 앉아 악기를 연주중이시던 할아버지의 음악 소리,

 

이런 것들은 남길 수 없었지만 햇살 반짝이는 파란 하늘 아래의 자그레브 풍경은 아낌없이 담을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그냥 종탑을 중심으로 한바퀴 돌고, 또 한바퀴 돌며 멀찍이 뻗어있는 붉은 지붕들을 눈으로 더듬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보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걸 감각해내기에 모자람이 없던 곳. 로트르슈차크 탑의 전망대.

 

 

 

 

 

여기가 거기였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구시가 복판에 있는 성 마르크성당. 예전에 어디에선가 사진으로 스쳐지나갔던,

 

그렇지만 굳이 여기가 어디에 있는 건물일까 찾아보게 만들었던 그 건물이었다. 하얀 외벽에 깜찍한 지붕을 얹은 성당.

 

성모승천 대성당을 지나, 'Museum of broken relationships'를 지나 금세 다다른 조그마한 광장, 아니 광장에 채 진입하기도 전에

 

지붕부터 대번에 시선을 사로잡아 버렸다. 그림이라기엔 기와 한장한장의 입체감이 너무도 뚜렷한, 그래서 흡사 레고블록을 쌓은 듯한.

 

사실 성 마르크성당의 건물 자체도 1200년대에 지어졌다니 굉장히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결코 만만치 않은 내공을 풍긴다.

 

들어서는 정문만 해도 십여명의 수호성인들이 지키고 선 걸 보면 그렇다.

 

그렇지만 저 흰색과 파란색, 빨간색이 올망졸망한 지붕이 파란 하늘 아래에서 하얀 벽 위에 얹혀 있는 데서 이야기는 끝나버렸다.

 

타일 지붕은 고작(?) 1880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하는데, 왼쪽은 중세의 크로아티아 왕국, 달마티아 지방, 슬라보니아 지방을

 

나타내고 오른쪽은 자그레브 시를 나타내는 문양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이게 중세 크로아티아 왕국 더하기 달마티아 지방(현재 크로아티아의 중부 지방) 더하기 슬라보니아 지방(동부 지방)의 상징.

 

그리고 이게 자그레브 시의 상징인 셈이다. 가까이 다가서서 보니까 타일 한장 한장이 선명하고 화려한 발색을 내며 각자의 입체감을

 

돋을새김하듯 지붕 위에서 어필하고 있는 모습이 더욱더 뚜렷하다.

 

성당 안에서의 촬영은 다른 여느 성당들이 그랬듯이-성모승천 대성당도 마찬가지였지만-촬영 불가. 잠시 들어가서 그 묵직하고 오랜

 

공기를 들이마시며 어두컴컴한 실내에 적응할 때쯤 다시 나와버렸다. 최소한 성 마르크성당은 밖에서 보는 게 진짜다.

 

아마 성 마르크성당 주변에는 EU 관련한 관공서랄까 정부 청사가 있는 건지 크로아티아 국기와 EU국기가 나부끼고 있었다.

 

그리고 패트롤이나 검정색 커다란 세단들도 누군가 귀빈들을 위해 대기중이었고.

 

그 와중에 경찰 아저씨의 허락을 득하고 찍은 크로아티아 경찰 오토바이의 위용. 진격의 BMW Motorad.

 

옐라치차 광장에서 성모승천 대성당, 각종 뮤지엄들, 그리고 성 마르크성당까지 그러고 보면 참 오밀조밀 잘도 붙어있다.

 

몇 걸음 걷기도 전에 눈앞에 나타나는 굉장한 풍경들과 역사의 증거물들 앞에서 숨 한번 돌릴 여유를 찾기엔 노천 까페가 최고.

 

이쯤해서 돌라츠 시장의 노천 까페를 찾아 잠시 쉬어갈 타이밍이다.

 

 

 

 

1일차. 15:00 인천 출발/22:20 Croatia Zagreb 도착. (23:30 숙소 도착)

 

2일차. 자그레브 stay

 

 

 

 

3일차.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출발/Slovenia Ljubljana 도착. (기차 2.5시간)

 

 

4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 호수(버스 왕복 3시간)

         슬로베니아 류블랴나 출발/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도착(기차 2.5시간)

 

 

5일차. 자그레브 출발/Pltvice 도착(버스 3시간)

 

 

 

 

 

6일차. 플리트비체 출발/Split 도착(버스 4시간)

 

 

 

7일차. 스플리트 stay

 

 

 

 

  

8일차. 크로아티아 스플리트 출발/Bosnia Mostar 도착(버스 4.5시간)

 

 

 

9일차. 모스타르 stay 

 

 

 

10일차. 보스니아 모스타르 출발/Croatia Dubrovnik 도착(버스 4시간)

 

 

 

11/12일차. 듀브로브닉 Stay

 

 

 

 

 

13일차. 듀브로브닉 출발/자그레브 도착(비행기 1시간)

 

 

14일차. 14:35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출발/12:20 인천 도착(+1일)

 

 

 

 

 

 

경주 시내와 불국사가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감이 전혀 없었다. 수학여행의 기억은 몇 장 사진으로만 남았을 뿐.

 

시내에서 적잖이 차로 달려야 도착하는 불국사, 그러고 보면 불국사 안의 풍경 역시 깜깜하니 기억 하나 남지 않았었다.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구름다리. 우아한 아치를 그리고 선 돌다리가 정문과 불국사 본전을 잇고 있었다.

 

남쪽부터 슬슬 봄바람이 일기 시작하는지 연못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능수버들엔 연두빛 물이 올랐다.

 

 

너무 새빨갛거나 새파랗지 않게 적당히 세월을 머금은 단청의 빛깔이 녹록치 않은 불국사의 역사와 위상을 말해주는 듯. 

 

 

그러고 보니 여기는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짜고짜 저 높고도 날렵한 계단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기억.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로 복도가 있는데, 울긋불긋한 그 단청이 적당히 까뭇한 그늘에 반쯤 가리운 풍취가 참 좋다.

 

 

그리고 어디랄 것도 없이 적당히 녹슨 듯, 적당히 이끼가 스민 듯한 분위기의 불국사 풍경이라니. 사실 불국사는 1900년대

 

중반까지 몇 채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몰락해가는 낡은 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후 복원을 거듭하며 현재의 위용을

 

되찾았다는 건데, 그 시절 역시 적잖이 소요되어 이렇게 건물의 맵시나 색감이 자연스러워졌나보다.

 

불국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두 가지. 석가탑과 다보탑..인데, 근데 다보탑이 이렇게 컸던가. 새삼스레 놀라고 말았다.

 

아쉽게도 다보탑과 마주한 석가탑은 그 탑신을 볼 수가 없었다. 2010년 기단 덮개돌에 균열이 발견되었다나, 하여

 

지금은 완전히 해체해서 수리 중이라고 한다. 2015년이 되어야 다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보이지도 않는 가림막에

 

아무리 고개를 들이밀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봐야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이라더니,

 

아크릴로 된 가림막에는 과연 다보탑의 그림자만 비칠 뿐, 석가탑은 그림자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불국사 심장부에 위치한 대웅전, 살짝 이르지만 나른하니 기분좋은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반짝거리는 스님은 어딘가로 총총걸음을 옮기고 계셨고.

 

 

대웅전의 청록빛이랄까 청동빛에 가깝도록 바랜 나무창살문을 보며 대체 이런 데를 내가 온 적이 있던가, 다시금 패닉에 빠지고.

 

도무지 단청을 화려하게 드리운 이런 오랜 사찰에 들어서면 눈을 사방으로 돌리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뭔가를 늘 놓치는

 

기분이다. 워낙에 오밀조밀한 구석까지 디테일을 챙겼던 옛 선조들 덕분에 전후좌우 위아래로 열심히 고개를 돌리는 중.

 

 

 

휘영청 하늘을 향해 말려올라간 처마의 곡선을 따라 푸른용 한마리가 고개를 들고 금세라도 뛰쳐오를 듯한 기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금세라도 콧김으로 불기운을 내뿜을 듯한 이 형상은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 사이로 문고리를 꽉 움켜물었다.

 

 

 

도무지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은, 수평하거나 수직한 직선도 아니고 사선도 아닌 처마의 저 율동감 넘치는 은근한 곡선미.

 

 

 

그러나저러나, 도대체 고등학교 2학년짜리들이 우르르 불국사에 몰려와서는 대체 뭘 보고 갔던 걸까. 이토록 아무 기억이 없다니.

 

 

아마도 천년은 훌쩍 넘었을 부처님의 모습을 수호하고 있는 붉은 나무울타리. 저 나무들이 모두 삭아 스러진대도 돌에 새긴

 

부처님은 다시금 천년을 버티고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먹먹하다.

 

 

음..절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건 저런 크고 작은, 높고 낮은 돌탑들. 다른 돌들의 균형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돌 하나를

 

그 위에 얹는다는 행위가 갖는 기묘한 주술적 효과라거나 기복적인 요소를 인정하더라도, 여기만큼 대대적으로 벌어진 발원과

 

욕망의 탑쌓기는 처음 본 거 같다. 멀쩡한 마당도 모자라 기와가 오른 담장 위에도, 쪽문 위에도, 빗장 위에도 온통 돌탑이다.

 

 

 

워낙 사방으로 문이 나있어서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되는 건지 주춤거리게 된다. 게다가 한두개의

 

문만 지나와도 같은 듯 하면서도 또다른 실루엣과 풍경이 전개되는 판이라 마치 작은 미로 속에서 헤매이는 느낌이 들기도.

 

그 와중에 만난 복돼지상. 돼지라기보다는 살짝 쥐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삐죽삐죽 묘사된 털도 그렇지만 저 얍실한 눈빛.

 

 

 

 

그리고, 무려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란다. 저렇게 돌을 깍아만든 두 발디딤대 사이로 장차 비료가 될 것들이 보관되었단 이야기.

 

 

다시 돌아내려오는 길, 왠지 들어가던 길과 다르다 했더니 역시. 그러고 보니 불국사로 드나드는 길이 꼭 한 개가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넓은 부지, 넓은 정원과 수많은 전각들. 대체 난,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친구들과 어떤 길을 어떻게 밟았던 걸까 싶다.

 

그림자 없는 석가탑과 십원짜리 다보탑의 이미지조차 온전히 간직하지 못했던 걸 보면, 아마도 친구들과 떠들고 뛰어노느라

 

정신없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아마도 전날밤에 몰래 마셨던 술의 뒤끝에 잡혀서 비몽사몽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3월초, 정신이 번쩍 나는 맑고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고 새침한 봄볕이 살짝 뒤흔들고는 모른 척 돌아서는 그런 시기의 경주 대릉원.

 

천년을 버텼던 왕국의 천년 전 무덤들이 엄마 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곳에는 어느새 세월을 먹고 자라난 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경주 시내의 고즈넉한 야경을 책임지는 가로등 갓 속에는 첨성대도 들어있고 초승달도 들어있고.

 

아마도 천마총에도 같이 묻혔었을 법한 신라 왕족의 금관 장식도 들어있다.

 

담백한 기와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대릉원 입구로 접어드니, 살풋 물오른 연두빛 버드나무가 휘영청.

 

 

파란 하늘, 황금 잔디, 그리고 아직은 덜 깨어난 겨울나무들의 짙고 투박한 검은 빛깔.

 

 

제법 커다란 공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대릉원을 둘러싼 야트막한 담벼락 너머 이어지는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물론 신라시대 때의 가옥 양식이 저렇지는 않았겠지만, 콘크리트 네모 반듯한 건물들이 아니라 다행이다.

 

 

대릉원 안에는 천마총이 있는데, 무덤의 주인을 명확히 알게 되면 '릉'이라고 부르고,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높은 신분의 무덤이라고 판단되면 '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천마 그림이 인상적인 무덤이라 해서 천마총인 셈.

 

내부 촬영은 금지, 주요 유물들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여기에는 모조품을 진열해두었다고 한다.

 

빨간 옷을 따뜻하게 여며입은 꼬맹이 하나가 동동거리는 걸음걸이로 무덤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귀엽다.

 

 

 

저 야트막한 언덕 같기만 한 무덤들 하나하나에 주인이 있고 부장품들이 있을 테지만, 그 안에 혹 품고 있을

 

보물들이나 금은보화 같은 것들보다도 저 무덤의 곡선이 참 탐난다. 사막에 갔을 때 반해버렸던, 바람이 만들어낸 듄 같다.

 

바람이 모래를 하릴없이 헤치고 깍고 부어내며 만들어내던 그 자연스럽고 우아하던 곡선,

 

아마 대릉원의 곡선들 역시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자연의 손길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떤 각도에서 보면 마치 이전에 대유행했던 텔레토비의 동산이 중첩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사방이 온통 둥그스름하고 풍만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공간 같기도 하고.

 

 

그 사이를 이렇게 구비구비 휘여지는 산책로로 휘감아 돌아가는 모양새도 참 좋다.

 

딱히 어디를 꼭 찝어서 봐야겠어, 라거나 꼭 한바퀴를 전부 걸어봐야겠어, 라는 하릴없는 욕심 부리지 않아도

 

그저 눈앞에 펼쳐진 곡선의 풍경들과 곡선의 길들을 따라 흘러다니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공간.

 

 

경주의 가로등 만큼이나 눈길을 붙잡던 건, 기와지붕을 얹고 있던 경주의 버스정류장들.

 

대릉원을 나와서, 황남빵을 우물거리면서도 가슴 높이의 돌담길 너머 풍경에서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왠지 대릉원은 경주를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한번씩 들르게 되는 거 같다.

 

 

 

일시 : 2013년 3월 8일(목) PM 06: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이름을 붙여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5


경주 안압지, 주말에는 10시까지 개방한다는 이 곳의 주차장은 (관리인 아저씨 말로는) 이천 대까지 수용가능하다지만

 

그야말로 시장통이나 유명가수의 콘서트 직후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격전지가 되어 꽉 막혀 있었고,

 

그런 전쟁을 벌이고 들어가니 이런 고요한 수면 위로 안압지의 정자들이 의뭉스럽게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세 채의 정자. 온통 들어차있던 사람들은 흔적만 어렴풋이 남았다.

 

그 틈새에서 용케 삼각대를 소심하게나마 펼칠 공간을 잡고,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

 

안압지 수면에 비친 정자의 잔잔한 그림자. 아직은 쌀쌀한 겨울바람도 저렇게 말간 수면을 뒤흔들 힘은 잃었나보다.

 

정자 뿐 아니라 연못 주위의 인공섬들과 조경들에도 이쁜 조명이 고르게 비춰지고 있었다. 뱃놀이하기 딱 좋은 인공연못.

 

바글바글 정자가 미어지도록 올라선 사람들 쪽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굉장히 고즈넉하고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안압지의 밤 풍경.

 

 

밤이 깊어가는데도 사람들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들어오고, 대형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쉼없이 토해내는 걸 보곤

 

이제 여길 떠날 때로구나, 싶어서 떠나기 전 마지막 컷.

 

아, 안압지 연못 바닥에서 발굴했다는 신라시대 귀족들의 술자리 장난감 모형도 한 장 담았다.

 

십이면체 주사위에 면면마다 적힌 술자리 벌칙들. 크게 웃기, 옆사람 간지르기, 술 원샷하기 등등.

 

숙소로 돌아오는 길, 경주의 고즈넉한 밤길 한가운데 서서 고고히 불을 밝히고 있던 첨성대 모형.

 

 

 

압구정동 큰길따라 걷다가 문득 나타난 이국적인 건물, 고층빌딩이 한치라도 더 비싼 땅값을 빼먹겠다고 빽빽히 들어찬 가운데

 

태평하게 잔디정원까지 앞에 펼치고는 야트막한, 유럽의 냄새가 풍기는 건물을 지어놓은 무슨 성형외과 건물.

 

 

까끌까끌하게 생긴 울타리도 눈을 끌지만, 두껍고 얇은 나뭇가지를 잔뜩 뭉쳐놓고는 말끔하게 부드럽게 깎아버린 모습이

 

왠지 성형외과의 기술력이랄까, '성능'을 과시하는 거 같아 눈에 담았다.

 

 

얼마나 삐죽거리던, 거칠거나 모가 났던 상관없이 저렇게 매끈하고 유려한 모습으로 다듬어줄 수 있다는 의지랄까.

 

성형수술에 대한 찬반과는 무관하게 저런 작품으로 은근히 돌려말하는 병원 측의 센스에 일단 박수를.

 

 

 

+ 지나다니며 몇 번이나 이 조형물을 맞닥뜨렸다는 모 씨에 따르면,

 

저것은 "베이글"을 만들어주겠다는 성형외과의 의지로 해석됨. 베이비 페이스에 글래머 바디를 만들어주마,

 

그래서 저 모양이 '베이글'이라는, 믿거나말거나식의 해석.ㅋ

태국 꼬싸멧의 아침, 조금은 흐린 남국의 겨울 하늘이었지만 잔잔하게 찰박거리는 바다 위로 금비늘이 번뜩거렸다.

 

벌써부터 바다로 뛰어들어 파도를 감각하고 있는 커플.

 

 

 

빠른 속도로 떠오르는 태양, 조가비 껍데기들 틈새로 잘도 비집고 쏘아지는 햇살.

 

 

금비늘이 번뜩이는 파도가 쓸고 간 해변 모래사장 위에는 금모래가 남았다.

 

그리고 어느틈엔가 리조트 앞바다의 단조로운 풍경 속으로 틈입해 들어오는 고기잡이배들.

 

 

 

태국 중부의 국립공원 휴양지 꼬싸멧, 역삼각형 모양 자그마한 섬의 무게중심쯤에 있는 뷰포인트에서 바라본 코발트빛 바다.

 

하루 300바트짜리(약 11,000원) 스쿠터를 대여해서 거의 산악 오토바이 수준으로 역동적인 코스를 내달린 후에

 

도착한 뷰포인트, 사실은 섬의 남단까지 가보려 했지만 비포장의 산길이 워낙 울퉁불퉁해서 그만 돌아가기로 했다.

 

 

제법 높은 지대까지 올라와서 자그마한 섬이 온통 눈 아래, 게다가 이런 각도로 굽어보니 바닷물 빛깔도 훨씬 깊고 푸르다.

 

돌아오는 길에 섬의 동쪽 해안가를 따라 형성된 비치를 하나씩 돌아보며 쉬엄쉬엄, 음료도 마시고 바다도 보고.

 

저 서양 아저씨는 바다를 바라보며 태극권을 하는 듯 한참동안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여긴 모래보단 돌로 이루어진 해안인 듯, 잠시 앉아서 코코넛 주스를 홀짝홀짝.

 

꽃과 양산으로 장식된 코코넛 열매엔 물이 그득 담겨있었고, 하얗고 탱글한 젤리 역시 두껍게 붙어있고.

 

해변에선 어느 서양인 커플이 영화를 찍고 있는 중.

 

해안에서 다시 비포장도로로 올라가는 길, 정글 한가운데로 스며들어가는 느낌이다.

 

24시간동안 빌려서 열심히 타고 다닌 125cc 혼다 스쿠터. 기름은 일단 만땅 채워주던데, 섬 내부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절반도 채 닳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가 만났던 용 그림. 화려한 색감의 용 두마리가 입을 쩍 벌린 채 지키고 섰다.

 

동쪽 해안가에는 방갈로나 값싼 숙소가 많이 모여 있었는데, 그런 숙소들을 가리키는 표지들.

 

슬슬 해가 저물기 시작하는 서쪽 하늘.

 

 

 

둥근 홍등이 주렁주렁 내걸린 장대들이 맥주병이 놓인 테이블들 사이에 가로수처럼 불을 밝혔다.

 

 

몇걸음 내딛지 않아 바다에 들어가 파도랑 놀다 온 사람들이 물을 뚝뚝 흘리며 테이블에 앉아 저녁을 먹는 시간.

 

자그마한 해안 모래사장 곳곳에 색색의 조명들이 불을 밝히고 한줌의 사람들을 꼬드기는 시간.

 

 

 

순식간에 까맣게 불살라진 하늘 아래 점점 휘황찬란한 느낌으로 번뜩거리는 노랗고 붉은 등불들.

 

 

 

태국 꼬싸멧, 역삼각형꼴의 섬에 동해안가에 대표적인 해변들이 이어지고 있어서 번화가도 이쪽에 형성되어 있다.

 

타이 음식점이나 뭔가 유러피안식 음식점, 술집이라거나 상점들, 심지어는 타투샵 같은 것들도 모두.

 

그리고 산깨우 비치, 태국 가이드북에도 고작 세네 페이지 소개되고 마는 꼬싸멧인지라 별반 정보도 없이 갔고

 

어느 비치, 어느 식당이 유명하다는 정도의 정보조차 관심없이 그저 꼬싸멧이란 섬을 덩어리로 즐기러 갔다.

 

저런 마음이면 충분한 거 같다. 꼬맹이가 좋아라고 팔짝팔짝 바닷물로 뛰어들듯, 즐길 준비만 되었다면 끝.

 

바다에서 놀다가 지치면 하얗고 고운 모래사장 위의 파라솔과 긴의자에 누워 과일도 사먹고 맥주도 사마시고.

 

그늘에 누워 따뜻한 온기, 파란 바다, 시원한 바람, 보슬거리는 모래의 촉감을 즐기는 유러피안 부부들.

 

좀체 급할 줄도 모르고 양순해보이기만 하는 강아지들도 그늘을 찾아 누웠다.

 

간식거리를 팔며 돌아다니는 행상 아주머니와 계속 눈에 밟히는 저 파란 거북 튜브. 재밌겠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그림 그리는 건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듯, 누군가의 하트가 모래에 새겨졌다.

 

시퍼렇게 시원한 바다, 그리고 맹렬하게 물보라를 일으키며 내달리는 모터보트. 그 위에 나부끼는 풍선 하나.

 

 

누가 만들었을까, 꼬싸멧 모래사장의 곱디고운 모래를 물에다가 개어서 빚어올린 느낌이다. 거대한 천불천탑이 섰다.

 

 

해변과 해변 사이, 야트막한 돌무더기들이 바다 깊숙이 치고 들어간 둔덕 위에 피리부는 아저씨와 인어 아가씨 상이 섰다.

 

 

 

잔잔하게 보글보글 밀려들어오고 나가는 투명한 파도. 하얀 거품이 일다가도  이내 맑고 투명한 유리같이

 

하얀 모래사장을 쓰다듬곤 밀려나버리는, 한없이 평화롭고 아늑한 바다.

 

그렇지만 살짝 북적이는 노점가 앞에서는 이렇게 거북거북들의 종족 번식의 욕구가 피어오르고.

 

 

 

어느 파란 플라스틱 의자를 떡하니 차지하고 뒹굴거리던 고양이 한마리는 사람이 다가와도 마냥 게으르기만 한 눈빛이다.

 

 

 

 

 

 

 

 

 

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PM 06:1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나온 장소가 어디인지 맞춰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 힌트 : 아래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8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구룡포항 앞의 조그마한 거리, 일본식의 '적산가옥'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여느 소도시, 아니 조그마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높아봐야 2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맞부비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통, 그 와중에도 네모 반듯반듯하고 말끔한 분위기의

 

일본식 건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옆엣 건물들의 어깨 사이에서 살짝 기죽어 있는 듯한 단층 건물 역시 담백한 직선과 네모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본냄새를 풍긴다.

 

 

100년전의 낡은 지붕, 붉은 벽돌과 뻥 뚫린 나무창살까지 일본식 가옥거리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한 사진들.

 

 

 

잔설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하얗고 까만 일본식 기와가 얹힌 담장들이 차분하다.

 

그렇게 골목통을 따라 휘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일본식 가옥들은 저만치 밀려나고 또다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난다.

 

날것의 거칠한 질감 가득한 콘크리트 벽돌블록을 쌓아만든 담장 옆에는 그래도 구룡포 앞바다빛깔을 담은 파란색 칠의 대문이.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는 외계인 가면처럼 생긴 오징어들이 배를 째고서 바닷바람에 마르는 중이었다.

 

지붕위를 두텁게 덮었던 하얀 눈이불은 발치까지 끌어내려져서는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온통 녹슬어버린 파란 대문짝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풍상, 바닷바람의 짠기,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일상..

 

 

분분이 남아있던 잔설들은 단정하고 담백한 일본식 기와지붕의 갈비뼈를 까맣게 드러냈고, 거칠고 투박한 벽돌은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가장 윗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폐교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윗동네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의 저녁 풍경. 불밝혀진 노점들의 행렬 너머로 바닷물이 일렁인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찻집. 잠시 들러 몸도 녹이고 차 한잔을 하려 하였건만 자리도 몇 개 안 되고 문도 일찍 닫는 듯 하다.

 

 

애초엔 '근대문화역사거리'인 줄만 알고 들어섰던 골목길이었지만 꼭 그런 느낌만 담겨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사실 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줬던 건 이런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이었으니,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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