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호의 가로세로 바둑판같은 골목길들, 소호 거리라는 실감을 나게 해주는 건 건물밖으로 삐져나온 철제 계단들.

 

 

건물 밖으로 튀어나온 철제 계단, 필요에 따라 땅까지 늘어뜨리기도 하고 올려두기도 한다는 건 끝내 신기하다.

 

 

이래서 문화의 거리, 란 걸까 싶도록 구석구석 숨어있는 재미난 것들.

 

 

아마도 이건 지난 아큐파이 시위 때 붙여놓은 걸까.

건물들이 그럴 듯 하니 어떻게 찍어도 화보스러운 분위기가 물씬하다.

 

 

 

막무가내로 그래피티같지도 않은 글씨들이 그려진 녹슨 철문조차 위에 붉은 크림 하나를 얹었다.

 

 

저 처자분 종아리의 그림은, 설마 타투는 아니리라 믿지만, 왠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서로 본체 만체 지날 뻔 했던 두 아저씨는 각자를 이끌고 앞서 가던 개 두마리가 얽히는 바람에 눈이 맞게 되고..

 

 

온통 촘촘하게 세워진 건물과 어디로던 통할 거 같은 철제 계단이 미로처럼 얽힌 속에서 괜히 여행을 떠날 때처럼 설레는 거다.

 

 

덥다 싶으면 무턱대로 가까운 갤러리로 들어가 전시된 작품들도 구경하고 땀도 식히고.

 

 

여전히 저런 스티커도 눈에 띈다. 9/11 is a lie. 그만큼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다는 반증일 텐데,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캠퍼 샵의 시원시원한 디스플레이.

 

 

소호도 예전같지 않다더니-예전이라 함은 이전에 여길 들렀던 2001년쯤-명품 샵들이 사방으로 비집고 들어왔다.

 

 

 

 

그래도 여전히 멋진 샵들과 갤러리, 그리고 어디서든 털썩 가방과 카메라를 던져놓고 커피 한잔에

 

샌드위치 하나를 베어물고 싶게 만드는 까페나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거리, 소호다.

 

 

 

 

 

 

북촌한옥마을에 위치한 까페 가회, 저번달에 '타투이스트'의 전시가 있다해서 겸겸 다녀왔었다. 전시는

생각보다 단촐했는데, 아무래도 전시의 방점이 '타투'보다는 타투이스트의 예술 세계에 맞춰져서 그런듯.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여권에 과감하게 그림도 그리고 낙서도 하고, 심지어 저렇게 타투하듯이

재봉틀로 별이니 배니 종이비행기니 박아놓았던 작품.

북촌 한옥마을은 거의 처음 가봤던 거 같다. 안국역에서 내려선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 자칫하면 못 보고

지나칠 뻔한 조그마한 안내판을 용케도 놓치지 않고선, 빗길을 뚫고 가회 갤러리 까페 입성.


입구에서부터 전시중인 타투이스트 전시 관련한 팜플렛과 달력, 온통 그의 '타투' 작품 사진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북촌 한옥마을을 소개하는 A4 한장 크기의 도보자용 지도도 주었는데, 여태 모셔두고만 있다.

왜 이렇게 비가 자주 오는지 걷기엔 참 좋지 않은 날씨 탓이다.

'타투이스트',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국어로 딱히 바꾸기가 애매한 단어다. 문신술사, 문신전문가, 문신예술가.

혹은...뭐가 더 있으려나. 그만큼 한국에서 '타투', 문신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워낙 부정적이고 척박하단

사실을 반증하는 거 같다. 그 와중에도 이렇게 종이 비행기를 주된 테마로 잡고 타투 아트를 계속해온

아티스트가 있다는 건 그 자체로 박수쳐줄 일이지 싶다. 자기 몸을 도화지 삼아 연습하지 않았을까.


그가 갖고 있는 타투 장비들. 저 총처럼 생긴 것에 잉크통을 꼽고서 펜처럼 피부 위에다가 그림을 그리는

거다. 우리나라에서 타투가 뭐라더라, 공중위생법으로 제재받고 있다던가. 딱히 제재할 법이 없으니 저

타투 장비가 위생적이지 못하다느니 병을 옮긴다느니 따위의 조잡한 꼬투리를 잡고서 제재하고 있다는데,

한심한 일이다. 양성화해서 다양한 예술적 디자인이나 그래픽이 발전하도록 하고, 위생상의 문제가

정 그렇게 신경쓰인다면 제대로 관리하면 되지 않을까.


타투이스트 한 명의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아티스트들과의 협업이 이루어진 결과물들도 전시해 놓았었다.

재봉틀을 이용해 저런 아기자기한 그림들을 수놓고는 소녀의 여린 팔목에 뽀빠이처럼 닻 모양이라거나

조폭처럼 '一心' 이런 한자를 수놓는 센스라니.


뭐 벽면 한쪽으로 그런 그림이나 복합 재료로 꾸며진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분방하게 채색된

구두도 한 켤레 놓여있었고. 아무래도 갤러리 까페라 그런지 차 마시기도 괜찮은 분위기였지만, 찻잔을

들고 벽면을 따라 돌아다니며 이런 전시물들을 구경하기에도 괜찮았던, 편한 분위기의 천장 높은 까페.

와중에 발견한 맘에 쏙 들던 아이템 하나. 뱅 앤 올룹슨의 오디오였는데, 저 앙증맞은 빨강 세모모양

스피커가 한눈에 확 꽂혀버렸다. 게다가 조그마한 체구에서 울려나오는 사운드가 전혀 뒤지지 않고.

기억해 뒀다가 나중에라도 꼭 사겠다며..일단 위시리스트에 보관.

에스프레소는 생각보다 많이 연했다. 갈수록 진한 커피를 좋아하게 되는 참이라 조금 실망했지만, 그래도

에스프레소 위의 크리마가 여느 까페 체인의 그것보다 훨씬 풍부하고 부드러웠던 듯. 저렇게 활짝 웃고있는

스푼의 애교에도 맘이 녹아내렸다.


들어갈 때 한장씩 나눠줬던 종이는, 전시 중인 타투이스트의 메인 테마인 종이비행기를 접으라며 미리

접는 선이 인쇄된 종이였다. 내친 김에 종이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나서는, 영수증 종이로도 조그마한

종이비행기를 마저 만들어버렸다.

그러고 나니 문득 불붙어 버린 종이접기의 마력. 어렸을 때 만들었던 독수리5형제의 비행기를 만들 수

있을까, 스스로 궁금해져버려서 있는 종이 없는 종이 동원해서 결국 만들고야 말았다. 저렇게 입도 쩍쩍

벌어지는 날렵한 모양의 비행기. 양쪽 옆구리에도 비행기 한대씩 합체분리할 수 있고 위에도 한대

합체해놓을 수 있는 궁극의 비행기였었다. 어렸을 때 커다랗고 두꺼운 달력 종이로 참 많이 만들었는데.

그렇게 비행기도 접고 배도 접고, 까페도 온통 둘러보고, 책도 읽고 하는 와중에도 참 줄기차게 내리던 비.

이제 한국은 4계절이 뚜렷한 나라라기보다는 '우기'가 있는 아열대의 나라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려서 북촌한옥마을을 좀더 돌아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비는 그칠 생각이 없었다.

이미 에스프레소는 훌짝 다 마셔버린지 오래. 마치 타투처럼 굵고 선명하게 남아버린 크리마의 갈색 띠만

에스프레소 잔 안쪽에 보름달처럼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내 타투를 보고도 사람들이 '참 잘했어요'라거나 '1등급' 따위의 둥근 도장을 찍어놓은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나도 이쁘다는 생각은 변함없지만, 조금은 더 밖으로 열려있는 이미지였음

좋았겠다 싶기도 하고, 일단 달과 별을 몸에 새겼으니 다음에는 다른 천체를 새겨서 공간을 넓혀야겠다

싶기도 하고. 무엇보다, 사실 가회 갤러리까페에서 전시회를 열었던 이 타투이스트의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내 꺼만한 게 없지 싶어서 조금은 뿌듯.




갑자기 조문갈 일이 생겼다. 캐쥬얼데이라서 말이 뛰노는 반팔티를 입고 왔는데, 덕분에 타투도

번쩍 눈에 뜨이는 날인데 바로 가야 하게 되어서 어쩔까 하다가 반창고를 덕지덕지.


반창고가 워낙 더덕더덕 붙어있어서 그 자체가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윗분의 어르신이 돌아가신

자리에 파란색 별이 막 번쩍거리고 그러는 거보다는 아무래도 낫겠다 싶어서.


이로써 타투는 봉인되었다. 일시적으로나마 밴드 다섯개로.

아 왜 하필 오늘이 금요일인데다가 날씨가 더워가지고. 정장은 아니더라도 겉옷이라도 갖고 왔으면

괜찮았을 텐데 말이다. 타투란 게, 문신이란 게 정말 죽을 때까지 몸에 남아있는 거니까 이런 정도의

불편이야 이미 예상한 바고, 조금씩이라도 이런 데 너그러워지다 보면 나중엔 반창고를 이렇게

덕지덕지 낭비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오랫동안 생각만 하고 있었다.


5년전, 일년반 기약하고 매달렸던 공부를 마치고 태국으로 놀러갔을 때부터 꽂힌 타투였다.

몇 군데 샵을 알아보고 샘플북을 뒤져보았지만 딱히 멋진 도안을 찾을 수가 없기도 했고

조금 무섭기도 하여 그때는 그냥 타투 대신 헤나로 만족하고 말았었지만, 헤나는 역시 일주일도

못 가서 뭉개져버리고 말았었다.


카오산 로드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마음 내키는 대로 느적느적 놀기로 맘먹은 여행이었다.

눈뜨이면 일어나고, 대충 씻고 걸쳐서는 나가서 쌀국수와 캔맥주 하나로 아침, 오늘은 서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서쪽으로 걷고, 동쪽으로 걸어볼까 싶으면 동쪽으로 걷고. 저녁에는 재즈바나

라이브클럽에서 공연을 보고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오렌지와 망고, 철지난 두리안까지 과일로

잔뜩 배를 채우며 가져간 책들도 다 읽고 다이어리도 꼬박꼬박 쓰고. 사진도 잔뜩 찍고.


그렇지만 이번에도 카오산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뜨인 건 역시 타투샵들. 돌아다니다 덥다 싶으면

에어콘이 빵빵한 샵에 들어가 샘플북을 뒤적거리며 맘에 드는 도안을 찾았다. 아쉽게도 대개가 무식하고

무시무시한 데다가 큼지막한 녀석들이어서 번번이 땀만 식히고 일어나길 수 차례, 드디어 맘에 드는

도안을 발견했다. 그렇게 커다랗지도 않고, '조폭'스럽지도 않으며, 평생 몸에 새긴 채 살아갈.


타투샵 전면에는 이런 경고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사실 위생상의 문제는 딱히 걱정스럽진 않았다.

내가 특별히 심장질환이나 질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타투 아티스트도 태국의 타투 대회에서

몇차례나 상을 받았던 사람이라고 하니까 실력없고 장비없는 '야매'의 어설픈 솜씨로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렇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몸에 새겨넣을 순간이 다가오니까 살짝 긴장했다.

몸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낙인 같은 거니까. 가볍게 생각하면야 어디서 사고로 죽더라도

내 시체는 손쉽게 찾겠구나, 식일 수도 있는 거지만 무거워지기 시작하면 한없어지는 거다.

회사에서 뭐라고 하진 않을까,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어떻게 보려나, 주위 여자들은 어떻게

보려나, 나중에 결혼할 때 문제가 되지는 않을까, 나중에 후회하게 되면 어쩌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고민, 주사맞기도 뜨악해하는 내가 일초에 구십번 다다다다 바늘이

찔러대는 타투머신 앞에서 괜찮으려나. 많이 아프진 않을까. 타투 아티스트가 본을 그리고

위치를 맞추어 내 몸에 본을 옮기는 와중에도 슬쩍 진땀이 났다. 새기다가 기절하지나 않을까,

발버둥치다가 바늘에 푹 찔려서 출혈과다로 급살맞는 건 아닐까 따위 망상이 시작됐다.

이미 돈은 다 냈는데, 걍 돌려달라고 하고 도망가버릴까.


근 한 시간, 재봉틀 소리를 내며 맹렬하게 움직이는 바늘이 파란색을 머금었다가 검은색을 머금은 채

몸에 그림을 그려나갔다. 생각보다는 덜 아팠는데 특정 부위에 집중되다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아려오는 느낌이었다. 그치만 점점 아픔의 강도가 세지면서도 어느 순간 그정도 아픔에 만성이

되었는지 약간은 시원하다거나 자극적인 쾌감이 느껴지기에 이르렀고, 바늘 끝에서 그려지는 그림을

매의 눈으로 관찰하며 선이 조금 엷다거나 저기 조금 색칠이 덜 되었다는 식의 지적질까지.


흔히 '낙인'을 찍힌 사람은 그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종류의 사람이 되곤 한다. 만화에서든

성경에서든 드라마에서든 언젠지 모르지만 죽고 몸이 썩어질 때까지 변치 않을 그 낙인의 존재가

굉장히 의미심장한 메타포로 쓰이듯이, 타투의 무게 역시 정말 굉장히 무겁구나, 생각했다.


주어진 대로 쓰고 있는 몸뚱이에 내 의지로 결정한 뭔가를 그려넣고, 이 몸은 내가 장악하고

있음을, 이 몸에는 다른 몸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하나의 흔적이 있음을 말없이 보여주는 거니까.

내 몸에 대해서 남들이 뭐라고 하던 어떻게 보던, 그런 거 개의치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며

살겠다는 조용한 저항 같은 걸 수도 있겠다. 최소한 내 몸만큼은 내 의지대로.


어쨌거나 이러저러한 의미 따위야 좋을 대로고, 이뻐 죽겠다. 이걸 찾으려고 몇 개의 타투샵을

뒤지고, 또 몇몇 권의 샘플북을 정독한 보람이 있었다. 이 그림을 새긴 채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라면 너무 과한 걸까. 최소한 ver.1.0에서 ver.2.0으로 렙업은 한 느낌.


I inked TATTOO.


안동 가일마을 앞머리 300년 묵은 나무엔 뭔가 특별한 게 있었다. 원래 마을마다 오랜 나무 하나쯤

소중히 여기며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 정도로 생각하는 일이야 왕왕 있다지만, 그리고 300년쯤

나이먹은 나무가 그렇게 아주 희귀한 건 아니라지만, 정작 이 나무에는 용이 꿈틀거리는 문신이

그려져 있었던 거다.

나무 자체의 모양새도 위풍당당하니 에너지가 사방으로 뻗쳐나가는 모습이었지만, 그런

수형이 눈에 들어온 건 한참동안이나 굵은 가지 두 곳에 그려진 그림을 훑어본 다음이었다.

노랑색 몸통에 파란 갈기를 가진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는 그림이 마치 조폭들

등짝에 그려진 문신처럼 살짝 으스스하기도 하고, 굉장히 멋져보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이 나무가 이렇게 멋져 보이는 건 이 용그림, 타투를 했기 때문인 거 같기도 하다.

나무 거죽이 벗겨져 매끈하게 드러난 속살이 자칫 밋밋하고 부족해 보일 수 있었을 거 같은데,

그 빈 공간을 화려한 색감의 그림으로 채워넣고 나니까 오히려 더욱 당당해진 느낌.

안동 가일마을, 이 마을에는 조선 정조 때 권씨 가문이 지은 수곡고택 등 오랜 고택들이 많이

남아 있어 '양반마을 안동'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이런 멋진 마을 지킴이

나무를 갖고 있으니 아무래도 다른 마을들보다 훨씬 외부의 나쁘고 삿된 것들로부터 잘 버티어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 안동 가일마을.







디자이너랄까, 헤나와 타투는 가격차도 꽤나 컸다. 그리고 생각보다 이 디자이너들은 조폭 느낌의 도안이나, 엉성한

필치의 한자어..예컨대 愛라거나 忠 같은 것들을 선호하는 것 같다.

창가에 붙어있는 한자, 假紋身. 말그대로 헤나는 가짜 문신, 가짜 타투지만 그만큼 부담없이 할 수 있는 것도 사실.

타투를 함 꼭 해보고 싶었는데...헤나로 타협. 50바트짜리 헤나. 한국돈으로 1250원정도? 한 3개월 간다고 하더니

고작 1개월도 안 되어서 벌써 많이 풀이 죽었다. 원래 빳빳한 느낌을 주던 녀석인데.


조폭들이나 할 법한 용틀임하는 그림이나 매화꽃이 화창한 그림들은 너무 거시기해서 맘에 안 들었고, 몇 권의

도안집을 들여다 보다가 내가 발견한 건, 저 얏! 하는 느낌의 귀여운 사람 모양의 밑그림이었다. 왠지 '멋지다

마사루'나 '이나중 탁구부'의 캐릭들이 연상되는 이미지랄까.


세밀한 붓에 헤나 염료를 묻혀서는 살살살 그리는 작업이 은근히 자극적이었다. 촉촉하면서도 살짝 찐덕한 느낌의

염료가 말라붙으며 안겨주던 시원한 느낌이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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