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토요일날 샤갈전을 보러 나섰었다. 3월 27일까지라 하여 막판이니 사람들이 많으리란 건 이미

예상을 했었지만, 줄이 잔뜩 늘어서 입장하는 데만 한시간이 걸리리라곤 생각도 못했다.

왜 이리도 사람이 많은 건지. 굳이 샤갈전을 보러 왔다기보다는 근처를 걸으며 놀고 싶었던 거라

미련없이 발걸음을 돌리고 말았다. 저 사람들이 우르르 들어가선 오디오 설명이 붙어있는 앞에서

바글바글 모인 채 줄서서 작품 감상을 하리라고 생각하니 정말. 샤갈은 다음 기회에.

그냥 돌아서서 정동 쪽으로 넘어가려는데 문득 발걸음을 붙잡은 건, 뭔가 분위기가 묘한 조각들.

잔뜩 찌그러들어있어서 왠지 저기 어딘가쯤에 블랙홀같은 게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건 아닌가

싶도록, 순간적으로 눈이 어질어질해지는 느낌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잔뜩 짜부러진

가족들의 모습들. 실물 형태로 만들어두고 위에서부터 지긋하게 꾸우욱 눌러서 만든 걸까.

각도를 이리저리 달리 해서 보니까 더 재미있었다. 눈높이를 맞춰서 보면 호빗족 같기도 하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그냥 장독 같이 땡땡하고 배나온 물체들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작품 제목도

무려 '장독대'였던가.

그리고 좋아하는 길 중 하나, 시립미술관에서 넘어가는 길. 노랑색만 살리고 모노톤으로 찍어본

사진에서는 바리케이트가 발랄해 보인다. 저너머 수풀 속 개나리 뭉치들도 어찌됐건 슬금슬금

오고 있는 봄기운을 느끼게 했고.

가다가 문득, 정동갤러리를 들렀다. 현대작가들의 소품전을 열고 있었는데 여긴 사람이 하나도

없는 거다. 2층까지 전시된 작품들을 유유히 둘러보면서 몇몇 작가들의 그림에 감탄해주고

이름도 눈여겨 보아두고, 내키는 대로 돌면서 한바퀴 돌고는 점찍어둔 작품들은 다시 한번

봐주고. 조용한 음악이 흐르는 갤러리 안에서 나무마룻바닥에 울리는 내 발걸음 소리도 좋았고

따끈하게 실내의 공기를 덥히는 백열전구들의 온기도 좋았다.

그리고 아무래도 쌀쌀한 삼월말의 날씨, 세상에 식목일이 코앞이건만 이렇게 추워서야. 갤러리 안에

후끈하게 덥혀진 공기는 백열전구 말고도 이 녀석의 도움이 컸던 거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일을

둘둘 감고 있는 난로. 그 솔직한 열기가 난로와 마주한 살갗에 훅 끼쳐와서, 왠지 정다워서 난로

앞에 쪼그려앉아서 열기를 느껴줬다.

늘 미술관에 오면 재밌다고 생각하는 것, 특히나 현대 미술로 넘어오면 더 심해지지만 이렇게

작품들이 줄줄이 전시된 가운데 소화전이나 통신단자 부스같은 것들이 문득 숨어있는 거다.

더구나 여긴 아주 의도적인 양 스뎅부스 주변을 액자틀같은 걸로 둘러놓았다. 액자틀까지

대략 주위 작품들과 깔맞춤되어 있는데다가, 마침 바로 옆에 전등스위치가 바싹 붙어있어서

작품 라벨같이 보이기도 하고.


그렇게 설렁설렁 노닐다가 밖으로. 어디선가 물이 줄줄 흐르는 소리가 개울가 같다 싶었는데

건물 청소중이었다. 4층짜리 학교 건물 위에 줄 하나로 지탱한 채 건물 외벽을 청소중이신

아저씨의 뒷모습이 하늘하고 붙어버렸다.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고, 추워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당당해 보이기도 하고.

마무리는 영화관. 어쩌다 보니 '미로스페이스'가 근 일년여만에 재개관하는 첫날이었다. 깔끔하게

재단장한 영화관, '2011 감독열전' 작품 중에서 시간이 맞는 녀석 하나를 골라 들어갔더니 아무도

없었더라는. 혼자 영화관 전세내서 '초롤케의 딸'이란 다큐를 보았는데 이리저리 자세도 바꿨다가

좌석도 바꿔서 보았다가, 영화 만큼이나 너른 영화관도 재미있었다.



광화문에 사람이 쉼없이 망치질하는 모습의 모빌 조각상이 서있는 흥국생명 지하에는 다소 특별한 영화관이 있었다.

몇 가지 특징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을 꼽으라면, 영화가 끝나고 크레딧이 다 올라가기 전까지 영화관 내 조명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다른 영화관들이 일찍 조명이 켜지고 우르르 빠져나가는 관객들 때문에 영화의 여운을 차분히

곱씹을 그 짧막한 시간이 무참히 짓밟혔던 것에 비하면 정말이지 꽤나 매력적인 장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곳보다 넓은 좌석이 다닥다닥 붙어있지 않아 쾌적했던 데다가 팝콘이나 음료의 극장내 반입을

일체 금지하여 영화 보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는 장점도 있었다. 역시 다른 영화관들이 무릎도 맘편히 운신하기 힘들만큼

빼곡하게 좌석을 채워넣고 자신들의 매점에서 구매한 것만 들여갈 수 있게 하는 것, 그리고 영화관 내부가 팝콘 냄새로

꽉차 있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거리상 자주 가진 못했지만 내킬 때마다 기꺼이 찾아갈 맘이 있었던, 그렇게 기억에 남는 영화관이 하나 또 사라진댄다.

씨네큐브 말이다. 알고 보니 2010년이 개관 10주년되는 해였다는데, 좀더 일찍 알아서 좀더 많이 가보지 않은 게 문득

아쉬울 따름이다. 이건 근데 너무 급작스럽다는 느낌도 있다. 8월 31일을 마지막으로 운영을 중단한다니, 최소한

한달은 남겨두고 공지를 해줬으면 여유있게 몇차례라도 더 찾아가지 않았을까.


여전히 미로스페이스니, 스폰지하우스니 하는 다른 예술영화관이 존재하니까 너무 섭섭해 할 일은 아닌지 모르지만,

시네큐브에서 봤던 영화는 왠지 영화와 함께 영화관도 기억에 남았어서 더욱 아쉬운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심영섭

평론가와의 토크도 씨네큐브에서 이루어졌댔다. 아침에 메일함을 열어보곤 깜짝 놀랐다가 살짝 우울해져버렸다.

굳바이 씨네큐브.



얼마전 여자친구가 CGV의 CINE de CHEF 십만원권 상품권이 생겼던 터에, 언제 이 좋은 아이템을 써야 할 지

머리를 굴리고 의논하다가 몇 가지 기준을 세웠더랬다.

1) 우선 영화가 정말 보고 싶은 거여야 한다. 피가 튀는 '스위니 토드'나 '추격자'류의 영화를 피하고, 그렇다고

별로 보고 싶지 않았던 영화를 보기는 상품권이 넘 아깝지 싶어서.

2) 저녁식사는 너무 비싸니 점심식사를 하는 걸로 하자. 그러자면 주말이나 주중에 휴가를 내서라도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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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시네 드 쉐프가 뭔지도 몰라서 CGV 홈페이지를 뒤적거리다가 겨우 알아냈었다. 얼마전 CGV 골드클래스

티켓도 여자친구를 통해 처음 써 봤었고, 마찬가지로 CGV 홈페이지를 뒤적대곤 이런 게 있구나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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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마미아를 하고 있었다. 최근에 보고 싶은 영화가 별로 없던 터에, 상품권 유효기간이 1년밖에 안 되어서 조만간

휴짓조각으로 날라가진 않을까 긴장감이 더해가고 있었기 때문에..이 영화를 꼭 보자! 라고 둘이서 결심했다.

맘마미아 뮤지컬도 몇 번씩 보고 싶었지만 번번이 기회를 놓쳤었고, ABBA의 노래는 좋아하고 있었으며,

이번 영화가 뮤지컬에 충실한, 그다지 욕심부리지 않은 영화란 평을 봤었기에 더욱 보고 싶었던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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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점심식사 시간에 맞춰서, 6만원짜리로 두 명이면 12만원이니까 추가로 드는 현금은 2만원이면 그만인 셈.

영화를 먼저 볼지 밥을 먼저 먹을지 잠시 자중지란에 빠졌다가, 먼저 영화를 보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어야 소화도 잘 되고 밥먹으면서 얘기할 것도 많을 거라는 게 그녀를 설득시킨 나의 근거들. 사실

밥을 먹던 차를 마시던 항상 쉴새없이 둘이 떠들어대는 터라 그다지 영화얘기만 할 리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영화는, 지중해의 부드럽고 화사한 햇발이 바다 표면에 산산이 비산되는 만큼이나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멋진

풍경에, 가슴을 울리는 발성과 노래가사, 그리고 발랄하고 생기넘치는 군중 퍼포먼스까지. 왠지 여성상위의

모계사회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다소 발칙할 수 있게도 딸은 세 아버지를 긍정하고 세 잠재적 아버지는 모두

1/3의 딸을 인정하겠다는 장면 역시 신선했던 장면 중 하나.


무엇보다 노래가 너무 좋아서, 이제 아바의 노래를 들을 때마다 그 풍경이 떠오를 거 같다. 마치, 에픽하이의 노래

러브러브러브를 들을 때마다 김태희가 깜찍하게 춤을 췄던 광고가 떠오르듯이. 그리고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꼭 '맘마미아'를 뮤지컬로 봐야겠다고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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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식사는 나쁘지 않았다. 가벼운 전채로 버섯샐러드와 연어샐러드가 나왔고, 아마도 8만원짜리 메뉴일 스테끼

대신 파스타가 나왔다. 메뉴판이 따로 나온 건 아니었고, 웨이터가 몇 가지 주워섬기면 그 중에 맘에 드는 걸

고르는 형태였는데, 올리브오일 파스타와 까르보나라 파스타를 고르고 나름 만족스러운 선택이었다고 자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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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도 고급스러웠고, 테이블 배치도 넓찍하게 쓰여져서 주위에 신경쓰지 않고 식사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다.

대부분 어느 정도 연령대가 있으신 분들이 부부동반으로 오신 듯 했고, 우리처럼 젊은 애들은 안 보였다.

하긴, 영화를 아무리 골드클래스보다 더 좋은 의자-자그마치 좌석당 600만원 짜리라는 홍보..-에 앉아 볼 수 있다

하고 점심식사를 좀 분위기 있는 데서 '칼질'할 수 있다 해도, 인당 6만원은 버거운 금액임엔 틀림없다.

더구나 6만원짜리 메뉴는 '칼질'할 것도 없는 파스타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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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다시 갈 거냐고 묻는다면 좀 생각을 해봐야겠다. 골드클래스도 그랬지만, 영화를 안락하게 볼 수 있고

영화보기 전후에 뭔가 특별한 공간에서 식사나 차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지불하기에는 비용이 좀 세다고 본다.

그러니까 전국을 통틀어 오직 CGV압구정점에만 운영하고 있는 거겠지만.


하나 불만이었던 건, '씨네 드 쉐프'를 예매할 때 그리고 예매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웨이터나 매표원이 '육만메뉴'

혹은 '팔만메뉴' 이런식으로 적나라하게 가격을 드러내어 지칭한다는 것.


어찌됐건 결론은, 여친 덕분에 좋은 경험했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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