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법성포는 인도 간다라 출신의 고승 마라난타가 실크로드와 중국을 거쳐 백제에 불교를 전래하기 위해 바닷길로

들어올 때 최초로 당도하여 불법을 전파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법성포의 백제시대 지명은 '아무포', 아미타불의 의미가

담겨있는 명칭으로, 이후 '성인이 불법을 전래한 성스러운 포구'라는 뜻으로 법성포(法聖浦)로 불리게 되었다.


그렇듯 백제 불교의 최초도래지인 이곳 법성포에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기념성역을 조성해두고 인도 간다라 특유의

불교조각과 건축양식을 따른 기념조형물들과 기념 공간을 마련했다고. 그런저런 의미는 차치하고라도,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는 사찰과 주변 조경이 산책삼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사진찍기에 제법 괜찮은 곳이었다.

주차장에서 차를 내려 최초도래지 입구로 들어가는 길, 외길을 따라 드문드문 늘어서있는 가로등 너머로 시퍼런

하늘이 참 좋았다. 특히나 가로등 바로 밑에서 하늘을 바라보면 날아가는 비행기의 뒷꽁무니가 보이는 것 같기도.

청명한 가을하늘 저멀리로 마음도 같이 붕붕 날아가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름은 모르지만 온통 붉은 열매가 지천으로 매달려 있던 풍경. 어찌나 왕성하게도 다닥다닥 붙어있던지

살짝 무섭거나 징그럽다고까지 느껴졌지만, 그래도 저렇게 프레임을 조금 잘라 들여다보면 나름 가을스럽던.

바다쪽 말고 산을 끼고 있는 길쪽으로는 철조망이 조금 둘려있었고, 철조망에 기대어 장미꽃들이 피어있기도 했다.

나름 단단한 꽃망울을 터뜨리곤 뾰족뾰족 가시를 발톱처럼 드러낸 장미꽃이라지만 철조망의 단단하고 날카로운

끄트머리 철사 앞에선 여려보이기만 할 뿐. 

함께 나섰던 사진작가분이 억새를 가리키며 한번 찍어보라 하여 찍어본 사진. 살짝 역광을 안고 찍는 게 더 이쁠 수

있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카메라를 쥐고 자리를 잡는 바람에 왠지 민망해져서 살짝 찍어보곤 빠졌다. 


드디어 정문 도착. 과하게 임팩트를 준 거 같긴 하지만, 정문의 자바라식 철문이 정말 햇빛을 받아서는 저런 느낌으로

반짝반짝하고 있었단 말이다.


입구를 지나쳐 안으로 쏘아 들어가는 대신 저 화분이 눈에 들어와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돼지 모양으로 만들어진

화분은 무슨 돼지저금통처럼 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고, 돼지의 모양 역시 돌돌 말린 돼지꼬리까지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표정도 참 탐스럽고, 두 볼에 찍힌 연지곤지같은 보조개도 귀엽다. 


기념공원에서 가장 바다쪽으로 몸을 내밀고 있던 정자, 그 안에 모셔져 있는 동종 하나. 몸통 안에서 울림을 더하는

소리가 종 위쪽의 저 구멍을 통해 빠져나오면서 나름의 진동과 웅얼거리는 울림이 깊어진다고 들었는데.

저 너머로 불(佛)자가 새겨진 정원과 부처상이 보이고, 앞으로는 부처의 자비심처럼 온세상을 향해 뻗어나갈 듯한

기운을 풍기는 범상치 않은 나무가 서 있었다. 가지들의 뻗친 형세하며,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게 묻어있는 

나뭇잎들의 분위기가 워낙 인상적이어서 계속 눈에 밟히는 나무였다.

마라난타 존자의 상과 그가 전래했다는 불교유물, 불교 설법의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던 간다라유물관. 안에 사람이

한명도 앉아있지 않았지만, '사진촬영금지'라는 말을 고분고분 들었던 건 마라난타 존자가 한가운데 딱 버티고

서서 나를 내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였다.

이곳에도 가을은 여지없이 내려앉았다. 불그죽죽해진 나뭇잎들이 하나씩 둘씩 짝지어 내려앉았다.

간다라 불교에서 연원한 여러 인물들과 부처상들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그리고 청동으로 만들어진 향로 모양의

조형물의 지붕 사방으로 매달려 있는 종에 제법 섬세한 문양이 보였다. 바람이 불때마다 날개옷을 너울거리는

청동종 안의 사람이 땡그랑땡그랑 울었다.

나무데크로 정비되어 뭔가 집회를 위한 장소로 마련해둔 듯한 공간에 놓였던 긴 화분 하나에서 꽃이 한뿌리채 통째로

떨어져선 한층 아래 바닥에 낙하해버렸다. 스스로의 의지로 떨어졌을 리야 없겠지만 자꾸 비장한 누군가의 자살,

누군가의 투신과도 같은 이미지가 중첩되어 보여서 굉장히 잔인해 보이는 풍경이었다.

사바세계의 풍진만물을 세심하게 굽어살핀다는 부처님을 챙기는 건 정작 저렇게 두 눈알을 번쩍거리고 있는

CCTV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아직 공사가 채 마감되지 않아 밑의 기단이 헐벗은 콘크리트 더미로 남은

미완성의 부처라서 힘이 딸리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에서 얻어낸 오방색을 기반으로 꽃단장한 단청의 화려하고도 자연스런 색감, 갓 칠한 느낌 그대로 선명하고

또렷한 그 오방색 단청도 나무랄데 없다지만, 역시나 가을엔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의 오묘한 빛깔로 물든 단풍이 최고.


아직 공사가 미완이라지만 사람들의 소원은 완공을 기다릴 여유가 없다. 돌멩이들로 마감한 한쪽 축대의 돌들을

뽑아내서는 돌탑을 쌓아놓고 있는 사람들의 절절한 마음. 밑단의 돌을 하나 더 뽑아 위에 개어두면 언젠가는

모든 소원들이 무너져내릴지도 모르지만, 다소 투기적인 마음으로 '나만 아니면 돼'라며 소원 하나의 무게를

더하고 있는 건 아닐까. 조바심난 돌멩이들의 무게를 수천년간 견뎌내온 인류의 신이란 작자에게 조의를 표한다.


2층에 있던 법당, 생각보다 담백하고 부처상 역시 3D의 입체상이 아닌 2D의 그림으로 갈음되어 있었다. 법당의

분위기를 그대로 전하던 건 반질하지만 유난하지 않은 나무 책상, 목탁과 죽비의 담담한 광택.

그나저나 사람들은 왜 저렇게 젖꼭지에 집착하는 걸까. 아랫돌 빼서 윗돌 괴며 소원을 빌었던 그 손이 그 손 아닐까.

다른 분위는 텁텁한 대리석의 질감이 그대로 살아있는데 유독 젖꼭지 두개만 반질반질, 좀만 더 있음 말갛게

광택이 생길 거 같다.

돌아나오는 길, 그러고 보니 밑에서부터 위에 모셔진 부처상까지 오르는 길은 108계단으로 맞춰졌었다. 인간세상을

살아내며 겪게 된다는 108개의 번뇌. 계단 한걸음한걸음 그 번뇌와 세사의 번다함을 되짚어보고 끊어내며 올라갔다

내려왔어야 했는데 뒤늦게 알아챈 탓에 그러지 못했다.






* 한국원자력문화재단에서 주최한 '에너지체험 블로그기자단'의 일원으로 떠난 출사 여행이었습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