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성 소피아 성당 옆으로 조금 걸으면 나타나는 지하저수조, 비잔틴시대에 지어졌다는 이 지하
구조물은 당대의 수도 시설이었다고 한다. 천오백년전의 구조물이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실제로 볼 만한 건 지하저수조를 떠받친 빼곡한 기둥들 중 주춧돌을 메두사
형상의 조각상 머리로 받쳐놓은 몇 개의 기둥들.
조명이 기둥마다 비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까만 먹장 아래에 숨어있는 지하 저수조,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안에서처럼 웅얼웅얼 번진다. 물방울이 더러 심하게 떨어지는 곳에서는 아예
우산을 쓰고 가는 앞사람의 어깨가 이미 젖어있었다. 예레비탄 사라이, 터키어로 물에 잠긴 궁전이란
뜻이라더니 정말. 물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일명 '눈물의 기둥'. 다른 기둥들이 아무런 장식없이 그저 까끌까끌한 표면을 가진 것과는 달리
이 기둥은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유난히도 물이 많이 흘러내리는 기둥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 문양 자체도 왠지 굵고 끈적한 눈물을 흘리는 눈알처럼 생기기도 했고.
이렇게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물들이 정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걸 알고 일부러 기둥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것이라고 하던데, 이 '눈물의 기둥'은 워낙 물이 많이 흘러내려서인지 아님
처음부터 그렇게 다듬은 건지 굉장히 매끈하고 미끈미끈하다.
메두사의 머리 부분이 거꾸로 물구나무선채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사람들도 몰려있고, 동전들도
몰려있던 곳.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 더이상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과 괴수들이 진지하게 믿어지지
않던 시기였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봐라, 메두사 머리와 옛 신전의 조각들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않느냐. 봐라, 그 때 진지하게 메두사를 무서워하던 건 신화와
실제를 구분 못하는 무지몽매함 때문이었을 뿐이란 말이다. 아마 그런 걸 웅변하고 싶던 거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메두사 머리를 백팔십도 거꾸로 돌리나 구십도만 틀어버리거나 거기서 거기다.
굉장히 부리부리하고 선명한 눈초리에, 온통 크고 두툼한 코와 입술, 머리의 컬까지 메두사는
비록 고개가 꺽였을지언정 여전히 풍기는 압박이 범상치 않다. 비록 비잔틴인들이 신화세계를
무시하고 청산한다는 의미로 신전을 부수고 메두사의 머리를 이렇게 다뤘지만, 의연하려는
겉표정과는 달리 은근히 속으로 쫄지 않았을까. 마치 오늘날 성황당이니 부적이니 따위에
코웃음치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거시기하듯이.
이 곳에 저장된 물이 깨끗해서 마실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보기 위해 비잔틴인들은
이렇게 물고기를 길렀다고 한다. 지금도 저 아래에 온통 꼬물대는 물고기들은, 어쩌면 그때부터
천오백년동안 이곳에서 자라온 물고기 일족의 후예 아닐까. 천오백년이면, 저 물고기들이 환경에
적응을 거듭하여 결국에 눈이 퇴화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을까.
지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메두사'란 이름의 까페가 바로 옆에 있었다. 이전 시대에 무서웠던 걸
괜시리 툭툭 치면서 자신의 당당함이나 용감함을 과시하는 건 비잔틴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메두사가 날뛰던 시절의 공포가 거의 완전히 무독해진 채 지하궁전보다도 훨씬 아래에 파묻힌
오늘날에는, 아마도 과학 이전의 비합리적 믿음이나 광신도적 신앙,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나
마음가짐, 체벌도 교육의 일종이라 여기는 마음가짐 따위를 지하궁전에 처박은 채 의연한 척
해야 하지 않을까.
구조물은 당대의 수도 시설이었다고 한다. 천오백년전의 구조물이 아직도 옛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실제로 볼 만한 건 지하저수조를 떠받친 빼곡한 기둥들 중 주춧돌을 메두사
형상의 조각상 머리로 받쳐놓은 몇 개의 기둥들.
조명이 기둥마다 비치고는 있지만 대부분은 까만 먹장 아래에 숨어있는 지하 저수조,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가 동굴 안에서처럼 웅얼웅얼 번진다. 물방울이 더러 심하게 떨어지는 곳에서는 아예
우산을 쓰고 가는 앞사람의 어깨가 이미 젖어있었다. 예레비탄 사라이, 터키어로 물에 잠긴 궁전이란
뜻이라더니 정말. 물 속을 걷는 기분이다.
일명 '눈물의 기둥'. 다른 기둥들이 아무런 장식없이 그저 까끌까끌한 표면을 가진 것과는 달리
이 기둥은 독특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유난히도 물이 많이 흘러내리는 기둥이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건지도 모르겠고, 저 문양 자체도 왠지 굵고 끈적한 눈물을 흘리는 눈알처럼 생기기도 했고.
이렇게 기둥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물들이 정화되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그걸 알고 일부러 기둥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은 것이라고 하던데, 이 '눈물의 기둥'은 워낙 물이 많이 흘러내려서인지 아님
처음부터 그렇게 다듬은 건지 굉장히 매끈하고 미끈미끈하다.
메두사의 머리 부분이 거꾸로 물구나무선채 기둥을 받치고 있었다. 사람들도 몰려있고, 동전들도
몰려있던 곳. 비잔틴 시대에 이르러 더이상 그리스로마 신화의 인물들과 괴수들이 진지하게 믿어지지
않던 시기였다는 걸 반증하는 것 같다. 봐라, 메두사 머리와 옛 신전의 조각들을 이렇게 함부로
대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지 않느냐. 봐라, 그 때 진지하게 메두사를 무서워하던 건 신화와
실제를 구분 못하는 무지몽매함 때문이었을 뿐이란 말이다. 아마 그런 걸 웅변하고 싶던 거 아닐까.
그런 점에서는 메두사 머리를 백팔십도 거꾸로 돌리나 구십도만 틀어버리거나 거기서 거기다.
굉장히 부리부리하고 선명한 눈초리에, 온통 크고 두툼한 코와 입술, 머리의 컬까지 메두사는
비록 고개가 꺽였을지언정 여전히 풍기는 압박이 범상치 않다. 비록 비잔틴인들이 신화세계를
무시하고 청산한다는 의미로 신전을 부수고 메두사의 머리를 이렇게 다뤘지만, 의연하려는
겉표정과는 달리 은근히 속으로 쫄지 않았을까. 마치 오늘날 성황당이니 부적이니 따위에
코웃음치면서도 속으로는 괜히 거시기하듯이.
이 곳에 저장된 물이 깨끗해서 마실 수 있는 정도인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보기 위해 비잔틴인들은
이렇게 물고기를 길렀다고 한다. 지금도 저 아래에 온통 꼬물대는 물고기들은, 어쩌면 그때부터
천오백년동안 이곳에서 자라온 물고기 일족의 후예 아닐까. 천오백년이면, 저 물고기들이 환경에
적응을 거듭하여 결국에 눈이 퇴화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을까.
지상으로 다시 올라왔다. '메두사'란 이름의 까페가 바로 옆에 있었다. 이전 시대에 무서웠던 걸
괜시리 툭툭 치면서 자신의 당당함이나 용감함을 과시하는 건 비잔틴 시대나 지금이나 똑같다.
메두사가 날뛰던 시절의 공포가 거의 완전히 무독해진 채 지하궁전보다도 훨씬 아래에 파묻힌
오늘날에는, 아마도 과학 이전의 비합리적 믿음이나 광신도적 신앙, 반민주주의적인 행태나
마음가짐, 체벌도 교육의 일종이라 여기는 마음가짐 따위를 지하궁전에 처박은 채 의연한 척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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