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그랬다. 코타키나발루에서는 동남아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보기가 쉽지 않다고. 배를 타고 섬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말은 맞을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코타키나발루는 5개의 섬이 모여있는 툰쿠 압둘라만 해상공원을 위시하여

 

만타나니 섬을 뺴놓고는 말할 수 없는 여행지. 에메랄드빛 바다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만타나니 섬인 것 같다.

 

가는 길은 조금 어려운 편인 게, 만타나니 섬은 코타키나발루에서 차로 두시간여 이동해야 하는 거리에 있는 데다가

 

어느 포인트에선가 보트로 갈아타고는 이런 황토빛 강을 따라 내달려서 본격 바닷길로 나서게 된다.

 

 

 

이때만 해도 전혀 어디로 어떻게 가는지, 얼마나 더 가야 만타나니 섬이 나타나는지도 감이 없던 상태..

코타키나발루의 인심이란 게 어찌나 좋던지, 모터보트로 빠르게 달리다가도 옆에서 고기를 잡고 계신 듯한

 

동네 주민을 보면 속도를 완전히 떨어뜨리고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곤 했다.

 

어르신 고기는 많이 잡히나요, 많이 잡히긴. 어디 가나 개똥이, 손님들 모시고 섬에 갑니다~ 이런 대화가 오갔으려나.

 

배로 약 40분 정도, 거의 바이킹이나 후룸라이드 류의 놀이기구를 타는 느낌으로 내달리다 보면

 

온몸이 흠뻑 바닷물을 뒤집어쓰고 만다. 그리고 떠나온 육지가 보이지 않을 즈음 에메랄드빛 바다가 시작된다.

 

  

만.타.나.니.

 

 

 

이정도 거리에다가 접근성도 떨어지다 보니-차타고 배타고 해야 하나-아무래도 만타나니는 투어로 올 수 밖에 없겠다.

 

게다가 이렇게 잘 차려진 식당에서 부페로 나온다는 점심도 꽤나 괜찮았고.

 

  

 

넉넉하게 있는 긴의자라거나 해먹, 그리고 스노클링과 스쿠버다이빙 장비들 덕분에 그야말로 지상낙원.

 

게다가 큰 칼로 툭툭 썰어내어 빨대 하나 꼽아주면 끝인 코코넛도 이렇게 잔뜩 쟁여두었다.

 

 

이런 에메랄드빛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제대로 사진에 담을 수 있는 걸까.

 

 

시시각각 그리고 시야 각도에 따라 천변만화하는 바다 빛깔. 우선 한차례 스노클링을 마치고 인근에 산호무더기로

 

형성된 산호섬 가서 두번째 스노클링을 하는 길에 찍은 사진.

 

 

이렇게 산호들이 잔뜩 퇴적되어서 만들어진 조그마한 언덕이랄까 섬에 내려주고는, 딱딱하고 뾰족한 산호에

 

발아파하는 사람들을 보고는 내츄럴 마사지라며 엄지손가락을 내미는 코타키나발루 사람들이다.

 

 

하아..어찌나 아름다운 물빛깔이던지. 지겹도록 이런 바다를 보았을 아저씨는 스노클링하라며 승객들을

 

풀어놓고는 물수제비를 뜨고 계신다. 저렇게 이쁜 바다에 대고 돌팔매질이라니.

 

어마무시하게 많던 물고기떼들. 방수카메라를 미리 준비해서 잔뜩 수중 풍경을 찍어놨지만 그건 다음 포스팅에.

 

 

 

각 삼십여분씩 두번의 스노클링을 마치고 다시 섬의 식당으로 돌아가는 길,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

 

 

그리고 이런 어처구니없도록 환상적인 빛깔. 넘실거리는 파도조차 몽환적이다.

 

부페로 나온 점심, 새우와 닭날개튀김, 나시고랭과 밥, 약간 똠양꿍같은 느낌의 생강국이 나왔는데

 

워낙 격렬한 물놀이-스노클링-을 즐기고 나서인지 굉장히 맛있게 싹 비우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해안가를 거닐며 쉬고 있는데 느닷없이 나타난 소 한마리. 파란 하늘, 에메랄드빛 바다,

 

새하얀 모래로 삼분할된 풍경에 불쑥 들어선 불청객치고는 하는 짓이 귀엽다.

 

 

만타나니 섬에서 구비하고 있는 스노클링 장비들, 그러니까 물안경, 구명조끼, 오리발 등을 대여해주는 곳.

 

애초 투어 내용에 왕복 교통, 점심 부페와 스노클링 장비 대여료가 포함되어 있으니 그냥 받아오면 된다.

 

투어요금은 여행사 따라서 190~280링깃까지 다소간 차이가 있었는데, 인당 190링깃으로 쇼부치는데 성공.

 

다음에는 스쿠버 다이빙을 해봐야겠다. 동남아의 이토록 이쁜 바다에서 좀더 안정적인 호흡으로 깊이 들어가보고 싶다.

 

섬 한켠에 쌓인 구명조끼들.

 

두시간여 자유시간이 주어져서 섬을 돌아다니거나, 바닷물에 들어가(스노클링 장비는 모두 반납했으니) 가볍게

 

놀거나, 혹은 해먹이나 긴의자에 누워 망중한을 즐길 수 있었다. 천국같던 시간.

 

 

 

 

그리고 아무래도 여긴 적도에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정오가 지나면서부터는 굉장히 뜨거운 햇살이 쏟아진다.

 

자칫 컨디션이 망가지거나 새카맣게 타버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할 일.

 

 

 

이런 바다에 대고 '에메랄드빛' 운운하는 것도 참 진부하고 둔탁한 표현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형용불가, 촬영불가의 그런 빛깔 앞에 압도되어 버리고 말았던 시간.

 

 

만타나니 섬을 뒤로 하고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던 참에, 강기슭에 서 있는 새하얀 나무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그리고 미니버스에 다시 탑승하기 전, 간단한 간식처럼 제공되었던 코코넛 과자랄까 빵이랄까.

 

코코넛 과육이 굉장히 많이 들어있어서 보기보다 꽤 맛있길래 몇번이나 리필해서 배를 채우고 말았던 간식.

 

 

 

허름해보이지만 휠까지 말끔하게 페인트를 칠한 버스에 매달리다시피, 무겁게 몸을 실어넣으려는 네팔 아주머니의 몸짓.

 

대체 버스 바닥높이가 왜 이렇게도 높은 거니.

 

그리고 흔하게 볼 수 있던 '소판'. 드넓은 차도 한가운데를 떡하니 차지하고는 주변 관광객들의 카메라 세례를 즐기는 중이시다.

 

해발 800미터의 포카라. 열대 기후대에 걸맞는 과일들을 주렁주렁 매달고는, 주스 한잔 주문하니 삼십분이 걸렸다.

 

 

포카라 메인로드의 온갖 기념품점의 형형색색 기념품들도 눈에 들어왔지만, 그보다도 더 구미에 당기던 어느 차안 황금색 가네쉬.

 

길쭉하게 아래위로 잡아뽑힌 얼굴상들.

 

론리플래넷이었던가 어느 유수의 여행매거진에 소개되었다고 하는 레스토랑에 들어간 우리를 제일 먼저 맞이한 새끼고양이.

 

제대로 서빙이 되어 나오는 네팔의 '달밧'이란 어떤 건지가 궁금했다.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것과 뭐가 다른지.

 

사실 다른 건 잘 모르겠고-히말라야에서 매번 먹었던 달밧들은 제각기 전부 맛있었으니-양이 좀더 많았다 정도?

 

역시나 이런 나름의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달밧에 한해서는 밥과 반찬이 리필이 가능하다는 것도 소소한 깨달음.

 

일주일이 넘는 트레킹으로 잔뜩 지친 다리에 풋 마사지 한시간을 선사하고 났더니 이제 카투만두로 떠나야 할 시간.

 

그런데 마사지샵으로 들어갈 때부터 눈에 거슬렸던 저 건물, 대체 무슨 생각으로 절반만 색칠하고, 아니 절반만 지어놓은 걸까.

 

그렇지만 또 돌아보면 은근히 그런 건물이 많다. 저기 저 건물도, 건물 형태 자체도 한쪽이 확 끊겨버린 듯한데다가 페인트칠 역시.

 

그리고, 그야말로 공항으로서 최소한의 기능만 갖춘 포카라 공항. 워낙 작고 활주로도 짧아서 종종 결항이나 딜레이가 발생한다고.

 

그래도 다행히 아무 문제없이 카투만두로 출발.

 

 

# Tip. 카투만두에서 포카라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오른쪽으로, 포카라에서 카투만두로 향할 때는 진행방향의 왼쪽으로 앉아야

 

히말라야의 새하얀 봉우리들과 눈높이를 맞출 수 있다. 물론 날씨가 맑고 구름이 걷혀 있어야 조우할 수 있지만.

 

 

 

 

속초에서 꼭 돌아봐야 할 곳은 속초관광중앙시장이란 말이 빈말은 아니었다. 원래 여행을 다닐 때 시장구경하길

좋아하기도 하지만, 수수부꾸미니 닭강정이니 오징어순대니, 항구쪽보다 싼 횟집들까지 먹거리도 많고 이것저것

구경할 것도 많았던 곳이다. (그리고 갯배랑 바로 이어지는 동선이라거나 속초시내 중심에 있다는 점도 좋다)

갯배에서 내려서 조금만 걷다보면 바로 만나는 이 커다란 황금색 황소. 뉴욕 월스트리트가에 있는 황소는

Bull's Market, 호황을 바라는 증권맨들의 마음을 담은 거라면, 이 녀석은 소를 닮은 지형의 속초가 번영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속초인들의 마음이 담긴 걸까.

사실 시장이란 게 여행하기에 딱 좋은 곳이기도 하고 그자체로 여행의 메타포가 될 수도 있겠다 싶은 건 딱히

정해져있는 입구와 출구도 없고, 루트도 없고. 발 닿는 대로 걸으면서 둘러보면 되는 거고, 그러다가 돌아오는 길에

들러야지, 라거나 사야지, 라고 맘먹었던 샵이나 위치는 대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어지는 묘한 마력이 있다는.

그리고 시장에선 애써 꾸며지거나 포장되지 않은 모습들이 드러난다는 점도 참 맘에 든다. 이렇게 빛바랜 만국기가

잔뜩 낡은 건물들 사이에서 하늘을 가르고 있다는 점도 왠지 맘에 들지만, 저런 '미용휴게실'이니 다방이니 하는

촌스런 간판들이 늘어서 있다는 점도 그렇다.


진짜,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시장에서 눈에 띈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손에 들고 다니는 거 같던 '만석닭강정'.

줄이 어찌나 길던지 뱅글뱅글 용트림을 하고도 한참 늘어서 있어서 좀체 줄을 설 엄두는 못 내고, 맞은편의 맛난

수수 부꾸미와 찹쌀 부꾸미를 파시던 분께 부꾸미를 사며 슬쩍 물어봤더니 그 옆의 '속초닭강정'도 추천해주시더라는. 


먹어본 사람들의 말도 분분하던데, 맛이 거기서 거기다, 라는 말도 있고 아무래도 만석닭강정이 짱이다, 라는 말도.

모르겠지만 가격대는 대략 이렇게 비슷한 거 같고, 아무래도 방송과 입소문의 힘, 그리고 무엇보다 줄이 저렇게

늘어서 있단 건 그 자체로 저 꼬리에 붙어서야 할 거 같은 굉장한 압박감을 주는 거다. 시장입구의 호떡집도 그렇고.

여하간 속초닭강정, '매운맛/보통맛/순한맛'으로 나뉘는 삼단계 양념소스 중에서 보통맛도 조금 매콤하다고 하여

보통맛을 골라 순살닭강정을 맛보는데 오오..따뜻해도 맛있고 식어도 맛있고 배고파도 맛있고 배불러도 맛있고.

시장 안에는 이렇게 천장이 막혀 있어서 바깥 날씨에 상관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구역도 있고, 여느 재래시장처럼

천장이 없는 대신 파라솔들이 촘촘이 늘어서서 자연스레 하늘을 막고 있는 구역도 있고.

아바이순대타운, 닭전, 어물전, 의류, 그리고 중간중간에 박혀 있는 호떡집이라거나 국화빵집이라거나. 제법 너른 공간에

끼리끼리 뭉쳐있는 상인들의 난전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다가 또 줄이 늘어선 호떡 겸 붕어빵 집을 보면 슬쩍 줄을 이어서서 하나씩 맛보기도 하고.

지하에 있는 수산센터, 노르웨이에서 온 냉동 고등어들이 빳빳하게 몸을 비튼 채 박스의 형체를 간직하고 있는.

아주머니가 다듬는 생선은 광어 한마리와 우럭 한마리. 그렇게 간식거리들을 맛보고도 어쨌든 저녁은 먹어야겠다며

바닷가에 왔으니 회를 먹자는 단순한 소망을 끝내 이루고 말았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한가지다. 제주 동쪽끝의 성산 일출봉, 성산포항에서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카페리에

몸만 싣던, 아님 차도 싣던 해서 그 배를 타고 우도로. 승용차 기준 9대가 꽉 차는 카페리의 아가리가 닫히고

15분 정도만 바다 위를 달리면 우도가 나타난다.

2층의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선장님, 촘촘하게 나사를 박아 단단해 보이는 창문 너머 허브 화분이

눈에 띄어서 한장. 그리고 불과 3.8킬로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우도는 벌써부터 보이길래, 저 너머

길게 소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모양으로 보이는 바로 우도다. 소牛 자를 써서 우도.

바다가 생각보다 많이 거칠었다. 듣고 보니 제주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가파도행, 마라도행 배도

궂은 날씨로 뜨지 못했다던가. 저번에 왔을 때는 작은 섬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법 큰 섬이었다.

섬 해안도로만 따라 걸어도 17킬로미터, 약 천오백명이 사는 섬이라니.

우도는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특별히 관리될 만큼 자연생태나 풍광이 빼어난 섬인데, 그런 풍경을

'우도팔경'이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제주에서 배타고 우도로 향하는 중에 보는 우도의 풍경, 앞선 사진의

그 모습도 그 중 하나. 그리고 천진항으로 입항해 우도봉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의 너른 잔디밭도 팔경 중 하나.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게 우도등대공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꼭대기가 우도봉. 132미터밖에

안되는 높이이긴 하지만, 거칠것 없이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는 탓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가족들과의 대화도 목소리를 키워서 해야 했다.

우도의 소 형상, 그중에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섬머리'라고 불린다는 부분이 바로 여기니깐,

말하자면 소 머리를 기어오르는 길인 셈이다.

방금 배타고 도착했던 천진항이 저만큼 내려다 보였다. 우도엔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이렇게 두 개의 항구가

있는데 대부분의 배가 왕래하는 곳은 천진항. 그 너머 보이는 게 제주도 본섬이니 날씨가 좋아 저 구름이

다 걷히는 때면 한라산도 보이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우도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의 저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모양새. 중후한 독일제 세단을 보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계속해서 소머리를 밟고 올라가는 길. 키작은 잔디가 촘촘하게 자라나 푹신하게 밟히는 느낌이 참 좋다.

섬 바깥쪽으로는 무너지는 곳도 있고 지반이 약한 곳도 있다 하여 이렇게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놓고는

'넘어가지 마세요'라고 안내판도 붙여두었지만, 장난스런 누군가가 두 글자를 지워 의미를 뒤집어버렸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쪽 풀떼기들은 뭐가 저리도 무성한지, 먼바다 파도처럼 넘실넘실.


우도봉 정상..이라기엔 좀 뭐한 높이지만, 그래도 속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이다.

싱싱한 초록색의 잔디가 곱게 깔려있던 구불구불한 길이 울타리의 인도를 받았고, 그 너머로는 짙푸른

담청색의 바다가 제주도와 우도를 갈라놓았다. 머리가 사방으로 봉두난발처럼 뻗쳐나가게 희롱하던

바람의 위력이란. 저 풀떼기들이 여자들 싸울 때 머리끄뎅이 잡아뽑히듯이 전부 뽑혀 훌훌 날려갈 기세.

울타리쪽으로 고무깔판을 깔아두어 미끄럼을 방지한 길 대신, 잔디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듬성듬성 야트막한 산처럼 쌓인 말들의 '생의 흔적'을 만났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질펀하게

싸제껴진 똥덩어리 사이로 노랑색 꽃을 피워낸 민들레를 발견했다. 저것이 양분이 되어 꽃을 틔웠다기엔

시간차가 좀 있는 거 같고, 이제라도 더욱 선명하고 이쁜 노랑색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제주도식 무덤은 꼭 이렇게 봉분 주변을 돌울타리로 한번 치는 게 상례라고 했다. 소나 말, 혹은 다른 동물이

행여 봉분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라는데 보통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울타리를 치더니 여긴

시멘트로 아예 발라버린 거 같다. 천오백명이나 산다더니 정말, 이쪽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잔뜩 모인 게

거의 공동묘지 분위기였다. 야트막한 언덕이 온통 올록볼록 엠보싱.

잔디밭 한가운데 시멘트로 엑스(X)자 모양을 만들어둔 헬기 이착륙장을 지나, 우도봉 뒤로 일찌감치

봐두었던 우도등대공원으로 걸었다. 정신없이 불어제끼는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발길을 돌려 우도의 해안으로 가는 거 같았지만, 저번에 여기 왔을 때 꽤나 멋졌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걸어올라갔다. 사실 얼마 멀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는지 길 한복판에 둥둥 떠서 멈춰있던 잠자리에 깜짝 놀랬다. 날아가는 모습 그대로

공중에 멈춰 있다니, 자세히 보니 길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진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서 이미

적잖은 시간 비바람에 시달린 듯 하다.

거미줄을 피해 조심조심 오르는 길,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나라나 세계의 주요 등대들

모형이 차례로 만나게 된다. 마라도니 독도니, 우리나라의 주요 뱃길을 비추는 등대들도 그렇고, 뉴욕의

허드슨강을 지키던 등대니 뭐니, 이것저것 훑어보다 보면 어느새 공원의 끝, 우도 등대에 다다르는 거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제로 쓰였다는 우도 등대. 그리 높진 않지만 단단하고 든든해보이는 체구의 하얀 등대다.

아래부터 위까지 스캐닝하듯 쭉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풍향계, 그리고 꽃술처럼 풍성하게 벌어진 피뢰침.

풍향계에 그려진 N, E, W, S가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동서남북의 사방을 가리키는 영어 첫자를 따서 어케

잘 조합하면 뉴스(NEWS)가 되는구나. 뜬금없는 생각에 괜시리 감탄 한번.

그래도 역시, 더이상 쓰이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들지도 않으며 비바람에 씻겨갈 뿐인 건물이란 건 왠지 슬프다.

문에 걸린 채 붉은 녹물만 주룩주룩 흘려대는 자물쇠 몇 개가 앙상하게 부식된 껍데기를 떨구고 있었다.


우도등대 앞에 서서 내려다본 우도의 마을 풍경. 시퍼렇다 못해 시꺼먼 바다가 해안에 다가와선 시퍼런 거품을

만들며 시위 중이었다. 그리고 울타리 틈틈마다 거미줄을 만들며 삶을 이어가는 거미. 샛노랗고 까뭇한 색의

대비가 바다보다 화려했다.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된 하얗고 조그만 등대 대신 그 뒤에 버티고 선 등대전시관의 등대가 새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던가. '에어콘 가동중'이란 안내에 낚여 뛰쳐들어갔다가 전혀 냉기 따위 없다는 걸 직감하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뛰쳐나오느라 이 건물 안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바람은 강했지만 바닷가이다 보니 습하고

소금기 꿉꿉한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어서 에어컨으로 좀 말리고 싶었단 말이다.(버럭!)


우도를 지키는 해안경비단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길. 아까는 나무데크가 잘 정돈된 길로 올라가며 등대공원의

여러 전시품들을 둘러봤었고, 이번엔 완만한 내리막길로 걸어내려오며 바다 너머 제주도의 구름 가리운

풍경과 (무엇보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다시 우도의 너른 초원을 걸어내려가는 길, 옆에서 이리저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있고 1박2일팀이

와서 말을 타고 갔다는 광고가 내걸려있다. 가족 중의 누구 한번 타보라는 권유에 선뜻 앞으로 나선 동생,

요새 승마를 좀 연습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기대.

종아리를 다 덮는 기다란 장화를 신고는 아저씨에 이끌려 초원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이내 머리가 날리도록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제법 멋지다. 쏜살같이 내달려 어느새 손톱만한 사이즈로 변해버린 두마리 말을 좇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야 했다. 말을 배우려면 이렇게 풍경 멋진 데서 오르막 내리막을 모두 경험하며

배워야 한다고 아저씨가 코웃음쳤다던가.


차를 주차해둔 쪽으로 걷던 중에 우도의 명물 땅콩을 파는 아주머니들 옆으로 망아지 한 마리가 휘적휘적

유유히 걸어다닌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그저 제 갈길 간다는 태도. 그 옆에는

망아지 갈기와 땅콩 껍질을 소용돌이치듯 갈퀴질하는 거센 바닷바람에 날려 뒤집혀버린 하얀 의자가 적나라하니

나뒹굴고 있었다.

서빈백사.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하얀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에 있는 모래는 온통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얀 산호와 조개껍데기들이 깨지고 부서져서 바닷가에 쌓인 게 이 모래 아닌 백사장의 정체라고 하는데,

우도팔경 중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발로 밟으며 걷기엔 조금 아픈 감도 있는 게 아직 산호나

조개껍데기가 모래알처럼 작게 깨지거나 고와지지 않고, 나름의 형체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산호가 풍화되어 생겨난 하얀 백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여기 딱 한 군데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독특한 풍경 속에서, 맨발벗은 발을 따꼼따꼼 찌르는 아픔 속에서도 천막에 앉아 해삼과

멍게, 그리고 우도 특산물이라는 '톳'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다른 해산물들도 다들 싱싱하고 맛났지만

특히 이곳에서 처음 맛본 톳은 싱싱하고 탱글거려서 제일 먼저 없어져버렸다는.

무려 3미터짜리, 3톤이 넘는다는 해녀상이 서 있던 하고수동 해수욕장. 세계 최대의 해녀상은 1932년 3개월동안

1만 7천여명의 해녀가 항일 항쟁을 벌였던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당시 해녀가를 지어 불렀던

해녀가 우도 출신이었기에 여기 이런 거대한 해녀상이 선 거라고 한다. 
 

그 앞에는 또 하나의 해녀상이 서 있었는데 그 유래는 전혀 모르겠고, 시선이 계속 쏠리는 건 그 상들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 자잘하게 부서진 파도가 잔잔하게 이는 그 깊고 투명한 색감의 바다가 멋지다.

어라, 제주도에 비양도는 북서쪽 금능해수욕장 맞은 편 아니었던가. 알고 보니 여기도 비양도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섬이 하나 우도랑 연결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섬이고 우도랑 붙어 있어서 그냥 시멘트길이 넓게 이어져

차를 타고도 쉽게 한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는데, 섬 앞머리 표식이 인상적이다. 온통 조개 껍데기를

탑처럼 쌓아올린 표식 바깥에 촘촘히 붙여놓아서, 멀리서 보면 새하얗게 반짝거리던 것.

우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검멀레 모래사장 앞 '동안경굴'. 검멀레는 왠지 발음부터 연상되더니

역시, 검은 모래를 가리키는 제주도말이라 하고, 그 앞의 동굴까지 사람들이 내려가 볼 수 있는 거다. 이 동굴에

옛날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그 앞의 깊고 짙푸른 바다를 보면 왠지 상상이 되었다.

동안경굴, 우도팔경 중의 하나였던 그 동굴 위로 뻗은 산책로 앞에 있던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나뭇살

세개가 모두 구멍에 끼어져 있다. 주인이 멀리 출타 중이란 의미를 남길 때 저렇게 세 개를 모두 구멍에

끼어놓는다고 했는데, 산책로를 당분간 폐쇄한다는 안내판에 꼭 맞는 의미심장한 표식인 셈이다.


* 참고로,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표식에 대한 의미 정리. (네이버 지식인 참조)
 
ㅇ 나무가 한 개도 걸쳐 있지 않을 경우 : 집안에 사람이 있음

ㅇ 나무가 한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가까운 곳(이웃집 등)에 잠시 나가 있음

ㅇ 나무가 두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이웃 마을 등에 갔음

ㅇ 나무가 세 개 모두 걸쳐져 있는 경우 :  멀리 출타중임


"그냥 국물 몇 숟갈 뜨고, 못 먹겠다고 하면서 삼계탕이나 하나 시켜먹어."


저녁 회식자리에서 개고기를 먹게 되었다고 알린 나도 나지만, 문자를 받고 득달같이 전화한 엄마도 엄마다.

그만큼 우리 집에서 '개고기'는 아무도 먹어보지 않았고 먹을 생각도 해본 적 없는 그야말로 '금기의 음식'.

뭐 딱히 개를 사랑해서라거나, 비위가 약해서는 아니다. 우리 집안에선 예전부터 개고기를 먹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이유. 개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안 먹던 거니까, 왠지 찝찝하니까 정도의 부담감이랄까. (그렇지만 안 먹어 보았던 새로운 음식을 먹는 건 아주

좋아라 하니 찝찝함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도 되겠다.)

처음 와 봤으니 이것저것 맛을 봐야 한다 하여 수육이랑 탕이랑 테이블 위에 올랐다. 기름을 반들반들 머금은

고기가 나오는데, 속살은 흑염소고기처럼 결이 져서 부드럽고 껍데기쪽은 쫀득거린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음식점 한 켠에는 '드시지 못하는 분을 위해 외부음식의 아웃소싱을 해드린다'는 안내까지 있었지만 적어도

내가 있던 룸 내의 사람들은 전부 잘만 먹더라. 딱히 먹으면서 추억할 만한 누렁이와의 기억도 없고, 그렇다고

먹으면서 점점 내 말소리가 개소리로 변해가는 것 같지도 않고.


집에 도착해선 다녀왔습니다, 대신 멍멍, 짖어서 인사를 갈음했다. 국물만 먹었냐고, 고기 정말 먹었냐고

그러길래 계속 멍멍, 그렇게 답하다가 한 대 맞고. 그러다가 개고기를 먹어선 안되는 이유에 대해서 나름

'치열한(이라 쓰고 저열한, 이라 읽는다)' 논리 싸움. 우리 윤씨는 대대로 개와 잉어를 피했다고 하길래,

조상이 개나 잉어에서 변신한 것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그러다가 멍멍거린다고 한 대 맞고. 뭐라더라,

개랑 잉어한테 도움을 입었다던가, 그래서 그랬다. 어차피 키우던 소랑 돼지랑 닭한테도, 그리고 키우던

깻잎이랑 상추한테도 도움을 입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집안에 도움이 된 게 어디 개와 잉어 뿐이겠냐고.


그리고 친가 쪽만 조상이냐고, 외가 쪽에서는 먹지 않냐고 했다가 외가 쪽도 안 먹는다는 말에 깨갱 한번.

뭐 대충 그렇게 일 합씩 주고 받는 상황에서 우리 집 족보가 과연 진짜일까욤, 요런 질문 던져봐야 별로

도움될 이야기는 아니어서 속으로만 하고 말았지만, 사실 그것도 그렇다. 씨족에 따라 존중하고 보살피는

동물이 있다고 치더라도, 그 씨족에 대대로 속해서 족보와 가계에 맞는 오리지널 정통 계보가 얼마나

되려나 싶다. 대부분 돌쇠, 점순이를 조상으로 갖고 있을 텐데.


할머님이 먹지 말라 했다고 당부하셨다고, 옛날 어른들 말씀이 다 이유가 있는 거라고 그랬다. 손에 잡히지 않는

'조상'이란 단어보다는 훨씬 와닿는 할머니의 말씀이었다니 왠지 뜨끔하긴 하지만, 옛날 어른들 말씀이라고

다 삶의 지혜니 살아본 경험이니 응축된 건 아닌 거다. 막말로 사람들 영혼 빼앗긴다며 사진찍히지 말라던 것도

고작 백년안팎 이전의 옛날 어른들 말씀이다. 혹시 모르지,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겠지만 특정

성씨의 씨족에겐 개고기의 DNA와 충돌하는 치명적 오류가 있다거나 하여 옛 어른들의 경험칙으로만 구전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어젯밤은 하얗게 지새우고 말았다. 몸을 보하는 게 아니라 허하게 만드는..;


결국 우리집에서 개고기를 먹지 말라는 이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개고기를 먹는단 것에 대한 거부감이라기보다는

개고기를 먹지 않았던(먹지 말라는 불문율이 내려오는) '전통' 혹은 '조상'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조심스러움이겠다. 그런 조심스러움에 더해 조상님들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될 거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 외경이

개고기에 대한 찝찝함을 증폭시키는 이유랄까. 맛보고 나니 사실 맛있게 먹을 수 있었고 전혀 거리낌없이 먹을

수 있긴 했는데, 왠지 그런 부분이 걸려서 딱히 다음에도 또 먹고 싶을 만큼 땡긴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괜히

조상님들을 화내게 만들고 싶진 않아..란 생각이 깊숙이 인셉션되어 있는 거랄까. (아...이렇게 심지가 약했던 걸까...)


물론 그 밖에 개고기를 둘러싼 많은 찬반의 이야기들이 있다. 개는 인간의 친구라느니, 가장 유전적으로

유사한 생명체라느니, 혹은 반대로 우리 민족의 전통이라느니(사실 동남아니 다른 나라에서도 참 많이들

먹고 있다길래 깜짝 놀랬지만) 따위의 감성에 호소하는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영양학적 근거를 통해 우수한

단백질 보충원(보양식꺼리)라는 입장과 요새같이 영양분 넘치는 세상에 굳이 개고기까지 먹을 필요가 있냐는

다소 실용성에 주목한 입장(음식의 맛 차이나 그런 요소는 모조리 무시한) 등이 있는 거다. 혹은 위생적으로

전혀 깔끔한 도축 과정이나 유통 과정을 거치지 않는 지금의 실태를 지적하며 이를 개선하라거나 아님 아예

금지하라는 입장도 있는 거고. 정답은 뭘까.


그냥, 개인적으로는 아무 생각없이 개고기를 가리키며 "개속살은 담백하니 맛있네요. 근데 개껍데기는 좀

쫀득하면서 돼지족발같애요."라고 이야기했다가 살짝 뜨아했다. 개속살, 개껍데기라...돼지속살, 돼지껍데기랑은

조금 다르게 울리던 단어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 문제는 개냐 돼지냐의 취사선택이라기보다는 육식이냐

아니냐의 선택이 좀더 근본적이고 깊이있는 프레임이 아닐까 싶다. 이전에 국과수에서 시체 부검하는 것보고

생각했던 것처럼. (음식의 미학-부검 견학의 감상.)


* 나름 개고기계에서 이름난 맛집이라 하여 첨부해 보는 정보. 먹을 사람은 먹어야지 싶어서.


타지마할 바로 앞, 폐가처럼 방치된 건물 안에는 녹슨 용수철이 드러난 매트리스가 하나, 그리고 하얀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한 분 쪼그리고 계셨다.

그 옆에 '코카콜라'를 파는 음료수 상점은 나무 가지에 묶어둔 천을 지붕삼고 있었고.

중앙선을 유유자적 활보하는 위풍당당한 소들은 세상부러울 것 없다는 눈빛과 표정으로 사람들을 내려보았다.

옆에선 길가에 의자 하나, 거울 하나, 그리고 보자기 하나와 가위 하나로 머리도 깍고 면도도 하고 맛사지도

해주는 만능 이발사가 판을 벌였다.

삼륜차를 끌고 손님을 기다리는 아이들은 그저 햇볕을 쬐러 나왔는지도 모른다. 극성스럽지 않고 허허로운

느낌마저 불러일으키는 아이들의 몸짓들. 그들의 호흡에 맞추어 보는 게 여행일 텐데.

저런 길거리 음식을 서서 먹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같이 웃음도 나누고, 눈짓도 나누는 거 말이다.

타지마할 매표소까지 나가려면 또다시 저런 바리케이트를 지나 버스를 타야 한다. 나름 삼엄하다면 삼엄한

경계, 총을 든 정복 경찰들도 적잖이 보이지만, 사람들에서 풍겨나오는 어쩔 수 없는 나른함이랄까 유유자적함.

매연을 내뿜지 않는 전기 자동차가 입을 벌리고 대기중. 얼른 삼켜지려다가 옆에 비친 이상한 생명체에 깜짝.

쓰레기통에 얼굴째 들이박은 채 뭔가를 열심히 후비고 있는 숫소.

관광지 주변의 북적북적한 공기는 그대로인데, 뭔가 다른 거 같다. 뭐지...?

또다른 전기 자동차가 앞서 출발. 저 차랑 내가 탄 차랑 요금이 달랐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자전거 위로 나무를 한 짐 해가는 아저씨와 장애물 경기를 하듯 심술궂게 길을 툭툭 끊어놓은 바리케이드.

짧막한 거리를 운전한 기사 아저씨는 차가 서자마자 휙 내려버렸다. 클랙션이 도드라진 운전석의 모양새.

이 차 역시 운전석은 오른쪽, 문득 궁금해진 건 엑셀러레이터도 왼쪽으로 옮겨간 걸까? 왼쪽 운전석에선

엑셀레이터가 오른쪽, 브레이크가 왼쪽인데.

화장실 풍경은 습관처럼. 트럼프 카드의 킹과 퀸이 버티고 선 분홍색 화장실 건물.

자전거 삼륜차를 릭샤라고 한다던가, 저런 것도 한번 타봤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배낭 꾸려서 한번 떠야겠다.

소방 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양동이 몇개 매달아 놓은 게 전부다. 영어와 힌디어로 모두 적힌 채

사이좋게 매달린 양동이들. 그리고 나무둥치엔 흰색 페인트를 발라두었다. 환경 미화의 측면에서 가로수들에

저렇게 색칠을 한다던데, 저게 이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지구상엔 있는 거다.

쓰레기통, 흙으로 빚어낸 듯한 갈색 쓰레기통엔 힌디어가 가득이다.

타지마할을 가리키는 파란색 입간판. 닳고 헤진 벽돌 두개로 받쳐놓은 모습이 허술하지만 정겹다.

나무 그늘을 제대로 활용해 주시는 이발사 아저씨. 뭔가 장비도 잔뜩 갖춰놓은 게 그대로 여느 이발소 내의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떠나는 길, 문득문득 창밖을 휙휙 스쳐지나던 남루한 천막들 중 하나를 가까스로

잡아챘다. 저런 삶을 누리는 사람들로부터, 절대적 빈곤의 악함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아님 정신적 풍요의

중요성을 끄집어 내어야 할까. 둘다 자기 입맛에 맞는 식으로 그들의 삶을 쉽사리 재단하는 건지도 모른다.




1월말의 뉴델리는 생각보다 많이 쌀쌀했다. 아직 겨울의 기운을 씻어내지 못한 그곳에 머무는 동안 아침마다

짙은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았댔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는 왠지 덩어리덩어리, 외로움이 감돈다.

문득 들어선 정체구간, 올해 있을 Commonwealth worldcup이라던가, 영연방 국가간의 체육대회를 개최하는

도시로서 부족한 인프라를 많이 확충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뉴델리에서 타지마할까지 가는 길은 왕복

4차선에 불과한데다가 우회로도 없는 거다. 그나마 왕복 2차선이던 것이 한 차선씩 늘은 것도 삼사년 전이라고.

우회로 없는 왕복 4차선에서 정체가 필연이라면, 그 정체구간에서 저렇게 코브라가 혀를 날름대며 춤을 추는

건 그보다 더한 필연. in INDIA.

앞에 선 트럭 위에 늠름하게 버티고 선 검은 물소들의 빈약한 방댕이들. 캄보디아에서도 느꼈던 거지만 동남아

소들은 은근 날씬해주신다.

중간에 잠시 쉬었던 휴게소-랄까, 그냥 간이음식점 겸 기념품판매소랄까-에서 만난 화장실 사인.

조금 안개가 걷힌 차창 밖의 불빛에 기대어 활짝 피어난 운전석 머리 위의 꽃다발. 안전운행을 축원하는 뜻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차 한가운데 티비도 떡하니 세팅되어 있고 제법 괜찮았던 버스였다. 무엇보다 눈에 띄던 건 운전대

가운데 불룩 튀어나온 빨간색 버튼. 경쾌하고 시끄럽고 방정맞은 벨소리가 저로부터 나왔었다. 인도의 클랙션은

거의 깜박이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 추월할 테니 주의해라"라거나, "내가 지금 앞으로 혹은

뒤로 따라붙고 추월할 거다"라는 사인을 모두 미친듯이 울려대는 클랙션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길가 왼쪽에는 이렇게 차들이 주차해있었다. 글쎄 무려, 커다란 대형 트럭이 서로 바싹 마주본채 주차하고

있는 모습. 쟤들은 나중에 도로에 진입할 때 얼마나 왕복 차선을 혼란시키며 진입할까. 좀체 규율이 서있지

않은 인도의 교통체계를 반영하는 주차 모습이었다.

트랜스포머처럼 뭔가 잔뜩 장식이 달리고 보호대가 장착된 트럭들이 시속 40킬로미터 이내라는 규정속도를

지키며 달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뉴델리에서 아그리포트로 가는 길가로 쭉 보이는 풍광들은 참, 누추하고 허름하다.

거의 허물어져 가는 건물들, 가까스로 지탱하고 있는 건물들에 헝겊을 대고 바람을 막고 있는 집들도

부지기수, 얼마나 되었는지 몰라도 해머 한 방이면 줄줄이 넘어갈 듯한 파삭하고 앙상한 벽들이 눈에 띄었다.

자전거를 개조한 삼륜차도 곧잘 눈에 띄고, 앞바퀴를 빼고 있는 자동차는 왠지 신뢰가 전혀 가지 않는

'엔지니어'들이 달라붙어 툭탁툭탁 고쳐대고 있었지만 그 차가 다시 달릴 수 있었는지는 모를 일인 거다.

뭔가 다채로운 색감을 과시하는 인도의 트럭들. 이 차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트럭들이 형형색색의 원색감을

뽐내며 글자와 그림들을 품고 있었다.

삼륜차들, 오토 릭샤가 딱정벌레처럼 바닥에 스물거리며 붙어 달리고 있었다. 저런 차를 타고 달려줘야 정말

여행일 텐데 그저 창밖으로 구경만 한다는 게 넘 아쉬웠을 뿐.

창밖에서 열심히 달리고 있던 오토바이, 그리고 그 위의 인도 전통 의상을 덮어쓴 여성.

그러다 문득 들어선 어느 마을 어귀에선 소가 휘적대며 걷기도 했고, 담벼락엔 저렴한 인도의 노동력 비용을

반영하는 페인트 광고가 퇴락해 있었다. 여긴 왠만한 종이나 현수막 따위의 프린트물 광고가 아니라 손으로

직접 그리게 하는 게 싸게 먹힌다고.

또다시 어느 골목을 지나며. 저 골목으로 들어서면 뭐가 있을지, 누굴 만날지 알 수 없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저 지나칠 뿐. 잠시의 망설임이나 주저함 따위 없이 그냥 휭, 하니 지나쳐버렸다.

한참 달리다가 또 마주친 풍경 중 하나. 뉴델리에서 아고리까지는 약 200킬로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교통이

워낙 열악해서 한 다섯 시간 잡아야 한다고 했다. 문득 마주친 새떼, 그리고 소떼.

그에 바로 이어지는 남루한 천막들. 그야말로 거적떼기 하나 씌워놓은 공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틀림없는

사람들.

바로 도로 옆에 연한 채 저렇게 허름하고 갖춘 것 없는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괜찮은 걸까, 걱정스러웠다.

델리는 그래도 온도가 꽤나 내려간다고 하던데, 1월말만 해도 한국의 꽤나 쌀쌀한 봄날씨를 연상케 하던 그런

곳이었는데 자칫 얼어죽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길가에 삼층짜리, 사층짜리 아파트처럼 세워진 닭장들. 닭은 잘 안 보이지만 어쨌든. 소고기를 안 먹는 대신

닭고기의 소비가 많은 나라인 거 같다.

생각없이 바라보다가 깜짝 놀랐다. 저 나무에 열매처럼 매달린 저것들은..

하얀 새들이었다. 사람들이 밑에서 저렇게 집-이랄까 천막이랄까 움막이랄까-을 짓고 얼쩡얼쩡대고 있는데

열매인 양 위장한 채 가만히 매달려 있었던 거였다. 대롱대롱, 이란 단어는 뭔가 밑으로 내려뜨려진 것에

어울릴 표현이긴 하겠지만 저 새들이 날씬하고 앙상한 두 다리로 나뭇가지를 꽉 쥐고 있을 걸 생각하면 왠지

맞춤해보이기도 한다.

이게 철거촌인지 아님 그냥 인도의 근교 풍경인지 헷갈릴 정도로, 건물들은 오래고 낡았다.

이국적인 문양과 장식들을 매달고 있는 건물들. 그리고 저 알록달록한 색감의 건물들, 문화의 차이던 뭐던 간에

각국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겨쓰는 색감은 생각보다 참 다르다.



쁘리아 꼬(Preah Ko)는 씨엠립 동남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롤루오스 유적군 중 하나다. 롤루오스 유적군은

앙코르 왕조의 초기 유적, 대개 900년대를 전후한 유적지여서 훼손도 그만큼 많이 되었고, 또 기교도 전성기만

못해서 여행객들이 많이 찾지는 않는 듯 하다.

'쁘리아 꼬'란 말의 의미는 '신성한 소'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목걸이도 하고 커다란

코를 위풍당당하게 벌름거리는 듯한 제법 그럴듯한 소 조각. 뒤로 피어오르는 한 줄기 버섯같은 흰구름도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쁘리아 꼬는 크메르 왕국의 시조부터 세 쌍의 왕/왕비 부부를 모셔 놓은 사원이라 한다. 그래서 탑도 총 여섯개

쌓아올린 거라고 하고, 탑마다 계단 아랫쪽에는 이런 특이한 모양의 기단을 받쳐놓았다. 부부의 금슬을 좋게

한다는 '월장석'이라 하여 달을 형상화한 돌조각이라 하는데, 저게 왜 달일까 한참 고민하게 만들었다. 왜

보통 '달'이라 하면 똥그랗거나 반달이거나 이지러졌거나 여하간 동그란 원의 형태로 상상하기 마련인데, 이건

무슨 말미잘처럼 너울너울 달빛이 퍼져나가는 것까지 형상으로 잡아낸 건가. 그때의 사람들은 달을 그리라하면

저렇게, 똥그란 원이 아닌 달빛 파장까지 반영된 그림을 그렸지 않을까. 아니면 어쩜 그때는 정말 저렇게 생긴

달이 이 '쁘리아 꼬' 사원을 비쳐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오래 된 만큼 손대어 복원할 곳도 많은가 보다. 아예 탑 맨 아랫단부터 촌스럽도록 신선한 새 벽돌로 괴어나간

귀퉁이. 저렇게 '난 새 벽돌이요~'라고 티내는 것들이 대체 이 천년묵은 돌탑하고 융화될 수 있을까. 만약

진품 부분과 복원된 부분을 쉽게 식별할 수 있도록 일부러 그러는 거라면, 차라리 자연스레 무너진 부분에서

더이상의 붕괴를 막되 저렇게 어줍잖은 복원은 안 하는 게 차라리 보기 좋지 않을까 싶다.

사원 한 귀퉁이에서 길다란 목줄을 질질 끌며 유유자적 풀을 음미하고 계신 하얀 소님. 힌두교의 영향권 하에서

소는 파괴와 창조의 신인 시바의 현현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인도에서 소를 신성시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하는데, 여기 캄보디아는 이제 힌두교의 영향력에서 완전 벗어났다고 해야 하나. 식당에선 쉽게 소고기

음식을 찾아 볼 수 있고, 딱히 소를 존경하지도 않는다. (캄보디아는 소승불교가 95%를 차지하는 불교국가다.)

오랜 세월을 견딘 인간의 건축물들은 조금씩 '인공의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 같다. 어느순간 그냥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자연'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인간의 것으로 본다면 정말 남루해지고 퇴락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본다면 신비로운 느낌이 피어오르는 바윗덩이같은 거다. 저렇게 이삼천년 더 지탱해낸다면

이제야 기자의 피라밋처럼 그냥 '산'이 되고 '언덕'이 되어 버릴 거다.

지금도 벌써 드문드문 초록 이끼가 끼어 있는 바윗돌 같은 느낌이 드는 거다. 바윗돌 깨뜨려 자갈돌, 자갈돌

깨뜨려 모래알, 모래알 깨뜨려, 뭐 그런 식으로 나가면서 차츰 닳아빠지고 없어져 버린다. 어떻게 보면 허무할

수도 있지만, 또 어떻게 보면 정작 신비로운 게 그런 가차없는 풍화, 무화의 과정 자체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건 왠 오동통한 참새냐, 했는데 가이드북 상으로는 '사자상'이랜다. 뭐 입도 쫙 찢어졌고 가슴에 불룩한 저게

탄탄한 근육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왠지 참새 몸뚱이에다가 괴물딱지 머리를 갖다 붙여 놓은 느낌은 피할

수가 없다. 아마 앙코르 문화의 초기니만치 조금은 서툴렀던 것일까.

이 다소 현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건물은, 위에 구멍이 뽕뽕 나 있다는 것에 주목해 '화장터'로 여겨진다고

하지만 왠지 믿음이 안 간다. 아무런 기록도 없다고 하니 좀더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는 건 어떨까. 사실 경주의

'첨성대'를 두고도 수많은 설들이 오가고 있는 상황인 거다. 실용적 천문관측대였다느니, 하나의 상징에

불과했다느니, 커다란 기준표지였다느니, 주술적 의미가 담겨있다느니 등등. 그런 종류의 '여지'가 남아있어야

흥미로워진다. 현대의 시각으로 과거의 것을 대면하고 있을 때의 낯섦, 생경함 따위의 감정이 살아나는 거다.

쁘리아 꼬 옆에는 캄보디아의 유수한 사원들을 자그마한 사이즈로 줄여서 전시해둔 미니어쳐 전시관이랄까,

그런 게 있었다. 제대로 구색을 갖춘 건 아니고 그냥 마당 한복판에 앙코르왓이 있고 반띠아이 쓰레이던가

그런 유명한 사원들의 모형이 놓여 있었던 곳이다. 아이들은 그 옆에서 무심하게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열중해

있었다. 어이 이봐, 나는 이런 거 보겠다고 한국에서부터 몇 시간씩 날아온 거란 말이다. 왠지 저런 걸 보면

억울해질 때가 있다. 피라밋 옆에서 나른하게 파리를 쫓거나 졸고 있다거나, 에펠탑엔 눈도 안 주고 시크하게

걸어가는 파리지앵들, 혹은 9/11 전 쌍둥이 빌딩 전망대를 오르는 여행객들에게 웃어주던 뉴요커들..그런 거다.




쁘라삿 끄라반에서 반띠아이 끄데이로 가는 길, 사실 거리는 얼마 안 되는데 그 잠깐 사이에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장면이 눈에 띄었다. 물이 들어찬 논바닥 같은 곳 근처에 몰려 있는 사람들.

정말 논일을 하고 있는 건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허리를 가득 굽힌 채 뭔가 일을

부지런히 하고 있는 분들이 보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몸빼 바지와 비슷해 보이는 바지를 입고 머릿수건을 두른 채 모심기에 여념이 없는 여성농민

분들이 계셨다. 남자와 여자가 각기 모여서 일하는 상황, 여기만 그런 건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문화가 원래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눈에 띈 또 다른 점 하나, 베트남 다녀온 사람들이 흔히 저렇게 생긴

모자를 쓰고 기념사진을 찍고 오던데, 그게 여기에도 널리 쓰이는 모자였나 보다.

조금 떨어진 곳을 보니 소도 농사에 동원되고 있었다. 두 마리로 뭔가 땅을 갈아엎는 써레질(?)을 하고 있기도,

또 뭔가를 운반하기도. 하얀색 소인데다가 뿔도 그럴듯하게 생긴, 그렇지만 다소 야윈 소들이다.

조금 더 가는 길에 마주친 원두막(?). 우리나라 초가집 지붕을 덮는 이엉을 잘 마른 짚으로 엮어서 얹듯, 

갈색으로 잘 마른 잎새를 엮어서 둘둘 말아놓은 이엉들이 푸짐하게 준비되어 있었다. 정말, 직사광선만 피할

수 있다면 바람이 솔솔 불고 하니 낮잠자고 쉬고 놀기에 참 좋을 거 같다. 딱 안성맞춤인 원두막.

그러다 보니 도착해 버린 반띠아이 끄데이. 그늘이 드리워진 돌들은 다크서클 내린 눈마냥 더욱 새까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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