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 2013년 2월 19일(화) PM 06:15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이 사진에 나온 장소가 어디인지 맞춰주세요.

 

+ 초대장 받을 이메일 주소~!^-^*

 

 

● 힌트 : 아래 장소와도 연관이 있는 곳입니다~*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8



 

Burst샷으로 NX20을 폭발시키는 순간, 골키퍼가 화면 끝에서부터 내달려와 공을 하프라인 너머까지 차올렸습니다.

 그리고 Burst샷이 터진 또다른 어느 순간인가는, 하프라인 언저리에서 통통 튀던 공이 멀찍이 이어졌구요.

 

잠시 시간을 되돌려, 수원삼성과 울산현대의 선수들이 경기장에 도착한 순간을 되짚어봅니다.

 

울산현대와 수원삼성 블루윙즈의 버스가 차례로 나타났었습니다.

 

파노라마 모드로 한눈에 담기던 수원월드컵경기장의 전경.

 

 응원석 앞에서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경기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후끈 관중석을 달구는 녀석.

 

 

 

그리고 온통 파란 물결이 넘실대던, 후회없는 사랑을 하고 있다는 수원삼성의 팬들.

 

 

 

 경기 시작전 파이팅을 다짐하는 빅버드의 용사들입니다.

 

 그리고 경기장 안의 선수들에게 기와 운을 전하는 열두번째 선수들의 눈빛.

 

 

 아슬아슬한 순간들이 연이어 지나갔고.

 

 골키퍼는 있는 힘껏 공을 상대 진영으로 차올렸으며,

 

 

 격렬한 공다툼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는 분위기가 지속되었습니다.

 

경기장 곳곳에서 흰색 유니폼의 울산현대와 파란색 유니폼의 수원삼성이 격돌합니다.

 

 

 

 누군가가 그라운드 위를 뒹굴면서 고통을 호소할 때는 200mm 망원줌렌즈로 확 당겨서 그의 아픔을 함께 나누기도 하고.

 

 

 공을 차올릴 때는 온몸의 무게를 실어 근육 마디마디에 힘을 실어 뻥, 있는 힘껏 차올리는 게 사진에 담겼습니다.

 

 

그리고 동점골이 터지는 순간, 왠지 느낌이 온다 싶어 동영상 촬영 버튼을 누르자마자 뻥 차낸 공을 따라갔습니다.

 

 

 전반전 중간즈음에 마셨던 아이스커피의 자잘한 얼음들은 녹아내리고 있었지만, 경기장의 열기는 후끈하기만 했죠.

 

 그리고 전반전을 1:1로 마친 상황에서 투입된 박지성 선수.

 

 

그가 경기장 관중석을 향해 대포알같은 슛을 뻥뻥 내지를 때, 저는 한숨을 뻥뻥 내질러야 했습니다.

 

사소한 불찰로, 그 순간 배터리가 모두 닳아버리고 말았으니까요. 마지막 샷은 박지성의 시크한 반신샷입니다.

 

 

 

by 스마트카메라 NX20.

 

 

 

 수원월드컵 경기장으로 가는 길, 앞서 걸어가는 씩씩한 꼬마의 뒷모습이 너무도 늠름해 서둘러 카메라를 쟁여들었습니다.

 

 경기장이 가까워질수록 인파는 거칠고 강력한 파도처럼 넘실대기 시작했고, 공을 비뚤게 맨 꼬마는 자못 비장해졌습니다.

 

 경기장에 들어서기 전, 삼성의 스마트한 제품들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호기심에 반짝거립니다.

 

 

 어느 곳에선가 갑작스레 등장한 색색의 팔레트, 화장도구도 아니고 이건 뭘까요.

 

 토실토실 귀여운 꼬마 숙녀가 수원삼성의 승리를 기원하며 브이를 척, 내걸었습니다.

 

 이 꼬맹이 녀석은 장난스럽게도 아예 배에다가 그리는군요. 참외배꼽이 툭 튀어나온 위에요.

 

 이 친구는 아마도 외국에서 왔나본데, 즉석에서 레플리카를 사서 입을 정도라면 꽤나 열성팬인 거겠죠?

 

 선그라스도 멋들어지게 척 걸치고는 양손 가득 승리의 브이를 만들어보였다가 쑥스러웠는지 혀를 빼무는 게 귀엽네요

 

 빅버드의 승리를 맞이하러 당당히 입장하는 아버지와 아들, 마치 대부의 알파치노처럼 멋진 목도리가 인상적입니다.

 

 바디페인팅을 꼭 이렇게 뺨에 하란 법은 없지만, 이 아이는 왠지 나중에 축구선수가 될 것 같은 눈빛을 쏘아냅니다.

 

 

 그렇게, 모두가 파란 색 물결속에 뛰어들어 경기장의 부푼 함성을 불어넣습니다.

 

어딘가에선 꽃가루가 폭죽처럼 번지고, 열기를 못이겨 벗어던진 맨살에선 번들번들 땀이 차오릅니다.

 

 

이 사랑에 후회는 없다, 수원삼성을 향한 팬들의 마음이 둥근 공을 움직여 2:1의 승리를 얻어내기까지

 

NX20을 통해 경기를 보고, 팬들을 보고, 둥근 공만큼이나 둥근 마음들을 보았습니다.

 

 

by 스마트카메라 NX20.

 

 

 

나제통문, 라제통문, 혹은 그냥 '통일문'이라고도 불린다는 이 곳은 아주 짧고 자그마한 동굴 하나가 있는 곳이다.

 

비록 동굴은 작고 석벽은 야트막하지만 과거 신라와 백제 두 나라의 자연적 경계 역할을 했다는 데서 그 역사적

 

의미와 무거움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삼국이 정립했던 시대에는 동굴 서쪽, 이켠에는 백제의 군사들이, 그리고 저쪽켠에는 신라의 군사들이 삼엄하게

 

대치하고 있었을 거다. 호시탐탐 상대의 동태를 살피고 이상 징후는 없는지, 특이한 동향은 없는지 살피는 와중에도

 

두 나라 군대의 깃발은 저렇게 바람을 희롱하며 나부끼고 있었을 거다.

 

아, 그러고 보니 동굴 아래편으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과거에도 이렇게 다리가 동굴 앞에서부터 뻗어나왔던

 

모습이었을까 아니면 다리없이, 조금은 더 가파르고 험난한 구멍이란 느낌이었을까.

 

그야말로 시골의 한가로운 정경이다. 개울은 맑고 차게 흘러내리고, 그 물을 뿌리 깊숙한 곳에서부터 움켜쥐고선

 

우쭉우쭉 새순을 밀어올리는 초록 나무와 연둣빛 풀떼기들.

 

가만히 다가가보니 나제통문이라고 돌로 된 간판이 동굴 위에 남겨져 있었다. 저건 돌을 쪼아서 만든 걸까.

 

아니면 시멘트로 치덕치덕 덧바른 후세 사람들의 짓일까.

 

동굴의 반대편으로 뛰어가서 온 길을 되돌아보니 풍경이 확 달라졌다. 단순히 해가 기우는 방향을 거슬러 달린

 

때문이라기엔, 왠지 백제와 신라의 천년 전 경계를 넘었다는 실감이 턱없이 육박해왔기 때문이라 믿고 싶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문을 경계로 양쪽 지방의 언어나 풍습이 확연히 다르다고 한다. 티비나

 

라디오를 틀면 온통 '교양있는 서울사람들이 쓰는' 표준어만 나오는 이 시대에도 양쪽의 사람들은 제각기의

 

오랜 사투리를 지켜오고 있는 셈이다.

 

요새 드라마를 보면 퓨전사극이니 뭐니, 조선시대 사람이 현대로 넘어오기도 하고 막 그러는 거 같던데, 왠지

 

이 동굴을 특정한 타이밍에 특정한 조건을 충족하고 지나가면 순식간에 고백신, 삼국이 정립했던 그 시기로

 

돌아갈지도 모르겠다. 예컨대 비오는 날 깊은 밤에 피티체조를 하며 지나간다거나.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 90년대 말 집회 현장에서 그의 연설을 몇 차례 들을 기회가 있었다. 누구였더라,

옆에서 저 사람이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을 선도했던 사람이라고 내게 알려줬더랬다. 골리앗 투쟁? 그게

뭐였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 싸움이었는지 알고 난 건 그 후였다.


이미 그때도 조금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골리앗 위에서 '고작' 14일 버텼다고? 그전엔 '고작' 128일동안 투쟁을

이어갔다고? 주변엔 1000일이 가깝도록 싸우고 있는 현장들이 쉽게 눈에 띄는 데다가 망루 위로, 굴뚝 위로,

옥상 위로, 올라가 몇 달을 버티는 소식들도 쉽게 들리고 있으니까 그랬다. 그야말로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세례를 받은 초기 세대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의 책은 '그땐 그랬었지'류의 회고를 하지 않는다. 대개 '-한다'라는 식의 현재형 문장을 구사하는

그는, 그의 경험이 여전히 유효함을, 그가 체감한 노-자간의 굵은 갈등이 조금은 세련되어졌을지 몰라도 여전히

같은 모양새로 작동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1000일 가까이 장기투쟁중인 사업체들이 겪는 이야기나

128일 투쟁했던 현대중공업의 이야기나. 지금 한국사회를 온통 장악한 삼성의 천하무적스러워 좌절스런

이미지나, 90년대 대통령까지 넘보았던 거대했던 현대의 압도적인 존재감이나.


그러고 보면 '내눈에 흙이 들어오기 전까지 노조는 안된다'던 정주영의 현대도 어느새 (상대적으로) 쇠락했다.

대대손손 해먹을 기세인 이건희의 삼성도, 지금은 비록 통제불능의 거악으로 보이지만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갑용은, 본인의 경험을 최대한 적나라하게 살려내어 '작은 실무 교재'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투쟁 교본'. 김대중과 노무현을 거치며 더욱 위축되고 천대받던 노동을 위해 시행착오와

착시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그의 책 제목은 참 우직하다. '길은 복잡하지 않다'. 길은 복잡하지 않단다. 마음이 복잡할 뿐. 정말 그런진

모르겠다. 다만 그가 '강성/온건 노조'의 거짓된 구분을 거부하고 '단결'과 '투쟁'만이 노동자의 힘이라고

재이재삼 다짐하며 노동현장에서 투쟁하던 이야기나, 최초의 노동자 출신 구청장으로 재임하던 때 노무현의

공무원 노조에 대한 징계를 거부해 중도사퇴당한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궁금해진다.


무섭도록 단순하고, 심플하게 살아온 사람이다. '민주화 유공자'란 이 사람은 앞으로 또 어떻게 살게 될까.

그의 부인은 그를 '계급주의자'라고 칭한다. 국가나 국민 따위의 알량한 실체 없는 거품을 제하고 나면 늘

모든 일은 특정 계급에게 이익이 되고 다른 계급에 손해가 될 뿐이다. 지금의 민주노총은-한국노총은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정파적 이해에 갈린 진보정당들 역시-노동자 계급, 밥벌이를 위해 자신의 시간과 육체를

팔고 있는 계급을 제대로 지켜내고 있지 않다는 그의 날카로운 말들이 약이 되길 바란다.



'34년 전인 190년, 평화시장 시다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 노동청을 찾은 청년

전태일을 맞은 노동청의 공무원은, 노동운동을 그만두라고 오히려 전태일을 협박했다. 노동청이 노동자를

위하는 곳인 줄 알고, 근로 감독관이 잘못한 업주를 감독하는 노동자의 편인 줄 알았던 전태일은 큰 충격을

받는다...전태일 열사가 분신한지 34년째 되는 2004년 11월 13일,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위원장은 '공무원

노동자 총파업'을 선언하였다...


'공무원도 노동자'라는 선언으로 이제야 공무원 노동자들은 열사에게 진 빚을 갚았다. 더이상 노동자에게

저항의 대상이었던 공무원,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닌 정권의 심부름꾼인 공무원은 없다. 공무원 노동조합이

그렇게 만들 것이다...공무원 노조는 반드시 합법화될 것이다. 지금 정권에서 되지 않는다면 다음 정권이던

그 다음 정권이던 그들이 노동자란 사실이 변하지 않는 한, 그건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니 노무현 정부여, 나를 고발하라! 누가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되는지 두고볼 일이다."

(2004년 공무원 노조 파업때 파업 참가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를 거부하며 이갑용 구청장이 쓴 글, p.246)

길은 복잡하지 않다 - 8점
이갑용 지음/철수와영희

알선수재 및 배임혐의로 기소된 정몽구. 그가 조중동, 혹은 동조중의 엄호를 받아 보석으로 나오곤 두번째

공판이었다. 대각선으로 내 바로 옆자리에 앉아있던 검버섯핀 왕년 깍두기 스탈의 할배가 정몽구인줄은 몰랐다.

그는 포승을 차지도, 병원복을 입지도 않고 방청석에 앉아 있다간, 특별히 제공된 푹신한 의자에 앉아 네명

피고인 중의 수괴임을 자랑했다.--;


검찰은 변호인단이랑, 증인이랑 싸우고 있었다. 초동수사 쯤에 어설프게 뱉었던 말들의 사전적의미를 잘

주물러서 방향을 바꿔보려는 증인들의 '잘 기억이 안납니다', '모르겠습니다' 랩소디. 현대우주항공을 왜

두차례나 증자했는지, 0원으로 평가받은 주식을 왜 5000원으로 몇백억어치씩 발행한건지, 그대들에게

구조조정이란 결국 '청산'의 다름아닌 말이었는지, 정몽구는 자기 개인빚을 왜 계열사에 떠넘긴건지, 하나도

풀리지 않는 신비. '절차적 정의'를 찾는 과정은 너무도 지난하다.


네 시간동안 에어콘도 안 나오는 답답한 법정에서, 어디 장례식에 온 양 깜장양복쟁이 현대맨들이 우글우글한

사이에 껴서, 선배가 시킨대로 말하나 빼놓지 않고 다 적고 있으려니 문득 한심해졌다. 아무 알맹이도 없는, 이미
 
모든 신문들에서 몇번씩 우려낸 이야기를 왜 이렇게 소중히 받아적고 있을까. 펜도, 종이도 아깝단 생각.

증인이랑 변호인이랑 입맞춘 게 뻔히 보이고, 논리도 어떻게 끌고 갈지 뻔히 보이는데-국가 경쟁력 운운..-왜

여기서 웃기지도 않은 개그를 보고 있어야 하는지 하고.


신문은 '일용'할 정보를 판다. 유효기간은 하루. 만물은 유전한다. 며칠전까지 현직이던 조부장판사의 법조비리

이야기로 며칠째 시끄러웠지만, 계단형의 진보를 무작정 믿지 않는다면 무의미하다. 우리는 여전히 같은 기둥을

휘감고 뺑뺑이치고 있고, 신문에서 다루는 사건, 사람, 논조, 모든 건 무성생식중이다. 기자란 건, 참 허무할 거

같다. 보람을 찾을 수 있을까. 글나부랭이로, 무엇을 전하고 무엇을 바꿀 수 있을지. 서래마을같은 엽기적인

사건도 몇년 전, 또 몇년 후 마주칠 사건. 정몽구의 보석, 그리고 웃기는 공판도 몇차례씩 보아온 그것. 데자뷔는

뇌의 작용만이 아니다.


하루살이에게나 소중한 게 신문아닐까. 어쩌면 지금 중요한 건 무슨무슨 사건..이 아니라, 도돌이에서 다카포로

무한반복하는 리듬이다. 신문이 죽는 이유는, 더이상 new's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디선가 본 기사, 어디선가 본 말투. 아마도 예측가능한 결말. 재미없다. 원심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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