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aw. 아마도 싱가포르의 정류장, 공공시설물, 까페 등등에서 제일 자주 접했던 문구인 듯 하다.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는.

처음 왔던 싱가포르, 어렸을 적 어마어마한 벌금과 엄격한 법집행에 기반한 공중도덕과 청결한 도시의 화신처럼 배웠고 대학 때도 리콴유의 아시아적 가치 운운하는 이야기에 쎄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내가 사는 한국과 멀지 않다. 츄잉껌을 수입하거나 만들지 않고, 온갖 것에 벌금을 매겨놓고 있는 싱가포르라지만..., 이미 우리는 큰사거리 건널목마다 주춤주춤 문워크중인 차들과 골목마다 눈에 불을 켠 씨씨티비의 천국에서 살고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또 갑갑하기만 하다. 이번에 들고 온 책이 김세균 서울대 정치과교수의 고별강연집, '사상이 필요하다'였는데 발간된 시점은 박근혜 당선직후쯤. 공저자인 홍세화 전 진보신당대표나 손호철 교수, 계간 문화과학 발행인이었던 강내희 교수 등등 필진은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었고 책도 사둔지 오래건만 여태 펼쳤다 덮길 수차례. '다른 세상을 꿈꾸는 정치적 기본기'란 부제가 무색하도록 세상은 역진중이다.

진보 대 보수, 란 페이크 프레임이 끝내 다른 가능성들을 전부 막아버린 꼴이다. 안철수에 기대한 건 단지 제3의 공간을 열어주길, 양당제로 고착화되는 추세를 조금은 지연시켜주길 바랬던 것 뿐이나 역시. 싱가포르와 한국. 아시아적 가치에 기반한 민주주의, 그러니까 민주주의의 형식을 빌린 천민자본주의사회란 건, 어쩌면 압축성장을 경험한 풍요로운 경제와 천박하고 미발전한 시민사회 및 지평을 가진 나라의 귀결일지 모른다.

이제 점점 거대해지는 자본권력과 심화되는 사회적 불평등은 누구의 입으로 어떤 공간에서 이야기될 수 있을까. 제3당으로 표상되는 새로운 가능성과 사상이 들어설 자리는 봉쇄되고, 삿된 영웅-안철수-는 그나마 민주당과 새누리당 사이에 공간을 벌려 스펙트럼을 결과적으로 넓히나 했더니 투항해버리고, 민주당도 안철수도 결국 파이를 키우기보다 있는 파이를 지키는 현실적 선택을 해버린 것 같다.

그저 노무현이 읊조렸듯 말한마디로 치우고 넘기면 편하려나.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이미 모든 것이 소비일진대 정치 역시 일인일표의 소비행위 그이상도 이하도 아닌게 뭐가 이상하냐고. 싱가포르, 한국의 근미래에서 한국의 현재로 워프하기 직전, 한발 재겨 딛을 수 밖에.

 

(2014. 3. 2. from FB note.)

 

민주통합당은 위기감 없이, 표를 얻기 위해 '오른쪽'으로 가겠다며 김칫국부터 마시며 자리 나눠먹기 중이고,

 

통합진보당은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구호를 내버린 채 대중정당이 되겠다고 나섰다가 자멸 중이고,

 

새누리당과 박근혜와 이명박은 꽃놀이패를 쥐고 즐기는 참이고.

 

 

그 와중에 홍세화 당대표가 '전태일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전태일의 집'을 전국에 짓자는 제안을 해왔다.

 

문득, 총선에서의 패배를 예감했던 4월의 어느날 이래 멎어있던 심장이 뛰었다. 두근. 전태일당이라니.

 

5월 총선 이후 그가 침통하고 분루를 삼키던 사진이 숙제처럼 컴퓨터에 저장만 되어있다가, 이제야 올린다.

 

 

 

 

우리는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왜 다시 전태일을 호명해야 하는가-

 

 

 

 

나는 왜 쓰는가? ― 4년 전의 글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일주일 전쯤, 20대의 한 청년 당원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가 이 글을 시작하려는 지금 다시 내 마음을 짓누른다. 동네 가게 주인이 대뜸 말을 걸어왔다고 했다. “선거 때 표 찍어달라고 열심히 다니던데, 그런 정당 때문에 고생하지 말고 앞날이나 잘 챙기라”고. 짐짓 안쓰러운 표정을 짓는 아버지뻘의 가게 주인에게 “그 당은 제가 속한 당이 아니”라며 설명하려는데 억울하고 목이 메여 눈물이 핑 돌더라는 얘기였다. 선거에 패배하여 이제는 그 이름조차 기억 속에 묻어야 하는 당을 변명해야 했던 그 청년 당원 앞에서 나는 어떤 말을 할 수 있었을까?

 

4년 전에 쓴 글을 다시 꺼내 읽는다. 그것은 2008년 2월 13일 민주노동당을 떠나며 남겼던 글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번호 ‘25994’는 이제 주인이 없다”로 시작하는 그 글에서 나는 “민주노동당에 민중은 없었다”고 단언했다. 오직 요란한 구호의 장식품이었을 뿐, 오로지 배제 행위에 의한 권력 싸움만 남은 자아팽창자들의 권력의지의 전시장이라고 썼다. 나는 그 글의 말미에 이렇게도 썼다. 기어이 다시 참여할 것이라고...그래서 진보신당 평당원으로 3년 반을 채울 즈음, 당 대표를 지낸 이른바 명망가들이 당 대회의 결정에 아랑곳없이 떠나는 것을 보아야했다. 그리하여 한낱 서생에 자족해온 내가 그 빈자리에 올라 어울리지 않은 직책의 무게에 허덕이며 오늘에 이른 셈이다.

나는 이제 다시 쓴다. 지난 총선에서 당의 존립을 지키지 못한 패장으로서, 그러나 분노보다는 슬픔으로, 슬픔보다는 쓸쓸함으로 이 글을 쓴다. 그것은 위장전입과 당비 대납, 대리투표와 비례대표 독식 등 4년 전 민주노동당 당권파의 몰염치와 오늘 통합진보당 당권파의 몰염치가 한 치의 오치도 없이 일치하는 것을 확인한 데서 온 것이 아니다. 내가 4년 전 그 글을 썼을 때, 그리고 그 글이 이른바 당을 장악한 종북 편향의 패권주의자들에게 알량한 쁘띠의 ‘유럽사대주의’의 발현으로 읽혀졌을 때, 이미 나는 그들에 대한 그 어떤 기대도 접었다.

 

나는 ‘진보대통합’에 대해 어떤 통합이냐고 묻는 동지들을 ‘고립주의 독자파’로 몰아붙이고 주저 없이 떠난 이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국민참여당을 포함한 3당 통합이 ‘노무현과 전태일의 만남’이라고 정의될 때 노무현 시대가 노동하는 인간에게 어떤 시대였는지 기억하는 노동자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배타적 지지’를 강행했던 조직노동의 대표자들에게 묻기 위해, 그리고 진보정치가 통합진보당의 독점물이 되도록 여론 몰이에 앞장선 한겨레를 포함한 이른바 진보매체들이 이제서 이 당의 비례대표경선 부정에 새삼스레 경악하며 집중포화를 퍼붓는 것을 보면서 그들에게 묻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정말 이제 비로소 알았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정치적 이해가 실현되는 지점까지만 진정으로 ‘자유주의적’이 되고 ‘개혁적’이 되는 국민참여당 출신들의 반응은 차라리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민주노총은 무엇을 용인할 수 없고 또 어디까지는 용인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일까? “분당은 절대 없다. (통합)진보당이 진보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이전의 진보신당 대표이자 오늘의 통합진보당 대표인 여성 정치인은 왜 4년 전엔 분당을 결단했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일까? 분단의 질곡이 보수를 왜곡시켜 극우의 품에서 사익을 추구하게 했듯이, 본디 보수인 민족자주세력이 패권주의를 통해 주류 종파가 되었고 이들의 뭉뚱그려진 헤게모니 아래 이른바 진보주의자들과 노동조직까지 실리를 챙기려 했던 공모의 결과물이 통합진보당의 실체 아니었던가. 막무가내로 패권을 휘두른 이른바 당권파들이 차라리 단순한 편이라면, 그들이 그토록 막무가내가 될 때까지 침묵하고 방관하고 용인하다가 마침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나서는 사람들은 복잡한 편이다. 이제서 당권파들을 제물 삼아 몰아세우며 스스로 정의의 편에 서있음을 입증하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지식인들...왜 그 예민한 지성의 분개는 사태의 본질이 감추어져 있을 때가 아니라 늘 퇴각하는 권력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작동할까? 차라리 몰랐다면 진솔한 자기고백이 필요할 뿐, 대중의 분노 뒤에 숨어 자신의 알리바이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자제했을 터이다.

 

아마도 4년 전과 오늘이 다른 게 있다면 한 가지일 것이다. 그것은 ‘진보’라는 명분을 필요로 했던 자유주의자들까지 끌어들여 키우고자 했던 파이(권력)의 크기가 커졌다는 점이다. 짐작컨대, 13개의 숫자로 불어난 권력이 지나치게 한편에 치우쳐 작금의 갈등이 촉발되었다면, 그 권력을 다시 어떻게 배분하는가에 대한 합의에 따라 갈등이 봉합될 것이라 전망할 수 있겠다.

 

롤랑 바르트가 그랬던가? ‘좌파(여기서는 문맥상 ’진보‘라 하는 게 맞겠다)의 신화’는 그것이 실제의 혁명과는 무관해지는 순간 나타나기 시작한다고. 그런데 권력정치로 변질된 진보가 여전히 혁명이라는 가면을 쓰고, 자신의 권력의지를 그 속에 감추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진리’라 ‘법칙’이라 ‘섭리’라 ‘운명’이라 왜곡하기 시작하는 이 순간은 동시에 이 신화의 수명이 파국을 향해 빠르게 나아가는 과정의 시작이기도 하다. 역사마저 비틀어버린 불행한 동거의 파국은 예상보다 빠르게 왔어도, 권력정치의 레일에서 열차가 이탈해 완전히 전복되기 전까지 그들의 현란한 정치공학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다시 부르기 위하여

 

사람들의 뇌리에서 차츰 잊혀져갈 진보신당을 옹호하기 위해 목 메이던 청년 당원의 눈동자 속에 어른거리던 열정 때문에 차마 못했던 말을 이제는 해야 할 것 같다.

 

오늘 한국에서 진보는 죽었다. 진보라는 말에 담겨 있던 아름다운 인간의 가치들은 그 가치들을 실현하는 도구에 불과한 권력에만 관심을 갖는 자들에 의해, 진보정치를 현실적 실리와 명분이라는 ‘떡’을 양손에 쥐고자 했던 자들과 더불어 사망선고를 받았다. 진보신당 또한 죽었다. 권력정치와 다른 길을 걷고자 했던 우리의 안간힘 역시 참담히 패배했다. 진보정치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던 성장주의와 결별하고자 했으나 새로운 진보의 가치를 제대로 일구어내지 못한 우리들 역시 사망선고를 받았다.

 

젊은 벗이여, 이제는 서둘러 낡고 병든 진보(정치)의 신화를 우리 자신의 손으로 땅속에 묻어야 할 때가 되었다. 우리들 자신에게도 권력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면 그것도 함께. 이 진보의 장례식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땅 속에 내려간 진보의 죽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다운 가치를 실현하는 새로운 정치의 씨앗으로 되살아나게 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오늘의 참담과 추악과 왜곡의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이 쓸쓸한 봄날,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를 다시 읽는다. 오웰 스스로 ‘공공연하게 정치적인 책’이라 했던 이 빼어난 르포르타주는 자신이 직접 참여했던 스페인 내전의 정치드라마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불편한 진실을 증언한 고발서의 의미를 갖는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스페인 인민의 열망 편에 서려고 했던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이 파시스트 프랑코 세력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소련-스페인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연합세력들에 의해 어떻게 배제되고 억압당하고 끝내는 죽음을 당했는지를 증언하는 책이다. 이 책보다 먼저 발표된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다」는 에세이에서 소비에트를 등에 업은 스페인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 연합의 정치적 논리는 “지금은 우리가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를 너무 따질 것이 아니라 함께 파시즘에 맞서 싸울 때”라는 것이었다. 그 논리 아래 인민 민주주의 지향은 부르주와 민주주의에 의해 차단되었다. 스페인에서 ‘민주적 사회주의자’들은 “그들의 식견이 너무 ‘오른쪽’이어서가 아니라 너무 ‘왼쪽’이어서” 처형당했다.

 

너무 먼 역사이야기인가? 한 가지만 덧붙이자. ‘스페인의 비밀을 누설’한 오웰의 책은 소비에트와 연결된 자신의 이해를 실리적으로 계산하는 영국의 좌파 지식인들과 언론들, 심지어 출판사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 한 세기 전의 상황이 2012년 한국과 너무 닮아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이렇게 ‘배신당한 혁명’으로 프랑코 독재가 오래 지속되는 동안 파시스트들에게 쫓겨 스페인의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로 망명해야 했다. 나는 1980년대 파리에서의 망명시절 국제엠네스티 프랑스 지부에서 일하던 스페인 출신 2세 한 여성을 알고 지냈다. 스페인에서 쫓겨 온 그녀의 부모세대들은 그 무렵 이미 힘없는 노인이 되어 있었고 하나 둘씩 남의 땅에서 눈을 감았다. 동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는 백발의 노인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그래, 우리 삶은 실패한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불렀다. 그 기억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 나는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한 가지는 안다. 그들은 끝까지 권력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카탈로니아 찬가』는 고발서라기보다 제목 그대로 ‘찬가’다. 스페인 내전에 참여하여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던 수많은 인간들의 아름다운 노래들을 기억하기 위해 오웰은 그것을 망각 속으로 밀어낸 권력정치의 드라마를 고발했던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턱없이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이같이 불편한 글을. “대여섯 살부터 작가가 되리란 걸 알았다”는 탁월한 작가 오웰과 달리 내게 글쓰기는 언제나 고된 짐일 따름이었다. 그런데 왜 쓰는가? 우리에게도 분명 존재했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되찾고 싶어서다. 그 노래를 한 번 함께 불러보고 싶어서다.

 

오늘의 절망스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보정당운동의 첫걸음이 지금과는 다른 인간의 미래를 앞당기려는 희망과 함께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언제부터 우리는 길을 잃게 되었을까? ‘아직 오지 않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언제 눈앞에 어른거리는 권력에 대한 현실적 욕망으로 뒤바뀌고 진보정치가 권력정치의 주술에 갇히게 되었을까?

 

올해로 귀국한 지 꼭 10년이다. 진보정당 당원으로 살아온 시간과도 고스란히 겹쳐지는 이 10년 동안 내가 가장 빈번히 들었던 것은 “세상을 바꾸려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권력을 장악해야 한다는 이유로 세상을 바꾸기도 전에 사람들이 어떻게 먼저 바뀌는지를 줄곧 지켜봐왔다. 그리고 진보정치와 조직노동이 스스로를 ‘민중권력’이라 강변하던 그 시간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는 물론이고 그들에게조차 외면당하고 배제된 노동자들의 숫자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 나는 왜 쓰는가?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되려고 인간의 고통과 시간을 건너뛰어 자유주의-진보주의 연합을 이룩한 저들의 허위와 몰락을 증언하기 위해 쓴다. 그리하여 정작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기 위해.

 

 

 

돌아가야 한다, 기어이 되돌아가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노래’가 머물러 있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는 아직 이 노래보다 아름다운 노래를 알지 못한다. 이 구절을 외는 것만으로 인간의 숭고함 속으로 성큼 다가가는 것 같은 감동을 안겨주는,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중졸도 안 되는, 기껏해야 지상에서 누린 지위가 봉제공장 재단사 보조밖에 안 되는 스물셋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우리에게 남겨준 노래...

 

허수경 시인의 시를 읽은 적이 있다. 그녀가 쓴 「베를린에서 전태일을 보았다」는 제목의 시에는 제목 외에 전태일은 어느 곳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시의 연이 바뀔 때마다 80페니히의 가격이 매겨진 건포도빵, 1마르크 20페니히의 출근길 맥주, 장벽이 무너진 베를린광장 앞에서 파는 5마르크의 기념품, 4마르크의 입장료를 지불해야 들어갈 수 있는 ‘눈동자 없는 눈’을 지닌 신들의 전시실 같은 풍경들이 이어지고 있을 뿐이다.

 

그건 다름 아닌 노동하는 인간들의 고통과 아픔과 슬픔까지 완벽히 삼켜버린 물신의 세계에 대한 묘사이다. 사물을 넘어 살아있는 인간 모두에게 가격을 매겨놓은 물신의 세계가 펼쳐놓는 매끄러운 스크린 위에 모든 것들은 풍경으로 존재할 뿐. 전태일이 그림자로서나 어른거릴 뿐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 장막을 찢지 않고선 그도, 그가 사랑으로 껴안고자 했던 노동자들의 아픔도 볼 수 없다. 이 물신의 세계에 파열을 내지 못하는, 그저 권력정치에 포섭된 노동조직이 전태일을 실체 없는 유령으로 만드는 까닭이다. 유령이 된 전태일이 노무현을, 나아가 박정희 체제가 만들어놓은 자본과 권력, 이들과 만나지 못할 까닭도 없다.

 

지난 반 년 동안 기꺼이 나의 글의 첫 독자가 되어준 진보신당 당원 동지들, 그리고 젊은 벗들이여. 나는 오늘 여러분께 간곡한 제안을 하기 위해 이 글을 쓴다. 우리가 재창당할 당의 이름을 <전태일당>으로 하자고. 그리고 <전태일의 집> 운동으로 오늘 권력정치에 질식당한 진보좌파운동의 새로운 길 찾기를 하자고.

 

좌파정당의 이름으론 낯선가? 전태일이란 아름다운 이름을 사유화하자는 의도가 아니다. <전태일당>과 <전태일의 집>은 ‘망자亡者와의 연대’이며 배제당하고 고통 받는 인간들에게 다가가 부둥켜안기 위해 물신의 세계에 저항하며 싸우는 정당의 정신을 당당히 선언하는 이름이다. 이것은 통합진보당이라는 당명으로 우리를 침탈한 데 머물지 않고 등록취소가 되자마자 곧 진보당으로 바꾸겠다는 저들에게 응수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과 약속하기 위함이다. 전태일 자신이 그랬듯이.

 

절망할 일로 가득 찼을 스물셋 봉제노동자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고 탄식했을 때 그 희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을까? ‘돌아가기 위해’ 죽음도 무릅써야 했던, 그리하여 기어이 그가 만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태일은 버림받고 감추어진 자들을 부둥켜안으려는 사랑이고 만남의 정신이었다. 연대는 내게 넘치는 것을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도 부족한 걸 떼어주는 것이다. 늘 배고픈 어린 시다들에게 풀빵을 나눠주기 위해 버스비를 아껴 수유리에서 청계천 평화시장까지 뚜벅뚜벅 걸어가던 전태일의 발걸음을 정의하는 말이다.

 

진보신당 대표가 되어, 지금도 어색하기만한 옷을 입고 주로 했던 일은 노동자들이 투쟁하는 현장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정리해고 반대’ ‘비정규직 철폐’, 이런 구호들 속에서 나는 ‘연대’라는 말만 들으면 늘 가슴이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무력감과 미안함, 그런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비정규직 노동자란 어떤 존재를 가리키는 말일까? 단지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걸 의미하는가? 그것은 버림받은 사람들의 이름이다. 그것도 두 번 버림받은. 한 번은 자본과 권력에 의해. 그리고 다음에는 정규직 노동조직에 의해. 노동인구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인 현실에 대해, 그들의 노조가입조차 배제된 현실에 대해 침묵하면서 외치는 ‘비정규직 철폐’라는 구호는 공허할 뿐이다. 정규직 노동조직 자신이 배제한 비정규직의 존재를 자본과 권력의 책임으로 돌리는 일은 염치없는 정치적 알리바이 아닌가.

 

우리가 오늘 전태일을 다시 호명해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시대의 노동현실에 가로놓인 이 이중의 배제구조를 외면하고 외치는 노동정치에 대해 이제는 아니라고 말하기 위해서다. 이 허위의 현실에 안주해온 죽은 진보를 이제 땅 속에 묻고,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기어이 전태일로 되돌아가야 한다.

 

남도의 끝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위에 매달린 절망에 연대하기 위해 달려간 버스에 ‘희망’이란 말이 붙은 것을 나는 기적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에게는 희망함이 너무 적다는 전태일의 탄식에 대한 응답이고, 그리하여 죽은 전태일이 죽음을 무릅쓰려는 김진숙을 살려낸 기적이다. 김진숙의 기록 『소금꽃나무』는 내가 읽기에 ‘망자와의 연대’이다. 크레인 위에서 떨어져 죽어간 동료로부터 달아나지 못하고 기어이 크레인 위로 올라갔던 그녀가 희망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부활은 기적을 통하지 않고선 일어날 수 없는 사건이다. 지금 진보의 죽음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 기적 아닌가? 이제 우리가 만들 당의 이름이 전태일, 그의 이름이면 안 되는가? 우리의 당의 정신이 온통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정신인 그의 정신이면 안 되는가? 평생 집이 없었던 그의 이름으로 집을 짓고 배제되고 쫓겨나고 상처받은 노동자들이 쉬었다 가는 공간이 되게 하는 일에 전력하는 일, 그게 새로운 정당운동이면 안 되는가?

 

오늘의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그것이 우리가 아직 여기에 남아 있는 존재이유라고 자위해선 안 된다. 우리 자신은 검게 드리운 권력 정치의 그림자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일까? 진보정당이란 몸통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자 했던 우리들은 과연 민중의 고통을 따라 움직이고 눈물 흘릴 줄 아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설움 받는 평화시장 어린 동심을 지켜보던 그의 눈을 닮은.

 

진보신당을 변명하며 목 메이던 젊은 벗에게 송경동 시인의 시 한편 발췌해 남긴다. 이것이 내가 말한 ‘망자와의 연대’의 의미이다.

 

 

“경기대에서 「조국은 하나다」/ 육성시낭송 듣고도 울지 않고/ (……)/ 불 꺼진 취조실마냥 어둡던 망월동/ 그의 하관을 보면서도 이 악물었는데// 그를 묻고 돌아온 서울/ 심야버스 타고 마포대교를 건너다/ 다리 난간에 덜덜거리는 허리 받치고/ 헤머드릴로 아스팔트 까며 야간일 하는/ 늙은 노동자들을 본 순간/ 이 악물며 울고 말았다/ 그가 간 것보다 그가 사랑했던 한 사내가/ 저물어가는 것이 서러웠다”

―송경동의 시, 「김남주를 묻던 날」

 

 

 

 

 

*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며 생각난 예전 홍세화 대표님의 글


 

 


노무현 재임시절 모든 사람들의 입버릇이던 문장이 있었다.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경제가 안 좋은 것도, 일자리가 없는 것도, 대학교육이 엉망인 것도, 집값이 폭등하는 것도, 심지어 시험성적이 떨어진 것도

전부 다 노무현 때문이라 했었다. 그러더니 그의 사후, 그는 갑자기 구름같은 추모물결을 불러일으키는 '우리의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고, 그의 재임시절은 마치 정의와 행복이 강처럼 흐르던 민주주의와 경제정의의 호시절이었다는 식으로 드라마틱한

역전현상이 일어나고 말았다. 노랑풍선이 일렁였고, 그는 (참 모호하지만) '소탈하고 정많고 정의롭던 대통령'이 되었다.


분명 노무현은 그렇게 세상만사에 대해 욕을 먹어야 하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민주주의의 상징이라거나

올바른 지향점으로 여겨져야 할 인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한미FTA다. 2005년 6월 한미FTA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불쑥 내지르고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내정치와 사회의 소모적이고 극단화된 형태의 분란이 끊이진 않는 건

분명히 노무현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명박을 욕하지만, 한미FTA는 (기본적으로) 노무현 때문이다.


워낙 한미FTA와 관련한 이슈들도 많았고 논란거리들도 많았으니 기억조차 가물가물하지만 살짝만 짚어보면 그렇다.

협상개시 선언 후, 이른바 4대 선결문제를 미리 해결한다며 스크린쿼터 축소, 미국산쇠고기 수입재개 따위를 양보해버렸다.

영화계와 농민계가 반발하고 항의하자 집단이기주의네 폭력시위네 하며 수천수만의 전경을 동원해 진압해버렸었다. 정책이

결정되기 위한 사전절차로 국민 혹은 국회를 설득하거나 논의하는 과정은 생략됐다.


그뿐인가. 한국이 미국에 비해 어떤 실익을 얻었고 양측의 실익이 균형잡혔는지조차 의문이 남는 협상 결과에 대한 투명하고

충분한 해명이 없었으며, 심지어 협정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한 접근권조차 비공개로 봉쇄하고 국회의원에게조차 제한했었다.

악명높은 독소조항이라는 몇몇 항목에 대한 비판 역시 어정쩡한 얼버무림으로 넘어가며 협박하기를, 개방은 무조건 좋은 것이며,

국내 경제를 선진 미국의 경제시스템으로 재편하고 경쟁력을 강화하고 싶다면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지금의 난맥상이다. 국내 여론을 수렴하지도, 한미FTA의 필요성이나 효과나 대책에 대해서 아무런 공론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시작했고, 그런 태도 그대로 밀어붙였던 거다. 각각의 국면에서 점검하고 논의하고 의견이 모였어야 할 이슈들이

있었지만 우격다짐으로 미루기만 했던 문제들이 지금 순간에 폭발하고 있는 거다. 사실 ISD같은 조항의 유독성 여부나 의료보건

분야 등에 대한 파급효과 예측이라거나 국내 경제에 대한 효과라거나 따위를 협상이 다 끝난 다음에 따진다는 건 코미디다.
 


그런 측면에서 이명박은 억울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한미FTA 광고에 노무현이 나왔다고 많은 이들이 분개했다지만 대통령

노무현의 대표적인 '성과'였던 게 사실 아닌가.
그 공을 이어받았을 뿐인데, 이제 와서 노무현의 사람들이 그들을 손가락질하고

대중을 '선동'해서 매국노라느니 비난하고 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홍준표 한나라당대표가 그렇게 억울해 하는 거 아닌가.

물론 이명박이 정권을 이어받은 이후의 일들, 여전했던 불통과 불투명성 따위에 대한 비판은 올곧이 그의 몫이다.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참여정부의 동시다발적 FTA 체결 전략의 핵심이었던 '한미FTA'를 추진한 최고정치인

대통령 노무현을 욕해야 한다. 그를 밟고 넘어서지 않고서는 기껏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이런 것 뿐이다. "그의 한미FTA와 이명박의

한미FTA는 다르다." 다르다고? 뭐가 얼마나 다른지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한다."

그들이라고 나라 팔아먹겠다고 눈이 벌개 혈안이 되어 한미FTA를 추진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과 당시 열린우리당은 그랬나.


치졸하다. 대통령 노무현의 전반적인 공과에 대한 평가는 차치하고, 한미FTA 추진정책에 대한 평가로부터 시작해야 이런 치졸한

항변이나 인신공격 이상의 비판을 할 수 있다. 최소한 민주당 내의 한미FTA반대파들, 그리고 한미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노무현에 대한 '의리'를 깨고 그의 정책을 냉정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 출발점이다. 이명박에 대한 막연한 반감으로,

혹은 정략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반대하는 것은 설사 그 반대가 성공한다 해도 아무 교훈도 남기지 못할 거다.


그랬을 때 우리가 얻게 될 교훈, 그리고 새로운 생각거리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될 거다. 시장과 개방, 시장개방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일까. 2005년과 2011년, 한국과 세계 경제환경은 어떻게 바뀌고 어떻게 동일한 것일까. 한국 경제는 어떻게

발전해야 하며, 그 이득은 어디로 어떻게 분배되어야 할까. 정부는 국민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어디까지

역할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할까. 그런 방향과 가치를 정하는 과정으로 한미FTA 찬반 논의가 가야 한다.


그러면서, 이명박은 물론이고 노무현도 넘어서는, 그런 인물을 발견하고 골라내는 안목을 키울 수 있을 거다.

단순히 인물 한명에 기대어 나라가 좌지우지되고 흔들거리는 허탈한 후진국가를 이젠 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한미FTA 통과후 첨언]

허탈하다. 기껏 열심히 썼더니, MB가 순방에서 돌아오는 시점에 맞춰 날치기를 해버리다니. 비록 통과가 되어버려

더이상 한미FTA 반대를 말하는 게 의미를 잃어버린 상황에 처하고 말았지만, 이 글의 본래 의미는 크게 손상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어차피 MB를 넘어서려면 노무현의 공과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어야 하며, 그런 바탕에서

한미FTA에 대한 비판비난질책이 귀결될 지점이 어디인지 살펴보는 건 여전히 의미있으리라 보기 때문이다.





p.s. 지금도 국회에선 강행처리를 막으려는 진보정당 의원들의 절박한 몸부림이 있었다는 속보가 떴다. 한미FTA를 둘러싼

정치인들의 고성과 몸싸움을 그저 '정치싸움꾼'들의 난동으로 치부하고 손쉬운 양비론으로 빠지는 것은 피할 일이다.


p.s.2. [리뷰] 자유무역협정의 정치경제(윤영관, 인간사랑)(2007.4.19)

노무현 정권 때 외교통상부장관을 역임했던 윤영관 교수의 '국제정치경제' 수업 게시판에 올렸던 글인데, 첫단추부터

잘못 꿰였던 정황이 조금이나마 묻어난다 싶어 첨부한다.


p.s.3. 2011년 11월 22일 오후 4시 한미FTA 비준안 국회본회의 통과.

당장 한국이 멕시코나 미국처럼 의료보험체계가 붕괴하고 사람 못살 곳으로 변하지는 않을 거다. 다만, 체감하기 어려울

정도로 서서히, 마치 조금씩 온도가 올라가는 냄비 속에 담긴 개구리가 조용히 삶아지듯, 그렇게 삶의 환경과 조건이

악화되지 않을까. 수년쯤 지나 문득 뒤돌아보면 어라, 생각보다 많은 게 변했구나 하는 식으로.


아울러, 한미FTA는 노무현 때문이다, 란 말에도 약간의 추가를 해야겠다.

한미FTA는 노무현과 이명박 때문이다.


대나무에 기대어 층층이 발판을 얹은 수십개짜리 덩굴계단. 안 그래도 위로 갈수록 작아져보이는 원근법의

마법에 더해,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잎사귀의 모습, 그러면서도 몇몇번째 계단에선 그 비율을 깨뜨리고

불끈 자라난 잎사귀들의 배열이 리드미컬하다.

담양의 죽녹원. 서울에서 전남 담양까지 내려갔으니 사람들이 많이 없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입구부터 꽉꽉

들어찬 사람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는 데에도 줄이 잔뜩 늘어서서 입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입구에서 뒹굴고 있던 팬더 몇 마리. 왠 팬더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대나무와 팬더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한쌍이었던 거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그런 견고한 고리가 내 머릿속에서 깨어진 건 아마도 핑크팬더와

쿵푸팬더의 영향 아닐까. 제법 익살맞은 팬더들 사이에 선 꼬맹이, 암만해도 팬더들 따라 지어본 표정이지 싶다.


사방으로 휘휘 뻗어나는, 그렇지만 그렇게 부담스럽게 길지는 않던 죽녹원의 코스를 거닐면서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나무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살린 채 가로등 기둥으로 활용하고 있던 모습.

온통 대죽들, 고개를 잔뜩 꺾어 올려야 겨우 그 너머 하늘이 보일 정도로 잘 자란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바람도 울고 갈 정도였다. 꼬맹이들 앞니 빠진 새로 바람이 노닐듯, 그렇게 간결하고 호리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노닐며 그 푸른 청량감을 한껏 머금는 듯 하다.


대죽의 색깔도 약간 소프트한 무광택 코팅이 살짝 입혀진 옥빛이랄까,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살짝 손만 대어도 대나무가 빈 통속에 보관하고 있던 냉기가 맹렬하게 전달되었더랬다. 죽순의 떡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쭉쭉 뻗어나간 대나무 하나, 워낙 순식간에 자라난다니 가능했을 듯.


그런데 대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그 숲의 짙고 깊은 느낌을 만끽하는데 종종 방해가 되던 현수막들이 보였다.

"저는 대나무입니다. 저를 만지거나 제몸에 낙서하지 마세요. 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꽤나 섬뜩한 문구다.

근데 정말, 그런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려있는 앞에서도 차키를 들고, 펜을 들고 대나무에 하나씩 달라붙어서

글자를 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나 많이 눈에 띄던 거다. 나이가 많던 적건 상관없이. 심지어 이런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낙서라거나, '개개개자로~' 시작되는 말을 이어놓은 낙서도 있더라는.


대나무들의 저런 눈물어린 읍소에도 불구하고 저런 낙서를 의연하게 하는 사람들은, 담양특산품인 이런

대살회초리로 체형을 내려야 하지는 않을까. 수학여행 때던가 기념품 가게에서 회초리를 사갔던 옛날의

아련하고도 아팠던 기억을 새록새록 자극하던 대살회초리 특산품. 손바닥에 몇대 시험해보니 찰지구나.

죽녹원은 총 여덟개 코스로 구성된 산책로를 갖고 있는데,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죽녹원 안의 숲을 돌아서

그 코스를 전부 밟아도 두어시간이면 충분한 거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1박2일 촬영지 가는길'.

아무리 저 프로그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저렇게 안내판에 덕지덕지 붙여놓는 게 맞을까

모르겠다. 더구나 이승기가 빠졌었다는 연못엔 '이승기 연못'이란 이름까지. 한 3년만 지나도 저게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기서 뭘 찍었는지 기억도 잊혀질 텐데, 그땐 지우고 새로 안내판을 세우려나.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거다. 그냥 여기가 이런 영화, 이런 프로그램 촬영했던 곳이라는 것만 표시를 남기면

될 것을, 뭘 전체 지도에다가도 요란스레 '1박2일'이니 '이승기연못'이니 정식으로 표기를 해 놓았을까.


 

*토막상식(@ 죽녹원 안내판).   <죽림욕의 효과>

ㅇ 음이온 발생
  - 음이온이란 전기를 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로 마이너스 전하가 음이온이다.
  - 대숲에서는 음이온 발생량 1,200~1,700개 발생 (음이온 발생량 700개 이상일 경우 사람은 시원함을 느낌)

ㅇ 풍부한 산소 방출
  - 대나무숲 안과 밖의 온도는 약 4~7도씨 가량 차이가 난다.
  - 대숲 1ha당 1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0.37톤의 산소를 발생

ㅇ 심신안정 효과
  - 뇌에서 알파파의 활동을 증가시켜 스트레스 해소, 신체/정신적인 이완, 심신의 안정 효과


 


 


여덟 코스 중에서도 가장 경사도 있고 길도 좁던 곳은 추억의 샛길,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산책했던 코스라고도 한다. 대나무뿌리가 얼기설기 드러난 흙길 양쪽으로 하늘높은 줄 모르는 죽의 장막을 친

대나무숲 사이를 걸으니까 땀도 안 나고, 걸을수록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게 죽림욕 제대로다. 그치만 맘 한켠으론

대통령이 걷기엔 좀 너무 정비되지 않은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 그의 소탈함이 반영되었던 걸까.


죽녹원이라고 대나무숲만 울창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낮은 곳에는 저렇게 하얀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차나무도 있었고, 드문드문 덩굴이 말려올라간 나무들도 있었고.

근데 죽녹원 가운데에 있던 이 동상은 대체 누굴까. 못 찾은 거 같기도 하지만 안내팜플렛이나 지도나 동상

근처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누군가 저렇게 파랑땡땡이 스카프를 곱게도 감아놔서

차갑게만 보일 수 있는 동상에 살짝 온기가 감도는 것만 같다.


죽녹원 맨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한옥체험마을 가는 길. 깔딱고개를 넘어서듯 경사가 급 가팔라졌다가 급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면 한옥들과 정자들이 조그맣게 무리짓고 있는 마을이 나온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옹골차게

짧막한 마디가 꽉 차있는 대나무뿌리가 흙바닥 위로 꾸물꾸물 기어나와선 자꾸 발목을 잡았다.

한옥체험마을, 몇 개의 연못이 이어져있었는데 괜히 궁금해지는 거다. 이 중에서 어디가 '이승기연못'인 거지.

혹시나 하고 굽어본 안내판엔 이승기연못 대신 죽녹원 두꺼비를 지켜달라는 이야기만.

한옥마을과 죽로차체험관, 그리고 시비공원이 모여있는 곳인지라 조경도 잘 되어 있고, 잔디가 곱게 깔린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자갈길은 정말 걸을 맛이 나는 구간이었다. 적절히 안배된 연못과 건축물들, 그리고 나무와

벤치들까지 아기자기한 그림같은 풍경이 돋보이던 곳.


정자에서는 어느 명인 한분이 가야금을 뜯으며 구성진 가락을 한 소절 뽑아내리고 계셨고, 굳이 그 앞에 총총이

모여서 듣지 않아도 부드러운 바람결에 날려 오는 소리가 가을날의 정취를 더했다.


그리고 이곳 연못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남은 사진들. 연못 너머 벤치에 우뚝

선 아기를 어르고 있는 부모의 부산스럽지만 행복해 보이는 풍경이라거나, 곳곳에서 쌍쌍이 벤치에 앉아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가을공기를 즐기는 어린 연인들의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요새 코스모스 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핏 듣기로 외국산 국화던가, 그런

외래종에 밀려서 점점 코스모스 개체가 줄고 있다고 신문기사를 봤던 거 같은데. 벌 한마리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허벅지에 노란 꽃가루테를 두르고 있었다.

죽녹원을 나오다가 잠시 돌아보았더니, 누렇게 변색된 대나무를 촘촘이 엮어만든 담벼락이 터져나갈 듯

거침없이 쭉쭉 뻗은 대나무숲의 기세가 충천한 느낌이다. 저래서야 비가 와도 물방울이 안으로 새어들어갈

틈이나 있으려나 싶도록 빼곡하게 밀집해선 시퍼런 색감과 칼날같은 잎사귀 모양을 자랑하고 있던 죽녹원의

대나무숲. 아무래도 대나무숲은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이야기를 머릿속에 소환해내는 거 같다.





진보집권플랜 - 6점
조국.오연호 지음/오마이북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노회찬 진보신당 전 대표가 말했다. "1948년 이래 가장 나은 정부가 1987년 이래 가장

나쁜 정부를 탄생시키는 배경이 된 이 역설을 고민해야 한다"고. 노무현 정권이 어쩌다

이명박 정권을 탄생시키는데 가장 크게 공헌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이야기일 거다.


왜일까. 왜였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노무현의 사후 1년이 지나고 어느 잡지에서

'우리시대 노무현의 정의'를 모으는 기사에 내가 썼던 한 줄이 여전히 난 가장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의 재임 시절에도 늘 생각하던 것. 내가 그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


@ytzsche "노무현은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다."

그를 대통령으로 앉혀놓고 진보적인 정책을 강제할만큼 그도 우리도 준비되지 않았는데 덜컥 그가 대통령이 되고, 돌아갔죠. 삑사리로 들어간 뽀록구, 실력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 마련입니다.

 - “노무현은 마라톤 42.195Km이다.”(2010.5.23, 시사IN)



이 책의 내용보다 더 궁금했던 것


사실 이 책을 읽기는 굉장히 어려웠다. 나름 2000년을 전후해 대학에서 '돌과 빠이'를

쥐었던 데다가 '진보신당의 (페이퍼)당원'이 내 정체성 중의 큰 부분이라 생각하는 '좌파'로서,

이 책에서 다루는 사회/경제민주화, 교육과 남북 문제, 권력 등의 내용은 내게는 너무

'상식'적인 내용이었던 거다. 진부하고 심심했다.


꾸역꾸역 읽어나가며 다른 곳에 관심이 쏠렸다. 왜 이 책일까. 왜 갑자기 이 책이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된 것일까. 대담이란 형식의 특성상 정식화하고 나면 몇 페이지에 불과한

팜플렛 밖에 안 될 내용인데, 딱히 새로운 발상이나 아이디어도 없는데, 이런 정치 서적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란 쉽지 않은데, 대체 왜 사람들은 갑자기 '진보집권플랜'을 집어들었을까.


몇가지 음흉한 음모론이 있을 수 있다. 노회찬의 사상이 섹시하다며 그를 문화적으로

소비하던 이들에게 잘 생기고 젠틀하며 사상도 섹시한 조국 교수는 가히 팬덤을 몰고 올만한

인물이다. (이미 오래전부터 학교에서도 그랬으니까 새삼스럽지도 않다.) 때론 경악스러운

트렌드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와아~ 하며 우르르 달려가는, 최근 '정의란 무엇인가' 따위

책들에 달려간 새삼스럽고 집단주의적인 구매 성향의 일환일지도. 너무 시니컬한가.



'진보'정권의 집권을 위한 공부 열풍

조금은 희망적이고 싶다. 사람들이 노무현을 거치면서, 준비되지 않은 집권이 결국

그를 죽이고 우리 모두를 질곡에 몰았음을 어렴풋이나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고 믿는다.

기적이나 요행처럼 대통령 하나 바뀌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저 구습에 대한

부정이나 분노만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고. 그리고 우리 모두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고.


새로운 비전과 플랜이 필요한 거다. 뽀록구도 실력이라지만 그런 거 금방 바닥이 드러나고

마는 거니까, 다행히도 이제는 '진보'라 자처한다 하여 '빨갱이'로 등식화되는 지경은

벗어난 거 같으니까 좀더 본격적이고 시끄럽게 이야기를 할 때가 온 거 같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국과 오연호가 말을 주고 받은 이 기록은 '진보'를 위한 최소한의 상식선,

최소한의 공유 가치를 품고 있으니 여기서부터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실 진짜 리뷰는 여기부터.


그렇다. 이 책은 '시작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교과서같은 이야기만 있는 듯

보이면서도 현실정치에 적용이 가능해보이는 수준의 정책적 구상과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제언들이 들어있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이 책은, 조국 버전의 '진보'와 조국

버전의 '집권플랜'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그건 또다시 민주당 위주의 일치단결,

한나라당 말고 될놈 찍자는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불러내기 십상이란 점이다.


조국의 통큰 '진보'는 누구인가

그는 계속해서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칭해 민주정권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그리고

현재의 야권을 '개혁적/진보적 자유주의' 세력과 '사회(민주)주의' 세력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고 있지만, 그런 전제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 그 두 정권을 두고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적 재편이 급격히 이루어진 시기라 평하기도 하고, 현재의 야권 중 민주당의

적잖은 의원은 수구/보수와 별반 다르지 않은 DNA를 갖고 있다 평해지기도 하니까.


게다가 그의 입장 중에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들도 적잖이 보인다. 한미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 일반에 대한 그의 긍정적인 입장이나, '친미'와 '반미'를 넘어선 '용미'를

하자는 그의 그럴듯하지만 모호한 입장-이미 외교학과 하영선 교수가 익히 말해온

개념이지만 역시 알맹이를 알 수 없는- 따위가 그렇다. 그리고 북한의 3대세습이나

인권 문제에 대해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것도 다른 '진보'와는 균열을 그을 거 같다.


'진보'의 가치를 어떤 정치세력에게 의지할 것인가의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집권, 정권을

장악하는 행위 자체가 정당을 기본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했기에

수구/보수의 집권기라고 말하듯 특정 정당이 집권해야 '진보'가 집권했다고 말할 수

있는 거다. 내가 조국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그거다. 현재의 민주당이 집권하면 진보가

집권한 건가. 민주당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대통령 김대중과 대통령 노무현을

'진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이다.


조국 버전 '진보집권플랜'의 한계

물론 조국은 이 책에서 이야기한 여러 이슈에 대한 진보적이고 전향적인 입장을 밝히는

정치세력이 집권하도록 대중이 강제할 수 있다고 말할 거다. 현재의 민주당은 부족함이

많지만 나름 '복지'니 '무상급식'이니 좌향좌하는 기색도 있으니 지켜보자고 말할지도

모르고 연정의 가능성을 이야기할지 모른다. 이 책에서 제기된 진보적인 의제들을 받아서

어쨌든 다음 정권에선 '진보'가 집권하자는 게 그의 취지이고 충정이라는 건 이해한다.


그렇지만, 현실 정치에서 돌아가는 판세는 이미 (당연하게도) 이 책에서 언급된 교과서적인

모범답안을 뛰어넘은 것 같다. 그는 고작 두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으로 일반론 차원에서

언급하고 만 '복지를 위한 증세' 부분에 대해 지금 얼마나 많은 논란이 일고 지향이 갈라지고

있는지만 봐도 그렇다. 그밖에 해외파병이나 다문화사회에 대한 원칙적인 답변도 막상 현실에

닥쳐 결정을 해야 할 시기에는 크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이야기다.


책의 말미에는 굉장히 긍정적이고 희망차게 이야기했지만, 과연 그럴까. 지금의 민주당이

보여주는 노선, 행태, 리더십을 진보 쪽에 가깝게 끌어갈 수 있을까. 그의 표현을 빌어 개혁

담당 민주당과 진보 담당 소수 정당들이 서로 이해를 조율하여 하나의 진영으로 단결할 수

있을까. 그리고 무엇보다, '진보가 밥먹여준다'는 걸 보여주고 '밥의 품격'을 논하는 게

사람들의 표로 되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기도 하다. 그나마 노무현의 정책 이상으로

진보적 가치에 접근한 적이 없는 나라에서 이 책의 진보정책 구상들이 실현될 수 있을까. 
 

'반MB' 명분 하의 진보개혁 진영의 소통합 결과는.

결국 우려스러운 지점은 그거다. 이 책의 온갖 장점과 '진보'정책 일반의 지향을 세워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전파하는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보집권플랜이 결국

지극히 현실정치적인 차원에서 '반MB'로 뭉치게 되는, 혹은 뭉쳐야 한다는 절박하고

긴급한 요청으로 수렴되는 건 아닐까. 그의 '통큰' 진보는 MB와 한나라당으로 대변되는

'수구/보수'를 뺀 여집합과 같기에, 쉽게 말해 한나라당 말고 될 놈, 민주당 찍으란

이야기로 돌아가는 건 아닐지 우려스럽다.


조국도 그런 걸 원하는 건 아니리라고 생각한다. 2012년이던, 2017년이던, 언제가 되었건

진보진영이 집권했을 때 제대로 해서 더이상 후퇴하지 않는 단단한 기반을 만들자는

게 그의 반복된 주장이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잉대표되고 승자독식하는 한국의

선거제도에 대해서도 깊이있는 통찰과 제안이 있어야 했지 싶다. 그리고 '진보'라는

단어를 그렇게 느슨하고 통크게 써서 '진보/보수'의 구도로 한국 정치를 보는 것보다

'(진보)/중도/보수'의 구도로 읽는 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그의 '진보집권플랜'은, 그래서 시작점이다. 여기로부터 논의가 만발해서 다양한 집권플랜이

짜이고 더욱 가다듬어지도록 맨처음 부어진 마중물의 역할이라면 부족함은 없어보인다.







파란 지붕 아래 살고 계신 G님,


G20 마치고 모쪼록 미끄럼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천안함 사건을 정략적으로 이용하기에 골몰해서 객관적인 증거조차 부실한데 남북대결을 조장한 점,

민간인은 물론이고 여당 정치인까지 사찰하더니 이제는 범죄조직처럼 대포폰까지 동원한 점,

UAE에 원전 반값에 후려쳐서 들이밀고는 이 나라 군인들을 용병으로 끼워판 점,

한미FTA 협상에서 자동차만 내준다더니 은근슬쩍 쇠고기까지 내주려 하는 점,

국가안보를 포기했다던 전정권들에서조차 반대했던 124층 제2롯데월드를 순식간에 허용해준 점,

동네 구석구석 자리한 SSM문제로 지역 상권이 무너지지만 기껏 목도리 하나로 입씻으려 하는 점,

정권의 나팔수 KBS 수신료 인상시켜서 조중동의 종편채널 배불려주려고 야금야금 진행중인 점,

복지의 기본틀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나라에서 부자들을 위한 감세정책만 펼치고 있는 점,

모범적이던 인권위 파행으로 몰아넣는 등 강부자, 고소영 식의 코드인사로 문제를 일으킨 점,

견찰, 떡찰을 동원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과 노골적 비난을 통해 자살을 교사한 점,

세계 어느 나라보다 종교간 불화가 없던 나라에서 노골적인 기독교 편향을 드러내어 갈등을 조장한 점,

국민들이 원하면 안 하겠다더니 4대강이 결국 수심6미터 이상의 대운하로 변신중인 점,

용산에서 타죽어간 철거민들의 눈물은 나몰라라 부동산거품 키우기에 혈안인 점,

노사협상 테이블에 경찰이 들이닥쳐 급기야 노측 대표가 분신까지 시도하게 사주한 점,

반값 등록금 따위 대선공약은 고사하고 비리사학 부활시키고 비정규직만 양산하는 점..


여기저기 G덫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친구분들과 사진 찍으실 때는 모쪼록 '기무치' 대신 '김치'라고 해주시기 바라며,

친구분들께 각 나라 언어로 '미끄럼주의'가 무언지도 꼭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더, 옆의 미키마우스와 너무 친한 척 하다가 다른 큰 나라 쥐들에게 단체로 다구리당하는

불상사는 피하시길,



P.S. 님의 죄목에 더 추가될 굵직굵직할 항목이 뭐가 있을까요. 워낙 많은 일들이 순식간에 벌어져 놓은지라

하나하나 헤아리기도 쉽지 않네요.


'2010 세계대백제전'을 준비중인 안희정 충남도지사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다. 대백제전이라니,

지자체들이
너도나도 하나씩 들고 나오는 무분별한 지역 행사 중의 하나는 아닐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출발해

부여에 
도착했다. 최근 성남시가 재정 악화로 모라토리엄 선언을 했듯 그간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유치하고

남발했던
지역 행사들도 상당수 지지부진한 채 사라져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상황, '대백제전'은 부디 그런

'나쁜 예'가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취재 전에 '대백제전', '안희정'에 대해 미리 검색해보고 조사하는 것은 필수, 여러 정보 중에서도 최근

시사지에서
봤던 기사 한 꼭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김종필 전 총리가 기획해 심대평 지사 시절 시작했고 올해 축제를 앞두고 공사가 완료되었다. 이완구

전 지사는
이 축제를 국제 행사로 키워놓았고 안희정 지사가 마무리를 하게 된 것이다."

"
안희정이 백제에 빠진 까닭(시사IN, 151호)".

라는 내용이 있을 만큼 오랜 준비 기간을 거친 세계대백제전, 안희정 지사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2010 세계대백제전이 펼쳐질 부여의 '백제문화단지', 그 중에서도 고대 국가의 궁궐을 최초로 복원했다는

부여궁(사비궁)과 백제금동대향로가 발굴된 능사를 복원한 공간을 안희정 지사와 함께 돌아보며 '대백제전'에

대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눠보기 전,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4000여 억원의 공사비가 투입되어 330만㎡

(100만 평)
대지에 건립된 아시아 최대의 역사 테마파크라는 백제문화단지, 1994년에서부터 근 20년 걸려

지어진 셈이다.


아시아 최대니 뭐니, 그런 거창하고 알맹이없는 수사보다, 무엇보다 놀랐던 사실 하나는 세계대백제전은 기껏

몇년 된 다른 지자체 행사와는 달리 올해로 57회를 맞는 연원깊은 행사라는 것. 일제시기 낙화암에서 나라잃은

백성의 비애를 달래던 부여/공주 지역행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안희정 지사는 그런 역사적 연원을 강조하며

이 행사가 여느 지자체 주관의 행사들과는 다르게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성원과 지지가 있음을 강조했다.

사비궁에 들어서며 설명을 듣고 있는 안희정 지사. 그는 백제 문화와 역사가 그저 피상적인 암기와 이해에

머물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사실 '백제'라는 고대 국가의 이름이야 너무도 익숙하지만 그에 걸맞는 이미지나

깊이있는 지식이 있었던가. 북한과 남한이 각각 국가 정통성의 연원으로 '고구려'와 '신라'를 상대적으로

부각하던 사이, 1400년 전의 이 화려한 고대국가는 점점 그 흔적을 잃어가고 있었던 거다.

그런 점에서 세계대백제전을 통해 잊혀졌던 역사를 다시금 기억해내고, 재구성해내어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의

역사문화적 저력을 재발견하려는 것이 대백제전의 목적이라 한다. 외국에 나갔을 때 고작 삼성 반도체, 현대

자동차 따위 최근의 공산품 제조능력만으로 식별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적 저력과 성과를 인정받아

"나 자신의 한국인으로서의 품격이 존중받길 바랍니다"라는 게 안희정 지사의 바람이다.


들으면서 꽤나 거창한, 그렇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기껏해야 '지구촌 유지'의 일원이

되었음에 천박한 황금이빨을 드러내며 으스대기 바쁜 게 지금 한국의 문화적 소양이랄까, 수준인 터다.

그에 더해 필요한 건 문화적 자존감과 정체성의 풍요로움. 백제는 분명 그 중요한 수원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되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에도 '담이불루 화이불치'라고,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백제문화의 정수를 찬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에 잘 살려내는 건 우리 후손들의 몫.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한 것으로, 아무런 잔존 건물이나 흔적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꽤나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보인다. 백제와 영향을 주고 받았던 수, 당, 남송은 물론 왜의 당대 자취를

추적하고 고증을 거치면서 탄생한 궁전이지만 당연히 원래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을 거다.

역사도 마찬가지, 지금 우리가 불러내는 '백제'의 기억이란 지금 이시대의 요구와 필요성에 의해 제약받을

거다. 당장 낙화암 인근에서 대백제전 기간에 벌어진다는 '수상공연'이 4대강 정세와 맞물려 미묘한 파장을

낳고 있는 상황이니 말이다.

안희정 지사도 그런 부분은 충분히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한국의 토담 문화가 벽돌이나 석재를 위주로 한

여타 문화에 비해 시간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금세 지워지기 쉬우나, 가능한 한 기록과 보전을 통한 역사문화의

계승은 꼭 필요하다는 것. 20세기식의 민족주의 혹은 국수주의를 극복하며, 동시에 현시대의 정치적 풍파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사비궁을 돌아보고 점심까지 함께 하며 좀더 심도 있는 질문들을 나눴다. 내가 했던 첫 질문은, 대백제전을

이렇게
커다란 규모로 준비하고 있는데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 건지. 백제문화, 조금 좁혀 대백제전을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키워드를 제시해 준다면 무엇인지
였다.


안희정 지사의 답.

백제의 키워드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대백제전의 키워드는 첫 번째로 역사무대를 소재로 한 지역의 축제이고, 두 번째로는 백제의 역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 자체가 이번의 가장 큰 목표이다.

해상왕국으로서의 백제, 아시아권 질서내에서의 백제, 불교문화의 중심으로서의 백제, 향후 대백제전이 어떠한 주제의 컨셉을 가지고 볼것이냐가 앞으로 개발되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역사문화축제라고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은 국가중심의 역사로부터 땅의 사람의 역사에 대한 문화에 대한 관점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국가의 역사로부터 백제의 역사는 있지만 한반도 어느 한 지역을 차지했던 이 땅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체계적으로 그 역사와 문화 속에서 오늘과 내일을 살아갔으면 좋겠다.

백제문화제의 초창기 55년, 56년 백제문화가 열렸던 초반기에는 국가의 패망을 애석해하는 유민의 심정으로 연민의 마음으로 행사를 치루었다면 올해 세계대백제전은 이 지역사로서의 백제의 지역역사에 대한 주목이 첫 번째 컨셉이고 역사에 대한 인식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온조 이야기를 주제로 한 사마(왕) 이야기, 사비미르 (부여의 용) 의자왕을 주제로 한 수상공연과 삼국시대의 궁터, 백제의 궁터 재현단지가 이번 축제기간에 주목받는 컨텐츠 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사비궁과 능사를 둘러보던 옷차림은 참 편안했다. 등산객들이 흔히 쓰는 편한 모자, 그리고 한 손에는

플라스틱 부채를 쥔 채 캐주얼 차림이었다. 그의 말투 역시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맛이 느껴지는, 그리고

무엇보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정성과 열정이 전해지게 만드는 그런 느낌.

그리고 두번째 질문, 외국인 관광객을 20만명으로 잡고 있었는데 이들을 유치하기 위한 구체적인

복안이
준비되어 있는 건지. 주로 어떤 국가의 관광객이 타겟이 될지.


안희정 지사의 대답.

20만 외국인 관광객 중에서 대다수는 일본인 관광객이 차지할 것이다. 주미대사가 열심히 홍보대사 역할을 해주실 것이다. 샤프 사령관등 주한미군 가족들이 백제역사 축제에 많이 참여를 할 것이고 한국에 살고 있는 많은 미국인들의 관광도 예상하고 있다.

일반 기업인들도 한국 내에 들어와 있는 많은 외국인 바이어들을 실질적으로  대접을 잘하고 싶다면 백제재현단지 문화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1400년 전 패망했던 백제유민의 심정으로 역사를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이 한반도가 아시아의 질서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우리의 조상들이 어떠한 생활반경을 가졌는지를 주목해 본다면 아시아 평화와 질서를 만드는데 상당한 기여를 할 것이라고 본다.


안희정 지사는 2010 세계대백제전이 가진 커다란 의미를 강조하면서도, 무엇보다 사람들이 함께 즐기며

또다시 이 시대의 기록을 쌓고 추억을 만들어가려면 재미있고 내실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함께 강조했다. 그가 가장 자신있게 추천하는 공연은 바로 '사비미르 수상공연'. 꼭 한번 다시 와서 1400년 전

백제의 문화와 분위기를 흠뻑 즐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백제전 홈페이지 : www.baekje.org/html/kr )



덧댐. 백제문화전과는 상관없이, 안희정 지사에게 궁금한 점 하나가 있어 트윗 친구를 빌어 질문을 했다.

안희정 지사(@steelroot)는 평소 활발한 트윗을 하는 걸로 유명한데 요새 트윗 세계와 바깥 세계와의

온도차가 심하게 나는 건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지. 대체 왜 그럴까, 하고. 대답이 궁금하신 분은 그에게

다시 물어보셔도 좋을 듯.




 


선거 후 말이 많았다. 오세훈이 강남통합구청장이라느니, MB의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느니, 다음 검색어 1위가

'레임덕'이라느니. 그리고 선거 전 '백욕이 불여일표'라느니 등으로 투표를 독려했던 MB에 대한 불만집단들은

나름의 성과로 조금은 안심하고 조금은 만족한 듯 보인다.


그 와중, 한명숙이 당선되지 못한 걸 두고 진보신당 노회찬이 왜 단일화(라고 쓰고 '투항'이라 읽는다)하지

않았는지 욕설과 불만이 들끓는다. 말인즉슨 노회찬이 완주한 때문에 한명숙이 석패하고 말았다는 거다.

솔직히 난 민주당이 MB의 대안이라 생각지 않는다. 민주당은 2인자 놀이 중이다. 민주당의 프레임, 정책,

마인드나 한나라당의 프레임, 정책, 마인드는 사실 오십보 백보다.


민주당이 이번 선거에서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를 놓쳐서 다행이라 생각한다. 2인자 놀이중이지만 (엄연히)

거대 기득권집단인 그들이 '진보'라는 탈을 쓰고 세력을 회복했다 치자. MB에 질려버린 사람들의 열망이

모아지고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고 싶은 사람들의 소망이 모아져서, 그들이 막말로 차기 대선에서 수권했다 치자.


그러면, 뭔가 바뀔까. 김대중, 노무현. 분명 절차적 민주주의에 있어서 적잖은 발전이 있었지만, 또한 그게

그네들의 한계였다. 절차가 완비되고 나면, 혹은 절차를 완비하기 위한 마인드가 무엇인지의 문제. 내용상의

민주주의,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위한 민주주의'라는 지향이 없이는 방황하거나, 회귀한다.


한명숙, 미군기지를 반대하는 대추리 주민들의 시위를 경찰력도 아닌 군인들이 투입되어 진압했을 때 아무런

유감 표명도 없이 적법했다 강변했던 사람이다. 그게 민주당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적대적 공범자'들이다.

그들은 같은 기득권을 공유하는 풀 내에서, 실제 생활과는 동떨어진 말싸움으로 서로를 차별화하며-대개 그건

불분명하기 짝이 없어 언제든 당을 옮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지만-국민을 기만한다.


그리고 남는 건 사람들의 회의. 정치는 나와 관계없어. 누가 되나 똑같애. 바꿔봐야 똑같더라. 정치하는 놈들은.

욕심으로야 '진보X당'은 그렇지 않아, 아직 우린 제대로 된 대안 정당을 만나지 못해 그래, 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까지는 무리일 듯 하고, 최소한 그렇다. 민주당을 뽑아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 얼마나 바뀔까.


좀더 까놓고 말해서, 김대중과 노무현 치하에서는 행복했나.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나. 물론 정치적인 면에서

좀더 성숙된 민주주의로 진전했다. 그건 맞지만, 거기서 실제 생활에까지 파급되지 못하는 민주주의였다. 그건

그들이 생각하고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한계이자, 우리 사회가 공유하고 그려내는 '민주주의'의 한계.


그 와중, 이명박은 변하지 않는다. 벌써 프레임이 조작되고 있다. 강남통합구청장 오세훈은 (조선일보에 따르면)

위기를 딛고 일어선 차차기 대선후보이자 유례없는 재선 시장이 되었다. 기실 조중동 언론에서 이토록 엄살을

피우며 여권을 압박하는 건, 차기 정권을 자기네 입맛에 맞도록, 고분고분한 사람으로 들이기 위한 엄포용.

그리고 이명박은 '여론을 겸허히 수용하며 경제에만 몰두하겠다' 한다. 소나기만 살짝 피하고 다시 '불도저'같은

추진력으로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줄 알았더니 그런 것도 아니다. 자, 선거끝났으니 이제 셧업유어마우스.

귀에 삽박았다.


깝깝한 이야기다. 깝깝하고 민감하고 편향된 이야기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정말 궁금하다.

민주당이 내세운 '노무현 정신'이란 게 포인트가 뭔지, 예컨대 한명숙이 서울시장으로 당선되었을 때 뭐가

얼마나 어떻게 바뀔지, 그리고 '민주당 아니면 한나라당'이라는 프레임에 갇힌 현재의 정치지형이 언제쯤이나

좀더 열린 지형으로 바뀔지.





점심시간, 어제 눈여겨 봐두었던 봉은사 앞의 현수막 앞에 섰다.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한참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에 몰아넣었던 검찰의 강압수사에 대한 공분이 일던 무렵에도

봉은사 앞에는 현수막이 걸렸었다.

"대한민국 검찰의 출입을 금합니다."


종교가 이 땅을 밟고 섰지 공중부양을 하는 게 아닌 바에야, 이런 '현실 개입'은 필요하지 않을까.

법정 스님이 '무소유'를 이야기하며 청빈하고 정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분이 4대강 사업에 반대하고 지천으로 벌어지는 토목사업에 반대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봉은사 정문 앞에는 뜬금없는 대자보가 나붙었다. 대학가에도 다시 대자보 문화가 일고 있다더니, 이젠 절에도

대자보가 붙어야 한다. 원래 대자보는 문화혁명기 중국에서 잘 활용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억눌렸고 표현의

욕구가 가장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표출된 수단으로 읽을 수 있을 거다. 세련된 방송, 지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어떻게든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고 싶을 때.

A4용지에 커다란 폰트로 가로뽑기를 해서는, 전지 한장에 여덟장 정도로 붙여넣는 게 대학가의 대자보 기본형태.

봉은사 앞에는 전지 한장에 직접 출력해 낸 '일독을 청합니다'라는 글. 정말, 봉은사에 외압을 넣고 종교에

정치적 입김을 불어넣는 사람들, 일독을 청합니다.

'존경하는 총무원장님'도 한번 봐 주시길. 읽히기 위해 벌려놓아진 글이니만치.





뭔가 밍숭맹숭한 하루가 또 지난다. 

출근길에 몇 장 넘긴 '자유죽음'의 몇몇 대목이 와닿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거나, 스스로의 의지로 회사를

그만두거나, 결국은 그 사람의 선택이자 권리의 문제. 최진영도, 최진실도, 노무현도, 갑남을녀도, 그(녀)들의

삶을 위한 스스로의 선택. 그들이 수행해야 할 기능-밥벌이, 재생산, 부양 따위-을 안한다며 구박할 순 없다.


게다가 월요일, 다소 지치고 질려버린 채 시작한 업무들은 '돈과 시간의 등가교환'. 친구는 "하고 있는 일이

개인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생각할 때 어케 할지"를 물어왔고, 자신의 시간을 돈받고 파는 건데 뭘 바라냐고,

혹여 배우는 건 원플러스원 이라고 답해줬다. 배우는 게 있음 땡큐고, 없어도 뭐랄 수는 없는 거고.


조그마한 창으로 햇살이 비껴내리는 살짝 까뭇까뭇한 까페에, 푹신한 쇼파에 앉아서 하루종일 책이나 읽음

좋겠다. 펜 하나 갖고 맘에 드는 구절 밑줄쳐 가면서, 가끔은 무릎위에 받쳐둔 베개를 하릴없이 꽉 안아보기도

하면서, 게름뱅이짓이나 잔뜩 했으면 좋겠다.






청남대에서 채 못다했던 이야기들, 그 중 하나는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 이야기다. 아직 못 돌아본 코스도 꽤나

있어서 조만간 한번 다시 가봐야겠다고 다짐중이기도 하다.

이렇게 얼기설기 쪼아올린 봉황이 마당에서 깃을 드리우고 있는 청남대. 대통령의 별장이니, 대통령이 쓰던

보트, 대통령이 쓰던 가구, 대통령이 쓰던 숟가락, 대통령이 쓰던 티비, 당연히 대통령이 쓰던 화장실도 있다.

그런 것들이 있는데도 노무현 전대통령이 충북도청에 소유권을 위임하고 민간에 개방된 후 줄곧 적자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 (전적으로 내 생각이지만) 저렇게 다섯 명을 합성해 놓는 역사의식과 '입장'의 결여. 저 사진은

그저 재임순서로 다섯명을 늘어세웠을 뿐 아무런 메시지도, 의미도 담지 못한다. 정치적 논란이나 '편향'을

우려해서였겠지만, 그래서 남는 의미는 단 하나. 29만원 있다는 살인마나 벼랑에서 떠밀린 정치적 살인의

희생자나, 그냥 '대통령'으로 마주하게 될 뿐이다. 이넘이나 저넘이나 다 똑같애, 정치인이 다 그렇지, 따위

거침없이 사방에 내질러지는 삿대질을 부를 뿐이다.


그리고, 저렇게 다섯 명이 화목하게 서 있는 모습이 현실에서 가능할 법한 이야기인가. 청남대에서 일부

대통령의 후광을 걷어내야 하지 않을까. (기억을 지워버리자는 게 아니라, 무작정 '대통령'이라고 드리워진

후광을 떼내어 버리잔 이야기다.) 차라리 현실 정치에 대한 감을 조금은 더 익힐 수 있는 배움의 장으로

활용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의 적자 이유는, 본관에서의 내부 촬영 금지 아닐까. 청남대 본관에 실내화신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보이는 게 여기서 찍었다는 드라마 관련 사진들이다. 드라마는 되는데 왜 일반인은 안 된다는 건지.
 
대통령이 청남대로 쉬러 오면 몸을 뉘어서 쉬었을 그 침대. 대통령의 침대는 왜 사진찍으면 안 되는 건데, 하며

맘대로 슬쩍 셔터를 눌렀다.

대통령의 집무실. 저 스탠드는 왠지 낯익은 게 울집에 있는 내 스탠드와 같은 종류 같다. 저 옷걸이는 왠지 예전

외할아버지댁에 있던 그런 퀴퀴하고 낡은 것과 비슷해 보이고. 아, 그런 건가. 무려 대통령이 쓰는 일상용품이

일반인들의 그것과 같거나 별반 차이가 없으면 '격'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와서 보는 거야 어쩔 수 없지만

사진으로 증거를 남기게 하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짠~ 여기가 대통령의 화장실. 세상에, 비데도 없고, 금칠도 안 된 뽀오얀 도자기색 그대로인 데다가, 작다.

사진이 많이 어둡긴 하지만 다를 게 없구나 참. 슬쩍 고개를 디밀었다가, 이내 빼버렸다. 뭔가 대단한 걸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역시나 별 거 없는 거다. 다만 남는 건 상상의 영역, 저기에 바지 내리고 앉아서

볼일을 보았을 전두환, 노태우를 위시한 전임 대통령들의 모습. 더러는 술 먹고서 변기 붙잡고 토했을지도.

가끔 국무에 시달리거나 혹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시달린 때에는 '피똥 쌌을지도' 모를 일이다.

2층짜리 건물인 청남대 본관에 엘레베이터가 생긴 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라 한다. 발을 절뚝거리던

그에게 꼭 필요한 거였으리라.

테이블과 의자가 놓인 방, 쇼파와 골드스타 텔레비전이 놓인 방, 그 다른 한쪽에는 한식방도 있었다.

다른 나라들의 옛 왕궁이니 대통령궁이니 이런 데도 사진 촬영은 다 허가하던데, 굳이 사진 촬영을 금지한 건

왜일까. 그들의 생활 소품이 찍히고, 화장실이 찍혀서 그로부터 상상력이 뻗쳐나올 걸 저어한 걸까. 그들의

'품격'과 '위엄'에 손상이 가는 일이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쎄. 그들이 무슨 김태히나 송혜규도 아니고

이슬만 먹고 살 리도 없고 화장실도 안 갈리 없는 건데.


그런 '인간적인' 모습을 노출시켜서 격이 떨어지리라 생각할 만큼 그들이 높은 곳에 있다고 여겼던 거라면 더욱

심각한 오해다. 드라마 촬영은 허가해 놓고, 그런 스틸 사진으로 본관 1층을 쫙 도배해놓은 마당에 일반인들의

촬영은 막으니 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거다.

청남대 전 지역은 산나물 채취금지구역, 어쩌면 이렇게 잘 보전된 채 손을 안 탄 지역에 산삼이라도 한 뿌리
 
자라고 있는 건 아닐까.

기념관에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손바닥 자국. 손금을 볼 줄 안다는 사람은 저 손금 중 생명선이 2009년께

끊겨 있는지 한번 봐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청남대의 화장실 표시. 일반인들을 위한 화장실이나 대통령을 위한 화장실이나 변기는 똑같구나, 왠지 안심한

마음으로 맘껏 사용할 수 있었던 화장실 변기.

청남대 관람안내. 혹시 다음 가실 분을 위한 자상한 배려.





청남대, [충북팸투어-청남대] 김대중과 노무현의 '아바타'가 그곳에 있다.에 이어 나머지 대통령들의 이미지도

가득 담아 올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전두환 대통령 때 지어진 곳이라 그런지 그 이전 대통령들의 체취랄까

흔적은 남아있지 않지만, 그 이후로도 워낙 (여러 의미로) '씨알굵은' 대통령들이 있으니 아쉽진 않다.

참 씨알 굵은 양반. 산책로에서 제일 먼저 만났던 분인데, 이후 제각기의 특징을 잡고 있는 동상의 모습을

되짚어 보니까 저 자세는 어쩌면 구보와 각잡힌 걸음새에 익숙한 퇴역군인의 특성을 잘 포착한 게 아닐까

싶었다. 찰져보이는 몸뚱이에 완강하고 의지력있어 뵈는 얼굴까지. 딱 그사람이다.

그의 뒷모습. 맨들맨들한 동상 뒷머리에 흔히 떨어져 있을 법한 새똥 하나 없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다음 타자는 골프채를 시원하게 휘두르는 노태우 전 대통령. 그가 대통령을 하던 시절 나는 삐라를 모았었다.

그 천연색깔 알록달록한 그림과 낯선 글씨체가 신기하고 자극적이었다. 똥오줌 못 가리던 어린 나이인지라

아마 사람들이 회피하고 어쩌면 무서워하던 삐라를 한장 두장 모아가며 묘한 쾌감을 느꼈던 거 같다. 어느날

부모님은 우표수집책 속에 우표처럼 꼽혀있던 색색의 삐라를 보고는 다 태워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꼬리는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원래 그렇게 생긴 걸까 아님 이 동상의 작가가 잘못 만든 걸까. 본인이나

유족으로부터 초상권에 대한 합의를 받고 최대한 실제와 똑같이 만들어낸 작품들이라 했었다. 사실 그가

재임중이던 시절, 난 최루탄 냄새 맡으며 어린이회관에 '우뢰매' 따위 보러다니던 꼬맹이였다. 그의 얼굴을

티비에서 본 기억이 없다. 입꼬리는 더더욱 기억에 있을 리 없다. 별명이...물태우였다던가.

김영삼 전 대통령. 요새도 참 말 많이 하던데, 다행인지 우리 나라 대통령 중엔 아직까지 퇴임 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전례가 없었다. 끝까지 무사하게 피 안 묻히고 구정물 안 튀긴 대통령이 없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조깅을 워낙 좋아했던 대통령답게 흥건히 브론즈색 물들이고도 또 뛴다. 무슨 포레스트 검프도 아니고.

그의 봉긋한 엉덩이를 함께 보며 친구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다. 한미 정상회담 기간 중 클린턴이 조깅을

제안해왔댄다. 나란히 달리며 한미관계를 논해야 할 그 찬스에서, 그는 죽어라고 달려선 클린턴을 멀찍이

따돌리고 이겼다며 좋아했단다. 그러고 보니 포레스트 검프랑 비슷한 면이 적잖다.

"클린턴도 조깅으론 날 못 이겨~!" 좋댄다.

그리고 책 읽는 김대중과 자전거 타는 노무현을 만나고, 초봄 기운이 드리워진 청평호에 시선을 박았다.

청남대엔 군사시설도 함께 있었다고 하더니, 설마 그때부터 화장실 옆에 저렇게 배치되었던 건 아닐 거다.

여자는 왼쪽으로, 남자는 오른쪽으로, 그리고 볼일급한 꼬맹이는 가운데쪽으로.

대통령 광장에 들어서는 입구. 뒷 벽면에는 각국의 행정수반이 집무를 보는 관청이 있다. 한국의 청와대,

프랑스의 엘리제궁, 미국의 백악관, 뭐 그런 것들.

총 9명의 대통령. (현 대통령을 제하면) 16대 대통령까지 16번의 임기가 지났는데 인물은 9명이다. 뭐 재임,

중임이 항상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지만, 좀더 옵션이 많았으면 조금은 더 맘에 드는 대통령이 많았을지도

모르겠어서 아쉬울 따름.

옆구리에 '대한민국 헌법'을 끼고 있는 대통령,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다. 그의 치하에서 만들어진 헌법이긴

해도 그때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의미는 지금과는 또 달랐을 거다. 당장 국토의 공공성이라거나

수도로서의 서울이 갖는 지위 따위가 해석을 통해 바뀌어 나가고 있으니까 말이다.
장면 내각은 내각제여서 대통령 광장에 끼지 못했나 보다. 바로 윤보선 대통령으로 스킵. 무슨 일을 했는지,

그가 어떤 대통령감인지 알아보고 평가하기엔 그의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 사람. 근데, 그 사람하고 진짜 닮았다. 그 사람이 그 사람 흉내낸다고 선그라스 끼고 돌아다니고 그런

모습을 봤을 때도 느꼈지만, 그 사람은 정말 그 사람 닮으려고 꽤나 노력하는 중인 거 같다. 어쩌면 요새는

그 사람보다 더욱 세련되고 고도화된 수준에 올라선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 엄연한 질적 차이가 있으니

그 사람과 그 사람의 엔딩은 얼마나 닮고 또 얼마나 다르게 될까.

최규하 전 대통령. 이 분이 아마 최근의 '서거 러시' 이전 가장 가깝게 돌아가신 분이었던가. 조용하게

돌아가셨던 거 같다. 무색무취한 대통령이었던 걸까, 역시 짧았던 재임 기간 때문인지도.

아까, 군대에서 구보하는 걸음새로 각잡혀서 걷던 아자씨. 그는 여전히 살아있고, 광주의 전남도청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한 채 파시드랑 뼈대만 남겨두었으며, 가끔 그는 현실 정치에 훈수도 둔다.

노태우 전 대통령. 그런 생각도 든다. 대통령도, 국민도, 시간이 지난다고 점점 나아지라는 법은 없다.

그건 조금은 무임승차하려거나 언발에 오줌누기식 위로를 구해보려는 얕은 꾀.

IMF라는 재앙이 터진 건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시기였지만, 그게 터지지 않고 안으로만 내연해서 약자들을

사회 밖으로 튕겨내는 시스템을 만든 건 그 이후였다. 거대한 후폭풍을 불러오고 뭔가 구태의연하던 과거를

지워버려야 할 타이밍에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고도화된 모순을 만들어내버린 면도 있는 거다.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한 고용 시장, 오히려 위축되는 듯한 사회복지망, 수월성 위주의 입시 교육, 민주/반민주 따위

선언적이고 허구적인 경계선에만 자족하는 지난 시대의 비주류들..그래서 김영삼 때문에 IMF가 났다고 쳐도

-사실은 다른 원인들이 많다고 생각하지만-그 뒷수습을 그렇게 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어쨌거나, 대통령 광장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태극무늬가 있다.

대통령 동상들이 바라보는 쪽엔 뭐가 있을까, 싶어서 고개를 돌려봤다. 고개도 돌리고 카메라도 돌렸다.



충청북도 청원군에 위치한 청남대는 대통령 전용 별장이다. 대통령이 국무를 보다가 내려와 쉴 수 있는 공간,

그 정도 되려면 주위 경관이니 입지 조건도 특별해야 할 테고 옛날옛적 어느 스님의 예언 같은 것들도 구비구비

서려 있어야 하는 거다. 청남대 역시, "왕이 머물 곳"이라는 예언이 일찍이 있었다고 한다.

사실 이 곳은 더이상 대통령을 위한 곳은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충청북도에 소유권을 이양한 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니, 누구든 입장권을 사면 들어올 수 있는 문턱낮은 곳이 되었다.

최외곽으로 돌면 반나절은 산책할 법한 규모의 청남대 내부에 올 초 새로 '대통령 광장'이 생겼다고 했다.

그곳으로 가는 길, 왼쪽에 과거 골프장으로 쓰이던 풀밭을 끼고선 전직 대통령들을 만날 수 있었다. 전두환과

노태우, 김영삼을 못 본 척 지나고 나니,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마주쳤다.

이 분, 작년에 그렇게 가신 것도 모자라 요샌 묘소에 도깨비불이 횡행한다고 했다. 그런 번다한 세사 따위

모르겠다는 듯 초연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단단해 보였다. 그는 민주화 투쟁 시절 감옥에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했었다. 만델라도 그랬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골프장 잔디밭을 일부 밟은 채 국산 자전거에 올라앉아 손을 흔들어 주는 노무현 전 대통령.

그의 환한 웃음을 마주했다. 자전거를 타고, 밀짚모자를 쓰고, 그런 모습들이 워낙 친숙했던 그인지라 이런

동상이 서 있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뭐랄까, 일종의 아바타-화신-인 거다. '노무현'에 대해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미지들을 똘똘 뭉쳐 놓으면 저런 게 나올 게다. '김대중' 역시 마찬가지.

작년 5월쯤, 그의 갑작스런 서거가 몰고 온 파급력은 정말 대단했다. 마치 온나라 국민들이 이제야 그의 진가를

알았다는 듯, 지켜주겠다고, 지키겠다고 울음지었었다. 아직도 모르겠다. 인간 노무현이 아닌 대통령 노무현에

발견할 수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좀더 많은 이야기가 오가고, 그의 정책과 비전에 대한 쿨한 평가가 진행되야

하겠지만, 당장은 그렇다. 인간 노무현의 저런 소탈한 웃음은 굉장히 좋았었다.

실개천같던 산책로를 따르다가 어느 순간 대통령 광장으로 탁 트여나왔다. 미래의 대통령 동상이 놓일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그 뒤로는 역대 대통령 동상들이 쭉 늘어서 있었다. 저 '미래의 대통령' 자리에서 어떤 꼬맹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집을 넓히고 싶다 했고, 어떤 아주머니는 부정부패를 저지른 사람은 설사 남편이라

할지라도 엄벌에 처하겠노라 공약했다고 했다. 유치할 수도, 혹은 순박할 수도 있는 공약들이지만, 단상 뒤로

쭉 섰는 대통령들을 보자니 그런 '단순함' 혹은 '순박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나라는 그다지 자랑스러운 대통령을 갖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았을 때는 조금 뿌듯했다. 그런 대통령의 단상 위에는 꼬맹이들이 그와 눈높이를 맞춰

기념사진을 찍고 싶었던 듯, 흙발자국이 어지럽다. 다른 대통령들의 단상은 상대적으로 말끔한 편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역시, 여기서도 웃고 있다. 증명사진 찍듯 경직된 자세와 표정을 고수하던 이전 대통령들과

달리 생생한 표정, 생생한 제스쳐다. 그런 모습은 그의 전임 대통령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상대적으로 갖지

못했던 '젊은 모습'이었고, '비권위주의적인 모습'이었던 거다. 그게 연출되거나 의도된 이미지 메이킹이었다고

해도, 이제 그는 '권위주의와 거리가 멀었던 대통령-인간'의 대명사로 남게 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청남대의 풍수지리적 예언-"왕이 머물 곳"이라던-을 들먹거리는 건 사실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코미디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다. 근엄함과 신성성, '가오'를 일용할 양식으로 삼는 '하늘의 아들'이 아니란

이야기다. 청남대는 왕이 머문 곳이 아니라, 인간들이 스스로와 별반 다를 바 없는 인간 하나를 대표로 내세워

국가대표 공무원을 시켰던, 그 '사람'이 일하다가 와서 쉬던 곳일 뿐이다.

그가 들어올린 손이 앞선 대통령들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밀쳐내는 듯 하다. 그의 모습이 다른 전임 대통령에

비해 훨씬 커보이는 듯 하다. 가까운 건 커보이고 먼 건 작아보이는 원근법의 효과다. 그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돌아나오는 길, 이번엔 그의 뒷모습을 만났다. 느낌이 달랐다. 아까는 산책로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환대하고

맞이하러 나오는 느낌이었다면, 이번엔 뭔가 뒤도 안 돌아본 채 휑하니 사라지려는 듯한 분위기랄까. 그의

등짝을 바라보는데 살짝 울컥했다. 생전의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였음에도.

다행히도, 그의 그런 쓸쓸하고 비감한 뒷모습 옆에는 거의 쉴틈없이 사람들이 함께 서 주었다. 전두환과

노태우와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을 구경하고 지나친 사람들은 저 사진찍기 좋은 동상 옆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으려 기다리고 있었다. 생전에 그리도 만만한 대통령이었던 그는 지금도 청남대에서 딱 그만큼

만만한 전 대통령으로 기억되고 있는 듯 했다.

청남대, 이 곳은 일반에 개방된 이후부터 적자 행렬을 이어나가고 있다고 한다. 관리해야 할 시설물과 규모를

생각하면 꽤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가야 겨우 적자를 면하지 않을까 싶다. 그곳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자전거를 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있다. (그리고 거슬러 올라가건대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박정희, 최규하, 윤보선, 이승만 대통령이 있다. 입맛대로 골라갈 일이다.)




<가벼운 버전>

시사IN 독자위원회 리뷰를 마치면 늘 가곤 하던 서대문역 근처의 허름한 맥주집, 그곳에 불쑥 이해찬 전 총리가

찾아왔다. 어제 있었던 시사IN강좌 "거꾸로, 희망이다 - 시즌 2" 첫 강좌를 마치고 나서 들른 모양이다.

한쪽 테이블에서 이야기에 여념이 없던 우리들은 술렁대다가, 다이어리를 펼쳐들고 쪼르르 달려가 싸인을 받았다.

우선 나부터. "이름이 어떻게 되요?" "윤성의입니다." "성의?" "넵, 성의있게 살라고 할 때 그 성의요."

"예끼~ 자기 이름갖고 장난치면 쓰나" 하며 허허허 웃었다. 그새 꽤나 늙고 수척해 보이던 양반이 웃으니 보기 좋았다.

(사실 이 전총리의 웃음 코드란, 그 연세의 분들이 그렇듯 조금 이해가 안 갈 수 있다. 어쨌던 웃었으니 됐다.)
 

사인을 전부 받고 나서 자리에 돌아와 각자 뭐라고 써줬는지 멘트를 확인했다. 내가 "진실은 승리합니다!"라는 멘트를
 
받은 후론 전부 "꿈은 이루어집니다!"라는 멘트. 한마디했다. "무슨 월드컵이냐." 실은 머릿속으로도 잠깐 든 생각,

별★이라도 하나 그려주지 그러셨어요.




<약간 무거운 버전>

얼마전 친한 대학 선배들과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단대학생회장을 했거나 나름 학생회에 발담그고, 아니 그보다 

적절한 표현으로는 '사회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선배들, 대학생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그래서

신촌바닥에서도 스스럼없이 둥글게 서선 민중가요를 부를 수 있었겠지만. 그 자리에서 꽤나 오랜만에 이론적이랄까,

'근본적'인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교 때에는 늘 하던 이야기지만 사회 나오니 다른 사람들과는 나누기 힘든, 나눌

염도 내기 힘든 그런 이야기, 근본 모순이라느니, 주체라느니. 그리고 여느때처럼 노정된 약간의 관점차들.


좀 낯설었고, 좀 벙벙했다. 어느샌가 그런 이야기, 뭔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달까. 물론 나름의 비전과 통찰력을 제공하는 것이 이론틀과 세계관의 역할이라지만, 굳이 거시적인

그림의 디테일한 차이점을 미리부터 따지거나 왈가왈부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눈앞에 당면한 갈림길이나 급박하게

결정을 요하는 순간이 아니라면 "3KM 전방에 갈림길" 표지판을 보고 준비해도 될 텐데, 지금은 3KM는 커녕 300KM,

혹은 300광년 정도 떨어져 있지 싶어서다. 내 '호흡'이 바뀐 건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이해찬에게 사인을 요청한 사실은 조금 우스운 일이었고 겸연쩍은 일이기도 했다. 그건 노무현과 김대중의

서거를 지켜보며 착잡해하는 스스로에게 쭉 느껴왔던 감정이기도 했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 시절 그들의

정책과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에 반대하며 거리를 뛰어다녔는데, 그때만 해도 능구렁이 김대중, 가증스런

노무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시사IN 말마따나 "지난 20여년간 두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었던" 이해찬

전총리를 보니 왠지 아는 척 하고, 응원하고 싶어졌더랬다.(“민주 세력 ‘새 단결’이 김 전 대통령의 유언”)

비록 그게 인지상정이거나 고양된 감정의 발로였다손 치더라도.


그가 이루겠다는 '꿈', 그가 생각하고 지키려는 '진실'이 뭔지는 사실 김대중과 노무현, 그들의 한계에서 대충

각을 잡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이루고 나서, 한계단 올라서고 나서 그 이후에 펼쳐질 문제와 입장차에 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게 생산적이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이게 무슨 '비판적 지지'의 망령을 되살리려는 건 아니다.

이해찬은 나름의 일관된 입장과 궤적을 밟고서, 나도 나름의 입장과 짧으나마 궤적 위에 서서 사고하고 이야기하고

발전시키는 것. 그렇게 각자의 길을 따로 또 같이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故김대중대통령 추모 공식홈페이지(http://211.233.13.92/?brch=1)에 고인의 마지막 일기 중 일부가 PDF형태로

공개되었다. 생각보다 현 정권에 대해 '세게' 발언한 부분도 공개되어서 왠지 안심했다. 고인이 생전에

침묵하지 않으셨다는 게 안심이 되었고, 서거 후에도 타의에 의해 침묵당하지 않으셨다는 것 역시 안심이

되었달까.



■ 건강에 대한 언급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이고..건강도 괜찮은 편인 것이 행복이다. 불행을 세자면 한이 없고 행복을 세어도 한이 없다."(2009. 5. 2)

이렇게 건강도 괜찮으셨다는 분이 갑작스레...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충격이 크셨던 게다.


■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언급

"노 대통령도 사법처리 될 모양. 큰 불행이다. 노 대통령 개인을 위해서도, 야당을 위해서도, 같은 진보진영 대통령이었던 나를 위해서도, 불행이다. 노 대통령이 잘 대응하기를 바란다."(2009.4.18)

고인은 스스로를 노 전대통령과 함께 "진보진영 대통령"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진보'라는
것에 주어지는 운신의 폭이란 그 두 분의 서거를 돌이켜도 빤히 보이는 것 같아 답답하다.


"자고 나니 청천벽력 같은 소식-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보도. 슬프고 충격적이다. 그간 검찰이 너무도 가혹하게 수사를 했다. 노 대통령, 부인, 아들, 딸, 형, 조카사위 등 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다. 그리고 매일같이 수사기밀 발표가 금지된 법을 어기며 언론플레이를 했다. 그리고 노 대통령의 신병을 구속하느니 마느니 등 심리적 압박을 계속했다.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2009.5.23)

결국 노대통령의 자살은 강요된 거나 마찬가지다....마치 소탕작전을 하듯 공격했던 사람들, 침묵을 지키고 있는 그들.

"고 노 대통령 영결식에 아내와 같이 참석했다. 이번처럼 거국적인 애도는 일찍이 그 예가 없을 것이다. 국민의 현실에 대한 실망, 분노, 슬픔이 노 대통령의 그것과 겹친 것 같다. 앞으로도 정부가 강압일변도로 나갔다가는 큰 변을 면치 못할 것이다."(2009.5.29)


전례는 없었겠지만, 생각보다 금방 또다른 사례가 생겨나고 있습니다...그런데 전현직 대통령 중 당신의 추도사는
누가 해줄지, 누가 이렇게 진심을 담아 울어줄지...먹먹해지네요.


■ 정치적 시사점을 던지는 언급

"끝까지 건강 유지하여 지금의 3대 위기-민주주의 위기, 중소서민 경제위기, 남북문제 위기-해결을 위해 필요한 조언과 노력을 하겠다. '찬미예수 백세건강'"

야당 정치인들이 뭐라뭐라 떠들기는 하지만, 김대중 전대통령만큼 명징하게 현재의 위기상황을 정리한 사람은 없었다.
대정부 비판을 위해서 제대로 된 프레임을 마련해 주었고, 실제로 이후 야당은 이 세가지를 잘 활용하고 있다.


"용산구의 건물 철거 과정에서 단속경찰의 난폭진압으로 5인이 죽고 10여 인이 부상 입원했다. 참으로 야만적인 처사다. 이 추운 겨울에 쫓겨나는 빈민들의 처지가 너무 눈물겹다."(2009.1.20)

동계 철거는 실시하지 않는 게 상례였다는 점에서, 용산 참사는 사정을 아는 모두에게 매우 예기치 않았던 비극이었다.
빈민들의 처지가 눈물겹다고 일기에 적는 당신의 모습에서, 20대 체게바라의 감수성을 본다면 과장일까.


"역사상 모든 독재자들은 자기만은 잘 대비해서 전철을 밟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전철을 밟거나 역사의 가혹한 심판을 받는다."(2009.1.16)

지금이 독재인지 아닌지, 그걸 이론적으로 따지고 분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적인 구속감, 자유의 박탈감'이
더욱 중요한 거 아닐까. 마치 빈부차에 있어 '상대적인 박탈감'이 '절대적인 박탈감'보다 중요한 요소듯이.


"여러 네티즌들의 '다시 한 번 대통령 해달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다시 보고 싶다, 답답하다, 슬프다'는 댓글을 볼 때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 몸은 늙고 병들었지만 힘닿는 데까지 헌신, 노력하겠다."

국민이 불쌍해서 눈물이 난다...는 노 정객의 다짐. '삼김'이라 도매금으로 묶였지만 줄곧 피해자의 위치에 서있었고,
YS 대 DJ의 라이벌구도라 하지만 사실 YS만큼의 막말을 던진 적이 없는 고인. YS와 JP의 일기장엔 뭐가 적혀있을까.
그리고 우리의 MB 일기장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


■ 촛불집회 관련 언급

"(인류의 역사는 지식인이 헤게모니를 쥔 역사 같다며...)21세기 들어 전 국민이 지식을 갖게 되자 직접적으로 국정에 참가하기 시작하고 있다. 2008년의 촛불시위가 그 조짐을 말해주고 있다."

촛불시위에 대한 이런 심정적 지지, 온건한 입장을 갖기란 '노땅'의 마음가짐으론 쉽지가 않을 터다. 평생의 살아온 길이
고인의 열린 마음, 합리적인 판단을 가능케 한 것일까. 정말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 아내와의 사랑

"요즘 아내와의 사이는 우리 결혼 이래 최상이다. 나는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아내 없이는 지금 내가 있기 어려웠지만 현재도 살기 힘들 것 같다."

"하루 종일 아내와 같이 집에서 지냈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이희호 여사와의 관계가 참 돈독하셨나 보다. 둘이 있는 것이 기쁘다, 라는 표현에 담긴 애정이 잔잔하게 와닿는다.


■ 기타

"꽃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 마당의 진달래와 연대 뒷동산의 진달래가 이미 졌다.지금 우리 마당에는 영산홍과 철쭉꽃이 보기 좋게 피어 있다."

"내가 살아온 길에 미흡한 점은 있으나 후회는 없다."

"인생은 생각할수록 아름답고 역사는 앞으로 발전한다."

"나에 대해서 허위사실을 공표한 한나라당 의원에 대해서(100억 CD) 대검에서 조사한 결과 나는 아무런 관계 없다고 발표. 너무도 긴 세월동안 '용공'이니 '비자금 은닉'이니 한 것, 이번은 법적 심판 받을 것."

"가난한 사람들, 임금을 못 받은 사람들, 주지 못한 사람들, 그들에게는 설날이 큰 고통이다."



p.s. 김대중 전 대통령님, 허락을 안 받고 감히 '마지막일기' 파일을 제가 첨부하려 합니다. 널리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저작권자의 허락없이 올리오니 부디 넓은 마음으로 혜량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곳은, 평안하신지요.










내눈을바라봐 넌행복해지고

내눈을바라봐 넌건강해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웃을수있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시험합격해

내노래를불러봐 넌살도빠지고

내노래를불러봐 넌키도커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더예뻐지고

허경영을불러봐  넌잘생겨지고

아침점심저녁 허경영을세번만부르면 자연스레웃음이나올것이야

망설이지말고 right now

call me touch me with me every day every body

난너를원해 난너의전화를원해 바로지금두려워하지말고 허경영을불러봐

신나는일이생길꺼야 즐거운일이생길꺼야 행복한일이생길꺼야 놀라운일이생길꺼야


이명박에 대한 비난, 비판은 때로 환각 효과를 일으키고 또 그것을 지속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 만악의 근원이 이명박 개인인 것처럼 '상상'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용산과 같은 철거문제도,

미디어법안과 금산분리문제도, 광우병 쇠고기를 수입하겠다는 것도, 경제가 만성적인 위기 상태에 처해있는 것도,
 
쌍용차와 같은 비정규직 문제도, 삼성의 불법재산 상속이나 주식승계 문제도, 사교육 광풍도, 부동산 투기도, 

북한과의 대결 구도나 심지어 일본에 대한 외교사적 문제까지도, 그 모든 게 이명박 일개인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기 때문에 비롯한 일인 것처럼 주장된다.


똑같다. 5년전과 똑같다. 그 때도 이게 다 놈현 때문이야, 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이명박 탓이라 돌리기는 쉽다. 사실 노무현 탓이었다 돌리기도 쉬웠다. '권력'의 가시적인 상징으로, 시스템의

살아있는 징표로서, 때리기도 쉬웠고 욕하기도 쉬웠다. 눈앞에 보이니까. 깊은 생각없이 그저 모든 문제를 그의

앞으로 밀쳐두고 욕하기는 쉬웠으니까.


그렇지만 구분되어야 한다. 이명박에 대한 비판은 계속되어야 하는 게 맞지만, 이 모든 게 이명박 때문은 아니다.

사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이 자기 입으로 자인했듯, 권력을 시장으로 넘어간 지 오래, 근본적인 문제는 그나마

제도적인 감시가 가능하고 통제가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어느새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변했거나 우리 내부에

이식(혹은 자생)되어 있는 부분에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 근본적인, 그리고 치명적인 질문을 던져 볼 때라고 생각한다.


뭔가 우리가 바라던 건 '철인정치인'이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우리들의 '어질고 현명한 목자'였던 건 아닌가.

우리는 우리를 알아서 잘 다스려주고 어여삐 보살펴줄 성인군자, 혹은 시혜자, 혹은 전지전능한 왕의 재림을

기다리는 건 아닌지. 그런 부풀려진 기대가 노무현과 이명박, 그리고 죽은 노무현을 다시 불러내는 우리 안의

토양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 좌절하고, 여기는 썩었어, 희망이 없어, 라는 또다른 극단적인 자기혐오와

패배의식으로 달려가고 말이다.


이건 일종의 병리적 현상 아닐까. 사실 이명박의 한마디로 언론의 논조와 법원의 판결과 검찰의 기소, 그런

이 사회의 보수적이고 퇴행적이며 반동적인 부분들이 조종, 통제된다고 생각하기에는, 적나라한 공권력의

행사로 목숨을 부지중인 이 정권이 너무나도 허약한 게 사실인데도, 이명박만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뭔가 이상하다. 또 반대로, 이명박 자리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었으면 만사형통이었으리라 생각하는 것도

이상하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식으로 일 개인에 모든 문제점을 귀착시키는 패턴을 반복하다보면
 
나오는 게 있다. 이미 나와 버렸다. 허경영이 "건강과 행복과 웃음"을 약속했다. 허경영이 "시험합격과 다이어트 성공,

키높이깔창과 성형수술 성공"을 약속하고 나선 거다. 그는 이제, 대중의 기대와 눈높이에 맞는 신이 되겠노라

선언하고 나섰다.


기대를 한몸에 받던 노무현, 한순간에 모든 국민의 비웃음감이 되어버린 노무현, 어쨌든 당선한 경제대통령 이명박,
 
모든 사람이 증오하게 된 이명박, 또 다시 기적처럼 부활한-마치 토굴 속에서 사흘만에 부활한 그리스도처럼-

고 노무현. 이미 한국의 대통령은 신적인 존재로 취급된지 오래다. 그게 전능한 구세주던, 혹은 악신이던간에.

허경영은, 그리고 허경영의 "Call Me"란 노래는 사실 우리가 만들어낸 건지도 모른다. 선한 목자의 재림을

기다리는 양떼같이 말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영결식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아이처럼
 
울던 모습이었다. 그가 영결식 때 추도사를 하려다가 현 정부가 제지하여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최근 그가

'독재'라는 단어를 동원하며 현 정부와 각을 세웠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개인적으로는 노무현보다 김대중을 더 좋아한다. 그의 노회한 정치력, 그리고 어쨌든 그는 한국 정치판에서
말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신 나름의 민주주의와 남북관계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면서 말이다.

'김대중'이라는 정치인, 사람을 구성하는 코어, 핵심가치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는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견의 차이를 떠나.


아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홈페이지인 "사람사는 세상"(http://www.knowhow.or.kr/)에 오늘 오른 김대중 전

대통령의 뒤늦은 추도사.


"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토록 담백하고 꾸밈없는 표현이라니. 영결식 때
보였던 그의 울음이 자꾸 오버랩된다.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                       *                       *

하지 못한 추도사를 대신하여


“김대중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 영결식 당일 끝내 못한 추도사. 김 대통령님께서 그 추도사를 대신한 추모의 말씀을 3일 보내오셨습니다. 동교동에서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의 신간 추천사 형식을 통해 보내주신 추모의 메시지를 공개합니다.” <관리자 주>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도 그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동교동에서 독일 〈슈피겔〉 지와 인터뷰를 하다가 비서관으로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내 몸의 반이 무너진 것 같다.”고 했습니다. 왜 그때 내가 그런 표현을 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살아온 과거를 돌아볼 때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노 전 대통령 생전에 민주주의가 다시 위기에 처해지는 상황을 보고 아무래도 우리 둘이 나서야 할 때가 머지않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러던 차에 돌아가셨으니 그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나는 상주 측으로부터 영결식 추도사 부탁을 받고 마음속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지 못했습니다. 정부 측에서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나는 어이없기도 하고 그런 일을 하는 정부에 연민의 정을 느꼈습니다. 마음속에 간직한 추도사는 하지 못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닙니다. 영결식장에서 하지 못한 마음속의 그 추도사를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의 추천사로 대신합니다.


노무현 대통령 당신, 죽어서도 죽지 마십시오. 우리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노무현 당신이 우리 마음속에 살아서 민주주의 위기, 경제 위기, 남북관계 위기, 이 3대 위기를 헤쳐 나가는 데 힘이 되어주십시오.

당신은 저승에서, 나는 이승에서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민주주의를 지켜냅시다. 그래야 우리가 인생을 살았던 보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같이 유쾌하고 용감하고, 그리고 탁월한 식견을 가진 그런 지도자와 한 시대를 같이했던 것을 나는 아주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저승이 있는지 모르지만 저승이 있다면 거기서도 기어이 만나서 지금까지 하려다 못한 이야기를 나눕시다. 그동안 부디 저승에서라도 끝까지 국민을 지켜주십시오. 위기에 처해 있는 이 나라와 민족을 지켜주십시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소식을 접하고 우리 국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조문객이 500만에 이르렀습니다. 나는 그것이 한과 한의 결합이라고 봅니다. 노무현의 한과 국민의 한이 결합한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억울한 일을 당해 몸부림치다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우리 국민들도 억울해하고 있습니다. 나도 억울합니다. 목숨 바쳐온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으니 억울하고 분한 것입니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떻게 만든 민주주의입니까. 1980년 광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까. 1987년 6월항쟁을 전후해서 박종철 학생, 이한열 학생을 포함해 민주화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까.

그런데 독재정권, 보수정권 50여 년 끝에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10년 동안 이제 좀 민주주의를 해보려고 했는데 어느새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되돌아가고 경제가 양극화로 되돌아가고, 남북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꿈같습니다, 정말 꿈같습니다.

이 책에서 노 전 대통령은 “각성하는 시민이어야 산다.”, “시민이 각성해서 시민이 지도자가 될 정도로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말해온 ‘행동하는 양심’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모두 행동하는 양심, 각성하는 시민이 됩시다. 그래야 이깁니다. 그래야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를 살려낼 수 있습니다.

그 길은 꼭 어렵지만은 않습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행동하면 됩니다. 무엇보다 바르게 투표하면 됩니다. 인터넷 같은데 글을 올릴 수도 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 안 하는 정부는 지지 못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위기일 때, 그것조차 못한다면 좋은 나라와 민주국가 이런 말을 우리가 할 수 있겠습니까.

국민 여러분,

노무현 대통령은 타고난, 탁월한 정치적 식견과 감각을 가진 우리 헌정사에 보기 드문 지도자였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어느 대통령보다도 국민을 사랑했고, 가까이했고, 벗이 되고자 했던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항상 서민 대중의 삶을 걱정하고 그들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것을 유일하게 자신의 소망으로 삼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당한 조사 과정에서 갖은 치욕과 억울함과 거짓과 명예훼손을 당해 결국 국민 앞에 목숨을 던지는 것 외에는 자기의 결백을 밝힐 길이 없다고 해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다 알고 500만이 통곡했습니다.

그분은 보기 드문 쾌남아였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훌륭한 지도자를 가졌던 것을 영원히 기억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바라던 사람답게 사는 세상, 남북이 화해하고 평화적으로 사는 세상, 이런 세상을 위해서 우리가 뜻을 계속 이어가서 끝내 성취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노력하면 노무현 대통령은 서거했다고 해도 서거한 것이 아닙니다. 반대로 우리가 아무리 500만이 나와서 조문했다고 하더라도 노무현 대통령의 그 한과 억울함을 푸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그분의 죽음은 허망한 것으로 그치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노무현 대통령을 역사에 영원히 살리도록 노력합시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날까지,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사람들이 허무하게 생각하지 않도록,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내가 할 일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하니 하루도 쉬지 말고 뒷일을 잘해주시길 바랍니다.

나와 노무현 대통령이 자랑할 것이 있다면 어떤 억압에도 굴하지 않고 민주주의, 서민경제, 남북평화를 위해 일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후배 여러분들이 이어서 잘해주길 부탁합니다.

나는 이 책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그런 후배 여러분의 정진에 큰 보탬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무현 전 대통령이 인터뷰하고 오연호 대표 기자가 쓴 이 책을 보니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되기 전후에 국민의 정부와 김대중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책으로 참여정부와 노무현을 공부하십시오.

그래서 민주정부 10년의 가치를 재발견해 계승하고, 극복할 것이 있다면 그 대안을 만들어내서, 결국 민주주의를 위기에서 구하고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가길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저번달 초에 있었던 시사인 2차 독자위원회 리뷰가 최근 시사인 홈페이지(http://www.sisain.co.kr/)에 올랐다.

마침 노무현 특집이 있었고, 촛불집회 1년 특집도 있었다. 때는 바야흐로 노무현을 겨눈 검찰의 칼날이 사정없이 

조여 들어오던 시점이었고, 꽤나 먼 일처럼 여겨지는 그 때에도 뭔가 위태함을 감지했던 듯 하다. 그래도 몇 마디
 
노무현, 혹은 '노무현의 가치'를 변호했었다.





그리고 촛불 1주년 특집 기획..에 대해서도. 무슨 타임캡슐 묻어놓듯이 사람들의 짧막한 단상들을 그러모아놓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보다 심도있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마냥 상찬하고 떠받들 것이 아니라, 한계와

부족한 점들을 냉정하게 짚어내고 그에 따른 정확한 기대와 전망이 가능할 거라 믿었다.


(끝장을 내달라 @ Sisain)

그 외에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는데, 조금씩 잡지에 반영되어 변화를 이끌고 있다는 게 실감난다.

어제는 1기 독자위원 마지막, 세번째 리뷰를 진행하고 술을 마셨다.



출장 가기 전날 밤, 허위허위 썼던 글이 프레시안에 올랐었다. 몰랐다.


"당신의 눈물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뭐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대한 기고를 보내주면 다 받아주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던데, 모르겠다.

지금은 생각이 다소 바뀌었달까. 사람들은 '노무현'을 '민주주의'와 등치시키고 있다.

믿기지 않는다고? 그를 향해 써내려진 만장들, 온갖 편지와 메모와 메시지들, 그리고 슬픔에 잠긴 조사들..

'노무현 대통령'이라는 부분을 '민주주의'라고 바꾸어 읽어도 어느 한대목 문맥상 거슬림이 없다.

민주주의의 화신 노무현이 되었다.


인간 노무현과 대통령 노무현을 구분해서 보면 더욱 보이는 게 많았을 텐데, 그건 놓쳤다.

대통령 노무현이 실제로 이룬 업적과는 달리, 인간 노무현이 표상할 수 있는, 그래서 대통령에까지 오르게 했던
 
'시대정신'이란 부분이 분명 사람들에게 어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생각은 여전히 똑같다. 사람들이 추모하는 건 민주주의의 죽음이다. 되돌아가지 않으리라 여겼던

역사의 수레바퀴, 절차적,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상이 문득 숨을 몰아쉬며 핀치에 몰린 상황임을 깨달은 거다.

노무현의 죽음에 대한 이 도저한 애도의 물결은은 눈물을 위한 핑계거나, 혹은 집단적인 신드롬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노무현은 민주주의에 가장 '프렌들리'했던 대통령은 맞지만, 이명박을 넘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곳은 아니다.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감정을 정화하고 정돈시켜, 새로운 상황에 적응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헤어진 연인이 실제로 헤어지는 순간은, 그 사실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는 순간이라던가.

노무현의 죽음에 대해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을까.


작년 촛불시위 때의 방향성없는 폭발력과 지금의 전염성강한 눈물바다가 갖는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 같다.

비루하고 피곤한 삶. 대통령 노무현조차 감당치 못한 강고한 시스템과 주류 세력에 대한 패배감. 울고 싶은 삶.

그 모든 것들을 공유하는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부글대던 울화, 불만, 그런 것들이 해소되는 거 아닐까.


노무현의 급서 후 눈물을 글썽이고, 애틋한 마음을 표현하고, 불쌍하고 안쓰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들도

이성적인 판단이라기보다는 감정적인 차원의 '자기 위로용'이라는 심증이 갈수록 짙어진다. 노무현에게 미안하단다.
 
사랑했고, 앞으로도 사랑한단다. 존경했고, 훌륭한 정치인이었으며, 서민의 편이었고, '바보'같이 우직한 우리들의

대통령이었단다. 심지어는 그가 그립댄다. 


이런 묻지마식 감정의 물결이 사회를 온통 휩쓸고 사고를 마비시키는 건 경계할 일이다.


언제, 누구에게 그가 이렇게 높이 평가받았던가. 아마 그가 검찰, 그리고 그 뒤에 선 권력자의 '피살자'로써 죽음을

맞이하고 나서 시작된 일이다. 그렇기에 노사모에선 '국민이 죽여놓은' 노무현이 국민장이라니, 당치않다고 펄쩍

뛰었던 거 아닌가. 대부분의 국민들이 그를 비난하고, 모든 게 노무현 때문이야, 라는 말을 초딩들까지 입에 물고
 
있던 게 불과 이삼년 전이다.


막말로, 이명박은 왜 당선되었는가. 우리가 노무현을 싫어해서였다.


처음에 방송이 났을 때, 그가 죽었다는 이야기에 눈물이 나지는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 수도 있지만,

울 일은 아니었다. 노무현은 아무것도 대표하지 못했고, 그는 더이상 현실세계에 작용하지 않았으며, 그가 마지막까지

쥐고 있던 유일한 가치 도덕성마저 땅에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런데 어느순간 티비 속 사람들의 눈가가 빨갛게

축축해지더니, 울고 쓰러지고 그러다가 세네시간씩 줄을 서서 헌화하기 시작했다. 꼬맹이들을 안고 업고, 그렇게.

그러고 보면 그새 티비들은 감동적인 음향이 깔린 다큐멘터리와 코멘트들을 쉼없이 돌렸다.


물론 그를 향한 눈물바다가 죽은 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너그러움이 가미된 애도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가 가졌던

대통령 중에 가장 '진보'적이었고, 가장 호감이 갔고, 또 가장 청렴했고 도덕적으로도 우월했던 대통령인 사실도 맞다. 

그렇지만, 노무현의 정체가 없다. 5공 청문회 스타였다고? 입지전적인 궤적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다고? 대통령된 후에
 
검사들과 한판 뜨려 했다고? 대통령 된 후의 업적에 대한 다큐는 과문한 탓인지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들은 노무현을 바라보고 울지만, 그 눈물은 살아남은 자들, 살고 있는 자신들을 위해 바치는 눈물이다.

죽은 노무현에 대한 무조건적인 애정표시와 열렬한 지지는, 살아있는 이명박에 대한 극렬한 반대와 증오와

한 짝을 이룬다. 그리고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조차 이명박 정권에게 당하고 말았다는 묘한 '동류의식'도 한몫 한다.

그들은 자신이 불쌍한 거고, 자신의 처지가 애틋한 거고, 답답한 현실에 또다시 꽉 막혀 버린 가슴에 목메어버린 거다.


울고 싶던 차에 뺨 제대로 맞았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개별적 차원의 스트레스 해소와 감정 배출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오히려 꺽어버리거나 역량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거다. 이미 촛불시위에 대한 상찬 후 조심스레 등장하기 시작한 비판들이 보여주듯, 한판 난장으로

-축제였고 혹은 '새로운 시위문화의 전형'이었다고 평해지는-들썩들썩했던 그 거대한 에너지는 문제 자체에 대한

해결 의지보다는 스스로의 스트레스 해소에 몰입했던 면도 없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정제된 감정과 쿨해진 머리를 갖춘
 
'순치되고 이빨빠진' 양민들이 남을까봐 두렵다.


촛불시위가 정돈되는데 한몫했던 건, 종교계 인사들이 개입하면서 이성적인 문제를 감성적인 문제로 바꿔 버렸던 탓도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시스템은 바뀌지 않고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감정은 분출했고 어느 정도 치밀었던 울화통도
 
해소하고 잔뜩 축적됐던 스트레스도 날려버렸다. (물론 이 정부 하에서는 더욱 빠른 속도로 스트레스가 누적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심리적인 위로와 종교적인(혹은 도덕적인) 우월감도 만끽했다. 그리고 다시 예전과 같이 전혀 변함없이

굴러가는 시스템 내부로 걸어들어간다. 추모 신드롬, 울음바다도 한순간의 반짝, 으로 끝나지 않을까 두렵다.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치긴 했지만 '순치'에 다름아니었다고 말한다면, 너무 과한가.


노무현에 대한 이 중독성강한 추모 물결은, 온국민에 전염되어 버린 듯한 (혼란스러운) 분노와 비통함은, 아직은

우리를 아무데로도 인도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신기루처럼 사그러들었던 노무현에 대한 열광이 순식간에 되살아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내용은 그저 "지금보다 나았던 것 같은 과거에 대한 향수", 그것 밖에 안 보인다. 노무현에 대해

사람들이 부여하는 가치나 이미지라는 게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추모 열기가 일종의

신드롬화되어 버린 것은, 그가 오로지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로서 기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초점이 흐려진다. 한미FTA, 이라크파병, 비정규직법, 사학법, 부동산세제, 스크린쿼터제, 양심적

병역거부, 국가보안법, 투자은행, 금산분리, 언론법...이런 문제들에 대한 입장은 "노무현이냐 이명박이냐"로는

절대 해결될 수 없는 것들이다.


이명박의 반대이미지는 노무현인지 몰라도, 이명박의 반대정책, 반대세력은 노무현이 아니다.


노무현에 대해 너무 박한 평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건 노무현에 대한 평가가 아니다.

왜 울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재우쳐 물어보아야 하는 거 아닐까.


지금 왜 그를 보며 울고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애도가 줄을 잇고 있다.

그는 그야말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대통령이었으며 한국 사회 비주류와 소외된 자들의 대변인이었던 것처럼

기억되고 있으며, 마치 민주주의를 위해 한평생을 헌신했던 인물인 양 급격하게 단순화되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미군기지를 위한 부지를 조성한다며 평택에서 군사작전을 방불케하는 강제 진압을 벌였던 것도,

동시다발적 FTA추진전략이랍시고 한미FTA를 졸속으로 추진하며 이른바 4대 선결조건 문제를 예비했던 것도,

사실상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며 한국의 교조적인 시장주의 세력-신자유주의 세력-을 용인하고 부추겼던 것도,

부동산 문제나 금산분리 문제, 언론법, 사학법에 있어 지금과 같은 퇴행적 상황을 야기한 것도,

말로는 서민들을 위한다면서 비정규직을 폭증시키고 재벌들과 가진 자들의 배만 불렸던 것도,

심지어 그가 선정적으로 이야기했던 '과거의 유물' 국보법 폐지 문제에 있어서 결국 아무 성과도 없었던 것도,

그리고 이미 그의 치하에서 이명박 정권 때와 별반 다름없는 국가 권력의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시위진압작전이 있었던
 
것도,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지금의 정부에 대한 불만들, 지금의 정책에 대한 불만들을 표출하기 위한 땔감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초혼하고 있다. 실제로 그의 정책이 근본적으로 이명박의 그것과 다르지 않은 그림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가
 
실제로 '비주류'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대통령이었는지는 차치하고, 그의 몇몇 언행들이 편집되어 반복 재생되고 있는

거다.


그가 정면으로 반박했던 대운하 사업,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던 대북한 포용 정책, (발언의 실리적 공과를 떠나)

미국과의 관계를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 검찰의 독립권을 보장하고 언론권력을 비판하려 했던 그의 문제의식.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도 '일반인'에 가장 가까웠던 그의 화법과 '출신성분'.


그런 것들이 작금 이명박 정부의 대척점에 노무현 전 대통령을 위치지어주는 키워드들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손쉽게 기억하며, 그 기억들은 대개 현재의 필요로 인해 불러내어진 것들이다.


노무현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추모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금 떠올리는 그의 모습이 온통 긍정적이고

바람직했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할 듯 하다. 그렇다고 노무현 정권 시대에 우리가 행복했던 것은 아니었으니.


다만 그러한 '기억의 재구성'과 새로운 '인간 노무현의 탄생'이 모쪼록 지금의 답답하고 부조리한 정국을

타개하는 에너지로 化할 수 있기만을 바랄 뿐이다. 혹자는 지금의 정국이 80년대로 돌아가는데 필요한 건

단지 성고문, 물고문뿐이라고 이야기했다. 노무현은, 왜 죽었는가. 거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노무현은,

우리에게 정말 희망이었는지로 답을 마감해야 할 것 같다.


티비에서 쌍둥이빌딩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어리벙벙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실감이 안나던 기억.

2001년, 3개월 동안 뉴욕에 머물다 돌아온지 채 며칠이 안 되었을 때였다.


비몽사몽 늦잠에 취해있는데 잠을 덜컥 깨운 엄마의 한마디. "노무현 죽었다".

뭐라고? 이건 흡사 9.11때 기억의 반복 아닌가. 난 정신이 번쩍 들었지만 여전히 티비 속보들은 잠에 취했는지,

자살이네 실족이네 서거네 운명이네, 온갖 단어들을 동원하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투신자살'이라니. 노무현의 허약하고 위세없는 지위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단어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글쎄, 개인적으로 노무현을 좋아하지 않았고, '진보'를 표상-혹은 위장-했던 그가 끝내 이렇게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보며 더더욱 실망했지만. 아니, '진보'라는 단어에 똥물을 뿌리고 '도덕성'이란 기준 자체를 회의에

빠뜨리고 말았던 그가 끝내 자신의 언행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죽음을 선택하다니. 또다시 '경망스럽다'는

표현을 듣지 않을까 저어스럽다.


주위 사람들의 몇 가지 반응.

"광주학살을 부르고 몇백억씩 해처먹은 인간도 잘만 살고 있는데 왜 죽고 그러냐.."라는 안타까움.

"이건 결국 이명박이 초래한 거 아니냐.."라는 분노.

"남겼다는 유서에 대체 무슨 내용이 담겼을지 모르지만, 혹시 다 까고 간 거 아니냐.."라는 기대(?).


모르겠다. 장자연리스트때도 그랬지만 죽은 사람은 더이상 말이 없고, 죽은 사람은 더이상 (쥐뿔 남은)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며, 그는 이제 주위 사람들을 남기고 온갖 문제들을 남기고 홀로 떠나버렸다.


혹시 故 노무현 전대통령 만큼이나 말실수 잦고 오해를 자주 부르는 그 사람이, '국가 이미지에 큰 타격'이라느니,
 
'국민의 성금을 모아 장례를 치르자'라느니...제발 그런 속내가 있어도 말않고 조용히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론들, 노무현 전대통령 때 중소기업 사장이 목매달아 자살했던 것을 두고 사실상 노 전대통령이 죽였느니

어쨌느니 말많았던 언론들, 이번엔 과연 누구더러 책임지라 하는지 두고 보자.




"한미FTA, 그 '역사적 오류'를 선언해야"
盧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를 촉구합니다
등록일자 : 2008년 11 월 12 일 (수) 10 : 25   
 

  진보신당 공동대표 심상정입니다.
  
  얼마 전 신문에서 통해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직접 추수한 햅쌀에 관한 기사를 읽었습니다. 처음 짓는 농사가 쉽지 않았을 텐데 좋은 가을걷이를 했다니 축하드립니다. 그러나 축하드리고만 있기에는 나라의 사정이 너무도 어렵기에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세계경제의 위기에 더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거꾸로 가는 정치로 인해 우리 국민들 마음은 벌써 한겨울입니다.
  
  종부세와 수도권 규제완화, 그리고 참여정부가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간신히 잡아놓은 부동산정책마저도 마치 전봇대 뽑듯 뽑아버리고 있으니 노 전 대통령께서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오늘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한미 FTA에 대해 세가지 주제로 말씀드리려 합니다. 저는 한미FTA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결자해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형편이 매우 좋지 않은 상황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직하고 통 큰 고백만이 나라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이 글을 쓰는 저의 화두입니다.
  

▲ ⓒ프레시안

  우선 어제, 그제 '민주주의 2.0'을 통해 한미FTA협정에 대해 쓰신 글을 잘 보았습니다. 비준을 서두르는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며 조기비준 대신 재협상을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하셨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나라의 미래가 걸린 한미FTA 협정 비준문제를 맹목적으로 밀어치고, 이를 바로잡아야 할 민주당은 앞선 책임에 갇혀 옹색한 처신으로 갈피를 못 잡고 있는 위태로운 상황을 보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역할이 긴요하다고 생각한 사람은 비단 저 뿐만은 아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한미FTA에 관한 견해는 참 아쉽고 안타까웠습니다. 비준과 재협상에 대한 논란이라면 현정치권의 갑론을박에 맡겨둬도 될 일이겠지요. 무분별한 개방으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경제위기로 공포에 떨고 있는 민초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 기대했던 것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재협상 '훈수'가 아니라 한미FTA 협정 체결에 대한 '고해성사'였을 것입니다.
  
  '내 재임시 한미FTA를 밀어붙인 것은 과오였다. 금융세계화와 개방에 대한 나의 인식은 한계가 많았다. 국민여러분들께 사죄드린다'는 말씀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미국의 금융위기로 모든 것이 분명해진 지금, 대통령시절 '구국의 결단'으로 밀어붙였던 한미FTA 협정이 나라를 재앙으로 몰고 가는 길이었음을 고백하는 용기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기왕에 노 전 대통령께서 나서시기를 작정하셨다면 한미FTA 협정이 지난 정권의 오류였음을 인정함으로써 한미FTA 협정 폐기전략으로 국론을 모아가는 물꼬를 터주기를 갈구했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묻겠습니다. 참여정부가 그 많은 사회적 비용을 치르면서까지 밀어붙였던 한미FTA협상의 명분은 국내 서비스산업의 육성과 질적 도약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제조업 가지고는 먹고살기 어려우니 선진국처럼 금융, 서비업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하고 그를 위해 미국의 선진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던 '동북아 금융허브론' 그것은 세계를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미국금융자본의 탐욕에 편승하고자 했던 것이지요? 또 미국과의 FTA라는 '외부충격'을 통해 달성하고자 했던 제도의 선진화는 결국 '투기와 거품'의 온상을 만들었던 위기의 주범이었음이 확인된 거 아닙니까? 또 노 전 대통령께서는 대외의존도가 70%가 넘는 나라에서 개방 안하고 어떻게 먹고 사냐고 반문하셨지요? 이명박 정부가 외환보유고 많이 갖고 있어 IMF 구제금융 시기와는 다르다며 위기는 없을 거라고 강변했지만 그럼에도 외환보유고 세계6위인 나라가 왜 사색이 되어 난리인지 그 까닭을 국민들은 알고 싶은 것입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무분별한 개방 때문 아닌가요?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가장 취약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걸 이미 시장 참여자들은 다 알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런데도 여전히 한미FTA만이 살길입니까?
  
  이명박 정권에게는 '한미FTA는 당장의 경기와는 관계없고 5년 10년 15년 기간이 지나야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라는 충고를 하면서도, 한미FTA 협정 이후에 금융위기가 왔다는 점을 강조하신 대목은 굳이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진정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세계적인 금융위기의 위험을 느꼈다면, 제조업을 경시하면서 금융허브를 발전 동력으로 삼고자했던 무모함을, 금융자유화를 제도선진화로 잘못 이해한 '한미FTA'의 과오를 인정해야 합니다. 체력을 넘어서는 과도한 개방과 수출대기업을 위한 고환율 정책의 오류를 반성하고 이제 내수기반의 강화를 통해 세계경제에 면역력을 길러야 한다는 교훈을 뚜렷이 새겨야 합니다. 그리하여 시대를 거꾸로 가는 이명박 정권의 폭주가 머지않아 역사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경고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께 결자해지를 촉구합니다. 구국의 심정으로 한미FTA는 역사적 오류였다고 지금이라도 폐기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십시오.
  
  둘째, 기왕에 한미FTA협정 폐기전략을 주장을 하는 김에 노 전 대통령이 주장하신 '재협상'에 대해 한 말씀 더 드리고자 합니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이 조기비준을 서두르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노전대통령의 말씀처럼 세계적인 금융위기 상황에서 국제적인 금융질서를 재편하기 위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고, 이미 많은 전문가들이 지적하듯 오바마 정권이 금융, 의약품, 지적재산권, 자동차배기규제 등 많은 분야에서 정책의 변화를 추진할 것이기 때문에, 그리고 이미 한미FTA에 포함되어 있는 투자자정부제소권을 비롯한 수많은 독소조항들을 포함해서 한미FTA 협정 내용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서 이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은 옳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미FTA의 재협상'이 아니라 '한미FTA 폐기'를 위한 준비이어야 합니다.
  
  실제 오바마가 요구하는 '재협상'은 한미FTA 재협상이 아니라 자동차부문의 협상입니다. 오바마 당선자는 미국식 FTA의 모체인 나프타의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고 그것은 1-2년 이내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오바마에게 한미FTA는 상당기간 관심밖에 일이 될 것입니다. 오바마에게 급한 것은 자동차협상입니다. 따라서 한미FTA 재협상의 요구가 아니라 '한미자동차협정' 체결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접근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국정부의 한미FTA 대한 맹목적 집착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정부와 협상해본 학습효과가 그 방향의 선택을 뒷받침할 것입니다. '쇠고기 수입개방 들어주지 않으면 한미FTA 비준 해주지 않는다' 하니 이명박 정권이 통째로 내주었지 않습니까? 또 자동차 안 들어주면 한미FTA 비준 없다하면 또 기꺼이 구국의 결단을 하리라 생각할 겁니다. 게다가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의 조기비준시도를 통해 한미FTA에 대한 맹목적 집착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고 있질 않습니까?
  
  핵심은 오바마 시대에 한미FTA는 자동차협상의 종속변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부와 정치권이 한미FTA 가지고 비준이니 재협상이니 엄한 데를 긁는 소모적 논란을 하지 말고 머지않아 요구될 자동차협상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야 할 것입니다.
  
  오바마가 미국의 유색인종차별을 해소할 계기를 만들고, 재정확장정책을 통한 내수경제육성에 힘을 쏟고, 국제 깡패로 이름을 날린 일방주의 외교에 변화를 가져올 거라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 대통령입니다. 그에게 자유무역주의자니 보호무역주의자니 논란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는 제조업 중심의 공격적 자유주의정책을 펼 가능성이 많습니다. 보호무역의 측면만이 아니라 자국의 자동차산업과 노동자를 위해 우리나라에 자동차시장 개방을 공격적으로 강요할 것입니다.
  
  만약에 미국의 노동자와 자동차산업을 살리는 그 요구를 수용한다면 그것은 곧 가장 넓은 고용기반을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 자동차산업과 노동자 그리고 내수기반의 궤멸을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만약 자동차를 안내주면 한미FTA 협정은 물 건너 갈 수 있습니다. 자 어느 편이 국익에 부합하는 것입니까? 자동차 다 내주고 미국 대기업 이익을 위한 한미FTA를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자동차 보호하고 미래의 재앙인 한미FTA를 폐기시키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것이 옳겠습니까? 이것이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결자해지를 하셔야 할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셋째 노 전 대통령께서는 한미FTA 한다고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을 '신자유주의 강력한 추진자'라고 비판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의 표현대로 '신자유주의라는 용어를 도깨비 방망이처럼 들이댄' 것은 아닙니다. 나프타식, 미국식 FTA가 신자유주의 전형이라는 것은 국제적으로 공인된 이야기입니다. 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비해 턱없이 미숙하고 힘없는 정치인입니다만 한미FTA를 밀어붙인 노 전 대통령에 맞서 '젖먹던 힘'까지 보태 맞섰던 한사람으로서 근거와 내용으로 비판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자란 소리가 '빨갱이지?'란 소리로까지 들리셨다니 오늘은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한미FTA를 신자유주의라고 하는데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제겐 감당하기 한참 벅찬 일'이라며 토론을 거부하는 것은 전임 정권의 책임자가 가진 역사적 임무를 다하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머지않은 기회에 꼭 토론의 기회를 주셨으면 합니다.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심상정/진보신당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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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미국 대통령당선을 두고 기대가 만발했지만, 그리고 한미FTA재협상과 조기비준 등의 문제를 두고 말이

많지만, 상정누님의 시각만큼 성숙하면서도 대중적인 글은 아직 못 본 거 같다.

오바마는 "미국민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미국 대통령"이라는 누님의 지적이 인상적이다. 멋진 글, 그리고

합리적이고 세련되게 한미FTA 자체를 비판하면서도,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차분히 납득하기 쉬운 글인거 같다.

진보신당 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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