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 뭔가 정신건강에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하나씩 갖다두다 보니 어느새 꽤나 분위기가

'다정다감'해져 버렸다. 선물받은 토토로 네코버스와 메이, 스프링으로 고정되어 있어서 제법

튕기는 맛이 있기도 하고, 네코버스의 저 쫙 찢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뒤로

슬며시 머리를 들이댄 건 대갈장군 노호혼.

친구가 중국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사온 칭다오 캔맥주는 어느새 해를 넘긴 채 자리 옆을 지키고 섰다.

언제든 내킬 때 따서 마시자, 는 생각으로 집에도 안 가져가고 달력 옆에 벌세워두고 있는 건데

그 언제가 대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렇게 옆에 두고 보는 것만으로도 제법 위로가 된다는.

이런 아이템도 보고 있음 도움이 된다. 구멍 네개짜리 USB 연장선일 뿐인데 저렇게 눈 두개에

고양이 입모양이 그려넣어지니까 (가격도 비싸지고) 꽤나 귀엽다. 사실 저 정도 그림이라면

그저 본인이 직접 그려넣어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한 수준이긴 하지만.

역시 최근에 새로 산 무선 마우스. 완전 깔끔하고 딱 떨어지게 생긴 데다가 쓸 일이 없으면

반으로 접어서 주머니에 담아 보관할 수도 있는 녀석이다. 거추장거리는 선이 없으니 일단

그것만으로도 좋은데, 약간 붉은 빛이 강한 와인색이어서 색깔도 만족.

연말에 있었던 COEX 세계인형전에서 산 '슬리핑 메리노'. 정확하게는 내가 산 건 아니고

다른 사람에게 선물받은 거지만, 그 나른한 표정과 복실스러움이 넘쳐나는 털무더기들이

맘에 들었다. 뒤에는 전자파를 잡아먹는다는 제주도 라바로 만든 돼지 두마리. 틈새에 끼인

조그마한 녀석은 만수무강 기원 십장생 중 하나인 거북거북.

서류더미들을 위에서 누르고 있는 제법 묵직한 크리스탈, 여차하면 흉기로 변신할 수 있도록

언제든 손 닿는 범위 내에 놓여있다. 가끔 놀러왔던 친구가 슬쩍 탈취해가는 일을 겪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끝까지 쫓아가 되찾아올 만큼, 회사 생활을 시작한 이래 쪽 함께 해온 녀석.

그리고 내 손목의 안녕과 평화를 지켜주는 오리너구리. 마우스 패드만으로는 왠지 풍만함이

덜해서 손목이 꺽어지는 거 같아 그 위에 '뽕'처럼 얹혀올라가 받쳐주는 기능을 한다.

저번 일본여행 때 사왔던 '붉은돼지'의 두 캐릭터. 미워할 수 없는 악당 해적대장과 붉은돼지의

파트너이자 새로운 사랑의 얼굴 두개. 문학동네 계간지 정기구독하면서 받은 큐브박스에 찰싹

붙여두었는데, 그 이래로 늘 나를 바라봐주는 네 개의 눈동자를 느끼고 있다.

그렇게, 문득 이런저런 아이템들이 보강된 김에 사무실의 내 자리 소개를 한 번 해봤다.

회사 생활하면서 자꾸 그런 아이템이나 이쁜 사무용품들에 욕심내지 말라고, 말자고 했는데

자꾸 늘어만 가니, 큰일이다.ㅜ






지브리 미술관에서 나오는 길, 미타카 역을 가리키는 화살표 하나, 미술관을 에워싼 공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또 하나. 미타카 역에서 지브리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길이 꽤나 매력적인 산책로라는 이야기에 그쪽으로 바로

빠지기로 결심은 했지만, 지브리 스튜디오의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져 있는 공원에서 좀더 여운을 즐기고 싶은

마음도 움찔움찔.

아까 뛰어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던 지브리 박물관/미술관/스튜디오의 간판.

끝내 문을 나서서 돌아나오는 길, 샛노란 칠이 산뜻한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안의 커다란 토토로가 배웅해주는

듯하다. 이제 막 스튜디오에 들어선 꼬마아이 하나가 토토로와 눈싸움을 시작했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나와 미타카 역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태풍 '곤파스'가 가로수를 뽑고 휘두른다던

서울과는 달리 이곳 도쿄는 사람이 몇 명이나 죽어나간다는 전례없는 폭염이 계속되던 중. 비행기 타고 고작

두시간도 안 날아가는 거리인데 이토록 판이한 날씨라니. 이런 점에서도 가깝고도 먼 나라, 맞다.

이국적인 느낌의 신호등, 빨간 신호등의 불빛이 유난히 붉다.

사실 미타카역에서부터 지브리 미술관으로 걸어오면서 점점 줄어들어야 하는 숫자, 미술관까지 300미터

남았음을 알리는 표지판. 푯말을 들고 있는 토토로도, 푯말 위에서 휘영청 몸을 꺽어내는 도마뱀도 귀엽다.

한참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닐 시간 아닌가, 오후 두세시경. 옆에 개천을 끼고 이어지는 골목길에는 그렇지만

사람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고즈넉하고, 조용하면서 깨끗한 거리.

나무도 많고, 집들도 아기자기하고, 그런 산책로를 따라 가다보니 금세 지브리 미술관에서 멀어진다. 어느새

500미터나 떨어졌다. 거꾸로, 미타카역에서 이 길을 따라 지브리 미술관을 향하는 길도 생각보다 금방 가닿을듯.

어느 집 앞마당에 얼기설기 세워진 대나무 울타리에 붙여진 안내판.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개와 고양이 그림이

귀엽다. 뭐, 이런 개나 고양이가 마당에 침범하지 않도록 주의해 달라는 그런 걸까.

좀더 걷다 보니 다른 그림들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손으로 직접 그린 듯한 포스터들, 그리고 검정귀를 가진

하얀 강아지가 푯말로 붙어있는, 그런 류의 귀여운 안내판들.

그리고 칠백미터. 토토로 말고 다른 캐릭터들도 푯말을 들고 있게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긴 하지만, 아무리

뭐니뭐니 해도 지브리의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는 역시 토토로. 붉은돼지 아저씨가 푯말을 들고 있기엔 왠지

어울리지 않는 거 같고.

이번엔 파란 불, 이건 또 아까 신호등과는 모양생김이 다르다. 햇살은 워낙 내리쬐이고 그늘은 또 그만큼

짙고, 도무지 광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았던 도쿄.

신호등 앞에는 이렇게 멈춰서서 기다리라며 발자국 모양까지 그려넣는 세심함..이랄까 유머러스함이랄까.

장난스럽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지브리 스튜디오-미타카 역을 잇는 이 산책로의 이름은, '바람의 산책로'. 아닌 게 아니라 개천을 따라 쓸듯이

불어내리는 바람이 머리빗처럼 순순한 방향으로 행인들을 빗어넘기고 있었다.

문득 툭 튀어나온, 그렇지만 너무 과하게 튀거나 부조화스럽지는 않은 일본 스타일 강렬한 집도 한 채 지나고.

그러다보니 벌써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부터 천백미터. 그리고 거의 코앞까지 당겨져버린 미타카역.

지브리에서의 여운을 곱씹으며 마음을 탁 놓은 채 걷기에 딱 좋던, 딱 알맞은 거리와 분위기의 산책로.





지브리 스튜디오는 도쿄에 있다. 정확히는 도쿄의 JR선 '기치조지(Kichijyoji)' 역과 '미타카(Mitaka)' 역 사이,

거의 그 중간에 걸쳐 있다고 해야 하려나. (참고 : 낡고 더러워진 도쿄 JR선 전체지도.)

해서 코스 잡기가 상당히 애매한데, 나는 기치조지 역에서 내려서 지브리 스튜디오까지는 (늦어서) 택시로

이동, 지브리에서 보고 나오는 길은 미타카 역까지 산책길을 걸어서 이동, 그리고 에도도쿄건축공원으로 향했다는.


아, 지브리 미술관은 한국에서 미리 표를 예약해야 입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다. 성수기 때에는

2주 전쯤엔 해야 안전할 듯. http://ghibli.ktbtour.co.kr/ 여기에서 하는 게 한국에서 사전 예약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들었다.
 

열심히 기치조지역으로 가는 길, 전철 끝에 탔더니 시원하게 앞창이 전부 트여있다. 물론 보이는 거라곤 깜깜한

지하 터널뿐, 그리고 매 역마다 마이크를 잡고 프로의 솜씨로 역 안내방송을 하는 철도운전사 아저씨도 빼놓음

섭하겠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매주 화요일과 국경일에 휴관하며, 그외의 날엔 10시, 12시, 14시, 16시에만 입장할 수 있다.

입장 후에는 언제 퇴장해도 상관이 없으나 입장시간만은 지켜달라던 간곡한 부탁이 사전에 있었는데도 늦고

말았다. 사실은 기치조지역에서 살살 걸어보려 했는데, 어쩔 수 없이 잡아탄 택시 안에서 사진 한장.

생각보다 기치조지역은 꽤나 도쿄 외곽에 있어 멀기도 했고, 생각보다 기치조지역과 지브리 스튜디오 간의

거리도 솔찮이 떨어져 있었던 탓.

일본 택시도 한번 타 볼만하다 싶던 게,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더라는 사실. 기사분은 영어를 전혀 못하시는

할아버지셨지만, '지브리스튜디오'하니까 한 큐에 알아들으셨다. '하야꾸하야꾸'하며 조금 채근해볼까 하다가

그게 '빨리빨리'란 말이 맞던가 문득 혼란스러워져서 조용히 창밖만 바라보았다.

지브리 스튜디오 입구! 결국 10시를 십분여 넘기고 말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줄을 선 채 입장 대기 중.

내부에서는 카메라 촬영 금지, 음식물 반입금지, 흡연 금지, 그리고 휴대폰 금지. 휴대폰? 아무래도 요새

휴대폰에 사진 촬영 기능이 기본으로 들어가있으니 그걸 막고자 함인 듯. 스튜디오 내부의 분위기가

외부로 새나가는 걸 꽁꽁 막겠다는 의지가 결연해 보였다.

결국 내부 사진은 한 장도 없고, 그저 하야오가 그린 너무나도 감격적인 원화들과 금세라도 그가 동료들과 함께

다시 앉아 작업을 계속할 것만 같은 작업실의 재현공간, 그리고 곳곳에 수북하게 꽃처럼 피어났던 담배꽁초들의

이미지만 가득한 채 완전 가슴먹먹해져서 옥상 정원으로 올랐다. 옥상 정원에 오르는 길, 마치 아이들 놀이터에서

흔히 보이는 우주선 모양의 뱅글뱅글 계단을 따라 올라야 했다. 온통 담쟁이가 휘감고 있던 그길을 오르는데,

무슨 '천공의 성 라퓨타'를 탐험하는 거 같기도 하고,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둘러보는 거 같기도 하고.

옥상 정원에 오르면 바로 눈에 띄는 게 바로 '천공의 성 라퓨타'를 지키던 로봇 병사의 모형. 이 녀석이 큰 팔과

다리를 흐느적대며 금세라도 새둥지를 품어주고 아이들의 머리를 친근하고 섬세하게 쓰다듬어줄 것만 같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그러면서도 주위에 대한 사려깊음을 잊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듯 그의 고개가 사뭇

수그러져 있어서 그 큰 덩치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옥상 정원에서 내려다본 지브리 스튜디오 입구. 저기 아까 가슴 두근거리며 줄서 기다리던 그 천막이 보인다.

그리고 한층한층 눈을 뗄 수 없이, 그야말로 온 벽면 전체를 핥듯이 꼼꼼하게 살필 수 밖에 없었던, 여기 그냥

죽치고 자리깔고 살고 싶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건물. 사방이 온통 초록빛 식물로 가득하다. 이런 곳이라면

지브리가 만들어온 그 온갖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쉼없이 졸졸대며 쏟아져도 이상할 게 없겠다.

하늘 높이 펄럭이는 지브리의 깃발. 하야오와 지브리, 그들의 작품에는 '반딧불의 묘' 정도만 제외하면 국적이

불분명한, 그리고 시대도 불분명한 시공간이 배경이 된다. 갈색머리와 검은머리가 공존하는, 그리고 기계문명과

녹색의 '원시문명'이 공존하는 세상. 지브리 스튜디오의 그 중세 성을 본딴 듯한 깃발이나 온통 녹색으로 휘감겨

있지만 내부에는 나름 기기묘묘한 것들이 숨겨져 있는 것들 역시 그런 것들의 반영일까.

공중 정원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진 않다. 로봇 병사를 지나 몇 걸음 걷다 보면 나타나는 조그마한 오솔길,

그길 끝에는 '천공의 성 라퓨타'에서 등장했던 비행석 실물 사이즈의 모형이 나타난다.

만화로 먼저 나타나고 그걸 현실세계에서 실물로 다시 재현한다. 그리고 그렇게 실물로 눈앞에 나타난 비행석의

모형을 보고 나면, 이 세상 어디엔가 천공의 성 라퓨타가 거대한 나무를 의지한 채 둥둥 떠있을 것만 같다.

그 밖의 다른 캐릭터, 다른 공간들 역시 어디엔가 숨어 있을 뿐, 미처 발견치 못하거나 잃어버린 건지도 모른다.

공중 정원에서만 사진 촬영이 가능하다고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건물 내에서만 불가능하다. 공중정원으로

오르는 테라스에 놓인 이런 신기한 벤치라거나, 다른 것들은 찍을 수 있다는 이야기. 이건 그나저나, 다리가

달라붙어 있는 생선이라고 해야 하나, 생선처럼 생긴 강아지라고 해야 하나, 혹은 프로펠러 꼬리가 붙어 있는

4족보행 탈 것이라고 해야 하나. 언젠가 지브리의 만화에서 등장할 기회를 노리고 있는 연예지망생인지도.

지브리 스튜디오의 입장권, 입장권으로 기능하기도 하지만 지하1층에 있는 조그마한 영화관의 영화표로

쓰이기도 한다. 여기에서만 볼 수 있다는 지브리의 단편 네 편을 번갈아가며 상영한다는데, 한 20분간의

그 짧은 영화를 보고 또다시 하야오를 우러러보게 되고 말았다. 아 그의 상상력이란. 상상력과 통찰력이란.

그 아름다움이란.

지하 1층에 있는 조그마한 앞마당에 있던 빨간 지붕을 가진 낡은 펌프. 잔뜩 우그러들은 채 정감가득한

물잔이 두 개 놓여 있는 게 너무 귀여웠다. 펌프도, 끽끽 작지만 분명하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조금

펌프질을 하면 물이 진짜로 쏟아져 나온다.

지브리 스튜디오 건물 외벽에서 발견한 조그마한 창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그녀를 도왔던 검둥이

요정들이 바글바글 창문밖을 내다보겠다고 아우성 중이다.

풍경이 매달려 있고, 땔감으로 쓰려는 듯 한 구석에 차곡차곡 쟁여둔 나뭇가지들, 누군가 저 커다란 나무등걸에

땔감용 나무를 대고 도끼질을 신나게 해댈 것만 같다.

끝까지 감탄하게 만드는 지브리. 아, 지브리와 하야오 정말이지 당신들 최고. 마당 가운데의 하수구 뚜껑마저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챙겨주다니 당신들은 정말.

정말, 돌아나오기 싫었다. 이번 도쿄 여행은 사실 지브리 스튜디오를 가고 싶다는 오랜 소원에서 시작되었더랬다.

기념품샵을 이잡듯 뒤지며 지브리 스튜디오에서만 살 수 있을 법한 걸 골랐다. 그의 제작실 벽면을 빼곡하게

장식하던 원화들 복제본이 있으면 아무리 비싸도 한 점쯤 사가겠다 맘을 굳게 먹었는데, 정작 그런 원화를

활용한 엽서나 그림 따위는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 그렇지만 한국에선 그다지 찾아볼 수 없는 붉은 돼지 관련

아이템들이 좀 보여서 그걸로 얼추 만족하다. 하야오의 작품 중 내가 손꼽는 작품 중 하나, 붉은 돼지.

돼지는 국가나 전쟁 따위 인간의 일에는 관심없어, 라는 붉은 돼지의 시크하면서도 단단한 한 마디.

그리고 지브리 입장권과 마찬가지로 필름을 일부 잘라내어 만들어낸 책갈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몇 컷이

담겨 있었다. 대충 여섯 컷쯤 들어가있는데 이건 뭐 거의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아 첫 씬과 마지막 씬의 모습이

뭐가 다른지 모를 정도. 그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모션을 구현한단 얘기겠지 싶다.

마지막으로 산 건 지브리 스튜디오 옥상정원을 지키고 있던 로봇 병사의 모습, 미니어처 형태로 명함 따위를

꽂도록 만들어둔 주석 장식품. 사무실에서 날 지켜주셈, 병사님.ㅋ

돌아나오려는데 지브리 스튜디오 앞의 안내원이 머무는 조그마한 안내데스크에 놓인 장식이 눈길을 끈다.

붉은 돼지같기도 한 모양에, 입에서 모기향을 담배연기처럼 울컥울컥 뱉어내고 있던 모습.

돌아나서기가 어찌나 아쉽던지,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공중 정원으로 올라서는 우주선 모양 동글뱅이

계단 위에서 나부끼는 깃발이 보였고, 온통 짙푸른 녹음으로 덮인 고풍스런 건물이 보였고, 그리고

그 안을 가득 채운 하야오와 지브리의 꿈같은 이야기들이 보이는 듯 했다. 말하자면 이 건물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지브리 스튜디오가 새로운 세계와 인물들을 창조해내는 마법의 솥 같은 존재랄까. 그런 경외감.
 
일단은, 당분간 안녕, 토토로. 지브리 스튜디오를 떠나는 길을 배웅해주는 토토로의 뚱하지만 믿음직한 표정.

저만한 사이즈의 토토로라면 눕혀두고 그 배 위에서 잠들어도 될 거 같은데 정말.

다들 마찬가지 심정이었던 게다. 좀처럼 사람 없는 순간을 포착하기 힘들 만큼, 다른 관람객들도 이곳을

떠나기 아쉬워하며 어떻게든 토토로와 사진이라도 한 장 남기려 애쓰고 있었다.





지브리미술관 구조를 소개하는 브로슈어, 그치만 이것만 봐서는 통..뭐가 뭔지 한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게다가

무려 한국어를 포함한 다섯개 언어, 일본어까지 합치면 여섯개 언어로 소개가 되어있음에도 그다지 쓸데있는

정보는 안 담겨 있는 거 같다. 명색이 미술관인데, 더구나 지브리의 특성을 살려 만화로 표현해놓은 지도인데.

지도는 보고 나면 여기가 어디고 어디로 가야할지는 최소한 알아야 할 텐데. 어떻게 이럴 수가.

브로슈어 뒷면에 적혀 있는 문구 하나, 이 모든 의혹을 해소하는 강력한 단서가 되어 주었다. '미아가 됩시다,

다 함께!!'라는 문구다. 영어로는 'Let's lose our way, toghether'라나. 이들은 지브리 미술관에 들어온 사람들을

모두 길잃고 홀리게 만들어 기념품점을 싹싹 긁어가게 만들고, 지브리홀릭으로 만들 생각인 거다.


더구나 미술관 내 사진촬영, 비디오촬영은 모두 금지라니. 이러니 지브리에 두고 온 내 금쪽같은 추억들이

더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풍화되는 거다.

지브리의 입장권 두 장. 이걸 갖고 미술관 지하 1층으로 가면 오로지 이 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지브리의

단편 만화영화를 볼 수 있다. 약 15분에서 20분 가까이 되는 작품을 매시간 세 타임씩 틀고 있었다.


위의 입장권은 '붉은돼지'의 한 장면, 밑의 입장권은 '포뇨'의 한 장면, 필름을 이렇게 몇 컷씩 잘라내어 다시

입장권으로 재생한다는 발상도 참 감탄스럽다. 이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기념품.

지브리 스튜디오 입장권을 사전 예매하고 현지에서 받기로 했는데, 한국에서 미리 예약할 수 있는 곳은 대한여행사

뿐이라고 많은 블로거분들이 그렇게 알려주셨기로 나 역시.




지금 현재 네이트온 대화명은 "아쎄이 토, 유쎄이 꾜~ 토꾜로 토끼기 이틀전".

미야자기 하야오의 지브리스튜디오가 주요 목적 중의 하나라, 며칠에 걸쳐 그의 작품들을 다시 보는 중이다.

비교적 최근에 보았던 고양이의 보은이라거나 마녀배달부 키키, 월령공주, 반딧불의 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은 일단 뒤로 미루고 이웃집 토토로,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미래소년 코난, 붉은 돼지 정도를 다시 보았다.


고양이랑 개가 엉겨붙었다 떨어졌다 하며 앙칼지게 싸워대듯 종일 빗방울이 으르렁대던 토요일, 한강고수부지에

차를 대고 회사서 들고 온 놋북을 단단히 세팅한 뒤 캔맥주와 스낵을 사들고는 '붉은 돼지'를 틀었다. 볼륨은

최대한으로.


빗방울이 온 차체를 난타하듯 두들겨대건 말건,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애국공채를 팔건 전쟁을 하건 말건

붉은 돼지는 전쟁을 거부하고 인간의 야만을 거부하며 하늘을 날고 있었다.


멋진 극장, 멋진 영화. 게다가 빗방울이 뒤엉키는 멋진 날씨.


< 나만의 '자동차극장' Recipe >

1. 가까운 한강시민공원이나 한적한 장소에 차를 단단히 주차한다. 
  : 사람이 많이 지나다녀 번거롭지 않을 만큼의 한적함, 그렇다고 깡패에게 삥 뜯기지 않을 정도의 안전함,
    게다가 갑작스레 물이 불어난다거나 하는 자연재해로부터의 안전함이 중요.

2. 노트북(혹은 넷북)을 자동차 전면에 고정시킨다.
  : 자동차 대시보드 아래춤에 으레 있는 컵홀더를 잡아당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적당한 받침대를 찾아 고정.

3. 스낵은 필수, 캔맥주는 원칙적 불가(예외적 옵션).
  : 영화관에서 팝콘이나 나쵸 씹는 소리가 주변 사람들에 거슬릴까봐 녹여먹었던 기억이 있다면 여기선
    걱정없이 과자를 씹을 것. 캔맥주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나, 영화가 두시간짜리 이상이고 영화본 후
    한참 지난 후에나 운전대를 잡을 예정이라면 예외적으로 옵션.

4., 자세는 생각대로.
   : 의자를 최대한 뒤로 밀고 시트의 각도를 자유로이 조정, 궁극의 자세를 찾아나서는 건 본인의 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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