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군 1년차때는 군복을 다시 입는 것부터, 총을 쥐는 것도, 경례를 하는 것도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다.

전역(轉役) 1년차의 예비군훈련.


그런데 이제 6년차, 예비군 훈련이 떳떳하게 볕쬐러 나오는 '휴가'라고 느껴지게 되었다.

물론 전투복은 전투하라고 입는 게 아니라 전투력 남김없이 떨어뜨리라고 입는 거고, 전투화는 끈을 바싹

조여매는 게 아니라 개혓바닥처럼 사방으로 아가리를 벌린 채 질질 끌고 다니는 거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차갑고 불쾌한 총의 폭발음 역시 조금은 더 참을 수 있게 되었고, 다섯 발 중 세 발은 표적에 맞혔으며,

이제 그 '표적'이 언제라도 '사람', 혹은 북괴가 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로 연결시키지는 않게 되었다.


그래서, 예비군 6년차, 마지막 훈련을 받으며 이런저런 훈련장 스케치.

되는대로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쇳덩어리 목총을 쑤셔넣고는 하이바를 올려둔 예비군들. 신병 훈련소에서는

특별지급되었던 치토스의 '따조'까지 승인되지 않은 놀이기구라며 뺏어가고 치토스 봉지조차 네모나게 각잡아

접어서는 버렸단 말이다.

준비성 철저한 어느 '전우'. 등산갈 때 부모님이 갖고 다니시는 휴대용 방석을 갖고 왔다. 4월이 한참 지났어도

쌀쌀한 날씨인데다가 항상 군대는 '춥고, 졸립고, 귀찮은' 몸뚱이가 문제인 거다. 어찌나 부럽던지.

다른 사람들이 사격 훈련을 마저 마치기를 기다리며 하릴없이 방황하는 예비군들. 후드티를 껴입고 갔다가

입구에선 교관들의 우악스런 손에 벗겨지던 구겨넣어지던 둘 중의 하나를 골라야 했지만 훈련 중엔 계속 쓰고

다녔다. 나처럼 후드티를 껴입고 온 다른 분께서는 유유자적 독서삼매경.

그래도 연막탄도 쉼없이 피워올리고, 총알도 다섯발씩 주고. 차라리 예비군들의 기초체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하루 날잡아 등산을 시키던가, 구보던 웨이트트레이닝이던 하루치 일과를 주는 게 어떨까. 돈 아깝게

모형 건물짓고 연막탄 피우고 그러지 말고. 정말, 예비군 훈련을 그렇게 좀 실제로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바꾸면 모두가 좋아할 거 같다.

이런 '북괴'를 상대하려 해도 역시나, 되도 않는 정신교육이나 빌빌거리는 전투기술훈련 따위보다 배나오지

않은 날렵한 체력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참 웃기게 생긴 북한군인 아저씨, 그리고 밑에 이리저리 구르는

모형 수류탄들. 그 뒤로 등에 피로를 업은 예비군들.

뭐, 이런 훈련 안내문도 나눠주기 시작하고 이제 예비군도 조금은 서비스 정신을 갖게 된 걸까.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건 이미 숱하게 유출되고 유통된 '모두다 깊디깊은 숙면 중인 안보교육시간'이라거나

'개도 안먹는 예비군 짬밥의 실체'라거나 따위여서 군의 사기를 떨어뜨릴까봐 두려운 게다.


나는...음, 예비군 훈련에 대한 자극적이지 않은 스케치에다가 건설적인 대안까지 제시했으니 괜찮을 거다.

괜찮겠지 모.

상병때부터 일년넘게 내 왼쪽 뇌 옆에는 초록빛 체게바라가 있었다. CHE_GUEVARA.

사실은 빨간색이나 흰색으로 하고 싶었는데, 오바로크쳐주던 분이 그럼 잡혀간다며.

난 잡아갈 테면 잡아가라며, 어차피 엎으나 뒤치나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그러고 보면 그람시나 알튀세르, 최장집을 읽었던 것도 군대에서였다.

얼룩무늬에 쩔고 '다'나 '까' 따위 말투와 마초들에 치여서 삶이 푸석해져버렸다던 오래전 이야기.

그렇지만 지금은 예비군 훈련을 몇 년 더 했음 좋겠을 뿐이고. 아이러니.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이중국적 문제부터 김일병의 '사고'까지. 병역 기피자들에 대한, '문제사병'에 대한 들끓는 분노가 돌아간 곳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였다' 란 반쪽짜리 진실의 울먹임처럼, 이아이들 모두 다 내자식같다는 말이 담은

교묘한 울타리처럼. 군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의 농밀한 부러움임을, 숱한 '문제사병'을

죽여왔던 총구가 이제 밖으로 돌려졌을 뿐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의 극단과 극단에 선채 배설을

위한 쉬운 해답과 쉬워보이는 상대만 밟아대는 걸까.


근 1년만에 전투복을 입어봤다. 월욜, 화욜 훈련했던 석박사들보다 약간은 말을 안 듣는다는 교관들의 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순순하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올려붙여주고, 툴툴대면서도 열을 맞춰

'이동'하는 나 자신과 개구리얼룩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쩔수 없이 착해빠진

먹물들이라고, 풍선처럼 부푼 머리에 감정이 눌려버린 공허하고 얕은 인간이라는 게 훤히 드러나는 거 같았다.

강렬하게 뭔가가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걸 느끼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티비에 나올법한 예비군 아저씨의 모습..

웃도리 풀어제치고 주머니에 손찌르고 모자삐뚜름히 돌려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교관 아저씨가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단추를 채우는 척했다. 배터지기 직전의 개구리같이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총을 쏘기가 싫었다. 훈련소 때 탄알이 총안에서 뭉그러졌던 사건 이후 삼사십살은 훌쩍 넘은 총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총을 다룰 때 나는 신경질적인 금속성과 호흡을 깨뜨리는 파열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못쏘겠습니다'하고 열에서 빠져나왔으면 좀더 맘이 편했을라나. 굳이 말앞에 '머리가 아파서'란 말을 붙이고

말았다. 어찌 생각하면 솔직하지 못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이런 '연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합당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이다. 어찌됐건 저들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며 말안듣고 통제안되는

예비군들에게 군인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은 정말 쓰잘데기없고 짜증만 나는

훈련을 최대한 개기고 민간인임을 잊지 않으며 군복이 주는 마력과도 같은 압박감과 대치하는 것. 말로 자신의

사정..개인적인 의사를 이해시킬 여지도,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게 각기 달라, 결국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다 신경만 곤두선채 스스로 회의가 들고 만다. 대체 이 나라는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이

같잖은 병정놀이를 왜 해야하냐.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까지 바싹 끌어당겨졌었다. 참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의지, 내 각오를 믿고 뛰어들고 나니 주위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눈길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바꾸어 보려다가 바뀌고 만다는, 진부한 얘기.


그리고 호루라기. 규칙적인 파공성으로 신경을 긁어놓는 그 소음을 무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을 '강제'하면서, 발은 안맞춰도 좋으니 열만 맞춰라..고 했던 교관들.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양순하게 끌려가는 머리만 굵은 얼룩무늬들. 1번부터 99번. 제각기였던 스텝이, 호루라기가 울리기

시작한지 얼마안돼 대략 일정한 발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재우치는 교관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발이 한덩이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억지로 엇박을 내딛으려 해봐도, 아님 그 거슬리는 소리를 쌩까보려 해도 내 몸은 헐떡이며 호루라기 소리하고

붙어먹고 있었다. 짜증나 죽을듯이 머리에서 거부감을 울컥 퍼올리는 것 만큼, 내게 삽입되었던 행동 패턴들과

양식들이 어느새 내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아버린 왼손의 담배처럼. 항시 경례를 준비해 비워놓아야

했던 오른손을 피해 왼손에 걸려진 담배는, 일이병때 그곳에서 내 낙하지점을 대략 상상해보기 위한 낙하물의

역할도 맡았더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그 말도 안되게 어이없고 쓰레기같은 곳에 처했더니 온몸의 구정물이

들고 일어나 화답하는 꼴이다. 그치만 어째야 했는지. 어떻게 했으면 만족했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경례구호에

맞춰 어영부영 모자끝쯤 갖다붙였던 손가락 두개쯤..을 아예 쉬게 냅뒀어야 했을까. 총 들고 다니며 전쟁얘기,

핵폭탄 얘기만 해대는 동선을 못견디겠다고 주저앉았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당연한듯 명령하고 누군가는

깍듯이 각진 자세로 부름을 받잡는 조직을 인정치 못하겠다고 뻗대봤어야 했나. '다'나 '까'의 말투 따위 엿이나

먹으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릴껄 그랬나..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근데...애초 군바리로 이름불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한꺼풀만 들추면 인간이 사육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티비를 보면 진행자의
 
말끝마다 미친듯이 감탄하는 방청객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대한민국과 독도와 축구에 몰입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을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6번 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제대..전역. 轉役. 그 공간은 근 반세기동안 그러했듯, 내 몸을 숙주로 삼고 사회를 칭칭 옭아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잡탕인 거다. 에이리언을 품은 시고니 위버가 자살을 택하듯, 최초의 보균자가

숨을 끊었어야 했나..?


..대답이 궁해졌다. 어쩔꺼냐면.




(2005. 7. 1)
예비군 훈련을 가려고 옷을 챙겨입을 때마다 항상 떠오르는 그리스로마신화의 한 토막이 있다.

헤라클레스에 죽음을 가져왔던 옷. 그의 아내 데이라네이라가 헤라클레스의 사랑을 놓칠까 두려운 나머지

헤라(던가 헤라의 사주를 받은 신이던가의) 꼬임에 넘어가 마법의 힘을 가진 옷을 헤라클레스에게 입혔다던가.

일단 옷을 입고 나니 온몸에 참을 수 없는 고통과 괴로움이 느껴졌으나, 한번 입혀진 옷은 살에 철썩 달라붙어
 
벗겨지지도 않았다고 했다.


군복이 그렇다. 잔뜩 무거운 군화, 잔뜩 내리누르는 하이바, 그리고 불편하기만 한 나무작대기-총,

그저 얼룩무늬 전투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온몸의 기운이 쏴아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의욕을 상실한다.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고 나니, 하루가 너무 지쳐버렸다.


"26일임 병장이다. 낼부터 일주일동안 외박이니까, 병장신고도 째고 외박나감서 병장달고 나가게 되었다. 이제부터 11개월-3주라...

11비에 울 B.X. 가게 물건 받아오면서 전투모 한개 사고, 병장 계급장 오바로크치고, 옆에 이름도 박아왔다. 11비에 두돈반짜리 트럭 뒷켠 타고가면서 계속 무얼 박을까 고민 좀 했다. 보통 남들은 대한민국 공군 아무개, HAWK, HIDDEN CARD정도에서부터 자기 이름, 장비명 머 그런거 하던데, 최종진화된 형태의 전투모에-아니지, 전역모가 또 있었군..-무언가 멋진 문구를 박아넣고 싶었단 거다.

짧막하면서도 내게 의미를 던져주는 그런 단어..명사, 함축어, 상징 그러면서도 약간의 자발적 검열과 수정을 거친. 심사끝에 hasta la victoria, siempre는 넘 길어서 짤렸고, ubermensch랑 siege-mental, solidarite정도가 남았더랬다. 군바리로서의 역할과 내 생각, 거기서 분열된 내 생각들, 부끄러움, 자존심, 그런 걸 계속 갈퀴질하며 뻗어나가다 보니..모자에나마 박아넣을만큼 자신있는 단어가 없지 싶었다. 낯부끄러운...생각해보니 군대서 머라하겠다 싶은 단어를 알아서 제하는 것만이 자발적 검열이 아니더라구..어른거리는 치기를 제하고 의미를 줄 수 있는 단어로.

막막해지는 와중에 차는 덜컹거리고, 엉덩이가 쪼개지는듯한 와중 문득 체가 떠올랐다. 체 게바라...현실에서 살되 꿈을 따르는...68의 상징이자 00년대의 '문화적저항'상징으로 전유되고 만. (문화적 저항과 정치적 진보와의 상관관계는?정치가 타인을 아우르는 거/전유하는 거/헤게모니화하는 거/라면, 문화는? 누구나 공공에게 말을 할때 집단을 거명하지, 우리는, 네티즌은, 시민은, 국민은, 여성은, 시민단체는...순간 포섭되는 이름없는 다중..)

CHE GUEVARA를 박아넣었다. 마치 타투처럼. 일단은, 그의 방식만 모방하기로 한다. 치열함의 방식을 다시금.

"우리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하지만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

빨간색실로 해달라고 졸라 쫄랐는데..안된단다. 걍 광택띈녹색..해서 녹색의 체게바라가 되어버렸다.ㅋㅋㅋ" (2003.9.21)



* 정말 코미디 같은 일들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메일을 뒤지고 직접적인 증거력도 없는 문구로 언론재판을 한다.

그렇게 노무현을 보냈던 그들이다. 티비에서 그들의 얼굴을 보고 그들의 말소리를 들을 때, 피에 굶주린 괴물,

앞뒤 안가리고 무작정 제물을 찾아 돌진하는 괴물이 떠오른다.




불과 한달 전에 예비군 훈련을 받았던 것 같은데, 또다시 '소집통지서'가 왔다.

이번 건 여태 받아왔던 하루짜리, 혹은 며칠짜리 통지서와는 달리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소집점검훈련'만 한다는

네시간짜리, 반일짜리 훈련이었다.


여러 모로 정신없는 회사에선 살짝 미안하기도 했고, 예비군 훈련을 다녀온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간다고 얘기하는

게 좀 뻘쭘하기도 했지만, 오전만 근무하고 옷 갈아입고 훈련장까지 갈 수도 없는 일이고 걍 과감히 하루를 제꼈다.

뭐...이런 경우 보통 회사에 '공가' 신청을 하면 된다고 하는데, 여태 난 모르고 있었다는..


결국 네 시간짜리 훈련 가서 세시간동안 출석 체크하고 멍하니 있다가 돌아왔다. 한 거라곤 출석 체크에 증빙용

쪽지 하나 작성하고 도장찍은 거. 이게 뭐하는 짓이냐..


12시 30분, 훈련소 도착
 
왜냐믄 통지서 상에는 13:00 10분전까지 입소시간을 지키라고 해놓았었고, 저번 예비군 훈련 때도 지각했던

예비군들은 따로 남아서 한두시간 보충 교육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길이 안 막혀서 일찍 도착한 탓도

있었다. 사실 나 역시 늘 시간에 아슬아슬 맞춰서 도착하곤 했다.


12시 30-50분, 오침(자체 실시)

역시나 항상 그렇듯 시작시간 삼십분 이후까지 슬슬 모이는 예비군들, 한산한 예비군훈련소에서 적당한 그늘을

찾아 벌렁 누워 엠피쓰리를 꼽고 잠이 들었다. 군복을 입으면 왠지 몸이 무겁고 한없이 피곤해진다. 게다가 전혀

행동에 거침이 없어서 흙바닥이든 시멘트바닥이든 사지를 뻗고 누울 수 있다.


12시 50분-13시 30분, 하릴없이 대기

하나둘 모이는 예비군들을 기다리며 햇빛을 피해 사열대에 모여 앉았다. 더이상 누워서 편히 쉬기는 불가능하고,

또 그렇다고 빡빡하게 누군가 챙겨주지도 않는...버려진 상태. 이건 그간 예비군 훈련을 잘못 '길들여온' 훈련소의

탓이 크다. 무엇을 하던 어쨌든 시간만 채우면 되니까, 어차피 늦게 시작하니까, 라는 식의 마인드.


13시 30분-13시 50분, 지루한 반복설명

애초 시간을 삼십분이나 넘겨 훈련을 설명하기 시작한 중사 아저씨는, 중언부언, 횡설수설, 어젯밤에 술을 과하게

하고 여태 깨지 않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계속해서 협조를 요청했는데, 기실 누구도 그의 말을 막지도, 협조

안하겠다고 뻗대지도 않았다. "그니까 강남/서초 지역에서 온 분들 명단을 확인하고 유사시 동원부대가 어딘지

불러줄 테니 필증을 직접 작성해라"라는 간단한 내용인데, 그것도 능력이라 간단한 이야기를 20분동안 A, A', A''...

로 무한 반복, 오토리버스.


13시 50분-14시 30분, 강남지역 예비군 명단 확인

오늘 강남/서초 지역 훈련인원은 약 150여명, 강남지역 예비군 명단은 약 350명. 중사가 델꼬 온 따까리는 병사

하나, 하사 하나. 가용인원은 셋인데 써먹을 줄을 모른다. 가나다 순으로 350명의 명단을 하나하나 부를 테니

대답을 하랜다. 이 시간에 강남과 서초를 쪼개서 두팀으로 나눠 동시에 인원을 확인하거나 가나다순의 허리쯤을

뚝 잘라서 역시 두팀으로 나눠 동시에 확인하면 시간이 얼마나 절약된 텐데..했지만, 그러려니 한다. 군대니까.

그가 데리고 온 병사 하나는 책상에 앉아 손가락 장난을 하고 있고, 다른 하사 하나는 멍하니 서있다.


14시 30분-14시 55분, 반강제적 쉬는 시간

이미 사람들은 지쳤다. 예비군 5, 6년차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이 '소집점검훈련'에 작년에 왔다던 6년차 예비군에

따르면 작년에는 인원점검을 훨씬 일찍 해치웠고, 세시간도 안 걸려 돌아갈 수 있었다 했다. 강남지역 명단을

확인하는데 계속해서 잡소리를 집어넣고 잔소리를 해대느라 이미 두시간 가까이 흘렀으니 예비군들의 말소리에

잔뜩 짜증이 실렸다. 이미 중사나부랭이가 화장실 다녀오라 하기 전에도 대오는 흐트러졌고, 예비군들은 저마다

담배를 피고, 전화통화를 하고, DMB를 보고 있었다.

애초 10분이라 했던 '화장실 다녀오는 시간'이 지켜지는 건 무리였다. 화장실은 연병장 너머 저 멀리에 있었고,

이미 앞에 선 중사에 대한 비호감, 내지 '무시'는 들끓고 있었다. 그걸 굳이 마지막 한 명이 올 때까지 기다려서야

시작하는 건 또 뭐냐. 그러려니 하자, 군대니까.


14시 55분-15시 25분, 서초지역 예비군 명단 확인

마지막 한 명이 전부 원래 자리에 돌아간 걸 확인하고 나서야 명단을 쥐고 다시 호명을 시작하는가 했던 중사,

다시 일장연설이다. 어쩌구저쩌구, 협조 부탁 운운, 지금도 시간은 가고 있어요 운운. 그런 얘기는 사람들 기다릴

때 하던가, 그때는 입닫고 가만히 있더니 다 오고 나서 그런다. 그렇게 잔소리로 시간 까먹고, 또다시 가나다순으로

약 300명의 서초지역 명단 확인. 또다시 놀고 있는 나머지 두 명. 그리고 이미 150여명의 예비군 중 절반 이상은

자신이 어딘지 알고 있는 상황에서 멍때리기. "떠들지 말고 차라리 자요"랬다. 지가 학교에서 배웠을 일제군국주의

교육의 잔재, 그게 다시 군대에서 되풀이되는 말투 아닐까 싶다. "떠드느니 차라리 방해말고 자라."


15시 25분-15시 35분, 누락 예비군 명단 확인

가뜩이나 윙윙 울리는 마이크에 입을 콕 처박고, 종종 지가 어디까지 했는지 까먹고 허둥대던 중사님인지라

아직도 이름이 불리지 않았거나 자신의 유사시 동원부대가 어딘지 헷갈리는 예비군들이 꽤나 있었나보다.

강남의 ㄱ으로 시작하는 사람부터 나오라고 했다가(여전히 나머지 두 명은 놀리고 있다가), 지도 안 되겠다

싶었는지 한명을 더 활용하기 시작해 강남의 ㄱ, 서초의 ㄱ을 동시에 돌리기 시작했다. 아...여긴 군대다.

내가 밖에서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잘 통하고 합리적이었는지, 되새기는 시간을 갖는다.


15시 35분-15시 55분, 소집점검필증에 도장찍기

각자의 유사시 동원부대까지 기입된 필증을 전부 다 걷어가더니, 하사가 도장을 찍기 시작했다. 중사는 그렇게

도장이 찍힌 필증을 한장씩 받아서 꼭 쥐고 있고, 병사는 바람에 나부끼는 프로젝터용 스크린이 흔들리지 않도록

화면 뒤에서 두 손으로 잡고 있다. 그들이 도장을 찍는 사이 150여명의 예비군들을 위해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영상물을 틀어놓은 탓이다. 하얀 스크린 뒤로 병사가 멍청히 두 팔 들고 서있다가, 어느순간 똥싸는 포즈로

주저앉는게 다 보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도장이 찍히면 바로바로 주고 보내던가, 혹은 조금씩 모아서

나눠주던가, 그걸 병사한테 시키고 중사는 전체 상황을 통제하는 게 맞을 텐데, 아니다. 최면을 건다, 여긴 군대,

여긴 군대..


15시 55분-16시 05분, 배포

150여명이래봐야 종이 쪼가리 한장씩 금방 나눠줄 수 있다. 어차피 번호순으로 앉아있었으니 옆으로 돌리면

순식간에 각자 주인을 찾는다. 그런데 이 중사님, 거의 본인이 직접 돌아다니며 나눠주는 식이다. 그리고도 받고

가만히 있으랜다. 아직 움직이지 말라고, 무슨 깊은 의미가 있나 했다. 그렇게 십분동안 답답해서 속에 천불이

이는 걸 느끼며 참고 앉았다.


16시 10분, 해방

마지막 한 장이 주인을 찾고 나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휘휘 돌아보고는, "됐습니다."랜다. 가랜다. 허무했지만

정신을 차리고 걸음을 빨리 해 뛰쳐나가는 무질서한 예비군 대오의 머릿춤에 선다. 주차해둔 차들이 한꺼번에

우르르 빠지려면 역시 또 시간이 지체될 테니, 한시라도 이 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
전역, 轉役)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둔탁하고도 거친 말들과 그 뒤에 버티고 선 사고방식들, 그 모든 걸 비주얼하게

보여주는 얼룩덜룩한 국방무늬가 가시처럼 날 쿡쿡 찔러댔고, 난 처음 입대할 때처럼, 처음 예비군 훈련 받을

때처럼, 그렇게 하나도 익숙해지지도 타협하지도 못한 채 그저 움찔움찔 경련을 일으켰다.


사람 죽이는 법을 까먹지 않게 하려고 우르르 불러모았댄다. 북괴가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수류탄을 던지랜다.

책임이 있으니 의무도 있는 거랜다.(이게 무슨 말인지..자유가 있으니 책임도 있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자유 운운하기엔 넘 척박하고 열악한 상황이니 병정놀이오타쿠들, 교관들도 차마 그렇게는 못하고 나름 변형한

거겠지. '이게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지..'라는 속편하고 살짝 효험도 있다는 체념 역시 무기력해지는 이상한

공간인 게다, 군대란.) 비상식으로 가득차서, 외려 상식을 들고 말하기엔 유치해 보이고 까칠해 보일 수 밖에

없게 만든다. (
예비군훈련..4년차.)


그리고 5년차 예비군. 여전히 속은 편치 않지만, 조금은 익숙해졌다. 그냥 오늘 밤 늦게까지 딴 짓 좀 하고,

엠피쓰리에 노래 좀 넣고 충전하는 거 잊지 말고, 그럴 생각이다. 어차피 내일 가서 어떤 자세로던 어떤 시간에던

잠드는 건 문제도 아닐 테니..괜히 교관들의 이상한 이야기나 멍청한 짓거리들에 울컥하지 않는 한.


날씨가 다시 좀 추워지긴 했지만 뭐, 어차피 군복을 입으면 마음이 서늘해지고 컨디션도 지랄같아지니 상관없다.

아니다, 이명박이 최근에 예비군 훈련도 내실화하라고 했다던가. 무사히 돌아와야겠다. 작년 예비군 훈련 때에는

땅벌을 건드려서 팔다리가 퉁퉁 부은 예비군들을 한시간넘게 미적대며 잡아두다가 항의 끝에 겨우 엠뷸런스 타고

병원으로 후송되었던 일도 있었다. 물론 예비군 훈련시간으로 인정도 못 받았었고.


대체 뭘 어떻게 내실화하려나, 대체 뭘 어떻게 또 괴롭히려나. 개성공단도 말아먹고 남북관계도 말아먹고 또

무슨 말씀을 내려 반공정신을 고취하시려나. 듣고 싶지도 않은 X소리 안 들으려 귀막을 자유도 없는 곳.



아파트 엘레베이터에 붙은 예비군 훈련관련 안내공문.

"마대에 모래담기훈련"을 하고자 한댄다. 마대에 모래담기 훈련 후 모래 원상 복구.

참고랍시고 별표붙여 공지한 내용이 더욱 웃긴다. "모래를 담아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않음"


대충 훈련 그림이 나오네. 삽질해서 모래주머니를 몇개 만들었다가는, 얼추 시간되면 그 주머니를 다시 탈탈

털어서 아이들 노는 모래사장을 처음처럼 채워주는 훈련. 왠지 어이상실.


애들 노는 놀이터에서 어른들이 장난치면 못쓰는 거다. 그것도 아무도 원치않는 장난질 시키는 놈은 더 나쁘다.


*                          *                          *

생각보다 훨씬 격한 반응이 있다는 데 놀랐습니다.

우선, 군대는 다녀왔냐고 윽박지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3주 줄어들은 2년 반 만기제대 했습니다.

그리고 군대가서 뭘 배웠냐고(군대가서는 이러저러한 걸 배워야 했다고) 강요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소한 군대에서는 '다양성'과 '포용성'이란 걸 절대 배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군대가서 한 게 뭐냐고 하면, '삽질했다'고 합니다. 군대다녀와서는 '바보됐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건 그렇게 "바보를 만드는 삽질", 민간인이 들으면 어이가 없어할 삽질 스토리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부디 감정어린 빨간펜은 뚜껑닫고 넣어두시기 바랍니다.


전역..이란 단어의 의미를 새겨 본 적이 없었다. 역종을 바꾼다..는 의미. 마침표의 뉘앙스는 담겨 있지 않았었다.

이중국적 문제부터 김일병의 '사고'까지. 병역 기피자들에 대한, '문제사병'에 대한 들끓는 분노가 돌아간 곳은,

군대를 다녀와야 사람이 된다거나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대/한/민/국/에 살아남을 자격이 있다는 식의

이야기뿐이었다. '우리는 하나였다'란 반쪽짜리 진실의 울먹임처럼, 이아이들 모두 다 내자식같다는 말이 담은

교묘한 울타리처럼.

군대 안 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가 그만큼의 농밀한 부러움임을, 숱한 '문제사병'을 죽여왔던 총구가 이제

밖으로 돌려졌을 뿐임을 솔직히 말하지 못하고, 그저 감정의 극단과 극단에 선채 배설을 위한 쉬운 해답과

쉬워보이는 상대만 밟아대는 걸까.


근 1년만에 전투복을 입어봤다. 월욜, 화욜 훈련했던 석박사들보다 약간은 말을 안 듣는다는 교관들의 얘기에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순순하게 충성~이라고 경례를 올려붙여주고, 툴툴대면서도 열을 맞춰

'이동'하는 나 자신과 개구리얼룩 속에 묻혀버린 사람들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어쩔수 없이 착해빠진

먹물들이라고, 풍선처럼 부푼 머리에 감정이 눌려버린 공허하고 얕은 인간이라는 게 훤히 드러나는 거 같았다.

강렬하게 뭔가가 가슴에서 치받아 오는 걸 느끼면서, 정말 자연스럽게 티비에 나올법한 예비군 아저씨의 모습..

웃도리 풀어제치고 주머니에 손찌르고 모자삐뚜름히 돌려쓴..을 연출할 수 있었지만, 교관 아저씨가 옆에 지나갈

때마다 슬그머니 손을 빼내고 단추를 채우는 척했다. 배터지기 직전의 개구리같이 바람만 잔뜩 들어갔다.

총을 쏘기가 싫었다. 훈련소 때 탄알이 총안에서 뭉그러졌던 사건 이후 삼사십살은 훌쩍 넘은 총을 믿을 수도

없었지만, 총을 다룰 때 나는 신경질적인 금속성과 호흡을 깨뜨리는 파열음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못쏘겠습니다'하고 열에서 빠져나왔으면 좀더 맘이 편했을라나. 굳이 말앞에 '머리가 아파서'란 말을 붙이고

말았다. 어찌 생각하면 솔직하지 못했고, 돌이켜 생각하면 그게 이런 '연극'에서 내가 맡은 역할에 합당한

대사라고 생각했다.

주어진 역할이다. 어찌됐건 저들은 교육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고, 약장수처럼 떠들어대며 말안듣고 통제안되는

예비군들에게 군인 정신을 불어넣어야 한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맡은 역할은 정말 쓰잘데기없고 짜증만 나는

훈련을 최대한 개기고 민간인임을 잊지 않으며 군복이 주는 마력과도 같은 압박감과 대치하는 것.

말로 자신의 사정..개인적인 의사를 이해시킬 여지도, 필요도 없다.

원하는 게 각기 달라, 결국 그 누구도 만족스럽지 못하고 양쪽 다 신경만 곤두선채 스스로 회의가 들고 만다.

대체 이 나라는 어찌 되어가는 것이냐, 그리고 대체 이 같잖은 병정놀이를 왜 해야하냐.

그런데 교관들의 홈경기였고, 내겐 일종의 어웨이경기였다. 더구나 복장과 말투와 스케줄..같은 것들을 장악당한

채, 스멀대며 돋아나는 이전의 원치않던 습관들과 기억들을 쓰게 바라봐야했다. 여전히 북괴란 단어를 쓰고

정신나간 김일병을 저주하며, 그리고 갈수록 전우애가 상실된 채 '빠져가는' 군대를 한탄하는 교관들이.

전쟁놀이, 병정놀이에 몰입한채 진지하게 계급과 조직을 신봉하는 그들은 너무 많은 고지를 선점하고 있었다.

'이왕 온거 열심히 하다 나가자'라는 맹목적인 성실함의 호명, '누구 한명이 방만하면 나머지 동료들이

힘들어진다'라는 식의 연좌제적인 책임감 부여. 그러한 식의 꼬임은 언제나 말문을 막고 만다. 내 맘대로 하면

되는 건줄 알았는데, 막상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눈앞까지 바싹 끌어당겨졌었다. 참 다양하게

응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내 의지, 내 각오를 믿고 뛰어들고 나니 주위에서 옷소매를 잡아당기는, 눈길을

잡아당기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다. 바꾸어 보려다가 바뀌고 만다는, 진부한 얘기.


그리고 호루라기.

규칙적인 파공성으로 신경을 긁어놓는 그 소음을 무시하기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딘가에서 어딘가로

이동을 '강제'하면서, 발은 안맞춰도 좋으니 열만 맞춰라..고 했던 교관들. 발을 질질 끌면서도 양순하게 끌려가는
 
머리만 굵은 얼룩무늬들. 1번부터 99번. 제각기였던 스텝이, 호루라기가 울리기 시작한지 얼마안돼 대략 일정한

발소리를 만들고 있었다. 호루라기 소리와 재우치는 교관들에 짜증을 내면서도, 발이 한덩이로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억지로 엇박을 내딛으려 해봐도, 아님 그 거슬리는 소리를 쌩까보려 해도 내 몸은 헐떡이며 호루라기

소리하고 붙어먹고 있었다.

짜증나 죽을듯이 머리에서 거부감을 울컥 퍼올리는 것 만큼, 내게 삽입되었던 행동 패턴들과 양식들이 어느새

내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 문득 깨달아버린 왼손의 담배처럼. 항시 경례를 준비해 비워놓아야 했던 오른손을

피해 왼손에 걸려진 담배는, 일이병때 그곳에서 내 낙하지점을 대략 상상해보기 위한 낙하물의 역할도

맡았더랬다. 빠져나왔다고 생각한지 일년여만에, 다시 그 말도 안되게 어이없고 쓰레기같은 곳에 처했더니

온몸의 구정물이 들고 일어나 화답하는 꼴이다. 그치만 어째야 했는지. 어떻게 했으면 만족했을지도 사실

모르겠다. 경례구호에 맞춰 어영부영 모자끝쯤 갖다붙였던 손가락 두개쯤..을 아예 쉬게 냅뒀어야 했을까. 총

들고 다니며 전쟁얘기, 핵폭탄 얘기만 해대는 동선을 못견디겠다고 주저앉았어야 했을까.

누군가는 당연한듯 명령하고 누군가는 깍듯이 각진 자세로 부름을 받잡는 조직을 인정치 못하겠다고 뻗대봤어야

했나. '다'나 '까'의 말투 따위 엿먹으라고 귀를 틀어막아버릴껄 그랬나..

대체 왜 하는지도 모르겠는 예비군훈련따위,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한다고, 원치 않는 공간에 처하진

않겠다고 결심했었는데. 애초에 가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굳이 꾸역꾸역 찾아가서 조국을 위해 총을 쥘

몸뚱이만을 요구하는 곳에서 짐승처럼 '부려질' 필요는 없었던 거다. 근데...애초 군바리로 이름불리기 전부터,

그리고 지금도, 한꺼풀만 들추면 인간이 사육되는 곳에서 살고 있는 거다. 남자나 여자나.

티비를 보면 진행자의 말끝마다 미친듯이 감탄하는 방청객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에는 대한민국과 독도와 축구에

몰입해버린 대한민국 국민들이 있을 뿐이고. 현실적으로는, 앞으로 6번 더 예비군 훈련을 받아야 한다는.

제대..전역. 轉役. 그 공간은 근 반세기동안 그러했듯, 내 몸을 숙주로 삼고 사회를 칭칭 옭아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었다.

이런 제길, 잡탕인 거다. 에이리언을 품은 시고니 위버가 자살을 택하듯, 최초의 보균자가 숨을 끊었어야 했나..?

..대답이 궁해졌다. 어쩔꺼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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