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시테섬은 살살 거닐며 세느강의 운치와 이국적인 파리의 건물들을 구경하기에 좋은 공간인 거 같다. 비록
 
파리지앵보다 관광객이 훨씬 많이 보이는 특이한 도시이긴 하지만 자신의 매력을 올곧이 지키고 있는 듯 한 느낌,

혹은 그런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부터 뒤섞여 뿜어지는 분위기 자체가 파리의 왠지 모를 들뜨고 설레는

공기를 만들어내는 건지도 모른다. 9월 초가 되니 동양 특히 한국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전부 서양 사람이다.

배낭여행을 다니면서 특히나 방학기간에 만나는 한국 사람은 크게 세 부류, 대학생이거나 학교선생님들, 혹은

뭔가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직장을 접고/쉬고 나온 직장인들. 세 부류 모두 보이지 않는 9월의 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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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공연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었다. 일요일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실제로 파리 시내 곳곳에서, 지상과

지하를 막론하고 어디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걸 모르고 여행 초반엔 신기하다고 이사람 저사람

마구 찍어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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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섬 어느 다리 위에서 벌어지던 서커스, 자연스럽게 공연이 벌어졌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였으며, 그런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 나 역시 동화되었다. 따스한 햇볕을 등 뒤로 느끼며 유유자적하는 사람들.

한시간여 동안 레파토리를 펼치는 광대 아저씨를 보며 가로등에 기대앉아 하염없이 구경하다 문득 든 생각.  

아...이런 게 사는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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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쿼텟까지. 요새 색소폰을 배우는 나로서는 저 아저씨의 멋진 손놀림과 제스처가 인상적이었댔다. 쿼텟 멤버와

사진을 찍어보고 싶었던 한 관광객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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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느강을 유유히 항행 중인 선박, 다양한 종류의 유람선이 각기의 구간을 운행하고 있었다. 최근에 새로 생겼다는

바토 버스..던가, 보단 여전히 바토 무슈가 좋다는 다른 관광객들의 이야기도 유심히 듣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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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의 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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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걸음을 붙잡는 풍경들, 그리고 굳이 잰 발걸음이 아니어도 금세 가닿는 오밀조밀한 공간들. 세느강변에

앉아 사과를 베어물던 아가씨의 회색눈이 계속 나와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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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내 돌아다니면서 관광객들이 다 어디있을까 궁금했었는데 노틀담성당 앞에 꼬물대는 사람들과 관광버스들을

보고 아하, 했다. DSLR과 캠코더로 무장한 관광객들이 이 앞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저마다 빈 틈을 노려 비집고

파고든다. 

가기 전에 노틀담성당은 요게 다인 줄 알았다. 저 장대한 세 개의 문과 그 위에 얹힌 화려한 조각들. 한바퀴 돌아

보니 그게 아니더란 얘기..뒤에서 보는 건 또 나름의 멋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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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의 건물은 +자 모양이랄까, 입구와 십자가상이 양끝에서 마주 보고 있고 그 직선상 허리켠 쯤에

양날개처럼 스테인드글라스로 장식된 커다란 채광창이 달려있는 형태다. 그 +자의 중간, 성당의 중심부 천장엔

이런 그림이 조그맣게 올라붙어있단 사실을, 구석구석 둘러보다가 발견했을 때 혼자 속으로 많이 좋아했다.

천장에 조그맣게 그려진 저게 이런 성모자의 형상이란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어서. 그래서

노틀담 성당에 대한 내 첫 사진으로 임명. 별이 가득한 우주를 관장하는 그리스도와 성 마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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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시테섬으로 건너면서 놀랬던 건, 거의 십여개에 달하는 다리를 세느강 양안으로 뻗고 있는 시테섬은

그다지 섬같은 느낌이 들지 않았다는 것 하나, 그리고 관광객들이 다 어디갔나 했더니 노틀담 성당에 전부 다

몰려있었구나 하는 깨달음 하나. 2층짜리 관광버스가 쉴새없이 관광객을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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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본 노틀담 성당의 이미지는 사실 모종의 기시감이 들 정도로 이미 익숙했다. 그렇지만 뒤에서 본 노틀담

성당은 영 딴판이어서, 마치 '대항해시대'같은 게임에서 숨겨져있던 보물같은 장소를 찾을 때 느끼는 그런

팡파레 같은 게 터지면서 짜잔, 하고 나타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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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코디언 부는 아저씨에게선 왠지 모를 예술혼이 느껴져서, 내 기꺼이 50상팀을 내주었다. 사실은 사진 좀 잘

찍어보려다 눈이 딱 마주치는 바람에 별 수 없었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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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은 왠지 상아를 정교하게 세공한 건물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약간 아이보리빛을 띈 건물에 촘촘하게

조각된 창문이나 정면에 선 세 개의 대문은 한참동안 서서 바라보아도 싫증나지 않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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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성당에 나가고 세례도 받았지만은, 성당같이 '신성성'을 표하는 공간에 들어가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인간이 의도한 대로, 엄숙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노래와 높은 천장으로 공명하는 울림, 그리고 어슴푸레

조여진 몇몇 창문으로 계산되어 들어오는 한줌의 햇살, 아줌마라 불러야 할지 처녀라 불러야 할지 모를 마리아와

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한 사내, 혹은 아기의 형상까지. 스스로 만들어낸 분위기에 스스로 압도당하고 눌려버리는

것 같다. 인간의 필요로 만들어진 신에게 스스로의 삶을 바치고, 인간의 역사를 내맡겨선 몇 백년간 싸움도 하고

여전히 그런 도그마에 빠져 종교분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면,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맑스의 이야기가 더욱

와닿는다. 물론 맑스의 그 말은 뒤집어 생각컨대, 적절한 수준에서의 '복용'은 정신건강에도, 육체건강에도 좋을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기기도 한다고 생각한다. 옛날 비상약으로 아편을 꿍쳐놨다가 조금씩 써먹었다는 얘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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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가서도 놀란 것 중 하나가, 기독교 문명권에서 얼마나 다양한 표정과 모션과 메시지로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이미지가 변주되어 왔는지 하는 것. 숱한 옛 기록들을 짜맞춘 'holy book'을 그 자체 하늘의 음성으로

여기면서 시대와 장소를 넘나들어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한 그 결과물들은, 당연히도 제각기

첨예하게 다르다. 단지 외양이나 포즈의 문제만이 아니라, 어떠한 사람이었을지..에 대한 기대나 예측 자체가

그토록 판이한데, 과연 그들이 생각하고 호명하던 '신'이란, 과연 같은 사람 혹은 무언가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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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 안에 있는 프랑스의 성녀, 잔 다르크. 어떤 영화에서였던가, 그녀는 신들린 반 또라이로 나왔던 걸

본 적이 있다. '신들린'이란 단어, 써놓고 보니 참 시니컬하기도 하고 날카롭기도 한 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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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스테인드 글라스. 이뿌다는 생각 이전에, 저기에 돌멩이 하나라도 던져서 누군가 깨뜨릴라 했다면, 그

소리가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솔직한 고백. 이 경건하고 웅장하고 밭은 기침소리 하나 내기도 힘든

엄숙하기 짝이 없는 성당 내로 유리조각들이 산산이 떨어져내릴 때라면, 거의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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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중인 파리지앵들의 머리 위로 거대한 파이프 오르간이 보인다. 언젠가 한번 명동성당에서 파이프 오르간이

직접 연주되는 걸 들은 적이 있는데, 시니컬한 나로서도 그 장엄함에 감동받고 말았었다. 여긴 어떨까..궁금했는데,

우연찮게도 여행을 마치기 전에 한번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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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 바깥날씨, 왠지 밖으로 나오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여기가 내가 사는 세상, 가스펠 성가나

엄숙한 설교소리, 그리고 고요한 분위기로 포장되지 않은 날것의, 다소 칼칼하지만 신선한 공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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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서 오페라나 발레 한 작품을 꼭 관람하고 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내 체류 기간동안에는 두 개의 오페라 극장 모두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 오페라 역에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 그리고 바스티유 역에 있는 오페라 바스티유(Opera Bastille)의 10월 일정표.

혹여 10월 중에 파리 가시는 분은 참고하시고 꼭 관람하시길 바라며. 오페라 바스티유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씨가 재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양 오페라극장 모두 물론 비싼 좌석은 엄청 비싸지만 싼 좌석도 꽤나 있다고 하구요, 파리와 서울의 물가를 대비한다면 더욱 가볼 만 한 거 같아요. 그리고 공연 직전 삼십분 전쯤 가면 매우 싼 좌석을 구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만원안짝이었던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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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가서 오페라나 발레 한 작품을 꼭 관람하고 오겠다는 다짐이었지만, 내 체류 기간동안에는 두 개의 오페라 극장 모두 아무런 일정도 없었다. 오페라 역에 있는 오페라 가르니에(Palais Garnier), 그리고 바스티유 역에 있는 오페라 바스티유(Opera Bastille)의 9월 일정표.

혹여 9월 중에 파리 가시는 분은 참고하시고 꼭 관람하시길 바라며. 오페라 바스티유에서는 지휘자 정명훈씨가 재임하기도 했다고 하네요. 양 오페라극장 모두 물론 비싼 좌석은 엄청 비싸지만 싼 좌석도 꽤나 있다고 하구요, 파리와 서울의 물가를 대비한다면 더욱 가볼 만 한 거 같아요. 그리고 공연 직전 삼십분 전쯤 가면 매우 싼 좌석을 구할 수도 있다고 하네요. 만원안짝이었던 듯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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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가면 꼭 먹어보란 얘기를 들었던 크레페. 가장 싼 길거리 음식 중 하나지만, 다양한 속을 넣어서 맛볼 수 있다.

우선 처음에는 설탕, 수크레(sucre)를 듬뿍 넣어 먹어보았다. 낭창낭창한 크레페의 빵 맛이 홍대입구나 그런데서 맛보던 크레페랑은 많이 달랐던 듯. 그담에는 일명 "쪼꼬쨈"이라고 불리는 뉴뗄라를 발라 먹어 보았고, 그 담담에는 바나나랑 뉴뗄라가 들어간 크레페를 먹어보았던 거 같고, 그 담담담, 담담담담에는...

만들어주는 아저씨한테 "보꾸보꾸~!"를 외쳤더니 정말 뉴뗄라가 줄줄줄 흐르도록 발라주셨던 그 인심도 잊을 수 없지만, 밀가루 반죽을 판 위에 둥그막하게 펼치던 아저씨의 능란한 손동작 역시 잊을 수 없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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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파르나스 거리 쯤에서 마주친 크레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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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테 섬 어딘가에서 마주쳤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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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를 떠나 노틀담 성당으로 걷는 중에 만난 풍경.
해바라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골목을 면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두 거리쪽을 내다보고 있다. 그 앞에 가만히 서서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단체관람당하는 기분일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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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리번거리며 골목길을 지나던 내 앞에 갑작스럽게 출현한 자전거 두대, 그리고 세 부녀.
알고 보니 바로 옆 문에서 막 외출한 찰나였지 싶다. 안전모를 챙겨쓴 아이들이 귀여워서 순간적으로 찰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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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어디를 가던 일식과 중식집은 금방 눈에 띈다. 알제리를 식민경영했던 경험을 가진 프랑스에선 무슬림들도 꽤나 산다고 하며, 그 덕인지 케밥이나 꾸스꾸스같은 이슬람 문명쪽 요리도 많이 보았고, 어딜 가나 저렴한 가격으로 사랑받는 베트남 쌀국수 가게도 꽤나 번창하고 있었던 듯 하다.
근데 왜 서울의 쌀국수 가게는 그렇게 비싼 건지, 한국에 들어온 스타벅스나 커피빈만 문제가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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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드문드문 놓여 있는 공용 화장실. 노틀담성당이나 유명한 관광지 주변에는 유료 화장실만 보이기도 하지만, 급한 상황에선 요긴하게, 무료로 쓸 수 있는 화장실이다.

생 제르망 거리를 걷던 중이던가, 갑작스런 신호에 부응하여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막상 찾아낸 화장실은 문이 잠긴 채 요란스럽게 냄새를 뿜어내고 있어서 난감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대개 상당히 깔끔하고 뒷처리도 무난하게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자동문.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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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를 사용해 저렴하게 자전거를 빌려탈 수 있다는 이야기의 진원지는 이런 자전거 보관소인 것 같다.
시내 곳곳에 이런 보관소가 설치되어 있고, 카드를 대면 자전거를 빌리고 돌려주고 할 수 있는 시스템인 듯 한데 유학중인 친구의 말에 따르자면 사실 관광객이 아닌 파리 시민을 위한 시설이라고 한다. 관광객도 못 빌려 탈 리야 없겠지만 내가 파리에 있는 동안 저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대부분 현지의 시민들이었던 것 같다.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자전거 전용도로같은 인프라도 철저히 갖춰진 파리, 한국에서도 무작정 에너지 절약이니 자전거 통근이니 구호로만 그치거나 사람들의 자발성에만 기댈 것이 아니라 이런 구체적인 제도를 정비했음 좋겠다. 사람이 미어터지는 영등포구청, 신도림, 신림, 서울대입구, 사당, 교대, 강남...을 가쳐 삼성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해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하기 넘 힘들단 말이다.

저렇게 보관되는 자전거가 도난당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시민의 '공익'이라는 가치를 확고히 견지하는 시 당국과 시민정신의 뒷받침이 부럽기만 했다. 자전거도 쌔끈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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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테섬에 들어서는 다리 위에서 드디어 마주친 세느 강.
한강에 비하면 정말 아담한 사이즈의 강이었지만, 아기자기한 풍광과 연한 갈색톤의 질감이 운치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 강변에 점점이 흩어져있는 연인들이 주위시선 따위 아랑곳않고 벌여대는 애정행각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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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인드글라스의 최고 걸작으로 인정받는다는 생 샤펠 성당과 루이 16세의 왕비였던 마리 앙투아네트가 최후를 준비하던 독방이 있는 감옥소인 콩시에르주리를 품고 있는 옛 건물群.

저렇게 커다랗고 내부를 알 수 없이 꽁꽁 숨겨둔 것만 같은 건물들을 하나하나 헤집으며 내부의 이미지를 채워가고 그곳의 분위기를 맛본다는 건, 마치 생일날 푸짐하게 받은 선물들 포장을 하나씩 뜯어보는 느낌이랄까. 그런 식인 게다. 네 속에는 무엇을 숨기고 있니, 내게 어서 보여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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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보니 마침 미사를 막 마치던 중..아, 그러고 보니 일요일 아침이었다. 보통 서울에 있을 때에는 늦잠을 자다가 벌떡 일어나 친구와의 약속장소로 서둘러 나서는 시간.

제단을 가운데 두고 세 방향에서 오붓하게 둘러앉아 신부님 가까이에 모여있는게 보기 좋았다. 성당을 이리저리 둘러보며 유유히 구경하다 보니 친절한 아주머니 한분이 미사 후 간식과 와인을 권하신다. 마다않고 주는대로 먹고 마시고. 살짝 취기가 올라 천천히 성당 내를 걸으며, 서늘한 공기와 차분한 분위기의 감촉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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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 오르간의 연주를 한번 들어본 적이 있는데, 정말이지 그 웅장함과 장대한 선율은 '신적인 것'을 느끼게 했었다. 프랑스에서 한번 들어볼 수 없을까 했는데, 나중에 예기치 않게 노틀담 성당에서 그 연주와 합창을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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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가가 생 마리 성당에서 철사로 조형물을 제작하는 작업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알바트로스의 형상, 이건 아마 그 작품 중의 한 점인 듯 하고.
언젠가 내셔널 지오그래픽지에서 알바트로스에 대한 기사를 봤을 때 깊은 인상과 선명한 대비감을 남긴 단어가 생각났다. gravity & wind. 중력과 바람의 새 알바트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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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와인을 권한 착한 아주머니. 아무리 그래도 프랑스에 가득한 성당들은 여행객이 쉬기에는 그다지 편치는 않다.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이집트의 모스크들. 내가 쉬고 자고 일기쓰고 일정짜고 음식까지 누워서 먹었던 평안한 공간. 프랑스에선 온통 널려있는 공원이 여행 내내 그런 공간이었다.

걷다가 지치면 앉아 쉬고, 추우면 햇볕쬐고, 샌드위치 먹고, 뒹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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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이 나서 가이드북을 뒤졌더니, 역시 짧막한 소개가 나와있을 만한 곳이었다.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닌 듯 하다 했더니, 1600년대에 완성된 성당으로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종이 1300년대부터 지금까지 울리고 있댄다. 뭐, 천장에 붙은 저 묘한 그림을 한동안 눈여겨보느라 종소리는 못들었지 싶다. 여인의 슬퍼하는 표정같기도, 남자의 괴로워하는 표정같기도, 혹은 초탈한 표정같기도 하고.

루브르 박물관에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아기와 젊은 엄마(아줌마 혹은 처녀), 십자가와 고통받는 남자와 여자..라는 몇 가지 소재를 가지고 참 많이도 만들어냈구나 싶었다. 저마다 다른 포즈, 표정, 외모, 그리고 분위기로 셀 수 없이 많은 변주를 해냈다, 인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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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사람들. 독실한 가톨릭국가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에서 "다빈치 코드"가 가진 메시지는 내 생각보다 더욱 강력한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난 사실 그 책의 내용, 자체의 재미를 떠나 그다지 새롭지도 않고 새롭지 않으니 놀랍지도 않았다. 그리고 충격과 경악에 빠진 주인공들을 보면서 감정이입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여기 프랑스에선, 왠지 그럴만 하겠다 싶었다. 여긴 가톨릭 전통에 선 신 외에 다른 신들을 접하기가 쉽지 않은 곳인 데다가, 그 전통에 기대어 역사를 이어온 나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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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안의 '비상구' 표시는 왠지 쌩뚱맞아 보였다. 인간의 영혼을 구원한다는 고색창연한 성당에서, 비상시에 달려나갈 방향을 표시하는 현대적인 아크릴 나부랭이라니. 더군다나 보통 십자가는 교회 맨 안쪽 깊숙한 곳에 모셔져 있단 점에서...급할 땐 반대로 튀어라, 하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셈이니 조금 웃기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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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에서 퐁피두센터가 있다는 곳으로 설렁설렁 걸음을 옮겼다. 이집트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현지인과 관광객의 가장 큰 차이는 무단횡단을 하는지 안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어리바리한 관광객 티는 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신호등은 늘 무시하고 다니다시피 했었다. 그러다 개선문갈 때 큰일날 뻔 했다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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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쿠키빛 건물들이 바삭바삭하게 이어지다가, 어느순간 불쑥 뛰쳐나온 저 파란색 파이프들. 마치 예술가틱하게 마르고 길쭉한 손에서 울룩불룩 튀어나온 파란 정맥들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보는 순간 왠지 웃음이 배실배실 나올 정도로 유쾌한 경험이었달까. 퐁피두 센터의 전위적인 exte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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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이프가 바싹 마른 아이의 늑골처럼 튀어나와있는 퐁피두센터의 기둥에 붙어 있던 딱지 한장.
냉큼 받아들이기 힘든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보듬은 반창고랄까.
"Art is the technology of the soul."
사실 난 보는 순간부터 맘에 들었던 그 기괴하고 참신한 건물. 그치만 그건 고풍스런 빠리 도심 한복판이었어서, 또 그거 딱 한 채였어서 그런 걸 게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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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 정면. 포석이 도톨도톨하게 깔린 그곳에서 쌍쌍이 앉아있던 커플들 사이를 굳이 지나, 자판을 깔아놓은 상인들과 몇마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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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퐁피두 센터를 정면으로 마주한 너름직한 광장. 주먹만한 포석들이 촘촘이 박혀있는 그곳에 철푸덕 주저앉아 크레페와 에스프레소를 양손에 들고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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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을 때 브이를 그리는 건, 아이들과 한국인들 뿐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서로 부비적대며 카메라 앞에 나서겠다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브이가 아니라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천사들의 합창'이란 과거의 티비프로그램은 혹시 프랑스에서 제작된 거였던가. 왠지 저 아이들을 보는데 극 중 등장인물들이던 시를로랑 마리아 호아키나, 그리고 그 이뿐 선생님까지 차례차례 떠올랐다. 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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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이건 왠지 '오 나의 여신님'에서 스쿨드가 만들었던 그 문지기 로봇이 떠오른다.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지독히도 남성중심적인 만화에 흠뻑 빠졌던 내 중딩시절. 찌질한 주인공을 둘러싼 세명의 여신이 가진 이름은 알고 보니 게르만 전설에 나오는 세 운명의 여신 노르네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과거를 아는 우르트르(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트란디(베르단디), 그리고 미래의 여신인 스퀼트(스쿨드).
그치만 개인적으로 이 세명은, 메이드/선생/아줌마(엄마) 취향을 위한 베르단디, 군복녀/SM/누나/직장녀 취향을 위한 울드, 그리고 롤리타(소녀)/안경녀/여동생/교복녀 취향을 위한 스쿨드로 짜여진, 이후 일본의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섬세하게 분류된 캐릭터 구축을 위한 선행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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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물을 뿜어내는 분수 꼭지, 빙빙 돌리는 모터, 그리고 약간량의 플라스틱으로 뒤집어씌워진(?) 껍데기,
그걸 가지고 반짝이는 유쾌한 아이디어와 결합시켜 구현해낸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있는 아기자기한 분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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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눈길을 끌던 인어상. 뱅글뱅글 돌며 '젖을 짜내고 있다'랄지, 혹은 '가슴에서 분수를 내뿜고 있다'랄지. 그리고 한참 후에 내 눈길은 그 뒤쪽 고색창연한 성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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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두고 스트라빈스키 광장..이라는 그럴듯하고 뭔가 엄청나보이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퐁피두 센터 옆의 자그마한 분수대를 둘러싼, 역시 자그마한 공간을 말한다. (유학가 있는 내 친구는 퐁피두 센터는 알아도 스트라빈스키 광장이라고 하면 모르더라..) 가이드북은 종종 하나로 묶여있는 공간들을 몇개로 헤집어서 따로따로 거창하게 소개해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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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여행을 다니는지, 시청에서부터 마주쳤던 사람들. 파리에서 해보고 싶던 것 중 하나가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정처없이 내닫는 거였는데 결국 실현하지는 못했다. 대신 체지방을 잔뜩 연소시키고 그 빈 공간을 근육으로 꽉꽉 눌러채울만큼의 쉼없는 걸음걸이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돌렸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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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는 사실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이 즐비한 루브르, 그리고 인상주의 시대의 작품이 주된 오르세, 혹은 오랑주르 미술관에 이어 현대적인 작품을 구비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달의 첫째주 일요일도 아니고 딱히 돌아보고 싶진 않아서 그냥 선물샵과 가벼운 만평전만 두리번두리번. 그 중에 찾아낸 왠지 비슷한 이미지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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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보았던 그 분이 아닌가. 알고 보면 파리에선 비둘기나 심지어 참새마저도 전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나 루브르박물관을 바라보는 카루젤 개선문 근처서 호젓하게 홀로 빵을 뜯다보면 어느새 옆에 참새들이 십여마리씩 고개를 갸웃대며 호시탐탐 빵을 노리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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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 색소폰을 배우면서 몇가지 불고 싶은 노래들이 있었다.
그 목록에 있는 'misty'가 예기치 않게 내 귀에 들려오길래 고개를 돌린 곳에서 펼쳐지고 있던 멋진 야외 공연, 알고 보니 파리 시내 곳곳에서, 지하와 지상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들이었지만 매번 반갑고 또 기꺼웠더랬다.
버겁고 비루한 삶을 살고 있음을 한껏 드러내며 지지직 끓는 소릴 내는 찬송가 테입이나 틀어제끼는 서울의 지하철 풍경과는 다른, 재즈, 클래식, 샹송..같은 음악적 다양성과 여유로운 예술가틱한 무언가가 반짝이는 그런 풍경. 그사람들을 수입해다가 고대로 서울 지하철,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으면 싶었다.

한결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한결 사람들의 표정이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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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지만 만리타향 아는 사람 한명 없는 곳, 그리고 애초 계획에도 없던 곳, 이 곳에서 나를 기다리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은 적지않이 위로가 되었다. 요 깜찍한 사이즈의 자물쇠들이 내가 속한 따스한 공간을 무채색의 흐릿한 파리 시내의  낯섦과 어두움에서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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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 성당으로 향하는 지하철 출구.
적당한 지하철 출구를 찾아 한걸음씩 위로 올라설 때마다, 어떤 풍광이 기다리고 있을지 가슴두근거리며 걸음이 빨라지곤 했다. 그러고 보면 이번 휴가땐 다른 사람을 빠른걸음으로 앞지르지 말자..고 생각했었는데 그다지 잘 지켜진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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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파리시청, 흐릿흐릿하니 비가 흩뿌리다 바람이 날리는 날씨는 첫날부터 마지막날까지. 햇볕 한줌을 위해 수고로이 몸을 옮기는 나는야 빠리지앵. 근데 갈색 낙엽 흩뿌려지는 가을 날씨에 흠씬 두들겨져서는 가을을 타다가 돌아온 한국의 날씨란, 왜 이다지도 더운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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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청을 지키고 있는 수많은 입상들. LEBERTE, EGALITE, FRATERNITE..라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은 어느 공공기관이나 건물에서고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선명한 국가 정신과 그러한 탄탄한 지반 위에 서 있는 프랑스 사회. 똘레랑스를 이야기하는 건 그 정도의 역량이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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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오전, 몇 대의 패키지 관광객들이 살포시 찍고 가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많은 사람이 보이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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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좀더 '하늘색'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잔뜩 흐리고 뿌연 빛만 비산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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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런 이 사진은 한국의 서울시청. 뭐..일제의 잔재 청산,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이런저런 말이 많지만 다 떠나서, 파리시청과 비교했을 때 무지 담백하달까, 밋밋하달까. 어쩌면 고층아파트나 특징없는 현대적인 빌딩만 가득한 서울의 현재 이미지는 이미 시청건물이 지어지던 시기부터 예정되어있었는지 모른다.

김포공항에서 인천으로 리무진버스타고 나오면서, 그리고 인천공항 내에서까지 날 열받게 하는 일들이 계속 눈에 거슬렸었다. 모처럼 떠나는 여행인데 MB 따위야 머릿속에서 며칠간만이라도 지운 채 떠나고 싶었지만, 애초 '시사인'을 비행기 안에까지 끌어들인 건 나 자신이기도 했다. 포크레인이 얄밉게 굴러다니던 헐벗은 붉은흙빛 굴포천 방수막 2차 공사..가 실은 대운하 사업의 한 부분인 경인운하를 대비하는 공사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고, 그런 황량한 풍경이 김포에서 인천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인천공항에서는 노조분들께서 인천공항 민영화 반대 서명을 받고 있었다. 하다 못해 면세점서 신발 한켤레를 사면서도 완벽하게 실패한 채 일관성과 신뢰성을 상실하고 만 환율정책 나부랭이가 부아를 돋구었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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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풀 겸, 다시 시청 앞 동상과 함께 한 파리 시청건물. 여행 첫날 첫방문지. 사실은 걸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컨셉을 따라, 퐁피두센터까지 가는 길에 살짝 지나갔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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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뻘겋게 물든 하늘이 너무 이뻐서 한 컷. 여태 자동모드로만 놓고 찍던 카메라였어서, 잠자던 수동기능을 일깨워 카메라를 제대로 활용해 보는 게 이번 여행의 목표 중 하나였다.

내가 아는 한, 열한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쓰는 방법중의 하나는 서울에서 파리까지 비행기로 날아가는 것.
다이어리를 정리하고, 베일리스도 마시고, 책을 보고, 밥을 먹고, 잡지도 보고, 자다가, 와인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꼬냑도 마시고, 옆사람과 수다도 떨고, 자고. 그러고 나니 러시아 하늘을 날고 시베리아의 툰드라 동토를 지나 지구의 삼분지일을 돌아버렸다.

참, KLM이나 에어프랑스는 중간에 컵라면을 간식으로 준다. 대한항공같으면 비즈니스석에만 제공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늘에서 먹는 컵라면은 살짝 불었음에도 참 맛있었다. 먹고 난 뒤 기내에 꽉 차버린 라면 냄새조차 구수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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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와인 달랬더니, 부드럽지만 단호하고 가차없는 손길로 뚜껑을 돌려버린 병에 투명한 컵을 얹어 건네는 스튜어디스. 그런데 받고 보니 화이트 와인인 게다. 비행기값을 생각하며 기내에 실린 마지막 알콜 한방울까지 빨아먹겠다 다짐했던 나인지라 바로 항의. "제가 시킨 건 레드 와인인데요."

잠시 당황했던 그녀는, 그렇지만 이내 예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손길로 레드와인을 잡더니 뚜껑을 돌려버리고는 다시 건네주었다. 덕분에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을 푸짐하게 얹어놓고 홀짝대는 호사를 누렸다. 넉넉히 달랬더니 정말 넉넉히 준 스낵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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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경유했던 암스텔담 공항 내에는, 각 구역마다 특징적인 컨셉으로 선명하게 개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자그마한 성처럼, 혹은 노란색 반들거리는 딱정벌레처럼 꾸며진 까페들. 그런 까페들을 내려보고 있는 특이한 네온사인 하나. 수다스럽게 하이룽하이룽, 하하, 아!라고 온통 빤짝대며 말을 걸어대는, 엉켜버린 실뭉치같은 네온사인.

역시 네덜란드의 출입문 암스텔담 공항. 공항 내 면세점에는 온통 튤립 생화, 튤립모양 장식품들, 전통 나막신들과 치즈, 초콜렛으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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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11시간여의 비행끝에 파리를 내려다 보다.
사실 비행기에 열몇시간씩 꾸겨져 타고 있는 건 적잖이 비인간적인 일이다. 통로쪽에 앉지 않은 이상 화장실 가는 것도, 스튜어디스를 부르는 것도, 하다못해 몸을 한번 뒤트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그저 일직선으로 곧게 나아가는 비행기의 거대한 동체 안에서는 날고 있다는 실감 따위는 공기만큼 희박하다. 단지 가끔 돌부리에라도 걸린듯 비행기가 쿨럭이면 여기저기서 들리는 비명소리에 묻어나는 공포감에서, 지금 여기가 지상 수천미터위 하늘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뿐.

특히나 화장실서 일보고 있을 때 비행기가 휘청대면 스릴 짱이더라. 어쨌든 두다리로 단단히 버티고 서있으니 왠지 비행기가 추락해도 이대로 땅위에 두다리로 내려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기고.

그러고 보면 30일 오후 1시 비행기였는데 파리 현지시각은 30일 오후 10시어간이었다. 왠지 하루를 꽁짜로 벌은 것 같은 기분은 귀국할 때 슬몃 사그라들어 버리겠지만, 그래도 당장 시간을 달리는 소녀가 된듯한 느낌이 산뜻하다. 근 일주일 동안의 기간동안 저 거리들을 내 두다리로 가위질하듯 걸어다니겠구나 생각하니 잔뜩 눌린채 떡진 머리, 딱딱하게 굳어진 근육세포들 따위 어느새 아무렇지도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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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나오겠다고 한 친구가 버티고 있을 출구를 향해서, 한손에 카메라를 쥐고선 빠른 걸음으로 향했다.
작년 가을쯤이었던가, 그가 잠시 서울에 왔을 때 밥한끼 먹고선 처음 만나는 순간을 찍어두고 싶었다. 그러나 출구에서 날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었고, 가장 먼저 짐을 찾아 일등으로 나왔던 나는 다른 사람들이 속속 일행을 찾아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십분, 이십분, 삼십분..2001년 뉴욕 JFK공항에서 만나기로 한 친구가 나오지 않아 하루 공항서 노숙했던 기억이 불길하게 떠올랐지만. 40분, 친구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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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름한 전철 너머 보이는 황량한 역사. 그리고 뭐라씨부리노, 낙서가득한 유리창. RER B선을 타고 친구녀석 집으로 향하는 길에서 마주친 최초의 이미지.

나중에 알고 보니, 샤를 드 골 공항과 파리를 잇는 이 전철은 일종의 교외선, 파리 중심부부터 1, 2, 3..5 존으로 구분되는 요금체계에서 가장 먼 5존으로 설정된, 파리 외곽을 잇는 전철이다. 인천공항이랑 서울쯤의 관계랄까. 그러니 8.5유로였던가..그 비싼 요금도 대강대강 수긍해 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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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드 골 공항(#2)에서 RER B선을 타고 15구에 있는 친구녀석의 집으로 향하는 길. 파리 중심가부터 시계방향으로 뺑글대며 달팽이 모양으로 감겨나가는 '구'의 구획상, 15구는 파리 남쪽 끄트머리다.
내 하루 일정의 알파요 오메가였던 12번 전철 Convention역(이라 쓰고 꽁방숑, 이라 읽는다)까지 고고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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