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에서 퐁피두센터가 있다는 곳으로 설렁설렁 걸음을 옮겼다. 이집트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현지인과 관광객의 가장 큰 차이는 무단횡단을 하는지 안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어리바리한 관광객 티는 내고 싶지 않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신호등은 늘 무시하고 다니다시피 했었다. 그러다 개선문갈 때 큰일날 뻔 했다지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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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풍스런 쿠키빛 건물들이 바삭바삭하게 이어지다가, 어느순간 불쑥 뛰쳐나온 저 파란색 파이프들. 마치 예술가틱하게 마르고 길쭉한 손에서 울룩불룩 튀어나온 파란 정맥들처럼 생동감이 느껴졌다. 보는 순간 왠지 웃음이 배실배실 나올 정도로 유쾌한 경험이었달까. 퐁피두 센터의 전위적인 exter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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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파이프가 바싹 마른 아이의 늑골처럼 튀어나와있는 퐁피두센터의 기둥에 붙어 있던 딱지 한장.
냉큼 받아들이기 힘든 건축가의 아이디어를 보듬은 반창고랄까.
"Art is the technology of the soul."
사실 난 보는 순간부터 맘에 들었던 그 기괴하고 참신한 건물. 그치만 그건 고풍스런 빠리 도심 한복판이었어서, 또 그거 딱 한 채였어서 그런 걸 게다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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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 센터 정면. 포석이 도톨도톨하게 깔린 그곳에서 쌍쌍이 앉아있던 커플들 사이를 굳이 지나, 자판을 깔아놓은 상인들과 몇마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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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프랑스 국기가 펄럭이는 이곳은, 퐁피두 센터를 정면으로 마주한 너름직한 광장. 주먹만한 포석들이 촘촘이 박혀있는 그곳에 철푸덕 주저앉아 크레페와 에스프레소를 양손에 들고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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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찍을 때 브이를 그리는 건, 아이들과 한국인들 뿐이란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서로 부비적대며 카메라 앞에 나서겠다는 아이들, 이 아이들은 브이가 아니라 양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천사들의 합창'이란 과거의 티비프로그램은 혹시 프랑스에서 제작된 거였던가. 왠지 저 아이들을 보는데 극 중 등장인물들이던 시를로랑 마리아 호아키나, 그리고 그 이뿐 선생님까지 차례차례 떠올랐다. 잊고 지냈는데, 오랜만에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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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이건 왠지 '오 나의 여신님'에서 스쿨드가 만들었던 그 문지기 로봇이 떠오른다.

'오 나의 여신님'이라는 지독히도 남성중심적인 만화에 흠뻑 빠졌던 내 중딩시절. 찌질한 주인공을 둘러싼 세명의 여신이 가진 이름은 알고 보니 게르만 전설에 나오는 세 운명의 여신 노르네스의 이름을 차용한 것이었다. 과거를 아는 우르트르(울드), 현재를 담당하는 베르트란디(베르단디), 그리고 미래의 여신인 스퀼트(스쿨드).
그치만 개인적으로 이 세명은, 메이드/선생/아줌마(엄마) 취향을 위한 베르단디, 군복녀/SM/누나/직장녀 취향을 위한 울드, 그리고 롤리타(소녀)/안경녀/여동생/교복녀 취향을 위한 스쿨드로 짜여진, 이후 일본의 연애시뮬레이션게임의 섬세하게 분류된 캐릭터 구축을 위한 선행적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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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물을 뿜어내는 분수 꼭지, 빙빙 돌리는 모터, 그리고 약간량의 플라스틱으로 뒤집어씌워진(?) 껍데기,
그걸 가지고 반짝이는 유쾌한 아이디어와 결합시켜 구현해낸 스트라빈스키 광장에 있는 아기자기한 분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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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 눈길을 끌던 인어상. 뱅글뱅글 돌며 '젖을 짜내고 있다'랄지, 혹은 '가슴에서 분수를 내뿜고 있다'랄지. 그리고 한참 후에 내 눈길은 그 뒤쪽 고색창연한 성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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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공간을 두고 스트라빈스키 광장..이라는 그럴듯하고 뭔가 엄청나보이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사실은 퐁피두 센터 옆의 자그마한 분수대를 둘러싼, 역시 자그마한 공간을 말한다. (유학가 있는 내 친구는 퐁피두 센터는 알아도 스트라빈스키 광장이라고 하면 모르더라..) 가이드북은 종종 하나로 묶여있는 공간들을 몇개로 헤집어서 따로따로 거창하게 소개해 놓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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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여행을 다니는지, 시청에서부터 마주쳤던 사람들. 파리에서 해보고 싶던 것 중 하나가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정처없이 내닫는 거였는데 결국 실현하지는 못했다. 대신 체지방을 잔뜩 연소시키고 그 빈 공간을 근육으로 꽉꽉 눌러채울만큼의 쉼없는 걸음걸이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를 돌렸으니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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퐁피두센터는 사실 고전주의 시대의 작품이 즐비한 루브르, 그리고 인상주의 시대의 작품이 주된 오르세, 혹은 오랑주르 미술관에 이어 현대적인 작품을 구비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무료입장이 가능한 달의 첫째주 일요일도 아니고 딱히 돌아보고 싶진 않아서 그냥 선물샵과 가벼운 만평전만 두리번두리번. 그 중에 찾아낸 왠지 비슷한 이미지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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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보았던 그 분이 아닌가. 알고 보면 파리에선 비둘기나 심지어 참새마저도 전혀! 인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특히나 루브르박물관을 바라보는 카루젤 개선문 근처서 호젓하게 홀로 빵을 뜯다보면 어느새 옆에 참새들이 십여마리씩 고개를 갸웃대며 호시탐탐 빵을 노리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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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토 색소폰을 배우면서 몇가지 불고 싶은 노래들이 있었다.
그 목록에 있는 'misty'가 예기치 않게 내 귀에 들려오길래 고개를 돌린 곳에서 펼쳐지고 있던 멋진 야외 공연, 알고 보니 파리 시내 곳곳에서, 지하와 지상을 막론하고 벌어지는 것들이었지만 매번 반갑고 또 기꺼웠더랬다.
버겁고 비루한 삶을 살고 있음을 한껏 드러내며 지지직 끓는 소릴 내는 찬송가 테입이나 틀어제끼는 서울의 지하철 풍경과는 다른, 재즈, 클래식, 샹송..같은 음악적 다양성과 여유로운 예술가틱한 무언가가 반짝이는 그런 풍경. 그사람들을 수입해다가 고대로 서울 지하철,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으면 싶었다.

한결 삶이 윤택해지지 않을까, 그리고 한결 사람들의 표정이 풀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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