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에 여행을 다녀오시고 피지 맥주를 잔뜩 사오신 어머니 덕분에, 가보지도 않은 동네의 맥주를 맛보게 되었다.

 

무려 피지 골드맥주, FIJI GOLD BEER. 이런저런 세계맥주를 마셔보긴 했지만 피지산 맥주는 처음인 거 같다.

 

 

국내에서 파는 데가 있으려나 싶을 정도로 레어한 아이템이니 기억해두려면 역시 사진사진. 황금맥주라 역시 금빛이 번쩍번쩍.

 

향도 강하고 고소하고 달달한 맛도 강한 것이 꽤나 술술 들어가는 맥주다. 병과 캔이 살짝 맛이 다른 거 같긴 한데,

 

전반적으로 그렇게 탄산이 강하진 않으면서도 시원하고 향긋한 목넘김이 좋다고 해야 할까.

 

맥주만 몇 모금 홀짝이며 캔 하나쯤 비우고 나서야 생각났다. 스페인에 다녀온 동생이 사온 하몽. 그 중에서도

 

도토리를 먹여 키운 암퇘지를 직접 손으로 포를 떠서 만들었다는 최고급 하몽이 하나 냉장고에서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 

 

 

맛있게 먹으려면 먹기 전 삼십분 정도 전에 미리 개봉해두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르기 위해 맥주를 다시 한 캔 더 홀짝.

 

원래 하몽은 메론을 썰어서 같이 먹는 게 정석이긴 하지만, 여태 먹었던 것 중에 가장 맛있는 거 같긴 하다.

 

기름기도 적당하고, 쫀득이는 살의 식감도 훌륭하고, 게다가 그렇게 짜거나 질기지 않고 딱이다.

 

그렇게 캔을 몇 개 비우고, 병을 몇 개 비우고. 그제서야 병 윗도리에 돋을새김된 글자들이 눈에 밟힌다.

 

 

피지에 놀러가지 않는 한 언제 또 피지의 황금맥주를 먹어볼 수 있으려나. 스페인에 놀러가지 않는 한

 

언제 또 저런고가의 하몽-85그램들이 저거 하나에 삼만원 가까이 한다는-을 맛볼 수 있으려나.

 

 

그래도 한 번이라도 아쉬움없이 질펀하게 먹고 마실 수 있었으니 그쯤이면 만족할 만한지도 모르겟다.

 

 

 

 

 

 


'회사 다니기 싫은 병'에 걸렸습니다. 합병증으로 쉼없는 하품, 무기력, 불면증을 동반하는

이 병에 걸리고 나니 점심 먹고 나면 퇴근하고 싶고, 출근하면 퇴근하고 싶고 그러네요.

아래의 '의학 정보'를 참고하셔서 나름의 치료법을 말씀해주신 여섯 분께 티스토리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기본정보

'회사 다니기 싫은 병'은 스트레스의 상승으로 인해 체력과 의욕이 저하되거나 심박수의 불규칙한

격증이나 격감으로 인해 혈액 공급에 장애가 생겨 노동윤리 및 노동의욕에 이상을 초래하는 질환이다.

노동윤리는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자'거나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먹으라'는

류의 속담이나 '개미와 베짱이', '선녀와 나뭇꾼' 따위의 옛이야기를 통해 암암리에 전승, 체득되어

온 정신상태이므로 여기에 장애가 생기면 늦잠 및 게으름, 땡땡이 욕구가 증가하기 시작하고,

말기에는 퇴사하게 된다.



증상

'회사 다니기 싫은 병'을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하며, 크게 급성과 만성으로 나누어 증상을 설명할

수 있다. 급성 회사 다니기 싫은 병은 전체 유병률의 약 10% 정도를 차지하며, 스트레스지수가

급속도로 높아지면서 사표작성법 실습, 이직준비를 빙자한 인터넷 쇼핑, 잔여휴가 몰아쓰기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만성 회사 다니기 싫은 병에서는 노동의욕 및 신체의 항스트레스 면역체계가

서서히 파괴되므로 특별한 자각 증상을 느끼지 못하다가, 말기에 이르러 뭔가 답답하다고 느끼며,

더 진행되면 삶에 대한 회의와 함께 퇴사에 이르게 된다.


원인

회사 다니기 싫은 병의 주요 발병원인은 스트레스 상승으로 인한 노동 의욕 및 윤리의 손상이다.

노동 의욕저하가 진행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무능력하고 잔인한 사람들과의 대면빈도 상승에 따른

호흡 곤란 및 격심한 동통을 통해 저하된다는 것과, 단순하고 무의미한 작업의 반복으로 인해

두뇌로의 혈류에 장애가 생겨 지력 감퇴 및 의욕저하가 진행된다는 두가지 기전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병을 일으키는 정확한 원인은 밝혀져 있지 않으며, 이에 대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진단

급성 회사 다니기 싫은 병은 통증이 심해 주로 알콜 및 육류 섭취를 위해 주점으로 내원하게 되는

반면, 만성의 경우 자각 증상이 나타나지 않으며, 증상이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말기이므로 치료가

어렵다.(민간요법으로는 '묻지마 세계여행'이 효과적이라 하여 3,40대들의 실천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하나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소수의 경우 만성질환으로 옮겨가며 만사에 의욕을 잃고 식욕이

부진해지는 등 건어물 남녀로의 퇴화를 감지하기도 하므로, 정기적인 자가진단 및 사표작성 연습을

통해 스트레스를 조기에 발견하여 치료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자가진단표 10문항.

1. 회사에선 졸리고 회사를 벗어나면 잠이 깨는가.

2. 아침에 눈뜨기가 힘들어서 지각 위기에 자주 처하는가.

3. 출근길에 사람들이 뭔 일있냐거나 피곤해 보인다고 말하는가.

4. 자리에 앉자마자 땅이 꺼지라며 한숨이 나오는가.

5. 점심을 먹고 나면 엄마가 보고 싶어지는가.

6. 오후로 갈수록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끼는가.

7.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멍때리는 횟수가 늘어나는가.

8.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따위 상념에 자주 사로잡히는가.

9. 맘에 안드는 윗사람에게 대들고 사표던지는 상상을 자주 하는가.

10. 어떻게든 밥벌이는 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강해지는가.





이거 어떻게 고쳐야 하나요..치료법을 알려주세요~*

나름의 치료법을 말씀해주신 분 중 가장 효과적인 여섯 분께 티스토리 초대장을 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부터 와인을 마실 때 꼭 코르크마개를 모으려 들었던 윤OO씨(29세, 서울). 덕분에 테이블

건너편 끄트머리에 놓인 코르크마개를 집으려다 물잔을 엎지르기도 하고 넥타이를 와인잔에

빠뜨리기도 하는 고난의 길을 걸어왔다고 술회한다. "와인색으로 넥타이를 염색한 건 차라리

양반이었죠, 처음 마셔보는 와인의 마개를 잔뜩 눈독들이고 있다가 재빨리 집었는데, 마침 동석했던

상무님이 본인과 같은 취미를 가졌다며 은근슬쩍 내놓으라고 압박하실 때는 어휴. 옆구리 찔리기

전에나 드렸음 갈비들이 아프지나 않을걸."

그 뿐만 아니다. 럭셔리하고 우아한 와인 바에서 멋진 손목 스냅을 보여주는 웨이터들이 '그깟

코르크마개'를 탐하는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아 보일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사실,

코르크마개가 별건가. 코르크나무 껍데기가 발바닥 각질처럼 두텁게 자라나면 적당한 사이즈로

잘라서 일정한 약품처리를 거쳐 와인병을 막아두는, 말그대로 '병뚜껑'인데 말이다.


햇살이 사방으로 번지는 것 같은 모양을 하고 깨물면 이가 시리거나 깨지는 콜라병 뚜껑,

얄포름하고 오묘한 질감을 차마 훼손치 못해 플라스틱 밑창을 물어뜯게 만들던 요쿠르트 뚜껑과

전적으로 같은 부류에 속하는 거다. 뚜껑, 혹은 따꿍이라고도 불리는 그런 것들.

그렇지만 이 녀석들은 뭔가 달랐다. "함께 있을 때 우리는 무서울 게 없었어요." 윤씨가 말했다.

세계 곳곳에서 넘어온 녀석들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서로 포도덩굴도 잡아당기고 이탤릭체의

글자들도 분지르고 투닥투닥 싸우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의 덩굴을 꼬아 만든 해먹 위에서

향긋한 코르크 내음을 풍기며 뽀골뽀골 재미지게 놀더라는 그의 백일몽.


그들의 가장 큰 위기는 알제리에서 왔던 코르크가 프랑스 아이들과만 놀겠다며 편을 가르려

들었을 때, 그리고 중국에서 넘어온 정체불명의 과실주뚜껑이 자기도 와인코르크라며 지독한

냄새를 풍겼을 때였다고 추억하는 윤씨의 눈가에 화이트와인인 듯 눈물이 맺혔다.

마지막으로 보내기 전 열맞춰 늘어세운 녀석들. 모아봐야 잡동사니, 코르크마개에 집착하는

것도 일종의 병. 습관 하나를 버렸고, 그들이 꼬물대던 공간엔 다소 텁텁해진 코르크 냄새만

남아버렸다. 굳이 더하자면 또하나, 코르크의 매끈하고 보드라운 촉감도.





얼마전 이야기한 것처럼 교통사고를 내고, 그 탓인지 이전부터 살짝 뻐근하던 허리가 무지근하게 아파왔다.

하루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어서 지난 게 좀체 나아질 기미는 커녕 점점 묵직한 통증이 밀려드는 듯 하여

저번주에 병원에 갔다. 허리가 아프니 정형외과가 있거나, 척추전문 병원 쪽을 찾아야겠지 싶었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을 검색해서 전화 예약을 하고 진단을 받으러 갔다.


그전부터 좋지는 않던 허리가 충격이 있은 후 조금씩 더 아파오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아픈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아픈지 적절한 단어를 찾아 묘사하고 미리 찍은 엑스레이를 멍하니 쳐다 보며 의사의 판결을 기다렸다.

의사는 별 이야기가 없다. 그냥 내가 일상적인 언어로 묘사한 통증과 아픈 부위에 대해 '있어 보이는' 의학적인

단어를 알려주었다. 그건 '디스크' 같군요, 라고.


이제 병명은 알았으니 조금은 속이 시원하다. 아, 디스크구나. 근데 다시 답답해지는 건 의사선생님이 내려주는

처방이나 치료책이란 게 참 단순하달까, 무신경하달까. 일단 조금 지켜보고 정밀진단을 받던가 하자고 했다.

우선은 물리치료부터 일주일정도 받아보자고. 물리치료란 게 별거 아니다. 의사도 아닌 간호사가 묻는다, 어디

아프세요. '등'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그냥 등에 물리치료기 쑤셔넣어주고 한시간, 끝이다. 전기치료, 초음파

치료, 그리고 핫팩치료로 구분되긴 하지만...사실은 일상어로 보통 '찜질'이나 '안마' 정도로 번역될 것들이다.


그러고 보면 의사 참 쉽다. 어차피 아픈 사람이 알아서 자신이 아픈 게 어디쯤일 거야, 생각하고 종목을 정해

의사를 찾는다. 그러면 의사는 환자가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에 대해서 학술용어나 전문어로 통용되는 '병명'을

가르쳐준다. 예컨대, 걸을 때마다 발바닥에 통증이 있어서 왔어요, 이러면 '족저근막염(足底筋膜厭)'입니다.

풀자면 '발바닥아래근육에염증이있는병'입니다. 허리가 아파요, 이러면 '디스크'입니다. 요게 다다. 그렇지만

그 병명이란 것들이 굉장히 있어보이는 데다가, 실은 병명을 아는 것만으로 환자는 뭔가 커다란 진척이 있다고

느끼는 게 당연한 거기도 하다. 나만 이렇게 아픈 거 아닌가, 이건 치료법도 없고 병명도 모르는 건 아닌가 하는

모종의 불안감을 모든 환자들이란 가질 수 밖에 없을 테니. 그렇지만 사실 치료도 뭐, 적당한 처방과

필요하다면 일상의 '찜질'이나 '운동'이니를 좀더 전문화한 '물리치료', '운동요법' 등을 동원하면 참 쉽다.


좀 시니컬한 건가. 의사들의 진단과 처방이 나름 경험칙에 근거한 점쟁이들의 '연기'와 비슷하다고까지 말하는

건 조금이 아니라 너무 시니컬하게 나가는 거 같지만, 그래도 비슷한 구석이 상당히 있어 보인다. 의사들이

동원한다는 첨단 과학과 장비들, 그건 대부분의 소소한 환자들과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냥 말을 듣고 조금

진찰해보고, 엑스레이 정도 보편화된 장비를 동원하려나. 그 정도의 소스를 가지고 진단하고 처방하고, 그건

점쟁이들이 점보러 온 사람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거다.


굳이 점집을 찾은 사람들이 고민이 있으니까 가겠지. 수많은 병원 중 굳이 이 종목의 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그

관련된 질병이 있으니까 가겠지. 점집을 찾은 사람이 보여주는 외적 행색이나 외모, 분위기가 그 사람의 직장,

고민, 생활환경, 배경 등을 추리케하는 단서가 되겠지. 병원을 찾은 사람이 묘사하는 증상과 부위가 그냥

그 사람의 병명을 확정케 하는 단서가 되겠지. 처방은, 경험칙에 근거한 몇가지 일반론적인 이야기들, 그리고

의사들 역시 경험칙에 주로 근거한 몇가지 진단과 처방전.


뭐, 의사도 환자가 아픈 데가 어딘지 알아야 진료를 할 수 있다는 걸 부정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대단한 질병이

아니라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너무 많이 환자의 말에만 의존하는 건 아닌지, 장님 코끼리 더듬듯 그저 몇몇

간단한 것들로만 처방해버리는 건 아닌지 싶어서다. 좀더 적극적으로 아픈 부위를 탐색하고 증상을 발견해내는

자세가 필요한 건 아닐까. 넘 방만해 보여서다.



덧댐. 그래서, 그나저나, 내일 당장 큰 행사가 또(!) 있음에도 요새 날마다 한시간씩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이제 "그녀를 보는 순간 등줄기에 전기가 흐르는 듯 했다" 따위 묘사를 보면 생생히 그 감각을 기억할 수 있을

만큼 전기치료도 받고 있고, 초음파며 핫팩치료도 받고 있는데 왜 오히려 조금씩 더 나빠지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드는 건지 원. 행사 마치고 나면 정밀진단을 받아볼 생각이다. 요새 바쁜 이유, 그 와중에 지난 10월에

다녀온 두바이 사진들만 올리는 이유. 아프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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