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스토리로 빠질 줄은 몰랐다. 청소년보호법의 존재로 인해 유명무실한 처벌을 받을 뿐인 아이들의

범죄에 대해서 피해자의 어머니이자 가해자의 선생님인 그녀가 나름의 방식으로 응징을 한다는 식의

이야기가 예고편 따위를 통해 접했던 이야기의 얼개였다. 그 응징이 왠지 풋풋하고 발랄한 식으로

내려지리라는 건, 어른이자 선생님이 어린이이자 학생에게 내리는 벌이리라는 안이한 기대에 더해

주연배우 마츠 다카코의 여성스럽고 선한 이목구비 때문이었던 거 같다.


영화는 계속해서 내달렸다, 이런 내 안이한 예상치를 훌쩍훌쩍 여유롭게 뛰어넘으며. 학생들이 점령한

무질서하고 소란스런 교실을 거닐며 종업식을 진행하는 시종 무기력한 그녀의 이미지도, 그녀의

아이를 죽인 살인자  A와 B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는 순간도, 그 살인자들에 AIDS환자의 혈액을 섞은

우유를 먹였다고 그녀가 폭로하는 순간도, 끝내 막장까지 내몰리는 살인자 두 명의 지옥과도 같은

일상의 묘사도, 그리고 등장인물들 제각기의 고백에서 수시로 번뜩거리는 가학과 살인의 충동까지.


그런 충격은, 물론 조밀하고 탄탄한 스토리 덕분이기도 하겠지만, '어린이', 혹은 '청소년'에 대해

한수 접어두던 사회적인 태도 탓이 큰 거 같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슷하게,

그들을 아직 스스로의 의지와 사고를 통제하지 못하는 판단력 부족한 미완성의 인간으로 보거나,

아직 인간의 덕목이나 인간성을 다 갖추지 못한 한정치산의 존재로 보는 시각이랄까. 덕분에 그들은

'계도'나 '훈육'의 대상으로만 여겨지는 동시에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도 제한된 책임만 지는 거다.


근데 영화에서 그려진 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아이들 중 일부는

작고 어리지만 이미 활짝 피어난 어른, 악인일 뿐이지 꽃봉오리나 씨앗의 무궁한 잠재력을 품은

'청소년'의 이미지와는 전혀 동떨어진 거다. 글쎄, 그런 아이도 있을 수 있겠다 싶다. 아이라고 해서

모두 선하고 순진무구하기를 바라는 건 어른들의 퇴행적인 로망, 자신들 멋대로 꾸며내고 믿고

싶어하는 신화니까. 아이들도 결국 백인백색이라는 사람과 같은 종(種)인 바에야 당연할지도.


영화가 딱히 '어린이는 조그만 어른이나 마찬가지'라고 강변하려는 건 아닌 거 같다. 다만 그런

악마적인 아이의 범죄와 맞닥뜨렸을 때 어디까지 잔혹하고 또 잔인한 복수가 이뤄질 수 있을지

극한까지 내달리고 싶었던 거 같다. 거의 면책에 가까운 특권을 가진 아이들의 악의적이고

의식적인 범죄로 삶이 망가져버린 사람이, 그 아이들의 흉포하고 잔인한 인간적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 반들거리는 눈빛을 마주하고 난다면 어떻게 변할까. 어떻게 복수할까.


두 살인마에게 복수를 마치고, 그녀의 마지막 대사가 굉장히 섬뜩했다. 이제 아무 희망도

남지 않은 절망의 구렁텅이를 느껴봐, 거기서부터 갱생이 시작되는 거야. 아니, 장난이야.

대충 이런 식의 이야기. 절망의 바닥으로 떨어지고 삶이 온통 부서지고 난 이후에는, 갱생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지 않는 폐허만 계속되었다는 그녀의 고백. 그리고 또 너 역시 그런 폐허를

거닐게 될 거라는 처절한 저주. '파리대왕'과 '올드보이'의 교집합, 그 어딘가쯤 이 영화가 있다.



가면의 고백 - 10점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자신의 지난 삶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잔뜩 힘이 들어가기 쉽다.

자신의 지난 사랑, 심지어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말할 것도 없다. 그토록 진실되고 아름답고 뜨거웠던 사랑은

두 번 다시 못 올 거라는 듯이, 상대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또 자신에 대한 상대의 마음이 단색으로 칠해진다.


사실은 아니다. 금송아지라도 껴안고 있었던 듯한 지난 삶은 사실 적지않이 누덕누덕한 채 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하루하루가 모인 것에 불과했으며, 지난 사랑 역시 어거지로 강변했던 단심(丹心)의 모노톤이 아닌

선명하고 흐릿한 스펙트럼 내에서 빨주노초파남보 쉼없이 급변하며-그렇지만 역시 남들과 별반 다를 바 없이-

냉온탕을 거쳤던 거다.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게 그렇게 어렵다. 나의 삶, 나의 사랑 이야기란.


미시마 유키오는 그런 이야기를 한다. '가면의 고백'이란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자신의 삶과 첫사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는 자신의 탄생부터 유년시절, 청년시절에 이르는 성장기를 자세히 묘사하며 동시에 자신의

성 관념이 어떻게 변전해 나가는지, 동성애적 성향이 어떻게 발현되고 자신을 괴롭혀 왔는지 고백한다.


그의 첫사랑은 아마도 동성과 이성, 양자를 나누어 따져야 할 듯 하다. 동성애적 성향을 발견시켜주고 이후

하나의 전범이 되었던 동성의 첫사랑, 그리고 자신의 동성애적 성향과 싸우며 키워나가다 무참히 깨뜨리고 말았던

이성의 첫사랑. 그러니 어쩌면 '첫사랑'이라는 무디고 닳아빠진 단어에는 잡히지 않는 게 그의 복잡다단하고

종잡기도 어려운 첫사랑 이야기, 혹은 첫사랑을 경과하는 그의 심리관찰 이야기다.


아니, 비단 '첫사랑'이란 단어의 문제가 아니다. 이야기라는 게 그렇다. 불연속적이고 중첩적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총보를 악장별로, 파트별로 구별해 채보하는 작업과 같은 게 아닐까 싶다. 덩어리진 채 자신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어렴풋이 느끼기만 할 뿐인 그런 불안감, 초조감, 만족감, 기대감...그런 것들의 카오스적인

혼합물에 제각기 이름을 붙여내고 인과관계의 레시피를 구성해 내는 것. 비록 어느순간 자신이 실제와는 한참

동떨어진 거짓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강한 확신이 들지라도.
 

실제 삶이란 건 정신병자의 읊조림같은 분절적인 자동기술법에 지나지 않거나,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미친년 널뛰듯 하는 조증과 울증의 연속과 오히려 같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너무 위태롭고 위험하다. 사건과

감정의 선후, 인과관계에 대한 명료하고 선명한 정리가 필요한 거다. 자신의 불안정하고 규정불가능한 감정선에
 
규칙적이고 모범적인 법칙을 부여하고 특정한 이름을 붙여내어 가닥가닥 구분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불안스럽도록

구체적인 카오스 덩어리는 그저 하나의 식별가능하고 이해가능한, 그리고 무독무해한 추상으로 변해버린다.



그의 고백은 그런 '가면'을 충분히 의식하고 있다. 너무도 잘 의식하고 있어서, 차라리 그 '가면'과의 대결이라

하는 게 낫겠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가능한 가감없이 철저하게 되새기고 손실없이 전달하고자 한문장 한문장

심혈을 기울여 뽑아낸다. 너무도 무디고 둔탁한 언어와 어휘를 가지고 종횡무진 사방으로 뛰노는 감정선들을

추스려 표현하기란, 거의 잠자리채로 바람을 잡아보겠다고 나대는 꼴과 같을지 모른다. 비록 어떠한 경우에도

그러한 '가면'을 벗을 수야 없겠지만, 잠자리채로 바람을 낚을 수야 없겠지만, 그는 정말 낚아챌 기세다.


그의 삶의 행적과 사고과정을 오늘의 시각에서 아귀가 딱딱 맞도록 시간과 인과에 맞추어 재구성하고 몇가지
 
대표적 감정으로 칠하여 간결하고 이해하기 쉽도록 하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다. 행동하는 그 순간, 심지어

그 이후의 순간까지도 서로 충돌하고 모순되고 중첩되는 수만가지 온갖 단상들이 머릿속에 가득차 윙윙대고

있었음을 힘들여 기억해내고 있다. 거기에는 삶과 사랑을 미화하려는 어떠한 의도도 없다. 단지 자신의 내면에

철저하게 솔직하고자 한다. 그게 그의 '고백'이다.


어떤 면에서, 그는 삶이 마치 모네의 '수련' 작품과 같음을 보이고자 하는지도 모른다. 멀리서 볼 때는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나는 그 형체란 게 사실은 혼란스럽고 무질서한 물감 범벅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굳이 그가 왜 단순하여 아름다울 '사랑'과 '삶'의 궤적을 그토록 세밀하고 적나라하게

들여다 보아 온갖 진창과 같은 감정과 진실들을 떠올리고 말았냐고 묻는다면, 어쩌면 그것은 스스로의 삶과

지난 사랑을 스스로 납득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위한 몸부림일 거라고 대답하고 싶다.



"김 차관은 "나로호는 발사과정에서 1단과 2단분리, 위성분리를 성공했으나 페어링 분리이상으로 위성궤도 진입에는 실패한 것으로 분석됐다"면서 "페어링이 한쪽만 분리돼 남아있는 페어링 무게로 인해 위성궤도에 진입하기 위한 속도를 얻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또 "과학기술위성 2호는 위성은 궤도진입을 위한 속도(8㎞/s)보다 낮은 6.2㎞속도로 떨어져 공전궤도에 진입하지 못하고 지구로 낙하하면서 소멸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뉴시스, 09.08.26)


사실 날아오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날려 보내지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고 삭막해 보이기만 하는 그곳에 가는 걸,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다는 게 본심이었다. 게다가 결국 거기에 도착하게 될 것은 내 전부가 아니라 했다. 거기까지 닿기에는
 
내가 가진 것들이 쓸데없이 많다며, 1단, 2단 두 차례에 걸쳐 내 가죽을 벗겨낸다는 게 그들의 계획이었다. 그들은 몰랐다.

합리나 이성으로 따지고 들면 마냥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기만 하다는 그 '외피' 역시 나를 나이게 하는 그 무엇이었다.


조그맣고 네모난 위성박스, 그건 나이기도 하지만 또 '나'라고 이야기하기엔 너무 작고도 어눌한, 그래서 낯선 것이었다.

그 안에 꾹꾹 눌러담겨 응축된 것들은 정말이지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만 담겨 있었다. 하늘엔 쏘아올려지면 별도 딸 수

있다고, 지상에선 꿈도 꿀 수 없는 것들을 맛보리라던 연구원들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곳에서 나는 뱅글뱅글 무한에 가깝도록 같은 궤도를 돌 뿐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게 로켓으로 태어난 

나의 밥벌이 수단이자, 내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쇼였다.


물론 알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발사대의 믿음직한 팔베개를 빌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로켓이 발사대를 떠나 우주로

향하는 건, 인간에 비기자면 자궁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셈이다.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던 이야기는
 
로켓이란 나고 자라면서 어쨌든 쏘아져야 한다는 거였다, 부서지던 폭발하던 간에. 그렇기에 더더욱 불필요한 것들,

부수적인 것들을 떼어내고 궤도에 돌입하는 것에만 몰두해야 한다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부서지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거추장스런 것들은 모두 제거해야 했다. 허세부릴 시간이 없었다.


생각보다 궤도 진입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방금 '1단 추진체'가 떨어져 나갔다. 사실 좀 웃기는 이름이었다. 이미

수년이나 함께 해온 것들, 무엇이 무엇을 위한 추진체라느니, 무엇이 핵심이고 무엇이 부록이라느니 이야기는 최소한

내가 입에 담을 이야긴 아니었다. 내 몸이 먼저 알고 있었다. 어느새 연리지처럼 꽁꽁 얽혀버린 '나'와 또다른 '나'는

찢어지는 소리를 냈다. 가벼워진 몸이 덜컹, 하는 순간 걸쭉하고 빨간 유액이 조금 흘렀다.


그리고 난 조금, 변했음을 느꼈다.


혼란스러워졌다. 이건 내가 아냐. 내 편할 대로 버리고 취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 알게 뭐야, 어차피 인생 별거 없어.

일단 안착하기만 하면 돼. 궤도에 자리만 잡으면, 그때부턴 딱히 힘들일 것도 없이 편하게 지낼 수 있다구. 그때부터

다시 '나'를 불려나가던 쪼개나가던 알아서 하면 되잖아. 어쨌든 성공한 로켓으로 기록되겠지. 기대를 걸고 있는
 
사람들을 모른 척 할 수도 없잖아. 로켓의 '정명'은 무한궤도를 지키는데 있다구. 일단 살아남고 보는 거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두워서 눈뜨고 어두워서 눈감는 그런 어제같은 오늘, 오늘같은 내일이 계속될 거야.

그래서야 옆에 누가 있던, 안에 무엇을 품고 있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제 더이상 지탱하고 설 든든한 발사대도

없을 거고, 가슴떨리고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 카운트다운도 없겠지. 힘이 다하는 날까지 그저 나로우주센터에

출근부 도장이나 찍으며, 매일 똑같이 바싹 마른 태양열을 씹어삼키며 연명하는 삶 따위.


이건 아니잖아. 발사대에서 밀려나는 건 선택할 수 없는 거라고 쳐도, 최소한 '로켓'에게 가능한 몇 가지 선택지는

남아있어야 하잖아. 화석처럼 굳어진 채 궤도상에 고여버린다는 건 손끝 하나 까딱못하는 미이라나 다를 바가 없다.

그야말로 박제된 천재, 도달해버린 화살, 멈춰버린 시계. 시간이 얼마 없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안간힘을 써

방향을 틀었다. 발끝에서 시작된 진동을 잘 살려 머리 끝까지 고운 웨이브를 그리고 싶었는데, 임하룡이던가

옛 개그맨의 올챙이춤처럼 우스꽝스럽게 움직거린 게 다였다. 실은, 그걸로 충분했다.



[술잔#1] 조각만한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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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한쪽 끝에 서면, 다른쪽 끝이 보일만큼 자그마한 섬에 가보고 싶다.
내가 가보았던 섬들은 모두 너무도 크고, 사람이 너무 많았다. 김한길이 이야기했던가, 북극곰은 다른 곰을 만나면 사랑에 빠지고야 만다고. 평생 한번 만날지조차 기약없는 만남이므로. 그렇게, 조각만한 땅뙈기에서, 술잔과 오른손의 인연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술잔#2] 그녀 앞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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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은 마주섬에서 시작된다. 설레이며 눈을 마주치고, 술잔과 오른손은 서로가 품고 있는 표정과 이야기를 알고 싶어하고. 여전히 스스로의 감정과 상대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채 두손 떨구고 어설픈 사랑.



[술잔#3] 목소리 좀 들려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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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동하면 몸이 움직인다. 몸이 움직이면 마음이 간다.
입밖으로 소리내어 사랑을 말하는 순간 손가락은 술잔에 매료되고 말았다. 당신도 날 보고 있었나요..우선, 술잔 당신의 매끄럽고 후끈한 목소리를 좀 들려줄래요. 우리 목소리부터 익혀나가는 건 어떨지. 손길이 닿으면 갸냘프지만 분명한 술잔의 응답. 말꼬리를 땋기 시작했다.



[술잔#4] 살짝 접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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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술잔은 위험하지 않다고, 냄새와 향으로 알려주고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지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꿈이었던양 떠나버릴 것 같아..오른손은 술잔의 부피와 질감을 확인하기 시작하다. 이 세상에 있었구나, 조각만한 세상에서 병아리오줌만한 인연을 타고. 고마워서.



[술잔#5] 외전. 기어오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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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은 하늘을 찌를듯이 솟아오른 유리산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니미럴 절라 높네.



[술잔#6] 니 이야기를 들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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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내가 되고, 나도 니가 될 수 있었던 소중한 기억들..하루가 하루를 지랄같이 소모시켜도 기꺼이 온몸으로 귀가 되어주는 술잔이 있었기에. 서로의 사용설명서를 꼼꼼이 읽어내리며, 조금씩 마카로니 치즈의 맛을 음미하기 시작하는 사람들. 몇번씩의 구역질과 거부감을 인내한 후에야.



[술잔#7] 어깨 빌려 사람人의 뜻을 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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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휩쓸려 가라앉지 않으려면 댄스댄스댄스. 끊임없이 똑딱이며 빛바래가는 세상 속에서 오른손의 이정표는 술잔. 생기와 의욕을 말려버린채 기어코 삶의 뒷켠으로 내리눌러버리겠다는 시간을 비웃으며 어깨도 걸어보고. 가벼운 스텝으로 하루하루 생을 더해갈 수 있다면. 하루치 삶의 의미를 아침마다 떠올릴 수 있다면.



[술잔#8] 손잡고 가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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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다 힘들면 쉬었다 가기도 하고, 손잡고 가기도 하고.
지겨워서, 힘들어서, 살다가 지쳐 숨이 턱까지 차오르면 손내밀어 이끌어주기도 하는. 어차피 시작해 버린 인생, 최종 목표는 트루 러브라 외치는 술잔과 오른손. 그 치기어린 말과 행동은 한때..아름답다.



[술잔#9] 기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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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기. 허물어지듯 무너지더라도, 두팔가득 받아줄 술잔이 있다면 나중나중에 다시 일으켜세워볼 요량도 생기겠지. 세상이 무거워졌다고 느낄 때 대신 하늘을 빤히 노려봐주는 노랑색눈깔의 술잔.



[술잔#10] 좌우명은 올인(all-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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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디지 못하겠음 뛰어든다. 이리저리 재봐야 답도 안보이고 머리만 아플터. 맷돌에 장렬히 뛰어든 콩처럼 곤죽이 된채 설설 밀려나올지라도, 올인이다. 눈에 보이고 말이 섞이고 심장이 따라간다면. 오른손과 술잔의 이빨과 이빨이 부딪쳐 불똥이 튄다해도, 좌우명은 올인.



[술잔#11] 완전한 밀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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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래길에 도착. 정점에 도달했으니 식도를 타고 내려갈 길만 남은 건가. 혹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속으로..? 완급의 조절, 호흡의 조절. 산낙지마냥 술잔에 엉겨붙은 오른손은 그저 좋댄다. 일생동안 흔치않을 황홀한 충만감. 손을 위한 술잔. 술잔을 위한 손.



[술잔#12]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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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 충실한 게 술잔이라지만, 납득할 수 없는 오른손.
어디갔을까, 아무런 냄새도 풍기지 않고 순식간에 말라붙은 술잔.



[술잔#13] 넌 왜..비어 버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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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에 비견될만한.
넌 왜 비어버렸니.
털썩, 절망한채 바닥에 무너져내리는 오른손.



[술잔#14] 술은 술이로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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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만한 인연이 사그라들고, 잘록한 곡선과 짙은 향을 닮은 술잔을 다시금 어디선가 들어올리겠지만. 지나간 시간과 흘러간 이야기들은 사진첩에 봉인된 채 고이 '버려진다'. 찍히는 순간 죽어버리는 밴댕이같은 사진, 그리고 그속에 담긴 기억들처럼. 달그림자가 비치듯 그대의 마음에 잠시 비쳤던 것 뿐이니..슬퍼할 것도, 그리워할 것도 없다지만. 그래도 한번쯤은 어디선가 오른손의 이야기와 표정을 떠올려 준다면..

술은 눈코입으로 마시고 마음으로 마신다. 그리고 무엇보다...술과 술 사이, 그 비워진 잔 또한 마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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