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대릉원에 도착했을 즈음 기대와는 달리 겨울비는 한창 기세를 올리던 중이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 너머 첨성대와 봉긋한 선대의 능들이 찢겨지는 게 아닌가 싶도록 수천수만의 빗방울이 드세던 그 때.

 

 

켜켜이 내려앉은 시간이 무겁게 가라앉은 경주만큼이나 수백년을 산다는 천개의 가지를 가진 나무가 묵직하게 다가왔다.

 

이 땅을 누르고 있는 건 천년의 시간만이 아니었다.

 

시간이 이상하게 기록되긴 했지만, 1번! 번호표를 뽑아 호떡을 사간다는 군산의 '중동호떡'으로 아침 요기거리를 하겠다고

 

갔는데, 이렇게 위치가 요상한데 있을 줄은 몰랐다. 군산항에서 '째보선창 삼거리'까지 와서 우회전, 인적도 드물고 인가도

 

별로 눈에 안 띄는 소소한 목공소나 작업장들이 늘어선 길을 가며 "여기가 정말 맞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할 즈음.

 

네이버 지도로 찾아보니 심지어 본점 말고 '나운점'도 있나 보다.

 

 이렇게 생긴 가게가 뙇. 문을 닫았나 했더니, 건너편 건물에서 영업한댄다.

 

 그리고 똬뙇. 대리석 건물이 반짝반짝. 이것이 바로 호떡으로 지은 건물의 위용인가.

 

제법 넓고 깔끔한 인테리어의 실내. 색색의 의자가 특히 눈에 띄었다.

 

 12월 중순, 크리스마스를 두주 남겨둔 시점인지라 계산대 위엔 자그마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놓여 있어 분위기를 돋운다.

 

 아침 시간인데도 벌써부터 호떡을 만드시느라 여념이 없으신 아주머니들. 쉼없이 밀대로 반죽을 밀고 한줌씩 떼어내는 작업중.

 

그리고 여기는 그렇게 떼어낸 반죽을 팬 위에 넣고 기름기 없이 담백하게 구워내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호떡 사진이 없는데,

 

기름기 하나도 없이 담백하고 찰진 게 맘에 들었다. 언제든 군산까지 먼 걸음할 일이 있으면 한번 찾아볼 만 한 듯.

 

 

한개 700원, 다섯개 3,000원이던가. 저렴한 가격인데도 번호표 뽑아가며 사람들이 호떡을 찾으니 저렇게 번듯한 건물을 지었겠지.

 

 

 

 

 

 

 

군산이란 곳은 항구에서 시작하는 도시의 한쪽 끝에서부터 다른 쪽 끄트머리까지, 내처 걸어도 한두시간이면 관통하고도 남는

 

그런 조그마한 소도시다. 지방을 다니다보면 서울이란 데가 얼마나 큰 도시인지 새삼 실감할 수 있는데, 군산 역시 그렇다.

 

그런 군산에서 바다를 굽어볼 수 있는 곳에, 항구 가까운 곳에 있는 작지 않은 공원이 있다. 공원보다 더 눈에 띄던 건,

 

해방후 피난민들의 판잣촌이었던 '해망동'의 고불고불한 골목길과 그 둥그스름한 실루엣들.

 

 

잔설이 남아있던 월명공원 앞의 주택들. 그리고 썰렁한 겨울 날씨만큼이나 썰렁하게 헐벗은 겨울나무들.

 

 

공원이라곤 하지만 야트막한 산을 따라 오르내리는 길을 그대로 품고 있어서, 살짝 트레킹 코스라는 느낌이 강하다.

 

공원이 품고 있는 능선 한쪽 비탈, 그러니까 바다가 내려보이는 쪽에는 말 그대로 바다가 바라보이는 동네, '해망동'의

 

골목길이 고스란히 남아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궤적을 기록하고 있다.

 

 

공원의 한 모퉁이에는 전망대도 세워져 있고, 군산의 유명한 독립운동가 아저씨의 동상도 서 있고.

 

새초롬한 댓잎이 소담히 그러쥐고 있는 새하얀 눈뭉치는 꽤나 묵직해보인다.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난롯불을 쬐며 담배를 태우며 맥주를 마시며 고스톱을 하고 계신 공원 안 매점에는

 

겨우내 어르신들의 온기를 책임질 까만 연탄이 집게에 코를 꿰고는 얌전하게 자리잡았다.

 

 

매점 옆에선 어디서 터져나온 수돗물인지 아니면 약숫물인지, 쉼없이 흘러넘치는 물줄기가 만든 자잘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해망동의 전경. 파노라마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봐야 자동으로 크기가 설정되고 마니 좀 그렇다.

 

 

이렇게, 나무 전봇대가 서 있고, 가장자리가 쥐에 파먹힌 듯 얼기설기한 슬레이트 지붕이 지친 듯 퍼져버린 풍경.

 

볕 한줌 쬐이기 쉽지 않을 좁다란 골목길에 찍힌 몇개 되지 않는 발자국, 여전히 눈밟는 소리가 뽀드득, 그런다.

 

 

어느 슬레이트 처마를 따라 쭉쭉 뻗어나간 고드름들. 가늘고 길게 뻗은 고드름, 수정고드름 발을 만들기에 딱이겠다.

 

 

한국전쟁 때 스러져간 영혼들을 위한 위령탑. 오래 묵은 나무 그림자를 따라 잔설이 고집스레 남았다.

 

 

그리고 군산의 조형탑. 커다란 등대 같기도 하고, 꺼지지 않는 횃불을 형상화한 거 같기도 하고.

 

 

조그마한 조각공원도 품고 있었는데, 그 입구 언저리에서 날개를 활짝 편 채 손님을 맞는 반짝반짝 갈매기 한마리.

 

 

군산에도 '구불길'이라는 트레킹 코스가 개발되었나 본데, 그렇게 따라 걷다가 저런 허름하지만 운치있는 벤치에 앉아

 

잠시 숨도 고르고 귤도 까먹으며 하얀 입김 풍성하게 내뱉으면 좋겠다.

 

 

꾸역꾸역 이어지는 산들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 그렇게 다 걸어보려면 제법 시간도 오래 소요되겠기에

 

반절 정도만 돌아보는 걸로 만족했다. 꼭 다 돌아야 맛이 아니니, 쉬엄쉬엄 걸으며 얼음길에 이리 빼뚤 저리 빼뚤 했던 걸로

 

겨울철 산책의 묘미는 다 즐긴 걸로.

 

 

 

 

 

선릉역 사거리에서 선릉쪽으로 가는 길, 왼켠으로 보면 은근 술집과 음식점들이 몰려 있는 골목이 하나 나오는데

 

그 중에서 몇 번 다녀보니 그때마다 맘에 들던 일식 이자카야집 하나. '탄'(TAN)이다.

 

 

 마침 갔던 시간대가 손님이 없던 시간대여서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제법 곳곳에 아기자기한 소품들도 있고, 사케 술병들이 쪼르륵 늘어서 있는 모습도 귀엽고.

 

 

 

 

 

그리고 아사히 생맥주에 더해서 썬토리 프리미엄 생맥주가 있단 것도 무척무척 맘에 든다.

 

 

 

 

 주방에 이렇게 짧은 커튼이 있긴 하지만 충분히 조리 과정을 볼 수 있을 만큼 개방되어 있다. 깔끔한 내부 모습.

 

 

 하나 아쉽달까, 화장실이 남녀 공용이어서 사람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남자나 여자나 모두 불편한 상황이 연출될 수도.

 

 

지하에 있는 가게 출입문, 입구부터 정겹게 생긴 남녀와 고양이들이 손님을 맞이하는 자세가 딱 됐다.

 

 그러고 보면 저 아저씨랑 이 이자카야 주인 아저씨랑 생긴 게 닮은 거 같기도 하고. 딱 봐도 착하고 순진하게 생기셨다.ㅎㅎ

 

 

 

맥주 말고도 위스키도 파는데, 어라, 이 위스키는 국내에서 잘 보지 못한 건데. 선토리 위스키, 선토리 프리미엄 맥주와

 

같은 회사에서 만들어진 위스키인데 부드럽고 향긋하면서 그리 독하지 않아 좋아하는 위스키다. (많이 마시면 독하다..)

 

 문득 눈이 간 수저통, 대나무를 짜깁기해서 만들어진 건가, 대나무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나무 재질임엔 틀림없다.

 

 

 

 

 

* 메뉴가 궁금하다면.

 

 

나쁘지 않은 가격대, 식사도 가능하고 안주도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물론 일본식 이자카야에서 가능한 메뉴들로.

 

 

* 위치가 궁금하다면. 

 

 

이자카야 탄 (TAN)

 

전화번호 : 02-562-5841

주소 : 서울시 강남구 역삼동 696-4

 

 

 

 

군산 경암동 철길마을에서 야요이 쿠사마를 만나다.

에 이어, 철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두마리 고양이, 턱시도 고양이랑 얼룩이 고양이 뒤를 쫓아다니며 찍은 사진들.

 

평상 아래 숨어서 지그시 이쪽을 경계하고 있던 턱시도 고양이 녀석.

 

 

조금 경계심이 풀렸는지 지푸라기 가지고 콧구멍을 후비는 대담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하고.

 

 

 

날 좀 봐주소, 놀아주소, 하는 용맹무쌍한 눈빛까지 쏴주시는 녀석.

 

그런가 하면 얼룩이 녀석은 어찌나 새침하던지, 카메라만 들이대면 도망가기 바쁘던.

 

그래도 철길마을의 좁다란 철길 위를 오가며 지나는 사람도 좇아보고, 골목통 양쪽의 세간살이나 쓰레기들을 부벼보며 의기양양.

 

어디선가 수도가 터졌는지 쏟아져나온 물이 꽁꽁 얼어버린 빙판에 고개를 박고는 사이좋게 얼음을 빨기도 하고.

 

못내 아쉬운 채로 바이바이를 하고 돌아서려는 참에도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못한 이 녀석.

 

턱시도랑 얼룩이 두 녀석 모두 힘든 겨울 잘 지내고 길냥이지만 건강하게 오래 살면 좋겠다.

 

 

 

 

 

 

군산의 유명한 '경암동 철길마을'.

 

기찻길 옆 오막살이~ 라는 노랫말이 무색하도록, 그 옛날옛날 한옛날에나 있었을 거 같은 기찻길 옆 오막살이들이

 

여전히 고스란히 살아있는 곳. 옛 군산역에서 페이퍼코리아 회사까지 원자재 및 제품을 실어나르던 화물열차길인데,

 

놀랍게도 1944년에 개통된 이 노선이 2008년 6월에야 폐선이 되었다고 한다. 좀더 일찍 알았다면 더 좋았을 텐데.

 

좁은 일차선 철길 옆으로 기차가 다니는 풍경은 어땠을까. 지금은 이렇게 철길에 다닥다닥 붙여서 온갖 잡동사니들을

 

늘여놓았다. 과거에도 그 자투리 공간을 주민들이 어떻게든 활용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는데 덕분에 영화촬영지나

 

출사지로 명성을 날렸다고 한다. (근데 왜 난 전혀 몰랐을까..)

 

이제 열차가 지나다닌지도 오육년이 흘렀고, 철길 옆으로 다닥다닥 어깨를 겨루는 허름한 슬레이트 건물들 지붕을 따라

 

떨어진 낙숫물들이 철길 위에 고드름을 만들었다.

 

지나는 사람도 흔치 않은, 칼바람이 심하던 12월 중순의 어느 평일날에 찾아든 사람을 보고 강아지가 신났다.

 

 

 이런 식으로 약 일 킬로미터 이어지는 단선 철로, 그리고 그 양쪽으로 늘어선 슬레이트 가건물과 엉성한 외벽 건물들.

 

 

 그리고 페인트칠이 벗겨져 나가는 철문, 그야말로 '우드득 우드득'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은.

 

 

 얼음이 꽁꽁 얼어서 손수레 안은 온통 작지만 두꺼운 빙판이 되어 버렸고, 어디고 물방울이 떨어지던 곳은 고드름이 익었다.

 

 빨간 기본칠에 더해 초록색 페인트칠을 했던 슬레이트 벽면에 자글자글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딱 보자마자 생각났던 건,

 

최근 루이비통과 콜라보레이션 작업중인 '도트의 여왕'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들. 시각에 문제가 있어 세상 모든 물체가

 

점들의 배열로 보인다는 그녀의 작품 세계랑 저렇게 균열진 벽면이 묘하게 닮은 거 같다.

 

 

 

야요이 쿠사마와 루이비통의 콜라보레이션, 이런 식의 디스플레이를 두고 혐오스럽다는 사람도 있었던 거 같지만,

 

그녀의 집요하고 강박적이랄 수도 있을 작품들은 어찌됐건 굉장한 시각적 임팩트를 남기는 건 틀림없어 보인다.

 

특히나 위에 스크랩한 야요이 쿠사마의 작품 중 마지막 작품을 보고 나서 다시 보면, 정말 그렇게 보이지 않나. 나만 그런가;

 

기찻길 철로 위에는 발이 걸리적거리지 않게 아예 나무로 판판하게 덮어버린 구간이 태반이고, 아예 이렇게

 

길 옆에 초막이랄까, 지붕 달린 평상이 하나 지어져 있기도 했다.

 

 

샛길들,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채 곤죽이 되어버린 선거 홍보물. 18대 대선이 아무리 시끄러웠다고 해도 이런 볕이 덜 드는

 

공간에까지 커버하지 못하는 대선이었으니 무슨 좋은 결과를 바라랴 싶기도 했다. 실제로 그랬고. 

 

 

 

아마도 이전에는 철길 건널목이 있었을 골목통, 지금은 거침없이 차들이 달리는 길을 지나 계속 철길 따라 가는 길.

 

흘러내릴 듯한 슬레이트 지붕이 켜켜이 쌓인 무게를 이기지 못했는지 야트막한 집이 한층 더 낮아보인다.

 

 

덧대고 이어붙이고 다시 쪼아맨 그물망 뒤로는 개인지 닭을 기르던 공간 같은데, 지금은 하얀 눈만 망사를 뚫고 한가득.

 

어느 녀석이 참 꼼꼼히도 그려놨다. 누군가의 이름, 그리고 볼록하니 풍요로워보이는 하트가 두근두근.

 

바로 옆에 이어지는 학교가 있길래 슬쩍 들어갔다가, 무려 20년짜리 타임캡슐이 줄줄이 묻혀있는 곳을 발견.

 

구암초등학교 졸업생들이 이십년 후라고 하면 대충..서른 초반인가. 별 거 없다 흥.ㅋ

 

좀더 가까이, 철길마을의 널판지와 얼기설기 엮인 벽면 너머를 들여다 보고 싶었다. 잔뜩 녹슬어 언제 마지막으로 열렸는지

 

알 수 없는 자물통들이 대개 더이상의 접근을 막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흔적들. 지금도 여전히 텃밭을 일구고 고추를 말리고 빨래를 널어놓는다더니, 지난 여름에 썼을 호미가 널렸다.

 

아리랑 티비에서 취재를 했던 적이 있는지, 그래피티 아래 아리랑 로고가 보인다.

 

아마 텃밭을 일구다가 흘렸던 땀방울을 닦을 수건을 널어두고 싶으셨던 걸까. 조금 부서지고 이그러지긴 했지만

 

여전히 수건 몇 개 걸어두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자바라 옷걸이.

 

 

 

흔친 않지만 2층 이상 되는 건물들도 철길 옆으로 바싹 어깨를 겯고 있었는데, 발이 숭숭 빠질듯 보이는 사다리는 참.

 

철로에 머리를 대고 아예 누워버린 국화꽃 화분 위에 하얀 눈이 이불처럼 덮였다.

 

 

안전하려나, 싶을 만큼 붉게 녹슬어버린 양철판으로 지어진 (그것도) 2층 집. 카드로 만든 집처럼 위험해 보이는데..

 

 

눈이 흠뻑 언덕처럼 올라서 버린 어느 곳에서 불쑥 머리를 세우고 있는 맨드라미. 살짝 색이 바랜 느낌의 도돌도돌 맨드라미.

 

그러다가 평상 밑에서 눈을 피하고 있는 꼬맹이 블랙앤화이트 고양이를 만나기도 하고.

 

'당신이 불편해 했을 거란 생각도 했었죠' 라는 시적인 문구가 적힌 장독대도 만나고.

 

그 근처에서 또 발견한 문구 하나. '그래서 다음 만남은 편안하게'. 누가 누구에게 남긴 메시지일까.

 

또다른 문구가 남겨진 게 없나 찾아보는데 계속 뒤를 졸졸 쫓아오는 고양이 녀석.

 

물기도 모두 날려버린 채 바싹 마른, 얼어버린 행주가 빨래집게에 찝혀서는 너울너울 그림자를 흔들어 주었다.

 

다 타버린 살색의 연탄이 구멍을 송송 드러낸 채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던 경암동 철길마을변 풍경.

 

 

군산에 가면 꼭 들러보아도 좋을 곳. 가는 방법은, 군산 이마트를 찾아가면 바로 그 입구 맞은편에서부터 시작된다.

 

 

 

 

눈이 펑펑 쏟아지다 못해 눈보라가 맹렬하던 서울의 하늘과는 달리, 나몰라라 새파랗기만 하던 가평의 하늘.

 

클림트의 '키스' 작품을 천조각 퍼즐로 짜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어렵다. 반복적인 문양과 미묘한 색감의 변주.

 

 

강아지들이 눈보면 완전 신나서 펄쩍펄쩍 정신줄 놓고 나댄다더니, 정말 그 끝을 보여준 누렁이 한 마리.

 

문득 얌전한 틈을 타고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뭘 알았는지 늠름하게 카메라를 응시해주신다.

 

 

마당에 놓인 테이블 위에 눈이 두껍게 내려앉았다가 슬슬 녹고 있다.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적용해 촬영해 본 몇 장의 샘플들. 꽤나 재미있는 효과라서 자꾸 써보게 된다.

 

 

이런 느낌, 뭔가 거칠게 붓질을 한 느낌같기도 하고 굵은 윤곽선을 따라 형체만 잡고 나머지는 뭉개버린 느낌이 색다르다.

 

침실 옆에 깔린 핑크빛 커튼이라거나 비즈 장식, 그리고 굵은 매듭이 잡힌 매무새가 이쁘다.

 

 

마당에 주차되어 있던 차들과 외바퀴 수레. 엊저녁까지 눈을 치우는데 썼는지 눈이 가득 담긴 채 바닥엔 장갑이 한 짝 널부러졌다.

 

 

계속되는 일러스트 샷들. 펜션 옆 진입로를 비추는 등 주변에 소복하니 내려앉은 하얀 눈과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들.

 

 

눈이 녹고 다시 얼어붙은 바닥에 갇혀버린 단풍잎 한 장.

 

 

그리고, 펜션 앞으로 흐르던 비실거리던 개울 위론 꽁꽁 두껍게 얼음장이 얹혔다. 제법 겨울 풍취가 동한달까.

 

 

더위가 한풀 꺾이던 9월, 커튼을 너풀거리게 만들던 살랑바람이 마냥 상쾌하기만 하던 그 때의 안면도.

 

서해의 바다 풍경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바다맛이랄 게 없는 굉장히 지지부진해 보일 수도 있지만, 야트막한 갯벌을 품은

 

그 어슴푸레한 분위기는 또 나름의 맛이 있지 싶다. 바다라는 게 꼭 시퍼러둥둥 깊고 진한 느낌만이 아니라는 식의 웅변.

 

 

새까맣고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졸졸졸 사람들 발꿈치를 따라다니는 게 어찌나 귀엽던지. 까만 눈이 반짝반짝.

 

그러면서도 겁은 많아서 막상 정면으로 사람을 마주보진 못하고 한발 떨어져서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간밤에 생겨난 이 모래무더기들은 어느 게가 싸지른 똥무더기들인고.

 

 

꽃지해수욕장 인근의 해변을 잠시 산책하다가 배가 고파졌으니, 안면도에 왔으면 역시 대하.

 

 

이쁜 선홍빛으로 익어가는 새우들의 팔딱거림이 잦아들고, 파라솔을 가게 앞에 늘어세운 가게 안쪽 깊숙히 비밀의 문이 보인다.

 

 

새우깡 따위 던져주는 거 받아먹고 사는 비둘갈매기가 아니라, 진짜 바다냄새 풀풀 풍기는 포스를 풍기는 갈매기떼들.

 

어디로도 통하지 않는 이 나무 사다리는, 어느 배에서 떨어져나간 걸까. 머리를 바다에 처박고 한없이 뭔가를 그리는 듯 하다.

 

 

바닷물이 들고 나면서 키가 커졌다 작아졌다, 빨갛고 파란 물풀들이 나무처럼 모래밭에 버티고 섰다.

 

그러고 보니 멀찍이 배 한척이 지나고, 여기는 뭔가 바다 속에 초원이나 숲처럼 녹색의 띠가 사방으로 얽혔다.

 

 

 

 

여름에 갔던 제이드가든, 어이없게도 들고 갔던 카메라 배터리가 불과 삼십여분만에 엥꼬 나는 바람에 허우적대다가

 

아쉽게 돌아와버렸지만, 그래도 몇 장이나마 찍은 사진이라도 올려두는 게 낫겠다 싶어서.

 

여느 수목원과는 달리 나름 유럽 스타일의 정원을 만든다고 했던가, 꽤나 아기자기하고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어떻게 보면 골프장 조경만큼이나 신경써서 만들어진 구릉이나 평지, 그리고 연못들의 배치들이다.

 

 

산들이 죽죽 다리를 뻗은 사이로 움푹 들어간 골짜기 안쪽 깊숙이 이어지는 제이드 가든의 산책로.

 

 

슬슬 따라 올라가다가 제이드 가든의 끄트머리, 하늘 정원이던가, 올라왔던 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산바람이 시원했던.

 

 

이런 느낌의 풍광이 발 아래로 펼쳐지던 곳.

 

 

 

내려오는 길, 간당거리는 배터리를 흔들어가며 쥐어짜낸 마지막 몇 장. 이쁜 꽃들이 곳곳에 무더기무더기 피어있더라는.

 

 

흐벅지게 피어난 꽃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벌들, 가끔 불쑥 들이밀어진 카메라에 놀란 듯 윙윙거리며 성을 내기도 하던.

 

 

빨리 따뜻한 여름이 돌아오면 좋겠다..따뜻한 햇살 아래 푸릇푸릇한 풀빛으로 싱싱한 풍경이 벌써부터 그리워지니 원.

 

 

 

 

 

강릉 앞바다가 고스란히 내려다보이는 호텔. 대체로 경포해수욕장이나 그 옆의 사근진해수욕장에 인접한 호텔/모텔들은

 

바다쪽 오션뷰와 경포호쪽 마운틴뷰 중에 하나를 골라잡게 되는데, 이 곳 같은 경우는 높이나 위치나 딱 바다 옆이다.

 

창가 밖 테라스에 나가 아래를 굽어보면 용궁민박집도 보이고, 담백하고 고졸한 기와지붕과 색색으로 널린 빨래를

 

몽창 삼켜버릴 듯한 파도가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밀려들어오고 빠져나가고.

 

비치 하우스라고 적힌 간판의 '스'를 가만히 보면 나름의 센스랄까 미감이 느껴져서 훈훈하기도 하다.

 

해안도로와 바다 사이, 갈수록 쓸려나가며 좁아지기만 한다는 모래톱에 바닥을 뉘이고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파랗고 벌겋고 희끄무레한 단층 민박집들이 쪼르르 늘어섰다.

 

 

 

이리저리 창밖으로만 둘러봐도 속이 탁 트이는 동해바다 풍경.

 

다음날 아침, 졸린 눈 부비며 테라스로 나가 게으르게 몇 방 찍어본 일출 사진. 날이 흐려서 조금 찍다가 말았지만.

 

언제고 이런 풍경을 가진 방이라면 와서 머물고 싶다는 생각. 몸이고 마음이고 금세 충전될 거 같다.

 

호텔방을 나와 잠시 해변가를 산책하다 눈에 띈 들꽃 한 무더기. 11월 중순이니 제법 추웠는데 지지 않았다.

 

지지 않은 건 노랑 꽃잎들 말고도 싱싱한 젊음들 역시. 저러다 따뜻하게 덥혀진 방에 들어가면 바로 뻗겠지만서도.

 

아무래도 겨울 바다란 건, 이렇게 휑한 게 정상이다. 일말의 로맨스나 낭만을 꿈꾸지만 이내 차갑게 몸이 식고 마니까.

 

 

조금 차로 내달려 강릉초당순두부마을을 가다가 만난 텅빈 들녘. 어느새 산너머 가라앉는 해가 단말마의 비명을.

 

뙇. 하고 내지르다.

 

바다를 옆에 끼고서, 잠시잠깐의 침묵도 존재하지 않도록 파도소리가 우르릉거리며 맥놀이 중인 곳이기도 하지만.

 

살짝살짝 변주되며 쉼없이 이어지는 파도소리가 어느 순간 먹먹하게 사라져버리는, 그런 순간이 찾아오는 곳이기도 하다.

 

 

 

 

 

 

강릉, 묵었던 호텔의 주인 아주머니에게 별 생각없이 "맛있는 칼국수 근처에 없나요", 라 물었더니 냉큼 알려주신 곳. '해궁'이란

 

곳의 푸짐한 해물칼국수. 아무래도 바닷가라 그런지 온갖 해산물이 그득그득.

 

아침을 든든히 먹은 후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경포호 주변에서 드문드문 목격되는 네발 자전거를 따라 대여장소로 뙇.

 

핸들이 심플하고 단단하니 이쁘게 생겼다. 게다가 스티어링 휠이 작아서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회전감.

 

경포호 옆의 공터에 여기저기서 자전거와 네발자전거..사륜마차를 주차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분들이 보인다. 추위를 막을

 

비닐 차양이 씌워진 것도 있고 그냥 날로 벗겨진 것도 있고.

 

달리기 시작, 운전하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지만, 경포호가 생각보다 큰 호수라는 걸 금방 깨닫게 된다.

 

호수 옆에 살짝 주차해 놓고 사륜마차 전신샷. 앞에만 비닐차양을 위로 걷어올리고 삼면을 두꺼운 비닐로 막았더니 그럭저럭.

 

그러고 허난설헌의 생가로 빠지는 샛길을 달려 버렸다. 원래 호수 둘레길은 다소 안정적인 평지였는데, 다리 하나를 넘어

 

경포호에서 백미터 정도만 떨어지면 바로 나타나는 게 허난설헌의 생가. 오르막내리막이 제법 힘들고 어렵지만 그래도,

 

보통 사륜마차는 절대 도달하지 않는 곳에 와 버렸다는 뿌듯함.

 

 

사륜차를 한쪽에 슬쩍 세워두고 설렁설렁 돌아보고. 이미 바람이 차갑고 입김이 하얗게 새어나오는 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몸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고, 종아리는 살짝 기분좋을 만큼의 통증이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다시 허난설헌 생가 뒷켠의 해송림 사이 오솔길을 내달리는 길. 아까 경포호에서 이쪽으로 올 때는 내리막이라서

 

엄청난 속도로 오솔길을 육박해왔는데, 다시 돌아가는 길은 (당연하게도) 오르막. 꽤나 헥헥거리며 페달을 밟았다.

 

 

샛길에서 다시 호숫가 둘레길, 공식적인 사륜차의 코스로 복귀하기 직전.

 

찬 바람이 씽씽 불어도 굳이 이 사륜차를 타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눈에 띄었다.

 

제 궤도에 올라 좀 편하게 달려볼까 하다가 문득 옆에서 눈에 띈 꼬불꼬불하고 좁다란, 한눈에 딱 보기에도 마구마구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는 흥미진진해보이는 길. 물 위에 다리처럼 놓였는데 이리저리 배배 꼬였는 것도 재밌어 보이고.

 

그래서 다짜고짜 진입. 그렇게 또다시 사륜차는 옆길로 새 버리고. 생각만큼 길은 좁아서 사륜차 한대가 꽉 끼는 듯 했다.

 

그 와중에 뭐 재미난 게 있나 싶어 뒤를 따라온 다른 사륜차 한 대. 더구나 저건 6인승이어서 휠베이스가 더 길었는데,

 

덕분에 일정 이상의 꼬불꼬불한 코너를 만나면 전부 내려서 자전차를 들어올려야 했다.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오신 중년부부셨는데 어쩌자고 따라오셔서는.

 

그래도 중간에 차를 돌리고 이리저리 움직일만한 비교적 넓은 공간이 나와서, 슬쩍 주차해두고 요리조리 구경도 좀 하고.

 

호숫가 한 복판에 이런 나무데크의 다리가 고불고불 이어지는 데다가 그 길에 꽉 껴서 달리는 사륜차도 재미있었다.

 

다시 정상 경로로 복귀. 그러고 보니 길 중간중간에 조각상도 보이고, 허난설헌의 오라비인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의

 

장면들을 묘사한 조각들도 보인다.

 

목 좀 축이고 가라며 만들어둔 음수대의 모양이 재미있다. 입을 쩍 벌리고 선 개구리 두 마리.

 

한바퀴를 도는데 한시간이면 느긋하고 유유자적하게, 더러는 딴 길로 새가면서 달릴 수 있는 듯 하다.

 

타기 전에는 뭐 특별한 게 있겠어, 싶다가도 생각보다 경포호 주변으로 샐 만한 곳도 있는데다가 기본적으로

 

두 발로 페달을 저으며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가 주는 쾌감이 진하다.

 

 

 

 

강릉에 가면 꼭 들르게 되는 커피 포레스트 바이 테라로사, 경포 해수욕장에서 순긋 해수욕장으로 가는 해송숲 옆에

 

슬쩍 숨어있는데, 그렇게 좁지 않은 건물 앞 주차장이 온통 차로 가득하다.

 

벽난롯불이 이글이글 열기를 내뿜는 1층의 공기가 2층짜리 높은 천장의 카페 건물을 지긋이 덥히고 있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다소 어둑한 와중에도 중간층에 걸려 있는 인형이 눈길을 잡는다.

 

 

까페 라떼랑 아포가토, 커피를 붓기 전에도 이미 초코시럽이 촉촉하게 쿠키랑 아이스크림에 젖어들었다.

 

 

바닷바람에 치이긴 했겠지만 아직 해송림의 푸른 빛이 살아있던 11월, 햇살이 문득 봄인양 하던 잠시지간.

 

시원하게 유리창으로 구분된 야외 테라스, 겨울 바람과 얄포름한 겨울 햇살이 자유로이 드나는 공간처럼 보인다.

 

 

 

까페에서 책도 보고 뒹굴대다 보니 어느새 짧은 겨울해가 까무룩하니 바닷속으로 잠겨버리고 까페 역시 어둠에 잠기다.

 

 

까페 입구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찻잔과 찻잔받침들이 반짝반짝 금빛을 번쩍이며 늘어서 있기도 했고.

 

 

도심의 이러저러한 까페들과는 달리 넉넉한 스탭들의 공간과 위아래로 즐비하게 늘어선 커피 원두나 찻잔들이 여유롭다.

 

(아마 이건 서울과 지방의 땅값 차이가 크게 작용했겠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더욱 활활 불타오르고 있는 벽난로의 화염이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사실 열기는 그다지.

 

떠나기 전 까페 건물 앞에서 노랑불빛이 일렁이는 유리창들을 한 장 담았다. 해송림 너머에서도 슬몃슬몃

 

드러나보이던, 보석을 담아둔 유리상자같이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모습의 까페.

 

 

 

 

 

 

 

트리가 공간 한가운데 떡하니 자라난 까페, 잠시 앉아 노닥거리던 중.

 

문득 트리를 따라 펜을 슥슥 끼적거리다가 장난삼아 엉성한 트리 하나 완성.

 

 

 

아무래도 벽면의 이 장식이 가장 맘에 드는 까페.

 

 

카메라의 화이트밸런스와 세팅을 이리저리 조정해가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들이대 보기도 하고.

 

 

 

송글송글 피어오른 잎사귀를 얼마나 블러블러하게 표현해야 이쁘려나 화분 하나 갖다놓고 이리저리 찍어보기도 하고.

 

 

 

@ 커피와 사람들.

 

모처럼 찾은 인사동, 길이 꽁꽁 얼어붙은 탓에 걷기도 힘들고 공기조차 차갑게 호흡기를 긁어내리며 들이마셔지는 느낌이라

 

가나아트스페이스니 무슨무슨 갤러리니 등등 눈에 띄는대로 일단 들어가서 체온을 보충, 그리고 설렁설렁 구경하다 다시 밖으로.

 

 

그러다 보니 이런 조각보 전시도 예기치 않게 구경하기도 하고, 생활한복이니 도자기니 사진전이니 등등, 예기치는 않았지만

 

예상했던 것만큼 쏠쏠한 재미가 있는 인사동 나들이가 되었다.

 

 쌈지길이 이렇게 내려다보이도록 높은 곳까지 한층한층 차근하게 구경하며 옆 건물의 갤러리를 돌아보기도 하고.

 

 기와지붕에 하얗게 눈이 내려앉은 고즈넉한 풍경 너머로 질척한 뻘밭에서 이리저리 배회하는 사람들.

 

 새하얀 눈송이를 머리 위에 지고 있는 장독대 4인가족이 흘낏 훔쳐보는 쌈지길의 번다함과 퓨전스러움은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슬쩍 스며들듯 찾아온 조용한 까페. 아무래도 메인로드 양옆의 까페들이나 전통찻집은 늘 바글바글대는 것 같았는데

 

이렇게 조용하고 나름 테이블간 거리도 아늑한 곳이 있었구나 싶다.

 

 

 

왠지 요새 크리스마스는 어영부영 지나버리는 느낌이지만 그즈음의 이런 장식들은 한철이라 더 이쁘게 느껴지는 거 같다.

 

 

 

 

그다지 길지 않은 하루 해가 그렇게 또 가고. 창 너머 비스듬한 옆집 지붕 위에는 에어콘 환풍기가 일렬로 늘어선 채

 

'홍콩'반점의 뿌연 형광등빛을 한겨울 얼어붙은 눈무더기처럼 이고지고 버텨낸다.

 

 

 

 

 

 

 

한파가 몰아닥친 2012년의 끄트머리,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느껴지는 추위가 한결 더 심해진 건 틀림없는 듯

 

연말 대목이 예년같지 않다는 푸념이 사방에서 들리더니 이태원프리덤의 이태원 역시 비슷하게 쎄한 분위기.

 

바람막이용 비닐 너머 괜찮은 비스트로 겸 까페 건물과 가로수에 칭칭 감긴 전등이 부옇고 앙상하게 드러나고,

 

마치 벽면을 타고 기는 덩굴손처럼 유리창 위에서부터 스물스물 늘어뜨려진 빨갛고 파랗고 노란 꼬마전구 불빛이 커튼처럼 드리웠다.

 

치킨집 천장에 장식된 세계 각국의 국기들. 홍콩을 국가라고 하긴 그렇지만 여하간 홍콩의 깃발도 보이고.

 

추위에 손이 곱아 아무리 손을 불어도 따스한 감각이 없어서 카메라고 뭐고 가방에 넣으려던 차에 눈에 띈 그래피티 하나.

 

왠지 2012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이라 눈에 더 잘 띄었는지도 모르겠다. '영에서 시작', 뭔가 리셋의 의미가 담긴 거 같기도.

 

 

어쨌거나 이제 모두 '작년'에 찍은 사진일 뿐.

 

아래와 같은 실수는 하지 않는 2013년이 되도록, 영에서 다시 시작~*

 

 

 

 

 

 전날 눈이 엄청 내렸던 십이월의 어느 날. 춘천으로 내달렸다.

 

 

 가져갔던 NEX-5R의 일러스트레이션 필터를 사용해서 찍어본 사진.

 

 생선들이 주렁주렁 내달린 춘천 엠비씨 안의 이쁜 까페 알 뮤트, R. Mutt 앞에 차를 대고 주변 산책.

 

 코카콜라의 빨간 자판기 앞에 새하얀 백곰들과 물개들이 주르르 엉덩이에 코를 박고 늘어섰다.

 

 까페 옆의 살수송수구, 는 총 여덟개나 되는데 그 위에 색색깔의 번호표를 붙여두었다. 오호라. 이쁘네.

 

왠지 천경자 류의 화려한 원색과 남국의 풍취가 묻어나는 조각이 까페 입구에 서 있었지만 일단은 스킵.

 

 우선은 이렇게 새파란 하늘을 품고 있는 공지천 너머 닭갈비집까지 쉬엄쉬엄 걸으며 좀 바깥공기를 마시기로.

 

 거의 형광색을 띈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새파란 하늘이 수면에 고스란히 내려앉았다. 아..실력이 나부랭이라.

 

 눈이 슬쩍 녹은 가로수길, 사람들이 많지 않아 호젓하게 그리고 질퍽하게 한걸음 한걸음.

 

다리 옆에 오리배가 뜨는 선착장 가까이엔 온통 얼음이 꽁꽁 얼어붙었다.

 

 방금 지나온 가로수길을 한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온통 하얗게 눈이 덮였고.

 

 

 담배를 꼬나문 아빠, 손길이 새털같은 엄마, 그리고 쪼꼬만 아기까지 눈사람가족을 지나쳐.

 

 꽝꽝 얼어붙은 강과 눈이 번쩍이는 얼음으로 변한 강둑길은 경계가 모호할 지경.

 

그리고 춘천엠비씨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일쩜오 닭갈비던가, 맛있다는 집에 드디어 도착~

 

춘천식 닭갈비답게 양배추와 야채가 많고 푸짐하더니, 밥을 이렇게 돌돌 말아서 볶아주신다. 신기하기도 하고 맛도 있고.

 

다시 알뮤트로 돌아오는 길, 조각공원에 있는 모자상 앞으로 찍힌 발자욱은 마치 저 둘이 찍어둔 거 같기도 하고.

 

 

어느새 깜깜해진 저녁무렵, 아까까지는 채 눈에 띄지 않던 다리 위로 색색의 불빛이 빙판위를 비춘다.

 

 

 

오리배 한 척 뜨지 못하는 공지천의 두꺼운 얼음로 미끄러지는 선착장의 네온사인 불빛들.

 

그리고 알뮤트에 도착했더니 그새 확 바뀐 풍경이라니. 까맣게 어둠이 내려앉는 동안 여긴 오색 불빛이 둥실 떠올랐다.

 

 

풍차도 있고 곰도 있고 눈사람도 있고.

 

 

춘천엠비씨에서 크리스마스 창작트리 공모전을 했다던가, 가장 참신했던 건 크리스마스 탑.ㅎㅎ

 

 

아까 줄줄이 엉덩이에 머리를 파묻고 있던 녀석들이 이젠 제자리를 잡았나보다. 아까가 더 귀여웠던 거 같기도 하고.

 

 

 

 

 

 

 

 

이천에 유명한 쌀밥정식집들이 많지만, 대개 큰길가에 나있고 '전통'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그런 외지인용 맛집 말고,

 

동네에 거주하고 있는 이천에 사는 사람들이 주로 찾는다는 쌀밥정식집이 있다길래 알음알음 가봤었다.

 

 

딱히 '맛집'이라고 인증한다거나 추천하려는 목적이라기보다는, 나중에 혹시 오다가다 이천에 들르게 되었을 때

 

어디 갈까 고민하기 전에 한번쯤 다시 스스로 떠올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러니까 이건, 내 기억력을 믿지 못한

 

결과물이랄 수 있겠다.

 

 

 

처음에 하나씩 나오는 에피타이저들을 여유롭게 찍으며 잠시, 이번엔 깜빡하고 먼저 먹어버린 후 빈그릇을 찍는다거나 따위

 

멍청한 짓은 안 할 수 있겠다 기대했었지만. 늘 그렇지만 한정식은 서서히 피치를 올리며 음식을 서빙하다가 어느 순간

 

뙇, 하고 한상 가득 반찬들을 벌여두는데, 그쯤에선 결국 사진 찍기를 단념하고 에라 모르겠다, 먹자, 는 심정이 되는 거다.

 

 

실내 공간은 깔끔하고 조명도 창호문을 응용한 듯 제법 운치있지만, 그렇게 번잡하고 '나 전통음식점이유'하고 대놓고

 

티내는 모양새는 아니다. 입구쪽에 전시된 각종 담근술들이 인삼뿌리라거나 더덕이라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품고 섰다.

 

 정식을 시켰는데 보쌈도 푸짐한 쌈야채랑 같이 솔찮이 나오고.

 

 

 대체 이렇게 테이블다리가 휘어지도록 나오는 음식들은 어떻게 담아야 하는 걸까, 가뜩이나 초점거리도 긴 렌즈를

 

갖고 갔던 터라 곤혹스럽기 짝이 없던 상황.

 

 

 에라 모르겠다, 벌떡 일어나서 상을 내려다보며 찍었지만 여전히 맘엔 들지 않는다. 무려 삼사십여가지의 반찬그릇을

 

어떻게 담느냔 말이다. 다행히 반찬이 조금씩 나와서 남기는 반찬에 대한 미안함은 방지할 수 있었고, 맛있다 싶은 반찬은

 

한두번 더 달라고 해서 해결.

 

돌솥에 나온 쌀밥은 덜어내고 물을 부었더니 치익- 소리를 내며 이렇게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다. 뜨끈뜨끈한 숭늉.

 

가격도 이 정도면 저렴한 편인 듯 한데, 다만 음식점이 위치한 곳이 그냥 동네 한귀퉁이 정도라는 느낌이랄까.

 

'특'은 대체 어떤 메뉴가 더 추가되는 건지 못 물어봤지만, 아마도 반찬이 더 추가되는 거겠지. 소고기 반찬 같은.

 

 

 

 

 

 

제2롯데월드를 열심히 건축 중인, 여러모로 문제가 많은 채로 강행 중인 이 건물을

 

풀샷의 스윙으로 날려버리겠다는 듯한 포즈의 역동적인 해머 던지기 선수.

 

 

 

 

 

 

얼마전 드디어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기 위한 박물관, 단어가 좀 이상하지만 '박물관'이 생겼다는 기사는 봤었다.

 

독립공원 내에 지어지기로 했다가, 광복회 같은 단체에서 '격이 다르다'며 건립에 반대했다던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문제를

 

단순히 '일본 제국주의'의 만행 vs '피해자 한국'의 구도로만 보는 한계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생각했던 사건이었다.

 

 

어쩌면 좀더 깊숙하게는 '전쟁' 상황에서 '여성과 아이'들에게 가해지는 국가 폭력의 문제,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의 문제까지

 

볼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여성', '인권' vs '전쟁'시 증폭되는 남성성의 문제, 그게 본질인지도 모른다. 한일간의 국가간

 

문제가 아니라.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공간에 붙은 이름은 무척이나 명확했다.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가는 길은 참, 참담하도록 허술하고 허름했다. 제대로 된 표지판 하나 없어 종이로 전봇대에 붙여놓은 화살표가 전부.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판이 그나마 화살표를 가리고 있어서 눈 크게 뜨고 돌아보지 않고는 찾기도 쉽지 않은.

 

일본에 대고 국가 배상을 해라 말아라, 한국 정부는 떠들지만 말고 이런 기억의 장소부터 제대로 챙길 일이다.

 

 

드디어 나타난 간판. 늦은 가을, 혹은 초겨울의 날씨에 붉은 단풍이 서렸다. 근데 아무래도 '박물관'이라는 단어가 좀.

 

박물관 건물 전경. 독립공원 내에 입주를 포기하고 찾은 곳이 홍대입구에서 멀지 않은 이 곳의 가정주택이었다고 한다.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얼마전 트위터에서 '미디어몽구'님이 앞장서서 모금운동을 펼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할머니들 수요집회 다니시거나

 

외부 활동 다니실 때 쓰시라고 기증된 차량도 볼 수 있었다. 모금한 분들의 이름이 하트 모양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던 핑크빛 차.

 

건물 귀퉁이에 조그맣게 있는 입구.

 

마침 수요일이어서, 수요시위를 마친 오후 세시부터 관람하러 들어갈 수 있었다. 보통은 오후시간만 개관.

 

입구를 들어서면 나비들이 날아오르는 동영상이 쉼없이 돌아가는 벽면의 설치물, 그리고 매표소.

 

카드 사용이 불가하며 일반인은 3,000원, 청소년은 2,000원, 어린이는 1,000원.

 

지하 1층, 1층, 2층으로 구성된 전시공간은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담고 있었고,

 

개별 전시공간은 유기적인 이야기로 잘 엮여있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아쉽게도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었다.

 

입장료를 내면 티켓을 받는데, 매일 다른 할머니와의 인연을 맺게 된다고 한다.

 

11월 21일, 홍강림 할머니와의 연을 맺었지만, 이 분은 이미 스러져가신 다른 많은 할머니들처럼 세상을 뜨셨다.

 

"일본 정부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데,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이 그대로 증거입니다!"라고 외치시던 분들.

 

유일하게 촬영이 허용된 곳은 2층의 소녀상. 비어있는 의자 옆에 두 주먹 꼭 쥔 소녀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이 깜박이지도 않고 응시하고 있는 곳은, 수요집회의 영상. 할머니들이, 지지하러 온 사람들이 확성기의

 

웅웅거리는 소리를 머금고 일본 정부에 외치고 있는 영상이었다. 위안부의 존재조차 여전히 부정하는 그들을 향한.

 

슬픈 듯 분노하는 듯, 아니면 차라리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눈빛. 어깨에 앉은 새 한마리.

 

의자가 두 개, 앉은 사람은 하나. 저 소녀가 혼자 진창같은 삶을 살아오다 진실이 알려진 게 고작 1991년이다.

 

이십년이 넘어가지만, 저 옆자리에 앉아서 함께 해야 할 사람들의 수는 적기만 하다. 일본 정부나 한국 정부를 막론하고.

 

작년인가, 헌법재판소에서 그간 한국정부가 필요한 노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획기적인 판결을 내렸다던데, 바뀌려나.

 

2층에서, 금지되어 있음을 알면서도 한 장 굳이 찍고 말았다. 이게 뭐냐하면,

 

위안부를 상대하는 군인들에게 지급된 콘돔이다. '돌격'이라고 쓰여진 콘돔...돌격이랜다. 끔찍한 표현.

 

 

정신대, 처녀 공출 따위 여러 표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따옴표까지 포함해 '위안부'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위안부'라는 표현 자체가 남성의 시각에서 쓰이는 표현이기 때문에 따옴표 안으로 넣었다고 하는데,

 

정확히는 "군대(국가 폭력)에 의한 집단적/조직적 강간"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2층 테라스의 추모관. 하나둘 세상을 뜨시는 할머니들이 벽돌 하나하나를 비석삼아 쉬고 계셨다.

 

나와 연이 맺어진 홍강림 할머니, 누군가 놓고 간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벌어졌다.

 

그리고 박물관 앞뜰. 날이 좋으면 이곳에서 문화행사도 열고 담소도 나눌 수 있다고 하는데, 이날은 찬바람만 머물렀다.

 

돌아나오는 길. 굉장히 먹먹해진 무거운 마음으로 나오는데, 입구 겸 출구인 곳 앞에서 나비떼가 확 번져갔다.

 

그리고 들어갈 때 미처 보지 못했던 돌무더기 한 줌. 어찌 보면 장수를 기원하는 거북이같이 생기기도 했고,

 

그 위에 묵직하게 얹힌 돌멩이들 하나하나가 왠지 위안부 할머니들의 장수를 기원하는 거 아닐까 싶어서.

 

나도 돌 하나를 얹어놓았다.

 

찾아가는 길, 그리고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관련 정보 다시.

 

 

*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 주소 :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 39-13 (월드컵북로11길 20)

 - 개관시간 : 13-18시 (화-토, 수요일은 수요집회 후 15-18시)

 - 홈페이지 : www.womenandwar.net

 - 전화 : 02-365-4016

 

 

 11월의 바다, 이런 추운 날씨에도 꽃마차는 경포 해수욕장 근처에 서서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 포장막 안과 밖으로 울긋불긋한 조화들이 샛노란 마차 색깔과는 잘 어울려 보인다.

 

확실히 바다 근처에서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바람 덕분에, 소라도 팔고 번데기도 파는 아저씨 뒤를 지키고 선

 

커다란 파라솔이 마치 격류에 휘말린 말미잘처럼 촉수들을 나부끼고 있는 중. 

 

모래사장까지 들어오지는 못한 마차 대신, 경포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에는 말들만 들어와있다.

 

느긋하게 누워 손님을 기다리는 말, 그리고 무릎을 구부리는 것조차 귀찮은 듯 나른한 표정이 인상적인 말. 

 

 

 바닷바람 냄새를 잔뜩 품고서, 강릉의 커피골목으로 들어왔다. 골목 입구서부터 벽면에 그려진 그래피티가 예사롭지 않다.

 

 

 사층짜리 건물 한 채가 오롯이 까페였는데, 아쉽게도 옥상은 개방되어 있지 않았고 2층에만 올라가도 이렇게

 

한가롭고 포근한 분위기의 공간이 펼쳐졌다는.

 

 

 

그렇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두 손으로 모아쥐고 홀짝거리다가 문득 창밖을 보니 코앞이 다시, 바다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과 기획전시관 사이에 텅빈 공간은 그대로 서울의 밤풍경을 담아내는 화폭이 된다.

 

멀찍이 파랗게 빛나는 탑은 서울N타원, 주변에 별무리처럼 총총이 박힌 주홍불빛들이 따스해 보인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본 서울 시내, 이른 시간부터 후둑후둑 내려앉은 어둠 사이로 집집의 불빛이 안온하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폐장이 가까운 시간이 되니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거대한 구조물만 덩그마니 남았다.

 

박물관 안에 있는 이쁜 까페에도 온통 테이블과 의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창밖으로 드리운 두꺼운 어둠 덕분에 깊은 바다속에 들어와 있는 거 같기도 하고.

 

창 밖, 그 심해 속에서 유영하고 있던 두 석상. 중앙박물관 앞에 꾸며진 석조산책로는 예상치 못했던 멋진 공간이었다.

 

 

 

 

 

 동국대 캠퍼스 너머 남산N타워가 올려다보이는 장충단공원에 다다른 짧은 가을 풍경.

 

돌로 만들어진 석교 위로 사뿐사뿐 떨궈지는 색색의 낙엽을 즈려밟고 가을이 줄달음질치는 중이다.

 

 공원 한쪽에는 가을빛을 머금은 맑고 차가운 개울이 흐르고, 그 위로 울긋불긋한 가을 풍경이 한겹 깔렸다.

 

새파란 하늘, 바삭바삭 익어가는 가을 낙엽들.

 

 

곳곳의 벤치에서 따끈한 가을볕에 몸을 덥히며 여유로운 시선으로 가을 풍경을 만끽하던 사람들,

 

장충단공원의 가을이다.

 

 

 

 

 

 

장충체육관을 끼고 신라호텔 뒷켠으로 올라가는 길, 옛 서울 사대문을 잇는 성곽을 따라가는 산책로 들머리에서

 

나른하게 몸을 옹송그리고 꾸벅거리고 있는 토실토실 얼룩고양이 한 마리.

 

반얀트리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길은 조금 애매하긴 하지만, 동대입구에서부터 여하간 남산산책로로 이어지며

 

여차하면 남산N타워까지 기분좋게 걸어갈 수 있는 서울성곽길의 한쪽 코스다.

 

모든 구간에서 옛 성곽의 자취를 따라 걷는 건 아니고 중간중간 성곽이 완전히 망실된 곳도 있지만, 그래도 이 구간에서는

 

대략 옛 성곽을 끼고 주욱 걷게 되는 거 같다. 성곽의 커다란 돌뭉치를 꼬옥 쥐고 여름 한철을 지난 덩굴손 이파리가 노랗다.

 

그렇게 경사가 급하지도 않은데 어느새 서울 시내가 눈 아래로 굽어보인다. 성곽을 따라 올라선 집들의 지붕에 눈높이가 맞는.

 

 

 아직 풍성한 초록빛 단풍이파리 사이로 빛이 한줄기 내리쬐이니 줄기에 뚜렷이 새겨지는 잎의 형상.

 

 

 햇볕을 얼마나 받았는지에 따라 단풍이 드는 속도가 다르다더니, 이쪽 구간은 온통 시뻘겋게 불이 붙었다.

 

 나무에서 떨어져나와 사각사각 말려들어가는 이파리가 더욱 짙은 붉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날씨가 갑작스레 차가워져서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보이지 않아 더욱 좋았던 산책로.

 

 

 후둑후둑 떨어지는 노랑빛, 빨강빛 조명과 그 아래 회색빛 성곽을 얼룩덜룩 마구잡이로 칠해놓은 가을볕.

 

 성곽의 총구멍 안에까지 어떻게 들어갔는지 새빨갛게 달아오른 낙엽 한 장이 슬쩍 햇살을 등지고 웅크렸다.

 

 

 

 그리고 아직 시퍼런 생기가 푸르딩딩한 풀밭을 좌우로 거느린 나무계단을 따라 걸으며 이어지는 성곽길.

 

 

반얀트리가 눈앞에 보일 때쯤, 눈 아래로 굽어보이는 남산의 울긋불긋한 풍경, 그리고 남산로.

 

 

 남산 산책로로 어찌어찌 접어들어서 조금 더 걷던 길. 길도 이쁘고 날씨도 나쁘지 않아 언제까지고 걸을까 하다가.

 

설렁설렁 걷다가 조금 큰 원을 그리며 다시 동대입구쪽으로 돌아섰다는 짧은 가을소풍 이야기.

 

 

 

 

 

이쁘다 싶은 까페 안에서도 막상 손에 들린 카메라를 여기저기 향하며 사진에 담기란 쉽지 않은 거 같다.

 

그런 흔치 않은 기회는, 까페 안에 손님이 달랑 나 혼자라거나 각자의 뭔가에 열중한 사람들이 조금 있을 때 정도랄까.

 

 

 올림픽 공원 근처 우유빙수가 제법 맛있는 어느 까페에 갔을 때, 마침 시그마 18-250렌즈 신형을 시험하던 차에

 

잔뜩 찍어본 까페 안 풍경.

 

 

 

간결하고 매끈하면서도 뒤로 무난하게 잘 젖혀질 거 같은 의자들이 쿠션을 하나씩 품고 있기도 하고.

 

 

 벽면에 장식된 그림이나 자잘한 소품들에 눈길이 간다.

 

 의자 위에는 잡지가 자연스레 누워있기도 하고.

 

 

 고양이 인형이 발딱 서 있는데 저건 태엽시계인 거 같은데 움직이질 않으니 뭔지 정확히는 모르겠고.

 

 

 까페 공간보다 훨씬 크게 마련된 공간에는 와인을 팔고 있었는데, 거기에도 나름 독특한 소품들이 보였다.

 

 

 이런 와인 창고를 하나 개인적으로 갖고 있다면 정말 좋을 텐데. 어느 주류 매장에 가던 꼭 한 번 해보는 생각.

 

 

일어서기 전, 방금까지 내 옆에 비스듬히 고개를 숙인 채 따뜻한 빛을 떨궈주던 스탠드를 한번 슥 봐주고 바이바이.

 

 

 

 

 

 오대산 국립공원은 월정사로도 유명하지만, 산기슭을 따라 걷는 전나무숲 산책로가 참 좋다. 산책로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울.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던 8월의 한여름. 저만큼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던 나뭇잎들이 흙바닥에 점점이 박혔다. 레오파드 무늬.

 

 

어느결에 문득 추워질 계절을 예감하고는 더운 날씨에 도토리를 모으느라 여념이 없는 다람쥐들.

 

 

마른 흙길을 가운데 두고 하늘 높이 치솟은 전나무들, 어디선가 짙은 숲향이 번져나오는 산책로.

 

 

워낙 오래된 나무들이 많은데다가,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안에서부터 비어나가다 끝내 쓰러지고 만 거대한 나무둥치.

 

 

 

그리고  그 산책로 끝에 있던 멋진 기와를 얹은 대문. 여기까지 대충 한시간 유유자적 걸었으니 다시 한시간 돌아가면 된다.

 

 

월정사에 들어서는 길에. 저 회전하는 탑 같은 걸 잡고서 한바퀴 돌릴 때마다 공덕이 높아진다던가. 소원을 이뤄준다던가.

 

 

 

탑을 가운데 품고서 사방에 들쭉날쭉 늘어선 날아갈듯한 기와지붕들.

 

탑 꼭대기에 얹힌 장식을 바싹 당겨서 살펴보니 굉장히 섬세하다. 맨눈으로 보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디테일들.

 

 

 

화려한 단청과, 단청의 기본 오방색을 테두리에 두른 북은 어찌나 두들겨댔을지 저렇게 빈티지스러워졌다.

 

월정사로 건너오는 돌로 만들어진 구름계단. 이쪽이고 저쪽이고 온통 초록빛이 그득하던 오대산.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오대산국립공원'이라는 갈색 표지판을 보고 무작정 꺾어들어왔던 길, 등산할 생각은 없었지만

 

월정사랑 전나무숲 산책로를 걸었던 것 만으로도 무지 좋았던 기억.

 

 

 

 

 

썬크루즈호텔의 갑판부 위에 있는 풀장에서 바라본 정동진 해안가.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하던 시간대.

 

해수풀장이었으니 아마도 정동진 앞바다에서부터 퍼온 물이었을 텐데, 작은 파이프에서 쏟아지는 수압이 생각보다 세다.

 

  

 

저녁 7시가 넘어도 아직 사위가 흐적흐적 발가스름하던 때. 고작 두어달이 흘러 해넘이의 호흡은 무척이나 가빠졌다.

 

 

 

호텔 안 7, 8층쯤의 객실에서 내려다본 풍경.

 

 

양손을 살짝 벌려 치켜든 자세는, 살짝 어색하면서 변태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해를 잡으려는 손짓이라 치자.

 

'손각대'를 쓰다보니 좀 많이 흔들렸지만, 조리개를 바짝 조인 렌즈의 빛갈라짐이 제대로 잡혀서 그냥.

 

 

호텔 로비에는 그랜드 피아노가 있고, 천장에는 열두 별자리의 상징들이 원형을 이루며 박혀 있었다. 이건 물병자리.

 

 

선크루즈 호텔 앞으로 살살 걸어본 야밤의 산책 풍경.

 

 

 

 

유람선 한 척의 형태를 그대로 살려서 이 곳에 올려서는 호텔로 쓴다는 아이디어가 참신하고 재미있다.

 

그리고 저 아랫쪽으로는 조금은 작은 배 모양으로 만들어진 횟집. 옆에는 요트들이 줄줄이 주차중이다.

 

 

호텔에서 뻗어나가는 산책로는 정동진 시내를 굽어보는 전망대로 이어졌다. 작고 어슴푸레한 불빛무더기.

 

 

 

밤마실을 마치고 새벽 해돋이를 보러 달려나가기 전, 잠시 희뿌연 분위기를 감상하며 호텔의 정원을 살폈다.

 

 

그리고 해돋이. 이 호텔과 정동진은 특히 새해 첫 해돋이를 하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고 하는데, 사실 꼭 그런 날

 

해돋이를 보겠다고 남들 모두 줄서서 가는 곳에 덩달아 가는 건 조금 생각해볼 부분이 있는 거 같다.

 

 

이 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꽤나 볼 만한 건 사실이니 굳이 새해 첫날 말고, 언제든 본인이 맘을 다잡고 싶은 때

 

오는 건 어떨까. 모든 사람들이 요이땅, 해서 새해 1월 1일부터 새사람이 되겠다며 다짐하는 건 좀 그로테스크하다.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나 풀들을 보면 꽤나 이국적이다. 무성하지는 않지만 야자수도 자라고.

 

밤마실을 다녔던, 그땐 잘 알아채지 못했지만 꽤나 잘 다듬어진 정원.

 

호텔 출입구에 설치된 우표모양의 구조물. 오가는 투숙객들이 전부다 저 안에 들어가서 기념사진을 찍던.

 

 

 

밤에 봤던 야경이 조금은 어설프고 부족해 보였지만, 역시 바닷가 풍경이 뜨거운 여름 대낮에 봐야 진짜다. 파라솔들하며.

 

 

그리고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장승공원도 있었는데, 관리가 안 된 건지 아님 잡초들이 워낙 생명력이

 

강인한 건지 거의 버려졌다 싶은 느낌으로 황량하던, 두눈 부리부리한 험상궂은 표정의 장승들이 더욱 부각되던 곳.

 

 

 

 

 

 

정동진 앞바다, 7월말 햇살이 뜨겁던 그 때는 마냥 시원하게 보이던 풍경이었는데 어느새 살풋 냉기가 전해오는 패러세일링.

 

 정동진의 랜드마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썬크루즈호텔에서 바라본 정동진 앞 바다.

 

 

 한철의 한주일 그렇게 그악스럽게 울어대며 자손을 남기려 애쓰던 녀석들은 이제 모두 흙으로 돌아갔을 시간.

 

절대 만나지 못하는 두 개의 평행선, 이라 흔히들 말해지는 철도길이 이리저리 휘며 겹쳐지고 관통할 때.

 

 

 저런 요트를 타고 둥싯둥싯 푸른 동해바다 위를 떠다니며 노니는 것도 꽤나 재미있을 거 같다. 조금은 파도가 높아도 좋을 텐데.

 

 

 

정동진 앞바다, 시꺼먼 구름처럼 바닷가바위를 온통 뒤덮은 갯벌레나 따개비처럼 자글자글한 파라솔 너머 늠름한 요트. 

 

 정동진 해돋이 열차가 들어오는 건가, 알록달록 원색으로 칠해진 통유리창 열차가 시원시원하다.

 

그저 들어가 보려고만 해도 티켓을 끊고 들어가야 하는 정동진역사, 야트막한 천장에 모기향처럼 대롱거리던 피노키오.

 

 

 모래밭에 드문드문 꽂혀 있는 파라솔들이 옷깃을 잔뜩 그러쥐고 꽁꽁 여몄다.

 

 

 

이쁜 까페와 레스토랑으로 유명한 신사동 가로수길 옆길 이름은, 세로수길. 가로수에서 '가로'만 떼어서

 

그에 대응하는 '세로'수길이라 이름붙인 작명센스에는 감탄할 만 하다.

 

발 닿는대로 들어간 그 중의 한 레스토랑. 요새 브런치 메뉴가 없는 곳이 없다지만 여긴 그 중에서도 꽤나 만족스러웠다.

 

 

 음식도 괜찮았고, 새파랑 물병도 맘에 들었던 것이 왠지 새하얀 벽돌담을 가진 햇살 쨍쨍한 이국의 테라스를 떠올리는.

 

 

 하얀 회벽을 그대로 드러낸 인테리어야 요새 워낙 흔하게 보이는 스타일이라곤 하지만 저렇게 천장에까지 그림을 넣은 건 참신한 듯.

 

그리고 또다른 '세로수길'의 까페. 레스토랑을 나와 몇걸음 걷지 않아 나타난 까페였는데, 밖에서 봤을 때

 

그럴 듯 해보이기도 했고 밖에서 볼 때뿐 아니라 안에 들어가서도 제법 이쁘겠다는 판단이 섰더랬다.

 

 

2층에 위치한 까페의 창문은 온통 활짝 열려 창밖의 풍경을 눈앞 가까이 끌어당겼다.

 

 

벽면 한귀퉁이의 칠판에 쓰인 흐트러진 글씨체, 그리고 책장 한 칸을 넓게 차지한 화분과 열쇠 하나.

 

 

아포가토와 에스프레소. 귀여운 차받침과 예기치 않은 장식용 인형들의 출현에 깜짝 놀랬다.

 

그렇게, 가로수길 옆 세로수길에 있던 어느 까페와 레스토랑. 그다지 특별하지 않지만 이쁘고 한적한 공간이라 남겨둔다.

 

 

광주 망월동, 국립 5.18민주묘지(신묘역) 앞에 선 안내판에는 의미심장한 문구가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와 5.18 구묘지에 묻혀야 했던 분들을 이곳에 모셔와 안장했다"는 문구다.

 

(광주 망월동 신묘역, 이 곳에 선 문재인과 안철수는 무엇을 보았을까.)

 

 

1980년 5월이 무려 17년이나 지난 1997년에야 비로소. 그리고 나서 구묘역은 잊혀지고 버려지다시피 했다.

 

정치인들도 찾지 않고, 아마 2004년이던가 강금실 전 법무장관이 찾았던 게 거의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전례다.

 

 

그렇지만 구묘역은 여전히 5.18의 기억들을 생생히 간직하고 있으며, 광주의 비극을 초래한 학살자 전두환과의

 

관계를 극적으로 보여주는 하나의 '장치'가 있다는 점에서 지난 2012년 9월말의 다음 기사는 굉장히 흥미로웠다.

 

 

 

...문 후보는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윤상원 열사, 1980년 전남대 총학생회장이었던 박관현 열사 등 의 묘소를 찾아 참배했다. 문 후보는 또 정치인들이 잘 찾지 않는 옛 묘역을 찾아 87민주항쟁 때 최루탄에 맞아 숨진 이한열 열사의 묘역도 참배했다.

문 후보는 "이분들 덕분에 오늘의 민주주의가 있는데 자꾸 후퇴하니 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는 구 묘역 참배를 마치고 나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민박기념비'가 이곳에 묻혀있다는 얘기를 듣고 되돌아와 이 비를 발로 밟고 지나가기도 했다. '민박기념비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1982년 전남 담양군 마을을 방문한 뒤 세운 것으로 광주·전남 민주동지회가 1989년 이 비를 부순 뒤 구묘역 입구에 묻어 사람들이 밟고지나가도록 한 것이다...

 

 

* 오마이뉴스, 2012. 9. 28. 기사 발췌.

 

 

 

문재인이 이 곳을 굳이 찾았다는 것, 그리고 굳이 전두환 기념비를 밟고 나왔다는 건 어쨌든 유의미한 퍼포먼스다.

 

게다가 망월동 신묘역 안의 민주 열사들 영정 앞에서 저리도 해맑게 웃고 치우는 누군가와는 뚜렷한 대비를 이룬다.


 

 

신묘역의 후문, 그러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열사들의 영정 앞에서 파안대소를 했던 곳을 지나 조금만 더 걸으면 나타나는

 

후문을 나와서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구묘역이다. 전두환 정권의 회유책과 묘지 이장 책동에도 불구, 여전히 5.18 희생자가

 

119분이나 안장되어 있으며 이후의 민주화 투쟁 중 살해된 열사들이 함께 모셔져 있는 곳이다.

 

이 곳이다. 제대로 다져지지도 않은 땅, 틀도 잘 갖추지 못한 채 제각기 색다르고 형이 다른 비석을 명패삼아 모셔진 분들.

 

그리고, 올라서는 곳 들머리에는 아스팔트가 커다랗게 구멍이 난 채 뭔가를 물고 있었다.

 

대충 식별되는 글자는, 두환 대통령 각하 내외분 민박마을...

 

옆에 선 안내판의 내용을 (조금 길지만) 그대로 인용해 놓기로 한다.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현장.

 

민족의 반역자요 광주민중 학살과 자주 민주 통일의 원흉 전두환이 자기 죄를 은폐하고자 학살현장인 광주를

 

방문하지 못하고 1982년 3월 10일 담양군 고서면 성산마을에 잠입하여 민박 기념비를 세웠다.

 

이에 복받쳐 오르는 분노와 수치심을 참을 수가 없어 1989년 1월 13일 이 비를 부수어 이곳에 묻었나니

 

5월 영령의 원혼을 달래는 마음으로 이곳을 짓밟아 통일을 향한 큰길로 함께 나아갑시다.

 

영령들이여! 고이 잠드소서!

 

1989년 1월 13일

 

 

광주, 전남 민주동지회"

 

저런 허름하고 낡은 '흔적'들이 아니었다면, 이 곳은 그저 여느 동네 야산의 공동묘지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을 뻔 했다.

 

그만큼 더욱 안타깝기도 하고, 무언가 이 나라의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신호를 강렬히 보내는, 그야말로 세계의 끝이다.

 

인혁당과 민혁당을 헷갈렸던, 프롬프터에 오타가 났던 박근혜의 진정성 없는 사과는 그들에게 상처만 더한 건 아닐까.

 

인혁당 유가족분들이 최근에 다녀가신 듯 싱싱하고 새하얀 화환 하나가 제대 위에 놓였다.

 

(그 옆에는 최근에 다녀간 문재인 대통령후보의 화환도 있었지만, 바람이 불었는지(?) 엎어진 채 꽃이 모두 시들어있었다.)

 

'진보적 정권교체'의 붉은 머리띠를 질끈 동여맨 열사들, 이름이 있고 없고간에, 이 땅의 정신적 영토와 면면한 흐름을

 

지켜내온 그들은 총칼로 나라를 지켜낸 사람들만큼은 최소한 존중받고 기억되고 기려져야 하는 거 아닐지.

 

그렇기는커녕 거꾸로 흐르는 세월 탓에 저들은 무덤에 누워서까지 붉은 머리띠를 동여맸다.

 

구묘역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꽃집. 색색깔의 꽃다발과 여러겹 펼쳐진 파라솔의 색감이 꽤나 화려하고 이뻤지만

 

왼쪽으로 시야에 걸린 '광주'라는 두 글자가, 그리고 묘역의 스산하고 비극적인 분위기가 모두 잠식해버리고 말았다.

 

떠나기 전. 여전히 떵떵거리며 호의호식중인 문어 대가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기꺼이 즈려밟고 침을 뱉어주었다.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그, 피해자 중 한명이었던 정치인으로부터 사면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나머지로부터는 아니다.

 

게다가 스스로 뉘우침이 없이 29만원이 전재산이라며 불법 축재물에 대한 추징조차 피하고 있는 그런 괴물은 사람도 아니다.

 

 

 

 

 

 

정태춘, 5.18.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거리에도 산비탈에도 너희 집 마당가에도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엔 아직도
칸나보다 봉숭아보다 더욱 붉은 저 꽃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그 꽃들 베어진 날에 아 빛나던 별들
송정리 기지촌 너머 스러지던 햇살에
떠오르는 헬리콥터 날개 노을도 찢고, 붉게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깃발 없는 진압군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탱크들의 행진 소릴 들었소

아, 우리들의 오월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날 장군들의 금빛 훈장은 하나도 회수되지 않았네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옥상 위의 저격수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난사하는 기관총 소릴 들었소

어디에도 붉은 꽃을 심지 마라
여기 망월도 언덕배기의 노여움으로 말하네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누이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무엇을 보았니, 아들아
나는 태극기 아래 시신들을 보았소
무엇을 들었니, 딸들아
나는 절규하는 통곡 소릴 들었소

잊지마라, 잊지마, 꽃잎 같은 주검과 훈장
소년들의 무덤 앞에 그 훈장을 묻기 전까지

 

 

근 10년만이었다. 구묘역과 신묘역으로 기억하고 있던 광주 5.18묘역은 그사이 많이 깔끔해져 있었다. 그때에도 이미

 

신묘역의 말끔함은 억지스런 분칠로만 느껴져서 왠지 모를 거부감과 암담함을 느끼게 했었지만.

 

평일 오전시간. 신묘역, 그러니까 무려 '국립 5.18민주묘지'는 한산하다 못해 스산했다. 관리하시는 분들이나 몇몇 보이지 않는

 

참배객들의 몸가짐에서는 죽음 앞에 선 인간의 조심스러움과 함께 역사의 무게를 감각하는 이들의 비극성이 묻어나는 듯 했다.

 

그런 역사를 이렇듯 '성지'화하는 건 아무래도 너무 일렀거나 부주의했다. 여전히 전두환이 건재하고, 5.18을 딛고 선 신군부와의

 

딜을 통해 은밀한 권세를 유지한 유신 잔당들은 다시금 명실상부한 권좌에 앉겠다며 국민들의 지지를 업고 있는 상황이다.

 

어느새 빛이 바랜 (아마도) 2002년의 안내판. 이미 5.18은 오래되다 못해 이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과거가 되어 버린 걸까.

 

묘역 안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구슬프지만 우아하고 절제된 선율은 사람을 슬프게 만들 뿐, 분노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었다.

 

유튜브에서 이전에 찾았던 정태춘의 노래들이라거나 5.18관련 영상들을 다시 찾는데, 이상하게도 많이들 짤렸다.

 

뭔가 오기가 생겨서, 이것저것 괜찮은 자료들을 다시금 퍼올려두기로 한다.

 

 

 

 

'민주의 문'을 지나 묘역 안으로 들어서는 길.

 

 

 

 

문재인이, 안철수가, 그 이전에는 이명박과 노무현과 김대중이 섰던 그 곳이다. 그들은 이곳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실 내게 광주, 그리고 5.18의 이미지는 무엇보다 이 동영상의 첫머리, 5.18의 '모란꽃'이라 불렸다는

 

전옥주의 가두방송으로부터 시작한다. "시민 여러분, 계엄군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시민 여러분,

 

지금 적들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계엄군들이 탱크를 앞세우고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역사의 판단'은 이미 내려졌다. 그렇다고 믿었던 많은 것들이 뒤집어지고 엎어지는 세상임에도, 5.18민주항쟁은 지금의

 

한국사회에 거대한 그림자와 의미를 던지는 주춧돌이나 다름없다. 여전히 그 주역들이 살아있을 뿐 아니라 그 역사적 사건의

 

결과와 후폭풍으로 인해서 많은 역사적 변곡선들이 생겨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신 잔당의 청산 문제, 지역 감정 문제,

 

한국 사회 민주화의 지체 문제들이 그런 것들이다.

 

어쩌면 당시 광주는 한반도 최초의 근대적 '시민'들이 살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생각하며 일어선 사람들.

 

아마 전옥주는 이런 식으로 언론이 봉쇄되고 언로가 막힌 광주시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방송을 했을 거다.

 

"당신들은 어떻게 편안하게 집에서 잠을 잘 수가 있습니까, 우리 동생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이여

 

하느님도 새떼들도 떠나가버린 광주여..

 

그러나 사람다운 사람들만이 아침 저녁으로 살아남아

 

쓰러지고, 엎어지고, 다시 일어서는 우리들의 피투성이 도시여

 

 

 

 

돌아가신 날짜대로 열을 지어 누워 계신 분들. 1980년 5월 18일부터 드문드문 나타난 비석에는 어느 순간

 

1980년 5월 20일자의 죽음들이 셀 수 없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다음날, 그 다음날에도.

 

어미의 마음으로 새겼을, '싸우리라." 비석의 뒤에는 남겨진 이들의, 혹은 떠난 이들의 독백이 단단히 새겨졌다.

 

열다섯의 누군가는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헌혈하고 나오는 길에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지고, 서른여덟의 누군가는

 

진압하려드는 공수부대원들을 향해 트럭을 몰고 항거하다 숨졌다. 누군가의 아비는, 어미는, 먼저 간 자녀들의 넋과

 

뜻을 기리며 피눈물을 새겼고, 누군가의 형수는 그저 평안하길 바랬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자들, 그나마 '상식'이 있고 그나마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고 말해지는 자들,

 

그들에게 광주는 어떤 의미일까. 광주 민주항쟁은 어떤 빛깔로, 어떤 목소리로 기억될까.

 

 

어쩌면 그건 그들의 '상식'이라는 게 얼마나 올바르고 균형감이 잡혀 있는지를 고백하는 바로미터와 같을지 모른다.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이 여전히 제작조차 쉽지 않은 나라, 학살자가 공권력의 비호를 받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광주 5.18의 흔적을 보며 그저 슬픔을 느낄 뿐인지 분노를 느끼는지의 차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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