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게 만드는 CG효과라거나, 구름갖고 장난치거나 뜬금없이 환타지틱한 화면이 중간중간 끼어들어간 것.

그리고, 마냥 냉막한 듯이 보이던 금자씨가 아파트 계단에서 화들짝 놀라는 장면, 끝내 자기가 살포시 엎어주었던

두부 모양의 케이크를 만들고 딸에게 돌아가는 장면..복수가 진행되어 정점에 달한 상황에서도 최민식은

야릇하게 끙끙거리는가 하면, 금자씨와 딸 사이의 대화는 정말 실감나게 '더빙'이 되고.

영화가 뱉어내는 스토리에 그저 함몰되려 했다면 순간순간 무기력해짐을 느끼게 되고 만다.


복수 삼부작 시리즈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생각하더라도, 금자씨 이 영화는 글쎄..복수에 어울릴법하지 않은..

다시 말해 온몸으로 '복수'에만 몰입할 수는 없는 인간들의 불철저한 감정과, 복수를 위한 불성실한 자세..그런 걸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리 이를 갈고 13년 반동안 계획을 세워나왔대도, 복수란 순식간에 해치워지는 작업도 아닐

뿐더러, 인간의 감정이란 순식간에 평온모드-복수모드-평온모드로 구획지어 구분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래서

금자씨는 착해보이지 않으려 하고 감정을 죽인 듯 목소리를 깔고 눈빛을 예리하게 떠보지만..목사의 예기치 못한

등장에 화들짝, 놀라며 억지로 쓰고 있던 가면을 순간 노출시키고 만다.


딸을 찾으러 간 호주에서도 마찬가지, 금자씨의 행동은 장중하고 피비린내나는 복수의 우울함과 비장함을

계속해서 가볍게 만들고 점점 금자씨 스스로 복수에 대해 몰입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건 아닐까. 그래서

결국 아주 크리에이티브한 그런...복수 전략의 생중계..그리고 집단적 복수의 이벤트까지도 끌어내며 최민식에

대한 복수심의 총량을 키워내려 한거고. 그치만 무언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순수한 '복수심'에 기대어 자신의

나약해져가는 복수심을 다시 불붙이려 했던 금자씨의 기도는...그들의 혼란스럽고도 현실적인, 그리고

속물적이랄 수도 있는 감정의 비빔속에서 허망해져 버리고 만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조커처럼, 입을 쫙째고

웃는듯 우는듯..그렇게 총을 버린다. 13년여의 수감생활을 통해 얻어냈던 그 총을 버리는 순간 복수는 끝나지만.


역시, 그녀가 유괴했던 그 아이는 금자씨에게 웃어주지 않는다. 그나마 함께 백선생을 처단했던 가족들은

뜬금없이라도 '천사가 지나간다'며 상상속에서 자신의 복수심과 그로 인한 모종의 후련함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금자씨는 아무도 없다. 그저 속죄의 의미로 잘라냈던 손가락의 깁스가 그녀의 과거 행위와 현재의 감정을

이어주는 하나의 가시화된 상징일 뿐, 조만간 그것은 시간에 쓸려갈 부질없는 이미지.


그래서, '화이트' 두부 케이크를 얼굴에 마구 부비며라도, 하얘져서 다시 딸과 행복해졌으면 한다. 무슨 생각을

했을까. 복수를 마쳐서 행복해져도 된다? 아님 복수를 한 게 자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렇다고 무작정

용서해라.라 이야기할 생각은 감독도 없는 듯한게..관객을 끊임없이 흔들고 낯설게 하며, 봐라봐 나지금 복수에

살짝 질렸거든? 살짝 이쯤서 갸우뚱해보는 건 어때?라고 의도하는 것 같아서.


13년간은 삶의 희망이자 의지였을지도 모르지만, 막상 그걸 직접 실현하는 중에 시간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다

보니 '복수'에 애초 부여했던 순수함이 퇴락하고, 몰입했던 감정이 시들어버렸다.

그다음에는 마치 의무와도 같은 방어전으로, 복수심에 떠밀린 채 스스로 갈피를 못잡게 된 듯한. 하긴 순수한

감정으로 쭉 복수 하나만을 그리는 캐릭터는 영화속에서나 그럴듯 하다.


올드보이에서 느끼던 비장미와 그 파괴적인 아름다움이 금자씨에서 안 느껴지는 이유, 대신 올드보이에서 안

느껴지던 다차원적인 인간의 감정과 흔들림..좀더 인간적이고 불순하며 잡종틱한 혼란스러움이 금자씨에서

부각된 이유. 내가 보기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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