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원전에서 배출되는 온배수로 운영하고 있다는 아쿠아리움, 그곳에서 만난 해양 동물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이 샛노란 해마. 생각보다 활달하게 물 속에서 톡톡 몸을 튕기며 돌아다니고 있었던 모양새도 흥미롭고, 울룩불룩한

뿔이 돋아난 형태의 노란 몸뚱이도 재미있고, 좀더 눈여겨보면 등쪽이나 배쪽에 지느러미가 하늘거리는 모습도

보이는 거다.

그리고 지들끼리 몸을 엮어서 둥둥 떠있기도 하고, 물살에 몸을 맡긴 채 휘휘 돌기도 하고. 잡담하듯 서로 나란히

붙어선 사이좋게 흘러가기도 하고.

아쿠아리움 안에 있는 저 하얀색 스쿠터도 눈에 들어왔다. 진짜 스쿠터를 칠해서 갖다 놓은 건지 아니면 그냥

조형을 만들어 둔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아래에서 가만히 제자리 헤엄질중인 물고기들.

호랑이 갈기처럼 생긴 지느러미를 너울거리는 이 물고기는, 어떻게 보면 이쁘고 어떻게 다시 보면 징그럽고.

사실 이런 열대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샛노랑 색깔이 이쁘다 싶기도 하지만, 저렇게 총천연색의 몸을

갖고 있단 건 징그럽기도 한 거다. 


 그리고 별 두드러진 특징은 못 잡아내겠는 횟감같은 생선 몇 마리. 


아싸 가오리.

아쿠아리움 건물 위에 올라있는 거대한 문어도 맘에 들었다. 문어인지 낙지인지, 꿈틀거리는 다리의 표현이 참.

아쿠아리움을 나서다가 신기한 열매가 달린 퍼러딩딩한 나무를 보고 한 컷.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한국원자력문화재단'이란 곳에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을 모집해서 출사 여행도 떠나고 원전 견학도

간다는 제안을 내 블로그 방명록에 남겼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났던 건 2009년쯤, 조승수 국회의원이 지식경제부

국정감사에서 질의했던 내용이었다. 질의의 요지는, 국민의 세금으로 '에너지' 전체를 홍보하는 게 아니라

'원자력'만을 홍보하는 게 문제가 있지 않냐는 것. 더구나 풍력이나 태양열 등 친환경 신재생에너지가 더욱

전세계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중에 말이다. [국정감사]“원자력문화재단을 에너지문화재단으로 교체하라”


그냥 지나쳐 읽었던 내용이었지만 역시 아직 명칭이 바뀌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새삼 궁금증이 일었다.

후쿠시마의 원전 사태가 터지고 나서 핵융합이 발생하니 어쩌니 여전히 방사능물질이 펄펄 전지구로 퍼지고 있는

지금의 시점에서 대체 원자력문화재단이나 원전 측은 얼마나 세련된 반박 논리를 가지고 있을까. 건설적인 대안이나

합리적인 논의가 가능하려면 우선 서로가 갖고 있는 논리와 근거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 역시

어느 한쪽의 논리에 편승해 입장을 전하기 전 우선 들어가 알아보기로 했던 거다. 그게 원자력문화재단에서도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에 바랬던 역할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전선이 하늘을 온통 갈라놓고 있는 이곳은 영광 원전. 국내에는 현재 경상도의 고리, 월성, 울진과 전라도의 영광,

이렇게 네 지역에서 21기의 원자력발전소가 가동중이며, 영광에는 총 6기의 발전소가 돌고 있다고 한다. 원전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버스가 워낙 빨리 달려 사진을 미처 찍지는 못했지만 몇몇 가옥에 시뻘건 현수막과 굵은 페인트

글씨로 원전 반대, 후쿠시마 사태의 재연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남아있었다.

홍보관까지는 촬영이 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원전 내부 시설은 청와대와 같은 수준의 국가 안보시설이어서 촬영이

불가하다고 하여 찍을 수가 없었다. 홍보관에 있던 원전 외벽 구조를 설명하는 샘플. 철근과 콘크리트로 단단히

만들어진 5중 방호벽이 방사성 물질을 안전하게 가둬둘 뿐 아니라, '무려' 규모 6.5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설계를 갖추고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이다.


버스에서도 틀어줬던 비디오 내용이었다. 원자로 외벽과 동일한 규격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에 전투기를 정면으로

충돌시켰는데 고작 5cm만 관통되고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제법 인상적인 화면이다 싶었는데 여기서 또 발견했다.


이제부터 내 생각이다. 첫날의 원전 견학과 둘째날의 관련학과 교수 특강을 거쳐 현재 도달해 있는 생각이랄까.

간단히 요약하자면, 원자력발전의 강점으로 이야기되는 경제성과 안전성에 대한 주장은 생각보다도

근거가 허약하며, 결국 최종적으로 기대는 근거는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전부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현재의 시스템과 전력소비 양태를 유지한다는 가정 하에서나 유효하다는 생각이다.




1. 원전의 경제성 : 사고대비 비용 및 사회적 비용을 감안한다면?

특강 때도 지적했던 이야기지만 동일한 전력량을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수력이나 화력 등 기타 방식에

비해 원자력이 월등히 저렴하다는 계산에 빠진 부분이 있다는 거다. 사고가 났을 때 이를 복구하기 위한 비용이

애초에 반영되어 있어야 하지만 이 부분이 빠져 있다. 그리고 후쿠시마 사태에서 보이듯 일단 사고가 났다고

하면 그 비용은 천문학적인 수준에 이르게 될 수 밖에 없다. 단지 경제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남는

인적 피해를 감안한다면 '물이나 불의 피해도 총량으로 치면 원자력만큼 위험하다'는 논리는 말장난일 뿐이다.


그에 더해, 원전과 같은 치명적인 기피시설이 들어서기까지, 또한 원전에서 발생하는 방사능 폐기물 처리장을

지정하고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당근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경제적 급부는 물론이고

모두가 기피하는 그런 시설을 들이도록 설득하고 갈등하는 과정 자체가 커다란 비용이다. 물론 다른 수력이나

화력발전소 역시 나름의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겠지만, 특히 원자력 발전소의 경우 국제적으로도

커다란 화두가 되고 국제 시민단체의 압력까지 이어지는 등 그 차이가 큰 것이다.


▲방사능의 이동 경로. 붉은색이 방사능 위험지역이다. 서북로를 따라 이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위험지역은 반경 30km를 한참 벗어난 곳에서도 발견되고 있다(Hot Spot). ⓒ장정욱 교수 제공 자료서 캡처. (프레시안에서 재인용)



2. 원전의 안전성 : 세계 제일 수준의 일본조차 천재지변 앞에 무기력했다는 사실.

길게 이야기할 부분도 아니다. 세계 최고의 기술 수준을 갖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은 고작 6.5의 내진설계를

갖추고 있을 뿐이다. 일본과 같은 천재지변이 우리나라에는 생기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으며,

더구나 일본과 같이 천재지변을 끼고 살아 예방, 방재에는 훨씬 잘 준비된 나라에서조차 저렇게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그보다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부분에 대한 압축적인 표현은 원전 중앙 통제실 앞에 붙어있던 표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은 다름아닌 "100 빼기 1은 0이다"라는 문구. 만의 하나, 수백만의 하나라는 가능성만 있다고

하더라도 그 가능성이 현실화되는 순간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이미 체르노빌에서,

미국의 쓰리마일아일랜드에서, 후쿠시마에서, 보았고 보고 있는 일들이다.




3. 가장 중요한 문제 :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훈계'에 숨은 전제를 볼 것.

이제까지의 간소한 논의를 따른다면, 결국 숨겨져 있는 비용을 고려했을 때 전혀 경제적이지도 않고, 사고가 났을 때의

피해는 지구적 차원으로 치명적인 에너지원이 원자력인 셈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반박 논리는, 사실상 다른

대안이 없다, 그런 위험이라도 무릅쓰고 원자력 에너지를 취하지 않으면 인류 문명이 멈춰서게 된다는 주장이다.

그런 주장 앞에서는 할 말이 없어진다. 화석연료로 다져진 근대 문명이 차츰 한계에 달하고 있고, 깨끗하고

안전하며 효율적인 대량의 대체 에너지원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 과도기 역할을 원자력이 맡아야만 하는 걸까,

숙명처럼 이고 지고 가야 하는 걸까 생각하게 되는 거다.


그렇지만 그런 주장은 'Ceteris Paribus(다른 조건이 현재와 같다면)'이라는 전제를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

경제학의 기본 가정이기도 한 저 전제는, 원자력 발전소를 껴안고 살아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근거로 작동하고

있는 것 같다. 현재와 같은 에너지 정책과 시스템에 문제는 없을지, 현재와 같은 삶의 방식이 앞으로도 가능할지에

대한 성찰이나 개선 노력을 막고서 그저 지금까지 살아왔던 대로 살아가려면 역시나 원자력밖에는 대안이 없다는

식이니, 어떻게 듣기엔 '협박'처럼 들리기도 하는 것 같다.



4. '전제'를 바꾸어내는 노력 : 한국의 에너지 정책을 바꾼다면. 에너지 소비패턴을 바꾼다면.

지금 한국이란 나라가 갖추고 있는 전력 수급 시스템이나 경제 구조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까. 한국적인 맥락에서

말하자면 지금 현재의 전력 수요가 효율적으로 쓰이고 있는지, 보다 에너지를 절감하는 방식으로 산업과 경제가

굴러갈 여지는 없을지 시스템을 정비할 수는 없을까 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지금 그러하듯, '원자력산업'이라는 부분의 최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전체의 최선이 일그러지는 결과를 손놓고

바라보게 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생각한다.


수출기업들을 위한 값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전력단가를 비현실적으로 유지한 채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거나,

에너지 효율적인 전기기기나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유인할 의지를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정책 입안의 문제, 혹은

반도체니 철강과 같은 전력 소비가 막대한 부분에 국가경제 대부분이 과잉집중되어 있다는 사실 등. 얼핏 생각해도

이런 부분을 개선하여 증가일로의 에너지 수요를 적잖이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한국에 원전이 이렇게 많아 무려

세계 6위의 원자력발전국이란 건 이런 방만한 에너지 소비와 정책에 따른 막대한 전력 생산으로 인한 결과일 텐데,

이런 부분들을 개선하고 고친다면 최소한 두 기 지을 원전을 하나만 지어도 되지 않을까.

좀더 근본적으로는 인류가 근대에 짧은 순간 누렸던 에너지 압축적인 소비 양태를 앞으로 바꿀 수 밖에 없으리란

전망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전략을 짜야 할 때는 아닐까. 이런 이야기가 너무 거창하다면, 최소한 현재 갖고 있는

기술 수준에서 가능한 대안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노력에 좀더 힘을 쏟아야 하는 건 아닐까 싶다. 대량의 전력을

생산하는 발전소로부터 인근 도시와 지역을 커버하는 식의 집중화된 발전 말고, 풍력이나 태양열 따위의 새로운

대체 에너지원을 활용해 분산된 형태의 자가발전을 시도하고 있는 유럽의 사례가 단적인 사례다.


최소한, 이것 하나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원자력 발전에 따른 부산물들인 고준위, 중저준위 핵폐기물들이

환경상 무해한 수준으로 자체 정화되기에는 수만년 이상이 소요된다. 그리고 아직 끝나지 않은 화석연료 시대와

아직 오지 않은 대체에너지의 시대 사이에 한 50년쯤을 원자력 에너지가 주로 감당할 것이라는 게 강의를 했던

관련학과 교수의 전망이었다. 50년을 커버하기 위해 수만년 지속될, 아직 밀폐차폐 말고는 안전한 처리방법조차

개발하지 못한 치명적인 위협을 자초해야 할까의 문제다.



원전이 스스로 말하듯, 100 빼기 1은 99가 아니라 0이다.




* '에너지체험 블로그 기자단'의 일원으로 원전 견학을 보내거나 관련 강의를 듣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 꼭

현재 한국정부의 '원전 수출' 정책이나 원자력발전소의 입장을 지지하고 대변할 사람들을 만들려고 했던 것은

아닐 거라 이해한다. 애초 불명료했던 근거와 입장을 이번 기회를 통해 조금더 깊이 가다듬고 나름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도록 한 것만으로도 원자력문화재단에 감사한다.


영광 법성포는 인도 간다라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가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기 위해 바닷길로

들어올 때 최초로 당도하여 불법을 전파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 아미타불의 의미가

담겨있는 명칭으로, 이후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듯 백제 불교의 최초도래지인 이곳 법성포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기념성역을 조성해두고 인도 간다라 특유의

불교조각과 건축양식을 따른 기념조형물들과 기념 공간을 마련했다고. 그런저런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사찰과 주변 조경이 산책삼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찍기에 제법 괜찮은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최초도래지 입구로 들어가는 길, 외길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서있는 가로등 너머로 시퍼런

하늘이 참 좋았다. 특히나 가로등 바로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날아가는 비행기의 뒷꽁무니가 보이는 것 같기도.

청명한 가을하늘 저멀리로 마음도 같이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온통 붉은 열매가 지천으로 매달려 있던 풍경. 어찌나 왕성하게도 다닥다닥 붙어있던지

살짝 무섭거나 징그럽다고까지 느껴졌지만, 그래도 저렇게 프레임을 조금 잘라 들여다보면 나름 가을스럽던.

바다쪽 말고 산을 끼고 있는 길쪽으로는 철조망이 조금 둘려있었고, 철조망에 기대어 장미꽃들이 피어있기도 했다.

나름 단단한 꽃망울을 터뜨리곤 뾰족뾰족 가시를 발톱처럼 드러낸 장미꽃이라지만 철조망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끄트머리 철사 앞에선 여려보이기만 할 뿐. 

함께 나섰던 사진작가분이 억새를 가리키며 한번 찍어보라 하여 찍어본 사진. 살짝 역광을 안고 찍는 게 더 이쁠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카메라를 쥐고 자리를 잡는 바람에 왠지 민망해져서 살짝 찍어보곤 빠졌다. 


드디어 정문 도착. 과하게 임팩트를 준 거 같긴 하지만, 정문의 자바라식 철문이 정말 햇빛을 받아서는 저런 느낌으로

반짝반짝하고 있었단 말이다.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쏘아 들어가는 대신 저 화분이 눈에 들어와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분은 무슨 돼지저금통처럼 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고, 돼지의 모양 역시 돌돌 말린 돼지꼬리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표정도 참 탐스럽고, 두 볼에 찍힌 연지곤지같은 보조개도 귀엽다. 


기념공원에서 가장 바다쪽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정자,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동종 하나. 몸통 안에서 울림을 더하는

소리가 종 위쪽의 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면서 나름의 진동과 웅얼거리는 울림이 깊어진다고 들었는데.

저 너머로 불(佛)자가 새겨진 정원과 부처상이 보이고, 앞으로는 부처의 자비심처럼 온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듯한

기운을 풍기는 범상치 않은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들의 뻗친 형세하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묻어있는 

나뭇잎들의 분위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계속 눈에 밟히는 나무였다.

마라난타 존자의 상과 그가 전래했다는 불교유물, 불교 설법의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던 간다라유물관. 안에 사람이

한명도 앉아있지 않았지만, '사진촬영금지'라는 말을 고분고분 들었던 건 마라난타 존자가 한가운데 딱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곳에도 가을은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불그죽죽해진 나뭇잎들이 하나씩 둘씩 짝지어 내려앉았다.

간다라 불교에서 연원한 여러 인물들과 부처상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향로 모양의

조형물의 지붕 사방으로 매달려 있는 종에 제법 섬세한 문양이 보였다. 바람이 불때마다 날개옷을 너울거리는

청동종 안의 사람이 땡그랑땡그랑 울었다.

나무데크로 정비되어 뭔가 집회를 위한 장소로 마련해둔 듯한 공간에 놓였던 긴 화분 하나에서 꽃이 한뿌리채 통째로

떨어져선 한층 아래 바닥에 낙하해버렸다. 스스로의 의지로 떨어졌을 리야 없겠지만 자꾸 비장한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투신과도 같은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여서 굉장히 잔인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바세계의 풍진만물을 세심하게 굽어살핀다는 부처님을 챙기는 건 정작 저렇게 두 눈알을 번쩍거리고 있는

CCTV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아직 공사가 채 마감되지 않아 밑의 기단이 헐벗은 콘크리트 더미로 남은

미완성의 부처라서 힘이 딸리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얻어낸 오방색을 기반으로 꽃단장한 단청의 화려하고도 자연스런 색감, 갓 칠한 느낌 그대로 선명하고

또렷한 그 오방색 단청도 나무랄데 없다지만, 역시나 가을엔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의 오묘한 빛깔로 물든 단풍이 최고.


아직 공사가 미완이라지만 사람들의 소원은 완공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돌멩이들로 마감한 한쪽 축대의 돌들을

뽑아내서는 돌탑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 밑단의 돌을 하나 더 뽑아 위에 개어두면 언젠가는

모든 소원들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르지만, 다소 투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아니면 돼'라며 소원 하나의 무게를

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난 돌멩이들의 무게를 수천년간 견뎌내온 인류의 신이란 작자에게 조의를 표한다.


2층에 있던 법당, 생각보다 담백하고 부처상 역시 3D의 입체상이 아닌 2D의 그림으로 갈음되어 있었다. 법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던 건 반질하지만 유난하지 않은 나무 책상, 목탁과 죽비의 담담한 광택.

그나저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젖꼭지에 집착하는 걸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며 소원을 빌었던 그 손이 그 손 아닐까.

다른 분위는 텁텁한 대리석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유독 젖꼭지 두개만 반질반질, 좀만 더 있음 말갛게

광택이 생길 거 같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밑에서부터 위에 모셔진 부처상까지 오르는 길은 108계단으로 맞춰졌었다. 인간세상을

살아내며 겪게 된다는 108개의 번뇌. 계단 한걸음한걸음 그 번뇌와 세사의 번다함을 되짚어보고 끊어내며 올라갔다

내려왔어야 했는데 뒤늦게 알아챈 탓에 그러지 못했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싱싱한 대궁이 아직 살아있는데, 그 위에 얹힌 꽃은 물기가 삭 날아가고 가을이 되어버렸다. 가뜩이나 가볍고

얄포름한 꽃잎은 바람 한오라기에도 자칫 바스라질 듯 위태롭게 아름답다.






잎사귀를 전부 떨군 은행나무, 그리고 그 밑에 소보록하니 쌓인 노란색 카펫. 이제 앙상하지만 촘촘한 잔가지를

가득 이고 있는 은행나무를 거꾸로 쥐고선 사각사각 쓸어내면 좋을 듯.

고등어는 등푸른생선, 등은 푸르고 배는 은빛으로 번쩍이는. 소나무도 비슷한 투톤으로 바뀌었다. 등은 여전히

초록색이고 배는 갈빛으로 바뀌어버렸다.




도마뱀이 숨어있는 사진. 깨끗한 1급의 자연환경에서만 사는 게 도마뱀이라고 들었는데, 여긴 그만큼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하긴 이미 나 있던 등산로도 아니고 산 칠부능선 어딘가부터 잔뜩 헤매며 길아닌

길을 만들며 무작정 위로 오르고 있었으니.



불룩하게 튀어나온 배로 지나는 등산객들을 툭툭 밀쳐낼 거 같은 압박감을 주던 나무.




무당집이나 성황당에 걸린 불그죽죽한 리본들을 연상시키던, 온갖 산악회들이 명성산에 남기고 간 흔적.



나방이 숨어있는 사진. 털이 복슬복슬한 나방은...징그럽지만, 그래도 사진 속에서도 역시 징그럽긴 하다.

누군가가 반듯하게 마모된 돌판 위에 가지런히 낙엽 세 장을 펼쳐 놓았다. 상처도 제법 있고 끄트머리엔 벌레도

슬었는지 색깔도 누렇게 죽은 부위도 있지만, 그래도 어찌할 수 없는 그 색감이란 역시. 가을이다.








전봇대를 따라 기어오르던 덩굴은, 미처 꼭대기를 못 밟고 가을을 맞았나보다. 이미 이파리는 거의 떨어져버렸고,

몇장 남지 않은 이파리가 세상의 모진 풍파는 다 겪은 표정으로 깔딱깔딱 붙어있었다.


난지도 쓰레기매립장이 난지 퍼블릭 골프장으로의 변신을 거쳐 난지 하늘공원으로 조성된 거라고만 알고 있었다.

근데 알고 보니 난지 하늘공원, 평화공원, 난지천공원, 난지한강공원, 노을공원 이렇게 다섯개가 상암동 월드컵경기장

주변에 위치한 5대공원이었던 것. 전투적으로 하루 날잡아 전부를 돌아보는 일 따위 하지 않고, 그냥 조금조금

돌아보기로 하고 우선 난지천공원부터 돌아보았다.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가을방학'의 노래를 계속 반복해서 듣고

싶어지던 어느 가을날.





 

 

 






 

 







밤바다란 온통 깜깜할 뿐이어서,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가 바다이고 또 해안가인지 전혀 알 도리가 없는 거다.

그건 온갖 네온사인이니 간접조명으로 흐트러진 도심의 어둠에 익숙해던 눈과 마음에 대한 일종의 테러와도

같았는지라 저렇게 뜬금없이 동그마니 놓인 자판기에서 흘러나오는 뿌연 유백색의 불빛조차 위로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내, 까맣게 타버린 어둠 속에서 홀로 저렇게 불을 밝히고 선 허여멀끔한 녀석의 철판 껍데기라거나

차갑다 못해 시린 느낌으로 번지는 불빛이라거나, 채 몇걸음 내닫기도 전에 바닥에 하릴없이 달라붙고 말아선

고작 발끝에만 뭉쳐있는 허약하고 맥아리없는 빛그림자들이라거나. 왠지 월-E의 첫장면이 생각났다.







목포는 항구다, 깊은 밤 산책길에 만난 아크로바틱한 조기들.

에 이어지는, 새벽 이른 시간부터 목포수협 위판장을 찾아간 이야기다.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선들이 쏟아내는

생선이 어떻게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를 봤으니 이젠, 그 생선들이 어떻게 경매에 붙여지고 팔려나가는지.

온통 새까맣기만 하더니, 어느덧 희뿌여니 바다 저편의 실루엣이 눈에 띈다. 밤새 뱅글거리며 밤바다에서 있을지

모르는 미연의 사태를 방지하던 소리없는 사이렌 불빛이 이제야 조금 졸음이 오는지 한풀 꺾였다.

구름이 많이 끼어서 또렷하게 해가 뜨는 건 구경하기 쉽지 않겠다 예감했지만, 그래도 제법 구름들에 붉은 물이

슬금슬금 배어오르는 게 시시각각 주위 풍경과 분위기를 바꿔놓고 있었다. 하나도 안보이던 먹장 커튼이 걷히고

점차 멀리까지 시야가 확보되기 시작했다.

5시부터 경매가 시작된다고 했는데 좀 늦었다 싶어서 재게 걸음을 놀리는 와중, 벌써 해안가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싶어서 한참 바라보며 걸었는데 어느 순간 그네들이 살짝 떨어져 있는 배들을 낚시질하는

것처럼 보여서 깜짝 놀랬다. 배들이 묶여있는 두꺼운 밧줄이 마치 그들이 늘어뜨린 낚시줄 같이 보였다.

밤에 지나다가 '개 풀어놓았음, 물려도 책임안짐'이라는 살벌한 경고문구에 쫄아서 돌아갔던 곳에는 그새

불이 환히 밝혀진 채 일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알고 보니 생선들을 담는 나무상자를 제작하는 공장이랄까,

좁지 않은 마당 한가득 나무상자가 잔뜩 포개어 쌓여있었고, 새벽바다 냄새에 더해 싱그러운 나왕 나무

냄새가 온통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설핏 밝아오는 하늘 아래서 노랑색 낡은 간판 위를 빈틈없이 빼곡하게 채운 자그마한 화분들이 눈에 띄었다.

저 나즈막한 2층짜리 건물 2층에 있는 조그만 창문을 활짝 열면 바다가 멀리까지 보이려나. 눈앞의 화분들 때문에

시야가 약간은 가리거나 초록빛으로 일렁일지도 모르지만, 그 전망도 꽤나 매력적일 거 같다.

아직 경매가 시작되지 않은 창고를 지나서, 시끌벅적한 소리를 따라 그 옆의 창고로 향했더니 역시 사람들이 바글바글.

사람 한명이 겨우 걸어다닐 통로를 드문드문 남기고는 온통 바닥을 몇 겹으로 점령해버린 생선들, 그리고 그 통로에

비집고 서서는 경매인의 손가락들과 생선들로 시선을 옮기기 바쁜 사람들이 있었다.

이런 식인 거다. 목포수협 마크가 박힌 빨간 모자를 쓴 경매인분들을 한번 쳐다보고, 그 밑에 지천으로 깔린

셀수없이 많은 생선들의 상태와 크기와 선도를 전문가의 안목으로 식별해내느라 번쩍거리는 눈빛. 금빛으로

번쩍이는 오동통한 조기들은 바다처럼 싱그러운 짠내를 풀풀 풍기고 있었고, 은빛의 긴 칼처럼 번뜩이는

갈치들은 비늘이 벗겨지거나 하는 상처 하나 없이 차곡차곡 포개어져 있었다.


경매에 참여한 사람들은 번호가 적힌 모자를 쓰고 매물에 대해서 제각기의 금액을 말하고, 빨간모자 아저씨는 그걸

다시 확인하며 창고가 울리도록 쩌렁쩌렁하고도 재빠른 목소리로 모두에게 확인하는, 그런 다이내믹한 풍경.

 

 창고 끝에 쌓인 생선들부터 거래가 이루어져서는 점점 옮겨오는 경매인, 그리고 그를 따라 모세혈관같은 샛길을

밟고 신속하고 헤쳐 모이는 사람들. 거래가 끝난 생선들은 리어카나 트럭에 바삐 실리고 있었다. 어느새 점점

부옇게 밝아오는 바다와 하늘.

거래에 나온 건 대풍이라는 조기만이 아니었다. 갈치도 있었고, 복어도 있었고, 고등어니 삼치도 있었고, 심지어

익숙하게 생긴 상어와 이상하게 생긴 상어도 있었다. 거의 '시장에 가면~'으로 시작해 줄줄이 이어지는 무한

돌림노래를 듣고 있는 기분이랄까. 그나저나 마지막 사진의 이상하게 생긴 놈도 상어라니, 신기하다.


그리고 저 녀석. 저 발갛게 달아오른 부분을 보고 '홍어X'이라고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지나는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까 이것도 모르는 딱한 도시사람을 봤다는 투로 '아귀'라고 알려주셨다. 콩나물넣고 찜으로 쪄먹는

아귀 혹은 아구찜 모르냐고 부연설명이 들어가기도 전에, 그럼 저건 '홍어X'이 아니라 '아귀X'이구나 하고

머릿속 정리를 끝내고 가만히 눈에 담아두었다.

아침식사 시간에 맞추려면 이제 슬슬 떠야겠다 싶어서, 마지막으로 외판장 전경을 담고는 자리를 떴다. 수협외판장

앞면에 내려진 철제 셔터막에는 귀여운 거북이들이 곰실곰실.

이제 저렇게 경매를 거쳐 팔려나온 조기와 갈치 같은 생선들이 위판장 근처 생선가게에서부터 깔리기 시작했나보다.

깔끔하게 포장된 조기 상자하며, 진열대 아래로 추욱추욱 꼬리를 늘어뜨린 갈치들. 갈치 꼬리들이 무슨 고드름처럼

진열대에 매달렸다.

그렇게 돌아오는 길, 이미 해가 바싹 떠올랐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오르는 중이었나보다. 시멘트 바닥 위에

올라와있는 배 위로도, 걸쭉한 물결이 이는 불투명한 수면 위로도, 조금씩 저 너머 바다끝에서부터 천천히

그렇지만 거침없이 햇살이 번져오기 시작했다.

갈매기도 날고, 날다가 지친 새들은 햇살을 받으며 바다에 내려앉아 쉬기도 하고. 구름이 좀만 더 옅었어도

햇빛이 좀더 구름의 장막을 뚫고 넓게 배어나오지 않았을까 아쉽기도 하다.


같은 듯 하면서도 조금씩 느낌도 다르고, 수면 위에 이는 고요한 물결 무늬가 불러일으키는 느낌도 달라서

좀체 해돋이 사진이나 바다 사진은 골라내질 못하겠다. 하여, 그냥 핑계김에 전부 올려버리는 게으름을.


그러다가 역시, 제버릇 개 못준다고 또다시 옆길로 새어서는 꽃도 보고, 어느 낡은 건물 벽면에 기대어선 닻도

구경하고. 산동네처럼 언덕을 따라 층층이 올라가는 건물들을 보며 저 사잇길로 돌아다니면 예기치 못한

재미난 풍경들을 구경할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고민하기도 하고. 결국은 가보지 못한 길을 남겨두었지만.

이런 운치있는 계단을 밟아 올라 열게 될 저런 낡은 대문도 맘에 들었다. 해풍을 맞고 소금기에 절어 눅진눅진

삭아가고 있을 대문 위로 세워져있는 짧막한 창살들도 방범용이라기엔 시늉만 남은, 경비할아버지같은 느낌.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그 유명한 광고카피, "개구장이여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가 이곳의 어린이집 교훈임에 틀림없다.

거의 언덕 위까지 108계단을 밟아 올라야 어린이집 현관에 도착할 거 같은 이곳, 통학만 하다보면

자연스레 아이들의 신체발달이 촉진되고 체력이 증진될 거 같다.


아이들 체력단련에 최고인 어린이집을 찾는다면, 목포의 구X 어린이집에 문의해 보시길 권하며, 지리적 여건상

목포까지 통학이 어려운 경우에는 가까운 어린이집에 조심스레 벤치마킹을 유도해 보시길.




새만금 아래, 변산반도국립공원 끄트머리에 있는 격포항에서. 허리와 엉덩이와 입술을 맞댄 배들이 바다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조조의 연환계라도 쓴 듯 그렇게 바다를 뒤덮은 채로 옴쭉달싹 못할 거 같은 배들 너머로 유유히

항구를 빠져나가는 배가 보인다.

그리고 조금 너머에는 배 세척을 사이좋게 나란히 묶어둔 채 둥실둥실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운데 있는 배가 조금

커보이긴 하지만 비슷한 사이즈의 비슷한 색깔, 모양새의 배 세척이 고양이 발가락처럼 곰실곰실.

여객선터미널을 지나 쭉 이어지는 산책로를 따라 사람들과 대치하고 선 우락부락하게 층진 암반, 그위에 살풋

얹힌 단풍들. 저쪽으로 좀더 걸어가보고 싶었지만 시간이 모자란 관계로 패스, 어찌나 아쉽던지.

대신 무지개빛의 바람개비 옆을 지났다. 바람이 불지 않던 탓에 빳빳이 굳어있던 바람개비들은 바다쪽으로부터

육지쪽을 향해 날아갈 폼만 잡고는 장대 위에 게으르게 앉아있었다.

바다도 보고 언덕도 보고, 그리고 단풍도 즐기며 변산반도 쪽, 다음에 시간 내어 제대로 둘러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바람이 불어왔고 바람개비들이 씽씽 돌기 시작했다. 저러다간 어느 순간 포르르 날아가버리겠다 싶도록.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목포의 유달산 일출을 찍기로 한 출사 여행이었던지라 저녁 일정은 일찍 마쳤다. 술도 깰 겸 하여 습관처럼

카메라를 둘러메고 훌쩍 혼자서 나온 건 이미 늦은 밤, 그래도 밤 공기도 선선한데다가 바로 옆에 바다를

끼고 걷는 길이 너무 좋아 내처 걸어보기로 했더랬다. 알고 보니 숙소가 위치한 유달산쪽은 옛 목포항이 있던

곳이라나, 몇걸음 걷기도 전에 물결치는 필체로 쓰인 '예향목포'란 돌덩이부터 만났다.

역시 항구도시인지라 길가에 이렇게 닻을 겹겹이 쌓아둔 채 셔터를 내린 상점들도 보이고, 스크류니 프로펠러니

선박에 관련된 장비들을 취급하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지나는 사람은 고사하고 차들도 흔치 않아 조금 헛헛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혼자 무작정 발길 닿는 대로 밤길을 걷는 건 굉장히 유쾌한 일이다.

나름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선 한밤 중에 단풍놀이도 즐기고. 짭조름한 바닷바람에 절여졌을 텐데도 노랗게 잘도

익은 나뭇잎들이 이쁘다. 그런데 그 밑에 줄줄이 주차해 있는 저 리어카들은 왜 저렇게 바닥이 길게 덧대어져

있는 걸까. 한 두대도 아니고 우르르 세워진 리어카들이 전부 저 모양이니 더욱 궁금증이 이는 거다. 나중에

목포 수협 위판장까지 걷고 나서야 풀린 의문.

목적지를 정해두고 걷는 길이 아니었으니, 골목이 나오면 괜히 한번 꺽어들어가 보기도 하고, 뭔가 호기심을 잡아끄는

게 있겠다 싶으면 옆길로 새보기도 하고, 아니면 굳이 뒤로 되돌아와 확인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떠도는 중에 지나친

골목 중 하나. 작고 여윈 이층짜리 건물에 문짝은 왜 그리도 많이 달렸는지, 문짝 하나 창문 하나로 이루어진 상점들이

세네개는 들어서 있는 거 같았다. 가로등 불빛을 양분삼아 하얀 스티로폼 상자 속에서 쑥쑥 자라던 상추들도 있었고.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문득 다다른 곳이었다. 목포수협 위판장. 불이 환하게 밝혀진 곳이 멀찌감치에서 보이는

거 같아서 그것을 향해 걸었을 뿐이었는데 무슨 마을 잔치라도 벌어진 듯이 웅성대는 분위기에 온동네 사람들이

전부 나온 듯 바글바글한 인구밀도까지. 뭔지 몰라도 바싹 구미가 당겨서 풍경 틈새에 비집고 들었다.


그 결과, 조기가 풍년이라는 요새, 어떻게 어선들이 잡은 생선이 모이고 분류되고 포장되는지 그 과정을 전부

구경할 수 있었다. 더불어 다음날 새벽 5시부터 경매가 진행된다는 정보도 입수해서, 경매가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생선들이 팔려나가는지까지 알 수 있었던 뜻밖의 경험도 할 수 있었다. 우선은 경매를 준비하기까지,

생선들이 집하되고 분류되고 포장되는 과정을 시간순으로. 사진은 어쩌다보니 역순으로 찍혔더라는.

어선들이 항구에 배를 가까이 대고 나면, 크레인차가 배 곁으로 바싹 붙어선 단단히 위치를 잡는다. 온통 칠흑같이

어두운 밤바다에서 불쑥 튀어나온 배와 그 우악스런 불빛으로도 충분히 정신이 혼란스러워지는데, 게다가 어디선가

솔솔 풍기는 기름 냄새와 둔중한 기계의 울음까지.

배의 갑판 위에서 잡은 고기들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선원 아저씨들. 예비군 모자가 유난히 반짝거리는 젊은이도 있고,

그야말로 뱃사람 느낌이 물씬 풍기는 아저씨도 있고. 옷에 가려 보이진 않아도 그네들의 팔뚝은 두꺼운 근육들로 감겨

사방으로 갈라지지 않을까 싶다. 크레인이 늘여뜨려진 배의 한복판에서 잰 손놀림으로 뚝딱 짐 하나를 꾸린 사람들.


그렇게 잘 여며진 생선 상자들이 크레인의 움직임에 따라 번쩍 들려서는 안전하게 항구 위 단단한 바닥에 옮겨졌다.

두껍고 까만 크레인 낚시바늘이 생선 비늘처럼 반짝거렸지만, 그런 건 일하는 사람이 아닌 놀고 있는 사람 눈에나

보이는 법인가 보다.

한짐을 꽁꽁 안전하게 묶고 있던 두꺼운 밧줄을 헤집어서는 번쩍, 하나씩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겨진

생선들은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부어져서 아주머니들이 분류해주기를 기다리는 신세가 된다. 어찌나 생선들이

많은지, 당연하지만 한마리 한마리 긁히거나 찌그러지지 않게 챙길 여유는 없는 듯 했다. 마치 우유가 담긴

그릇에 씨리얼을 붓듯이 가차없이 부어버리는 그 냉정한 손속이라니.

일렬로 늘어선 아주머니들과 노랑 박스를 무질서하게 가득 채운 조기들과의 기싸움이 시작되고. 아주머니들의

군더더기라곤 없는 정연한 몸놀림과 생각보다 현란한 패션센스에 뒤지지 않는 생선들의 아크로바틱한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모두 하나같이 입을 쩍쩍 벌린 채.
 

아주머니들은 인어공주처럼 온통 반짝거리는 비늘로 뒤덮인 하반신을 하고 있었다. 창백한 색감의 형광등 아래에서

미끌거리며 반짝거리는 비닐 앞치마 자체의 광택도 눈이 부셨지만. 생선의 사이즈에 따라 각기 다른 상자에 옮겨담는

과정이라고 했는데, 생선들을 분류하는 손놀림에서 일말의 망설임이나 잡생각도 읽어낼 수 없었다. 무슨 '생활의 달인'을

보는 듯한 기분이었달까. 사방으로 날아다니는 생선들은 아직도 숨이 붙어 펄떡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게 아주머니들이 제각기의 패션센스와 칼라를 과시하며 일에 몰두하고 있는 모습은 왠지 슬며시 웃음이

나오게 되는 그런 따뜻한 풍경이기도 했다. 열두시가 넘은 오밤중에 나와서 쉼없이 저렇게 일하시는 게 그렇게

마냥 재미있는 일은 절대 아니겠지만, 그래도 노랑 박스에 포위당하다시피 한 상태로 끊임없이 새로 부어지는

생선들의 산을 의연하게 해치우시는 모습은, 뭐랄까, 약간 영웅적인 분위기마져 풍겼던 거다.


그리고 그렇게 사이즈별로 분류된 생선을 받아서는 저렇게 가지런히 정리하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사이즈가

비슷하다고는 하지만 약간씩 자세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데, 무슨 테트리스 조각맞추듯이 이렇게 저렇게 짜맞춰선

틀림없이 저런 봉긋한 언덕 모양의 생선박스를 만들어내시는 거다. 그 손놀림 역시 신묘하기가 달인의 경지더라는.

완성된 생선꾸러미엔 저렇게 물을 한바가지 끼얹어서는 창고 맨 뒤쪽부터 차근차근 놓이게 되는 거다.

그 전에 생선의 선도 유지를 위해 빠질 수 없는 얼음 한 삽. 큰 칼 옆에 차고 자세를 잡으신 충무공은 아니라지만

눈삽을 옆에 차고 깔맞춤된 '구루마'에 턱하니 기대선 모습이 어찌나 멋지시던지. 마침 약간 빛살도 새어들어와

머리 위로 내려떨어졌으니 더할나위없는 영웅의 풍모.

이렇게 안에서부터 바싹 붙어선 차곡차곡 채워지는 생선들은 이제 새벽에 있을 경매를 기다리며 네다섯시간을

얼음찜질하는 거다. 물론 이 곳으로 목포 근방의 어선들이 모두 집결하니까 생선량이 어마어마할 수 밖에 없겠지만

얼핏 보기에도 조기가 정말 풍년이긴 한 것 같다. 드넓은 위판장 바닥이 온통 저렇게 빈틈없이 빽빽하게 갈무리된

조기 꾸러미로 깔려 버렸다.

그래도 그 옆에서 수협 위판장 바닥에 대한 나름의 지분을 확보하고 있던 녀석들은 새우젓 드럼통들. 꽁꽁 묶인

주둥이 사이로 용케도 삐져나온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보고 나서 웃음이 빵 터지고 말았던 위판장 벽면의 무슨 전기스위치상자. 손대지 맛시요. 위염. '맛시요'란 말은

전라도의 특징적인 억양을 그대로 살려서 적은 거 같은데 왠지 발음하며 읽어볼수록 맛깔스러운 거 같다.

손대지 맛시요. 알았시요, 라고 얼른 대답해 주고 싶은.

조금이라도 자고 몇 시간 후에 있을 경매 모습을 구경하려면 얼른 돌아가야겠다 싶어서, 이제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숙소. 덕분에 돌아가는 길은 무척이나 짧았고, 생각보다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그래도 돌아오는 길에 그토록 길게 덧대어진 리어카들의 쓰임을 알아냈으니, 생선을 담는 나무상자를 가능한

많이 싣고 옮기기 위한 방책이었던 것. 저런 식으로 '대륙'의 느낌 가득하게 나무상자를 바리바리 싣고는

위판장에서 필요할 때 옮겨와서 쓰는 거 같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이미 자정이 지난 늦은 밤이었지만 시꺼먼 바다를 가르며 불빛들이 나타나서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생선을 실은 배인지 아니면 막 내려놓은 배인지 모르겠지만 불빛 세 개가 발톱처럼 수면을

긁으며 앞으로 기어나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움직이는 배가 지나가고 나면 길 옆으론 온통 까만 어둠이다. 빵꾸난 구멍으로 새어나올 법한

불빛 하나 제대로 보이지 않는 먹지같은 까만 벽이 하나 바닥에서 하늘 꼭대기까지 세워진 느낌. '바다'라는 곳에서

느끼는 막막함과 망연함이란 건 사실 저런 형태 아닐까 싶었다. 제 손가락도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어디가 앞이고

뒤인지도 말할 수 없는 그런 무저갱의 어둠 속. 아마도 밤바다가 웅크리고 있을 그 무시무시한 공간을 옆으로 두고는

열심히 걸어서 숙소로 돌아왔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새만금, 몇 년전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전에는 간간히 뉴스나 신문에서 접했던

그 곳 새만금에 와 보기는 처음이었다. 어디서 어디가 매립지인지도 가늠하기 힘든 그 곳, 직선으로 쭉쭉 뻗은 도로만이

이 곳이 지도위에 그려진 몇개의 직선을 따라 만들어진 땅일 거라 짐작하게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거침없는 직선으로

내뻗은 도로를 따라 함께 저너머 안개가 자욱한 곳으로 내달리는 건 듬성듬성하지만 역시 완고한 직선으로 심어진 잔디.


2009 희망다큐프로젝트 "살기 위하여" 시사회..물막이댐을 쓸어낼 '재해'를 기다리며.

 

다큐를 보고 나서도 그렇지만 그 이전에도, 이런 대규모 간척사업이 대체 무슨 경제적 이득이 있을지, 그리고 설사

이득이 있다 해도 다른 생태계 파괴 등의 요소를 고려했을 때도 여전히 이득일지는 의문이었다. 그런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땅이 좁은 나라라 하지만, 실제로 쓸 땅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계획과 시스템의 문제 아니던가 싶어서다.

새만금을 둘러본 건 그다지 길지 않은 시간이었던지라 판단에 새로운 팩트를 가감하지는 못했지만, 풍경은 남았다.

아직 제대로 정비되지 않은 채 공사중이었던 새만금 관광센터 앞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그란 순환로가 있었다.

군산으로, 부안으로, 그리고 수변로로 빠지는 길들이 동그라미 밖으로 빠지는 화살표들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그 옆에 노란 삼각형 안에 검은 화살표가 빙글빙글 도는 모습은 왠지 '재활용 표시'같기도 하다. 플라스틱이니

알루미늄이니 재활용이 가능하단 표시로 꼬리에 꼬리를 문 채 순환하는 화살표. 그렇지만 빨갛고 노란 바탕색에

검정 화살표가 그려져 있으니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불길한 징조 같기도 하다.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공사중인 모습. 저 멀리 무슨 갑각류의 딱딱하고 화려한 껍데기처럼 반짝이는 주황색

포크레인이 여러 대 세워져 있고, 앞에는 물빼기 작업용으로 쓰였을 녹슨 쇠파이프가 여러개. 그렇게 물이

바싹 빠진 바닥에 물새들이 몇 마리 깃을 접고 내려앉았다.

방조제를 따라 이어진 수변로를 쭉 걷다 보니 방조제 안쪽으로, 아마도 이제 폐선으로 버려지고 만 듯한 배들이

생각보다 잔뜩 있었다. 아직은 방조제 안쪽의 물이 전부 빠지지 않은 상태인지라 제법 둥실거리며 떠 있긴 했지만

바닷바람과 바닷물에 하릴없이 낡아가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그리고 수변로 옆의 성기게 심어진 잔디밭 위에 동그마니 놓여있던 배 한 척. 그 조금 위로 씽씽 달리는 관광버스와

자동차들이 일으키는 바람에 조금씩 흔들거리는 배는 어쩜 잔디가 일으키는 물결을 타고 있는 거 같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잔디가 어쩜 저리 반듯한 이랑을 만들어 놓고 있는지, 정말 굉장히 작위적이기도 하고 인공적이기도 하고.

그렇게 죽죽 그어진 잔디밭 골들은 그대로 얼어붙은 파도 같기도 하다. 안개가 잔뜩 끼고 문득 생각났다는 듯 빗발도

흩뿌리는 날씨 탓에 왠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반쯤 헐벗은 채 얼어붙은 파도 위에 올라앉은 배 한조각이 분위기를 더했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눈에 걸리던 저 콘크리트 기반 위에 비석처럼 서 있는 게 뭔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봤다.

방조제 관리를 위한 전기설비 단자함이란 걸 알고 난 후에도, 이 땅 밑에 잠들어있을 수많은 바다 생명들, 이곳에

깃을 접고 내려앉았을 뭇 생명들, 그리고 이 곳에서 땅을 파고 바다를 일구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위로하는

반듯한 직선으로 만들어진 비석같기만 했다.


이 곳은 방조제로 감싸이지 않은, 살아있는 바다 쪽의 갯벌. 아직 살아있는 것들이 생생한 자취를 남기고, 그에

더해 파도가 얼기설기 갯벌을 흐트러뜨리며 손자욱을 깊게 긋고 내리는 곳.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갯벌을 뒤집고 뭔가를 잡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변로 안 쪽의 갇힌 배들과는 달리 바닥을 드러낸 맨땅 위에 기우뚱 정박해있는 배들, 그건 오히려 이들이

아직 갇히지 않고 자유로이 바다 위를 달리며 움직일 수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다시 물이 들이차면 둥둥 떠올라선

사람들을 싣고 고기를 잡으러 앞바다로 나갈 준비가 된 배들이다.

수변로를 따라 앞서 내달리던 일군의 자전거 무리들. 관광안내소 앞 주차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은 달리기

대신 이층으로 탑쌓기 놀이 중이었다. 화려한 유니폼 때문인지 자전거를 차곡차곡 챙기는 모습이 무슨 탑쌓기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더라는.

새만금 방조제가 가둬버린 땅과 바다에는 더이상 파도가 갈퀴질할 갯벌도, 갈퀴질의 흔적이 남을 만큼 말랑한 공간도

남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대신 남은 건 온통 쭉쭉 뻗은 단단한 직선들이다. 게다가 아직은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직선들은 사람들의 손길이나 자연의 세례를 받지 못해 엄청 날카롭고 황량해보이기조차 한다. 그러고 보면 여기서

보았던 유일한 동그라미조차 생태계의 순환이 파괴되고 재생이 불가해졌음을 묵시하는 것 같았던 거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서울이란 동네는 워낙 순식간에 건물들이 사라지고 새로 올라가는 곳인지라, 당장 오늘 찍었던 사진이 내일이면

다시는 찾아볼 수 없는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는 경우가 왕왕 있단 이야기를 들었었다. 옛 서울역사, 그곳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될 거라며 헐벗은 채 속살과 뼈대를 드러내며 리모델링 중이었던 모습이 오히려 사진전에
 
출품된 사진들보다도 흥미로웠었다. 이 곳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말끔하게 단장해서 옛모습이 많이 지워지겠구나,

하는 비감함마저 들었는데 2009년 그 때 이후, 대충 3년이 꽉 차가는 시점에 다시 가본 서울역사는 또 달랐다.


재단장되어 문을 연 이곳에서 '연합국제보도사진전'이 열리고 있고, 다른 개관 프로젝트 설치미술전이 무료로

전시되고 있단 이야기를 들은 건 사실 두어달 전이었다. 한번 가봐야지 하면서도 이제야 갔더니, 이미 보도사진전은

끝났고 '카운트다운'이란 이름의 개관프로젝트만 내년 2월까지 열려 있었다. 3년동안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애초 1925년 복원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간다는 문화재 복원의 의미와 문화 공간의 탄생이라는 의미를 아우르는

시도로 '카운트다운'이란 프로젝트를 기획했다고.

(before & after #1.) 서울역사 1층 로비 한가운데에서 문득 고개를 들면 보이는 천장. 위의 사진이 2009년의 모습.

그리고 밑의 사진이 복원공사를 마치고는 밝고 산뜻하게 정리된 모습이다. 이전의 모습이 뭔가 공공기관의 느낌이

강하도록 무궁화니 봉황이니 태극마크가 커다랗게 압도했다면 지금 모습은 훨씬 샤방샤방하니 이쁘다.

 

(before & after #2.) 정확한 위치는 아니지만, 저 낡고 삐걱대는 문짝들이나 페인트칠이 잔뜩 금가고 깨어져나간

공간이 이렇게 말끔하게 정돈된 셈이다. 새하얗고 잔잔한 불빛이 말끔하게 칠해진 하얀 벽면과 전시물들에 반사되어,

높은 천장과 더불어 탁 트인 느낌을 준다.


(before & after #3.) 천장에 그려져있던 누렇게 바랜 두터운 벽지같던 무늬와 색감은 전부 사라지고 새하얗고

단정하게 칠해진 하얀 벽만 남았다. 그래도 마냥 하얗지만은 않아서, 기둥마다 검정색 받침으로 포인트를.


1층의 어느 창문들은 이렇게 색색으로 유리가 끼워져 있었다. 막 뭔가 복잡한 형체가 그려지거나 그러지 않아도,

저렇게 유리마다 다른 색을 끼워놓기만 해도 제법 분위기가 그럴 듯 하구나 싶다. 그리고 기차역이었던 이 공간의

전력을 감안한 듯 기차모양으로 쭉 이어지는 의자, 혹은 의자 모양의 예술작품. 예술작품인 거 같기도 하지만

누군가 앉았다 간 듯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어서 슬쩍 엉덩이를 걸쳤더니 선뜻하니 차갑다.

예수와 부처와 공자? 뭔가 세계 종교를 대표하는 듯한 입상들이 서 있었는데 가만히 보면 그들의 대표적인

상징들이 혼란스럽게 뒤바뀌어 있다. 부처 머리위에 가시 면류관이 씌워있다거나, 예수가 수인을 맺고 있다거나.

그리고 작품들 너머로 보이는 말끔하고 단정한, 그야말로 새건물같은 옛 서울역사. 아, 이제 이곳의 이름은 바뀌었다.

이제 이곳은 2012년 3월부터 '문화역서울 284'라고 불리게 된다고 한다. 284는 이곳의 문화재 사적번호.

(before & after #4.) 다 찢어발겨진 벽지, 깨어진 창문, 대충 흰천으로 막아둔 썩은 나무내 풍기던 창틀 풍경이

이렇게 바뀌었다. 귀빈들이 기차를 기다렸다는 오늘날 VIP대기실과 같았던 이 공간, 그때의 우아함과 고급스런

느낌을 살려서 붉고 따뜻한 느낌의 두툼한 커튼과 함께 세련된 온기를 품고 있다.

(before & after #5.) 그리고 같은 공간, 일제강점기 쯤에는 겨울철 추운 날에 저기서 땔감을 때며 방안에 온기를

불어넣지 않았을까. 2009년 국제사진페스티벌 당시 사진작품을 올려두는 멋진 포인트 공간이었던 곳엔 역시

'우리는 모두 여행자'란 LED조명이 반짝이는 또다른 예술작품이 설치되었다.

(before & after #6.)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깨져나간 벽면은 을씨년스럽기가 그지없어서 왠지 공포영화의 한장면으로

손색이 없겠다 싶을 정도였는데, 말끔하게 정리되어선 저렇게 이리저리 뒤집히고 기울어진 숫자 작품들이 커다랗게

전시되어 있었다. 붉은 빛이 감도는 백열등이 아니라 세련되고 도회적인 느낌의 하얀 형광등이란 것도 큰 차이.

(before & after #7.) 계단도 말끔하게 바뀌어 있긴 매한가지. 잔뜩 녹슨 철제 기둥에 드문드문 거미줄도 끼어있어

가뜩이나 차가워 보이는 시멘트계단 바닥이 더욱 차가워보였는데.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
(before & after #8.) 시커먼 먼지가 헤아릴 수 없는 날들이 흐르는 동안 운명처럼 내려앉았던 그 곳, 조명조차 부실해서

더욱 껌껌해 보였던 그곳이 하얗게 씻겨지고 나니깐 난간에 붙어있는 무늬도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before & after #9.) 화장실도 이렇게 바뀌었다. 배선이 다 드러나고 위의 천장도 뜯겨서 이리저리 흐르는

파이프가 다 보이던 복원공사 중의 서울역사와, 이제 그런 것들이 기억나지 않는다는 듯한 말간 얼굴로 시치미를

떼며 사람들을 맞이하는.

(before & after #10.) 큰 변화 중 하나는 창문에 붙어있던 철망이 모두 사라지고 딱딱하고 무거운 색감의 창문틀이


파스텔톤의 가볍고 따뜻한 느낌을 가진 창문틀로 바뀌었다는 것.

(before & after #11.) 2층으로 올라가는 길, 바로 맞닥뜨리는 두개의 방. 이전에는 화장실과 이발실로 쓰였다는

곳이다. 지금은 이 곳이 과거에 어떤 모양이었으며, 복원을 거치며 어떤 부분이 어떻게 살아남고 버려졌는지

그 흔적을 남겨두고 있는 복원전시실이 되었다.

안에 들어가보면 이렇게 이전의 빨간 벽돌 건물의 속살이 그대로 살아있고, 고풍스런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

유리장이나 목재 전시장 안에서 마치 박물관의 귀한 유물처럼 옛 서울역사의 부분들이 모셔져 있었다.


1층 로비의 천장화 그림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보여주는 옛 사진들도 남아있고, 서울역사 곳곳의 문짝 손잡이도

추려져 있었으며, 심지어 과거 이방이 화장실이었다는 걸 환기시키는 벽면의 파이프 흔적까지 간직했다.

(before & after #12.) 과거에 양식 레스토랑의 대명사였다는 서울역사의 대식당 '그릴', 그 공간은 이제 커다란

다목적홀로 바뀌었다. 휘황한 불빛을 뿜어내는 샹들리에가 줄줄이 늘어져 있던 곳은 그 무겁고 웅장한 느낌을

벗어던지고 밝고 가벼운, 좀더 현대적인 느낌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여전한 인테리어들과 방 자체의

독특한 모양새에서 은근하게 배어나오는 고풍스러움이 멋지다.

과거에 대식당, 그릴이었다는 것의 흔적도 역시 여전히 남아있다. 1층에서부터 음식들이 올라오는 엘레베이터가

두개, 고스란히 남아있었는데 워낙 깔끔한 상태여서 지금도 그대로 써도 될 거 같다.

그리고 홀 뒤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저 문을 통해 날랐었나 보다. 매표소 유리창처럼 생긴 저 두 개의 구멍은

아마도 홀 서빙을 맡은 사람과 안에서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 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한 창구 같은 거였을라나.

(before & after #13.) 한쪽에 있는 벽난로. 저기에서 뻘건 불빛이 날름날름 땔감을 핥고 있었을 거고, 그 불빛에 벌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채 사람들은 웃고 떠들며 먹고 마시지 않았을까. 뭐 여기가 유럽의 어느 연회장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왠지 그런 식의 상상을 자꾸 부채질하는 이 곳의 건축물. 애초 그렇게 서양을 따르고 상상하며 만들어진 아시아

'근대'의 건축물이기도 하다.

(before & after #14.) 그 안에 있던 라디에이터들. 지금도 설마 작동이 되랴만은, 그 쓰임이 없다고 지워버리지 않고

굳이 저렇게 철망까지 만들어서 그대로 보존해둔 건 그 자체로 이 방의 분위기를 만드는 아이템이지 싶어서일 듯.

아마 앞서 보았던 벽난로는 그냥 장식적인 효과만을 노린 거였거나, 아니면 워낙 방이 큰 지라 열기가 사방에 전달되지

않아서 별도의 난방 장치가 필요했나보다.

 

그리고 전시 중에 가장 맘에 들었던 건, 벽면을 따라 담쟁이 덩굴처럼 타고 오르던 이 수많은 전선들, 아니 이어폰들.

뭐라고 칙칙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살아있는' 이어폰들이 벽면을 따라 꿈틀대며 유리창을 한가득 덮고 있었다.

창너머에서 조명이 아래로부터 위로 비쳐왔다. 서울역사 건물 외곽에 아래에서 위로 솟구치는 조명들을 빙

둘러서 야경을 이쁘게 꾸미보려고 하는 거다. 근데 조명이 좀 얼룩덜룩하게 벽면에 그림자를 남겨서 새롭게

복원된 역사 건물 내부처럼 말끔하다는 느낌은 없는 거 같지만, 여하간, 창문을 넘어 천장에 울퉁불퉁 그림자를

물리쳐낸 조명의 힘.

그리고 다른 예술작품들이 역사 건물 곳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제목을 보기 전에 먼저 작품을 한참 노려보며

대체 뭘까 상상을 해보고는, 대충 생각이 멈춘다 싶으면 제목을 보고 다시 자극을 받고 제목과 작품 간의

연관관계를 새롭게 고민하기 시작하는 그런 감상 패턴.

그리고 이런 무지개색 아크릴인지 유리인지를 활용해서 네모난 방 공간 곳곳에 입체 형상들을 배치해둔 작품도

있었다. 다른 것들보다, 실용성이란 측면에서, 창문 옆에 기대어 선 저 핑크빛의 영롱해 보이는 수납장이 맘에 들었다.

아무거나 손닿는 대로 집어서 저기에 칸칸이 집어넣어 두면 이쁠 거 같은데.


2층에서 1층으로, 1층에서 건물 밖으로 돌아나오면서 다시 한번 눈여겨 본 역사의 이모저모. 복원공사를 거치고

말끔하게 타일을 바꾸거나 페인트칠을 하고 거울도 말갛게 새로 갈아 꼈다지만, 나무문짝이라거나 묵직해보이는

문손잡이, 그 나무빛깔이 워낙 생생해서 전체적인 분위기는 여전히 빈티지스럽다. 그래서 다행이지 싶다.


하늘이 파랗게 밝을 때 들어갔는데, 한바퀴 휘휘 둘러보며 작품들도 보고 서울역사의 바뀐 모습들도 살피고

하다보니 어느새 하늘이 파랗게 어두워졌다. 건물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저렇게 버티고 서서, 한때 기차를

타는 손님들이 들고 나던 건물에서 이제는 예술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이 들고 나는 건물로 쓸모를 바꾸며

수명을 이어가는 건 멋진 일인 거 같다. 이 곳에 켜켜이 쌓였던 오랜 기억들과 시간들 위에 또 다른 추억들이

쌓여 간다는 것, 하릴없이 무너져 내리고 사라지고 지워지지 않는다는 건 참 다행이다.






 


어느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이파리를 늘어뜨린 채 해바라기 중이던 초록빛깔 덩굴식물. 삼지천 마을,

혹은 삼지내 마을에서 느껴지는 여유로움이나 차분함이란 건 저런 덩굴이 꼬물대며 이파리를 밀치는 소리와

움직임이 보일 거 같은 그런 정도의 질감을 갖고 있었다.

A탐방로니 B탐방로니 일견 복잡해 보이는 코스들이 있었지만 그렇게 어려울 거 없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눈길 닿고 마음 동하는 대로 걷다보면 어느새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거다. 미처 못 가본 샛길의 풍경이 못내

궁금하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면 그저 또다시 휘적휘적 걸어가면 될 일. 그런 게 '슬로우시티'의 호흡이 아닐까.

이리저리 휘휘 감기며 이어지는 돌담길이 끊긴다 싶은 곳엔 반쯤 열린 나무대문이 버티고 섰다. 안 그래도

나뭇살이 조금씩 휘어지고 뒤틀려 안의 풍경이 속살처럼 드러나고 있었는데, 대청마루가 시원해 보인다.

마을 곳곳에 빈 벽면에 그려져 있던 벽화들. 이 곳에서 민박을 하는 집들이 꾸며 놓은 거기도 하겠지만

딱히 광고나 영리 목적의 홍보가 아니라 마을을 치장하고 소개하는데 더 마음을 쓴 거 같다.

 

한눈에 확 매료되고 만 전통 가옥 한 채가 있었다. 지붕에 촘촘이 얹은 기와 한장한장이 비바람에 씻기고

세월에 퇴락해선 저마다 다른 얼룩과 상처를 갖고 있었지만, 그 제각기의 표정과 분위기를 가진 기와들이

삐뚤빼뚤하는 듯하면서도 제법 정연하게 늘어서서 풍겨내는 그 느낌이란 건 참. 틈새 하나 벌어지지 않고

기왓장 한장한장 반짝거리며 단정한 검은색을 뽐내는 새로 올린 기와지붕에선 절대 느낄 수 없는, 그런

사람 냄새 나는 흐트러짐과 깨어짐. 얼마나 된 건지 모르겠지만 저 기와지붕은 표정이 있었다.

 

좀처럼 돌아나오기 아쉬웠던 가옥. 아마 집 주인이신 듯한 분께선 왜 이 쪽만 계속 사진을 찍냐고, 새로

기와를 올린 다른 쪽도 좀 보고 그러냐고 하시며, 며칠 전에 다녀간 건축학과 학생들도 이 건물만 죽어라

사진을 찍어대더라며 은근히 뿌듯해 하셨다. 그 건축학도들이 봤던 건 뭘까. 내가 본 건, 건물의 표정.

나팔꽃을 푸짐하게도 얹고 있던 돌담에 자전거 두대의 무게까지 얹혔다. '슬로우시티'라는 인증마크 없이도,

나른하게 페달을 밟으며 자전거를 타는 게 딱 어울리는 풍경이다.

그렇다고 사람이 살지 못할, 박물관이나 민속촌 같은 느낌도 절대 아니었다. 품위있게 올라간 기와지붕이나

재래의 냄새 가득한 초가지붕만 있던 게 아니라 잔뜩 삭아버린 슬레이트 지붕도 한쪽에서 단단히 버티고 있고,

지금도 이곳에선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흔적과 냄새가 여기저기서 남아있었다. 그 흔들림없는

증거로 이렇게, 사람들이 더께를 밀어내고 씻어내는 목욕탕에서 여전히 뜨거운 김이 펄펄 오르고 있던 거다.

마을의 구석구석 풍경들. 어느 골목에선가 뜬금없이 조우한 저 석상은, 원래 커다란 무덤을 지키는 문신상

무신상 뭐 이런 거 아닌가. 덜렁 혼자 남아서 파란 하늘을 이고 있었다.

 

기왓장 위의 고양이, 시멘트담벼락을 거칠하게 기어오른 나팔꽃, 멀찍이 보이는 (여기도 예외없는) 교회

첨탑만큼이나 뾰족뾰족하게 선 녹슨 철문.

자전거를 무료로 빌려주기도 한다는데, 걷는 것도 좋지만 자전거로 슬슬 다니는 것도 좋을 거 같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본 사이 목욕탕 남탕 문이 열렸다. 돌담길 옆 나무가 Y자 모양으로 가지를 벌렸다.

 

누렇게 녹슨 형광등 갓이라거나, 문짝을 걷어올려 걸어둘 수 있는 새모양 등자, 나뭇결이 그대로 살아있는

기둥이며 마룻바닥이라거나. 게다가 담쟁이덩굴이 온통 건물 벽을 따라 기어올라 처마까지 매달린 이런 집,

한번 살아보고 싶은 맘이 물씬 드는 곳이었다.

야트막한 담장 너머로 빨갛게 익어가는 석류, 그리고 마당 앞 귀퉁이에서 피어있는 별모양의 이름모를 꽃,

그리고 고랭지배추 꼬갱이같이 찌글찌글 얄포름한 호박꽃잎하며, 의외의 곳에서 만나는 의외로 어울리는

영단어들, LETTERS.

다음에 이곳에 오게 되면 꼭 한옥 민박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시골 할아버지댁같은 느낌이면서도

아기자기한 풍경이라거나 둥글둥글하게 깍이고 다듬어진 사물의 모서리들이 넘 좋은 거다. 게다가

활짝 열린 문이 겸연쩍었던 듯 얼기설기 낡은 의자로 바리케이드를 치는 둥 마는 둥 해둔 저런 제스쳐까지.

눈길 함부로 밟지 말라고 했던가, 갓 부어놓은 시멘트길도 역시 함부로 밟아서는 안 되겠단 걸 보여주는 사진.

저 멀리 마을 입구까지 이어지는 저벅대는 발걸음이 여러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할머니였을까, 무슨 급한

일이 있던 건 아닐까, 손주 녀석이 소식도 없이 내려온 건가.

아직은 신선한 노랑빛이 반짝거리는 논, 좀더 햇살을 먹고 가을바람에 다독여지면 한층 가라앉아 무겁고도

차분한 누런 빛깔을 띄게 될 거다. 논두렁길을 따라 걸어 나오며, 비로소 삼지천마을의 마법같은 시간의

흐름에서 차츰 벗어나는 걸 느꼈다. 조금씩 빨라지는 초침 소리.




 

담양의 대표적인 여행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관방제림을 자전거로 달렸다. 죽녹원 앞에서 자전거를

즐비하게 열맞춰 세워둔 많은 대여점 중에서 하나를 골라 반짝거리는 자전거에 올라탔다. 한시간에 삼천원.

아저씨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관방제림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가면 되는지를 자세히 알려주기도

했지만, 앞서거니 뒷서거니 자전거들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방향만 따라가도 되겠다 싶어서 큰 걱정없이

여유롭게 페달을 밟았다. 차가 거의 지나지 않는 단단한 아스팔트길이 매끄럽게 뒤로 물러선다.

굴다리 앞에서 우회전해서 큰길에서 좌회전하랬던가, 아저씨의 말을 곱씹기도 전에 저만치서 장대한 나무들이

늘어선 모습이 보인다. 모처럼만에 타보는 자전거가 꽤나 즐거운 와중이었는지라 고작 십여분밖에 안 되는

짧은 거리가 아쉽기도 했지만, 일단 가로수길 입구에 정차. 가로수길 아래로는 자전거 통행금지란다.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들로 시장통처럼 북적였다. 나무 둥치마다 하나씩 차지하고 온갖 포즈를 잡아대는

앳된 커플들도 보였고, 삼각대를 쓰거나 서로의 카메라를 돌려가며 사진을 부탁하는 중후한 부부도 보였고.


그리고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은 생각보다 짧아서 아쉬웠다. 춘천 남이섬에 있는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과

비슷한 길이였던 거 같긴 한데, 옆으로 계속 차들이 다니고 있어서 그런지 호젓한 분위기가 모자란 만큼

가로수길의 길이도 모자라게 느껴진 듯 하다. 돌아나오려는 길에, 문득 마법처럼 사람들이 쏴아 빠져나가고

흙바닥이 고스란히 드러났던 순간. 아이를 업고 걸리며 앞서 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이 여유롭다.


돌아나오려는데, 가로수길 옆으로 차들이 미어진다. 차를 가져와 잠시 멈췄다 갔더라면 좀더 아쉽지

않았을까. 여행에 걸맞는 속도란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행지에 점찍듯 찍고 뜨기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지나는 풍경들이라거나 바람을 맞는 게 넘 좋았던 거다.


관방제림은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바로 맞은 편에서부터 시작됐다. 조선 인조 때 만들어진 관방제림은,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 쌓아올린 제방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과거에는 약 700여그루의

나무가 있었지만 현재는 300여그루가 남아있다고 하는데, 나름 물을 다스리는 치수의 방책으로 효과가 계속

되었기에 오랜 세월 관리되고 보존되어 온 게 아닐까. 수백년의 시간동안 검증된 치수책인 셈이다.

관방제림, 방둑처럼 불뚝 튀어나온 길을 따라 달리는 길. 옆에서는 무르익어가는 벼들이 누런 물결을 일렁이고

있었고, 오른켠에는 장승들이 띄엄띄엄 꽂힌 채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흙길을 자전거로 달리는 느낌이 참 좋았다. 메타쉐콰이어 길과는 달리 사람도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자전거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아마도 그 가로수길은 차에서 내려 얼른 보고 갈 수

있다는 특징 때문에 사람들의 접근이 훨씬 쉬웠다면, 여기는 나름 걸어들어와야 하는 곳이라 호젓함이 보전된 듯.


길은 꾸준히 길고 곧게 이어졌고, 드문드문 앉아 쉴만한 벤치나 정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지 앉아 쉬는 사람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길 옆으로 따라 흐르는 개천, 층층이 다듬어진 개천에서 하얗고 뿌연 속살을 드러내는 개울물 틈새를

긴 부리로 비집으며 먹이를 찾고 있는 하얗고 길다란 새 한마리가 우아하게 날개를 퍼덕였다.

자전거에 좀 익숙해지고 나니 이제 자전거는 한 손으로 운전하며 다른 한 손으로 되는대로 사진을 찍어대기에

이르렀다. 용케도 수평이 잡힌 사진들. 담양 시내에 가까워진 듯 애드벌룬도 떠있고 뭔가 복작복작한 소리가

들리는 곳까지 이르러서야 관방제림이 어느결에 끝났다는 걸 감지하고 뒤로 돌아 나가기로 했다.


관방제림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들 중에서도 아마 이 나무가 가장 컸던 거 같다. 머리를 풀어헤친 듯 사방으로

뻗어올라간 꼿꼿한 가지들의 기운이라거나 왠만한 어른들이 수십명은 모여야 겨우 그 두께만해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거대한 나무둥치, 이런 나무를 보면 어쩔 수 없이 경외감을 느끼게 된다. 저렇게 자라는 동안

쉬지 않고 게으름도 피우지 않고 제 몸속에 꼬깃꼬깃 나이테를 채워넣었을 거다.

째째하게 모래사장이나 훑고 마는 파도가 아니라, 말하자면 제법 사이즈가 되는 바위섬쯤을 기어이 갈아내어 형체도

없이 지워버리겠다는 무게감과 여유로움마저 느껴지는 그런 파도소리가 누렇게 익은 논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거의 다 돌아나와서 관방제림 초입쯤 도착했을 때, 아까 띄엄띄엄 놓인 채 정면을 노려보고 있던 장승들이 이번에는

슬쩍 고개를 외로 꼰 채 다닥다닥 붙어있던 즈음에, 미처 못 보고 지나쳤던 얼굴이 사라진 장승이 눈에 들어왔다.

아들이랑 둘이 사이좋게 얼굴을 하나씩 넣어서 사진을 찍고 있는 가족의 오붓한 모습.

자전거를 반납하러 가는 길, 건물 옆으로 늘어진 전선을 따라 하늘을 가리는 두텁한 커튼처럼 덩굴식물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저 정도로 무성하게 자라났으면 꽤나 묵직할 거 같은데 전선이 끊기지 않으려나 싶던.

자전거를 반납하고 죽녹원 옆에 있는 전남도립대학을 걷다가 문득 발견한, 시멘트 옹벽에 붙어있는 피어싱들.

하나도 아니고 저렇게 여러개가 길을 걷는데 쭉 늘어서 있어서 재미있어 보여서 사진 한장.


무령왕의 영면을 지키는 청룡, 왕이 뉘어진 동쪽벽에 그려져 있다.

무령왕릉, 백제를 중흥시킨 몇몇의 왕중에서도 손꼽히는 왕인 무령왕이 묻힌 곳이다. 그가 실제로 어떻게

생겼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저 유추해보건대 저렇게 생겼으리라는 게 박물관측의 조심스런 추측.

백제 무령왕릉의 특징은 중국 남조로부터 전래되었다던가, 일정한 사이즈의 벽돌을 촘촘이 쌓아올린 과학적이고

탄탄한 벽돌무덤이었다고 얼핏 국사 시간에 배웠던 거 같다. 무덤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은 언제나 살짝

으스스하다, 그게 실제 무덤이건 모형이건 간에.

그리 넓지 않은 벽돌무덤 공간의 사방에 서서 나머지 삼면을 찍어보겠다고 기를 쓰고 벽 틈새로 몸을

부비적댔지만 쉽지 않다. 서늘하고 교교한 램프의 불빛이 벽돌 틈새로 걸쭉하게 흘러내리는 거 같았다.

제각기 독특한 문양이 새겨진 벽돌이 정교한 가로세로 비례에 따라 아귀를 맞춰서 배열되어 있었다.

그리고 두 장의 벽돌을 합쳐서 저렇게 연꽃무늬가 떠오르는 식의 벽돌이란 건, 실제로 어떻게 쓰일지

어느 방향으로 배치될지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준비가 있었단 얘기 아닐까. 우아하고 세련된 느낌에

더해서 섬세하고 정교하기까지.

고분들이 그려내는 저 안온하고도 푸근한 선은 볼때마다 감탄하게 된다.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흙둔덕이면서도

저렇게 자연스럽고 부드러우며 유려한 곡선이라니. 그런 고분 옆구리에 저렇게 잔뜩 녹슨 청동문짝이 숨어서

백제의 옛 왕들로 향하는 길을 내고 있단 걸 생각하면, 저 곡선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령왕의 무덤에서 발굴된 그의 왕관. 실제로 쓰였던 건지 아니면 무덤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건지는

불명확하다고 하나, 수천년을 지나고서도 저렇게 모양이 건사되어 있는 황금관의 온전함에도 감탄, 또

그 형태를 토대로 반짝반짝하게 만들어낸 재연품의 화려함에도 감탄.

무령왕의 무덤자리를 땅의 신으로부터 샀다는 것을 증명하는 매지권에 새겨졌다는 문구. 토지는 모두

지신으로부터 빌린 거라는 관념은, 얼핏 원시적이고 야만스러워보이지만, 어쩌면 그 땅 위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최소한의 안전장치와 같았을지 모른다. 모두가 왕의 땅, 이라거나 돈있는

사람의 땅, 이라는 식으로 권력과 금력을 좇아 땅의 소유가 이전되었다면, 그 결과는 사실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대변하고 있지 않은가.

그의 무덤 앞을 지키고 있었다는 상서로운 석물. 등짝에는 호랑이처럼 굵은 줄무늬가 가로로 죽죽 그어져있고,

네 다리에는 불꽃이 일렁이는 것 같다. 게다가 그 다부지고 단단해 보이는 위압감은, 비교적 작은 사이즈임에도

불구하고 뿜어내는 포스가 대단하다.

무령왕릉에서 발굴되었다는 귀중한 유산 중에서도 가장 맘을 끌었던 것, 은으로 만들어진 찻잔과 잔받침.

뚜껑 손잡이는 연꽃모양으로 정교하게 세공된 채 금으로 꽃받침장식을 만들어 손잡이와 뚜껑을 이었다.

게다가 찻잔의 실루엣에서 느껴지는 저 완만하면서도 부드러운 곡선미란.




대나무에 기대어 층층이 발판을 얹은 수십개짜리 덩굴계단. 안 그래도 위로 갈수록 작아져보이는 원근법의

마법에 더해, 일정한 비율로 줄어드는 잎사귀의 모습, 그러면서도 몇몇번째 계단에선 그 비율을 깨뜨리고

불끈 자라난 잎사귀들의 배열이 리드미컬하다.

담양의 죽녹원. 서울에서 전남 담양까지 내려갔으니 사람들이 많이 없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입구부터 꽉꽉

들어찬 사람들, 매표소에서 티켓을 사는 데에도 줄이 잔뜩 늘어서서 입구를 벗어나지 못하고 한참 기다려야 했다.

입구에서 뒹굴고 있던 팬더 몇 마리. 왠 팬더인가 했는데, 생각해보니 대나무와 팬더는 자연스레 이어지는

한쌍이었던 거다.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그런 견고한 고리가 내 머릿속에서 깨어진 건 아마도 핑크팬더와

쿵푸팬더의 영향 아닐까. 제법 익살맞은 팬더들 사이에 선 꼬맹이, 암만해도 팬더들 따라 지어본 표정이지 싶다.


사방으로 휘휘 뻗어나는, 그렇지만 그렇게 부담스럽게 길지는 않던 죽녹원의 코스를 거닐면서 눈에 띄었던 것 중

하나는 나무를 자연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살린 채 가로등 기둥으로 활용하고 있던 모습.

온통 대죽들, 고개를 잔뜩 꺾어 올려야 겨우 그 너머 하늘이 보일 정도로 잘 자란 대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은 에어컨 바람도 울고 갈 정도였다. 꼬맹이들 앞니 빠진 새로 바람이 노닐듯, 그렇게 간결하고 호리한

대나무 사이로 바람이 노닐며 그 푸른 청량감을 한껏 머금는 듯 하다.


대죽의 색깔도 약간 소프트한 무광택 코팅이 살짝 입혀진 옥빛이랄까, 보는 것만으로도 서늘한 기분이 드는데

실제로 살짝 손만 대어도 대나무가 빈 통속에 보관하고 있던 냉기가 맹렬하게 전달되었더랬다. 죽순의 떡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쭉쭉 뻗어나간 대나무 하나, 워낙 순식간에 자라난다니 가능했을 듯.


그런데 대숲이 울창하게 우거진, 그 숲의 짙고 깊은 느낌을 만끽하는데 종종 방해가 되던 현수막들이 보였다.

"저는 대나무입니다. 저를 만지거나 제몸에 낙서하지 마세요. 제가 죽어가고 있습니다." 꽤나 섬뜩한 문구다.

근데 정말, 그런 현수막이 버젓이 내걸려있는 앞에서도 차키를 들고, 펜을 들고 대나무에 하나씩 달라붙어서

글자를 파고 있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나 많이 눈에 띄던 거다. 나이가 많던 적건 상관없이. 심지어 이런

엄마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낙서라거나, '개개개자로~' 시작되는 말을 이어놓은 낙서도 있더라는.


대나무들의 저런 눈물어린 읍소에도 불구하고 저런 낙서를 의연하게 하는 사람들은, 담양특산품인 이런

대살회초리로 체형을 내려야 하지는 않을까. 수학여행 때던가 기념품 가게에서 회초리를 사갔던 옛날의

아련하고도 아팠던 기억을 새록새록 자극하던 대살회초리 특산품. 손바닥에 몇대 시험해보니 찰지구나.

죽녹원은 총 여덟개 코스로 구성된 산책로를 갖고 있는데, 크고 작은 원을 그리며 죽녹원 안의 숲을 돌아서

그 코스를 전부 밟아도 두어시간이면 충분한 거 같았다. 그 중에서 특히 눈에 띄었던 건 '1박2일 촬영지 가는길'.

아무리 저 프로그램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고 해도, 저렇게 안내판에 덕지덕지 붙여놓는 게 맞을까

모르겠다. 더구나 이승기가 빠졌었다는 연못엔 '이승기 연못'이란 이름까지. 한 3년만 지나도 저게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기서 뭘 찍었는지 기억도 잊혀질 텐데, 그땐 지우고 새로 안내판을 세우려나.


이 정도까지는 괜찮다는 거다. 그냥 여기가 이런 영화, 이런 프로그램 촬영했던 곳이라는 것만 표시를 남기면

될 것을, 뭘 전체 지도에다가도 요란스레 '1박2일'이니 '이승기연못'이니 정식으로 표기를 해 놓았을까.


 

*토막상식(@ 죽녹원 안내판).   <죽림욕의 효과>

ㅇ 음이온 발생
  - 음이온이란 전기를 띈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로 마이너스 전하가 음이온이다.
  - 대숲에서는 음이온 발생량 1,200~1,700개 발생 (음이온 발생량 700개 이상일 경우 사람은 시원함을 느낌)

ㅇ 풍부한 산소 방출
  - 대나무숲 안과 밖의 온도는 약 4~7도씨 가량 차이가 난다.
  - 대숲 1ha당 1톤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0.37톤의 산소를 발생

ㅇ 심신안정 효과
  - 뇌에서 알파파의 활동을 증가시켜 스트레스 해소, 신체/정신적인 이완, 심신의 안정 효과


 


 


여덟 코스 중에서도 가장 경사도 있고 길도 좁던 곳은 추억의 샛길, 고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이곳을 방문했을 때

산책했던 코스라고도 한다. 대나무뿌리가 얼기설기 드러난 흙길 양쪽으로 하늘높은 줄 모르는 죽의 장막을 친

대나무숲 사이를 걸으니까 땀도 안 나고, 걸을수록 상쾌한 느낌이 드는 게 죽림욕 제대로다. 그치만 맘 한켠으론

대통령이 걷기엔 좀 너무 정비되지 않은 거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건 사실. 그의 소탈함이 반영되었던 걸까.


죽녹원이라고 대나무숲만 울창하리라 생각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다. 낮은 곳에는 저렇게 하얀 꽃망울을 매달고 있는

차나무도 있었고, 드문드문 덩굴이 말려올라간 나무들도 있었고.

근데 죽녹원 가운데에 있던 이 동상은 대체 누굴까. 못 찾은 거 같기도 하지만 안내팜플렛이나 지도나 동상

근처에서 아무런 설명도 없었던 거 같다. 그런데 누군가 저렇게 파랑땡땡이 스카프를 곱게도 감아놔서

차갑게만 보일 수 있는 동상에 살짝 온기가 감도는 것만 같다.


죽녹원 맨 안쪽에 웅크리고 있던 한옥체험마을 가는 길. 깔딱고개를 넘어서듯 경사가 급 가팔라졌다가 급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길을 지나면 한옥들과 정자들이 조그맣게 무리짓고 있는 마을이 나온다. 경사가 가팔라서인지 옹골차게

짧막한 마디가 꽉 차있는 대나무뿌리가 흙바닥 위로 꾸물꾸물 기어나와선 자꾸 발목을 잡았다.

한옥체험마을, 몇 개의 연못이 이어져있었는데 괜히 궁금해지는 거다. 이 중에서 어디가 '이승기연못'인 거지.

혹시나 하고 굽어본 안내판엔 이승기연못 대신 죽녹원 두꺼비를 지켜달라는 이야기만.

한옥마을과 죽로차체험관, 그리고 시비공원이 모여있는 곳인지라 조경도 잘 되어 있고, 잔디가 곱게 깔린 사이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자갈길은 정말 걸을 맛이 나는 구간이었다. 적절히 안배된 연못과 건축물들, 그리고 나무와

벤치들까지 아기자기한 그림같은 풍경이 돋보이던 곳.


정자에서는 어느 명인 한분이 가야금을 뜯으며 구성진 가락을 한 소절 뽑아내리고 계셨고, 굳이 그 앞에 총총이

모여서 듣지 않아도 부드러운 바람결에 날려 오는 소리가 가을날의 정취를 더했다.


그리고 이곳 연못에서 잠시 앉아 쉬면서 이곳저곳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남은 사진들. 연못 너머 벤치에 우뚝

선 아기를 어르고 있는 부모의 부산스럽지만 행복해 보이는 풍경이라거나, 곳곳에서 쌍쌍이 벤치에 앉아

가을하늘과 가을바람, 가을공기를 즐기는 어린 연인들의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요새 코스모스 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했다. 얼핏 듣기로 외국산 국화던가, 그런

외래종에 밀려서 점점 코스모스 개체가 줄고 있다고 신문기사를 봤던 거 같은데. 벌 한마리가 부산하게

움직이며 허벅지에 노란 꽃가루테를 두르고 있었다.

죽녹원을 나오다가 잠시 돌아보았더니, 누렇게 변색된 대나무를 촘촘이 엮어만든 담벼락이 터져나갈 듯

거침없이 쭉쭉 뻗은 대나무숲의 기세가 충천한 느낌이다. 저래서야 비가 와도 물방울이 안으로 새어들어갈

틈이나 있으려나 싶도록 빼곡하게 밀집해선 시퍼런 색감과 칼날같은 잎사귀 모양을 자랑하고 있던 죽녹원의

대나무숲. 아무래도 대나무숲은 '임금님귀는 당나귀귀' 이야기를 머릿속에 소환해내는 거 같다.





첫날

8시 서울 출발

12시 담양 도착

12-1시 점심 ; 담양한우


1시 죽녹원

3시반 메타쉐콰이어 가로수길 by 자전거

4시 관방제림 by 자전거

5-6시 저녁 ; 대통밥 & 떡갈비


둘째날

 

10시 삼지천마을(슬로우시티) 도착


(11-12시 점심 ; 국밥촌)

2시 소쇄원 도착

4시 담양 출발

 

 

 

 

 

 

 




담양에 가서 놓치면 아쉬운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역시 대통밥과 떡갈비. 이제는 서울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대통밥이지만 의외로 처음 대통밥이 만들어진 건 얼마 안 되었다고 한다. 과거의 문헌들과 전래되는 이야기에

기대어 대통밥을 처음 만들었다는 집을 찾아 대통밥+떡갈비 세트메뉴를 주문.

대통밥은 몇번이고 재활용하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위생상으로는 물론이고 그 대나무의 효능이 제대로 밥에

묻어나기는 할까 싶은 의구심이 늘 머리를 떠나지 않았는데, 여기서 그 의문에 어느정도 적극적으로 답을

해주고 있었다. 대나무의 하얀 속껍데기나 진액이 진짜배기인데, 그건 한두번만에 전부 빠져버리는 거라면서

애초 개발했을 때부터 이 집에선 재활용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대통밥에서 대나무 냄새도 좀더 진하게 났던 거 같다. 밥알도 고슬고슬하니 맛있었지만, 그보다도

함께 딸려나온 저 수많은 반찬들. 죽순회니 죽순무침이니 도토리묵이니 뭐 하나 빼놓을 것 없이 전부 맛있어서

결국 접시를 싹싹 비워내고 말았다. 전라도식으로 양념이 가득한 겉저리김치와 묵은김치도 남김없이 싹.

말갛지만 매콤하던 죽순 된장국도 정말 맘에 들었다. 커다란 죽순이 적잖이 들어있던 것도 좋았고.

그리고 떡갈비, 숯냄새가 감칠맛나게 배어있던 따끈하고 부드러운 고기가 살살 풀리는 게 아주 그만이었다는.

둘째날 늦은 아침식사 겸 점심으로 찾은 곳은, 슬로우시티로 공인받은 삼지천마을 어귀에 몰려 있던 국밥집들.

이것저것 이름만 들었던 암뽕순대라느니, 새끼보라느니 신기하고 새로운 것을 맛볼 수 있어 넘 좋았다.

암뽕순대. 암뽕이란 건 보통 돼지의 내장으로 만드는 순대와는 달리 암퇘지의 내장을 사용하여, 선지를 굳혀서

순대 안에 속으로 넣는다는 것도 다른 점이라고 한다. 게다가 26가지에 이르는 재료를 넣어 만드는 전라도식

수제 순대라고 하는데, 가게 주인 아줌마가 구수한 전라도를 섞어 말씀해주신 거라 정확히 들은 건지는 잘..

그치만 맛은 확실히 특별했다. 껍데기도 굉장히 부드러우면서도 쫀득했고, 그리고 두툼한 치감도 좋았고.

그리고 새끼보국밥. 암퇘지의 애기집을 새끼보라고 한다는데, 첨에 이걸 주문하니까 주인아주머니가 살짝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먹는 사람이나 먹지 좀 비위거슬려 하는 사람도 있다나. 아무래도 애기집을 썰어서 국밥에 말아

먹는다는 생각 때문에 좀 그런 거 같은데, 음..미안하지만 꽤나 맛있었다. 부위가 부위이니만치 부드럽고 쫀득하고

굉장히 야들야들. 약간 돼지 냄새가 다른 부위에 비해 강한 편인거 같긴 했지만, 원래 그런 냄새 거리끼지 않으니까.

그리하여 담양의 토속 막걸리, '대대포'를 두 병이나 마시기에 이르렀다. 벌꿀과 대잎 성분이 들어있다 했던가,

저 막걸리도 정말 이런저런 지방 막걸리를 마셔본 중에서 손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벌꿀 덕에 조금 달달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깔끔하면서 술술 넘어가는 느낌. 밥으로 먹으려던 순대와 국밥이 어느결에 훌륭한 안주가

되었고, 반주 삼아 마시려던 막걸리는 두 통을 가뿐히 비워버리고 말았다.





그냥, 딱 보는데 엄훠 이거 엄청 야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감되면 추천 꾹.ㅋ




@ 담양, 죽녹원. (죽녹원 가서 대나무는 안 보고 소나무를 보고 왔다는..)




마법의 시간대. 방금까지 고요하게 느적대던 대기, 차들이 씽씽거릴 즈음에야 무겁고 게으르게 뒤척이던 대기가

번쩍 눈을 뜨고는 사방으로 천개의 팔을 한껏 뻗어 기지개를 켜는 느낌.


그럴 때면 뭔가. 언감생심 바라지도 못할 일들이 이뤄지거나 간절히 바라기만 하던 일이 실현되는 그런,

그런 마법같은 일이 벌어져도 그다지 놀라웁다거나 거푸 의심하지는 않을 거 같은 거다.


이태원에서. 차들이 거침없이 씽씽대는 소리와 사방팔방으로 폭죽 터지듯 터져나가는 빛살의 소란스러움을

헤치고 어느 육교에 올랐던 날. N극을 날카롭게 가리키고 있던 서울타워가 '인셉션'의 팽이처럼 뱅글거렸다.




한번 작정하고 카메라를 들고 빌딩 옥상쯤에 오른 날. 사실 옥상은 아니고 꼭대기층이었지만. 아무리

유리창을 말갛게 닦았다 하더라도 완벽하게 말끔할 수는 없어서 약간의 잡티가 거슬리긴 하지만

이정도면 그래도 중간에 유리창 같은 방해물 티 많이 안나는 '어느 가을날의 하늘, 그리고 한강'이다.

여기서 보면 강남과 강북의 스카이라인이 참 다른 거 같다. 한강변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아파트숲이야

공히 같다지만, 강남 테헤란로와 강남대로를 따라 달리는 빌딩들의 높이는 강북에 비해 훨씬 월등한 거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보이는 거대한 빌딩들의 거대하고도 짙은 그림자들. 저 아래 인도에서 걷는

사람들은 미처 의식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호한, 칼같이 끊어지는 빌딩 그늘들이다.







덕수궁 돌담길. 연인들이 걸어가면 백방 깨진다지만 사실 안 깨지는 연인이란 거, 한 사람에 한번쯤이려나.

내가 좋아하는 길, '검문'이란 단어가 사람들을 주눅들게 만들어 놓아서 아주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의경들이나 주머니에 손 꾹 찔러넣고 걷고 있는 길을 계속 걷다 보면 구세군회관도 나오고. 종로통도 나오고.

장소를 옮겨 효자동, 거리를 지나다 허벅지 높이에서부터 말간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 속으로 들어갔다.

뜬금없어 보이던, 그렇지만 사실 머잖은 산타클로스의 재림, 등잔이 만들어낸 그림자 속 오각별들이 반짝반짝.

보송보송하고 달달한 바람이 파랗게 쨍한 하늘 저편에서부터 시원~하게 불어오는 계절, 가을.

가을은 그런 계절이어야 하는데 아침부터 비가 오더니 공기가 무겁다. 하늘은 온통 꽉 막히고 무거운

느낌의 회잿빛 구름이 빈틈없이 드리웠고, 때문인지 답답하고 음침한 공기가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 영 회복되지를 않아서. 며칠전 어느 대학 캠퍼스에서 찍은 가을 풍경 사진 몇 장.


아, 정말 얼마 되도 않는 이 좋은 계절, 좋은 날에 비를 흩뿌리는 건 상도덕에 어긋나는 일이다.

갈래갈래 갈린 길, 양쪽으로 갈라지는 길을 표시하는 아스팔트 위 하얀 페인트가 꼭 뿔모양 머리띠를 쓴

와이(y)자 같이 생겼다. 쟤도 저러고 한일전 축구 응원가서 '일본 대지진 축하한다' 따위 헛짓하는 건 아니겠지.

이런 하늘이 보고 싶다구. 날씨 어쩔 거냐능.

riding on '가을'. 가을ing.




수평 감각을 잃고서는 하늘을 바다라고, 바다를 하늘이라고 착각하게 된다거나 수평 비행중에도 비행기가

상승 혹은 하강한다고 착각하게 되는 게 흔히 이야기하는 버티고(Vertigo) 현상. 말만 듣고서는 대체

어떻게 저런 착각에 빠질 수 있을까 싶지만, 땅 위에서도 비슷한 착각에서 허우적대는 공간들이 있다.

제주도의 이곳저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도깨비도로'가 바로 그런 버티고의 공간.

사진이 저쪽에서부터 슬슬 올라오는 오르막길처럼 보였을지 몰라도 실제로는 저 '시작점'에서부터

슬슬 내려가는 내리막길이라는 게, 내 몸이 받아들이는 위치감각과의 부조화를 갖고 온다.

올라가는 길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라는 거. 여기서부터 차들이 비상등을 켜고서는 기어를 중립으로 놓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는 거다. 승용차던 관광버스던 그렇게 슬슬슬 굴러내려가는 신비의 체험.

길 주변 풍경은 아무래도 살짝 오르막을 타는 느낌인데 둥그런 차 바퀴는 뒤가 아닌 앞으로 슬슬 굴러가니까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이질감과 묘한 부조화를 감지하게 되는 거다.

내 신체의 감각기관, 귀의 반고리관과 달팽이관이 협업하고 시각이 보완해서 만들어지는 평형감각기관들이

아우성치며 여기는 내리막길이라고 주장하고 있었지만, 굳이 수평계 어플을 다운받아서 아이폰을 바닥에

살풋 내려놓았더니 예측을 완연히 배신하고 말았다. 인간의 감각 따위, 역시 하찮고도 미미한 거였다.


사진상으로는 차들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거 같은데, 수평계 어플이나 슬슬 굴러오는 차바퀴는 이곳이

내리막길임을 흔들림없이 가리키고 있었다.

'신비의 도로'가 끝나는 지점, 도깨비휴게실이 있어 차들이 잠시 쉬어가기도 하고 차에서 내려 도깨비도로를

직접 걸어보기도 하고. 몇걸음 걷다보니 어지러워져서 걷다가 말았는데, 귓가가 멍멍해지고 약간 토쏠리는

기분이 도는 것이 무슨 뱅뱅 도는 놀이기구를 타고 내린 기분.


옆에 '캐나다 삼촌집'은 뭘까. 제주도에 와서 저런 뜬금없는 간판을 보게 될 줄이야. 근데 확 꽂히긴 한다.ㅋ





강원도 정선, 그 근방에 있는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조그마한 동네인 정선에 슬쩍 그 산자락 하나를

얹어놓은 것만 같은데, 실은 강원도란 데가 온통 산자락이 구불렁구불렁한 곳인지라 어디서부터 어디가

무슨 산인지 딱 끊어 이야기하기도 어려운 거다. 여하간 그 이름모를 산자락 앞에 바싹 머리를 디민

커다란 해바라기 하나. 파란 하늘도 좋고 샛노란 해바라기 꽃잎도 좋고.

정선의 메인로드라고 해봐야 이삼층을 못 넘는 야트막한 건물들이 채 백여미터나 될까 싶은 왕복 4차선

찻길을 호위하고 있던 그 호젓하던 길, 길가에 무성하게 자라난 야생국화꽃이 지나는 사람들과 눈높이를

맞춰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정선역까지 기차를 타고 왔던 게..아마도 2001년쯤, 군대 가기 전이었던가. 그때 역사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주변 풍경이 어땠는지에 대해서라면 아무 기억도 없다. 그저 그 때 강원 카지노랜드와 민둥산을 들러서

눈밭에서 잔뜩 뒹굴고는 정상에 올라 꽁꽁 언 캔맥주를 마셨었던 기억 뿐.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하늘. 새파랗고 새하얗고. 정말 너무나 좋은 9월의 하늘.

땅. 손을 아무리 뻗어도 닿지도 않는 하늘과는 달리, 땅에는 약한 것들 투성이다. 뽑고, 꺽고, 밟고,

심지어 만지는 손길에도 치명적일 수 있는 여린 생명들.

이렇게 여린 빛깔을 여지껏 품고 있는 거다. 빛을 받아 문득 투명해진 연두빛의 잎사귀들, 저런 여리고

약한 생명 앞에선 손끝에서 가위라도 절그럭대는 것처럼 조심조심 몸가짐을 여미는 게 인지상정.

휴양림 내에서 크고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산책로 옆에 뒤집어져 있는 쓰레기통, 그 첫 글자인

'쓰'의 쌍시옷이 왠지 방긋 웃고 있는 이모티콘을 연상시킨다.

본격, 9월의 가리왕산 자연휴양림 위에 펼쳐진 하늘. 그냥 아무 말없이 흘러가는 구름만 바라보고 있어도

하나도 지루하거나 심심하지 않은 날이 있는데, 딱 그런 날의 하늘이었다.

그래서 정말, 휴양림 어디쯤엔가 철푸덕 자리 깔고 앉아서는 하늘만 보다가 돌아나왔다. 숲속을 떠나도

하늘은 따라와서, 정선의 고즈넉한 길가 위에나 허름한 슬레이트 지붕 위에도 파랗고 하얗고. 문득

스머프가 생각나기도 하지만 우야튼,


저렇게 동글동글 수제비처럼 떼어내진 구름떼가 바람에 밀려가고, 그 훨씬 위에 칠해진 투명한 파랑색 하늘이

어느순간 일렁인다 싶은 환상에 빠질 즈음이면, 누군가 기분좋게 머릿카락을 쓸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정선 시내를 산책하다가 만난 풍경들 몇 개. 바리케이드로 쓰이는 노랗고 까만 철제구조물에 비닐을

씌워서는 고추를 말리는, 아아 나른하다 나른해, 라고 고추들이 비틀리며 중얼거리는 거 같다.

쌍꺼풀이 엄청나게 짙던 강아지 한마리. 쌍꺼풀도 길고 속눈썹도 길어서 왠지 눈매가 낙타를 연상시킨다. 


'자전거포'라고 어렸을 때 불렀던 거 같은데 요새야 엔간하면 전부 무슨무슨 샵, 으로 바뀌었다지만. 아마

그 나이를 따지자면, 바이크샵<자전거포<자전차 정도 되지 않을까.

벌써 어디인가는 연탄불을 지피고 있는 건가, 근처에 연탄불 고기집 같은 곳이 안 보이는 주택가였으니

아무래도 난방용으로 쓴 건가 싶다. 아니면 무슨 온실같은 곳에서 공기를 덥혀주느라 태웠다거나.

어느 골목길, 아이들이 길가에서 공을 차며 자기들 눈에만 보이는 골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색색의 플라스틱 우유상자를 화분삼아. 구멍이 숭숭 난게 공기 통하기도 좋겠고, 사방으로 나 있는

손잡이 덕에 옮기기도 편하겠고, 여러 개 저렇게 배열해놔도 깔끔하게 아귀가 딱 맞아떨어지고.

전깃줄 위에 앉아서 쫑긋쫑긋 머리를 사방으로 돌려대는 새 한마리. 저렇게 새들이 머리를 마구 돌려대며

사방을 경계하는 걸 보면, 꼬깃꼬깃 돌려대다가 뚝 하고 끊어져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슬몃 들기도 한다.

여하간, 또다시 가슴을 둥둥둥 울려대는 9월의 하늘. 여행가고 싶다..





북악스카이웨이의 낮풍경. 아무래도 가족들이 많이 보인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부부들이 특히나 많이

눈에 띄는 거 같고, 지대가 높아 바람이 시원하긴 하지만 며늘아가를 내보낸다는 가을볕이 아직 뜨거워서

그늘 밑으로 자꾸 숨고 싶어지는 날씨다.

남녀의 커플보다는 남남녀, 남녀녀, 녀녀녀 등의 친구모드 조합이 많이 보이는 것도 낮시간대의 특징이랄까.

일본이나 중국의 단체관광객도 많고 배낭을 둘러멘 서양의 여행객들도 심심치않게 보인다.

오백원을 넣으면 작동하는 '통일전망대'류의 망원경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뒷통수 사이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 보인다. 의외로 이쪽 방면의 서울엔 고층건물이 많지 않은 듯, 작고 아담한 주택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그리고 밤. 뭔가 별빛바다를 내려다보는 느낌이랄까. 은빛 부스럭지가 달라붙은 까만 먹장빛 커튼.

둘둘, 바싹 붙어서서는 뭘 저리도 몰두하고 있는 건지.

팔각정 위에 올라서 바라보는 서울이란 도시의 분위기도 확 바뀌고 말았지만, 이 곳 자체도 분위기가

좀더 달달해졌다. 주홍빛 백열전구 덕분인지 아니면 곳곳에서 이인삼각 중인 커플들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느 커플이 벤치에 다정하게 붙어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 나란히 놓인 테이크아웃 커피잔이 눈길을 잡았다.

스트로우 놓인 위치나 각도도 똑같이 주차되어 있던 두 잔의 커피, 그 옆에 앉은 커플만큼이나 은근하면서도

다정함이 느껴지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2010년에 이어 두번째로 열린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작년과 마찬가지로 광주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축제인지라 첨단쌍암공원, 빛고을 시민문화관, 금남로공원, 그리고 구도청 바로 옆의 쿤스트할레에서

삼일동안의 일정이 꽉 차 있는 거다. 이번 포스팅은 그중에서도 가장 핫한 플레이스로 쿤스트할레, 혹은

아시아문화마루라 불리는 장소에서 벌어진 광주월드뮤직페스티벌 현장 스케치.

 




 

폐컨테이너 수백개를 활용해서 만들어진 아시아문화마루, 월드뮤직페스티벌 첫날 저녁에는 이곳에서

세계 각지의 뮤지션들 사이의 네트워킹 파티가 벌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둘째날, 아직은 해가 중천에

떠있는 상황에서 먼저 구경가본 쿤스트할레 건물은 커다란 컨테이너로 만들어진 성과 같은 느낌이다.

밤이 되고 공연이 시작되기 전, 확 바뀌어버린 분위기. 내부에는 맥주 등 간단한 음료를 파는 펍이 있고

공연을 보러 온 외국인들이 제법 많아져서 그런지 낮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공연장 2층에 올라 1층을

내려다보니 아직 공연 전이라 삼삼오오 모여서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들 있었다.

그리고 시작된 이날 저녁의 첫공연, 컨테이너 박스를 이어붙여 커다란 빅 컨테이너 박스처럼 만들어진

공연장을 꽉 채운 사람들이 적당히 무질서하게 놓인 간이의자에 앉아 무대를 향했다. 열맞춰 늘어서지

않고 되는 대로 편하게 놓인 좌석 배치가 맘에 들었다.

이번에 새로 앨범을 냈다는 가수, '야야'라는 한국가수의 첫무대였다. 다소 마른 체형의 그녀는 의외의

파워풀한 보이스로 분위기를 돋웠고, 음악에 한껏 취한 채 가볍게 폴짝폴짝 뛰며 노래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레 관객들을 무대 앞으로 몰려들게 만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는 무대 앞까지 밀려나가 노래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쿤스트할레의

커다란 컨테이너 공간이 삐걱거리며 음악에 맞추어 출렁이기 시작하던 순간, 어디선가 들고온 도라에몽

얼굴모양의 커다란 가방이 가면처럼 얼굴 앞에서 춤추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도 없진 않았다. 조그만 아이를 데리고 온 부부라거나, 2층 오른켠의

난간 가까이에 선 채 두주먹 불끈 쥐고 아래 무대를 응시하고 있는 교통경찰의 인형. 저 초점없고 생기없는

눈동자가 제복을 입은 채 뜨거운 열기를 풀풀 내뿜는 무대를 내려보고 있다는 이질적인 실감 그 자체가

왠지 무대를 즐기는 사람들의 흥분을 더욱 고조시켰던 거 같다.


그리고, 자칭 '지구음악'을 한다는 다국적 밴드 수리수리 마하수리. 그들의 인상적인 노래와 연주는 모두를

거의 무아지경 상태로 몰아놓고 있었다. 국적 불명의 다양한 악기와 창법, 전혀 생소한 멜로디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그들이야말로 월드뮤직페스티벌에 딱 맞는 라인업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곳 쿤스트할레, 아시아문화마루는 꼭 월드뮤직페스티벌이 아니어도 나름 광주의 문화예술을 위한

요람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는 것 같았다. 9월, 10월, 공연 일정이 꽉 차 있었고, 주류와 비주류를

굳이 가를 것도 없이 다종다기한 스타일의 공연을 위해 열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하긴 애초 컨테이너를

활용해 이런 공간을 만든 것부터 꽤나 참신하고도 도전적인 마인드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다.

그런 발랄하고 열려있는 마음가짐이 광주를 아시아 문화중심도시로 이끌 주된 동력 아닐까.

밤이 깊어가는데 오히려 관객들은 숫자상으로도, 그들이 내뿜는 열기로도 한껏 고조되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타난 디제이 시코(DJ Cyco), 전혀 디제잉에 문외한인 내 막귀에도 그의 믹싱은 뭔가 달랐던 거 같다.

관객들도 그런 마음이었던 걸까. 의자를 버려둔 채 모조리 무대 앞까지 달려나가 음악에 몸을 맡겨버렸다.

그렇게 밤늦도록 이어지던 쿤스트할레의 실내 공연. 월드뮤직페스티벌을 빛내는 각국의 전통 음악을

소개하는 공연도 좋았고 아시아의 아이들이 하나된 모습으로 노래하는 모습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페스티벌을 진정 즐길 수 있으려면 이런 야밤의 뜨거운 공연이 빠질 수는 없는 거다.

 

그리고 쿤스트할레를 거점으로 벌어졌던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 중에서 깨알같은 재미를 선사했던

'플리마켓' 이야기를 빼놓을 수도 없다. 인근의 광주 문화예술인들이 전부 모인 듯 직접 만든

예술작품이나 소품들을 갖고 나와 좌판을 벌인 모습도 보였고, 캐리커쳐로 쓱싹 얼굴을 그려주는

아티스트도 있었으며, 국적을 알 수 없는 기묘한 옷가지들을 들고 나와 파는 사람들도 있었다.

꼭 뭔가를 사서가 아니라, 그 옆에서 팔고 있던 케밥을 씹으며 두리번두리번 구경하고 돌아다니는

그 자체로 쏠쏠하게 재미지던 플리마켓.

 

그렇다고 빈손으로 돌아나온 것도 아니다. 직접 그리고 오려붙여 만들었다는 카드를 두 장 사서 마켓 귀퉁이의

빈자리를 찾아 쭈그려 앉았다. 바닥에는 목이 기린만큼 긴 강아지가 꼬불꼬불 그려져 있었고, 그 얼굴 위로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아이들이 묘기를 펼쳐보이고 있었고. 뭐랄까, 쿤스트할레의 분방한 외양 만큼이나

분방한 분위기를 사방으로 퍼뜨려 이런 사람들을 모아들였구나 싶은 느낌.

 


낮에 보았던 아시아문화마루, 쿤스트할레의 텅빈 공연장은 바야흐로 월드뮤직페스티벌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있었다. 아시아 문화의 교류, 화합의 장으로 거듭나겠다는 광주의 원대한 포부가 이곳에서부터

응축된 에너지로 아시아 국가들로 뻗어나가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해본다.






 





'광주에서 즐기는 7일간의 아시아문화여행'이라는 홍보 문구가 잘 보여주듯, 올해 최초로 열린 제1회

아시아 문화주간 행사에서는 아시아 각국의 다양한 문화가 서로 만나고 교류하고 녹아드는, 그런 기회를

여러 차례 예비하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 강력하고 인상적이었던 무대는 역시 음악의 영역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문화를 서로 소개하고, 알아가고, 끝내 어우러지던 그런 자리들이었다.

2011 광주 월드 뮤직 페스티벌은 문화주간 중에서도 금토일, 가장 중요한 대목에 해당하는 시기를 책임지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다. 클라이막스를 광주 도심 한복판의 금남로공원, 아시아문화마루인 쿤스트할레, 그리고

빛고을 시민문화관과 첨단쌍암공원을 넘나들며 책임져야 하는 월드뮤직 페스티벌, 가장 먼저 만났던 공연은

아시아 각국의 대표 연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함께 각자의 고유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선사했다.

다 같은 아시아인이라고는 하지만 요모조모 뜯어보면 서로 생김새도 딱히 같다고 하기 뭐하고, 표정이나

악기의 음색, 연주법 따위도 다 다르지 싶으니 그런 생각이 조금씩 들기도 했다. 대체 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키워드가 뭘까. 무엇이 이들을 하나로 묶어서 '아시아'라는 정체성을 만들게 되는 걸까. 세계 인구의

절반 가까이에 해당하는 수억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아시아 대륙을 쪼개어 각자의 민족국가에서 살고

있는 그들이 국가와 민족을 넘어서 '아시아'로 뭉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점점 신명나게 고조되는 음악의 힘을 빌어 희미한 힌트가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손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버린 순간 그 다양한 국적, 필리핀, 태국, 방글라데시, 몽골, 베트남 등등의 사람들은 어느새 하나의

덩어리처럼 혼연일체가 되어 있었다. 모양이 많이 달라지고 제각기의 민족성이나 특성에 따라 변주되는

악기의 분화에도 불구하고 나름의 원형은 지켜지고 있었던 건 아닐까.

뜨겁고 무더운 날씨에도 관객들은 좌석을 꽉 채우고 더러는 뒤에서 서서 구경하기도 했다. 이런 페스티벌의

분위기 중에서 가장 맘에 드는 건 이렇게 활짝 열려 있다는 점. 점잖게 자리에 앉아 연주되는 음악을 즐기던

할아버지는 중절모를 쿡 눌러쓰더니 카메라폰을 들고 무대 앞까지 돌입하셔서 사진을 찍기에 이르셨다.

아마도 카메라폰 쓰는 법을 가르쳐준 손자나 손녀에게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걸 함께 나누고 싶어서 아닐까.

다음 무대는 인도네시아였던가, 왠지 햇볕이 뜨겁게 내리쬐는 남국에서 왔을 법한 뜨거운 피를 가진

이들이 차지했다. 그들의 몸에는 온통 타투가 선연하게 새겨져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중요부위만을

가린 채 나풀거리는 천조각은 카메라를 들고 그 빈틈을 노리며 무대 주변을 맴돌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차림새나 타투들 만큼이나 노래 역시도 생경해서, 이건 혹시 자메이카나 아프리카 같은 멀고도

이국적인 곳에서 온 음악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지만, 동시에 '아시아'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DNA가 이만큼 광범위하고도 풍요롭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인기 만점이었던 이들의 이 멋진 무대의상, 이랄까 혹은 전통의상이랄까.

함께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사방에서 달려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려는 통에 그냥 스킵하기로 했다.

은근히 여성 관객이나 여성 진행도우미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끌어낸 듯.

계속 이어지는 공연을 보면서는 계속 그랬다. 넋놓고 그들의 음악을 즐기다가도 어느순간, 어라 근데 이게

아시아음악이라고? 그리고 저 연주자가 아시아사람이라고? 그만큼 음악적인 색깔도, 연주자의 외모나

신체적 특징들도 굉장히 스펙트럼이 넓었다. 그들이 입고 있는 전통의상에서 느껴지는 색감이나 미감 역시

뭔가 여태까지 내가 갖고 있던 '아시아'에 대한 상식이나 선입견이 얼마나 좁고도 편협했는지 돌이켜보게

해줄만큼 충분히 자극적이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무대 뒤에서는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미 리허설이나 공연 중간중간의 조우를 통해

서로 얼굴을 익힌 게 틀림없는 공연자들끼리 어느새 스스럼없는 사이가 되어서 무대 뒤에서 서로 장난도

하고 웃고 떠들며 서로를 격려해주는 그런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거다. 이런 게 아마 우리가 바라는

'아시아 문화'의 정수 아닐까. 서로에 대한 열린 마음, 친밀한 감정, 그리고 저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마침 한국과 몽골의 수교 20주년을 맞이했다는 올해, 몽골에서 온 연주자들의 공연도 있었다. 선명한 원색의

옷차림에 독특한 악기들이 이목을 특히 끌었었는데, 그들의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는 마치 짙초록색의 드넓은

몽골 초원 위를 내달리는 말위에 몸을 맡긴 듯한 그런 느낌. 초원위를 가지런히 갈퀴질하며 지나는 바람소리를

닮은 그네들의 악기도 그랬지만, 몽환적이고도 격정적인 구령소리같은 노랫소리도 매력적이었다.

 

가만히 보니 현악기의 머리 부분에 조각된 건 다름아닌 말의 머리 모양. 정교하게 말갈기와 주둥이 모양이

새겨져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들의 연주와 노래가 마냥 신기했는지 맨 앞자리에 앉아서 무대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아이들의 뒷모습.

 

 

그렇게 첨단쌍암공원에서의 오픈 스테이지 공연은 일단 막을 내렸다. 아시아 각국, 조금은 친숙한 나라도

있었고 조금은 생경한 나라들도 있었지만 그네들의 연주와 노래를 들으면서 조금씩은 더 반가워지고

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네들의 다채로운 복장 만큼이나 넓고 다양한 스펙트럼 위에서 만난 아시아

각국의 연주자들, 아마도 그들이 가장 크게 서로에게 자극받고 친숙해진 계기가 된 건 아닐까. 모두가

함께 무대에 올랐던 마지막 연주는 이번 월드뮤직 페스티벌을 통해 그들이 서로 '아시아인'으로 느끼고

하나되는 화룡점정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카메라들이 걸어다니는 청계천이나 광화문 광장, 나까지 그 대열에 별로 합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그냥 지나다니기만 하다가 문득 맘이 동한 어느 날.

천변으로 빼곡하게 오가던 사람들의 행렬이 문득 끊긴 순간, 다리 아래 저렇게 도돌도돌 튀어나온 돌길이

있었구나. 아마 저게 이전에 존재하던 청계천 옆의 흔적 아닐까 싶은데.

그러고 보니 이 폭포를 사진에 담아보는 건 처음인 듯. 왠지 남들이 다 사진찍는 곳을 나까지 찍을 필요는

없지 않겠냐는 삐딱한 심리의 발동이었지만 뭐, 결국 찍었다.

저쪽벽에는 인공폭포의 물방울이 튀어 꼭 오줌을 지린 마냥 얼룩덜룩 벽이 젖은 게 눈에 들어왔다.

이 근처만 가면 늘 수돗물 비린내인지 뭔지, 물냄새가 맘에 안 들어서 휙휙 지나쳐버리곤 했었는데,

그러면서 이 거대한 수돗물 어항을 만들고 대통령까지 되어버린 불쾌한 누군가를 꼭 떠올리게 되어

기분이 착잡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사진으로 담아놓고 보고 있으니 제법 시원해 보인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