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리한강시민공원의 2012년 구리 코스모스 축제, 매년 가을이면 지천 가득 피어나는 울긋불긋한 코스모스들에 눈이 얼얼하다.

 

하늘거리는 꽃대궁이나 그 끄트머리에서 활짝 날개를 펼친 예닐곱닢의 꽃잎들이 딱, 가을이다

 

 

 

코스모스 꽃잎 빛깔도 조금씩 다 다르다. 흰색에서부터 분홍색, 자주색으로 대별되는 거 같으면서도 다 같은

 

분홍색이 아니라 조금씩 빛깔이 다르고 결이 다르다. 잔뜩 뭉쳐놓은 화면에서는 그래서 더욱 다채롭고 풍요로운 빛깔이 배어난다.

 

 

그 와중에 피어나고, 만개하고, 꽃잎이 떨어져 시드는 코스모스들이 한 화면에 담겼다.

 

그렇게 피고 지고 다시 피어나는 꽃들이 구리 한강시민공원의 가을을 은은하게 달구고 있었다.

 

 

 

 


'노래하는 음유시인' 루시드폴의 작품들. 작년 '고등어'와 '평범한 사람'으로 홀딱 빠지고 나선 걷잡을 수 없이

맘 속에 자리잡은 그의 나즈막하지만 깊은 곳까지 와닿는 음색, 서정적이지만 떨림 가득한 가사. 그의 노래랄까,

읊조림이랄까, 속삭임을 듣고 있으면 달콤쌉쌀한 99% 다크초콜렛를 녹여먹는 느낌같기도 하고.


수줍게 관객에 인사하던 루시드폴, 두시간반동안 깨알같은 농담으로 행여나 졸릴까 관객까지 배려하던 그.

그렇지만 가끔은 걸터앉은 의자에서 바닥에 닿지 않은 두발을 까닥거리며 음률에 빠져들기도 하던, 천상 아티스트.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리꽂히던 2011년의 끝자락에서 포근한 백허그로 감싸안아주는 듯 하던 마법의 밤.

 

"오, 사랑" (오, 사랑, 2005)

고요하게 어둠이 찾아오는
이 가을 끝에 봄의 첫날을 꿈꾸네
만리 넘어 멀리 있는 그대가
볼 수 없어도 나는 꽃밭을 일구네

가을은 저물고 겨울은 찾아들지만
나는 봄볕을 잊지 않으니
눈발은 몰아치고 세상을 삼킬듯
이 미약한 햇빛조차 날 버려도
저 멀리 봄이 사는 곳 오, 사랑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날개가 없어도 나는 하늘을 날으네
눈을 감고 그대를 생각하면
돛대가 없어도 나는 바다를 가르네

꽃잎은 말라가고 힘찬 나무들 조차
하얗게 앙상하게 변해도
들어줘 이렇게 끈질기게 선명하게
그대 부르는 이 목소리따라
어디선가 숨쉬고 있을 나를 찾아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내가 틔운 싹을 보렴 오, 사랑 -


"봄눈" (레 미제라블, 2009)

자 내 얘기를 들어보렴
따뜻한 차 한잔 두고서
오늘은 참 맑은 하루지
몇 년 전의 그 날도 그랬듯이

유난히 덥던 그 여름날
유난히 춥던 그 해 가을, 겨울
계절을 견디고
이렇게 마주앉은 그대여

벚꽃은 봄눈 되어 하얗게 덮인 거리
겨우내 움을 틔우듯 돋아난 사랑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처음으로 말을 놓았던
어색했던 그날의 우리 모습
돌아보면 쑥스럽지만

손끝에 닿을 듯이 닿지 않던 그대는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인데
하루에도 몇 번을 내게 물어봐도 나는 믿고 있어
떨어지지 않는, 시들지 않는, 그대라는 꽃잎

그대라는 꽃잎



"알고 있어요" (레 미제라블, 2009)

행복하게 웃어보자
오늘 너무 슬퍼보여
내말에 그저 조용히 웃던
그대의 뒷모습
하지만 웃고 있어도,
항상 울고있는 사람
한없이 고단한 그대 모습
멀리 사라지고

하루라는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
세상에 험한 말들로 그댈
아프게 했는지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나도 그대의 하루에
무거운 짐이었다면
그래서 말 할 수 없었다고,
미안해 하진 마
하루라는 짧은 시간
얼마나 많은 사람들
세상에 험한 말들로 그댈
아프게 했는지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넌, 여전히 어려운
눈빛으로 나에게 얘기하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왜 그러냐고
난 말하고 있었지
뒤돌아선 그대가
그런 눈물 흘리지 않아도 알고 있다고
다 알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그대 손으로" (버스, 정류장 OST (L'Abri), 2001)

바람 부는 곳으로
지친 머리를 돌리네
나는 쉴 곳이 없어
고달픈 내 두 다리 어루만져주오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세찬 빗줄기처럼
거센 저 물결처럼
날 휩쓸어 간대도
좁은 돛단배 속에
작은 몸을 실으리
지금 가야만 한다면
그대 품으로 그대 품으로

태양은 그 환한 빛으로
어리석은 날 가르치네
당신은 따뜻한 온기로
얼어붙은 날 데워주네
언제나 아무 말 없이
그대 손으로 그대 손으로


"그리고 눈이 내린다" (아름다운 날들, 2011)

참 좋아라 했던
이 길 위엔 아무도 없는데
밤은 정말 이렇게
나도 모르게
조용하게 흘러가고 있어

날 보듬어 주던
그 눈빛은 사라졌지만
푸르고 푸르던 기억
아직도 향기로 남아
눈짓으로 인사하는구나

외롭다는 건
기다리는 것

잊혀지는 게
아무렇지 않도록

조금씩 아주 조금씩
하루 또 하루가 지나
모든 것들이 제자리를 찾을까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이 밤이 지나면
하늘은 밝아올 테고
거리는 분주할 테고
내 마음도 조금씩 환해질 거야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견디다 보면
여름은 다시 올 테고
겨울엔 눈이 올 테고
나는 다시 빛날 수 있겠지


"그대는 나즈막히" (레 미제라블, 2009)

그대는 나즈막히
당신은 언제라도 날
떠날 수 있어요
얘기하네

난 아무 말 못하고
두터운 목도리를 말 없이 벗어준 채
돌아서지만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세상에 어떤 인연은
변하지 않을지도 몰라
그래서 사람들 모두 껴안고서
조심스럽게 걸어가겠지

스쳐가는 말이라도
그렇게 얘기말아요
나에게 그대는 언제나
말할 수 없이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나에게는
모질게 얘기말아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필요 없어요

언젠가 마음 변할 수도 있다고
말할 필요 없어요


"평범한 사람" (레 미제라블, 2009)

오르고 또 올라가면
모두들 얘기하는 것처럼
정말 행복한 세상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나는 갈 곳이 없었네
그래서 오르고 또 올랐네
어둠을 죽이던 불빛
자꾸만 나를 오르게 했네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알다시피 나는 참 평범한 사람
조금만 더 살고 싶어 올라갔던 길
이제 나의 이름은 사라지지만
난 어차피 너무나 평범한 사람이었으니
울고 있는 내 친구여
아직까지도 슬퍼하진 말아주게
어차피 우리는 사라진다
나는 너무나 평범한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너무나 평범하게 죽어간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평범한 사람



"꿈꾸는 나무" (아름다운 날들, 2011)

내가 자라서
뭐가 되고 싶냐고 물어본다면
되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
난 말하지 못한 채
잎새만 펄럭이겠지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따뜻한 집,
편안한 의자,
널찍한 배,
만원 버스 손잡이,
푸른 숲,
새의 둥지,
기타와 바이올린,
엄마가 물려준
어느 아이의 인형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내가 꾸는 꿈

얘기해도 될까
매일 내가 꾸는 꿈
비웃지 않고서 나의 얘기 들어준다면
한번 느릿느릿 얘기해볼까


작은 책상,
동그란 거울,
뜨거운 불빛,
시원한 그늘,
식탁 위 한 쌍의 젓가락과 술잔,
눈물 닦아줄 휴지,
사랑 전해줄 편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되고 싶지 않은 게
내게 하나 있다면
누군가를 겨누며
미친 듯이
날아가는
화살




선릉, 햇살이 반짝거리던 날 벚꽃나무들이 둥그렇게 모여서 머리를 맞댄 그 아래 돗자리를

깔았다. 강하게 내려쬐는 햇빛 아래에서 하얀 꽃잎들은 거의 투명하도록 빛나고 있었고,

푸르스름한 하늘색과 살풋한 핑크색이 섞여들며 묘한 분위기의 창공이 위로 열려있었다.

나무는 아 까먹고 있었다, 라는 느낌으로 문득문득 꽃잎을 소리없이 떨구고 있었다. 바람 한점

없는데도 파르르 몸을 떨고는 꽃잎이 뚝, 뚝. 소리도 없이 내리는 벚꽃잎을 보면 뭔가 시간이

멈춰버린 듯한 신비로움도 느껴지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에 사방이 숨죽인 채 바라보는 느낌이

드는 거다. 문득 잊었다는 듯, 그렇지만 당신이 날 잊었던 말던 상관없다는 듯, 그렇게 고고하고

조금은 망연하게 꽃잎이 손 위에 내려앉았다. 


가을에 떨어지는 낙엽을 손으로 잡으면 행운이 온다는 말도 있지만, 떨어지는 벚꽃잎을 손으로

잡아도 행운이 온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었다. 워낙 얇고 가벼워서 살짝 스친 손길이 일으킨

바람에도 팔락이며 몸을 뒤채고 마는 그 섬세한 꽃잎, 그 말을 듣고 아마도 처음으로 꽃잎을

잡았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군대 훈련소, 구보중이었다.

돗자리 위에 누워서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하고, 문득 이야기가 끊기면 멍하니 떨어지는 꽃잎과

함께 마음이 나풀거리기도 하고, 더러 바람이 불어 우수수 꽃비가 나리면 마음이 먹먹해지기도

하고. 이빨빠진 꽃잎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찔리기도 하고.

날씨가 워낙 희한한지라 한반도엔 이제 2계절이 뚜렷하고 일교차가 큰 그런 날씨가 정착되어

버린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벚꽃들도 볕좋은 곳에 선 나무에선 활짝 피다 못해 연두색 이파리가

스물스물 올라오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나무는 아직 꽃망울도 다 안 터지기도 했고. 그나저나

벚꽃은 이파리 오르기 전까지가 정말 이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싱싱한 연두빛이

더해져도 나쁘지 않은 거 같다. 아직은, 엷은 핑크빛 꽃잎과 엷은 연두빛 잎사귀의 평화로운 공존.

몇 장, 선릉에서 찍은 사진들 추가. 커다란 능이 만든 둔덕 위에서 노란 민들레꽃이 피었더랬다.

그리고 두드러지진 않지만 담백한 보랏빛 꽃들도 군데군데 깃발을 꽂았고.

생각보다 넓고 다이내믹한 선릉 공원 내부, 자그마한 동산도 있고 산책로라기엔 꽤나 긴 동선이

나오는 너른 공간에 어딘가쯤 박혀있던 이 구부정한 소나무.

그리고 경주 남산에 잔뜩 있던 해송들이 풍상에 씻겨 우락부락해진 외모만큼은 아니어도 나름의

굴곡과 사연을 갖고 이리저리 구비구비 자라난 소나무들.

돌아나오는 길, 어느 까페의 노천 테라스에 앉아서 잠시 쉬었다. 파란색 파라솔의 두툼하고

거친 캔버스천 사이로 중천까지 바싹 독이 오른 햇살이 닌자의 표창처럼 무수히 박혔다.






말그대로 푸지게도 피어있던 꽃들.

꽃 하나하나의 이름은 모르지만, 어느 시인이 그랬듯 굳이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야 내게 와서

꽃이 되는 건 아니었다. 꽃의 이름을 몰라도, 아니 그것이 꽃인지 꽃잎인지 실은 꽃받침인지 몰라도,

그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화사해지고 열포름하니 가벼워지는 존재들.


혼자 떠난 여행, 어디서나 꽃들이 함께 했다.



@ 태국, 방콕.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촬영지로 유명한 단수이, 여기까지 와서 그 영화의 배경이 되었던 학교를 찾아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진리(眞理)대학 내부의 옥스포드 컬리지로 향했을 때 마주쳤던, 눈부신 칠월의 햇살 속에서

뭔가를 열심히 찍고 있던 한 사람. 인상적이었다.

단수이는 아무래도 타이완의 수도 타이페이에 비길 수는 없이 작고 조용한 도시, 거리를 다니는 버스에서도

나름의 운치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듯 했다.

진리대학에 향하는 길, 말할 수 없는 비밀의 그녀, 이십년 전의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 거 같은 조바심에 서둘러

오르막을 오르려니 땀이 삐질삐질. 여기도 덥구나, 당연하지만 절절했던 한탄.

원래 영화 촬영지라고 해서 넘 기대를 많이 하고 가면 으레 실망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그냥, 애초부터 영화 속

장면을 그려본다거나 그녀들이 뛰어나와 반긴다거나 그런 망상은 없이, 타이완의 대학을 하나 구경한다는

기분으로 돌아보기로 했다. 꽤나 고풍스럽고 오래 되어 보이는 건물들.

타이완에서 최초로 럭비를 시작한 학교임을 알리는 기념비. 왠지 머릿속에서 계속 영화를 빨리감고 되감고 하며

이 곳이 어디에서 봤었는지 스캐닝하는 걸 멈출 수가 없다.

아, 여긴 기억난다! 싶어 가슴이 두근거렸던 곳. 여주인공이 졸업사진을 찍었던 곳이다. 건물 내부는 다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조그마한 공간 하나를 영화 속 풍경과 맞춰본 것만으로도

당장 영화 속 스토리나 인물들이 훨씬 실감나게 다가왔다.

꼭 영화가 아니어도, 참 이쁜 학교다. 잘 가꿔지기도 했고, 건물 자체도 단조로운 성냥갑이 아니라 이리저리

삐죽빼죽한 실루엣이 뚜렷하다.

담색 학교 건물벽을 스크린삼아 펼쳐지던 야자수와 바람의 희롱 장면. 둘이 껴안고 뒹굴고 엎어지고, 아주

물고 뜯고 장난이 아니었던 격한 정사. 아무래도 해안가에 가까운지라 해풍이 세게 불어대는 거 같다.

무슨 요새나 탑처럼 높이 솟은 저 꼭대기 층에는 뭐가 있을까. 이런 학교에서 공부하면 참 좋겠다, 란 생각도

들었다. 우리학교 자하연에서 굼실굼실 기어나오던 자라들, 거북이들이나 여기 사는 거북이는 비슷하게 생겼구나.

방학중인지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카메라 장비를 둘러메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온 듯한 사람들이

꽤나 보였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도록 구석구석 운치있는 풍경들이 가득하던 커다란 캠퍼스.

진리대학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유치원까지 옹기종기 모여있어서 조그마한 '학교마을'을

이루고 있는 거 같이 느껴졌다. 학교와 학교를 잇는 길을 따라 담을 넘나드는 담쟁이덩굴.

이미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무슨 학교인지 식별하는 건 포기한지 오래. 그냥 발길 닫는대로 아무 곳으로나

들어가고 돌아보고 있었다. 그러다 발견한 그럴 듯한 풍경. 얼핏 음악당이라는 거 같던데, 단정한 외관이 맘에 든다.

마주보고 선 건물은 '옥스포드 컬리지', 타이완 최초로 세워진 서양식 학교라던가. 문이 잠겨 있어 그냥 한바퀴

외관만 둘러볼 수 밖에, 1880년에 세워진 건물이라는데 굉장히 따뜻한 느낌의 건물이다. 붉은 벽돌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단층짜리 건물에 자연스레 놓인 기왓장들이 맘을 편하게 해주는지도.

건물 두채 사이에 끼어 있는 연못에 비친 음악당의 그림자.

그 옆에서 발견한 정말 신기한 꽃. 노란 꽃잎 사이에서 하얀색 꽃이 다시 피어나 있는 거다. 아마도 저 노란 부위는

꽃잎이 아니라 커다랗게 발달한 꽃받침일 테고 흰 부분이 꽃잎이라고 하겠지만, 원래 그런 거다. 이쁘면 다

'꽃'이라고 불러주고 싶은 게 사람 심리.

내려오던 길, 바닥에서 발견한 귀엽달까 유치한 그림이 그려진 타일들, 아마도 근처 유치원과 초등학교 학생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겠지만 단호한 가위가 살짝 묘하게 생긴 담배의 밑둥아리를 철컥 자르고 있었다.

환호작약하는 가족, 그리고 머리 위에서 환호작약하는 태양의 환호성.



보송보송한 솜털이 햇살에 반짝거리는 때는 바야흐로 3월말. 무슨 벌레의 딱딱하고 안전한 고치처럼 섬세하고

보드라운 꽃잎을 단단히 품었던 꽃망울이 쭉, 봄볕에 잡아째지기 직전이다.

춘래불사춘, 봄이 와도 봄같지 않단 말이 내 입안에서 뒹군지는 고작 몇 년, 이 녀석들은 수백수천년 전부터

변덕스럽고 제멋대로인 인간들의 말따위와는 상관없이 때가 되면 피고 지고. 또 피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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