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대장정'의 영웅 마오쩌둥이다. 어디선가 많이 본 중년의 마오쩌둥 사진. 그런데 뭔가

다르다. 귀에 삽을 박고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이이는 이어폰을 귀에 걸었다. MP3로 노래라도 듣고 있는 걸까.

그들의 국부라 할 수 있고, 중국공산당의 아버지라 할 만한 사람의 귀에 이어폰을 꼽아주다니, 어쩌면 중국은

이제 한국보다도 정치적으로 유연하고 관용적인 사회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해의 '신천지(新天地)', 삼청동 쯤을 연상케 하는 그럴듯한 까페와 갤러리들이 모인 곳의 어느 가게에서 무심코

카메라를 꺼내들게 만들었던 그림 한장. (사실 그런 갤러리에선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마련이다.)

상해의 조계 지역이었을까. 굉장히 고풍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의 벽돌건물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자리를 잡고 차를 마시거나 이야기를 나누거나 그저 햇볕을 즐기는 듯이 보였다. 어떻게 보면

중국의 느낌이 아니라 파리 샹젤리제 거리같은, 그런 여유롭고 유럽스러운 분위기의 공간이다.

왠지 커피빈은 외국에서 만나면 반갑다. 아놔.

바닥의 포석들도 나름 신경써서 깔아둔 듯 하다. 최소한 아무런 미감이나 주변과의 조화를 고려치 않고 그저

아무데나 막 깔아버리는 '범용' 포석은 아닌 거 같단 이야기. 포석이 이쁜 길은 걷기에도 즐겁다.

그다지 높지 않은 건물들이 요리조리 방사형으로 퍼진 골목길 따라 늘어서 있었다. 1층엔 까페, 2층엔 갤러리,

뭐 그런 식으로 공간을 겸하고 있는 샵들도 보였고, 저렇게 생긴 테라스들이 이층마다 툭툭 턱처럼 나왔었다.

아직 뜨겁다기보다는 따땃해서 기분좋은 햇살을 걸러주는 연두빛 투명한 여린 잎사귀들.

그리고 빨간 완장이 우스꽝스럽던 토실토실한 아저씨는 바싹 마른 소같은 자전거를 타고 소처럼 느릿느릿

햇살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유연한 그의 페달질에 놀랬고, 붉은 완장이 생각보다 그럴듯해 또 놀랬다.




#1.

출장 중에 엠피쓰리 플레이어 이어폰을 잊어버렸다. 뱅앤올룹슨, 동생이 사다준 무지무지 비싼 이어폰을

어쩌자고 출장길에 덜컥, 가죽 케이스까지 곱게 들고 나선 건지. 출장 내내 찝찝하다가 확실히 분실했음을

돌아와 가방 다 헤집으며 찾아보고 확인한 뒤에야 꿈에 나왔다.


집에 굴러다니던 몇몇 이어폰들은 마침맞게도, 사무실서 일할 때 듣는다고 다 들고 간 참이었다. 그러다 하나는

빙빙 돌리다가 물컵에 빠져 맛이 가버려서 버리고, 다른 하나는 양쪽 다 끼고 일하긴 눈치보이던 차에 한쪽-

주로 왼쪽-만 끼고 듣는다고 아예 나머지 한쪽은 잘라내 버렸댔다. 덕분에 '애꾸귀'용 이어폰만 하나 남았다.


그래서 졸지에 벙어리가 되어버린 엠피쓰리 플레이어. 그 많던 이어폰은 다 어디로 가 버리고. 당장 출퇴근길에

자전거 달리며 목도리 날리며 깔아줄 BGM이 급하단 말이다.



#2.

전화기를 한달전쯤 바꿨나보다. 그 전에 쓰던 초콜렛폰이 근 5년 가까이 쓰다보니 버튼부분도 많이 상하고,

배터리도 반나절 버텨내고 있어서, 마침 모 통신계열사에 다니는 친구 덕에 꽁짜폰으로 바꿨다. 그러고 나니

한 가지 문제, 제조사도 다르고, 새 핸폰도 택배로 받은 터라 전화번호부를 어케 옮겨야 할지가 난감. 출장 중에

둘 다 들고 가서 시간날 때 옮겨볼까, 따위 택도 없는 생각을 하다가 걍 이래저래 한달째 냅두고 있다.


필요한 번호 하나씩 그때그때 입력하고, 모르는 번호-전화번호 따위 외우지 못하니-뜨면 어버버, 하다가

욕 감사히 쳐듣고는 번호 하나 입력해놓고. 그런 식이다. 근데 그것도 며칠 지나고 나니 뜸하다. 아...이렇게도

인간관계가 좁았던가. 그 전 핸폰에 저장되었던 근 칠백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은...


뭐, 아무 통신사 서비스센터에 가면 바로 옮겨준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귀찮기도 하고 급하지도 않고 해서

언제나 백업할지 모르겠다. 어쩜 이대로 쭉 갈지도. 의도치 않은 상황에 의도 한 스푼을 얹어 인간관계 리셋..?



#3.

카이로를 거쳐 사우디 즈음, 같이 갔던 점잖은 사장님 한 분이랑 룸메이트였는데, 현지 시간 새벽 세시에

한국에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으셨다. 비몽사몽 간에 문득 들린 허억, 숨 넘어가는 소리와 남자가 낮게 흐느껴
 
우는 소리. 부친상이었다. 아마도 누군가 돌아가셨음을 전해듣는 순간에 함께 했던 건 지각이 생기고 나선

처음인거 같다. 번쩍 잠이 깨서는 덩달아 경황도 없고 먹먹하고..그랬다.


실무적인 일들은 그때부터. 바로 돌아가는 비행편 챙겨드리고, 남은 짐 챙기는거 도와드리고 출장 뒷마무리도

챙겨드리겠노라 다짐하고. 번쩍 잠이 깼었지만 이내 다시 가물가물, 죄송스럽게도 졸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밤을 설치고 나서 담날부터 감기기운이 픽 왔댔다. 열도 나고 기침도 심하고, 어지럽고.


인천공항에 들어서며 검역대에 놓인 열감지기 앞에서 괜히 설설 걸으며 기침도 두어번 했지만, 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제길. 알고 보니 요새 신종플루는 열이 꼭 37.8도까지 오르지 않아도 맞다던데 왜 나를 잡지

않았을까. 기침은 여전하고, 몸은 뻑적지근하다.


#1.

누군가 문득 내게 이어폰을 뭐 끼고 다니냐고 물었다. 요새 줄창 귀를 틀어막고 다니는 모습을 보인 탓이리라. 내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뭔가 이런저런 브랜드를 운운하며 아는 척을 한다. 실은 나도 갱장한 음질을 과시하는

뱅앤올룹슨(BANG&OLUFSEN)의 이어폰을 때때로 끼곤 하는데 브랜드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왠지 한마디도

못하고 집에 돌아와선 브랜드네임부터 확인하고 몇번씩 입안에서 굴려본다. 뱅앤올룹슨뱅앤올룹슨. 이 이어폰에는

가죽 케이스도 있다구.


#2.

누군가 얼마전 내게 추천해줄 만한 음악을 물었다. 아직 장기하를 모르길래 그의 노래, 특히 '아무것도 없잖어',

'별일없이 산다', '나를 받아주오'를 추천해주었다. 그리고 언니네이발관의 '아름다운 것들'을 비롯한 앨범 전곡과

브로콜리너마저의 '보편적인노래'와 '앵콜요청금지'.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스끼다시내인생'은 가사가 너무

시니컬하니 조심하고..까지 줄줄줄 이야기해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출퇴근할 때는 부러 클래식을 듣고 있다.

마음이 너무 흔들리지 않기를 바라면서. 재즈를 요새 피하는 이유기도 하다.


#3.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어언 반년이 넘었다. 목요일 점심시간마다 밥을 마다하고 연습실로 달려가는 내

뒷통수를 바라보며 나는 말한다. 참..애쓴다.(고작 그런 식으로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한다며

자기연민에 빠진 것은 아니다.) 금속이 번쩍대는 악기지만, 엄연히 목관악기에 속하는 색소폰. 입술의 미묘한

움직임과 모양에 따라, 그리고 숨의 결과 세기에 따라, 혀의 위치와 움직임과 강도에 따라 소리가 다르다는 사실은

여전히 경이롭다. 이토록 민감한 악기라니. 그치만 '사람'이라 불리는 백인백색의 생명체들에 비할 바는 아니다.

색소폰은 익숙해지는 중이라 (건방지게도) 말할 수 있어도, '사람'은 모르겠다.


#4.

저녁에 먹었던 갈비찜을 국물까지 싹 먹었으니, 짜게 먹었다. 영화를 보고는 타는 목을 부여잡고 냉큼 집으로

돌아와 맥주부터 한 캔했다. 그러고 나니 와인이 땡겨서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나니, 지금은 또 위스키를 한 잔.

어제 만난 친구한테는, 요새는 혼자 밤에 술 안 먹는다고, 주위에 그런 이야길 하면 알콜중독초기 아니냐 하더라고

말했었다. 아하하하. 뭐랄까...따사로운 게 아니라 뜨끈하고 찐득한 '봄볕'에 맞았더니, 뫼르소처럼 왠지 어디에다

총이라도 쏘고 싶은 느낌이다. 무언가 안에서부터 바짝바짝 말라붙어가고 있다.


#5.

머리를 짧게 깍은 게 저번주 일요일. 빈말이던 아니던, 몇번이나 고등학생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건 문제다,

라고 생각했다. 왜 티비에 나오는 결혼적령기쯤 도달한, 혹은 사회생활에 접어든 사람들은 전부 어른스러운 표정에

어른스러운 외모에 어른스러운 말투를 하지 않던가 말이다. 때로 외관상 '성숙'해보이는-정장을 입지 않은 모습을

상상키 힘들고, 유치하거나 허술한 모습 따위 잘도 숨겼을-남성과 여성에게 이질감이랄까 거리감을 느끼고, 또

그렇다고 대학생같은 스타일과 아마추어같은 분위기에도 딱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난 어쩌면 피터팬

신드롬을 심각하게 앓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부분이 심각하게 지체되어 있는 것 같다. 알콜분해효소도

그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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