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유도로 넘어가는 구름다리, 양쪽 기슭에서 시작된 둥근 아치형의 다리가 직선의 교각 위로 불쑥 튀어나온

부분이 재미있다. 날씨가 좀 풀렸더니 그 둥근 다리 위를 쌍쌍이 걷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다리를 건너는데 문득 눈에 띄었던 나무 두 그루. 꼭 짝지처럼 바싹 붙어서서 하나는 강가쪽으로, 다른 하나는

선유도쪽으로 촉수를 쭉쭉 뻗은 모습이 미묘하게 서로를 위하는 것 같다. 양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부터

상대를 막아주려 발뒤꿈치 들고 앞으로 용을 쓰는 모습이랄까.

애초 정수시설이었던 이곳, 이전의 모습을 허물어버리지 않고 나름의 미감으로 활용한 모습이 곳곳에 보인다.

삭아내린 시멘트벽 너머로 겨울철을 버텨낸 풀떼기들이 앙상하게 하늘거리고 그 머리 위엔 하얀 달이 조각구름처럼 떴다.

날씨가 좀 풀린 덕분인지 사방에서 카메라를 둘러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고 있었다. 이들은 커플 모델인건가

아니면 무슨 웨딩사진이라도 찍는 걸까.

발길 닿는 대로 걷다가 만난 토끼 한 마리, 요새 공원들에는 토끼를 일부러 풀어두는 건지 작년엔 올림픽공원에서

토끼 뒤를 쫓아달리며 기어코 두손으로 번쩍 잡아올리기도 했었는데. 이녀석도 좀만 발품 팔면 잡을 수도 있을 거

같이 토실토실 무겁게 보였지만, 뭐 잡는다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선유도 공원의 중심부랄까, 정수되길 기다리는 물들이 담겨있었을 정수조엔 이제 찰박찰박하게 빗물이 고였고

정수조 사잇길은 연인들의 산책로가 되었다.

문득 발견한 매미 허물. 지난 여름 매미가 오지게 울어대기도 전에 벗어던진 허물일 테니, 어느새 일년 가까이 된 거

아니려나 싶다. 그런 거 치고는 주둥이 앞섶의 솜털까지 생생하게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나온 녀석은 이미 신나게 울어제끼다가 어딘가에서 생을 마쳤을 텐데, 매미도 죽어서 허물을 남기는구나.

가로세로 열맞춰 도열한 수십개의 기둥들이 온통 담쟁이 덩굴에 휘감겼다 했는데 유독 저 기둥 하나만 헐벗었다.

제법 두텁게 겨울옷을 입고 버티는 듯한 풍성한 기둥들 사이에서 더욱 선뜻하니 추워보이는 까실한 시멘트 기둥.

이런 식으로 기존 정수시설의 흔적이 폐허처럼 남아있는 게 맘에 든다. 잘 포장되고 덧씌워진, 확실한 마감이 아니라

이 곳의 기억과 용도가 어느 정도 추측가능한 수준으로 보전되어 있는 편안한 폐허 혹은 재활용품인 선유도공원.


중간중간 이렇게 위아래를 오르내릴 수 있는 구름다리나 계단이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땅바닥에서 걷기만 하는 게

아니라 시시때때로 눈높이를 오르내리며 시각을 달리 할 수 있다는 점, 평면이 아니라 입체를 걷는 재미랄까.

이 곳의 놀이터 역시 재활용의 미감을 담뿍 흘려내고 있었다. 자연스레 녹슨 철제 튜브가 그대로 미끄럼틀이 되었고

마냥 신난 아이들은 미끄럼틀 출구에서 6중 추돌사고를 일으키고 말았다. 다들 뒷목 잡고 일어나기 직전의 모습.

보통 저런 곳에는 꼬물꼬물 조그마한 글씨로 알아보기도 쉽지 않게 누구야 사랑해, 를 적어두기 마련인데 내가

여태 본 낙서 중에 가장 대범한 거 같다. 쪼잔한 수백명이 달라붙어 낙서를 할 수 있을 만한 공간에 저렇게

큼지막하고 자유롭게 글자 여섯개를 남기다니. 대범하고 자유로운 발상만큼 이쁜 사랑하시길.

돌아나오려는 길, 다리 두어개 너머로 시선을 던지면 바로 여의도가 보인다. 국회의사당의 파스텔톤 둥근지붕이

살짝 드리운 안개인지 스모그인지 때문에 더 칙칙해보였다.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서 전철, 산악열차, 유람선, 곤돌라 따위를 타며 하코네를 돌아보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어느 료칸, 예약자명을 대고 입실하고 나니 푸짐함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다다미식당엔 발이 내려뜨려져 있고 마치 명패를

붙여놓듯 각 좌석마다 료칸 투숙객들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그쪽으로 인도해주던 아가씨는

영어가 조금 짧았지만 생글거리는 미소와 친절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젓가락을 받치고 있는 토끼도 귀엽지만 젓가락을 묶어둔 일본전통종이 재질의 띠지도

고급스럽다. 사실 토끼 표정은 살짝 '자살토끼'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 봐왔던 수많은 물수건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걸 여기서 만났다고나 할까.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는데, 면이 헤지지 않아

털도 두툼하니 포실포실한 느낌이 들었고 따뜻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로

나오게 될 음식들의 질과 맛을 기대하게 만들던 그럴듯한 '에피타이저'랄까.

이내 내온 음식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갔던 이 료칸에서 은근히 토끼 장식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씨알굵은 밤이니 참치니 생선알이니 따위가 금빛 접시에 담겨나왔고,

그 위에는 하얀 무로 깎여진 눈빨간 토끼 한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금빛 접시에 올라있던 시원한 음료랄까, 냉국이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알맹이가 자작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한 느낌이 잔뜩 전해지는 노란색 묵, 위에 살짝 얹힌 와사비와

초록색 별모양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히 미각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날 먹어'라고 맹렬하게 유혹하는 음식들.

이제 주메뉴, 하코네 멧돼지고기 샤브샤브. 커다란 접시에 야채도 제법 풍성하게 나왔고,

깔끔하게 썰린 돼지고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기온열기 위에 등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를 올리고 기름종이를 받치고는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한겹의 얇은 종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돼지고기와 야채들, 불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선지 순식간이었다. 야채들은 거의 데친다는 느낌으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고, 돼지고기는 조금은 더 익혀서.

샤브샤브를 먹는 새 반찬들이 나왔다. 반찬이랄까, 사이드디쉬랄까. 반찬이라기엔 하나하나

단품으로도 너무 훌륭한 것들이어서, 또 딱히 밥이랑 먹는 것들도 아니어서.

밥이 그리 작지 않은 통에 담겨나왔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나뒹굴고 만 밥통. 하루종일 하코네 산간을 돌아다니느라 적잖이 지치고

배고팠던 상황이라곤 해도, 굉장히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저녁식사였다.

그렇게 야채 한 점 남기지 않고 완전히 싹 비어버린 샤브샤브 접시도 나뒹굴고. 남은 건

애초 서빙될 때 꽂혀 왔던 '하코네멧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살표 하나.

그리고 디저트, 소복하니 상큼한 과일샤벳과 촉촉한 치즈케잌, 그리고 말차 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찌 두조각에 커피가 나왔다. 정말 디저트까지 한치의 허술함이 없는 훌륭한 만찬이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들게 만들던 것들. 새삼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아도 참...언제고 다시 한번

료칸의 굉장했던 온천욕 시설을 만끽하고 나서 저 만찬을 맛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소소한 디테일도 정겹기 그지없던 료칸의 식당 액세서리들. 젓가락을 받쳐주던 토끼들도

그렇지만, 이쑤시개를 담아두고 있던 저 쇼핑백 모양의 통도 참. 정말 종이쇼핑백을

펼쳐놓은 채인 양 옆에 라인도 들어가있을만큼 디테일하던.







토끼해를 맞아 다짐했을 여러 약속들, 꼭 이뤄지길 바라는 여러 소원들, 모두 그 결이 다르고

색이 다른 이야기들이겠지만, 사실은 모두 하나로 돌아오는 이야기인지도 모릅니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이번 발렌타인데이를 핑계로 그런 마음을 채우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준비했습니다.

'초콜렛을 (많이) 받는 나만의 노하우!'라는 Q&A를 겸한 초대장 배포!


● 일시 : 2011년 2월 11일(금) PM 3:00부터

장소 : "다른異 색깔彩을 지켜낼 자유"
              옛)異彩가 꿈꾸는 경험적세계의 유토피아적 가능성

                 (http://ytzsche.tistory.com)

● 자격 : "초콜렛을 많이 받는 나만의 노하우?"
              이 질문에 대한 본인의 답과 그 이유를 적어주세요.

              + 초대장을 받을 이메일주소!^-^*


주최 : yztsche(이채, 異彩)

제공 : 초대장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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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서 열리고 있는 2010년 세계등축제, 얼마전 화재사고가 터지는 등 불상사가 있었지만

워낙 사람들이 몰리고 호응이 좋은 탓에 일주일인가 축제기간이 늘었다고 했다. 정확히는 몰라도

슬쩍 주워들은 이야기만 믿고서 다짜고짜 청계천으로.

십장생들, 학과 영지버섯, 거북이 등등이 소라광장에서부터 시작. 청계천 양쪽 수변으로는

색색의 등들이 두 줄로 내걸려 있었고, 아랫쪽 통행로는 사람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순례중.

연보랏빛 벚꽃도 샤방하지만 그 나무에 슬몃 몸을 기댄 소녀는 더욱 샤방샤방.

용궁을 형상화한 듯 사람몸통만한 잉어들이 펄떡이며 호위하고 있는 화려한 구중궁궐.

중국의 경극에서 볼 수 있는 변검을 소재로 한 등인 거 같은데, 자꾸 어딘가의 도박장이 떠오르는

이유는 뭔지 모르겠다. 빠찡꼬의 색감과 비슷해서 그런 듯.

굉장히 역동적인 동작을 보여주는 두 개의 등. 일본의 무사거나 신 아닐까 싶은데, 얼굴에

빨간 칠하고 칼든 저 분은 스트리트 파이터의 옛 캐릭터 혼다를 닮았다.

타이완에서 온 이 아저씨는, 주위에 금전을 질펀하게 깔아두고 '금전의 신' 행세를 하는 중.

남미의 어느 나라에선가 왔다는 이 초록빛깔 괴물등과 그 너머 캄보디아의 앙코르왓 모양의 등.

피사의 사탑이 원래 이 정도로 심하게 기울었나, 싶도록 완전 기우뚱한 등은 좀 위태위태해 보인다.

2012 여수세계박람회의 마스코트들인 듯. 뭐, 치렁치렁한 머릿결 외에는 그다지 특징적이지는

않은 캐릭터란 생각이 조금.

그러고 보니 대충 한 달 후면 크리스마스도 오는구나. 굉장히 심플하게 만들어진 형태지만

이런저런 그림들이 그 단순한 형태를 잘 보완해서 이쁘게 만들어진 듯. 살풋 부푼 별도 그렇고.

여기는 G20를 위한 공간, 스무 개 나라의 국기가 청사초롱으로 만들어져 빛나고 있었다.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운운 할 때의 그 주마등, 등 안에 초를 켜두고 밑에 바람개비를

달아두면 안에 있는 그림통이 빙빙 도는 대류현상이 일어나서 '말이 움직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서 주마등이라고 한다. 스무 개 나라에서 온 말과 국기가 함께 빙빙 돌던 주마등, 아무 것도

성취없이 원점으로 도로 돌아간 G20 서울 서밋의 훌륭한 상징이긴 하겠다.

익살스런 표정의 장승들, 특히나 활짝 잇몸을 드러내며 웃고 있는 지하여장군의 기백이 대박이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한국의 전래동화를 소재로 제작한 등 중에서 가장 맘에 들던 것 하나.

마침 올해가 호랑이해였고 내년이 토끼해니까, 늘어지게 퍼져앉은 호랑이 옆에서 담배연기

훔쳐 마시고 있는 눈빨간 토끼녀석이 좀더 눈에 밟히는 건지도 모르지만.

여기도 토끼, 이 녀석은 좀 덜 귀엽다. 밑에 있는 별주부 녀석은 뭐가 좋은지 헤벌레, 아, 금세라도

토끼 녀석의 간을 빼다가 용왕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기쁨에 은근슬쩍 잠겨 있을 때겠구나.

등불만 봐도 전체 스토리를 빠바박 떠올릴 만한 몇 개의 동화 내용들이 담긴 아름다운 등들이

지나가고, 그 담에는 좀더 경쾌하고 즐거운 모양의 등불들이 등장. 제기를 차거나 말뚝박기를

하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노는 어린이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면 말뚝으로 박혀있는 녀석의

표정이 썩 밝고 재미있지만은 않다. 외려 굉장한 리얼리티.ㅋ

눈이 벌건 거북선도 떠있었다. 토끼의 해를 맞이하여 거북선의 용머리 눈알도 토끼눈처럼

빨갛게 충혈시켜주는 건 센스일지도.

뜬금없지만 무지 귀엽던 개 등불 옆을 지나, 메뚜기가 느적거리고 쇠똥구리가 거대한 똥을 말고 있는

풀밭을 지났다. 그러다보니 거의 종로1가쯤까지 걸은 듯 하다.

세계등축제의 마지막 전시 등불은 뭔가 '등불'의 개념파괴를 시도한 듯한 LED조명이 휙휙

지나다니는 강아지 한 마리. 파트라슈의 개처럼 얼룩덜룩한 무늬가 개의 온몸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녔는데, 그냥 난 좀전에 있었던 그 귀엽고 작지만 따뜻한 불빛을 품고 있는 강아지가 좋았다.

그리고 조금 맘에 걸리던 것들, 청계천을 대낮같이 밝힌 등불과 청계천 수로 가운데에 수십개씩

설치된 철구조물 때문인지 수로 가장자리에 잔뜩 뭉친 채 부유하고 있던 조그마한 물고기들.

치어 수준의 어린 물고기들 같았는데, 이 녀석들은 어느 수족관에서 사왔을라나.

당장 눈에는 보기 좋고 사진찍기 이쁘기는 하다지만 그런 등불들이 청계천 위에 둥둥 떠있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수로 바닥에 이렇듯 튼튼한 철제 구조물을 받쳐두어야 하는 거다.

저것들이 위생상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밤 시간에 저렇게 밝은 불빛들이 한동안 켜져 있어도

수중 생태에 괜찮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런 장애물들이 수로에 잔뜩 있으니 물 흐름에 장애가

생기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겠고.

돌아나오는 길, 청계천 내에는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지 않다는 표지판이 보였다. 물흐름장애 및

수질오염방지를 위한다는 명목인데, 두 가지 전부 세계등축제에도 해당될 여지가 있어보인다.

청계천이 정말 복개천인지 아니면 거대한 인공수조인지, 거기 사는 물고기들이 생태계가 되살아난

증거인지 아니면 서울시청에서 사다가 뿌린 건지, 따위의 문제들은 이미 많이 지적되었으니 생략.


다만,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 우아하고 아름답게 미끄러져 다니는 것 같아도 그 밑에서는 쉼없이,

그리고 고생스럽게 물갈퀴를 젓고 있다는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한줄로 서서 순례하듯 구경하는

어여쁜 세계등축제가 벌어진 청계천 수중에서는 뭔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고생스럽고 힘겨운

삶을 사는 물고기나 수중생태계가 있음을 한번쯤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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