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발 4,130미터. 이 표지를 보고 나자 생각보다 훨씬 감개무량한 느낌이 들었다. 여기를 오려고 여태 걸었구나, 싶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높이까지 걸어올라와 보았구나, 싶기도 하고. 그냥, 질리도록 걷고 싶었는데 그야말로 5일간 징하게 걸어서 도착한 곳.

 

 

그리고 짙은 안개속에서 헤엄치듯 조금 더 걸어가니 비로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가 나타났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예기치 않게도 산악인 고 박영석의 기념패. 2011년에 안나푸르나 등정을 왔다가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

 

그리고 생각보다 크고 황량하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시즌이 아니라 더욱 사람이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앞서 걷던 미국 친구 하나는 벌써 다이닝룸에 누워서는 우쿨렐레를 연주하고 있길래, 슬쩍 도촬. 훌륭한 풍경이다.

 

그리고 한쪽에는 새로 롯지를 짓고 있는 공사판이 있고, 그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위한 텐트가 짙은 구름 속에 숨어있다.

 

새로 지어지는 롯지에 들어갈 침대들. 그러고 보니 트레킹 중에 내가 누웠던 침대는 모두 저렇게 생겼던 거 같다.

 

멀찍이 흐릿하게 보이는 탑 같은 형체가 삐죽 솟았길래 슬쩍 가봤다.

 

가는 길에는 온통 누군가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사진과 글귀가 가득했고.

 

 

탑 역시도 티벳 불교식의 깃발을 온통 휘감고서는 안나푸르나를 바라보고 향했던 사람들을 품었다.

 

 

 

비교적 최근에 늘어뜨린 것처럼 보이는 선명한 빛깔의 깃발은 '부처의 눈' 그림을 새긴 채 산아래를 굽어보는 중.

 

4,130미터 고도의 이곳에서도 공사판은 별다를 거 없다. 물론 건축용 부자재들은 하나씩 전부 사람이 이고지고 날라야 한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겠지만, 그렇게 날라온 문짝과 유리와 나무판넬들을 가지고 건물을 세우는 건 기술자들의 몫.

 

이렇게 촘촘한 발받침을 갖고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도 할 테고. 저렇게 간격이 좁으면 오히려 불편하지 않을까, 괜한 걱정.

 

여기까지 무사히 트레커들을 인도해서 끌고 온 가이드와 포터들은 자기들끼리 모여 이야기에 열중이다.

 

모두들 추위를 막기위해 오리털 파카에 네팔 전통의 양털 모자를 썼다.

 

그리고 이미 이 곳 다이닝룸에 자리를 잡은 한 트레커는 침낭 안에 들어간 채 꽁꽁 옷을 싸매고 모자까지 쓴 채 독서삼매경.

 

아침마다 향을 새롭게 갈아 피울 텐데, 저렇게 나무벽에 찰싹 붙여서 태우면 위험하지 않으려나 걱정스럽기도 하고.

 

애초 제대로 씻을 생각도 없었지만, 그래도 고양이세수라도 하려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주인 아저씨가 양동이를 내준다.

 

여기는 물도 귀하다면서 저 양동이에 달린 수도꼭지를 틀고 세수도 하고 발도 닦고 하라는 것. 대충 씻고 치웠다.

 

 

그리고, 짙은 안개를 뚫고 불현듯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나타났다. 그야말로 두둥실, 구름 사이에서 삐쭉 고객만 내밀었다.

 

근데 이토록 가까이 다가섰을 줄이야. 거의 코앞이잖아 싶을 정도로 눈앞을 압도하는 위용과 그 디테일.

 

이내 짙은 구름 속으로 다시 숨어버렸고, 한참을 바라보아도 좀체 다시 나타날 기미가 없더니,

 

해가 거의 떨어지기 직전 다시 한번 슬쩍 안부인사를 건넸다. 굳 나잇. 내일 새벽에 봅시다.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도착해서 점심을 주문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가는 길에는 네팔의 공작새와 염소 비슷한 동물들이 곧잘 출몰한다고 한다. MBC에서 ABC로 가는 길은 대체로 완만한 오르막길.

 

해발 3,700미터. welcome을 저렇게 중간에 하나 쉬고 적어놓으니 뜻이 미묘하다. well, come to 블라블라. 오시던가, 하는 시크함.

 

 

앞마당에 놓인 테이블과 빨랫줄에서 빨랫감을 넣고 있는 롯지의 주인 아저씨와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마시는 중인 가이드 꺼멀.

 

 

등산화는 앞코가 긁히고 옆엣 쿠션이 슬쩍 터지고. 그러고 보니 생각보다 많이 상했다. 잠시나마 신발을 벗고 따뜻한 햇살에 일광욕.

 

그리곤 맨발은 얼음같이 차가운 히말라야의 자연수에 담그고 땀을 씻어내고 열도 빼내고. 세째 발톱이 거의 시꺼매졌다.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한숨돌린 일꾼들이 등짐을 메고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길, 그러고 보면 굉장히 스펙터클한 자연의 품안이다.

 

 

이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찍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이렇게 잠시 몸의 근육들을 풀어주기도 하고.

 

나와 함께 페이스를 맞추던 체코의 70대 노부부 두 분도 느지막히 올라와선 등산화부터 풀어젖히고 계신다.

 

롯지 안을 슬쩍 구경해보니 온갖 세계인들의 증명사진들이 한쪽 벽에 빽빽히 붙어있는 게, 여기 다녀왔다는 기념삼아 남겨둔 것인 듯.

 

다이닝룸 안에서 점심식사를 시작하신 두 부부. 불빛 하나 없이 유리창 너머로 스며오는 햇살에만 기대어 갈릭스프를 드시는 중.

 

 

나는 달밧. 따뜻한 콩스프인 '달'이 들어가니까 몸의 구석구석까지 콩단백과 뜨끈한 온기가 전달되는 느낌이다. 막판 스퍼트 준비.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싶은 게, 점점 추워지기도 하고 시계거리도 엄청 짧아지기 시작했다. 조심조심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향했다.

 

 

 

키작은 관목들, 그리고 내가 가려는 길을 거슬러 흘러내리는 제법 맹렬한 개천, 끊긴 듯 이어지는 오솔길 하나. 시야는 제로.

 

누군가 길 옆 풀떼기들을 가지고 이렇게 머리채처럼 땋아놨다. 무슨 의미가 담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정성들여 꼼꼼히 땋았다.

 

 

걷다 보니 굉장히 초현실적인 느낌이다. 몸이 둥둥 떠있는 것 같기도 하고, 개천과 산과 언덕과 오솔길. 이런 그림같은 풍경이라니.

 

 

 

 

이런 식의 완만하고 몽환적인 풍경 속을 한참 걷고 또 걷는데, 전혀 힘들지도 않고 그냥 가볍고 유쾌하게 산책하는 기분이다.

 

 

 

 

 

그렇게 한참. 도무지 안개인지 구름은 걷힐 생각이 없어보이고, 저 너머로는 분명 만년설을 이고 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와

 

안나푸르나 1 봉우리 등등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을 텐데 당장은 한발자국 앞의 보랏빛 꽃송이들이 눈길을 잡아챈다.

 

 

 

 

당장 눈앞의 길은 보인다지만 대체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계속 이어지기는 하는지 걱정스러울 정도로 휘적휘적 이어지는 길.

 

 

 

바위들도 다들 모서리가 날카롭고 거칠기 짝이 없어 한발한발 내딛을 때마다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자칫 넘어지거나 스텝이 꼬이면 망.

 

 

 

앞서거니 뒷서거니, 세상에 온통 나와 가이드 꺼멀 둘 뿐인 듯 하다. 그는 겨울엔 이 곳도 온통 허릿춤까지 쌓인 눈이 가득하다며

 

그때는 알아서 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지금은 그래도 걷기 무척 편한 거라며 내게 듬직한 등을 보여줬다.

 

 

그리고, 아무런 징조도 없이 불쑥 나타났다. 나마스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해발 4,130미터의 트레킹 코스 종점이자

 

본격적인 안나푸르나 등산가들을 위한 시작점. 내게는 5일동안 내처 걸었던 전반적인 오르막의 꼭지점이기도 하다.

 

 

 

5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히말라야 캠프는 2,920미터, 점심은 3,700미터의 MBC, 그러니까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에서,

 

그리고 저녁은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서 먹기로 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 길, 정점을 찍는 날이다.

 

바깥이 시끌벅적하길래 눈을 떴다. 맹렬한 추위로 뼈마디가 온통 굳어버렸고 무릎도 발가락도 온통 아프지만, 일단 카메라를 쥐고

 

밖으로 뛰쳐나왔더니 맑은 하늘에 안나푸르나 봉우리가 보인다. 밤새 비가 오더니 그래도 아침만 되면 용케 비가 그치니 다행이다.

 

 

위풍당당하게 출발, 기온이 확실히 떨어져있어서 옷을 좀 두껍게 입을까 하다가 어차피 계속 걷다보면 열이 오르고 땀이 나니 패스.

 

MBC,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 가는 길에 있는 거대한 동굴. 비가 오거나 하면 잠시 앉아 쉬어가며 구름바다를 구경하는 것도 좋을 듯.

 

길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그렇게 오르막 일색인 것도 아니고, 적당한 경사의 오르내리막이 이어지는, 그리고 중간중간

 

날 듯이 걸어갈 수 있는 평지 구간도 안배되어 있다.

 

 

걸어가면서 점점 눈에 잘 띄는 삼각뿔 모양의, 마치 피라미드 같은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

 

얼마 가지 않았다 싶은데 벌써 시야에는 다음 마을, 데우랄리가 보인다. 해발 3,200미터상의 마을이자 그 위로는 단지 ABC와

 

MBC만을 두고 있는 하늘아래 첫동네이기도 하다. 각기 안나푸르나(7,200여미터)와 마차푸차레 등정(7,000미터)을 등정하기 위한

 

베이스캠프인 ABC와 MBC 그 두개는 딱히 마을이라고 부르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이니깐.

 

 

물살은 한결 더 급하고 격하고, 유량도 많다. 최근에도 이 곳에서 한국 트레커가 한 명 실족해서 사망했던 일이 있었을 만큼,

 

잠깐의 방심이나 실수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곳이다.

 

 

데우랄리에 도착했을 즈음, 하늘은 더 없이 파랗고 햇살은 정말 눈부시다. 자외선지수도 엄청 높을 테니 잠시 앉아 쉴 때마다

 

선크림을 챱챱 발라주고, 안경 대신 렌즈에 선그라스를 끼고 다니기를 정말 잘했다고 실감하는 하늘이다.

 

 

잠시 앉아서 땀도 식히고 물도 좀 마시고 나서는 다시 출발. 이제 마차푸챠레와 안나푸르나가 코앞이라고 하니 없던 기운도 솟는다.

 

 

햇살이 눈부시지만, 그 햇살 속에 물고기 꼬리 모양으로 갈라진 마차푸챠레 봉우리가 신기루처럼 둥실 떠 있다.

 

 

그리고, 데우랄리 위쪽으로는 계속 걷기 무난한 코스가 이어지고. 사실 촘롱으로 들어선 이후로 그렇게 길이 험하다는 생각은

 

별로 안 들었던 거 같다. 푼힐 전망대쪽에서 촘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 제일 어려웠던 듯. 정확하게는 타다파니에서 촘롱 구간.

 

 

 

양쪽으로 봉우리가 우뚝 솟아난 틈새, 그 협곡을 따라 걸어올라가는 길이다.

 

 

한쪽으로는 히말라야의 만년설이 녹아서 내리는 듯한 회색빛의 시냇물이 요란하게 흐르고, 한쪽으론 제법 평평한 공간에 꽃들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새하얀 암벽. 히말라야의 숨겨진 비경이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가 드디어 시야에 잡히다.

 

 

고도가 높으니 나무같은 것들은 안 보인지 오래. 키작고 조그마한 식물들이 빽빽히 들어찬 초원이라고 해야 하나.

 

 

왔던 길을 돌아보니 구불구불, 길이 참 이쁘기도 하다.

 

그리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해발 3,700미터 고지다. 아침에 먹은 갈릭수프 덕분인지 고산병의 징후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얼마전에 막 새로 단장한 듯 말끔한 페인트칠에, 어라, 벽면에는 이러저러한 기하학적 문양까지 새겨넣었다.

 

그리고 눈이 멀도록 새하얗고 강렬한 태양. 기온은 서늘할 정도로 낮은데 햇살은 찌르는 듯 따가운 그런 기묘한 느낌.

 

마치, 왼발은 찬물에 오른발은 뜨거운물에 담그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려나.

 

 

 

 

그러고 보면 매일 비슷한 일정이다. 아침 7시반쯤 출발, 오후 4시에서 4시반쯤 대충 도착. 가끔 오후 6시까지 걷기도 하고, 혹은 아침의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움직인 적도 있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씩만 걸어도..하루 열시간 가까이 걷는 거구나.

 

 

히말라야 캠프의 롯지는 고작 세 동이던가, 위로 올라갈수록 롯지 수도 줄어들고 마을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곳이 많다더니 정말이다.

 

그래도 납작평평한 돌들로 이렇게 테라스도 만들고 계단도 쌓아두고, 생각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어서 놀랐다.

 

그렇다고 따뜻한 온수가 나온다거나 난로가 지펴지는 건 아니어서 꽤나 추웠지만, 덕분에 제대로 씻지도 못한 땀과 땟국물이

 

그렇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방금까지 열심히 걸으며 온몸 가득 흠뻑 젖었던 땀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뽀송뽀송해진 상태.

 

건물 외벽에 나와있는 요 단촐한 시설이 세면대. 여기에서 씻고 이닦고 발도 닦고.

 

어느 포터의 등짐. 대나무로 엮어 만든 등짐에 대충 질긴 천을 찢어 묶어서는 어깨끈을 만들었다.

 

히말라야 캠프 앞쪽의, 아마도 공용 설비라고 해야 하나. 뭐 딱히 롯지끼리 니꺼내꺼 갈라 쓰는 분위긴 아니라지만 여긴 위치상 공용.

 

속속들이 집결하는 트레커들. 촘롱 이후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오르는 길은 이길 하나밖에 없으니 사람들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눈인사만 주고받던 사람들이던 '나마스떼~'하고 인사를 나눴던 사람들이던 결국 몇번씩 얼굴을 마주치게 된다.

 

 

아직 우기의 끄트머리라 그런가, 그러고보면 4일차에 이르도록 하루도 빠짐없이 비가 왔다. 그나마 하루 빼고는 오후 늦게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걷는데 지장이 없었지만, 중간에 하루 비맞으며 마침 굉장히 오래 걷고 났더니 굉장히 타격이 크다. 옷도 다 젖고.

 

3천미터 어간에서부터 주의해야 하는 고산병. 머리가 깨질듯이 아프거나, 식욕이 없다거나, 몸이 무거워지는 등등 다양한 증세를

 

보인다고 하는데, 요새는 고산병 약으로 (혈관 확장효과 때문에) 비아그라를 많이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치만 현지 가이드의 추천을

 

듣건대, 그리고 내 경험상으로도 단언컨대, 고산병에는 마늘수프가 최고다. 갈릭 수프.

 

저녁은 간단하게 갈릭수프와 감자전 비스무레한 것. 갈릭수프는 기대 이상으로 꽤나 맛있었고, 몸도 따뜻하게 덥혀주는 효과까지.

 

네팔같은 빈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해주는 것 중 하나는 이런 기본적인 생필품들의 퀄리티를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느쪽이 칼날인지 헷갈릴 정도로 얇디얇은 저 손잡이들. 칼뿐 아니라 숟갈이나 포크 역시 마찬가지다. 칼날만큼 얇은 손잡이.

 

그리고 가스 버너. 한국의 등산가들이 갖고 와서 쓰다가 놓고 갔다던가. 왠지 이 동네에 딱 어울리는 물건이지 싶다.

 

 

그리고 전기조차 귀해서 알전구가 빠져 있는 내 숙소방. 전기가 끊긴 건지 전구가 비싼 건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내게 지급된 초 한자루.

 

바깥 기온과 딱히 다를 바 없는 실내 기온 때문에 오리털 침낭을 덮고 그 위에 이불을 또 덮었지만 별무소용이라, 따뜻한 물을 다시

 

주문해서 계속 마셨다. 양초도 어찌나 조악하고 조그맣고 얇은지, 생일 케이크 위에 올라가는 초라고 해도 믿겠다.

 

그래도 이토록 짙고 농염한 어둠 속에서도 양초 한 자루, 그리고 헤드랜턴 두개를 가지고 히말라야의 긴긴 밤동안 책도 읽고

 

일기도 쓰고. 가져갔던 책이 네 권인데 전부 다 읽고 돌아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로 향하는 거침없는 오르막길, 그 문턱에 있는 시누와. 시누와까지만 당나귀나 물소가 다니고 그 위로는

 

사람만 등짐을 메고 다닐 뿐이라고 한다. 덕분에 거머리의 습격도 없고 당나귀 똥밭도 없긴 하지만, 또 그래서 시누와 위쪽으로는

 

미네랄 워터를 팔지도 않고 그저 끓여서 정제한 물만 판다는 단점도 있다. 위로 오를수록 물가가 올라간다는 점도 있고.

 

시누와를 지나 2,310미터 고지의 밤부Bamboo에 다다라 점심을 먹기로 했다. 대나무가 많이 나는 마을이라 밤부, 맞다고 한다.

 

 

 

지천으로 피어있는 게 꽃나무고 풀떼기들인데도, 이렇게 플라스틱 케이스를 재활용해서 롯지 곳곳을 식물로 꾸며놓았다.

 

롯지 앞에서 바로 내려다보이는 대나무숲, 사람들이 몇명 들어가서 대나무를 베고 죽순을 채취하고 있었다.

 

이미 슬쩍 소슬해질 만큼 낙차가 느껴지는 기후, 맨땅바닥에 그대로 앉으면 엉덩이가 차가워져서 꼭 저렇게 양털가죽을 깔고 앉으라

 

말해주는 세심한 가이드, 그 덕분에 푼힐과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를 무사히 잘 다녀왔다.

 

그리고 점심. 달밧을 시켰는데 반찬이 색다르다. 역시, 대나무가 많이 나는 지역이라더니 밑반찬도 대나무 속대로 만든 요리. 맛있었다.

 

 

다시 배를 채우고 출발, 해발 2,920미터 고지의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그러면 대충 500미터 어간을 올라야 하는 셈.

 

체코에서 오신 70대 노부부의 페이스에 맞춰서 살살 '천천히 천천히' 올라가기로 했다. 한국어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가이드가

 

제일 먼저 배운 한국말은 역시나,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던가. 무작정 서두르고 다그치며 오르는 한국인들이 많은가보다.

 

한참 걸어가는데 옆에서 대나무 속대를 채취해서는 다듬고 있는 마을 사람들.

 

그리고 등짐을 메고 이마로 끈을 버팅기며 저 무거운 가스통을 이고 지고 나르는 사람.

 

 

앞의 체코 노부부를 챙기는 가이드도 굉장히 살뜰하고 세심한 사람이었다. 다리를 건너거나 경사가 가파른 곳을 지날 때는

 

원, 투, 쓰리, 발 딛을 곳까지 하나하나 지정해줘가며 인도해주고, 어떨 때는 이렇게 힘껏 지탱해주는 든든한 버팀목도 되어주고.

 

아무리 봐도 네팔어는 참, 저 글자를 어떻게 쓰는 건지 신기하기만 하다. 쓴다기보다 그린다는 표현이 맞을 거 같다.

 

 

점점 안개인지 구름이 휘감고 있는 지역이 늘어나고, 경사도는 완만해질 줄 모르고 끝없이 오르막인데다가 짐은 무겁다.

 

 

그래도 주변의 풍경들, 급류를 이루고 흘러가는 개울과 온통 초록초록한 가운데 점점이 뿌려진 꽃송이들.

 

그런 풍경을 천천히 음미하며 오르다보니 금세 히말라야 캠프. 2,920미터의 이곳에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이제

 

세개 포스트 남았다. 데우랄리,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그리고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촘롱, 해발 2,170미터까지 내려온 셈이지만 이제부터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는 죽 올라가는 한 길이다.

 

제법 큰 이 마을에서 당분간은 누릴 수 없을 따뜻한 물 샤워를 즐기고 떠나기 전, 새벽 댓바람부터 안나푸르나 봉우리들이 훤히 보인다.

 

안나푸르나 1,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두 갈래로 갈라진 물고기 꼬리를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 마차푸챠레

 

(마차 : 물고기, 푸챠레 : 꼬리)의 봉우리가 아무런 장애물없이 훤하게 보이는 아침이다.

 

 

밤새 묵었던 촘롱의 롯지. 그래도 비에 쫄딱 젖은 옷들과 우비들은 모두 방앞의 빨랫줄에 걸어놨지만, 밤사이에 말랐을리 만무.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그리고 마차푸챠레. 슬쩍 빗겨올라치는 햇살이 뚜렷한 선을 긋는다.

 

4일차의 아침. 오늘은 촘롱에서 시누와를 거쳐 2,920미터에 있는 히말라야 캠프까지 올라가는 걸로 일정을 잡고.

 

그새 태양은 불쑥 떠올라 산봉우리들과 거의 눈높이를 맞췄다. 여전히 시꺼먼 어둠 속에 잠겨있는 산의 아랫도리.

 

창밖으로 보이는 안나푸르나 봉우리의 저 디테일한 근육들과 하얗게 반짝거리는 만년설이 빚어내는 몽환스러움.

 

 

숙소의 내 방 앞을 장식했던 티벳 불교식의 부적들.

 

 

역시나 2인룸이었지만, 이 롯지의 여남은 개 되는 방이 텅텅 빈 채였으니 혼자 넓찍하게 쓸 수 있었다.

 

 

  출발해서 몇 걸음 옮기기도 전. 아침밥 짓는 연기가 부엌의 문짝 위로 새어오르고 닭들과 염소들이 겁없이 길을 막고 서는.

 

 

온통 산악지대다 보니 바퀴 달린 도구를 쓰는 것은 엄두도 못 낼 일, 당나귀를 시키거나 아님 사람이 직접 나른다.

 

 

이렇게 자기 키를 훌쩍 넘는 짐꾸러미도 어떻게든 꾸메꾸메 엮어서 한발한발 조심스레 옮겨다니는.

 

 

커다란 협곡 위를 가로지르는 흔들다리. 굉장히 길고 출렁거리는 게 장난이 아니어서 소름이 슬쩍.

 

그나마 다리 옆 얼마전까지 썼다는 허름하고 다 부서져내린 다리를 보니 이게 훨씬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잠시 쉬어가는 참, 촘롱 위에서부터는 미네랄 워터도 팔지 않고 그냥 히말라야 산에서 내려온 물들을 끓여서 정제해서 판다고 하더니.

 

그리고 위로 올라갈수록 점점 물값과 음식값이 비싸진다. 그래봐야 물 1리터에 400원 어간에서 1000원 어간으로 오른 셈이지만.

 

 

제법 화사하게 꾸민 집 한 채 앞뒤로 층층이 다랭이논이 가꾸어져 있고, 알록달록한 색색의 빨래가 길게 꼬리를 늘어뜨렸다.

 

 

여태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니 저 산등성이들 사이로 요리조리 걸었던 것만 같고.

 

잠시 쉬어가는 참에 벌러덩 누워 하늘을 보니 새파란 게 옆엣 롯지의 새파란 굴뚝과 깔맞춤을 했나 싶다.

 

 

 

어느 집에서는 갓 태어난 듯한 새끼고양이가 베개 위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지만, 이미 내 몸도 힘들어서 쓰다듬어줄 생각도 못하고.

 

 

아침에 출발하고 또 네다섯시간, 점심을 먹기로 한 마을, 시누와가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보니 걸음이 다시 빨라진다.

 

 

어제 촘롱까지 오는 길에 워낙 무리를 한 탓인지 오늘은 체코에서 왔다는 70대 노부부와 페이스를 맞춰 걷던 참이었다.

 

78살의 할아버지와 77살의 할머니. 오르막이건 내리막이건 평지건, 한결같은 페이스와 보폭으로 걸어가시는 게 뭔가

 

인생의 연륜이 묻어있다는 생각을 절로 들게 만드는 두 분. 그래서 결국 무턱대고 달리는 젊은이들보다 빨리 도착하던.

 

할튼, 해발 2,360미터 시누와에 도착. 점심시간이다.

 

해발 2,590미터의 타다파니, 롯지들이 몇채 옹기종기 모여있는 조그마한 마을이다. 집집마다 티벳 불교도임을 알리는 깃대가 섰다.

 

 새로운 메뉴에 도전, 치즈를 얹은 볶음면. 고수도 들어가고 몇가지 향신료가 독특했지만 전반적으로 좀 질척하고 양도 너무 많았다.

 

그러니까 오늘 새벽 4시반부터 걸은 코스는, 고레파니에서 왼쪽위의 푼힐, 다시 고레파니로 가서 데우랄리에서 벤탄티, 타다파니까지.

 

점심을 먹고 나면 출레, 구르정을 지나 촘롱까지 가기로 했다. 그러고 나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계속 오르막길.

 

 

 

점심을 먹고 계속 가는 길, 점점 구름이 짙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은 날씨다 싶더니 빗방울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어느 아저씨는 물소고기를 손질하느라 휘어진 모양의 네팔 전통칼을 능란하게 휘두르고 계시고.

 

롯지 앞을 장식한 염소의 뿔.

 

그리고 한사람이 겨우 지나는 오솔길을 턱하니 온몸으로 막고 선 물소 녀석. 네팔을 떠나기 전 네녀석 고기를 맛보고 싶었는데 아쉽.

 

 

잠시 쉬었다 가는 길. 물소가 지났던 길에는 거머리를 조심하라더니, 여기서 잠시 쉬다가 순식간에 거머리의 습격으로 피를 빨리고.

 

 

 

그리고 여기서 쉬던 참에는 우연찮게 며칠째 같이 걷고 있는 스페인 친구가 또 거머리에 당해버렸다. 어찌나 피를 많이 빨던지.

 

 

그리고 촘롱까지 가는 길, 더이상 억수같이 붓는 비를 견디지 못하고 카메라를 가방 속에 넣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사진은 없고,

 

그저 우비를 입고 가방에도 비막이를 씌우고 물을 뚝뚝 흘리며 물에 빠진 생쥐처럼 몇시간을 더 걸었다는 것만.

 

대략 오전 4시반부터 오후 6시까지 걸었으니까..13시간 이상 걸은 셈이다. 그리고 촘롱에서 도착직후 쓰러져 잠들다.

푼힐전망대를 내려와서 다시 고레파니의 롯지로. 어제 저녁 주문해놨던 아침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구릉족 고유의 빵과 감자,

 

그리고 오믈렛까지 든든하게 먹고서 다시 길을 떠날 준비. 이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가야 한다.

 

 

짐싸기 전, 밤새 싸늘한 추위에 오리털 침낭안에 들어가고 그 위에 이불을 덮은 채로 머물렀던 내 방에서 보이는 안나푸르나의 설봉.

 

이른 아침의 향내가 은은한 가운데, 입구에는 어김없이 꽃 한송이가 바쳐졌다.

 

롯지의 다이닝룸, 그리고 온갖 기초적인 음료와 간식류들.

 

하트 모양이라 해야하나, 길쭉한 고추 모양이라고 해야 하나, 할튼 숙소방 열쇠들.

 

달밧과 구릉빵과 온갖 메뉴들을 주문받아 만들어내는 주방.

 

어느결엔가 차갑게 식어버린 난로. 그 위의 온갖 세탁물들과 침대 커버들이 무색하다.

 

 

다시 내 방의 창문. 2인실이었지만 아직은 비수기인 덕택에 혼자 널럴하게 다 썼다. 침대 하나는 테이블로 삼고.

 

공용 화장실. 앙상한 세면대와 샤워기, 그리고 그나마 파스텔톤의 색감이 느껴지며 다른 곳의 화장실보다 낫던 곳.

 

출발, 여기도 허수아비를 세워두는구나.

 

 

고레파니에서 동쪽으로 계속 가서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챠레의 두 봉우리 아랫목까지 걸을 생각인데, 제법 이쁜 길이 이어진다.

 

다른 트레커들의 짐을 들어주고 계시던 포터 할아버지, 나이도 꽤 지긋해 보이시는데다 슬리퍼 차림이라니 깜짝 놀랬다.

 

 

그리고 꽃밭. 온통 노랑꽃이 지천으로 피어나선 사방에서 돌비서라운드로 들리는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마구 뒤섞인다.

 

 

 

해발 3천미터 고지대에서 오르내리막하다보니 온통 안개 속이다. 안개인지 구름인지. 그 중 하나의 꼭지점에서 잠시 휴식.

 

 

성수기에는 저 집에서 음료도 팔고 물도 팔고 그런다는데 지금은 그저 텅 비어있는 버려진 초막 같은 느낌.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노란 꽃들과 보라색 꽃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풍경, 그 가운데로 뻗어나가는 구불구불한 오솔길까지.

 

 

 

 

 

왜 그 등산화를 포함해서 등산용품들을 선전하는 광고에서 흔히 보이는 '히말라야 트레킹' 장면 같은 멋진 풍경들이다.

 

 

 

나무가 꺽여나간 그루터기 위, 소담한 이끼와 이파리들이 하나의 조그마한 숲을 이루었다.

 

중간에 들른 어느 마을, 하루에 20여킬로씩 걷다 보면 마을을 최소한 세네개는 지나게 되는 것 같다. 여긴 입구부터 버섯을 말리는 중.

 

잠시 차 한잔 마시며 쉬었다 갈까 하다가, 별로 힘들지 않은 길이고 걷기에 참 좋은 길이어서 그냥 계속 가기로.

 

 

 

 

중간에 만난 자그마한 폭포. 히말라야 산맥의 산들은 어찌나 물이 많은지, 사방에서 조그마한 내와 폭포가 흘러넘친다.

 

 

개울을 지나는데 깜짝, 이렇게 돌탑을 쌓아두는 건 우리나라에서만 보이는 건 줄 알았더니 아닌가보다. 납작평평한 이 동네에서

 

자주 보이는 돌들이 이런 돌탑을 쌓는데에는 굉장히 유리한 조건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중간중간 개울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굉장히 엉성하게 나무 두어그루를 묶어둔 것도 있고, 이렇게 제법 꼴을 갖춘 것도 있고.

 

 

 

알게 모르게 설렁설렁 올라가는 길 같기도 하고, 갈수록 점점 산이 깊어진다는 느낌은 짙어진다.

 

그리고 해발 2,870여미터의 고레파니에서 삼백여미터 아랫춤의 타다파니(해발 2,590미터)까지 도착해서 점심시간.

 

 

 

푼힐전망대, 안나푸르나 서쪽에 위치한 이곳은 해발 3,210미터로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에서 만나게 될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직전의 데우랄리쯤과 비슷한 고도를 점하고 있는 곳이다. 새벽 4시반부터 롯지를 나와 산행을 시작한 건,

 

이 전망대에서 해뜨는 걸 보며 동시에 안나푸르나 사우스, 안나푸르나 1, 마차푸챠레, 닐길리, 힌출리 등의 이름 높은 산들을

 

바라보고자 함이지만, 사실 밤새 구름이 많이 끼고 심지어 비도 조금 내렸어서 큰 기대는 없었다.

 

캄캄한 어둠 속을 헤드랜턴으로 헤치며 근 1시간가까이 헉헉대며 산행을 했을까, 해발 2,874미터에 위치한 고레파니에서 수직으로

 

약 400미터 가까이 올라가야 하는 셈이니 생각보다 거친 산행이었던 셈이다. 슬몃 하늘이 밝아진다 싶을 때 전망대에 도착했다.

 

저멀리 닐기리 산의 눈덮인 정상부가 짙은 구름 사이에서 신비스러운 빛을 내뿜는 게 보였지만, 전반적으로는 구름에 숨은 상태.

 

 

우선 전망대에 위치한 찻집에서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몸을 좀 녹였다. 보통 롯지에서는 50루피 내외(KRW 500원 정도)이던 찌야가

 

무려 240루피. 역시나 여기서도 네팔 본국 사람에 대한 우대는 여전해서, 같은 찌야가 고작 120루피. 대개 그렇듯 차 역시 반값이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 날카로운 삼각뿔 형태의 안나푸르나 사우스에 갈갈이 찢기면서도 하릴없이 몰려왔다. 볼 수 있을까.

 

그 와중에도 한쪽의 벤치에는 쌍쌍이 앉아 있는 커플들, 마치 알프스의 다정다감하고 온유한 산정에 오른 듯한 분위기를 연출 중이다.

 

구름이 없이 맑은 날이면 전망대 아랫춤에 붙어있는 그림처럼 쭈욱 이어지는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을 텐데.

 

 

끈덕지게 시야를 가로막던 구름들이 조금씩 산개하며 밀려나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푼힐 전망대의 전망탑. 하늘은 파래졌지만 사실 아직 태양이 지면 위로 떠오르지는 않은, 그야말로 일출 직전의 긴장감.

 

 

밤새 이슬이 내려앉은 어느 벤치에서 바라본 안나푸르나 봉우리들.

 

 

삐쭉, 봉우리가 구름 위로 솟았지만 여전히 계속 감질나는 시츄에이션.

 

그 와중에 봉우리들 틈새로 햇살이 빗겨 번지기 시작했다.

 

무슨 수묵담채화도 아니고, 옅은 금빛의 햇살이 시꺼먼 산 아랫도리를 부드럽게 헤집으며 서서히 채비를 갖췄다.

 

 

 

끝내 맑은 하늘을 못 보려는가 싶으면서도 뭐 딱히 서두를 거 있나,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이제나 저제나 목을 빼고 기다리는 중.

 

사실 딱히 안나푸르나 사우스니 마차푸챠레니 하는 봉우리들이 하나씩 툭툭 불거지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난 푼힐 트레킹 코스

 

말고도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로 넘어갈 거고, 그러면 계속해서 그 봉우리들을 바라보고 걷게 될 테니 급할 건 없다.

 

 

 

오호라, 그렇지만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안나푸르나 1과 안나푸르나 사우스 봉우리를 대면할 수 있었다. 금빛 아침햇살을 머금고

 

반짝거리는 새하얗고 매끄러워 보이는 만년설의 질감이란. 게다가 저토록 섬세한 디테일들이 맨눈에도 쉽게 드러나다니 감탄 또 감탄.

 

 

실컷 감상을 하고서 슬슬 내려오면서도 계속 안나푸르나의 봉우리들은 뒤를 지켜 주었다. 이제 모두 저멀리로 날아가버린 구름들,

 

가끔 깃털인양 한두조각씩 걸쳐지는 구름들을 불어내면서 그 거대하고 웅장한, 위엄돋는 봉우리들이 하늘을 받치고 있었다.

 

 

내려오는 길은 올라올 때보다 쉬웠다. 우선 날이 밝아 발밑이 안전했고, 줄곧 내리막이었으며, 배가 고팠으니깐. 금세 푼힐전망대의

 

티켓 오피스를 지났고 이내 고레파니의 숙소까지 내달릴 수 있었다.

 

고레파니 마을로 들어서기 직전의 회전문. 대체 왜 저런 문을 설치했나 했더니, 닭이니 염소니 물소니 그런 것들이 함부로

 

마을 경계를 넘어 도망가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해발 2,874미터의 마을 고레파니. 백두산이 2,744미터였던가 그러니까 이미 백두산보다 높은 지역으로 올라온 셈이다.

 

제법 기온도 서늘해졌다 싶더니, 해가 떨어지고 나니 삽시간에 추위가 몰려온다.

 

아직은 해가 떨어지기 전, 아침 7시반부터 3시까지 근 7시간여 걷고 난 후에 숙소에 들어오고 나서 마을 구경에 나섰다.

 

머물게 된 숙소 근처에서 발견한 그럴듯하게 휘감긴 염소뿔의 위용. 슬쩍 집어오고 싶을 정도로 위풍당당하더라는.

 

 

하루의 트레킹을 끝내고 숙소로 오면 일단 맥주부터 시원하게 한 캔 혹은 한 병씩을 마시는 게 그렇게도 맛났다.

 

네팔의 국산맥주인 에베레스트 맥주는 좀 싱거운 느낌이었고, 원래 유럽맥주지만 네팔에 공장이 있다는 투벅 맥주는 훌륭한 편.

 

그 외에 위스키나 럼, 아니면 옥수수나 곡물을 증류해서 만든 네팔 전통주 락시도 있는데 락시는 약한 안동소주의 느낌이랄까.

 

 

마치 서울의 여느 달동네나 산동네처럼 야트막한 집들이 켜켜이 쌓여있는 이 입체적인 마을에서 그나마 너른 편인 광장 한켠,

 

아저씨들이 모여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이런 게 바로 그 유명한 '투전판'이로구나. 주사위가 들어있는 검정 사발을 흔들고 뒤집는 아저씨들의

 

손놀림이 유쾌하다. 타지에서 온 트레커 따위는 거의 신경쓰지도 않고 즐겁게 놀고 계셨다.

 

 

어느 틈에 그 조그마한 광장을 점령해버린 당나귀 동무들. 등짐도 안 올리고 어딜 그렇게 왁자지껄하게 몰려다니는 거요.

 

좀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흥미로운 표식. 여긴 초등학교에서 뭔가 마법진 연성하는 걸 가르치는 건가 싶은 저 별모양이라니.

 

사실 네팔에 대한 흥미는 어렸을 적 '3X3 EYES'로부터 유래했는지도 모른다. 시바와 파르바티, 삼지안이 등장하는 그 초현실적인 만화.

 

 

그렇지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정작 신체 건강하고 정신도 건전한 네팔의 남녀 젊은이들이 무려 성대결을 펼치는 중이었다.

 

그들이 토스하고 스파이크하는 소리가 산중에 메아리치는 느낌, 대결을 지켜보는 어느 어머니의 표정이 따사롭다.

 

이런 빈티지스러운 학교 간판이라니.

 

 

 

 

마을 입구에서 아까 지나쳤던 사당, 제법 모질게 부는 바람에 사당 입구를 수놓은 붉은 리본들이 마구 휘날린다.

 

 

숙소로 다시 돌아와 고레파니 마을을 내려다보니, 온통 파란 지붕들이 시루떡처럼 층층이다.

 

 

숙소 안으로 들어와 그새 차갑게 굳은 몸을 녹이려 밀크티 찌야를 마시며 이번엔 숙소 안 구경. 여기는 식당마다 휴지를 저렇게

 

한장한장, 삐뚤빼뚤 포개넣으며 탑을 쌓아놨더라. 그게 꼭 활짝 피어오르는 꽃송이 같더라.

 

그리고 밤새 추위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난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모처럼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요, 땀에 흠뻑 젖은 옷들을

 

슬쩍 빨아볼 엄두를 내게 해준 것도 이 난로 덕분이었다.

 

그리고 저녁. 아무리 롯지마다 다른 레시피의 달밧을 내어준다지만 뭔가 변화를 주고 싶어서 주문한 베지터블 카레.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고 고레파니까지 가는 것이 2일차 오후의 목표. 고레파니는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 중 이름난 전망대인

 

푼힐 전망대와 1시간 이내로 떨어져있는 곳이어서, 내일 아침 해뜨는 것을 푼힐에서 보려면 해발 2,874미터의 고레파니까진 가야한다.

 

으레 그렇듯 점심 메뉴를 고르고 나면 적어도 삼십여분, 노닥거리는 시간이 생기기 마련이어서 롯지 주변을 어슬렁대다가

 

새끼 고양이를 둔 고양이 부부를 발견했다. (주문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최소 삼십분, 길면 한시간까지도 각오해야 한다는)

 

어미인지 애비인지, 제 부모 꼬리가 들썩일 때마다 정신못차리고 덤벼드는 꼬꼬마 새끼 고양이.

 

여긴 그래도 제법 사방에 꽃도 피어있고 나름 정원 비스무레한 느낌을 주는 앞마당이 아늑한 편이다.

 

주인 아저씨가 돌을 일정하게 깔아둔 포석 사이의 잡풀을 뜯고 있는데 고양이 녀석은 안겨들고, 강아지는 뜯긴 풀을 씹고 있다.

 

그야말로 개풀 뜯어먹을 만큼 평화롭다 못해 나른해지는 정경.

 

메뉴는 달밧. 달밧을 시키면 저 콩으로 된 스프인 '달'과 밑반찬들, 그리고 풀풀 날리는 안남미쌀밥을 무제한 리필 요청할 수가 있다.

 

 

 

주인 아저씨가 다른 가이드들과 한담을 나누는 사이 이번엔 주인 아주머니가 풀뜯기에 나섰다. 몇분 지켜보지 못하고 아주머니한테

 

엉겨붙어 놀아달라고 애교부리는 강아지 녀석. 아주머니는 반갑게 덥썩 안아주며 요래조래 놀아주었지만.

 

 

너무 신난 나머지 정신못차리고 엉겨붙던 녀석은 급기야 아주머니한테 한대 씨게 얻어맞을 뻔 하고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저쪽 그늘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고양이 가족들의 단란한 한때. 새끼고양이의 재롱에 부모 모두 차마 눈도 못 뜨고 있다.

 

 

그러다 이내, 이렇게 두 녀석이 휘영청 구부러진 몸뚱이를 찰싹 붙이고는 하트 모양으로, 게다가 제 새끼는 척, 팔로 감싸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건 오래 걸려도 먹고 잠시 쉬다가 출발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 통틀어 한시간 내외정도.

 

뭐, 어차피 스케줄이나 움직이는 시간 같은 거야 전적으로 내가 알아서 하는 거니깐 내 맘대로 하면 되지만, 그래도 움직여야 할 때.

 

노랑꽃들이 흐벅지게 길 양옆에 피어났다. 원래는 봄철에 와야 산 전체가 네팔의 국화인 붉은 랄리그라스가 지천에 피어 더 이쁘단다.

 

잠시 쉬어가는 길, 내 짐과 (양 팔을 이어 두발로 기능케해 준) 두 개의 스틱, 그리고 가이드이자 동반자인 친구의 짐을 내렸다.

 

 

우연히 마주친 다른 일행의 포터. 포터는 정해진 루트를 따라 짐을 옮겨주는 것을 본업으로 하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짐이 무겁다.

 

 

얼마동안이고 힘들고 지칠 때까지 걷다가, 잠시 길가에 적당한 돌들을 골라 그 위에 털썩. 이왕임 근처에 물가라도 있음 더욱 좋고.

 

 

그리고 고레파니 도착. 꽤나 큰 마을이어서, 마을 입구에는 이런 환영의 표지물도 다 서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머물 롯지를 찾는 중에 발견한 히말라야 마오이스트들의 표지와 구호. 이제 3천미터에 가까운 고도에 걸맞게

 

슬쩍 서늘한 느낌이 드는 터에, 이 게릴라 집단이 여전히 횡행하는 지역에 있다는 실감에 더욱 소슬해졌다.

 

그랬다가, 요 염소 녀석이 꼬맹이들을 무시하고 사방으로 내달리려 하는 모양새에 이내 웃음이 터져버리고.

 

줄을 꼬옥 움켜쥐고 끌려가지 않으려는 다홍빛 전통의상의 꼬맹이 입매에 서린 긴장과 결의가 대단해 보인다.

 

 

고레파니의 체크포인트.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의 소지 여부를 확인하고, 지금 현재의 이곳까지는 아무 문제없이

 

무사히 도착했음을 기록으로 남기는 기능을 하는 곳이다. 만의 하나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한 기록인 셈이다.

 

그리고, 이 고산지대 마을 가운데 조그마한 광장 한가운데서 눈에 띄었던 '부처의 눈'이 그려진 조그마한 탑.

 

 

 

 

안나푸르나 푼힐 전망대 코스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코스를 합쳐서 대략 8일쯤의 일정을 생각하고 있는데,

 

그 중 2일차의 아침이 밝았다. 현재 해발 1,540미터 고지의 티케둥가의 롯지.

 

한국에선 밀크티, 인도에선 짜이, 그리고 네팔에선 찌야. 차 한잔과 Gurung Bread, 말그대로 구릉족의 전통빵 하나를 꿀과 함께

 

먹는 것으로 아침식사를 마쳤다. 조금 양이 모자랄까 싶어 꿀을 듬뿍듬뿍 발라 먹어주는 센스.

 

현재시간 6시, 창밖은 어느새 환하게 날이 밝았고 새소리와 물소리가 쉼없이 쏟아져들어온다. 밤새 짖던 개는 뉘집 개일꼬.

 

엊저녁 가이드에게 배웠던 네팔의 독특한 숫자 체계, 그리고 일요일이 아니라 토요일이 붉게 칠해진 달력.

 

히말라야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 불교도들,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문턱 양쪽을 꽃으로 장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전날밤 친해진 스페인에서 온 친구와 그의 가이드. 히말라야 트레킹은 대개 한두명의 소수로 와서 가이드나 포터가 한둘 붙는 형태다.

 

 

고뇌하는 당나귀. 다리를 건널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지만 늘 그렇듯 그는 온순하고 순종적이다.

 

 

쉬지 않고 혀를 차고 기합소리를 넣으며 당나귀들을 몰아대는 꼬맹이, 카메라를 보더니 든든하게 포즈를 잡았다.

 

 

다리 저편에서는 어느 부부가 당나귀 등짐으로 닭장 가득 우겨넣어진 닭들을 동여매는 참.

 

 

이른 아침 제법 소슬한 바람에도 슬몃 땀이 배어들 만큼 걸었을 즈음, 어느 집에서는 뒤늦은 밥연기가 피어올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자식을 갖게 해준다는 '영험'을 가졌다는 비석이 불쑥 눈앞으로.

 

 

꽤나 화려하게 치장을 하려다가 실패한 모양, 남아있는 잔해는 왠지 화투의 6, 매화그림 같기도 하고.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들른 롯지, 밀크티 찌야를 시키고 땀을 식히려는데 꼬맹이 동생을 얼르고 달래는 누나의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미리 챙겨갔던 볼펜을 두어자루 꺼내들고 누나랑 동생한테 하나씩 쥐어주었더니 '나마스떼'도 두손모아 인사해주고

 

방긋방긋 경계심없이 활짝 웃어주는 거다. 심지어는 꼬맹이를 업었던 숄을 풀어서는 저렇게 해맑해맑한 표정으로 패션쇼까지.

 

그 와중에 깜놀, 이 해맑고 순수한 아이들이 앵그리버드가 뭔지는 알까. 근데 여하간 옷과 신발에는 저런 캐릭터들이.

 

마시고 난 찻잔, 먹고 난 식판들은 모두 마당 한쪽 구석의 세면대로. 히말라야가 쉼없이 흘려보내는 물이 호스를 타고 콸콸 흐른다.

 

이 집은 그래도 센스있게도, 호스로 물을 사용할 때는 뚜껑을 닫고, 아닐 때는 저렇게 다른 호스로 연결해서 다랭이논으로 직행.

 

 

주인댁이 사는 방문이 열려있길래 슬쩍. 어떤 분위기인지 기웃기웃.

 

 

허름한 삶의 터전, 철사와 전선으로 칭칭 동여맨 슬레이트 지붕엔 녹슬고 날카로운 못이 불쑥 튀어나와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온통 나무와 곡선, 짙푸른 녹색의 향연이다.

 

 

 

 

길 한 복판에 덜컥 서서는 지나는 이를 뒷발로 차겠다고 벼르는 듯한, 결기어린 눈빛의 염소 한 마리.

 

 

 

울레리Ulleri라는 마을에 접어들었지만 신속하게 빠져나가는 참, 점심은 2,210미터 고지에 위치한 반탄티Banthanti라는 곳에서 먹기로.

 

매콤해보이는 새빨간 고추가 야트막한 집 지붕 위에 얹혀 햇볕 아래 반짝반짝.

 

 

 

계속해서 오르막길, 가파른 계단길이 계속되다 보니 체력이 급속히 저하되고 있는 참에 통닭들이 어른어른거린다.

 

 

앞서거니 뒷서거니, 어차피 걷는 길은 뻔하다지만 각자의 페이스가 다르고 체력안배를 위해 쉼표를 찍는 지점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때로는 몇걸음 차로 붙어다니다가도 훌쩍 멀어져 안보이기도 하고. 만나면 더욱 반가울 수 밖에.

 

 

대나무로 바구니를 엮고 계신 할아버지와 마을 어르신들 옆에서 몸을 둥글게 말고서는 천하태평의 기세로 잠든 검둥이.

 

 

 

 

여기도 페인트칠, 다소곳한 손놀림으로 창틀을 갈색으로 칠하고 계신 아저씨. 근데 왜 다들 파란색과 갈색 일색일까.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평지. 세가지 모드로 천변만화하는 트랙의 변화 속에서도 일정한 자신만의 속도와

 

체력안배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정말 중요하다.

 

 

신기한 게 사방에서 봇물터지듯 흘러내리는 냇물, 개울들이 모두 약간씩 회색빛을 띄고 있다는 사실. 빙하가 녹아내려서 그럴까.

 

 

 

이제 점심을 먹기로 스케줄을 짜둔 반탄티Banthanti 어귀로 도착. 돌로 쌓아둔 휴식처에 삼각형 모양 제단이 설치되어선 향내음이 물씬.

 

그리고 그 위로는, 히말라야 지역에 여전히 존재하며 활동중이라는 마오이스트들의 표시. 낫과 망치의 그림이 선명하다.

 

최근에도 트레커나 등산가들을 향한 테러를 저질렀다고 했던가. 여전히 이 깊은 산에 의지해 게릴라 활동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은근히, 의외로 많이 보이는 한글들. 어느 롯지에서고 'Noodle' 메뉴에서는 '신라면'을 찾아볼 수가 있을 정도다.

 

드디어, 바탄티에서 점심을 먹을 롯지에 도착. 아주머니가 주문을 받아 들어간 주방에 슬쩍 따라들어가 구경을 잠시.

 

 

 

나야풀에서 티케둥가까지. 점심시간과 휴식시간을 포함해서 대충 다섯시간을 걸어 올라와서 쉬엄쉬엄 맞이하는 저녁시간.

 

여력이 충분히 남은 상태인지라 마을을 둘러보고, 산장 겸 식당으로 기능하는 롯지도 요모조모 살펴보고.

 

심심치 않게 지나는 염소떼라거나 당나귀들도 구경하고.

 

웨스턴 스타일의 토일렛이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네팔은 물을 사용하는 수식 화장실. 그러니까 휴지 따위 준비되어 있지 않고

 

수도꼭지와 바께쓰 하나만 놓여있을 뿐. 손과 물을 써서 닦아낸 후에 물로 흘려보내란 이야기인데, 자연에 조금 부담을 줄지언정

 

표백물질과 화학물질이 혼합되어 있을 새하얀 크리넥스 티슈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 비수기에 해당하는 9월 초중순, 1인실, 2인실에 따라 방값도 다르지만 넉넉하게 혼자 차지한 독채.

 

게다가 양쪽으로 창이 훤히 뚫려 있어 햇살도 잘 들어오고 모기랑 나방도 잘 들어오고..

 

 

 

숙소 2층에서 내려다본 당나귀들의 행렬. 양쪽으로 균형잡고 실린 짐들은 대개 생필품이라거나 곡물류, 심지어는 가스통까지.

 

 

 

이 곳에는 편마암이랄까, 결을 가지고 일정한 두께로 쪼개지는 돌들이 많이 있나보다. 계단도, 포석도 모두 그런 돌들로 마감되어있다.

 

 

롯지 안의 다이닝룸, 사방에 트레킹족들과 산악회들의 깃발과 명함이 나부끼는 가운데 한글로 된 깃발들도 많이 보인다.

 

그 와중에 머리끄댕이를 못박힌 채 노랗게 잘 말라가고 있는 옥수수 몇 자루.

 

높은 산들로 가로막힌 고산지대의 밤은 꽤나 이르게 내려앉았고, 몇개 되지 않는 알전구들의 밝기란 밤하늘의 별빛보다 못했으니.

 

어디서든 거의 마찬가지였는데, 식사를 주문하고 나면 나오는데 거의 한시간 가까이 걸리는 거 같다. 아무리 간단한 단품이던 달밧이던,

 

조리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지 않은 것들조차 예외없이 삼십분 이상의 대기 시간이 필요했다는. 역시나 저녁은 달밧, 이었지만

 

이것도 롯지마다 레시피가 다르고 곁들여 나오는 반찬이 달라서 매번 새로운 느낌이다.

 

그렇게, 안나푸르나 트레킹 코스에서의 1일차가 지나고 있었다.

 

 

 

 

나야풀에서 시작한 트레킹, 비레탄티Birhethanti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다시 속행하여 좀더 걷기로 했다.

 

저녁까지 해발 1,540미터의 티케둥가Tikhedhungga까지 가기로 했다.

 

 

길가에서 유유히 노니는 암탉과 병아리들.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도 피하지도 않는 대범함을 소유했다.

 

 

 

특히 이 위풍당당한 녀석은 카메라를 보더니 더욱 당당하게 앞가슴을 내밀고는 지나다니는 암탉들을 노려보느라 여념이 없더라는.

 

 

 

그리고 비레탄티 마을을 벗어나 본격적인 산과 강을 벗삼은 트레킹이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제주도의 전통적인 문살처럼 이 곳에서도 나무기둥 두세개로 문짝을 대신하고는 표지를 정해 의미를 전달한다고.

 

 

 

완만한 오르내리막이 계속되고 층층이 만들어진 다랭이논과 지붕만 겨우 덮은 비닐하우스가 띄엄띄엄 눈에 띈다.

 

상하수도 시설은 이미 포카라를 떠나는 시점에서 포기, 모든 물은 히말라야 산맥을 따라 흘러내리는 자연수에 파이프를 대고 얻는다.

 

물소떼가 길을 문득 가로막는 건 흔한 일, 물소떼가 몰고 다니는 거머리에 물리는 것 역시 흔하디 흔한 일.

 

 

 

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시루떡처럼 쌓아올려진 다랭이논들.

 

중간에 잠시 쉬어가는 롯지에서 만난 부녀는 페인트칠로 새단장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우기가 막 끝나는 9월중순이니

 

이제부터 트레커들이 많이 찾아들 것을 대비하는 타이밍이라는 게 함께 한 가이드 꺼멀의 친절한 설명.

 

 

쌀과 옥수수를 재배해서 주식으로 삼는다더니 온통 집집마다-트레킹 중에 만나는 집은 대부분 롯지를 겸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옥수수를 잔뜩 내걸고 말리는 중이었다.

 

 

 

그리고 티케둥가 마을에 도착. 첫날이라 그런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고 완만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는 정도랄까.

 

살짝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느낌도 들었고. 여하간 아침 10시쯤부터 오후 3시쯤까지 설렁설렁 걸었다. 이쯤이면 할 만 한데 싶은 정도.

 

 

 

9월 초인 아직은 우기가 끝나기 직전이라더니, 티케둥가에 들어서자마자 쏟아지는 소낙비. 얼른 숙소로 들어섰다.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위해서는 우선 카투만두에서 비행기로 30여분 걸리는 포카라로 이동해야 한다. 아침 8시반 비행기로 출발,

 

포카라에 도착후 다시 택시로 한시간여 비포장도로를 달려 트레킹의 최초 출발점인 나야풀Nayapul에 도착하다.

 

 

이로써 해발 850미터의 포카라에서 1,070미터의 나야풀까지는 수월하게 도착. 이제 3,200여미터의 푼힐 전망대를 찍고 다시

 

3,700미터의 마차푸챠레 베이스캠프, 4,130미터의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오르고 돌아오는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참이다.

 

 

얄포름하고 앙상한 철판과 철망으로 만들어진 구름다리. 지나는데 20여킬로그램에 달하는 가방무게에 체중이 더해져 출렁출렁.

 

 

 

히말라야의 고봉들을 끼고 사는 마을이라 역시 애들 낙서조차 범상치 않다. 삐죽삐죽한 산들 아래 마을, 그 앞엔 왈칵 휘여돌아가는 강.

 

골목길을 연해 활짝 뚫려 있는 이발소 아저씨는 내 카메라를 보더니 슬며시 포즈를 잡으며 미소를 짓는다. 머리는 집에 가서

 

감아야 한다는 게 네팔 이발소의 법도.

 

개와 닭들이 이렇게 한가롭게 휴식을 취하는 정경. 확실히 평화로운 시골 동네 분위기가 물씬 배어난다.

 

 

골목이 끝나갈 무렵의 조그마한 '마트'. 바닥에 앉아 동생과 놀던 아이가 내 쪽을 손짓하며 뭐라뭐라 신나서 떠드는 중.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유용한 수송수단이 된다는 당나귀들. 길가에 똥을 어지간히도 싸질러놓는지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만드는.

 

 

다리를 지나고 체크포인트에서 트레커 카드와 TIMS 카드를 확인받고 나서는 점심식사부터 하기로 결정.

 

꼬질꼬질하게 때가 묻어있는 저 스위치들, 숫자는 많지만 정작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자주 끊긴다고 한다.

 

샤워설비가 굉장히 열악해 보이는구나, 벌써 땀은 이렇게 흐르는데. 싶었지만..나중에 3000미터 위에서부턴 샤워도 못했다.

 

기온이 뚝 떨어진 시점에서 샤워를 하면 자칫 감기에 걸려 고산병으로 고생하기 십상이기 때문에, 아예 제대로 씻기조차 포기.

 

티벳 불교도의 상징, 울긋불긋한 깃대를 올린 집. 사실 히말라야 산에 깃든 사람들은 대개 티벳 불교도라서

 

거의 모든 롯지(산장)에서 이런 깃대와 장식들을 볼 수 있었다.

 

첫 점심. 네팔의 전통음식이라 해야 하나, 달밧. '달'은 콩으로 만든 스프를 의미하고 '밧'은 흰쌀밥을 의미한다.

 

거기에 두어가지 찬을 더해서 제공되는 음식이 달밧. 첫 음식이니만치 든든하게 치킨 커리를 추가로 주문.

 

산장 겸 식당을 운영하는 롯지의 주인 아주머니가 쓰는 낡은 계산기와 장부.

 

그리고 다시, 1일차 오후로 접어들었다.

 

 

 

 

 

포항 북부해수욕장, 새벽부터 내달려 세시간반만에 도착한 한반도 동남쪽 바닷가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해수면까지 짙게 내려앉은 희뿌옇고 눈부신 장막 너머 포스코의 굴뚝들이 은폐엄폐중이던 그 곳.

 

 독도가 경상북도 울릉군, 이었다는 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무수히 꽂힌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어릴 적부터

 

익어버린 노래 가사가 서로 만나는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포스코 제철공장을 마주본 이 곳인지라 그런지 곳곳에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철로 만든 모기도 한마리.

 

 북부해수욕장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야트막한 구릉은, 봄철에 왔더라면 좀더 물이 올라 싱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지 않았을까.

 

중앙공원, 해맞이공원, 혹은 환여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큼지막한 공원 가운데께에는 멀리

 

영일만의 반짝이는 파도가 굽어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POMA)도 품고 있다.

 

 

 지방이라 그런지 아니면 포항이 부유한 도시여서 그런지 포항시립미술관은 무료. 마침 개관 3주년 기념 전시라며 그간

 

수집한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 물씬한 미술관 내부에 문득 볕이 들이치던 순간.

 

 미술관 정문 옆에 심어져 있던 아롱다롱한 소망나무 한 그루.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필체의 얼룩을 품었다.

 

 그리고 제법 오래 눈길을 붙잡았던, 포항시립미술관 앞의 이 작품. 허리춤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부여잡은 저 손.

 

전망대에서 미술관을 지나 다시 공원 밖으로 내려서는 참에 다시 만난 포스코 제철공장의 어슴푸레한 풍경.

 

맑은날 밤에 여기서 야경을 찍어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산이란 곳은 항구에서 시작하는 도시의 한쪽 끝에서부터 다른 쪽 끄트머리까지, 내처 걸어도 한두시간이면 관통하고도 남는

 

그런 조그마한 소도시다. 지방을 다니다보면 서울이란 데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데, 군산 역시 그렇다.

 

그런 군산에서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곳에, 항구 가까운 곳에 있는 작지 않은 공원이 있다. 공원보다 더 눈에 띄던 건,

 

해방후 피난민들의 판잣촌이었던 '해망동'의 고불고불한 골목길과 그 둥그스름한 실루엣들.

 

 

잔설이 남아있던 월명공원 앞의 주택들. 그리고 썰렁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썰렁하게 헐벗은 겨울나무들.

 

 

공원이라곤 하지만 야트막한 산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 살짝 트레킹 코스라는 느낌이 강하다.

 

공원이 품고 있는 능선 한쪽 비탈, 그러니까 바다가 내려보이는 쪽에는 말 그대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동네, '해망동'의

 

골목길이 고스란히 남아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궤적을 기록하고 있다.

 

 

공원의 한 모퉁이에는 전망대도 세워져 있고, 군산의 유명한 독립운동가 아저씨의 동상도 서 있고.

 

새초롬한 댓잎이 소담히 그러쥐고 있는 새하얀 눈뭉치는 꽤나 묵직해보인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난롯불을 쬐며 담배를 태우며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하고 계신 공원 안 매점에는

 

겨우내 어르신들의 온기를 책임질 까만 연탄이 집게에 코를 꿰고는 얌전하게 자리잡았다.

 

 

매점 옆에선 어디서 터져나온 수돗물인지 아니면 약숫물인지, 쉼없이 흘러넘치는 물줄기가 만든 자잘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해망동의 전경. 파노라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봐야 자동으로 크기가 설정되고 마니 좀 그렇다.

 

 

이렇게, 나무 전봇대가 서 있고, 가장자리가 쥐에 파먹힌 듯 얼기설기한 슬레이트 지붕이 지친 듯 퍼져버린 풍경.

 

볕 한줌 쬐이기 쉽지 않을 좁다란 골목길에 찍힌 몇개 되지 않는 발자국, 여전히 눈밟는 소리가 뽀드득, 그런다.

 

 

어느 슬레이트 처마를 따라 쭉쭉 뻗어나간 고드름들. 가늘고 길게 뻗은 고드름, 수정고드름 발을 만들기에 딱이겠다.

 

 

한국전쟁 때 스러져간 영혼들을 위한 위령탑. 오래 묵은 나무 그림자를 따라 잔설이 고집스레 남았다.

 

 

그리고 군산의 조형탑. 커다란 등대 같기도 하고, 꺼지지 않는 횃불을 형상화한 거 같기도 하고.

 

 

조그마한 조각공원도 품고 있었는데, 그 입구 언저리에서 날개를 활짝 편 채 손님을 맞는 반짝반짝 갈매기 한마리.

 

 

군산에도 '구불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었나 본데, 그렇게 따라 걷다가 저런 허름하지만 운치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숨도 고르고 귤도 까먹으며 하얀 입김 풍성하게 내뱉으면 좋겠다.

 

 

꾸역꾸역 이어지는 산들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그렇게 다 걸어보려면 제법 시간도 오래 소요되겠기에

 

반절 정도만 돌아보는 걸로 만족했다. 꼭 다 돌아야 맛이 아니니, 쉬엄쉬엄 걸으며 얼음길에 이리 빼뚤 저리 빼뚤 했던 걸로

 

겨울철 산책의 묘미는 다 즐긴 걸로.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행남등대에서 도동 여객터미널로 향하는 길, 섬 곳곳에서 보이던 검정 염소들이 여기서도 심술궂은 눈빛을 하고 대기중.

 

 

등대에서 도동항까지는 약 1.8km, 그렇게 길지 않은 거리지만 작정하고 한걸음 한걸음 음미하며 걷기로 했다.

 

참고로 이 코스는 '1박2일'에서 울릉도를 다녀가며 꼭 짚고 갔던 바로 그 코스. 도동항~행남등대~촛대암 구간이다.

 

 

그래서 글보다는 사진 위주로 포스팅~* 슝슝 넘겨보시다 보면 바다와 함께 걷는 분위기가 1g이라도 풍기길 바라며.

 

 

 

 

 

높은 곳에 선 등대에서 내려와, 아까 소라계단으로 불쑥 올라선 높이만큼을 내려선 즈음 다시 바다가 보인다.

 

 

묵호에서 들어가는 배는 더이상 도동항을 쓰지 않고 그 아래쪽 사동항에서 입출항하게 되었다. 상인들의 반대가

 

없지 않다고는 하는데, 그런 점에서 산책로에 대한 접근성은 과거보다 좋지는 않을 듯.

 

 

쉼없이 철썩이는 파도 앞에서 굳이 꿋꿋하게 높다란 돌탑을 쌓아올린 인간들의 집요하고 무모한 소망들.

 

저 방송이 천년만년 갈 것도 아니고, 촬영지란 게 뭔 커다란 의미가 있는지도 모르겠는데. 여하튼 페인트칠 지대로.

 

 

 

 

저렇게 기묘하게 돌을 세워둔 건 또 뭐지 싶어서 눈여겨 보게 되던 돌탑 하나. 본드로 붙였으려나.

 

짠기 다 온몸으로 맞으면서도 꿋꿋이 꽃을 피워냈다. 꽃잎이 찌글찌글해졌을지언정 빛깔은 굽힘이 없다.

 

 

 

 

 

 

제법 오르내림이 크던 산책로. 두사람이 함께 지나기에도 부담스런 좁은 길, 바싹 몸을 당겨서 철퍽 앉아 쉬었다.

 

 

 

 

 

제법 가파른 계단에서 삼일째 혹사 중인 발에 급기야 경련이 살짝. 절룩거리며 걷다가 제멋대로 눌린 셔터에 한장.

 

 

 

멀찍이 보이기 시작한 도동항의 뱃전들.

 

 

 

 

 

이게 뭐라더라, 육손이였던가. 티비에 나왔던 그거라고 옆엣 어른들이 말씀하시던데, 뭔가 좋은 건가 싶어 일단 찍고 보기.

 

 

그리고 도동항 도착 전에 하나 나타나는 쉼터. 끊길 듯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산책로길이 재미있다.

 

 

 

 

 

 

 

 

 

 

 

 

바닷물을 잔뜩 머금고 시뻘겋게 녹이 슬어버린 구름다리 하나가, 그저 살짝 시멘트더미 위에 얹힌 느낌으로 떠 있다.

 

잠시 앉아서, 1.8리터짜리 물통을 내려놓고, 삼각대와 옷가지로 꽉 찬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쉬는 참.

 

 

아이들이 쏟아내는 새우깡 부스럭지를 향해 엄청시리 달려드는 갈매기떼들.

 

 

 

 

 

 

 

바닷물에 삭아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군데군데 암석이 얇아지다가 녹아내린 듯한 풍경의 해안가 돌벼락.

 

 

 

거대한 돌과 돌 사이로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산책로를 따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구멍을 희롱하는 바람을 따라.

 

 

 

 

 

저런 빛깔은 파란색 타일로 바닥이 덮여있는 실내 수영장에서나 봤던 거 같은데. 연신 산책로에 포말을 뱉어대는 바다의 빛깔.

 

 

 

 

 

 

 도동항이 가까워질 무렵, 해산물을 파는 노점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걸어놓은 게 틀림없는 울릉도산 오징어.

 

 

 그리고 도동항으로 내려서는 입구. 오징어 그림이 푹 파인 그림을 좇아 계단을 내려가면 해안산책로의 종점이다.

 

그렇게 울릉도에서 가장 번성한 항구이자 가장 번화한, 도동 도착.

 

 

 

아오모리현이 품고 있는 세계 최대의 너도밤나무 원생림, 시라카미 산지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어 있을

정도로 자연생태계가 잘 보존되어 있는 지역이라고 한다. 일반에 개방되어 있지 않은 곳에는 추정수령이
 
400년에 이른다는 아름드리 너도밤나무 'Mother Tree'의 압도적인 커다란 줄기가 사방으로 뻗친 모습이

장관이라고 하는데, 그 방대한 면적과 귀중한 자연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일본에서도 가장 처음으로

세계유산 등록이 되었다고.

 

시라카미 산지에서 일반에 개방된 부분은 정말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렇게 어마어마한 숲이 뿜어내는

좋은 공기와 피톤치드 덕분일까, 근처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왠지 기분도 좋아지고 공기맛도 다른

거 같다. 우선 비지터 센터에 들어가서 시라카미 산지의 식생에 대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 다른 것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3살짜리 너도밤나무의 키가 고작 저만큼이란 사실. 3년이나 묵었는데 수첩만도 못하다니.

20살쯤 되어야 이제 사람이랑 눈높이를 맞출만한 크기로 자라난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은 어렸을 때 쑤욱

자라나서는 그대로 쭉 멈춰있기 마련인데, 너도밤나무같은 저런 나무들은 알게 모르게 조금씩, 그렇지만

꾸준히 자라나서 수첩만한 높이에서 어른 사람만한 높이로, 그리고 몇층짜리 건물만한 높이로 자라난다는 게

실감이 나는 전시였다. 그리고 대형 스크린으로 이 곳에 사는 식물과 동물들을 만나볼 수 있기도 했고.

그리고 드디어 시라카미 산지로. 미야자키 하야오가 '월령공주'를 만들 때 자주 찾아와 장면을 참고하는 등

일본의 여러 애니메이션과 영화의 배경이자 영감을 준 장소로 유명하다고 한다. 벌써 들어가는 길에 보이는

산세라거나 숲의 울창한 정도가 차원이 다르다는 느낌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받아온 한글 버전 지도 겸 안내팜플렛. 좀 어색한 번역투가 거슬리긴 했는데, 특히나

4번, '화장실은 적절히!'라는 항목이 특히 웃겼다. 트레킹 코스 중에 화장실이 별도로 없으니 미리 해결하고

입산하라는 이야기일 텐데, '할수 없을 경우에는 구멍을 파서 묻어 달라'는 아주 세심한 지침까지.

정말, 하야오의 월령공주에서 나왓던 커다란 늑대들이 사방에서 불쑥 튀어나올 거 같은 울창한 숲길이었다.

초록색 식물들이 지천으로 온통 삼엄하게 점령한 가운데 잔뜩 쪼그라들어버린 흙길을 한 줄로 서서 조심조심

걸어가는 트레킹 코스. 길은 꼭 필요한 최소한의 손길만으로 정비되어 있다는 게 느껴질 만큼, 이 곳은

사람보다 자연을 우선하여 관리되고 있었다.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한 공간. 아무 말 없이 그저 묵묵히, 숲들이 조금 몸을 웅크려 내어준 길을 따라 걸었다.

자극적인 볼거리나 흥밋거리는 없지만 수천년이나 묵었다는 원시림의 생명력이랄까 신비스러운 아우라를

체감하는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거대한 산이나 바다 앞에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 적은 있었지만

숲을 걸으며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들 줄이야.

숲길을 따라 걸으면서 눈길 닿는 대로, 그리고 숲의 생명력이 느껴진다 싶은 장면들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숲의 생태계에 대해서 중간에 드문드문 설명이 적혀 있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나름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는 이 곳에서 제대로 생태 공부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다만, 아쉽게도 일본은 대개

외국인에 대한 설명에 인색하더라는. 저런 거 최소한 영어로라도 병기해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울룩불룩 실핏줄처럼 툭툭 튀어나온 나무의 잔뿌리들이 대지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다 마르고 시들어 쓰러진 나무는 또다시 다른 나무들이나 식물을 위한 양분이 되고.

그리고 우뚝 우뚝 솟아있는 싱싱한 나무들은 또다른 식물들이 의지하고 살아갈 기둥이 되어 주고.


더러는 비비 틀어진 채 사방으로 꼬이는 사랑의 작대기마냥 나무들 사이를 종횡하는 덩굴식물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도 한 거다.

그리고 시냇물. 보기만 해도 굉장히 맑고 투명해보이는 물은, 손으로 살짝 움켜보니 뼛속까지 시릴 정도로

차가웠다. 잠시 손을 담궈 몇 번 비비기만 했는데도 온몸에 땀이 쏙 들어가버리는 느낌.

그렇게 온통 초록빛 일색이었지만 전혀 지루하지도, 심심하지도 않더라는. 그렇게 가파르거나 힘든 길이

아니어서 그랬기도 하겠지만, 그냥 이 길이 한없이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너무도 좋았던 길.

그리고 너무도 좋았던 시라카미 원시림.


그렇지만 일반에 개방된 코스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한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는 구간이었다. 어느새 길은

살짝 내리막으로 바뀌어 되돌아나오는 중이었다.

이런 곳에 나무에 저렇게 칼로 낙서를 남기다니, 그나마 한글이 안 보이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려나.

일본인들은 예의를 중시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게 국민성이라고들 하지만, 그것도 요즘 젊은 세대들이나

그 아랫세대에는 별로 해당되지는 않는 이야기인 듯 하다. 한국에서도, 젊거나 어린 일본인 관광객들은

버스 안이던 전철 안에서도 주위를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떠드는 경우를 종종 봤었다.

한바퀴 돌아서 나온 길, 들어갈 때는 딱히 시선을 두지 않았던 약수터가 엄청 반가웠다. 다른 사람들도

한모금씩 물을 들이키고는 그 차가움에 놀라고, 그리 힘들지 않았던 한시간여의 트레킹이 가져다 준

기분좋은 피로감마저 싹 지워버리는 듯 하다고 한마디씩.

다리를 건너 차가 기다리고 있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 워낙 깊은 산중, 깊은 숲속인지라 딱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트레킹 코스고 일반 차도인지 구분하기도 애매할 정도다. 이렇게 울창한 숲이 풍겨내는 독특하고도

생생한 그 분위기에 매료되어서 일본의 애니메이터나 영화 감독들이 이곳을 즐겨 배경으로 활용하는 게 아닐까.


주차장 옆에는 왠 뜬금없는 놀이터가, 그렇지만 제법 그럴 듯한 스케일로 미끄럼틀도 몇 개씩 갖추고 있었다.

이정도면 거의 놀이터계의 '갑'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럴 듯 해서, 그대로 지나치긴 아쉬워

굳이 위로 꾸역꾸역 올라가선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와줬다. 밑에서 보기보단 중간중간 속도를 줄여주는

구간들이 작용해서 미친 듯이 빠른 속도로 내려오진 않았지만 엉덩이는 후끈해졌더랬다.





 


 

오이라세계류, 아오모리현의 특별명승지이자 천연기념물이라는 계곡을 따라 하늘을 가릴만큼 빼곡한

원시림 숲길을 걸을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다. 전체 거리 약 17킬로미터에 이른다는 오이라세계류

산책구간은 어쩌면 이제 한국에도 익숙해진 올레길, 둘레길 같은 트레킹 코스의 경쟁상대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제 점수는요. 바로 옆으로 2차선 도로가 구불구불 함께 달리고 있음에도 마치 사람 하나 찾기 힘든

깊은 산속의 좁은 숲길을 혼자 걷는 듯한 호젓함과 한가로운 느낌이 너무너무 좋았다.

오이라세계류를 따라 걷는 길은 계속 이런 식이었다. 다리를 건너 개울 건너편으로 간다거나 잠시 구불댄다는

등의 변칙은 있었어도, 대개 한켠에는 개울을, 신록이 그득한 원시림 한꺼풀 너머에는 이차선 도로를

끼고서 걷는 길. 다니는 차가 많지도 않았지만 두껍게 드리워진 초록빛 커튼이 소음과 부산함을 전부

막아내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마치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듯한 이 기분을 어떻게 설명할까.

길 중간중간 오이라세계류 트래킹코스로 합류할 수 있는 샛길 길머리에는 어김없이 이런 안내판이

서있었다. 일본어로밖에 안 나와있는 건 아쉬웠지만 그림과 간략한 영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알 수 있는 내용들. 시끄럽게 하지 말고, 식물을 채취하지 말고, 동물을 함부로 풀어놓지 말고,

불을 붙이지 말라는 주의사항들은 어찌보면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들이지만, 저런 기본이 제대로

지켜진 덕분에 이곳의 짙푸른 원시림과 그 특유의 분위기가 지켜지는 거 같다.

핫코다 하치만타이국립공원 내에 있으며 일본에서 세번째로 깊다는 도와다호수는 강물이 전혀 흘러들지

않고, 땅에서 솟는 물과 비, 눈으로만 이루어졌다고 한다. 그 호수에서 유일하게 흘러나가는 물줄기가

바로 오이라세계류, 계류가 이끼낀 바위 사이를 힘차게 흐르면서 일으키는 하얀 물거품이 선명하다.

게다가 무성한 이파리에 가려 드문드문 찢겨진 채 떨궈지는 햇살 한 조각이 묘하게도 이끼낀 바위위에

떨어지는 것도 굉장히 묘한 감정을 일으킨다. 마치 하늘에서 의도한 적정량의 조명이 적절한 바로 그곳에

딱 맞춰서 예정대로 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숲이면 다 같은 숲이지 '원시림'은 또 뭐냐, 하는 맘이 없지는 않았다. 한국에도 여기저기 조성된 트레킹

코스들은 대개 나무가 무성한 숲길 한가운데를 걷거나 숲과 바다와 산을 끼고 걷는 길인데 새삼스러운 게

있으려나 생각했었던 거다. 그런데 '원시림'의 포스는 뭔가 분명히 다른 게 있다. 저 수령을 알 수 없는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나무 주변에서 아우라처럼 뻗어오른 잔가지들, 그리고 그 잔가지를 다시 감싸는

초록색 이파리들이 만들어내는 분위기가 다른 거다.

저 너머 도로에 꽂혀있는 급코스를 경고하는 노랑색 교통표지판이 보이는 즈음에, 나무 역시 급코스를

온몸으로 예고하듯 격하게 뒤틀어져 있기도 했다.


길 중간에 개울 너머로 다리를 놓아주고 있는 통나무 다리도 만나고. 나무로 만든 다리가 아니라

말그대로 통나무 하나를 베어내선 개울 이쪽과 저쪽으로 걸쳐놓은 통나무 다리였다. 흔들리지 않게

제법 단단히 양쪽 땅에 고정된 거 같긴 했는데, 뭐하나 의지할 것 없이 이 나무다리를 건너 저쪽으로

건너갔던 사람이 있기는 할까. 의구심과 동시에 저 건너편에 대한 맹렬한 호기심이 일어난 것도 사실.

나무 옆구리에서 톡톡톡, 연지곤지 찍듯이 여리고 둥근 연두빛의 잎사귀가 부드럽게 돋아났다.

계단 옆으로 하얗고 두꺼운 나무 뿌리 두개가 툭, 툭, 상아처럼 튀어나온 것도 꽤나 눈길을 잡아끌었다.

그리고 부러지고 넘어지고 휩쓸리고 뒹굴던 나무들. 이미 당당히 하늘을 향해 온몸을 펼쳤던 모습은

오래전 과거의 것인 듯 부러지면 부러진 대로, 넘어지고 휩쓸리면 휩쓸린 대로 각자의 모습 그대로

연두색 융단이나 액세서리들을 도톰하게 휘감고 있었다. 반지의 제왕에서 나왔던 숲의 정령들이

어디에선가 끼이- 끼이- 거리면서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벌인대도 이상하지 않을 듯한 풍경.


전체 17킬로미터 구간을 다 걷지는 못했고 일부만 걸었는데, 그 중에서 이렇게 넓은 길은 정말 극히

일부였던 거 같다. 대개가 한사람이 딱 걸을만한 좁은 폭, 반대편에서 사람이 올라치면 어깨를 칼처럼

세워서 서로 지나쳐야 할 정도로 좁았으니까. 아무래도 숲을 보호하는 게 우선이니까 길을 최소한으로

내려고 했던 거 같다. 한국의 지자체들도 걷기 열풍을 타고 트레킹코스를 만든답시고 나무데크로

길을 완전 포장해버리는 짓을 하고 있는데, 자연이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래야 이렇게 고사리가 무섭도록 무성하게 자라난 곳도 무딘 발에 밟히거나 쓸려나가지 않을 테고,

이렇게 좁은 숲길 양쪽에 펼쳐진 이끼 융단이라거나 여리디 여린 덩굴들이 그물처럼 서로를 엮어넣은

모습을 지켜낼 수가 있을 거다. 오이라세계류의 원시림을 이렇게 훌륭하게 지켜낸 건 그런 마인드 아닐까.

좋은 계절에 온 것 같았다. 온통 나무들이 꽃보다도 이쁜 초록빛 잎을 크고 두껍게 피워내는 신록의 계절,

계류를 따라 맑게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새소리마저 신비한 숲속을 산책하면, 시끄러운 물소리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이 온통 차분하고 경쾌하게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몇걸음 앞에 다른 일행이나

사람들이 앞서고 뒷서며 함께 걷고 있음에도 웬지 이곳에 홀로 쉬고 있다는 느낌.

실타래처럼 떨어지는 폭포인 '시로노이토'. 삼각대를 갖고 왔어야 저 가늘고 부드러워보이는 폭포수가


더욱 그럴듯하게 표현되었을 텐데 아쉽기 짝이 없었다는. 이곳은 아무래도 호수에서 뻗어나온 개울이다

보니까 낙차가 그렇게 크지도 않고 유량이 많은 편도 아니라고 한다. 폭포라길래 뭔가 콰콰쾅하는 소리가

사방에 진동하고 물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그런 걸 기대하는 건 무리라는 사실.


그건 '조시오타키'라는 이름의 폭포도 마찬가지였다. 제법 낙차가 있고 유량도 많은 편이긴 했지만,

앞선 폭포의 섬세하고도 미묘한 물줄기를 보고 기대치를 어느정도 조정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조금 실망할 뻔 했다. 그렇지만 도쿠리병의 주둥이처럼 생겨서 저런 이름이 붙었다는 이 폭포는

이 오이라세계류에 산다는 무지개송어의 장벽이기도 하단다.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시퍼런 색깔이

섞인 게 신비한 분위기를 살풋 풍기며 부지런히 쏟아져내리는 폭포수가 굉장히 시원헀다. 


아마도 상수원이니 물을 깨끗이 보전하자는 건가, 아님 나무와 풀을 보호하라는 건가, 여하간 꽤나

오랫동안 저 자리를 지켰을 강철표지판의 가장자리가 온통 낡고 닳았다.

커다란 구렁이가 나무를 칭칭 휘감고 올라가는 건가 해서 깜짝 놀랐는데, 눈비비고 다시

보니깐 두툼한 가지 하나가 나무둥치를 휘감고 뻗어있었던 거였다. 깜짝이야.

원시림을 벗어나 다시 세속으로 돌아나오는 길, 불과 몇걸음 안 떼었는데도 방금까지 바로 옆에서

지줄거리며 흐르던 개울과 단단하게 공기를 쥐고 있던 푸른 잎사귀들로 이루어진 공간이 꿈인양 하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는 속담은 이런 곳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고 둘러보고 느끼는

와중에 딱 어울릴 것 같다. 다시 딱딱하고 살짝 끈적해진 느낌의 아스팔트를 밟으니 정신이 번쩍 난다.

도와다 호수로부터 뻗어나온 유일한 개울이라는 오이라세계류가 그럭저럭 직선을 그으며 흘러나가는

길을 따라 이어지는 황토색 길, 17킬로미터에 이르는 전 구간을 걸었으면 딱 하루 코스였을 텐데 시간만

허용되었다면 정말 꼭 걷고 싶었다. 아쉽게도 이렇게 살짝 맛만 보고 돌아서야 하다니. 주위에 보니

차를 타고 오기도 하고,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타고 온 사람들도 적잖이 보였는데 무지무지 부러웠다.

우리나라의 숲길들도 잘 보존해서 이런 상서로운 분위기를 풍길 수 있는 때가 오길.


* 오이라세계류의 위치.







* 이번 여행은 하나투어 '겟어바웃' 필진의 일원으로 다녀왔습니다.
Get About - 당신의 여행이야기

제주도를 수차례 여행도 하고 출장도 다녀왔지만, 생각해보면 한라산은 늘 '아웃오브안중'이었던 듯 하다.

기껏해야 섬 한가운데 딱 박혀서는 겨울철에 갑작스런 폭설을 쏟아붓거나 변덕스런 날씨를 만드는 주범이라고나

생각했을까, 제주도의 찾아가볼 곳 중에서도 늘 빠졌던 한라산은 그냥 배경화면처럼 거기 있었던 거다.


이번에 그 배경화면을 조금이나마 어루만져볼 기회가 있었다. 성판악에서 백록담으로 올라 관음사로

내려오는 구간, 오르는데 네 시간이 채 안 걸렸고 내리는데 다섯시간이 채 안 걸렸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런 구간이겠으나, 아무에게나 쉽게 열어주지 않는다는 백록담이 구름을 훑어내고 활짝 열렸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싶어서. BGM은 '헉헉헉' 쯤 숨이 턱에 닿는 소리라고 치고 사진만으로 포스팅.

백록담까지 오르내리는 길이나, 정상 아래로 깔린 운해나, 백록담의 미묘한 색감, 그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들의 기이한 형상들까지. 아,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오르고 싶어졌다는 정도는 말해둬야겠다.


강화도에도 그럴듯한 걷기 좋은 길이 있다길래 정보를 검색하다가, 그런 길이 무려 8개 코스나

생겼다는 사실에 깜짝 놀랬다. 이름하야 강화나들길. 그 중에서 제1코스, 심도역사문화길이란

이름이 붙은 길을 걸었다. 정비된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나들길의 경로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갓 내걸린 신품의 느낌이 가득하다. 여기서부터, 총거리 18킬로미터, 약 6시간이 소요되는 코스.

<강화나들길 제1코스>

강화버스터미널 - 동문 - 성공회강화성당 - 용흥궁 - 고려궁지 - 북관제묘 - 강화향교 - 은수물

- 북물 - 북장대 - 오읍약수 - 연미정 - 옥개방죽 - 갑곶성지 - 갑곶돈대



 

 

코스야 그렇게 짜였다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모범답안'일 뿐 내키는 대로 형편닿는 대로

돌아보기로 했다. 버스터미널에서부터 조금 뻗어있는 나름의 도회지를 지나고 나니 이내

시간감각이 혼란스러워지는 풍경이 나타났다. 슬레이트지붕의 단층건물들이 조그맣게

웅크리고 있는 골목길, 적당히 허름하면서도 정겨운, 그런 편안한 분위기다.

그런 골목을 지나다가 문득 발견한 동문, 몽고가 침입했을 때 고려 왕조가 강화도로 옮겨와서

항전하며 쌓은 성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문이 있다는 건 양쪽으로 길고 높은 성벽이 이어졌을

거란 이야긴데, 아쉽게도 그 자취는 거의 사그라져 버린 듯 하다. 그나저나 저렇게 야트막한

가옥들과 눈높이를 맞춘 성문을 골목 끝에 갖고 있는 동네에서 살면 꽤나 운치있을 거 같다.

 

안내표지는 꽤나 친절하게 사방에서 찾을 수 있었다. 가장 많이 띄었던 표지는 저렇게

파랑색 바탕의 분홍색 화살표를 페인트로 그려놓은 거였는데, 뭔가 갈랫길에 당도하거나

길이 헷갈릴 즈음 길바닥이나 벽면에서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저런 좁은 골목 뒷길도

지나고 논두렁길도 지나고. 바람에 나풀거리는 앉은뱅이 허수아비도 만났다.

동문을 지나고 만나게 되는 600년 묵었다는 회나무, 그늘 아래서 자동차들도 쉬어가는

그런 거대한 나무를 보면 왠지 옷깃을 여미게 된달까. 그 생명력과 연륜 앞에서, 그리고

단단히 수백년동안 뿌리박은 그 위엄과 경이로움에 조금 압도되는 거 같다.

꽤나 한적한 나들길을 따라 걷는 건 정말 기분좋은 일이었다. 아직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아

길이 채 제대로 나지 않은 곳들을 따라 걷는 즐거움도 있었고, 아직 상업화되지 않고 정비되지

않아 그냥 날것의 일상이 바로 옆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풍경도 생생했다.


그런 길을 좀 걷다가 마주친 건물, 110년이 넘었다는 한옥 양식의 성공회 강화성당이다. 햇볕이

슬슬 따갑게 내려쬐이기 시작한지라 땀 좀 식힐 겸, 한옥식 성당이라는 이곳을 좀 구석구석

돌아보기로 했다. '대영국 알마 수녀 기념비'가 서 있는 것부터 시선을 바싹 잡아당겼다.

'천주성전'이라는 편액을 걸어둔 건물이 바로 성당 본당이다. 처마의 생김이나 색감은

여느 한옥이랑 비슷하지만 기둥 사이사이로 활짝 열릴 유리문이 있다거나, 내부에 저리

길게 늘어뜨린 전등이라거나 성당의 기능에 맞게 개조된 내부 구조가 신기하다. 그리고

신부님이 머무시는 듯한 별당 건물 역시 지붕에 십자가 표지라거나 문짝에 그려진 태극

십자가 문양이 인상적이었다.


어느새 고려궁지, 오후 2시쯤 한참 뜨거운 때여서 다 허물어진 잔해 속을 거닐며 비감에 젖는

것보다는 그늘에 앉아 아이스크림 하나를 빨며 땀도 식히고 바람쐬는 편이 낫겠다 싶었다.

몽고 침입 때 고려 왕조의 왕궁으로 쓰였던 고려궁지는 이후 버려졌다가 조선 인조 때 다시

쓰였다가 이내 다시 잊혀졌던 곳이란다. 물질적인 것보다 정신적인 흔적이 더 큰 그런 곳이다.


코스에 따르자면 고려궁지에서 북관제묘, 강화향교, 은수물을 거쳐 북문으로 가게 되어 있지만

그냥 바로 북문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기로 했다. 사실 스스로의 의지였다기보다는 그냥 내키는 대로

앞서나가는 발걸음이 이끌었다는 게 맞겠지만. 다행이었다. 나무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나무터널길이

북문에 도착할 때까지 계속되었고, 미처 가려지지 않은 햇살이 아스팔트 길위에서 반짝거렸다.

그리고 진송루, 북문. 북문은 동문과 딱히 별다르지 않게 생겼지만 좀더 지대가 높고 양쪽에

성벽을 위풍당당하게 조금 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다소 녹슬고 칙칙한 그림자에 가려진

성문을 지나면 저런 짙은 녹색의 숲이 바로 나타났다.

한번 코스에서 벗어나 일탈을 해보면, 그담엔 쉬워진다. 이제 뭐 정말 발걸음 닿는대로 걷기

시작했다. 어찌됐건 기분좋게 걸을 수 있고 재미있으면 되지, 꼭 어디어디를 지나쳐 어디로

가야 한다는 법 따위는 없는 거니깐. 숲으로 덥썩 뛰어들어서는 사람들이 많이 밟고 지나가

풀이 돋지 않았거나 상대적으로 흙바닥이 많이 보이는, 길처럼 보이는 걸 따랐다.


그렇지만 정말 작심하지 않으면 딴길로 접어들기도 어려울 만큼, 인적 하나 없는 숲길 중간에도

이렇게 나무로 잘 만들어진 안내판이 어김없이 길을 일러줬고, 그보다 더 자주 '강화나들길'의

끄나풀이 길을 인도했다. 어디선가 꽃향기가 걸쭉하게 번져나온다 싶으면 꽃이 나왔고,

어디선가 나뭇잎을 사각대는 바람소리가 들린다 싶으면 금세 바람이 따라왔다.


산길을 한참 걸어올라가다가 걸어올라온 만큼 내려간다 싶던 때 오읍약수터가 나왔다. 약수터는

그냥 조그만 동네 약수터랑 비슷했고, 그 아래쪽에 졸졸 물이 흘러내리는 풍경을 따라 걷다보니

산길이 끝나고 도로 갓길로 접어들었다.

한참 뜨거운 시간, 그림자는 한뼘도 생겨나지 않는 때에 하필 이렇게 벌거벗은 아스팔트 길

위에 서게 되다니 타이밍이 좀 안 좋았던 게다. 너무 뜨겁기도 하고 아무래도 도로 갓길은

쉽게 지치고 볼거리도 없고 하여 색색으로 이쁘게 칠해진 초등학교 정자나무 아래를 찾아

잠시 쉬었더니 금세 땀도 식고 기력도 회복하고. 근데 학교 진짜 이쁘게 칠했다.

사실 다른 건 몰라도 1코스에 '대산리 고인돌군'이 끼어있다길래 걷다가 고인돌들이 늘어선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했었다. 근데 아무리 가도 고인돌은커녕 바위쪼가리도 안 보이고

그저 숲길이 계속 이어졌고, 또 이어졌고, 주위에 보이는 건 온통 초록색 풀떼기 뿐. 길은

그대로인데 고인돌을 바라던 내 맘이 변덕인지라 '풀떼기'가 되고 말았다.


결국 다시 큰길가로 나오고 나니 맞이하는 건 사방으로 뻗은 화살표. 현재 위치는 이미

대산리고인돌군을 훌쩍 지나친 어디메쯤. 뭐 깔끔히 포기하고 고인돌은 다음 기회에 다시

보러오기로 했다. 그렇게 월곶마을의 띄엄띄엄한 건물들 사이로 느슨하게 놓인 길을

걷다가 구름 한 점 없는 날씨를 원망할 무렵이었다. 저 파랑색 차양이 눈에 띈 건.

논쪽을 향해 불뚝 튀어나온 평상 위에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중늙은이 두 분이

앉아계셨다. 보기만 해도 시원한 파랑색 차양을 높직이 드리우고는 한가로이 논쪽을

내려보며 쉬고 계신 듯 했는데, 가능하다면 옆에 한자리 끼어서 같이 쉬고 싶던 마음뿐.

결국 마을회관을 지나고 좀더 걷고서 도착한 '연미정'. 코스 중간에 식사할 수 있는 포인트로

연미정을 소개했던 안내지도와는 달리 근처엔 구멍가게 하나가 숨어있던 게 고작이어서,

위에 올라 바람맞고 쉬는 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아, 길 걷는데 중간중간 가게나 식당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건 이 코스의 장점이자 단점인 거 같다. 분위기가 흐트러지지는 않되

미리 챙겨두지 않으면 목이 말라 쓰러지거나 배가 고파 쓰러질지도.

강화 10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이곳, 연미정은 아래로 굽어보이는 물길흐르는 모양이

제비꼬리와 같다고 하여 연(제비燕), 미(꼬리眉)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풍경이나

정자가 품고 있는 시원한 바람이 예사롭지 않아 강화나들길 1코스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곳이다. (이전 포스팅 : 인조의 첫번째 굴욕이 있던 곳, 강화도 연미정.)

정말 경관이 굉장히 이쁜 곳이었는데, 500년된 느티나무도 두그루나 떡하니 버티고 있어

시원한 바람과 그늘을 품고 있었고, 그런 거에 비하면 참 안 알려진 곳이지 싶다. 어쩌면

그건 인조가 후금과의 기싸움에서 밀리고 억지로 맺었던 강화조약을 여전히 굴욕이라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치욕의 징소, 굴욕의 장소는 얼른얼른 덮고 지우려거나

최소한 소극적으로 방치해두기라도 하는 사례야 워낙 많았으니까.


나고 드는 게 자유로워서 '나들길', 강화나들길 제1코스는 이제 연미정에서 옥개방죽길을 거쳐

갑곶으로 마무리되도록 짜여있긴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기로 했다. 굳이 첨부터 끝까지 밟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편따라 나고 드는 게 정말 나들길을 즐기며 걷는 방식이지

싶어서, 배도 고픈데다가 서울로 돌아갈 시간도 애매해서 나머지길은 다음을 기약했다.


강화도에 왔다면 어디서부터든, 저 '강화나들길' 표지를 발견하는 순간 이 나들길에 들어서서

조금이라도 걸으면서 발견하게 되는 강화의 풍경을 즐기다가 다시 나리는 건 어떨지.


* 강화나들길 사이트 : http://www.trekking.go.kr/




절 옆에서 물이 솟아난다 하여 절물이라던가, 제주도의 절물자연휴양림 들어서는 입구다.

역시 탐라국답게도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입구에서부터 우리를 반겼다.

"오십디강 잘 쉬었당 갑써양", 제주 말이 잉잉거린다 싶은 건 바닷바람에 날린 탓이라고.

현충일을 앞둔 황금연휴의 시작, 토요일 오전이었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적었다. 일기가 궂어서

사람들이 제주도로 많이 못 내려왔나 싶기도 했지만 속속 도착하는 대형버스들이 사람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그래도 조금 일찍 출발한 덕분에 새소리 가득한 호젓한 숲길을 고즈넉히

걸어볼 수 있었다.

쭉쭉 곧게 뻗은 나무들이 빼곡하게 버티컬 커튼처럼 내리쳐져서는, 땅바닥의 갈빛과 천장의

녹색빛깔 사이에서 조금씩 그라데이션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앞서 걷는 사람 하나 찾아보기

쉽지 않은 그런 숲길,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와 나무향이 흘러넘쳤고 나무 사이를 휘감는

바람은 정말 머릿속 두통까지 털어내는 듯 했다.

나뭇가지를 지팡이처럼 꺽어쥐고 걷던 꼬맹이가 뭐에 심통이 났는지 빽 소리지르며

울기 시작했나보다. 당황한 부모가 일단 나뭇가지부터 던져버리고 아이를 달래기 시작,

나무 등걸을 타고 덩굴이 올라가듯 아이의 울음소리가 하늘로 번져 오르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사람많고 아스팔트로 꽉 찬 도시의 울음과는 그 괴로움의 정도가 훨씬 덜했다.

그나저나 나무 참 미끈하게 쭉쭉 잘도 뻗었다. 지면이 평평하던 기울었던 상관없이 나무는

하늘을 향해 알아서 방향을 잡아가다니, 무던하게 1미리씩 오차를 수정해가며 하루하루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꺾어나갔을 거다. 지구 중심부로부터 바로 뻗어나온 그런 각도아닐까,

왜 둥근 태양에서 햇살처럼 번져나는 느낌으로 지구에서 뻗어나간 나무들.

중간중간 놓여있던 너른 평상, 잘 관리되는 푸른 잔디밭 위에 잘 생긴 나무들이 우쭉우쭉

자라나 초록 그늘을 드리워 바람이 머문다 싶은 곳엔 여지없이 평상이 놓여있었다. 시간만

많다면 그냥 저기 벌러덩 누워서 바람쐬고 먹고 자고 하면 딱 좋겠다 싶었는데, 부러운

맘에 선택받은 사람들의 그 평온하고 편안한 분위기만 슬쩍 취했다.

덩굴식물을 보고 있으면, 특히나 녀석들의 조그맣고 반질거리며 단단한 이파리를 보고 있으면

이 아이들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실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건 아닐까 싶어질

때가 있다. 위에서부터 크리스마스 트리에 전구나 리본을 둘둘 감듯이 나무둥치에 휘휘

감아놓은 듯한 분위기여서 그런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다.


얼핏 초록빛 일색으로 보이던 숲이 알고 보면 무수하게 다양한 빛깔을 품고 있었다. 뭐랄까,

상이색이나 에메랄드색 크레파스같은 빛깔이 풍기는 숲그늘이 너무 신기해서 한참 둘러보다가,

나무를 눈여겨보고야 그 이유를 알았다. 나무껍질에 온통 옅은 녹색의 이끼가 잔뜩 끼어있어서,

전체적인 색감이 그렇게 오묘하게 나왔던 거다.

드디어 '절물'이란 이름의 연원에 도착, 절은 없어졌고 조그마한 암자가 남아있다지만

절 옆에서 흘러나온다던 물은 그대로였던 거다. 층층이 이끼가 시루떡처럼 얹혀있는 샘물,

나무대롱을 타고 흘러내리는 수량이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급살맞게 콸콸 흘러내리는

지경은 아닌데다가 주변이 온통 파릇파릇하고 폭신한 분위기인 게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어느 한 장면 같다. 토토로라도 뛰어나올 분위기.


코스가 여러곳으로 뻗어나가 있고,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산책했던 코스도 있고 하여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는 맛이 있을 거 같다. 절물오름까지도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도

있다고 하니 할애할 시간도 짧게는 한시간 내외에서부터 길게는 몇시간까지 즐길 수

있을 거 같고. 제주시에서 멀지도 않으니 꼭 한번 들러볼 만한 곳인 듯.

"왕방강 잘고라줍서", 와서 보고 가서 잘 이야기해달라는 그 당부 아니어도 이야기를 신나서

잘 할 수 밖에 없던 곳. 절물자연휴양림이었다.





산막이옛길, 풀향기 가득한 그 길에 처음 섰던 건 사실 하늘이 종일 칭얼거리던 날.

날씨도 우중충하고 빗물도 그치지 않아 어쩔까 하다가 잠시만 둘러보기로 하고 우산을

들고 카메라를 쥐었다. (맑은날의 기록 : 구불구불한 산막이옛길에 풀향기가 가득.)

흙바닥이었지만 나무쪼가리들이 폭신하게 깔려있어서 물웅덩이가 생겨있거나 질척해져있지는

않아 걷기 수월한 덕분에 물기가 총총히 맺혀있는 나무들도 보고, 흰 김같은 구름을 칭칭

감고 있는 산들도 보고, 물안개가 잔뜩 피어오른 강도 보고. 삐죽거리는 솔잎 끄트머리마다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물방울들이 점점 긴장감을 더해가고 있었다. 그러다간, 주륵.

그네도, 흔들의자도, 나무와 나무사이에서 슬쩍 휘어있는 벤치도, 그리고 자연목으로

얼기설기 엮어만든 울타리도 모두 흠씬 젖어 있었다. 그 와중에 울타리 위에서 뱀인지

용인지 혀를 날름거리며 꿈틀거리고 있는 녀석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 보니 옆에는

나무를 깎아만든 오리도 있고 새도 있고, 이 길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소품들이다.

그렇지만 이 옛길을 걸으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소품이랄까, 포스트는 단연코 이곳이었다.

정사목. 한글로 된 음만 읽으면 감이 확 오지는 않지만 한자로 써놓으면 그 의미는 분명해지는 거다.

情事木. 아니, 뻣뻣하게 굳어있는 나무가 정사라니, 기껏해야 서로 수십년에 걸쳐서 손이나 잡는

느낌의 연리지가 고작일 텐데, 나무가 정사라니.(feat. '내가 고자라니')

정사목. 나무에 뭔가 남자표시 여자표시 이름표가 붙어있는 걸 보니 뭔가 기대가 되긴 하는데,

딱히 모르겠다. 설명에 따르면 천년에 한번 나올까말까한 포즈의 나무들이라는데, 대체 뭐가

어떻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원. 근데 왜 가지가 세개지, 여자 표시가 두개 붙어있는건...?

아하, 슬쩍 각도를 틀어서 가까이 가서 보니 바로 알겠다. 무슨 숨은그림찾기처럼 한번 그림이

보이고 나니까 이제 아주아주 잘 보이는 그림, 이 나무 진짜 그럴 듯하다. 그러니까 설명하자면...

음...남자나무가...여자나무를...음...[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그렇게 한참을 즐감해주시다가, 왠지 나무들이 삐걱삐걱거리며 서로의 몸을 더듬고 비트는

듯한 환상과 함께 어디선가 밤꽃냄새가 마구 풍기는 듯한 환상이 떠오를 무렵, 정신건강에

안 좋겠다 싶어 일단은 철수하기로 했다. 마침 빗발도 좀더 굵어지고 있었고, 잔뜩 찌푸린

하늘 덕에 금세 어두워지겠다 싶기도 해서.

솔잎마다 방울져있는 빗방울들, 사선으로 내리꽂히는 빗물을 닮았다는 느낌. 빗물에 씻기고

나니 산막이옛길도 그렇고 온통 푸르른 풍경이 더욱 싱싱해졌다.






#1. 아놔, 카메라가 갑자기 두동강 나서 바닥에 철푸덕. 이제 막 길을 나서서 해장국골목서

한그릇먹고 일어나려다가, 엉덩이가 그대로 붙어버렸다.


#2. 황남빵 한박스 사들고 가끔 꺼내먹으며, 비닐봉다리에 담긴 카메라 두조각 달랑거리며

걷고 있다. 대릉원, 첨성대, 계림, 월성과 안압지를 지나 황룡사지에서 잠시 휴식중.

#3. 걷는 것만큼 확실하고 단단하게 이동하는 방법은 없지 싶다. 내가 감내할 만한 속도로

주위사물들을 하나씩 만지듯 분별하며 뒤로 흘려보내고, 주위 분위기에 흠뻑 젖을만큼

스스로와 풍경을 동화시켜준달까.

#4. 경주 시내를 빠져나와 오릉, 박혁거세니 유리왕이니 소설속 인물같은 이들의 소설같은

무덤을 둘러봤다. 저 언덕들은 참 곱게도 잔디를 입혀놨단 생각만 들 뿐, 죽은 이들이 쉬는

공간에서 느껴져야 할 답답함이나 무거운 공기가 없다. 이천년 가까운 시간이 죽음의

무겁고 퀘퀘한 냄새조차 날려버렸다. (그나저나 안내판엔 온통 한자뿐. 그것도 손글씨.)


#5. 박혁거세의 탄생설화가 서린 우물이라 신라의 우물, 나정인가. 예수보다 육십년쯤 먼저

'알'에서 태어난 박혁거세가 발견된 우물이 아직 남아있단 게 더 신기. 우물이니 알이니

동정녀니, 섹스(혹은 불륜)를 숨기거나 신성화하려는 전략이란 점에서 예수나 혁거세나

베들레헴이나 경주 나정이나 오십보 백보.


#5. 나정에서 포석정을 지나 삼릉골로 가는 길이다. 포석정 뒷길로 남산을 오를까 하다가

매표소 아줌마에게 추천을 청했더니 역시 삼릉골로 오르는 게 볼 것도 많고 길도 재밌다고.

남산은 당시 신라인들이 부처가 머물고 있다 생각했던 곳이라 했던가. 골짜기마다 잔뜩

조성된 석탑과 석불 따위 불교 유적들이 대단하다. 아마도 사람들은 산에 기대듯 부처에

기댔던 거다. 아니면 부처에 기대듯 산에 기댔는지도.

#6. 삼릉골이란 이름은 골짜기 입구에 세 개의 커다란 릉이 있어서라고 하지만, 막상

언덕만한 왕들의 무덤이래봐야 남산에 의탁하고 나니 그다지 위신이 안 선다. 왕이

자연에 귀의한 느낌이랄까, 산자락에 오체투지의 자세로 늘어붙은 것 같은 젖꼭지 세개.

#7. 워낙 삼릉골을 따라 조성된 탑이니 부처가 많은지라 이름모를 조각들도 뒹굴고 있었다.

그 중 문득 시선을 사로잡던 저 미묘하게 불룩한 위치와 모호한 손놀림.

#8. 선각육존불, 커다란 바위에 선으로 여섯 부처를 그려놓았던 곳이다. 그렇지만 바위

자체의 무늬와 오랜세월 깍이고 다듬어진 자취 때문에 선을 하나하나 식별하기가 이젠

쉽지 않아진 그림판. 군데군데 청동처럼 녹도 슬었다.

#9. 저 바위의 효용은, 그보다는 저 위로 좀더 올라가서 자리를 잡고 해바라기했을 때다.

왕릉같이 부드럽지만 위엄있는 선을 그려내는 경주의 산들이 바라보였다.

#10. 돌아나오는 길에 어느 새로 짓는 듯한 전통음식점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한옥지붕위로

어벙벙하게 웃고 있는 저 표정, 조그만 눈과 헤벌쭉한 입이 그렇지만 굉장히 다정다감했다.

2010년에 다시 그린 경주인, 신라인의 얼굴일지도.


* 경주남산 가이드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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