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인근에 있는 오봉산, 야트막하니 산책삼아 걷기도 좋고 개울을 따라 빽빽한 나무그늘도 좋았던 곳이다.

 

오봉산 청평사의 독특한 발코니 형태의 창도 사진찍기에 꽤나 좋은 포인트였던 것 같고, 짧은 가을에 덜 익은 단풍도 꽤 이뻤던 곳.

 

 

 

 

 

 

 

 

 

 

 

 

 

 

 

 

 

 

 

 

 

 

 

 

 

 

 

 

 

 

 

 

 

 

 

 

 

 

금강소나무숲길 3구간

 

- 길이 : 16.3km

- 예약 : 인터넷 예약

- 난이도 : 걷는 거리와 시간이 길어 속도 조절과 쉬는 포인터가 필수다.

- 구간 : 소광2리 금강송펜션 > 저진터재 > 너삼밭재 > 너삼밭 > 화전민터 > 금강소나무 군락지 > 오백년 소나무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인근에 사시는 주민분들이 마치 집밥과 같은 정성으로 준비해주신 점심 식사를 든든히 하고 나니

 

이제 금강소나무의 부활을 위한 생태경영림을 둘러보고 특히나 500년 묵었다는 소나무를 만나는 코스가 남은 셈이다.

 

 

이미 왕성하게 형성되어 있는 금강소나무숲에서는 어린 나무들이 새롭게 자라기 쉽지 않은 환경이어서 인근 지역으로 이렇게

 

외연을 넓힐 수 있게 생태림을 조성하고 유전적으로 보존할 가치가 있는 나무들은 특히나 밑둥에 표시를 해두고는 정기적으로

 

관리를 하고 있다고 했다. 한때 한반도를 가득 채웠을 토종 소나무들의 기세가 이제 이곳 울진의 끄트머리까지 몰려온 시점,

 

다시 과거의 수준으로 번성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필요한 조치인 것 같다.

 

 

 

그렇게 금강소나무들을 위한 일종의 '모판'이라고 할 수 있는-왜 벼를 심기 전에 모판에서 어느 정도 키우고 논에 심듯이-

 

이 곳, 아직 작고 여린, 그래서 더욱 싱싱해 보이는 소나무들을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다가 문득 눈앞에 나타난 500년 묵은 금강소나무. 반세기가 되었어도 곧고 당당한 자태는 굽힘이 없다.

 

 

 

이렇게 수령이 오랜 나무를 보면 왠지 신비로운 느낌과 함께 상서로운 기운이 막 전달되는 것 같다.

 

다른 탐방객들도 그랬는지 나무의 기를 받고 가겠다며 나무와 함께 사진도 찍고 손을 뻗어보기도 하고.

 

 

 

 

아직은 본때없이 키만 멀대처럼 자라난 금강소나무들, 이 정도면 몇십년 되지도 않은 꼬꼬마 축에 끼지 않으려나.

 

 

그리고 다시 3코스의 출발점이자 모든 금강소나무숲길의 출발점이기도 한 주차장으로 가는 길, 어디에선가 눈에 밟힌

 

나무의 잔해. 무려 1950년에 발생한 산불로 이렇게 부서지고 그을린 몸뚱이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돌아오는 길에는 두 가지 옵션이 있는데, 편도로 왔던 길을 되짚어 가는 길이기에 버스를 타고 내려갈 수 있고,

 

아니면 왔던 길을 되짚어 다시 걸어갈 수도 있고. 다시 걸어와도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예닐곱 시간만에 다시 도착한 출발점. 미처 몰랐는데 주차장으로 쓰이는 공간은 사실 이전에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쓰이던 곳이었다 하고, 그 앞의 펜션은 사실 이전에 초등학교 교사로 쓰이던 건물이라고 한다.

 

 

조금만 더 가깝다면 사계절을 모두 느껴보고 싶을 만큼 아기자기하면서도 깊은 숲의 위엄이 살아있는 트레킹 코스인 듯 하다.

 

 

 

숲을 보전하기 위해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는, 하루 입장객수를 제한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정부 운영 트레킹코스라는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을 걸었다. 아침 9시까지 주차장에 모여서는 가이드 겸 숲해설사와 함께 무리지어 출발하기 직전.

 

 

     입구에서부터 특별한 구간임을 강조하는 표지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탐방은 안내자를 동반한 경우에만 가능하고,

 

아무나 출입할 수 없다는 내용. 이 곳의 소나무들은 한국의 토종 소나무들로 산림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무척 높다고 한다.

 

 무리지어 움직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산길 숲길이니만치 제법 멀리 벌어져서 움직이게 된다. 그냥 조금 밀도가 낮지 않은

 

등산을 나선 느낌 정도랄까. 아무래도 울진이 서울에서 쉽게 가닿기는 어려운 거리니만치 경상도 분들이 많으신 듯.

 

 

 

 아직 가을볕이 따끔거리는 시간, 단풍이 채 여물지 않은 싱싱한 초록빛 나뭇잎들이 연두빛 햇살을 걸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가이드분이 잠시 쉬어가는 길에 보여줬던 화전민들의 생활터. 70년대까지만 해도 산 곳곳에 터를 잡고서는

 

숲에 기대어 생활을 이어갔다는 화전민분들의 삶에도 술은 빠질 수 없었을 거다.

 

굉장히 옛날 디자인처럼 보이는 '금복주'의 깨진 병이 곳곳에 뒹굴고 있는 모습이 신산스럽기도 하고.

 

 

 

 금강소나무숲길은 현재까지는 1코스, 2코스, 그리고 3코스와 3-1코스 정도가 개장된 것 같은데, 난이도는 고만고만해 보인다.

 

대충 아침부터 오후 4시쯤까지면 끝나는 코스인데 점심식사의 경우는 근처 주민분들이 직접 밥차를 챙겨 준비해주신다고.

 

 우리말로 '재'라고 표현하는 언덕배기를 두어개 오르내리고 나니 본격적인 금강소나무 군락지로 진입.

 

일제시기 한국의 곧고 단단한 금강소나무를 거침없이 벌채해가는 바람에 토종 소나무의 수가 확 줄어버렸다고는 해도

 

이곳 울진은 워낙 벽지여서 그런 수탈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금강소나무는 여느 소나무와는 달리 이파리를 뜯었을 때 잎이 두 가닥이고, 송진이 많고 속이 꽉 차 있어 오랜 세월이 지나도

 

그 강도와 내구성이 쉬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는 조선시대 초에 궁궐 건축자재로 쓰였던 금강소나무 기둥을

 

수백년 후에 수리할 때에도 그대로 다시 썼다고 할 정도라고 하니, 시멘트나 콘크리트보다도 더욱 오래 버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곳곳에서 펼쳐지는 가을, 가을. 어느덧 부쩍 높아져버린 푸른 하늘과 각자의 색깔로 가을을 맞이하는 나무들의 향연이다.

 

 

 

 

성미급한 나무 하나는 제멋에 겨워 벌써 홀로 새빨갛게 뺨을 붉혔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렇지만 곳곳에 붉은 기운이 스며든 채 호시탐탐 호루라기 소리만 기다리는 중이다. 준비~ 땅.

 

 

 금강소나무에 대한 설명을 해주시던 숲해설사님, 저 정도의 굵기로 자라려 해도 금강소나무는 근 이백년 가까이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셨던가. 생장 속도나 나이테 불리는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아 속이 더욱 실한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의 손길이 함부로 접할 수 없어서일까, 쓰레기 하나 없이 말끔한 자연 속에서는

 

개울물 소리가 더욱 영롱하게 느껴지는가 하면 물빛도 훨씬 깊어보이는 거다.

 

 

 그렇지만 탐방로는 의외로 잘 정비되어 있는 편이었다. 경사가 가파른 곳에는 나무 계단이 걸음을 인도했고,

 

빽빽하게 치솟은 소나무숲을 요리조리 꺽어가며 붉은 황토길이 이어지고 있었으니.

 

더러는 이런 징검다리 돌다리도 건너기도 하고.

 

 

 

 

 

구불구불 자연스런 리듬감이 묻어나는 길을 따라 훤칠한 금강소나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하고.

 

 

 금강소나무로 만든 것 같은 곧고 단단한 나무다리를 건너기도 하고.

 

 그렇게 우선 점심 식사를 위한 밥차가 있는 장소까지 걸었다. 대충 세시간 정도 걸린 듯.

 

그러고 보니 울진 금강소나무숲길의 1코스였던가, 산양 보호지역을 지난다고 했던 것 같은데

 

3코스에서는 산양을 직접 볼 기회는 없다고 했다. 길 잃은 산양이라도 한 마리 조우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리고 마침내 영접한 밥차. 주민분들이 직접 매일매일 준비하는 밥과 국과 반찬들이라는데 맛도 훌륭하고 양도 적지 않아서,

 

오전의 어렵지도 않았지만 또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던 산행으로 출출해진 배를 충전하기에 부족함이 없던.

 

다들 식판에 받아들고는 근처에 적당한 나무그늘이나 등걸을 찾아 삼삼오오 모여 앉았다.

 

바람소리 시원하고 어디선가 딱다구리 나무 쪼는 소리까지 들리던, 10월 중순의 녹색 그늘.

 

 

이제 점심을 먹고서는 금강소나무의 보존을 위한 생태경영림을 돌아보는 코스로 이어질 차례.

 

 

 


독도지킴이 김장훈, 구글코리아의 가장 큰 미팅룸 '독도'에서 두시간여 미팅을 가지다가


문득 '독도'와 '김장훈'의 재미있는 연관관계가 떠오르고 말았다. 


'독도'라는 미팅룸 명패 앞에서 사진을 찍자는 이야기를 하려다가, 이왕이면 독도지킴이 김장훈씨의 사인을


하나 남기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더니 흔쾌히 받아주시는 가수 겸 공연기획자 김장훈.


그렇게 구글코리아 오피스에 작지만 재미있는 스토리가 하나 더 쌓이게 된 하루.




+ 그리고 구글코리아의 빼놓을 수 없는 셀렙, 싸이의 사진 한장.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과 싸이의 만남 구글 에릭 슈미트 회장과 싸이가 27일 오후

구글코리아 본사에서 직원들과 만남을 가진 후 함께 `강남스타일'의 말춤을 추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남도의 끝, 완도에서도 배를 타고 한시간 못 미처 바다를 달려나가야 도착하는 호젓한 섬 청산도. 아시아 최초 슬로시티로 선정된

 

섬에서 느긋하게 흐르는 시간대를 담아내려면 왠지 필름카메라가 땡기는 거다. 77년생 소련제 카메라 Zorki 4K.

 

 섬을 종으로 횡으로 이어주는 청산도 슬로길을 설렁설렁 내딛는 걸음 따라 서편제의 풍경이 지나가고 누런 황소의 울음이 맺힌다.

 

 

 섬까지 물자를 실어나르기 쉽지 않아서였을까, 야트막한 단층 가옥을 짓고는 창문은 음료수병꽂이로 대신했다.

 

 

 양귀비가 시뻘겋게 피어난 붉은 밭, 그너머로 다랭이논들처럼 켜켜이 지붕을 잇고 덧붙인 마을의 울긋불긋한 슬레이트 지붕.

 

 구불구불 끊길 듯 이어지는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음도 출렁출렁.

 

 

범의 머리 모양을 닮아 범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청산도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뷰포인트 지점.

 

자성이 강해 나침반이 오작동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스캐너가 좀 문제가 있는지 사진들이 좀더 흐릿하고 어둡게 스캔된 게 틀림없지만, 그래도 뭐 일단은 Zorki와의 조우 이후

 

어떤 풍경들을 담고 있는지 남겨두기 위해서라도 몇 장 골라서 올려두는 셈이다.

 

 

 

 

조세현의 희망프레임, 운좋게 그 1기 회원에 합류하게 되어 토요일 새벽같은 아침에 약수역 출사를 나갔다.

 

굉장히 소탈하고 편안한 스타일의 조세현 선생님은 재개발을 앞둔 이 지역의 분위기를 쿠바 하바나의 그것에 비겨보아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며 곳곳에 숨어있는 풍경들을 잘 찾아보라 말씀해주셨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부지런히 찍었다.

 

w/ Pentax K-5, 43mm limited

 

 

 

약수동도, 작년 드로잉 수업 들으며 쏘다녔던 여느 서울의 뒷골목처럼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무너지고 헤집어진 폐허에서 인간적인 풍경들을 찾을 수 있다는 건 사실 아이러니라 부르기도 뭐하다.

 

대책없이 까발겨진 내밀한 일상, 고유명사 '집' 안에서의 안식과 평온함을 담당하던 가재도구들이 길거리에 전시된 풍경은

 

외려 인간적이기도 하니까.

 


더이상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쇼파. 더이상 24시간 담배를 팔 수 없는 편의점. 더이상 ...외부로부터 내부를 지킬 수 없는 현관문 따위.

 

그렇게 보면 다소 안쓰럽고 흉물스러워 보이기도 하지만 반대로는 어떨까. 반대로 한때는 그런 역할을 맡고 온기를 전했다며

 

무너져내리는 형체를 애써 가다듬고 있는, 그 의연함 같은데서 공감하고 마는 거다.

 

재개발을 앞둔 동네에서 스산함을 느끼는 건 어쩜 그런 건지도 모른다.

 

억지로 길가 위에 끄집어내진 원주민들의 삶과 추억들이 발하는 온기가 아무런 응답을 받지 못한 채 소모되고 있다는 사실.

 

그것들을 이해하고 소중히 다뤄주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그래서, 그 스산함은 결국 사람으로부터 비롯한다.

 

내가 끄집어낸 감정, 기억, 일상을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의 그 상처.


 

 

 

 

 용산의 망루, 왠지 남일당 건물의 그 사건을 떠올리게 만들던..약수역의 주인없는 옥탑방.

 

제법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한참 올라가고서야 기사분들도 한숨 돌리는 이 곳, 421 버스의 종점.

 

 

 온통 깨지고 뜯겨진 건물 내부. 슬몃 안으로 들어가 보기라도 할라치면 어디선가 득달같이 달라붙던 철거현장 작업반들.

 

눈부시게 새하얀 햇살도 가려버리는 우중충한 가림막 안쪽의 숨겨진 폐허.

 

 

누가 무슨 이유로 현관문을 저렇게 살풍경하도록 부숴놓았을까. 

 

 두 개의 그래프, 혹은 두 개의 덩어리. 그리고 흑과 백.

 

 

 빨랫줄에 꽂힌 빨래집게까지 일일이 챙겨줄 여유 따위는 없이 다들 떠난 건 아닐지.

 

잠시 반짝 빛났을 이 곳의 부동산 경기. 이제는 숱한 부동산 간판들만 가림막 안쪽의 세상에 묻어두고 말았다. 

 

 

 아마도 자전거가 묶여있진 않았으려나, 장바구니 무거운 아주머니가 스쿠터를 세워놨던 건지도 모른다.

 

 

 재개발 지역 앞의 높다란 아파트들로부터 수혈이라도 받는 듯, 굵은 전선동앗줄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아마도 연세 지긋하실 아버지와 아들, 손목을 꼭 잡고 나란히 머리를 빛내시며.

 

 새로 지어진 아파트촌, 그리고 이제 사라질 재개발촌. 교회 첨탑으로 겨우 자존심의 높이를 맞췄다.

 

 

 

길고 지루하던 겨울이 갔지만 여전히 스쿠터엔 두껍고 낡은 레자가죽의 장갑이 꽁꽁 싸매어져있다.

 

재개발, 그건 이렇게 훌쩍 뒤집어져버린 화분 같은 걸지도 모른다. 한줌만 대접받으며 옮겨지고 나머지는 고꾸라지는.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던 출사가 끝날 즈음 올려다본 하늘. 철거 현장의 분진을 막기 위해 둘러쳐진 가림막은 햇빛마저 막았다.

 

 

 

 

잠실5단지의 벚꽃들, 복숭아빛으로 물든 그 복숭아빛 꽃망울들이 너무 흐벅지게 탐스러워서.

 

바람이 잠시 불어 꽃비라도 내릴라 치면 마음이 아득해지는 게 순식간에 2002년, 1993년의 어딘가를 더듬곤 하는 거다.

 

 

 

 

 

 

덕수궁 미술관, '프라하의 추억과 낭만'전을 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참 잘 생긴 벚꽃나무.

 

고층빌딩들로 포위된 형국임에도 여전한 당당함을 간직한 덕수궁의 모습과도 같이, 우아한 가지를 늘어뜨린 채

 

자그마한 등불같은 벚꽃송이들을 밝히고선 드문드문, 깜빡 잊었다는 듯이 팔랑팔랑 흰나비들을 날려보내는.

 

 

 

 

 

공지천을 굽어보는 테라스 난간, 아가씨가 걸터앉아 피리를 불었다. 옷자락이 나부끼고 바람이 불었다. 가느다란 팔목에

 

살풋 긴장이 어렸다. 피리를 어루만지던 손가락들이 바람을 더듬었다.

 

 

 

 

 

경주 불국사에 이어 찾은 곳은 석굴암,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석굴암 가는 길은 그야말로 지그재그. 지리산 대청봉을 보고 달리는

 

와일드한 드라이브 코스에 비길만한 커브와 경사로가 연속된 구간이었다. 불국사에서 걸어 올라갈 수도 있다는데 왕복 2시간쯤.

 

전혀 기억에 없던-하긴 관광버스로는 이런 짧은 터널을 지나는지 전혀 알 방법이 없었겠지만-터널이랄까 문을 지나다 말고

 

잠시 차를 세웠다. 아마도 석굴암의 내부 한쪽 면에서 봤거나 혹은 국사책 어딘가에서 봤던 기억이 어렴풋한 나한이 서 있는

 

모습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었달까.

 

석굴암 주차장에 도착, 커브가 심한 이차선 도로를 따라 가파른 산을 꽤나 올라왔다 싶더니 역시나 전망이 탁 트였다.

 

 

구름이 조금 끼어있는 날씨가 아니라 완전 청명하고 파란 하늘이 반짝거리는 날씨였다면 저 아래 경주 시내가 좀더 잘 보였을 듯.

 

석굴암이 주차장 바로 앞에 있을 거라고, 전혀 근거는 없지만 그냥 막연히 믿고 있었는데 그렇지가 않았다. 여기서부터 또 한참

 

산길을 걷고 오르고 해야 도착하는 게 바로 석굴암. 여기는 그저 주차를 하고 티켓을 구매하는 입구에 불과하더라는.

 

 

알록달록한 연등이 양쪽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산등성이의 짙은 그늘을 따라 걷기엔 꽤나 추워서 쉽지 않다고 느낄만큼

 

깊은 산의 서늘한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런 길을 따라 이십분여 걸었을까.

 

불쑥 나타난 건물 한 채. 이게 석굴암이었던가 살짝 당황하고 있는데.

 

불쑥 나타난 저 위의 자그마한 또다른 건물 한 채. 이게 바로 석굴암 되시겠다.

 

원래는 석굴암의 외벽이 저렇게 시멘트로 발라져 있던 것이 아니라는 말도 있고 진짜인지 모르겠지만 본존불의 이마에는

 

거대한 보석이 박혀서 때에 맞춰서 광선을 석굴암 내부로 찬연하게 반사시켰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하간, 내부는 촬영금지.

 

그런데 정말, 석굴암의 본존불상은 굉장했다. 비록 유리벽으로 막힌 채 몇 미터 거리를 두고 바라봐야 했지만,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소소한 세상사, 갑남을녀의 개인적인 고민은 비집고 들어가기도 민망할 만큼 중대하고도 근본적인 것을 마주하고 있는 표정이랄까.

 

최소한 일국의, 아니 인류의 차원에서 대두된 문제들, 나타날 문제들에 대한 깊고도 고귀한 명상과 성찰을 그치지 않는,

 

그야말로 신적인 지혜와 깨달음이 가득한 자의 표정과 눈빛이었다. 굉장히 우아하고 존엄한 분위기, 이런 표정과 분위기를 가진

 

자를 뭐라고 부르던, 당신과 나는 절대 동등하지 않으며 그 지혜와 깊이에 있어 난 하잘것 없는 미물이노라고 고백하고야 말 듯한.

 

이런 분위기의 부처를 보는 건 처음이라고 할 만큼, 마음을 뒤흔들어버렸다. 분명히 예전에도 이걸 봤었을 텐데. 비록 어리고

 

아무것도 몰랐을 때라지만, 그 때 전혀 이런 분위기를 감지하지 못한 것도, 그리고 지금 이런 분위기와 표정에 충격을 받은 것도

 

모두 놀라울 따름이다. 이건 전혀 다른 의미의 아름다움이자 극한에 달한 신성함..에 가깝지 않을까.

 

 

 

조금은 멍해진 채로, 저런 부처에게 세사 잡일을 고하고 일신의 복을 기원하는 것은 굉장히 무례하달까 격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석굴암의 부처는 사람들이 복받고 행복하게 사는데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인류 모두의 정신적 고양과 열반이랄까, 그런 것들에 주의를 온통 쏟고 있는 거다. 자애로운 미소가 아니라

 

살짝 경직되고 진중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하는 건 어디까지나 내 상상일 뿐이지만.

 

 

 

그리고 석굴암에서 내려와 다시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담은 몇몇 풍경들. 비록 경주시내에서 불국사까지 가는 길이

 

생각보다 가깝진 않고, 또 불국사에서 석굴암까지 가는 길 역시 그리 쉽거나 가깝지 않지만, 석굴암의 부처님을 만나는 건

 

어쩌면 세속화된 부처들, 인간화된 신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굉장히 드물고 경이로운 순간으로 남을지 모른다. 내가 그랬듯.

 

 

 

 

경주 시내와 불국사가 이렇게 떨어져 있다는 감이 전혀 없었다. 수학여행의 기억은 몇 장 사진으로만 남았을 뿐.

 

시내에서 적잖이 차로 달려야 도착하는 불국사, 그러고 보면 불국사 안의 풍경 역시 깜깜하니 기억 하나 남지 않았었다.

 

 

산문을 들어서자마자 나타나는 구름다리. 우아한 아치를 그리고 선 돌다리가 정문과 불국사 본전을 잇고 있었다.

 

남쪽부터 슬슬 봄바람이 일기 시작하는지 연못에 긴 그림자를 드리운 능수버들엔 연두빛 물이 올랐다.

 

 

너무 새빨갛거나 새파랗지 않게 적당히 세월을 머금은 단청의 빛깔이 녹록치 않은 불국사의 역사와 위상을 말해주는 듯. 

 

 

그러고 보니 여기는 생각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짜고짜 저 높고도 날렵한 계단 앞에서 고등학교 친구들과 사진을 찍었던 기억.

 

경내에 들어서면 좌우로 복도가 있는데, 울긋불긋한 그 단청이 적당히 까뭇한 그늘에 반쯤 가리운 풍취가 참 좋다.

 

 

그리고 어디랄 것도 없이 적당히 녹슨 듯, 적당히 이끼가 스민 듯한 분위기의 불국사 풍경이라니. 사실 불국사는 1900년대

 

중반까지 몇 채의 건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몰락해가는 낡은 절에 불과했다고 한다. 이후 복원을 거듭하며 현재의 위용을

 

되찾았다는 건데, 그 시절 역시 적잖이 소요되어 이렇게 건물의 맵시나 색감이 자연스러워졌나보다.

 

불국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 두 가지. 석가탑과 다보탑..인데, 근데 다보탑이 이렇게 컸던가. 새삼스레 놀라고 말았다.

 

아쉽게도 다보탑과 마주한 석가탑은 그 탑신을 볼 수가 없었다. 2010년 기단 덮개돌에 균열이 발견되었다나, 하여

 

지금은 완전히 해체해서 수리 중이라고 한다. 2015년이 되어야 다시 공개될 예정이라고 하니 잘 보이지도 않는 가림막에

 

아무리 고개를 들이밀고 이리저리 눈알을 굴려봐야 보이는 게 하나도 없다. 석가탑의 다른 이름이 무영탑이라더니,

 

아크릴로 된 가림막에는 과연 다보탑의 그림자만 비칠 뿐, 석가탑은 그림자 끄트머리도 보이지 않는구나.

 

 

그리고 불국사 심장부에 위치한 대웅전, 살짝 이르지만 나른하니 기분좋은 봄볕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파르라니 깍은 머리를 반짝거리는 스님은 어딘가로 총총걸음을 옮기고 계셨고.

 

 

대웅전의 청록빛이랄까 청동빛에 가깝도록 바랜 나무창살문을 보며 대체 이런 데를 내가 온 적이 있던가, 다시금 패닉에 빠지고.

 

도무지 단청을 화려하게 드리운 이런 오랜 사찰에 들어서면 눈을 사방으로 돌리느라 여념이 없으면서도 뭔가를 늘 놓치는

 

기분이다. 워낙에 오밀조밀한 구석까지 디테일을 챙겼던 옛 선조들 덕분에 전후좌우 위아래로 열심히 고개를 돌리는 중.

 

 

 

휘영청 하늘을 향해 말려올라간 처마의 곡선을 따라 푸른용 한마리가 고개를 들고 금세라도 뛰쳐오를 듯한 기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금세라도 콧김으로 불기운을 내뿜을 듯한 이 형상은 날카롭고 커다란 이빨 사이로 문고리를 꽉 움켜물었다.

 

 

 

도무지 사진으로 담기가 쉽지 않은, 수평하거나 수직한 직선도 아니고 사선도 아닌 처마의 저 율동감 넘치는 은근한 곡선미.

 

 

 

그러나저러나, 도대체 고등학교 2학년짜리들이 우르르 불국사에 몰려와서는 대체 뭘 보고 갔던 걸까. 이토록 아무 기억이 없다니.

 

 

아마도 천년은 훌쩍 넘었을 부처님의 모습을 수호하고 있는 붉은 나무울타리. 저 나무들이 모두 삭아 스러진대도 돌에 새긴

 

부처님은 다시금 천년을 버티고도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왠지 먹먹하다.

 

 

음..절에 갈 때마다 눈에 밟히는 건 저런 크고 작은, 높고 낮은 돌탑들. 다른 돌들의 균형을 흐트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돌 하나를

 

그 위에 얹는다는 행위가 갖는 기묘한 주술적 효과라거나 기복적인 요소를 인정하더라도, 여기만큼 대대적으로 벌어진 발원과

 

욕망의 탑쌓기는 처음 본 거 같다. 멀쩡한 마당도 모자라 기와가 오른 담장 위에도, 쪽문 위에도, 빗장 위에도 온통 돌탑이다.

 

 

 

워낙 사방으로 문이 나있어서 대체 어디로 어떻게 가야 전체를 한 바퀴 돌아보게 되는 건지 주춤거리게 된다. 게다가 한두개의

 

문만 지나와도 같은 듯 하면서도 또다른 실루엣과 풍경이 전개되는 판이라 마치 작은 미로 속에서 헤매이는 느낌이 들기도.

 

그 와중에 만난 복돼지상. 돼지라기보다는 살짝 쥐를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삐죽삐죽 묘사된 털도 그렇지만 저 얍실한 눈빛.

 

 

 

 

그리고, 무려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란다. 저렇게 돌을 깍아만든 두 발디딤대 사이로 장차 비료가 될 것들이 보관되었단 이야기.

 

 

다시 돌아내려오는 길, 왠지 들어가던 길과 다르다 했더니 역시. 그러고 보니 불국사로 드나드는 길이 꼭 한 개가 아니었던 거다.

 

이렇게 넓은 부지, 넓은 정원과 수많은 전각들. 대체 난, 고등학교 2학년의 나는 친구들과 어떤 길을 어떻게 밟았던 걸까 싶다.

 

그림자 없는 석가탑과 십원짜리 다보탑의 이미지조차 온전히 간직하지 못했던 걸 보면, 아마도 친구들과 떠들고 뛰어노느라

 

정신없지 않았던가 싶기도 하고. (아마도 전날밤에 몰래 마셨던 술의 뒤끝에 잡혀서 비몽사몽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3월초, 정신이 번쩍 나는 맑고 차가운 공기를 부드럽고 새침한 봄볕이 살짝 뒤흔들고는 모른 척 돌아서는 그런 시기의 경주 대릉원.

 

천년을 버텼던 왕국의 천년 전 무덤들이 엄마 가슴처럼 봉긋하게 솟아오른 곳에는 어느새 세월을 먹고 자라난 나무들이 자리를 잡았다.

 

 

경주 시내의 고즈넉한 야경을 책임지는 가로등 갓 속에는 첨성대도 들어있고 초승달도 들어있고.

 

아마도 천마총에도 같이 묻혔었을 법한 신라 왕족의 금관 장식도 들어있다.

 

담백한 기와담벼락을 따라 걷다가 대릉원 입구로 접어드니, 살풋 물오른 연두빛 버드나무가 휘영청.

 

 

파란 하늘, 황금 잔디, 그리고 아직은 덜 깨어난 겨울나무들의 짙고 투박한 검은 빛깔.

 

 

제법 커다란 공원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도 하는 대릉원을 둘러싼 야트막한 담벼락 너머 이어지는 기와지붕들이 보인다.

 

물론 신라시대 때의 가옥 양식이 저렇지는 않았겠지만, 콘크리트 네모 반듯한 건물들이 아니라 다행이다.

 

 

대릉원 안에는 천마총이 있는데, 무덤의 주인을 명확히 알게 되면 '릉'이라고 부르고, 누구인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높은 신분의 무덤이라고 판단되면 '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천마 그림이 인상적인 무덤이라 해서 천마총인 셈.

 

내부 촬영은 금지, 주요 유물들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여기에는 모조품을 진열해두었다고 한다.

 

빨간 옷을 따뜻하게 여며입은 꼬맹이 하나가 동동거리는 걸음걸이로 무덤 안에 들어서는 모습이 귀엽다.

 

 

 

저 야트막한 언덕 같기만 한 무덤들 하나하나에 주인이 있고 부장품들이 있을 테지만, 그 안에 혹 품고 있을

 

보물들이나 금은보화 같은 것들보다도 저 무덤의 곡선이 참 탐난다. 사막에 갔을 때 반해버렸던, 바람이 만들어낸 듄 같다.

 

바람이 모래를 하릴없이 헤치고 깍고 부어내며 만들어내던 그 자연스럽고 우아하던 곡선,

 

아마 대릉원의 곡선들 역시 조금 더 시간이 걸렸을 뿐, 자연의 손길은 마찬가지였으리라.

 

 

 

어떤 각도에서 보면 마치 이전에 대유행했던 텔레토비의 동산이 중첩되어 보이기도 하고,

 

어떤 각도에서 보면 사방이 온통 둥그스름하고 풍만한 언덕으로 둘러싸인 안온한 공간 같기도 하고.

 

 

그 사이를 이렇게 구비구비 휘여지는 산책로로 휘감아 돌아가는 모양새도 참 좋다.

 

딱히 어디를 꼭 찝어서 봐야겠어, 라거나 꼭 한바퀴를 전부 걸어봐야겠어, 라는 하릴없는 욕심 부리지 않아도

 

그저 눈앞에 펼쳐진 곡선의 풍경들과 곡선의 길들을 따라 흘러다니는 것만으로 행복해지는 공간.

 

 

경주의 가로등 만큼이나 눈길을 붙잡던 건, 기와지붕을 얹고 있던 경주의 버스정류장들.

 

대릉원을 나와서, 황남빵을 우물거리면서도 가슴 높이의 돌담길 너머 풍경에서 눈길이 떠나지 않았다.

 

왠지 대릉원은 경주를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꼭 한번씩 들르게 되는 거 같다.

 

 

경주 안압지, 주말에는 10시까지 개방한다는 이 곳의 주차장은 (관리인 아저씨 말로는) 이천 대까지 수용가능하다지만

 

그야말로 시장통이나 유명가수의 콘서트 직후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격전지가 되어 꽉 막혀 있었고,

 

그런 전쟁을 벌이고 들어가니 이런 고요한 수면 위로 안압지의 정자들이 의뭉스럽게 둥실둥실 떠올라 있었다.

 

입구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세 채의 정자. 온통 들어차있던 사람들은 흔적만 어렴풋이 남았다.

 

그 틈새에서 용케 삼각대를 소심하게나마 펼칠 공간을 잡고, 이리저리 두리번두리번.

 

안압지 수면에 비친 정자의 잔잔한 그림자. 아직은 쌀쌀한 겨울바람도 저렇게 말간 수면을 뒤흔들 힘은 잃었나보다.

 

정자 뿐 아니라 연못 주위의 인공섬들과 조경들에도 이쁜 조명이 고르게 비춰지고 있었다. 뱃놀이하기 딱 좋은 인공연못.

 

바글바글 정자가 미어지도록 올라선 사람들 쪽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굉장히 고즈넉하고 신비감마저 불러일으키는 안압지의 밤 풍경.

 

 

밤이 깊어가는데도 사람들은 그칠 줄 모르고 계속해서 들어오고, 대형관광버스가 사람들을 쉼없이 토해내는 걸 보곤

 

이제 여길 떠날 때로구나, 싶어서 떠나기 전 마지막 컷.

 

아, 안압지 연못 바닥에서 발굴했다는 신라시대 귀족들의 술자리 장난감 모형도 한 장 담았다.

 

십이면체 주사위에 면면마다 적힌 술자리 벌칙들. 크게 웃기, 옆사람 간지르기, 술 원샷하기 등등.

 

숙소로 돌아오는 길, 경주의 고즈넉한 밤길 한가운데 서서 고고히 불을 밝히고 있던 첨성대 모형.

 

 

 

경주 남산에 오르는 길, 삼릉을 거쳐 지나는 골짜기에서 제일 먼저 마주치는 건 다소 묘한 손모양의 목잘린 좌불.

 

석조여래좌상, 삼릉어귀의 길로부터 출발해 남산에 오르는 길은 예전부터 절도 많고 불상도 많았다나.

 

무려 11개소의 절터와 15구의 불상이 산재한데다가 금오산 정상까지 오르는 길이라 제일 즐겨찾는 등산로란다.

 

 

어느새 싱그러운 녹빛이 솔잎바늘 끝까지 충만한 소나무들. 남녘에는 봄이 왔다.

 

바위 위에 새겨진 관세음보살상. 천수관음의 자비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은 천년을 이어지고.

 

관세음보살이 굽어보는 경주 남산의 앞마당. 하늘이 좀만 더 파랗게 맑았음 좋았을 텐데 아쉽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석가삼존과 아미타삼존이 새겨져 계시다는데, 머리에 둥그렇게 보름달같은 휘광이 비치는

 

부처님 세분이 계시니 뭔가 더욱더 강력해 보인달까. 이렇게 선으로만 새겨진 부처상은 남산에선 드문 거라고 한다.

 

하얗고 검은 바위의 육중한 옆구리에 명료하지만 가느다란 선으로 한붓그리기하듯 그려놓은 부처님들을

 

눈으로 따르다 보면 중간에 살짝 선을 놓치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구도의 길이 멀고도 험하다는 은유일 수도.ㅋ

 

그리고 석가여래좌상. 부분부분 깨어져나간 부분도 보이고 뒤의 휘광도 다시 조각붙이기를 한 거 같지만

 

엄숙하고 우아한 표정이나 진중한 앉은 자세가 여전히 당당하다.

 

 

부처님한테 한발 더 가까이 다가가 요모조모 얼굴과 몸의 굴곡을 살펴보려는데, 부처님 왠지 우셨던 거 같다.

 

하긴 요새 세상이 위에서 내려다보기에 참 슬픈 일 투성이들일 테니. 놀랄 일은 아니지만 눈물자국이 선연하다.

 

 

남산 정상까지는 안 가고 내려오는 길, 색색의 등산복을 차려입은 사람들이 그다지 좁지 않은 길을 꽉 채워서

 

남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좌우로 허리를 굽힌 채 소나무 터널을 만들어주고 있던 남산의 노송들.

 

 

그리고 남산 아랫자락에 그리 오래진 않아보이는 망월사라는 절에 잠깐 인사드리러 들어가는 길.

 

나른하고 촉촉한 봄볕이 내리쬐이는 절 앞마당에는 벤치도 늘어서 있고, 가지런히 누워 몸을 달구는 기왓장들도 쪼르르.

 

댓돌 위에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가 가지런히 놓였다.

 

 

대웅전 뒤로 푸릇푸릇한 기운이 마구 돋아나는 남산을 배경으로 크고 작게 솟아오른 불상과 불탑들.

 

 

 

 

천년고도 경주 남산에 찾아드는 봄. 꽃망울이 툭툭 터지며 노랑 꽃잎이 비집고 나왔다.

 

남산을 올라가는 길은 굉장히 여러갈래가 있는데, 그 골짜기마다 온갖 돌을 쪼아 모신 와불과 좌불이 숨어있다.

 

일단은 남산 아랫둔치에 있는 포석정부터 살짝 눈도장찍고 남산을 에둘러 삼릉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경주에 오면 뭐니뭐니해도 소나무. 거침없이 뒤틀린 그 기기묘묘한 생동감이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 와중에 이른 봄볕을 쬐러 나온 청설모 한 마리. 쉼없이 앞니를 놀리며 겨우내 아껴두었을 도토리를 까먹는 참이다.

 

그리고 삼릉. 제법 경사가 있는 곳에 울창한 소나무숲을 지나다 보면 부드럽고 우아한 곡선이 둥실 떠오른다.

 

 

능 세개가 연이어 봉긋봉긋 솟아있는 곳엔 따스한 봄볕이 나리고, 주변에는 짙은 솔숲 그늘을 드리워 서늘한 기운이 뻗친다.

 

조그마한 구릉처럼 솟아난 저 신라시대 왕들의 무덤을 보면 참 마음이 편안해지는 느낌.

 

천년 전의 죽음이 이토록 자연스럽고 평온한 분위기로 승화되었구나, 랄까.

 

딱히 어디가 길이랄 것도 없는 남산 언저리를 더듬다 보면 이런 표지판이 보인다. 신라인의 미소와 도깨비의 형상.

 

경애왕릉을 향해 걷는 길, 곧고 늘씬하게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신비로운 기운처럼 하늘을 향해 하늘하늘 번진다.

 

 

그리고 다시, 삼릉과 경애왕릉을 지나고 남산을 향해 본격적으로 걷는 길, 양쪽으로 소나무가 어깨를 구부려 터널을 만들었다.

 

 

 

 

어느날, 저녁도 먹을 겸 공연도 들을 겸 찾아간 이태원의 올댓재즈. 딱히 연주자 누구를 기대하는 건 아니지만,

 

갈 때마다 충분히 즐길 만큼의 선곡과 연주 실력을 보여주는 밴드들을 만나게 된다.

 

연주를 감상하며 음료를 홀짝거리다 문득 눈길이 닿은 곳에 무수히 내려앉은 별빛들.

 

유리창에 새겨진 드럼 세트 위로 반짝이는 별빛에 마음마저 일렁일렁.

 

 

 

 

 

경주역 옆의 해장국골목, 일년 전쯤 경주 여행와서 도착하자마자 카메라 렌즈 부숴먹고는

 

사진 한장 못 남긴 게 아쉬워서 다시 간 김에 여기부터 재방문.

 

꼭 여기가 젤 맛있는지는 모르겠고-다른 곳은 안 가봤으니-주르륵 늘어서 있는 해장국집 중의 하나.

 

역사 오랜 맛집에 어울릴 듯한 이런 주방 풍경. '할매' 할머니는 문 앞에서 문을 여닫아 주시고.

 

메뉴판은 위와 같음. 기본은 묵해장국, 선지해장국, 뼈다귀해장국 등등. 게다가 온통 경주산의 식재료들.

 

선지해장국. 다진마늘을 아낌없이 넣어주셔서 깔끔한 국물맛. 수면 아래 선지가 90%.

 

뼈다귀해장국. 굳이 뼈를 들고 힘들여 발라먹지 않아도 될 만큼 말랑말랑한 살점들.

 

음식점 안에는 어디서 나셨는지 이런 공중전화 부스가 뙇. (가게 안에 전화기를 다셨었나..)

 

커피는요 셀프니드. 아마도 제가 경상도 혹은 경주쪽 사투리를 소리나는대로 쓴 거 아닐까 싶다.

 

"커피는요~ 셀프니드~"

 

 

그러고 보면 이 곳의 사계절은 두바퀴 정도 돌려서 봤던 거 같다. 미술관 옆 동물원의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가는 길.

 

올겨울 삼엄하게 내린 눈에 호수가 온통 하얗게 얼어붙었다.

 

본관 중앙홀에 설치된 고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텔레비전으로 쌓은 탑이 360도의 뷰를 보여주고 있는데,

 

저 작품은 볼 때마다 내가 티비를 보는 건지 티비가 나를 보는 건지 알 수 없는 위압감을 주는 듯.

 

마치 로켓이 발사되기라도 할 듯한 날카로운 예기가 서린 탑의 끝쪽에는 대들보를 상량하며 적어둔 축문이 한바퀴 둘려있다.

 

 

마치 구겐하임 미술관의 달팽이껍데기처럼 뱅글뱅글 돌아가는 계단이 휘감긴 벽면.

 

그리고, 온통 앙상한 잔가지만 가득한 나무와는 달리 겨울철 북풍한설에도 끄덕없는 둔탁하고 묵직한 인공조형물.

 

그 와중에 과천서울랜드 매표소가 이렇게 방긋 웃고 있었다. 어렸을 때도 저렇게 웃고 있었던가, 기억이 그닥.

 

 

 

 

포항 호미곶의 등대공원, 상생의 두손이 활짝 움켜쥐고 있는 땅끝 어귀에 펼쳐진 몇몇 박물관과 시설물들, 그리고 야외 공원.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는 중에 만난 '등대원 생활관' 입구. 실제 등대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느낌이다.

 

수은조식 회전등명기. 1953년 제작되어서 목포 홍도등대에서 사용되었다던가. 1979년까지 사용되다가 지금은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저 등불이 계속 회전하면서 반짝반짝 빛을 냈던 구조였던가 보다.

 

매월 25일은 저축의 날. 월급의 계좌이체가 일상화되기 전, 매달 회사에서 지급받았다는 월급봉투. 등대지기 김용정님은 매달

 

2만7천원정도를 받으며 근무하셨구나. 언제적 물가인지 모르겠지만 요새 돈 가치가 엄청 떨어지긴 했구나 싶다.

 

'클라우드 아틀라스'에서 출연했던 쏨뱀이. 기억이 안 나실 분들도 있겠지만,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악령이 깃들었다고 믿는

 

산에 오르기로 결심했던 건 여동생 딸, 그러니까 여조카가 '쏨뱀이'에 물려서 다리가 팅팅 부어올라 죽어가던 사건 때문이었다.

 

사실 그 녀석이 이녀석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서도, 왠지 무섭게 생겼으니 납득이 가기도 하고.

 

1900년대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는 대한제국시기의 근대식 등대. 안에 들어가면

 

각층 천장마다 대한제국의 꽃문양이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굳게 걸어잠겨 있어서 안에는 구경도 못했다.

 

 

 

뒤로 보이는 해양박물관의 세모꼴 모양새도 독특하지만, 그 앞에 위풍당당 배를 깔고 누운 호랑이의 눈매도 인상적이다.

 

 

부표. 바닷물이 넘실거릴 때 속절없이 출렁이는 부표같은-사실 부초, 부평초같은, 이란 표현이 더 보편적이지만-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묵직하고 거대한 느낌이다. 배의 왕래를 돕는 중앙선이나 차선 같은 역할을 하는 부표.

 

등대박물관 앞마당에서 침묵에 잠긴 야트막한 난쟁이 등대 광원.

 

겨울이라 물이 쫙 빠진 등대공원의 야외분수를 지키고 선 인어의 헐벗은 몸이 추워보인다.

 

 

 

 

이전에 울릉도 나리분지 안쪽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집들에서 한꺼번에 연기가 오르는 풍경을 본 적이 있다.

 

누런 햇살이 분지를 감싸고 도는 구릉에 빗겨 내리쬐는, 먼지가 풀풀 일던 비포장도로를 몇시간째 걷고 난 저녁무렵이었다.

 

 

그제서야 어느 시에선가 '밥짓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노래했던 구절의 정서가 온전히 와닿을 수 있었는데,

 

포항의 호미곶-임곡간 해안도로 코스 초입의 펜션 창가에서 문득 다시 그 풍경을 반추하는 아침을 맞았다.

 

 

드세고 짭조름한 바닷바람도 채 깨어나지 못한 이른 아침, 무턱대고 하늘로 하늘로 치솟던 농밀하고도 새하얀 연기. 구름.

 

사람 하나 없어보여도 엄연히 여기 사람이 살고 있다는, 또 한끼 식사를 챙겨먹을 거라는 표지, 그건 마치 힘내자는 다독거림.

 

 

 

 

 

100여년전 일본인들이 모여 살았다는 구룡포항 앞의 조그마한 거리, 일본식의 '적산가옥'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는 곳으로 향하는

 

입구를 지나면 여느 소도시, 아니 조그마한 마을의 아기자기한 거리 풍경이 그대로 나타난다.

 

 

높아봐야 2층짜리 건물들이 어깨를 맞부비고 있는 조그마한 골목통, 그 와중에도 네모 반듯반듯하고 말끔한 분위기의

 

일본식 건물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옆엣 건물들의 어깨 사이에서 살짝 기죽어 있는 듯한 단층 건물 역시 담백한 직선과 네모로 이루어진 형태가 일본냄새를 풍긴다.

 

 

100년전의 낡은 지붕, 붉은 벽돌과 뻥 뚫린 나무창살까지 일본식 가옥거리의 이전 모습과 지금 모습을 비교한 사진들.

 

 

 

잔설이 채 녹아내리지 않은 채 하얗고 까만 일본식 기와가 얹힌 담장들이 차분하다.

 

그렇게 골목통을 따라 휘휘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일본식 가옥들은 저만치 밀려나고 또다른 생활의 풍경이 나타난다.

 

날것의 거칠한 질감 가득한 콘크리트 벽돌블록을 쌓아만든 담장 옆에는 그래도 구룡포 앞바다빛깔을 담은 파란색 칠의 대문이.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는 외계인 가면처럼 생긴 오징어들이 배를 째고서 바닷바람에 마르는 중이었다.

 

지붕위를 두텁게 덮었던 하얀 눈이불은 발치까지 끌어내려져서는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고.

 

 

온통 녹슬어버린 파란 대문짝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풍상, 바닷바람의 짠기, 그리고 이곳 사람들의 일상..

 

 

분분이 남아있던 잔설들은 단정하고 담백한 일본식 기와지붕의 갈비뼈를 까맣게 드러냈고, 거칠고 투박한 벽돌은 축축하게 적셔주었다.

 

 

산기슭을 따라 형성된 근대문화역사거리의 가장 윗동네에 있던 초등학교는 언제부터인지 폐교된 채 방치되었다.

 

그리고 윗동네에서 내려다본 구룡포항의 저녁 풍경. 불밝혀진 노점들의 행렬 너머로 바닷물이 일렁인다.

 

 

어느 골목에서 발견한 찻집. 잠시 들러 몸도 녹이고 차 한잔을 하려 하였건만 자리도 몇 개 안 되고 문도 일찍 닫는 듯 하다.

 

 

애초엔 '근대문화역사거리'인 줄만 알고 들어섰던 골목길이었지만 꼭 그런 느낌만 담겨있던 공간은 아니었다.

 

사실 늘 새롭고 예기치 않은 풍경으로 이끌어줬던 건 이런 골목길들이 품고 있는 마력 덕분이었으니, 이곳 역시도 마찬가지.

 

 

 

 

 

구룡포항 앞에 있는 어부의 동상, 손에 실제로 두꺼운 줄이 감긴 채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 마치 바다를 끌어당기는 것만 같다.

 

온통 빼곡하게 들어선 채 후끈한 김을 퍼올리고 있는 대게 음식점들. 가게마다 대게 한마리씩 간판에 올렸다.

 

 

구룡포항을 굽어보는 근대문화역사거리에서의 탁 트인 구룡포항 풍경. 어슴푸레한 어둠이 깔리는 시점, 항구 앞 노점들이 발갛다.

 

한쪽에서는 품바 '예술공연단'이 쉼없는 깨방정으로 장터의 분위기를 돋우고 있었지만 늦은 시간 탓인지 한적하기만 하다.

 

삽시간에 까만 어둠이 내려앉은 장터, 과메기와 대게를 파는 노점들은 한산하고 주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서 한담중이던.

 

풍어를 기원하며 배에 꽂아둔 나뭇가지들.

 

 

게섰거라~ 찜통에서 쉼없이 뿜어나오는 하얀 연기엔 촉촉하고 탱글거리는 대게의 바다내음이 섞였다.

 

겨울비가 제법 대차게 내리던 지난 1월. 포항을 지나 경주의 대릉원 앞 까페 골목에 잠시 멎었다. 겨울비도 잠시 멎은 그 때.

 

 

천년고도라는 진부한 호칭에도 불구하고 경주에는 뭔가 있다. 까페 인테리어에 이런 담백한 창살이 자연스러운 분위기.

 

 

커다란 새장 같은 전등갓에 불빛이 하얗게 스며들었다. 어느새 다시 캄캄해진 하늘.

 

야외 테라스에 내어놓은 테이블과 의자들은 흠뻑 빗물을 머금다 못해 뚝뚝 뱉어내는 중.

 

 

까페에서 단팥죽을 파는 것 역시 경주니까 그럴 만 하겠다 싶은데, 의외로 굉장히 맛있어서 깜놀. 에스프레소 꼼파냐도 달콜달콤.

 

이런 느낌의 룸, 마루보다 한층 올라간 높이가 조금 어색하지만 그래도 안에 들어가 있으면 막 아늑해지고 그러는 분위기.

 

 

그리고 이 까페 앞에 웅크린 천년 전 왕들의 무덤들, 조금 너머 하늘을 받치고 있던 야트막하지만 단단한 첨성대,

 

그런 것들과 함께인 듯 따로 그럴 듯하게 서있던 나무들 같은 풍경이 참 아름답던 경주 대릉원 너머 이차선도로 맞은편.

 

 

 

 

 

 

포항 호미곶,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을 가본 사람이던 안 가본 사람이던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건

 

바로 이렇게 바다에서 불쑥 솟아오른 커다란 손의 형상. 갈매기들이 쉬어 가는 다섯 개의 봉우리이기도 하다.

 

 

사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생각보다 작아 보일 수도, 혹은 뜬금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 청동 조각상은 '상생의 손'이라는 이름으로

 

새천년을 축하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99년 12월에 완공된 상생의 손,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로,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 이렇게 두 손이 함께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들었다고 하는데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이 손이 육지에도

 

하나 더 있다는 사실. 처음 알았다.

 

 

 

성화대에 있는 화반은 해와 달을 의미하고,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던가.

 

바다에 있는 오른손보다 조금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진 육지의 왼손. 그 앞에는 독도 일출과 피지의 일출에서 얻어온 불씨가

 

2000년 1월 1일 이래 꺼지지 않고 불을 밝히고 있었다.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에 올라 내려다본 왼손과 오른손, 상생하라는 두 개의 손이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공을 쥐고 있는 듯

 

살짝 움켜쥔 모양새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호미곶에 와서야 알게 된 손 조각상의 진실이랄까.

 

호미곶에 도착하면 딱 보이는 꽃마차들. 말갈기를 쉼없이 희롱하고 있던, 제법 쌀쌀한 바닷바람에도 말들은 꿈쩍없었다.

 

상생의 왼손을 에둘러 바다쪽으로 훅 들어가는 전망대. 바다 쪽에서 육지를 배경으로, 미친 듯이 날아다니며 시야를 가리는

 

갈매기들 틈새로 상생의 오른손을 볼 수 있다.

 

 

전망대 걸어들어가는 길에 한번씩 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거대 문어상. 포항이 문어로도 유명한 데다 심지어 문어축제도 있다는 사실.

 

 

더이상 나갈 곳 없는 전망대의 끝단에 서면 정확히 동쪽을 가리키고 선 꼬마 아이의 동상이 있고, 호미곶의 위치가 잡혀 있는

 

한반도 지도와 나침반이 설치되어 있다.

 

그리고 분분히 날아다니며 상생의 손을 향한 시야를 여지없이 가리는 정신사나운 갈매기들. 사람들이 자꾸 과자를 던져댄 탓이다.

 

이쪽에서 보이는 상생의 오른손 측면샷. 아무래도 육지의 왼손보다 크기도 크거니와 그림도 훨씬 이쁘게 잡힌다.

 

다시 광장으로 돌아와서, 미처 보지 못했던 가로등에 눈길이 간다. 포효하는 호랑이 형태의 한반도가 장식된 가로등이다.

 

같은 형태로 동해를 향해 포효하는 호랑이상 , 검고 노란 줄무늬가 선연하던 가로등 호랑이와는 달리 흰색과 하늘색의 줄무늬를 가졌다.

 

그리고 파란 하늘에 둥싯 떠있는 하얀 달을 움켜쥐려는 듯 내뻗은 육지의 왼손상.

 

 

광장에는 지난 새천년의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전국 최대의 가마솥이라거나 각종 기념물들. 그 와중에 수쳔년 전의

 

연오랑 세오녀 설화를 기념한 기념탑이 하나 숨바꼭질중.

 

 

새천년 기념관 전망대로 가는 길은 엘레베이터와 계단. 계단으로 갔더니 대충 4층에서 5층 정도 높이가 되는 거 같다.

 

 

옆에 나란히 선 풍력발전기 한 대. 시험삼아 돌리는 건가 싶기도 하고, 뭔가 효성의 광고판 같아보이기도 하고.

 

 

확실히 바닷바람이 매우 세게 몰아치기는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얼레를 하나씩 손에 쥐고 연을 날리고 있었고,

 

호미곶에 갓 도착한 아이들은 일단 부모손을 끌고 연 하나씩 사달라고 조르고 있었으니. 그나저나 바닷가의 소도시답게,

 

혹은 바닷가의 명소답게 저런 연들을 담은 종이박스에 새겨진 글자가 눈에 잡힌다. 돌자반.

 

 

 

 

#1. 포항 북부해수욕장과 환여해맞이공원 사이의 물횟집. 

 

 포항 북부해수욕장과 환여해맞이공원 사이에 위치한 환여횟집. '1박2일' 방송에 출연하기 전부터 포항시내에서

 

물회로 이름을 날리던 곳이라는 친구 추천에 일단 고고. 서울에서 먹던 그 맛을 상상하고 있었다.

 

 도다리 물회를 시키려다 말고 '단지 물회'로 선회, 거기에는 해삼이니 멍게니 전복 같은 것들이 들어간다고 하는 말에

 

4인 가족이서 단지물회 2인분을 시켰다. 분명 모자라서 더 시키려니 생각했는데 왠걸. 생각보다 양도 많았고.

 

 양도 양이지만 그 풍성한 해산물의 향연, 그리고 개운하고 시원한 맛에 흠뻑 취하고 말았다.

 

 함께 나왔던 해산물 샐러드..라고 해야 하나. 전복과 해삼 등등이 김과 무채와 함께 비벼져서 나온.

 

여느 곳이나 그렇듯 이 환여횟집 좌우로 비슷한 물회집이 주욱 늘어서 있었는데, 다른 곳은 맛보지 못했으니 꼭 저곳을

 

고집하라고 말할 생각은 없다. 다만, 포항에 가면 꼭 다시 맛보고 싶은 건 이런 류의 물회라는 것.

 

 

#2. 포항 죽도어시장의 대게상차림.

 

살이 꽉 차오른 대게의 앞발, 이렇게 탱탱한 속살이 푱, 하고 야무지게 튀어나오는 순간을 만끽하기란 쉽지 않다.

 

어둠이 나리고 나면 죽도어시장의 대게 골목들에서 피어오르는 짙은 수증기가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밤이 으슥해질수록 축축하게 으깨진 시장통 골목을 오가며 적당한 횟집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늘어나고.

 

자리잡고 앉은 횟집에서 스끼다시로 나온 굴. 커다랗고 뽀얀 속살이 탱글탱글.

 

그리고 참소라. 원없이 먹어보겠다던 소원을 그대로 성취한 커다란 접시 가득 썰어져나온 참소라 생물 회.

 

그리고 마리당 1킬로그램에 육박하던 거대한 대게들을 세마리 찜쪄버렸다. 김이 폴폴 오르는 대게들 사진은 용케 남겼다.

 

정신없이 양손을 다 쓰며 먹다가 아무래도 이 커다랗고 오동통한 앞발은 남겨야겠다 싶어서 한 장 남기고 나니 끝.

 

산처럼 쌓인 잔해 사이에서, 등껍데기에 밥을 비벼 싹싹 말끔히 비워버리고 만 녀석의 흔적을 찾아 병따개와 비교샷.

 

그리고 다음번에 포항에 갈 일이 있거들랑 꼭 맛보고 싶은, 횟집 아주머니가 추천해주셨던 이 곳에서만 난다는

 

이름모를-가르쳐주셨지만 까먹어버린-요 생선. 묘하게 생겼는데 맛은 어떠려나 모르겠지만 일단 기대.

 

 

 

 

 

포항 북부해수욕장, 새벽부터 내달려 세시간반만에 도착한 한반도 동남쪽 바닷가에는 그런 이름이 붙어있었다.

 

해수면까지 짙게 내려앉은 희뿌옇고 눈부신 장막 너머 포스코의 굴뚝들이 은폐엄폐중이던 그 곳.

 

 독도가 경상북도 울릉군, 이었다는 건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문구가 무수히 꽂힌 해수욕장 모래사장과 어릴 적부터

 

익어버린 노래 가사가 서로 만나는 순간 새롭게 각인되었다. 독도는 한국땅.

 

 포스코 제철공장을 마주본 이 곳인지라 그런지 곳곳에 철로 만들어진 조각들이 보였다. 이렇게 커다란 철로 만든 모기도 한마리.

 

 북부해수욕장 끄트머리부터 시작하는 야트막한 구릉은, 봄철에 왔더라면 좀더 물이 올라 싱싱한 초록빛으로 반짝이지 않았을까.

 

중앙공원, 해맞이공원, 혹은 환여공원이라고도 불리는 것 같은, 수많은 이름을 가진 그 큼지막한 공원 가운데께에는 멀리

 

영일만의 반짝이는 파도가 굽어보이는 전망대도 있고, 몇 걸음 더 걷지 않아 도착하는 포항시립미술관(POMA)도 품고 있다.

 

 

 지방이라 그런지 아니면 포항이 부유한 도시여서 그런지 포항시립미술관은 무료. 마침 개관 3주년 기념 전시라며 그간

 

수집한 한국 모더니즘 작가들의 예술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현대적인 분위기 물씬한 미술관 내부에 문득 볕이 들이치던 순간.

 

 미술관 정문 옆에 심어져 있던 아롱다롱한 소망나무 한 그루. 은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필체의 얼룩을 품었다.

 

 그리고 제법 오래 눈길을 붙잡았던, 포항시립미술관 앞의 이 작품. 허리춤을 아프지는 않게, 그렇지만 단단하게 부여잡은 저 손.

 

전망대에서 미술관을 지나 다시 공원 밖으로 내려서는 참에 다시 만난 포스코 제철공장의 어슴푸레한 풍경.

 

맑은날 밤에 여기서 야경을 찍어도 꽤나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룡포 앞바다, 파도에 지쳤는지 잠시 항구에 어깨를 뉘인 채 어깨숨을 쉬고 있던 어선의 돛대 위에서 나부끼던 산대.

 

인간이 한발 내딛고 설 공간조차 마련되지 않는 거친 바다로 나아가며 저런 징표 하나쯤 만들어 달아도 좋으리라.

 

 

 

 

 

포항 죽도어시장을 돌아다니며 찍었던 사진 중에 가장 맘에 드는 한 장의 사진을 꼽으라면.

 

과메기 축제중인 시장통을 구경하다가 문득 시선을 돌린 한쪽에는 생선을 파느라 열심인 어느 청년이 보였다.

 

대담하도록 치켜올라간 점퍼와 내려뜨려진 츄리닝 바지를 위아래 입술삼아, 환하게 웃고 있었다.

 

 포항은 역시 과메기와 대게의 고장. 시장통 골목 곳곳에서 짙고 풍만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참돔배기라고 불리기도 하는 상어 녀석. 경북 지방의 제수용 생선으로 널리 쓰인다던가. 세모꼴 이빨이 원통하다.

 

원래 과메기는 청어로 만들었던 게 원조라고 하는데, 요새는 거의 이런 꽁치로 만든단다. 살가죽이 말라비틀어질 지경.

 

흔치는 않지만 이렇게 청어로 만들어진 과메기도 곧잘 내걸려 있었다. 아쉽게도 이 녀석들은 시식용이 없더란.

 

 좌판마다, 상점마다 맛보기로 내건 (꽁치) 과메기 시식을 하나씩 하며 시장을 걷다보니 배가 부를 지경이다.

 

입으로는 시식을 권하며 쉼없이 과메기의 껍데기를 벗기고 꼬리를 떼어내던 그네들의 손놀림은 가히 생활의 달인급.

 

 아무래도 살짝 찝찝한 건 없지 않았다. 과메기 클러스터, 형님 예산, 만사형통 따위의 단어들이다.

 

포항까지 내려와서 네놈의 이름 석자를 들을 줄은, 그래도 몰랐다.

 

에라이,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하얗게 성에가 내려앉은 동태의 썩은 눈깔같은. 

 

성황이다. 주말이라 그랬는지 서울같은 먼 곳 말고도 인근 지역에서도 총출동한 듯 하다.

 

 꼬리에 철사를 꿰고는 물구나무선 채 해풍에 노닐던 생선들도 있었고.

 

 보기만 해도 묵직하고 맛깔스런 핑크빛의 몸뚱이를 가진, 지느러미가 촘촘한 생선도 있었다.

 

 그런 생선들의 장막 뒤로 손만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아주머니들.

 

 그리고 마치 커튼처럼, 시장통의 어느 예기치 않게 한적한 모퉁이에서 건너편 풍경을 미묘하게 가리는 생선들의 버티컬.

 

붉은 대게 한마리가 붉은 벽돌 건물벽을 기어오르다 잠시 쉬어가는 중.

 

그리고, 오랜 세월 사람들의 질척한 발길과 무수한 생선비늘로 갈고 닦인 이곳 죽도시장의 분위기만큼이나

 

운치있고 정감어린 돼지국밥집의 모자이크 창문 하나.

 

 

 

 

코엑스 메가박스 가는 길, 리모델링이 한창인 코엑스 곳곳에서 문닫고 사라져버린 샵과 공간들이 많아지는 시기다.

 

늘 무심코 지나쳤던 장식등들이 새삼스럽게 보이고, 마치 이 곳에 놀러온 외국인 관광객인양 카메라를 들게 만든 이유.

 

 구간구간 상점들이 빠져나가고 공사가 시작되고 있는 즈음이라 살짝 황량해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사람은 많다.

 

그리고 코엑스 메가박스의 상징과도 같은, 이 텔레비전 탑.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라고 해도 믿을 법한.

 

 

어느샌가부터 메가박스 옆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공간이 생겼다. 도슨트도 상주 중이어서 언제든 들어가면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작지만 알차게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돌아볼 수 있는 것.

 

재미지고 발랄한 작품들을 볼 겸, 슬쩍슬쩍 점심시간에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 곳 중 하나.

 

 

 

 

김이 펄펄 끓어오르던 커다란 양은솥. 아궁이에서 삼엄하게 번져나오던 화염. 그 와중에 살짝 풍기는 달콤한 냄새.

 

그것은 가히 '화염'이라 부를 만한 정도의 불길이었다. 빨갛다 못해 샛노랗게, 투명하게 달아올라 뿜어오르는 빛과 열.

 

부뚜막에 정좌하고 앉으신 며느리 할머니는 빨간 잠바를 이쁘게 걸치시고 파란 물바가지를 젓고 계셨다.

 

 

천천히. 그렇지만 쉼없이. 조금씩, 아주 조금씩, 파란 물바가지가 끈적하게 아우성치는 조청에 휘감기는 느낌으로.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