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호를 한 바퀴 돌아보려 나선 길, 첨에 강릉에 도착해서는 여기서부터 바다인가 시끌시끌하다가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타박을 맞았었다. 그럴 만큼 크고 넓은 호수, 햇살이 모래알처럼 흩뿌려진 그 수면위로 화살표처럼

손가락질하고 나선 전망대.

너울너울. 겨울치고는 부드러운 바람이 수면에 몸을 부비며 자욱을 남기곤, 그 물결을 헤치며 오리들이 나아간다.

오리 두 마리가 둥싯둥싯 떠있는 수면 너머, 멀찍이 경포호의 반대편 끝이 보이고 그 위로 보이는 직선상의 구름 두개.

경포호 가운데에 있는 조그마한..섬이랄까. 자그마한 정자가 하나 세워진 조그마한 그 곳에는 새들이 잔뜩 와서

쉬었다 간다고 했던 거 같다. 뱃놀이가 가능하면 저기까지 배타고 나아가서 들어가 놀아도 좋겠는데.


호수 곳곳에 둥둥 떠다니며 한량질 중인 물새들. 그렇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똥꼬를 하늘높이 쳐들고는

쉼없이 자맥질하며 먹이를 찾는 게 나름의 먹고 사는 고민에 빠져있는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생선일까, 경포해수욕장 가는 길에 벚꽃나무가 쫙 이어지는 길이 유명하다던데, 그 벚꽃나무 사이에 드문드문

저렇게 인공불빛이 밤에 일렁일렁거릴 가짜 나무가 심어져 있던 거다. 그런 나무에 기대어 허공에 내걸린 생선들.


호수의 가장자리, 제법 두꺼운 얼음이 수면을 덮어버린 곳 위에서는 한 무리의 새들이 뒤뚱뒤뚱, 발맞춰 걷고 있었다.

경포대로 옮겨지던 발걸음이 살짝 벗어났던 건, 다소 뜬금없긴 하지만 호수 옆 밭두렁에 촘촘히 꽂힌 채

겨울바람에 떨며 문득 잊었다는 듯 파닥거리던 바람개비들 때문.


그러고 보면 이날 참 하늘이 쨍하니 맑았다. 경포대에 도착하니 모두들 쌍쌍, 게다가 문화유산 해설사까지

동반한 단체 여행객들이 우르르 있길래 똥마려운 강아지모냥 주변에서 뱅뱅 돌며 차례를 기다리다가 한 장.

경포대에 올라 바라본 경포호수. 좀더 걸으려 했는데, 예기치 못한, 갑작스런, 그리고 계속 기다리던 호출.

그래서. 경포호의 나머지 둘레길은 다음 기회에.






작은 아이디어 하나를 밀고 나가보려는 영화, 약간의 뒤집어보기로부터 이야기는 번져나간다.

그렇다. 춘향전의 주인공이었던 춘향과 몽룡에 쏟아지던 스포트라이트가 조금 심기에 불편했다면,

춘향전의 순순하고 아름다운 해피엔딩이 조금 순진하다 싶었다면, 춘향과 몽룡의 사랑이야기에

약간의 땀 냄새를 섞어주고 싶었다면 딱 생각해 볼만한 스토리 아닐까.


아쉽달까, 약간 뒤로 갈수록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익히 알고 있는 '춘향전'으로 돌아오는 듯한

느낌이 짙어지는 건 사실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을 거다. 이야기 자체가 방자의 시각으로 시작해서

처음엔 굉장히 새롭고 참신한 내용이 짙게 드러나긴 하지만, 뒤로 갈수록 오리지널 버전의 이야기로

복귀해서 춘향-몽룡의 갈등선에 얹힐 수 밖에 없는 거니깐. 방자의 이야기만으로 계속 뻗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건 이런 식으로 비틀고 뒤를 비추는 이야기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재미있다. 방자의 사랑과 질투, 춘향의 신분상승욕과 사랑, 그리고 몽룡의 또다른 사랑과

질투가 뒤섞이면서 훨씬 질펀하고 복잡하며 순수하지 않게 전개되는 사랑 이야기도 그렇거니와,

전라도 한량 '장판봉'의 전설같은 작업기술들도, 그리고 무엇보다 조여정의 몸이-혹은 가슴이-

굉장히 눈과 귀를 모으던 요소들이었다. 개봉 당시 야하네 가슴이 얼마나 크네 등등 이야기가

나왔던 게 조금은 이해할 만하다 싶기도 하고. (나야 '색계'가 야하고 안 야하고의 기준이지만)


조금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여자의 마음을 먼저 얻어야 사랑에 성공할 수 있다'느니 '여자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식의 장판봉 레퍼토리는 결국 여자의 몸과 마음을 얻기 위한 술책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게 이 영화의 한계랄까, 춘향전의 빈틈을 잘 버혀내어 숨겨진 이야기를

해보려던 영화의 의도 역시 어쩌면 또다른 남자인 '방자'의 시각에 치우치면서 강조된 것은 춘향의

벗은 몸과 섹스. 그렇게 결국 춘향은 아리땁고 당당한 여자 정도로만 묘사되고 만 건 아닌지 싶기도 하다.

조여정의 연기나 춘향의 캐릭터를 이야기하기엔 너무 평면적으로만, 혹은 방자와 몽룡 간에 경쟁하는

목표대상으로만 드러난 거 같아서 하는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서 사흘이 지났더니 조여정의 벗은 몸 정도만 기억에 남은 상태, 그렇게 쓰는 리뷰.





내가 게임을 하는 방식.


꼭 가운데에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 두눈 부릅뜨고 목청 드높이고 싶지 않다.

그저 가운데 어간에 맞으면 그걸로 족한 것. 굳이 다트판이 정해놓은 점수대로 헤아릴 필요는 없는 거고.


조금 욕심을 부려 두세번 던져 두세번 가운데 어간에 맞는다면 더 좋겠지만,

그렇다고 새삼 점수를 헤아리며 다른 이의 점수를 곁눈질할 생각은 없다.


내가 팔에 힘을 실어 던지는 재미, 내 의지가 실려 날아가 꽂히는 재미, 재미있으면 됐다.


내 꿈은 한량, 숫자놀이나 감투크기엔 관심없고 그냥 내 깊이와 넓이가 궁금할 뿐이다.

무겁지 않게 세련되고 발랄하게, 재미있게 춤추며 살고 싶을 뿐.


그러면 안 되나, 내 꿈은 한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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