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걷다 보면 어느새 시내 변두리까지 금방 가닿을 것만 같이, (서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그마한 느낌이다.

더구나 다니엘과 생 샤펠에서부터 계속 쉴새없이 떠들면서 이곳저곳 내키는대로 쇼윈도우도 들여다 보고, 매장에

들여다보고 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뤽상부르 공원까지 도착해 버렸다.

참...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거지만, 근사한 기럭지의 잘 입혀놓은 모델만 세워두면 바로 화보촬영장이 될 법한

거리인 데다가, 그런 분위기였다. 물색없이 쪼리에 반바지를 입고 나갔던 차림이 추워보인다 싶을 정도의 소슬한

날씨였던 터라 지나가는 사람들은 스카프도 두르고, 깃 세운 반코트도 걸치고 있었지만, 잘 가꿔지고 있던 공원의

만개한 꽃들은 참 이뿌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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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캐나다에 다섯 살 연상 남자친구가 있는데, 그녀와 같이 건축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파리에서의 여행 겸

건축물 순례를 마치면 로마로 가서 친구들과 좀 더 휴가를 즐길 예정이라 했다.


그녀가 한국에 대해 궁금해 하던 것 한 가지, 한국인들은 휴대폰을 세 개씩 갖고 다닌다던데 진짜야?

아마도 IT강국이라거나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한국수출상품의 이미지에서 기인했을 법한 질문이었다. 글쎄,

대부분은 한 개만 갖고 있을 텐데...혹시 모르겠다, 영업을 한다거나 바람을 피고 있는 사람이면 그렇게 많이 갖고

있을 수도 있겠네 했다. 혹..내 대답이 어떤 식으로던 한국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건 아니겠지..


그녀와 함께 앉아 이야기를 즐기던 뤽상부르 공원의 분수대 주변. 서울이던 파리던 공원은 공원일 뿐이다, 라는
 
깨달음은 이미 얻었지만 실제로 파리의 공원을 본연의 목적이랄 '쉼'과 '여유있는 담소'의 공간으로 쓴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그제야 주변에 배치된 조각상들이나 예술작품들, 혹은 잘 꾸며진 건물과 정원들이 하나하나 꼭

눈도장찍어야 할 뭔가가 아니라 우리의 대화를 위한 온화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경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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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따라 하늘도 푸르렀고..다니엘은 아침부터 걸어다녔더니 피곤하다면서 저녁밥은 숙소에서 지어먹을 거라고

했다. 나는 유학생 친구와 함께 먹기로 아침에 약속잡고 나온 상황이었고, 친구와 함께 셋이서든 그녀의 집에서든

같이 밥먹자고 하기는 좀 애매한 상황이 도래하여 일단 작별을 고했다. 다음날 라데팡스에서 현대식 건축물들을

구경하고 개선문을 지나 샹젤리제 거리를 거닐 예정이라 하길래, 뭐 오다가다 만나게 되겠지, 라고 했지만..사실

그곳이 무슨 한두골목이면 끝나는 시골 장터도 아니고.ㅋ 그래서 왠지 한번은 더 마주칠 거 같다는 기대 혹은 예감이

들었음에도, 우선 이멜주소도 주고받고 나중에 캐나다 놀러가면 연락할테니 놀아달라는 약속도 받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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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떠난 잠시 후 공원에 도착한 친구를 따라 유명하다는 '물' 요리점으로 향했다. 파리에 다녀왔던 주위사람들

모두가 추천했던 물요리였는데, 그간 한국에 남았던 친구가, 사람이 그리웠던 듯한 친구녀석이 흔쾌히 사겠다며

앞장서는 덕분에 뒤를 쫄레쫄레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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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 de Bruxelles"이라는 이름의 홍합요리 전문 체인점이란다. 마치 베니건스같은 느낌의 초록색-흰색이

교차하는 외장이지만 한국과는 달리 이곳에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패스트푸드점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맥도널드는

좀 눈에 띄었지만 그밖에 버거킹이나 다른 것들은 아예 못봤다. 이탈리아광장역 옆에 맥도널드나 버거킹이 나란히

있었던 걸 빼고는. 그런데 왠지 이곳의 맥도널드는 로고에 쓰인 색깔도 더 세련되거나 고급스럽다는 느낌이다.

이거 혹시 뭔가 한국에 대한 열등의식의 회로가 발동한 건 아니겠지..? 라고 자문해보았으나, 내 눈엔 저 색감이

훨씬 운치있어 보이고 이뻐보이던 건 사실인 듯.

이곳이 레옹 드 브뤼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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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를 잡고 앉았더니 창밖 풍경에서 느껴지는 정취가 또 다르다. 창문틀을 프레임삼아 내다본 파리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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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란 프랑스어로 홍합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포장마차에서 기본안주로 나오는 홍합삶은 거랑 비슷한데,

아마도 치즈가 들어갔는지 맛이나 향이 색다른데다가 홍합도 무척이나 고소하다. 국물 역시 감자튀김이나 바게트

빵을 담갔다 먹어도 별나고, 맥주랑도 아주 잘 어울렸던 게다. 소심한 친구의 만류를 뿌리치고 과감하게, 관광객

티내며 바게트빵을 두번이나 요청했던 리필에 흔쾌히 응해주었던 아저씨에게 감사.

덕분에 국물까지 거의 싹 먹고 배두들기며 가게를 나설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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