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뿐 아니라 인도 대륙 전체를 통틀어 4대 시바 사원 중의 하나로 꼽힌다는 카투만두 파슈파티나스 사원.

 

쉼없이 쌓이는 장작들, 어디선가 끊임없이 옮겨오는 고인들의 유해들이 피워올리는 연기와 독특한 냄새가 특징적이다.

 

그리고 한쪽 강변으로는 11개의 새하얀 탑이 있는데, 이건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의 성기, 양물을 형상화한 상징과도 같은 것이라나.

 

그 거대하고도 수많은-무려 11개의-양물 아래에서 사람들은 초에 불을 붙인 채 유유자적한 강물에 띄워보내기도 하고.

 

그리고 그 강물은 또다시 화장터에서 쏟아져내리는 잔해들을 삼키고 계속 나아갈 테고.

 

사람들은 유해를 따라 움직이며 눈물을 흘리고 더러는 한국과도 같이 곡을 하기도 한다.

 

그리고 장작 위에 안치되는 고인을 따르는 그 행렬 마지막에는 동전을 짤그랑짤그랑 흘리며 뒤따르는 사람까지.

 

 

파슈파티나스 사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왠지 굉장히 황폐하고 인적도 드물어, 조금 들어가보려다가 말았다.

 

강의 상류, 뭔가 낡고 잔뜩 허물어진 사원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왠지 맥이 풀려서 의욕을 잃었다. 냄새 때문일지도.

 

그래도 이만큼 강을 거슬러 올라와 화장터와 사원 본진쪽을 바라보니 마치 삼도천 같기도 하다.

 

강변의 절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면에 기댄 허름한 오두막들, 이곳에 상주하는 힌두교 수행자들의 수행지라고 한다.

 

 

다시 내려온 화장터에서는 누군가의 화장이 막 시작되려는 참.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맞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지만 이렇게 트인 공간, 게다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된 공간에서 화장을 치르는 것 자체가 개념이 다르다는 반증일지도.

 

사원 곳곳에 설치되어 있던 낡은 기부함. 저렇게 양철 껍데기가 삭아들어버릴 정도면 대체 언제 만든 걸까.

 

 

연기가 하늘로, 강변으로 번져나가고 슬슬 빗겨내리는 햇살 속에 까만 실루엣으로 자리한 파슈파티나스사원.

 

화장터가 살짝 그늘 속에 숨겨지고 나니까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다. 사진엔, 냄새가 담기지 않는다.

 

 

파슈파티나스 사원의 가운데에 위치한 탑. 힌두교 수행자인 듯 화려하게 치장한 사람이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이며

 

'나이스 뷰, 나이스 뷰'를 외친다. 탑 안에 들어와 전망을 볼 수 있게 해줄 테니 팁을 달라는 거 같아 싱긋 웃고 지나친다.

 

파슈파티나스 사원 내의 사원 건물들은 대부분 힌두교도들에게만 입장이 허락되어 있다.

 

그래서 이 곳을 찾은 여행자들은 그저 외관을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느낌이 전해진다.

 

역시,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며 카메라와 자신을 번갈아 가리키는 사람들. 이들이 그 유명한 힌두교 수행자들,

 

사두라고 불리우는 이들이다. 사실 저렇게 치장하고 사람들 사이를 슬슬 지나다가 누군가가 카메라라도 쥘라 치면

 

기둥 뒤로 숨어버리거나 얼른 내빼버리고는 돈을 먼저 요구하는 사람들이니, 수행을 한다고 해야 할지는 의심스럽다.

 

내게도 여지없이 돈부터 요구하는 그들에게 지갑을 툭툭 쳐보이고는 카메라를 먼저 가리켰다. 나름 '선촬영 후보수'의 조건을

 

제시한 셈인데, 눈치빠른 이 수행자님들은 바로 알아들으시고 얌전히 포즈를 쥐어주었다. 일단 주도권을 쥐었으니 다양한

 

각도로 일단 쉼없이 셔터부터 누르고 본다. 그리고 나서 감사를 표하며 지폐를 한 장 꺼내들었더니 자기들은 두 명이라며

 

두 장의 지폐를 달라는 이 고명하신 수행자님들. 그냥 둘이 갈라쓰시라는 수신호를 하고는 꾸벅 인사를 해드렸다.

 

 

이 멋진 치장. 대체 저런 액세서리들은 어디서 다 조달해 오신 걸까. 그리고 온몸 가득 하얗게 분칠을 할 때는 무슨 화장품을 쓰는 걸까.

 

그리고 저 앙상한 다리. 아마도 이 분들은, 종교나 문화는 달랐지만 '신밧드의 모험'에 나왔던 그 할아버지와 동류일지도 모르겠다.

 

개울을 좀 건너게 해달라고는 무등을 탄 채 그대로 계속해서 신밧드를 말처럼 부리던 심술궂은 할아버지.

 

이 아저씨도 그랬다. 카메라를 보자마자 알아서 이리저리 포즈를 잡거나 웃거나 손을 흔들고는, 카메라 뷰파인더에서 눈을 뗀

 

나를 보자마자 돈을 달라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인다. 아저씨 찍은 거 아니라고, 저 탑을 찍은 거라고 (거짓)수신호.

 

네팔어인지 아니면 산스크리트어(범어)인지 모르겠지만 금이 쫙쫙 가고 가장자리가 깨어져 있는 종들.

 

 

허름한 건물, 아마도 수행자들을 위한 그나마 제대로 갖춰진 숙소인 듯한 공간에서 창살쳐진 창밖을 굽어보는 어느 수행자.

 

 

슬슬 하늘이 어둑해지기 시작했다. 하늘의 구름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화장터의 불빛은 주홍빛으로 더욱 아름다워졌다.

 

몇 개의 사원 건물들이 군집해 있는 이곳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건 역시 파슈파티나스 사원. 금속제의 지붕이 황금빛으로 은은하다.

 

 

안 그래도 가장 센치멘털하고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시간대가 이렇게 뉘엿뉘엿 해가 지기 직전인데, 사방에서 오르는 연기와

 

싱숭생숭 착잡한 냄새까지. 문득 여기가 어디고 난 누구인가, 싶을 만큼 몽환적인 분위기에 빠져 버렸다.

 

 

떨어지는 해를 보는 걸까, 거뭇거뭇해지는 하늘을 보는 걸까. 아니면, 아직 작고 여린 새끼의 가쁜 심장소리를 듣고 있는 걸까.

 

 

그러고 보니, 나라에 큰 일이 생겼을 때는 봉수대의 모든 봉화를 올려 전력을 다해 불을 피웠다고 했다. 그게 네 개던가 세 개던가.

 

여긴 예닐곱개의 연기가 한꺼번에 피어오르니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나라의 큰 일보다 더 큰 일, 누군가의 부재를 알리는.

 

 

한쪽에서는 사람이 사라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연극을 하듯 강렬한 조명 아래에서 살아 숨쉬는 모습이 아이러니하다.

 

 

그렇게 뭔가 다른 세상에 잠시 떨어졌다가 돌아온 것만 같은 파슈파티나스 사원에서의 오후와 저녁 시간을 보내고,

 

엷은 보랏빛으로 물들던 하늘이 삽시간에 새까매지고 나서야 덜컥 걱정스러워져서 깜깜한 길을 십분여 더듬어 공항으로 걷다.

 

갈 때와는 달리 훨씬 금방 도착했다는 느낌으로, 'Buddha's eye'가 내려보고 있는 국제공항 입구에 도착해서야 안도하다.

 

어디나 그렇지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를 올랐다 내려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한번 밟아보고 거리감을 익힌 길에 대해서는 훨씬 금방 도착하는 것만 같다. 훨씬 안정되고 안심한 채로.

 

 

그렇게, 꼬박 10일에 걸친 네팔 여행, 주로 안나푸르나 푼힐과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할애했던 여행에 마침표.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유후인 료칸 '유후인몰'의 조식. 체크인할 때 7시반과 8시의 두 타임 중에서 선택해 놓으면 모닝콜도 겸해준다는.

 

신선한 샐러드로 먼저 입맛을 좀 돋군 후에 밥과 반찬으로 돌입.

 

생각보다 적지도 많지도 않았던, 딱 적당한 만큼의 아침식사.

 

 

반찬들도 조금씩 맛을 볼 수 있는 정도로, 그렇지만 그렇게 하나씩 맛보다 보면 밥 한그릇이 비워지는 정도로.

 

식사가 치워지고 나서 나온 건 정말 간이 하나도 맞춰지지 않은 그냥 생 콩즙이랄까. 콩비지랄까.

 

과일잼이 뿌려진 채 살짝 얼려져서 나온 치즈까지 먹고 나면 조식은 끝~

 

아무래도 일본의 료칸에 묵으면 이렇게 멋진 저녁과 아침을 먹을 수 있다는 게 장점인 듯.

 

자리 옆에 일본 전통 화지로 문창살을 발라 놓고는, 더러 빵꾸가 난 곳에는 저렇게 이쁜 꽃모양으로 땜빵을 해 놨다.

 

 

 

 BGM : '시장에 가면'.

 

재래시장임이 분명한 골목통 시장통에 떡하니 붙은 '현대시장'. '현대'라는 단어를 굳이 앞세워 촌스러움을 더하는 시장.

 

도로 앞까지 잔뜩 좌판을 벌이고 바가지마다 듬뿍담뿍 과일이니 생선을 올려둔 아주머니들.

 

 아직은 이르다 싶은 시간대부터 좁고 긴 시장 골목통에 머리를 삐쭉 내밀곤 불밝힌 가로등.

 

 시장에 가면~ 사과도 있고~ 레몬도 있고~ 바나나도 있고~ 참외도 있고~ 수박도 있고~ 포도도 있고~

 

 불쑥 튀어나온 주차금지 표지판, 그 불그죽죽한 낯짝에서 전통시장의 신산한 속내를 넘겨짚어 볼 뿐.

 

 이윽히 내려앉는 어둠에 뒤질세라 시장을 뒤지며 몇백원을 아끼는 우리네 어머니들.

 

가게의 내용물을 모두 밖으로 토해낸 듯한 가게다. 간이고 쓸개고 온통 거리에 전시중.

 

 어둠처럼 내달리는 걸음걸이로는 잡을 수 없는, 알전구 위에 별빛이 피었다.

 

 가게마다 주렁주렁한 하늘색 반투명 까슬한 비닐봉지. 바스락보스락 소리조차 죽여주는.

 

그리고, 이게 바로 재래시장의 흔한 S라인.

 

 

 

카이세키 요리, 일본 아오모리현에 가서 카이세키 요리를 먹을 예정이라 하니 좀 안다는 사람들이

궁중에서 먹는 요리라느니 연회장 요리라느니 여러 구구한 설명을 해줐지만, 정확히는 이런 거란다.


"에도시대부터 연회요리에 이용하는 정식요리이다. '가이세키[]'는 모임의 좌석이라는 뜻이다.

일본의 정식요리인 혼젠요리를 간단하게 변형한 것이다. 결혼식이나 공식연회 또는 손님을 접대할 때

사용한다. 처음부터 음식을 모두 차리는 혼젠요리와 달리 국과 생선회를 먼저 차린다. 그리고 다음

요리를 차례로 낸다.


보통 1즙3채()·1즙5채()·2즙5채()를 이용한다. '즙()'은 국을 뜻하며,

'채()'는 반찬을 이르는 말이다. 요리는 손님의 취향에 맞추어 계절에 어울리는 것으로 준비한다.

음식마다 서로 같은 재료, 같은 요리법, 같은 맛이 중복되지 않도록 구성한다. 음식의 맛은 물론이고

색깔과 모양을 감안하여 요리하고, 그릇에 담을 때도 그릇의 모양과 재질까지 고려한다."

뭐 그러고 보니 국과 생선회가 먼저 나오긴 했던 거 같다. 참치랑 연어랑 새우회.

그리고 약간의 면이 들어간 맑은 냉국.

새우랑 문어, 그리고 파프리카랑 채소들이 버무려져 있는 상큼한 샐러드.

오리훈제고기와 큼직하게 썰린 토마토 한 조각.

마 같은 느낌이었는데 정확치는 않고, 유부랑 마가 얇게 슬라이스된 반찬.

그리고 아오모리 고유의 특성이 살아있는 메인요리. 한국에 '도루묵'으로 알려져 있는 생선과 쌀로 빚어진

떡같은 것, 그리고 좀 짭조름하게 간이 배어있는 어묵같은 것들을 화롯불에 굽기 시작.

그리고 큰 무쇠냄비에 푸짐하게 담겨나온 아오모리 지역의 대표음식. 어묵처럼 생긴 저것은 꼬치구이로

이미 나와서 철판 위에 구워지고 있는 것과 같이 쌀로 빚어진 떡이라고 해야 하나. 찰지게 엉겨있어서

그렇지 입안에서는 물에 갠 밥처럼 이내 풀어지는 식감이 독특하다.

서빙해주시는 호텔의 아주머니가 일본식으로 얌전히 무릎을 모으고 앉으셔서 젓가락을 교묘하게 움직이며

고르게 배분되도록 신경쓰셔서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에게 한그릇씩 덜어주셨다.

뾰족뾰족 깃대처럼 꽂혀있던 것들을 철판 위에 고이 눕히고 노릇노릇해질때까지 굽는데 아무래도

저 '숭악스런' 도루묵 생선의 표정이라거나 구불구불 잘도 꼬챙이에 꽂혀 있는 그 모양새가 계속

시선이 간다. 다른 것들이야 뭐, 그냥 별스럽지 않은 꼬치스럽게 생겼다지만 저 역동적으로 파닥대다

굳어버린 듯한 자세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뱉는 듯한 입모양하며.


도루묵의 어원이, 임진왜란 때던가 청나라가 쳐들어왔을 때던가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어딘가로 피신하던

그 곤궁하고 핍박받던 상황에 여느 어부가 바친 생선이 너무도 달고 맛있게 느껴졌다던가. 그래 생선의

이름을 왕이 묻자 '묵'이라 답하였고 이에 왕은 이토록 맛난 생선에 이름이 너무 별로라 하여 다른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지어줬다가, 나중에 다시 사태가 진정되어 왕궁에 돌아와 배부르고 등따실 때 옛 추억

더듬는다며 '묵'을 맛보자 하고는 에잇 퉤퉤, 도로 묵이라고 하여라, 하여 도루묵이 되었다고 했었다.


뭐, 그 장황하고 변덕스런 이야기는 굳이 제대로 된 버전을 찾을 것도 없이 별다른 교훈도 의미도

찾을 수 없는 거니까 그렇다 치고, 중요한 포인트는 '도루묵'이란 생선의 맛. 개인적으로는 저렇게

구워진 도루묵은 꽤나 맛있었다. 꼬챙이에 아코디언처럼 꿰어버린 몸뚱이에 활짝 벌린 아가리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뭐.






아침 일찍 도쿄를 출발해서 전철, 산악열차, 유람선, 곤돌라 따위를 타며 하코네를 돌아보고

어둑어둑해질 무렵 도착한 어느 료칸, 예약자명을 대고 입실하고 나니 푸짐함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갈한 분위기의 다다미식당엔 발이 내려뜨려져 있고 마치 명패를

붙여놓듯 각 좌석마다 료칸 투숙객들의 이름을 붙여두었고, 그쪽으로 인도해주던 아가씨는

영어가 조금 짧았지만 생글거리는 미소와 친절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젓가락을 받치고 있는 토끼도 귀엽지만 젓가락을 묶어둔 일본전통종이 재질의 띠지도

고급스럽다. 사실 토끼 표정은 살짝 '자살토끼'가 떠오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가 여태 봐왔던 수많은 물수건 중에서 가히 최고라 할 만한 걸 여기서 만났다고나 할까.

검은 바탕에 알록달록 큼직한 꽃문양이 그려져 있는 수건이었는데, 면이 헤지지 않아

털도 두툼하니 포실포실한 느낌이 들었고 따뜻하면서 깔끔한 느낌이 좋았다. 이후로

나오게 될 음식들의 질과 맛을 기대하게 만들던 그럴듯한 '에피타이저'랄까.

이내 내온 음식들, 그러고 보니 작년 가을에 갔던 이 료칸에서 은근히 토끼 장식들을

많이 보았던 것 같다. 씨알굵은 밤이니 참치니 생선알이니 따위가 금빛 접시에 담겨나왔고,

그 위에는 하얀 무로 깎여진 눈빨간 토끼 한마리가 폴짝 뛰어올랐다.

금빛 접시에 올라있던 시원한 음료랄까, 냉국이랄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탱글탱글한

알맹이가 알맹이가 자작한 국물에 가득 담겨 있었다.

보기만 해도 탱글탱글한 느낌이 잔뜩 전해지는 노란색 묵, 위에 살짝 얹힌 와사비와

초록색 별모양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단순히 미각적인 기대뿐만이 아니라 시각적으로도

'날 먹어'라고 맹렬하게 유혹하는 음식들.

이제 주메뉴, 하코네 멧돼지고기 샤브샤브. 커다란 접시에 야채도 제법 풍성하게 나왔고,

깔끔하게 썰린 돼지고기들이 부채처럼 펼쳐져 있었다.

전기온열기 위에 등나무로 만들어진 소쿠리를 올리고 기름종이를 받치고는 육수를 부었다.

그렇게 한겹의 얇은 종이 위에서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는 돼지고기와 야채들, 불이 거의

손실없이 그대로 전달되어선지 순식간이었다. 야채들은 거의 데친다는 느낌으로 끓는 물에

넣었다가 바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고, 돼지고기는 조금은 더 익혀서.

샤브샤브를 먹는 새 반찬들이 나왔다. 반찬이랄까, 사이드디쉬랄까. 반찬이라기엔 하나하나

단품으로도 너무 훌륭한 것들이어서, 또 딱히 밥이랑 먹는 것들도 아니어서.

밥이 그리 작지 않은 통에 담겨나왔고, 이걸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것도 잠시, 어느새

바닥을 보인 채 나뒹굴고 만 밥통. 하루종일 하코네 산간을 돌아다니느라 적잖이 지치고

배고팠던 상황이라곤 해도, 굉장히 맛있게 많이 먹었던 저녁식사였다.

그렇게 야채 한 점 남기지 않고 완전히 싹 비어버린 샤브샤브 접시도 나뒹굴고. 남은 건

애초 서빙될 때 꽂혀 왔던 '하코네멧돼지'가 꿀꿀거리는 화살표 하나.

그리고 디저트, 소복하니 상큼한 과일샤벳과 촉촉한 치즈케잌, 그리고 말차 냄새가 진하게 나는

모찌 두조각에 커피가 나왔다. 정말 디저트까지 한치의 허술함이 없는 훌륭한 만찬이구나, 싶은

느낌이 팍팍 들게 만들던 것들. 새삼 사진을 정리하며 다시 보아도 참...언제고 다시 한번

료칸의 굉장했던 온천욕 시설을 만끽하고 나서 저 만찬을 맛보고 싶은 맘이 무럭무럭.

소소한 디테일도 정겹기 그지없던 료칸의 식당 액세서리들. 젓가락을 받쳐주던 토끼들도

그렇지만, 이쑤시개를 담아두고 있던 저 쇼핑백 모양의 통도 참. 정말 종이쇼핑백을

펼쳐놓은 채인 양 옆에 라인도 들어가있을만큼 디테일하던.







하늘 끄트머리에서부터 슬몃 붉은 빛이 감겨 올라오는 시간, 손바닥만한 경주시 한 복판의

노서, 노동고분군 옆에 자리를 잡았다. 노랗게 변색한 잔디가 이쁘게도 입혀져서는, 경주시를

감싸고 있는 산들처럼 완만하고 복스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는 왕족들의 안식처는, 천오백여년

시간을 시위하듯 커다란 나무들을 키워 올리고 있었다.

누가 감히 왕들의 안식처에 올라가 저 나무들을 심고 키우고 손봐줬을 리는 없고, 그저

자연스레 바람이 옮겨다준 씨앗을 이 자그마한 언덕이 품고서 물을 주고 양분을 줬을 거다.

그렇게 싹이 트고 키가 자라 저렇게 커다란 나무가 되어 더욱 단단히 고분의 가파른 옆구리를

움켜쥐게 되었겠지.

빨갛게 지던 해는 저 너머 나무 뒤로 가뭇없이 숨어버렸고, 고분은 온통 깜깜해져서

이제 그 곱던 갈빛 잔디의 부드러운 질감도 지워져버렸다. 한결 단단해지고 완강해진 느낌.

고분의 주인은 이제 완전히 분해되어 다시금 나무와 흙으로 변신했겠지만, 신라를 지배하고

백성들의 왕으로 군림하던 그 '의지'만은 남아서 태양을 응시하는 듯 하다.

노서, 노동 고분군은 고속버스를 타고 경주시에 내리면 어찌됐건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되는

유적지인 거다. 그만큼 시내 복판에 있는 셈이지만, 막상 그 주변은 적당한 음식점이나 카페

찾기도 쉽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하나,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기어이 발견해낸 멋진 까페.

토토로가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창가자리에 앉아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며 길 건너 봉긋하게

올라선 고분과 주위 풍경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유리창이 통유리가 아니어서 조금 아쉬웠지만, 사실 그렇게 스펙타클하고 거대한 풍경을

마주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고작 왕복 2차선인 도로 너머 야트막하고 둥실한 고분 두어기를

조용히 바라보는 거니까. 고분의 실루엣이 저 너머 산들의 실루엣과 겹쳐보이는 풍경.


이 까페에서만 한두시간 있었던 거 같다. 경주에 도착하자마자 부서진 카메라를 대신해서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찍어대느라 급 방전된 아이폰을 충전하고 바깥 풍경도 구경하고,

까페도 구경하고 다이어리도 끄적대고. 담에 경주를 들르면 꼭 다시 한번 들르고 싶은 까페.

그리고 꼭 다시 한번 보고 싶은 신라 옛 왕들의 석양바라기 풍경.





투르크메니스탄, 아쉬하바드의 야경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성적으로는 이 신도시가 투르크를 외부에 보이기

위한 일종의 '쇼윈도 시티'라는 사실도 알고 있고, 저토록 불필요하게 곳곳에 촘촘이 박힌 불들이 얼마나

에너지 낭비인가 탄식할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고는 해도, 그래도 밤늦게 일을 보러 다니면서도 늘 카메라를

손에서 뗄 수가 없었던 거다.

도시 너머로는 온통 사막뿐인가 했더니, 어느 한쪽으로는 투박한 산맥이 등뼈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 등뼈

끄트머리에 살짝 얹힌 마지막 햇살이 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증거하고 있었다.

호텔 앞에서, 어물쩍 해가 넘어가려는 무렵부터 시작인 거다. 어느 순간 팟 소리를 내며 켜졌을 법한 가로등들과

그 너머 띄엄띄엄 세워진 거인같은 건물들이 보랏빛 황혼이 무색하게 빛을 밝혔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이 도시의 가로등들이 세워진 간격은 한국의 서울보다 두배쯤은 촘촘한 거 같다.

이맘때, 빛과 어둠의 투쟁이 막바지에 치달아 태양의 잔광이 마지막 숨을 깔딱거리는 즈음의 분위기란 어디고

참 싱숭생숭하다. 퍼렁빛의 하늘, 왠지 크게 술렁거리는 듯한 대기, 그리고 갈피를 못잡는 사람 마음.

어둠의 완승, 빛의 세상을 완전히 지구 반대편으로 몰아내고 나서 자축하며 잔뜩 꼽아둔 노랑색 촛불들.

여기도 중동 지역의 돈많은 국가들처럼 아스팔트가 다르다. 빛이 한없이 미끄러져 내리며 번쩍번쩍하는, 그런.

중동 지역은 비도 많이 오지 않고 오일머니랑 바꾼 최고급 스포츠카들이 잘 달리기 위해서 F1같은 레이싱트랙에

발라지는 특별한 아스팔트를 썼다고 했었다. 우리나라의 여느 아스팔트보다 훨씬 조밀하고 맨들맨들해서

승차감도 좋고 타이어도 찰싹 달라붙지만, 비가 오면 완전 잘 미끄러진다는 그런 특성의 아스팔트란 거다.

여기도 그런 건지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비슷하게 건조한 기후인데다가 오일머니, 가스머니 많은 나라니까

그럴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이제 그냥 조용히 사진들 보여주기. 야경에 딱히 멘트라고 달 것도 많지 않은 거다.

가로등이 촘촘한 것도 그렇지만, 하나에 네다섯개씩 휘영청한 전구가 들어있는 것도 사람 할 말 잃게 만든다.

저 가로등들은 차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행인들이 안전하게 다니라고 만든 게 아닌 건 분명한 거다.




청계천 광장의 재림이랄까. 색색으로 변하는 분수들은 밤이나 낮이나 꺼질 줄 모르고 그 구간 역시 청계천의

지극히 일부만 포장해둔 쪼잔한 사이즈와는 비교되지 않는단 점에서 오히려 여기가 한 수 위인 거 같기도 하다.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배하는 과거 공산정권의 잔재, 냉막한 얼굴과 건조한 분위기에다가 예측 불가능하고 느린

일처리 같은 것들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야경이 참 이뻤다고 다녀온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다. 사진으로라도 그 이유를 조금이라도 찾고 공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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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빛 대리석으로 지어진 카루젤 개선문, 늦은 오후에 기울어진 햇살을 즐기는 사람들과 루브르 박물관을

오가는 사람들로 그 앞의 잔디밭은 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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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하늘이 찌뿌둥둥하다는 이야기를 넘 많이 들었지만, 요새 한국날씨에 비기자면 저 하늘이 부러울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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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의 녹색 '포장마차'들. 집 모양으로 빈틈없이 정돈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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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당신들을 찍으려던 건 아닌데. 더헙, 남자 손 어디 가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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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이엿뉘이엿뉘엿뉘엿녓녓. 순식간에 황금빛 석양 너머로 숨어버리는 햇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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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어둑어둑하게 찍혀나온 사람들, 그리고 노랑빛과 검정빛으로 가득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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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혹은 야경을 보러 에펠탑에 오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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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랑 석양이 온통 잠식해버린 서쪽 하늘 말고 다른 쪽은 아직 낮의 느낌이 살아있다. 내 드림카였던 푸조307이

90년대 엑셀처럼 꼬리를 물고 달리던 파리의 차로. 더이상 드림카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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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젤 개선문을 다시금 일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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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마음이 흠뻑 담겼을 빨강장미꽃 한다발을 품고 가는 시크한 파리지앵 한 분의 긴 머리결에

살짝 설레어 하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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튈를리 정원을 지키고 선 나신의 아가씨들에게로 눈을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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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 넘흐 늘씬하시다~♡ 다리가 무슨 고무고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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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엿뉘엿 넘어가는 해를 등지고 서니 비로소 아이들이 알록달록 눈에 띄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제 배철수가 그랬던가, 비오면 비온다고, 추우면 춥다고, 어떤 핑계든 대고 찾는 게 술이라고.

그렇게 비온다고, 눈온다고, 밤이라고, 춥다고 찾는 게 또 하나 있으니 음악이라고 했다. 그래서,

음악과 술은 언제 어느때고 내키면 꺼내들 수 있는 창과 방패인 듯 하다.


부드러운 음악으로 실드치고 톡 쏘는 술로 찌르기 들어가고.


그렇게 싸우다 보니 저녁밥으로 술을 마셔버렸다. 아 무슨 술꾼도 아니고.

(그리고 지금은 공부가주 마시고 야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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