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테섬에는 콩시에르주리(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 혁명 이후 단두대에 목이 잘릴 때까지 갇혀있던 감옥이라는데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아서 안 들어가 보았다..)과 인접한 생 샤펠 성당과 노틀담 성당이 가장 큰 볼거리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느 여행가이드북에나 나와있는 must-see 포스트랄까, 근데 계속해서 성당만 도는 것 같아 살짝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자연 내 걸음도 휘적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흐릿흐릿하며 빗발이 흩뿌리더니 때마침 기습적으로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려붓는다. 난 프랑스 날씨도
마치 익히 알고 있는 영국의 날씨처럼 그렇게 변덕스럽고 흐린 줄은 몰랐었다. 유학생 친구의 말을 빌자면, 얘들은
볕이 잘 들어 양지바르고 날씨가 좋은 땅을 찾아 주변으로 전쟁을 일삼을 수 밖에 없었을 거란다.
잠시 든 볕을 따라 냉큼 분수대에 내려선 참새들, 파리엔 비둘기도 많고 참새도 참 많다. 거리나 공원에 주저앉아
빵을 뜯다보면 참새들이 십여마리씩 둘러싸고 빵쪼가리를 노리는 건 예삿일일 정도.
비 따위 개의치 않고 노틀담 성당에서 시테섬 서쪽으로 걷던 중에 오락가락하던 비가 어느 순간 오지게 내리기
시작했고, 난 잠시 비를 그을 생각으로 나즈막하게 턱진 길가 가로수 옆 풀떼기에 앉아 비를 피했다.
그리고 만난 그녀, 아까서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싶더니 결국 날 따라잡고는 나랑 같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겠다고 들어와 섰다. 서로를 아까부터 의식하고 있었음을 왠지 알아채고는, 이대로 말않고 계속 서있음
민망하겠다 싶은 타이밍을 잡아채고 Hi~*
약간 마른 몸에 갈색 생머리를 가진 그녀는 뜻밖에도 의외의 굵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을 주더니, 몇 마디 나누다가
우리가 같은 곳을 찾고 있음을 알고는 같이 가잰다. 나야 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니만치
냉큼 앞장섰다. 문제는..이러저러한 수다를 떨며 걸어도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생샤펠이 보이지 않았단 것.
그녀의 이름은 다니엘, 남자 이름같다고 했더니 뒤에 le가 더 붙으면 여성형이 된단다. 첨 알았다.
건축학도라는 그녀는 방향감각이 없었고, 나 역시도 네비게이션 없이는 운전하기가 힘든 상황인데다가 코엑스
지하에서 여전히 생경한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터였기에, 우리는 시테섬 남쪽 강변을 끼고 계속 걷다간 결국
섬끝에 이르고 말았다.
...그제야 이야기를 좀 주섬주섬 가다듬고는 각자가 가진 맵을 보충해 가며-그녀의 대축척지도, 내 소축척지도-
다시 빠.꾸. 몇 번의 갈림길과 결단을 요청받은 후에야 생 샤펠 성당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사실 둘다 별로 그곳에
방문하는데 열의를 갖고 있지 않은 탓이 컸지 싶다.
스물다섯이라는 그녀는 은근슬쩍 청소년 가격으로 거의 반값에 생샤펠 티켓을 샀고,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은근슬쩍
청소년 티켓을 구매. 9유로에 가깝던 티켓값을 4.8유로에 사고 나니 왠지 마음이 맑아 밝아진 느낌.
그렇지만 그 스테인드 글라스는 역시 대단했다. 서민용이었다던 다소 담백한 1층의 공간을 훌쩍 넘어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선 2층은, 조심해요 다니엘, 괜찮아요 써니, 이러면서 올라선 2층은 딱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유리창 빛깔을 묻혀서 내리꽂히는 색색의 광선들로 가득했다. 그 광선을 반사시키는 금색의 기둥과 장식들하며.
타협, 혼자 다니느라 내 사진이 없으니 좀 찍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잰다. 몇 장 찍고, 이 냉담한 건축학도의
지식을 재고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고딕 양식의 건물들에선 창문이 애초 엄청 좁고 작았는데
갈수록 커지는 걸 볼 수 있다는 둥, 중력과 건물 자체의 무게를 이렇게저렇게 지탱하고 있다는 둥.
비로소 나도 어느 정도 분위기에 젖었다 싶어서 생 샤펠을 뒤로 하고 나섰다. 밖으로 나서니 정작 하늘은
찌뿌드드했고 햇살도 없었던 걸 보니, 스테인드 글라스 자체가 좀더 밝고 화사한 실내를 만드는 기능도 의도한 게
아닐까 하는 내 해석에, 명민한 건축학도 다니엘도 수긍하더군. 날 인정하다니 머리가 좋은 아가씨인 게다.
알고 보니 다니엘도 나처럼 그닥 빡빡한 일정표는 갖고 있지 않았고 걸어서 파리를 돌아다니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우리는 일단 오늘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별로 가보고 싶지 않아서 안 들어가 보았다..)과 인접한 생 샤펠 성당과 노틀담 성당이 가장 큰 볼거리라고 한다.
말하자면 어느 여행가이드북에나 나와있는 must-see 포스트랄까, 근데 계속해서 성당만 도는 것 같아 살짝
지루해지기 시작했고, 자연 내 걸음도 휘적휘적거리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흐릿흐릿하며 빗발이 흩뿌리더니 때마침 기습적으로 소나기가 시원하게 내려붓는다. 난 프랑스 날씨도
마치 익히 알고 있는 영국의 날씨처럼 그렇게 변덕스럽고 흐린 줄은 몰랐었다. 유학생 친구의 말을 빌자면, 얘들은
볕이 잘 들어 양지바르고 날씨가 좋은 땅을 찾아 주변으로 전쟁을 일삼을 수 밖에 없었을 거란다.
잠시 든 볕을 따라 냉큼 분수대에 내려선 참새들, 파리엔 비둘기도 많고 참새도 참 많다. 거리나 공원에 주저앉아
빵을 뜯다보면 참새들이 십여마리씩 둘러싸고 빵쪼가리를 노리는 건 예삿일일 정도.
비 따위 개의치 않고 노틀담 성당에서 시테섬 서쪽으로 걷던 중에 오락가락하던 비가 어느 순간 오지게 내리기
시작했고, 난 잠시 비를 그을 생각으로 나즈막하게 턱진 길가 가로수 옆 풀떼기에 앉아 비를 피했다.
그리고 만난 그녀, 아까서부터 내 뒤를 졸졸 따라온다 싶더니 결국 날 따라잡고는 나랑 같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겠다고 들어와 섰다. 서로를 아까부터 의식하고 있었음을 왠지 알아채고는, 이대로 말않고 계속 서있음
민망하겠다 싶은 타이밍을 잡아채고 Hi~*
약간 마른 몸에 갈색 생머리를 가진 그녀는 뜻밖에도 의외의 굵은 톤의 목소리로 대답을 주더니, 몇 마디 나누다가
우리가 같은 곳을 찾고 있음을 알고는 같이 가잰다. 나야 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여행의 묘미이니만치
냉큼 앞장섰다. 문제는..이러저러한 수다를 떨며 걸어도 걸어도 아무리 걸어도 생샤펠이 보이지 않았단 것.
그녀의 이름은 다니엘, 남자 이름같다고 했더니 뒤에 le가 더 붙으면 여성형이 된단다. 첨 알았다.
건축학도라는 그녀는 방향감각이 없었고, 나 역시도 네비게이션 없이는 운전하기가 힘든 상황인데다가 코엑스
지하에서 여전히 생경한 골목을 마주하고 있는 터였기에, 우리는 시테섬 남쪽 강변을 끼고 계속 걷다간 결국
섬끝에 이르고 말았다.
...그제야 이야기를 좀 주섬주섬 가다듬고는 각자가 가진 맵을 보충해 가며-그녀의 대축척지도, 내 소축척지도-
다시 빠.꾸. 몇 번의 갈림길과 결단을 요청받은 후에야 생 샤펠 성당에 들어설 수 있었는데 사실 둘다 별로 그곳에
방문하는데 열의를 갖고 있지 않은 탓이 컸지 싶다.
스물다섯이라는 그녀는 은근슬쩍 청소년 가격으로 거의 반값에 생샤펠 티켓을 샀고, 나 역시 그녀를 따라 은근슬쩍
청소년 티켓을 구매. 9유로에 가깝던 티켓값을 4.8유로에 사고 나니 왠지 마음이 맑아 밝아진 느낌.
그렇지만 그 스테인드 글라스는 역시 대단했다. 서민용이었다던 다소 담백한 1층의 공간을 훌쩍 넘어서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올라선 2층은, 조심해요 다니엘, 괜찮아요 써니, 이러면서 올라선 2층은 딱 들어서는 순간 화려한
유리창 빛깔을 묻혀서 내리꽂히는 색색의 광선들로 가득했다. 그 광선을 반사시키는 금색의 기둥과 장식들하며.
저 갱장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화려함을 보고 있자니 인간이 만들어낸 신적인 분위기도 때론 즐길만 하다 싶었다.
숱하게 마주친 성당들, 그 안에서 숨소리조차 조심하는 인간들은 결국 스스로 신을 불러내고 만들어내고 있는
게다. 무엇을 믿는다는 것, 그러한 믿음이 모이고 모이면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신을 불러내고, 또 영혼을
정화하기도 할 뿐더러, 그런 믿음이 기실 이렇게저렇게 역사를 움직여왔다. 그게 긍정적이던, 혹은 부정적이던
믿음 자체는 그만한 힘을 갖고 있다는 거다. 감세정책이 무조건 '표심'을 얻는 현상이라거나, 단적으로
이명박이 대통령이 된 것도, 경제를 살리겠거니 했던 믿음이 자초한 무시무시한 결과인 게다.
Danielle은 캐나다의 70-80%가 무교일 거라면서 자기도 역시 종교가 없다고 했다. 게다가 여태 자신이 파리에
머물면서 찍었다는 사진들을 보여주는데 사람은 없고 전부 건물에, 파이프에, 바닥에..그런 것들 뿐이다. 니 사진은
왜 한장도 없냐 했더니, 자신은 파리에 건축물들 공부하러 왔기 때문에, 또 그걸 즐기고 있기 때문에 그런 공사판
현장 사진같은 것들만 찍고 있노라는 대답. 벽에 붙어서 사진 몇장을 찍더니 휙 돌아보고는 자긴 됐댄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저렇게 반짝대고 있는데. 난 좀 더 느긋하게 돌아보려고 하고 있는데.
타협, 혼자 다니느라 내 사진이 없으니 좀 찍어달라고 했더니 흔쾌히 그러잰다. 몇 장 찍고, 이 냉담한 건축학도의
지식을 재고자(?)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하고. 고딕 양식의 건물들에선 창문이 애초 엄청 좁고 작았는데
갈수록 커지는 걸 볼 수 있다는 둥, 중력과 건물 자체의 무게를 이렇게저렇게 지탱하고 있다는 둥.
비로소 나도 어느 정도 분위기에 젖었다 싶어서 생 샤펠을 뒤로 하고 나섰다. 밖으로 나서니 정작 하늘은
찌뿌드드했고 햇살도 없었던 걸 보니, 스테인드 글라스 자체가 좀더 밝고 화사한 실내를 만드는 기능도 의도한 게
아닐까 하는 내 해석에, 명민한 건축학도 다니엘도 수긍하더군. 날 인정하다니 머리가 좋은 아가씨인 게다.
알고 보니 다니엘도 나처럼 그닥 빡빡한 일정표는 갖고 있지 않았고 걸어서 파리를 돌아다니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여서, 우리는 일단 오늘은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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