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제일의 철쭉군락지라는 지리산자락 바래봉,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러 5월초 황금연휴에  남원 운봉읍의 민박집을

 

잡았더니 여기를 꼭 가보라고 추천해주신 거다. 부녀회장님이시기도 한 민박집 어머니의 말씀을 좇아 철쭉제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도 구경하고, 떡과 막걸리도 얼콰하니 얻어먹고.

 

시골 축제 분위기를 북돋우는 건 역시 하늘 높이 떠올라있는 애드벌룬과 만국기.

 

그리고 한마리를 통으로 굽고 있는 지리산 흑돼지 바베큐, 막걸리 안주로 더할나위 없었던. 덕분에 몇걸음 걷기도

 

전에 모든 걸 다 이루어냈다는 느낌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바래봉의 철쭉 군락지로 조금 올라가는 약간의 경사길에도 헥헥거리며 발걸음을 질질 끌고 말았던 것.

 

사실 철쭉이 그다지 이쁘다는 생각도 안 했었고, 무리지어 피어봐야 얼마나 볼만하랴 싶어서 별 기대가 없었는데,

 

어느 한 굽이를 지나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꽤나 장관이었다. 온통 진분홍빛의 울긋불긋한 철쭉, 철쭉.

 

 

이렇게 지천으로 흐드러진 철쭉은 그야말로 옴쭉달싹 못 할 만큼 빼곡하게 피어나서, 사람 하나 끼어 들어가

 

사진 찍을 틈새조차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은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내고 앞에서 어떻게든

 

포즈를 잡아보느라 애쓰는 중이었고.

 

 

 

 

사실 바래봉 정상까지 가는 등산로도 있고, 그 길을 따라 계속 철쭉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고는 했는데 일단

 

막걸리가 올라와 더이상 걸을 수가 없었고, 또 이제 막 개화가 시작된 터라 중턱까지만 피었지 위는 아직 멀었단

 

이야기를 듣고 지레 힘이 빠져서 그냥 크게 한바퀴 돌아보고 다시 내려오는 참이다.

 

 

그런데 여기, 생각보다 잘 꾸며놨다. 조경도 잘 해놨고 오밀조밀하니 걸어서 한바퀴 돌아볼 만하다.

 

 

 

그렇게 한참을 사방의 갈래길로 쏘다니며 여기저기 구경하다가 조금 취기가 진정되고 나서야 하산. 본격적으로

 

지리산 둘레길 2코스를 시작하는 것으로.

 

 

 

 

 전주 전동성당. 벌건 벽돌 그림자가 늘어뜨려진 성당 앞 공터에 사람들이 비켜나가길 바라던 기대는 가당치도 않았다.

 

 

 촘촘하게 햇살을 체쳐내던 하얀 창문틀. 황사가 누르께하던 중부지방과는 달리 이른 봄볕을 선물처럼 받던 그곳.

 

 

 한옥마을의 어느 까페. 야트막한 담장과 소담한 울타리 너머로 골목들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람들 사이에 부대끼다 조그마한 단층 까페의 폭신한 의자에 잠시 앉아 쉬어가는 봄볕 한 줌.

 

검푸른 바닷빛깔의 기와지붕이 넘실넘실, 하늘을 향해 검포도빛 치마 끄트머리를 쥐고 살포시 인사하는 것만 같다.

 

 

 시퍼런 기와물결 너머, 동해 바다 저멀리의 조그마한 섬처럼 아스라히 보이는 전동성당의 실루엣.

 

 

전주한옥마을에서 삼천동 막걸리골목까지 걷던 길, 지름길이라 지레 짐작한 채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던 산길을 겨우 빠져나온 순간.

 

 

 

강화도 외포선착장에서 카페리를 타고, 게으른 갈매기들이 부리에 물리는 새우깡만 씹는 모습을 보며 들어선 석모도.

 

눈썹바위 아래 부처조각과 소위 '기돗발'이 잘 받는 3대 관음도량으로 유명한 보문사를 오랜만에 찾았다.

 

보문사로 올라서는 제법 가파른 산길에서도 꿋꿋이 하늘과 땅 사이에 수직으로 버티고 선 나무에 하트 무늬가 새겨져있다.

 

한여름내 햇볕을 그득 받고 시퍼렇게 멍들어버린 덩굴손들이 커다란 바위를 꽁꽁 움켜쥐고 있는 듯.

 

수능이 머지 않았다. 3대 관음도량인데다 영험하다는 소문이 퍼진 절이다보니 기도하는 사람들이 많다.

 

 탑을 중심으로 둥글게 모여선 부처들, 혹은 부처의 뒤를 이어 깨달음을 얻은 보살(보디사트바)들의 색색깔 뒤통수.

 

 

눈썹바위로 가는 길에 수백개 돌계단을 오르고, 역시 수백개의 연등 옆을 지났던 거 같다.

 

그리고 눈썹바위 전망대에서의 석모도 그리고 그 너머의 전경. 바다 위로 불쑥불쑥 솟은 송전탑들.

 

 

보문사를 등지고 내려와 허기를 달래려 복분자 막걸리 한 동이와 함께 감자전을 주문했다.

 

 

 

 

* 정신나간 울릉도 2박3일 도보여행.

 

 

도동을 둘러보는 건 여태 울릉도의 깊고 짙은 자연 풍광을 벗하며 걸었던 길과는 워낙 다르고, 다소 힘든 길이었다.

 

항구에서 떠나고 들어오는 사람도 많고, 무려 삼사층이나 되는 고층건물들이 수두룩빽빽하게 꽂혀 있었으며,

 

차들도 엄청 많아서 그새 낯설어진 탓이다.

 

그런 사람과 건물과 자동차의 틈새에 이런 울릉 역사문화체험센터가 숨어있기도 하고, 잘 보이진 않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면 보이는 관광용 지도의 힘을 빌어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약수공원 안의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에 오를 참이었다.

 

 

슬슬 오르막길의 시동이 걸리고 있었고, 가는 길에 '호박막걸리'를 팔길래 울릉도 특산 아니겠는가 싶어 사려고 보니

 

2리터 들이 댓병뿐, 혼자 이걸 다 마실 수 있으려나 잠시 고민하다가 먹을 만큼만 먹고 버릴 생각으로 거금 만원을 질렀다.

 

 

오르면서 '뻥' 글씨가 크게 씌여진 가게를 보며 막걸리 한모금, 약수공원 앞을 지키는 독도대장군과 여장군을 보며

 

또 한모금, 생각보다 호박 맛이나 향이 진하진 않고 덩달아 알콜도수도 약한 편이지 싶어 물처럼 마시기 시작.

 

도량에 있는 관음보살 석상 위로 떠다니는 건 독도전망대를 향해 오르내리는 케이블카.

 

다소 과격하고 유치한 발상의 비석도 하나 보고. 독도를 일본이 자기네 땅이라고 한다고 우리도 똑같이 대마도를

 

우리 땅이라고 우기자는 건가. 문제는 그거다. 대마도니 간도니 만주니 이런 소모적인 땅따먹기 논쟁이 우리의

 

'역사강역'-한때 이만큼의 영향권을 가졌다는-을 고치는 수준이라면 좋다, 그치만 근대적 의미에서의 영토분쟁과

 

국토의 확장을 기도하는 차원이니까 문제. 임나 일본부설을 내세우며 조선을 병합한 일본 제국주의와 다를게 뭔지.

 

여하간, 그 앞에 잔디밭도 좋고 너른 돌판도 따끈하길래 잠시 앉아 또 한모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저만큼 줄었다.

 

 

약수터가 있어 약수공원이라 했던가, 약수터로 향하는 길목에 있던 잘생긴 돌계단은 그저 한번 눈도장만 찍고.

 

 

그 옆에서 케이블카를 타러 올라왔다. 편도 5분의 왕복 티켓이 어른 7500원.

 

 

 

5분이라고는 하지만 제법 지상과 멀리 떨어진 높이에서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어서 그렇게 짧게 느껴지진 않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쇠줄이 출렁거리며 살짝 스릴감을 맛보여주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굉장히 아늑했다.

 

불자동차처럼 새빨간 케이블카가 농담을 달리하는 온갖 초록빛을 배경으로 팝업되어 있는 모습.

 

 그리고 전망대. 울릉도의 울룩불룩한 구릉들 사이에서 배어나온 것처럼 형성된 도동리의 '번화가' 풍경이다.

 

 케이블카를 내려서 전망대까지 가려면 조금은 더 걸어야 한다. 나무데크로 잘 꾸며진 길을 따라 조금만.

 

 구릉줄기에서 굴러내리는듯한 깍둑썰기 뭉탱이들이 도동항에서 바다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배 한 척.

 

 

독도전망대의 다른 쪽 전망 포인트. 저기서는 맑은 날엔 독도가 보인다던데, 사람들이 그쪽으로 많이 가는 것 같아

 

일부러 이쪽으로 온 참이었다. 커다란 술병 옆에 차고 덜렁덜렁.

 

 

그러고 나니 제법 너른 전망대 위 공간이 온통 혼자만의 평상이 되어 버렸다. 가방도 던지고, 신발도 벗고,

 

술병과 종이컵도 일단은 바닥에 내려놓고 사면을 두루두루 둘러보기 시작.

 

 

온통 짙푸른 초록으로 성숙해가는 울릉도의 산하. 그 와중에 사방으로 뱅뱅 굽이치는 하얀 길들 중에는

 

어제그제 내가 걸었던 길도 있을 거고, 갈까 하다 말았던 샛길이나 갈랫길도 있을 테고.

 

삼일동안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울릉도 전체지도는 접힌 부분이 닳고 찢어지고 이제 온통 너덜너덜 걸레가 되어 버렸다.

 

핸드폰을 꺼내 노래를 틀어놓고 맨발로 슬쩍슬쩍 거닐며 피로를 풀어주며 홀짝대다보니 어느새 호박막걸리가 바닥을 보였다.

 

 

한 삼사십분 그러고 있었으려나.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탈탈 털어넣고 일어섰다. 사방의 시야가 탁 트인 이곳에서

 

굽어본 울릉도 동남쪽의 풍경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음직하다. 노래와, 막걸리의 흥취와 함께. 

 

 

 

다시 내려가는 길. 공식명칭으로는, 티켓에 따르자면, '독도전망삭도시설'인 케이블카는 수시로 운행되어서

 

딱히 사람이 차길 기다리거나 그럴 필요는 없어 좋았다. 어디든 대체로 한산한 편, 몰려다니는 관광객 타이밍만 피하면.

 

 

  

 그리고 인제, 사동항으로 걷기 시작. 바야흐로 울릉도에서 내처 걸었던 2박3일의 일정이 끝나가는 참이다.

 

 도동의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울릉터널을 지나고 흑비둘기 서식지를 지나.

 

 

 두둥, 공사가 한창인 사동항에 도착했다. 이제 일이년만 지나도 이 곳의 풍경은 확 바뀌어 있을 거다.

 

 

다섯시 반에 출항하는 배를 타려 줄을 선 사람들, 갑판으로 나가 바람을 쐴 수도 없는 답답한 배 안으로 일찍부터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으니 근처를 서성거리며 바람을 쐬다가, 울릉도를 좀더 바라보다가 거의 마지막에 탑승 완료.

 

묵호까지 세시간 반, 딱 그만큼 소요되어 주차했던 차를 찾으니 아홉시가 살짝 넘은 시각. 열심히 서울로 내달려 귀환하다.1

 

 

 

 

담양에 가서 놓치면 아쉬운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역시 대통밥과 떡갈비. 이제는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통밥이지만 의외로 처음 대통밥이 만들어진 건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문헌들과 전래되는 이야기에

기대어 대통밥을 처음 만들었다는 집을 찾아 대통밥+떡갈비 세트메뉴를 주문.

대통밥은 몇번이고 재활용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위생상으로는 물론이고 그 대나무의 효능이 제대로 밥에

묻어나기는 할까 싶은 의구심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여기서 그 의문에 어느정도 적극적으로 답을

해주고 있었다. 대나무의 하얀 속껍데기나 진액이 진짜배기인데, 그건 한두번만에 전부 빠져버리는 거라면서

애초 개발했을 때부터 이 집에선 재활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통밥에서 대나무 냄새도 좀더 진하게 났던 거 같다. 밥알도 고슬고슬하니 맛있었지만, 그보다도

함께 딸려나온 저 수많은 반찬들. 죽순회니 죽순무침이니 도토리묵이니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전부 맛있어서

결국 접시를 싹싹 비워내고 말았다. 전라도식으로 양념이 가득한 겉저리김치와 묵은김치도 남김없이 싹.

말갛지만 매콤하던 죽순 된장국도 정말 맘에 들었다. 커다란 죽순이 적잖이 들어있던 것도 좋았고.

그리고 떡갈비, 숯냄새가 감칠맛나게 배어있던 따끈하고 부드러운 고기가 살살 풀리는 게 아주 그만이었다는.

둘째날 늦은 아침식사 겸 점심으로 찾은 곳은, 슬로우시티로 공인받은 삼지천마을 어귀에 몰려 있던 국밥집들.

이것저것 이름만 들었던 암뽕순대라느니, 새끼보라느니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어 넘 좋았다.

암뽕순대. 암뽕이란 건 보통 돼지의 내장으로 만드는 순대와는 달리 암퇘지의 내장을 사용하여, 선지를 굳혀서

순대 안에 속으로 넣는다는 것도 다른 점이라고 한다. 게다가 26가지에 이르는 재료를 넣어 만드는 전라도식

수제 순대라고 하는데, 가게 주인 아줌마가 구수한 전라도를 섞어 말씀해주신 거라 정확히 들은 건지는 잘..

그치만 맛은 확실히 특별했다. 껍데기도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했고, 그리고 두툼한 치감도 좋았고.

그리고 새끼보국밥. 암퇘지의 애기집을 새끼보라고 한다는데, 첨에 이걸 주문하니까 주인아주머니가 살짝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먹는 사람이나 먹지 좀 비위거슬려 하는 사람도 있다나. 아무래도 애기집을 썰어서 국밥에 말아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좀 그런 거 같은데, 음..미안하지만 꽤나 맛있었다. 부위가 부위이니만치 부드럽고 쫀득하고

굉장히 야들야들. 약간 돼지 냄새가 다른 부위에 비해 강한 편인거 같긴 했지만, 원래 그런 냄새 거리끼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담양의 토속 막걸리, '대대포'를 두 병이나 마시기에 이르렀다. 벌꿀과 대잎 성분이 들어있다 했던가,

저 막걸리도 정말 이런저런 지방 막걸리를 마셔본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벌꿀 덕에 조금 달달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 술술 넘어가는 느낌. 밥으로 먹으려던 순대와 국밥이 어느결에 훌륭한 안주가

되었고, 반주 삼아 마시려던 막걸리는 두 통을 가뿐히 비워버리고 말았다.





冬 夜
黃景仁(淸)

텅 빈 집 밤 되니 더욱 썰렁하여

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보려다가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어내기 어려워

그대로 달빛과 어우러지게 남겨두었네.


달빛 밝고 공기차가운 겨울날만큼 술맛 나는 때도 없는 것 같다. 조금만 숨을 내불어도

짙고 풍성하게 뱉어지는 입김 덕분인지 부자가 된 듯한 풍요로운 마음이 되는 데다가,

시크한 듯 하면서도 왠지 정겨운 달이 내려봐준다는 기분에 살짝 달뜨기도 하는 거다.


지금부터는 밤하늘 말고, 술자리에서 달이 뜨는 이야기.

손바닥만한 사이즈, 네모진 박스 두개를 배달받았다. 제법 고급스러워보이는 검정색 종이로

포장된 내용물은 터진 옆구리로 언뜻언뜻 비치긴 하되 껌껌해서 잘 안 보이고, 그보다 눈에

띄는 건 전면에 뜬 달 그림. 초승달에서부터 점점 배가 부르더니 보름달이 되는 그런 달.

'달 아래 벗삼아 완월장취하련다'라는 문구가 박혀있는 옆구리를 톡 열었더니 까맣게

생긴 술잔이 톡 튀어나온다. 완월장취라..달과 놀며 오래도록 취하겠다는 의미일 텐데,

참 멋스런 표현이지 싶다.

그런데 잔 모양이 살짝 이상하다. 보통 잔과 다르게 잔 내부가 슬쩍 경사가 져서는 불룩

튀어나온 느낌이랄까. 슬슬 미끄러져 내려가던 경사가 툭 꺽여서 잔 바닥까지 급전직하하는

그림인데, 이걸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이건 아마도 술을 덜 마시게 하려는 배려일까 싶더라는.

아무래도 그냥 속이 완전히 비어있는 술잔에 비해서 절반이나 들어가려나 싶다.

일단 막걸리를 가득 채웠다. 채우고 나니 여느 잔이나 다를 바 없지만 아무래도 포장지

앞면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달의 모습을 본 지라 새삼스럽다. 이건 보름달, 보름달 두 개가

두 개의 잔에서 떠오른 셈이다.

이런 식의 대작은 가끔 해보는 일, 마치 내 오른손과 왼손으로 가위바위보를 하듯 술잔

두 개를 따라두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번갈아 마시는 거다. 오른손군이 술잔을 쥐어 슬쩍

잔을 부딪혀 건배를 하더니 조금 잔을 비웠다. 어라, 달이 조금 홀쭉해졌다.

아직 반달이라기엔 뭐하지만 보름달이라기에도 많이 부족해진, 종종 하늘에서 봤던 달.

오른손군의 선방에 뒤이어 왼손양도 조금 입술을 축였다. 역시 조금 이지러진 보름달,

조금 더 배가 불러야 이제 보름달이 되고 소원을 빌겠구나, 싶은 타이밍에 보이는 달이다.

오른손군은 좀더 과격하게 마시더니 반달이 되어버렸다. 오른쪽이 둥근 반달, 상현달.

마시다 보니 술이 아니라 달을 마시고 있는 느낌이랄까. 조금씩 술의 수위가 내려가면서

검은 잔에 완연히 떠오르는 건 조금씩 홀쭉해지고 있는 달의 모습이다. 왼손양은 이제

그믐달만 남긴 상태, 오른손군은 술잔 위치가 바뀌어서 왼쪽이 둥근 하현달이 조금

이지러졌다.

두 잔 모두 비운 상태, 라지만 조금 술이 밑에 남아서는 스마일~ 하고 있다. 저렇게 살풋

흔적만 남은 달의 모습은 차라리 누군가의 웃는 입술이나 웃는 고리눈을 생각나게 한다.

까만 잔에 하얀 빛깔을 띄는 막걸리나 탁주 계열이 담겨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운치있는

그림이 나와서 술맛이 절로 난다지만, 까만 잔에 투명한 술이 담긴다고 해서 그 운치가

덜할 것 같지도 않다. 조금 은근하게 숨어있는 달의 모양을 그려보며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술먹는 재미가 한결 더 쏠쏠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 이 잔을 들고 어디론가 나가서

술동무를 찾을 때다.





종로의 피맛골, 왠지 추석 연휴에는 한번씩 가게 되는 곳이다. 오세훈 시장이 디자인 서울 어쩌구하면서 금세라도

다 밀어버릴 듯 하더니 아직도 '피맛골 고갈비집'은 건재하다. 워낙 추억이 촘촘이 서린 곳이라 참 반가운 곳.

몇 년전이더라, 불이 나는 바람에 가게 절반이 날아가고 그때부터 그냥 이렇게 공터로 놀리던 곳, 그 우켠에 선

건물 역시 완전완전 허름해서 무슨 폐가같기도 하고 쓰러지기 직전같기도 하지만 추석에도 쉼없이 맛있는

고갈비와 막거리를 팔고 있었다. 다행이었다.

아직 시간이 조금 일렀는지라, 가게 안에는 혼자 와서 막걸리를 드시고 계신 머리 희끗한 아저씨 한 분을 빼고는

텅텅 비어 있었다. 모양새도 색깔도, 짝도 제대로 맞지 않는 삐뚤빼뚤 제각기 놓인 의자들.

메뉴판이 있긴 하다. 얼마나 오래전에 붙여놓은 건지 반질반질 윤기가 흐르는 베니어판 벽면과 비슷한 색깔로

누렇게 변해버렸지만, 사실 여기서 다른 건 맛본 적도 없다. 앉으면 그냥 갖다주는 막걸리 한 사발과 고갈비.

메뉴판에도 벽면에도 온통 낙서투성이다. 낙서라기엔 꽤나 그럴듯한 시간과 사건들을 이겨낸 것들.

나왔다. 양은으로 만들어진 양푼에 담긴 막걸리랑 고갈비 한 마리. 여기 막걸리는 뭔지 모르겠는데 탁하면서도

단 맛이 강한 것이 특징이랄까. 살짝 짭조름하면서도 담백한 고갈비랑 같이 먹으면 딱 좋다.

조명은 늘 그렇듯 어두침침하다. 드문드문 박힌 채 테이블 하나만큼의 공간을 겨우 밝히는 전구, 그리고 창밖에서

슬몃슬몃 넘쳐흐른 햇살이 조명의 전부. 아, 냉장고에서 흘러나오는 푸르스름한 불빛도 있구나.

누군가 창문에 깃발을 붙여두었다. 지난 지방선거때 붙였두었던 깃발인 듯. 창밖으로 보이는 리어카들이 왠지

살풍경하다. 저게 혹시 서울시 표준형 리어카인가, 반듯반듯 주차된 그들 앞에서 현란한 녹색 거죽이 입혀진

리어카 한대가 반갑다.

어떻게 보면 토굴같은 느낌도 들고, 나지막한 천장과 울퉁불퉁 고르지 않은 바닥 높이 때문에 행동거지 하나가

조심스러워지는 게 기분이 색다르다. 올 때마다, 여긴 뭔가 정겨움이 그득그득.

이런 화장실 표지판도 넘 좋다. 촌스런 초록색의 왠지 촌스런 남자 여자의 그림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단호하고

선명했을 화살표 앞뒤꼭지에 누군가 짖궂게 장난쳐둔 모양새들까지, 웃음지을 수 밖에 없는 그림들.

온통 낙서투성이인 벽면, 여기도 뭔가 신품의 냄새를 가득 풍기던 그런 때가 있었을까.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어디서 누구 한명 담배라도 피워올리면 금세 가게 전체에 티가 나는 그런 곳이지만 나름 환기는 잘 되어서 다행,

안 그랬음 무슨 수산시장 같은 냄새가 늘 배겨있었을지도.

이런 낙서들, 추억과 즐거움을 증거하는 흔적들. 이런 게 언젠가 무지하고 둔탁한 포클레인의 무쇠 이빨에

산산이 부서져나가리라고 생각하면 가슴이 싸하다. 그야말로 수십년에 걸친, 수많은 사람들의 집단 작품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 벽면을 통째로 어디에든 전시한다고 해도 훌륭할 텐데. 사람들은 자신이 이 공간에서

함께 했던 사람, 나눴던 이야기, 서려있는 추억을 기억하며 자신이 남겼던 낙서 한 줄을 곰곰히 찾아보지 않을까.

무엇보다 좋은 거야 그냥 이 공간이 계속 남아있는 거지만.

기둥이라고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화이트로, 검정펜으로, 누군가의 기록 위에 또 누군가가 기록을 덧씌우고

차곡차곡 쟁여간다. 심지어는 전등 스위치까지. 모든 곳에 공평하게 내려앉는 눈송이처럼, 허름한 가게 안

모든 장소에 아낌없이 내려앉았다.

아니, 눈송이는 천장에까지 채워지진 않는다. 낡고 깨져서 여기저기 덧대인 천장 쪼가리에도 어김없이 새겨지는

누군가의 메시지들.

막걸리 한 동이를 기분좋게 비우고, 고등어를 남김없이 해체하고 나서 돌아나오는 길. 들어설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웬 달마도가 입구 앞에 그려져있었다. 저건 정말, 작정하고 그렸겠구나 싶다. 기록을 남기고 전한다는

생각보다는 그저 한순간의 장난이나 술기운으로 끼적인 것들과는 조금 다른 느낌.

이 집 이름이 와사등이었나 보다. 몰랐다. 벌써 수십번은 왔을 텐데, 오는 사람들끼리는 그저 '피맛골 고갈비집',

이렇게만 말하면 통했으니까. 가게 주인 할머니한테 물었다. 여긴 안 없어지죠? 할머니가 그랬다. 여긴 절대

안 없어져요. 계속 있을 거야.


부디 계속 남아있었으면. 맛있는 고갈비도, 누군가의 메시지들도. 그래서 내 추억도.





@ 강화도


#1.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주사를 어제 맞았다. 치사율이 무려 오백만분의 일이라던가. 의사가 말하길 그렇게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그래도 가기로 한 거 안 갈거 아니니까 맞으셔야죠, 그랬다. 실은 이달 말께 가기로 했던
 
아프리카 출장이 무기 연기되는 바람에 딱히 오백만분의 일이라는 운세를 시험해볼 필요는 없었지만 그래도

십년이나 효과가 지속된다니, 이김에 (꽁짜로) 맞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싶었다.


삼일정도 금주를 하라 했고, 며칠 몸살기운이 있거나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다 했는데 딱히 모르겠다. 아직

살아있는 거 보면, 오백만분의 일의 확률은 날 비켜간 듯. 그 정도면 높지도 낮지도 않은 확률이었는데.



#2. 그러고 보니 막걸리를 마시면서 포스팅중. 객관적으로야 삼일이 채 안 지났지만, 이미 내 맘속으로는

한 삼백일쯤 지난 듯 하니 패스.



#3. 5월말부터 월, 수, 금, 퇴근 후 일곱시부터 열시까지 교육을 받고 있다. 이제 다음주말에 시험만 보면

끝나는데 이걸 내가 왜 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또 어쨌든 꾸역꾸역 출석하고 중간셤도 나름 잘 보고 하는 걸

보면 어쩔 수 없는 '성실함'이 빛을 발하는 거 같기도 하고.


그냥, 회사를 다니면서 목표를 상실한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조금씩 단기 목표를 세워가며 사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어영부영한 맘으로 시작했던 코스인데 끝이 보여서 다행이다. 내일 열두시부터 여섯시까지

여섯시간동안이나 수업 겸 평가를 들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깝깝하긴 하지만서도.


#4. 종일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아침부터 심각하게 찌푸렸던 하늘에서 물방울이 톡톡 돋아나는 것부터 보았던

터라, 내내 기분이 좀 처져 있었다. 게다가 다음주엔 무슨 행사가 그리도 많은지, 손가락은 열 개인데 키보드

자판은 무려 백네개나 되어서 힘겨웠던 하루였던 거다.


주말에 일박이일로 여행이나 갈까 했는데. 아쉽게 되고 말았다.



#5. 아...막걸리 한잔에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려온다. 오백만분지일의 가능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건가.

국립의료원에서 황열병 예방주사를 신청한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서 놀랐는데, 이미 내 앞으로 사백구십구만

구천구백구십구명의 사람이 무사히 주사를 맞고 돌아갔던 건지도 모르겠다.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완전히 망가지면서

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

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

나에게 왔던 사람들,

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

모두 떠났다


...(뼈아픈 후회, 황지우 詩)



w/ '프리미엄 막걸리' 우리쌀 청정수 솔바람. 딱히 특별한 맛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탁주.





이전에 찍어두었던 사진들, 지금은 이 공간이 싹 사라져버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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