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하늘 틈으로 빗발보다 먼저 뭉게뭉게 비구름이 들이찼다. 갈라진 천장 사이를 억지로 더욱 비틀어

비집고 들어오려는 듯 우왁스런 안개가 시시때때로 만들어져선 용을 쓰다 사라졌고, 그로부터 굵고 길죽한

빗발이 죽죽 그어져내렸다. 그렇게 온통 하얗고 까만 그 공간에서 빗물에 젖은 강철지지대가 녹슨 적빛을

식은땀처럼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순간 수직으로 낙하하는 빗방울과 교직하며 홍대입구행 'INNER CIRCLE LINE'이 도착했다.

애초 '내부순환' 정도의 의미밖에 없었을 저 단어가 언제부터 내게 그야말로 '이너서클', '파워엘리트집단'

따위의 부차적인 의미를 먼저 제시하게 되었을까, 잠시 생각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말았다.




지하철 7호선을 타고 가다가 청담역에서 내렸다. 무심하게 플랫폼을 밟고 계단을 향하는데,

문득 시선이 간 반대편 쪽에 전철이 문이 활짝 열린 채 뭔가가 바글바글한 거다. 그냥 잠시

정차해 있는 지하철이겠거니 했는데 다시 출발하지도 않고 그냥 계속 잠잠하다.


그러고 보니 양파자루도 보이고, 노랑 플라스틱 박스도 보이고, 어라 저게 뭐지.

궁금증을 못 참고 슬쩍 객차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건 무슨 마을 장터다. 손님들이 앉았던

의자는 박스들을 쌓아두는 간이창고로 바뀌었고, 서서 손잡이를 잡고 있어야 할 위치에는

오이니 양배추니, 채소들이 진열된 채 팔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그림, 제법 사람도 복작한 게

너무 재미있는 거다.

아예 저렇게 커다란 현수막도 내걸고, 냉장고도 들여놓고 본격적으로 장사하는 분들을

보니까 이게 한두번으로 끝나는 일회성 행사는 아닌 듯 싶다. 아는 분들은 알음알음해서

퇴근길이나 어디 다녀오는 길에 지하철에서 내리기 전 두손을 무겁게 해서 전철역을

나설 것만 같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지하철 마을 장터, 주변분들은 애용하시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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