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문드문 켜지기 시작한 가로등, 성마르게 벌써 환히 밝혀진 네온사인들, 그리고 차분하지만 굵게

실루엣을 각인하는 예니 사원의 미나렛 두 개.

유람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비가 드문드문 오는지라 배를 타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고, 선착장 역시

생각보다 한적하더라는.

이스탄불을 아시아와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세조각내는 건 강이 아닌 바다, 바다 건너 보이는

굵직한 탑은 이스탄불의 전경을 보기에 최적의 장소 중 하나인 갈라타 타워.

고등어케밥을 파는 배일 텐데, 시간이 늦어서인지 장사하던 사람들은 어디 가고 불꺼진 빈 배만 남았다.

간판 왼쪽에 고등어 사진도 붙어있었다. 바게트빵 사이에 구운 고등어를 넣어주는 고등어케밥은 의외로

담백하고 맛있었는데, 비리지도 않고.

예니 사원 앞으로 이중삼중으로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들. 빨강색의 터키 국기가 선명하다.

갈라타 대교를 통과하기 직전, 대교 옆의 계단 통로에 그려진 그래피티들이 뭔가 인상적이었다.

저 눈알이 줄에 걸린 채 튕겨오른 듯한 그림은 아무래도 '낚시바늘 주의' 정도의 의미 아닐까, 여기서

낚싯대를 드리운 강태공들이 많으니 휙 뒤로 낚싯대를 제낄 때 뒷사람 눈에 낚시바늘 꽂히지 않도록

주의하란 뜻 정도 말이다.

커다란 호화 크루즈선들, 저 정도 사이즈의 배면 안에는 슬롯머신이라도 설치되어 있지 않을까.

주로 유럽에서 단체 관광객들이 올 때 저런 크루즈를 이용한다던데 장기간의 배여행도 재미있을 듯.

하늘은 급격히 사위어가고, 희미해서 잘 보이지도 않던 노란 가로등이 점점 강렬하게 불빛을 내쏘았다.

갈라타 탑이 언덕배기를 따라 조금씩 키가 커지는 건물들 사이에서 단연 우뚝 솟은 채 노랑색 실루엣을

뚜렷이 새긴 채 길 잃은 새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미나렛 네 개를 가진 성 소피아, 그리고 미나렛 여섯 개를 삐쭉 세워올린 블루 모스크. 저렇게 열 개의

첨탑이 한눈에 들어오니 무슨 로켓 기지라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셔터를 누르는 사이의 그 짧은 시간에도 하늘은 그 색깔을 휙휙 잘도 바꾸며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물색처럼 맑고 가벼운 느낌의 하늘이었는데 조금씩 어둡고 무거워지는 느낌, 그렇게 두 가지 얼굴을

한 대기가 서로 뒤엉켜 사방에서 멱살잡이를 하고 있는 사이 크루즈선에도 조그마한 어선에도 갈라타

타워에도 평범한 건물에도 불빛이 둥실둥실 떠올랐다.

조금씩 어둠이 짙게 깔리면서 흔들리는 배 위에서 사진을 찍기가 점점 어려워졌지만 보스포러스 해협

양 쪽으로 드러난 풍경들이 차마 혼자 보기 아까운 것들이었다. 온통 불빛으로 휘감아 정신없이 화려한

건 아니었지만 적절한 수준으로 특정 건물에만 임팩트를 준 조명들이 오히려 세련되어 보였달까.

돌마바흐체 궁전. 돌마바흐체 궁전은 톱카프 궁전 대신에 19세기쯤 유럽의 양식을 많이 차용하여

새롭게 지은 궁전이라고 얼핏 기억한다. 다른 것보다 바다쪽 정원에서 조그마한 항구랄까 배를

정박할 수 있는 접안시설이 있어서 바로 선박을 궁전에 이어붙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었다. 그렇게

돌마바흐체를 지나 흑해 쪽으로 가다가 다시 빽, 막연하게 들떠있던 어슴푸레함 대신 완연한 어둠이

내린 이스탄불을 바라보았다.




투르크메니스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터키 이스탄불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거의 하루를 꽉 채운 트랜짓

시간이 생겼다. 6년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이곳저곳을 돌아보다가 마지막에는 역시 보스포러스 해협을 따라

운항하는 유람선,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색에 맞추어 점점 화려해지는 이스탄불의 야경.

보스포러스 대교가 원래 이렇게 조명이 반짝반짝했던가. 다리를 지탱하는 줄들이 촘촘한 거미줄같기도.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 있는 항구 너머, 갈라타타워가 둥실 떠있다.

갈라타 대교 아래 즐비하게 늘어선 가게들 불빛이 바닷물 위로 번져나간다.

갈라타 타워, 스카이 라인에서 우뚝 솟은 채 이스탄불 시내를 굽어보는 것 같다. 타워 위에 올라 내려보는

전망이 탁 트일 수 밖에 없구나 싶다.

갈라타 대교 앞에 있는 예니 사원, 예전에 저 사원 뒷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고 다녔었는데.

배들이 빼곡하게 정박해 있던 이스탄불의 항구, 까맣게 타버린 저녁시간에도 환하게 불밝히고 이리저리

보스포러스 해협을 종횡하는 유람선들.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라 불리는 투르크메니스탄, 수도 Ashgabat는 아쉬하바드라 읽어야 할지 아쉬가바드라

읽어야 할지 스튜어디스들조차 헷갈리던 그런 곳. 아침부터 35킬로그램짜리 출장용 짐을 바리바리 싸느라 테이프

한 롤을 전부 박스포장하는데 써버렸다가, 수하물은 32킬로그램으로 무게가 제한되어있단 이야기에 저 노가다가

결국 아무 쓸데없는 삽질이 되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로 시작된 출장.

모래바람이 낭자하게 사방에 모래부스럭지를 흩날리던 거친 사막의 나라. 땀방울조차 붉다던 적토마의 조상인

명마 '아헬테케'를 품고 있는 투르크메니스탄. 자줏빛 석양은 특히나 마음을 흔들었더랬다.

투르크메니스탄의 자동차 번호판. 다섯 주를 의미하는 문양 다섯 개는 각 지역의 전통적인 카펫 문양에서 따온

거라고 한다. 카펫박물관도 있고, 심지어 카펫부-외교부, 지경부처럼-도 있다니 카펫은 이들에게 굉장히 큰

의미를 담고 있는 듯.

오래 된 차들과 소형 버스들, 러시아에서 넘어왔다는 이 낡고 고풍스런 차들이 번쩍거리는 BMW나 벤츠와 같이

도로를 달리는 아쉬하바드의 시내.

여전히 공산주의의 내음이 짙게 풍기는 이곳은 형식상 민주주의를 빌어 정권의 부자세습이 이루어진 나라.

러시아 풍의 군복입은 군바리 아저씨가 누군가를 태운 지나가는 차에 경례를 붙여올리는 순간.

전기가 꽁짜, 물도 꽁짜. 세계 4위의 가스 잠재부존량을 갖고 있는 부유한 나라라 그런지 졸부짓을 좀 해놨다.

촘촘이 늘어선 가로등에 커다란 건물마다 간접조명은 빠지지 않아 밤이 되면 더욱 화려해지는 야경.

러시아, 중앙아시아 지역의 전통음식이라 하면 샤스리크, 돼지고기나 양고기 꼬치구이를 말한다. 아무리 일이

바빠도 현지음식은 제대로 먹어야 되지 않겠냐는 간절한 마음이 담긴, 양 통구이 샤스리크 맛집을 묻기 위한

나의 그림 설명. 이넘의 나라는 러시아어나 투르크어가 주로 쓰일 뿐더러, 영어로 '양 통구이'를 뭐라 해야할지

참 난감하더라는. 생떽쥐베리가 양 그림을 그려달라는 어린왕자를 만났을 때의 고충을 이해했다.

현지 국영방송에 살짝 나온 내 얼굴. 행사를 마치고 잔뜩 지쳐서 돌아온 호텔 방에서 문득 틀었던 티비 속에서

이번 행사 스케치가 한 오분여에 걸쳐 나오는 걸 보고 나름 보람찼다는. 살짝살짝 나오던 얼굴을 찾는 재미 역시.

그리고 잠깐, '투르크의 배한성' 가이드 압둘라를 앞세워 돌아보았던 그들의 초대대통령 묘소. 독재자에 대한,

대통령에 대한 그들의 애정은 너무나 대단해서 거대한 모스크를 지어 기리고 있었다.

마지막날 투르크메니스탄 정부에서 주관했던 만찬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문득 눈에 띈 반달. 투르크도 이렇게

와 보았구나, 그래도 행사 잘 마쳤구나, 며칠씩 두세시간만 자며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만감이 교차하던 순간.

황량하고 헐벗은 투르크메니스탄을 떠나 때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터키 이스탄불에 당도하니 모든 게

풍요롭고 윤택해 보인다. 활짝 열어둔 창문도, 창문틀 위의 작은 꽃화분도.

터키는 요새 석류주스가 유행인 듯. 골목마다 석류를 잔뜩 쟁여두고 바로 짜서 내어주는 주스가게가 성업중.

시지도 않고 새콤하면서 산뜻한 게 아픈 다리 쉬어가며 한잔 쭉 들이키기에 좋더라는.

6년전 터키를 여행할 때 필름카메라를 들고 간 게, 그래서 아껴찍은 데다가 잘 못 찍어 사진이 몇 장 없는 게 

너무 아쉬웠었다. 게다가 내 사진을 찍어 주겠다며 열심히 셔터를 눌러줬던 여행속물 한국인 아저씨는 그 뒤로

연락을 끊고 도망쳐 버려서 더욱 아쉬움이 컸었는데, 한을 풀듯이 잔뜩 셔터를 눌렀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보아도 이쁘게만 보이는 이 도시, 이스탄불은 아무래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곳.

비가 촉촉히 내리고 나니 더욱 산뜻한 색깔을 발하는 까페 앞의 테이블 & 의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달리는 크루즈 위에서 예니 사원을 바라보다. 그때, 저기서 그림그리던 할아버지와

대판 싸웠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랜드 바자르 뒤쪽의 꼬불꼬불한 골목을 헤매던 기억도 떠올리고.

그때는 너무 비싸서, 아니 돈이 없어서 그저 밖에서만 구경했던 갈라타 타워에 올라가 볼 수 있었음에 뿌듯해하며,

저 갈라타 대교 아래 어디메쯤에서 팔던 고등어케밥의 맛은 그대로일지 궁금해하며.

그렇게 이스탄불에서의 남은 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무사귀환. 투르크메니스탄과 터키에서 찍은 사진들은

조만간 정리해서 올리겠지만, 우선 출장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인사도 할 겸.




생각보다 많이 지쳤던 거 같다. 계속 죽은 듯이 자다가 루밀리성이 얼핏 보일 때쯤 잠시 정신차렸다가, 다시

이스탄불 오토가르에 올 때까지 전혀 대비없이 자버렸다. 셀축(Celcuk)-혹은 에페스(Efes)-에서부터 12시간

내리 달려 이스탄불까지. 버스들이 전부 껍데기는 벤츠인데 알맹이는 그냥 시골버스다. 차냄새 쿠리쿠리한. 

메트로 찾아서 악사라이까지 왔더니 또 친숙한 삐끼 아저씨를 한 명 달아버리고, 걍 주절주절 계속 달고

다니다가 비오는 걸 기화로 걍 떼내버렸지만 이젠 미안하지도 않다.


비가 오는 이스탄불은, 공기조차 달콤했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어느 입구..저 너머엔 황금빛 응가통이 있었던 듯 하다.>

체크인하며 Shit이라 내뱉는 서양아가씨에 동감하며 짐풀곤 바로 박물관으로. 모자가, 알고 보니 용도가

디게 다양하다. 우산으로도 쓸 수 있었다. 소피아라는 덴마크 아가씨 만나서 말 좀 섞다가 박물관의 알렉산더

대왕의 석관이랑 최초의 평화조약을 함께 보고...또...여기 와서 많이 멍청해졌음을 느낀다, 들으면 바로

까먹으니. 여튼 몇 가지 멋졌던 것들을 기억하고 숙소에서 인터넷에서 좀 썼다.

<돌마바흐체의 후원이던가, 흑해에 바로 면한 이 뒤뜰에서 맞은 시원한 바닷바람과
빗물인지 바닷물인지 사방에 비산되던 촉촉한 물방울들.>


동양호텔은 사람도 넘 많고-밖에 없고-인터넷이 거의 비슷한 속도로 나온단 점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국같이 익숙하고 둔감한 것이랄까, T4 라인 타고 돌마바흐체 가는데 현지 유학생을 만났다. 지나치게 친절하고

치근덕대는 터키 남자들때문에, 여자끼리 여행하기엔 참 안 좋은 곳이라는 그녀의 이야기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공감하기도 하고, 터키에서 공부한다는 그녀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하고.

돌마바흐체는 눈이 좀 편했달까. 대략 눈으로 좇으며 걸어다닐만한 정도의 화려함. 그 음양감과 생생한 조각의

흔적들이 모두 그림이라니. 쳇, 짭퉁이다. 결국 울룩불룩한 게 아니라 평면이란 말이지. 껌딱지처럼.
일단의 패키지 여행객을 만났는데, 가이드가 정말 별로였다. 전혀 자신의 일에 열의가 안 느껴진달까. 그냥, 그래

한번 훑어봐라~ 라는 식의 싸늘한 표정과 건조한 말투, 식은 눈빛. 시간과 정신이 담긴 문화재를 설명하는 일에,

비록 남의 나라 것이라 여겨서 그럴지 몰라도, 그런 식으로 대하는 건 정말 별로였다. 이스탄불 왔더니 역시

한국인이 많다. 가이드의 째려보는 눈빛을 느끼면서도 그의 설명을 조금조금 귀동냥하다가, 배낭여행객은 절로

가라고 하도 눈치주며 구박하는 통에 걍 니들끼리 놀아라~ 속으로 그러고 말았다.

탁심까지. 갈라타탑까지. 갈라타대교까지 내처 걸었다. 명동같은 거리에서 첨으로 가이드북에 나왔던 음식점을

찾아 맛을 보기도 했고, 구시가에서 잠시 길을 잃고 버벅거렸는데 아마도 그건 그 직전 예니사원서 만났던

적반하장의 할배 탓일 거다. 무지 친절한 척하다가 갑자기 삐져버리고. 아직 영어로 싸우는 건, 혹은 따지는 건

잘 못하겠다. 그저 착하고 모범적인 영어만 배워왔으니 원. 그림도 신통찮더만, 맘껏 구경하래서 옆에서

그림그리는 거 구경하고 한점 두점 꺼내서 보여주는 거 잠자코 구경했다가 갈랬더니, 그림 하나 안산다고 난리...

걍 말 안통하는 사람한테는 그저 미안하다고 하고 치워야겠다.


일요일이어서 원래 문을 안 연 거였는지, 아님 갑작스레 8시가 넘으면서 어두워진 것에 놀란 건지, 좁은 시커먼

골목에 인적도 없고 아무 생명의 기운도 없고, 아잔 소리가 괴기스럽게 골목을 뒤흔들더닌 길가에 널린 고양이들이

음흉해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헤매도 대로는 커녕 사람 한 명 안 보이는데 덜컥 쫄아서 어느순간 뛰기 시작했는데,

문득 아야소피아의 어여쁜 미나렛이 눈앞에 서있는 모습에 맥이 탁 놓였다.

무슨 페스티발 같은 게 오늘부터 아야소피아 앞 광장서 있었나보다. 우리네 장터같이 구멍가게들이 열리고,

경찰들이 분주하고, 사람들이 바글바글. 좀 구경해주다가 영 지치고 목도 마르고 다리도 아프고. 오렌지를 까먹고

싶단 생각이 불쑥 들었는데, 오렌지주스말고 생 오렌지는 절대 안 판다는 싸가지 아저씨에서, 여섯개에 오천원을

부르는 사기꾼식끼, 그런 고난과 역경 끝에 겨우 6개를 1$에 손에 넣었다. 어찌나 기쁘던지, 공연을 보며 오렌지를

까먹겠다던 원래 생각과는 달리 공연은 보는 둥 마는 둥 계단에 앉아 순식간에 다 까먹고 숙소로 들어와버렸다.





아침 6시부터 움직이기로 누나들과 약속했었는데, 암만해도 의욕이 지나쳤었던 것 같다. 전날 이스탄불을

떠난다는 여행자로부터 론리플래넷 흥정하고 정보도 얻고 하느라 늦게 잤던 탓도 있고, 아무리 그래도 6시는

너무 이르다는 이야기도 있고 해서 밥먹고 8시 넘어서야 여행 시작.


히포드롬이라 해서 원형극장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다 허물어지고 남은 건 카르낙신전에서 들고 온 오벨리스크와

몇 개 벽돌찌끄러기들. 이 누님들 사진찍기를 얼마나 좋아하던지, 1000장 찍기가 목표라 했건만 이 속도라면

며칠도 안가 1000장쯤은 우습겠다 싶다. 디카를 사들고 왔어야 했는데 그럴려면 노가다를 몇주쯤 더 해야

했을 테니 여행 자체가 틀어졌을지도 모를 일, 어쩔 수 없었던 셈이다.

블루모스크는 안쪽의 거대한 돔과 타일로 이루어진 벽면이 인상적이었다. 전혀 이슬람 문화와 접촉이 없었던 내가

처음 밟은 모스크였다. 독특한 건물 모양, 그리고 파스텔풍의 색감이 참 부드럽다는 느낌..그 옆에 서 있는

아야소피아는 오백년전부터 계속 개축된 건물이라는데, 천장의 화려한 당초무늬라거나 꼬불하게 이어지는

그림같은 글씨들이 워낙 독특하면서도 매력적이어서...목이 아픈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바라보게 만들었다.

회칠이 벗겨지면 다시 덧칠하는 정도에서 끝내며 계속 '현재'에 소용되는 건물로 쓰이던 그 건물들이, 이제는

모두 볼썽 사나운 파이프 따위로 얼길설기 엮인 스피커와 감시카메라, 조명같은 것들로 포박당한 채 그저

과거의 유물로 고정되어 있었다. 더이상 생명이 이어지지는 않는 '관광지'의 느낌.

바로 옆에 붙어있던 아야소피아..하기야 소피아..라고도 하고, 소피아 대성당이라고도 하고, 그 다양한 명칭은

보르포러스해협에 자리해 아프리카와 유럽, 그리고 아시아의 요충을 잇는 이곳 이스탄불의 종교적 위세의 격변과

성쇠를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애초 모스크였다가, 잠시 교회로 개축되었다가, 다시 회칠되어 모스크로 쓰였던

그곳은, 이제는 활짝 무장해제된 채 각국의 다양한 종교인들을 모두 받아들이고 있었다.

우상숭배가 금지된 이슬람 교리에 따라 모스크 내에는 아무런 조각상이나 상징물이 없다. 다만 이슬람 세계의 중심인

메카의 카바 신전을 지시하는 구조물이 있으니, 사진의 조형물이 바로 그 방향을 나타낸다. 이슬람교도들이 기도를

할 때는 모두 이 곳을 향해 기도를 해야 한다고 하며, 메카의 방향을 정확히 잡기 위해 고대 이슬람의 수리지리학이

발달한 것이라고도 한다.


터키 물가는..그럭저럭 한국과 비슷한데, 숙박비가 싼편이다. 5~7$이면 하루밤 묵을 수 있으니..근데 입장료가

열라 비싸다.(지금은 아마 화폐개혁을 했다고 알고 있지만..) 아야소피아 입장료도 15,000,000 터키쉬리라(혹은

15,000bin). 오전의 지하궁전은 10,000터키쉬리라(혹은 10,000bin). 거기서 000을 빼면 대략 한국의 가격으로

환산이 가능했다. 그치만 예산 빠듯한 갓 군필자에겐 너무 혹독한 느낌을 안겨주던 그곳의 화폐 단위.

지하궁전의 온전함과 메두사의 뒤집어진 머리는 과거에도 그런 단절이 없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악의로던, 혹은 무의도적이던. 마치 거대한 연못을 지하에 파놓은 듯, 으슥하면서도 살짝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감도는 그곳에서 수백수천년동안 물에 찰박거리며 씻기우고 있던 메두사의 뒤집어진 머리조각이라니.

마침 지하의 그곳에는 우리 일행밖에 없이 한산했던 터라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도 더욱 큰 반향을 가지고

사방에서 메아리쳤고, 지하 특유의 냉기가 목덜미의 땀을 앗아갔던, 그런 특별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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