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8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은행나무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다. 내가 뭔가 길을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진 건 아닐까.

지금 살고 있는 게 제대로 사는 거 맞는 건가. 남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왜 아직도 이런 걸까. 왜 나만.

남들보다 뒤쳐지는 건 아닐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너무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건 아닐까. 뻔한 삶이 되는 건 아닌가.

흔히들 하는 말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혼란감에 젖어들면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일종의 발작과도 같다. 아무 문제없는 듯이 평온하게 혹은 무탈하게 지나던 일상에 '불안'이라는 돌멩이가 하나

던져지고 나면 그 파장은 삽시간에 전신을 훑고 오르내리며 점점 큰 울림을 일으킨다. 강변 테크노마트를 흔들었다던

공진현상의 생체적 발현인지도 모른다. 앙상하게 헐벗은 겨울나무가 문득 불어온 칼바람을 온몸으로 버티며 그저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듯, 그렇게 불안감과 뒤이은 자학, 자괴감, 패닉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불안의 대부분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온다. 알랭 드 보통은 그걸 '지위'에 대한 불안이라 말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피고, 남들이 어떤 가치를 좇아 달리는지 살피고, 남들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

살피면서, 그들을 따라 어깨 나란히 달리며 같은 것을 좇고 심지어 보다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너무도 당연해서 다들

의식조차 않고 '평범한', '주류적인' 길을 따라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다가, 문득 불안해지는 거다.


남들보다 더 갖고 더 사랑/존중받고 싶다, 라는 마음.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질리 없는 그 만족감,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는 무한한 쳇바퀴 위를 달리는 것 자체도 지치는 일인데, 자기보다 앞서는 남들이 보이는 것은

더더욱 힘빠지고 좌절스러운 일이 되고 만다. 이러다가 쳇바퀴 위에서 아예 탈락하고 낙오자, 패배자, 루저 낙인이

찍힌 채 게임 오버되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이 타들어간다. 더구나 실체도 불분명한 '능력'으로 열세우는 현대사회에선.


특히나 한국에서는 더더욱 심해지는 거 같다. 중고등학교부터 성적으로 줄세워지고, 직장에 들어가면 연봉으로

줄세워지며, 이후엔 결혼이니 사는 곳이니 집 따위로 다시 줄세워지는 끝없는 비교의 연속. 천박하고 단순한 잣대일 수도

있겠지만,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창궐한 이 시대에는 남들보다 앞서고 성공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선전되고 있는 거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불안에 불안이 더해진다.


알랭 드 보통이라고 뾰족한 답을 갖고 있진 않다. 다만 그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음습하고 악의적인 기반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는 성공과 실패, 명예와 수치의 기준선을 바꾸고 개념을 흔들어보려 한다. 그런 작업들은

사실 철학과 예술,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뿌리깊게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던 것들이기도 하다. 주류적인 가치관과

위계감각에 기대지 않고, 나름의 가치와 철학을 갖고 중심을 세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이미 걸었던 길을 따르는 과정.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이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고 부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능력주의' 아닐까. 한국의 경우 IMF 더욱 노골적으로 재물과 부유함만을 쫓아 달리는

물신주의는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한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 '스펙'이라 이야기되는, 연봉과 가격으로 말해지는 화폐숫자들.

그렇지만 다들 체감하듯 그 '능력'이란 건 대개의 경우 우연적이고 필연적이다. 운, 그리고 환경과 조건의 영향이다.


여기가 자기최면적인 자기계발서가 파고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이 멈춘 지점이기도 하다. 별 생각없이도

남들만 따라가면 그뿐인 편하고 자연스러운 길, 물론 그길을 가다보면 만성적으로 불만에 휩싸이고 주기적인 공황상태에

빠질 지언정 그로부터 벗어나 곁길을 트고,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우러난 행복을 찾는 길이란 건

말이야 쉽지, 참 난감하고 막막한 일이다. 종교적인 메시지나 자기최면을 거는 진통제 같은 메시지 말고, 뭐 없을까.


글쎄. 책장을 넘기다 드문드문 맘에 와닿는 구절들은 있었다.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던 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것들이 어느 시점엔가 나 혼자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불안감, 조바심에 대한 것들이었단 사실. 알고 보니 나 혼자만

갖고 있던 불안과 열패감이 아니라 모두에게 잠재해 있고 모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와 같이 그 쳇바퀴에서 내려서서 다른 길과 가치를 모색할 준비가 되었거나 모색하고 있다는 것.


어쨌거나, 불안과 싸우는 건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지워내고 걷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불안감의 정도를 통제하고 그에 잠식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 균형을 잡고 중심을 잡는 게 관건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와중에 필요한 건, 주어진 잣대와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를 발견하고 세워내려는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함께 일구어갈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계속해서 교류하는 것 아닐까.



*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몇몇 구절들.


"세상의 선은 역사적으로 거창하지 않은 행동들 덕분에 확장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나 더 나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반은 드러나지 않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덕이다."

"부자가 되는 사람이나 빈자가 되는 사람이나 딱히 범주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즉 소득과 명예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다.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해본다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힘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들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기다릴 때 우리는 우리의 지위를 조건으로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격분한다. 그들이 냉혹하게 유혹의 책략을 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유혹을 당할 만큼 허영심이 컸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폐허는 세속적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보답을 얻으려고 마음의 평화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한다. 낡은 돌들을 보다 보면 성취에 대한, 또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들, 우리를 기리는 기념비나 행렬이 없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돈과 실용적인 직업이 영혼을 부패시킬 수 있다는, 또는 스탕달의 말을 빌리자면 "부드러운 감각"을 향유하는 능력을 부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보헤미아의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월든'의 소로는 한 사람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재규정하려고 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관점이 미묘하게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반드시 인생의 게임에서 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그래서 보헤미안들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고르는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보헤미안들은 대도시에 살면서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피하고 대신 진정한 친구들과 매일 접촉할 수 있는 동네에 모여살았다."



공주박물관에 있는 무령왕, 백제 문화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백제인이지만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를 알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백제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되어버린 불꽃무늬 왕관은 오늘에도 그대로 남아 분명한

형체를 남기지만, 그 왕관 아래 얼굴과 분위기는 대부분 상상의 영역에 남겨진 것. 그저 문헌상 '온유하다'거나

'따뜻한 성품'이라거나 따위 몇 개 키워드로 상상해낸 분위기를 어슴푸레 더듬을 뿐이다.

그렇지만 방법이 없진 않다. 공주박물관에서 발견한 백제인의 생생한 얼굴, 그리고 전신의 형체. 어느 정도

중국풍이 가미된 걸 감안하더라도 꽤나 귀티나게 그려놓았다. 자신만만한 눈매, 당당한 태도의 잘 갖춰진

의관까지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가 풀풀.


기원후 500여년쯤 중국 남조 양나라 때 그려진 두루마리 그림 '양직공도'에 남아있던 그림으로, 중국 황제에게

사신으로 방문한 외국 사람들이 그려진 것을 감안하면 양나라(혹은 중국)과의 우호도나 관계에 따라 어느 정도

이미지가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었겠다고는 생각되지만, 아무리 중국인 입맛대로 그렸다고 해도 이건 꽤나

긍정적인 이미지.

또 다른 버전의 백제사신을 봐도 그렇다. 똘망똘망하고 귀티나게 생겼다. 의복 역시 허투루 대충

걸치고 다니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고 세련되고 당당한 느낌.

고구려 사신의 모습도 있었다. 나름 화려한 복색과 깃털관의 모양이 특징적이지만 무엇보다 털이 복슬복슬,

뭐랄까, 짐승남의 매력이 풀풀.

신라, 조금 다른 나라에 비해 앳된 듯한 동안의 사신이다. 백제 사신도 그랬지만 다른 주변국에 비해 뽀얀 피부,

붉은 입술, 그리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까지.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살짝 퇴폐적인 눈매까지.

왜국의 사신, 뭔가 헐겁게 걸친 옷가지들, 그리고 새까만 피부색, 그리고 바로 옆 고구려 사신과는 다른 느낌으로

북실거리는 털들. 그렇지만 색감이나 감각은 훌륭하다. 나름의 의관과 맞춘 의복에 팔다리귀에 꿴 고리들까지.

다른 버전으로는, 조금은 피부가 하얗게 나온다. 그리고 다른 나라들 사신에 비해 약간 키가 작게 나오는 게

'왜(倭)'라는 글자의 연원을 떠올리게 한다. 왜소하다, 작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다는 한자 倭.


조금 자극적으로 말하자면 '당대의 루저'였던 왜나라 왜국인들이였달까. 뭐 그떄가 요새처럼 키높이를 가지고

결정적인 평가를 내렸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선 나중에 '지 말 묘하게 바꿔가며 논점을 흐리네 어쩌네'하는 말 나오지 않는 정도로 이전 글,

'키작은 남자가 루저'라는 말도 못하게 하는 하이에나들. 을 요약해 본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발언에 집요하게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후속보도가 줄줄이 나오는 게 우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뻔뻔하거나 '독특하구나' 이러면 되지 그렇게 흥분할 일인지 모르겠다. '미수다'같은 오락물, 그리고 그런 오락물 출연자에. 물론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었겠지만, 어쨌든 자신의 이상형, 취향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했다고 봐줄 수는 없을까. 내 상식에 반하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이렇게 여유있게 넘어갈 줄 수는 없냐고 묻는 거다.

그녀의 발언으로 갑자기 '루저' 인증되는 것도 아니고(방송에 나와 한마디하면 그 말이 대번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여자들도 세뇌되듯 '키작으면 루저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도 아니다. 만약 이미 그런 분위기와 시각이 엄존한다면 이번 일로 그런 전반적인 기풍을 지적해야지 일 개인을 깐다고 해결될 문제는 더욱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속 기사를 업데이트하고 재생산하는 기자들, 그녀를 비방하고 인신공격하는 악플러들, 심지어는 개인정보와 방송 후 후속 움직임까지 포스팅하는 사람들까지, 굉장히 가학적이고 비겁한 반응들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생산적이지 않게 감정을 촉발하고 해소하는 대응들은 결국 인터넷 자원과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키는 좋은 수단으로 쓰일 수 있지 않을까."



댓글들이 꽤나 많이 달렸지만 미처 다 댓댓글을 달지 못하는 점은 양해해 주시면 좋겠고, '하이에나'와 '열폭'

이란 단어에 자극받은 분들이 적지 않은 거 같은데 매 문단마다 언론의 부추김, 선정적인 재생산을 지적했고

이른바 '하이에나' 중 맨 앞에 기자를 언급했던 것처럼 주로 그쪽에 맞춰진 비난이었다. 물론 일부 '한량과

불만증환자들'에 대한 비난인 것도 분명하다. 그냥 어이없네, 라는 댓글 하나 단 사람이 아니라 집요하게

적극적으로 물고 늘어지는 댓글러들 말이다.


댓글들을 보면서 좀 어지러웠다. 워낙 입장들도 다르고 온도차도 커서, 게다가 중간중간 글을 제대로 읽고서

다는 건지조차 알 수 없는 쌩뚱맞은 댓글과 욕으로 도배된 댓글까지. 때론 꽤 설득력있고 새롭게 생각해 볼

거리를 던져주신 댓글도 있었는데, 바로 답을 못했을 뿐이지 의도적으로 무시한 건 아니니 이해해 주시길.

어떤 글을 올린다 해도 모든 댓글다신 분들에 대한 적확한 댓댓글이 될 수는 없을 거고, 일부 댓글러들에

해당하는 댓댓글삼아 질문지를 올려본다. 혹은 이번 일로 생각해 볼만하지 않을까 싶은 문제들이기도 하니,

그냥 한번 같이 생각해 보면 좋겠다.

Q1. 오락물 프로그램의 '키 작은 남자는 루저' 발언 하나가 있었습니다. 이 발언으로 '키작은 남자'에 대한 없던 편견이 생겨날까요, 혹은 존재하던 편견이 강화될까요?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락 프로그램 출연자의 발언이 갖는 실질적 영향력, 파급력이라는 것을 너무 과장해서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Q1-1. 어쩌면 분노하는 몇몇 분들이 말씀하셨듯 애초 품고 있던 키에 대한 열등감이나 패배감을 건드린 게 문제인 건 아닌지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방송에 발언이 나갔으니만치 욕먹을 짓 자초한 거긴 하지만, 지금처럼 매체마다 실시간 보도하는 수준으로 커져버리는 게 '비례의 원칙'에 부합할까요.

Q1-2. 실제 대부분 누리꾼들의 '루저 놀이'는 그녀의 발언을 희화화하고 희롱하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냥 놀림감으로 소비되는 것일 뿐이겠지만, 그것 역시 너무 가혹하고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지는 않으시는지요?

Q2. 기분이 나쁘지 않을리야 없지만, 그 발언자를 집요하게 '단죄'하고 사과를 받아내는 것 말고 다른 식으로 풀 수는 없을까요? 취직시, 만남시 키와 같은 외모를 따지는 사회 분위기라는 게 단순히 말로 내뱉지 못하게만 아우성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말이죠.(단순히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여주는 댓글 하나 단 행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파장을 재생산하고 반응을 키우는 언론, 몰입해서 개인정보를 드러내고 생중계하는 몇몇 사람들, 기본적으로 입에 담지 못할말부터 하고 보는 악플러들 말입니다.)

Q3. 오락물 프로그램과 그 출연자는 시청률과 관심을 끌기 위한 자극성 떡밥을 쉼없이 던지는 게 상례입니다. 더구나 오락 프로그램 촬영시엔 우선 자유로이 발언하고 정교하고 의도적인 편집에 따라 적당한 수준에서 정돈되도록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갈수록 그런 '선'을 넘는 방송들이 빈발하고 있죠. 시청률 경쟁입니다. 오히려 문제는 방송사에 겨눠져야 하는 거 아닌지요?

Q기타. 한국에서 쓰이는 '루저'라는 단어가 미국 본토에서 쓰이는 'loser'와 같은 의미를 가질까요? 초등학생들도 세워대는 세번째 손가락의 의미가 미국의 그것과는 다르고, 이미 '장기하'라는 가수의 등장 때 루저문화의 등장이니 어떠니, 나름의 사회적 용례와 의미가 부여된 건 아닐까요. (그녀의 '루저' 발언을 옹호하려는 게 아니라, 그 단어 자체의 의미에 집중하는 분들이 있어서 생각해 본 질문입니다.)

몇 가지 미처 더 정리하지 못한 생각해 볼 법한 문제들이 있겠지만, 이 정도로 총총.

어제 댓글달아주시던 분들-특히 입에 걸레무신 분들-전부 뭐하시는지.


어떤 티비 프로그램에 나온 여대생 하나가 키가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라고 했댄다. 그리고 인터넷과 해당

프로그램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 포털마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 파문' 어쩌구 하면서 아주 신났다.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말 한마디에 모두 열폭중이시다. 루저라는 단어에 예민하거나, 아니면 '남자의 키'라는

남성들의 스트레스 요인과 자격지심을 건드렸기 때문이거나, 둘 다이거나.(혹은 언론의 부추김/오바질이거나.)


경과를 굳이 자세히 살필 필요야 있겠냐만은, 그녀가 애초 대본에 있던 내용이었다는 해명을 하고 이에 대해

방송작가 측에서 반박을 하면서 일이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제2의 개똥녀파문으로 번질 것 같다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난무하고, 프로그램이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을 한 거라는 추측도 더해지고, 신나서 들들 볶아대는

여론이지만 늘 그렇듯 기껏해야 며칠 시끄럽고 말 일이다.


애초 이런 일에 계속 해명을 요구하고 뒤를 캐는 것 자체부터가 우스운 일이지 싶다. 키 작은 남자가 루저라고

생각하면 안 되나. 방송은 안 보고 그저 몇 개 언론이랍시고 뻥튀기에 자기복제만 해대는 기사들을 봤지만

그렇게 문제될 발언인지 잘 모르겠다. "키는 경쟁력이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라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했단

게 사실이라면, 그냥 본인의 생각이다. 키작은 남자가 싫은가부지, 본인 키보다 큰 남자를 찾고 있나부지,

그렇게 넘기면 될 일 아닌가. (참 기자들 기사 쉽게 쓴다. 그것도 힘없는 사람 하나 십자포화로 때려 가며.)


뭐 말투가 좀 싸가지 없었는지도, 표정이나 뉘앙스가 영 띠꺼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방송을 직접 보고
 
인용된 문장에서는 맛볼 수 없는 그런 느낌을 받았대도 마찬가지다. 그냥 좀 뻔뻔하구나, 혹은 독특한 개념을

갖추고 계시구나, 이러고 말 일이지 뭘 그렇게 흥분을 할 일인지 모르겠다. 언제부터 '미녀들의 수다'같은 오락

프로그램에서 뱉어지는 대사들이 사려깊고 올곧기만을 바랬던가 말이다. 공익적이고 도덕적인 발언만 나오는

교육방송을 보고자 하는 건 아닐 테고, 그녀에게 '공인'으로서의 책임을 물 것도 아닌 거고.


남자의 키에 대한 최소한의 요구사항, 개인의 취향이다. 해당 주제에 대한 본인의 기호와 취향을 이야기한 것

뿐이다. 물론 좀 덜 자극적이고 조심스럽게 이야기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거나 그녀는 "~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고 알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나랑은 좀 다르고 불쾌하지만 그러려니 하지 뭐, 그렇게 넘어갈

만큼의 여유도 없는 건가.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당장 남성으로서 자신이 '루저'로 낙인찍히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성들-그리고 자신이 어필하려는 여성들-이 대번에 그런 '키작은 남자는 루저'라는

마인드를 장착하는 것도 아니잖나. 그녀의 마인드를 책임지고 고쳐줄 것도 아니고 당장 피해를 입는 것도

아닌데, 왠 밴댕이 속알딱지같은 열폭인가.


물론 많은 여자들이 남자의 키에 예민한 게 사실이고 하나의 냉정하고 분통터지는 기준이라고 항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더더욱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그녀는 단지 그러한 트렌드 내지 풍조에 편승해

발언한 것 뿐인 거다. 저변에 깔려있는 분위기와 여성들 일반의 '입맛'이 문제라면 문제인 거다. 말을 안 한다고

지적하지 않는다고 문제가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이 경우에도 그녀가 이렇듯 십자포화의 대상이

될 일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키에 민감한 건 오히려 남자들이라고 생각한다, 여자들은 딱히 남자가 자기보다
 
작아도 개의치 않는 것 같던데. 상대적으로.)


사실 언론에서 그려내듯 그렇게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은 못 봤다.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대놓고 하다니 어떤

의미로던 '차암~ 대단하다'는 반응, 혹은 방송에서 이특이 반응했던 것처럼 "나도 그쪽 관심없거든요"라는 식의

맞대응 정도를 봤을 따름이다. 그렇지만 이런 일반인의 돌출 발언, 돌출 행동에 너무도 가혹하고 각박하게

'열폭'하는 사람들과 언론이 늘 있어왔던 것은 사실인 것 같아 안타깝다. 이거 원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안주감 오징어처럼 짝짝 찢어발겨져 잘근잘근 씹혀진다. 힘있는 사람이어도 이렇게 집요하게 흠집내고 갈구고

꼬투리를 잡을까. 굉장히 가학적인 세상이고, 비겁한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런 별 것 아닌 일을 떠들썩하게 키워내어 이득을 볼 사람들이 누군지 생각해봤다. 자극적인 기사로 조회수를

손쉽게 낚아내는 기자들, 누군가 씹을 거릴 만들어내어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오지랖넓고 시간많은 한량들,

시대가 선사한 공허감과 분노를 풀길 없어 간편하고 무해한 씹을거리만 찾아대는 불만증환자들. 그들은 모두

하이에나같다. '발톱사이에까지 털이 나있는' 혐오스럽고 야비한 짐승이다. 자기보다 약하고 병든 동물만

사냥한다는 하이에나-실제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처럼 비겁하다.


그리고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궁극의 수혜자들이 있을 거다. 80년대 3S-섹스, 스크린, 스포츠-정책이나
 
오락물과 적당한 먹거리-먹잇감-의 조합을 의미하는 티티테인먼트라는 조어가 발휘하는 힘으로 대중의 관심을

사회/정치적인 공적영역으로부터 유리시키려고 쉼없이 노력하는 권력자들. 개똥녀니 뭐니, 그런 자극적이지만

별반 공동체에 기여할 것이 없는 이슈들로 인터넷 자원과 진득하지 못한 대중의 관심을 소모시켜버림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권력자들. 무대 앞에서 일개 여대생이 다구리당하고 있을 때 키득대고 있을 장막 뒤의 '보이지

않는 손', 그들이 불안하다.




나 : 세상만물에 대한 자신감을 잃었어.

B : 그런 게 있었어?

B : Are you an American?ㅋㅋㅋ

나 : 최소한 난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아닌개벼.

B : 그거 심각하다, 자기 기준에 본인이 자격미달이면 우예 살아가려고.

나 : 응. 그니까, 마지노선이 무너졌어.

B : 1. 기준을 바꾼다, 2. 남의 기준을 갖다쓴다. 3. 그냥 loser로 산다.

나 : 1. 기준따위 없고 그냥 '삘'이야. 나에 대한 '삘'이 안 오네 요새.

B : 4. 노자- 내기준도 어차피 불완전한 것 그냥 그러려니 산다

나 : 2. 남의 기준으로 하면..뭐, 금전, 출세, 학력?

B : ㅇㅇ

나 : 3. 루저..로 살아가느니 광석이형처럼 죽어불지

나 : ㅋㅋ

B : 그럼 4.

나 : 2번..그런 걸로 하면 3번이 되고 3번이 되면 또 죽어불지

나 : 4번..넌 어때?

B : 나는 내가

B : 못나고 찌질한 면이 있어도

B : 좋아

B : 라고 생각하고 살아.

B : 대체로.

B : fall in love with myself

나 : 흠..나도 그렇게 살았는데

B : 그 자기애가

나 : 요새 흔들리네

B : 배터리 아웃?

나 : 응

나 : 웅

나 : 앙

나 : 엉

B : 1. 나를 나 대신 사랑해줄 사람을 찾아

B : 2. 휴가를 다녀와

B : 왜 요즘 블로그도 시들해?ㅋㅋ

나 : 1. 나도 날 사랑하지 않는데 누굴 찾냐. 그런 식의 의존은 위험해..서로에게.

나 : 2번 땡기네..

나 : ㅎㅎ

나 : 블로그 따위 개나줘버려

B : ㅋㅋ

나 : 음..사람의 온기가 필요해

나 : ㅠㅠ

B : 1은..싫고,

B : 온기는 필요하고

B : 1의 이유로 사람을 만나긴 싫고

B : 그래도 사람은 만나야겠고

나 : 외롭다고 사람 만나기도 싫고

B : 사랑해 줄 사람을 만나지 말고

B : 그냥 사랑할 사람을 만나면 돼


나 : 오..정답

B : genius

나 : 델꼬 와

B : 그걸 스스로 할 수 있음

B : 자신감도 회복할 거야

B : ㅋㅋㅋㅋ


나 : 뭔가 맞긴 한데...

나 : 원점이구만

B : 소용돌이

나 : 구리구리 뱅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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