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재 해수욕장, 그야말로 제주도 관광의 성수기이던 8월 언젠가쯤이어서 그랬는지 해변가엔 온통 쓰레기가

검정 현무암돌바닥을 가리울 지경이었지만 나름의 운치는 여전했다. 홀로 앉아 바다를 바라보는 반백 아저씨의

살짝 굽은 뒷 등덜미가 바닷바람에 조금 도닥여지는 거 같기도 하고.

해수욕장 앞으로 이어진 마을은 온통 구멍숭숭한 현무암 돌담으로 집집이 구획되어 있었는데, 그 엉성한 돌담에

하나 더 얹어진 돌멩이인 양 엉성하게 끼어 있는 새파랑 우편함이 웃겨서 사진 한장.

바다에 연한 시멘트 방조제. 하루방을 저런 식으로 표현해 놓으니까 무슨 모아이의 석상 같기도 하고, 표정도

뭔가 굉장히 엄하거나 화난 듯 하기도 한데다가 서로 등 돌리고 있으니 영락없이 싸우고 삐친 모습이다.



바다 색깔이 진짜로 이뻤는데, 사진엔 채 반의 반도 담지 못한 거 같다. 동남아의 유수한 신혼여행지 앞바다라며

보이는 에메랄드빛 바다가 여기에 펼쳐져 있었는데.


먼 바다에서 둘둘이 짝지어선 서로 마주보며 데이트 중인 어선들.

그리고 현무암질 용암이 질질 흐르다간 바다를 만나 쩍쩍 갈라지며 급격히 식어간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해변가.


해녀상. 튜브를 한팔에 꿰고 있는 다소 현대적인 매무새의 해녀도 있었고, 저고리 고름을 곱게 맨 채 등짐을 지고

있는 해녀도 있었고. 그리고 그녀들 너머로 보이는 투명한 바다.


해가 수평선 너머로 내려앉기 전에 바닷물에 발톱부터 담군 타이밍, 사람들이 슬슬 바다 밖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제주 한림공원에서 토실토실 잘 자라고 있던 선인장들, 심심하거나 단조롭게 생겼다 싶은 외관과는 달리 피어내는

꽃들은 제법 천연색이 발랄하니 샤방샤방한 모습이었다. 다만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기록을 남기고 싶은 욕구는

어쩔 도리가 없어 손 뻗어 닿기 쉬운 곳에 있는 선인장들은 마치 '골든벨' 최종도전자의 그것과도 같이 누군지도

알 수 없는 명찰들이 바글바글 달려있는 모습. 

이 나무의 이름은 '와싱토니아'.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와싱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것이라는데 와싱톤이라..

아무래도 저 안내판은 이 '와싱토니아'의 씨앗이 처음 뿌려진 1971년쯤 만들어진 거 아닐까 싶었다.




곳곳에 있던 제주 전통 현관문인 '정낭', 자연스레 한림공원 내부의 동선을 잡아주고 있었는데, 이런 돌담들도

은근히 어거지로 밀고 나가려는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돌담을 허물지 말아달라는 표지판이 서 있을 정도.

내부의 온실에서 자라고 있던 뱀이나 도마뱀 같은 동물들에 더해 거북이들도. 두마리가 서로 반대쪽을 바라보면서도

무슨 탑쌓기하듯이 포개어져 있었다.


 






그리고, 만지면 느끼는 게 아니라 보면서 느끼는 꽃들. "보기만 허고 만지지랑 맙서예!"








한림공원에는 협재굴과 쌍용동굴이 있다. 그쪽으로 가는 길을 안내하는 저 만화 캐릭터를 보면서 왠지 '낢 이야기'의

낢 작가 캐릭터가 떠올랐던 건 왜일까.



협재굴 들어갔다, 협재굴 나왔다. 빛이 반겼다.



그리고 마치 미야자키 하야오의 '원령공주'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 나왔던 정령들처럼 봉긋봉긋 튀어나온

돌 인형들. 짙고 거칠게 파인 눈매가 장난스럽기도 하고 살짝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한림공원을 떠나 바로 앞의 협재해수욕장이나 금능해변으로 옮겨가는 길, 하루방과 해녀가 어깨를 걸고는

살갑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우도로 가는 길은 한가지다. 제주 동쪽끝의 성산 일출봉, 성산포항에서 거의 한시간 간격으로 있는 카페리에

몸만 싣던, 아님 차도 싣던 해서 그 배를 타고 우도로. 승용차 기준 9대가 꽉 차는 카페리의 아가리가 닫히고

15분 정도만 바다 위를 달리면 우도가 나타난다.

2층의 조타실에서 키를 잡고 있는 선장님, 촘촘하게 나사를 박아 단단해 보이는 창문 너머 허브 화분이

눈에 띄어서 한장. 그리고 불과 3.8킬로미터 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우도는 벌써부터 보이길래, 저 너머

길게 소가 물속에서 머리를 내민 모양으로 보이는 바로 우도다. 소牛 자를 써서 우도.

바다가 생각보다 많이 거칠었다. 듣고 보니 제주 서남쪽 모슬포항에서 출발하는 가파도행, 마라도행 배도

궂은 날씨로 뜨지 못했다던가. 저번에 왔을 때는 작은 섬이라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제법 큰 섬이었다.

섬 해안도로만 따라 걸어도 17킬로미터, 약 천오백명이 사는 섬이라니.

우도는 해양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특별히 관리될 만큼 자연생태나 풍광이 빼어난 섬인데, 그런 풍경을

'우도팔경'이라고 이름붙여 놓았다. 제주에서 배타고 우도로 향하는 중에 보는 우도의 풍경, 앞선 사진의

그 모습도 그 중 하나. 그리고 천진항으로 입항해 우도봉으로 걸어올라가는 길의 너른 잔디밭도 팔경 중 하나.

멀리 왼쪽으로 보이는 게 우도등대공원, 그리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구릉의 꼭대기가 우도봉. 132미터밖에

안되는 높이이긴 하지만, 거칠것 없이 불어닥치는 바닷바람 때문에 올라가는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

바람이 엄청나게 불어대는 탓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는 가족들과의 대화도 목소리를 키워서 해야 했다.

우도의 소 형상, 그중에 머리 부분에 해당한다고 해서 '섬머리'라고 불린다는 부분이 바로 여기니깐,

말하자면 소 머리를 기어오르는 길인 셈이다.

방금 배타고 도착했던 천진항이 저만큼 내려다 보였다. 우도엔 천진항과 하우목동항, 이렇게 두 개의 항구가

있는데 대부분의 배가 왕래하는 곳은 천진항. 그 너머 보이는 게 제주도 본섬이니 날씨가 좋아 저 구름이

다 걷히는 때면 한라산도 보이지 않을까. 쉽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우도팔경의 하나라고 한다.

그리고 성산 일출봉의 저 묵직하면서도 날렵한 모양새. 중후한 독일제 세단을 보는 거 같은 느낌마저 든다.

계속해서 소머리를 밟고 올라가는 길. 키작은 잔디가 촘촘하게 자라나 푹신하게 밟히는 느낌이 참 좋다.

섬 바깥쪽으로는 무너지는 곳도 있고 지반이 약한 곳도 있다 하여 이렇게 넉넉하게 울타리를 둘러놓고는

'넘어가지 마세요'라고 안내판도 붙여두었지만, 장난스런 누군가가 두 글자를 지워 의미를 뒤집어버렸다.

사람들이 밟지 않는 쪽 풀떼기들은 뭐가 저리도 무성한지, 먼바다 파도처럼 넘실넘실.


우도봉 정상..이라기엔 좀 뭐한 높이지만, 그래도 속이 탁 트이도록 시원한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높이다.

싱싱한 초록색의 잔디가 곱게 깔려있던 구불구불한 길이 울타리의 인도를 받았고, 그 너머로는 짙푸른

담청색의 바다가 제주도와 우도를 갈라놓았다. 머리가 사방으로 봉두난발처럼 뻗쳐나가게 희롱하던

바람의 위력이란. 저 풀떼기들이 여자들 싸울 때 머리끄뎅이 잡아뽑히듯이 전부 뽑혀 훌훌 날려갈 기세.

울타리쪽으로 고무깔판을 깔아두어 미끄럼을 방지한 길 대신, 잔디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다시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에 듬성듬성 야트막한 산처럼 쌓인 말들의 '생의 흔적'을 만났고, 그 중 한 곳에서는 질펀하게

싸제껴진 똥덩어리 사이로 노랑색 꽃을 피워낸 민들레를 발견했다. 저것이 양분이 되어 꽃을 틔웠다기엔

시간차가 좀 있는 거 같고, 이제라도 더욱 선명하고 이쁜 노랑색을 만들어내는데 일조하지 않을까.


제주도식 무덤은 꼭 이렇게 봉분 주변을 돌울타리로 한번 치는 게 상례라고 했다. 소나 말, 혹은 다른 동물이

행여 봉분을 훼손하지 않도록 막기 위함이라는데 보통 현무암을 얼기설기 쌓아올려 울타리를 치더니 여긴

시멘트로 아예 발라버린 거 같다. 천오백명이나 산다더니 정말, 이쪽의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잔뜩 모인 게

거의 공동묘지 분위기였다. 야트막한 언덕이 온통 올록볼록 엠보싱.

잔디밭 한가운데 시멘트로 엑스(X)자 모양을 만들어둔 헬기 이착륙장을 지나, 우도봉 뒤로 일찌감치

봐두었던 우도등대공원으로 걸었다. 정신없이 불어제끼는 바람 때문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발길을 돌려 우도의 해안으로 가는 거 같았지만, 저번에 여기 왔을 때 꽤나 멋졌던 곳으로 기억하고

있어서 굳이 걸어올라갔다. 사실 얼마 멀지도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진 않는지 길 한복판에 둥둥 떠서 멈춰있던 잠자리에 깜짝 놀랬다. 날아가는 모습 그대로

공중에 멈춰 있다니, 자세히 보니 길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이어진 커다란 거미줄에 걸려서 이미

적잖은 시간 비바람에 시달린 듯 하다.

거미줄을 피해 조심조심 오르는 길, 나무 데크로 잘 정돈된 길을 오르다 보면 우리나라나 세계의 주요 등대들

모형이 차례로 만나게 된다. 마라도니 독도니, 우리나라의 주요 뱃길을 비추는 등대들도 그렇고, 뉴욕의

허드슨강을 지키던 등대니 뭐니, 이것저것 훑어보다 보면 어느새 공원의 끝, 우도 등대에 다다르는 거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실제로 쓰였다는 우도 등대. 그리 높진 않지만 단단하고 든든해보이는 체구의 하얀 등대다.

아래부터 위까지 스캐닝하듯 쭉 훑어보다가 발견한 저 풍향계, 그리고 꽃술처럼 풍성하게 벌어진 피뢰침.

풍향계에 그려진 N, E, W, S가 뚜렷하다. 그러고 보니 동서남북의 사방을 가리키는 영어 첫자를 따서 어케

잘 조합하면 뉴스(NEWS)가 되는구나. 뜬금없는 생각에 괜시리 감탄 한번.

그래도 역시, 더이상 쓰이지 않고 사람들이 드나들지도 않으며 비바람에 씻겨갈 뿐인 건물이란 건 왠지 슬프다.

문에 걸린 채 붉은 녹물만 주룩주룩 흘려대는 자물쇠 몇 개가 앙상하게 부식된 껍데기를 떨구고 있었다.


우도등대 앞에 서서 내려다본 우도의 마을 풍경. 시퍼렇다 못해 시꺼먼 바다가 해안에 다가와선 시퍼런 거품을

만들며 시위 중이었다. 그리고 울타리 틈틈마다 거미줄을 만들며 삶을 이어가는 거미. 샛노랗고 까뭇한 색의

대비가 바다보다 화려했다.

더이상 쓰이지 않게 된 하얗고 조그만 등대 대신 그 뒤에 버티고 선 등대전시관의 등대가 새로 작동하고

있다고 했던가. '에어콘 가동중'이란 안내에 낚여 뛰쳐들어갔다가 전혀 냉기 따위 없다는 걸 직감하고 그보다

빠른 속도로 뛰쳐나오느라 이 건물 안은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바람은 강했지만 바닷가이다 보니 습하고

소금기 꿉꿉한 기분까지는 어쩔 수 없어서 에어컨으로 좀 말리고 싶었단 말이다.(버럭!)


우도를 지키는 해안경비단을 지나 다시 내려오는 길. 아까는 나무데크가 잘 정돈된 길로 올라가며 등대공원의

여러 전시품들을 둘러봤었고, 이번엔 완만한 내리막길로 걸어내려오며 바다 너머 제주도의 구름 가리운

풍경과 (무엇보다) 발밑을 내려다보며 걸었다.


다시 우도의 너른 초원을 걸어내려가는 길, 옆에서 이리저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이 있고 1박2일팀이

와서 말을 타고 갔다는 광고가 내걸려있다. 가족 중의 누구 한번 타보라는 권유에 선뜻 앞으로 나선 동생,

요새 승마를 좀 연습했으니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기대.

종아리를 다 덮는 기다란 장화를 신고는 아저씨에 이끌려 초원으로 향했다. 조금 걷다가, 이내 머리가 날리도록

내달리기 시작하는데 제법 멋지다. 쏜살같이 내달려 어느새 손톱만한 사이즈로 변해버린 두마리 말을 좇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들이대야 했다. 말을 배우려면 이렇게 풍경 멋진 데서 오르막 내리막을 모두 경험하며

배워야 한다고 아저씨가 코웃음쳤다던가.


차를 주차해둔 쪽으로 걷던 중에 우도의 명물 땅콩을 파는 아주머니들 옆으로 망아지 한 마리가 휘적휘적

유유히 걸어다닌다. 사람들 틈에 섞여서도 무서워하거나 경계하지 않고 그저 제 갈길 간다는 태도. 그 옆에는

망아지 갈기와 땅콩 껍질을 소용돌이치듯 갈퀴질하는 거센 바닷바람에 날려 뒤집혀버린 하얀 의자가 적나라하니

나뒹굴고 있었다.

서빈백사. 우도의 서쪽 바닷가에 하얀 홍조단괴해빈해수욕장에 있는 모래는 온통 하얗게 반짝거렸다.

하얀 산호와 조개껍데기들이 깨지고 부서져서 바닷가에 쌓인 게 이 모래 아닌 백사장의 정체라고 하는데,

우도팔경 중의 하나로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발로 밟으며 걷기엔 조금 아픈 감도 있는 게 아직 산호나

조개껍데기가 모래알처럼 작게 깨지거나 고와지지 않고, 나름의 형체를 그럭저럭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산호가 풍화되어 생겨난 하얀 백사장은 우리나라에서 여기 딱 한 군데라고 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될 정도로 독특한 풍경 속에서, 맨발벗은 발을 따꼼따꼼 찌르는 아픔 속에서도 천막에 앉아 해삼과

멍게, 그리고 우도 특산물이라는 '톳'을 고추장에 찍어 먹었다. 다른 해산물들도 다들 싱싱하고 맛났지만

특히 이곳에서 처음 맛본 톳은 싱싱하고 탱글거려서 제일 먼저 없어져버렸다는.

무려 3미터짜리, 3톤이 넘는다는 해녀상이 서 있던 하고수동 해수욕장. 세계 최대의 해녀상은 1932년 3개월동안

1만 7천여명의 해녀가 항일 항쟁을 벌였던 것을 기념해서 만들어진 것이라 하는데, 당시 해녀가를 지어 불렀던

해녀가 우도 출신이었기에 여기 이런 거대한 해녀상이 선 거라고 한다. 
 

그 앞에는 또 하나의 해녀상이 서 있었는데 그 유래는 전혀 모르겠고, 시선이 계속 쏠리는 건 그 상들 너머

에메랄드빛 바다. 자잘하게 부서진 파도가 잔잔하게 이는 그 깊고 투명한 색감의 바다가 멋지다.

어라, 제주도에 비양도는 북서쪽 금능해수욕장 맞은 편 아니었던가. 알고 보니 여기도 비양도라는 같은 이름을

쓰는 섬이 하나 우도랑 연결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섬이고 우도랑 붙어 있어서 그냥 시멘트길이 넓게 이어져

차를 타고도 쉽게 한바퀴 돌아보고 나올 수 있었는데, 섬 앞머리 표식이 인상적이다. 온통 조개 껍데기를

탑처럼 쌓아올린 표식 바깥에 촘촘히 붙여놓아서, 멀리서 보면 새하얗게 반짝거리던 것.

우도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둘러본 곳은, 검멀레 모래사장 앞 '동안경굴'. 검멀레는 왠지 발음부터 연상되더니

역시, 검은 모래를 가리키는 제주도말이라 하고, 그 앞의 동굴까지 사람들이 내려가 볼 수 있는 거다. 이 동굴에

옛날엔 커다란 고래가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는데 그 앞의 깊고 짙푸른 바다를 보면 왠지 상상이 되었다.

동안경굴, 우도팔경 중의 하나였던 그 동굴 위로 뻗은 산책로 앞에 있던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나뭇살

세개가 모두 구멍에 끼어져 있다. 주인이 멀리 출타 중이란 의미를 남길 때 저렇게 세 개를 모두 구멍에

끼어놓는다고 했는데, 산책로를 당분간 폐쇄한다는 안내판에 꼭 맞는 의미심장한 표식인 셈이다.


* 참고로, 제주도 전통 대문인 '정낭'의 표식에 대한 의미 정리. (네이버 지식인 참조)
 
ㅇ 나무가 한 개도 걸쳐 있지 않을 경우 : 집안에 사람이 있음

ㅇ 나무가 한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가까운 곳(이웃집 등)에 잠시 나가 있음

ㅇ 나무가 두 개 걸쳐져 있는 경우 : 이웃 마을 등에 갔음

ㅇ 나무가 세 개 모두 걸쳐져 있는 경우 :  멀리 출타중임


모슬포항 앞,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배를 가득 채운 '만선'의 꿈이 뭔가 어촌의 정취가 느껴지면서도

여유롭고 뿌듯한 삶을 바라는 인간의 당연한 욕망이 느껴지는 단어라면, 그 뒤로 보이는 단어는 훨씬

강렬하고 직설적이다. '돈방석'이라니. 굉장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욕망을 드러내는.

내가 꼭 저 만선식당에서 먹었던 고등어회가 정말정말 맛있어서만 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가뜩이나

신선도가 금방 떨어져서 회치기가 힘들다는 고등어, 왠지 비릴 거 같기도 한 그 생선회를 구운 김에

싸서 깨소금과 참기름으로 비빈 밥과 함께 먹으면. 캬아..제주도에서 먹은 음식 중 가장 인상에 남는.

바다에 비가 내리는 걸 보노라면 뭔가 망연해진다. 비가 오는 날 회를 먹지 말라던 건, 비싼 회를 조르는

아이들의 입을 조금이라도 막아보려던 어른들의 궁여지책 같은 거 아니었을까. 배고프다.

제주도답게, 구멍이 송송하고 반들반들한 현무암스러운 돌멩이로 냅킨을 눌러둔 까페에 앉아

책도 들척이고, 노래도 듣고. 그러고 있으면 참 좋았다. 어딘가로부터 어딘가로 걸었던 길 끝에서,

혹은 어딘가로 떠나기 전 길을 앞에 두고, 쿠션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포실포실한 쿠션을 꼬옥

끌어안고는 잠시 몸을 부려두는 거. 그리고 여력이 된다면 다시 책 속이나 멜로디 속으로 떠나는 거.

더구나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씨라면.

모슬포항 주변에도 이런저런 벽화가 그려져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맘에 들었던 건 저 해녀 사진.

몸의 동작이나 모양새 자체가 바다 속이라는 느낌이 가득하도록, 살짝 흐느적거리거나 유영하는 듯하다.

무중력 상태에서 자유롭게 몸을 운신하며 바다 밑 해산물들을 채취하는 그네들의 생활이 꼭 저럴 거 같다.


이렇게 며칠째 비가 내리는 날에는 바다 밖의 사람들도 저렇게 둥둥 유영해다니는 거 같다. 길거리를

부유하는 우산들도 그렇지만, 뭐 하나에 마음이 집중되지 못하는 정신상태 역시.










법환포구에 들어섰구나,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징표는 역시 바다 위에 둥둥 뜬 채 매어있는 배들.

남/녀 노천탕이 있어서 깜짝 놀랬다. 알고 보니 제주도에서 흔치 않은 담수가 용출한다는 곳, 역시 그러니 근처에

법성포구 마을이 자리잡은 거겠지만. 여자 노천탕을 얼쩡거려봤는데 아쉽게도(?!) 양말만 벗은 아주머니들만 계셨다.

길바닥에 널어놓은 게, 돌담에 기대어 놓은 게  뭔가 했더니 깨란다. 도로가에 널어놓으면 먼지가 풀풀 쌓일 거 같은데

여긴 별로 오가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으니 괜찮지 싶다.

울룩불룩한 해안선. 울퉁불퉁한 돌멩이.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조각배.

법환 잠녀 마을. 해녀가 일제 시대의 잔재라는 걸 알았던 건 대학교 일학년 때, 제주도를 자전거로 일주할 때였다.

굳이 일제 시대 만들어진 단어를 싸그리 부정할 생각은 없지만, 순전히 어감상 해녀보다 잠녀가 로맨틱한 게 좋다.

이런 식의 공공미술 기획이 늘어나면 좋겠다. 뭔가 늙어가는 사람처럼 퇴락하고 벗겨지고 날로 촌스러워져가는 풍경에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어주는 작업. 요새 오히려 이런 수혜는 지방이나 상대적으로 소외된 곳이 받는 듯 한데, 삭막하고

위압적인 도심에도 마찬가지 생기가 필요하지 싶다.

해안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을 달리는 배, 보아하니 막 출항해서 얼마 되지 않은 것 같다.

잠녀 체험이 가능하다는 간판을 보고 들어가 본 건물에서 만난 잠녀복장. 알고 보니 식당이어서 성게국수를 맛보았고,

다시 알고 보니 식당을 빙자한 마을 아주머니들의 모임장소여서 갖고 있던 간식거리도 나눠먹고, 재밌었다.

해안가에 연한 어느 집 야트막한 담장 위에 얹혀 있는 조개껍질들.

유모차를 끌고 저기까지 왜 나가셨나 했더니, 빨랫감을 싣고 나르는 역할을 하나 보다. 동그마니 서서는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얌전한 유모차.

이 나무기둥위에 얹힌 돌들이란. 허참, 이란 감탄사 이외엔 별로 할 말이 없어진다. 아니 요새는 '올레~'라던가.

바닷바람에 장렬하게 펄럭이며 꿋꿋이 길을 알려주는 저 기개는, 왠지 이순신장군의 최후같이 비장감이 감돈다.

법환마을을 벗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주친 매점. 뭔가 분위기가 꽤나 이국적이었다. 100% 망고주스를 팔길래

한번 맛보고 싶었는데, 생망고가 아니라 엑기스나 그런 거 아닐까 싶어서 그냥 포기.

이제 바닷가에 보다 바싹 붙어서 걷기 시작했다. 검은 빛의 현무암 덩어리들이, 살짝 침침한 날씨 아래 빛을 머금었다.

이건 일종의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인 거다. 돌이 두 개 이상만 다소곳이 쌓여 있으면, 삼층이 되고 사층이 되는 건

순간이다.

눈앞에 보이는 건 서건도, "썩은 섬"이란 우리말 지명을 굳이 한자로 옮기다 보니 서건도가 되었다 한다. 섬의 토질이

부식되어 있어서 썩은 섬이라 했다던가. 만조 때는 섬이 되고, 간조 때는 짧으나마 '모세의 기적'이 벌어지는 곳.

서건도로 향하는 구간은 일명 '일강정바당올레'라고도 한다. 일일이 손으로 돌을 골라낸 끝에 새로운 바닷길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한번 그어진 얇은 선 위에 숱한 덧칠을 통해 굵게 만들어내듯, 올레길은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밟고 지나며 더욱 뚜렷이 패일 거 같다.

서건도. 썩은 섬. 맘먹으면 섬에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제주도와 연결되어 있었지만, 물이 차들어오는 건 또 금방인지라

조금 가보다가 말았다. 가봐야 뭐 별거 있겠어, '저건 신포도야' 이런 마음으로.

바닷가에 떠밀려 온 거겠지. 하얗게 표백되어 버린 나무가 해안가에 길게 누워있었다. 넌, 어디까지 가봤니.(이러고)

바닷가에 바로 붙어있으니 토질이 좋을리가 없다. 소금기 짭짤한 바람이 사시사철 24시간 불어올 텐데, 그 바로

옆에서도 이렇게 흙을 일구고 작물을 돌보시는 분. 대체 저 고랑 사이로 무엇이 튀어올라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뭐든 튼튼하게 잘 여물었으면 좋겠다.

물질 나가시나보다. 잠녀 아주머니 두 분이 바삐 걸음을 옮기셨고, 나는 그 빨갛고 노란 장갑의 색감이 너무 좋아

카메라를 바삐 들이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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