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중순쯤에 한번 아이폰 사진폴더에 지저분한 사진들을 정리하다가 몇 장 선별해서 올렸던 포스팅,

아이폰 사진폴더에서 잠자던 사진들. 에 이어서 한 6개월새 또 잔뜩 잡다구레한 사진들로 가득차 버린

사진폴더도 정리할 겸.

회사에서 갔던 직무연수, 이천 근처에 있는 연수원에서 2박3일동안 재밌게 지내다가. 집체수업 와중에 있던

쉬는 시간, 이쁘고 푹신한 쇼파에서 다정한 한때를 보내던 동기들과 하얀 속살의 배를 까내린 사람.

연수원 앞에 펼쳐진 잔디밭에 드문드문 놓인 바윗돌의 그림자들이 길어지던 시간, 그 너머 인공잔디밭에서

공을 쫓아다니느라 때이른 구슬땀을 뻘뻘 흘렸더랬다.

수업하고 저녁먹고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면서 과일안주 데코레이션으로 괜히 꽃꽂이를 해보기도 하고.


연수원 뒤의 무성한 숲 사이로 삐져나와 길을 잃어버린 초록개구리 한마리, 네비게이션이 재로딩되는 중.

서울 동쪽의 어느 동네, 독거노인분들 도시락 배달하는 봉사활동 중에 눈에 들어온 신기한 전봇대. 직선으로

쭉쭉 뻗은 전선의 흐름을 지켜내려한 건지, 아니면 옆건물의 실루엣을 배려한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간 휘영청.

초등학교 앞에는 여전히 이런 뽑기 기계가 너댓개씩 열맞춰 늘어서 있었다. 내용물은 조금씩 달라진 거 같기도

하면서 유치하거나 쓸데없다는 점에선 정말 똑같은 거 같기도 하고. 드림하이니 뭐니 속지는 최근에 바뀐 거

같긴 한데, 저렇게 뙤약볕맞고 비바람에 씻기면 빛바랜 빈티지 느낌 완연해지는 건 금방이다.

'카모메식당'이란 일본영화에서 처음 들었던 '까페 루왁'이란 단어. 커피맛이 좋아지라는 주문 같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제로 그런 커피가 있는 거다. 사향쥐가 먹고 뒤로 배출된 커피콩이 바로 커피 루왁.

커피맛이 정말 달랐다. 굉장히 독특한 향도 그렇고 색깔도 조금 일반 커피와는 다른 느낌.

어느 동네를 가던 들고 다니는 카메라 말고도 아이폰으로도 사진 한두장씩은 남기는 이유, 아이폰에

사진찍힌 위치가 기록된다는 게 재미있어서 곳곳에 로그를 남겨두고 싶어서다. 제주도 초콜릿박물관

갔을 때도 마찬가지, 방문 후 포스팅을 남기면 추첨해서 선물을 준다길래 열심히 썼는데 아무런

응답도 없어서 섭섭하더라는. [제주] 초콜릿박물관, '초콜릿은 마약?'이란 질문에 답이 있는 곳.

청주에 가던 길, 맞은편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불이 활활 타오르는 게 보였다. 트럭에 실려있던 종이박스에서

불이 시작된 거 같은데..아마 어딘가로부터 날아온 담뱃불이 그 불씨 아니었을까. 갖고 있던 카메라로 먼저

찍고 폰카메라로 다시 촬영한 사진.

어린이대공원, 아이들이 뛰어노는 곳이 저런 애매모호한 거시기가 툭 튀어나오다니. 이쪽 끝 말고도 다른쪽

끝 역시도 비슷한 녀석이 코끼리 코같은 걸 툭 내밀고 있길래 재미있어서 한장.

일본의 어느 호텔, 그야말로 빈티지 오토바이들이 주르르 늘어서 전시되어 있는 로비. 카와사키의 바이크도

보이고, 스쿠터도 보이고, 미니바이크처럼 조그맣고 귀여운 것들도 보이고. 아마도 호텔 주인이 바이크

매니아였던 거 같다.

그리고 아오모리 공항을 떠나기 전 공항내 경찰서 앞에 빼곡하게 붙어있던 현상수배 포스터. 사설탐정이

활동하고 있는 일본이니까 아무래도 저런 현상금을 노리고 범죄자를 쫓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아오모리에서 돌아오던 비행기,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 날개가 파랗게 질리더니 구름이 번졌다.

회사에서 있었던 족구대회. 비가 온다고 코엑스의 빈 전시장에 그물을 쳐놓고 족구경기를 하는 회사는

아마도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태앵탱, 공이 바닥에서 튕기는 소리가 광활한 전시장에 울려퍼졌다.

올해 세번째 갔던 제주도에서 카페리를 타고 가파도로 들어가던 길. 렌트카에 장착된 네비게이션은 차가

망망대해 한복판에 둥둥 떠있다고 나왔고, 녀석은 잔뜩 당황해선 계속 뱅글뱅글 돌며 시끄럽게 굴었다.

쉼없이 계속되던 경로 재탐색의 메시지는 배가 무사히 가파도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조용해졌다는.

신당동 떡볶이를 먹고 나서였던가, 근처 아이스크림집에 들어가서 발견한 마법의 문짝. 아마도 청소도구나

기타 비품류를 보관해두는 창고 문이 아닐까 싶은데, 저렇게 그림을 그려넣으니 그 자체로 훌륭한 장식이 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속초에 놀러갔을 때, 맥가이버 BGM이 나오는 가운데 누군가의 손가락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희생된 콘돔의 새로운 용례. 안에 동글동글 맺힌 물방울은 다른 게 아니라 손가락의 땀..이지 않을까.;

이게 누구꺼더라, 아이폰 케이스가 넘 맘에 들었다. 카메라렌즈 부위를 새의 눈으로 활용한 센스도

훌륭하거니와 그 새가 뻐큐 손가락 위에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딱 내 스타일인데..이제 난 3GS를 벗어나

5G를 기다리고 있으니 일단 대기.

어느 사케집의 화장실 표시. 노상방뇨하는 남자를 황급히 피해 몸을 날린 건지, 아니면 그를 향해 니킥을

날리려고 몸을 던진 건지는 불분명하지만 여하간 노상방뇨는 남을 놀래키거나 매를 버는 나쁜 짓이라는

메시지는 선명히 전달되는 거 같다.

앤디 워홀에 대한 오마주..랄까. 이태원의 식료품가게를 갔더니 캠벨의 스프깡통들이 차곡차곡 진열되어

있었던 거다. 시립미술관에서 보았던 그의 작품들이 만들어졌던 때와 똑같은 디자인으로 여전히 생산되고

있는 캠벨의 치킨누들스프가 특히 눈에 들어왔다. 이런 걸 워홀보다 먼저 태어나 먼저 포착했다면 그의

부와 명성은 모두 내 것이었을 텐데. 아울러 아마도 캠벨스프 평생무료이용권 같은 것도.

서울대입구역 근처에서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 선후배들. 노래방에 갔더니 뜬금없이 봉 하나가 천장에서

바닥까지 단단하게 설치되어 있는 거다. 이게 뭥미, 하다가 술김에 다들 봉을 잡고선 서로 기어오르겠다고

싸우며 '봉춤'사위를 펼치던 두어시간. 오랜만에 잠들어있던 근육을 깨웠더니 한동안 팔이 땡겼다.

어느 사거리 앞의 쓰레기통, 온갖 브랜드의 커피 플라스틱잔들과 음료수 펫병, 유리병들이 빼곡하게

올라가 있었다. 얼핏 위만 보면 누군가 설치미술을 해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질서하면서도

형형색색의 스트로우와 형체에서 뭔가 미감이 느껴지는 건...나만의 생각인 건가.

광주에 놀러갔을 때, 집에서 문자가 와서는 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 거냐고 하길래 인증샷 겸 찍어서

보내드린 광주의 어느 버스노선도. 아무리 지금 광주라고 말로 해봐야 사진 한장의 위력보다 못하다는.

어디 까페였더라, 시럽들이 3X2로 줄맞춰 서있는데 뚜껑 하나가 내게 눈을 찡긋찡긋.

올림픽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사람들, 네트가 없으니 자전거를 쭉 늘어세워 네트 대신. 이런 식의

임기응변 참 맘에 든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네트가 없으면 자전거로.

얼마전 퇴근하는 길에 문득 올려다본 하늘, 추락하듯 뚝 떨어지는 무지개를 보며 원래 저렇게 생겨먹었던가

싶을 만큼 참 오랜만에 본 무지개.

대학교 근처에서 친구들을 만나기로 한 약속, 좀 많이 일찍 도착해 버린 바람에 학교 다닐 때 가끔

시험공부를 하거나, 그리고 맘먹고 좀 길게 공부하던 때 찾았던 사회대 도서관을 새삼 들어가봤다.

사회대와 앞 아고라는 반토막났지만 난간에 기대어 음료수를 마시던 그 장소는 그대로.

선릉쪽에 이쁜 까페들이 좀 늘어나고 있는 듯 한데 그 와중에 눈에 띄던 이쁜 가구점. 저  흔들의자가

완전 맘에 들었다. 귀까지 디테일한 양모양으로 만들어져 복슬하게 양털이 감싸인 의자가 굉장히

포근하고 따뜻할 거 같은데다가 경사가 그리 급하진 않아서 정말 흔들흔들 잠들기 딱 좋을 거 같은.

그리고 이건.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직접 만들었다는 '기타바', 울림통을 떼어내고 휴대하기 편하도록

고안했다는 기타바를 전시, 판매하는 매장을 발견하고 말았다. 안 그래도 요새 기타 들고 다니기 불편한데

저런 기타 하나 있음 좋겠다 싶기도 하고.

추석 연휴, 예전에 받아둔 채 묵혀두고만 있던 스타워즈 에피소드 1,2,3,4,5,6을 다 보아버렸댔다. 지금

뭘 하고 있냐는 질문에 가장 적절한 장면을 찍어보내려다 보니 요다를 찍게 됐다. 사실 다스베이더의

그 유명한 'I am your father' 장면을 찍었어야 했지 싶기도 하지만, 요다의 광선검 실력도 굉장하더라는.

그리고 왕십리였던가, 고층 빌딩마다 의무적으로 공공예술작품을 앞에 설치해야 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돌로 젠가를 쌓아놓아도 되는 건지는 몰랐다. 대리석 젠가.





'제설작업', 2004년에 군대를 제대하고 나서는 좀체 입속에서 굴러다닐 일이 없던 단어, 심지어는 귓바퀴에
 
넣고 굴릴 일조차 없던 단어였는데, 무려 6년만에 제설작업에 동원되고 말았다.

장소 : 코엑스 밀레니엄광장

시간 : 200..아니 2010년 1월 4일, 13시 30분-14시 30분

작업목표 : 20센티 이상 쌓인 눈치우기(삼성역 5번출구서 코엑스몰입구까지)

회사 사람들이 우르르 나와서는 눈삽과 빗자루를 들고는 눈이 발목넘게 쌓인 채 통제구역으로 띠둘려진

그 곳에 들어가 제설작업을 시작했다. 통로가 미어지게 지나가던 사람들은 신기한 듯 쳐다보다가 심지어

외국인들은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축축해지는 구두를 느끼며 구두와 양말이 합일되는

경지를 감촉하며 눈을 치우다가 급기야 후배 직원을 엎어뜨리고 눈사람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부끄러웠다.


머리 위와 어깨 위로부터 김이 펄펄 오르기 시작할 때 쯤, 역시 머리보다 몸을 움직이는 체질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무실에 들어가기 싫어서 괜히 여기저기 눈삽 찔러넣다가 끌려가듯 올라왔다.


아침 9시부터 예정되었던 시무식, 누가 센스없이 9시부터 시무식을 하겠다고 했는지 모르지만, 미친 듯이

쏟아붓고 있는 폭설 덕에 회장님이 그만 늦어버렸다. 예정되었던 식순과는 달리 이런저런 즉석 신년사와

축복들이 오고 가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는 판단이 섰는지 부회장님이 회장님한테 전화를 했다.


어이구, 어디신가요 회장님, 뭐라뭐라. 어이구, 안 되시겠네요. 뭐라뭐라. 어이구, 그럼 휴대폰으로라도

인사하시죠. (으응?) 마이크에 휴대폰 대고 있음 괜찮아요. (뭐라고?) 제가 노래방에서도 해봤거든요.

그리고 시작된 회장님의 신년사, 마이크 너머 휴대폰 너머 '세상의 끝'에서부터 들려왔다.


꽤나, 신선하고 재미있었던 시무식. 회장님이 늦게 온 덕에 이런저런 사람들도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도

해보고, 유례없이 휴대폰을 사용한 시무식도 경험해보고. 기자들도 재밌다고 생각했는지 기사로도 여기저기
 
난 것 같다. 역시 부회장님은 노래방에서 그런 경험이 있으실 만큼 고렙이신 건가.



* 오늘 눈이 삼엄하게 내리던 새벽에 수영장 가는 길, 마치 '더 로드' 위를 걷고 있는 느낌. 책으로 봤던

스토리를 영화로 보면 대개 실망하기 마련이라 영화는 안 볼 생각인데..이미 오늘 비쥬얼은 경험해버렸다.




 

#1. 매해 추석은, 추석뿐 아니라 명절날 아침은 왠지 약간 어리어리한 시각적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그걸

깨닫는 순간은 늘 아침일찍 일어나 차린 차례상의 제사주를 음복할 때. 아, 작년 이맘때도 아침 댓바람부터

술을 몇 잔씩 마셨었구나, 그래서 아침부터 발갛게 살짝 취했었구나, 하는 깨달음이 온다.


#2. 제사주를 일본주로 올렸다. 조상님들도 늘 우리것만 맛보실 게 아니라 물 건너온 외국것도 좀 맛보시는게

어떨까 싶어서, 라곤 하지만 따로 차례주를 사자니 마침 집에 많은 일본 청주-사케-를 올려도 되지 않겠냐고

내가 쿡쿡 찌른 탓이다. 사실 한때 광풍처럼 일었던 '신토불이'의 프로파간다가 여전히 강고하게 남아있는

곳이 제삿상, 차롓상인 거 같은데 이거 좀 의심스럽다. 제삿상 음식을 꼭 과거 어느 한지점에 고정된 것으로

바득바득 챙겨야 하는지도 의심스럽고, 술이니 음식이 꼭 국내산이어야 하는 이유 역시.


#3. 추석이니 설이니, 친척들 바글바글 모인 풍경의 한 귀퉁이에는 으레 왠지 '촌스런' 화면을 뱉어내고 있는

티비가 시끄럽기 마련이다. 올해도 작년처럼 사람들의 응원소리가 소음처럼 고스란히 담겨있는 야구 경기를

하나쯤 보았고, 한복을 차려입은 진행자들이 우글우글한 프로 몇개를 보았으며, 경이로운 '동안'이라며

시청자에게 억지부리는 프로그램도 빠지지 않았다.


#4. 젊은 것들의 대중가요 세계가 온통 핫하고 쿨하고 섹시하며 불끈불끈한 '사랑'으로 가득하다면, 트로트의

세계는 그 죽일놈의, 끈끈하다 못해 더럽고 무섭다는 '情'이 담겨있다. 몇 번의 사랑을 거치고 나면 사랑이

아니라 정 때문에 살아가고, 정을 추억하며 살아가게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정'이나 '사랑'이니 정의내리기

어렵긴 매한가지지만, 어느 지점에서 '사랑'이 '정'으로 바뀌었음은 자각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트로트의

세계가 새롭게 보이는 나이대로 진입하고 있는지도.


#5. 개천절이니 일요일이니 토요일이니 추석이니 연휴가 겹쳤으면 겹친 만큼, 그만큼 찐하게 쉬어주고 놀아

줬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하다. 늘 허무하게 끝나는 명절 연휴. 명절은 쉬는 날이 아닌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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