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디뮤지엄의 새전시, 헤더윅 스튜디오전은 thinking, making, storytelling의 세부분으로 나뉘어있다. 디자인의 프로세스를 간명하게 정리한  이 세가지 열쇳말 중에서도 근간이 되는 thinking. 그에 대한 헤더윅의 문제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난 설명.

공공영역의 미술이 얼마나 창의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는지. 냉각장치의 통풍구를 저렇게도 만들 수 있고, 저런 작품을 거리에 가진 도시가 실제로 있다니.

대부분의 전시물은 실제 런던이나 중국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이 돌돌 말리는 보행교 역시 런던 패딩턴에서 있단다.

곡물창고의 미술관으로의 대변신. 커다란 원통형 저장고를 저렇게 썰어버릴 생각을 했다.

3,40년만에 새로운 디자인, 런던버스.

아부다비 사막에 지어지는 공원도 헤더윅이 고안하면 이렇게나 다르다. 땅이 갈라지고 그아래 오아시스나 지하도시가 드러난 듯한 파격적인, 그렇지만 곰곰 생각하면 실용적이고 설득력있는 디자인.

츄러스를 잡아뽑듯 스테인레스를 잡아뽑아 벤치를 만든다. 전혀 레디메이드되지 않은, 복제되지 않는 유일무이한 형태의 작품들.

그들의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데서 멈추는 건 아니다.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구슬을 일일이 위치에 맞추어 꿰고 거는데 24시간 3교대로 4개월여의 시간이 걸렸다고 하니까, 역시 구슬이 서말이어도 꿰어야 보배.

그들의 디자인 영역은 산업디자인이나 제품에 그치지 않는다. 건물과 공원, 나아가 아예 도시를 조성하려는 야심찬 프로젝트까지 진행중이라고.

이건 2010년 상해 엑스포때 본적이 있는 건물이다 싶더니, 민들레라는 애칭으로 인기를 끌었던 영국 국가관이다. (이것도 헤더윅의 작품이었다니..)

끄트머리에 씨앗을 수십만개 품은 플라스틱 봉이 건물 안과 밖을 관통한 채 빛을 머금었다.

중국의 도시 건설 프로젝트. 이런 공상과학영화의 한장면같은 공간을 실제로 구현하고 있다니.

봄베이 사파이어 증류소와 방문자 센터. 실제 건물 밖으로 저런 고풍스런 느낌의 온실을 빼내어서 술 안에 들어가는 약초들을 기르고 있다고.

헤더윅 스튜디오의 포트폴리오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굉장히 충실하고 자세하게 그들의 작품과 아이디어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왜 굳이 여기를 이만큼 공들여 소개하나 싶은 삐뚤어진 생각은 금세 사라지고, 그 방대한 작업 분야와 참신한 상상력, 구현 능력에 감탄하고 말았다.

디뮤지엄은 점점 안정감있게 발전해나가는 중, 이쁜 까페와 비스트로들도 건물 내에 많아졌고. 다만 컨셉이 많이 겹쳐보일 만큼 차별성을 못 느끼겠는 게 함정.



지난 토요일, 한남동에 뭔가 새롭게 미술관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찾아가본 디뮤지엄. 알고 보니 대림미술관의 분관이랄까.


대림미술관과 함께 디멤버십 카드로 전시나 강연을 찾아볼 수 있다. 개관 특별전은 9개의 개별 방을 특유의 분위기로 가득 채운


9개의 빛에 대한 내용, 공간을 채우는 빛의 질감이나 색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중인지라 흥미가 확 돋는 전시였다.


1번방부터 9번방으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 행위가 반복될 때마다, 단순히 빛의 궤적만이 존재하던 방에 소리가, 색감이, 그리고


움직임 더해졌다.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방은 여기. 하얀 조명이 살짝 굽어있을 뿐인데, 바람에 사정없이 휘날리는 하얀


A4용지 보고서더미 같은 후련함을 자아냈다.


그리고 각기 다른 위치에서 빨강색, 노란색, 파란색의 삼원색 조명을 쏘아서 형상을 강렬하게 일그러뜨렸던 이 방도 재미있었고.


단순한 조형물에서 뻗어나간 세가지 빛깔의 그림자가 마구 뒤섞이면서 저렇게 비현실적인 실루엣과 색감을 만들어낸다.


한켠에는 이렇게 삼색으로 뒤섞이는 그림자도. 


빛과 조형물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텅빈 공간이 이렇게 깊숙한 숲길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반사에 반사를 거듭해서


켜켜이 쌓인 그림자가 그대로 나뭇잎이 되고 덤불이 되어버렸다.


혹은 이런 류의 비현실적인 색감도 맛볼 수 있는 방이 있다. 온통 새하얀 방, 신발조차 커버를 씌우고 들어가야 하는 그 방에는 


세개의 칸막이로 적당히 가려진 불빛이 천장에 매달린 정사각면체들의 면면과 벽면을 몽환적인 색감으로 물들였다.


그리고 이 커다란 조형물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조명을 받아 변화무쌍한 근육을 뽐내는 모습까지. 사실 이 방이 두번째였던가 했지만.



아무런 필터나 효과를 더하지 않고도, 오로지 조명 만으로 이런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니 아홉 개의 방을 하나씩 


방문하며 실감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대림미술관, 규모는 작지만 나름 재미있고 알찬 전시를 꾸준히 하고 있어서 나 역시 꾸준히 발걸음을 하는 이 곳에,

 

11월부터 시작되어 내년 3월중순에 끝나는 전시회가 하나 열렸으니 바로 '스와로브스키, Sparkling Secrets'展.

 

 스와로브스키의 상징인 우아한 백조와 함께 조그마한 쥐도 한 마리 보였고(내가 본 쥐 캐릭터 중에 손꼽을 만큼

 

귀여운 녀석이었던 듯. 쥐에 대한 생래적인 혐오감과 더불어 최근 학습된 반감을 거의 극복해낸 아이템이었다.)

 

 

 크리스털로 만든 열쇠가 두 벌, 목걸이에 걸어서 짤랑짤랑 소리나도록 하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고,

 

저 열쇠에 맞는 자물쇠도 같이 크리스털로 만들 수 있다면 멋지겠다는 생각도 해보고.

 

 스와로브스키가 제작, 가공하는 크리스털들이 최대한 친환경적으로, 납성분같은 것들을 유출시키지 않고 만들기 위한

 

노력을 소개하는 장에서, 무려 250mm나 되는 크리스털을 그런 친환경 방식으로 만들었다고 전시를 해놓았다. 빙글빙글

 

돌면서 사방으로 무지갯빛을 흩뿌리는 커팅면의 굴곡이 오묘하다.

 

 제법 감각적이고 감성적인 문구들을 담은 스와로브스키 전의 아트북 중 한 문장.

 

"사람은 감동을 받기 위해 하루를 살아가고, 감동은 사랑을 주기 위해 순간을 간직한다."

 

 색색의 원석들, black diamond라거나 saphire라거나. 스와로브스키가 활용하는 오색빛깔 영롱한 크리스털들 차트다.

 

스와로브스키가 다양한 셀렙들과 오랜 세월 함께 했던 건 익히 알려져 있다지만, 마릴린 먼로, 마돈나, 제니퍼 로페즈 등

 

불멸의 스타가 된 이들을 빛내주는 아이템들을 옷이라거나 액세서리라거나, 아님 이런 크리스털 '가발'로 함께 했는줄은.

 

 

 게다가 여러 예술가들과의 콜라보레이션도 오랜 기간 진행했다고.

 

크리스털들을 마치 나뭇가지에서 돋아난 잎새처럼 뾰족뾰족하게 표현한 작품. 제목이...Crystal Branch였던가.

 

 달팽이랑 나비가 마주 보고 사랑에 빠진 모양이 넘 귀여웠던 반지도 있었고.

 

실키한 핑크빛 레이스에 파스텔톤 크리스털이 보드랗게 이어지는 목걸이. 굉장히 여성스러운 느낌이다.

 

 영화 '물랑 루즈'나 다른 화려한 쇼 장면이 있는 영화, 뮤지컬 등에서 활용되었다는 스와로브스키의 아이템들.

 

스와로브스키의 반짝임을 최대한 끌어내기 위해서였겠지만, 온통 전시공간은 깜깜하게 빛을 가리고 있었다.

 

그래서 검은색 주렴이 드리워진 대림미술관의 숨겨진 휴식공간에 앉아 쉬기도 하고.

 

 2층부터 4층으로 이어지는 전시공간, 4층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조금 환해진 느낌인 건, 이 샹들리에의 역할이 컸던 듯.

 

영화 '블랙 스완'에 나왔던 바로 그 샹들리에라고 하는데, 아마 주인공 그녀가 마지막 장면에서 이 샹들리에에 깔리던가.

 

 베라 왕 등 유명 디자이너들의 작품에도 스와로브스키는 여지없이 그 빛을 발했다. 이를테면, 그들의 작품인 옷에

 

화사함을 더하고 포인트를 주는 한줌의 시즈닝이랄까.

 

 

 

 이런 식의 반전 뒷태를 책임지는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들.

 

 

 

 그리고 다시 1층. 어느새 사람들이 줄을 서서 입장하기 시작한 그곳에서 이미 한바퀴 둘러보고 나온 사람의 만족감이란.

 

 

 

 커다란 크리스마스 트리가 서 있고, 파란 배경에 투명한 크리스털이 반짝거리며 오색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리고 대림미술관 뒷켠의 까페 공간도 스와로브스키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마치 크리스털이 커팅되었듯

 

수십수백개의 맨들한 면을 불연속적으로 이어붙인 채 커다랗게 부푼 공간이 거기 있었으니깐.

 

 

 그리고 스와로브스키의 반지가 흔히 갖고 있는 수백개의 커팅면을 그대로 키워낸 거울면의 아우라를 뒤로 받친 채,

 

온통 일렁일렁이는 환상적인 풍경 한 가운데에 반지 하나가 흔들림없이 버티고 섰다.

 

겸겸 나도 한 장. 핑크빛의 조명이 거울 내로 스며들어서 온통 핑크핑크한 분위기에서, 참 야무지게도 카메라를 쥐었구나 싶다.

 

 

 

 

 

 

 

 

 

 

 

 

 

 

 

* 19세 이하에게 유해한 정보(사진 등)가 포함되어 있다 하여 강제 비공개처리된 후, 약간의 수정과

사진 자체 검열을 통해 재발행하는 '유르겐 텔러' 사진전. 그의 전시는 19금이 아니었다.



대림미술관의 전시를 언젠가부터 빠짐없이 보고 있다. 최근만 해도 폴스미스, 디터람스, 이번에

유르겐텔러의 전시까지. 그는 무려 10년동안 마크 제이콥스의 광고사진을 찍기도 하고 각종

다큐멘터리 작업도 하는 등, 딱히 상업사진가라거나 예술사진가라는 식의 단순한 도식에

포섭되는 인물은 아닌 거다. 원래 전시를 보러가서 작품을 찍어오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그의 사진들을 보며 내가 다시 재촬영하고 싶다는 욕구가 무럭무럭 생겨버렸다. 

유르겐텔러의 이번 전시회, 'Touch Me'를 소개하는 브로슈어의 소개된 두장의 그림은

위의 마크제이콥스 광고사진과 이 문어 사진. 아마도 마크제이콥스의 상품들을 탐닉하다못해

쇼핑백 안에까지 박박 긁어들어간 빅토리아 베컴을 보여주고 싶었던 듯한 첫째 사진과

침대 위에서 여덟개의 다리를 흐느적대며 쉼없이 꼬아대는 문어를 보여주는 두번째 사진은

묘하게 겹치는 구석이 있는 거 같다. 침대 위 문어는 굉장히 섹슈얼하면서도 강렬한 느낌. 



(사진)


그의 사진들은 거침이 없다. 주저없이 드러내고 거침없이 희롱하는 느낌이다. 심지어 그는

임신한 부인의 만삭의 배 위로 자신의 성기를 드리운 채 사진을 찍는다. 그의 몸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그는 스스로 포토그래퍼의 '권력'을 내려놓고 피사체로 평등해지는 건 아닐까.

 

(사진)

여성 모델이 그럴듯한 그랜드 피아노에서 연주를 하는 사이, 그는 또다시 옷을 벗고 피아노

위에 올라가 넓은 등판을 통해 피아노 소리를, 울림을 듣고 있다. 자신의 적나라한 신체를

아낌없이 보여주면서, 귀로 듣는 게 아니라 온 몸으로 듣는다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려는 듯.



(사진)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자면, 이 사진은 어린아이의 돌사진 같은 포즈를 요청하여 찍은 것이란다.

비슷한 포즈, 비슷한 표정이라지만 너무도 이질적이고 위화감마저 조성되는 풍경, 아마도 그는

이런 식의 불편함을 불러일으키고 좋아하는 건 아니려나. 뭔가 쿨하게 드러내고 표현에 거침없다

싶으면서도, 그의 사진은 은유와 유머가 가득하단 느낌이다.

아무래도 사진을 찍으면서 모두가 바라는 건 그런 거 아닐까. 이미 잔뜩 소모되고 익숙해져버린

풍경에서 뭔가 새로운 느낌, 낯선 시선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사진인 거다.

지상에 존재할까 싶은 생명체의 모습같기도 하고, 영화 '괴물'에 나왔던 녀석의 모형같기도 하고,

그런데 알고 보면 바나나를 긴 혀로 휘감아 삼키려드는 순간의 코끼리였다는 반전.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touch me', 그 제목은 사실 이 사진 어디엔가 숨어있는 그 문구에서

비롯했다고 한다. 터치 미. 옷을 전부 챙겨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팬티만 입은 한 남자가 다소

멍하고 방심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의 팬티에 그려진 손모양과 간단한 문구.

묘한 광기가 떠도는 듯한 눈빛 위로 거꾸로 쓴 왕관, 길가의 가로수 나무라도 꺽은 듯 엉성하고

약해보이지만 구부정한 자세를 용케도 버텨주는 나무지팡이, 옆에 변기와 맞물려 왠지 냄새나고

더러운 오물일 거라 짐작-기대되는 거뭇거뭇한 흔적들이 묻는 그의 몸. 


(사진)


그녀의 강렬한 눈빛에 이끌렸던 시선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츰 내려가는 순간, 또다른 눈이 하나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외설적인 느낌보다는, 활짝 열린 그곳으로부터 도리어 관찰당하는 느낌.

엄마아, 엄마아, 엉덩이가 뜨거워. 정도? 다큰 성인의 몸뚱이라지만 다 벗은 몸에서 풍기는

분위기는 한없이 유약하고 부드럽고, 또 추워 보이는 거다. 난로를 들이대니 오히려 더

추워보이는 느낌이 더해진 걸까.

저런 생생한 표정, 맥주가 터져서 거품이 질질 흐르는 순간이다. 할아버지는 당황한 듯 입을

벌린 채 병을 쥐곤 (공교롭게도) 그의 노쇠한 성기가 있을 위치에서 두 손이 굳었고, 할머니는

그야말로 경악하며 한 손으로 그 광경을 가리려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림미술관 2층, 3층을 한 바퀴 돌고, 몇몇 맘에 들던 작품들 다시 한번 보고 나서 도착한 곳은

유르겐 텔러와 함께 작업했던 모델, 유명인들이 그에게 던진 질문들이 벽면 가득 적혀있던

미디어룸. 원래는 하나하나 답하려 했다고 하나, 무려 102개의 질문이라 그러지 못해 미안하단

유르겐의 쪽지가 가운데에 적혀있었지만 질문들이 전부 유르겐을 비춰주는 거울 같아서

찬찬히 읽어보는 재미가 있었다.

1층에 전시되어 있던 유르겐 텔러의 그 거대한 쇼핑백. 사람들에게 일종의 포토존 역할을 하는

저 쇼핑백 뒤에서 해보고 싶던 건 사실 물구나무를 서던가 해서 다리 두개만 번쩍 노출시키는

거였는데. 보는 눈이 많아서 참았다..랄까. 여하간, 사진을 나도 저렇게 멋지게 찍고 싶다고

잔뜩 파이팅을 충전해서 돌아왔던 전시였다. (2011. 4. 15 - 7. 31, 대림미술관)





안녕하세요,

저는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 비공개 포스트 : http://ytzsche.tistory.com/1486
* 비공개 일시 : 2011-06-03 18:00
* 조치 내용 : 포스트 비공개 전환
* 비공개 사유 : 청소년 유해 정보


최근 이러한 조치가 내려진 것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에 대한 이의제기를 하고자 합니다.

해당 포스팅은 대림미술관에서 연령제한없이 입장가능한 '유르겐텔러'사진전의 내용을 재촬영,

인용한 것으로 일부 신체 부위가 노출되고는 있으나 이미 타임지, 보그 등 해외 유수의 잡지에서

공개된 광고용 사진으로 수십년에 걸쳐 인용되어온 바 전혀 유해할 것이 없다고 생각됩니다.


예술과 음란물의 경계가 비록 애매하다고는 하나 해당 사진전의 전시주체로부터의 허락을 받고

촬영한 작품들을 포스팅한 것이 음란물로 취급되어 이렇게 비공개로 강제전환되는 것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다고 여겨지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입장표명과 후속조치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빠른 답변 부탁드립니다.










살갗을 간질이는 봄햇살의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사진에 담겼으면, 하고 찍었다.

봄날엔 그림자조차 보들보들 너그럽고 따뜻한 느낌이다.



@ 대림미술관 & 통의동 어느 까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좀더 걸어들어가면 영추문이 나온다. 가을을 맞이한다는 그 문과 마주보고 있는 거리에는

자그마한 미술관들과 까페들이 거창한 간판도 없이 숨어있다.

늘 그 동네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건 회칠이 벗겨진 담벼락에 그려진 여리여릿한 나무 한 그루. 더이상 회칠이

벗겨지지도 않고 딱 저만한 공간 속에서 나무는 호젓하다.

그 옆에 붙은 '보안여관', 한때 안기부에 조사받으러 불려다니던 피조사인들이 애용하던 곳이었다던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 허름한 뽄새와 왠지 모를 시간이 켜켜이 쌓인 포스를 늘 눈에 담고 갔었다. 마침 전시가

있어서, 카메라 뚤레뚤레 흔들며 구경질 시작.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들로 인형을 만드는 작가분이 1층과 2층을 모두 쓰며 작품을 전시하고, 또 계속 작품을

만들고 있었다. 솔방울, 잔가지, 마른꽃대궁, 씨앗..담담하고 조신한 색감이 맘에 든다.

여관(으로 쓰였던) 건물 내에 붙어있던 재미있는 표어. "미성년자는 입장해서도 안 되고 입장시켜도 안됩니다."

그리고 다닥다닥 붙어있는 방들마다 숨겨진 보물처럼 꼭꼭 감춰진 작품들.

빼꼼히 열린 방문 틈으로 창을 휘두르는 기사도 보이고, 다소곳한 매무새의 아가씨도 보이고.

2층으로 올라가는 길, 온통 낡고 헤진, 그리고 지저분한 여관의 내음이 물씬하면서도 나뭇가지니 마른 잎사귀

따위로 잘 갈무리된 느낌이다. 사실 이렇게 오래되고 우중충한 건물, 더구나 그야말로 갑남을녀가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관이란 곳은 청결함이라거나 말끔함과는 워낙 멀리 떨어진 곳 아닌가. 예술작품과는 더더욱.

솔방울과 마른 콩깍지 따위로 만들어낸 순간. 조그마한 새끼가 커다란 새에게 잡아먹히기 직전의 순간이다.

우연찮게 여길 들르기 직전에 돌아봤던 곳은 대림미술관, 커버 아트의 대가라는 로저딘의 회고전을 봤었다.

'Dragon's dream'이란 제목의 그 전시를 보고 나서 막상 여기서 또다른 형태의 용을 만나다니 신기했다.

이제 끝. 한번 설렁설렁 돌아보기 딱 좋은, 부담없고 재미있는 전시인 거 같다. 마치 전시작품들과 작가를

수호하듯 카랑카랑한 자태로 1층을 지키고 있던 (아마도) 샤먼.

그리고, 전세낸 듯 혼자 기대앉아서 해가 저물도록 책을 읽다 돌아온 통인동의 어느 까페. 정말 요새 까페하기

참 쉽다. 대충 짝이 맞지 않고 이가 어긋나 보이는 가구들 잔뜩 들여넣음 끝..이랄까. 사실은 이런 분위기 참

좋은 거 같다. 게다가 노래 선곡도 넘 맘에 들었던 게, '베란다 프로젝트', '에피톤 프로젝트', 그리고 '루시드폴'

앨범이 고스란히 순서대로 공간을 채웠었다.

그리고 굉장히 맛있던 갓구워낸 초코 브라우니, 그리고 에스프레소.

조그마한 병이 쟁반에 같이 나왔는데, 첨엔 시럽이려니 생각했다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그럼 이 녹색식물떼기는

왜 꼽아둔거지. 그냥 데코레이션으로 꼽아둔 건가. 아님 그냥 화병인 걸까. 뭔지 모르겠더라.



한 네시간동안, 노래에 흠뻑 취해 책 한권을 홀딱 다 읽고는 나왔다. 노래 참 잘 들었어요, 하고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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